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10/43)

1.

숨이 죽은 사체를 처음으로 만졌던 날, 나는 내 유약한 갈비뼈 아래로 굳게 다짐을 새겨 적었다.

절대 내 인생에 각인 따위 들이지 않겠다고.

그 다짐은 매해 거듭되는 죽음들 덕에 눈덩이처럼 불어나 이내 장기를 콱 눌러버릴 만큼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것을 오로지 불쾌한 행위일 것이라 점쳐가며, 그렇게 내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각인에 목을 맬 때 나는 열심히 억제제를 삼켜냈다.

다른 세상의 오메가는 파트너와의 각인으로 생에 다시 없을 행복을 누릴지도 모르겠지만, 우리의 사정은 달랐다.

사창가 오메가의 일방 각인은 곧 자살과 죽음을 뜻했다.

5년 전, 은수는 사랑을 했었더랬다. 상대는 업소에 찾아오는 단골 고객이었으며 갓 결혼한 유부남, 업소 고객 중 다정한 축에 속하는 남자였으며, 은수의 목덜미를 물고 얼마 되지 않아 그 배 속에 씨앗까지 뿌려버린 사람이었다.

비록 일방 각인을 당했지만, 사랑에 빠진 은수는 행복해 보였다. 내가 그 애를 봐왔던 시간 중에서 가장 자주 웃었고 내일을 기대했으며 미래를 꿈꿨다. 그 애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날 내 손을 그러잡고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내게 감춰둔 비밀을 털어놓기까지 했다.

그 알파에게 일방 각인을 당했다고.

그 애는 그 남자를 믿었다. 언제고 자신은 버림받지 않을 거라 믿었다. 둘 사이에 사랑이 있다고 믿었다. 아직은 사창가 오메가라는 자신의 신분 때문에 제게 각인만 남겨둔 것이라고, 배 속에 아기도 있으니 곧 쌍방 각인도, 더 나아가 메이팅도 허락해줄 거라 생각했다.

나는 부디 은수가 죽지 않기를 바랐다. 은수만큼은 자살하지 않길 바랐다. 그간 봐왔던 사례가 있음에도 나는 은수만큼은, 행복하길 바랐다.

그래서 그 애와 함께 다 허물어져 가는 구식 극장에 가서 유명한 외국 영화를 보고 온 날, 나는 그 애의 마른 손을 움켜잡으며 대부가 되어주겠다고 약속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의 신발을 사주면서 나는, 부디 은수가 행복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채 석 달을 버티지 못하고 은수는 자살했다.

매일같이 업소에 찾아와 은수를 찾던 그 남자는 차츰 발길을 끊었다. 나중에 듣자 하니 제 부인이 임신을 했기 때문이란다. 그것도 모르고 은수는 그 남자를 걱정했다. 하루가 다르게 몸무게가 줄고 눈물이 많아졌으며 불안과 불면에 시달렸다.

은수에게는 각인 상대의 지속적인 페로몬 공급이 필요했다. 하지만 사창가 오메가의 일방적인 사랑은 그 요구사항을 충족시킬 수 없었다.

그렇게 스물하나, 나는 너의 뼛가루가 담긴 자그마한 항아리를 끌어안으며 다짐했다.

그 누구에게도 절대 각인당하지 않겠다고, 알파의 품이 주는 쾌락을 사랑과 헷갈리지 않겠다고. 사창가에선 사랑을 팔지 않는데, 우리에게 사랑은 그저 사치일 뿐인데.

그러니 나는 절대 사랑에 빠지지 않을 거라고, 사랑에 빠져 각인을 당하는 바보 같은 짓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이 짓 하면, 너랑 나는 돌이킬 수 없는 거야.”

“…….”

“선택해.”

차도헌에게는 도해영이, 도해영에게는 차도헌이 필요하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빌어먹게도 조물주는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고, 우리는 하염없이 서로를 향해 이끌리듯 추락하게 될 뿐이니까.

“…한 번 해봐.”

마주친 시선이 공중에서 얽혔다. 가까워진 입술 새로 가쁜 숨결이 새어 나왔다. 페로몬이 진해질수록 무겁게 내려앉은 공기가 온몸을 조였고, 피부에 닿아오는 열기는 지독할 정도로 뜨거웠다.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고 온몸은 쾌감으로 푹 젖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흥분에 젖은 채 숨을 헐떡이며 차도헌을 끌어안는 것뿐이었다. 전신이 페로몬에 짓이겨지는 것처럼 고통스럽다가도 비좁은 곳을 뚫고 들어오는 거센 몸짓은 나를 환희의 쾌락으로 잡아당겼다.

이윽고 내 위의 알파는 이성을 잃기 시작했다. 한 마리 거대한 짐승처럼 텅 빈 동공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거칠게 내 몸을 짓뭉개기 시작했다.

목덜미에 입술을 묻곤 흥분에 그르렁대는 차도헌의 목소리에 소름이 바짝 돋았다. 목에 닿아오는 날카로운 송곳니가 당장이라도 내 목덜미를 물어버릴 것처럼 피부 위를 간질이고 있었다.

“놔…, 놔 줘, 흐, 흐으, 제발….”

그 아래에서 나는 새된 신음을 내지르며 버둥거렸다. 내 안의 본능이 어서 도망치라고 외치고 있었다.

차도헌은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혀로 핥아주며 웃었다. 뭉근하게 허리를 움직여 단단하게 발기한 좆 머리를 깊은 곳까지 밀어 넣으며, 차도헌은 다부진 손으로 내 고개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너, 아무 데도 못 가.”

새까맣게 차오른 눈동자, 이성은 사라지고 오직 본능만이 남은 눈빛. 그 눈을 마주하는 순간 불룩 솟은 아랫배가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팽팽하게 부풀기 시작했다. 뜨겁게 쏟아지는 정액이 배 속을 세차게 부풀리는 감각에 나는 할딱대며 시트를 움켜쥐었다.

사정과 동시에 이어지는 허릿짓은 난폭함에 가까웠다. 엉덩이 사이로 질척하게 새어 나오는 정액이 거센 피스톤질에 거품 이는 소리를 내는 동안 내벽은 끝나지 않는 사정에 그득하게 채워지고 있었다.

“아! 안, 아응, 응! 안 돼, 안, 아! 앗, 흐앙-, 하앙!”

정신없이 신음을 내지르며 차도헌의 아래에서 나는 세차게 흔들렸다. 이러다 정말 온몸이 망가질 것만 같았다, 잔뜩 짓무른 내벽에 꾸역꾸역 밀고 들어오는 정액이 몸 안에 가득 찰 것 같은 두려움에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콰드득-!

그 순간 귓가에 살갗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뜨끈한 피가 울컥 새어 나온 목덜미 위로 차도헌의 거친 숨결이 내려앉았다. 고통에 허우적대는 내 고개를 단단히 움켜쥐고 억지로 눈을 맞춘 차도헌은 핏방울이 튄 얼굴로 으르렁댔다.

“그딴 계약 집어치워.”

“아, 아파…, 나 아파아…, 흐으….”

“도망갈 생각하지 말고 내 옆에 있어. 돈이든 뭐든 다 해줄 테니까… 도해영, 이제부터 내 오메가 해.”

들끓는 소유욕으로 가득 찬 읊조림,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말들.

뜯긴 목덜미가 불에 타버린 듯 고통스러웠고 전신을 누르는 묵직한 페로몬은 숨통을 옥죄는 것만 같았다. 나를 응시하는 차도헌의 눈빛을 뒤로하고, 상체를 푹 적시는 뜨거운 피에 나는 차츰 눈을 감았다. 이대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하늘에 간절히 기도하면서.

***

19xx년 2월 7일.

원장은 그날 진눈깨비가 내렸다고 했다. 자그마한 박스에 헝겊 포대기로 둘둘 말려, 자칫 몇 분이라도 늦게 확인했다면 얼어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진눈깨비가 하염없이 내리던 그 날은, 출생 신고도 되어있지 않은 갓난 도해영이 고아원에 버려진 날이었다.

고아원에서의 기억은 몇 없다. 가진 것 하나 없었지만 예쁘장한 얼굴 덕에 고아원 선생들은 오히려 나를 아꼈다. 나는 생김새도 말쑥하고 똑똑하니까 금방 좋은 집으로 갈 수 있을 거라고, 다정한 부모를 만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살 거라고 했다.

하지만 세상은 언제나 그랬듯 나를 지옥으로 몰아넣었다. 열두 살, 보건소에서 진행한 형질 검사 결과지에는 ‘오메가’가 떴다. 그것도 우성 형질로.

내쫓겼다는 말이 맞을 거다. 내 피에 베타가 흐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아원은 나를 받아줄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몸뚱어리 하나 달랑 남은 나를 유일하게 반긴 건 죽고 없는 부모가 남긴 사채 빚이었다.

원 앞으로 나를 데리러 온 조폭 아저씨의 손을 붙잡고 간 곳은 너구리 굴마냥 담배 연기가 가득했다. 알아먹지도 못할 서류에 고분고분하게 지장을 찍자 파벌의 우두머리급으로 보이는 아저씨는 내 등을 팡팡 두드리며 ‘가족이 된 것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아무것도 없는 애새끼더러 신체 포기 각서에 지장 찍게 해놓곤 가족을 운운하다니, 지금 와서 아무리 생각해도 양아치 같은 수법이다.

시작은 자잘한 심부름 일이었다. 낮에는 식사를 나르고 밤에는 청소를 했다. 짐을 옮기고 옷을 꿰매고 하는 온갖 소일거리는 내 몫이었다. 무섭게 생긴 조폭 아저씨들과는 마주칠 일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조폭 아저씨 중 가장 착했던 철수 아저씨는 꼬박꼬박 내 억제제를 사다 줬었다. 철수 아저씨는 오메가였던 자신의 여동생이 먹었던 것과 똑같은 약을 내게 쥐여주며, ‘이걸 매일 먹어야 아프지 않는다’고 말해줬었다.

그랬던 철수 아저씨는 파벌싸움 도중 배에 칼을 맞아 죽었다. 아저씨는 죽는 그 순간까지도 입술을 벙긋거리며 어서 도망가라 했고, 도해영은 멍청했다.

꿈틀대는 아저씨를 향해 비틀비틀 걸어가, 죽어가는 몸을 끌어안고 나는 울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금 조직에 몸이 매였다. 내 삶에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다.

아무도 내게 오메가가 억제제를 먹지 않으면 히트 사이클이 온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다. 새롭게 바뀐 조직의 우두머리는 내가 오메가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스무 살이 되자마자 나를 사창가에 넘겼다.

웃기게도, 이미 꼬인 도해영의 삶은 거기서 더 꼬일 수 있었다. 죽을 것처럼 열병을 앓고 난 뒤 맞이한 2차 발현 결과는 지랄 맞게도 ‘극우성’이었다. 업소의 마담은 나를 도로 조직으로 돌려보냈다.

이번에 돈을 받은 쪽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여자였다. 극우성이라는 특수한 형질을 띤 오메가가 뒷세계에서 호황리에 팔리고 있던 때였다.

죽을힘을 다해 도망쳤다. 조직에 발을 묶인 오메가의 몸값이 뛰면 사창가 다음으로 맞이할 운명은 오직 노예 매매뿐이었다. 차라리 죽더라도 사창가에서 죽고 싶었다.

도망갔다 붙잡혀 쇠파이프로 흠씬 두들겨 맞고, 감금됐다가 또 도망가고 붙잡히고,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고 나서야 나는 모란을 찾았다.

‘…….’

죽어 마땅한 극우성 오메가 도해영을 보살펴준 사람, 나한테는 부모와 다름없는 사람.

‘네가 해영이니?’

마담, 나는 마담을 그렇게 만났다.

“……마….”

나는 눈도 뜨지 못하고 마담을 찾았다. 마른 입술 사이로 새어나간 새된 목소리에 부스럭하는 소리가 났다.

뺨 너머 닿는 온기에 이끌리듯 그 안으로 파고들었다. 창밖으론 거센 바람 소리가 났고, 방 안을 채운 서늘한 공기에 내가 의지할 온기는 이것뿐이었다.

나를 끌어안는 누군가의 품, 그 안에 얼굴을 부비며 나는 울었다. 간밤에 정말 나쁜 꿈을 꿨어, 은수야. 나쁜 알파 새끼한테 각인을 당하는 꿈을 꿨어.

“…미안해.”

작게 흐느끼는 사이로 낯선 목소리가 귓가에 내려앉았다. 울음을 달래듯 부드럽게 등을 쓸어주는 손길도, 머리칼 위로 쏟아지는 입맞춤도, 전부 낯선 이의 것이었다.

차츰 정신이 드는 사이로 살이 뜯기는 고통이 파도처럼 몰아쳤다. 꿈이길 바랐는데,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이 부디 한낱 꿈이기를 바랐는데.

“상처가 깊어서 몇 바늘 꿰맸어.”

“…….”

“아무는 데 좀 걸리니까 당분간은 푹 쉬어.”

눈물에 짓무른 눈꺼풀을 힘겹게 떠올린 곳에는 차도헌이 있었다. 내 뺨을 어루만지며 이마 위로 가볍게 입맞춤을 남긴 차도헌은 쉬고 있으라는 말과 함께 방에서 나갔다.

정적이 내려앉은 방 안, 미미하게 내뱉는 호흡 위로 창문을 때리는 거센 바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서히 풀리는 마취에 살갗 너머로 찢기는 듯한 통증이 일었다. 천천히 손을 움직여 목덜미를 더듬거리자, 두텁게 덧대어진 거즈가 만져졌다.

나는 그대로 거즈를 뜯어냈다. 훅 퍼지는 강한 약품 냄새 사이로 드러난 살갗이 아려오기 시작했다. 손끝에 만져지는 얄팍한 꿰맨 자국은 말간 핏물을 흘리며 신음하고 있었다.

‘도망갈 생각하지 말고 내 옆에 있어.’

알파의 거친 송곳니가 물어뜯은 상처.

‘도해영, 이제부터 내 오메가 해.’

그건 곧 내가 차도헌의 오메가라는 증거가 됐다.

그제야 나는 간절히 바랐던 나의 모든 바람이 한순간에 깨지고 말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은 지독한 현실이었다. 나쁜 꿈이길 바랐던 그 밤의 일들은 더 이상 깨어날 곳 없는 선명한 현실이었다.

천천히 내딛는 발걸음에 미처 닦아내지 못한 눈물이 뚝, 떨어졌다. 구태여 나는 차도헌을 찾아 드넓은 저택을 헤맬 이유가 없었다. 차도헌의 오메가가 된 순간부터 내 몸은 그 어느 때보다 차도헌의 페로몬을 갈구하고 있었으니까.

1층으로 내려가는 저택의 중앙계단을 밟으며 나는 실수로 내디딘 걸음에 그대로 계단에서 굴러 죽어버리기를 바랐다. 일방 각인 후유증으로 죽느니, 차라리 이렇게 죽는 게 더 나을 터였다.

수십 개의 계단을 밟아 내려가 도착한 곳은 라운지였다. 소파 근처를 서성이며 통화를 하던 차도헌은 인기척에 나를 발견하자마자 그대로 전화를 끊곤 내게 걸어왔다.

차도헌의 손이 곧장 내 목덜미 위로 향했다. 미간을 찌푸린 채 너덜거리는 거즈를 다시 붙여주는 차도헌의 손길을 뿌리치며 나는 입술을 달싹댔다.

“…왜 각인시켰어?”

“…….”

“왜, 왜 하필이면 나야, 왜…?”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턱 끝에 둥글게 고였다. 나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않고 차도헌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몸은 차도헌의 페로몬 앞에서 뿌듯이 차오르는 만족감에 행복해하는데, 정작 나 자신은 차도헌을 죽일 듯이 증오하고 있었다.

이제 와서, 각인이 되었다는 사실 하나에 내가 갑자기 차도헌을 사랑하게 될 일은 없었다. 애초에 우리가 몸을 겹쳤던 이유에 사랑 따위는 없었으니까.

“너는 결혼할 사람도 있잖아, 애초에 나 데려온 것도 그 베타랑 잘살아보려고, 페로몬 대용으로 나 데려온 거잖아!”

“입 다물어, 도해영.”

“근데 왜, 왜 각인까지 했어? 어차피 두 달이면 끝날 건데, 왜, 대체 왜!”

분노에 가득 차 마구 악을 내지르는 몸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덜덜 떨려왔다. 힘이 빠진 다리가 무너질 것처럼 바들대는 사이로 차도헌의 두 손이 내 어깨를 단단히 그러잡았다.

“도해영, 제발 좀 진정해. 내가 다 설명할 테니까―”

“나를 사랑하지도 않잖아.”

“…뭐?”

내 물음에 차도헌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어깨를 단단히 그러쥔 손에 힘을 실은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나를 내려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차라리 내가 당신을 사랑하기라도 했으면, 그럼 이렇게까지 억울하지도 않았을 거야.”

“…….”

“어차피 나는 죽어, 어떻게든 죽을 수밖에 없어. 근데, 당신 때문에 죽고 싶지는 않았어, 알파한테 일방 각인 당해서 죽고 싶지는 않았단 말이야!”

처절하게 내뱉는 울부짖음 앞에서 차도헌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뺨 위로 쏟아지는 눈물이 빗방울처럼 발끝을 적실 때까지도 차도헌은 굳은 얼굴로 나를 응시하고만 있었다.

평생 알파로 살아온 차도헌은 이해하지 못한다. 각인을 당한 오메가들이 결국 어떻게 되는지, 얼마나 고통스럽게 죽어 가는지….

“말했잖아. 계약 같은 거, 집어치우자고.”

돌연, 침묵을 깬 차도헌의 입술 사이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디 가지 말고 내 옆에 있어. 두 달 계약이고 페로몬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그냥 내 오메가 해. 그러면 되잖아.”

확신이 담긴 목소리가 말을 마친 곳에는, 어이없게도 부드럽게 내려앉는 입맞춤이 있었다.

눈물로 얼룩진 뺨 위로 차근히 입을 맞춘 차도헌은 그대로 내 입술을 조심스럽게 머금었다. 부드럽게 열린 입술 사이로 뜨거운 호흡이 섞이자, 작은 자극에도 열에 들뜬 페로몬이 본능을 재촉해대며 날뛰어대기 시작했다.

…이래서, 난 내 몸이 싫었다. 차도헌의 페로몬에 너무나도 쉽게 반응하는, 이미 차도헌에게 단단히 각인당해버린 내 몸이, 너무나도 증오스러웠다.

나는 그대로 차도헌의 목덜미를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툭 튀어나온 울대를 엄지로 꾹 누르자 맞닿았던 입술이 거칠게 떨어졌다.

충분히 저지할 수 있는데도 차도헌은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제 목을 조르는 내 손길을 그대로 받아내고 있었다.

분명 목이 졸리고 있는 것은 당신인데, 내가 조금만 더 손에 힘을 주면 죽는 것은 차도헌, 너인데…

“…….”

두 눈 위에 고인 눈물을 떨궈낸 후에야, 나는 차도헌의 눈을 마주했다. 차도헌은 마치 나를 시험하듯, 암흑처럼 어둡고 공허한 눈동자로 느긋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돌연 온몸에 불길이 일었다. 조급하게 타오른 분노는 손아귀에 힘을 실었다. 어느새 나조차도 호흡을 멈춘 채였다.

“…죽어.”

“…….”

“죽어, 죽어, 죽어! 당장 죽어버리란 말이야!”

손아귀에 힘을 줄수록 팔뚝이 부들부들 떨렸다.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줄줄 흘렀다. 차츰 숨이 막혀오는지 차도헌의 눈엔 실핏줄이 하나둘 터지기 시작했다.

토해내듯 저주를 퍼붓고 나서야 나는 움켜쥔 차도헌의 목덜미를 팽개치듯 놓아버렸다. 차도헌은 곧 거친 숨을 내쉬며 기침을 터트렸다. 서서히 호흡을 되찾는 차도헌을 향해 나는 소리를 질렀다.

“사람 갖고 장난해? 왜 가만히 있어? 내가 네 목 졸랐잖아, 근데 왜 가만히 있냐고!”

“…….”

분명 목을 조른 건 나였는데, 오히려 내 숨이 한없이 조여드는 기분이었다. 갈비뼈가 세게 눌린 것처럼 폐가 쪼그라들고 쿵쿵 뛰어대는 심장이 개구리처럼 팔딱거렸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기도가 불타듯 쓰라렸다. 턱 끝을 타고 흐르던 눈물이 쇄골에 고여 찰랑댔다. 바싹 마른 입술은 울음을 토해낼 때마다 찢어져 핏방울이 맺혔고 목구멍은 돌덩이가 내려앉은 것처럼 콱 막혀서 나는 반쯤 꺽꺽대며 울었다.

“왜, 왜 나한테 그랬는데! 그 많은 오메가 중에서 하필 왜, 왜 날 각인시킨 거야!”

소리를 내지를 때마다 목덜미에서 울컥, 피가 샜다. 뜨끈한 피가 등을 타고 질금질금 흘러 이내 상의를 푹 적셨다. 주체할 수 없이 화가 났고 짜증 날 정도로 눈물이 났다. 나는 악을 지르며 차도헌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이리저리 피를 튀기며 발광을 해대는 나를 단번에 제압한 차도헌은 진정하라는 듯 내 얼굴을 붙잡고 시선을 맞췄다. 붙잡힌 만큼 불붙은 분노는 이내 차도헌의 페로몬을 넘어설 만치 진하게 방 안을 채우고 있었다.

“왜 나냐고, 왜! 도대체 왜….”

두 눈을 질끈 감은 채로 고개를 마구 도리질 쳤다. 목에 핏대를 세우고 욕지거리를 내뱉자 내 몸을 붙잡은 차도헌의 손이 피가 새는 목덜미로 향했다. 목을 조르는 것과 비슷하게 상처를 꾹 누르는 손에 나는 웃음을 터트리며 차도헌을 노려보았다.

그 새카만 눈을 보고 있자니 차올랐던 분노가 스산할 정도로 공허해졌다.

어차피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바보 같은 욕심 따윈 없었다. 나는 그저, 지독하게 누군가와 얽매여 고통스러운 하루하루를 살고 싶지 않았다. 단지 그뿐이었다.

사창가에서 그렇게 죽은 애들을 한 명씩 보내면서 나는 자살만큼 비참한 죽음은 없다는 걸 알았다. 사랑받지 못해서 목을 매고 페로몬을 좇아 밤거리를 나다니고, 배 속에 자그마한 걸 몰래 품어 다니면서, 그게 염치없는 걸 알면서도 사랑을 꿈꾸고, 또 바라고….

“안 그래도 어차피 죽을 거였는데….”

결국, 나는 죽어 마땅한 오메가니까.

그 모든 분노의 끝에, 나는 차츰 얼굴에 미소를 머금었다. 평온하리만치 잔잔한 감정을 오롯이 느끼며, 나는 내 상처를 꾹 누르고 있는 차도헌의 손등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그리곤 두 손으로 내 목을 움켜잡았다.

“…도해영.”

두 엄지로 울대를 꾹 누르자 돌연 숨이 덜컥 막혔다.

“손 풀어, 당장!”

차도헌은 내 손목을 움켜잡아 떼어내려 했다. 사색이 된 차도헌의 얼굴을 느긋하게 올려다보며, 나는 입천장에 혀를 답삭 붙이고 곧 호흡마저 멈췄다.

“도해영!”

막혀오는 숨에 시야가 뿌옇게 달아올랐다. 얼굴 근육이 팽창하고 발끝이 오므라들었다. 이미 힘이 풀린 두 무릎이 꺾인 지는 오래였다. 뻑뻑한 두 눈꺼풀을 느릿하게 깜빡이며 나는 차도헌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이내 할딱이던 숨이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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