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해영아. 마담… 죽었어.”
“…뭐라고?”
믿기 힘든 말, 절대 믿고 싶지 않은 말.
“마담, 죽었어, 해영아.”
온몸이 산산이 부서지면 이런 기분일까, 죽을 만큼 아프다는 게 딱 이런 고통인 걸까.
카펫 위로 엎어지는 내 몸을 강태산이 재빠르게 안아 들었다. 거짓말처럼 비릿한 피 냄새가 코앞에 맡아지는 것만 같았다.
눈물이 차올랐다. 두 귀에 번갈아 이명 소리가 자욱하게 깔리고 뿌옇게 흐려진 시야만큼 뇌도 뭉그러져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나를 붙든 채 선 강태산의 어깨를 밀어내며 방으로 들어가 외투를 움켜쥐었다. 내 눈으로 봐야만 했다. 마담이 살아 있다는 걸, 두 눈으로 봐야 했다.
“마담이, 마담이 죽을 리가 없잖아. 분명, 화재 때 죽은 사람도 다친 사람도 없다고 했잖아, 근데 마담이 갑자기 왜!”
혼잣말을 줄줄이 늘어놓으며 외투에 팔을 꿰다가 나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흐느끼는 내 어깨를 붙든 강태산의 얼굴은 아이러니하게도 죄책감 같은 게 서려 있었다.
“나한테 이런 거짓말은 왜 하는 거야, 태산아, 응? 마담 안 죽었잖아, 마담이 왜 죽어!”
발악하며 나를 달래려는 강태산의 몸을 마구 밀어내었다. 벗겨진 외투를 도로 주워 입으며 몸을 일으킨 나는 현관을 향해 달렸다. 신발을 구겨 신곤 손잡이를 움켜쥔 내가 얼음처럼 굳어버린 건, 등 뒤로 들려오는 강태산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그자가, 마담을 죽였어, 해영아. 황 회장, 그가 죽였어.”
황 회장의 호텔로 향하는 내내 나는 숨을 몰아쉬며 눈물을 참았다. 내 엄마를 죽인 살인자 앞에서 눈물 같은 걸 보이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그 역겨운 남자는 내 눈물에 꼴리는 얼굴이라며 앞섶을 부풀리곤 달려들 테니까.
치가 떨릴 정도로 공포스러운 기억은 온몸에 깊숙이 새겨져 있었다. 회장실의 금빛 문짝 앞에 선 순간 목을 조르고 달려드는 축축하고 더러운 기억에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괜찮겠어, 해영아?”
강태산은 회장실의 문을 열기 직전까지도 내 상태를 걱정하며 주저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더 지체했다간 울음이 터질지도 몰랐다. 나는 문 앞을 막아선 강태산의 몸을 밀어내곤 내 손으로 무거운 회장실 문을 밀어 열었다.
붉은 융단이 길게 깔린 곳의 끝자락, 왕좌처럼 꾸며진 소파 위에 황 회장이 앉아 있었다. 늘 나를 범했던 저 소파에 여유롭게 앉은 채 황 회장은 걸걸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드디어 왔구나, 해영아.”
더러운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불렀다. 엄마가 지어준 이름을 입에 올리는 살인자, 내 엄마를 죽인 황 회장, 그에게 복수를 할 때였다.
나는 곧장 다리를 내달려 황 회장을 향해 뛰었다. 소파에 등을 기대어 앉은 몸 위로 뛰어들어 두툼한 목을 움켜쥐어 조이자 가까운 거리에 핏발이 선 눈동자가 나를 더러운 시선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피부도 탱글하니 여전히 예쁘장하구나.”
“왜 죽였어요? 알고 있었어요? 마담이 내 엄마라서 죽였어요?”
황 회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낄낄대면서 웃고 있었다, 마치 이 모든 게 장난이라는 듯이, 나 따위 손짓 한 번에 죽일 수 있다는 것처럼 황 회장은 나를 깔보며 여유롭게 굴고 있었다.
울대를 꾹 누른 손에 더더욱 힘이 실렸다. 벌써 뿌옇게 된 두 눈을 빠르게 깜박이며 나는 황 회장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노기가 서린 혼탁한 동공 위로 비치는 내 얼굴은 끔찍할 정도로 슬픔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서서히 시체 썩는 냄새 같은 게 났다. 그제야 나는 이상함을 느꼈다. 내가 목을 조르는 동안 황 회장은 버둥대지도 반격하지도 않았다는 것과 회장실에 배치된 경호원들은 아무도 나를 저지하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시선을 돌리며 주변을 살폈다. 이상했다, 조직원들은 전부 다 구경꾼인 것처럼 내가 하는 짓을 쳐다만 보고 있었고, 강태산은 조직원에게 붙들리긴커녕 수발을 받듯 조직원들의 대접을 받고 있었다.
서서히 나는 시선을 내려 황 회장의 몸을 응시했다. 그제야 내 두 눈에 이미 썩어서 부패하기 직전인 황 회장의 몸이 보였다.
검게 썩은 피부는 쭈글쭈글해진 채 퀴퀴한 냄새가 났고 고무처럼 늘어진 팔다리는 이미 뼈가 부러진 상태였음을, 썩은 내가 나는 입술 안으로 보이는 검붉은 잇몸에 더 이상 남은 이빨이 없다는 것을, 나는 그제야 알아차리고 말았다.
허겁지겁 황 회장의 목을 조르던 손을 떼어낸 나는 소파에서 굴러떨어지듯 넘어졌다. 이미 내 손에는 굳은 핏덩이가 군데군데 묻어 있었다.
황 회장은 죽어가고 있었다. 손쓸 수조차 없이, 살아있는 시체처럼 죽지 못해서 살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뒤로 돌아섰다. 강태산의 뒤로 무리를 지고 선 조직원들의 모습에 나는 바보처럼 그제야 깨닫고 말았다.
“…네가, 이렇게 했어?”
“…….”
“강태산, 너… 조직 먹었어?”
내 물음에, 강태산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결말이 눈앞에 다가온 순간이었다.
이질감.
그날 호텔 복도에서 너를 마주친 이후로 줄곧 느꼈던 감정은 아마도 이질감, 이것이었나 보다.
“왜…?”
물어서는 안 될 질문을 한 기분이었다. 이 모든 게 당연한 것처럼 굴어대는 네게,
“…왜, 왜 그랬어…?”
왜냐고 묻는 나만큼 바보 같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예상처럼 강태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제 뒤로 우르르 서 있는 조직원들을 무르며 나를 향해 걸어올 뿐이었다.
“해영아.”
저벅이는 구둣발이 바닥에 깔아둔 붉은 융단 위에서 둔탁한 소리를 냈다. 그 묵직한 소음에 나는 어깨를 움츠리며 반 발짝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강태산이 내 손목을 붙잡아 당기는 것이 더 빨랐다.
강태산은 내 손에 묻은 검붉은 핏자국을 물수건으로 닦아내며 다정한 목소리를 냈다.
“더 이상 네게 위협을 가할 놈은 없어. 너를 노렸던 조폭 집단과 사창가 업주들도 전부 정리했고, 황 회장도 이젠 네 밑에서 기고 있고.”
“…….”
“이젠 더 이상 누구도 널 건드리지 못해. 만약 생기더라도, 내가 이렇게 만들 테니까.”
강태산은 옅게 웃으며 시체처럼 널브러진 황 회장의 다리를 구둣발로 툭, 걷어찼다. 이내 피 묻은 물수건을 바닥에 버린 강태산은 창백하게 질린 내 손을 맞잡으며 눈을 맞춰왔다.
“이제 복수만 남았어, 해영아.”
다정하게 속삭이는 목소리에 섬찟하며 온몸이 굳었다.
잘게 떨리는 손을 움켜쥔 강태산의 손은 나를 속박하는 사슬이 되었고, 나를 응시하는 강태산의 눈빛은 차츰 목을 조여오기 시작했다.
힘겹게 붙든 숨은 가슴에 턱 얹혀온다. 하나둘 몰려오는 감정은 두려움과 죄책감, 그리고 우리를 이렇게 만들어버린 운명을 향한 분노였다.
이런 삶을 싫어했었잖아. 이유 없는 조폭질에 회의를 느꼈던 네가 황 회장을 위한 복수 때문에 조직을 먹었다는 게, 나는 이해가 안 돼, 태산아.
그게 네게 유일한 방법이었다 할지라도, 나는… 혼란스러워. 이젠 네가 무서워지려 해, 너무나도 달라진 네가 너무 낯설고 두려워, 태산아.
대체 왜 이렇게까지 된 거니, 조직을 먹고 사창가를 정리하고, 이 모든 게 정말 단순히 황 회장을 향한 복수 때문에…?
답이 돌아오지 않을 물음을 삼키며 질끈 입술을 깨문 채 고개를 돌렸다. 죽어가는 황 회장의 시체 같은 모습을 감상할 만큼 나는 비위가 좋지 못했다.
발아래에서 쿨럭, 하며 질은 기침 소리가 났다. 어느새 소파 위에서 굴러떨어진 황 회장은 몸뚱어리를 가누지 못하고 바닥에 엎어진 채 검게 굳은 핏덩이를 토해내고 있었다.
“마음이 약해지면 어떡해, 해영아.”
강태산은 푹 고꾸라진 황 회장의 머리통을 거칠게 붙잡아 당기며 억지로 나와 시선을 맞추게 했다. 누렇게 뜬 흰자와 탁한 동공이 고름으로 가득 차 느릿하게 눈꺼풀을 끔벅인 황 회장은 피가 섞인 침을 강태산의 구두에 뱉곤 비릿하게 웃었다.
황 회장의 도발에 강태산은 붙잡은 머리통을 벽에 메다꽂았다. 한 번으론 성에 차지 않았는지 연달아 세 번을 벽에 짓누르고 나서야 강태산은 쥐어 잡은 머리통을 거칠게 놓았다.
“어떻게 할래, 해영아. 아까처럼 목 졸라도 되고, 칼이든 총이든 다 준비해놨으니까 말만 해.”
종용하듯 이어지는 강태산의 목소리를 뒤로, 나는 호흡을 고르며 천천히 황 회장의 앞으로 다리를 쪼그려 앉았다. 나를 응시하는 황 회장의 동공은 아까보다도 더 흐리멍덩해진 채였다.
코 밑으로 습한 악취가 맡아졌다. 검버섯으로 뒤덮인 황 회장의 늙어버린 얼굴 앞에서 나는 작게 입술을 달싹이며 물었다.
“……당신이 마담, 죽였어요?”
입술 밖으로 내뱉은 아득한 사실에 심장은 전에 없이 아파 오기 시작했다. 그런 내 고통이 즐겁다는 듯 다시금 얼굴 위로 비릿한 웃음을 그린 황 회장은 낄낄대는 목소리로 띄엄띄엄 말을 이었다.
“해영아, 내가 왜… 응? 어여쁜 우리 모란이를 죽이겠니. 네 구멍이 맛이 좋은 건 다… 네 어미를 닮아서 그런 건데 말이야….”
더러운 말에 강태산의 손아귀가 다시금 황 회장의 머리통을 억세게 움켜쥐었다. 하지만 나는 황 회장에게 더 들을 대답이 있었다. 머리통을 으깨 죽이려 드는 강태산을 만류한 나는 화를 억누르며 재차 황 회장에게 물었다.
“그래서, 우리 엄마 죽였어요?”
“내 위에서… 허리를 흔들면 그년 출렁이는 가슴이 말이야… 참 보기 좋았는데, 응? 그년은 죽더라도… 쿨럭! 내 위에서 복상사로 죽음 좀 좋았어…, 그것참 아쉽구만.”
쉰내가 새어 나오는 혀로 입술을 축인 황 회장의 앞섶이 불룩하게 솟아있었다. 옷 위로 솟은 더러운 것을 목격하자마자 뚝 끊긴 이성은 정신없이 비명을 외치며 두터운 목덜미를 움켜쥐는 행위로 이어지고야 말았다.
“입 닥쳐! 당신이 죽였다며, 우리 엄마, 당신이 죽였다며!”
“쿨럭… 쿡!”
“나도 죽여, 빨리 나도 죽이라고, 우리 엄마 죽였던 것처럼 나도 죽여!”
뼈가 다 부서져 고무 인형처럼 늘어진 황 회장의 팔을 억지로 붙들고 내 목으로 갖다 붙이며 발악을 했다.
“제발, 제발 죽여 나도, 나도 죽여버리란 말이야!”
피떡이 된 축축한 손이 목을 스칠 때마다 나는 제발 이 손이 나를 죽여 버려서 더 이상 마담 생각이 떠오르지 않기를 바랐다, 이 악마 같은 인간이 마담을 죽일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나의 죗값을 받을 수만 있다면 당장 받고 싶었다.
내 목덜미를 스스로 조여대던 두 손은 어느새 강태산에게 단단히 붙들려진 채였다. 황 회장으로부터 나를 떼어낸 강태산은 발악하는 나를 어르고 달래며 일으켜 세웠다.
“해영아. 빨리 끝내자, 응?”
언뜻, 부하에게 칼을 가져오라고 시키는 강태산의 목소리가 들렸다. 속박하듯 안긴 강태산의 품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는데 내 발밑에서 피를 한 번 더 토한 황 회장이 끌끌대며 걸걸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일은 다 벌여놓고… 사랑에 눈이 멀어 한 치 앞도 제대로 못 보는구나, 응? 강태산이…. 모란은 제 새끼를 지키려 했던 거다, 가진 것 하나 없는 어미가 할 수 있는 게 그런 꾀밖에 없다는 걸, 진즉에 알고 있었던 게지….”
이상했다. 황 회장은 아까부터 자기가 마담을 죽이지 않은 것처럼 굴고 있었다. 나는 강태산의 어깨를 밀쳐내며 황 회장에게 소리쳤다.
“당신 뭐라고 했어, 지금! 다시 말해, 당장!”
“해영아, 대화할 필요 없어. 너도 알잖아, 저 인간이 얼마나 더럽고 영악한 노인네인지.”
강태산은 내 앞을 막아서며 다급히 말을 이었다. 그 모습은 마치 무언가를 숨기는 사람처럼 보였다. 차츰 긴장감으로 굳어지기 시작하는 강태산의 뒤로, 떠듬떠듬 들려온 황 회장의 목소리에 나는 얼어붙었다.
“나도 썩은 내 나는 몸으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구나. 대화는 둘이 하고 강태산이, 어서… 나를 죽여라. 네놈이 줄곧 그랬던 것처럼 말이야… 응?”
이상하리만치 선명하게 다가온 직감은 심장에 칼이 꽂히듯 날아와 나를 아프게 했다.
“네가 죽였어?”
“…….”
“네가… 네가 마담 죽였어?”
네가 내게 숨기려던 게 이거야, 태산아?
나는 무너져 내렸다. 다신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심장을 붙잡고 나는 그렇게 부서지기 시작했다. 강태산은 뒤늦게 나를 끌어안으며 아니라고 덧붙였지만,
“해영아, 진정해. 난 아니야. 마담을 죽인 건 황 회장이라고 말했잖아, 응?”
강태산의 품 안에서 발버둥 치며 도망친 나는 붉은 카펫을 짚은 채 엎어져 가쁜 숨을 골랐다.
분명 그런 날이 있었다. 강태산, 그 존재만으로도 믿음이 가던 때가, 든든하고 안정되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었다. 너무나도 달라진 그가 무서웠다. 매 순간 눈을 마주칠 때마다, 매 순간 그 품에 속박되듯 안길 때마다, 나는 두려웠다.
나지막이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바닥에 떨어진 칼을 줍는 소리에 이어, 내게 당부를 하는 강태산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해영아, 뒤돌아 있어.”
나는 카펫 위로 얼굴을 묻었다.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덜덜 떨리는 몸에 빠르게 한기가 돌았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감지한 몸은 온갖 두려움을 끌어안은 채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어여쁜 우리 해영아, 명심하거라. 조폭 새끼는 말이다….”
“…….”
“믿을 거 하나 못 된다….”
걸걸한 황 회장의 목소리를 끝으로 질척한 살덩이가 마구 쑤셔지는 소리가 들렸다. 피가 튀기는 소리와 난도질당한 살점이 바닥 위로 툭 툭 떨어지는 소리에 나는 입을 틀어막은 채 비명을 삼켜 물었다.
살해 현장은 조용했다. 고통에 겨운 비명도, 살인을 말리려는 목소리도 없이, 그저 살덩이를 칼로 쑤시는 소리뿐이었다.
“…다 끝났어, 해영아.”
등 뒤로 저벅이며 걸어오는 발소리가 차츰 가까워졌다. 나는 비틀대며 바닥을 짚고 일어선 채 사체에서 새어 나오는 역겨운 냄새에 숨을 삼키며 헐떡댔다.
“…죽였어?”
“응.”
“정말… 정말 죽인 거야?”
차마 등을 돌리지 못하는 내 앞으로 걸어와 마주 보고 선 강태산의 얼굴에는 핏방울이 무시무시하게 튀어 있었다. 피범벅이 된 손에 칼끝을 따라 검은 피가 뚝 뚝 떨어지고 있었고, 옷에 들러붙은 누런 살점이 이따금씩 바닥 위로 툭, 떨어졌다.
그 순간 나는 욱, 하며 입을 틀어막았다.
한데 밀려오는 역겨운 살인의 악취에 뒷걸음질 치며 강태산으로부터 달아난 나는 어느새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배를 움켜쥐고 선 채였다.
다시금, 배 속이 죄다 꼬였던 그날처럼 고통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차오르는 구토감에 한 손으론 입을 틀어막으면서도 다른 손은 아랫배를 단단히 감싸 쥔 채 부드럽게 문지르고 있었다.
무서웠다, 아기가 잘못될까 봐 너무나도 무서웠다. 이렇게 배가 아팠다간 정말 아기가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비틀대며 회장실 문을 향해 뛰었다.
당장 병원에 가야만 했다. 차도헌은 아직 내가 임신했다는 것도 모르고 있는데, 아직 내가 말해주지도 못했는데, 만약 이렇게 잘못되면―
“너….”
강태산의 목소리에 내달리던 다리가 굳어버렸다. 천천히 뒤를 돈 곳에는 여전히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칼을 쥔 채 나를 응시하는 강태산이 서 있었다.
“태, 태산아-,”
“그 새끼가 널 임신시켰어? 도해영, 대답해! 그 새끼가 너한테 이딴 짓거리 했냐고!”
팔뚝을 붙잡고 거칠게 끌어당긴 강태산이 호통을 치며 나를 몰아세웠다. 둔탁할 정도로 까맣게 된 동공에는 두려울 만큼 살기가 가득한 채였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강태산의 어깨를 밀어내며 간절할 정도로 고개를 저어댔다. 아기의 존재를 강태산에게 숨겨야만 했다, 임신하지 않았다고 확답을 주어야만 강태산의 분노가 사그라들 터였다.
“욱-!”
하지만 바투 선 강태산에게서 나는 썩은 피 냄새에 몸을 웅크리며 헛구역질을 했다. 두려움에 덜덜 떨리기 시작한 두 손으로 연신 묵직한 고통이 자리한 아랫배를 쓸어주면서 나는 힘겹게 헐떡였다.
나를 응시하는 차가운 눈동자가 차츰 굳어가고 있었다. 팔뚝을 단단히 붙잡은 억센 손에 질질 끌려간 몸은 강태산의 품에 단단히 갇혀버렸고, 강태산은 나를 용서하지 않았다.
“……안- 안 돼-”
이내 둔탁하게 벼린 칼끝이 내 배 속으로 무참히 파고들었다.
살을 푹 비집고 들어온 아픔만큼 칼날이 빠져나가는 고통 앞에서 나는 비명을 내지르며 무너져 내렸다. 장기를 헤집는 듯 크게 휘저어진 쇳덩이는 불에 달군 것마냥 뜨겁게 부글대며 고통을 불러일으켰다.
“아…, 악-!”
고통에 절은 신음이 목구멍을 비집고 새어 나왔다. 아랫배에서 쉴 새 없이 새어 나오는 피가 하반신을 흠뻑 적셨고, 이내 불길에 휩싸인 것처럼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이 전신에 퍼지기 시작했다.
아팠다. 너무 아파서 죽을 것만 같았다. 넘쳐흐르는 피를 막아보려 애쓰는 두 손은 이미 쏟아져 나오는 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헤집어진 상처 틈으로 손바닥을 쑤셔 넣으며 나는 헐떡댔다. 차츰 잃어가는 피에 정신이 흐릿해져 왔다.
기나긴 정적 사이로 챙그랑, 하며 칼이 바닥으로 낙하하는 소리가, 그러곤 내 이름을 부르는 강태산의 목소리가 들렸다.
“해, 해…영, 해영아…….”
웅크린 몸덩이는 덜덜대면서도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어느새 질퍽하게 고인 피가 저기 서 있는 강태산에게까지 흘러가고 있었다. 붉디붉은 카펫 위로 비슷한 색의 핏물이 빠르게 넘쳐 흘러가 강태산의 구둣발 앞코에 툭, 닿는 순간, 강태산은 절규했다.
“아아… 아아아악!”
쿵, 하며 꺾인 무릎 위로 쏟아지듯 무너진 몸이 거칠게 울부짖을 때마다 들썩이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나를 붙잡았을 때, 그리고 찰나의 순간에 나를 찔렀을 때. 강태산의 얼굴은 짙은 후회로 가득 차 있었다. 푹 비집어 넣은 칼날로 익숙하게 내 아랫배를 쑤시는 동안에도, 강태산의 눈에는 형용할 수 없는 슬픔이 가라앉아 있었다.
“왜… 왜 그랬어……?”
어느새 바닥 위로 고꾸라진 몸에, 볼을 뜨겁게 적시는 질척한 핏물이 달싹이는 입술 사이로 흘러들어와 비릿한 맛을 냈다.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처럼 입 안을 가득 채우는 핏물을 토해내며 힘겹게 고개를 비틀었다. 뿌연 시야 사이로 들어오는 강태산의 모습이 끝없이 흐려져만 갔다.
“태…산아, 응……?”
흐려지는 초점에 눈꺼풀을 깊게 감았다 떠올리며 나는 재차 물었다. 꽉 막힌 목구멍을 타고 속살거리듯 내뱉어진 물음은 강태산에게 닿아 그의 진심을 토해내게 했다.
“나는 절대 너를…, 해영아, 아니야, 나는….”
“…….”
“아기, 아기 있으면… 너 죽잖아, 해영아, 임신하면 너도….”
강태산의 얼굴에 둥그렇게 맺힌 커다란 핏자국이 차츰 눈물에 씻겨 내려가듯 옅어지고 있었다. 턱 아래로 고인 옅은 색 핏물이 뚝, 뚝 떨어지는 것을 보던 나는 뒤늦게 그가 울고 있음을 깨달았다.
“해, 해영아… 병, 병원… 해영…, 병원 가자, 해영아… 응? 가자, 병원…, 내가, 내가 같이 갈게, 해영아….”
강태산이 울고 있었다, 나를 향해 뻗은 두 손을 끝없이 바들대면서, 차마 붙잡지도 못하고 두려움에 잠식된 채 정신이 나간 듯이 내 이름을 쉼 없이 불러대면서, 강태산은 울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너덜해진 아랫배를 꽉 틀어막고 있던 손은 이미 바닥 위로 축 늘어진 지 오래였다. 붙잡을 무언가도 없이 정신은 그렇게 흐려져만 갔다. 선명했던 아픔도 고통도 빠져나가는 피를 따라 사라지는 것마냥 몸에 남아있던 감각이 하나둘 꺼지는 것이 느껴졌다.
문득, 차도헌이 보고 싶었다. 결국 이렇게 죽을 비참한 운명인 내가 잠깐이나마 차도헌 같은 사람을 욕심내도 보고, 찰나였지만 그 사람 아기도 품어보고, 비루한 운명치곤 분에 넘치는 삶을 살았는데, 분명 그랬는데…….
왜 이렇게 자꾸만 욕심이 날까. 하루살이가 미련 갖는 것만큼 추한 일이 없는데, 왜 자꾸만 차도헌이 보고 싶을까.
“-해…아! 도……!”
나를 끌어안는 강한 품, 만약 꿈이라면 절대 깨고 싶지 않을 꿈.
몰려오는 포근함에 나는 두 눈을 감았다. 오랜만에 깊은 잠에 들 수 있을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