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싸구려 모텔방, 지직거리는 낡은 텔레비전 소음 사이로 들리는 발걸음 소리.
빗물에 젖어 벗어 던진 가죽점퍼 위로 챙그랑 소리를 내며 온갖 칼자루가 쏟아져 내리고, 허벅지에 찬 권총까지 풀어낸 놈은 천천히 내게 걸어왔다.
푹 꺼진 매트리스가 기우뚱하며 기울어졌다. 눅눅한 침대 끄트머리에 걸터앉은 몸에서는 익숙한 향수 냄새 사이로 짙은 피비린내가 났다.
“너 또 사람 죽이고 온 거야?”
등 뒤로 훅 끼치는 뜨끈한 열기가 온몸을 감싼다. 다부진 손으로 내 허리를 들어 올려 제 몸 위에 앉힌 놈의 얼굴에는 시뻘건 핏자국이 튀어 있었다.
놀란 내 얼굴 앞에서 보란 듯이 씩 웃어대는 게 섬뜩하기까지 했다. 이제 막 새살이 돋나 했더니, 턱 끝에 작게 찢어진 흉터가 다시 벌어져 검붉은 속살을 드러냈다.
아프지도 않은가, 걱정 비슷한 걸 하는 내 앞에서 여전히 놈은 빙글대며 웃어댔다. 하여간 인간미 없는 새끼.
“가서 세수 좀 하고 와.”
“왜.”
“남의 피 핥아 먹는 취향은 없거든.”
잘난 얼굴을 향해 톡 쏘아붙이며 내 허리를 감싸 안은 불경한 팔을 밀쳐냈다. 두둑하게 부푼 고간을 무시한 채 어서 세수하고 오라며 어깨를 밀어내는 내게, 놈은 돌연 무력을 사용했다.
“그럼 취향을 하나 만들어봐.”
골이 울리는 건지, 스프링이 삐걱이는 소리인 건지 분간이 안 됐다. 뒤로 확 나자빠진 몸 위로 바투 몸을 붙인 놈은 질척하게 목덜미를 빨아대며 낮게 웃어댔다.
“미친 새끼.”
“참고로, 흑금파 오른팔 새끼가 흘린 거야.”
“-떨어져, 좀!”
손에 쥐고 있던 리모컨으로 머리통을 세게 때렸다. 그제야 항복한다는 듯 순순히 물러난 놈은 뒤통수를 문지르며 화장실로 쑥 들어가 버렸다.
그 뒤를 따라 삐걱대는 침대에서 조용히 내려갔다. 피딱지와 살점이 붙어 굳어버린 칼자루를 옆으로 치우고 가죽 재킷 호주머니를 뒤적이자, 반쯤 구겨진 담뱃갑과 라이터가 나왔다.
무릎을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입술로 가볍게 물었다. 칙, 소리를 내며 켜진 자그마한 불씨에 끄트머리를 대자 솔솔 연기가 피어올랐다.
한 모금 마시자마자 곧바로 입 안 가득 화한 맛이 감도는 건 놈의 취향이었다. 은은한 것만 골라 피우는 나와는 다르게 사는 족족 강렬한 종류만 골라 사는 놈의 담배는 유독 뺏어 피우는 재미가 있었다.
입술을 동그랗게 모아 긴 숨을 뱉어내고 다시 담배를 물었다. 혀끝에 맴도는 알싸한 향이 숨을 들이쉴 때마다 뇌까지 파고드는 기분이었다. 쪼그린 무릎이 아플 때까지 그렇게 한참을 피우고 있는데, 달칵이며 화장실 문이 열렸다.
“담배 좀 끊어라, 도해영.”
“싫어.”
“몸도 안 좋은 게.”
“이거 맛있다. 다음에도 이걸로 사.”
입술로 담배 끄트머리를 문 채 웅얼대는 내 모습에 놈은 작게 혀를 쳤다. 담배 하나 뺏어 피우는 게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든다고, 나는 벽에 도배된 싸구려 벽지에 담뱃불을 짓눌러 끄며 침대께로 향했다.
“거울 달린 방 잡지 말랬지.”
“남은 게 여기밖에 없었는데 어떡하라고.”
“할 때 내 얼굴 보이는 거 마음에 안 들어.”
침대와 맞닿는 한쪽 벽에 달린 뿌연 거울을 노려보며 아랫입술을 말아 물었다. 거울에 비친 내 몸은 내가 봐도 한낱 창놈처럼 보였을 뿐이니까.
이름, 도해영. 직업, 사창가 오메가.
하는 일은 간단하다. 돈을 받은 만큼 좆을 빨아주고 엉덩이를 흔드는 것. 듣기 좋게 예쁜 신음소리도 내 주고, 바지춤을 추스르는 고객의 고간에 뺨을 부비며 몇 장 더 얹어달라고 애교도 부리는 그런 일.
좋아서 하는 건 아니다. 이 세상에 덩그러니 남아버린 내가 가진 건 도저히 줄어들질 않는 빚더미밖에 없었고, 어렸던 나이에 멍청히 신체 포기 각서에 지장을 찍었기 때문에.
“벗을래, 벗겨줄까.”
“수작질 부리지 마.”
퉁명스레 뱉으며 몸을 붙여오는 놈의 어깨를 확 밀었다. 여전히 나는 내 얼굴을 쨍하니 비추는 저 거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구태여 저렇게 확인시켜 주지 않아도 나는 내가 창놈이라는 걸 지독히도 잘 알고 있는데, 이 새끼랑 잘 때조차도 그걸 두 눈으로 확인해야 하는 게 너무 싫었다.
“…그냥 빨리 해.”
잔뜩 늘어난 티셔츠를 놔두고 대뜸 바지부터 벗으려는 나를 붙잡아 막은 건 강태산이었다. 이내 놈은 푹 숙인 내 턱을 움켜쥐곤 고개를 들어 올려 억지로 시선을 맞추더니, 강압적인 말투로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너, 무슨 일 있었어?”
강태산은 눈썹을 찌푸리며 내 허리를 끌어당겨 안았다. 답지 않게 걱정 비슷한 목소리를 내는 놈의 품을 밀어내며 나는 강태산이 입은 검은 색 티셔츠 끝자락을 말아 쥐었다.
“신경 쓰지 마.”
“어떤 새끼인데. 당장 말해, 어떤 새끼가 그랬어.”
내게 섹스는 그저 돈이었다. 룰은 간단하다. 돈 주면 다리 벌리고, 돈 안 주면 알몸도 안 보여주고.
빚을 갚기 위해서 뛰어든 생업 전선에, 마음 좀 맞는다고 헤프게 다리 벌릴 만큼의 여유는 내게 없었다. 돈 받고 해주는 섹스로도 이미 내 몸은 걸레짝이 됐는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봉사 정신 따위 있을 리가.
그런데 몇 개월 전부터 돈 안 받고 섹스해주는 놈이 하나 생겼다.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지켜주겠다’는 소리를 해대는 멍청한 놈, 베타 주제에 우성 알파만큼 좆이 크고 잘생겨서 나름 봉사할 맛이 나는 놈.
“말하면 가서 때려죽이게?”
“어. 그러니까 당장 말해. 어떤 새끼야.”
“너.”
강태산의 우람한 어깨를 검지로 꾹 누르며 짤막하게 대꾸했다. 내 대답을 이해하지 못한 듯 여전히 눈썹을 찌푸리고 있는 놈에게 나는 한 번 더 확인을 시켜주었다.
“거울 있는 방 잡아서 기분 잡치게 한 너라고, 너!”
벗기려던 티셔츠 자락을 홱 놓아버리곤 가슴팍을 밀쳐내며 짜증을 부렸다. 하여간에 가만히 있으면 반이라도 가는데 강태산은 종종 되도 않는 걱정 같은 걸 하면서 내 심기를 박박 긁어대곤 했다. 아마 그건 놈의 천성 같은 걸 거다, 강태산은 나를 처음 본 날에도 그랬으니까.
“기다려. 방 바꿔올게.”
“됐어, 그냥 해.”
툭 던진 대답에 놈의 얼굴은 더욱 구겨졌다. 온갖 일에 까다롭게 굴어댈 만큼 나는 여유롭지 못한데 강태산은 아니었다. 놈은 우리의 삶에 선택지라는 게 존재하는 것처럼 살았다. 적어도 내 삶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강태산은 그랬다.
“오늘은 하지 마, 그럼.”
그래서인지 놈의 결론은 종종 이상한 방향으로 튀곤 했다. 고작 방에 거울이 달려있다는 내 사소한 트집 하나 때문에, 강태산은 몸 아래에 깔린 시트를 주욱 잡아당겨 뜨겁게 열이 오른 아랫도리를 가렸다.
“진짜 안 해?”
“어.”
짤막한 대답과 함께 강태산은 벽에 달린 거울을 등지도록 내 몸을 돌리더니 그대로 나를 끌어안았다. 한마디로 오늘은 공쳤다.
“그래, 그럼.”
리모컨으로 TV 소리를 높이는 놈의 품에 기댄 채 나는 간단히 수긍했다. 빳빳하게 발기한 걸 놔두고 고자처럼 굴어대는 강태산이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어쨌든 쉬는 건 내겐 좋은 일이었다.
[…차 그룹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바로 어젯밤에 밝혀졌습니다. 사건 발생으로부터 채 24시간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심한 손길로 채널을 툭툭 넘기던 강태산이 멈춘 건 한창 뉴스가 진행되는 채널에 다다를 때였다.
화면 속에는 검은 수트를 갖춰 입은 한 남자가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을 둘러싼 취재진 무리를 헤치며 걸어가고 있었다. 혼잡스러운 현장 상황에 이어, 뉴스는 한 남성의 사진을 커다랗게 보여주며 보도를 이어나갔다.
[용의자로 지목된 차 그룹의 4남 차도헌 씨에 대한 본격적인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관계자는 이에 대해….]
눈을 가늘게 뜨며 TV 화면을 가득 채운 남자의 사진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도드라진 눈썹뼈와 그 아래로 이어지는 우뚝 솟은 콧대, 강한 선이 돋보이는 얼굴에 패인 볼, 그리고 도톰한 입술을 가진 남자.
화면 속 남자는 내게 묘한 기시감을 주고 있었다. 분명 저런 고객을 받은 기억은 없는데. 물론 단위를 일주일로 끊어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고객을 받긴 하지만, 만약 저런 남자를 받았더라면 절대 잊었을 리가 없었다.
생김새도 그렇거니와 고작 화면 너머로 모습을 보는 것뿐인데도 강하고 거친 우성 알파의 느낌이 나는 남자는,
“…잘생겼네.”
정말 재수 없을 만치 잘생겼으니까.
“저렇게 생긴 놈 좋아하냐?”
“누굴 좋아할 만큼 한가한 건 아니라서.”
“퍽이나.”
퉁명스러운 목소리였다. 아까까지 무던하게 굴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강태산은 얼굴을 팍 구긴 채 턱을 악물고 있었다.
“왜 그래?”
놈의 변덕은 마른 장작에 갑자기 불이 붙는 식이었다. 난데없이 리모컨을 내동댕이친 곳에는 꺼져버린 까만 텔레비전 화면이 있었고, 강태산을 등받이 삼아 반쯤 누워있던 나는 어느새 놈의 아래에 단단히 깔린 채였다.
“갑자기 왜 이래?”
“어렵게 잡은 시간인데 날리면 안 되지.”
뻔뻔스러운 얼굴을 응시하며 나는 코웃음을 쳤다. 봐, 다 가짜라니까. 걱정하는 척이고 신경 써주는 척이고 다, 진짜일 리가 없지.
“잘하면 팁 줄 거야?”
이번엔 놈이 코웃음을 쳤다. 단숨에 벗겨진 옷가지가 침대 아래로 떨어져 나가고 맨몸엔 드로어즈조차 남지 않았을 때에야 놈은 비뚤게 웃으며 대답했다.
“봐서.”
제구실을 못 하는 매트리스는 이어지는 거친 몸짓에 쉼 없이 삐걱여댔다. 우악스럽게 잡힌 무릎이 한껏 벌려진 사이로 둔탁한 성기가 부벼지고, 입구를 찾아 뭉근히 문질러대는 행위만으로도 나는 교성을 내질렀다.
섹스는 쉬웠다. 몸 안에 파고드는 살덩이를 받아낸 곳엔 고통에 상응하는 쾌감이 있고, 그저 흥분에 젖은 채 커다란 품에 안겨서 정처 없이 흔들리면 되니까. 뚝뚝 끊이는 숨이 이러다 정말 멈춰버릴 만큼, 한순간도 제대로 된 사고조차 할 수 없는 거친 섹스가 난 좋았다.
격한 몸짓에 시야는 뿌옇게 번져 갔고, 내 안의 이성은 이미 사라지고 난 후였다. 나는 쾌락의 파도가 내 모든 것들을 쓸어가도록 놔두었다. 픽셀이 자글거리는 낡은 텔레비전 너머로 기시감을 주던 남자의 모습도, 강태산의 이유 모를 변덕도, 그 어떤 것 하나 내겐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섹스가 좋았다. 정신없이 흔들리고 나면 내겐 그 무엇도 하나 남지 않으니까. 내게 남은 것들은 어차피 기억할 필요도 없을 것들이니까, 어차피 바보 같은 나는 기억하려 해도 전부 다 잊어버릴 테니까.
“나 기억 안 나?”
하지만 그날 텔레비전 속 남자의 얼굴 정도는 제대로 기억해둘걸, 돌이켜 나는 5년 전의 도해영을 책망하며 거대한 알파의 앞에 무너져 내리고야 말았다.
공포감을 드리우는 짙은 색의 페로몬은 내 숨통을 단단히 조이고 있었다. 기도에서부터 시작된 날 선 열기가 곧장 아랫배를 관통하고, 바들바들 떨리는 몸은 알파가 내뿜는 흉포한 페로몬에 절여지고 있었다.
“찾느라 고생 좀 했어.”
“흐… 으, 윽….”
“설마 사창가에 숨어 있을 줄은 예상도 못 했는데 말이야.”
턱을 억세게 움켜쥔 손아귀에마저도 나는 몸을 움찔하며 발정했다. 알파의 페로몬에 흠뻑 절여져 풀린 동공에, 남자는 고개를 들어 올려 억지로 시선을 맞췄다.
“어때, 이제 좀 기억이 나?”
분노에 차 낮게 읊조리는 목소리, 기어이 사창굴에 숨어 사는 극우성 오메가를 찾아낸, 잔뜩 굶주린 극우성 알파.
차도헌이 내 앞에 나타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