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갑자기 삼 일의 휴가가 생겼다. 어제 강태산이 억지 부렸던 몇 주에 비해서는 훨씬 짧은 날짜였지만 매일 몸을 굴리는 게 업인 입장에선 삼 일도 금쪽같았다.
영업 시작 직전에 휴가를 일러준 마담은 내 품에 온갖 약을 안겨주면서 이 약을 다 먹을 때까진 일할 생각도 말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건 좀….”
“왜, 약이 부족해?”
“삼 일 안에 이걸 다 먹으면 죽을 것 같아서요.”
내 말에 마담은 내 품에 가득 쌓인 약상자를 흘긋 내려다보더니 알았다는 듯 눈썹을 까딱였다.
“몇 알씩 먹는지 모르니까 그랬지. 너 알아서 먹어.”
말을 마친 마담은 카운터에 올려둔 립스틱을 집어 들곤 손바닥만 한 거울에 얼굴을 비추며 립스틱을 고쳐 발랐다. 마담의 손놀림에 따라 입술 라인에 딱 맞춰 부드럽게 발리는 게 신기해서 한참을 쳐다보고 있는데 내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마담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저리 가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심심해요.”
립스틱을 내려놓고 이번엔 쿠션을 꺼내든 마담은 내 말을 가볍게 무시하며 퍼프로 얼굴을 군데군데 두드렸다. 조명이 어두워서 그런지 내 눈엔 별다른 변화가 없는 듯했음에도 마담은 만족한 듯 뚜껑을 탁 소리 나게 닫았다.
어쩌다 보니 화장대가 되어버린 카운터 위를 정리하면서 마담은 파우치에 화장품을 쓸어 담았다. 카운터 위에 올려놓은 바구니에 대리운전 명함과 라이터를 가득 채우고 열쇠를 꺼내 양주장의 자물쇠를 푼 마담은 여전히 약을 잔뜩 든 채 카운터 앞에 서 있는 나를 향해 잔소리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얘, 곧 영업 시작하는데 괜히 고객들 눈에 띄지 말고 방에 들어가서 자든 나가서 놀든 해.”
“혼자 심심한데.”
“저번에 데리고 나간 애랑 놀든가.”
“걔 나보다 바빠요.”
내 말에 마담은 코웃음을 쳤다. 매일 정산을 하는 장본인이니 이 업소에서 누가 제일 많은 돈을 물어다 주는지는 그 누구보다 잘 알 터였다.
“너보다 바쁜 애가 있다고? 흐응. 궁금하네, 그 아이.”
“아무튼 있어요.”
몇 년 전부터 줄곧 업소 매출 탑에 이름을 올린 나보다 지해가 더 잘 나간다는 거짓말은 마담에게 통할 리가 없었다. 나로선 더 이상 지해를 데리고 나갈 일이 없다는 걸 간접적으로 전한 것이니 거짓말이 통하든 말든 딱히 큰 상관은 없었다.
이제 정말 오픈 시간에 가까워졌는지 마담은 어깨에 걸치고 있던 숄을 벗었다. 곧 슬립처럼 생긴 실크 드레스가 어두운 카운터 조명 아래 마른 몸의 윤곽을 드러냈다. 아무래도 갈수록 말라가는지 툭 튀어나온 어깨뼈가 더 도드라져 보였다.
“마담. 밥 좀 많이 먹어요.”
“얘. 나 요즘 캐비어에 밥 비벼 먹어. 걱정 마.”
“그 소리가 아니잖아요.”
마담은 누가 봐도 깡마른 팔을 내 쪽으로 뻗었다. 그리고 이어진 행동은 퍽 다정한 것이었다.
“곧 가게 문 연다? 너 계속 여기 있음 휴가 주는 이유가 없잖니. 어서 들어가 쉬어.”
서늘한 손이 내 머리를 부드럽게 흐트러트리고는 다시금 제자리로 향했다. 살면서 머리를 쥐어뜯기기만 해봤지 쓰다듬어진 적은 별로 없었는데. 새삼 낯설게 다가온 타인의 온기에 도망치듯 홀에서 걸어 나왔다.
***
마담이 챙겨준 약을 한 움큼 삼켜내고 나니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얇은 이불을 끌어안고 쪽방 구석에 누워 잠이라도 잘까 싶었지만 방금 일어난 터라 그것도 쉽지 않았다.
멍하니 누워서 벽 너머의 정사 소리를 흘려듣고 있다 금방 몸을 일으켰다. 담배를 사러 편의점에 갈 생각이었다.
강태산은 어제 말다툼을 한 이후로 종일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가드의 업무라는 게 딱히 정해진 건 아닌 듯했으나 나름 체계적으로 굴러가는 모양인지 강태산은 종종 몰래 근무지를 이탈하면서까지 나를 찾아오기도 했었다.
그랬던 놈이 코빼기도 나타나지 않는 걸 보면 아직도 어제 일로 꽁해있는 게 분명했다.
“하여간 쪼잔한 새끼….”
내 몫의 담배 한 갑과 마담에게 줄 자잘한 간식거리를 봉투에 담아 넣는 알바생의 손을 물끄러미 응시하다 결국 강태산이 즐겨 피우는 담배 이름을 뱉으며 지갑을 다시 꺼냈다.
살다 살다 내가 강태산을 신경 쓰는 날이 오다니,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묵직해진 봉투가 이따금씩 종아리에 툭툭 부딪혔다.
멀리 걸어갈 필요 없이 편의점 입구 옆 디딤돌에 대충 걸터앉았다. 호주머니 속에서 반쯤 구겨진 담뱃갑에서 마지막 개비를 꺼내 입술에 물면서 나는 마담이 언젠가 준 라이터를 손바닥 안에 쥐었다.
단번의 점화에 담뱃불이 확 붙었다. 연기를 내며 타들어 가는 끄트머리를 잠시 감상하듯 쳐다보다 훅 느껴지는 찬바람 속으로 연기를 뱉었다. 엉덩이가 꽤 시린 걸 보니 벌써 가을이 끝나가는 듯싶었다.
‘착각하나 본데, 너한테 동정심 바란 적 없어.’
내가 뱉은 날 선 말에 강태산은 단순히 화만 내지 않았다. 그 얼굴엔 상처가 있었다, 화가 난 얼굴로 내게서 등을 돌린 그 눈에는 실망감이 가득 차 있었다.
강태산은 늘 이런 식이었다. 밀어내는 나를 자꾸 당기고, 손톱을 세워대는 나를 묵묵히 감내하고, 우리가 뭐라도 되는 것처럼 굴고.
“개새끼….”
내 한 몸 붙들고 사는 것도 힘든 내 인생에, 강태산은 많은 걸 바랐다.
나는 당장 나 혼자 살기도 벅차서 더 이상 내 인생에 누군가를 들이고 싶지 않은데, 강태산은 자꾸만 제 인생에 나를 당겨댔다. 혼자가 되기로 단단히 마음먹은 나를 자꾸 흔들어대면서, 강태산은 내 아픈 상처를 꿰매주겠다며 부단히 노력하기까지 했다.
그 애의 죽음이 떠오를 때마다 발작하며 우는 나를 끌어안고 입을 맞춰주는 건 늘 강태산이었다. 고객에게 손찌검을 당할 때마다 내 옷을 벗기고 약을 발라준 것도, 쪽방 구석에 몸을 뉠 적 그 애의 빈 담요가 손에 채일 때마다 화장실로 달려가 헛구역질하는 내 등을 두드려준 것도, 악몽에 시달려 끙끙대는 내 몸을 안아 들고 업소 밖 모텔에 데려가 내가 잠들 때까지 지켜보던 것도.
전부 다 강태산이었다.
나는 그 애가 죽기 전에 했던 다짐처럼 잘난 졸부 하나 꼬셔서 빚 다 청산하고 바깥사람들처럼 멀쩡하게 살 용기가 없다. 선택지조차 없는 인생을 흘러가는 대로 사는데도 힘들다. 그래서 난 강태산이 주는 마음이 벅찼다.
‘넌 보면 좀 답답해. 우리 같은 애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사랑이라도 많이 해둬야지.’
문득 귓가에 죽은 그 애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걔가 너 좋아하는 것 같은데? 빼지 말고 그냥 만나 봐, 도해영. 든든하잖아, 조폭 남친인데.’
그 애가 살아서 나랑 강태산이 이러고 있는 걸 보면 저렇게 말해줬을 거다. 걔는 그런 애니까, 사랑이라는 걸 해봤던 애니까.
만약 그 애가 죽지 않았다면, 그래서 언젠가 나한테 저런 말을 해줬다면, 그럼 난 강태산과 사귀고 있었을까?
어차피 일어나지도 않을 일임을 아는데도 나는 퍽 진지하게 머리를 굴렸다.
“아냐… 아무리 생각해도.”
애초에 네가 죽지 않았으면 내가 강태산이랑 안면을 트는 일도 없었을 거야.
“…….”
오늘따라 손아귀에 쥐어지는 그 애의 라이터가 유독, 그 애가 남기고 떠난 뼛가루의 무게만큼 가벼웠다.
“…은수야.”
아직도 난 두 눈을 감으면 그날의 일이 생생해, 은수야. 내 안에서 너는 아직도, 몇백 번이고 죽길 반복하거든. 내가 보는 앞에서 스스로 목을 조르고, 작게 부푼 배를 쥐어뜯으며 소리를 지르고. 이미 너는 이 세상에 없는데, 없어진 지도 벌써 5년이나 지났는데….
여전히, 아직도 익숙한 네 이름을 불러 보며 무릎 위로 얼굴을 묻었다. 내리감긴 내 눈앞으로 다시금 너의 죽음이 생생히 그려지고 있었다.
***
5년 전, 그날에 대해 기억나는 건 별로 없었다. 깨진 유리 조각처럼 몇 장면이 파편으로 남아 몸속 깊숙이 박혀있을 뿐.
나는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술에 취해 있었고, 마담은 일찍 업소 문을 닫고 가드들과 함께 시체를 처리하고 있었다. 로비에는 몸을 덜덜 떨며 우는 애들의 울음소리와 양주 진열장을 뒤지는 내가 있었다.
그 애를 그렇게 만든 남자의 앞으로 킵된 술병을 죄다 꺼내 입 안에 쏟아부으면서 웃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 애가 그렇게 죽어버린 게 믿기지가 않아서, 그깟 각인이 뭐라고 목을 맨 그 애가 이해가 안 돼서.
“씨이발, 다들 그만 쳐 울고 쪽방으로 들어가라고 했잖아!”
하필이면 그날은 업소를 지키는 조폭들이 대거 교체된 날이었다. 조직에서 일하던 습관을 못 벗었는지 곤봉을 휘두르며 소리를 질러대는 개 같은 조폭 새끼들 뒤로, 패닉에 빠진 오메가들을 방 안에 집어넣는 무리 사이에 강태산이 있었다.
“그만 마시고 정신 차려.”
팔뚝을 억세게 붙잡고 손에서 술병을 앗아간 강태산은 바닥에 엎어진 나를 무서운 얼굴로 노려보았다. 멋 좀 내보겠다고 왁스로 머리를 죄다 뒤로 넘긴 촌스러운 스타일도 재수 없었고 나를 빤하게 쳐다보는 저 짙은 눈도 싫었고 무엇보다도 정신 차리라는 말이 너무 짜증 났다.
이미 나락에 떨어진 삶을 사는 나한테 뭘 더 바라는데, 대체 네가 뭐라고, 방금까지도 살아있던 애가 목매달아 죽은 걸 본 내가 정신 차리기를 바라는 거냐고….
“이거 놔, 아직 다 안 마셨어.”
“네가 여기에서 제일 짬 찬 새끼라며, 가서 마담 좀 도와주든지 아니면 입 닥치고 방에 들어가 있든지 해.”
강태산은 나를 버러지 보듯 보고 있었다. 명령조의 목소리로 내뱉는 무심한 말투가 더더욱 내 속을 긁어댔다.
욕을 읊조리며 억세게 붙잡힌 팔을 마구잡이로 비틀어 빼냈다.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술병을 움켜잡곤 바닥 위로 억세게 내리친 것도 어쩌면 홧김이었다.
쨍그랑, 소리와 함께 두꺼운 유리 파편이 양주에 섞여 이리저리 튀어댔다. 유리 조각에 긁힌 뺨이 따끔거렸고 깨진 조각에 베인 손바닥이 욱신욱신 아려왔다.
강태산은 나보다도 더 강하게 유리 파편을 맞았는지 작게 찢어진 턱 끄트머리에서 금세 뜨거운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
그가 느릿하게 눈꺼풀을 깜박일 때마다 턱 아래로 피가 방울져 떨어졌다. 아무 말도 꺼내지 않는 놈의 얼굴을 뒤로하고, 축축한 바닥을 짚고 일어선 채 등을 돌렸다.
“들어가. 들어가서 치료부터 해.”
등 뒤로 우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혼자서 못 하겠으면 뒷문으로 나와. 병원 데려다줄게.”
나보다 더 큰 상처를 얼굴에 매단 놈, 그것도 나 때문에 턱이 찢어진 놈이 한다는 말이 저거였다.
나는 한껏 강태산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너무나도 선명하게 드러나는 동정심. 감정에 휘둘리고 자기 통제 하나 못 하는 어리석은 오메가를 향한 놈의 오지랖.
“네가 뭔데?”
5년 전, 강태산과 나는 그렇게 처음 만났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내게 동정심을 보이는 조폭 새끼와의 사랑도 우정도 뭣도 아닌 애매한 관계는 그렇게 시작된 거다.
어쩜 이렇게 수미상관일 수 있을까.
‘착각하나 본데, 너한테 동정심 바란 적 없어.’
내게 손을 뻗으려는 강태산, 그 손을 매섭게 쳐내는 나. 5년 전의 첫 만남과 다름없는 우리의 모습에 절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미 도해영 인생은 밑바닥에 처박혀 있는데, 돌이킬 수 없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 버린 채인데. 강태산은 도대체 내가 뭐라고 그렇게 자꾸만 손을 뻗어대는지, 나로선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 강태산을 내심 기다리고 있는 나 자신도 물론 이해가 안 됐고.
내가 휴가를 받았다는 얘기를 분명히 들었을 텐데, 갈 곳 없는 내가 가 있을 만한 곳이 늘 저랑 섹스할 때 콘돔 사러 오는 편의점이라는 걸 모를 리가 없을 텐데.
평소라면 얼굴 한 번 비췄을 강태산은 오늘따라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쪼잔한 새끼.
바스락거리며 바람에 흩날리는 봉투 속에 한쪽 손을 쑥 집어넣어 강태산에게 줄 담뱃갑을 움켜쥐었다. 놈처럼 우직한 흑백으로 디자인된 담뱃갑을 잠시간 노려보다 그대로 봉투 안으로 확 집어 던졌다.
“…나쁜 새끼.”
엉덩이를 손으로 툭툭 털며 자리에서 일어나 다 늘어난 봉투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차가운 돌 위에 너무 오래 앉아 있었는지 추위에 얼어붙은 엉덩이가 아팠다.
살 것도 샀겠다, 딱 하나 남은 담배도 맛있게 피웠겠다, 내 인생에 몇 없을 여유를 부리며 골목을 빙 돌아 천천히 걸었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밤공기는 퍽 시원했고 편의점 봉투는 걸음에 따라 내 허벅지를 툭툭 쳐댔다.
야트막한 빌라 몇 동과 싸구려 모텔 건물을 지나면 바로 사창가가 즐비한 골목이 이어진다. 눈이 아플 정도로 번쩍거리는 전구 간판과 적나라한 홍보 문구를 적어놓은 현수막을 지나면, 그중 검은 간판에 붉은 글씨로 한자가 새겨진 가장 부티 나는 건물이 바로 모란이었다.
세상 요란한 옆의 다른 업소에 비해 단정한 축에 끼는 목제 간판이 조금 심심해 보이기도 했다. 그 애 말대로 입구에 홍등을 몇 개 달아놓으면 꽤 예쁠지도 몰랐다. 오늘 마감이 끝나고 마담에게 은근슬쩍 어필을 해볼 생각이었다.
골목에 접어들자마자 이런 곳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세단이 엉거주춤 서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보통 저 정도 차를 타고 다니는 높으신 분들은 내리자마자 곧장 차를 보내기 마련인데, 눈치 없는 운전기사가 갈피를 못 잡고 여기 남아 있나 싶었다.
그대로 입구를 지나 건물 외벽을 따라 걸었다. 어쨌든 마담 말대로 고객에게 얼굴을 보였다간 휴가고 뭐고 더블 비용을 지불하면서 좆을 박아댈 인간들이 프런트에 득시글거릴 거였다. 휴가를 제대로 보내는 법도 모르지만 고대로 반납할 생각을 하니 절로 억울해졌다.
하필이면 모자나 마스크도 없이 얼굴을 그대로 드러내 놓고 나온 참이라, 내 얼굴을 아는 고위 고객 중 한 명이라도 마주친다면 그대로 붙잡혀 끌려들어 갈 게 뻔했다. 생각만 해도 진저리나는 상황에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졌다.
하지만 억센 손에 팔뚝이 붙잡힌 건 한순간이었다.
“-악!”
그대로 잡힌 팔뚝을 뒤로 잡아당기는 바람에 몇 걸음 질질 끌려갔다. 그 와중에도 등 뒤로 느껴지는 향수 냄새가 누구의 것인지 기억해내려고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거칠게 몸이 돌려진 순간 마주한 얼굴은 내 데이터에 없는 사람이었다.
“…저기,”
“…….”
“누구세요?”
싸늘하게 굳은 얼굴이 내 물음에 더더욱 험악하게 구겨졌다. 아무래도 이 남자가 스스로 정체를 밝힐 일은 없겠지 싶어, 나는 머릿속에 저장된 고객 리스트를 착 펼친 채 유심히 남자를 살피기 시작했다.
수트를 갖춰 입은 남자의 몸은 위압감이 느껴질 정도로 컸다. 업소 안에선 강태산을 비롯한 몇 가드들 다음으로 키가 큰 편이라 누군가를 올려다보는 일이 별로 없는데 이 남자는 그런 나보다 키가 두 뼘이나 컸다.
운동깨나 한 몸인 듯 팔뚝과 허벅지 부분의 원단이 팽팽하게 뻗친 것은 물론이고, 가슴팍은 남이 봐도 답답할 정도로 딱 붙은 와이셔츠가 몸의 윤곽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이러니까 내가 사족을 못 쓰고 질질 끌려가지….
충분히 위협적인 낯선 남자의 몸을 다 살피고 나서야 그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짙은 눈썹과 도드라진 눈썹뼈, 우뚝 솟은 콧대는 강한 선이 돋보이는 매력적인 남성성을 뿜어내고 있었다. 강인한 턱선 때문에 살짝 팬 볼과 도톰한 입술은 섹시해 보이기까지 했는데, 험악하게 찌푸린 표정이 묘하게 잘 어울리는 이국적인 이목구비였다.
머릿속에 활짝 펼쳤던 고객 리스트를 덮으며 눈동자를 도르륵 굴렸다. 이렇게까지 섹시한 남성성이 온몸에 철철 흐르는 알파를 상대했었다면 절대 잊을 리가 없었다.
그럼 도대체 어디서 본 거지? TV에서 본 건가? 이 사람, 알고 보니 유명인 아냐?
그런데 저 남자의 눈이 자꾸만 걸렸다. 분명히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다. 그냥 본 게 아니라, 면대면으로 마주한 기억이 있는 눈빛이었다.
미간을 살포시 좁힌 채 열심히 고민하는 내 앞으로, 남자는 당장이라도 나를 죽여버리겠다는 것 같은 짙은 눈매로 노려보고 있었다. 차츰 그 뜨거운 시선이 익숙해질 무렵, 내게 따지듯 묻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쪽, 여기서 일해?”
그는 내 머리 위에 달린 검은색 간판을 노려보았다. 그 목소리나 시선에는 분명 경멸이 담겨 있었다. 아무리 밑바닥 인생을 살고 있는 나라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런 시선을 받을 필요는 분명 없었다.
남자의 손에 붙잡힌 팔뚝을 확 빼내며 비뚜름하게 답했다.
“그런데요.”
내 대답에 남자가 한숨을 쉬었다. 무슨 골칫거리를 맞닥뜨린 것마냥 미간을 구기고 쯧, 혀를 차는 소리를 냈다. 그 광경을 보자니 화는커녕 웃음이 터졌다. 이딴 식으로 나를 대하는 놈이 한둘이어야 말이지.
“웬만하면 탑급은 예약해야 되고 나머지는 현장 초이스도 돼요.”
“…….”
“근데 나도 탑급이라 예약해야 되는데. 그래도 당장 하고 싶으면 돈 더 내요. 그럼 마담이 받아줄걸?”
한껏 웃는 낯으로 서비스를 발휘했다. 업소의 시스템에 대해 친절히 설명하는 나를 쳐다보는 남자의 얼굴엔 ‘뚫린 게 입이라고 잘도 말한다’라고 적혀 있었다.
“나 잘해요. 돈만 주면 그쪽이 원하는 플레이 다 해줄 수 있어요. 맞는 것도 잘하고, 손목 발목 다 묶고 하는 것도 허리 꺾어가면서 자지러지게 울어요. 나랑 한 번 하면 절대 내 몸 못 잊을―”
“관심 없어.”
“근데 왜 사창가에 왔는데요? 그쪽도 다른 아저씨들처럼 돈 주고 떡 치러 온 거 아닌가?”
상스러운 말을 뱉어낼 때마다 눈썹을 움찔거리는 게 보기보다 비위가 약한가 싶었다. 나를 더러운 몸 취급했겠다 아예 할 말 못 할 말 안 가리고 막무가내로 내뱉는데, 기세 좋게 나를 붙잡아 세운 이 남자는 당장 내게 찍소리도 못했다.
“이런 거에 관심은 없는데 왜 사창가엔 굳이 찾아오고 그러셨어요? 볼일 없음 갈 길 가세요, 그냥.”
웃음기를 싹 뺀 원래 목소리로 쏘아붙이곤 그대로 등을 돌렸다. 남자는 아까처럼 내 팔뚝을 붙잡지도 않았고 날 때리지도 않았다.
“내가 어떻게 해야 네가 이 일을 그만둘 수 있지?”
대신 남자는 이상한 말로 내 걸음을 멈춰 세웠다.
“뭐라고요?”
방금 무슨 소리를 들은 건지 귀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몸을 돌려 말 같지도 않은 말을 꺼낸 당사자를 쳐다봤다. 남자는 입술을 꾹 다문 채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도저히 저 남자가 했다고는 믿기지 않는 말이라 나는 헛웃음을 뱉었다.
“이젠 하다 하다 헛게 다 들리네.”
“제대로 들은 것 같은데. 다시 말해줘야 하나?”
남자는 내 혼잣말에 친히 대답해주기까지 했다. 나를 쳐다보는 남자의 얼굴을 노려보고 있자니 머리에 떠오르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강태산.
어쩌면 강태산이 과하게 나를 감싸려 드는 게 이상한 현상이 아닐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나는 처음 보는 남자에게서 ‘네가 몸 파는 일을 그만할 수 있게 돕겠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안쓰럽고 불쌍해 보이는 사람인 거다. 내 비쩍 마른 몸과 조막만 한 얼굴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심장을 가진 인간인 이상 구제해주고픈 마음이 자연스레 들 수밖에 없다는 거다.
그렇지 않고서야 길 가다 외딴 남자한테 붙잡혀서 이런 소리를 듣고 있을 이유가 없지 않겠냐고.
그러나 동정은 내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 더러운 몸이라며 경멸의 시선을 받는 쪽이 오히려 익숙했다.
“돈이 문제면 해결해줄 수 있어.”
“그쪽이 무슨 상관인데요.”
“상관있어.”
입술로는 허튼소리를 내뱉으면서도 남자의 눈은 강경했다. 자꾸만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짙은 눈을 잠시간 쳐다보다 그대로 몸을 돌려 걸었다. 대화가 이런 식으로 흐른다면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눌 것도 없었다.
“내 말 들어. 이 일 그만둬.”
성큼성큼 다가온 발소리에 이어 단단한 손아귀에 팔뚝이 붙잡혔다. 아까는 말로 나를 붙잡아 세우더니 이번엔 무력을 사용한 셈이었다.
“대체 그쪽이 뭔데 나한테 이래요?”
“그쪽 아니고, 차도헌.”
“네, 잘나신 차도헌 씨, 당신이 뭔데 나한테 이러냐고요.”
또박또박 남자의 이름을 읊으며 대꾸하자 그는 아예 다른 쪽 팔뚝마저 꽉 붙잡더니 내 몸을 제 쪽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남자가 붙잡아 끌어당기는 대로 종이 인형처럼 팔랑팔랑 끌려가는 몸이 이토록 증오스러울 수가 없었다. 가까워진 거리에 남자는 내 키에 맞춰 시선을 내리깔았다.
“나 돈 많아.”
“난 빚 많아요.”
“얼마나 있는데?”
“당신이 가진 재산보다 많을걸?”
또박또박 대답하는 내가 심히 남자의 성질을 긁었는지 남자는 냅다 붙잡고 있던 내 팔뚝을 놓아버리곤 그대로 등을 돌려 모란으로 들어가 버렸다.
“또라이 새끼 아냐, 저거….”
행여 업소를 난장판으로 뒤집어 놓을까 걱정이 되어 남자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려다 바보 같은 생각임을 깨닫고 멈춰 섰다. 아무리 덩치가 크고 몸이 좋은 남자라지만, 저 안엔 허벅지에 칼을 차고 다니는 조폭들이 득시글거리니 굳이 내가 나설 필요는 없었다.
내 구질구질한 인생에 평범한 휴가는 존재조차 할 수 없는 거였나보다. 언제 떨어트렸는지 모를 편의점 봉투를 주워들고 업소 건물 끄트머리에 등을 기댄 채로 털썩 앉았다.
얇은 트레이닝 바지 너머로 울퉁불퉁한 아스팔트 바닥이 엉덩이를 짓눌렀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가 온몸을 얼려 버리기 전에 후딱 담배 한 대만 태우고 들어갈 생각이었다.
그 전에 차도헌이라는 그 남자가 우리 업소 조폭들에게 붙잡혀 쥐어 터지는 꼴을 구경할 수 있다면 더 좋고.
바람에 부스럭 소리를 내는 비닐 봉투에 손을 쑥 집어넣어 담배를 찾았다. 각진 모서리 여러 개가 만져지는 와중에 이게 내 담배인지 강태산에게 줄 담배인지 알 수가 없어서 오므라진 봉투 모가지를 확 벌렸다.
우렁찬 바스락 소리와 함께 눈에 익은 케이스를 집어 드는데 바로 머리통 위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거 피워?”
분명 조폭들한테 얻어터지고 나올 줄 알았는데 생채기 하나 없는 멀쩡한 얼굴로 내 앞에 쭈그려 앉은 차도헌은 내 손에 들린 담배를 쳐다보며 어울리지 않게 실없는 말이나 해대고 있었다.
“난 그거 향이 너무 옅어서 별론데.”
“어쩌라고요.”
“뭐, 취향이니까.”
그러고는 씩 웃어 보인다.
대체 어느 타이밍에서 웃는 건지, 우리 대화에 재미있는 부분이라는 게 있기는 했는지 나로선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당장 몇 분간 이 남자를 상대해 본 결과로 무시해버리는 편이 현명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운수도 지지리 없지. 평생에 손꼽을 휴가 날 또라이와 상대하고 있는 나 자신이 불쌍해지기 시작했다.
아까부터 줄곧 나를 죽일 듯이 쳐다보는 차도헌의 시선을 무시하면서 담뱃갑을 감싼 비닐 포장을 북 뜯어 봉투 안에 버렸다.
케이스를 열어 빽빽이 들어찬 담배 중 한 개비를 집어 입술에 물곤 트레이닝 바지 주머니를 뒤져 라이터를 꺼냈다. 찰칵, 불이 붙음과 동시에 담배 끄트머리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한 모금 깊숙이 빨며 차도헌의 얼굴을 쳐다보는데 그 눈은 여전히 나를 향해 있었다.
“뭘 쳐다봐요.”
불퉁하게 묻곤 입술을 동그랗게 모아 긴 숨을 뱉어내고 다시 담배를 물었다. 혀끝에 맴도는 알싸한 향이 숨을 들이쉴 때마다 뇌까지 파고드는 기분이었다. 익숙한 감각에 두 눈을 깜박이며 마저 깊숙이 담배를 빨았다.
“그거 맛있어?”
“어. 존나.”
짤막한 대답을 툭 던지곤 남자의 얼굴을 향해 연기를 훅 내쉬었다. 내 도발에도 차도헌은 여전히 입꼬리에 웃음기를 매단 채 날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이제 말 놓네?”
“너도 초면에 말 놨잖아.”
담배를 입술에 문 채로 말하느라 발음이 조금 뭉그러졌다. 차도헌의 시선이 내 입술께로 천천히 내리깔렸다. 그리곤 내 입술에 물린 담배를 뺏어가 제 입술에 물었다.
몇 모금 남짓 남은 담배가 차도헌의 입술에 물린 채 차츰 새빨갛게 타들어 갔다. 이 캄캄한 밤에도 담배를 가볍게 쥔 왼손이 유독 반짝인다 싶었는데, 커다란 보석이 박힌 반지가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져 있었다.
애인도 있을 아저씨가 이런 데 와서 나한테 왜 이러는지 싶다가, 곧 업소를 찾는 대부분의 인간이 유부남임을 깨닫곤 납득의 과정을 끝냈다.
이윽고 얼굴 앞으로 매캐한 연기가 훅 뿜어졌다. 차도헌은 물고 있던 담배를 아스팔트 위로 내던지고는 비뚜름한 웃음을 지은 채 말을 꺼냈다.
“우리 초면 아닌데?”
“그쪽이랑 잔 기억 없는데.”
“침대 위에서 본 게 아니니까.”
딱딱한 호선을 그렸던 남자의 입꼬리가 차츰 원래의 위치로 되돌아갔다. 무표정보다는 오히려 분노에 가까운 얼굴을 쳐다보면서 나는 새 담배를 꺼내 물었다.
내가 이 남자를 어디서 봤을 리가 없다. 게다가 저렇게 큰 보석을 손가락에 끼고 다니는 남자라면 내가 안 꼬셨을 리 없다고.
그렇다면 이 개 같은 상황의 답은 하나뿐이다. 차도헌이 만났다는 남자는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인 거다. 거기에 하나 덧붙이자면 지금 차도헌은 애먼 사람 붙잡고 뻘짓하고 있는 거고.
“나 기억 안 나?”
“어.”
짤막하게 대답하며 라이터를 켰다. 하지만 채 담배에 불을 붙이기도 전에 차도헌은 내 입술에 매달린 담배를 빼앗아 바닥에 던졌다.
“실망인데.”
차도헌이 작게 읊조림과 동시에 시야가 확 어두워졌다. 일순간에 퍼진 짙은 색의 페로몬이 내 숨을 조르고 있었다. 기도에서부터 시작된 화끈화끈한 열기가 곧장 아랫배를 관통했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닦을 새도 없이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앞섶을 움켜쥐었다.
“아흑!”
옴짝달싹도 못 한 채로 나는 차도헌이 쏟아내는 페로몬에 절여지기 시작했다. 생리적인 쾌감에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차츰 젖기 시작한 구멍에서 울컥 체액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이래도 기억 안 나?”
분노에 가득 찬 낮은 목소리가 내 귓가에 그르렁대고 있었다.
씨발…. 나 자신이 이렇게까지 멍청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그쪽, 극우성인가?’
‘…….’
‘대답해, 당신 극우성 오메가 맞냐고!’
흉흉하게 치솟은 페로몬, 손목을 강하게 움켜쥔 뜨거운 열기, 그리고 나를 죽일 듯 노려보는 새카만 눈동자.
당장 며칠 전에 당했던 일을 새까맣게 잊어버렸다니, 답지 않게 안일했던 셈이었다. 가쁜 숨을 겨우 삼켜 물며 이를 악물었다. 덜덜 떨리는 무릎을 가까스로 오므리며 나는 흐트러지기 시작하는 정신을 억세게 움켜잡았다.
경계를 했어야 했다. 그냥 단순한 또라이 새끼라고 생각한 내가 병신이었다. 저 눈을 어떻게 잊을 수 있지, 당장 내 목을 졸라 죽여버리겠다는 것도 모자라 내 사지를 찢어발겨 불태운다 한들 사라지지 않을 정도로 분노가 들어찬 저 눈을 어떻게 까먹을 수 있지?
“찾느라 고생 좀 했어.”
“흐… 으, 윽….”
“설마 사창가에 숨어 있을 줄은 몰랐지.”
차도헌의 목소리에 분노가 깃들수록 페로몬은 점차 짙어졌다. 간헐적으로 묵직하게 강타하는 쾌감이 뱃속을 휘저을 때마다 나는 허리를 비틀며 아스팔트 바닥에 엉덩이를 부벼댔다. 당장이라도 바지를 벗어젖혀 아래를 쑤셔대고 싶었다.
“하, 으응- 제발…!”
허벅지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 젖어가는 골 사이를 손으로 움켜쥐었다. 두 눈을 질끈 감은 채로 팽팽하게 부푼 바지 앞섶을 주무르면서 음부를 꾹꾹 눌러댔다. 그 자극만으로 저릿저릿하게 뇌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눈물이 맺혀 흐릿해진 시야로 차도헌의 얼굴을 찾았다. 차도헌은 미간을 구긴 채로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길바닥에서 섹스하는 취미는 없어.”
냉담한 목소리에 이어 온몸을 옥죄던 페로몬이 한순간에 거둬졌다. 콱 막혔던 기도로 산소가 꾸역꾸역 밀고 들어오는 불쾌한 기분에 허리를 반쯤 접어가며 기침을 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내자 쾌감에 절어 멍했던 정신이 느릿하게 돌아오기 시작했다.
돌연 짜증이 확 끼쳤다.
“씨발, 지금 뭐 하자는 거야?”
“나를 기억 못 하길래.”
“개또라이 싸이코 변태 새끼….”
아직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 불룩한 앞섶을 양손으로 가리며 인신공격을 해댔다. 당장 손이든 발이든 날아와 걷어차일 줄 알았는데 차도헌은 침착하게 입고 있던 재킷을 벗었다. 그 꼴을 보고 있자니 아주 옷 벗고 제대로 주먹질을 하려나 싶었다.
저 덩치에 맞으면 꽤나 아플 게 분명했다. 한쪽 눈을 질끈 감으며 몸을 웅크리는데, 갑자기 천이 펄럭이는 소리와 함께 시야가 일순간 깜깜해졌다.
“입어. 보기 흉해.”
상체를 다 덮다 못해 얼굴까지 덮어버린 재킷을 콱 움켜잡아 내렸다. 저 상종하기도 싫은 인간의 옷을 입는 건 단순히 열기가 가신 몸에 몰아치는 밤바람이 쌀쌀하기 때문인 거다, 스스로 합리화를 해가며 재킷의 팔 구멍을 찾았다. 손등을 덮다 못해 손끝이 겨우 보일 정도로 큰 재킷을 꿰어 입자 한기가 조금 가셨다.
“개싸가지.”
아까 못다 한 인신공격을 마저 마치며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겨우 일으켜 세웠다. 엉덩이를 훌쩍 가리는 기장에 차도헌의 말대로 발기한 건 제대로 가릴 수 있겠다 싶었다.
다시금 엇비슷해진 시야에 차도헌은 재킷에서 작은 종이 쪼가리를 꺼냈다.
“내일 저녁 7시. 이 앞으로 차 한 대 보낼 테니까 시간 맞춰서 나와.”
차도헌이 내민 명함 앞에서 내 얼굴은 싸하게 식어갔다. 어쩐지 나보고 일하라 마라 큰소리치더니, 이 새끼도 결국 전용 남창 구하는 놈에 불과했구나 싶었다.
“싫어.”
단번에 거절을 뱉으며 등을 돌렸다. 더 들을 것도 없었다. 난 여기서 죽을 때까지 일을 해야 하는 몸이었다. 아무리 탐나더라도 고작 한두 푼으로 나를 사갈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만큼 셀 수도 없는 빚에 깔려 허덕이고 있으니까.
차도헌은 막무가내로 내 손목을 억세게 붙잡아 손아귀 사이로 자신의 명함을 구겨 넣었다.
“도착 전에 이 번호로 전화 갈 거야.”
“너 안 따라간다니까? 그리고 내 번호는 어떻게 알았는데?”
붙잡힌 손을 확 쳐대며 빼냈다. 내 형질을 빌미로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건진 모르겠지만 당장 몸은 이 업소에 묶여 있었고 내 신상은 진작 사채업자와 조폭들에게 널리 퍼져있는 상태였다. 저놈이 쉽게 따라와라, 마라 할 게 아니라는 거다.
“난 너 못 따라가. 빚 갚을 때까지 여기서 썩어야 돼.”
손에 쥐어진 명함을 도로 돌려주면서 나름 설명하는 투로 말을 덧붙였다. 늘 갖고 싶은 건 다 가질 수 있고 고난과 역경 따위 주변에서 싹 다 치워주는 삶을 살아가는 부잣집 도련님은 이 세계를 전혀 모를 테니까.
그런데 나를 쳐다보는 차도헌의 얼굴엔 ‘이딴 바보가 다 있나’가 적혀 있었다. 정작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는 건 자기면서, 차도헌은 골이 아프다는 얼굴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되레 내게 화를 냈다.
“지금 상황파악이 안 돼?”
“상황파악 못 하는 건 그쪽 같은데.”
재킷 호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으며 비딱하게 섰다. 험악한 인상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는 이 도련님이 무슨 말을 꺼낼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내일. 짐 다 챙겨서 나와.”
차도헌은 내 손에 제 명함을 도로 쥐여주며 앵무새처럼 아까 했던 말을 반복했고,
“차도헌 씨, 내 세상은 우긴다고 들어주고 그러지 않아.”
나는 세상 물정 모르는 놈에게 내가 사는 세상의 이치를 일깨워줬다.
한참 동안 정적이 흘렀다. 차도헌은 내 말에 대꾸도 않곤 입술을 꾹 다문 채였다. 놈의 잠잠한 태도에 이제야 말이 통하나 싶었다. 줄곧 나를 응시하던 차도헌은 관자놀이를 짚던 손을 내려 천천히 팔짱을 끼곤 느긋한 태도로 나름의 긍정을 표했다.
“…그래.”
기세등등하던 남자가 굽히는 꼴을 보다니 좀 미심쩍긴 했지만.
“나 보고 싶으면 프런트에서 예약 잡든가.”
“그러지.”
대인배처럼 구는 내가 웃긴지 차도헌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러곤 한 발짝 걸어와 내 앞에 바짝 서더니 줄곧 느슨하게 쥐고 있던 명함을 내 손에서 빼앗았다.
“잃어버리지 마.”
귓가에 읊조리는 목소리에 목 뒤로 소름이 끼쳤다. 차도헌은 내가 걸치고 있는 재킷 호주머니 깊숙이 제 명함을 넣었다. 살짝 스친 시선에도 차도헌의 눈엔 살기가 비쳤다.
이내 차도헌은 내게서 등을 돌렸다. 사창가 골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남자가 서서히 내게서 멀어져 갔다. 어두컴컴한 골목 끝자락에서 메아리처럼 울려오는 차 엔진 소리에 나는 차도헌이 내 세상에서 사라졌음을 직감했다.
돌연 어둡고 음습한 이 골목에 이상한 형태의 평화가 내리 앉았다. 그저 차도헌 하나가 사라졌을 뿐인데, 내 마음은 수면처럼 잠잠해졌다.
“해영아, 너 대체 무슨 짓을 벌인 거니? 응?”
대문을 벌컥 열고 뛰쳐나온 마담이 내 손목을 붙잡고 방으로 데려가기 전까지 말이다.
***
작은 접대용 방 안에 나를 밀어 넣은 마담은 문을 걸어 잠그곤 곧장 냉수부터 들이켰다. 그간 마담이 이렇게까지 불안해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는데, 아무래도 아까 차도헌이 업소를 뒤집어 놓았을 것이 분명했다.
한쪽 다리가 무너져 내려앉은 소파에 나를 앉혀놓곤 마담은 양손을 허리에 짚은 채로 추궁을 시작했다. 나를 내려다보는 마담의 얼굴은 분명 패닉에 질려 있었다.
“대체 뭐 하는 놈이니, 쟤?”
“잘 모르는데….”
“얘, 독사야, 눈이. 응? 사람 눈이 아니야.”
마담은 들고 있던 생수통을 테이블 위에 던지듯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 그녀의 목소리엔 조급함마저 담겨 있었다.
“내 고객 중에 그런 사람은 없었어, 해영아. 응? 도대체 아까 그 남자는 어떻게 만났니?”
“길 가다 만났는데요.”
긴박한 마담의 목소리와는 반대로 내 대답은 그야말로 맥 빠지는 거였다.
“해영아, 장난치지 말고 바로 말해.”
“진짜 길에서 만났는데….”
나로선 좀 억울하기까지 했다. 차도헌을 처음 만났던 그 날도 그렇고 당장 오늘도 그렇고, 따져보면 두 번 다 길바닥에서 만난 건데….
내 표정을 읽은 마담은 한숨을 쉬며 쓰러지듯 소파에 털썩 몸을 뉘었다. 그녀는 골이 아픈지 연신 눈썹뼈 부근을 엄지로 꾹꾹 누르며 한참이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 마담의 상태를 보고 있자니 차도헌이 웬만한 조폭 짓 이상을 했다는 결론밖엔 나오지 않았다.
…혹시 그 새끼 사람 죽인 거 아냐?
“왜요, 그 사람이 들어와서 깽판 치고 그랬어요?”
“아니.”
“그럼 협박? 공갈? 폭행? 아님 마담보고 업소 접으래요?”
차도헌이 정확히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걱정이 된 나머지 꼬치꼬치 캐묻는 내게 마담은 대답할 여력도 남아 있지 않은 듯 이따금씩 냉수만 마셔댔다.
슬슬 불안감이 밀려오고 입술이 바짝바짝 탔다. 침묵을 유지하는 마담 덕에 이제 나도 그녀만큼이나 패닉에 빠질 지경이었다.
차도헌이 나를 건드리는 건 상관없었지만 나 때문에 마담이 피해를 입는 건 싫었다. 재킷 호주머니 안에 손을 쑥 집어넣어 아까 차도헌이 준 명함을 움켜쥐었다. 이러라고 준 건가, 억센 손아귀 틈에서 구깃해져버린 명함을 엄지로 꾹꾹 눌러 펴면서 명함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마담을 좀 진정시키고 난 후에….
“네 빚, 다 갚고 갔어. 그 남자가.”
하지만 마담의 목소리가 들려온 순간 재빠르게 굴러가던 머리통이 한순간에 고장 나버렸다.
“뭐라고요?”
별안간 두 다리에 힘이 실렸다. 외마디 비명처럼 짤막한 문장을 내뱉고 나니 어느새 나는 소파에서 내려와 바닥에 발을 딛고 일어서 있었다.
“그 새끼가 뭘 했다고요?”
“네가 진 빚, 전부 다 갚고 갔어. 그래서 내가 물어본 거야, 해영아. 그 남자 어떻게 아는 사람이냐구.”
머리가 지끈 울렸다. 예전에 내 장기를 파먹어버리겠다며 쫓아오는 사채업자들을 피해 도망 다닐 적에 결국 붙잡혀 파이프로 머리를 맞은 적이 있었다. 지금 딱, 아니 그때보다 더 뇌가 쥐어 터지는 듯 두통이 일었다.
“빚 액수 물어보더니 금방 사람 시켜서 돈가방 가져오더라. 이런 건 정확하게 해야 한다면서 지폐계수기 꺼내서 돈 다 세고 갔어.”
차분하게 말을 이어가는 마담의 목소리가 차츰 멀어지기 시작했다. 지극히도 현실성 없는 이야기였다. 아무리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빚을 다 갚아줄 정도로 돈이 많다 한들, 차도헌이 내게 그럴 이유도 연고도 없었다.
차갑게 식어버린 손에 식은땀이 뱄다. 어이없고 당황스러움을 떠나서 화가 치솟았다.
“마담이 봐도 내가 그렇게 불쌍해 보여요?”
너무 화가 나서 눈앞이 벌겋게 보일 지경이었다. 이가 딱딱 부딪히고 몸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붉게 열이 오른 두 눈꺼풀을 적시는 게 눈물이 아니라 차라리 핏줄기였으면 좋겠다. 바보같이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나를 보며 마담은 담배를 꺼내 물었다.
“내가, 내가 그렇게 불쌍한 새끼예요?”
그 돈은, 그 빚은, 내가 평생 몸을 굴려도 갚지 못할 액수였다. 매달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이자에 거지 같은 업소 쪽방에서 숙식하는데도 단단히 바가지를 씌운 생활비, 이런저런 이유를 대가며 감액되는 월급이자 곧 내가 몸을 팔아서 번 돈, 그것도 전부 꾸역꾸역 빚을 갚아내느라 수중에 몇 떨어지지도 않는, 개 같은 돈, 돈, 돈.
어차피 다 갚지 못할 걸 아니까, 나는 평생 이 짓거리를 해야 하는 걸 아니까, 그래서 진작 체념하고 그냥 이렇게 살아보려고, 죽지만 않고 그냥 이렇게만 살아보려고 그렇게 버둥거렸다.
업소에서 도망쳐 나갔다가 조폭 손에 머리채가 붙잡혀 죽기 직전까지 맞고 쪽방으로 기다시피 들어왔던 애들에게 약을 발라줄 때도, 손이 더러운 개 같은 고객 새끼들한테 매번 얻어터지다 결국 죽기 직전까지 뒤를 뚫리며 과다출혈로 죽어버린 애들의 죽은 몸을 마담과 함께 정리했을 때도.
심지어 임은수가 목을 매 자살했을 때조차도 나는 이 바닥에서 살아남으려고, 그깟 빚이 뭐라고 나는 그렇게 진흙탕 속에서 숨을 쉬어보려고 애를 썼는데.
그 개 같은 새끼는 고작 길바닥에서 두 번 마주친 내 뒷덜미를 움켜쥐고 단 한순간에 이 늪에서 나를 건져 올려버렸다.
“그래서, 그 새끼가 나 이제 일하지 말래요?”
“…….”
“그랬나 보네.”
마담은 대답하지 않았다. 비참해진 기분으로 소파에 툭 몸을 뉘었다. 좁은 응접실엔 차츰 담배 연기가 가득 찼다. 마담이 마시다 남은 생수통을 집어 뚜껑을 뜯었다. 몇 모금 마시다 동이 난 빈 플라스틱을 까드득 소리 나게 구겨 뚜껑을 닫자 마담은 어느새 내 앞에 새 생수를 가져다주었다.
“이렇게 보내는 건 처음이죠.”
“이런 일이 흔하면, 내가 지금 이런 얼굴이겠니?”
마담이 운다. 탑이었던 애가 자살한 뒤 시체를 치우고 장례를 해줄 때도 울지 않았던 마담이, 내 빚이 단 한순간에 사라진 이 순간에, 더 이상 내가 여기서 몸을 굴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마담은 울었다.
“해영아.”
눈물이 범벅된 얼굴로 마담이 마른 팔을 어색하게 들어 올렸다. 영문을 모른 채 가만히 서 있는 내게 킁, 코 먹는 소리를 내며 마담이 입술을 달싹였다.
‘이리 와, 해영아.’
제대로 본 게 맞다면, 아마 그런 말이었을 거다.
나는 그대로 소파에서 일어나 좁은 응접실 바닥에 발을 딛고 섰다. 반 발짝 마담을 향해 걸으면서 바보같이 또 눈물이 났다. 마담이 그랬던 것처럼 허공에 두 팔을 들어 올려 또 반 발짝 걸었다.
그제야 나는 마담의 품에 안겼다. 어쩌면 마담이 내 품에 안긴 걸지도 몰랐다. 내 품 안으로 고꾸라지는 마른 몸을 받쳐 들고 나는 서투르게 마담의 등을 토닥였다. 마담은 내 어깨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울었다.
***
몇 없는 짐을 챙기는 데에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루 꼬박 날을 새 가며 짐을 꾸린 시간의 대부분은 내가 지니고 있는 그 애의 유품을 챙기느냐 마느냐에서 오는 딜레마였다.
그 애가 자주 입던 옷가지와 매일 덮고 자던 담요를 차곡차곡 개면서 나는 몇 번이고 입술을 짓씹었다.
“…너는 왜 또 하필 납골당에 자리도 없냐.”
그 애의 뼛가루가 담긴 작은 항아리를 쳐다보면서 나는 종종 죽은 그 애에게 말을 건넸다.
“이거 다 두고 가면 너 모르는 애들은 뭔지도 모르고 막 버리고 그럴 거 아냐.”
모서리가 다 해진 가방에 넣었다가 뺐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걸 다 챙기는 건 아닌 것 같아서 몇 개만 덜어서 넣었다가 다시 뺐다가.
“그냥 다 두고 갈까? 너 잠자리 예민하잖아.”
다시 도로 장롱 안 깊숙이 숨기듯 넣었다가, 다시 빼서 가방 안에 넣었다가.
“근데 나, 그 새끼가 날 금방 버릴지도 모르는데.”
결국엔 아예 가방을 뒤집어 안에 든 것을 탈탈 털어버리고 마구잡이로 동그랗게 뭉쳐 품에 끌어안았다. 쪽방의 딱딱한 장판에 털썩 누워 낮은 천장을 쳐다보고 있자니, 짐을 다 싸지도 못했는데 냅다 졸음이 밀려왔다.
은수야, 진짜 세상일 모른다, 그치? 이 남자가 내 빚을 다 갚아줬대. 네가 그렇게 부잣집 할배 꼬셔서 이 짓거리 그만하겠다고 할 때 내가 너한테 뭐라고 그랬어, 소설 쓰지 말라고 그랬잖아. 근데 그런 일이 나한테 일어나네. 은수야, 사람 사는 거 진짜 웃기다.
차라리 이 남자가 너를 만났으면 좋았을걸. 아, 너는 열성이니까 너한텐 반응 안 했으려나. 그래도 이 남자처럼 너한테 그럴 사람이 있었을 수도 있잖아. 나 같은 애한테도 그런 또라이 같은 새끼가 붙는데.
조금만 늦게 죽지 그랬어, 은수야. 왜 그렇게 쉽게 포기했어.
“진짜, 진짜 재수 없어….”
괜스레 시큰거리는 눈가를 손등으로 벅벅 문질렀다. 나 두고 혼자 죽어버린 임은수가, 재수 없을 정도로 착하게 구는 강태산이, 얼굴에도 온몸에도 피멍이 잔뜩 든 지해가, 그리고 나를 끌어안고 울던 마담의 얼굴이 자꾸만 뜨겁게 달아오른 두 눈알 안에 꾸역꾸역 차올랐다. 이젠 이유도 모르게 온몸이 쑤실 정도로 눈물이 나왔다.
그렇게 바보같이 꼬박 밤을 새웠다.
***
겨우 짐을 다 쌌다. 그 애의 유골함은 마담에게 부탁해 응접실에 두기로 했고, 그 애가 쓰던 물품들은 지해에게 잘 챙겨달라는 쪽지를 남겨 장롱 안에 넣어두기로 했다.
“혹시 그 남자한테 맞고 그러면 여기로 와, 해영아. 내가 숨겨줄게.”
어제 그렇게 울어놓고 마담은 짐을 챙겨 들고 쪽방에서 나오는 나를 보며 다시금 코를 훌쩍였다.
“옷 얇게 입고 다니지 마요. 감기 걸려.”
마담이 걸치고 온 얇은 카디건 앞자락을 여며주며 부러 가벼운 목소리를 냈다. 지금으로선 무슨 꿍꿍이로 차도헌이 나를 데려가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만큼, 다시 모란에 돌아올 확률도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이 마담의 얼굴을 보는 게 마지막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부디 마담도 그렇게 생각하길 바랐다.
좁고 기다란 복도를 마담과 팔을 부딪치며 천천히 걸었다. 유리창 끄트머리에서부터 돌돌 말려들어 간 암막 시트지 틈 사이로 어스름한 햇빛이 스몄고, 그 아래 밝은 갈색으로 비치는 마담의 머리칼이 공중에 떠다니는 먼지와 함께 살랑살랑 춤을 췄다.
느긋한 마담의 발걸음에 질질 끌리는 뮬의 굽 소리와 그 옆을 따라 걷는 내 슬리퍼가 사박이는 소리가, 그렇게 차츰 아득해졌다.
카운터 홀과 이어지는 복도 끝자락에 다다라서야 마담은 걸음을 멈춰 세웠다.
“해영아, 잘 살아.”
“…마담도요.”
코 먹은 목소리로 말하던 마담은 내 대답에 싱긋 웃었다. 거기에 맞춰 어색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마담은 어제 그랬던 것처럼 깡마른 팔뚝을 들어 올렸다. 어제보단 조금 더 익숙하게 마담의 품에 안기며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단 한 번도 엄마라는 걸 가져본 적 없었지만, 왠지 엄마가 있다면 이런 향기가 날 것만 같았다.
때르르릉―
여럿 맞춰 놓은 알람이 쪽방 안쪽에서 정신없이 울렸다. 부산스럽게 몸을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복도 불이 하나둘 켜졌다.
어스름한 조명이 마담의 얼굴 위로 내려앉았고, 마담은 나를 끌어안은 팔을 내리며 포옹을 풀었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오냐.”
욕실 바구니를 들고 슬리퍼를 질질 끌며 복도를 지나가면서 애들은 허리 숙여 마담과 내게 인사했다. 업장 뒷문과 이어지는 우리 전용 목욕탕에선 버글버글 떠드는 소리가 웅웅 울렸다.
차도헌과 약속한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별거 들어있지도 않은 가방을 움켜쥐곤 마담을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내 어깨를 가볍게 두어 번 두드리는 마담의 손에 분명 아까까지도 가벼웠던 가방이 갑자기 무거워졌다.
가기 싫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기도 했다. 더 이상 빚에 허덕여 냄새나는 좆을 안 빨아도 되고 하루에 수십 번씩 다리를 벌릴 필요도 없는데, 어쩌면 구질구질했던 인생이 필 수도 있는 절호의 순간에 나는 이상하리만치 망설이고 있었다.
“잘 가, 해영아.”
“갈게요.”
그렇게 천천히 뒤를 돌았다. 카운터를 가로질러 걸어가 자물쇠가 달랑달랑 걸린 무거운 나무문을 밀어 열고 발을 내디뎠다. 막 져가기 시작하는 붉은 노을빛이 일순간 온몸 위로 쏟아졌다.
“해영이 네 말대로, 애들 다 이름 하나씩 지어보라고 할까 봐.”
등 뒤에서 들려오는 마담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내게 말을 건넨 마담의 얼굴에도 노을빛이 푹 젖어 있었다. 마담의 머리칼만큼 밝게 반짝이는 갈색 눈동자를 응시하며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이내 거대한 대문이 쿵 소리를 내며 닫혔다. 그 순간 마음 한편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마담에게 고맙다는 얘기를 못 했다. 바보같이.
철옹성처럼 닫혀버린 대문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이번에 말하지 못하면 왠지 쉬이 전하지 못할 것 같단 예감이 들었다.
다들 쉬쉬하며 기피하는 극우성 오메가인 나를 받아줘서 고맙다고, 내 형질을 숨겨주고 억제제도 꼬박꼬박 챙겨줘서 고맙다고, 부모도 형제도 없는 내게 엄마가 되어 줘서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붙잡고 나와야 할 줄 알았는데.”
등 뒤로 낮게 읊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마담을 향해 있던 고마움과 미안함으로 가득 찼던 감정은 죄다 단숨에 차도헌을 향한 뾰족한 분노로 변이했다.
“시간 맞춰서 나왔네.”
붙잡은 문손잡이를 탁 놓고 천천히 몸을 돌려 섰다. 번쩍거리는 검은색 세단에 몸을 기대고 서 있던 차도헌은 내게로 곧장 걸어와 손목을 움켜쥐었다.
“가자, 도해영.”
나를 내려다보는 차도헌의 눈은 붉기 그지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