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란-1화 (2/43)

모란

1.

“오늘은 내가 몇 번째야, 응?”

목 뒤로 더운 숨이 훅 끼친다. 남자의 날숨엔 소름 끼칠 정도로 욕정이 묻어나왔다. 엉덩이를 힘주어 벌리는 손아귀 힘이 열성 알파치고는 억셌다. 뒷덜미까지 팍 솟구치는 짜증을 이 남자가 낸 돈의 액수와 삭감되는 빚을 떠올리며 삭였다.

“오늘 첫 번째 예약이세요.”

“그래? 좋네, 더럽히기 딱 좋아, 아주.”

줄어들지 않는 빚과 남자의 몸에 깔려 헉헉대는 것 중에서 어느 쪽이 현실이고 어느 쪽이 환상이다, 이런 건 없었다. 내겐 둘 다 지극히도 현실이라 무엇을 피해 이 짓거리를 하는지 뇌가 받아들이고 당장이라도 좆물을 먹고 싶어 미치겠는 발정 난 오메가의 표정을 지어내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완벽히 분위기에 젖은 표정을 만드는 동안 고개를 숙인 채 어리광부리듯 얼굴을 남자의 가슴팍에 부벼댔다. 내 뒤통수를 쓰다듬는 손길은 여전히 끈적였다.

이 남자는 백오십을 주고 나를 골랐다. 색기 있는 놈으로 데려오라는 요구에 마담이 골라온 상품들을 앞에 세워놓고는 찬찬히 얼굴을 훑는 눈동자가 짐승과 비슷했다. 먹잇감을 노리는 포악한 맹수의 것이 아니라, 그냥 비열하고 음습하고 더러운 눈.

“다리 벌려.”

오메가의 몸은 단순했다. 알파의 향에 눌려 구멍이 금방 젖고 방 안을 달큰한 향으로 가득 채워 알파를 정신없게 만든다. 그러곤 개같이 섹스.

다정하게 정상위로 하는 섹스를 요구하는 고객들도 종종 있지만 모란(牡丹)에 오는 알파들은 개같이 더럽고 추잡한 섹스를 돈 주고 사러 오는 사람들이었다. 무릎과 손바닥으로 바닥을 디딘 채로 개처럼 헐떡이면서 바닥에 싸대는 게 내 쪽에서도 더 편했다.

탁, 탁 빠르게 박아 넣는 몸집에 따라 몸이 앞으로 쏠렸다. 엉덩이에 닿는 남자의 처진 불알이 애액에 젖어 질척이는 소리를 냈다. 오메가로 태어나 좋은 점은 상대가 아무리 빈약한 섹스 실력과 좆을 갖고 있더라도 평균 이상의 섹스를 즐길 수 있는 몸이라는 것이었다. 얇고 작은 좆이 안을 후빌 때도 나는 대물이 들어온 것처럼 교성을 질러 댈 수 있었다.

“헉, 헉-!”

“아, 흐응, 응, 아, 아!”

턱 아래에 고인 침이 벌어진 입술을 타고 바닥으로 방울져 흘렀다. 남자는 내 등에 배를 답삭 붙이고 허리 힘만 써서 좆을 박아 넣고 있었다.

나는 처음인 것처럼 아픈 척을 해댔다. 흥분에 못 이기는 척 눈알 흰자를 보이며 허리를 옴짝댔다.

무슨 각인당한 오메가마냥 임신할 것 같다는 멘트를 쳐 가면서, 발기를 해야 겨우 딱 맞는 스몰 사이즈 콘돔 안에 남자의 좆이 질펀하게 사정을 할 때까지 연기를 했다.

“윽, 억, 허억-!”

동물 같은 신음과 함께 남자가 내 귀를 혀로 빨았다. 귓구멍 안으로 물컹이며 들어오는 혀놀림에 나는 울컥 바닥에 물을 쏟았다. 좆을 쳐넣는 속도가 갑자기 빠르게 치솟았다가 꽉꽉 정액을 밀어 넣는 것처럼 허릿짓이 묵직해졌다.

엉덩이 사이에서 좆이 울컥대는 타이밍에 맞춰 아랫배에 힘을 주었다. 방에 들어오기 전에 한껏 마셔둔 물은 귀두 사이에서 연노랑 오줌으로 줄줄 샜다.

말간 물을 싸대는 내 좆을 남자는 귀엽다는 듯이 쳐다봤고, 나는 여전히 엄청난 섹스에 정신을 잃은 오메가 연기를 했다.

학학대며 내가 싼 물 위에 등을 대고 누웠다. 반쯤 감긴 눈꺼풀 틈으로 무릎걸음으로 내게 다가오는 남자를 봤다. 다급하게 한 손으로 탁탁 좆을 흔들던 남자는 내 얼굴 위로 살덩이를 부볐다.

입술을 벌리고 혀를 빼내어 목마른 사람처럼 정신없이 좆머리를 핥았다. 이빨을 감춰 물고 목구멍을 열어 고개를 앞뒤로 흔들며 펠라를 하는 동안 본능처럼 구멍이 푹 젖어 들어갔다. 뒤통수를 붙든 남자가 내 목구멍에 좆질을 하는 동안 숨이 막혀 눈앞이 새빨개지는데도 내 구멍에서 흘러나온 액이 엉덩이 아래를 질펀하게 적셨다.

꿀럭이며 입 안에 사정한 남자는 그대로 내 몸 위에 오줌을 갈겼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두 눈을 감은 채로 나는 뜨겁고 냄새나는 물을 맞았다.

그게 내가 받는 백오십이었다.

말라붙은 정액과 냄새나는 오줌을 온몸에 뒤집어쓴 채로 목욕탕에 발을 디뎠다. 축축한 돌바닥의 미끄러운 부분을 피해 익숙한 샤워기 앞으로 향한 내 옆엔 지해가 서 있었다.

“형 오늘… 고생하셨어요.”

“으응. 너도.”

머뭇거리며 말을 걸어오는 목소리에 짧게 답하며 물을 틀었다. 뜨거운 물이 나올 때까지 샤워기 방향을 바닥을 향해 돌려놓자 쏟아지는 물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뒤에 또 있어요?”

언제 뜨거운 물이 나올까 기다리는 내게 지해는 또 한 번 말을 붙였다. 먼저 양치라도 해둘까 싶어 칫솔을 향하던 손을 거두고 대신 지해의 얼굴을 봤다.

“응. 30분 뒤에.”

오늘따라 지해는 그 애를 닮았다. 순하게 동그란 쌍꺼풀 진 눈이 도로록 굴러 나와 눈을 맞췄다. 묘한 기시감에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예약 많이 잡혔나 봐요.”

지해는 눈을 접으며 살포시 웃었다. 한쪽 볼에 폭 들어가는 보조개가 퍽 예뻐 보였다. 몸에 무시무시한 멍을 달고 사는 애처럼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그 애도 지해도 두 사람은 참 맑았다.

“빨리 빚 갚으라는 하늘의 계시인가 봐.”

내 말에 지해는 다시금 웃어 보였다. 오늘은 얼굴을 맞지 않았는지 목 위로는 크게 두드러지는 상처가 없었다. 오랜만에 말간 지해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지해와 별로 친하지도 않은데도 괜히 기쁘기까지 했다.

차가운 물을 다 빼낸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뜨거운 기운에 유리창 반짝만 한 거울이 금방 뿌옇게 흐려졌다. 지해를 향한 시선을 거두고 칫솔을 집어 들었다. 치약을 과도할 만치 짜내면서 나는 고작 이만큼의 양으로 몸에 남은 흔적을 지워낼 수 있길 바랐다.

비누를 벅벅 문질러 거품을 낸 손으로 억세게 팔뚝과 허벅지를 부볐다. 다리를 벌려 엉덩이 틈 사이도 세심하게 닦고, 혹시나 싶은 마음에 손가락을 두어 개 넣어 내벽도 긁어냈다. 그렇게 세 번을 반복했다. 몸에 묻은 냄새는 진작 비누칠 한 번에 물 한 번 끼얹은 것으로 사라졌을 텐데도 나는 늘 세 번씩 비누칠을 했다.

“저… 먼저 가볼게요. 수고하세요, 형.”

“으응. 너도. 잘 가.”

지해가 고개를 꾸벅 숙이곤 욕탕을 걸어 나갔다. 지해의 몸엔 군데군데 새빨간 멍이 번져 있었다. 조심조심 발을 내디뎌 걸어가는 지해의 모습에 다시금 그 애가 겹쳐 보였다. 미끄러지지 않도록 까슬까슬하게 깎아둔 돌바닥이 오늘따라 따가웠다.

5년 전 그 애는 죽었다.

나중에 꼭 졸부 손님 하나 꼬셔서 이 지긋지긋한 삶에서 벗어나겠다며 다짐했던 그 애는 그깟 사랑 때문에 죽었다. 잘나지도 않은 평범한 우성 알파 새끼한테 일방 각인을 하고 마담 몰래 임신까지 해놓고선 결국 죽었다.

더 잘살겠다고, 빚 죄다 갚아버리고 여기서 나가서 떵떵거리면서 살 거라고, 다른 평범한 사람들처럼 직장을 갖고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그렇게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서 이 나락에서 벗어나려고 버둥거렸던 그 애는 사랑이 뭐라고 자살을 했다. 우리가 막 스물한 살이 되던 해였다.

세 번째 칠한 비누칠을 물로 닦아낼 적에 같이 씻겨버린 거울이 내 얼굴을 비췄다. 멀건 얼굴이 물 얼룩에 드문드문 흐렸다. 나는 표정 없는 얼굴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빠르게 욕탕에서 나왔다.

불쌍하게 생겼네.

그게 내 얼굴에 대한, 그리고 나와 죽은 그 애가 살아가는 이 지긋지긋한 삶에 대한 유일한 감상이었다.

***

체향을 파는 사창가에선 향 갈무리를 잘하는 우성 오메가들은 C급 축에도 못 꼈다. 양주 한두 잔에 다리를 옴짝거리거나 고객이 노골적으로 흘리는 체향에 못 이겨 엉덩이 사이로 질질 액을 흘려대는 열성 오메가들만이 이 세계에서 진정 베스트셀러였다.

열성들은 달콤한 말에 사랑에 빠지기도 쉬웠고 그만큼 일방 각인도 쉬웠으며 그래서 상품 회전율도 빨랐다. 마담은 초박형 콘돔 한 무더기를 고객의 손에 쥐여주며 우리 애들 임신시키면 가만 안 둔다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보통 콘돔을 찢는 쪽은 사랑에 목마른 열성들이었다.

“해영아, 오후에 새로 들어온 애들 좀 봐줘.”

“네.”

마담이 나를 좋아하는 이유는 별거 없었다. 나는 돈 받은 만큼만 했다. 푼돈이면 술 좀 따라주다 대충 고간에 얼굴을 묻었고 돈 좀 썼다 싶으면 사랑에 빠진 척 아양도 떨고 키스도 하고 섹스도 했다.

사창가에서는 사랑을 팔지 않는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은 그걸 분명히 알면서도 나중에는 사랑에 눈이 멀었다. 3주 전 탑 쓰리에 드는 상품 하나가 마담 몰래 일방 각인까지 해낸 몸으로 고객의 씨를 받았다. 마담은 중절 수술을 권했지만 그 전에 그 애는 자살했다. 그 남자에게 버려져서, 그래서 그 애는 목숨을 끊었다.

마담이 새로 들어온 오메가들을 교육할 때 나를 부르는 이유는 그거 딱 하나였다.

“여기서는 엉덩이 대주고 돈 벌어요.”

향을 갈무리하지 못한 열성 오메가들의 페로몬이 작은 방 안에서 어지러이 엉겼다. 나를 응시하는 몇 쌍의 눈동자를 대충 훑어보면서 나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프런트에서 돈 받은 만큼만 서비스하시면 돼요. 펠라 값 낸 사람이 룸에 들어와서 푼돈 더 얹었다고 섹스해주지 마세요. 가격표 꼭 외우고, 문제 일어나면 호출 벨 누르세요. 가드가 문 따고 들어가서 상황 제압할 테니까.”

새 상품을 들여올 때마다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었다. 마담이 추천해주는 중견급 선수들을 전부 무르고 신입으로 바꿔 달라는 부류는 어설프고 서툰 맛이 색다른 재미지 않느냐면서 돈으로 후려칠 수 있는 가장 예쁘고 멍청하게 생긴 애를 초이스했다.

품 안에 가둬놓고 알파 페로몬을 질척하게 흘리면서 사랑한다는 말을 귓가에 속삭이면 이 일에 서툰 열성 오메가 열에 여덟은 물을 줄줄 싸면서 노콘으로 끝까지 갔다.

“섹스할 때 콘돔 끼고 하세요. 임신하면 마담이 수술비를 대주기는 하는데, 각인하면 골 아파져요.”

“얘, 나 이제 수술비 안 대 줘. 정책 바꿨어. 너네가 다~ 알아서 처리해.”

심드렁한 목소리로 마담이 뒷말을 붙였다. 마담은 팔짱을 턱 낀 채 문가에 팔뚝을 붙이곤 비뚜름하게 서서 표정 없는 내 얼굴을 응시했다. 그만하면 됐다는 뜻이었다.

나조차도 더 이상 할 말이 남아 있지 않아 그대로 입술을 꾹 다물었다. 긴장감이 역력하게 남은 얼굴들을 마지막으로 슥 훑곤 고개를 꾸벅 숙였다. 신입들은 갑작스런 내 인사에 엉거주춤 의자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마주 선 애들은 전부 나보다 키가 작았다.

그대로 발을 내디뎌 좁은 방을 나섰다. 아직 영업이 시작되지 않은 모란의 황량한 복도에 발을 디디며 쪽방과 이어지는 통로까지 걸었다. 익숙한 지점에 다다르고 나서야 나는 발을 멈췄다.

복도의 시작도 끝도 아닌 애매한 중간떼기, 불에 그을린 자국이 있는 어두운 색 나무판자 벽이 있고 그 맞은편엔 먼지 앉은 구식 소화기가 앉아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

불에 그을린 벽에 등을 대고 눈을 감으면 쪽방 너머 잠든 사람들의 나지막한 숨소리가 들리곤 했다. 그에 맞춰 숨을 쉬다 보면 복도에 흐르는 작은 바람이 내 발끝 언저리에 닿아오는 소화기 위의 먼지마저 숨 쉬게 했다.

벽을 타고 내 등에 울리는 호흡들은 나로 하여금 내가, 우리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곤 했다.

잠든 소리가 느적느적 흘러나오던 복도의 끝자락에서 굽 소리가 울렸다. 이쪽으로 걸어오는 모양인지 바닥에 부딪치는 마른 굽 소리가 차츰 커졌다. 나는 구태여 그녀의 얼굴을 살피지 않아도 발걸음 소리만으로도 알아볼 수 있었다.

기나긴 시간을 이 암흑 속에서 함께한 사람, 그녀는 모란을 지키는 마담이었다.

마담은 새로 온 애들을 작은 방에 데려다주고 온 모양이었다. 뮬을 질질 끌며 내 앞에 선 그녀는 담배를 꺼내며 내게 물었다.

“왜 다시 안 자고 여기 있어?”

“잠이 안 와서요.”

빨리 들어가서 마저 자라며 잔소리를 할 줄 알았는데 마담은 내 옆에 털썩 엉덩이를 붙여 앉았다.

불 자국으로 그득한 벽에 등을 댄 채, 마담과 나는 나란히 앉았다. 등 뒤로는 쪽방 너머 잠든 애들의 나지막한 숨소리가 들리고, 복도에 흐르는 작은 바람은 소화기 위의 먼지를 춤추게 했다.

“이제부터 신입 들어오면 가명 지으라고 해봐요.”

“왜. 밖에서 고객 마주치면 위험할까 봐?”

나도 모르게 툭 내던진 말이 입술 밖으로 새어나가 마담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딱히 어떤 답을 바라면서 말한 건 아니었는데, 마담은 내게 이유를 바랐다.

내 눈을 바라보며 묻는 마담의 질문에 답하는 것보다 담뱃불을 붙여주는 게 나에게는 더 쉬웠다. 습관적으로 왼쪽 갈비뼈께를 더듬으며 라이터를 찾다가 선수복이 아닌 맨투맨 티를 입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담은 트레이닝 바지 주머니를 더듬으며 라이터를 찾는 나를 말리곤 몸을 일으켰다.

유리창 끄트머리에서부터 돌돌 말려 들어간 암막 시트지 틈 사이로 어스름한 햇빛이 스몄다. 이곳의 어두운 불빛 아래에 검은색으로만 보였던 마담의 머리칼은 햇빛 아래에선 놀라우리만치 밝은 갈색이었다.

느긋한 걸음으로 뮬을 질질 끌면서 마담은 카운터에서 라이터 두 개를 들고 왔다. 아까 앉았던 비슷한 자리에 털썩 엉덩이를 붙여 앉은 마담이 내 손에 라이터 한 개를 쥐여주었다. 그녀의 손엔 한 개의 라이터가 아직 남아 있었다. 마담은 천천히 담배를 입술에 물었다.

“그냥… 분리하자는 거예요.”

마담의 입술 끝에 매달린 담배를 응시하며 상체를 숙였다. 애매모호한 내 대답에 마담은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대리운전 전화번호가 적힌 싸구려 라이터가 치직, 소리를 내며 담배 끄트머리를 적당한 불꽃으로 적셨다.

“뭐를?”

제대로 불꽃이 옮겨 붙은 것을 확인하자 나는 천천히 상체를 뒤로 기대 벽에 등을 대고 앉았다. 마담은 엄지와 검지로 가볍게 담배를 잡은 채로 깊이 한 모금 빨았다. 타들어 가는 담배 끝자락에서 아지랑이처럼 연기가 피어올랐다.

마담은 담배를 참 신기하게 피웠다. 담배 하나를 피워도 고급스럽게 피웠다. 연기를 많이 내지도 않고 재도 많이 안 떨어지게, 마담은 영화 속 주인공처럼 담배를 피웠다.

“여기서 일하는 나랑 나중에 밖에서 살 나랑은 다른 사람이었음 싶어서.”

한참 뒤에야 툭 내뱉은 대답에, 마담은 내 얼굴을 보지 않았다. 그녀의 반복적인 호흡에 담배는 울렁거리며 타들어 갔다. 그걸 한참 쳐다보고 있다가 고개를 숙였다. 마담의 담배에 불을 붙인 라이터는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히 숨죽어 있었다.

여기 사람들은 저마다 말 못 할 사정과 각기 다른 액수의 빚을 지고 이곳에 모여들었다. 언제 다 빚을 갚을지, 언제쯤 되어서야 이 생활을 그만둘 수 있을지. 앞날을 생각하기 벅찰 정도로 이곳은 어둡고 캄캄했다.

마담이 내 대답에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 건 마담조차도 이 생활을 언제쯤 청산할 수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어떤 질문에나 침묵은 중간은 가는 퍽 괜찮은 답변이기도 하고.

엄지손가락으로 싸구려 라이터에 인쇄된 번호를 문질렀다. 피부가 아릴 정도로 벅벅 문질렀는데도 플라스틱 위에 각인된 대리운전 번호는 지워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참 웃기다, 그치?”

“뭐가요?”

마담은 이번엔 나를 보고 있었다. 옅은 미소를 입가에 띤 채 마담은 마지막 한 모금 남은 담배를 천천히 빨았다.

“사는 거, 왜 이렇게 어렵니?”

옅게 메마른 목소리, 아스라이 흩어지는 새하얀 연기 틈으로 나는 문득 그 애를 떠올렸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마담의 어깨 위로 소복이 눈이 쌓였다.

그 애가 죽던 날 펑펑 내리던 그 흰 눈이, 지긋지긋할 정도로 하얗고 예뻤던 그 눈이. 녹지도 않고 기어코 버티고 버텨 이제야 마담과 나를 새하얗게 뒤덮었다.

손이 시렸다. 발도 시렸다. 꽝꽝 얼어붙어 온몸이 시린데 지랄맞게도 두 눈두덩만큼은 재수 없게 뜨거웠다.

“…이제 와서 그런 거 고민할 필요가 뭐 있어요.”

퉁명스레 뱉은 말에 마담은 다시금 웃었다. 천천히 숨을 빨아들이는 만큼 타들어 간 담뱃재가 투둑, 나뭇결 위로 낙하했다. 온몸을 뒤덮었던 눈보라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채였다.

때르르릉-

여럿 맞춰 놓은 알람이 쪽방 안쪽에서 정신없이 울렸다. 부산스럽게 몸을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복도 불이 하나둘 켜졌다.

어스름한 조명이 마담의 얼굴 위로 내려앉았고, 마담은 나무 벽에 담뱃불을 지져 끄곤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오냐.”

욕실 바구니를 들고 슬리퍼를 질질 끌며 복도를 지나가면서 애들은 허리 숙여 마담과 내게 인사했다. 업장 뒷문과 이어지는 우리 전용 목욕탕에선 버글버글 떠드는 소리가 웅웅 울렸다.

“해영아, 너도 가서 준비해.”

“네.”

마담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를 하는 내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리곤 등을 돌려 카운터로 향했다. 발걸음에 맞춰 탁탁 끌리는 굽 소리가 차츰 잦아들었고, 욕탕에선 여전히 떠드는 소리가 웅웅 들려왔다.

습기가 찬 유리문을 열어 까슬한 돌바닥을 밟았다. 익숙한 위치에 자리를 잡고 곧장 뜨거운 쪽으로 레버를 돌려 샤워기를 틀었다. 차갑게 쏟아지는 물이 벽면에 이리저리 튀었다.

“형, 잘 주무셨어요?”

지해가 두 볼에 보조개를 띄우며 인사를 해왔다. 샤워기에선 여전히 차가운 물이 쏟아졌고 어지러운 타일 무늬를 따라 흘러가던 옆자리의 비눗물이 내 발을 적셨다.

“응. 너도 좀 쉬었어?”

“네…. 오랜만에 푹 잔 것 같아요.”

“다행이네.”

낮이 곧 밤이고 밤이 곧 낮인 이곳의 하루는 바깥의 시간과 정반대로 흘러간다. 햇빛이 닿지 않는 그림자 속에 숨어 체향을 파는 오메가들의 낮은 밤보다 어둡고 추웠다. 뒤늦게 쏟아지는 뜨거운 물을 끼얹으면서도 나는 잠시간 추위에 몸을 떨었다.

“저… 먼저 가볼게요.”

한참을 물만 맞고 있는 내게 지해가 말을 건넸다. 아까보다 선명히 들리는 지해의 목소리에 그제야 꽉 찼던 욕탕이 꽤 한산해졌다는 것을 느꼈다. 욕실 바구니를 챙겨 든 지해는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연신 뒤로 넘기면서 내게 꾸벅 인사를 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너도. 좋은 하루 보내.”

오후 7시, 낮과 밤이 바뀐 모란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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