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거예요!”
날카로운 굽 소리에 이어 비명과 같은 목소리가 병실 안을 가득 채웠다.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오윤주는 눈가를 새빨갛게 붉히고선 당장이라도 나를 죽일 듯이 으르렁대고 있었다.
“해영 씨 잘못되면 가만 안 둘 거예요, 그쪽, 지옥 끝까지 따라가서 괴롭힐 거라고요!”
바닥에 내던져진 핸드백의 체인 고리가 대리석 바닥을 깨부수듯 챙그랑, 소리를 냈다. 그런 오윤주의 뒤로 침묵을 지키고 있는 윤 비서 또한 착잡한 얼굴인 건 마찬가지였다.
천천히, 또각이는 구두 소리는 침대가에 다가서며 멈춰 들었다. 오윤주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뼈대만 남은 앙상한 손을 그러잡곤 눈물을 뚝 떨어뜨렸다. 동산처럼 부른 배를 차마 쳐다보지도 못하고, 그저 해영이의 마른 손을 움켜쥐곤 오윤주는 붉어진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어서 빨리 이 사태를 설명하라는 얼굴이었다.
“…오늘 새벽에 갑자기 양수가 터졌습니다. 임시 조치를 취해뒀지만, 아직 해영이 의식이….”
채 문장을 끝내지 못한 입술 사이로 짙은 한숨이 새어나갔다. 꾹 내리감긴 눈꺼풀 아래로 얕은 숨이 새어 나오는 해영이의 마른 입술을 잠시간 응시한 후에야 나는 마저 말을 이어 나갔다.
“…의식이 돌아오질 않아서, 우선 다음 주에 ‘그걸’ 꺼내고 상황을-,”
“‘그거’라니, 혹시 새싹이 말하는 거예요?”
이제 오윤주의 얼굴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으로 휩싸이고 있었다. 두 손안에 꼭 쥐고 있던 해영이의 손을 내려놓은 그녀는 당장이라도 나를 죽일 것처럼 달려들곤 맹렬한 기세로 쏘아붙였다.
“차도헌 씨, 미쳤어요? 어떻게 새싹이를 그렇게 부를 수 있어요! 도저히 미친 게 아니고서야-,”
오윤주의 말마따나 나는 지금 미친놈이나 다름없었다. 이성을 잃을 정도로 미쳐버린 나머지, 해영이의 배 속에서 자라는 태아를 괴물이라 칭하며 증오할 지경에 다다를 정도였으니까.
“‘그것’ 때문에 해영이가 죽어가고 있는데, 내가 그걸 사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까?”
“…뭐라고요?”
“못 들었습니까? 저 안에 있는 게 해영이를 죽이고 있는데 대체 어떻게 그걸 사랑할 수 있겠느냐고!”
절규에 가까운 고함을 내지르면서도 나는 당장 내뱉은 말을 후회하듯 턱을 악물었다. 차라리 뺨이라도 맞았으면 싶었다. 그러면 이 좆같은 상황 속에서 이성 한 가닥이라도 붙잡을 수 있을 테니까.
비틀거리며 침대 머리맡으로 향한 두 다리가 뒤이어 무너지듯 내려앉았다. 앙상하게 마른 손을 조심스레 그러잡은 채 깨어나지 않는 이를 기다리는 심장은 바싹 말라 비틀리고 있었고, 잇새로 새어 나간 새된 신음은 이윽고 고통에 찬 목소리로 변모하고야 말았다.
“아이가… 나를 너무 닮았습니다.”
우리의 아이였다. 자그마한 콩알처럼 작았던 날부터 점차 생명이 트이는 날까지, 매 순간, 나는 아이를 한순간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힘차게 뛰었던 심장 소리만큼 내겐 벅찬 일이 없었고, 손 아래로 느껴졌던 태동보다 내게 더 감동적인 일은 없었다. 해영이와 함께할 미래에 우리의 아이가 있음에 나는 감사했고, 해영이가 바라던 가족을 만들 수 있음에 나는 감사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우리에게 닥친 이 상황이 아이의 탓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더 이상 아이를 사랑할 수 없었다.
“…태아의 페로몬이 강해서, 그 때문에 해영이가 버티질 못하고 있습니다.”
아이가 나를 너무 닮았다고 했다. 98%의 확률로 극우성 알파가 될 태아는 모체의 영양분을 죄다 빼앗아갈 만큼 알파 페로몬이 강했다.
그 때문에 해영이가 아프다고 했다. 먹는 족족 음식을 게워낼 정도로 입덧이 심했던 것도, 몇 숟갈 먹지도 못한 그 영양분을 죄다 가져가 해영이를 영양결핍에 시달리게 한 것도….
“그래서…, 그래서 해영 씨가 아픈 거예요?”
이제 오윤주의 얼굴도 나와 비슷하게 무너져 내렸다. 분노가 수그러든 자리에는 절망이 깃들었고, 이제 그녀도 터질 듯이 부푼 해영이의 배를 사랑스럽다는 듯 쳐다볼 수 없게 되었다.
“수술, 둘 다 살릴 수 있는 거죠?”
“…해영이를 살릴 겁니다.”
“설마, 차도헌 씨-,”
배가 고파서 깼다는 것도, 그래서 뭐라도 먹을 것을 사러 나갔다는 말도 다 거짓말이라는 걸 알았다. 괜찮다는 말만 반복하는 네가 사실은 속이 죄다 뭉그러져 있다는 것도, 상처로 가득한 모습을 내게 숨기고 싶어 한다는 것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너를 품 안에 가두듯 끌어안아도 도망가지 않겠다는 말에 안도할 수 없었고, 이미 내 품 안에 한가득 너를 끌어안았으면서도 나는 너를 놓칠까 두려웠다.
너의 미안하다는 말이 자꾸만 마지막을 부르짖는 것만 같아서, 너의 그 한 마디가 내겐 이별을 고하는 것처럼 들려서.
“그게 어떻게 되든 상관없습니다. 해영이만, 해영이면 살리면 되는 겁니다.”
거칠게 내뱉은 말에는 더 이상 그 어떤 후회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내 선택은 언제고 바뀌지 않을 테니까.
그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지금 바로 수술 들어가셔야 합니다! 산모님 수치가-”
수술 예정일보다도 한참이나 빠르게, 좁은 배 속이 불편하기라도 한 듯 마구 발버둥을 쳐대는 그것의 움직임이 얄팍한 배를 터트리듯 흉포해지기 시작했다.
새하얀 시트는 붉게 물든 지 오래였다. 숨이 가쁜지 가슴이 위아래로 헐떡거리기 시작한 너는 뜨이지 않는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리곤 나를 찾았다.
“도…헌, 씨, 흐윽-!”
숨이 먹혀 들어가는 고통스러운 목소리, 식은땀이 밴 이마, 창백하게 부르튼 입술. 치닫는 통증에 힘겨워하는 너의 뺨을 조심스레 어루만지며 나는, 부디 지금 너의 모습이 우리의 마지막이 아니길 바랐다.
“응, 해영아. 많이 아프게 해서 미안해, 우리 수술 금방 들어가니까 잘 마치고 나오자. 다 잘 될 거야, 잘 될 거니까-”
“으, 흐윽-, 새, 새싹이-”
신음에 먹힌 목소리가 달싹이는 입술 새로 작게 새어 나왔다. 내가 무어라 답할 줄 너는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 너는 자꾸만 내가 지킬 수 없는 부탁을 하고 있었다.
“나…, 나 말고 아기…, 제발…….”
“해영아, 나는 널 살릴 거야.”
“우리… 우리 새싹이, 도헌 씨….”
창백한 눈가에 가득 찬 눈물이 관자놀이를 타고 힘없이 미끄러졌다.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고통에 겨워 힘들어하는 너에게, 나는 모질게 밀어붙였다.
“몇백 번이고 나는 널 살릴 거야.”
“…….”
“나는 너만, 너만 있으면 돼. 해영아, 나는 오직 너만…, 너만 있으면 돼.”
하지만 너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시금 정신을 잃은 듯, 너의 감긴 눈꺼풀은 자그마한 떨림도 없이 잔잔히 가라앉고야 말았다. 숨이 차는지 내내 짓씹던 아랫입술은 기어이 찢어져 버렸는지 피가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고, 미처 네 상처를 어루만져주지도 못하고 나는 그렇게 수술실로 너를 들여보내고야 말았다.
숨이 막힐 듯한 정적이 복도를 가득 채웠다. 붉은 등이 켜진 수술 표시등 아래, 나는 다시 내 품에 안길 너를 기다리며 감히 우리의 미래를 꿈꿔보았다.
건강하게 웃음 짓는 너와 함께 맞이하는 행복한 아침을, 져 가는 해를 바라보며 사랑을 속삭이고 잠들기 전에 나누는 굿나잇 키스를. 아이의 자리는 흐릿하게 지워둔 채, 나는 오직 너만을 그려보았다.
그렇게 너는 다시 내 품에 돌아왔다.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는 새하얀 병실, 그곳엔 창백한 안색으로 옅은 숨을 내쉬는 나의 오메가가 있었다.
“이제부턴 정말 아픔도, 슬픔도, 전부 다 내가 할게. 도해영은 그저 행복하기만 하면 돼. 다른 건 다 내가 할 테니까….”
“…….”
“그러니 제발, 제발 날 두고 가지 마….”
굵은 눈물이 너의 창백한 뺨 위로 흠뻑 적셔 들었다. 너의 어여쁜 볼을 쓸어주며 나는 그렇게 한참을 네게 사랑을 속삭였고, 그렇게 너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듯 천천히 고요해졌다.
***
“이사님, 회장님께서 방금 의식을 차리셨다고 합니다.”
“…….”
“이사님, 회장님께서 방금-,”
시간 개념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네가 잠든 이후 나는 낮과 밤을 구별할 수 없게 되었으니까. 세상이 잠든 너를 위해 잠시 해를 다른 곳으로 숨겨둔 것처럼, 네 곁을 지키는 나의 매일은 지독한 어둠과도 같았다.
수척해진 얼굴을 대충 손으로 쓸어내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등 뒤로 들려오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뒤늦게 반응하는 건 요새 들어 생긴 습관 중 하나였다.
“아, 윤 비서. 거기 있었군.”
뒤로 돌아선 곳엔 늘 그렇듯 윤 비서가 서 있었다. 화병에 새로 꽂을 꽃다발을 들고 있는 그는 잠시간 침묵을 지키더니, 짤막한 목소리를 냈다.
“…이사님, 괜찮으십니까.”
그런 그의 질문에는 분명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 있었다.
“내가 안 괜찮을 게 뭐가 있습니까. 화병만 좀 갈아주고 바로 퇴근하세요.”
“저 방금 출근했습니다.”
“예전에는 야근 싫다고 떼썼지 않았습니까? 이젠 빨리 퇴근시켜도 불만인가 봅니다.”
가볍게 맞받아친 농에도 윤 비서는 도통 웃을 생각을 안 했다. 나조차도 웃을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윤 비서가 좀 웃으면 따라 웃을 생각은 있었는데.
“…회장님께서 의식을 차리셨다고 합니다. 가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윤 비서가 병실에 들어오자마자 한 이야기가 아마 저것이었나 보다. 아까는 제대로 듣지를 못했는데 지금 다시 들어도 아버지의 소식은 내게 별달리 상관없는 이야기처럼 들려왔다.
“해영이 두고 내가 어딜 어떻게 갑니까. 윤 비서가 대신 가주면 좋겠는데.”
“회장님 병실은 바로 위층에 있지 않습니까. 다녀오십시오, 도해영 님은 제 목숨을 걸고 지키겠습니다.”
아래턱을 굳게 다문 윤 비서의 얼굴은 비장해 보이기까지 했다. 아예 손에 쥐고 있던 꽃을 내려놓은 그는 내 어깨를 밀며 병실 밖으로 내쫓기 시작하더니, 미처 내가 도로 들어갈 새도 없이 병실 문을 닫아버렸다.
“다녀오십시오!”
문 너머로 들려오는 외침에 절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렇게 나를 내쫓고 싶었던 모양이지. 나와 함께 문밖으로 내몰린 자켓을 걸치며 그렇게, 아마도 몇 개월 만에 나는 병실에서 발걸음을 떼었다.
‘우선 큰 고비는 넘겼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온몸이 피범벅이 된 채 이동 침대로 실려 나온 너를 두고 그들은 걱정하지 말라는 무책임한 소리를 지껄였다. 겨우 숨만 붙어있는 너를 두고 큰 고비를 넘겼다며, 온갖 불안정한 수치를 알리는 차트는 도저히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데도 그들은 내게 기다림을 강요했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났다. 수술 부위가 차츰 아무는 만큼 창백했던 두 뺨에 서서히 혈색이 돌기 시작했고, 뼈마디가 선명히 만져졌던 얇은 피부에는 조금씩 살이 붙어 오르고 있었다.
깊은 잠에 빠진 너는 종종 꿈을 꾸는 사람처럼 눈꺼풀을 움찔거렸다. 무어라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처럼 입술을 아주 작게 달싹이기도 했다. 너의 미약한 숨결만으로도 하늘에 감사한 나에게 너의 그런 모든 변화는 축복과도 같았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기나긴 겨울이 걷히고 계절은 다시 봄에 가까워졌다. 나의 시간은 네가 잠든 이후로 멈춰버렸는데, 어느새 세상은 포근한 온기로 얼음을 녹이고 땅속에 웅크린 새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그 온기 속에서 먼저 눈을 뜬 건 아버지였다.
“…아버지.”
“그래. 오랜만이구나.”
7년 만의 재회, 어색한 사이의 부자는 그렇게 짤막한 인사를 나눴다.
내가 대표이사로 막 부임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던 아버지였다. 그간 줄곧 아버지의 목숨을 위협한 새어머니와 큰아버지로부터 아버지를 지키기 위해, 철통같은 보안을 자랑하는 이곳 VVIP 병실을 빌려둔 지도 벌써 7년이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건강은 좀 괜찮으십니까, 어디 불편하신 곳은 없으시고요.”
“괜찮다. 검사 결과가 다 정상이라 하더구나.”
그 말씀이 거짓이 아닌 듯 아버지의 안색은 누워계실 때보다 확연히 좋아 보였다. 혈색이 도는 피부와 불편함 없이 내딛는 걸음만큼, 예전처럼 건강을 되찾으신 아버지의 모습에 안도를 느꼈다.
기업의 정황이 많이 바뀐 만큼 긴 시간 동안 의식을 잃으셨던 아버지였다. 그간의 보고 사항은 끝도 없이 쌓여 있었지만 아버지는 이제 막 기운을 차리셨기에, 안정을 위해 자리를 비켜드리기로 마음먹었다.
“이야기 전해 들었다. 네 짝이 위독하다고.”
하지만 병실을 채운 침묵을 깨고 나를 붙잡은 건 아버지였다.
가지 말고 의자에 앉아보라는 듯 아버지는 눈짓을 보내셨다. 내게는 충분히 낯선 모습 앞에서 나는 어색하게 아버지와 마주 앉곤 주름진 눈과 시선을 맞췄다.
“어떻게 된 일이냐.”
“…조산 후 의식을 잃었습니다. 쓰러진 지는 두 달 정도 됐습니다.”
“그래. 맘고생이 심하겠구나.”
흘러간 시간이 남긴 눈가의 주름, 내겐 너무나 낯선 아버지의 모습. 아버지와 이런 대화를 나누었던 적이 있었던가, 아버지의 위로를 받아본 적이 있었던가.
충동적으로 질문을 내뱉은 건, 슬픔에 젖은 아버지의 눈을 마주했을 때였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어떻게 버티셨습니까.”
이제야 나는, 당신과 비슷한 일을 겪고서야 아버지의 상처를 읽어낼 수 있었다. 아버지는 슬프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식들에게 숨겨왔을 뿐이라는 것을. 사실은 잊히지 않을 만큼 짙은 아픔 속에서 살아가셨다는 것을.
“너는 네 엄마를 많이 닮았다.”
“…….”
“밤하늘처럼 빛나는 눈이, 참 닮았더구나.”
움켜쥔 두 주먹 위로 선 핏줄만큼 눈시울이 뜨끈하게 열이 올랐다. 그건 언제고, 해영이의 바람과 같은 것이었다. 내가 아이를 사랑하길 바라는 해영이의 마음은 결국, 지금 아버지의 해답과 일치했다.
사랑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너의 배를 찢고 세상에 나온 아기는 분명 나를 닮아있을 테니까, 너를 그토록 아프게 한 아기는 끔찍할 정도로 나를 닮아있을 테니까.
“……새싹아.”
그럼에도, 결국, 나는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아기가 너를 너무 닮았으니까, 밝은 갈색의 어여쁜 눈동자가 너무도, 너를 닮았기 때문에.
“아빠야, 새싹아…, 아빠야.”
처음 아기 병실로 향했던 날, 단번에 나는 우리 아기를 찾았다. 헤맬 것도 없었다. 아기가 너를 닮았으니까, 숨이 벅찰 만큼 예쁜 너를 너무나도 닮았으니까….
“…해영아.”
커다란 매화나무를 부드럽게 흔들어대는 봄바람, 새하얀 눈발처럼 흩날리는 꽃잎 아래 펼쳐지는 어여쁜 순간.
“우리 새싹이, 너무 예뻐. 널 닮아서 정말…, 천사처럼 예뻐.”
꽃잎을 잡으러 아장아장 걷는 아기와 그 뒤를 따라 발맞춰 걷는 우리의 모습을, 해영아. 나는 바보처럼 이제야 떠올리고 말았어.
그러니 해영아, 이제 잠에서 깨어나 우리의 곁으로 돌아와 줘. 우리 아직 못다 한 것들이 너무 많잖아, 우리 세 가족이 아직 못 해본 것들이 너무 많잖아.
악몽을 꾸는 듯,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 위로 조심스레 입 맞추며 너의 마른 손을 그러잡았다. 겨우내 단단히 얼어붙은 얼음이 봄바람에 천천히 녹아내리듯 너의 깊은 꿈 또한 서서히 깨어지는 날이 오겠지.
자그마한 기척이 묻어나는 봄날의 병실, 장밋빛으로 뺨을 물들인 채 옅은 숨을 내쉬는 나의 오메가.
잠든 너의 곁에서 나는 다시금 너의 손을 그러잡곤 간절히 하늘에 바랐다. 언제가 되어도 좋으니, 부디 너의 예쁜 눈동자를 다시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너와 다시 눈 맞출 수 있게 해 달라고.
“사랑해.”
“…….”
“사랑해, 해영아.”
나는 여기서, 영원히 너를 사랑하고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