소설리스트

27화 (28/51)

27. 

1심 첫 번째 변론 기일이 잡혔다.

서울 가정 법원 법정 좌우에 양측 법률 대리인들이 자리를 잡았다. 피고 쪽에 짐들을 내려놓던 노회한 인상의 한 변호사가 원고 측 위치로 다가왔다. 남자가 세헌의 곁에서 나지막하게 헛기침하자, 서류들을 검토하고 있던 그가 돌아보았다. 이윽고 두 사람은 구석으로 가 따로 조용히 대화를 나누었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윤신이 반사적으로 제 뒤를 살폈다. 목에 스카프를 둘러맨 누나가 시선을 느끼곤 입꼬리를 어설프게 올렸다. 생각했던 대로 막상 재판정에 서자 불안했던 것 같았다. 도저히 깔끔하게 웃어지지가 않는 모양인지 이내 작게 한숨을 내쉬는 모습이 그것을 증명했다. 마치 전염되기라도 한 듯 깊이 숨을 내쉰 윤신이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 섰다.

“긴장돼?”

거의 비어 있는 방청석 쪽을 힐끗 살핀 누나가 조심스럽게 끄덕였다.

“비공개 재판인데도 이상하게 사람들 앞에 알몸으로 선 느낌이 들어.”

“너무 걱정할 거 없어. 오면서도 설명했지만 원래 1차 기일엔 특별한 거 안 해. 그냥 서면들 확인 절차 정도야. 그동안 서로 의견 내고, 답변하고, 뭐 신청하고 그랬던 거 재판부에 제출하는 수순이거든.”

“저쪽에서는 그동안 집안일 해 줬던 사람들을 증인으로 신청했다면서. 다 예전에 일했던 직원들이고 지금은 관둔 상태야. 그 사람들 일할 땐 부부 사이가 나쁘지 않았는데 뭘 기습 증언하려는 걸까. 혹시 나한테 불리할까?”

정말로 아니라고 말해 안심시켜 주고 싶지만, 사실을 정확하게 전할 필요가 있었다.

“수석님들은 저쪽 변호사들이 어느 정도 교육을 시켰을 거라고 보시더라고. 내 생각에도 아마 대부분 매형한테 이로운 증언을 하지 싶어. 우리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반박 준비는 했지만 심한 경우 위증을 할 수도 있어.”

“없는 얘길 할 수도 있다는 거야?”

“응, 최악의 경우에는. 그렇게 되면 일이 좀 꼬일지도 몰라. 재판이 좀 더 길어질 거야.”

“설마 그렇게까지 할까? 뭘 해 준다고 약속하면 법정에서 위증까지 해?”

“아마 돈이겠지. 하지만 돈으로 사람을 매수했다면 그건 결국 저쪽의 약점이 돼 줄 거야.”

확신에 찬 대꾸에 겨우 미세하게 긴장을 푼 그녀가 어깨를 늘어뜨렸다. 윤신은 너무 심란해할 거 없다는 양 마른 어깻죽지를 주물러 주었다.

“누나가 아는 사실이랑 다른 말이 나와도 당황하지 마. 우리한텐 물적 증거가 숱하니까. 저쪽에서 샛길로 새도, 우리가 왕도로만 가면 이길 수 있어.”

언젠가 그녀가 확보한 모든 증거 자료들을 확인한 미희도 이렇게 제대로 송사를 준비한 의뢰인은 처음 봤다며 감탄했을 정도였다. 동영상, 사진, 녹취록. 게다가 의료 기록 따위들까지 노다지였다. 법조인인 아버지의 일을 어렸을 때부터 어깨너머로 배워 왔던 터라 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았다.

몹시 확실하다 보니 상대편에서는 그녀가 작정하고 이혼을 준비하며 가정 파탄을 유도했다는 식으로 극악한 논리를 펼칠 게 너무나도 뻔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도 의사와의 심리 상담 기록을 토대로 한 변론이 준비돼 있었다.

“다 잘될 거야.”

긴장을 완화해 주기 위해 평소보다 더 다정한 어투를 꾸며 낸 윤신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러고는 제 자리에 다시 와 위치를 잡았다.

어느 틈에 방청석의 출입이 제한된 모양인지 법정 경위가 안으로 들어섰다. 동시에 세헌도 상대측 변호사와 대화를 끝낸 듯 윤신이 있는 자리로 되돌아왔다. 한 가지 의아한 건 노회한 변호사의 얼굴이 매우 붉으락푸르락했다는 거였다.

원고 측에 나란히 선 그들은 고개를 기울여 소곤거리듯 대화를 나눴다.

“매형은 조정 기일에도 한 번을 출석 안 하더니, 변론 기일에도 결국 안 올 건가 봐요.”

“법정에서 엉덩이 무거운 인간들은 대체로 뒤에 켕기는 게 있어서 그런 거니까. 좋은 조짐이야.”

“그럼 다행이고요. 그런데 저쪽 변호사가 뭐래요? 되게 기분 나빠 보여요.”

“위자료 액수를 좀 줄여 보자더군. 그러지 않으면 송사 후에 너희 누나가 힘들어질 거라고 협박하더라고.”

생각이 많아져서 뒤쪽의 누나를 힐끗 본 윤신은 다시 고개를 세헌에게 기울였다. 처음부터 송사가 끝인 게 아니라, 그 뒤의 일들이 진짜 그녀가 치러야 할 전쟁이라는 걸 알고 시작한 싸움이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감수하겠다고 하니 자신으로선 도울 따름이었다.

“갑자기 여기서요? 누나가 소송 끝나면 괴로워질 건 저 법정 경위도 짐작하겠어요. 뜬금없이 무슨 꿍꿍이예요?”

“글쎄. 블러핑? 큰 의미 없겠지만 시도해 본 것 같아. 변론 시작하면 정확히 알게 되겠지.”

“그래서 수석님은 뭐라고 답하셨는데요.”

“좆 까라고.”

전혀 웃을 상황이 아니었는데, 세헌이 베어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무표정으로 천연덕스럽게 대꾸해서 자신도 모르게 픽 웃고 말았다. 그 덕분에 긴장 가득하던 분위기가 아주 조금 누그러졌다. 그러다 뒤늦게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은 걱정에 휩싸여 황망히 이어 물었다.

“그래도 돼요? 저분 까마득한 선배님이잖아요.”

“초장에 열받게 만들어야 실수가 나오지. 그리고 법정 안에선 모두 평등해. 판사 빼고.”

“어, 그럼 우리도 여기선 평등한 거네요. 맞지, 강세헌.”

“넌 그거 까면 험한 꼴 많이 보게 될 텐데. 내가 네 사타구니 사이엔 관심이 좀 있거든.”

보는 눈들이 없지 않아 차마 그에게 야릇한 의미를 새긴 눈빛을 보내는 것 이상의 반응은 하진 못했다. 농담으로도 기저에 있는 걱정이 완전히 소멸되진 않아 그저 제 손만 꽉 쥐락펴락했다. 그걸 아는지 세헌이 등을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그사이 법정 경위가 사람들을 향해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기립!”

음성이 방청석까지 골고루 퍼지자, 판사들이 앞문을 통해 입성했다. 법복을 입은 그들이 자리에 착석한 후, 본격적으로 재판이 진행됐다.

가운데 앉은 재판장은 출석한 원고와 피고가 본인인지 확인하는 인정 신문을 했다. 누나가 먼저 본인임을 소명하고, 상대편은 법률 대리인인 변호사가 아직도 얼굴을 벌겋게 물들인 채로 일어나 신분을 밝혔다. 뒤이어 판사가 세헌을 향해 먼저 손짓했다.

“원고 측 대리인. 소장 진술 시작하세요.”

이윽고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서 재판정 내를 두루 둘러보다 힐끗, 누나가 스카프를 매고 있는 모습을 확인하더니 윤신을 향해 눈짓했다.

“서증 제출만 하기 지루하니까 임팩트를 좀 줘 보자. 목 졸려서 상처 난 사진 있지. 증 제7호. 그걸 서류 사이에 끼워. 그리고 너희 누나 스카프 더 꽁꽁 매라고 해.”

“알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누나 목 멀쩡해요.”

“그러니까 감싸 매라고. 보여 줄 게 없으면 아무것도 안 보이게 만드는 것도 방법이야. 의구심만으로도 충분해.”

이윽고 늘씬한 몸을 곧추세운 그가 진술을 시작했다. 손짓은 여유로웠고, 어투는 신중했다.

“재판장님, 그리고 두 분 판사님. 원고 도이경과 피고 유정원은 10년 결혼 생활의 파경에 이르렀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세헌이 신뢰감 있는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가는 동안, 때마침 뒤늦게 들어온 미희가 누나의 옆으로 가 앉으면서 손을 잡아 주었다. 나란히 앉은 두 여자는 아주 비슷한 차림을 하고 있었다.

윤신은 그 모습을 흘긋 보고 안도하며 제출할 자료들을 차근차근 정리했다. 이 위엔 누나가 10년을 함께 산 배우자를 공격할 무기들이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놓여 있었다. 그걸 내려다보다가, 만감이 교차해 세헌의 탄탄한 뒷모습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불현듯 7년이나 자신을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으냐는 제 물음에 해 보고 답해도 되겠냐고 반문하던 그의 낮은 목소리가 떠올랐다.

7년 뒤의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확실한 인연이라 믿고 평생을 걸었던 수십, 수백 쌍들이 매일 인연의 종지부를 찍는다. 심지어 아무것도 보증할 수 없고, 법적 구속력도 존재하지 않으며, 필요 이상 기대해서도 안 되는 그들 관계가 10년 뒤에는, 그리고 15년 뒤에는 또 어떤 형태일지 가늠이 안 갔다.

다만 정말 이상하게도, 사람들이 왜 실패할 가능성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하는 건지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연인과 함께라면 허름한 여관에서도 일생 동안 행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위대한 유산〉의 핍처럼,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란 어쩌면 끊임없는 착각일지도 모른다.

‘7년이면 서로 무의식적인 습관 정도는 꿰고 있겠지.’

앞으로 그와 공유할 시간들을 상상하며 윤신이 조용히 미소 짓고 있는데, 세헌이 진술을 간단하게 끝낸 모양인지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상대측 변호사가 반소장의 내용에 대해서 진술하는 사이, 지그시 제게 시선을 던졌다.

그 또렷하고 날카로운 두 눈이 ‘너 또 쓸데없는 생각 하지.’라고 묻는 듯했다.

윤신은 ‘우리의 미래를 그려 봤다.’라는 낯간지러운 소리를 하는 대신,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 * *

법원 건물에서 빠져나오는 세헌과 윤신을 족히 수십 명은 되어 보이는 취재진이 에워쌌다.

이경은 비서실장과 함께 후문 쪽에서 대기 중인 상태였다. 그사이 두 사람은 벙거지 모자를 푹 눌러쓴 미희를 가운데 두고 경호원들이 의뢰인을 보호하듯 칼같이 수호하며 나란히 걸었다. 그녀가 누나와 옷차림을 비슷하게 하고 온 건 일부러 취재진들에게 혼선을 주기 위해서였다. 고맙게도 미희가 먼저 제안했다.

윤신은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러고는 세헌과 눈을 마주쳤다. 그는 눈짓으로 신호를 보내더니 흡사 해일처럼 쏟아지는 플래시 앞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고 기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변호사님! 1차 변론이 끝났습니다. 아직 시기상조지만 결론이 어떻게 날 걸로 보십니까.”

자신만만한 엷은 미소를 보인 그가 차분하게 응답했다.

“판결은 재판부가 내는 겁니다. 결과는 차후 선고 기일에 알게 되겠죠. 다만.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이라는 소설에 나오는 글귀로 제 지금 생각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 어떤 것도 겉모양만 보고 판단하지 말게. 증거에 입각해서 보게나. 그것보다 더 좋은 규칙은 이 세상에 없다네.[2] 네, 이 이상 드릴 말씀 없습니다. 나머진 보도 자료로 대체하겠습니다.”

음성은 덤덤하지만 내용은 힘 있게 강조해 대꾸한 그는 이내 인파들 사이를 지나쳤다. 윤신과 누나를 가장한 미희가 차량 쪽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세헌이 앞서 헤엄치듯 길을 트면, 두 사람이 그 뒤를 조용히 따랐다.

“변호사님! 강 변호사님! 앞으로 진행 상황에 대해서 한마디 말씀해 주십시오!”

“관장님! 유정원 대표가 어제 입장문을 발표했는데요. 혼인을 파탄으로 몰고 간 본인 유책 사유에 대해 동의하십니까! 도덕성에 흠결이 있다는 것 말입니다! 법무 법인의 입장을 제외한 직접 해명은 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도윤신 변호사님! 누나의 이혼 소송을 맡게 되셨는데 심경이 어떠십니까! 부정 청탁 논란에 대해서는 여전히 하실 말씀이 없으십니까!”

기자들이 쫓으면서 세 사람을 겨냥해 수차례 질문을 던져 댔으나 답할 수 없는 미희는 물론이고 세헌도 조금 전 했던 말을 지키려는 듯 묵묵부답이었다. 자연히 윤신도 입을 다물었다. 이윽고 나란히 앞뒤로 주차된 검은 세단 앞에 선 세 사람은 대기하고 있던 기사들에게 눈짓했다. 그들은 미희를 겨우 먼저 앞차에 태운 뒤라야 겨우 한숨을 돌렸다.

먼저 출발하는 차량의 뒤꽁무니를 반절가량의 사진 기자들이 쫓아갔다. 그럼에도 여전히 세헌과 윤신의 주변은 인산인해였다. 자꾸 얼굴로 카메라를 들이밀어 찍는 것도, 제 몸에 손을 얹는 것도 부담스러웠던 윤신이 차에 타려다 말고 슬쩍 팔을 비틀었다.

바로 그때였다. 반대편으로 재킷을 잡고 당기던 기자 두 사람이 반동으로 몸을 비틀거렸다. 당황한 윤신이 돌아보는 틈을 타 누군가 그것을 반쯤 벗겨 버렸다. 얼떨결에 반만 겉옷을 걸친 차림이 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자 이번엔 아예 대놓고 팔꿈치와 손목 따위를 직접 붙잡고 마이크를 들이댔다.

결국 윤신은 사방이 모두 막혀 좁고 둥그런 원 안에 갇히고 말았다.

‘젠장.’

속으로 욕지거리를 뱉어 낸 그가 하는 수 없이 모든 자잘한 움직임을 멈췄다. 물론 완력을 어느 정도 활용할 수도 있겠지만, 주변에 카메라만 수십 대였다. 즉흥적으로 행동했다가 기사에 어떻게 나게 될지가 훤했다.

곤란해서 어정쩡하게 서 있는데, 이미 기사가 문을 열어 준 반대편 방향으로 차에 탑승하려던 세헌이 다시 문을 쾅, 닫아 버렸다. 그러나 그의 입가에는 놀랍게도 여유 만만하고 부드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놔주시죠. 당사자가 불쾌해하는데 함부로 몸을 만지는 건 적법한 행위가 아닙니다.”

나직한 경고와 함께 보닛을 돌아 온 세헌이 윤신에게 다가섰다. 그는 윤신의 등에 닿은 기자의 손을 대신 밀어내고 겉옷을 반만 걸친 상체에 옷을 다시 입혀 주었다.

기자들이 잠시 눈치를 보는 사이, 마른 몸을 감싸듯 안쪽으로 몰아넣어 차에 태웠다. 그러고는 아직까지도 징그러울 정도로 휴대폰들을 내밀고 있는 이들을 등지고 자신도 차에 탑승해 민첩히 문을 닫아 버렸다.

마침내 차량이 인파를 헤치고 주행을 시작했다.

뒷자리에 나란히 앉은 그들은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차가 대로변에 진입하자, 그제야 세헌이 시트로 머리를 툭 기대며 신경질적인 숨을 삼켰다. 윤신은 그의 옆모습을 힐끗 봤다.

“괜찮으세요?”

짜증스럽게 눈살을 구긴 그가 그제야 천천히 윤신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그건 내가 해야 할 말 아니야? 어디 좀 봐.”

슬쩍 오른 손목을 끌어간 그는 윤신의 소매를 걷어 올리고 이곳저곳을 살폈다. 셔츠 위로 붙들린 건데도 타인의 붉은 손자국이 남아 있었다. 가뜩이나 냉랭한 그의 눈매가 더욱 서늘해졌다. 안면에 흥분한 기색은 없었으나, 윤신은 지금 그가 당장에라도 폭발할 듯 열이 났다는 걸 알았다. 묵묵히 운전하는 기사를 슬쩍 보곤 세헌을 달래듯 손을 잡아 주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러시겠지.”

“진짜예요.”

그가 믿을 수 없다는 양 뭔가를 답하려는 찰나, 윤신의 서류 가방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을 확인하자, 미희와 누나, 그리고 탁 비서의 메시지가 연달아 도착했다.

앞에 온 두 개는 거의 내용이 비슷했다. 무사히 빠져나갔으니 염려 말라는 이야기를 세헌에게 전해 달라는 거였다. 누나의 경우 집으로는 바로 갈 수 없을 것 같아 며칠간 별장에 머무르겠다는 내용이 첨가되어 있었다.

“두 분 다 사람들 눈 잘 따돌렸나 봐요.”

고개를 끄덕여 준 세헌이 골치 아프다는 양 미간을 구겼다. 그러다 목이 답답한지 넥타이를 푸르고, 재킷도 벗었다. 그러는 사이 윤신이 태블릿 PC의 전원을 켰다.

펌에 있는 탁 비서가 오늘 변론이 시작되고부터 업로드 되기 시작한 기사들을 적당히 선별해 한 시간 단위로 보내 주고 있었다. 얼마나 실시간이었던지 조금 전 차에 탑승할 때 두 사람의 모습도 사진으로 첨부된 게 보였다. 그것들을 세헌이 함께 확인할 수 있도록 기계를 가운데 놓고 그의 어깨를 슬쩍 쳤다.

“오늘 자 기사요. 탁 비서님이 취합해서 전송해 주고 계세요.”

매끈한 턱을 커다란 손으로 감싼 세헌이 헤드라인들을 눈대중으로 살폈다. 매우 진중한 눈길로 그것들을 속독하곤 입을 열었다.

“우리 쪽 보도 자료는. 헤드라인에 우리 논조가 안 보여.”

“여기 보시면…….”

윤신은 포털 사이트에 접속해 뉴스 채널의 피드를 보여 주며 덧붙였다.

“이렇게 수한에서 부부 이름 검색해서 나오는 기사들을 쓸데없는 뉴스로 덮으려고 하고 있대요. 계속 같은 언론사의 실시간 속보가 갱신돼요. 간헐적으로 우리 입장도 나오긴 하는데 물량 공세에는 당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판사들은 여론에 민감해. 며칠은 밤샘 각오하고 홍보 대행사 인력을 풀로 돌려서 SNS랑 동영상 공유 서비스, 커뮤니티들 싹 다 공략하라고 해. 꼭 기사일 필요 없어.”

“그렇게 답장할게요.”

여론에 판결이 갈대처럼 휘둘릴 거라면 재판정이 왜 존재하는 건지 모르겠다. 하나 법의 위에 사람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인 윤신이 탁 비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뒤이어 옆의 세헌을 훔쳐보자, 그도 제 쪽을 보고 있어 눈이 마주쳤다.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서로의 입이 다물렸다. 적막이 내려앉았다.

세헌의 눈동자에 비친 희미한 기색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제는 어느 정도 알았다. 그가 키스하고 싶어 하는 듯해서, 삽시간에 윤신도 그런 기분에 휘말렸다. 헛기침을 하며 눈길을 피해 반대편 창가를 보니 그 유리창 위에도 그의 또렷한 이목구비가 비쳐 난처했다.

서걱거리는 카시트 위에 애먼 손을 문지르던 윤신이 말문을 열어 주파수를 흘렸다.

“맞다. 나오기 전에 저쪽 변호사랑 다시 잠깐 대화하셨잖아요. 누나도 같이 듣더니 표정 안 좋아지더라고요. 제가 넌지시 물어봤는데 변호사님께 들으라고…… 뭐였어요?”

그제야 그도 마침 말을 잘 꺼냈다는 양 가볍게 턱짓했다.

“안 그래도 얘기하려고 했어. 다음 변론 기일이…….”

“두 달 뒤요.”

“너도 감 왔겠지만 2차 변론 기일 자체는 짧게 끝날 거야. 오늘 서면 제출한 것들이랑 증인 신청 목록 보니 피고 쪽에서 새로운 주장을 할 가능성이 매우 커. 그럼 재판부는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시간을 주겠지. 그사이 저쪽은 여론전에 총력 다 할 생각인 것 같다.”

“소송 기간이 길어질수록 우리한테 불리할 거라고 회유하던가요?”

세헌도 바로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도 관장을 네가 따로 한번 만나 봐.”

“이번엔 뭘로요. 아까처럼 또 위자료 얘기해요?”

“아냐. 아이들 문제야. 그쪽도 오늘 우리가 어떤 식으로 공격권을 행사할지 재 본 뒤 협상을 하려고 한 모양이야. 처음으로 숙이고 들어왔어. 양육권을 줄 수도 있다는 식으로 뉘앙스를 흘리더군. 까딱하다 큰형한테 경영권이 넘어갈 수도 있다고 판단했나 봐.”

운이 따랐던 건지 소송 시기가 좋았던 덕분이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단단히 잘 버텨 왔다는 의미도 됐다.

“그럼, 양육권만요? 친권은요. 따로는 웬만해선 잘 안 해 주잖아요.”

“어찌 됐든 친권은 유 대표한테 있어야 회사를 물려줄 수 있으니까. 그걸 일종의 재산 분할이라고 판단하고 있었어. 아이들 미래를 위해서 서로 하나씩 양보하자는 거겠지.”

“그걸 줄 테니 뭘 해 달래요?”

“소송을 여기서 끝내길 원해. 조정으로 합의를 보자고.”

법정에서 나와 후문으로 향하기 전 보았던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자, 윤신도 짚이는 부분이 생겼다. 상대측 변호사가 감언이설로 홀렸을 테고, 아무리 단단하게 마음을 먹었어도 자식 이야기로 회유하면 흔들렸을 터다.

계속 본의 아니게 외부 시선에 노출되면서 누나도 이 소송이 얼마나 길어지게 될까 마음에 걸려 하는 기미는 조금씩 있었다. 흠결 많은 엄마가 된 본인의 상황 때문이었다. 스스로는 결심한 일이니 버틸 수 있겠지만, 자녀들을 곧 초등학교에 보내야 하는데 그게 아이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칠까 봐 염려되는 듯했다.

“누난 흔들리나 봐요.”

“우리는 앞으로 짧아도 1년, 길면 2년. 혹은 추후 몇 년을 더 이 짓을 해야 돼. 너랑 나야 당사자가 아니니 평소에 할 일 하며, 조용히 준비해서 몇 달에 한 번 재판 참석하면 되지만 너희 누난 달라.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들을 키워야 해. 당연한 일이야.”

적당히 타협하면 최소한 악질적인 공격에선 벗어날 수 있을 터였다. 그뿐만 아니라 세헌이 협상 테이블에서 가능한 한 많은 대가를 받아 내 줄 테니, 사실 지금이라도 누나가 모든 걸 포기하겠다고 하면 그녀의 동생 입장에선 마음이 놓였다. 아울러 몸도 편했다.

하나 선뜻 반기기엔 걸리는 게 많았다. 세헌도, 도국도 이 건 하나로 희생한 게 얼마나 많은지를 알기 때문이다.

어느 쪽으로도 답하지 못하고 입술을 달싹였다. 윤신의 복잡한 심경을 대충 눈치챈 모양인지, 세헌이 다시 입을 열었다.

“원래 이혼 소송에는 승자와 패자가 없고 변호사의 승리와 패배만 있다는 말이 있어. 모든 건 선택의 문제야. 다음 변론 기일 후, 조정하겠단 의사를 보이면 아마 판사가 바로 자릴 만들어 줄 거야.”

“따로 한번 만나 보라는 건, 제가 누날 설득하길 바라셔서 그런 거죠? 수석님은 이 소송 끝까지 가고 싶으신 거고요.”

아주 조심스럽게 윤신이 묻자, 그가 버석한 숨을 쏟아 냈다. 그리고 이번에도 세헌은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아마 나를 설득하는 것보단 훨씬 쉽고 빠를 거야.”

“…….”

“위자료와 재산 분할을 천문학적인 액수로 받는다면 애들은 학교를 안 다녀도 알아서 사회화돼. 홈스쿨링이라는 좋은 제도가 있어. 아니면 외국 유학을 보내는 방법도 있겠군.”

설핏 굳어 있던 윤신의 말간 얼굴에 미세하게 웃음기가 퍼져 나갔다. 달변인 그가 적당히 포기하는 것도 때로는 미덕이라며 자신을 혼란에 빠뜨렸다면 분명 속절없이 그 소용돌이 안에서 헤엄쳤을 것이다. 지금도 그들은 모두 힘들었고, 조금씩 지쳐 가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세헌이 물러서지 않고 적과의 타협엔 선을 그어 주어서, 다행이었다. 누나도 그의 선택이 그렇다면 마음을 다잡고 따라와 주리라. 자신도, 강세헌을 믿었다.

엉덩이를 조금 옆으로 옮긴 윤신은 그에게 제 팔과 허벅지 따위를 은근히 마찰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비스듬히 해 세헌의 귓전에 가만가만 이야기했다. 운전 중인 기사에겐 들리지 않을 아주 낮고, 감미로운 주파수였다.

“그럼 대신 저 오늘 저녁 밖에서 사 주세요. 비싼 거로요.”

이에 장단을 맞추듯 세헌도 얼굴을 기울여 나지막하게 속닥거렸다.

“도윤신 변호사 시스터 콤플렉스 있잖아. 너희 누나 오늘 힘들 텐데. 데이트 괜찮겠어?”

“어차피 밥은 먹는 거잖아요.”

“너 오늘 나랑 저녁 먹으면 섹스도 하게 될 거야. 며칠 너 기절해서 뻗어 자는 것만 봤더니 오늘은 해야겠어.”

어차피 누나야말로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별장으로 자신을 두고 가 버렸던 터다.

“긴 싸움인데 이건 이거고. 우린 우리 연애 해야죠.”

미끈한 얼굴을 내려다보던 그가 윤신의 목에 걸린 푸른빛 넥타이를 만지작거렸다. 얼마간 그렇게 손으로만 장난을 치는가 싶더니, 곧 넓은 끄트머리를 위로 들어 올려 보드라운 천 위에 입을 맞췄다. 필연적으로 언젠가의 비슷한 일이 떠오른 윤신의 얼굴이 희미하게 붉은빛으로 달아올랐다.

직접 살갗이 닿는 촉감을 아는데, 지금 그럴 수 없다는 게 왠지 모르게 초조한 기분을 몰고 왔다. 그래서 윤신은 기사가 좌회전을 하느라 외부에 정신이 팔린 순간, 그가 입 맞춘 부분에 간접 키스 하기 위해 입술을 맞물렸다. 그러고는 그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 모든 모습을 물끄러미 관찰하던 세헌이 마른침을 삼켰다.

긴 목의 도드라진 부분이 느릿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이 매우, 야릇했다. 아무것에도 관심 두지 않는 세헌이 제게 조바심 내는 모습은 언제 봐도 짜릿하고, 신선했다.

기분이 좋아진 윤신은 픽 웃음을 터트렸다.

* * *

끼익. 끼익.

늘씬한 두 다리를 있는 대로 벌린 윤신의 몸이 책상 위에서 쓸렸다. 물고기가 물 없는 맨땅에서 튀어 오르듯 허리를 바르작거릴 때마다 책상머리가 함께 움직였다.

마른 몸을 연신 들썩이게 만드는 건 그 위를 점령한 폭군이었다. 세헌은 제 길쭉한 손가락에 미끄덩한 오일을 흥건하게 발라, 다리 사이의 좁은 내부를 거칠게 쑤셔 댔다. 마치 상하 운동 하듯이 넣었다, 빼냈다를 반복할 때마다 찌걱거리는 외설적인 소리들이 두 사람의 귀에 감칠맛 나게 감겨들었다.

좁은 내벽에 그의 곧은 손가락이 단단하게 푹 꽂혀 들었다. 벌름거리는 내벽이 그의 살갗을 본능적으로 감쌌다. 그 쫀득한 촉감 때문에 흥분한 세헌은 공간을 넓히는 데 주력하다 선로를 바꿨다. 입구에서 멀지 않은 자리에 위치한 전립선으로 위치를 옮겨 그 위를 난폭하게 찔렀다. 콱, 콰악. 마치 짓이기듯 눌러 주자 윤신의 몸이 경련하듯 파르르 떨렸다.

“읏, 선배! 으응! 거, 거기! 흣!”

그는 기대를 배반하지 않고 집요하게 그 위를 유린했다. 자유로운 한 손으로는 유두를 비틀면서 동시에 은밀한 자리를 끊임없이 강력하게 괴롭히자, 결국 윤신이 목을 뒤로 젖히며 헐떡거렸다. 아울러 곧게 뻗은 양쪽 종아리가 부들거렸다. 뒤이어 새된 음성과 함께 선단에서 불투명한 정액을 훅 쏟아 냈다.

“아! 아흑!”

팟, 하고 튄 끈적한 액체들이 세헌의 상반신 이곳저곳에 흩어졌다. 얼굴을 윤신의 성기 쪽으로 기울이고 있던 탓에 입술 주변과 턱에도 일부 묻어났다. 그는 제 입가에 튄 희뿌연 액체를 혀끝으로 핥았다. 게슴츠레하게 눈뜬 채로 사정의 여운에 젖어 그를 올려다보던 윤신이 소소하게 경악했다. 제 체액이 일용할 양식 정돈 된다더니, 세헌은 했던 말을 지켰다.

부끄러워진 윤신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러고는 마른세수를 하는데, 허리 아래에서 오묘한 감촉이 느껴졌다. 손을 떼어 내고 밑을 내려다보니, 토정 후 조금 늘어져 있던 성기를 세헌이 입에 담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아주 노골적으로 빨았다. 귀두부터 기둥까지 아이스크림 베어 물듯 크게 한입에 담았다가, 뿌리까지 삼킬 듯 깊숙하게 밀어 넣었다.

압박감 때문에 바로 다시 흥분하게 된 윤신이 둔부를 미친 듯이 들썩였다.

“아, 선배, 아…… 다시 설 것 같아요…… 이제 그만.”

성기를 입에 가득 문 그가 뭔가를 답했다. 입 속이 꽉 차 우물거리는 통에 뱉은 문장을 정확하겐 알 수 없으나 짐작건대 ‘그냥 세워.’ 정도 되리라.

얼굴이 벌게진 윤신이 성기를 빼내려 엉덩이를 조금 뒤로 빼자, 세헌이 둔부의 쪼개진 양쪽을 두 손으로 각각 쥔 채로 좀 더 애무했다. 뒤이어 음낭까지 입 안에서 굴리며 공평하게 자극해 댔다.

그뿐만 아니었다. 회음 부위에 키스를 퍼붓다 밀부의 입구에 혀끝까지 뾰족하게 세워 밀어 넣는 통에 자지러질 뻔했다. 끝내 조금 전 사정했다는 것도 까맣게 잊은 듯 윤신의 것이 도로 뻣뻣하게 고개를 쳐들었다.

“윽, 흐으, 이러지 마요. 아, 응!”

벌써 몇 번째 발기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제는 그가 직접 들어와 줬으면 했다. 혀끝이나 손가락보다는 그의 것이 훨씬 짜릿한 쾌감을 준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한데 아까부터 딱딱하게 강직돼 있어 복부가 불편할 텐데도 세헌은 윤신을 흥분시키는 데 매우 공을 들였다.

가끔 자신을 괴롭히고 싶을 때 그는 이런 방법을 썼다. 심술궂은 세헌다운 형벌이었다. 정확한 이유가 있을 때도 있었고, 그저 그의 기분이 자신을 이런 식으로 달콤하게 학대하길 원할 때도 있었다. 이번엔 아마 며칠 동안 강제로 독수공방을 하게 된 죗값을 물게 하려는 것 같았다. 몇 번의 학습으로 윤신도 이제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하는지를 알았다.

후우, 한숨을 몰아쉰 윤신이 힘이 들어가지 않는 두 다리를 올렸다. 그러고는 그의 목을 감싸듯 발목을 겹쳤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양손으로 결 좋은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서면 준비하느라 그런 거예요. 그래도 꼬박꼬박 선배 옆에 와서 잤잖아요.”

밀부에 혀를 넣고 굴리던 세헌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눈가에 비친 열정은 그 온도가 제게 전이될 정도로 강력했다. 그도 한계가 온 게 분명했다.

“할 말 그게 다야?”

“세헌 선배, 사랑해요. 얼른요. 더는 못 참겠어요.”

세헌은 이름을 부르는 제게 약했다. 사랑 고백을 하는 자신에겐 더 약했다. 두 가지를 모두 한 윤신이 몸을 떨며 그를 원하고 있다는 표현을 내비치자, 결국 그가 입술을 짓씹었다. 곧 위로 치솟아 꺼떡거리는 굵은 기둥을 밀부의 입구에 맞췄다.

그는 잔뜩 핥아 놓아서 축축해진 그 위에 뻣뻣해진 선단을 몇 번 문질렀다. 기대에 찬 윤신이 그의 어깨를 붙잡자, 이걸 신호탄으로 오일 범벅이 된 구멍 속에 제 성기를 있는 힘껏 박았다.

퍼억! 단박에 반 이상 박혀 들어간 세헌의 것이 윤신의 안에 가득 찼다.

“아흑! 아!”

뿌리까지는 아직 일부가 남아 있었다. 핏줄이 잔뜩 서 붉어진 그것을 힐끗 내려다본 세헌이, 윤신이 정신 못 차리는 사이 그대로 나머지를 확 찔러 넣었다.

“으응! 응……!”

“나한테 박혀서 좆이랑 구멍이 동시에 바들바들 떠는 거 느껴져? 포르노가 따로 없어.”

“흐읏, 좋아, 너무 좋아요.”

“네가 지금 얼마나 난잡한 얼굴인지 눈 똑바로 뜨고 봐.”

윤신의 턱을 꽉 쥐어 옆면으로 돌려 준 세헌이 창에 비친 두 사람의 모습을 직접 보게 만들었다. 어두운 배경 때문인지 서로의 탄탄한 알몸과 연결된 접합 부위 따위들이 고스란히 시야에 잡혔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명령대로, 세헌의 것에 박혀서 거의 넋을 잃을 정도로 아찔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제 모습도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눈꺼풀을 질끈 내리감았다 뜬 윤신이 입을 벌리고 파들거렸다.

“너무 느껴서 꼴사납다는 뜻이에요?”

“보면 몰라?”

“그런데 이건 왜 자꾸 커져? 아! 아!”

그 순간. 대답 대신 마침내 끝까지 진입한 성기가 내부를 휘젓듯이 눌러 댔다. 그때부터는 요란한 피스톤 운동이 시작됐다. 세헌은 때로 몸으로 더 솔직히 말했다. 지금이 바로 그런 때였다. 밀부에 제 성기를 꽂아 넣은 그는 과격하게 허리 짓 했다. 꽤나 묵직한 책상이 끊임없이 덜컹거렸다.

양다리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있던 그가 그마저도 번거롭다는 양 넓은 어깨 위에 발목을 다시 걸치게 만들었다. 그러곤 늘씬한 골반을 단단히 틀어쥐어 그대로 제 것으로 내벽을 깊이 쑤셨다. 아득한 자리까지 성기가 박혀 들자, 윤신이 새된 소리를 내질렀다.

“아! 선배, 서, 선배!”

기분 탓인지 아니면 실제인지 내장이 위로 쏠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가 아주 아득한 자리로 파고들 때마다 윤신은 정말이지 숨이 턱턱 막히고 짜릿해서 돌 것 같았다.

음부에 삽입 운동을 가하는 그의 탄탄한 허리가 바짝 약이 올라 팽팽해졌다. 근사한 등 근육이 평소보다도 선명하게 꿈틀거렸다. 드릴로 박듯이 아래로 성기를 꽂아 넣었다가, 뒤로 훅 빼는 행위를 번갈아 하자, 맞물린 서로의 몸이 조금씩 위로 쓸렸다. 양쪽으로 몰아 두었던 서류들이 팔랑거리며 바닥으로 추락했다.

퍽, 퍽! 성기를 욱여넣듯이 박아 대는 그의 인터코스는 몹시 난폭했다. 젖은 살갗이 마찰하며 철벅거리는 끈적한 소리들이 끊임없이 일었다. 윤신의 둔부에 제 탄력적인 골반을 몇 번이고 부딪쳐 대는 세헌의 이마에서 땀이 뚝 떨어졌다.

“선배 나 허벅지 땅겨, 아파!”

“내 좆이 네 어디 들어가 있는지 설명해. 그럼 체위 바꿔 줄 테니까.”

“내 안에, 으응, 제 안에 있어요.”

“지금 널 쑤시고 있는 건 누구지?”

“세헌 선배, 아, 아프다고요! 일으켜 줘요.”

밀린 방학 숙제를 하듯 빠르고 거칠게 퍽퍽 박아 대던 그가 하는 수 없이 윤신의 두 다리를 내려 주고 자세를 고쳤다. 연이어 제 목을 바짝 끌어안게 만들더니 마른 몸을 번쩍 안아 들었다. 성기가 그 어느 때보다도 깊숙하게 박혀 드는 느낌이 든 윤신이 본능적으로 두 다리를 접어 세헌의 탄탄한 허리를 감싸 안았다.

“싫, 싫…… 아! 너무 깊게 들어왔어요. 잠깐, 뒤로 조금만. 아!”

서로의 자세가 불안정적인 구도로 변하자, 그가 그대로 위치를 옮겨 벽면으로 향했다. 그는 하체를 죄다 집어넣을 작정인지 뱃가죽에 제 선단을 비빌 기세로 윤신의 몸을 힘껏 내리눌렀다. 더 들어갈 자리가 없을 거라고 믿었는데, 아니었다. 길고 두꺼운 기둥이 밀부 속에 빈틈없이 가득 찼다.

“읏, 으읏!”

경악한 윤신이 차마 비명도 소리 높여 지르지 못하고 그의 목덜미와 등을 정신없이 할퀴었다. 동시에 쫀득거리는 내벽이 함께 수축해 그의 것을 조였다. 그 압박으로 몸을 떨던 세헌이 윤신을 내려 주고는 벽으로 밀어붙였다.

딱딱한 면을 두 손으로 짚은 윤신이 자세를 잡자, 그가 한 손으로는 복부를, 다른 한 손으로는 골반을 짚어 함께 지탱해 주면서 제 것을 다시 음부에 밀어 넣었다. 깊은 곳에 쿡 찌르는 순간 윤신이 등을 움찔했다. 세헌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귀두로 박을 수 있는 가장 안쪽을 꽉 짓눌렀다.

“흐읏, 흣……. 저 할 것 같아요. 선배 나 쌀 것 같아.”

조금 전보다 성기는 덜 깊이 박히긴 했으나, 그 덕분에 윤신이 가장 느끼는 자리가 힘껏 눌렸다. 그걸 모르지 않는 세헌이 타이밍을 맞춰 복부를 짚고 있던 손을 끌어 내렸다. 그러고는 발기해서 흔들거리는 성기를 어루만져 주었다. 앞으로는 성기를 애무하고, 뒤로는 제 것을 삽입해서 이원으로 자극하자 밀착력 있는 내부가 마치 숨을 쉬듯 움찔거렸다.

“아, 저 지금 할 것…… 아! 벽 더러워지겠어! 잠깐! 잠깐 뒤로!”

“괜찮아, 그냥 해.”

“싫, 읏! 도우미 아주머니한테 뭐라고 해요!”

“닥치고 그냥 해. 세 번 말하게 하면 벽에 묻은 정액을 전부 핥게 만들어 버릴 거야.”

했던 말을 꼭 지키는 그를 알기에, 윤신은 하는 수 없이 등 뒤의 그에게 하중을 의지했다. 마찬가지로 사정 욕구가 치민 세헌은 마지막 스퍼트를 올리려는 듯 짐승처럼 제 것을 욱여넣었다. 그러면서 윤신의 것도 앞뒤로 쓸어 주었다. 땀으로 범벅이 된 두 사람의 몸이 몇 번이고 부딪치며 질척한 마찰음을 자아냈다.

이윽고 그들은 거의 동시에 사출했다.

“아! 아아!”

“하, 이런 씨발……. 읏!”

그의 것에서 점성 있는 액체들이 쏟아져 내부를 가득 채웠다. 콘돔을 끼지 않아서 오일에 사정액이 뒤섞인 그 미끄덩한 촉감이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윤신의 요도에서도 묽어진 정액이 튀어 벽을 적셨다. 거친 섹스의 여파로 두 다리가 덜덜 떨렸다.

지친 윤신이 먼저 땅으로 주저앉듯이 무너졌다. 여전히 성기를 박고 있는 세헌의 몸도 함께 하강했다. 그가 천천히 성기를 빼내곤 힘이 전부 빠져 낭창거리는 마른 몸을 제 위에 올렸다. 다리 사이에서 정액이 새는데도 닦을 여력이 없었다. 윤신은 그저 세헌에게 편안하게 전신을 기댈 따름이었다.

마주친 몸을 슬쩍 문지르며 후희를 즐기고 있자니, 그가 갈라진 둔부를 두 손으로 콱, 쥐면서 턱 주변에 솜사탕처럼 가벼운 질량감으로 키스했다. 간지러운 느낌이 들어 윤신이 설핏 웃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세헌이 의아해하는 시선을 던졌다.

“왜 웃어.”

“아프게 할 땐 얼굴에다 악플 쓸 뻔했는데. 키스해 주니까 다 녹아요. 저 진짜 쉽네요.”

“…….”

“수석님한테만 쉬우니까 오해 마요.”

후, 숨을 몰아쉰 세헌이 듣기 싫지 않았던지 늘씬한 몸을 으스러져라 끌어안았다. 곧이어 슬슬 한 번 더 삽입하려는 듯 자세를 바꿨다. 윤신의 위에 올라탄 그가 다시 농밀한 키스를 선사하며 서로의 성기를 문질렀다. 금세 다시 발기할 것 같았던 윤신이 그의 단단한 어깨를 밀어냈다.

“뭐 좀 먹고 더 하면 안 돼요? 저 힘 다 빠졌어요. 배고파요.”

은근한 눈길을 보낸 그가 다리 사이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손가락 두 개를 곧게 세워서 벌어져 있는 밀부 안에 쿡 넣고 빙그르르 돌려 휘저었다. 아직 배 속에 남아 있는 정액을 손끝으로 모아 밑으로 빼내듯 긁어낸 순간. 헉, 숨을 삼킨 윤신이 그의 팔뚝을 잡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으응, 응…….”

“혼자 이렇게 많이 먹어 놓고. 배가 고파?”

결국 세헌의 손가락에 밀려난 정액들이 다리 사이로 흘러내렸다. 그 촉감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데 그는 설상가상으로 손끝에 고인 정액을 입에 넣어 빨았다. 그 장면을 정통으로 보고 창피해서 거의 새빨갛게 익은 사과처럼 얼굴이 붉어진 윤신이 그의 상박을 미친 듯이 때려 댔다.

“미쳤어요, 진짜. 으! 뭐 해요!”

픽 웃음을 터트린 세헌이 한 번 더 가랑이 사이로 손을 넣으려고 하자, 윤신은 젖 먹던 힘까지 끌어내 몸을 옆으로 굴렸다. 바닥에 중구난방으로 떨어져 있는 옷들 중 세헌의 드레스 셔츠를 찾아내 그것을 상체에 걸치며 일어섰다. 다리가 후들대서 잠시 비틀거리긴 했지만 책상을 손으로 짚어 겨우 버틸 수 있었다.

여전히 누워서 그 모습을 주시하던 세헌도 하는 수 없겠다는 양 몸을 일으켰다.

“일단 씻고, 밥은 대충 시켜 먹자.”

옷들을 밟고 지나가던 세헌의 팔을 윤신이 덥석 잡았다.

“만들어 주세요.”

“타인이 만든 걸 돈으로 사 줄게.”

“해 줄 거면서 하여튼 꼭 한 번 튕긴다니까. 이런 식으로 몸값 얼마나 높인 거예요?”

“튕겨? 넌 위아래라는 게 없어?”

“한비자가 그랬습니다.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 강세헌 너도, 나도, 평등하다는 뜻이지.”

몹시 기막혀하던 그가 땀에 젖어 반질반질한 이마를 손가락으로 툭 쳤다. 하나 지그시 내려다보는 눈길에는 차마 거두어 숨기지 못한 애정들이 가득했다. 힐난하는 기색은커녕 귀여워하는 듯한 빛깔마저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걸 마주한 윤신은 좀 더 졸라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즐거워졌다.

“해 줄 거죠? 요리하는 거 워낙 잘 안 보여 줘서 또 보고 싶단 말이에요. 게다가 지난번엔 에이프런 매 준다더니 안 매 주고…….”

“대신 이렇게 매일 알몸 보여 주잖아. 에이프런 없이.”

“그건 다르죠. 공평하게 나도 보여 주잖아요. 제가 입고 있을 때 일방적으로 보는 거랑은 천양지차 아니에요?”

“그게 대체 왜 보고 싶어?”

“선밴 내가 알몸으로 그거만 걸친 거 안 보고 싶어요?”

퍽 신중하게 고민한 그가 눈살을 구기며 말을 아꼈다. 보고 싶긴 했던 모양이다.

됐지? 하듯 어깨를 으쓱하자, 바로 미간을 구긴 세헌이 아주 깊은숨을 보란 듯이 몰아쉬었다. 끝내 그는 윤신의 기대대로 하염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가라앉은 음성이 기계적으로 문장을 뱉어 냈다.

“메뉴 주문. 5초 내로 대답 못 하면 셔터 닫습니다. 5, 4.”

“집밥! 집밥요. 계란말이, 된장찌개.”

윤신은 아는 문제가 나온 우등생처럼 열심히 손을 들었다.

그런 윤신을 그가 가만히 예술 작품 감상하듯 쳐다보았다. 그러다 이내 참지 못하고 손을 뻗었다.

활력이 흘러넘치는 깨끗한 얼굴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세헌이 늘 좋아하던 거였다. 그 덕분에 애틋하게 뺨을 어루만지는 손의 세포 하나하나가 요란하게 날뛰었다. 놀랍게도 타인을 향해 뛰는 방법 같은 건 모르는 줄 알았던 가슴이 윤신을 볼 때마다 설렜다.

아마 어쩌면, 그들의 처음부터 그는 이 말간 얼굴을 한 번쯤 만져 보고 싶었던 것 같았다.

세헌은 졌다는 양 허탈하게 대꾸했다.

“그래. 해 줄게.”

입꼬리를 한껏 말아 올린 윤신은 세헌의 품에 와락, 기댔다. 그러가 그가 번쩍 마른 몸을 안아 들었다. 그들은 간헐적으로 입을 맞추며, 서재를 벗어나 침실로 향했다.

딸깍, 이윽고 침실 내부 욕실 안에서 문이 굳게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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