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11/43)

2.

처음에는 탱크가 온몸을 밟고 지나간 줄 알았다. 모든 뼈가 바스러지다 못해 가루가 되어선, 몇 남은 자잘한 뼛조각들이 날카롭게 내장을 파고드는 불쾌하고도 섬뜩한 기분이었다.

날파리처럼 위잉대며 고막을 꽉 채우던 이명이 차츰 멀어질 즈음에야 저 멀리 존재하던 현실 감각이 다가왔다. 으깨진 뼛조각이 도로 붙어 원래의 모양을 내려는 듯 팔다리가 뻐근했고 욱신거리다가 종래엔 찢어진 듯한 고통이 이어졌다.

“흐으… 으….”

이제금 귓가에 누군가 죽을 듯이 내는 신음 소리가 들렸다. 대체 누가 이런 신경 거슬리는 소리를 내나 했더니만.

“아… 윽….”

그 소리는 딱 붙어버린 내 입술 사이에서 줄줄 새어 나오는 고통 섞인 신음이었다.

이렇게 진한 고통을 맛보고 있자니 한 가지 사실은 확실해졌다. 꽤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자살 시도가 실패했다는 것.

분명 숨이 멈춘 것 같았는데 이렇게 진득하게 다시금 생을 연명할 줄이야. 절망감보단 허탈한 감정이 먼저였다.

아, 미천한 오메가는 하늘의 허락 없인 죽을 수조차 없구나.

“…도해영 님?”

뻑뻑한 눈꺼풀이 마치 녹슨 것마냥 제대로 떠지지가 않았다. 힘겹게 꾸역꾸역 두 눈을 뜨자 괴기하리만치 창백한 흰색 천장이 보였다.

“도해영 님? 정신이 드십니까?”

이내 부스럭, 소리와 함께 익숙한 얼굴이 시야로 불쑥 들어왔다. 윤 비서님이었다.

“지금 바로 담당의 호출하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정갈한 목소리를 낸 윤 비서님은 호출 버튼을 꾹 누르곤 곧바로 핸드폰을 꺼냈다.

“예, 이사님. 예. …예, 방금 깨어나셨습니다.”

곧바로 차도헌에게 연락을 하는 윤 비서님이 유일하게 미워지던 순간이었다.

기껏해야 의사 한 명이 올 줄 알았더니, 벌컥 열린 병실 문 사이로 흰 가운을 입은 의사 다섯 명과 그 뒤로 간호사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그들은 무슨 위급 환자를 다루듯 차트를 확인하며 내 몸 상태를 체크하고 있었다. 알파한테 각인당하느라 목덜미 물어뜯기고 목 좀 졸랐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위중 환자 취급을 받고 있자니 조금 창피했다.

“통증이 많이 심하시면, 무통 주사 버튼 누르시면 됩니다.”

“아, 네….”

“오후에 한 번 더 회진 오겠습니다. 푹 쉬세요.”

길쭉한 파란색 통을 가리키며 친절하게 설명을 마친 의사들은 아까 들어왔던 것처럼 다시금 무리를 지어 우르르 병실을 빠져나갔다. 다시 휑하니 조용해진 병실 공기를 들이쉬자니 문득 동물원 원숭이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죽지 못한 건 억울했지만 아픈 건 더 싫었다. 알려준 방법대로 무통 주사 버튼을 꾹 눌렀는데도 통증은 곧장 가시질 않았다. 연달아 두어 번 버튼을 꾹꾹 눌러대자 옆에서 대기 모드로 서 있던 윤 비서님이 퍽 단호한 손길로 내 손에서 버튼을 빼앗아갔다.

“…나 아픈데요.”

푹 잠긴 목에서는 쇳소리 비슷한 것이 나왔다. 입술을 간신히 움직이며 불만을 토로하자 윤 비서님이 달래는 투로 답했다.

“충분한 간격을 두고 투여하셔야 합니다.”

“…….”

‘존나 아프니 어서 주세요.’라고 협박을 쓰려 했지만, 나는 작게 달싹였던 입술을 굳게 다물 수밖에 없었다.

금방 병실 한가득 차도헌의 페로몬이 가득 차올랐다. 제집마냥 병실 문을 열고 걸어 들어오는 차도헌이 너무너무 싫은데, 정작 내 몸은 차도헌의 페로몬에 행복해하고 있었다.

차도헌의 존재만큼 나 자신이 너무나도 싫었다. 꾹 다문 입술처럼 두 눈도 아예 질끈 감아버렸다.

“상태는.”

“정상 수치와 가까워졌다고 합니다만, 아직 페로몬 불균형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차도를 보고 약물 투여를 고려 중이라고 합니다.”

윤 비서님은 나조차도 제대로 모르는 내 상태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정작 윤 비서님이 설명한 내용을 듣고도 여전히 내 몸 상태를 모르겠는 내가 문제일지도 모르겠지만.

“고생했군. 회사로 돌아가지 말고 지금 바로 퇴근해.”

“예, 이사님.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뚜벅거리는 구두 소리에 이어 병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제발 나랑 차도헌 둘만 남겨두지 말아 달라고 속으로 그렇게 외쳤건만, 내 간절한 텔레파시를 고대로 튕겨낸 윤 비서님은 주저 없이 병실을 나섰다.

이왕 눈을 감은 거, 잠든 척을 하다가 아예 잠들어버리는 것도 좋을 듯싶었다. 차도헌을 무시하고자 하는 욕망이 무통 주사를 누르고 싶은 간절함을 훌쩍 뛰어넘은 관계로, 나는 색색 숨을 내쉬며 잠들어버리기로 마음먹었다.

“몸은 좀 어때.”

“…….”

차도헌의 물음은 허공을 맴돌다 사라졌다. 바쁘신 이사님께선 나 같은 오메가에게 쏟을 시간이 부족할 테니, 금방 이곳을 떠날 거였다.

하지만 상황은 내 예상과 정반대로 흘러갔다. 드르륵, 의자 끌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 위에 사람이 앉는 소리마저 들렸다. 내 귀가 잘못된 게 아니라면, 차도헌이 내 근처로 의자를 끌고 와 앉은 거였다.

지극히도 재수 없는 내 인생, 어디까지 꼬일지 내버려두고 방관하면 분명 밑도 끝도 없이 꽝꽝 꼬여버릴 팔자일 게 분명하다.

안 그래도 아파 죽겠는데 쓸데없이 곁을 지키는 차도헌이 싫었다. 그냥 아예 깨어나지 말걸. 그러면 차도헌이 옆에서 무슨 막말을 하든 듣지 않을 수 있을 텐데.

“걱정하지 마.”

“…….”

“내가 책임지고 각인 풀 테니까.”

꽤 단호한 목소리였다. 결의에 찬 것 같기도 했고, 책임감을 가진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내 목구멍엔 모진 문장이 툭 걸렸다.

어차피 나는 더 살 생각이 없는데, 그냥 죽게 놔두지 그랬어.

“도해영, 죽을 생각 하지 마.”

아, 차라리 깨어나질 말걸.

“내가 몇백 번이고 살릴 테니까.”

이젠 저딴 말에도 우는 나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게 됐으니까.

***

언뜻 잠이 들었다. 병실이 어두워진 것을 보니 저녁 시간인 듯싶었다.

여전히 몸은 트럭에 치인 것처럼 아팠지만 아까보단 훨씬 나은 편이었다. 운 탓인지 촉촉하게 젖은 눈동자를 데구루루 굴리며 주변을 살피자, 의자에 앉아있는 검은 인영이 보였다.

의자가 보이지도 않을 만치 커다란 상체를 등받이에 느긋이 기댄 차도헌은 한쪽 손으로 턱을 괸 채 기다란 다리를 멋들어지게 꼬고 있었다. 마담이 종종 읽던 연예 잡지의 표지와 99% 일치하는 자세를 취한 차도헌을 보고 있자니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실내가 어두운 탓에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두 눈을 감은 차도헌은 얼핏 잠든 것 같았다. 미동도 없이 가만히 앉아있는 차도헌을 향해 속삭이듯 이름을 불렀다.

“…차도헌.”

내 입술이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차도헌은 감았던 눈을 번쩍 뜨고는 의자에 앉아있던 몸을 일으켰다.

“왜. 어디 안 좋아? 의사 부를까?”

내게로 걸어오며 다급히 상태를 묻는 차도헌에게 작게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무심코 행한 작은 움직임에 나는 새된 비명을 질렀다.

“흐윽-!”

내 주된 고통을 이루는 목 근육을 사용한 탓이었다. 겨우 잠잠해진 통증의 댐이 작은 실수 한 번에 와르르 무너진 격이었다. 차도헌은 곧장 담당의를 호출했고, 나는 끙끙대며 윤 비서님이 멀리 둔 무통 주사를 찾았다.

“주사, 주사 좀―”

내 손에 무통 주사를 쥐여준 차도헌의 얼굴은 얼음마냥 굳어 있었다.

버튼을 연달아 꾹꾹 눌러대며 찢어질 듯한 고통에 몸부림쳤다. 어느새 차도헌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울고 있는 내 눈가를 쓸어주고 있었다.

“아파, 흐, 으윽, 아파아….”

“곧 의사 선생님 오실 거야.”

낮은 차도헌의 목소리가 차츰 멀어져갔다. 사지가 뜯기는 듯한 고통에 허우적대면서, 나는 움직이면 더 아플 걸 알면서도 차도헌의 손목을 붙잡고 손바닥에 얼굴을 부벼댔다.

“움직이지 마, 너 상처―”

“아파, 차도헌, 나 아파….”

고통이 심해질수록 붙잡은 손목을 바짝 끌어당겼다. 손바닥에 코가 뭉개지도록 부비며 차도헌의 페로몬을 맡고, 그것도 모자라 혀를 내어 핥아댔다.

“진정해, 해영아, 도해영!”

소리치는 차도헌의 목소리마저 온통 자극이었고 또 고통이었다. 내게서 손을 빼내려는 몸짓에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차도헌의 손을 좇았다. 돌연 발생한 격렬한 움직임에 온몸이 비명을 지르는 와중에도 나는 고통 섞인 신음을 뱉으며 차도헌의 손가락을 빨아댔다.

“흐으-, 웁, 우음, 츕….”

차츰 차도헌의 페로몬이 병실 안을 가득 채웠다. 다급하게 짙은 향의 페로몬을 들이쉬며 혀를 빼어내 손가락 사이를 핥았다. 단 한숨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끙끙대며 입 안 가득 차도헌의 손가락을 밀어 넣자, 이내 내 몸엔 양극에 달하는 통증이 차올랐다.

사지가 찢어지는 고통과 알파의 페로몬을 좇아대는 흥분감.

아파서 끙끙대면서도 끝없이 애무를 해대는 내게서, 차도헌은 다정한 태도로 손을 거둬갔다. 꽉 찼던 입 안이 텅 비자 다시금 얼얼한 통증이 몰려왔다.

“아파, 윽, 흐으, 읏―”

잇새로 신음이 줄줄 흘러나왔다. 뭐라도 붙잡고 싶었다. 천천히 내 몸을 침대에 눕히는 차도헌의 손길에도 터지는 신음성을 주체하지 못했다.

이내 부드럽게 입술이 마주 닿았다. 부르튼 입술을 치료하듯 조심스럽게 움직이던 혀가 곧 젖은 소리를 내며 내 것과 엉겨 붙었다.

차도헌은 헐거운 숨을 내쉬는 내 안에 숨을 불어넣어 주며 뜨겁게 열이 붙은 혀를 뭉근하게 부비기 시작했다. 질척이며 섞이는 혀가 미치도록 달았다.

나는 끙끙대며 입을 벌려 차도헌의 타액을 삼켰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달았다. 갈구하듯 차도헌의 두툼한 혀 밑을 꾹꾹 눌러댔다. 입 안 가득 울컥 차오르는 타액을 정신없이 삼키며 고개를 바짝 쳐들었다. 아니, 고개를 들려고 했다.

“움직이지 마.”

어느새 차도헌은 내 고개를 붙잡고 있는 채였다. 맞댄 입술 사이로 명령을 내린 차도헌은 다시금 입술을 가르고 들어와 질척한 키스를 퍼부어댔다.

“후음, 흐, 으응―”

긴 입맞춤에도 입술이 떨어지는 짧은 순간마다 목에선 신음이 터져나갔다. 이미 아랫배엔 열기가 몰려 뜨겁게 달아올랐고, 울컥이며 다리 사이가 젖어가고 있었다.

곧 달큰한 향이 훅 병실에 끼쳤다. 차도헌과 나의 페로몬은 이미 주체할 수 없이 방출되어 병실 안을 가득 채운 상태였다.

본능에 이성을 놓은 행위는 담당의가 병실에 도착한 이후로도 몇 분가량 지속되었다. 행위에 심취한 나머지 병실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지 못한 탓이었다.

담당의가 들어왔음에도 입술을 붙이며 키스를 요구하는 내게, 차도헌은 볼을 어루만지며 저 멀리 날아간 내 이성을 잡아다 주었다.

“의사 선생님 오셨어.”

차도헌은 작게 속삭이며 담당의의 방문을 알렸고, 나는 그제야 정신 줄을 붙들었다.

“…….”

내가 지금… 뭘 한 거지?

후끈 달아올랐던 피가 차갑게 식기 시작했다. 흥분에 푹 절었던 두 눈을 빠르게 깜박이며 차도헌의 어깨를 밀어냈다.

물론 듬직한 몸이 쉽게 밀릴 리는 없었다. 차도헌은 달래듯 쪽, 쪽 가벼운 입맞춤으로 키스를 마무리하더니, 축축하게 젖은 내 눈가를 가볍게 쓸어주고 나서야 상체를 일으켰다.

멀찍이 서 있던 의사가 두어 번 헛기침을 하며 침대께로 다가왔다. 어두컴컴했던 병실은 어느새 눈이 부실 정도로 밝아져 있었다.

“파열된 목 근육 부근 통증이 심하신 것 같으니, 진통제를 좀 더 처방해드리겠습니다.”

담당의는 내 몸에 연결된 투명한 링거 팩을 살피며 차분히 차트에 무언가를 적어 내렸다. 차도헌은 그녀와 마주 선 채로 진찰 내용을 경청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서 나는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며 쏟아지는 시선을 피했다. 밝디밝은 형광등 불빛 아래 진찰을 받는 상황은 그야말로 쪽팔림 그 자체였다.

흐트러진 병원복 차림에 입술은 도톰하게 부어올라선, 몸을 가린 시트 자락을 치운다면 푹 젖은 하반신이 보일 거였다.

다행히 내 담당의는 나 같은 불량 환자에게도 친절한 진찰을 베풀었다.

“페로몬 수치는 정상 영역과 근접할 정도로 꽤 호전되었네요.”

“그렇습니까?”

“네. 원래 페로몬 투약이 예정되었습니다만, 현재 상태로는 진행하지 않아도 될 것 같네요. 그러니 환자분께서는 최대한 움직이지 마시고, 안정에 최선을 다하시면 쾌차하실 겁니다.”

담당의는 병실을 떠나기 직전까지 몇 번이고 ‘심신 안정’을 강조했다. 그게 뭘 뜻하는 건지 모를 리 없는 내 얼굴은 점점 더 빨개지고 있었다.

진찰을 마친 담당의가 병실을 떠나자, 나는 곧장 차도헌을 내쫓기로 결심했다.

“나가.”

“싫어.”

“제발 가. 그쪽 페로몬 때문에 발정 난 개새끼처럼 되는 거 싫어.”

그럴듯한 이유를 들이밀었지만 이번엔 대답조차 없었다.

내 말을 가뿐히 무시한 차도헌은 등을 돌려 병실에 딸린 욕실로 향했다. 물 흐르는 소리가 뚝 끊기고, 이내 차도헌의 손에는 푹 젖은 흰 수건 여러 장이 들려 있었다.

채 말릴 새도 없이 차도헌이 내 몸을 덮은 시트를 걷어냈다. 빠른 손길로 병원복 단추를 끌러낸 차도헌은 이내 헐렁한 병원복 바지마저 쑥 아래로 잡아당겼다. 그렇게 차도헌의 손짓 몇 번 만에 내 몸은 나신이 됐다.

난잡한 전직 덕에 전라를 보이는 건 아무렇지 않았으나, 이후에 일어나는 상황은 낯설다 못해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계급 없는 대한민국 사회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알파 형질로서나 재력으로서나 지위로서나, 뭐 하나 놓치지 않고 전 분야 최고 위치에 올라선 저 재수 없는 차도헌이, 가진 것 하나 없는 하찮은 오메가 도해영의 몸뚱어리를 물에 적신 수건으로 닦아주고 있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보면 몰라? 간병하고 있잖아.”

이 세상엔 두 눈으로 봐도 모르는 게 있다. 차도헌은 간단히 대답했지만, 나로선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도저히 모르겠어서 물어본 거였다.

찜질용인 듯 배 위에 얹어진 수건은 뜨끈하다 못해 김이 폴폴 났고, 내 몸을 닦아내는 차도헌의 손길은 믿기지 않을 만큼 조심스러웠다.

부드러운 수건이 살결 위를 문지를 때마다 몸이 절로 움찔거렸다. 나로서는 제어할 수 없는 척수 반사적인 반응이었다.

“가만히 있어.”

그런 내게 명령조로 읊조리며 차도헌은 새 수건을 집어 들었다.

그간 차도헌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내 페로몬만 맡겠다는 말에 왜 섹스하지 않느냐고 답했던 때나, 돌이킬 수 없는 짓을 하겠다는 말이 각인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던 때나.

결국 나는 중요한 순간마다 멍청했었다. 당장 이 순간에도, 나는 차도헌의 언어로 표현된 ‘간병’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당장 차도헌에게 페로몬 자판기일 뿐인데, 보잘것없는 사창가 출신 오메가인 데다가 가진 거라곤 몸밖에 없는, 그런 도해영일 뿐인데….

차도헌은 어째서 나를 이렇게 챙기는 걸까, 왜 내게 자신의 오메가가 되라고 말하며 각인을 시켰던 걸까.

나는 하찮은 오메가일 뿐인데, 어쩌면 살아있는 것 자체가 흉인 사람인데.

“편하게 있어. 금방 끝나니까.”

바보 같은 나는 차도헌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내 모든 빚을 갚으며 사창가에서 나를 빼 왔을 때도, 내 몸을 건드리긴커녕 페로몬만 맡겠다며 계약서를 내밀었을 때도, 절대 나와는 섹스하지 않겠다고 단언했던 차도헌이 어느새 내 위로 올라타 나를 각인시키겠다고 으르렁댔을 때도.

“…나한테 왜 그래?”

내 물음에 차도헌은 다시금 얼굴을 굳혔다. 차도헌의 앞에서 목을 졸랐던 그날처럼 나를 내려다보는 차도헌의 눈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이 차오르고 있었다.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해하려 들지 않기로 했다. 머리 나쁜 도해영은 차도헌이 품은 생각에 무슨 뜻이 있는지 죽어서도 모를 테니까.

“가, 차도헌.”

하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멍청한 건 달랐다. 나는 곧장 몸을 일으켜 차도헌을 밀어냈다. 손에 쥔 수건을 빼앗아 바닥에 던지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냥 가.”

업소 고객들이나, 차도헌이나 한 가지 착각하는 게 있다.

내가 파는 건 오로지 몸뿐이다.

이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가진 것 하나 없는 도해영은 빚 갚으려고 몸만 팔았고, 지금도 몸만 파는 중이다.

“도해영.”

나는 감정 같은 건 안 판다. 자존심도 안 팔아넘겼다. 근데 자꾸 그걸 까먹는다, 이 좆같은 알파 새끼들은.

“제발 가, 꼴도 보기 싫으니까.”

그제야 차도헌은 등을 돌렸다. 일정한 박자로 구두 소리를 내면서, 차도헌은 병실을 떠났다.

어느새 허벅지 위로 떨어진 수건을 집어 들었다. 아까까지도 뜨겁게 김이 났던 수건은 이미 다 식어 있었다.

기분 나쁘게 축축한 수건을 대충 바닥으로 떨구며 간호사 호출 버튼을 꾹 눌렀다. 연결되었다는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나는 담담하게 요구사항을 뱉었다.

“…죄송한데, 저 옷 좀 입혀주세요.”

***

꺼지라는 내 말은 놀랍게도 효과가 있었다. 퇴원하는 날까지 차도헌은 병실에 찾아오지 않았다. 바쁜 윤 비서님을 대신해 왔다는 이름 모를 정장 아저씨의 부축을 받으며 새까만 세단에 올라탔을 적에, 나는 당장 무슨 일이 펼쳐질지 예상하지 못했다.

“…여기 왜 왔어요?”

차가 멈춰선 곳은 분명 황 회장의 호텔이었다. 모란이 뿌리를 두고 있는 권력이자, 지독한 계약으로 나를 평생 굴려 먹으려 작정한 황 회장이 그 육신을 보존하고 있는 곳이었다.

단순히 차도헌이 실수를 했다고 생각했다. 지극히도 건전한 기업의 대표이사는 뒷세계의 조직적 기업을 전혀 듣도 보도 못했을 거였다. 하필이면 이 호텔이 내 전 직장인 모란을 쥐어 잡은 황 회장의 소유라는 것을, 차도헌이 미처 몰랐으니까 나를 이런 데에 데려다 놨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려, 씨발 새끼야.”

뒷좌석 문이 벌컥 열리고 내 팔뚝을 억세게 움켜잡은 남자가 낮게 욕설을 뱉기 전까지.

“…뭐라고요?”

“씨발, 네가 상전이야? 다리도 멀쩡한 새끼가 왜 제 발로 안 내리고 지랄이야?”

나는 완전히 착각하고 있었던 거였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차도헌이랑 지내는 동안, 친절한 윤 비서님이 인간 취급 해주신 덕에 내 지긋지긋한 분수를 까먹었다.

맞아, 나 원래 이런 새끼지. 더럽다고 뺨 맞고 이유 없이 두들겨 맞고 돈만 주면 엉덩이 흔들고….

지난 26년간 인간만도 못한 삶을 살았는데, 단 몇 주 만에 그걸 모조리 까먹어버리다니. 주체할 수도 없을 만큼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게 돌았나, 왜 쳐 웃어?”

“알았다고요, 아저씨. 소리 좀 작작 질러. 그래서 나 어느 방으로 가면 되는데?”

갑자기 태도가 변한 내 모습에 남자는 잠시 주춤거렸지만, 곧 원래의 페이스를 되찾았다. 내가 도망이라도 칠까 봐 걱정되는 듯 한쪽 팔을 붙잡은 남자가 그대로 내 몸을 질질 끌어 로비로 향했다.

저항할 새도 없이 이 지랄 맞은 호텔의 엘리베이터에 갇혀 올라가는 동안에도 나는 숨을 참으며 멍청히 차도헌을 생각했다. 오늘 찾아오려나, 아니면 내일 오려나, 아무리 계약이 끝났더라도 내 페로몬은 필요할 텐데….

끝없이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밀려오는 공포감을 견뎌내야 했다. 씨발, 대체 몇 층을 빌려놓은 거야, 속으로 차도헌을 열심히 씹어대며 계기판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무언가 제대로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이 엘리베이터의 목적지는 호텔의 꼭대기 층이었다.

꼭대기 층은 분명 황 회장이 단독으로 사용하는 곳이었다.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지 않은 이상, 나는 지금 황 회장이 있는 층으로 가는 중인 거다.

다급하게 나를 붙잡고 있는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아저씨, 층 잘못 누른 거 아냐? 꼭대기 층일 리가 없잖아.”

남자는 핸드폰을 쳐다보며 내 말을 무시했다. 하지만 분명 잘못된 거다. 이 호텔 꼭대기 층엔 분명 빌릴 수 있는 룸이 없었다.

“대답 좀 해봐요, 네? 차도헌이 몇 층 빌렸는데? 이 호텔은 꼭대기 층 못 빌려. 아저씨 지금 층 잘못 누른 거 아냐?”

“이 씨발….”

차츰 가빠오는 숨에 헐떡이며 말을 쏟아냈다. 짤막히 욕을 뱉은 남자는 들고 있던 핸드폰을 호주머니에 넣고는 내 뺨을 짝- 때렸다. 순간 몸이 바닥으로 훅 무너졌다.

그럴 리가 없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차도헌이 아무리 쓰레기 새끼라도, 나를 황 회장에게 되팔진 않았을 거다. 그 새끼가 아무리 싸이코라도 나한테 그런 짓까진 하지 않았을 거라고, 나는 정말 믿고 싶었다.

불안감에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를 곧추세우며 남자의 재킷을 붙잡고 늘어졌다.

“아저씨 지금, 잘못 누른 거잖아, 꼭대기 층은 황 회장만 쓴단 말야!”

내 입에서 ‘황 회장’이 나오는 순간, 운명처럼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단단히 붙어 있던 금칠한 문이 양쪽으로 쪼개져 열렸고, 남자는 재킷을 붙잡고 있는 내 몸을 떨쳐 바닥에 넘어뜨리곤 더러운 게 묻었다는 양 탁탁 털었다.

“잘 아네. 그나저나, 회장님이랑 떡 치면 돈 많이 주시냐?”

“뭐…?”

“너같이 헤픈 구멍에도 돈 주시겠지? 아- 우리 황 회장님 정말 하늘 같으신 분이라니까.”

“야, 민수야. 너 우리 해영이한테 말을 그렇게 쓰면 되겠니?”

금칠되어 번쩍거리는 구두가 눈앞으로 뚜벅뚜벅 걸어온다.

“아빠 품에 잘 돌아왔다, 우리 발정 난 멍멍이.”

“…….”

황 회장은 철컥, 하며 금색 벨트를 풀어 헤쳤다.

“핥아.”

도해영은, 정말 중요한 순간마다 멍청했다.

<2권에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