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조리대 위를 한가득 채운 식재료와 조리 도구 사이로 비장한 공기가 흘렀다. 수십 번의 심호흡에도 도통 가라앉질 못하는 긴장감에 뒤집개를 움켜쥔 손에는 자꾸만 힘이 실렸다.
“…아직 다 안 익은 건가?”
미간을 잔뜩 좁힌 채 연어 살을 조심스럽게 뒤적였다. 분명 일주일 전에 요리 클래스에서 성공적인 연어 스테이크를 위한 모든 내용을 전수받았지만, 그때와 두께도 모양도 다른 손질 연어 앞에서 나는 속수무책으로 헤매고 있었다.
유독 부엌이 혼란스러운 것에는 이유가 따로 있었다.
오늘은 그동안 요리 클래스에서 배워 온 모든 스킬을 선보이는 자리임과 동시에, 오랜 시간 동안 장식품에 불과했던 정원의 바비큐 그릴이 처음 사용되는 날이자, 내가 아끼는 사람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자리였다.
유난히 우여곡절이 많았던 내 삶에 큰 힘이 되어 준 사람들에게 보답하고 싶었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이 잠든 안식터에 찾아갈 때마다, 그리고 강태산의 면회를 갈 때마다 배운 건 이것이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그리하여 오늘의 초청 명단은 이랬다. 내게 소중한 친구가 되어준 오윤주 씨, 그동안 여러모로 큰 신세를 졌던 윤 비서님, 그리고 몸소 내 보디가드 역할을 자처했던 막내 비서님 두 분. 이 모두를 한 자리에 불러 모아 식사를 대접하기로 했다.
물론 그중에서도 진주인공은 당연히,
“도 셰프님, 제가 곁에서 도와드려도 될까요?”
내 인생의 전부가 되어준 차도헌이었다.
부글부글 끓고 있는 수프 냄비의 불을 줄이며 내 곁에 선 그는 내 오른쪽 뺨을 부드럽게 엄지로 훑어주며 웃어 보였다. 그제야 내가 얼굴에 소스를 묻혀가며 부산스럽게 요리를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손에 묻은 소스를 맛본 그는 내 얼굴을 지긋이 응시했다. 괜스레 떨리는 마음에 얼어붙은 채로 그의 반응을 기다리는 사이, 그의 입술 사이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맛있다, 해영아.”
“진짜? 맛 괜찮아? 선생님이 알려주신 대로 해보긴 했는데 그때 그 맛이 날지는-,”
기쁜 나머지 요리 과정을 쉼 없이 조잘대는 내 입술 위로 차도헌의 입맞춤이 내려앉았다. 어느새 내 허리를 감싸 안은 그의 손은 꽉 묶어둔 에이프런 리본을 풀어내고 있었다.
“-안 돼, 나 시간 부족해.”
엉큼하게 구는 손을 가볍게 찰싹 때리며 나는 그에게서 등을 돌려 스토브 앞에 섰다. 수프가 눌어붙지 않게 한 번 휘저어주는 내 뒤로 붙어선 그가 뭉친 어깨를 부드럽게 주물러주기 시작했다.
“도와줄까?”
“아니.”
“보조가 필요하지 않아?”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태도는 완강했다. 게다가 내 손끝에 살짝 베인 상처를 발견하기까지 한 그는 더더욱 나를 부엌에 혼자 두지 않겠다는 것처럼 곁에 딱 붙어 섰다.
“도헌 씨, 나 못 믿어?”
“못 믿는 게 아니라 다칠까 봐 걱정되는 거지.”
“불 있고 칼 있는 데서 안 다치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냐?”
“잘 알고 있네.”
아차 싶었다. 당연한 걸 걱정한다는 투로 말한 내용에는 그가 내내 주장했던 ‘요리는 위험’하다는 결론이 들어있었다.
이미 내뱉은 말을 주워 담을 새도 없이 차도헌은 아까 채 풀지 못한 리본을 마저 풀기 시작했다. 누구의 취향인지는 모르겠으나 프릴이 마구 달린 에이프런이 그의 손길에 속절없이 벗겨지고 있었다.
내게서 멀어지는 에이프런을 향해 간절히 손을 뻗었다. 풍성하게 프릴이 달린 옷 끝자락을 움켜잡으며 나는 그의 팔뚝에 매달린 채 촉촉한 눈빛을 발사했다.
“조심히 잘해볼게, 절대 안 다칠게. 나 오늘을 위해서 그동안 열심히 연습했단 말이야.”
일주일에 몇 번 보여주지 않는 애교 담긴 눈빛에도 차도헌은 도저히 넘어가질 않았다. 그런 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나는 마지막 카드를 내밀었다.
“나 요리 금방 끝낼 테니까…, ‘여보’는 가서 바비큐 불 피워. 응?”
됐다, 방법이 제대로 먹혔다.
내가 부른 호칭에 차도헌은 결국 웃음을 터트리며 내 허리를 끌어당겨 안았다. 그는 온 얼굴 위로 쉼 없이 입술을 찍어대며 내게 애원하기 시작했다.
“한 번만 더 불러줘, 해영아. 한 번만 더.”
그의 열렬한 반응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여전히 웃음을 흘리는 그의 입술 위에 들리지 않을 만큼 재빠르게 그 호칭을 속삭여준 나는 그의 어깨를 끌어당겨 안으며 도피하듯 깊게 입을 맞춰주었다.
요즈음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차도헌은 생각보다 애칭에 약하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 TV를 보다가 무심코 그를 ‘자기’라고 부른 날 차도헌은 몇 번이고 다시 불러 달라며 애원했고, 장난삼아 그를 ‘형’이라고 부른 날엔 하루 종일 나를 놓아주질 않았다.
다음엔 남편이라고 불러볼까, 그 호칭에 차도헌이 어떻게 반응할지 절로 궁금해져 왔다.
마지막으로 도움이 필요한지 한 번 더 확인한 그는 내 완강한 태도에 결국 부엌을 떠나주었다. 아쉬움이 잔뜩 묻어나는 입맞춤을 끝으로 바비큐 그릴에 불을 피우러 정원으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을 응시하며 나는 작게 중얼거려보았다.
“……‘남편’, 이것도 괜찮네.”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맴도는 단어를 두어 번 더 반복해 읊조리는 동안, 내 얼굴에는 자연스럽게 미소가 맺혀 있었다.
나는 요즘, 달라졌다.
이제는 은수를 떠올려도 슬프지 않았고, 엄마가 있는 산소에 가도 잘 울지 않게 됐다. 행복해진 만큼 눈물이 줄었고, 가슴에 남았던 아픔의 상처는 차츰 아물었다.
더불어 그보다도 더 큰 변화가 내게 생겼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지 않은 사창굴에서 그저 하루살이처럼 연명하며 살았던, 그래서 미래고 앞날이고 그런 것들은 사치라고만 여겼던 내가, 여느 평범한 사람들처럼 미래를 꿈꾸기 시작했다.
나는 종종 꿈꾸듯 그와 함께할 매일을 그려보았다. 어느 시점을 짚어보아도 그 미래에는 언제고 내 곁에 그가 있을 거라는 확신은 생각보다도 더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것이었다.
결국 이 모든 건 내 모든 아픈 시간을 함께해 준 차도헌 덕분에. 이 세상의 전부를 다 바쳐 나를 사랑하는 내 알파 덕분에 생긴 변화였다.
잠시 감상에 빠진 사이를 틈타 부엌은 차츰 뿌연 연기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어느새 다 구워진 연어 스테이크가 어서 뒤집어 달라며 연기를 내며 난리를 피우고 있었다.
“-안 돼! 부서지지 마, 부서지지 마, 제발 부서지지 마….”
살점이 으스러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뒤집는 데 온 집중을 쏟았다. 바로 코앞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열심히 탄 부분을 도려내고 있는 내 앞으로, 명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증거 인멸 하는 거예요, 해영 씨?”
“아악! 깜짝 놀랐잖아요!”
놀란 심장을 달래는 틈으로 그녀는 ‘어어, 거기 탄다!’ 소리치며 태연하게 거짓말까지 덧붙였다. 뜨거운 팬에서 무사히 여섯 조각의 연어 스테이크 구조 작업을 끝낸 나는 숙였던 허리를 들어 올리자마자 또 한 번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도해영 님,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불러주십쇼!’
‘해영 씨, 나 요리 잘해요. 믿고 맡겨 보라니깐?’
‘혼자서 다 하시기엔 힘드시지 말입니다!’
‘언제든 요청하시면 온 힘을 다해 돕겠습니다!’
구태여 목소리를 내어 말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빤히 보이는 네 쌍의 눈동자에 나는 결국 무력을 쓸 수밖에 없었다.
“걱정하지 말고 가서 앉아들 있어요, 제발!”
차도헌 저리 가라 할 만큼 나를 에워싼 채 도와주겠다는 무리를 거실로 밀며 힘겹게 부엌에서 쫓아냈다. 도대체 왜 파티 주인공들이 다들 나를 도와주지 못해 안달인 거냐고!
“오늘은 내가 대접하는 날이란 말예요. 그러니까 다 준비될 때까지 쉬고 있어요.”
“…나 오늘 파티 주인공 해영 씨로 알고 왔는데?”
장난으로 넘겼던 오윤주의 이 말이 사실이 될 줄은, 나는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
서서히 저녁놀이 지는 정원 한편, 줄줄이 이어지는 유리알 전구가 예쁜 노랑 빛을 흩뿌렸다. 정원에 마련한 기다란 디너 테이블 위에는 조금 서툴지만 정성을 다한 요리와 막 구워서 나온 바비큐, 그리고 풍미를 더해줄 와인으로 가득 채워졌다.
마치 영화에 나오는 파티의 한 장면을 손수 꾸려낸 것 같은 기분에 뿌듯함이 마구 샘솟았다.
물론 오늘 이 자리는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하우스워밍 파티도 아니고 결혼식이 끝난 후의 피로연 자리도 아니었지만, 그에 버금가는 따뜻한 온기로 가득 채워지는 이 자리가 내게는 정말 뜻깊은 시간이었다.
…다른 이들도 이렇게 느끼면 좋을 텐데. 왜인지 나를 제외한 모두가 부산스러운 분위기 아래 도통 집중을 할 생각을 안 하는 듯 보였다. 차도헌은 중요한 전화가 있다며 자리를 비운 지 오래였고, 모두들 죄다 테이블 아래로 팔을 숨긴 채 어색하게 앉아 있었다. 마치 내게 뭘 숨기려는 사람들처럼….
역시, 나 혼자만 너무 들떴던 걸까. 괜히 바쁜 사람들을 불러서-,
펑! 퍼펑!
“축하해요, 해영 씨!”
“축하드립니다, 도해영 님!”
그 순간 난데없이 펑,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들려온 축하 멘트를 이해할 새도 없이, 나는 정원 위를 죄다 덮을 만큼 쏟아지는 꽃가루의 향연에 얼어붙어 버렸다. 뒤이어 코르크를 밀어내며 터진 샴페인이 시원하게 하늘 위로 거품을 흩뿌리는 사이로, 이 자리가 내가 예상한 것과 다르게 흘러가고 있음을 뒤늦게야 깨닫고 말았다.
하늘하늘 떨어지는 새하얀 꽃가루 사이로, 차도헌이 커다란 케이크를 손에 든 채 걸어오고 있었다. 케이크에 촛불이라니…, 최근에 축하할 일이 있었던가?
어느새 내 앞에 멈춰 선 차도헌은 어서 초를 끄라는 듯 촛불이 은은하게 타오르는 케이크를 내 앞으로 살짝 기울여주었다. 무엇을 축하하는지도 모르고 초를 끌 수는 없었다. 비록 이게 무드를 깨는 말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나는 그에게만 들릴 만큼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물었다.
“오늘… 무슨 날이야?”
“매우 중요한 날인데, 몰랐어?”
큰일이다, ‘매우’ 중요한 날이라니…. 아무리 골똘히 생각해도 무슨 날인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도헌 씨 승진 축하 파티인가? 그것도 아니면 재판 승소 기념 파티?
“2월 6일, 도해영 탄생일 이브.”
“…….”
“생일 당일은 우리 둘이서만 오붓하게 보내야 하니까, 오늘은 전야제 같은 거지.”
오늘은 차도헌의 승진 축하 파티도 아니고 재판 승소 기념 파티도 아닌, 내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잊고 있었다. 살면서 생일을 단 한 번도 챙긴 적이 없었으니까.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내가, 굳이 생일 같은 날을 축하할 이유가 없었는데, 그동안은 분명 그랬는데….
눈물이 줄었다고 생각한 건 완전 오산이었다. 이렇게 행복하고 기쁜 마음을 고작 눈물로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내가 너무나도 한심스러웠다.
“생일 축하해, 내 사랑.”
눈물에 푹 젖어버린 입술 위로 달콤한 입맞춤이 내려앉았다. 발갛게 달아오른 눈가를 다정히 쓸어주는 손길 뒤에도 역시 사랑이 듬뿍 담긴 버드 키스가 이어졌다.
“사랑해, 해영아.”
사랑을 속삭이는 입술 위로 짙은 입맞춤을 남긴 나는 거의 다 녹은 케이크 초를 향해 섰다. 두 손을 모아 잡고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후- 바람을 불자 꺼진 촛불 너머로 축하 박수가 터져 나왔다.
두 눈을 감고 하늘에 빈 건, 어쩌면 소원보다도 더 강렬한 감사 인사.
‘…제게 차도헌을 선물해줘서 감사합니다.’
처음 맞는 생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꿈결처럼 행복한 시간. 새하얀 꽃가루와 반짝이는 유리알 전구, 그 아래로 모두가 함께 모여앉아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만찬.
그 이후에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우리만의 뜨거운 밤이 기다리고 있었다.
***
파티가 끝나고, 정리를 도와주겠다는 이들을 죄다 내쫓고 나서야 집안은 조용해졌다. 이 넓은 집이 한순간에 북적거린다고 느껴질 만큼 즐거운 시간을 보낸 나머지 모두가 떠난 후의 공간에는 조금은 허전함이 감돌았다.
소파에 덩그러니 앉은 채 나는 은은하게 전구를 몇 개 켜둔 정원 풍경을 감상했다. 모두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저녁이 벌써 꿈결처럼 아득해져만 갔다. 만약 옷깃에 남은 훈제 바비큐 냄새와 젖은 정원의 풀 냄새가 없었더라면 단잠의 꿈으로 여길 만큼, 오늘 저녁은 너무나도 행복했다.
펑 소리를 내며 터졌던 폭죽과 정원을 흠뻑 적시는 샴페인, 울려 퍼지는 경쾌한 생일 축하 노래와 커다란 케이크 위의 촛불.
꿈결을 헤집듯 파티를 되짚어보는 틈으로, 깔끔하게 소독되어 습윤 밴드를 붙여놓은 두 손이 옅게 얼얼한 통증을 일어냈다. 입술을 질끈 깨문 나는 고개를 돌려 조심스럽게 부엌을 쳐다보았다.
오늘따라 달그락거리며 설거지를 하고 있는 커다란 등이 마치 강철로 만든 방패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오늘로 너, 평생 부엌 출입 금지야.”
손님들을 배웅할 때까지만 해도 잘 숨기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워낙 어둠이 내린 정원은 어두우니 그가 미처 보지 못했을 거라고, 그가 잠든 사이 조용히 치료하면 되겠다는 나의 계획은 정말 안일하기 그지없었다.
“이리 와, 손 줘.”
내 두 손목을 단단히 붙든 그의 얼굴은 퍽 가라앉아 있었다. 얕은 화상과 베인 자국으로 범벅이 된 손 앞에서 나는 입술을 달싹대며 변명을 이어 나갔다.
“나 안 아파, 도헌 씨. 겉으로 보기에 막 이래서 심각해 보이는 거지, 별거 아냐.”
“…….”
“나 진짜 안 아픈데….”
내 애처로운 변명에도 대답 한 번 해주지 않은 그는 커다란 구급상자를 열어 이런저런 상비약을 꺼내 들었다. 한참을 말없이 치료를 이어나가는 그의 앞에서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요리 도중 서툴게 붙여놓은 반창고를 조심스럽게 떼어낸 그는 벌어진 상처 위로 소독약을 듬뿍 부었다. 아릿하게 올라오는 통증에 입술을 씹어대는 내게 그는 단호한 목소리를 냈다.
“손이 엉망이 됐는데 뭐가 안 아파.”
“…….”
“앞으로 칼 쓰지 마. 불도 쓰지 말고, 설거지도 안 돼.”
그의 엄포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보았다. 상처 크기에 맞게 습윤 밴드를 붙여 주던 그는 순순히 말을 듣는 내 모습에 표정을 누그러뜨리며 말을 이었다.
“네가 다치면 내 세상은 무너져, 해영아.”
“…….”
“대신 아파줄 수도 없고, 네 아픔을 없애줄 수도 없고… 그저 곁에서 네 고통을 지켜만 봐야 하는데…, 심장이 너무 아프더라.”
내가 길게 의식을 잃었을 때 그가 얼마나 하늘에 간절히 빌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아파했는지 전해 들은 적이 있었다. 그를 걱정시킬 일이 없기를 바랐는데… 바보처럼 나는 또 그를 걱정시키고야 말았다.
“…미안해.”
나는 그의 품으로 파고들어 안기며 얼굴을 부볐다. 내 어리광에 그는 작게 웃으며 내 허리를 끌어안아 주었다.
“남은 정리는 내가 다 할 테니까 쉬어.”
“같이-,”
“까먹지 마. 너, 부엌 출입 금지야.”
부엌 쪽으로는 발도 내딛지 마라며 엄포를 놓은 차도헌은 이마 위로 입맞춤을 남기고는 곧장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향했다. 그렇게 거실에 홀로 덩그러니 남은 나는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아련히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
하릴없이 소파에 몸을 맡기고 있던 나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까 받은 생일 선물을 풀어볼 참이었다.
선물 박스를 한데 모아둔 거실 한편으로 향한 나는 가장 앞에 놓인 것부터 차근히 포장지를 벗겨내었다. 고급스러운 포장에 예쁜 리본이 묶인 박스 안에는 좋은 향기로 가득 차 있었다.
“…배스밤?”
박스 안에는 색색의 배스밤이 종류별로 들어 있었다. 문득 TV에서 이런 걸 쓰는 걸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욕조에 이걸 넣으면 마구 거품이 나면서 꽃잎도 사르르 풀어지는, 마치 이벤트와 같은 기분을 내어주는 제품이었다.
진한 꽃향기가 나는 배스밤 두 알을 손에 쥔 채 번갈아 가며 향기를 맡던 나는 슬그머니 일어나 부엌에 발을 들였다. 그의 허리를 조심스레 끌어안으며 널따란 등판 위로 잘게 쪽쪽 소리를 내어 입을 맞추자, 작게 웃음을 터트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랑… 거품 목욕할래?”
그의 등에 얼굴을 묻고 웅얼거리기도 잠시, 어느새 나는 그의 품에 붙들린 채 욕실로 향하고 있었다. 서투른 구애에 넘어가 준 나의 사랑스러운 알파에게 입을 맞추며 나는 행복에 흠뻑 젖은 웃음을 터트렸다.
***
따뜻한 물에 노곤노곤 풀렸던 몸이 차츰 자극에 예민해진다. 작은 터치 하나에도 심장에 찌르르 전기가 올 만큼, 가슴팍 위를 간질이는 그의 입맞춤에 나는 밭은 숨을 쉬며 몰려올 뜨거운 열기를 즐겼다.
뺨 위를 간지럽히는 그의 젖은 머리칼에서는 나와 같은 향이 났다. 품 안에 온전히 내 몸을 가두듯 끌어안은 그의 가슴팍에서도, 짙은 색의 페로몬 사이로 나와 같은 꽃향기가 옅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꽃향기 나는 알파, 꽤 괜찮은데?”
배스밤의 향이 밴 그의 피부 위로 입술을 내리누르며 나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불끈이는 그의 근육을 크게 베어 물면 향기만큼 달달한 맛이 날 것만 같다는 생각에 이를 내어 앙, 물자 자그마한 잇자국이 그의 몸에 새겨졌다.
천천히 그의 복근을 타고 입술을 아래로 미끄러뜨렸다. 단단한 근육 위를 유영하듯 간지럽히며 내려간 곳에는 잔뜩 발기한 그의 것이 나를 마중 나온 채였다.
“…언제 봐도 잘생겼어.”
“예쁘게 봐줘서 뿌듯한데.”
야한 농담에 대꾸할 만큼 여유로운 그의 기색이 단번에 뒤집힌 건 한순간이었다. 쿠퍼액에 젖어 툭 불거진 귀두의 요도부를 혀를 내어 핥는 작은 터치만으로 그의 성기가 불끈이며 더욱 크기를 키워댔다.
“나도 예뻐해주고 싶은데.”
욕정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그는 단번에 엉덩이를 붙잡아 위로 끌어올렸다. 어느새 그의 얼굴 앞으로 엉덩이를 들이민 자세가 된 나는 질세라 얼굴 앞에서 위용을 자랑하는 그의 것을 마음껏 예뻐해 주었다.
욕심을 내어 입 안 가득 밀어 넣고 얕게 고갯짓을 시작하자, 비좁은 목구멍을 들락이는 자극에 등 뒤로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입천장을 짓누르며 비집고 들어와 느릿하게 목구멍을 벌리는 그의 성기가 당장 사정할 것처럼 꿈틀거렸지만, 내 바람과 다르게 차도헌은 늘 쉽게 사정해주지 않았다.
숨이 막히기 직전에서야 입 안에서 빼낸 그의 것은 힘줄이 돋아나 검붉어진 채였다. 소중한 것을 어루만지듯 두 손으로 감싸 쥔 뜨거운 양물이 손안에서 꿈틀댈 때마다 내 엉덩이 사이도 애액으로 축축하게 젖어가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스스로 구멍을 꾹꾹 조이며 안달을 내고 있는 사이로, 돌연 물컹이는 뜨거운 혀가 구멍 주변을 핥기 시작했다.
“아, 아흥-, 안 돼, 도헌 씨이, 그거 하지 마-!”
허리를 옴짝댈 틈도 없이 엉덩이가 그의 손에 단단히 붙잡혔다. 두꺼운 혀는 힘을 빳빳이 준 채로 내벽을 누르며 비집고 들어왔고, 내 엉덩이에서는 춥춥 빠는 야릇한 소리가 마구잡이로 새어 나왔다.
구멍부터 잡아먹히는 기분에 절로 오싹해졌다. 그에게 이런 곳을 몽땅 드러내 보인다는 수치심이 더욱 쾌감에 불을 지피고 있었다.
자극이 깊어질수록 발딱 썬 좆이 흔들리며 쿠퍼액을 흘려댔다. 뭉근하게 내벽을 휘저어대는 그의 애무에 나는 그의 거대한 물건에 볼을 부비며 신음을 토했다.
“나, 아으응, 응-! 쌀, 쌀 것 같아….”
바르작대며 쾌감을 참아내는 사이로, 돌연 그는 애무를 멈추고 내 엉덩이에서 혀를 빼내었다. 애액으로 번들번들해진 엉덩이를 부드럽게 쥐었다가 놓은 그는 애처롭게 쿠퍼액을 흘리는 내 성기에 옅은 웃음을 흘렸다.
“아직 가면 안 돼, 해영아.”
평소에는 내가 정액을 싸든 물을 싸든 상관하지 않고 내버려두었던 그가, 오늘은 ‘가면 안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뒤이어 아까 선물 박스에 고이 묶어져 있던 리본을 가져온 그는 다정한 손길로 내 성기 아랫부분에 예쁘장한 매듭을 지어주었다.
붉은색 리본을 성기에 매달고 있자니 내가 차도헌을 위한 선물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도 그런 생각을 했는지, 리본을 아래에 단 내 몸을 응시하는 그의 목덜미가 차츰 흥분에 붉어지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마음대로 싸면 안 되는 거야. 내가 리본을 풀어줄 때만 쌀 수 있는 거야, 알았지?”
지금부터 사정을 타인의 손에 컨트롤 당한다는 것을 인지하자마자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짜릿한 쾌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뚝 떨어뜨렸다.
단단히 선 내 좆을 부드럽게 위아래로 흔들어준 그는 마지막으로 리본 매듭을 단단히 묶은 후에야 내 성기를 놓아주었다. 리본이 좆을 살짝 조이는 그 자극만으로도 나는 찌릿찌릿 올라오는 쾌감을 감내해야만 했다.
손가락을 두어 개 넣어 내벽을 어루만지듯 풀어준 그는 단단히 선 성기를 가볍게 위아래로 훑으며 내 뺨 위로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을 좇던 입을 벌려 혀를 내보이자 이윽고 그의 두툼한 혀가 내 혓바닥을 꾹꾹 누르며 자극을 주었다.
깊이 타액이 얽히고 흥분에 젖은 눈물이 뺨 위로 흐르는 사이로, 질척이며 그의 손가락을 빨아먹는 엉덩이 밑으로 다부진 손이 쑥 들어갔다. 이윽고 내 허리를 손으로 단단히 받쳐 든 그는 허벅지를 세워 무릎을 디딘 채 무게를 실어 내 안으로 성기를 단번에 박아 넣었다.
“하으, 으응-!”
무겁게 스팟을 짓누르는 거대한 양물에 나는 헐떡이며 그의 입술을 좇았다. 허벅지를 달달 떨어대며 보채는 내 젖은 머리칼을 넘겨준 차도헌은 내 허벅지를 단단히 붙잡아 당기며 작게 웃었다.
“이제 싸고 싶어도 참아야 돼, 해영아.”
좁은 곳 안으로 침범한 뜨거운 그의 것이 점차 영역을 확장하는 것처럼 내 안을 깊이 파고들었다. 뜨거운 열기가 몸속을 달구듯 밀어 넣어질 때마다 나는 허리를 바르작대면서 앓는 신음을 냈다.
“하으…, 너무, 깊어…, 도헌 씨-,”
뭉근한 허릿짓에 오히려 전신의 감각은 날뛴다. 안쪽 깊숙한 곳에 위치한 예민한 부근을 억세게 짓누르는 거대한 양물에 나는 헐떡이며 그의 입술을 좇았다.
입술이 부르틀 만큼 이어지는 질척한 키스에, 그의 두 손이 부드럽게 내 가슴을 움켜쥐었다. 발딱 솟은 젖꼭지가 귀엽다는 듯 엄지로 가볍게 퉁기는 행위에 나는 골반을 움찔대며 쾌감을 참았다.
“…해영아, 가슴이 좀 커진 것 같다. 내가 많이 예뻐해줘서 그런가?”
“으응…, 나, 가슴 커졌어?”
가슴을 주무르던 그의 손이 어느새 내 다리 사이로 향했다. 비부에서 새어 나오는 내 애액을 손으로 훑은 그는 도로 내 가슴으로 손을 가져와 부드럽게 마사지를 이어 나갔다.
질척이는 애액 때문에 자꾸만 가슴 위에서 미끄러지는 그의 손이 패턴을 알 수 없게 젖꼭지를 자극해왔다. 단단히 선 돌기를 엄지로 짓누르며 마구 부비다가도, 돌연 돌기에서 손을 떼고 애먼 유두 주변을 건드리며 나를 애태우고 있었다.
“빨리이, 으으응… 도헌, 도헌 씨이, 나 가슴, 가슴 말고…, 빨리-”
발끝부터 올라오는 쾌감에 나는 허벅지를 달달 떨어대며 그를 보챘다. 이미 배 속을 묵직하게 채운 뜨거운 그의 것 아래에 눌리는 스팟은 안달이 난 나머지 퉁퉁 부어서, 이제는 손을 집어넣어 내벽이 짓무를 만큼 세게 긁어대고 싶을 정도였다.
“빨리이, 응? 해 주세요…, 네…?”
“울어도 예쁘네.”
다정한 목소리로 건넨 말치곤 꽤 무서운 말에 이어 그의 성기가 내 몸 밖으로 느릿하게 빠져나갔다.
허리를 뒤로 빼며 성기 끝까지 뺀 그는 뜨거운 손으로 내 골반을 억세게 움켜쥐었다. 잔뜩 부푼 기대감만큼 달아오른 공기에 나는 짓무른 눈가 위로 다시금 눈물을 흘리며, 내 위에 군림한 거대한 극우성 알파를 감상했다.
커다랗게 붙은 섹시한 상체 근육 아래로 이어지는 절경 같은 복근, 검붉은 핏줄이 마구 솟은 고간 아래로 팔뚝만 한 좆 끄트머리를 내 엉덩이 사이에 물린, 완벽한 알파.
나는 천천히 엉덩이를 벌려 구멍을 그에게 드러내 보였다. 그의 성기가 빡빡하게 물려진 젖은 입구를 검지로 느릿하게 문지르며 툭 불거진 그의 귀두를 자극하자, 어금니를 악문 그는 애가 타는 듯 탄성에 겨운 신음을 뱉었다.
천천히 기둥을 타고 올라간 손으로 그의 좆을 가볍게 움켜쥐었다. 손 안에 한껏 쥐어지는 흉악한 것을 내 쪽으로 잡아당기며 나는 그의 탄탄한 허리에 다리를 감았다.
그 순간 무지막지하게 터지는 그의 묵직한 페로몬에 이어 그의 것이 깊숙이 내 안으로 파고들었다. 무지막지한 힘으로 뱃속을 찍어 누르는 그의 성기에 나는 비명에 가까운 신음을 토해냈다.
“아읏, 흐앙, 앙! 아앙! 앙!”
차도헌의 허릿짓이 격해질수록 리본이 허공에서 나풀거렸다. 도망갈 수도 없이 골반을 억세게 움켜쥔 채로 무자비하게 내 안을 범하는 그의 행위에 나는 구명줄이라도 되는 듯 그의 어깨를 바투 끌어안았다.
내벽 안으로 좆을 거세게 찍어 내리던 그는 붉게 멍이 든 내 골반을 놓아주더니, 이윽고 허벅지를 세게 움켜쥐었다. 두 무릎을 한껏 양쪽으로 벌린 그는 이젠 한 치의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 더욱 깊이 파고들었다.
나는 손을 더듬어 아랫배를 문질렀다. 얇은 피부 아래로, 그의 좆이 들락일 때마다 내 아랫배가 부풀었다 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애액으로 흠뻑 젖은 비부에서는 철퍽이는 소리가 새어나갔다. 안쪽까지 확장하는 것처럼 끝없이 비집고 들어오는 그의 성기가 주는 쾌락에 나는 앙앙대며 울었다.
“하으, 응, 응, 으으응-! 응! 아읏, 도헌 씨이, 좋아, 거기이-!”
“후우-, 해영아, 좋아? 응?”
“응, 조아, 안에 도헌 씨, 거, 가득 차서, 아-! 아앙! 앙!”
끝없이 오는 오르가즘에 허벅지가 덜덜 떨려왔다. 그의 좆이 내 안을 관통할 때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이루 형용할 수 없는 쾌감에 절여진 것 같았다.
“나 갈 것 같, 아, 응, 아, 아, 아아!”
어느새 비명도 채 못 지르고 허리를 벌벌 떨어대며 드라이로 가고 있는 내 안에서, 차도헌도 뜨거운 좆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뱃속이 불룩해질 만큼 내벽을 가득 채운 정액이 다시금 이어지는 그의 격한 허릿짓에 맞물린 구멍 사이로 새어나가고 있었다.
꿀럭이며 뱃속을 어지럽히는 그의 것이 예민한 곳을 짓누를 때마다, 허릿짓에 뿌옇게 거품이 인 짙은 정액이 엉덩이골 사이를 타고 느릿하게 흘러내려 가고 있었다.
눈물로 짓무른 눈가를 훑어주는 다정한 손길과는 반대로 내 사정을 봐주지 않는 격한 몸짓에 다시금 드라이로 맞이한 오르가즘 앞에서,
내 안에 잠들어 있던 배뇨 본능이 차츰 고개를 들었다.
내벽을 비집고 마구 몸집을 불리는 그의 것이 스팟을 억세게 누를 때마다, 뱃속이 찌릿하면서 고개를 쳐든 성기가 움찔거렸다. 어느새 꽉 묶어둔 리본만큼 검붉어진 내 좆은 맑은 프리컴으로 흠뻑 적셔진 채였다.
“하으윽-, 나아-, 나, 싸고 싶, 어, 응, 으응!”
리본을 묶었는데도 질금질금 새는 정액에, 차도헌의 다부진 손이 내 귀두를 틀어쥐었다. 그의 굳은살이 배긴 손바닥 안에서 마구 부벼지는 예민한 귀두가 더더욱 안달 내며 사정을 원하고 있었다.
“쌀래, 나, 쌀래-!”
나는 원시의 상태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주어를 생략한 채 무작정 싸고 싶다고 울어대는 내게 차도헌은 더 애태우려는 듯 움켜쥔 내 좆을 위아래로 흔들며 자극을 주었다.
나는 골반을 바르작대며 스스로 아랫배를 꾹 눌렀다. 배 속을 휘젓는 그의 것만큼이나 딱딱하게 발기한 내 좆이 움찔대며 더더욱 핏줄을 세우고 있었다.
“이리 와, 키스해주면 풀어줄게.”
그 말에 나는 곧장 그의 어깨를 끌어안아 입술을 부딪쳤다. 격한 키스에 보답하듯 그는 내 허리를 부드럽게 어루만져주며 차츰 고간을 향해 손을 뻗었다.
혀가 깊게 섞일 때마다 나는 온몸을 움찔거리며 쾌감을 토해냈다. 잔뜩 짓무른 스팟은 여전히 그의 좆에 꽉 억눌린 채 쾌락을 자아냈고, 리본을 풀어주는 그의 손이 귀두 끝을 스칠 때마다 미칠 듯한 배뇨감이 불쑥이며 들었다.
그렇게 그의 묵직한 혀가 차츰 목구멍 안을 깊게 짓눌러올 즈음에야, 내 성기를 속박했던 리본이 완전히 풀려버렸다.
“아, 아, 잠, 잠깐-, 아흐으응-!”
검붉게 피가 몰린 성기는 애처로울 만큼 정액을 느릿하게 뱉어내고 있었다. 사정을 도와주려 차도헌의 손이 내 성기를 가볍게 위아래로 흔들어줄 때에야 울컥이며 시원하게 투둑, 툭 떨어진 정액을 뒤로,
“…우리 해영이, 분수 터졌네.”
쏴아아-, 소리를 내며 세차게 물이 터져나갔다.
온몸을 적시는 뜨거운 물에 나는 헐떡이며 밭은 숨을 토해냈다. 발끝까지 짜릿하게 올라오는 배뇨감이 해소되는 순간, 몸 안의 모든 물을 다 쏟아내겠다는 듯 세차게 터져나가는 분수의 향연에 나는 아랫배를 세게 짓누르며 물을 싸댔다.
아랫배 위로 붙은 좆이 힘겹게 물을 토해내는 사이로 차도헌은 도로 내 허벅지를 붙잡아 끌어당겼다. 정액으로 번들거리는 비부 위로 뭉근하게 좆머리를 부빈 그는 다시금 무지막지한 힘으로 단번에 배 속을 뚫어냈다.
“나, 나 아직-, 아응-!”
졸졸 쏟아지던 물줄기가 스팟이 눌릴 때마다 거세지길 반복했다. 푹 젖은 침대 시트는 몸을 움직일 때마다 질척이는 소리를 내고, 내 전신은 내가 싼 물로 축축하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흠뻑 젖어 번들거리는 가슴을 부드럽게 주무른 그는 혀를 내어 여전히 발딱 솟은 젖꼭지를 입 안으로 세게 빨아들였다. 그가 주는 자극에 온몸을 바르작대는 나를 품 안으로 끌어안은 그는, 물에 젖은 내 뺨을 다정하게 쓸어주며 이마 위로 입맞춤을 남겼다.
“해영아, 잠들면 안 돼.”
정말이지 이대로는 혼절할 것만 같은 나와는 다르게 그의 좆은 여전히 내 안에서 뜨겁게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
“잘 잤어?”
따스하게 비치는 봄의 햇살 아래, 뺨에 입술을 장난스레 부비며 물어오는 다정한 목소리.
맞닿은 심장이 터질 듯이 뛰어대는 매 순간 나는 동화처럼 시작되는 그와의 하루가 현실임을 깨닫곤 했다.
실크 가운을 대충 여민 채 어제 풀다 만 선물 상자들 앞으로 향했다. 어젯밤 향기로운 밤을 선물해준 오윤주의 선물 외에도 아직 뜯지 못한 상자들이 가득 있었다.
바닥에 털썩 앉아 포장지를 하나둘 뜯어냈다. 리본을 풀어낼 때는 문득 떠오른 어젯밤 생각에 목덜미에 열이 올랐지만, 차츰 거실을 채우는 부드러운 커피 향으로 뜨거운 밤의 기억을 잠시만 숨겨두기로 했다.
그런데 한창 이어지던 향기로운 분위기도 잠시, 선물 상자 안에 꽂혀있는 생일 카드를 읽어 내리는 얼굴에는 깊은 당황이 깃들기 시작했다. 향이 좋기로 유명한 차와 예쁜 티팟 세트를 선물한 두 막내 비서님들이 생일 카드에 남겨놓은 충격적인 내용 때문이었다.
“…도해영 님과 함께 나눴던 티 파티의 추억을 담아보았습니다. 저희를 잊지 말아주시고 항상 건강… 설마 김 비서님이랑 이 비서님 일 그만둬?”
그들의 카드 내용은 작별 인사와 다를 바 없었다. 퇴사에 관련한 한마디 말도 없이 편지만 남겨두고 떠나다니, 괜스레 마음이 서운해지기 시작했다.
“어제 얘기해주면 좋았을 텐데…. 그동안 내가 신세 진 것치고는 마지막 인사가 너무 가벼웠단 말야.”
“카드에 작별 인사를 적어놨어?”
“응.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지 말아 달래, 늘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래. 이게 작별 인사가 아니면 뭐야?”
서운해지는 마음에 절로 속상한 목소리가 나갔다. 그가 건네준 머그를 받아 든 나는 두 손으로 따스한 잔을 그러잡은 채 헛헛한 마음을 채우려 깊이 한 모금을 삼켰다.
“미국 지사 출장을 무슨 유배 가는 것처럼 적어놨군.”
몸 안 깊숙이 따뜻한 온기가 채워지기도 잠시, 카드 내용을 읽은 그가 허탈한 목소리를 냈다. 어느새 미간을 좁힌 그는 커피를 들이켜며 소리 나게 카드를 탁, 내려놓았다.
“출장? 퇴사가 아니라 출장 가는 거야? 그럼 왜 그렇게 슬프게 편지를 써?”
“그러게, 고작 일 년 보내놓는 건데 이렇게 엄살도 피울 줄 알고.”
나는 그가 언급한 ‘기간’에 놀란 나머지 따뜻한 김이 가시지 않은 커피를 그대로 꿀꺽 삼켜버렸다. 그에 나만큼이나 놀란 차도헌이 부엌으로 달려가 가져온 얼음 조각으로 얼얼한 입 안을 진정시킨 후에야 나는 겨우 말을 이었다.
“일 년? 그게 유배가 아니면 도대체 뭐야.”
“대를 위해 희생한 것뿐이야.”
“뭘 위해 희생했는데?”
“우리 신혼.”
그제야 그들의 편지에 담긴 절절한 마음을 깨닫고 만 나는 그의 탄탄한 가슴팍을 꾹 누르며 부러 매서운 눈을 떴다.
“열심히 일하는 비서님들 괴롭히지 말랬지. 특히 윤 비서님!”
“윤 비서는 워커홀릭이라 괜찮아.”
“어제 얼굴 보니까 반쪽이 됐던데!”
“지금 내 앞에서 다른 알파 챙겨주는 거야? 굉장히 질투 나는데.”
“이김에 윤 비서님 선물도 풀어봐야겠다.”
장난스럽게 그에게서 등을 홱 돌려 윤 비서님이 선물해준 자그마한 상자를 손에 쥐었다. 포장지를 뜯어낸 상자를 열자 그곳에는 만년필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하지만 채 선물을 제대로 구경하지도 못하고 나는 그에게 붙잡혔다. 내 허리를 끌어안아 품속으로 집어넣듯 끌어안은 그는 어깨 위로 쉼 없이 입 맞추며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네가 다른 남자한테 가고 싶다고 울어도 나는 안 보내줄 거야.”
“무릎 꿇고 빌면서 사정해도?”
“…마음이 좀 아프겠지만, 안 돼.”
“그럼 사랑하지도 않는데 끼고 살 거야?”
“네가 나를 다시 사랑하도록, 내 전부를 걸 거야.”
진지한 목소리로 답하는 그의 모습 앞에서 나는 결국 웃음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그의 뺨을 부드럽게 쓸어주며 눈을 맞추자 이윽고 그의 눈동자 안에는 오롯이 내 모습만이 담겼다.
그의 고개를 끌어당겨 입술 위로 달콤한 키스를 남겼다. 부드럽게 숨결이 섞이는 만큼이나 전해지는 감정에는 늘 짙은 사랑이 배어 있었다.
천천히 그의 뺨을 감싸 쥐던 손을 아래로 미끄러뜨렸다. 단단한 살결 위를 간지럽히듯 유영하던 손끝이 가슴 위로 도착하자, 그의 심장이 내 손바닥 안에서 쿵쾅거리며 박동하고 있었다.
“내 심장은 여기 파묻혀 있는데, 왜 불안해해.”
다정히 속삭인 고백에 그의 얼굴에는 모든 근심과 걱정이 씻어 내려간 채였다. 다시금 그가 선사하는 완벽한 키스에 흠뻑 녹아든 나는 피부 위로 느껴지는 그의 박동을 오롯이 느꼈다.
두 눈을 감은 채 그의 가슴팍 위로 머리를 기댔다. 그의 품에 포근히 안긴 이 순간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랐다.
창 너머로 비추는 따스한 햇살 아래, 살을 맞대며 서로의 심장 박동을 느끼는 이 순간. 내겐 그 무엇에도 비할 수 없는 완벽한 선물이었다.
“…생일 축하해, 해영아.”
이마 위로 입맞춤을 남긴 차도헌은 내 목덜미를 부드럽게 문질러주며 웃어 보였다. 그 순간 작게 고리가 채워지는 소리에 이어 무언가 서늘한 감촉이 목 위로 내려앉자, 나는 동그랗게 눈을 뜨며 쇄골 위로 손을 올렸다.
“뭐, 뭐야?”
“선물.”
놀란 내 몸을 그대로 안아 든 채 방으로 향한 그는 전신거울 앞에서 걸음을 멈춰 섰다. 거울 너머, 햇빛에 반짝이는 물방울 모양 보석이 내 쇄골 위에서 영롱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당신과 하나가 되고 싶습니다.”
“응?”
“목걸이에 담긴 의미래.”
목에 걸린 목걸이를 조심스레 매만지는 내 뺨 위로 그의 입술이 잘게 입맞춤을 선사했다. 쪽쪽 가볍게 입술이 부딪히는 소리가 귓가를 간질이는 사이로, 나는 그의 품으로 파고들어 안겼다.
“생일 축하해, 내 사랑.”
메이팅을 맺은 알파와 오메가, 운명처럼 만나 운명을 다할 때까지 사랑할 두 연인.
“…사랑해.”
수천 번 사랑을 속삭여도 모자랄 만큼 깊은 사랑에 빠져버린 알파와 오메가.
그 사랑의 또 다른 결실 앞에서,
“해영아. 나랑 결혼해줄래?”
차도헌은 내게 두 번째 프러포즈를 선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