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차도헌은 사흘이 넘도록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도해영 님. 윤 비서입니다.
차 이사님께서 갑작스럽게 해외 출장이 잡히셔서 자리를 비우셨습니다. 급하게 잡힌 일정이다 보니 입국 일정도 불확실한 듯합니다.
차 이사님께서는 편히 쉬시라고 전달하라고 하셨습니다. 주말 안으로 제가 대신 방문할 예정이오나, 불편하시면 거절 연락 남겨주십시오.」
차도헌의 방문 대신 내게 날아온 건 윤 비서님이 보낸 장문의 문자였다. 당분간 그 재수 없는 얼굴을 안 봐도 된다는 건 분명 내겐 더없이 희소식이었다.
물론 차도헌의 앞에서 태연하게 행동할 자신은 넘쳤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새하얗게 까먹은 척도 할 수 있었고, 만약 그쪽에서 먼저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더라도 내 쪽에서 딱히 할 이야기가 없다며 대화를 뚝 잘라먹을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별개의 문제가 있었다.
그날 달아오른 몸을 달래려 발기한 것을 잡고 흔들어댈 때, 절정에 다다른 순간 내 눈앞에 그려진 건 어이없게도 차도헌의 얼굴이었다.
“……씨발.”
그건 분명 그 망할 페로몬 반응 때문이다. 뇌가 본능에 지배된 상태였고, 오피스텔에는 차도헌의 페로몬이 옅게 남아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런 것뿐이라고 나는 줄기차게 자기세뇌를 해야 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입에 맞으십니까?”
“…네?”
지금처럼 또 정신을 놓고 자꾸만 그날 일을 떠올려버릴 테니까 말이다.
화들짝 놀란 내 앞에 윤 비서님이 막 깎은 복숭아를 가지런히 놓으며 설명을 덧붙였다.
“복숭아 말입니다. 단 과일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 준비해보았는데 입에 맞으실지 고민했습니다.”
그제야 나는 확 붉혔던 얼굴을 손등으로 연신 누르며 한가득 복숭아를 베어 물었다. 입 안을 가득 채우는 달큰한 과즙을 느끼는 사이로 다시금 나는 차도헌을 떠올리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야 했다.
아무래도 차도헌은 혼자 출장을 떠난 모양이었다. 단순히 내 생사 확인을 위한 방문이어도 되는데, 윤 비서님은 매일 다른 종류의 과일 박스를 짊어진 채 초인종을 눌렀다.
“좋은 저녁입니다, 도해영 님.”
오늘도 역시나, 정확한 시간에 과일 박스와 함께 찾아온 윤 비서님은 젠틀한 인사와 함께 곧바로 부엌으로 향했다.
“그게 자몽이에요? 오렌지랑 엄청 헷갈리게 생겼네요. 그럼 저 커다란 녹색 오렌지는 뭐에요?”
“청자몽입니다.”
“그렇구나….”
흐르는 물에 과일을 하나하나 신중히 세척하고 있는 윤 비서님의 옆에서 나는 한참을 종알거렸다.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다간 또 불쑥 차도헌의 면상이 떠오를지도 몰랐다.
전혀 영양가 없는 질답을 늘어놓으며 나는 윤 비서님이 잘라준 자몽을 집어 먹었다. 달콤 쌉싸름한 맛에 홀린 듯이 집어 먹는 동안 과일 손질을 다 끝낸 윤 비서님은 어느새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윤 비서도 마찬가지야. 꼬박꼬박 너 밥 해주러 못 와. 카드 두고 갈 테니까 내일부터는 알아서 식사 챙겨.’
분명 차도헌이 윤 비서님도 엄청 바쁘다고 그랬는데, 돌이켜보니 차도헌의 발길이 끊긴 후로 윤 비서님은 매일같이 찾아와 내 식사를 챙겨주고 계셨다.
괜히 나 때문에 윤 비서님의 일이 두 배로 늘어난 건 아닐까 걱정이 됐다. 은근슬쩍 스토브 앞에 서서 뒤집개로 계란 프라이를 뒤적이고 있자 윤 비서님은 반쯤 애원하듯 안 된다며 내게서 뒤집개를 뺏어갔다.
“저 진짜 프라이 잘 튀기는데.”
“준비 다 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가서 쉬고 계십쇼.”
부엌에서 알짱대는 나를 힘겹게 내쫓은 윤 비서님은 손에 리모컨까지 쥐여줬다. 결국 거실 소파에 얌전히 앉아 원치 않는 TV 시청을 하는 동안 윤 비서님을 향한 죄책감은 끝없이 몸집을 불리고 있었다.
오래지 않아 저녁 준비를 다 마친 윤 비서님은 포근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상을 차려주었다.
함께 저녁을 먹자는 내 제안에 괜찮다며 정중히 거절하는 윤 비서님을 뒤로하고, 기다란 다이닝 테이블에 혼자 덜렁 앉아서 어색하게 수저를 쥐는 동안 까맣게 잊고 있던 사실이 선명히 떠올랐다.
나는 사창가 출신 오메가였다. 아무리 친절한 윤 비서님이라도 나같이 천한 오메가랑 쉬이 겸상을 하긴 어려울 거였다.
“감사해요, 윤 비서님.”
잘 먹겠다며 꾸벅 고개 숙여 인사를 하는 내 목소리는 전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이 오피스텔에서 지내기 전, 사창가의 어둠에 묻힌 그 목소리가 다시금 나왔다.
조용히 밥을 먹고 있는 내게 윤 비서님은 물을 한 컵 떠다 주며 오늘 하루 동안 식사를 잘 챙겼는지 물었다. 아침과 점심을 몽땅 굶었다는 걸 들킬까 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충 냉장고 안에 있는 반찬에다가 먹었다고 했다.
집 안에 꼼짝없이 갇혀 있으니 소모되는 에너지가 없어 딱히 배가 고프지도 않았다. 원래도 부실하게 먹으며 살았기 때문에 두 끼를 굶어도 몸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여기에 와서 저녁마다 진수성찬을 챙겨 먹으니 살이 찔 것 같았다.
“반찬이 잘 줄어들지 않아 여쭤보았습니다. 맛있게 만들어드렸어야 했는데 제 요리 실력이 많이 부족한 탓입니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내 거짓말에 오히려 윤 비서님이 사과를 했다. 허리를 숙이는 그 모습에 나는 수저를 내려놓으며 진실을 밝혔다.
“아녜요, 그게 아니라…, 사실, 안 챙겨 먹었어요. 죄송해요.”
“안 챙겨 드셨다는 말은, 혹시 제가 방문하는 며칠간 저녁만 드셨다는 말씀이십니까?”
“저는 하루에 한 끼만 먹어도 충분해서요….”
작게 웅얼거린 대답에, 윤 비서님은 짐짓 비장한 얼굴로 식탁에 앉아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윤 비서님은 테이블 맞은편으로 의자를 끌고 와 앉더니 젓가락을 쥐었다.
반찬을 한 움큼 집어 올린 윤 비서님의 젓가락이 내 수저 위를 향하는 걸 보고 있자니 얼떨떨하기까지 했다.
“이사님께서 먹는 게 부실해 보이면 옆에서 반찬이라도 제대로 얹어주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차도헌이요?”
“예. 그런데 도해영 님께서 끼니를 계속 거르고 계셨다니, 이사님께서 아시게 되면 저는 잘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죄송해요.”
윤 비서님이 서슬 퍼런 농담과 함께 수저 위에 그득히 잡채를 얹어주었다.
입 안 가득 잡채를 오물거리고 있는데 이번엔 윤 비서님의 젓가락이 호박전으로 향했다. 노릇하게 잘 구워진 동그란 전을 가지런히 집는 윤 비서님의 손길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데, 문득 질문이 튀어 나갔다.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예. 말씀하십시오.”
“차 그룹 차기 안주인 되실 분 아세요? 그니까, 차도헌 부인 될 사람이요.”
내 질문에 윤 비서님은 호박전을 테이블 위로 툭 떨어뜨렸다. 차도헌이 없는 지금이 아니면 못 물어볼 것 같아서 물어봤는데, 난처한 낯빛을 띤 윤 비서님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괜히 물어봤다 싶었다.
테이블 위로 나동그라진 호박전을 집어 입 안에 밀어 넣곤 나름 항변을 시작했다.
“제가 여기 있는 건 윤 비서님만 알고 계신 거잖아요. 근데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 만약에 다른 사람이 알게 되면 제가 좀 위험해질 것 같아서요. 욕도 많이 먹고.”
허겁지겁 말을 이어나가는 내 앞에서, 윤 비서님은 젓가락을 내려놓곤 가만히 나를 응시했다.
“차도헌 반지 낀 거 봤거든요. 분명 저한테 불똥이 제대로 튈 것 같아서요. 만약 결혼하실 분이 차도헌이 저를 이런 데에 숨겨둔 걸 알게 되면… 아무리 봐도 제 과실을 더 크게 볼 거란 말이에요. 전 그냥 끌려온 죄밖에 없는데.”
입 밖으로 내뱉고 나니 더더욱 내 처지가 억울해졌다. 부디 윤 비서님이 불쌍한 나를 위해 차도헌의 피앙세에 대한 작은 힌트라도 주길 바라며 물을 꼴깍꼴깍 들이켰다.
그렇게 천천히 물 잔을 다 비울 때 즈음에야 윤 비서님은 주저하듯 이야기를 꺼냈다.
“제가 감히 말씀드리기엔 어려운 이야기입니다만… 도해영 님께서 추후에 발생 가능한 일로 걱정하시니 몇 가지만 전하겠습니다. 부디 이사님께는 비밀로 해주십시오.”
“저 입 엄청 무거워요.”
두 눈에 신뢰를 가득 담아 ‘날 믿어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윤 비서님은 무언가 다짐한 듯 진중한 기색을 보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세한 내막을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이사님께서는 현재 정략결혼을 진행하고 계십니다. 저번 달엔 비밀리에 약혼식을 올리셨고, 본 식은 두 달 뒤로 예정이 되어 있습니다.”
‘두 달’이라… 계약서에 적힌 기한이 꼭 두 달이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이사님의 혼인 상대는 아직 언론에 노출되지 않으신 분입니다. 모 인사의 자제라고만 알려진 상태이기 때문에 그분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도해영 님께 드리는 것은 아직 위험합니다.”
윤 비서님의 목소리는 속삭임에 가까웠다. 누가 이 오피스텔 안에 도청장치를 설치해둔 것마냥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윤 비서님의 프로페셔널한 직업 정신을 마주하고 있자니 새삼 영화 속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청 대단한 분이랑 결혼하나 보죠?”
최연소로 대기업의 대표이사 자리를 꿰찬 차도헌, 그리고 그런 차도헌만큼 잘나고 대단한 사람의 결혼이라면 세간의 이목이 집중될 터였다.
만약 차도헌의 뒤를 캐내는 기자나 파파라치가 이 오피스텔에 드나드는 차도헌과 함께 있는 내 모습을 포착한다면, 그 뒤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뻔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계약서에 괜히 지장을 찍었나 싶다.
“그분에 대해서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뭔데요? 잠깐, 그거 내가 알아도 안 위험한 거죠?”
또 냅다 들었다가 등골이 서늘해질 정보는 원하지 않았다. 내 주제에 기업 간 정치극의 들러리로 꼈다간 고래 사이에서 등 터진 새우 꼴이 날 거다.
퍽 진지한 얼굴로 나 같은 애가 알아도 괜찮은 정보인지 묻는 나를 향해 윤 비서님은 고개를 끄덕이곤 말을 이었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이사님의 약혼자는 베타 여성이시라는 겁니다.”
“그게 왜요?”
그게 무슨 문제가 되는지 도통 알 길이 없는 나로선 똑똑하신 윤 비서님께 되묻는 방법밖엔 없었다. 내 물음에 윤 비서님은 짐짓 당황한 눈치였지만 곧 침착을 되찾곤 아까처럼 속닥이며 내게 답변을 늘어놓았다.
“도해영 님도 아시겠지만, 극우성 형질을 가진 알파와 오메가는 일반 베타와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아….”
…전 그런 건 몰랐는데요.
오메가, 그것도 극우성으로 태어난 순간부터 내가 배운 건 딱 한 가지였다.
도해영은 절대로 행복할 수 없다는 거.
남들보다 일찍 발현한 탓에 어린 나이에 고아원에서 쫓겨나고, 이미 죽고 없는 부모가 진 사채 빚 덕에 조직에 끌려갔다. 꼬박꼬박 억제제를 사다 줬던 착한 조폭 아저씨는 파벌싸움 도중 내 눈앞에서 배에 칼을 맞아 죽었다.
아무도 내게 오메가의 몸으로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저 내 몸이 어디로 팔리고, 그곳에서 하는 일이 부모의 빚을 얼마나 덜어낼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덜 맞고, 어떻게 하면 팁을 더 받는지. 살면서 내가 배운 건 그런 것들뿐이었다.
‘도해영 님도 아시겠지만, 극우성 형질을 가진 알파와 오메가는 일반 베타와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런 내게 윤 비서님의 말은 사치나 다름없었다. 하루하루 죽지 못해서 살았던 극우성 오메가 도해영에겐 굳이 주변에 베타가 있든 없든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미 내 삶 자체가 문제 덩어리 그 자체였으니까.
어쨌든 윤 비서님의 말을 듣자니 이해는 갔다. 왜 차도헌이 빚을 갚아가면서까지 나를 데려왔는지.
“자기 편하게 살려고 나 데려온 거네요.”
수저를 내려놓으며 툭 내뱉자 윤 비서님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그간 자신의 상사에게 반말을 툭툭 뱉어대는 내가 꽤 신경 쓰였을 듯싶었다. 후다닥 뱉은 말을 주워 담으려는 내게 윤 비서님은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얹었다.
“그것 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으실 겁니다.”
하지만 한낱 오메가인 내가 그 이유를 알 리는 없었다.
***
윤 비서님은 오피스텔을 나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내게 식사를 거르지 않기를 당부했다.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날 믿지 못하는 기색이었지만, 윤 비서님은 내 보모역할 외에도 할 일이 쌓여 있는 사람이었다.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 푹 쉬십시오.”
“네. 조심히 가세요.”
오피스텔 문이 쾅 닫히고 다시금 이 커다란 집에 나만 덩그러니 남았다. 하지만 마음은 이전과는 다르게 후련하기까지 했다.
별 얼토당토않은 이유를 상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차도헌은 굉장히 현실적인 이유로 나를 데려온 것이었으니, 중요한 궁금증 하나는 해결된 셈이었다.
알파에게는 양의 기운만이, 오메가에게는 음의 기운만이 있다. 두 기운이 적절히 섞인 베타와는 다르게 알파와 오메가는 양극단에 치우친 불완전한 존재였다.
오로지 하나의 기운만 가진 신체는 균형을 잃고 서서히 부서지게 된다. 양기로 가득 찬 알파는 포악한 러트 사이클을 불규칙적으로 터트리고, 마찬가지로 음기로 가득 찬 오메가도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는 히트 사이클을 견뎌야 했다.
억제제는 단순히 임시방편일 뿐이다. 그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몸속에 품은 채 끝없이 타들어 가는 불꽃 위로 자그마한 물방울을 떨어뜨리는 식이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메이트’라는 개념이 생겼다. 음과 양이 짝을 맺어 상대의 기운을 나눠 가져, 비로소 완전한 존재로 거듭나는 과정. 즉, 메이트는 알파와 오메가의 영원한 결속이었다.
“…완전 딴 세상 이야기.”
적어도 내겐, 그랬다.
결국 알파에게는 오메가가, 오메가에게는 알파가 필요하다. 빌어먹게도 조물주는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다.
하지만 언제고 운명을 거스르는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그들은 ‘메이트’를 거부하고 억제제로 사이클의 폭주를 견디며 살아가길 선택했다.
‘섹스하러 오는 거 아니고, 네 페로몬만 맡으러 오는 거야.’
이제 차도헌의 말이 이해가 됐다. 나는 차도헌에게 ‘페로몬 자판기’였다. 양의 기운으로 가득 찬 차도헌에게는 음의 기운이 필요하다. 그것도, 자신과 같은 ‘극우성 형질의 오메가’가 가진 강한 음의 기운이.
다른 우성 형질보다도 특히나 극우성 형질은 억제제만으로 버티는 데에 한계가 있다. 사이클 폭주의 범위가 워낙 광범위한 데다가, 고함량의 억제제를 찾기도 힘들어 과다 복용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어쩌면 내 페로몬이 담긴 피도 차도헌에겐 중요한 물자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피로 알약이라도 만들려는 건가.”
요즘의 의학 기술을 잘 모르지만, 그날 무지막지하게 뽑힌 피의 양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가설이었다. 내 피에 녹아든 음의 기운을 추출해서 페로몬 알약 같은 걸 만든다면 그 베타 여자와의 결혼 생활에 있어서 훌륭한 대비책이 될 수도 있겠다.
이유를 모르게 자꾸만 입이 썼다. 분명 줄곧 차도헌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는데, 그 자세한 내막을 안 순간 이상하리만치 가슴이 콱 막히는 기분이었다.
‘사랑하기 때문에.’
문득 머릿속에 마담이 좋아했던 드라마의 대사가 떠올랐다. 알파의 운명을 거스르며 선택한 베타와의 불완전한 사랑, 그곳에 완벽함을 기하기 위해 애먼 오메가마저 대동하는 차도헌의, 그 사랑.
뜨거운 욕조 물에 몸을 푹 담그며 나는 생각했다. 보잘것없는 오메가인 내가 잠시 떠올렸던 강태산과의 사랑에 비하면 차도헌의 사랑은 너무나도 완벽할 거라고, 그러니 부디 차도헌과 계약한 두 달이 제발 빨리 지나가길 바란다고.
뚝뚝 몸을 타고 흐르는 물기를 타월로 대충 닦으며 나는 시큰하게 부은 눈가를 손등으로 꾹 눌렀다. 여전히 감정을 알아차리는 건 내게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커다란 억제제를 힘겹게 삼키곤 터덜터덜 걸어 침대로 향했다. 부드러운 시트에 얼굴을 묻으면 기분이 좀 나아질 거야, 스스로에게 위안을 건네며 나는 포근한 거위 털 이불을 한 아름 품 안으로 끌어안았다.
그때였다.
“-도해영!”
누군가 거세게 현관문을 쿵쿵 두드리며 내 이름을 불렀다. 화들짝 놀란 마음을 추스르며 가만히 숨죽이고 있는데, 다시금 문 너머로 목소리가 들렸다.
“도해영, 해영아!”
거칠게 내려앉은 익숙한 목소리, 어쩌면 수백 번이고 들었을 그의 목소리.
그럴 리 없는데, 그일 리가 없는데, 그걸 알면서도 나는 다급히 현관으로 달려가 문을 열었다.
“도해영, 가자.”
강태산, 내 앞에 강태산이 있었다.
***
“너, 어떻게 왔어?”
“나와, 당장!”
“어떻게 알고 왔냐니까?”
강태산은 대답도 없이 내 손목을 억세게 움켜쥐었다. 단숨에 현관 밖으로 끌려 나간 나는 강태산에게 붙잡힌 채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머릿속이 복잡하게 엉키기 시작했다. 강태산이 나를 데려가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다시 업소로 돌아가는 건가? 그럼 차도헌은? 내가 이렇게 도망가면 분명 차도헌이 눈에 불을 켜고 찾아댈 텐데, 그럼 또 모란이 뒤집어지는 거 아냐?
“잠깐, 강태산, 잠깐만, 좀 멈춰봐, 좀!”
“그럴 시간 없어.”
“나 아파, 잠깐만, 나 아프단 말야!”
잡힌 손목은 이미 벌게진 지 오래였다. 팔을 마구 비틀어대며 아픔을 호소하는 내 목소리에 결국 강태산은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붙든 손을 느슨하게 풀면서 강태산은 나와 눈을 맞췄다. 갑작스러운 재회인 만큼 잔뜩 당황한 나와는 다르게 강태산의 눈빛에는 흔들림 하나 없었다.
“많이 아파?”
강태산이 새하얀 팔뚝 위로 울긋불긋하게 남은 손자국을 응시하며 읊조렸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강태산에게 차근히 말을 건넸다.
“어떻게 온 거야, 황 회장이 보냈어?”
“…….”
강태산은 묵묵부답이었다. 다시 내 손목을 꽉 움켜쥐며 걸음을 옮기려는 몸짓에 나는 다급히 말을 붙였다.
“혹시 빚 때문에 다시 데려가는 거야? 근데 나 빚 다 갚았어, 더 이상 빚 안 남았댔어.”
“…그거 때문에 온 거 아냐.”
“그럼 왜 온 건데?”
내 물음에 강태산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말고 잠자코 따라오라는 듯, 강태산은 내게서 등을 돌린 채 강하게 팔을 잡아끌었다.
“나 못 가.”
“뭐?”
“너도 알겠지만 내가 갚은 거 아냐. 누가 대신 갚아줬는데, 그 사람이 나한테 부탁한 일이 있어. 그거 마치기 전까지는―”
강태산을 설득시키기 위해 차근히 말을 이어가던 나는 채 문장을 끝내지 못했다.
“윽-!”
느리게 굴러가기 시작한 뇌가 채 상황을 판단하기도 전에 퍽- 하는 타격음이 들렸다. 포악한 페로몬이 복도를 가득 채우는 사이로 격한 혈투가 시작되었고, 비릿한 피 냄새가 터져 나오기까지는 채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차도헌의 아래에 깔려 피투성이가 된 강태산을 보자니 오금이 저렸다. 저러다 강태산이 죽으면 어떡하지, 밀려오는 두려움에 손이 발발 떨리기 시작했다. 오롯이 격한 분노만이 가득 들어찬 페로몬에 얼음처럼 굳어버린 몸을 겨우 움직여 두 사람 사이로 뛰어들었다.
“그, 그만…, 그만해!”
생고기를 주먹으로 쳐대는 듯한 살벌한 소리가 뚝 멈추고 곧 헐떡이는 숨소리가 오피스텔 복도를 가득 채웠다. 내가 언제부터 울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뚝뚝 떨어지기 시작한 눈물이 강태산의 얼굴 위를 흠뻑 적셨다.
줄줄 흐르는 피가 내 눈물과 섞여 강태산의 얼굴이 거의 피범벅이 됐다. 시뻘건 피로 얼룩진 강태산의 얼굴을 닦아 주려 떨리는 손을 뻗는데 냅다 몸이 공중으로 들어 올려졌다.
“…건드리지 마.”
어금니를 악문 채로 읊조리는 차도헌의 목소리에 내 몸은 얼음장처럼 굳어버렸다.
차도헌은 나를 들쳐 안은 채 그대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겹겹이 쌓이는 공포감에 밭은 숨을 헐떡이고 있는데 차도헌의 커다란 손이 뒤통수를 그러잡았다.
“숨 쉬어, 도해영.”
여전히 으르렁대는 목소리로 명령한 차도헌은 품 안으로 내 몸을 바짝 끌어안았다. 몸을 둥그렇게 말고 잘게 떨고 있는 내 뒤통수를 단단히 붙잡은 차도헌은 내 얼굴을 자신의 가슴팍에 묻어버렸다.
그 순간 짙은 체취가 숨결 사이로 섞여들었다. 두려움에 쿵쿵 뛰어대던 심장도, 불안감에 덜덜 떨리던 몸도, 어지럽게 꼬인 머릿속도, 거센 파도처럼 몰려오는 그의 페로몬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휩쓸려 가기 시작했다.
어느새 내 몸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의 페로몬으로 푹 적셔져 있었다. 강인한 알파의 페로몬, 그가 선사하는 안정감에 몸을 맡긴 채 나는 두 눈을 꾹 내리감았다.
페로몬에 푹 녹아있던 정신이 바짝 돌아온 건 그때였다.
“뭐 하는 새끼야.”
엔진이 내뿜는 거친 소음 사이로 으르렁대는 차도헌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동이 걸리자마자 급발진하듯 출발한 차는 어느새 오피스텔 주차장을 빠져나가 도로 위를 질주하고 있었다.
당장 살인을 저지르고도 남을 섬뜩한 기세에 나는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어금니가 갈릴 정도로 턱을 악문 차도헌은 액셀을 마구 밟아대며 광란의 질주를 벌이고 있었다.
제한속도를 어기고 남을 정도로 무시무시하게 밟아댄 덕에 도로 위 차량들이 미친 듯이 클랙슨을 울려댔다. 빵빵대는 소음이 신경을 긁어댄 듯 차도헌은 속력을 더 올렸다.
“두 번 묻게 하지 마. 아까 그 새끼, 누구야.”
분노를 억누르며 낮게 읊조리는 목소리에 소름이 바짝 돋았다. 차 안 가득 퍼지는 포악한 페로몬은 살기로 그득한 채였다.
만약 강태산이 모란 소속 조폭임을 밝힌다면 차도헌은 그대로 핸들을 돌려 업소로 향할지도 몰랐다. 그렇게 된다면 이어지는 상황은 불 보듯 뻔했다.
정말, 차도헌이 강태산을 죽여 버릴지도 몰랐다.
입술을 꾹 깨문 채로 자의 반, 타의 반 침묵을 유지하는 내가 답답했는지 차도헌은 짙은 한숨을 뱉으며 핸들을 확 꺾었다. 곧 차창 너머로 거대한 고급 저택이 모습을 드러냈다.
잘 가꿔진 널따란 정원을 가로질러 도착한 차는 현관 앞에 바로 멈춰 섰다. 차도헌은 내게 내리라는 말도 없이 혼자 운전석 문을 벌컥 열고 차에서 내렸다. 따라 내려야 하는지 아니면 차에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하는 건지 고민하고 있는데, 조수석 문이 열리자마자 어느새 나는 아까처럼 차도헌의 품에 단단히 안긴 채였다.
“…나, 내려 줘도 되는데.”
비록 맨발이지만 살기를 퍼트리는 차도헌의 품에 짐짝처럼 들리는 것보다 차라리 발바닥이 찢어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물론 내 말을 제대로 무시한 차도헌은 묵묵히 저택 안으로 걸어 들어갈 뿐이었다.
일정하게 대리석 위로 부딪히던 구두 소리가 멈추고, 곧 궁전처럼 널찍한 저택 내부가 눈앞에 펼쳐졌다. 그러나 화려한 인테리어를 구경하고 있을 만큼의 정신력은 못 됐다.
오랜 시간 사람이 지내지 않았는지 불 하나 켜지지 않은 저택에는 적막보다도 더한 냉기가 흐르고 있었다. 나를 내려줄 생각도 않곤 단단히 품에 붙든 채 차근히 계단을 밟아 올라가는 차도헌의 얼굴은 여전히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오피스텔을 떠나온 지 시간이 좀 지났음에도 여전히 누그러지지 않는 차도헌의 모습에 나는 초조해졌다. 내게 면죄부 따위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이 상황에서 분명히 해야 할 건 있었다.
“저기… 그 사람이 나를 데려가려고 했던 건 맞는데….”
어디 한번 지껄여 보라는 듯, 차도헌의 매서운 눈매가 일순간 내게 못 박혔다. 그 서늘한 시선에 절로 오금이 저려왔지만 나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최대한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나는 못 간다고 했어,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아직 가면 안 된다고….”
그 순간 차도헌이 걸음을 멈추고 내 몸을 거칠게 내려놓았다. 온몸을 푹신하게 받치는 매트리스가 아니었다면 뇌진탕에 걸렸을지도 모를 만큼, 말 그대로 내던져졌다.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아직 가면 안 된다고?”
내 변명이 차도헌을 더 화나게 한 걸까, 내가 한 말을 그대로 돌려서 내뱉는 목소리는 어둠 속에서 선연한 살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삐걱이며 매트리스가 짓눌리는 소리가 났다. 가까워진 거리에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 내 몸 위로 드리운 거대한 그림자는 분명 차도헌의 것이었다.
“어떻게 너란 애는.”
“…….”
“갈수록 소유욕을 들끓게 할까.”
불행히도 내게 그 말을 이해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으르렁대며 내뱉은 거친 목소리에 이어 금세 방 안을 가득 채운 묵직한 페로몬에 숨을 헐떡대는 사이로, 짙은 입맞춤이 내려앉았다.
***
눈물이 비죽비죽 새어 나왔다. 방 안에 머물던 차가운 공기가 드러난 맨 살갗을 아찔하게 훑고 사라졌다. 그 감각만으로 나는 울컥, 애액을 쏟았다. 드로어즈가 푹 젖은 곳에서 달큰한 향내가 새어 나왔다.
혀뿌리가 얼얼해질 때까지 깊은 키스가 이어졌다. 고개를 한껏 뒤로 젖혀 차도헌의 묵직한 혀를 받아내는 동안 꽉 묶어둔 가운은 죄다 풀어 헤쳐진 상태였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쾌감에 밭은 숨을 헐떡이며 차도헌의 가슴팍에 이마를 기댔다. 페로몬에 녹아버린 머릿속에는 당장 박히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눈물을 뚝뚝 떨구며 몸을 바르작대는 내 허리를 쓸어주며 차도헌이 목덜미 위로 입술을 내리찍었다.
“이렇게 꼬이는 날파리가 많았으면 말을 하지 그랬어.”
“흐, 아아….”
“진작 내 거로 만들어버렸으면 됐을 텐데.”
과격하면서도 중독적인 차도헌의 체향이 넘실대며 좁은 기도를 비집고 들어와 꾸역꾸역 몸속을 가득 채웠다. 숨이 벅차오는 순간마저도 내겐 오롯한 쾌락이었다. 가파르게 마이너스로 치닫는 호흡이 위험하리만치 짜릿하면서도 동시에 몸에 불을 지르는 격이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이 상황도, 차도헌이 내게 하는 말들도…. 녹아내리기 시작한 이성을 억지로 붙잡으려는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차도헌의 행위는 과감해지고 있었다.
상체를 지분거리던 그의 입술이 차츰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불긋한 울혈을 잔뜩 매단 몸을 바르작대는 동안 어느새 내 다리는 억세게 붙잡힌 채 한껏 벌어져 있었다.
“…아, 안 돼-, 흐… 앗.”
애액에 푹 젖은 엉덩이골 사이로 차도헌의 진득한 시선이 내려앉았다. 허겁지겁 손을 내려 가리려는데, 기어이 질척하게 젖은 구멍 틈으로 뜨거운 혀가 비집고 들어왔다.
“아, 하으, 윽! 안, 아응, 아!”
차도헌이 내 엉덩이를 쥐어 터질 듯 세게 붙잡아 당기곤 더더욱 깊숙이 혀를 밀어 넣었다. 우뚝 솟은 콧대가 회음부를 자극하듯 비벼지고 내벽을 꾹꾹 힘 있게 누르며 핥아대는 혓바닥에 허리를 비틀며 신음을 뱉었다.
“하아, 앙! 아, 흐으으- 응!”
츕, 츄릅 하는 질척한 소리마저 감각에 불을 질렀다.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쾌감이었다. 시트가 푹 젖을 정도로 줄줄 새는 애액을 다 핥아 먹을 것마냥 차도헌은 게걸스럽게 내 음부에 코를 박고 있었다.
무서울 정도로 온몸을 압도하는 쾌감에 아랫배에서 작게 탁탁 소리가 났다. 잔뜩 발기한 내 좆이 꺼덕이며 좆물을 뿜어대고 있었다.
배 위로 흥건히 사정을 해댔는데도 열기가 가시기는커녕 몸은 더 뜨거워지기만 했다. 내 엉덩이 사이에서 얼굴을 뗀 차도헌은 몸을 일으키더니 셔츠를 벗었다. 사정의 여운에 몸을 부르르 떨어대는 나를 내려다보며 이내 바지와 드로어즈마저 벗었다.
그렇게 드러난 차도헌의 나체는 완벽에 가까운 피조물, 그 자체였다. 숨이 막힐 만큼 묵직한 향을 풍기는 페로몬처럼 진한 피부색에 근육이 잡힌 거대한 몸, 그 아래로 두 손에도 다 안 잡힐 만큼 커다란 성기가 위엄을 뿜어대며 공중에서 묵직하게 흔들렸다.
울퉁불퉁하게 핏줄이 돋은 검붉은 기둥과 그 끄트머리에 붙은 귀두는 프리컴에 젖어 어둠 속에서도 반짝거렸다. 그 광경에 나는 홀린 듯이 차도헌의 몸을 끌어당겼다.
살결을 가볍게 스치고 지나가는 손길에 발끝을 옴짝거리며 내 몸 위를 유영하는 차도헌의 입술에 오롯이 집중했다. 허벅지 안쪽을 손끝으로 천천히 쓸어 올리는 자극에 안달이 났다. 내 몸을 둔탁하게 때리는 차도헌의 좆이 어서 내 몸을 관통하길 바랐다.
“빨리, 흐, 으… 빨리….”
차도헌의 좆은 한 번도 정액을 배출하지 않아서인지 아까보다 더 색이 검붉었다. 자꾸 재촉해대는 내가 가소로운지 차도헌은 입가에 비웃음 비슷한 것을 매단 채 제 커다란 좆을 움켜잡았다.
천천히 좆을 위아래로 흔드는 차도헌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정신이 아찔해졌다. 차도헌이 좆을 붙든 손을 움직일 때마다 완벽한 조각상 같은 팔뚝과 허벅지에 붙은 근육이 불끈거렸다.
양손으로 엉덩이를 붙잡아 양쪽으로 한껏 벌렸다. 차도헌은 천천히 몸을 낮추며 붙잡은 좆 끝으로 입구를 문질렀다. 그 자극만으로 울컥 나온 애액에 귀두가 살짝 구멍 틈으로 미끄러졌다.
차도헌이 상체를 숙여 내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흥분에 절은 거친 숨이 귓가에 내려앉았고, 작게 읊조리는 낮은 목소리가 내 전신을 울렸다.
“이 짓 하면, 너랑 나는 돌이킬 수 없는 거야.”
“…….”
“선택해.”
목덜미에 입술을 묻곤 흥분에 그르렁대는 차도헌의 목소리에 소름이 바짝 돋았다. 목에 닿아오는 날카로운 송곳니가 당장이라도 내 목덜미를 물어버릴 것처럼 피부 위를 간질이고 있었다.
마주친 시선이 공중에서 얽혔다. 가까워진 입술 새로 가쁜 숨결이 새어 나왔다. 페로몬이 진해질수록 무겁게 내려앉은 공기가 온몸을 조였고, 피부에 닿아오는 열기는 지독할 정도로 뜨거웠다.
쾌락에 눈이 멀어 그 스스로 계약을 깰 수밖에 없는, 지독한 알파와 오메가의 숙명.
이미 차도헌도 알고 있을 거였다. 우리의 계약은 애초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파에게는 오메가가, 오메가에게는 알파가 필요하다. 빌어먹게도 조물주는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고, 우리는 하염없이 서로를 향해 이끌리듯 추락하게 될 뿐이었다.
나는 천천히 차도헌과 시선을 맞추었다. 밤하늘처럼 캄캄한 흑색의 눈동자에 붉은빛이 어렸다. 그 안에 비친 무수한 감정들을 응시하며 나는 차도헌의 목을 끌어안았다.
차도헌의 매끈한 뒷목을 검지로 지그시 눌렀다. 피부 위를 꾹 누르고 있던 손가락을 느릿하게, 어깨를 지나 가슴팍까지 천천히 미끄러트렸다. 내 손가락이 멈춘 자리는 차도헌의 심장이 파묻힌 곳이었다.
“…한 번 해봐.”
당신의 의지가 강하다면 우리의 불장난은 여기서 멈추겠지. 차도헌, 당신에겐 운명을 거스를 의지가 있으니까.
내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차도헌은 그대로 붙잡고 있던 좆 기둥을 내 안으로 밀어 넣었다. 깊숙한 곳까지 세게 파고드는 뜨거운 열기에 허리가 마구 뒤틀렸다. 삽입과 동시에 퓻, 하고 뿜어낸 내 정액이 겹친 몸 사이에서 거품을 이며 질척하게 들러붙었다.
“아흐, 앙! 아, 아, 아!”
“후우, 읏…!”
“아, 좋아, 응, 읏! 흐으으- 으응! 응!”
인정사정없이 치받는 좆에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고 온몸은 쾌감으로 푹 젖었다. 스팟을 잔뜩 눌러대는 버거운 크기의 양물이 쿵, 쿵 하며 내벽을 찔러올 때마다 나는 목이 쉬어라 신음을 내질렀다.
“아! 아응, 응! 아! 앗, 흐앙, 하앙!”
퍽, 퍽 살덩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몸을 울리듯 가득 진동했다. 우리는 헉헉대며 숨을 뱉어내다가도 키스를 했고 차도헌은 자꾸만 닿지 말아야 할 곳까지 좆을 밀어 넣었다. 퓻, 퓻 대며 연달아 사정한 탓에 온몸이 덜덜 떨렸다. 배 속이 꽉 찼다가 다시금 빠져나가기를 반복하는 피스톤질에 나는 숨을 헐떡이며 차도헌을 끌어안았다.
다시금 목에 차도헌의 날카로운 송곳니가 닿았다. 바보 같은 도해영은 위기감 따위 느끼지 못하고 쾌감에 절어 앙앙댈 뿐이었다.
그 순간 귓가에 콰드득-, 살갗을 뚫는 소리가 들렸다. 목덜미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뜨끈한 피가 울컥 새어 나왔다.
이성을 잃은 거대한 알파, 그 아래에 깔린 채 나는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