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프런트가 퍽 시끄러웠다. 고함치는 남자의 걸걸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서비스에 대해 트집을 잡는 모양이었다. 상황을 구경하는 애들의 어깨너머엔 내 예상대로 세 명이 대치 중이었다. 얼굴이 피떡이 된 채 엎어져 있는 애 한 명, 골 아픈 듯 이마를 짚고 있는 마담, 그리고 주먹을 쥔 채 씩씩대는 중년 남성 한 명.
“애 얼굴이… 얘 이래서 어떻게 일을 시켜요, 네? 기분 나쁘다고 애를 이렇게 때리시면 어떡해요.”
“너 지금 얘 편드는 거야?”
“얘 우리 가게 상품이에요. 아시잖아요, 난 내 상품 막 다루는 사람, 아무리 김 사장님 같은 단골이어도 안 봐줘요.”
“씨팔, 너 지금 나 무시하냐? 어?”
차분히 대꾸하는 마담을 향해 남자의 주먹이 우악스럽게 날아갔다. 마담은 무슨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것처럼 남자의 손찌검을 피하지도 않고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뭣, 뭐야?”
남자의 주먹이 허공에서 떡 하니 멈췄다. 마담의 믿는 구석이자 우리의 믿는 구석이 나타났다. 강태산은 미간을 잔뜩 찡그린 채로 남자의 팔뚝을 붙잡고 있었다.
“넌 뭔데 끼어들어?”
“조폭인데요.”
“풉!”
태산의 당당한 대답에 돌연 웃음이 터졌다. 하필이면 정적을 비집고 내 웃음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다. 내 쪽으로 시선이 쏠리려는 순간 나는 입을 손바닥으로 틀어쥔 채 다리를 접어 확 주저앉았다.
“…방금 웃은 새끼 누구야?”
“김 사장님,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닌―”
“어떤 개새끼가 나를 쳐 비웃는데 그게 안 중요해?”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구석에 쪼그려 앉은 나와 눈을 맞춘 태산은 눈짓으로 도대체 왜 그랬냐며 추궁했고, 나는 눈동자를 데구르르 굴리며 사과를 표했다.
“당장 안 나와?”
쩌렁쩌렁 울리는 호통에도 내 몸을 숨겨주던 다리들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 뒤에 숨어 엉거주춤 쪼그려 앉아있던 나는 의리 있는 동생들 덕분에 살금살금 쪽방 안으로 기어들어 갈 수 있었다.
다음 예약 시간 전에는 상황이 마무리되었으면 좋겠는데.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털어 말리고 싸구려 모텔 스킨을 얼굴에 바르면서 줄곧 프런트 쪽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내가 쪽방에 숨은 이후로도 고함치는 소리가 두어 번 들렸는데, 업소 내 소란으로 아예 붙들려 나갔는지 더 이상 남자의 호통은 없었다.
“그러게 왜 까부냐?”
기척도 없이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놀라 몸을 한껏 웅크렸다. 무릎 사이로 머리를 집어넣고 양팔로 뒤통수를 감싼 채 일종의 가드 자세를 취하는 내게 강태산은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 치는 소리를 들려주었다.
“나 너 안 때려. 왜 갑자기 쫄아?”
익숙한 목소리에 착착 접혔던 팔다리가 느슨하게 풀어졌다. 두 손으로 무릎을 끌어안은 내 앞엔 강태산이 쪼그려 앉아 있었다.
“놀랐잖아, 무슨 발소리도 안 내고 들어오냐?”
“네가 못 들은 거겠지.”
내 손에서 수건을 빼앗은 강태산은 내 등 뒤로 붙어 앉아 머리를 말려주기 시작했다. 업소를 지키는 조폭들은 생긴 건 험악해도 종종 다정한 구석이 있었다. 강태산이 눈썹을 험악하게 찡그린 채 내 머리카락을 말려주는 동안 내 몸은 익숙한 듯 강태산의 가슴팍에 등을 대며 누울 자리를 찾았다.
한때, 아주 잠깐 이런 걸 바란 적이 있었다. 가족이라든가 친구 같은, 그러니까 남들한텐 다 있는데 꼭 나한테만 없는 그런 거. 근데 왜 없느냐 돌아보면 그건 전부 내 탓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많이 원망하고 미워하고 싫어했다. 따져 묻자면 여전히 그러고 있는 중이고.
“무거워. 떨어져.”
“살가죽이랑 뼈밖에 없는데 뭐가 무거워.”
떨어지라며 볼멘소리를 하면서도 강태산은 내가 편히 기댈 수 있게 자세를 고쳤다.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는 내가 정말 불쌍해 보였는지 강태산은 종종 나를 챙겼다. 이 바닥에선 제 숟가락 챙기기도 바쁠 텐데 진짜 이상한 놈이었다, 강태산은.
“오늘 언제 끝나?”
묵묵히 손을 놀리던 놈이 돌연 수건을 바닥에 팍 던져버리곤 대뜸 물었다. 여기서 하루 이틀 일한 것도 아니고 5년을 일했는데 끝나는 시간을 묻다니, 주먹질만 하다가 기억력 저하가 온 모양이었다.
“마담이 문 닫음 퇴근이지, 왜 당연한 걸 물어보냐?”
얼추 다 마른 머리칼이 이마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아슬아슬하게 시야를 가리는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넘기곤 로션 통을 집어 들었다.
“아니, 몇 명 남았냐고.”
손바닥만 한 거울 너머로 내 등 뒤에 앉아 있는 강태산이 보였다. 내 뒤통수를 쳐다보며 묻는 얼굴이 똥 씹은 표정마냥 구겨져 있었다.
“왜. 너도 나랑 하게?”
“넌, 씨발, 왜 말을 그렇게 하냐?”
강태산이 대뜸 버럭 화를 냈다. 이상하다. 나한테 몇 명이랑 했느냐, 내가 몇 번째냐, 뒤에 몇 명 남았냐고 묻는 남자들은 전부 내 몸을 돈 주고 살 뿐인데.
분명 나와의 섹스가 목적일 질문을 던져놓고선, 강태산은 되레 내게 욕지거리를 뱉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불쌍한 새끼고양이 보듯 측은하게 쳐다봤으면서 지금은 잡아먹을 것처럼 화를 낸다. 설마 내가 손님한테 받는 만큼 달라고 할까 봐 화를 내는 건가?
“알잖아, 나 너한텐 돈 안 받아.”
“…….”
“공짜라도 대충은 안 해. 의리가 있지.”
강태산의 얼굴이 심상치가 않았다. 목까지 시뻘게진 채로 나를 노려보는 눈에 언뜻 살의가 비친 것도 같았다. 베타인데도 웬만한 우성 알파에 견줄 만큼 덩치도 크고 힘도 센 놈인데, 강태산이 휘두르는 주먹에 맞으면 단번에 병원 신세를 질 게 뻔했다.
내가 뱉은 말 중 강태산의 화를 돋은 내용이 무언지 곰곰이 생각해 보려고 했지만 내가 잘못을 찾아내 사과하는 것보다 강태산이 방을 나가버리는 게 빨랐다.
폭풍마냥 쪽방을 뒤흔들고 사라진 강태산의 분노를 곱씹다가 마저 준비를 이어가던 중에, 가벼운 발소리가 귀에 닿았다.
“해영이 형, 마담이….”
“마담이 나 찾아?”
“아, 그게요….”
쪽방 문가에 서선 머뭇거리는 지해의 얼굴엔 상처가 그득했다. 항상 온몸에 멍 자국을 달고 다니는 지해, 좋다 싫다 얘기도 쉽게 못 하는 지해, 오늘은 말간 얼굴에 붉게 피가 터진 입술을 달싹거리는 지해.
“예약 내일로 밀려서… 오늘은 쉬래요.”
말을 마친 지해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신발을 구겨 신으며 급하게 쪽방을 나가려는 애를 불러 세운 내 목소리에 나조차도 놀랐다.
“잠깐, 지해야, 잠깐만.”
“네?”
눈을 동그랗게 뜬 지해의 얼굴에 당황한 빛이 서려 있었다. 그 반응을 보고 있자니 지해와 나의 유대감이 퍽 좋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시간 괜찮으면 잠깐 들어올래?”
그럼에도 저 얼굴에 생긴 상처는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다.
나는 장롱 구석에 처박아 놓은 약상자를 꺼냈고, 지해는 신발을 벗고 잰걸음으로 방을 가로질러 내 앞에 앉았다.
지해는 참 맑게 생겼다. 쌍꺼풀이 푹 진 서글서글한 눈매에 콧방울도 동그랗고 미소 지을 때 양쪽에 맺히는 두 볼도 동그랗고 입술마저도 무슨 잘 익은 과일처럼 동그랗게 생겼다.
마담이 말하길 유독 지해에게 손찌검하는 고객들이 몰리는 건 지해의 생김새 탓이라고 했지만, 그 말에 쉽게 동의할 순 없었다. 어떻게 하얗고 동그랗고 말간 애를 때리지, 서비스가 끝난 후 룸에서 비틀비틀 걸어 나오는 지해를 보며 종종 나는 의구심을 가졌다.
“약 자주 발라. 흉터 생기면 안 되잖아.”
튜브를 쥐어짜 내어 듬뿍 덜어낸 연고를 입술 주변에 살살 바르면서 나는 내가 뭐라도 되는 것 마냥 지해를 걱정했다. 내가 말해놓고도 순간 어이없어서 헛웃음이 나올 뻔했는데, 지해는 내 오지랖에 고분고분 답해 주었다.
“네. 그럴게요.”
동그란 눈동자가 한 치의 움직임도 없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속눈썹이 길게 드리워진 지해의 눈은 퍽 예뻤다. 날카롭게 가로 쭉 찢어진 내 눈과는 다른, 동그란 지해의 눈.
“오늘 예약 다 끝났어?”
“아, 네….”
“그럼 나랑 나갈래?”
그 애를 닮은 눈, 그 눈을 쳐다보고 있자니 불쑥 마음에도 없는 말이 튀어 나갔다.
뱉은 말을 주워 담을 틈도 없이 지해는 고개를 끄덕여 내 허울뿐인 제안을 확정해버렸고, 내 입술은 주인의 의지와는 다르게 술술 약속을 뱉었다.
“술 마시자. 잘 아는 사케집 있어. 거기 연어 사시미가 잘 나오는데, 회 못 먹으면 나베 시켜도 되고. 아니면 메로 미소 구이도 괜찮아. 근데 너 술 마실 나이는 되나?”
등허리에 식은땀이 뱄다. 내가 갑자기 얘한테 왜 이러지? 이유를 모르게 쏟아내듯 말을 뱉는 나를 지해는 침착한 얼굴로 쳐다보며 종종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마지막 질문에는 차분히 나이를 일러 주기도 했다.
“저, 스물하나예요.”
미성년자로 오해할 만한 얼굴을 가진지라 혹시 몰라 물어본 말에 지해는 성인이라 답했다. 그럼에도 당황한 듯 모은 두 손을 꼼질거리며 주춤거리는 기색을 읽어낸 나는 퍼뜩 떠오른 생각에 지해를 향해 물었다.
“술 마셔본 적 없어?”
“가끔 손님이 권유하면….”
머뭇거리며 대답하는 말에 나는 한편으론 안도했다. 사실 지해를 데리고 나가 술을 사 먹이면서 무슨 대화를 나눠야 할지 까마득했다. 돌이켜보면 여기서 같이 일하는 애들과 나가서 술을 마신 건 딱 5년 전이 마지막이었다.
문득 떠오르는 얼굴들이 그대로 지해의 얼굴 위에 걸렸다. 못 박힌 듯 나는 그대로 멈춰선 채 그 얼굴을 하나하나 읽어 내렸다.
5년 전,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았던 애들. 바보처럼 줄줄이 삶을 놓아버려서 이제는 세상에 없는 애들. 그때는 어려서 세상을 잘 몰랐는데, 생각해보면 나는 지금도 세상을 전혀 모른다. 그 애들은 이제 알까? 세상이 어떤지?
“술 마시고 싶어요, 형이랑.”
심란한 감상에 빠진 내 손을 맞잡으며 지해는 내 눈을 봤다. 지해의 손안에 갇힌 내 두 손등 위로 와닿는 온기가 어색해서 나는 절로 손가락을 꼼질댔다. 하지만 확실한 건 5년 전의 나 또한 이런 것과 어울리지 않는다. 난 얼결에 고개를 끄덕이며 지해에게 붙잡힌 손을 어색하게 빼냈다.
“그, 그럼 30분 뒤에 목욕탕 뒷문으로 나와.”
“목욕탕 뒷문이요?”
“몰래 나가야 되니까.”
내가 나가는 건 그렇다 쳐도 지해가 나가는 걸 마담에게 보여서 좋을 건 없었다. 여기서 지내는 동안 고분고분하게 마담의 룰을 따랐던 모양인지, 꽤나 큰 다짐을 내린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지해는 준비를 하겠다며 쪽방 문을 열고 조심스레 나갔다.
그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한 짓을 벌인 것 같아 두통이 일 듯 뒷골이 아릿하게 저렸다.
장롱 문을 열었다. 무덤처럼 쌓인 옷가지 틈으로 팔을 쑥 집어넣고 헤집길 몇 차례 반복하면 찾고자 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손끝에 닿아오는 딱딱한 물체를 그대로 움켜쥐어 옷 무덤 속에서 빼내면, 그건 꽤나 비싼 값을 주고 산 향수였다.
그대로 향수의 마개를 열어 분사구를 마구 눌렀다. 온몸을 향수에 절이다시피 뿌리고 나면 몰려오는 감정은 어지럽고 또 답답한 것들이었다.
뭉툭한 디자인의 병 안에 들어있는 향수는 얼핏 보면 명품 향수의 싸구려 모조품 같아 보이지만 이건 내 체향을 감춰줄 수 있는 유일한 악취였다.
‘넌 항상 나갈 때마다 그거 뿌리더라.’
언젠가 강태산과 밖에서 가볍게 한잔하기로 약속한 날, 쪽방에서 준비를 하고 있는 나를 쳐다보던 강태산은 온몸에 향수를 뿌려대는 나를 보며 의문을 표했다.
‘이거 비싼 거야.’
‘그래 보여.’
‘밖에서 무시당하기 싫어서 뿌린다, 왜.’
어설픈 변명에도 강태산의 얼굴엔 이해했다는 표정이 지어졌다. 강태산이 알파나 오메가의 페로몬을 맡을 수 없는 베타라 다행이었다.
그간 그렇게 내 향을 숨겨왔다. 남들에게 극우성 오메가라는 걸 들키는 게 좋을 건 없다고 배웠고, 이쪽 세계에 빠삭한 마담마저도 매일 향수를 뿌리라고 했으니까.
“어디 가니?”
지해가 좀 늦었다. 약속을 파투낼 성격은 아닌 것 같으니 아마도 욕탕과 이어지는 쪽문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을 터였다. 직접 데리러 갈까 하다가 담배를 한 대 태우면 오겠지 싶어 문턱에 털썩 엉덩이를 붙여 앉았다. 언제 사뒀는지 모를 구겨진 담뱃갑에서 한 개비를 꺼내 물고 라이터를 찾으러 주머니를 뒤적였다. 등 뒤에서 마담의 목소리가 들린 것도 그 때였다.
“바람 좀 쐬려고요.”
기껏 찾은 라이터는 불이 붙기는커녕 칙, 칙 요란한 소리만 냈다. 답답한 마음에 그대로 길가에 던져 버리려다 문득 떠오르는 얼굴에 다시금 라이터를 꼭 쥐었다. 제구실도 못 하는 이 라이터는 그 애가 죽기 전에 내게 준 거였다.
“누구랑?”
“누구랑 나가는지 알면 놀랄걸요.”
“힌트 줘 봐.”
마담은 카디건을 여미며 내 옆에 엉덩이를 붙여 앉았다. 품속에서 꺼낸 라이터로 입술 끝자락에 비뚜름하게 물린 담배에 불을 붙여 주면서 마담은 여기서 일하는 이름들을 하나하나 불렀다.
“도화, 수혁이, 연이, 서원이, 지해… 참, 가드 애들도 있지? 태산이랑 나가니?”
참 살갑다, 마담은.
“마감 전까지 책임지고 들어올 거예요.”
“나는 해영이 너 걱정 안 해.”
마담은 방금 불을 붙여 준 라이터를 내 손에 쥐여주며 웃었다.
“해영이가 누구랑 노나 궁금해서 그랬지.”
사근사근 말을 건네는 마담과 얼굴을 마주하고 있자니 문득 처음 이곳에 온 날이 생각났다. 채 감상을 끝내기도 전에 마담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잘 다녀오라는 인사도 없이 반쪽만 한 문을 열고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는 마담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코끝이 시큰하게 찬바람이 들었다.
“형, 늦어서 죄송해요.”
등 뒤로 가벼운 발소리가 들렸다. 허겁지겁 나온 모양인지 외투도 제대로 걸치지 못한 차림으로 지해는 연신 내게 허리를 꾸벅 숙였다.
“아냐, 괜찮아. 가자.”
몸에 겨우 걸쳐진 겉옷을 제대로 입혀주며 나는 옅게 웃었다. 사창가 골목을 벗어나 번쩍이는 유흥 도시 외곽을 쌩쌩 달리는 택시를 잡아타자 뒷좌석에 앉은 지해의 눈이 더욱 댕그랗게 뜨여졌다.
“저, 이런 곳은 처음 와봐요.”
고급스러운 동양풍으로 꾸며진 사케집,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한 공간에서 돌연 시간이 5년 전으로 되돌아가는 것만 같았다. 그 애가 살아있을 적, 내게 가족 비슷한 게 있었던 때로.
***
“다… 먹을 수 있을까요?”
하나둘 상에 차려지던 요리가 금방 테이블을 가득 채우자 지해는 조금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그에 반해 태연하게 젓가락을 집어 드는 나를 보며 지해는 나라는 인간을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을 거였다.
“남겨도 돼. 입에 맞는 거, 맛있는 것만 골라 먹어.”
사창가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안 좋은 습관이 하나 생겼다. 어차피 평생 갚지 못할 빚을 조금 더 늘린다고 문제될 것 하나 없다는 생각에 쓸데없이 과소비를 하게 되는 것. 한눈에 봐도 두 명이 다 먹기 힘든 양의 음식을 시키는 나를 지해는 채 말리지 못했다.
지해는 나만큼이나 입이 짧았다. 젓가락질 몇 번에 금방 배가 부른 기색이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여서 말없이 빈 잔에 술을 채웠다. 나중엔 지해도 나도 둘 다 음식에 손도 대지 않고 술만 마셨다.
“이렇게 나오는 거… 정말 오랜만인 것 같아요.”
젓가락으로 먹지도 않을 초밥을 뒤적거리고 있는데 지해가 말문을 텄다. 문득 들린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옅게 웃고 있는 지해가 보였다. 말끔하게 옷을 차려입고 나온 지해는 정말 평범한 애 같았다. 사창가에서 몸을 굴리는 애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지해는 정말 평범한 애처럼 보였다.
“일 없을 때 마담 몰래 종종 나와.”
“…네.”
제 성격에 그러지 못할 걸 아는데도 지해는 쉬이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또 나오자든가 다음엔 어디를 가자는 식의 이야기를 덧붙이지도 않고, 그저 잔을 만지작거렸다.
“고마워요, 형.”
대신 지해는 내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
“다음에 또 나오자. 둘 다 일 빌 때.”
예상치 못하게 다음을 약속한 건 내 쪽이었다.
그리고 대화는 거기에서 끊겼다.
***
지해는 술이 약했다. 고작 따듯하게 데운 사케 반 병에 몸이 흐물흐물 풀리는 걸 보면서 나는 아차 싶었다. 술을 잘 안 한다는 애한테 너무 많이 먹였나, 데리고 나온 걸 후회하진 않았지만 책임져야 할 몸뚱어리가 하나 더 늘었다는 점에서 걱정거리가 생겼다.
“슬슬 일어나자. 마감 전엔 돌아가야 뒷일이 편해.”
“네에….”
싱긋 웃으며 답하는 지해의 몸에선 조금씩 페로몬이 새고 있었다. 원체 체향을 잘 숨기지 못하는 열성 오메가인 데다가 술까지 마셨으니, 이대론 길 가다 일을 치를 터였다.
술집 앞에서 곧장 택시를 잡아 그대로 모란까지 가야겠다, 술기운에 조금 느려진 머릿속으로 차근히 돌아갈 계획을 세우며 남은 술을 털어 마시곤 지갑을 꺼냈다.
“여기 계산이요.”
사장은 잔뜩 시켜놓은 음식에 몇 번 손도 대지 않고 일어난 나를 보고 의아한 눈치였지만 금방 대여섯 명분의 음식을 시킨 만큼의 손님 대접을 했다.
“남은 음식은 포장해드릴까요?”
“아뇨, 포장은 됐구요. 가게 앞으로 택시 좀 불러줄 수 있으세요?”
길게 뽑혀 나오는 영수증을 받으며 흘긋 뒤를 돌아봤다. 지해는 얌전히 의자에 반쯤 기대앉아 있었다.
“죄송합니다. 여기는 너무 골목이라 택시가 안 들어와요. 큰길까지는 나가셔야 되는데, 그래도 괜찮으시면 불러드릴까요?”
골목을 벗어나는 동안 무슨 일이 있겠나 싶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이 종업원을 시켜 택시를 부르는 동안 가게 앞에 나가 담배를 태웠다. 선선했던 며칠 전과 다르게 부쩍 쌀쌀해진 바람에 담배 연기가 이리저리 휘날렸다.
그렇게 꼬박 한 대를 다 피울 즈음에 가게 안에서 종업원이 문을 열고 나왔다. 15분 안으로 택시가 도착할 거라면서 택시 번호가 적힌 종이를 건넸다. 다시 가게로 들어가는 종업원을 향했던 시선이 그대로 지해에게 향했다. 고개가 조금씩 흔들리는 게 아무래도 잠든 듯싶었다.
15분은 긴 시간이었다. 골목이 작으니 큰길까진 금방 나갈 수 있다. 담배를 한 대 더 태울까 고민하다 담뱃갑을 재킷 안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대신 기다란 영수증을 집어 들었다. 손안에서 이리저리 접히던 영수증이 손바닥만 해질 때 즈음에야 나는 꼬깃꼬깃 접힌 종이를 도로 호주머니에 넣고 졸고 있는 지해의 허리를 붙잡아 일으켰다.
술에 취한 사람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벼운 지해를 붙잡은 채로 골목을 걸었다. 이자카야가 즐비한 작은 골목은 홍등이 거리를 붉게 물들인 채였다.
죽은 그 애는 모란을 일본식 인테리어로 바꾸자며 종종 마담과 입씨름을 벌였는데, 그때마다 나는 마담의 편에 서서 그런 디자인은 촌스럽다며 그 애를 면박주곤 했다. 문득 떠오른 그때의 기억에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작게 웃었다.
“…지해야.”
지해가 고개를 들어 이 거리를 봤으면 좋겠다. 이 거리를 걸으면서 나와 함께 그 애를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
비록 지해는 죽은 그 애의 얼굴을 본 적도 없고 그 애가 누군지도 모를 테지만, 제발 내 고통을 반만 덜어가 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하면서 지해를 부축하며 천천히 걸었다.
화려하리만치 붉은 골목의 끝자락엔 더 이상 영업을 하지 않는 불 꺼진 가게들이 있었다. 차 소리가 들리는 걸 보아 여기서 조금만 더 걸으면 큰길에 다다를 터였다. 이제는 가로등 불빛에 의지한 채 어두컴컴한 골목을 걷자니 옆에 사람이 한 명 더 있는데도 조금 무서웠다.
“지해야.”
“…….”
대답이 없는 몸을 고쳐 붙잡으며 다시금 이름을 불러 보려던 찰나 지해의 몸에서 열이 나고 있음을 뒤늦게야 알아챘다. 홧홧하게 달아오른 몸은 기계적으로 걷기만 할 뿐 지해는 반쯤 정신을 잃은 듯했다. 짙어지는 지해의 체향을 맡으며 나는 부디 술에 취한 알파들이 골목에 들이닥치는 일만 없기를 간절히 바랐다.
“지해야, 정신 좀 차려봐.”
“…네….”
흐트러지는 허리를 꽉 붙들고 한 손으론 지해의 뺨을 가볍게 치면서 발에 힘을 주어 빠르게 걸었다. 불안이 고요한 골목을 채우는 동안 저벅거리며 따라오는 발걸음 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골목을 빠져나와 큰길에 다다르자마자 거짓말처럼 세상이 환해졌다. 번쩍이는 불빛으로 가득 찬 번화가엔 파도처럼 사람들이 밀려들고 사라지길 반복했다. 그 사이에서 지해를 놓치지 않기 위해 나는 품에 안긴 몸을 더욱 세게 붙들었다.
외워둔 차 번호를 입술로 되새기며 아까 선술집에서 불러준 택시를 찾았다. 도로 가에 즐비하게 늘어선 택시를 빠르게 훑는 동안 스쳐 가는 행인들의 시선은 줄곧 나와 지해에게 향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열성 오메가를 챙기는 형질 모를 오메가의 모습이 퍽 웃긴 콤비였을 거였다.
몇 알파들이 대놓고 조롱하듯 난폭하게 페로몬을 흘리고 지나갔다. 지해가 무의식적으로 제 앞섶을 움켜쥐었다. 빨리 택시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은 더 다급해졌다. 나는 앓는 소리를 내는 지해를 질질 끌다시피 붙잡고 거리를 헤맸다. 그러다 돌연 앞이 가로막힌 건 한순간이었다.
“친구가 많이 힘든가 봐, 우리가 도와줄까?”
비뚜름하게 웃으며 한 남자가 말을 걸었다. 남자는 친절하게 말을 건네는 척했지만 저런 류의 인간은 잘 알고 있었다. 곧장 뒷덜미를 쥐고 골목으로 끌고 가 지퍼만 열고 강간을 할 인간이었다.
대답 없이 고개만 꾸벅 숙이고 마저 걸어가려는데 냅다 어깨가 잡혔다. 억세게 쥐어대는 손에 당장 손찌검을 당해도 놀랍지 않을 정도였다. 어차피 몸 굴리는 삶이니 길에서 당해도 상관은 없었지만, 옆에 딸린 애가 있어서 문제였다. 남자들이 노골적으로 흘리는 페로몬에 지해는 거의 끙끙대고 있었다.
“대놓고 유혹을 해대는데 참을 수가 있어야지.”
지해를 향해 손을 뻗는 남자는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옆구리에 끼고 있었던 지해를 등 뒤로 숨기는데 냅다 손이 날아왔다. 맞은 한쪽 뺨에 뒤늦게 따끔따끔 열이 올랐다. 별안간 웃음이 터졌다.
“하하, 하….”
“웃어? 이거 돌은 새끼 아니야?”
처음 본 남자에게 뺨을 맞고 강간 협박을 당하는데도 무서우리만치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애초에 아까 왜 골목에서 두려움에 떨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런 건 나한테 당연한 건데, 당장 길 가다 추행을 당해도 그러려니 하는 건데. 그런 게 무서웠다면 애초에 사창가에서 몸을 팔며 빚을 갚으려 하지도 않았을 거였다.
“나랑 해. 나도 당신들 좆에 박히고 싶으니까.”
절로 무덤덤한 목소리가 나왔다. 몸 한 번 대주는 게 무슨 대수라고.
“대신 얘는 그냥 보내. 존나 못 하니까. 얘 보내고 나랑 길바닥에서 떡을 치든 모텔을 가든 마음대로 해.”
“당돌한 또라이 새끼였네, 이거.”
뺨을 때렸던 남자는 다시금 손을 뻗어 내 턱을 움켜쥐었다. 억세게 붙잡힌 턱이 남자의 손짓에 따라 좌우로 흔들렸다. 곧 맘에 들었다는 듯 남자는 내 턱을 막무가내로 잡아당기며 깊게 입을 맞췄다. 텁텁하고 질척한 혀가 마구잡이로 입 안을 휘적였다. 키스 한 번 더럽게 못 하네, 그런 생각이 들 때쯤 맞붙었던 입술이 거칠게 떨어졌다.
쿵 소리와 함께 남자 두 명이 동시에 바닥에 엎어졌다. 무릎을 땅에 붙인 채로 몸을 벌벌 떠는 열성 알파들의 페로몬은 강제로 거둬진 채였다. 갑자기 바닥에 엎어진 남자들을 내려다보며 당황하던 찰나 숨통을 죄어오는 난폭한 페로몬이 뒤늦게 나를 덮쳤다.
그간 모란에서 수많은 알파들의 페로몬에 깔려봤지만 이토록 위협적인 체향은 처음이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기운에 압도당한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거칠게 손목이 붙잡힌 채로 몸이 돌려 세워질 때까지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쪽, 극우성인가?”
남자는 흉흉하게 치솟은 페로몬을 숨길 생각도 않고 내게 물었다. 목이 콱 막혀 고개라도 가로저으려 했는데 그것마저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남자는 침묵을 유지하고 있는 나를 더더욱 몰아세웠다.
“대답해, 당신 극우성 오메가 맞냐고!”
손목을 강하게 움켜쥔 손아귀에 열기가 치달았다. 고작 손목 하나 잡힌 것뿐인데 나는 온몸을 속박당한 것처럼 꼼짝도 하지 못했다. 날카로운 눈매에 갇힌 새카만 눈동자가 나를 죽일 듯 노려보고 있었다.
마치 내가 그의 소중한 무언가를 훔치기라도 했다는 것처럼, 그는 내게 분노하고 있었다.
단 한 번도 누구에게 형질을 들킨 적이 없었다. 싸구려 열성 오메가 향수로 온몸을 절이고 다니면 모두가 나를 열성 오메가로 알았고, 나 스스로조차도 열성 오메가라 여기며 살았다.
극우성이든 열성이든, 나는 한낱 사창가에서 몸 파는 오메가에 불과했다. 그리고 내 형질이 어떻든 이 사람과는 일절 상관없는 일이다.
“아니라고 했잖아요.”
붙잡힌 손목을 비틀어 빼내자 남자는 예상외로 순순히 손에 힘을 풀었다. 바닥에 쓰러진 지해를 일으켜 당장 눈에 보이는 택시 문을 벌컥 열었다. 입에 붙어버린 익숙한 주소를 부르면서 나는 아랫배를 움켜쥐었다.
그 어떤 알파의 페로몬에도 열리지 않았던 내 몸이 천천히 열리고 있었다.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모란에서 매일같이 수많은 알파들과 섹스를 하면서도 단 한 번도 그들의 페로몬에 반응하지 않던 몸이 갑자기 이렇게 열릴 줄은. 나조차도 당황스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흐으….”
뜨거운 무언가가 온몸의 감각을 잔뜩 헤집는 것 같았다. 단단하게 발기한 성기가 갑갑한 바지 안에서 미친 듯이 박동하고 있었고 뒤에서는 애액이 질금질금 새는 것 같았다. 제멋대로 배배 꼬이는 허벅지가 성기를 어설프게 자극하고 있었다.
“윽…!”
그 작은 자극에 드로어즈가 울컥 젖었다. 신음이 새어 나갈까 다급히 손바닥으로 입을 틀어막고 다른 손으론 주머니를 뒤져 억제제를 찾았다. 집히는 대로 약을 털어 넣어 삼키자 시야가 수차례 점멸을 반복했다. 나는 올라오는 헛구역질을 참으면서 눈꺼풀을 비집고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았다.
눈물에 푹 젖은 차창 너머로 어느새 택시는 도시를 벗어나 외곽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약 기운이 서서히 온몸에 퍼지는 것을 느끼며 열에 들뜬 볼을 차가운 가죽 시트에 부볐다. 온몸을 들쑤셨던 지독한 열기가 서서히 발끝에서부터 빠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까무룩 잠들었다.
***
지해의 다리가 허공에서 달랑달랑 흔들렸다. 예상대로 한창 마감 중인 홀이 정신없는 틈을 타 강태산은 지해를 업은 채 쪽방으로 향하는 복도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그 뒤를 따라 걸어가는 동안 나는 몇 번이고 벽을 짚었다. 온몸이 덜덜 떨렸다.
“대충 구석에 눕혀 줘.”
내 부탁대로 강태산은 쪽방 구석에 요를 하나 깔고 그 위에 지해를 눕혔다. 택시를 타고 오면서 좀 진정이 됐는지 지해에게서 나는 향이 차츰 옅어지고 있었다.
“저렇게 놔둬도 돼?”
“많이 안 먹였어. 그냥 자게 둬.”
지해의 잠자리를 대충 정리한 강태산은 신발을 구겨 신으며 쪽방에서 나왔다. 낮은 문틀을 지나며 몸을 숙였던 강태산이 복도에 발을 디디며 내 앞에 마주 섰다. 어두운 복도에서도 강태산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
모란에 도착하자마자 강태산을 찾았다. 택시에 뻗은 지해를 데리고 들어가기엔 힘에 부쳤다. 기사 아저씨에게는 미터기를 계속 켜두라고 말하곤 그대로 업소에 들어가 보초를 서고 있는 가드들에게 물어물어 강태산을 찾았다.
“나 좀 도와줘.”
단 몇 시간 전에 내게 화를 냈던 강태산은 내 부탁 한마디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지해를 업어 든 강태산은 그대로 택시비까지 냈다. 제가 뭐라고, 강태산이 나를 안쓰러워하는 정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태산은 고개를 살짝 숙여 내 얼굴을 쳐다봤다. 홀에서 새어 나오는 빛이 어두운 복도를 옅게 비췄고, 강태산의 얼굴엔 그림자가 졌다.
차츰 복도 밖의 일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식기가 부딪치는 소리도, 떠들며 걸레질을 하는 애들의 목소리도, 길거리에서 나를 향했던 알파들의 더러운 말들과 낯선 남자에게 형질을 들키고 그 페로몬에 발정했던 순간조차도.
허벅지엔 칼을 차고 다니고 생업이 주먹질인 강태산의 눈을 쳐다봤을 뿐인데, 이유도 모르게 몸에 서렸던 한기가 사라지고 손끝까지 피가 돌기 시작했다.
강태산의 눈은 꼬여버린 내 인생이 이 자체로도 괜찮다는 착각을 하게 했다. 이상하리만치 나를 늘 안도하게 했다, 강태산은.
순간 강태산이 냅다 내 몸을 안아 들었다. 갑자기 몸이 들린 바람에 목구멍을 타고 새된 비명이 새어 나왔다.
“악!”
“조용히 해, 애 깨.”
그런 나를 향해 강태산은 짧은 말 한마디를 던지곤 쪽방으로 들어갔다.
“뭐해?”
“너 자라고.”
아까 지해에게 해줬던 것처럼 바닥에 두툼한 요를 깐 강태산은 그 위에 나를 내려놓고 장롱을 열어 얇은 이불을 찾았다. 분명 씻고 잘 생각이었는데 딱딱한 바닥에 등이 닿자마자 절로 긴장이 풀렸다. 졸음이 무서운 속도로 밀려오는 중에 나도 모르게 눈이 감겼다. 강태산이 채 이불을 덮어주기도 전에 나는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
사창가는 단순히 몸을 파는 가게가 아니다.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들이 지독할 정도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커다란 조직이었다. 쉽게 말하면 이 구조 속에서 가장 낮은 계급인 상품인 이상 한번 발을 들이면 절대 빠져나갈 수 없다는 뜻이다.
업소에 열성 오메가를 공급하는 셀러는 조직과 손을 잡은 마담들에게 상품 리스트를 보낸다. 마담은 그중 가장 잘 팔릴 것 같은 상품을 선택해서 공급 요청을 보내고 조직은 조폭들을 풀어 선택된 오메가를 데려온다.
금전 문제를 일으킨 오메가는 사채업자의 손에, 오갈 데 없어 지폐 몇 장에 사고 팔리길 반복하며 성 노리개 취급을 받아온 오메가는 남창들을 관리하는 업자의 손에, 마지막으로 이쪽 바닥에서 배신을 때린 오메가는 청부살인업자의 손에 뒷덜미가 잡힌 채로.
그렇게 오메가들은 여기로 모여들었다.
“네가 해영이니?”
처음 모란에 발을 들여놓던 날, 마담은 그 작은 쪽문 앞 문턱에 쪼그려 앉은 채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사람 한 명이 겨우 드나들 정도로 작은 쪽문은 평균에 비해 한참 마른 체구인 마담이 앉아있었을 뿐인데 철옹성처럼 보였다.
‘아무도 들이지 않을 거야, 특히 너 같은 새끼라면 더욱더.’
그 좁은 쪽문이 내게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모든 사람이 나를 거부했던 것처럼 이 문도 나를 매섭게 밀쳐 낼 것임을 확연히 짐작할 수 있었다.
거의 필터 끝까지 태운 것을 앞니로 잘근잘근 씹으면서 마담은 눈동자만 위로 굴려 나를 쳐다봤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마담은 담배꽁초를 던져버리곤 엉덩이를 털며 일어섰다.
그녀는 따라오라는 말 한마디 없이 등을 돌려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뒤축이 닳은 그녀의 뮬이 바닥에 질질 끌리는 소리를 따라 좁은 복도를 걸었다.
복도 끝자락에 맞닿은 작은 방에 도착하자마자 마담은 힘이 빠진 듯 소파에 털썩 앉았다. 그녀를 따라 가죽이 다 벗겨진 팔걸이 소파에 엉거주춤 앉자 마담은 대리석 테이블 구석에 붙어 있는 동그란 버튼을 꾹 누르고는 누군가를 호출해냈다.
“응, 은수야. 여기 커피 두 잔만 갖다 줘.”
마담이 부탁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금방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방 안에 들어왔다.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커피 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는 남자에게 마담은 고맙다며 자신의 지갑에서 용돈을 꺼내 가라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심부름을 마친 남자가 쟁반을 들고 사라지자 마담은 곧장 테이블 한쪽 구석에 무더기로 쌓아 놓은 각설탕을 향해 손을 뻗었다.
“너는 예쁘게 생겨서 다행이다, 얘.”
능숙한 손길로 각설탕 껍질을 벗겨낸 마담은 김이 오르는 커피 잔 안으로 설탕 덩어리를 떨어트렸다. 퐁당 소리와 함께 테이블 위로 커피 몇 방울이 튀었다.
“저번 주에 글쎄, 김두철 사장이 보낸 애들은 있지? 어쩜 그렇게 생겨선 고객들 앞에 내놓을 수도 없구. 목욕탕 청소를 시키곤 있는데 내심 서운한 모양이야.”
마담은 내가 가져온 서류를 들여다보지도 않은 채 수다를 떨었다. 동시에 손으로는 각설탕을 감싼 종이 포장 껍질을 열심히 벗기고 있었다. 마담의 커피 안에 들어간 각설탕이 얼추 다섯 개는 넘는 것 같았다.
“근데 우리 욕탕은 있잖아, 가드 애들이랑 같이 쓰거든. 걔네는 다 베타이긴 한데 꼭 그렇게 욕탕에서 붙어먹는 애들이 있지 뭐니. 바닥 미끄러운데 거기서 하다가 우리 애들 뼈라도 부러지면 어떡하나 몰라. 내가 못 하게 하는 것도 아니고, 응? 내가 룸 비면 거기 들어가서 빨리 하고 나오라고 몇 번이나 말하는데도 참.”
그리곤 마담은 바랜 티스푼을 집어 들었다. 이미 다 식은 커피 잔 바닥에선 모래 긁히는 소리가 났다. 더 이상 녹지 않을 것 같았던 설탕은 마담의 수저질에 사정없이 으깨지다 곧 잠잠해졌다.
달그락 소리를 내며 티스푼이 수면 위를 깨고 올라오자 언제 설탕을 삼켰냐는 듯 커피 잔 안은 한없이 고요해졌다. 마담은 그대로 커피 잔을 내게 건넸다.
“난 단 커피가 좋더라. 쓴 건 우리 인생 하나로도 족해. 그치?”
마담이 타준 커피는 혀가 아리도록 달았다. 너무 달아서 코가 맵고 눈시울이 시큰해질 정도였다.
“얘, 해영아. 너 도장 같은 거 있니? 계약서에 찍게.”
마담은 툭 내뱉듯 말을 꺼내곤 각설탕 껍질을 벗겼다. 곧 그녀의 붉은 입술이 열리고 단단하게 뭉쳐진 설탕 덩어리가 입 안으로 삼켜졌다. 각설탕이 사각이며 으깨지는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입 안에서 굴리던 각설탕이 다 녹기도 전에 마담은 금방 새 각설탕을 집어 들었다.
그 정적을 깨고 내 입술은 불안을 감추지 못하고 달싹거렸다.
“거절 안 하세요?”
마담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려 내 얼굴을 응시했다. 그리곤 단호한 목소리로 내게 그랬다.
“내가 왜? 안 해. 거절.”
사창가의 점주들은 특이형질을 품어가며 가게를 위태롭게 운영할 필요가 없다. 오직 열성만이 상품 취급을 받는 이 시장에서 굳이 극우성 오메가를 데려와 위험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억제제 매일 먹니, 너?”
마담은 각설탕 종이 껍질을 벗기며 태연하게 물었다. 그녀의 물음대로 억제제라면 매일 먹고 있었다. 고개를 작게 끄덕이는 나를 응시하던 마담은 그제야 테이블 위로 손을 뻗어 내가 건넨 서류를 집어 들었다.
“쯧… 다들 배가 불렀어, 아주. 너같이 예쁜 애를.”
애초에 별다른 내용이 적힌 것도 아닌지라, 마담은 읽는 둥 마는 둥 대충 훑은 서류를 도로 내려놓았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함께 혀를 찬 마담은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곤 말을 이었다.
“내일부터 일해.”
“네?”
“약 매일 챙겨 먹고, 혹시 불안하면 열성 오메가 향수 뿌려. 여기에 오는 놈들은 멍청하니까 괜찮아. 아무도 몰라.”
마담의 목소리는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태연을 넘어서 오히려 당연하다고 말하는 듯했다. 그간 내 형질을 밝힐 때마다 업주들로부터 받았던 반응들과는 상반되는 모습이었다.
소파에서 몸을 일으킨 마담은 벽 구석에 쑤셔둔 책장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내 앞에 내려놓았다. 빚을 다 갚을 때까지 이 업소에서 일하겠다는 것을 약속하는 계약서였다.
“넌 한 달에 한 번, 평일에 무조건 쉬어. 억제제 떨어지지 않게 잘 관리하려면.”
마담이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인주엔 먼지가 그득하게 묻어 있었다.
“도장 없으면 지장 찍구.”
“저 진짜 일해요?”
“그럼 가짜겠니?”
엄지에 닿는 인주는 푹신했다.
***
그날의 불안했던 기억을 싸그리 잊을 만큼 몰아치는 예약에 며칠간 정신없이 바빴다. 그땐 형질을 들켰다는 것만으로도 공포감이 몰려왔는데 이제 생각해보면 과한 반응이었나 싶기도 했다. 이 업소에 매여 있는 나를 그 남자가 찾아낼 수도 없을 것 같았고, 아무래도 극우성 알파인 듯한 남자가 굳이 나를 찾을 필요도 없는 것 같고.
오늘 잡힌 예약 다섯 개 중 마지막 고객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섹스를 존나 못 했다.
억지로 흘린 눈물에 짓무른 눈가가 쓰라렸다. 엉성하게 속박된 손목은 치받을 때마다 빳빳한 가죽끈에 쓸려 생채기가 났고 엉덩이는 얼얼하다 못해 멍이 든 것 같았다.
남자는 내 몸이 질리지도 않는지 약속된 한 시간 동안 쉴 틈 없이 구멍에 좆을 박아댔다. 손가락만 한 길이의 좆으로 느낄 리는 만무했음에도 만족한 척을 하느라 애를 썼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체위라 다행이었다.
이번 고객은 5분에 한 번씩 몸을 부르르 떨어대며 사정을 해대는 탓에 바닥엔 축축한 콘돔이 수도 없이 널브러져 있었다. 아무리 조루라고 해도 횟수로 치면 열 번도 넘게 싼 것 같은데 이러다 정액이 아니라 다른 걸 내 몸에 싸버리는 게 아닐까 내심 걱정이 됐다. 그런 걸 당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추가금도 없이 당하고 싶진 않았다.
몸을 부르르 떨며 사정을 한 남자는 헉헉대며 내 몸에서 제 좆을 뽑았다. 다 쓴 콘돔을 내 몸 위에 던져 버렸는지 등에 뭔가 툭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이따 욕탕에 가서 과하게 씻어낼 부위가 추가됐다.
“후욱, 헉… 너, 헉, 넌 왜 안 싸냐?”
겉으로는 벅찬 숨을 쉬고 이따금씩 절정에 여운이 남은 듯 몸을 움찔거리면서도 속으로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남자가 바닥을 짚은 채로 엎드렸던 내 몸을 거칠게 잡아당기더니 막무가내로 바닥에 눕혀버리고는 반쯤 선 좆을 노려보며 따져 물었다.
아무리 오메가가 섹스에 특화된 몸이라곤 하지만 열성 중에서도 극열성급인 이 남자의 페로몬엔 흥분하기도 어려웠고 좆도 정말 손가락만 해서 뒤로 느끼기는커녕 부딪힌 엉덩이만 아팠다.
이 남자도 자신의 콤플렉스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을 터였다. 아무리 제 욕구를 채우려 사창가에 왔어도 열성 오메가 하나―아무래도 내가 극우성 오메가라는 게 문제였겠지만―, 질질 싸게 만들지 못했다는 데 패배감을 느끼고 있을지도 몰랐다.
“창놈 새끼도 좆 가린다 이거지?”
짝- 소리와 함께 고개가 꺾였다. 새하얗게 질린 시야가 한참을 돌아올 생각도 없이 뎅뎅 울리는 골 사이로, 입 안 가득 차오른 핏물이 바닥 위로 뚝 떨어졌다.
해영아, 욕하면 안 된다. 이 좆같은 새끼는 백칠십이다, 이 조루 새끼는 백칠십이다….
“하… 씨발.”
하지만 심신의 안정을 위해 되뇌길 반복한 문장도 불쾌한 아픔 앞에선 소용없었다.
내 자그마한 욕설을 들었는지, 남자의 얼굴은 보기 흉할 정도로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축 처진 좆을 덜렁거리며 내게 쿵쿵 걸어온 남자는 침을 튀겨대며 소리를 질러댔다.
“뭐? 씨발? 씨발이라고 했냐, 지금? 허벌인 구멍에 박아주는 걸 감사하다 여겨야지, 이 발정 난 암캐 새끼가!”
듣기 싫은 고함과 함께 남자는 손을 들어 올려 내 뺨을 거세게 내리쳤다. 불에 덴 듯 화끈거리는 뺨 안쪽으로, 이빨에 짓뭉개진 입 안쪽 살에서 피가 나기 시작했다. 혀끝에 감도는 찝찔한 쇠 맛에 속에서 올라오는 욕설이 목구멍을 마구 쳐댔다.
이렇게까지 좆 작은 새끼일 줄 알았으면 물을 한 2리터쯤 마시고 올걸. 차라리 너무 느껴서 오줌을 지린 연기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조금 후회가 들었다.
그대로 거칠게 내 몸을 뒤집은 남자는 어깨를 억세게 쥐어 잡은 채로 삽입했다. 이번엔 억지로라도 사정을 해야 할 것 같아서 몸이 무너진 척 바닥에 좆을 비볐다. 원초적인 자극에 다행히도 늘어졌던 성기에 피가 몰렸다.
예약이 끝날 때까지 남은 약 5분 안에 이 조루 새끼의 타이밍에 맞춰 사정을 해줄 마음으로 열심히 허리를 흔들며 동시에 바닥에 험핑을 했다.
“이 씨발…, 헉, 후욱-”
등 뒤의 남자가 내 등에 뱃살을 뭉개며 탁, 탁, 탁, 탁 빠르게 허리를 치받았다. 덕분에 내 좆은 바닥과 내 아랫배 사이에 완전히 갇힌 채로 움직임에 따라 마구 비벼지기 시작했다.
빠르게 올라오는 자극에 부러 아랫배에 힘을 주며 방광을 눌렀다. 남자의 허릿짓이 토끼들의 교미처럼 빨라지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금방 사정할 거였다.
“응, 흐응… 하으, 주인님… 하아….”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극적인 호칭으로 남자를 부르며 숨을 헐떡였다. 묵직한 무게로 내 몸을 누르는 남자의 몸에 갇혀 나는 그대로 바닥에 질펀한 사정액을 쌌다. 여전히 흥분에 몸을 못 가누는 척 연기를 하면서 몸을 과하게 부르르 떨며 소변도 약간 봤다. 이 정도면 저 기분 나쁜 새끼의 손에 또 맞을 일은 없을 거였다.
그런데 느낌이 이상했다. 교접한 부분에서 질척한 액이 새어 나오는 게 느껴졌다.
생소한 감각에 화들짝 놀라 고객이라는 것도 잊고 남자의 몸을 바닥에 밀쳤다. 떨리는 손으로 구멍 안을 헤집는데 손바닥을 타고 정액이 흘렀다. 돌연 머리끝까지 피가 차갑게 식었다.
손에 끈적하게 묻은 더러운 정액에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다.
“씨발, 지금 콘돔 안 끼고 했어?”
“니가 다리 벌리고 앙앙대면서 좋다고 했잖아! 그래서 안에 쌌다, 왜!”
더 들을 말도 없었다. 그대로 몸을 일으켜 룸을 가로질러 걸어가 문을 벌컥 열었다. 아직 시간이 덜 됐는데 어딜 가냐며 따라온 남자의 덜렁이는 좆이 내 엉덩이에 닿았다. 그 순간 이미 차게 식은 머리에 돌연 피가 솟았다.
“씨발….”
사회 계급의 최하층, 그야말로 밑바닥에 처박힌 내 삶이 가끔 좋다고 느껴질 때가 있는데,
“좆도 작고 떡도 더럽게 못 치는데 내가 싸겠냐? 열성에도 못 미치는 알파 새끼 정액이라 임신이 되려나 모르겠다.”
당장 맞아 죽어도 딱히 큰 아쉬움이 없다는 거였다.
“뭐? 이 미친 새끼가, 야, 너 돌았냐 지금? 어?”
돼지 새끼가 울부짖는 것처럼 꽥 소리를 지른 남자의 얼굴이 흉물스러울 정도로 부풀어 올랐다. 남자의 솥뚜껑만 한 퉁퉁한 손이 허공에 번쩍 들어 올려진 순간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아 씨, 입 안 다 터지겠네… 나는 볼을 옴짝거리며 가지런히 입 안쪽 살을 정돈했다. 곧 얼굴께로 다가오는 남자의 두툼한 손날이 매서운 바람 소리를 내며 내 뺨 위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두 눈을 꽉 감은 채 손찌검을 기다리는 내 귀에, 돌연 든든한 목소리가 들렸다.
“김 사장님, 여기서 이러시면 곤란하죠. 다른 덴 몰라도 우리 업장에서 체내사정은 불법이라고 말씀드렸을 텐데….”
질끈 감은 두 눈을 슬며시 뜨자 가드를 양옆에 끼고 온 마담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어지간히 화가 난 듯 얼굴을 찌푸린 채 팔짱을 끼고 있었다.
방금까지도 내 앞에서 기세등등하게 폭행을 휘두르던 좆같은 알파 새끼는 이미 가드에게 팔이 뒤로 꺾여 속박된 채였다. 마담은 몸이 구겨지듯 허리가 접힌 남자를 향해 시선을 내리깔며 화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드플레이 체크도 안 하셨는데 속박플에, 스팽킹에… 우리 아이 뺨도 때리시고. 추가금이랑 중절비 내셔야 하는 거 아시죠?”
“씨발, 누가 들으면 오메가 새끼가 상전인 줄 알겠네. 난 못 줘, 그 돈!”
악을 쓰며 화내는 남자를 대놓고 무시하며 마담은 내게 어서 씻으러 가라며 손짓했다. 상황을 보아하니 이 남자를 흔히 말하는 ‘뒷골목’으로 보낼 작정인 듯싶었다.
뒷골목은 업장을 지키는 조폭들에게 놀이터와 다름없었다. 시도 때도 없이 칼부림이 나는 조직 생활에 비해 얌전한 축에 속하는 모란에서 그들은 자주 심심해하곤 했는데, 지금처럼 막무가내로 나오는 고객은 마침 심심해 죽을 것 같았던 조폭들에게 신선한 놀잇감이 되어주는 식이었다.
물론 명분은 있었다.
모란이 뿌리를 두고 있는 뒷세계의 거대한 조직, 황 파의 매출 상당수를 차지하는 모란의 상품을 훼손하고 영업을 방해한 것에 대한 조치라고 할 수 있겠다. 그건 사회 계급 밑바닥에 처박힌 우리들을 보호할 수 있는 마담의 유일한 완력이기도 했다.
내 예상대로 복도를 가로질러 욕탕으로 가는 동안 등 뒤에서 들리던 남자의 고함은 어느새 뚝 끊겼다. 이제 저 남자는 딱 숨통이 끊기기 직전까지 조폭들의 놀잇감이 되겠지. 몸도 제대로 못 가누고 피에 전 몸뚱어리로 바닥을 기어서 도망칠 남자의 모습을 상상하니, 다시금 역겨움이 치밀어올랐다.
대충 수건을 허리에 두르고 쪽방에 들어가 온갖 종류의 억제제와 사후 피임약을 입 안에 털어 넣었다. 혹시나 도움이 될까 싶어 임신에 위험한 약이란 약은 모조리 다 삼켜내고 나서야 안정이 됐다. 열성이라 부르기도 애매한 알파 새끼의 정액에 임신이 될 가능성은 적겠지만 혹시나 싶은 마음에서였다.
평소보다 긴 샤워를 마치고 욕탕에서 나왔을 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모든 상황이 정리되어 있었다.
“그 새낀 조져버렸으니까 걱정 마.”
어느새 나타난 강태산이 냅다 내 몸을 끌어안았다. 강태산이 입은 면티에선 역한 피비린내가 났는데, 그게 누구의 피일지 딱히 알고 싶진 않았다.
“이거 놔, 강태산.”
놈의 가슴에 파묻힌 고개를 겨우 돌려 작게 웅얼거리자 강태산은 내 머리통을 붙잡아 도로 원위치로 돌려놓았다. 가슴 큰 거 자랑하나, 섹스할 때 아니면 강태산의 가슴을 핥아줄 생각은 별로 없는데.
자꾸만 제 가슴 사이로 내 얼굴을 바투 끌어안는 강태산의 행동이 왠지 놀리는 것 같아서 그대로 이를 내어 한쪽 가슴을 세게 깨물었다.
“야!”
“그러니까 자꾸 가슴 들이밀지 마.”
깨물린 한쪽 가슴을 붙잡고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는 강태산이 괘씸했다. 입맛을 다시며 반대쪽 가슴도 확 깨물어버릴까 생각하고 있는데, 이 새끼는 경험에서 얻는 교훈의 효과가 없는지 나를 도로 끌어안았다.
이번엔 제대로 당해봐라 하는 마음에 그대로 고개를 돌려 반대쪽 가슴을 잘근잘근 씹어댔다. 아까처럼 까무러치게 놀랄 강태산을 기대하며 한참을 깨물어대는데도 강태산은 바윗덩어리처럼 꿈적도 하지 않았다.
“뭐야, 안 아파?”
“존나 아파.”
아프다면서 끌어안긴 왜 끌어안는지. 하여간에 강태산의 행동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주 밖에 있는 거였다.
그렇게 한참을 강태산의 품에 안겨 커다랗고 따듯한 손으로 토닥임을 받고 있는데 문득 얘가 내가 당한 일을 어떻게 알았나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아까 마담 옆에 서 있던 가드들은 강태산과 친한 놈들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어째서인지 정신을 차려보면 강태산은 내 모든 걸 꿰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어?”
“모란의 탑이 당했는데 소문이 안 날 리가.”
“닥쳐.”
“그거 약은 몇 주간 꾸준히 먹어야 한다며. 약 먹는 동안에는 일하지 마.”
또다시 강태산은 내게 이상하리만치 과한 동정심을 보이고 있었다. 안 그래도 항상 불쌍해 보이는 내가 이번 일로 아주 불쌍함의 극치에 다다른 모양이지, 괜히 욱 치미는 자존심에 가슴팍을 손바닥으로 퍽 밀며 놈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됐어, 빚은 누가 갚는데. 그리고 일 쉬는 게 내 마음대로 되냐?”
“내가 갚아줄게.”
“네가 왜.”
네가 뭔데, 대체 네가 뭔데. 너는 어차피 멀쩡한 베타고 나랑은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이잖아. 이미 밑바닥 인생인 도해영을 네가 뭐라고 그렇게 불쌍해하고 도와주려고 해? 강태산, 대체 네가 뭔데.
“착각하나 본데, 너한테 동정심 바란 적 없어.”
“…….”
강태산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화가 난다는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다가 등을 휙 돌린 채 업소 밖으로 뛰쳐나갈 뿐이었다.
멀어지는 강태산의 뒷모습을 노려보며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휑해진 로비에 혼자 덩그러니 서 있는 내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짜증 나, 강태산.”
네가 뭔데, 대체 네가 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