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긋난 궤도-0화 (5/43)

어긋난 궤도

0.

5년 전, 나는 너를 처음 봤다.

하필이면 모란에 투입된 첫날이었다. 오메가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입구를 지키고, 내부에서 벌어지는 소란을 막는 간단한 일이라고 전달받았을 뿐이었다.

몇 년간 이어온 조직의 끝자락 칼받이 생활을 청산하고 이제야 좀 손에 피를 덜 묻히는 일을 하게 됐다 싶었다. 하지만 업소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천장에 목을 매달고 죽은 오메가의 시체를 처리해야 했다.

“욱, 우욱, 토 나와 씨발….”

“존나 깨끗하게 죽었네. 이런 건 처음 보는 거 아니냐?”

피 한 방울 없이 체액만 진득하게 나오는 몸에서 밧줄을 풀어내는 동안 비위가 약한 몇 놈이 헛구역질을 해댔다. 나조차도 칼에 찔려 죽은 시뻘건 시체를 보는 게 더 익숙해서 숨만 멈춘 파리한 살갗을 만지는 게 좀 그랬다.

“몇 명은 나가서 쓰러진 애들 좀 방에 넣어.”

이 업소의 마담이라는 여자는 몇 명을 손가락으로 집어가며 소란스러운 밖을 정리하라고 했다. 묵묵히 입을 다문 채 시체를 정리하던 중 그 검지에 지목당한 나는 다른 놈들과 함께 로비로 나갔다.

시체를 만진 손을 허벅지께에 벅벅 닦으며 향한 로비는, 마담의 말대로 난장판이었다.

무서워서 덜덜 떠는 애들과 꺽꺽대며 눈물과 위액을 바닥에 토해내는 애들, 도망치겠다며 잠긴 대문에 머리를 쾅쾅 박아대는 애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술병을 늘어놓고 웃는 네가 있었다.

나는 같이 밖을 정리하러 온 조폭 동생들에게 오메가들을 쪽방에 집어넣으라고 시켰다. 내가 처리해야 할 건 다른 애새끼들이 아닌 너라고 생각했었다. 모두가 죽음 앞에 고통스러워하고 있는데 혼자서 미친 사람처럼 웃어대고 있는 너를,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발걸음은 곧장 너에게 향했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허공에 새된 웃음을 터트리는 네 앞으로, 나는 한쪽 무릎을 꿇으며 다가섰다.

“그만 마시고 정신 차려.”

나는 너의 팔뚝을 붙잡아 술병을 뺏었다. 너는 반항도 없이 나를 노려보다가 한참 후에야 붙잡힌 팔을 비틀며 중얼거렸다.

“이거 놔. 아직 다 안 마셨어.”

힘이 하나도 없는 움직임이 우스워서 헛웃음이 나와야 하는데 이상하게 짜증부터 났다. 한 손에 다 들어오는 마른 팔뚝은 뼈밖에 잡히지 않아서 조금만 더 힘을 주면 부러질 것 같은데, 나를 노려보는 네 눈은 당장이라도 내 목을 졸라 죽여버리겠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네가 여기에서 제일 짬 찬 새끼라며, 가서 마담 좀 도와주든지 아니면 입 닥치고 방에 들어가 있든지 해.”

나도 모르게 거칠게 말이 나갔다. 등 뒤에선 욱욱거리며 토하는 소리와 울어대는 소리가 죄다 섞여 들려오는데 너만큼은 울지도 게워내지도 않고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무엇이 너를 분노케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었다. 단지 네 모습이 죽음의 끝자락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는 것 같았고, 그게 과도하리만치 신경이 쓰일 뿐이었다.

그 순간 쨍그랑, 소리와 함께 두꺼운 유리 파편이 양주에 섞여 이리저리 튀어댔다.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술병을 움켜쥔 네가 바닥 위로 억세게 내리쳤기 때문이었다.

네 고운 얼굴 위로 튄 유리 파편이 작은 생채기를 만들어냈다. 깨진 술병을 쥔 손바닥엔 맑은 피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고, 바닥 위로 흠뻑 쏟아진 양주가 너의 옷을 죄다 적셨다.

“…….”

차츰 너의 시선은 내 턱 끝을 향했다. 후회에 젖은 너의 눈동자 앞에서 그제야 나는 내 턱이 찢어졌다는 걸 뒤늦게야 깨달았다. 이 정도 상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너는 금세 죄책감에 짓무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너의 눈빛은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매섭게 등은 돌렸지만 너의 발걸음은 떠나기를 주저하고 있었다.

“들어가. 들어가서 치료부터 해.”

얇은 옷 위로 날개뼈가 툭 불거진 마른 몸, 어쩌면 방금 네가 깨뜨린 유리보다도 더 부서지기 쉬울 몸에 대고 나는 목소리를 냈다.

“혼자서 못 하겠으면 뒷문으로 나와. 병원 데려다줄게.”

그 순간 너는 지독하게 분노에 찬 목소리를 내질렀다.

“네가 뭔데?”

분노보다도 더 짙은 슬픔을 가득 담은 눈동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성한 곳 하나 없는 약한 너.

그게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애초에 이유는 없었다. 그냥 놔두면 금방이라도 굶어 죽어버릴 것처럼 뼈밖에 없는 그런 애가, 지독하게 독기 서린 눈으로 나를 노려봤을 때 잠깐 거슬렸을 뿐이었다.

추운 겨울날 멍 자국이 짙게 밴 마른 몸이 다 드러나는 얇은 티셔츠 한 장에 허벅지를 겨우 가리는 짧은 바지를 입고 눈을 맞으면서 담배를 피우는 게 너무 거슬리다 못해 짜증이 나서 외투를 벗어줬고, 한쪽 뺨이 퉁퉁 붓고 피딱지가 앉은 입술로 병나발을 부는 게 위험해 보여서 그걸 뺏었을 뿐이다.

내가 그럴 때마다 너는 그 오메가가 죽었던 그 날처럼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네가 뭔데?’ 같은 말도 없이.

그 후로 한동안 너는 내 눈에 보이지 않았다. 로비에서도 쪽방 골목에서도 욕탕에서도, 심지어 업소 사람들이 모여서 담배를 피우는 샛길에조차 너는 없었다.

자꾸 눈에 거슬리던 게 사라지면 마음이 편해야 하는데 짜증 나게 그렇지가 않았다. 이름도 모르는 너를 왜 찾는지 나조차도 알 수 없었다. 마주치기만 하면 나를 죽일 듯이 쳐다보는 너를 왜 찾는지 나조차도 이해가 안 됐다.

그게 너무 짜증 나서, 그 이유를 알고 싶어서 나는 업소를 뒤적이며 너를 찾았다.

하지만 너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네가 사라진 지 일주일에 접어드는 날, 너는 평소와 다르게 옷을 차려입은 채로 내 앞에 갑자기 나타났다. 욕탕 뒤쪽으로 이어지는 쪽문에서 보초를 서고 있을 때였다.

너는 상당히 기분 좋은 얼굴로 내게 필요한 게 없느냐고 물었다. 이 앞 편의점에서 살 게 있는데 담배나 군것질거리 같은 걸 사다 줄 테니 조용히 보내 달라며, 그간 나를 향했던 적의를 전부 감춘 채 너는 사근사근한 목소리를 냈다.

“안 돼.”

뇌물을 받고 잠시 보내줘도 된다는 건 매뉴얼에 없는 일이었다. 그때 난 네 이름조차 몰랐지만 네가 위태롭다는 건 알았다. 쉽게 보냈다간 너의 그 말라비틀어진 몸뚱어리가 싸늘한 시체로 돌아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네가 사라진 기간 동안 업소를 뒤지면서 죽어버린 너를 찾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안고 있었던 나였기에, 그래서 더욱 너를 보낼 수 없었다.

너는 분명 그 애와 비슷한 방식으로 핏자국 하나 없이 창백하게 굳어선, 네 시체를 찾는다면 왠지 그럴 것 같았다.

“진짜 꽉 막혔다, 너.”

너는 답지 않게 교태를 부리며 끈적하게 들러붙었다. 가까이 다가오는 너를 피하려 뒷걸음질을 치다가 등 뒤에 벽이 닿았다. 너는 아예 벽 사이에 나를 가두고 바투 맞붙은 고간을 천천히 둥글게 부벼댔다. 너는 야살스럽게 눈을 접어가며 나를 쳐다봤다.

“네가 도망갈지 어떻게 알아?”

어깨를 확 밀어내고 옆걸음질을 치며 거리를 벌렸다. 다시 붙어올 거란 예상과 다르게 너는 내가 한 말이 뭐가 그렇게 웃겼는지 허리를 접어가며 웃음을 터트렸다.

“난 도망 안 가.”

“왜?”

“난 여기 아니면 갈 데 없거든.”

그렇게 말하며 너는 다시금 나를 쳐다봤다. 네 눈에서 이상하리만치 무거운 공허감이 느껴졌다. 거짓말처럼 독기가 빠진 너의 눈을 쳐다보며 나는 바보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나 보내주는 거야?”

“…혼자는 안 돼. 나랑 같이 가.”

네 팔뚝을 움켜잡고 나는 너를 잡아끌듯이 편의점으로 걸어갔다. 너는 단 한순간도 정적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처럼 끊임없이 가벼운 음담패설과 쓸데없는 잡담을 늘어놓았다.

그것들 중 대부분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었거니와 쉴 새 없이 종알종알 움직여대는 네 입술이 웃겨서 나는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그리고 너는 편의점에서 담배 두 갑과 콘돔을 무더기로 샀다.

“가자.”

담배와 콘돔이 든 비닐 봉다리를 손가락에 달랑달랑 건 채로 네가 가리킨 곳은, 사창가 뒷골목과 곧장 이어지는 모텔촌이었다.

“싫어?”

너는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며 나를 올려다봤다. 뿌연 노란 가로등 불빛에 네 얼굴 반쪽엔 짙은 그림자가 졌다. 또다시 이유를 모르게 나는 네 팔뚝을 붙잡고 허름한 모텔 안으로 향했다. 너는 내게 붙들린 채로 아무 말도 없이 잠자코 걸었다.

낡은 싱글 침대 하나와 조그마한 화장실이 딸린 비좁은 모텔방, 거기서 너는 나와 섹스를 했다. 통성명도 없이 입술을 부비고 맞붙은 몸을 들썩거렸다.

대화 따위는 없었다. 삐걱거리는 침대 스프링 소리와 이따금씩 네가 침대 헤드에 머리를 부딪치는 쿵쿵 소리를 제외하고는, 우리 사이에는 오직 신음만이 오갔다.

그렇게 수차례의 정사가 끝난 후에야 불현듯 너는 내게 이름을 물었다. 바지를 꿰입은 채로 구겨진 셔츠를 탁탁 털어 한쪽 소매에 팔을 쑤셔 넣으며 나는 짤막하게 답했다.

“강태산.”

“으응, 멋진 이름이네.”

너는 별 감흥 없는 목소리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너는 여전히 맨몸에 흰 이불만 둘둘 몸에 두른 채였다. 마저 다른 쪽 소매에 팔을 꿰고 단추를 잠그면서 나는 네게 빨리 업소로 돌아갈 준비를 하라고 했다.

그 말에 너는 아까 가로등 밑에서 내게 보였던 얼굴로 사근한 목소리를 냈다.

“있지, 태산아. 마담한테 가서 나 오늘만 여기서 자고 들어간다고 말해주라.”

“미쳤어? 업소에선 외박 안 돼. 빨리 옷 입어.”

“나는 돼.”

나는 네가 되지도 않는 억지를 부린다고 생각했다. 바닥에 떨어진 너의 옷을 집어 들고 네가 둘러싼 이불을 벗겼다. 옷을 건네며 빨리 입으라고 잔소리를 하는 내게 너는 다시금 입술을 달싹였다.

“태산아, 마담한테 가서 ‘해영이 허리 아파서 모텔 침대에서 하룻밤만 자고 온대요’라고 말해줘. 응?”

“그게 통할 리가 없잖아.”

“나는 돼. 마담이 날 많이 봐주거든.”

너는 벗겨진 이불을 도로 주워 몸에 꽁꽁 둘러 여미곤 천천히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이내 푹 감긴 너의 눈꺼풀은 미동도 없이 잠잠했다. 금방이라도 잠들 것 같은 너를 내려다보며 나는 네 이름을 한 번 더 물었다.

“너, 이름이 뭐라고?”

“…도해영.”

도해영.

나는 그렇게 네 이름을 알았다.

그 밤 모텔방에 너를 혼자 두고 나오면서 나는 헛 없는 꿈을 바랐다. 당장이라도 부스러질 것 같은 몸에 독기 서린 눈을 품은 너를 감히 구제하고 싶어졌다.

네가 갈라진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를 때마다 네 입술에 입을 맞추고 싶었고 멍들고 상처 난 네 몸을 다정히 어루만지며 사랑을 속삭이고팠다.

네가 덜 아팠으면 했고 네가 덜 힘들어했으면 했다.

보잘것없는 삶을 사는 내가, 네 한 몸쯤은 책임질 수 있겠다는 자신이 생겼다.

그렇게 도해영, 나는 멍청할 정도로 너를 사랑하게 됐다.

***

응접실을 박차고 들어가 마담을 찾았다. 소파에 반쯤 몸을 뉜 채로 앉아있던 마담은 놀란 기색도 없이 내 얼굴을 응시했다.

“…….”

적막 사이로 무어라 채 말을 꺼내기도 전에 마담은 고개를 천천히 가로 저었다. 그 눈빛은 내가 너무 늦었음을 말하고 있었다.

프런트에 붙은 명단엔 도해영의 이름이 지워지고 대신 그 자리에 다른 이름이 채워졌다. 잡지처럼 만들어진 업소의 오메가 바디 프로필 북엔 도해영의 페이지가 흔적도 없이 뜯겨졌고 도해영의 앞으로 예약된 VIP 고객 명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쪽방 구석에 쌓여 있던 도해영의 몇 없는 짐이 없어진 것을 알아채자마자 근방의 모든 모텔을 뒤졌지만, 그 어느 곳에도 도해영은 없었다.

그 흔한 동화 속에 나오는 인어공주보다도 더 감쪽같이, 치밀하게. 도해영은 그 작은 물거품 하나 남기지 않고 내 세상에서 사라졌다.

도해영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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