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때르르릉-
여럿 맞춰 놓은 알람이 쪽방 안쪽에서 정신없이 울렸다. 부산스럽게 몸을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천장에 달린 전등이 하나둘 켜졌다.
“…아으으, 죽겠다.”
미처 눈을 뜨기도 전에 옆에서 앓는 소리가 들렸다. 밤새 두어 장 겹쳐 덮은 담요를 죄다 헤벌려 놓은 은수는 엎어져 누운 채 허리를 통통 두드리고 있었다.
“파스 붙여줘?”
“아니. 뒤로 박히다가 파스 뜯길 생각하니까 끔찍하다.”
진저리를 치는 은수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데 문득, 묘한 이질감이 들었다. 허리를 두드리던 것을 멈추곤 몸을 일으켜 이불을 개기 시작하는 은수의 모습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툭 말이 튀어 나갔다.
“…오늘따라 네가 좀 낯설다.”
“눈뜨자마자 무슨 정신 나간 소리야. 너 어디 아퍼?”
“아니, 그냥….”
나는 고개를 저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상하게도 은수의 몸 뒤로 보이는 자그마한 파란색 무늬의 항아리가 자꾸만 눈에 밟혔다.
“몸 안 좋으면 하루 제껴. 괜히 고생했다가 앓아눕지 말고.”
“갑자기 무슨 환자 취급하고 있어? 내가 아프긴 어딜 아파.”
“이거 눈깔 다시 돌아왔네.”
멀쩡한 새끼 괜히 걱정했다며 김새는 웃음을 뱉은 은수는 내 등을 팡, 때리곤 걸어 나갔다.
“빨리 일어나! 너 때문에 또 욕탕 버글거릴 때 가잖아!”
잠을 깨우는 매운 손길에 다시 이불 위로 몸을 드러누운 나는 쪽방을 나서는 은수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 겨우 몸을 일으켰다.
은수도, 이 자그마한 쪽방도, 내 옆에 쪼르르 누워 아직 잠자고 있는 오메가 애들도, 전부 다 변함없이 익숙한데 이상하게도 자꾸만 낯선 기분이 들었다.
그대로 발을 내디뎌 쪽방을 나섰다. 아직 영업이 시작되지 않은 모란의 비좁은 복도를 걸어 로비로 향하자 분주하게 애들이 물걸레질을 하는 사이로 마담이 느긋하게 담배를 피우며 장부를 뒤적이고 있었다.
“주무셨어요, 마담.”
“오냐. 참, 해영이 너, 오늘 황 회장님 콜 취소했다.”
“마담이 캔슬했어요? 회장님이 가만 안 있었을 텐데, 어떻게요?”
내 놀란 목소리에 마담은 옅게 웃으며 장부를 탁 소리 내어 닫았다. 프런트에 놓아둔 재떨이에 담배를 지져 끈 그녀는 리모컨을 집어 들어 벽걸이 TV를 켜더니, 이내 채널을 마구 돌리며 부러 무심한 목소리로 답했다.
“히트 때 괜히 혹사했다 앓아누워서 되겠니. 회장님이 아무리 베타래도 괜히 불려갔다 위험할 일 안 만드는 게 좋지.”
“아…, 맞다. 히트….”
“그리고 네가 한 번 빠지면 업소에 얼마나 피해가 큰 줄 아니? 회장님이 네 주머니에 꽂아주는 돈보다 네가 벌어들이는 돈이 더 많아.”
“나 그렇게 잘 벌어요?”
“그래. 그러니 몸 좀 잘 챙겨. 영양제도 꼬박꼬박 챙겨 먹고, 운동도 좀 하고.”
어째 갈수록 잔소리가 심해지는 마담의 앞에서 나는 바구니에 담긴 라이터를 잘그락거리며 가지고 놀았다. 프런트에 울린 전화를 받은 마담이 친절히 고객 응대를 하는 동안, 대리운전 번호가 인쇄된 라이터를 엄지로 꾹꾹 문지르며 번호를 지워보려 애쓰는데 내 머리칼을 쓰다듬는 마담의 손길이 느껴졌다.
“…네, 고객님. VIP 룸은 일정 회원 이상을 다시면 예약이 가능하십니다만…, 그건 저희 회장님 통해서 말씀을….”
통화가 길어지는지 마담은 전화기를 귀에 댄 채 프런트 뒤쪽으로 향했다. 이윽고 탁,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작은 방으로 들어간 마담을 뒤로 나는 프런트 데스크에 몸을 기댄 채 그녀가 틀어둔 TV를 보기 시작했다.
[…차 그룹의 상속자로 예정되어 있던 1남 차정우와 후순위 상속자인 2남 차서준이 위임식을 앞두고 차례로 목숨을 잃은 상황에서, 사건 발생으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오늘….]
빼곡히 들어찬 카메라와 취재진 사이로 검은 수트를 갖춰 입은 남자가 고개를 숙인 채 인파 사이를 헤치며 걸어가고 있었다. 현장을 보여주는 취재 장면에 이어, 뉴스는 한 남성의 사진을 커다랗게 보여주며 보도를 이어 나갔다.
[-두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차 그룹의 4남 차도헌 씨에 대한 본격적인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관계자는 이에 대해….]
“어…?”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TV 화면을 가득 채우는 남자의 사진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도드라진 눈썹뼈와 그 아래로 이어지는 우뚝 솟은 콧대, 강한 선이 돋보이는 얼굴에 패인 볼, 그리고 도톰한 입술을 가진 남자.
이유를 모르게 익숙한 남자의 얼굴 앞에서 나는 이상한 기시감을 느끼고 있었다.
“…저런 고객은 없었는데.”
단위를 일주일로 끊어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고객을 받긴 하지만 만약 저런 남자를 받았더라면 절대 잊을 리 없을 거였다.
생김새도 그렇거니와 고작 화면 너머로 모습을 보는 것뿐인데도 강하고 거친 우성 알파의 느낌이 나는 것이, 만약 면대면으로 만나는 상황이 있다면 속된 말로 물을 지릴 만큼 저 남자에게선 무서운 페로몬이 느껴지고 있었다.
게다가 저렇게 완벽한 삶을 사는 사람이라면 프라이빗 별장으로 호출을 하지 굳이 이런 사창가에 손수 찾아올 일은 없을 테고.
리모컨을 집어 들어 채널을 돌린 나는 자꾸만 불쑥이는 괜한 호기심에 결국 뉴스로 되돌아갔다. 이제 화면은 다시 현장 취재로 넘어와 손에 수갑을 찬 채 이송되는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어디선가 만난 사람 같단 말이야.
남자를 향해 매섭게 날아오는 토마토와 달걀 같은 것들이 그를 둘러싼 진압 방패를 더럽히는 동안, 나는 어색하게 혀를 굴려 그의 이름을 발음해보았다.
“차… 도헌….”
이상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인데 내 귀로 들리는 그 이름은 너무도 익숙한 것이었다.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된 오늘 저녁부터 차도헌 씨는 유력 용의자 신분으로 압박 수사를 받게 됩니다. 수사에 앞서 검찰은 중대한 사건인 만큼 더욱 수사에 집중….]
내내 고개를 숙였던 남자는 마구잡이로 밀고 들어오는 마이크 행렬에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카메라에 선명히 포착된 남자의 얼굴에 나는 얼어붙고 말았다.
슬픔과 분노로 짓이겨진 짙은 눈매, 그 눈을 마주한 순간 내 귓가에 돌연 익숙한 목소리가 울렸다.
‘사랑해, 해영아.’
내가 저 남자를 어떻게 알지, 내가 저 남자의 목소리를… 어떻게 알지?
묵직하게 통증이 이는 심장을 움켜쥐며 나는 뺨을 적시는 눈물을 허겁지겁 닦아냈다.
중요한 걸 잊은 기분, 마치 내 삶의 전부가 될 만큼 중요한 무언가를 잊은 기분이었다.
“마담, 혹시 고객 중에 저런 사람 있었어요?”
나는 TV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마담에게 물었다. 마담이라면 내가 받은 고객들은 전부 알고 있을 테고, 만약 마담이 저 남자를 모른다면 내가 큰 착각을 하고 있다는 당연한 답이 나올 것이다.
“아무래도 어디서 본 사람 같아서-,”
하지만 마담이 있을 프런트를 향해 돌아선 순간, 내 눈앞엔 더 이상 영업을 준비 중인 모란의 모습은 없었다.
‘…아.’
목이 꽉 막힌 듯 아무 소리도 내뱉을 수 없었다. 심장은 수천 갈래로 찢어져 불에 달구는 것처럼 고통스러웠고 납덩이를 단 듯 무거운 몸은 자꾸만 땅 아래로 꺼져가는 것처럼, 정신은 그렇게 아득해졌다.
찰나의 꿈은 너무도 생생하게 사랑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내 곁으로 보내주었다. 은수도 마담도, 오메가들도. 그들이 모두 살아있던 5년 전, 아늑했던 모란에서의 기억.
그 모든 기억이 사라지고 남은 곳에는, 펄럭이는 천막 아래 잔해로 뒤덮인 황량한 잿더미 위에서 나를 끌어안은 채 울부짖는 그가 있었다.
“제발… 해영아…, 제발!”
숨이 멎어 든 내 입술 위로 차도헌은 다시금 숨을 깊숙이 불어 넣었다. 얼어붙은 심장에 귀를 대어 확인하길 반복한 그는 내 눈꺼풀 위로 연거푸 입술을 내리찍으며 나를 살리려고 애쓰고 있었다.
“도대체 왜…, 왜 이런 거니, 해영아, 응…? 나는, 나는 너 없인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는데… 해영아….”
핏기가 가신 내 뺨을 어루만지는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부서질 듯 마른 몸 위로 쉼 없이 입술을 맞추며 차도헌은, 스러져가는 나를 품에 안은 채 그렇게 무너져 내렸다.
나는 천천히 그를 향해 다가섰다. 내 육신을 품에 안은 채 하염없이 무너져 내린 그의 커다란 등을 감싸 안으며, 나는 절망에 빠진 그를 달랬다.
꽉 막힌 목구멍 사이로 더 이상 아무런 목소리도 새어 나가지 않을 걸 알면서, 나는 차도헌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그를 어루만졌다.
‘다음엔, 이런 사창가에서 태어나지 않을게.’
“안 돼, 해영아… 제발, 제발 숨 쉬어, 제발….”
‘다음엔 꼭, 눈 뜨자마자 바로 당신 곁으로 갈 테니까….’
차가운 입술이 그의 뜨거운 입술 위로 차근히 내려앉았다. 닿지 못할 입맞춤을 뒤로, 나는 두 눈을 감았다.
“해영아, 안 돼, 안 돼-!”
차츰, 거센 파도는 내 몸을 삼켰다.
***
서서히 물결이 흩어지고 차츰 정신이 들었다.
가뿐한 몸이, 더 이상 무겁지 않은 숨이, 오롯이 새것으로 갈아 끼운 것처럼 세차게 뛰어대는 심장의 박동이 전신으로 퍼지는 낯선 기분은 분명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생의 기운이었다.
내내 온몸을 짓누르던 크고 작은 고통도, 늘 짓무른 듯 쓰라렸던 심장도, 이제야 정상의 범주에서 작동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숨을 내쉬는 것도, 손끝을 움직이는 것도, 전부 다 처음 겪는 사람처럼 나는 서툴게 굴었다.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뺨을 쓸어주는 그의 다정한 손길이었다. 그다음으로는 내 몸을 부드럽게 감싸는 그의 페로몬이었고, 마지막으론-
“…해영아.”
내 이름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가 있었다.
눈물로 가득 찬 희뿌연 시야 너머로, 울음에 섞인 새된 목소리가 달싹이는 입술 틈으로 새어 나왔다.
“우리, 각인은…?”
내 물음에 그는 뺨을 매만지던 손을 거뒀다. 다정한 손길이 사라진 곳에 돌연 찾아온 서늘한 기운은 더없이 나를 아프게 했다.
그는 내게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내 손을 그의 심장 위로 붙인 채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손바닥 아래로 그의 박동이 느껴졌다. 내 심장과 정확하게 같은 속도로 뛰는 그의 심장은, 이전보다도 더 강하고 묵직하게 내 손안에서 뛰어대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내가 그토록 간절히 바라지 않았던 일이 우리에게 벌어졌음을 깨달았다.
“우리… 메이팅 됐어…?”
쉼 없이 눈물이 새어나갔다. 눈물에 적신 두 뺨 위로 입술을 내리누르는 그의 다정한 입맞춤에도 나는 그의 어깨를 밀어내며 울음을 쏟아냈다.
“왜, 왜 그랬어…, 왜! 나랑 각인이 끊기면, 도헌 씨 삶도 원래대로 될 수 있는데, 더 이상 나 같은 거 때문에…, 도헌 씨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 나는….”
정리되지 못한 말들은 한데 뒤엉켜 쏟아져 나갔다.
그를 살리는 건, 내 목숨보다도 더 중요한 일이었다. 내 인생에 그를 영원히 묶어놓는 것도, 나로 인해 그의 목숨이 위험해질 상황도, 그 모든 것들은 내겐 전부 무서운 일일 뿐인데…. 차도헌은 그 모든 것들을 감수하고 도해영과 메이팅을 해냈다, 그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 줄 모르고….
“해영아.”
차도헌은, 여전히 변함없이 짙은 눈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 눈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듣지 못할 리 없었다, 걱정하고 무서워했던 것이 바보처럼 느껴질 만큼 그의 눈에는 나를 향한 견고하고 단단한 사랑이 있었다.
“왜 그걸 몰라, 응?”
이마 위로 그의 포근한 입맞춤이 쉼 없이 쏟아졌다. 사랑을 속삭이는 틈으로 쉴 새 없이 맞닿는 입맞춤은 입술이 겹칠수록 서서히 깊어져만 갔다.
“내 끔찍한 삶에 해영이 네가, 천사처럼 내려와 준 거야.”
“…흐으-, 으, 흡,”
“도해영은, 죽지 못해 사는 차도헌을 살린 거야.”
나를 끌어안는 강한 품, 만약 꿈이라면 절대 깨고 싶지 않을 꿈.
“사랑해, 도해영. …내 오메가, 내 사랑.”
내 안을 가득 채우듯 짙게 배어나오는 차도헌의 페로몬을 맡으며 나는 그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사랑해, 차도헌. 내 알파…, 내 심장.”
그제야 마치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것처럼, 온전히 맞닿은 두 심장은 같은 속도로 쿵쿵대며 뛰어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