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 사내의 마음, 짐승의 마음 (5/6)

4. 사내의 마음, 짐승의 마음

대낮에 창관 앞을 서성이며 서윤이 위를 쳐다봤다.

은서가 머무는 방은 이 층이다.

그녀의 방 창문은 닫혀 있었다.

다른 창녀들의 방 창문은 전부 열려 있는데 그녀의 방 창문만 닫혀 있다.

대낮에 이런 곳을 서성거리는 것을 남들이 봐서 좋을 것은 없다.

“벼슬을 어찌 아니한다고 하는 것인가?”

남들이 얻지 못해서 안달이 난 벼슬을 서윤이 마다하자 오 장군은 의아하게 물어왔다.

이번 반정에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이 바로 서윤이다.

왕의 목을 베고, 채 승상의 목을 베었다.

반정에 동참한 이들은 서윤이 분명 높은 벼슬을 얻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또한 몇 해 전에 비명을 달리한 그의 부친은 선왕의 신임을 받기도 하였으며, 그 부친은 선왕을 끝까지 지키다 죽었다. 그의 부친을 봐서라도 반정으로 옥좌에 오른 왕이 서윤에게 큰 벼슬을 내려 그의 공을 치하할 것이라고 다들 생각했지만 정작 벼슬을 거부한 것은 서윤이었다.

벼슬자리를 더 거절하고 어린 아우를 돌보면서 살겠다 그리 말한 것이다.

먼 곳에 집을 구해 그곳에서 아우가 자라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아 살아가겠다는 말에 오 장군도 더는 벼슬을 권하지 않았다.

“달리 필요하거나 바라는 것이 있으면 말하게. 천금을 못 주겠나.”

이미 서윤에게는 몇 수레의 금과 은이 하사품으로 내려졌다.

평생을 호의호식해도 다 쓰지 못할 재물이었다.

“유은립의 누이동생을 제게 주십시오.”

서윤이 오 장군에게 부탁한 것은 그것 하나였다.

유은서를 제게 주는 것.

그러나 그 단 하나의 바람은 거절당했다.

“반정에 동참하지 않고 선왕의 편에 선 자들의 일가족은 모두 같은 처벌을 받았어. 사내는 죽이고 여인들은 창관에 넘긴다는 어명이 내려졌네. 그것만은 어찌할 수 없다네. 그게 법이니 어쩌겠나. 대신 다른 것을 구하게.”

그것만은 안 된다고 거절당했다.

우스웠다.

복수를 하고 은서와 행복하게 살겠다고 다짐했건만, 복수를 하는 동시에 그의 삶은 산산조각이 났다.

손에는 친구의 피가 묻었고, 사랑하던 여인은 저를 원망하고 저주하며 창녀가 되었다.

복수는 이루었지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처참하고 서글픈 후회만이 남았다.

몇 날 며칠을 울었다.

제 손으로 죽인 벗이 생각나서 울었다.

제 손으로 망쳐버린 여인의 삶이 생각나서 울었다.

많은 여인들이 창녀가 되느니 자결했다는 소문을 듣고 은서도 그리 자결할 줄 알았다.

그녀가 죽으면 따라 죽을 생각이었다.

저승에 가서 비록 용서를 받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그녀가 죽는 길에 따라 죽어 그 뒤를 따르려고 했다.

어린 아우가 마음에 걸렸지만 금은 재물을 아우에게 주고 자신은 그녀를 따라가려고 했지만 그녀는 죽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를 샀다.

금 한 관을 주고 그녀를 샀다.

약속한 사흘이 끝나면 다시 그녀를 살 것이다.

사고 또 살 것이다.

다른 사내들은 그녀에게 손끝 하나 대지 못하게, 자신이 그녀의 일생을 사버릴 것이다.

이제는 용서받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죽은 벗에게도, 그녀에게도 용서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럴지라도 그녀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

짐승이 되어서라도 그녀를 가지고 싶다.

어젯밤의 자신은 짐승이었다.

더럽고 추한 짐승.

자신의 아래에서 울부짖는 그녀를 무참하게 범한 짐승.

그리고 앞으로도 짐승일 것이다.

짐승이라도 좋다, 그녀와 함께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자신을 원망하고 복수하려고 하는 한 그녀는 죽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제 목숨을 취하기 전에 그녀는 죽지 않을 것이니 그녀를 위해, 스스로를 위해 짐승이 되자.

드르륵.

서윤이 창관의 문을 열었다.

대낮부터 찾아오는 손님은 없건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서윤을 보며 나른하게 늘어져 있던 여주인이 깜짝 놀라 일어났다.

“나으리.”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고치고 허리를 숙이는 여주인에게 서윤이 ‘내가 산 여자를 보러 왔다.’고 짧게 말했다.

서윤은 이미 알아버렸다.

그녀의 육체를 취하며 그 극상의 맛을 이미 맛보고야 말았다.

한 번 알아버린 그 맛을 놓을 수가 없다.

이제 사랑을 바랄 수 없으니 그 육체라도 손에 넣고 싶다.

비록 자신의 품에서 그녀가 괴로워하고 울부짖는 한이 있더라도 결국은 자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그녀를 얻는 그 쾌감.

원망 외에는 받을 것이 없겠지만 적어도 자신이 그녀를 사랑할 수는 있다.

자신의 사랑이 사랑으로 비쳐지지는 않겠지만, 그럴지라도 서윤은 그녀를 사랑할 수는 있다.

그녀가 자신을 저주하더라도 그녀를 곁에 두고 있는 한은 언제까지나 그녀를 사랑할 수 있다.

되돌아오는 사랑 따위는 이제 바라지도 않는다.

일방적인 마음이라도 괜찮다.

미움받는 것도 상관없다.

원망과 저주를 받는 것도 상관없다.

그 원망과 저주를 온몸에 받으며 사랑하는 것은 자신이다.

이것은 사랑이다.

사랑이 확실하다.

그녀를 만난 처음부터 사랑이었고, 짐승이 된 지금도 여전히 사랑이다.

돌이킬 수 없지만, 그럴지라도 이것은 사랑이다.

자신만의 사랑이다.

*** 

와장창!

문을 열고 들어서는 서윤을 향해 은서가 그릇을 집어 던졌다.

물이 담긴 그릇이 날아가 서윤의 옆을 스치며 벽에 부딪쳐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졌다.

흩어지던 파편 중의 하나가 서윤의 뺨을 긁으며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짐승 같은 놈!”

은서가 그를 향해 소리쳤다.

그 말에 상관하지 않고 서윤은 그녀의 앞으로 다가앉았다.

그가 손을 내밀자 은서가 그를 향해 침을 뱉었다.

뺨에 묻은 침을 손등으로 닦아낸 서윤이 그녀를 향해 조용히 웃었다.

“하고 싶은 대로 하시오. 나도 하고 싶은 대로 할 것이니.”

서윤의 손이 은서의 허벅지에 닿았다.

“건드리지 마!”

“잊었소? 나는 손님이고 그대는 창녀라는 것을?”

그 말에 은서는 진저리를 쳤다.

“새벽 내내 보았던 그대의 음란한 모습이 떠올라서 대낮인데도 다시 오고야 말았소.”

“이놈!”

은서가 손을 들어 서윤의 뺨을 후려쳤다.

그러나 그녀의 손은 서윤에 의해 가로막혔다.

그녀의 손목을 잡은 채로 서윤이 그녀의 얼굴 바로 앞으로 다가갔다.

“손님을 받아야 하지 않겠소?”

이제 그 어떤 달콤한 말로도, 그 어떤 진심으로도 은서에게 닿을 수 없다는 것을 서윤도 안다.

아무리 사죄해도, 무릎을 꿇고 빌어도 은서는 자신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더 미워할 수 있게 하자.

영원히 그 미움이 끝나지 않게 하자.

더 잔인하게 굴고, 더 짐승처럼 굴어서 그녀에게서 매일 새로운 미움을 받자.

차라리 그편이 낫다.

경험해보지 않았는가.

시간이 가면 미움은 흐릿해진다.

원망도 빛이 바래는 날이 온다.

그런 날이 오면 은서는 어쩌면 자결할지도 모른다.

그녀를 지탱해주고 있는 원한이 흐릿해지면 그녀는 덧없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원망하게 해주자.

어차피 될 짐승, 기꺼이 되어주자.

“이놈!”

은서의 몸이 이부자리 위로 쓰러졌다.

그녀를 쓰러뜨린 서윤이 그녀의 몸에서 옷을 찢어낼 것처럼 벗겨냈다.

한 겹 입은 옷을 벗기자 어젯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가냘픈 육체가 드러났다.

“이놈! 네 이놈!”

서윤의 아래에서 은서가 발악했다.

그런 그녀의 위에 올라탄 서윤은 그녀의 젖가슴을 손으로 더듬었다.

새하얀 육체는 서윤의 거친 손바닥이 스칠 때마다 움찔거렸다.

“곧 그대도 이런 일에 익숙해질 것이오.”

속삭이며 서윤이 그녀의 젖가슴에 입술을 내렸다.

“하윽!”

유두를 혀로 휘감고 빨아올리자 순식간에 유두가 단단해졌다.

가해지는 자극에 육체가 반응하는 것이다.

육체는 마음의 혐오나 증오 따위와는 전혀 상관이 없이 사내에게 반응하고 있었다.

“천천히 길들여주겠소.”

서윤이 은서의 유두에 이를 세웠다.

혀로 굴리고 이로 잘근거릴 때마다 은서의 몸이 움찔거렸다.

그 참을 수 없는 육체의 음란함에 은서가 치를 떨었다.

서윤이 유두를 핥을 때마다 죽여 버리고 싶은 분노가 치솟지만 육체는 그 아찔한 자극에 떨어댔다.

서윤의 혀는 집요했다.

할짝할짝 젖은 소리를 내가며 유두를 핥던 서윤이 고개를 들고 은서의 입술을 덮었다.

“흐읍!”

강제로 비집고 들어오는 서윤의 혀를 밀어내려 했지만 그 정도의 힘이 은서에게 있을 리가 없다.

서윤의 혀가 은서의 혀를 휘어 감았다.

그의 타액이 질척거리며 혀를 휘어 감자 은서는 눈을 질끈 감았다.

혀가 휘저어지고 빨려질 때마다 속에서 구역질이 올라왔다.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서윤의 타액을 전부 토해버리고 싶었다.

얼마나 집요하게 은서의 혀를 탐했을까.

혀를 뿌리째 뽑아버릴 작정을 한 것처럼 그 입술을 탐하던 서윤은 한참 후에야 혀를 빼냈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내쉬는 은서의 눈이 서윤을 노려봤다.

그녀의 입술이 타액에 젖어 번들거리는 것을 서윤은 내려다봤다.

문득 서윤이 생각했다.

저 입술에 번들거리는 젖은 것이 타액이 아니라 자신의 정액이었으면 좋겠다고.

저 입술에 자신의 것을 물리고 빨게 하고 싶었다.

이런 식으로 점점 이성이 없는 짐승이 되어가는 것일까.

“어제 이렇게는 해본 적이 없었지, 아마?”

서윤이 은서의 몸을 돌려 눕혔다.

그녀를 엎드리게 만들고 한 손으로 그녀의 목덜미를 눌러 저항하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그녀의 엉덩이를 들어 올렸다.

“하윽!”

은서가 짧은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둔부를 서윤의 손이 벌린 것이다.

벌어진 둔부 아래로 그녀의 둔부가 새빨갛게 갈라져 속살이 들여다보였다.

뒤를 훤히 보이는 치욕적인 자세에 은서는 눈을 감았다.

다른 사내라면 몰라도 이 사내에게 이런 꼴을 당하기 싫었다.

차라리 다른 사내가 낫다.

늙은 사내든 추한 사내든 다른 사내가 낫다.

오라비를 죽인 이 사내만 아니라면.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겠지.

그러면 어찌해야 좋은 것일까.

이 사내는 자신을 놓아주지 않을 것인데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복수가 될까.

무엇을 어떻게.

“하윽!”

그녀의 몸을 가르고 뒤쪽에서 길고 굵은 것이 음부를 찔러 들어왔다.

벌어진 둔부 아래에 빨갛게 벌어져 있는 음부 안으로 파고 들어온 것은 사내의 분신이었다.

“하윽! 아! 흐아!”

은서의 허리를 잡은 사내가 뒤에서 뜨겁고 단단한 성기를 밀어 넣고는 허리를 쳐대기 시작했다.

한번 그녀의 안으로 들어선 서윤은 멈추지 않았다.

“하읏! 아! 아아!”

계속해서 거칠게 허리를 찔러 올리는 서윤의 아래에서 은서의 몸이 흔들렸다.

찔릴 때마다 제 음부에서 흐르는 것이 무엇인지 은서는 알 수 없었다.

“아!”

거세게 음부를 꿰뚫리며 떨어대는 은서의 어깨를 서윤이 깨물었다.

어깨를 깨물고 그녀의 등에 혀를 내리면서도 서윤은 멈추지 않고 허리를 움직였다.

그녀의 하얀 살결에 퍼져나가는 붉은 흔적이 더할 나위 없이 아찔해서 서윤이 그 붉은 색에 취해 정신없이 은서를 탐했다.

그녀가 지르는 비명, 신음소리를 들으며 서윤의 머릿속이 열기로 가득 찼다.

미쳐버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신음과 함께 자신이 미쳐가고 있다고 서윤은 생각했다.

그리고 또 생각했다. 차라리 미치면, 그녀도 자신도 미치면 더 낫지 않을까 하고.

*** 

달그락, 달그락.

소리를 내며 수저를 연신 움직이는 은서를 그녀의 몸종이었던 여인이 대견스럽게 쳐다봤다.

며칠째 제대로 음식을 입에 대지 않던 그녀가 오늘은 무슨 일인지 배가 고프다며 밥을 찾았다. 게다가 차려온 밥상의 음식을 잘도 먹는 것이다.

“물도 드세요, 아가씨.”

몸종이 은서에게 물그릇을 밀었다.

물그릇 안의 물을 반 정도 비운 은서는 다시 음식을 먹었다.

그리고 차려진 음식을 거의 다 먹은 다음에야 상을 물렸다.

“잘하셨습니다, 아가씨. 잘 드셨어요. 앞으로도 그러셔야지요.”

“한 가지 부탁을 해도 되겠느냐?”

은서가 몸종을 쳐다봤다.

몸종은 이 창관에 매인 몸이 아니다.

자유인이다.

밖을 마음대로 다닐 수 있는 것이다.

“그러셔요, 아가씨. 제가 무엇을 해드릴까요?”

“사람을 좀 찾아줘.”

“사람이요?”

“그래, 어디에 사는지.”

“그건 어렵지 않지만 왜…….”

“할 일이 있어서 그래. 그러니까 꼭 찾아주면 좋겠어.”

은서의 눈은 무서울 정도로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서윤에게 범해지는 며칠 동안 한껏 흐트러져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굴던 그녀의 얼굴이 아니었다.

서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녀를 찾아오기 시작한 지 사흘이 지났다.

애초에 그가 그녀를 산 것은 사흘이었다.

그러나 사흘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 사내는 다시 금 한 관을 몸값으로 치르고 은서를 사흘간 사는 짓을 했다.

엿새에 금이 두 관.

사람들이 비웃을 만한 짓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내다.

그 사내가 또 다시 금 한 관을 주고 자신을 사흘 동안 사는 것을 보며 은서는 깨달았다.

저 사내는 절대로 자신을 놓아주지 않는다.

자신이 죽지 않는 이상 저 사내는 아마 영원히 자신을 범할 것이다.

끔찍한 일이지만, 생각을 고쳐먹으니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왜 진즉 생각하지 못했는지 그게 이상했다.

처음에는 저 사내에 대한 원망과 저주, 복수심이 눈을 가려 제대로 보지 못했다.

저 사내가 자신을 매일 찾아오는 것이 오히려 복수하기에 가장 좋은 기회라는 것을 왜 빨리 깨닫지 못했는지 그게 한스럽다.

어차피 복수의 대상은 저 사내다.

저 사내와 지금의 임금이 복수의 대상이다.

그렇다면 이 창관에 몸이 묶인 자신이 복수를 위해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이상 저 사내가 찾아오는 것은 복수에 얼마나 유용한 일인가.

처음에는 발악하고, 욕하고, 침을 뱉었지만 그런 식으로는 복수를 할 수가 없다.

진짜 복수는 최대한 잔인하고 고통스러워야 한다.

그리고 은서는 어떻게 해야 저 사내에게 최고의 고통을 안겨줄 수 있는지 이제야 겨우 깨달았다.

그것을 위해 오늘부터는 변할 생각이다.

더는 저주도 하지 않을 것이고, 더는 저항도 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 사내가 원하는 대로 안겨줄 것이다.

교태도 부리고, 다리도 알아서 벌리고.

저 사내를 안심시키자.

안심하고 무디어졌을 때 저 사내의 등에 비수를 꽂자.

죽음보다 더 끔찍한 비수를.

드르륵.

경대 서랍을 연 은서가 그 안에서 분첩과 연지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으로 제 얼굴을 단장하기 시작했다.

이곳에 온 후 처음으로 제 스스로 몸단장을 하는 그녀였다.

사내를 유혹하기 위해서.

*** 

해가 지자 어김없이 창관을 찾아와 은서의 방 안으로 들어서던 서윤은 사뭇 변한 은서의 모습에 내심 당황했다.

당장 오늘 새벽만 하더라도 제게 안기며 독기 어린 눈을 하던 그녀가 아닌가.

그런데 지금은 곱게 분과 연지로 화장하고 다소곳하게 앉아 있다.

서윤은 지금까지 은서에게 선물을 꽤 많이 들여보냈다.

노리개부터 시작해서 비단까지 들여보냈지만 은서는 그것들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서윤이 선물한 비단옷을 입고 그 노리개를 허리춤에 달고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소?”

서윤이 짐짓 당황하지 않은 척 그녀의 앞에 앉았다.

오늘은 술상도 놓여 있었다.

“무슨 일이 있을 리가 있겠습니까?”

창관에 와서 만난 이후로 내내 이놈 저놈, 짐승 같은 놈, 이라는 욕만 퍼부어대던 은서가 지금은 예전으로 돌아간 듯 점잖게 대답을 해왔다.

그러나 눈가에 어린 독기는 변함이 없다.

“복수를 포기한 것이오?”

“설마요.”

은서가 낮게 웃었다. 증오가 깃든 웃음이었다.

“살아서 복수할 거예요. 그러려면 당신이 곁에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여기에 매인 몸이라 밖으로 나가지 못하니 말이에요. 만약 당신이 더는 여기에 오지 않게 되면 나는 죽는 순간까지 복수를 하지 못하게 되니 말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내게 질리지 않게 하기로 했습니다.”

“잘 생각했소. 매일 찾아올 것이니 내게 어떻게 복수를 할 것인가 생각해 보시오.”

“당신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게 할 것입니다. 제 눈에서 피눈물이 흘렀듯이 말입니다.”

“마음대로 하시오.”

은서의 차가운 미소를 보며 서윤이 소리 없이 웃었다.

하지만 웃는다고 그것이 웃음은 아니다.

피눈물.

이미 흘렸다.

제 손으로 벗의 심장을 찌를 때 이미 피눈물은 하염없이 쏟았었다.

“쏘지 마라!”

아직도 눈을 감으면 그 날의 기억이 선명하다.

하지만 아무리 후회해도, 울어도 돌아갈 수 없는 나날이다.

몰랐다고, 그럴 생각이 아니었다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다면 차라리 미움을 받자.

미움이 그녀를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면, 차라리 행복이다, 이것은.

자신의 안에도 짐승이 살고 있고, 그녀의 안에도 짐승이 살고 있다.

자신의 안에 사는 짐승은 그녀를 탐하고자 하는 짐승이고, 그녀의 안에 사는 짐승은 저를 죽이고자 하는 복수의 짐승이다.

하지만 이런 모습일지라도, 살아간다면 되지 않겠는가.

“오늘은 술 한 잔 받을 수 있는 것이오?”

“따라드릴까요?”

은서가 술병을 들어 서윤의 앞에 놓인 잔에 천천히 술을 부었다.

술이 가득 담긴 잔을 든 서윤이 그것을 곧장 들이켰다.

“독이라도 탔으면 어쩌려고 그리 잘도 드십니까?”

“상관없소, 독을 탔어도.”

서윤의 눈동자가 은서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대의 손에 기꺼이 죽어주겠다는 것이오.”

“나중에 그 목숨, 받겠습니다.”

“지금은 아니고?”

“고통스럽지 않으니까요. 독은 너무 짧으니까…… 저는 당신이 훨씬 더 길게, 오랫동안 고통받기를 바라고 있어요.”

“기대하고 있겠소.”

술잔을 내려놓은 서윤이 은서가 입고 있는 비단옷에 손을 올렸다.

그의 손가락이 옷자락에 닿자 은서가 제 손으로 옷고름을 풀었다.

스르륵, 옷자락이 벌어지며 그녀의 육체가 드러났다.

그녀의 행동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이제부터 벌어질 일을 은서는 이미 각오하고 있었다.

조금의 예상도 빗나가지 않을 것이다.

서윤이 자신을 쓰러뜨리고 욕심이 채워질 때까지 범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 잔인한 육체 아래에서 자신은 헐떡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이미 더럽혀진 몸이다.

한 번 더럽혀진 몸은 이제 되돌릴 길이 없다.

더러워졌다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더러워졌다면 이 더러워진 몸을 마음껏 사용할 것이다.

이 더러워진 몸에 이 짐승 같은 사내를 받아들이며 그 독기에 빠져 이 짐승을 죽게 만들 것이다.

끔찍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잔인하게 웃어줄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이제는 아무것도 상관이 없었다.

비단이 아래로 흘러내리고 은서의 새하얀 육체가 드러나자 서윤은 그 몸으로 손을 뻗었다.

은서는 피하지 않았다.

“은서.”

그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은서의 가슴을 쓰다듬던 서윤의 손이 천천히 목덜미를 타고 위로 올라가 그녀의 턱을 잡았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을 제 앞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서윤의 바로 앞까지 얼굴이 당겨진 은서가 천천히 입술을 벌렸다.

은서의 얼굴에 서윤의 더운 숨이 훅하고 끼쳐왔다.

입술이 닿는다고 생각하는 순간 서윤의 혀가 은서의 입안으로 침입했다.

거부하지 않는 은서의 입안에서 서윤은 거침없이 혀를 움직였다.

그녀의 혀를 휘어 감고 그 타액을 빨아올리던 서윤이 두 손으로 은서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리고 입술을 뗐다.

“은서.”

속삭이는 서윤의 입술에 은서의 손가락이 닿았다.

부드럽고 따뜻한 그녀의 손가락이 서윤의 입술을 어루만졌다.

그녀의 눈동자는 싸늘했지만 그녀의 손가락은 따뜻했다.

“은서.”

서윤이 다시 그 이름을 불러본다.

“은서.”

부르면 부를수록 더 감질이 나는 것처럼 서윤이 계속 그 이름을 속삭였다.

은서의 손가락이 서윤의 입술에서 미끄러져 그의 목덜미를 타고 내려가 그의 옷자락에 닿았다.

그녀의 손이 서윤의 옷을 풀어냈다.

그리고 벌려놓은 옷자락 사이로 파고 들어온 은서의 손이 서윤의 등을 어루만졌다.

그 부드러운 손가락이 등줄기를 어루만질 때마다 서윤이 은서의 콧등에 입술을 내렸다.

문득 서윤은 생각했다.

만약 그 무서운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장마가 끝나고 가을이 되어 약속한 혼인식을 올리고, 신방에서 이렇게 서로를 취하지 않았을까.

아름답게 장식된 신방에서 신랑·신부의 옷을 서로 벗겨주고, 합환주를 마시고, 그리고 서로의 살결에 손을, 입술을 내리며 애틋하게 몸을 섞지 않았을까.

그랬더라면 그 밤은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이제 영원히 오지 않을 그 밤은, 무척이나 아름다웠을 것이다.

그 날은, 그 약속은 이제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잠…….”

제 무릎 위로 올라오는 은서의 행동에 서윤이 그녀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그녀가 먼저 그의 무릎 위로 올라갔다.

그의 목에 손을 걸고 그 무릎 위에 올라간 그녀가 단단하게 일어서 있는 사내의 분신 위로 하체를 문질렀다.

“하윽!”

천천히 허리를 내리자 벌어진 그녀의 음부 안으로 사내의 성기가 버겁게 삼켜졌다.

“아……!”

제 스스로 삼키기에 버거웠던지 은서가 서윤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그에게 바짝 기댔다.

그리고 마침내 서윤의 성기를 전부 삼킨 은서가 음란하게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읏! 아……!”

가쁜 신음을 흘리며 은서가 그의 위에서 허리를 움직였다. 그녀를 바라보며 서윤이 걷잡을 수 없는 흥분에 휩싸였다.

은서가 허리를 내릴 때마다 서윤의 안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그 불길을 주체하지 못한 서윤이 은서의 입술을 찾았다.

“흐읍…….”

정신없이 입술을 찾아 그 혀를 휘감으며 서윤은 그녀의 숨결을 삼켰다.

그런 서윤의 목을 끌어안은 채로 은서가 허리를 움직였다.

그녀의 허리가 올라갔다 내려올 때마다 벌어진 음란한 계곡으로 삼켜졌다 드러나는 서윤의 성기가 젖은 소리를 울려댔다.

그 젖은 소리는 마치 비명소리와도 흡사했고, 울음소리와도 흡사했다.

뜨거움이 그 맞물린 몸에서 무섭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 하윽……!”

서윤의 몸이 안으로 들어올 때마다 은서가 뜨겁게 신음했다.

“아앗, 아! 아!”

은서가 숨을 헐떡이며 신음을 내뱉었다.

그 신음이 서윤을 자극해서 더 뜨겁게 달아오른 남성이 은서의 안쪽으로 깊숙이 침범해 들어왔다.

“아아!”

견디다 못한 서윤이 그녀를 끌어안고 몸을 뒤집었다.

그의 위에서 허리를 흔들던 은서가 도리어 아래에 짓눌렸고 위로 올라탄 서윤이 그녀의 다리를 벌리고 제 허리를 쳐댔다.

서윤의 남성이 몸속 깊숙하게 파고들어 안에서 꿈틀거리자 은서의 허리가 움찔움찔 반응을 보였다.

“하윽, 하읏……!”

그의 손에 붙잡힌 그녀의 다리가 더 넓게 벌어졌다.

“하읏! 아! 아아……!”

은서가 서윤의 목을 끌어안은 채로 소리를 높였다.

서윤의 손이 은서의 몸을 더듬었다.

더듬어오는 그 손길을 마음대로 내버려 둔 채로 은서는 두 다리를 서윤의 허리에 감았다.

서윤의 뜨거운 숨이 은서의 귀를 적셨다.

“하윽! 아아아! 아!”

몸을 젖히며 은서가 교성을 흘려댔다.

흔들리는 그녀의 젖가슴을 물어뜯으며 서윤은 더 격렬하게 움직였다.

“아, 아아! 아아아!”

꾸며낸 신음이 아닌 진짜 신음이라는 것 정도는 서윤도 알 수 있었다.

일부러 교성을 지어내는 것이 아니라 진짜 쾌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자신과 관계하며 은서가 쾌감을 느낀다. 이미 그 사실만으로 서윤은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였다.

자신이 은서를 황홀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아찔했다.

“하윽! 아아!”

서윤이 입술로 젖가슴의 유두를 빨아들일 때마다 은서가 몸을 떨었다.

“아앗! 아!”

뜨거운 소리를 흘리는 은서의 입술을 서윤이 포갰다.

그러자 그 숨결과 소리가 서윤의 입안으로 흘러들었다.

그 격렬한 순간을 삼키며 서윤이 은서의 안에 자신을 쏟아내었다.

*** 

“정말 떠나야 해?”

열한 살의 어린 소년이 저보다 훨씬 큰 제 형을 올려다보며 힘없이 말했다.

“걱정 마라. 너를 돌봐줄 이들이 있으니까.”

두 마리의 소가 끄는 수레가 세 대 준비되어 있었다.

그 세 대의 수레에는 왕이 하사한 금과 은, 그리고 비단이 잔뜩 실려 있었다.

“열한 살이면 다 컸다. 이제 네 앞길은 네가 챙겨야지.”

서윤이 제 아우의 머리를 쓰윽 쓱 문질렀다.

오늘은 아우를 떠나보내는 날이다.

이곳 도성을 떠나 반나절 가면 나오는 조용한 마을에 집을 한 채 구했다.

그 집에서 집안일을 돌봐줄 하인들도 구했다.

그리고 마을에 사는 관리에게 제 아우를 돌봐달라는 부탁도 했다.

그 관리는 부친 살아생전에 도움을 많이 받았던 이였다. 새 왕이 선 후에 신분이 복권되어 새로 벼슬을 받은 자로 믿을 만한 사람이다.

그에게 아우를 친자식처럼 돌봐달라는 부탁을 했다.

서윤 자신이 아우를 돌보면 좋으련만 요즘처럼 밤낮으로 창관만 들락거려서는 그럴 수가 없다.

소문도 좋지 않게 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서윤도 들어 알고 있다.

그 소문이 아우의 귀에 들어가는 것이 싫다.

그렇다고 창관에 가지 않는 것도 싫다.

매일 은서를 만나고 싶다.

하루라도 그녀를 만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

그래서 결국 아우를 떠나보내기로 했다.

이유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자신은 언젠가는 은서의 손에 죽을 것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그때가 오면 아우는 갑자기 혼자가 된다.

그렇게 되기 전에 아우가 자리를 잡게 해주고 싶은 마음도 지금의 이사를 서두르게 했다.

바라는 것은 제가 죽었을 때 그 소식이 아우에게는 전해지지 않는 것이다.

아우가 괜히 복수하겠다며 은서에게 해코지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어리석었지…….’

서윤은 지금에서야 비로소 후회가 되었다.

복수. 그것을 후회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복수는 복수를 부른다는 것을 이제야 겨우 깨달은 것이다.

복수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는 것도.

자신의 복수가 은서에게 상처를 입혔고, 그 상처 때문에 은서는 자신에게 복수할 것이고, 만약 자신이 죽으면 그때는 자기 아우가 은서에게 복수하려 들지도 모른다.

결국 이렇게 복수가 복수를 불러들이는 꼴이 되었다.

이것을 진즉 알았더라면 복수의 칼을 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미 너무 늦어버렸지만.

“날 보러 오는 것이지?”

“시간이 나면.”

서윤이 다시 한번 아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 얼굴을 들여다봤다.

누이를 많이 닮은 얼굴이다.

저를 닮지 않고 누이를 닮았다.

분명 심성 고운 청년으로 자랄 것이다.

“시간이 나면 보러 가마.”

“기다릴게, 형.”

수레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가마꾼들이 소년에게 빨리 오라 손짓했다.

뛰어가서 가마에 타기 전 소년은 제 형을 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그 아우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서윤이 마음으로 인사했다.

보러 간다고 했지만 아마 약속은 지켜지지 않을 것이라는 걸 이미 가슴이 알고 있었다.

*** 

달각.

술잔을 내려놓은 사내가 제 손으로 술병을 들어 잔에 술을 채웠다.

그 모습을 은서가 물끄러미 쳐다봤다.

오늘 사내는 또 다시 금 한 관을 내놓고 그녀를 사흘간 샀다.

이것이 벌써 여섯 번째다.

그녀를 산 지 16일째였다.

치른 몸값만 금이 여섯 관이다.

기와집 몇 채가 이미 날아갔다.

평소에는 찾아오면 술은 한 잔만 마시고 그녀를 품던 사내가 오늘은 술병을 세 개째 비우고 있는 중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그녀는 묻지 않았다.

그저 사내가 술을 다 마실 때까지 기다릴 참이었다.

세 병의 술을 다 비운 사내가 오늘은 손을 떨 정도로 취했다.

사내가 취했다는 것을 은서도 알았다.

“재밌는 이야기 하나 해줄까요.”

사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흔들렸다. 취한 것이 분명했다.

이 사내도 취하고, 이 사내도 주정을 부릴 줄 안다는 것을 은서는 오늘 처음 알았다.

“그대의 오라비는 나라 안의 제일 검객이었지.”

서윤의 입에서 오라비의 이야기가 나오자 은서의 눈매가 서늘해졌다.

오라비의 이름은 함부로 담아서는 안 된다. 더군다나 저 사내는 더더욱.

그러나 서윤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어갔다.

“그 제일 검객이 어쩌다 죽었는지 아시오?”

“듣기 싫습니다.”

“과연 최고의 검객이라 내가 아무리 검을 휘둘러도 당해낼 수가 없었소. 얼마나 강한지 나는 감히 접근도 못 했지.”

고개를 떨군 채로 서윤이 허허 웃었다.

잔뜩 취한 사내였다.

“그 강한 사내를 쓰러뜨린 것은 검이 아니라 활이었소. 빗속에서 궁수들이 활을 겨누는데…….”

“쏘지 마라! 쏘지 말아라!”

아무리 그렇게 소리쳐도 소용이 없었다.

궁수들이 활을 쏘고, 날아간 화살이 그 사내의 몸에 수도 없이 박혔었다.

고슴도치처럼 화살을 몸에 박은 채로 그 사내는 기어이 쓰러지지 않았다.

쓰러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내처럼 보였다.

“은립! 유 사형!”

소리를 지르며 달려가려는데 그 사내가 검을 들었다.

전신에 화살을 박고 비틀거리면서도 두 다리로 버티며 끝까지 검을 들었다.

차라리 그때 쓰러졌더라면 편히 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내는 편히 죽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

“화살을 맞고 비틀거리는 그대 오라비의 등을 무사 하나가 베고…….”

그 검에 베이고 쓰러졌다면 좋았을 것을, 그런데 그 사내는 또 일어섰다.

기어이 일어섰다.

그렇게 깊게 베이고도 기어이 일어나 검을 들었다.

“일어나지 마시오! 그만! 일어나지 마시오!”

애원하며 소리쳤다. 일어나지 말라고.

전신을 피로 물들인 채로 일어나지 말라고 그에게 소리쳤지만 그는 또 일어섰다.

무사 한 명이 그의 몸에 창을 꽂았다.

그런데 그 창을 꽂은 채로 야차처럼 검을 휘두르는 것이 얼마나 참혹했던지.

“처음에는 왼팔이 잘려나가고…….”

서윤이 술잔에 술을 채웠다.

“그 다음으로는 오른쪽 어깨를 잘리고…….”

그래도 그 사내는 일어났었다.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검을 놓지 않았다.

“나는 사람의 목숨이 그리 질기다는 것을 그날 처음 알았소…….”

술잔의 술 위로 눈물 한 방울이 굴러떨어졌다.

고개를 떨군 서윤이 기어이 눈물을 떨군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은서는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서윤을 보는 대신, 다른 곳을 봤다.

아니,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

“……그의 목을 베었소. 그의 배를 찌르고, 심장을 찌르고, 그의 목을 베었소. 일어나지 말라고. 더는 일어나서 아프지 말라고.”

서윤이 술잔을 들었다.

그의 손은 덜덜 떨리고 있어서 술잔의 술이 바닥으로 넘쳤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는…… 그대의 오라비는 계속 일어날 것 같아서…….”

은서는 알지 못하던 오라비의 마지막이었다.

은서가 본 것은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고 목이 잘린 채로 돌아온 오라비의 시신이었다.

다른 곳을 바라보는 은서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더는 울지 않겠다, 독하게 굴겠다 마음 먹었지만 오라비의 마지막 모습이 눈앞에 그려져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은서가 사내를 바라봤다.

사내는 여전히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고개를 떨구고 어깨를 떠는 사내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안해.”

사내가 흐느꼈다.

“미안해…… 미안하오…….”

자신에게 하는 사죄인 줄 알았다.

그러나 곧 그것이 자신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은서가 깨달았다.

“미안하오, 그대를 죽이고 나 혼자 살아서…….”

그것은 죽은 오라비를 향한 사죄였고 후회였다.

“미안하오…… 그대를 살리지 못해서…….”

사내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은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술의 절반을 쏟으며 사내가 은서를 향해 말했다.

“미안하오…… 그대의 오라비와 함께 죽지 못해서. 살아서 그대 앞에 이렇게 앉아 있어서 미안하오. 혼자 꾸역꾸역 살아남아 그대를 이리도 괴롭혀서…… 미안하오…….”

사내는 그 밤, 미안하다는 말만 수십 번 했다.

그리고 결국 그녀를 품지 못하고 그 자리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그녀를 사기 시작한 첫날부터 시작해서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녀를 품에 안고 욕망을 채우던 사내가 16일 째 되는 날은 그녀의 옷깃 하나 풀지 못하고 술에 취해 쓰러졌다.

그리고 쓰러진 사내의 손에서 술잔을 빼앗으며 그녀는 비로소 깨달았다.

오늘이 죽은 오라비의 사십구재라는 것을.

오라비가 죽은 지 딱, 49일이 되는 날이었다는 것을.

그것을 깨닫고 그녀도 울었다.

쓰러진 사내 옆에서, 그 사내의 등을 보며 그녀도 하염없이 울었다.

쓰러진 사내가 그렇게 마신 술이 제 오라비에게 건네는 사십구재의 술이었다는 것을 알고는 그리도 서럽게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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