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39/43)

5.

심호흡, 또 심호흡.

덜덜 떨리는 손을 애써 움켜쥐며 나는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이미 창백하게 질린 채였지만, 억지로 미소라도 짓지 않으면 정말 패닉에 빠질지도 몰랐다.

“정말 소문처럼 미인이시네요.”

“피부가 너무 맑고 고우셔서 따로 저희가 손볼 곳이 없는 것 같은데요?”

눈을 반짝이며 나를 에워싼 그들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감탄을 늘어놓고 있었다. 화장품을 가져올 필요가 없었다며 챙겨온 캐리어를 도로 닫은 그들은 목각인형처럼 굳은 내 입술 위로 가볍게 투명 립글로즈만 얹어주는 것으로 작업을 끝내버렸다.

메이크업 팀이 나가고 뒤이어 들어온 헤어 팀도, 그 후로 들어온 예복 전담 디자이너 팀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더 손댈 것이 없다’며 일축하는 그들 앞에서 나는 몹시 불안해졌다.

모르는 사이에 그들에게 밉보이고 있던 걸까? 이러다간 오윤주의 목적대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랑이 아니라, 최악의 몰골로 버진 로드를 밟는 신랑이 될지도 몰랐다.

“정말, 정말 다 된 거예요?”

겨우 하나 발라준 립글로즈가 다 없어질 정도로 입술을 잘근대는 내게 그들은 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그저 비싼 크림색 수트를 입은 겁에 질린 도해영일 뿐인데, 도대체 내가 어느 부분에서 그들의 말마따나 ‘완벽한 신랑’인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됐다.

편히 쉬라는 말과 함께 삼삼오오 대기실을 떠나는 그들 뒤로 덜 완성된 신랑은 널따란 대기실에 혼자 덩그러니 남았다. 커다란 거울에 불완전한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면서, 문밖으로 들리는 카메라 셔터 소리에 겁에 질린 채.

차도헌이 선택한 ‘그 오메가’의 정체가 드러나는 날인 오늘, 이른 새벽부터 아무리 분주하게 준비를 했지만 마른 체형을 커버해주는 디자인의 크림색 수트도, 머리 위에서 화려하게 빛나는 티아라도, 버진로드 위를 걷는 나를 보호해주지는 못할 테다.

당장 대기실 밖에서 취재 열기를 불태우고 있는 수많은 기자들은 내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코웃음을 칠 테니까.

뒤로 넘겨둔 면사포 끝자락을 움켜쥐어 앞으로 넘겼다. 화려한 보석으로 수를 놓은 레이스 아래로 얼굴을 숨기자 그제야 숨이 좀 트이는 것만 같았다.

“…입술, 다 지워졌네.”

립글로즈의 옅은 끈적임만 남기고 평소와 똑같아진 입술을 손끝으로 매만지며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당장 차도헌은 이른 시간부터 밖에서 손님을 맞이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오윤주는 일정이 있어서 식에 맞춰 빠듯하게 도착할 것 같다고 이야기를 전했었다.

식을 올리기 전까지 남은 시간 동안 홀로 시간을 보내야 한다니. 누군가라도 옆에 있으면 좋을 텐데, 내게 그런 사람은….

“도해영 님, 친구분들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작은 노크 소리와 함께 직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를 찾아올 사람은 없는데, 차도헌을 보러 온 걸 잘못 찾아온 게 아닐까?

활짝 열리는 대기실 문 앞에서 나는 당황한 채 소파에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이미 밝은 대기실을 번쩍번쩍 빛낼 정도로 쏟아지는 카메라 플래시 사이로 익숙한 실루엣의 인물들이 대기실 안으로 들어왔다.

다시 굳세게 닫힌 문 앞, 그곳에는,

“…해영이 형!”

믿기지 않을 만큼 그리운 얼굴들이 있었다.

품 안으로 뛰어드는 아이들을 한 아름 끌어안으며 나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이제야, 이제야 숨이 트였다. 온몸을 옥죄던 두려움의 속박이 풀리고, 이제야 온몸이 자유로워진 것만 같았다.

“도화, 수혁이, 연이, 서원이….”

익숙한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보며 나는 다시금 그들을 품에 꽉 끌어안았다. 작게 훌쩍이는 소리는 항상 곧잘 울곤 했던 연의 울음, 그 옆에서 숨죽여 울음을 참는 건 도화의 것. 울지 말라고 토닥이는 마른 손은 수혁이, 그리고 눈물에 젖은 분위기를 돌리려 노력하는 건 서원이였다.

“면사포 좀 넘겨주세요, 얼굴 보고 싶어서 왔단 말이에요.”

뺨을 적신 눈물을 허겁지겁 닦아내며 나는 베일을 벗어 던졌다. 확 벗겨진 티아라에 머리 모양이 망가졌을지도 몰랐지만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제야 아이들의 얼굴에 새겨진 행복이 선명히 보였으니까.

“잘, 지내는 거지? 그니까…, 너희, 잘… 지내는 거지…?”

나는 더듬대며 하나둘 아이들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그제야 나는 내가 던진 물음이 무색할 만큼, 내 눈앞에 선 아이들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너무나 예뻤다. 행복한 미소를 머금은 얼굴들은, 어둠 속에서 몸을 숨기며 사는 애들이 아니라 햇빛을 보고 사는 애들 같아서, 따스한 햇살이 주는 사랑을 듬뿍 받는 아이들처럼, 너무나도 환하게 빛이 나서….

“태산 형님이 조직 없앤 건 들으셨죠, 그 후에 저희, 더 이상 사창가 일 안 해요. 형이 늘 말했던 것처럼, 바깥세상에서 떳떳하게 살아요.”

“그동안 조금씩 모아둔 돈이랑 태산 형님이 도와주신 돈으로 막내 애들은 학교 다니구요, 취직해서 열심히 벌고 있는 애들도 있구요.”

“오늘 결혼식에는 차도헌 대표님께서 초대해주셔서 왔어요. 청첩장 초대 명에 저희 이름 다 있어서 엄청 감동받았어요, 형.”

“이따가 식 시간 직전에 급하게 오는 애들도 있어요. 다들 형 보러 올 거예요.”

조잘대며 이어지는 아이들의 신이 난 재잘거림에 나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후두둑 떨어지는 눈물을 누가 볼세라 다급히 닦아내며 나는 다시금 한껏 두 팔을 벌렸다. 활짝 벌린 품 안으로 안긴 아이들을 품 안 가득 끌어안은 채 나는 작게 속삭였다.

“…다행이다.”

늘 두 눈을 감은 채 상상만 했던 것들이 현실로 다가온 순간. 나는 그 행복을 만끽하며 미소를 지었다.

따사로운 햇빛이 우리를 감싸는 기분이었다. 차갑게 얼어붙었던 손끝이 온기에 녹아드는 것만 같았고, 꽁꽁 묶였던 마음의 짐은 이제야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정말… 다행이야.”

커다란 거울 너머로 비치는 우리들의 모습은 더 이상 어둠에 창백하게 질린 불쌍한 오메가들이 아니었다. 비록 지금은 눈물을 멈추지 못하고 있지만, 그건 슬픔이나 아픔이 아닌 행복해서 나오는 눈물이었으니까.

얼어붙었던 것들이, 이제야 녹아내리는 거니까.

“아, 이거는 태산 형님이 전해달라고 하셨어요. 해영이 형하고 잘 어울릴 거라면서….”

포옹을 풀자마자 도화가 건넨 건 납매로 만든 꽃다발이었다. 서투르게 꺾은 가지에 매달린 노란 꽃망울 사이로 흐드러지게 핀 납매가 아름다운 향기를 흩날리고 있었다.

“한창 겨울에 피는 꽃인데 태산 형님은 어떻게 구하신 건지 대단하네요.”

보드라운 꽃잎을 손끝으로 살며시 만져보다가, 은은한 꽃내음에 두 눈을 감은 채 향기를 맡았다.

우직한 가지에 핀 노란 꽃잎, 겨울을 버티며 피어나는 납매.

‘행복해, 해영아. 그 누구보다도 더….’

어쩌면, 이건 우리의 모습이었을지도 몰랐다. 추위를 버티는 가지가 있었기에 꽃을 피울 수 있는 납매처럼… 그 어두운 사창굴의 암흑 속엔 네가 있었기에 내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기나긴 겨울을 버티고 이제야 뒤늦게 꽃을 피울 수 있었다.

서슬 퍼런 추위를 버티고 버티는 우직한 나뭇가지인 강태산에게, 나는 품 안에 한 아름 피어난 꽃망울 위로 입맞춤을 남겼다.

나의 겨울이 끝났듯이, 너의 겨울도 끝나기를.

기나긴 겨울을 버티고 이제야 뒤늦게 꽃을 피우는 도해영처럼, 얼어붙은 너의 가지가 녹아내리면 그곳엔 푸르른 잎사귀로 가득하기를.

“해영 씨-! 나 너무 늦은 건 아니죠? 사진 찍을 시간 아직 있죠?”

쾅 소리를 내며 열린 대기실에 드디어 그녀가 등장했다. 차분한 네이비색 수트를 입고 나타난 오윤주는 내 곁에 선 아이들을 보곤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어머, 해영 씨 동생분들인가 봐요. 반가워요, 나는 해영 씨 절친 오윤주라고 해요.”

초면인데도 불구하고 활기차게 인사를 나누는 그들의 모습에 괜스레 마음에 벅차올랐다. 뒤로 한 발짝 물러나 소파 위를 나뒹구는 면사포를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언제 대화를 끝냈는지 내 앞으로 한 발 다가선 오윤주는 티아라를 집어 들어 내 머리에 사뿐히 씌워주었다.

“우리 해영 씨, 너어무 예쁘다-”

등 뒤로 흘러내리는 베일을 정리해주는 오윤주의 다정한 손길에 다시금 울음이 차올랐다. 울먹이는 내 얼굴 앞에서 두 팔을 벌려주는 그녀의 품 안으로 파고들어 안기자, 그녀는 웃음을 터트리며 내 등을 가볍게 토닥여주었다.

“해영 씨, 행복해요?”

그녀의 물음에 나는 내 모습을 비춘 거울을 응시했다. 그 속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환하게 웃는 내가 있었다, 행복으로 가득 들어찬 미소를 짓는, 내가 있었다.

“응, 나… 너무 행복해요.”

***

얼굴을 가린 베일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린 손길에 이어 달콤한 입맞춤이 내려앉았다. 열에 들뜬 뺨을 문지르는 그의 손길에 심장은 더없이 뛰어대고 있었다.

“…예쁘다, 해영아.”

사랑을 속삭이는 그의 입술이 다시금 뺨 위로 입맞춤을 남겼다. 긴장감에 굳은 내 허리를 받쳐 안아주는 그의 품 안으로 파고들자 시원한 그의 페로몬이 내 숨결을 달래주었다.

흑과 백의 대조처럼, 밝은 크림색 예복을 입은 나와는 달리 그는 자신의 눈동자 색을 닮은 밤하늘 색 턱시도를 입고 있었다.

머리칼을 깔끔하게 넘긴 단정한 헤어스타일에 그의 화려한 이목구비는 더더욱 빛났고, 훤칠한 체격을 확연히 돋보여주는 더블 브레스트 수트는 오직 차도헌만을 위해 태어난 것 같았다.

“나…, 정말 괜찮아?”

완벽한 그의 곁에서 내 몸은 자꾸만 움츠러들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정말 괜찮을 줄 알았는데, 막상 식이 시작되려니 전에 없이 긴장되기 시작했다.

미친 듯이 쿵쾅대기 시작하는 심장 소리 사이로 쉴 새 없이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 소리가 났다. 단단히 겁을 집어먹은 내가 떨리는 목소리를 내자,

“나만의 태양 같은걸.”

차도헌은 뻣뻣한 관절 인형처럼 서 있는 내 허리를 단단히 받치며 끌어안곤 거울 앞으로 향했다.

그의 품 안에서야 겨우 호흡을 가다듬으며 우리의 모습을 비추는 커다란 거울 앞에 섰다. 밤하늘을 닮은 예복을 입은 그의 곁에 서자, 거짓말처럼 내가 입은 크림색 예복이 마치 황금빛 태양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정말, 나야? 이거… 나 맞아?”

환한 조명 아래 찬란하게 빛나는 크림색 웨딩 수트, 작은 몸짓에도 쉼 없이 반짝이는 티아라와 등 뒤로 은은하게 쏟아지는 레이스 베일, 맑은 장밋빛으로 물든 두 뺨.

눈물에 젖어 반짝이는 눈동자 아래로 미소를 가득 머금은 얼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신랑의 얼굴.

차도헌의 커다란 손이 내 손을 그러잡았다. 반지가 끼워진 손가락 위로 내려앉은 입맞춤의 뒤에는, 입술 위로 달콤하게 내려앉는 키스가 있었다.

“결혼하러 갈까, 우리.”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내민 팔뚝 위로 가볍게 손을 얹었다. 마주 보는 우리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동시에 퍼지고 있었다.

“이제 두 사람의 입장이 있겠습니다. 박수로 맞이해주십시오.”

천천히 식장 문이 열리고, 그 앞으로 밝게 빛나는 버진로드가 펼쳐졌다. 미친 듯이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와 환호에 움츠러들 새도 없었다. 내겐 단단히 손을 잡아주는 차도헌이 있었으니까.

나는 그를 향해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리곤 새하얀 버진로드 위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발맞추어 내딛는 발걸음엔 그가 있었고, 내가 있었다. 우리의 앞에 펼쳐지는 길 위에는, 오롯이 차도헌과 도해영이 있었다.

신의 사랑이자 찬란한 황금색 태양 빛을 넘칠 만큼 손에 쥐고 살아온 알파와 이제 막 태양 앞에 마주 서는 오메가.

서로의 손을 단단히 붙잡은 채 쏟아지는 황금빛 태양 앞으로, 발을 맞추어, 천천히.

이젠 무섭지 않았다. 두렵지도 않았다.

세상을 향해 내딛는 걸음걸음에는,

늘 차도헌이 곁에 있을 테니까.

<나의 완벽하신 알파새끼를 죽이는 방법>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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