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창녀
“분과 연지는 외상으로 주는 것이다. 그것들은 전부 화대에서 제할 것이니 그리 알고 있거라.”
창관의 여주인이 꿇어앉은 은서에게 분과 연지를 내주며 무뚝뚝하게 말했다.
창관을 30년째 운영하고 있는 이 여주인은 나이가 예순이 넘었다.
그러나 여전히 허리는 꼿꼿하고 눈매는 날카롭다.
사람을, 그것도 사내들만 상대하는 창관의 일을 하려면 보통 성격으로는 되지 않는다.
산전수전을 다 겪고, 별의별 꼴을 다 봐온 이 창관 여주인의 눈에 명문가의 딸에서 창녀로 전락한 은서는 딱하기는 하지만 도와주지는 않을, 그 정도였다.
이 일을 하다 보면 온갖 딱한 사정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아우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팔려온 누이, 부모의 약값 때문에 팔려온 딸, 남편의 노름빚에 팔려온 아내. 그리고 몰락한 귀족의 딸들.
유은서의 경우는 반정이 일어난 후 가문이 멸문지화를 당하고 혼자만 목숨을 부지한 경우다.
목숨은 겨우 부지했지만 가문과 재산을 모두 잃고 창관에 넘겨졌다.
‘일생을 창녀로 살라’는 왕명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유은서에게만 특별히 그런 왕명이 내려진 것은 아니다.
이번 반정에서 몰락한 가문의 딸과 부인네들에게는 모두 동일한 왕명이 내려왔다.
사내들은 목을 잘라 죽이고 여인네들은 창녀로 삼아 일생을 수치 속에 살아가는 벌.
참 무자비한 벌이 아닐 수 없다.
그 왕명 앞에서 절반이 넘는 귀족의 딸과 부인들이 스스로 자결을 했다.
죽더라도 창녀가 되는 수치는 겪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그래서 다들 이 긍지 높은 처녀 유은서도 그리 자결할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모두의 예상은 빗나가서, 유은서는 자결하지 않았다.
유은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여주인으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장사적인 면으로 봐서 나쁠 것은 없다.
빼어난 미모를 가진 긍지 높은 가문의 딸. 그런 처녀가 몰락하여 창녀가 되었다.
어지간한 사내들이라면 전부 욕심을 낼 것이다.
유은서의 첫 사내가 되기 위해서라면 화대를 부르는 대로 낼 사내들도 꽤나 많을 것이 틀림없다.
어디 그뿐인가.
첫 사내는 되지 못했어도 비운의 창녀라는 소문이 퍼지면 매일 사내들이 줄을 서서 유은서의 옷고름을 풀고 그 다리를 벌리고 제 욕망을 채우지 못해서 안달이 날 것이 틀림없는데, 여주인으로서는 손해 볼 일이 없다.
평소 관청에 이것저것 뇌물을 주고 줄을 댄 보람이 있다.
물론 유은서를 거저 데리고 온 것은 아니다.
관청에서 내리는 창녀를 받기 위해서 쓴 돈이 꽤 많다.
그 돈들은 전부 화대에서 제하고 유은서가 입는 옷, 화장에 들어가는 분과 연지의 대금, 그리고 유은서가 먹는 것들까지 전부 다 화대에서 제하게 된다.
그렇게 다 일일이 제해도 유은서라면 1년이 되지 못해서 큰돈을 손에 쥘 수 있다.
그 정도의 미모다.
하지만 큰돈을 손에 쥐면 뭣 하겠는가.
이미 등에 창녀의 낙인이 찍혔고, 그리고 무엇보다 왕명으로 창녀가 된 경우에는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속량이 불가하다.
억만금을 줘도 속량은 있을 수 없다.
평생 창녀로 늙어 죽어야 한다.
‘차라리 자결하는 것이 나았을 것인데…… 또 모르지. 첫 손님을 받고 나면 모멸감에 자결할지도…….’
그렇게 되면 그 손해는 전부 여주인의 몫이다.
‘잘 감시해야지. 자결하지 못하게.’
“당장 오늘 저녁부터 손님을 받게 될 것이다.”
그 말에 유은서의 어깨가 움찔거리는 것이 보인다.
아무리 대담한 척해도 무서울 것이다.
저가 언제 사내를 경험이나 해봤겠는가.
이미 첫 손님을 정했다.
유은서의 등에 찍은 낙인의 상처가 아무는 동안 여주인은 비싼 값에 유은서의 처음을 사줄 사내를 물색했다.
서른 명이 넘는 사내들이 저마다 돈주머니를 내밀며 유은서의 첫 사내가 되게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그 경쟁에서 승리한 것은 뜻밖의 사내다.
그 사내는 유은서의 첫 손님이 되는 대가로 금 한 관을 내놓았다.
금이 한 관이다.
창녀를 하룻밤 사는 비용은 아무리 창관에서 가장 잘 나가는 창녀라고 해도 보통 은 열 냥이 넘지 않는다.
콧대 높은 창녀도 은 열 냥이면 알아서 옷을 훌훌 벗고 원하는 모든 체위를 다 해주기 마련이다.
그런데 금을 한 관이나 내놓았으니 여주인으로서는 횡재를 했다.
“대신, 첫날부터 시작해서 사흘간은 다른 손님을 받지 못하게 하고 나만 받아야 할 것이다.”
금 한 관의 조건은 사흘 동안 그 손님만 받는다는 것이었다.
상관없다.
사흘 동안 금 한 관.
“내가 그 창녀를 죽이든 살리든 사흘 동안은 내 소관이다.”
얼마나 거칠게 대하려고 그런 것일까.
거친 손님을 받다가 죽는 창녀도 제법 많다.
유은서는 소중한 장사 밑천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죽이지는 않겠지?
“오늘 손님은 중요한 분이시니 밑을 깨끗하게 닦고 준비하거라. 손님이 물으시면 네네 대답하고, 절대로 손님께 패악질을 부려서는 안 된다. 알겠느냐? 손님이 개처럼 기라시면 개처럼 기고, 손님이 음경을 빨라고 하시면 빠는 거다. 네가 아직도 귀한 댁 딸이라는 자존심이 있다면 그건 버려야 한다.”
“알고…… 있습니다…….”
유은서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떨림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하루에 손님을 서너 명씩 받아야 하는 년들에 비하면 너는 복 받은 거다. 일단 하루에 한 명이지 않니?”
여주인이 낮은 소리로 웃었다.
“뭐, 나중이 되어 더는 너를 찾는 손님이 없어지면 너도 푼돈을 받고 하루에 서너 명씩 뜨내기손님을 받아야 하겠지만 말이야.”
창녀의 끝은 다 그런 것이라며 여주인은 웃었다.
***
훌쩍훌쩍.
옆에서 내내 우는 몸종을 은서가 살며시 바라봤다.
그 몸종은 은서가 태어났을 때부터 그녀를 돌봐준 여인이다.
은서 모친은 몸이 약해 직접 아기를 돌볼 수 없어 몸종에게 딸을 맡겼다.
핏덩이 아기였을 때부터 제 친딸처럼 키운 은서를 몸종은 그 집안이 망하는 순간에도 떠나지 않고 곁을 지켰다. 집안의 다른 종들과 하인들이 도망칠 때 은서와 함께 죽겠다며 곁을 지킨 것이다.
몸종은 은서가 자결을 택하는 대신 창녀가 되는 길을 택하자 이 창관의 일꾼으로 자처해서 들어왔다. 창녀들의 몸단장을 도와주고 잡일을 도와주는 그런 잡부였다. 그것도 돈도 받지 않고 일한다는 조건으로 겨우 승낙을 받아낸 결과다.
“왜 자꾸 우느냐?”
은서가 내내 훌쩍이는 몸종을 달랬다.
“나는 괜찮으니 울지 말거라.”
“하지만 아가씨…….”
어떻게 키운 아가씨인데 이런 곳에서 모르는 사내를 손님으로 받는 꼴을 본단 말인가.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을 걸 그랬다며 몸종이 계속 눈물을 훔쳤다.
“이제 그만 나가 보거라. 계속 여기 있으면 눈총을 받는다.”
은서가 몸종에게 나가라 손짓했다.
이미 몸단장은 끝냈다.
은서의 뒤로 이부자리가 얌전하게 준비되어 있다.
한 치 흐트러짐도 없는 저 고운 이부자리 위에서 낯선 사내를 제 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은서라고 수치스럽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끊지 못한 이유가 있다.
이대로는 죽지 못한다.
오라비가 죽었다.
그리고 오라비의 처, 은서에게는 새언니가 되는 이도 죽었다.
새언니 태중의 오라비의 태어나지 못한 자식도 죽었다.
모두가 죽었다.
그리고 은서 홀로 남았다.
이 원한을 갚지 못하고 죽을 수는 없다.
무슨 꼴을 당한다 하더라도 기어이 살아남아 원한을 갚아야 한다.
지금은 아무런 힘이 없어서 복수를 할 수 없지만 목숨이 끊어지지 않고 살아있는 이상, 언젠가는 복수의 때가 올 것이라고 은서는 믿고 있다.
그때까지 치욕을 참으며 버틸 각오가 되어 있다.
훌쩍거리며 몸종이 밖으로 나가자 혼자 남은 은서는 흔들리는 촛불을 무심하게 바라봤다.
밖은 시끄러웠다.
해가 지자 창관에 손님들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창관에 든 손님들을 맞이하는 창녀들의 간드러진 웃음소리와 함께 곧 이곳저곳에서 음탕한 신음소리가 울렸다.
술에 취한 사내들의 웃음소리, 고함소리, 창녀들의 신음소리.
이곳은 짐승굴이나 다름이 없다.
“…….”
은서가 고개를 들었다.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발걸음 소리는 정확하게 은서가 있는 방문 앞에서 멈췄다.
“이곳이옵니다, 나으리.”
여주인의 목소리였다.
“그러면 좋은 시간 되시옵소서.”
정중한 인사 소리가 들리고 다시 발걸음 소리가 멀어졌다.
그러나 문 앞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은서의 눈에 방문에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가 들어왔다.
그림자는 한참을 그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방문이 드르륵 열렸다.
방문이 열리자 은서가 고개를 숙였다.
사내를 보고 싶지 않아서였다.
마음 같아서는 불도 끄고 싶었다.
자신을 범하는 사내도, 그 사내에게 범해지는 자신도 보고 싶지 않아 촛불을 꺼버리고 싶지만 그건 그녀가 선택할 문제는 아니다.
드르륵, 탁.
안으로 들어선 사내가 문을 닫았다.
그리고 그녀의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고개를 숙인 은서의 눈에는 사내의 버선발만 보였다.
큰 발이었다.
발이 저리 크니 키도 클 것이다.
사내가 앉았다.
자색의 옷자락이 사내의 허벅지 아래로 드리워졌다.
“…….”
사내도 말이 없고 은서도 말이 없었다.
은서의 숨이 막혀왔다.
사내가 빨리 무엇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사내는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은 느껴졌다.
저를 계속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이다.
“나으리.”
그 침묵을 견디지 못한 은서가 먼저 입을 열었다.
“벗고 누우리이까?”
알아서 옷을 벗고 이부자리 위에 누우면 될 것인가?
아니면 다른 것을 원하는 것일까.
이미 술상도 들어와 있다.
“그것이 아니면 술이라도 한 잔 따라드…….”
그 말을 하며 고개를 들던 은서의 얼굴이 얼어붙은 것은 그때였다.
제 앞에 앉은 사내를 바라보는 은서의 얼굴이 얼어붙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참담함으로 물들었다.
붉은 연지를 바른 입술이 덜덜 떨기 시작했다.
“…….”
은서의 손이 치맛자락을 꽉 쥐었다.
치맛자락을 쥔 그녀의 손가락이 새하얗게 변했다.
“나는.”
그녀의 앞에 앉은 사내가 입을 열었다.
묵직한 목소리였다.
“이리될 줄은 몰랐소.”
사내의 목소리에 은서가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정말 이리될 줄은 몰랐소. 이리될 줄 알았다면…….”
“뭘 몰랐다는 것입니까?”
은서의 목소리는 스스로도 놀랄 만큼 차가웠다.
자신이 이 사내 앞에서 이렇게 차가워질 수 있다는 것을 은서가 새삼 깨달았다.
“처음부터 이렇게 하려 하신 것이 아닙니까? 처음부터 내 오라비를 죽일 작정이 아니었습니까?”
“오해요. 나는 절대로…….”
“절대로 내 오라비를 죽이려고 하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이 죽였다 그것입니까?”
“은서.”
“그 더러운 입으로 내 이름을 부르지 마십시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내 이름을 함부로 불러도 당신 한 사람만은 내 이름을 부를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그 손으로 한 짓이 있는데, 그 손에 내 오라비의 피를 묻혀놓고 내 이름을 어찌 그리 부르신단 말입니까?”
은서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지십시오. 나는 당신 같은 인간을 더는 보고 있을 수 없습니다.”
“은서.”
“그 더러운 입에 내 이름을 담지 말라 하지 않았습니까!”
은서가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그 목소리에는 그녀의 한이 물들어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은 눈동자를 애써 부릅뜨고 그녀가 사내 서윤을 노려봤다.
한때는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여겼던 사내다.
오라비보다 더 소중하다 여겼던 그런 사내였다.
이 사내와 함께 살기 위해서라면 오라비의 말도 거역할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달빛 아래에서 사내와 정담을 나누고, 미래를 기약하고…… 그런 날도 있었다.
손을 잡아 오는 사내로 인해서 뺨을 물들이고 이 사내와 함께 하는 미래를 꿈꾸던 나날이 분명히 있었지만, 지금은 산산조각 난 꿈에 불과하다.
아니, 한때나마 이 사내를 마음에 품고 있었던 사실조차 이제는 죄로 여겨질 뿐이다.
만약 가슴에 이 사내를 향한 연정의 조각이 아직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제 가슴을 칼로 도려낼 수 있을 정도로 지금은 이 사내를 증오한다.
그녀를 자결하지도 못하게 하는 서러움의 주인공이, 그녀의 복수의 대상이 바로 이 사내이니 말이다.
복수하고 싶었던 사내가 제 눈앞에 나타나 앉자, 그것도 화대를 주고 산 손님으로 앉자 은서의 눈에 독기가 피어올랐다.
“내가.”
은서의 지독한 분노 앞에 잠시 말을 잃었던 서윤이 입을 열자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조금 전까지 불안하게 흔들리던 목소리가 아니다.
“내가 당신을 샀소.”
서윤이 은서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내가 오늘 밤 당신을 샀고. 나는 손님이고 당신은 창녀요.”
그 목소리에 은서가 얼어붙었다.
“그러니, 당신은 내 것이오.”
그 말과 함께 서윤의 손이 은서의 어깨를 잡았다.
“이것 놓……!”
그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서윤의 힘이 훨씬 더 강했다.
“아악!”
은서의 몸이 뒤로 쓰러졌다.
서윤이 그녀의 어깨를 잡아 누르며 쓰러뜨린 까닭이다.
“내가.”
쓰러진 그녀의 위로 올라탄 서윤이 그녀를 내려다보며 다시 말했다.
“당신을 샀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것이오?”
위에 올라타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사내를 올려다보며 은서가 이를 갈았다.
“적어도 아침이 오기까지 당신이 오롯이 내 것이라는 뜻이지.”
내려다보는 사내의 시선에 은서의 숨이 막혔다.
은서가 알던 사내는 단 한 번도 이런 눈빛을 지어 보인 적이 없었다.
사내는 항상 순한 눈망울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자신을 내려다보는 사내는, 그 사내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다른 사내처럼 눈빛이 달랐다.
거칠고 사나운 눈동자.
꼭 이런 눈동자로 제 오라비의 목을 베었을 거라는 생각에 은서가 몸을 떨었다.
숨이 막혔다.
“나는 오늘 당신을 안을 거요.”
“미친……!”
은서가 사내를 향해 침을 뱉었다.
그녀가 뱉은 침은 사내에게 미치지도 못하고 아래로 떨어졌다.
“미친 인간!”
은서가 소리를 질렀다.
혐오감이 그녀의 속에서 올라왔다.
북받쳐 오르는 악과 더불어서 올라온 혐오감이 그녀의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놓아라! 당장 놓아라!”
은서가 발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그러나 그녀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그녀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사내의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악!”
허리를 숙인 사내가 은서의 귀에 입술을 내렸다.
귀에 더운 숨결이 닿는 순간 은서가 소리를 질렀다.
“이놈! 이 짐승 같은 놈!”
그러나 뭐라고 소리를 질러도 서윤은 멈추지 않았다.
애당초 멈출 것 같았으면 이곳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네 이놈! 천벌이 두렵지 않으냐! 이 짐승 같은 놈! 네 놈이 어떻게 감히!”
발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는 은서의 양손을 위로 올려 한 손으로 짓누른 채 서윤이 그녀의 옷자락 안으로 손을 넣었다.
거친 손바닥이 그녀의 여린 살결을 스치자 은서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서윤의 손이 옷자락 안에서 살결을 문지를 때마다 은서가 몸을 떨었다.
이 손은 오라비를 죽인 손이다.
이 손으로 검을 쥐고 그 검으로 오라비의 목을 잘랐다.
그리고 피 묻은 그 손으로 지금 제 몸을 만지고 있다.
“이 쳐 죽일 놈!”
평소 그녀가 한 번도 입에 담아본 적 없는 욕설을 퍼부으며 은서가 서윤을 저주했다.
그러나 그런 저주따위 무섭지도 않다는 듯 서윤은 그녀의 옷깃을 단번에 풀어헤쳤다.
사내의 손에 더는 주저함이 보이지 않았다.
손님을 받기 위해 그저 알몸 위에 형식적으로 걸쳐져 있던 옷이 벗겨지자 그녀의 나신이 드러났다.
새하얀 나신이 드러나자 은서가 더 날뛰었지만 서윤은 그런 그녀의 두 손을 꽉 누른 채로 다른 손으로 그녀의 허벅지를 붙잡고 열었다.
“아아악!”
사내의 한 손에 허벅지가 젖혀지며 감추어져 있던 은밀한 비부가 드러나자 은서가 눈을 질끈 감았다.
차라리 촛불을 끌 것을 그랬다.
원수 앞에 알몸을 드러낸 이 참담한 심정을 어찌해야 좋을까.
“아, 읍!”
서윤의 손이 제 허리띠를 잡아 풀더니 그 허리띠로 은서의 양손을 꽉 묶었다.
움직이지 못하게 양손을 묶은 서윤이 은서의 허리띠를 뭉쳐 그녀의 입안에 쑤셔 넣었다.
더는 그녀가 비명을 지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읍! 읍!”
허리띠에 입이 막힌 은서가 몸을 꿈틀거렸다.
그러는 사이에 서윤의 손이 그녀의 허벅지를 벌리고 그 안쪽을 더듬었다.
사내의 굵은 손가락이 그녀의 음부를 쓰윽 문질렀다.
“읍! 흐읍!”
입이 막힌 채로 은서가 허리를 비틀며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사내의 손가락은 거침없이 그녀의 음부를 열어젖혔다.
그리고 그 열어젖힌 속살 안쪽으로 파고 들어왔다.
“흐읍! 읍!”
몸 안을 파고 들어오는 이물감에 은서가 허리를 움찔거리며 몸을 떨었다.
그녀의 안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은 사내가 주름을 젖히고 더 깊숙하게 손가락을 묻었다.
뿌리 끝까지 손가락을 묻은 다음 휘젓자 그 거친 손놀림에 은서가 끅끅 비명을 흘렸다.
그녀가 지르는 비명은 입을 틀어막은 허리띠에 막혀 제대로 새어 나오지도 못했다.
한 번도 외부의 침입을 허락한 적 없던 그녀의 음부 안으로 사내의 손가락이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찔러 들어왔다.
사내의 손가락이 드나들 때마다 찔꺽 찔꺽 젖은 소리가 그녀의 음부에서 흘러나왔다.
애액으로 범벅이 된 틈새로 격렬하게 들락거리던 손가락이 마침내 빠져나갔다.
은서는 그것으로 끝난 줄로 알았다.
이제 치욕스러운 순간은 끝난 줄로 여겼다.
그러나 서윤의 손이 그녀의 허벅지를 넓게 벌리는 순간 끝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은서의 놀란 눈동자에 서윤의 하체가 들어왔다.
방을 밝힌 촛불이 하도 밝아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서윤의 하체는 시커먼 체모로 수북하게 덮여 있었고 그 위로 핏줄이 불긋하게 일어나 있는 거뭇한 음경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입은 허리띠로 틀어 막힌 채로 은서의 눈이 경악과 두려움으로 커졌다.
창녀의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이상 사내를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 사내는 아니었다.
세상 모든 사내들을 다 받아들일 수 있어도 이 사내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이 사내에게만큼은 자신을 내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다른 사내가 아닌 이 사내에게 범해지는 것이다.
‘시, 싫어……!’
충혈이 된 눈으로 고개를 젓는 은서를 본척만척 서윤은 그녀의 다리를 크게 열었다.
그리고 단번에 은서의 몸을 꿰뚫었다.
“흐읍!”
한 번도 사내를 품어본 적 없는 음부를 열어젖히고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오는 음경으로 인해 하체가 찢어지는 통증이 은서를 엄습했다.
그것은 고통이었다.
숨을 쉴 수 없을 만큼의 고통.
몸과 마음에 내려지는 끔찍한 고통.
몸 안 깊숙이 들어서는 것이 은서에게 끔찍한 고통을 선사했다.
몸이 반으로 찢어지는 것 같았다.
‘죽여 버릴 거야……! 죽이고 또 죽여서…….’
은서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치욕을 견디지 못한 눈물이었다.
몸 안이 욱신거렸다.
서윤이 몸을 움직일 때마다 그녀의 몸 안에 찔러 들어와 있는 것이 꿈틀거리며 움직여 눈물을 흘리는 은서의 눈이 일그러졌다.
닦지 못한 눈물은 그녀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흐윽!”
서윤이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가 허리를 움직이자 은서는 차라리 지결할 것을! 하고 후회했다.
원수에게 범해지는 그 고통 속에서 눈물을 흘리는 은서의 몸이 서윤의 아래에서 속절없이 흔들렸다.
체격이 큰 서윤의 아래에 짓눌린 은서의 가녀린 육체는 그저 밟히는 꽃처럼 짓이겨졌다.
그녀를 범하는 사내의 거친 몸짓 아래에서 은서의 몸이 꿈틀거렸다.
그 꿈틀거리는 하얀 나신 위로 서윤의 육체가 탐욕스럽게 뒤덮었다. 그것은 마치 은서를 삼킬 듯이 덮쳐오는 짐승과도 같았다.
“읍……! 읍……!”
몸속 깊이 박힌 성기가 움직일 때마다 허리끈으로 입이 틀어 막힌 은서의 입술 사이에서 신음이 비집고 흘러나왔다.
신음이라기보다는 흡사 비명이었다.
은서의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이 뺨과 턱을 범벅으로 만들어 놓았다.
서윤이 움직일 때마다 은서가 눈물을 흘렸다.
수치, 모멸감, 그리고 증오가 뒤범벅이 되어 눈물이 흘러내렸다.
서윤과 이어진 그녀의 하체에서 젖은 소리가 찔꺽거렸다.
엉망으로 젖은 소리가 음란하게 울렸다.
그 젖은 소리가 귀에 들어올 때마다 은서는 이불을 꽉 움켜쥐었다.
그녀의 손등이 덜덜 떨고 있었다.
서윤은 멈추지 않았다.
마치 굶주린 짐승처럼 무자비하게 은서의 몸을 탐했다.
지금까지 그 모습을 숨겨온 것처럼, 오랫동안 굶주려왔던 본성을 터트리듯이 미친 듯 멈추지 않고 탐해오는 움직임 앞에서 은서가 속절없이 흔들렸다.
이미 은서의 다리는 높이 들어 올려져 서윤의 어깨 위에 걸쳐져 있었다.
다리가 올려진 탓에 덩달아 들린 허리가 계속 흔들렸다.
은서의 두 다리를 어깨에 올리고 몸을 굽힌 서윤이 거칠게 허리를 쳐올렸다.
한 번 금단의 맛을 본 서윤이었다.
금단의 맛이라는 건 이렇듯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것이다.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겨왔고, 절대로 다치지 만들지 않겠다는 각오로 꽃잎 하나 상하지 않게 지켜왔던 존재였다. 그러나 지금 다른 사람도 아닌 제 스스로 망가뜨리고 있다는 죄책감과 더불어 희열이 치밀어 올랐다.
제 손 안에서 부서지는 꽃.
제 손으로 망가뜨리는 꽃.
제가 지켜왔던 여인을 마침내 제 손으로 망가뜨리고 마는 이 순간의 이것을 뭐라고 말해야 할 것인가.
후회와 죄책감, 거기에 더해서 이 강렬한 희열을 대체 무엇이라고 말해야 좋단 말인가.
이미 잃어버린 것은 많지만 더 잃기 싫어서, 적어도 마지막 하나만큼은 잃지 않기 위해서 은서를 찾아온 것이었다. 정작 자신을 증오하고 원망하는 은서를 이런 식으로 강제로 안아버린 이상, 자신이 더는 은서의 마음에 들어설 여지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마음에 들어서지는 못해도 이 육체만은 가지고 싶다.
적어도 하나라도, 이런 것이라도 가져야 한다.
짐승이 되어도 좋으니, 이런 것이라도.
“윽……!”
은서의 안으로 허리를 치대며 서윤이 몸을 떨었다.
새파랗게 질린 채로 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몸 안에 기어이 제 정액을 쏟아낸 것이다.
***
“나으리.”
방에서 나오는 서윤이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이 창관의 여주인이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이미 날이 중천에 밝았다.
밤이 새도록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새벽을 넘겨, 해가 떠오를 때까지 정신없이 은서의 몸을 탐한 서윤이었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제정신이었다면 절대로 그렇게 무자비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밤의 서윤은 짐승이었다.
짐승인 탓에 은서의 육체를 찢어질 때까지 탐했던 것이다.
“기쁘게 즐기셨습니까?”
여주인의 눈가에 간교한 미소가 피어올라 있다.
여주인의 입장에서는 사흘간의 화대로 금 한 관을 내놓은 서윤은 놓치고 싶지 않은 손님이다.
아마 이 사내라면 사흘이 지나면 또다시 금을 내놓을지도 모른다.
밤새도록 탐할 정도로 은서에게 집착하는 사내라면 그러고도 남을 것이다.
“사흘 동안은 내가 샀다. 다른 손님을 받게 하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네, 나으리. 명심하겠습니다.”
여주인이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
“아가씨!”
방으로 들어선 몸종이 비명을 지르며 은서의 곁으로 주저앉았다.
불이 꺼진 어두운 방 안의 침구 위에 은서가 쓰러져 있었다.
덧창이 닫힌 탓에 날이 밝아도 방안은 어두웠다.
은서는 벌거벗은 채로 참혹하게 쓰러져 있었다.
그녀의 흰 나신은 온통 사내의 정액으로 얼룩져 있었다.
“아, 아가씨……!”
몸종이 흐느꼈다.
애지중지 키웠던 곱디고운 아가씨가 사내의 정액으로 전신을 더럽히고 눈도 뜨지 못하는 채로 쓰러진 것이 어찌 참혹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꼴을 보시려고…….”
몸종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렵게 구한 환약으로 차라리 자결했더라면 이런 더러운 꼴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엾은 아가씨…….”
자꾸만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몸종이 더운물을 적신 수건으로 은서의 몸을 닦았다.
그녀의 몸에 묻어 있는 사내의 흔적을 닦아갔다.
“으응…….”
몸종이 더운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내자 은서가 미약한 신음을 흘리며 몸을 움찔거렸다.
감고 있던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더럽혀졌다.
다른 사내도 아닌 서윤, 그 사내에 의해 더럽혀졌다.
오라비의 목을 자른 그 사내가 자신을 범했다.
“나는 그대가…… 내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오.”
한때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해오던 사내에게 무참하게 범해졌다.
서윤은 짐승이었고 자신은 그저 발겨지는 사냥감에 불과했다.
수치심, 혐오감. 서윤에게 범해지는 내내 느껴야 했던 감정들이다.
그러나 두려운 것은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서윤은 다시 올 것이다. 그리고 다시 자신을 짓밟을 것이다.
그것은 끔찍하고 수치스럽지만, 그것을 견디지 못하면 복수는 할 수 없다.
결국 그녀의 복수라는 것은 이렇게나 더럽고, 치욕스러운 것이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당장 한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삶은 생각하지도 못했었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한 달 전만 하더라도 지금 자신이 이렇게나 증오하는 사내 서윤과 부부가 되어 행복하게 살날을 꿈꾸고 있었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무엇이, 서윤과 자신을 이렇게 만들어버린 것일까.
짐승과 복수자로 이렇게, 모든 것을 나락으로 끌어내린 것일까.
차라리 그날 밤 만나지 않았더라면 더 나았을까.
그 산중에서 그 사내 서윤과 만나지 않았더라면, 몰랐더라면 지금처럼 끔찍하지는 않았을까.
감은 은서의 눈 안에서 달빛이 부서졌다.
환청처럼 부서지는 달빛은 서윤을 처음 만났을 때 머리 위에서 쏟아지던 그 달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