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36/43)

2.

“죄수 번호 1038. 면회다.”

긴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했다. 세상과 단절된 채 무의미하게 하루를 흘려보내길 수백 번, 이 안에서의 시간은 유독 바깥보다 느리게 흘러가기에 그 정도의 계산은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바깥세상과 이어진 건 수감되고 고작 보름도 채 안 된 시간이었다.

“…당장 죽이고 싶다는 얼굴이군.”

시뻘겋게 눈에 핏줄이 돋은 남자의 얼굴 앞에서 나는 입술을 작게 중얼거렸다. 두꺼운 유리를 세워두어 공간을 나눠놓은 협소한 면회실, 그 건너편에는 두 주먹을 억세게 말아쥔 채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 차도헌이 있었다.

나는 그의 주먹을 응시하며 비웃듯이 내뱉었다.

“유리만 없었으면 날 죽였을 텐데, 아쉽군. 이렇게 감방 동기가 생기나 했더니.”

“입 닥쳐.”

목울대를 긁어대며 짐승처럼 으르렁대는 놈의 앞에서 나는 손목을 옥죄인 수갑을 잘그랑거렸다. 살의를 강력하게 내뿜는 놈과는 반대로 더 이상 내겐 그 어떠한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아무것도, 내겐 더 이상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삶의 이유도 삶의 의미도, 그 전부를 잃은 내가 오로지 기다리는 건 죽음뿐이었다.

줄곧 길게 이어지던 정적을 뒤로, 돌연 쾅 하며 유리를 내리치는 격한 소리가 들렸다. 코앞에서 얕게 진동하는 유리 너머로 놈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턱을 악문 채 분노에 찬 목소리를 냈다.

“한시도 네놈을 죽이고 싶지 않은 순간이 없다. 심장 깊숙이 칼날을 박아대고 숨통을 쥐어 터트려도 모자를 만큼, 내가 네 목숨을 얼마나 끊어버리고 싶은지 너는 상상도 못 하겠지.”

“…그럼 해. 난 더 이상 미련 없으니까.”

기력이 빠진 몸을 의자 위에 늘어뜨린 채 나는 헛웃음을 뱉었다. 놈이 나를 죽인다면 그것만큼 기쁠 일이 어디 있을까. 죽지 못해 사는 괴물의 목숨을 직접 처치해주겠다는데, 마다할 일이 있을까.

“아니. 난 네놈을 죽이지 않을 거다.”

다시금 쿵, 소리를 내며 유리벽 위로 차도헌이 주먹을 내리꽂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 영혼이 썩어가는 고통 아래에서 평생을, 죽지도 못하는 산송장처럼 살아.”

“…….”

“그게 네가 도해영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속죄니까.”

도해영, 그 이름을 내뱉을 적에 놈의 얼굴은 비탄으로 젖어가기 시작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으로 짙게 물든 얼굴 앞에서 나는 반사적으로 의자에서 일어선 채 유리 앞으로 바짝 몸을 붙였다.

“그게 무슨 소리야, 해영이한테 무슨 일이-”

“입 닥쳐, 네놈에겐 해영이 이름을 부를 자격조차 없으니까!”

“제발, 제발 괜찮다고 말해, 해영이 괜찮다고, 괜찮다고 말해!”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가 터져 나갔다. 어느새 핏줄이 터져 벌게진 시야 너머로 나는, 차도헌이 나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야 말았다. 세상의 전부를 잃은, 그래서 죽지 못해 살고 있는 두 남자는 유리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서 있었다.

놈은 등을 돌려 걸어가 면회실에 달린 철문을 움켜잡았다. 철컥이며 문이 열리는 사이로 들려온 작게 읊조리는 목소리에,

“…깨어나질 않아.”

“……뭐?”

“해영이, 몇 주가 지나도… 의식이 돌아오질 않아.”

그렇게, 내 안의 세상이 무너져 내렸다.

***

사고의 순간은 마치 각인된 것처럼 내 손아귀 안에서 몇백 번이고 되감겼다. 끝에 다다르는 순간 처음으로, 다시 다다른 끝에서 결국 처음으로.

둔탁하게 벼린 칼끝이 그 애의 배를 무참히 찔러댄다. 살을 푹 비집고 들어간 쇳덩이에 허리를 꺾어대며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는 가냘픈 몸은 이윽고 바닥 위로 무너져 내린 채 뜨거운 피를 쏟아낸다.

‘태…산아, …왜, 그랬어…?’

마지막까지 너는 나를 원망하지 않았다. 바보같이, 괴물이 되어버린 내게 이유를 물어주었다. 왜 그랬냐고, 왜 이렇게까지 되어야만 했냐고….

‘나는 절대 너를…, 해영아, 아니야, 나는….’

코앞으로 선명히 피 냄새가 맡아진다, 울컥이며 피가 새어 나오는 배를 힘겹게 감싸 쥔 너는 고통에 온몸을 꿈틀댄다, 눈물이 마를 새도 없이 창백한 두 뺨을 적셔가면서 너는, 그렇게 내 앞에서 죽어간다.

“-안 돼!”

이것은 악몽이다.

아니, 끝없이 반복되는 지옥이었다.

“강태산 씨. 제게는 다 말씀해주셔야 합니다. 살인을 해야만 했던 이유나, 조직 내부에서 오는 압박이라던가.”

담당 수사관의 목소리 앞에서 나는 고개를 숙였다. 수갑에 차인 손목을 움직여 펼쳐 보인 두 손바닥에는 거짓말처럼 피 한 방울 묻어있지 않았다.

“이주미가 오늘 자로 유죄 판결을 받았어요, 특히 오윤주 살인미수 건에 대해서는 이주미가 강태산 씨에게 사주를 했다는 증거도 나온 상태고요. 뭐라도 말씀만 해주시면 강태산 씨한테 다 도움이 되는-”

“됐습니다.”

고개를 저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런 내 앞에서 담당 수사관은 펜 뚜껑을 닫으며 한숨을 쉬었다.

“…강태산 씨, 저는 범죄자들을 참 많이 봤습니다. 부인 죽인 시체 옷장에 넣어놓고는 멀쩡히 살림 차려서 사는 살인마 새끼들도 많이 잡아봤고, 윗대가리들이 시켰다면서 거짓말 치고 심심풀이로 사람 죽이고 다니는 조폭 새끼들은 수도 없이 잡았고요.”

“…….”

“그런데 강태산 씨는 아닌 것 같단 말입니다. 적어도… 이유가 있는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잘못 봤습니다. 사람 죽이는 괴물 새끼한테 연민 갖지 마십쇼.”

날 선 목소리를 내뱉곤 등을 돌려 수사실에서 걸어 나갔다. 등 뒤로 나지막이 들려오는 수사관의 한숨 소리에 나는 철문을 쾅 닫으며 나를 기다리고 있는 간수의 뒤를 따라 걸었다.

나는 매일 밤, 손바닥만 한 창문을 응시하며 기도를 했다. 더 이상 도해영의 얼굴을 볼 수 없어도 괜찮으니 살아만 남으라고, 웃는 그 애의 얼굴을 평생 보지 못해도 괜찮으니 어서 그 애를 깨워달라고.

나는 내가 받아야 할 벌을 착실히 받고 있을 테니 제발 한 번만 그 애를 살려달라고, 내 목숨을 바쳐 그 애를 위해 기도할 테니까, 제발 도해영을 살려달라고….

하지만 그로부터 더 이상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네가 깨어났는지, 아직 잠들어 있는지, 그 어떤 소식도 듣지 못한 채 나는 내 목숨이 끊어지기만을 바라는 산송장이 됐다.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했다, 세상과 단절된 채 무의미하게 하루를 흘려보내길 수백 번, 이 안에서의 시간은 유독 바깥보다 느리게 흘러가기에 그 정도의 계산은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죽지 못해 사는 산송장, 생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썩어가는 육신과 이미 죽어버린 영혼은 어느새 네 얼굴마저도 까먹게 만들 정도로, 아마도 나는 죽어가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그 지옥의 끝에,

“죄수 번호 1038, 면회다.”

그렇게, 내 앞에 네가 나타났다.

두 손목을 단단히 매어둔 수갑이 걸음을 내걸 때마다 철컹이며 사슬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손목을 억세게 조인 쇳덩이를 아래로 축 늘어뜨린 채 면회실로 들어간 순간,

“태…, 태산아.”

내 앞에, 도해영, 네가 천사처럼, 내려왔다.

수갑을 찬 손을 아래로 숨기며 나는 옅게 웃었다. 너를 잃고 난 후 꼬박 세 달이 되어서야, 나는 처음으로 웃었다, 나는 생에 처음으로 미소라는 걸 지어보는 사람처럼, 웃고 있었다.

그 남자와 함께 나를 기다리고 있는 너는 행복해 보였다. 네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잡은 손을 부드럽게 쓸어주는 차도헌의 행동에 나는 질투도 욕심도 아닌, 그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 곁에 저 사람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너를 지켜줄, 너를 행복하게 해줄 사람이 네 곁에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나, 태산이랑 둘이 얘기하고 싶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너는 네 곁을 지키고 선 차도헌을 잠시 내보내기까지 했다. 네 앞에 선 나는 이토록 이기적인 괴물일 뿐인데, 착하디착한 너는 내게 시간을 주었다.

그 남자가 나가고 곧 우리 둘만이 남았다. 내 뒤에 선 간수를 제외하면, 우리에겐 오롯한 시간이 생겼다.

네 눈을 마주 볼 때마다 나는, 과거의 우리를 본다. 비좁은 쪽방에 몸을 웅크리고 누운 너와 함께 잠들던 그 새벽이나, 어두운 업소 불빛 아래 내 앞에서 환하게 웃어 보였던 네 예쁜 얼굴이나. 그 모든 것들이 생생하게 살아남은 만큼 지금, 내 앞에서 너는 그 어느 때보다 예쁘게 웃어주었다.

“…굳이 안 와도 되는데, 와줬네.”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내 존재의 의미였던 너를 마주한 순간 내 시간은 오로지 너를 중심으로 다시 초침이 움직였다. 아주 오래전 멈췄던 시계가, 이제야 네 앞에서 작동을 시작했다.

심장이 뛰는 만큼 가파르게 내달리는 시간을 도저히 따라잡지 못할 만큼…, 내 전부가 된 네 앞에서야 나는 살아있음을 느꼈다.

불에 달군 쇳덩어리가 박힌 것처럼 목구멍이 불에 탄 듯 뜨거워졌다. 붉어지는 눈시울을 숨기려 버석하게 마른 얼굴을 거칠게 쓸어내리는 동안 손목에서는 절그럭, 하는 소리가 났다.

“왜 네가 다 뒤집어썼어. 그러지 말지, 그럼….”

그런데 네가 울었다, 내 전부인 네가, 내 앞에서 울었다.

눈물에 젖은 목소리 앞에서 나는 내 앞을 막아선 두터운 유리벽을 깨고 널 향해 달려가고팠다, 우는 너를 품에 안아 어르며 왜 우냐고, 혹시 또 내가 너를 울게 만들었냐고, 앞으로는 다신 안 그럴 테니 제발 울지 말아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겐 그럴 자격이 없다. 그럴 수조차 없다. 너를 아프게 한 죄가 우는 너를 품에 안아 어를 수 없다는 것이었나 보다. 죄를 어긴 값으로 목숨을 내놓고 당장 네게 달려가고 싶을 만큼 나는 너를 끌어안기를 간절했지만, 역시나 내게는 그럴 자격이 없었다.

예쁜 네 얼굴이 차츰 눈물로 얼룩덜룩해졌다. 눈물에 젖은 얼굴을 닦아낼 새도 없이 뚝뚝 눈물을 흘리는 네 앞에서 나는 어이없을 만큼 미소가 지어졌다.

우느라 발갛게 두 뺨이 장밋빛으로 물들어가는 넌 정말 예뻤다. 생각해보면 나는 한 시도 너를 예쁘지 않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지만, 언제고 눈물을 툭 터트릴 때마다 너를 품에 안으면 이상하리만치 가슴 속에 뿌듯이 차오르는 감정들이 있곤 했었다, 나 때문에 우는 네 모습을 볼 때마다 그렇게 자꾸만 내 안에는 감정들이….

젠장, 이래서는 안 된다.

“-그만 가봐.”

말라붙은 입술 밖으로 거친 소리를 내뱉었다. 네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됐다. 더 이상 나로 인해 너를 다치게 할 일은 없어야만 하기에, 이젠 너를 나로부터 멀리 도망치게 할 일만 남았다.

“…응?”

“가, 도해영. 그리고, 앞으로 찾아오지 마.”

상처받은 너의 얼굴, 그에 맞춰 내 심장도 산산이 찢어지고 있었다.

나는 착해빠진 너를 상처 입힘과 동시에 너의 모든 것을 빼앗아간 괴물이었다. 용서할 수도, 용서를 바랄 수도 없을 만큼 네게 악한 존재인 내가 더 이상 너의 시간을 뺏을 수는 없었다.

“왜, 아직 시간 더 남았잖아, 혹시 내가 불편해? 그런 거면… 얼굴만 더 보다가 갈게, 그냥… 쫓아내지만 마, 네 얼굴만 보다 갈 테니까….”

그런데 너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내게 애원하기 시작했다. 네 모든 것을 앗아간 괴물 같은 내 앞에서, 너는 나와 시간을 더 보내고 싶다며 애원하고 있었다.

오직 내 시간은 네가 있음에 작동하는데, 그런 내 앞에서 내 전부인 너는, 내 전부였던 너는… 나 때문에 또 울고 있었다.

“…….”

나는 너의 시선을 피했다. 나만큼이나 네 존재를 갈망할 사람도, 나만큼이나 너를 놓아주어야 할 사람도 없을 테니까.

면회 시작과 동시에 해영이에게 내쫓긴 차도헌은 문에 난 자그마한 창문을 통해 내부 상황을 내내 주시하고 있는 듯했다. 죄책감으로 얼룩진 내 얼굴을 잠시간 응시하던 놈은 얼굴을 굳힌 채 작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래, 이번이 마지막인 거다. 너의 얼굴을 보는 것도, 너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이렇게 너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는 것도… 마지막인 지금 이 시간을 소중히 보내보기로 했다.

네 얼굴에 줄곧 머무르던 시선이 차츰 아래로 내려가 네 가냘픈 몸으로 향했다. 커다랗고 흉측한 칼을 오롯이 받아낸 그 마른 몸, 한때 생명을 품었던 네 배를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나는 주저하며 물었다.

“몸은… 괜찮아?”

“멀쩡해, 예전보다도 더 건강해. 그러니까… 너도 빨리 나와. 빨리 나와서 나랑 팔씨름이라도 해. 내가 다 이겨버릴 테니까.”

옷소매를 끌어당겨 코를 팽, 푸는 네가 이토록 사랑스럽지 않을 수 있을까.

“흉은. 흉은 안 졌어?”

“큰 병원 가니까 꿰맨 자국도 없이 깨끗하게 해주더라. 너도 그런 병원 데려가서 진작 팔이고 턱이고 다 치료했었어야 했는데, 그게 뭐야… 온몸이 흉터로 덕지덕지…, 속상해 죽겠어.”

와르르 말을 내뱉는 네 눈은 걱정을 가득 담은 채 찰랑이는 눈물을 다시금 뚝, 떨군다.

꿰맨 자국도 없이 깨끗하게….

나를 기억할 하나라도 네 몸에 남아있다면, 내가 사라지고 나서도 너는 날 잊어버리지 않을 수 있을까. 불현듯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이기적인 감정을 부러 밀어내며 나는 네 얼굴을 지긋이 응시했다.

네 앞에서는 눈을 깜박이는 것조차도 아까웠다. 평생 네 앞에서 눈을 감지 못하는 저주에 걸린다면 그건 내게 저주가 아닌 축복에 가까울 테니까.

웃는 얼굴도, 우는 얼굴도, 내게 화내는 얼굴도, 전부 다 예쁜 네 얼굴을 한없이 바라볼 수만 있다면… 전신이 찢기고 오롯이 눈깔만 남아도 나는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정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꼈다. 간수의 발소리에 나는 유리 앞으로 몸을 살짝 기울이며 네게 물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 해영아.”

“나? 으음…, 아! 나 얼마 전에 면허 땄어. 아직 고속도로에서도 시속 20km밖에 못 밟지만….”

“잘했네. 그리고.”

“그리고? 음- 나 요즘 수영 배운다? 근데 수영장 물은 내가 다 먹는 것 같아. 맨날 나만 가라앉아.”

“또.”

“또? 자꾸 내 얘기만 하는 것 같은데-”

종알대며 너의 하루하루를 이야기하는 자그마한 입술을 응시하며 또, 나는 웃고 있었다. 죽지 못해 육신만 살아남은 괴물처럼 살던 내가, 네 앞에서 영혼이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너를 사랑하는 내 마음을 감추며 나는 단지 궁금하다는 이유를 댔다. 내 얄팍한 핑계를 네가 알아차리지 못하기를 바라며 나는 부드러운 목소리를 냈다.

“궁금해, 네가 어떻게 지내는지.”

“나도 네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단 말야.”

입술을 작게 삐죽이며 코맹맹이 소리를 내는 너는 내 시선 앞에서 요즈음 자신이 어떻게 지내는지 내게 얘기해주기 위해 골똘히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그 모습마저도 나는 다시금 너와 사랑에 빠질 만큼, 너는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은수랑 지해랑 마담이랑… 같은 곳에 묻어줬어. 나중에, 만약 너 괜찮으면… 같이 가자. 다들 너 보고 싶을 거야.”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낸 네 목소리에 내 안에 풍선처럼 부푼 감정은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터졌다.

나는 괴물이었다. 내가 얼마나 네 삶의 전부를 빼앗은 끔찍한 괴물이자, 네게 사랑을 품을 자격조차 없는 괴물이었다.

“면회는 15분입니다. 이제 슬슬 말씀 끝내십쇼.”

내 등 뒤로 간수의 사무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그 말에 너는 얼굴을 굳히며 초조해했다.

“아직 제대로 말도 못 나눴는데….”

유리창 너머로 나를 끌고 가기 위해 온 간수들이 위압적인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 광경에 너는 자리에서 일어난 채 발을 동동 굴렀다.

“다음에, 다음에 또 올게, 응? 우리 다음에 또 볼 수 있는 거잖아, 그치?”

다시금 울음이 가득 찬 목소리.

너를 또 울렸구나,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는 너를, 내가 또 울렸구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너를 계속 아프게만 할 뿐인데, 어떻게 내 욕심 하나 채우겠다고 계속 너를 힘들게 할 수 있을까.

나는 부러 장난스레 대꾸했다.

“도해영, 뉴스 제대로 안 봤나 본데. 나 죄질 엄청 심한 흉악범이야. 원래 안 되는 거 면회 이렇게 해주는 것도 다 차도헌 덕분이고.”

“그럼 도헌 씨 힘 믿고 또 와도 되잖아, 왜 자꾸 나 못 오게 하려는 사람처럼 말해?”

상처받은 목소리 앞에서 나는 천천히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고개를 살짝 숙이면 바로 네 얼굴이 보이는 익숙한 시야에, 투명한 유리 하나를 사이에 끼고 우리는 마주 서 있었다.

“왜 울어, 울지 마.”

손목 사이를 연결하는 쇠줄에서 절그럭, 소리가 났다. 유리 너머 우는 네 눈물을 닦아주고픈 맘에 나는 차가운 유리면을 엄지로 쓸며 옅게 웃어보았다.

“면회 거절하지 마, 네가 면회 거절해도 나 계속 찾아올 테니까….”

유리벽 앞으로 다가서며 너는 유리에 손을 짚었다. 두꺼운 유리벽 너머, 너의 자그마한 손 위로 내 손을 조심스레 맞댔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손바닥 사이로 너의 부드러운 살결이 만져지는 듯했다.

“행복해, 해영아. 그 누구보다도 더….”

널 단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어.

나는… 내 목숨이 끝나는 순간까지도, 너를 사랑할 테니까.

그대로 등을 돌렸다. 거친 소리를 내며 열리는 철문 사이로,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간수들은 내 수갑에 연결한 쇠줄을 거칠게 끌어당기며 나를 데리고 면회실에서 나갔다. 등 뒤로 내내 들려오던 너의 울음소리는 다시금 철문이 쿵, 닫힘으로서 종결되었다.

느릿한 내 발걸음이 성가시다는 듯 쇠줄을 마구 잡아당기는 간수의 행동에도 군말 없이 그 뒤를 조용히 따라 걸었다. 면회실에서 독방까지 이어지는 비좁은 복도, 그곳을 내딛는 발걸음은 가뿐하다 못해 천국을 걷는 기분이었다.

이제 끝인가 보다. 너라는 선물을 내려준 하늘에게 속죄할 날이 오늘이었나 보다. 매일 밤 시간을 죽이던 비좁은 독방의 한쪽 구석에 걸터앉아 너와의 마지막 순간들을 되짚어본다, 일분일초가 소중한 너의 모습을 다시금 눈앞으로 그려본다.

발갛게 온기를 머금은 두 뺨, 웃을 때 예쁜 호선을 그리는 붉은 입술과 하도 울어서 촉촉하게 젖어버린 두 눈동자. 내가 기억하는 너의 모습들이 흐려지지 않도록 나는 안간힘을 써가며 너를 떠올렸다. 나를 숨 쉬게 하는 너의 모든 것들을… 내 안에 깊게 새기고 싶었다.

“…네 얼굴 한 번 본 게 뭐라고…. 이렇게 살 것 같냐.”

헛웃음이 터져나갔다. 그간 죽지 못해서 살았던 내가, 오로지 죽음만을 바랐던 내가, 이제야, 이제야… 살고 싶어졌다.

독방 한쪽 벽에 손바닥 만하게 난 창으로 달빛이 비친다. 그 어스름한 빛 아래 나는 천천히 내 몸을 비춰보았다.

두 팔뚝에 수없이 난 깊고 얕은 상처들과 오른쪽 어깨에 길게 난 짙은 흉터 자국, 그리고 손등에 난 꿰맨 자국까지.

내 몸에 남은 모든 흉터에는 도해영, 네가 있었다.

‘…무겁다. 저리 좀 앉아라, 도해영.’

‘살가죽이랑 뼈밖에 없는데 뭐가 무거워.’

비좁은 쪽방 한구석에 앉아 네 젖은 머리를 말려주던 날들, 내 가슴팍에 등을 대고 누운 너의 옅은 온기를 느끼며 남몰래 네 젖은 머리칼 위로 입을 맞추던 순간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추억들 앞에서, 나는 너를 위해 죽음을 택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없는 세상에서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갈 도해영, 너를 위해….

“손 떼, 강태산.”

돌연 머리맡 위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도해영의 모습을 그리며 감았던 두 눈을 떠올린 곳에는, 무감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차도헌이 있었다.

나는 내 목덜미를 조르던 두 손을 느릿하게 풀어내었다. 늦은 밤, 면회실도 아닌 내 독방까지 친히 찾아와 내 자살을 막아선 차도헌은 문가에 비딱하게 선 채 내게 턱짓했다.

“앉아. 할 얘기 있으니까.”

그렇게 우리는 독방에 놓인 작은 식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어두운 조명 아래, 놈은 작게 읊조리며 말을 시작했다.

“마음 같아선 너를 죽게 놔두고 싶지만….”

“…….”

“네가 죽으면 해영이가 아파할 테니까.”

그 말을 내뱉는 놈의 목소리 앞에서 나는 고개를 숙였다. 뜨겁게 붉어지는 눈시울에 감정을 참을 새도 없이 놈은 말을 이어 나갔다.

“난 아직 널 용서하지 못해. 그럴 마음도 없고. 그럼에도 내가 너를 찾아와 이러는 건…, 네가 해영이의 곁을 지켜줬기 때문이다.”

“…….”

“네가 없었으면 해영이는 나를 만나기도 전에 이 세상에 없었겠지. …해영이를 지켜줘서 고맙다.”

담담하게 들리는 목소리에 나는 숙였던 얼굴을 들어 올렸다. 마주한 곳에는 내게 정중히 감사를 표하는 차도헌이 있었다.

문득, 해영이가 아직 깨어나지 않았을 적 나를 찾아왔던 차도헌의 모습이 떠올랐다. 세상의 전부를 잃은 모습으로 죽지 못해 산송장처럼 살고 있는 두 남자는 면회실을 가르는 유리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선 채, 도해영의 심장이 다시 세차게 뛰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어쩌면 정답은 당연한 거였다. 도해영을 지키기 위해서 수없이 손에 피를 묻힌 내가 만들어 낸 결론은 그를 다치게 했을 뿐이니까. 어느새 선로를 이탈해 질주하기 시작한 위태로운 사랑의 결과가 도해영, 너를 아프게 했다면 그것만으로도 내겐 자격 따위 없다는 말이 됐다.

도해영을 사랑했기에 엮인 지독한 악연, 한 남자를 갖기 위해 벌였던 끔찍한 싸움의 끝에는 패배를 인정할 순간만이 남아있었다.

그래. 너에겐 저 남자가 있으니 괜찮다. 도해영, 너에겐 목숨을 내걸고 너를 지킬 저 남자가 있으니, 괜찮다.

“…해영이, 부탁한다.”

내 담담한 목소리에 차도헌은 잠시간 내 얼굴을 응시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윽고 식탁 위에는 커다란 꾸러미가 올려졌다. 고소하고 달달한 향이 좁은 독방 안을 부드럽게 채웠다.

“해영이가 저녁에 구운 거야.”

“…해영이가?”

“너한테 주겠다고 몇백 개를 굽더라.”

놈은 꾸러미를 내 쪽으로 밀며 안에 담긴 결과물이 형태를 알아볼 순 없겠지만 ‘쿠키’임을 강조했다. 온갖 쿠키 틀과 전쟁을 펼쳤다는 이야기를 덧붙이는 놈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담겨 있었다.

독방을 떠나는 차도헌을 뒤로, 서투르게 포장된 꾸러미를 내려다보며 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직 따뜻한 기운이 남아있는 꾸러미를 조심스레 매만지는 손길은 한때 내가 그를 어루만지던 것과 다르지 않았다.

뜨거운 눈물이 얼굴을 적신다. 너의 온기가 남은 꾸러미를 품 안에 끌어안으며 나는 미약하게나마 남은 너의 체취를 좇아본다.

도해영, 너를 사랑했음에 후회는 없다. 그러니 너를 놓아 줄 때도 후회하지 않아보려 한다. 너의 행복만이 내 전부가 될 테니까, 언제고… 나는 너의 행복만을 빌어줄 테니까.

어두운 사창가 골목, 그 중 모란에서 너를 만나 운명처럼 시작된 사랑은 그렇게 종지부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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