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 1 (5/6)

외전 1

“아…….”

자고 일어난 사이 무정이 사라졌다. 건율은 멍하니 점심을 가져온 간호사를 쳐다보았다. 간호사는 침대의 책상을 피고, 식판을 올려 주었다.

“저, 저… 무정이는, 요?”

“보호자분이요? 아무 말씀 없으셨는데.”

거짓말.

방금 잠에서 깨어난 탓인지 머리가 욱신거렸다. 건율은 동공이 풀린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디에도 최무정은 없었다. 갑작스레 심장이 확 쪼그라드는 듯한 통증이 일었다. 머리는 깨질 듯이 아프고, 숨통은 조여 왔다.

“어디, 어디 갔어요?”

건율은 사색이 된 얼굴로 침대를 더듬다가, 핸드폰이 제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자 몸이 경련하기 시작했다.

“환자분?”

“무, 무정이 어디 있어요?”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너무 크게 뛰어서 숨을 쉴 새도 없었다. 호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흐, 흡, 무, 무정이…. 무정이 어디, 어디 있어요?”

“환자분, 괜찮으세요? 보호자분 금방 오실 거예요. 진정하세요.”

건율이 고개를 마구 저었다.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손이 파르르 떨렸다. 건율은 경련하는 손으로 책상을 짚었다가 미끄러지고 말았다. 식판이 와장창 소리를 내며 침대 위로 엎어졌다.

“무, 무정아…. 무정, 무정아….”

눈물에 젖은 목소리가 닿는 곳 없이 허황되게 울렸다. 간호사가 놀란 얼굴로 급히 책상을 접었다.

“환자분, 제가 보호자분께 연락드릴 테니까, 진정하세요.”

“왜, 왜 저, 저 놓고 간 거예요? 무정이가 왜… 저 버리고, 갔, 어요?”

“우선 침구 바꿔 드릴 테니까 내려오세요. 환자분!”

눈앞이 빙글빙글 돌았다. 최무정의 존재가 제 앞에 없다는 게, 너무 무서워서 죽을 것만 같았다. 공기가 없는 우주로 내던져진 것만 같았다. 건율은 손톱을 세워 목을 긁었다. 숨이 막혔다. 누군가 목을 조이는 것만 같았다.

간호사가 급히 너스콜을 눌렀다. 곧 다른 간호사들이 달려왔다. 건율은 침대 아래로 굴러떨어져 바닥을 더듬거렸다.

“무, 무정아…. 무정아, 나, 나 버리지 마…. 어디, 어디 갔, 어?”

혼란에 빠진 눈동자가 허공을 맴돌았다. 건율은 끅끅대며 다시 제 목을 긁었다. 숨 쉬는 법을 잊어버린 것인지, 공기가 사라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사이 간호사들이 급히 다른 침대를 가져와 건율을 눕혔다.

건율이 발버둥 치며 난리를 피우는데, 의사가 달려왔다. 의사는 간호사들에게 무어라 지시했다. 건율은 자꾸만 저를 침대에 눕히려는 손들을 이리저리 쳐 냈다. 그리고 꼭 버려진 강아지처럼 눈물을 뚝뚝 떨어트렸다.

“무정이, 무정이…. 어디에, 흐…. 어디에, 갔, 어요….”

간호사나 의사들이 하는 말은 조금도 들리지 않았다. 누군가 팔을 붙잡았다. 따끔한 통증에 긴장한 몸이 화들짝 뛰었다. 건율은 주변을 마구 둘러보았다. 사람들의 얼굴도 제대로 인식되질 않았다.

결국 며칠도 되지 않아 버려진 걸까? 할 줄 아는 것 하나 없는, 멍청한 제가 싫어진 걸까? 최무정은 저의 연주를 좋아했었다. 그러니 이제 피아노를 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떠난 건지도 모른다.

머리가 핑핑 돌았다. 건율은 오류 난 컴퓨터처럼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고 허공을 보며 최무정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보호… 분… 금…… 오실…… 진…… 환…….”

“흑, 흐으, 흑, 끅…. 흐, 흐으윽…….”

두 간호사가 건율을 붙잡고 한참을 서 있었다. 건율은 너무 무서웠다. 이렇게 버려진 채로, 무서운 사람들에게 맡겨졌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렇게 끝이 나는 걸까, 너무, 너무 무서워서…….

고인 눈물이 주룩 뺨을 흘러내렸다. 건율이 얼마 가지 않아 눈을 감았다. 그리고 곧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 * *

사건이 일어나고 이틀 뒤, 최유헌이 병원에 찾아왔었다. 그때도 그는 꽤 기세등등하게 나타났다.

“마약 좀 한 거 가지고 그렇게 큰일이 나겠냐? 하여간, 모자란 새끼.”

최유헌은 병실에 들어오자마자 욕부터 뱉었다. 최무정은 쳐다도 보지 않고 건율의 입에 직접 깎은 과일을 넣어 주었다. 건율은 제 오랜 기억을 끔찍한 과거로 물들이고, 손마저 망가트린 가해자가 나타났는데도 평온함을 유지했다.

“야, 내 말 안 들려?”

“뭐……. 아버지한테 아직 연락 안 받았어?”

“안 그래도 그 소리 하러 왔어. 너, 밖에 나가서 얘기 좀 해.”

“음….”

최무정이 옆에 있으면, 이상하게 무슨 일이 닥쳐도 마음이 편했다. 건율은 꼭 주인을 옆에 둔 강아지처럼 기세가 등등했다. 그리고 이제 보아하니 최유헌은 그리 태평하지 않았다. 그런 척을 하고 있었다. 최유헌은 최무정이 계속해서 무시하자 안달 난 얼굴로 다리를 떨었으니까.

“야, 얘기 좀 하자고.”

“선배, 하나 더 깎을까요?”

“아니, 배불러.”

“그럼 소화 좀 시키게 산책 다녀올까요?”

“지금?”

최유헌을 힐끗거리자 최무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 형은 보이지도 않는다는 태도였다.

“야! 최무정!”

“시끄러워.”

“이…!”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떨던 최유헌의 얼굴이 시뻘겠다. 고등학생 때도, 또 재회한 후에도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이라 신기했다. 늘 여유로워 보였는데. 꼭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야, 최무정.”

“선배? 산책 싫어요?”

“아니, 괜찮은데….”

아무리 그래도 옆에 사람이 있는데. 건율은 우물쭈물하며 최유헌을 힐끔거렸다. 이를 악물고 숨을 고르던 최유헌이, 그제야 시선을 내렸다. 씩씩대느라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아버지한테…… 어디까지 말했어? 너, 너… 아버지한테 말 다시 해. 이상한 말, 했지? 아버지가 그럴 리가… 없는데.”

“글쎄.”

“최무정…! 그니까, …하, 씨발……. 최무정. 내가, 너한테 대체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데? 아버지가, 이런 거 다 알면 나 큰일 나는 거 몰라? 아니, 나, 씨발…. 내가 아니면 누가 회사 이어받는데?”

“이어받을 사람이야 많지. 그리고, 애초에 아버지는 너한테 넘겨주실 생각은 없으셨어.”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이 꼭 뭔가를 저지를 것 같았다. 건율은 최무정의 옷깃을 살짝 붙잡았다. 최무정이 이어 말했다.

“그리고, 민아 씨한테도 연락 왔지? 민아 씨가 꽤 놀라더라고.”

“…씨발, 그거 너였어?”

“사실만 전달해 드렸어.”

낯선 이름에 건율이 최무정을 올려다봤다. 그는 작게 ‘옛날에 약혼한 사람이에요.’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리곤 너스콜을 누르고 과일 껍질이 담긴 트레이를 정돈했다.

“병원에서 이러지 말고 그만 가. 스스로 나가는 게 좋을걸.”

“내가 당하고 가만히 있을 거 같아?”

“그거야 네 마음이고. 선배, 저 이거만 치우고 산책 가요.”

“으응….”

너스콜을 누른 지 얼마 되지 않아, 노크 소리가 들렸다. 최무정이 들어오라 하자, 키가 꽤 큰 간호사와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들어왔다.

“뭐야, 야! 너, 지금 씨발, 뭐 하는 짓이야?”

“부탁드립니다.”

“죄송합니다, 이러실 줄은 모르고….”

“아니에요. 한 번 올 줄 알았으니까.”

최유헌은 그대로 끌려 나갔다. 마지막까지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뱉으며 발버둥 치는 모습에 건율은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 다행인 건, 그럴 때마다 최무정이 알아채고 토닥여 주었다.

물론 그 후에 최무정에게 크게 혼이 났다. 입에 손수건을 물고 절정에 다다르지 못하도록 벌을 받았다. 벌을 받은 이유는, 건율이 다른 사람에게 반응한 것이었다. 일부러 반응한 것도 아니고 놀랐을 뿐이라 억울했지만 말대꾸를 하면 더 혼날 걸 알기에 건율은 얌전히 사과했다.

* * *

“……배, 선배.”

익숙한 목소리에 눈을 떴다. 건율은 색색 숨을 몰아쉬며 최무정을 쳐다보았다.

“괜찮아요, 저 여기 있어요.”

차가운 물수건이 뺨에 닿았다. 최무정은 건율의 얼굴에 남은 눈물 자국을 닦아 내며 그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건율은 반쯤 뜬 눈으로 힘없이 깜빡이고 있었다.

“으, 우으…….”

턱에 힘이 없는지 발음이 샜다. 건율이 침을 삼키고, 마른 입술을 혀로 훑었다.

“천천히 말해요. 괜찮으니까.”

커다란 손이 건율의 손을 맞잡았다. 건율은 울컥하며 상체를 일으켜 최무정을 와락 끌어안았다. 불안하게 뛰던 심장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최무정의 냄새를 깊게 들이마셨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많이 무서웠어요?”

어깨에 고개를 묻은 채로 몇 번 더 숨을 몰아쉬었다. 건율은 어깨를 늘어트리며 최무정을 놓아주었다. 정신이 들자 조금 부끄러웠다.

“……어디, 다녀왔어?”

“학교요, 선배 휴학 신청하고 왔어요.”

“아…….”

최무정이 몸을 뒤로하며 손을 뻗었다. 아쉬움에 건율의 눈동자가 최무정의 손을 따라 움직였다. 최무정이 리모컨을 들어 TV를 켰다.

익숙한 이름에 건율이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자료 화면에서 모자를 꾹 눌러쓴 남자가 공항으로 들어서는 게 보였다. 다시 화면이 바뀌었다. 앵커를 포함한 여러 전문가들이 길게 앉아 토론을 하고 있었다.

<아직 경찰 조사가 끝나지 않은 걸로 아는데, 이는 국민의 의무를 버리는 행위죠. 현재 마약 투여 혐의 말고도, 여러 피해자들이 소송을 걸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 이전부터 꽤 말이 많았죠. 국민제일 일보에서 제보한 게 아니었다면, 쉬쉬하며 넘어갔을 겁니다.>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최유헌 씨가 유학 당시 저지른 사건들이 올라오고 있다고 합니다. 증거영상도 첨부돼 있는데, 함께 보실까요?>

넘어간 화면에서는 최유헌이 주먹을 휘두르거나, 갑질을 하는 영상들이 나왔다. 깨알같이 커뮤니티의 반응이라며 덧글 여러 개가 뿅뿅, 하고 효과음과 함께 떠올랐다.

: 이참에 재벌들 싹 잡았으면 ㅡㅡ;

: 돈이면 다 되니까 이런 게 묻혀온 거 아님??? 얘 같이 사는 놈들 수두룩할 듯

: 지분 다 뺏겼다는 소문 있는데 내가 회장님이어도 내쫓을 듯 ㅉㅉ

<여론 반응이 꽤 좋지 않습니다. 벌써 일주일이 지났는데, 그간 마약 문제 말고도 여러 사건이 터지고 있어요.>

<거의 양파급이죠? 까고 까도 계속 나오는 게 말입니다. 게다가 성폭행 사건도 있습니다. 기업의 예비 총수라면, 조심했어야 할 문제 아닙니까.>

<어떤 자리에 있든 해선 안 될 짓이었지요. 한데 이 상황에 출국 수속이라니? 경찰분들도 좀 더 정신을 차리셔야겠습니다. 국민들이 이번 사건을 지켜보고 있다구요.>

공중파가 아닌 탓일까, 토론자들이 꽤 거친 발언을 입에 담았다. 건율은 멍하니 화면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최무정도 더 볼 생각은 없는지 전원을 눌러 껐다.

“점심 안 먹었다면서요?”

“응? ……아.”

최무정은 턱을 괴고 건율은 내려다보았다. 그날 이후, 건율은 제가 한시라도 없으면 불안해했다. 퍽 마음에 드는 모습이긴 했지만, 그럴 때마다 건율이 다른 사람의 손을 타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까도 간호사와 의사들이 몰려와 애를 잡아 놓고, 진정제를 놓았다고 들었다.

“또 혼나고 싶어서 그랬어요?”

“아, 아니.”

“조금만 기다리면 되는데 왜 그랬어요.”

“미안.”

“됐고, 이거나 먹어요.”

최무정이 한숨을 쉬며 테이블을 펼쳤다. 그리고 그 위에 하얀 봉투를 올려놓고, 비닐을 벗겨 음식을 꺼내 주었다. 조금 움츠러들었던 건율의 눈이 다시 반짝반짝 빛났다.

“초밥…. 초밥이다.”

“좋아해요?”

“응, 좋아해!”

콩쿠르에서 처음 상을 탄 날, 아버지가 큰 마트에서 하나에 500원짜리 초밥을 사 왔었다. 얼마나 맛있었는지 말도 못한다. 그 후로는 먹질 못해 잊고 있었다.

“와, 우와….”

“이건 선배 거고, 이건 제 거예요.”

“응.”

아버지가 사 왔던 초밥은 비닐에 쌓여 있는 작은 낱개 초밥이었는데, 최무정이 사온 건 엄청 크고 탱글탱글했다. 건율이 가장 좋아하는 계란 초밥도 어찌나 통통한지 입 안 가득 침이 고였다. 건율은 마른침을 삼키며 최무정이 비닐을 모두 벗기기만을 기다렸다.

“근데 나……. 나만 휴학하고 온 거야?”

문득, 최무정은 계속 학교를 가야 하나 싶어 걱정스레 물었다. 괜히 불안했다. 그가 저를 두고 다른 사람을 만난다거나, 하는 짓은 하지 않겠지만…….

“저도 했어요.”

“아…….”

건율의 낯이 밝아지자 최무정이 피식 웃었다.

“다음 학기에 같이 다녀요.”

“다, 다음 학기?”

“네. 다 낫고도 조심해야겠지만……. 무리만 안 하면 될 거예요.”

건율이 저도 모르게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최무정은 젓가락도 뜯고, 물도 받아와 건율의 앞에 두었다. 그리고 초밥 하나를 집어 건율의 입가에 대었다.

“아.”

“아.”

입을 벌려 받아먹자, 놀랄 만큼 탱탱하고 부드러운 살갗이 씹혔다. 예전에 먹은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때의 초밥은 생선이 다 뭉그러져 와사비 밥을 먹는 느낌에 가까웠는데, 최무정이 사 온 건 쫄깃쫄깃하고 싱싱했다. 밥알도 어찌나 탱글탱글한지 시원하고 고소한 맛이 입 안을 맴돌았다.

“맛있어요?”

“응, 응. 맛있어.”

“자, 또 아 해요.”

“아.”

엄청나게 비싼 초밥이지 않을까? 건율은 아기 새처럼 초밥을 받아먹으며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최무정은 또 계란 초밥을 집어서 먹여 주었다. 건율에게 하나를 먹이고, 저도 하나를 먹고. 최무정의 손이 무척 바빴다. 건율은 왼손으로 물 컵을 잡고 최무정의 입가에 밀었다.

“너도 물 마셔.”

“…풉, 뭐예요?”

“뭐, 뭐가? 왜?”

“나 손 있어요. 선배나 잘 챙겨 먹어요.”

그러면서도 순순히 고개를 숙여 건율이 대 준 물 컵에 입을 대고 마셨다. 건율은 무시당한 기분에 입술을 댓 발 내밀었다가, 최무정이 제 계란 초밥을 주는 걸 보고 용서해 주기로 했다.

“아, 근데 선배.”

“응?”

“부모님껜 말씀드렸어요? 휴학.”

오물오물, 촉촉하고 달콤한 계란 초밥의 환상적인 식감을 느끼던 건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행복에 젖은 얼굴이 축 가라앉기까지는 1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으닝….”

“다 씹고 말해요.”

“……다, 큼, 다 씹었어. 말씀 못 드렸어.”

“사고 난 건 알고 계시니까, 짐작은 하셨을 텐데.”

“연락 안 왔어?”

“잠시만요.”

건율의 핸드폰은 최무정이 관리하고 있었다. 손도 쓰지 못하고, 어차피 연락할 사람도 없으니 최무정이 가져가 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제 가방에서 건율의 핸드폰을 꺼내 들더니 ‘아.’ 하고 소리를 냈다.

“왜?”

“왔어요. 전화 좀 해 달라고 하시는데.”

“아……. 음….”

“제가 대신 해 드릴까요?”

왠지 목이 타서 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 건율은 어둑해진 얼굴로 애꿎은 입술만 물어뜯었다. 전화하기는 무서운데, 최무정에게 맡기자니 부모님께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고민인 듯 했다. 그러자 최무정이 말했다.

“제가 옆에 있을게요. 전화하실래요?”

“좀…. 조금만 이따가 하면 안 될까?”

“보니까 3일 내내 전화하셨는데, 바로 하는 게 좋지 않아요?”

“으음….”

무서운데. 월세며 용돈이며, 이래저래 도와주신 부모님이 휴학한다는 말을 들으면 뭐라고 하실까. 다른 곳도 아니고 손가락이 다쳤으니 이제는 끝이라고 생각하실 게 뻔했다.

건율은 붕대에 감긴 제 손을 내려다봤다가 눈썹을 축 늘어트렸다.

“선배, 또 혼나고 싶은 거 아니죠?”

“어, 어어?”

“나 말고, 다른 사람한테 감정 쓰지 말라고 했잖아요.”

“어……. 어어…. 그건, 그렇지만…. 부모님인, 데.”

“아무래도 선배는 나한테 벌 받는 게 좋은가 봐요. 싫은 척하고 즐겼던 거 아니에요?”

“아니, 아니야.”

“음…….”

턱을 살살 쓸던 최무정이 고개를 기울이더니, 멋대로 전화를 걸어 버렸다. 건율은 제 화면에 나타난 ‘엄마’라는 글자에 놀라 퍼뜩 상체를 일으켰다.

“바, 바로 하면…!”

“쉬.”

연결음이 세 번도 흐르기 전에, 연결되었다. 건율은 사색이 되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때, 전화 너머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 서건율! 전화를, 너! 엄마가 걱정시키려고 작정을 했어?

새된 목소리에 건율은 바짝 쫄아서는 눈을 질끈 감았다. 너무 죄송스러워서 할 말이 떠오르질 않았다.

“어머니, 안녕하세요.”

- 어…. 누구, 누구세요?

“저 건율 선배 후배예요. 지금 제가 선배 간호해 드리고 있어요.”

- 아…! 그, 무정이라고 했니?

“네, 맞아요.”

입원한 날, 최무정이 대신 전화해 주었던 게 떠올랐다. 그때는 용기가 나지 않은 건율을 대신해 최무정이 통화를 해 주었었다. 건율은 긴장한 얼굴로 최무정을 올려다보았다.

“선배가 며칠 열이 좀 나서, 전화를 못 받으셨나 봐요. 지금 바꿔 드릴게요.”

- ……그래, 고맙다.

건율은 결국 억지로 전화를 받아야 했다. 통화는 꽤 길게 이어졌다. 전화를 끊고 나니 20분이나 지나 있었다. 어머니는 휴학한다는 말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어서 짐을 싸고 집으로 돌아오라고 했다. 이번 달 월세는 넣지 않았다고 말씀하시며 보증금만 받아 오라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 한숨이 건율의 마음에 짐처럼 자꾸만 쌓였다. 건율은 통화 내내 죄송하다는 말만 뱉었다. 퇴원하자마자 내려오라는 말에도 그저 네네, 죄송해요. 하고 풀 죽은 목소리로 답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입맛이 싹 가셨다. 초밥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지만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더 안 먹어요?”

“배불러….”

“그래요, 그럼.”

최무정이 곧바로 상을 정리했다. 건율은 침대에 등을 기대로 시무룩한 눈으로 창밖을 쳐다보았다. 요즘 건율은 밤에 잠을 자지 못했다. 밤마다 나쁜 생각이 떠올라 잠이 오질 않았다. 

새벽 5시까지 뜬 눈으로 버티다가 겨우 잠이 들면, 또 아침 8시에 일어나 피곤했다. 오후에 낮잠을 자긴 하지만 많이 부족했다. 병원에서는 많이 자야 빨리 낫는다고 했는데 그게 참 어려웠다.

“아, 선배.”

“응?”

“의사가 내일 퇴원해도 된대요.”

“그래?”

“네. 계속 병원에 오긴 해야 하지만.”

드디어 나가는구나!

건율은 신이 나서 그래, 하고 답했다.

* * *

퇴원하고 돌아온 집은 엉망이었다. 청소를 하지 않아 먼지도 쌓여 있고, 마지막으로 집을 나설 때 제정신이 아니었으니 옷이나 물건이 이리저리 어질러져 있었다.

“선배, 간단하게 짐 싸요.”

“응? 왜?”

“우리 집에 가게요.”

우리 집이란 단어에 건율이 고개를 기울였다가, ‘아.’ 하고 깨달았다. 하지만 그러겠다고 하기엔 이런저런 고민이 있었다.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오라고 하셨던 탓이다. 건율은 난감한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엄마가… 집에 오라고 하셔서.”

“가게요?”

“아니……. 가기 싫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슬쩍 눈치를 보자 최무정이 눈썹 한쪽을 들고 제 의중을 떠보고 있었다. 못 가겠다고 하면 화를 낼 것 같았다. 건율은 미간을 찌푸리고 끙, 소리를 냈다가 더듬더듬 말했다.

“그……. 오늘만, 오늘만 집에서 자면 안 돼?”

“뭐…. 그래요.”

의외로 흔쾌한 대답에 건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안 된다고 할 줄 알고 마음을 먹고 있었던 탓이다.

“정말?”

“싫어요?”

“아, 아니. 좋아.”

“같이 짐 싸요.”

“어? 그렇게까진 안 해 줘도 되는데…….”

“그 손으로 싸면 이틀 내내 싸야 할 텐데?”

슬쩍 제 손을 보는 시선에 건율이 아차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하필 다친 게 오른손이라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힘들긴 했다. 병원에서도 최무정이 하나하나 간호를 해 줬던 게 떠올랐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일었다.

“우선 뭐 좀 드실래요?”

“아, 그러자. 배고프지?”

“네.”

고개를 끄덕인 최무정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동안 건율은 늘어진 옷가지를 좀 치우고, 왼손으로 바닥을 뽀득뽀득 닦았다. 얼마 안 가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고, 최무정은 포장해 온 듯한 음식을 받았다.

둘은 밥을 먹고 집 청소를 마저 한 뒤 씻었다. 건율은 알몸이 되어 최무정에게 몸을 맡겼다. 병원에서도 그랬듯 최무정은 정성껏 건율을 씻겨 주었다. 손길은 다정하고 조심스러웠다. 최무정은 건율의 머리를 모두 말린 후에야 씻으러 들어갔다.

건율은 좁은 화장실에서 나오는 물소리를 들으며 벽에 등을 기댔다. 졸음이 몰려왔다. 최근 점심을 먹은 뒤에 소화를 시키고 바로 잠들어서인 듯했다.

“음…….”

건율은 스르륵 몸을 이부자리에 밀어 넣었다. 눈이 끔뻑거렸다. 건율은 모로 누워 멍하니 제 방을 슥 둘러보았다. 낡은 책상 위에는 전공 서적과 악보가 늘어져 있었다. 이불 밖으로 삐져나온 오른손에는 여전히 붕대가 감겨 있었다. 아직도 최유헌이 손을 망가트리던 것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다.

건율은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 1분 1초도 아까워 쉬지 않던 삶이, 온통 무기력해졌다. 하나만 틀어져도 생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조급하게 움직이곤 했던 것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지금은 뭘 하고 싶어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히려 가만히, 무기력하게 있어야 했다.

그날부터였다. 최유헌에게 배신을 당한 날, 끔찍한 일을 당했던 그 날, 최무정이 저를 병원에 데려갔을 때. 기댈 곳이라곤 그밖에 없어 모든 것을 내려놓은 날부터 건율의 생각은 1차원에서 멈춘 것만 같았다. 밤마다 드는 나쁜 생각도 복잡한 것들이 아니었다. 그저 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지금도 그랬다. 이전이라면 앞으로의 생활이나 돈, 손의 재활과 학교 문제까지 생각하느라 머리가 터졌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지금은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편안했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바보가 된 듯해도, 마음만은 편하기 그지없었다.

언젠가 최무정이 저를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렇게 그냥 죽으면 되지 않을까. 제게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는 것이니까.

건율은 화장실로 시선을 돌려 무정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들어간 지 그렇게 오래된 것도 아닌데 안달이 났다. 그러다 결국 화장실 앞까지 기어갔을 때, 문이 벌컥 열렸다.

“……나 기다렸어요?”

최무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건율이 활짝 웃었다.

그는 잘 웃지 않는 편이었는데, 가끔 이렇게 웃어줄 때면 모든 불안이 날아가는 듯싶었다. 건율이 고개를 끄덕이자 최무정이 팔을 뻗어 그를 안아들었다. 따뜻한 품에 심장이 콩콩 뛰었다.

함께 방으로 들어오자, 넓게 느껴졌던 곳이 순식간에 좁아졌다. 건율은 반쯤 감긴 눈으로 최무정에게 시선을 돌렸다.

“보고 싶었어.”

“저도요.”

“응, 헤헤……”

이불 위에 건율을 내려놓은 최무정이 제 머리를 수건으로 탈탈 털었다. 그러다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평소와 같은 얼굴이지만 달랐다. 밤마다 자는 척하며 누워 있던 그것과 비슷했다. 최무정은 건율의 뺨을 엄지로 꾹꾹 문질렀다.

“표정이 왜 그래요?”

“……왜?”

건율은 정말 모른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최무정이 한숨을 쉬며 건율의 뺨을 아프지 않게 툭툭, 건드렸다.

“울 거 같아서요.”

“안 울어.”

“뭐가 그렇게 걱정이에요?”

최무정에게서 저와 같은 냄새가 났다. 건율은 킁킁, 하고 냄새를 맡다가 답했다.

“아무것도 안 해, 걱정.”

“피아노 치고 싶어서?”

“……아니.”

“미련이 많네, 선배는.”

건율은 시선을 내리깔았다. 할 줄 아는 거라곤 피아노뿐이었다. 머리도 나빠 공부도 못하고, 다른 쪽으로 이렇다 할 만큼 잘하는 것도 없었다. 졸업을 앞두고 전과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장학금도 날아갔으니 손이 나아도 학교를 다시 갈 수 있을지 몰랐다.

그 생각을 하니 시무룩해 졌다. 건율은 최무정에게서 몸을 빙글 돌려 누웠다.

“몰라.”

그러나 바로 최무정의 손에 의해 몸이 빙글 돌아갔다. 그가 오자마자 이런저런 생각이 머리가 지끈거렸다. 건율은 제 어깨를 붙잡은 최무정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최무정이 입가를 끌어 올려 웃었다.

“왜 그렇게 봐요? 나랑 하고 싶어요?”

“뭘?”

“…….”

“너랑 피아노… 치고 싶어.”

최무정은 말문이 막힌 듯 입을 꾹 다물고 대답을 하지 않았다. 건율은 제가 말실수를 했나 싶어 아, 하며 왼손으로 최무정의 팔을 붙잡았다. 최무정이 기다렸다는 듯 건율의 위로 고개를 숙여 입을 맞췄다. 가볍게 쪽, 하고 입을 뗀 녀석이 눈을 맞췄다.

“학교, 돈은 신경 쓰지 마요.”

“…….”

“내가 다 해 줄 테니까 그런 건 생각하지 말고, 지금은 제 생각만 해요.”

“네 생각… 어떤 거?”

최무정의 눈이 가늘어졌다. 꼭 ‘일부러 그래요?’라고 묻는 듯한 뾰족한 눈이었다.

“선배가 절 선택했잖아요.”

“…….”

“그래서 내가 다 알아서 해 준다고요. 부모님께는 제 집에서 지낸다고 해요. 여기서 재활하겠다고.”

“…학교 후배가 그런 걸 왜 도와주냐고 물으면….”

“뭐, 애인이라고 하든가.”

이번엔 건율이 눈을 가늘게 떴다.

“여튼, 지금은 아무 생각하지 마요. 어차피 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잖아요, 선배는.”

막 샤워를 끝내 따뜻한 손가락이 쇄골에 닿았다. 최무정의 손이 안쪽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단추가 툭툭, 풀렸다. 커다란 손이 무심하게 유두를 스치고 내려갔다.

“으, 아……. 거, 거기는 싫, 은데.”

“왜요?”

고개를 기울인 최무정이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단추를 반쯤 푸르고, 상의 위쪽을 아래로 당겨 어깨를 드러냈다. 팔이 옷에 걸려 움직이지 않았다.

“흐, 잠…….”

가슴만 드러낸 것이 부끄러워 어깨를 비틀자, 최무정이 그 상태로 마른 가슴을 쥐었다. 없는 살집을 끌어모아 쥐자, 연한 색의 유두가 꼿꼿하게 섰다.

“으읏, 그, 그거 이상……해.”

“좋은 거 아니고?”

“아, 읏, 흐……!”

낯선 감각에 몸이 파르르 떨렸다. 최무정이 이를 드러내 유두를 잘근잘근 씹었다. 한쪽 가슴은 커다란 손으로 주무르고, 한쪽 젖꼭지만 빙글빙글 돌리다 씹고, 빨아들이기를 반복했다.

“이, 이상해, 싫……. 읏, 싫어어…….”

“근데 왜 섰어요?”

“아, 안 섰어.”

싫다고 해 놓고 발기한 게 부끄러운지, 건율이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상체를 빙글 돌려 베개에 얼굴을 푹, 박았다. 그러자 최무정이 심술 난 얼굴을 하다 건율의 바지를 아래로 단번에 내렸다.

“흐아!”

“나는 섰는데?”

“자, 잠깐만. 여기, 여기 방음 안 돼.”

“그럼 선배가 조용히 해야죠.”

작은 둔부를 양옆으로 젖히자 입원해 있는 동안 하지 못해 수축된 구멍이 보였다. 음란한 음부가 기대하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좆 달라고 움찔거리네.”

“아니, 아니야.”

주변을 둘러보니 젤은 없다. 그러다 바디 로션 하나를 발견했다. 끈적이지 않아 부족하겠지만, 지금은 그것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

“흐, 아으으……. 뭐, 뭘 하는 거, 아으!”

로션을 잔뜩 짜자, 달콤한 딸기 향기가 났다. 최무정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나랑 하려고 준비해 둔 거예요, 이거?”

“뭘……. 아! 그, 그거 내 로션……!”

“어쩔 수 없으니까. 근데 이런 취향이에요?”

딸기 향 나는 로션을 바닥에 툭 던지자 건율이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급히 해명했다.

“아니, 바, 받은 거야!”

“누구한테?”

“저, 정우가 준 거야.”

“아……?”

이정우. 이전에 건율에게 집적거리기에 손을 봐준 1학년의 얼굴이 떠올랐다. 최무정은 셔츠 때문에 꼼짝 못 하는 건율을 내려다보며 잠시 고민했다. 다른 남자가 준 걸 아직도 가지고 있었다?

“걔 앞에서 썼어요?”

“으응?”

“그니까 이거 바르고, 걔 만났냐고요.”

“……어, 어. 응. 줬으니까…. 썼어.”

하얀 엉덩이 사이, 연한 분홍빛 액체가 잔뜩 고여 있었다. 최무정은 시간을 들여 뒤를 풀어 줄 생각을 접었다.

“그럼 그 새끼 선배 냄새 맡고 발정 났겠네.”

“으응?”

“내가 아니었으면 따먹혔겠어.”

“아니, 그, 그런 애 아니야! 그냥……. 그냥 준 거야.”

“그냥? 남자가 남자한테, 딸기 로션을 왜 그냥 줘요.”

누가 봐도 관심이 있는 얼굴이었다. 똑똑히 기억했다. 아닌 척하면서, 건율을 힐끔거리며 좋아 죽으려 하지 않았던가.

“주, 주면 안 돼?”

“안 돼요. 그리고, 이걸 아직도 갖고 있어?”

엉덩이를 찰싹 내리치자 건율이 팔딱거렸다. 그리고 귀를 빨갛게 물들이곤 눈을 치켜떴다.

“하지 마……!”

“아직도 정신 안 차렸어요?”

“아, 아프잖아.”

다시 한번 같은 곳을 때리자 건율이 파르르 떨며 고개를 푹 숙였다. 하얀 둔부가 복숭아처럼 발갛게 물들었다. 최무정은 나른한 목소리로 동그란 엉덩이를 툭툭 치며 물었다.

“근데 선배, 맞는 거 좋아해요?”

“……뭐, 뭐? 내가 왜?”

“때리면 아래로 질질 싸잖아요.”

손을 앞으로 내려 꽤 귀여운 것을 쥐자, 건율이 파드득 어깨를 움츠리며 고개를 휙 돌렸다. 금방이라도 울 듯한 눈이 빨개져서는 부끄러운 티를 내고 있었다.

“그런 말 좀, 안 하면 안 돼?”

“왜요? 선배가 걸레처럼 구는 건 사실인데.”

“아니, 라니……. 아!”

또 한 번 가볍게 내리치자, 찰싹하고 경박한 소리가 났다. 동시에 구멍에서 애액인지 로션인지 모를 것이 울컥 흘러내렸다. 앞뒤로 질질 싸면서 아닌 척하는 게 퍽 귀엽기도 하고, 영악하기도 하다. 최무정은 오물거리는 발간 구멍을 벌려 손가락을 깊게 쑤셔 넣었다.

“으읏, 응……!”

“맞잖아요, 때리니까 조이고.”

“노, 놀라서…. 흑, 그런, 아읏, 흐, 아!”

“그래?”

건율의 것보다 두 배는 두꺼운 손가락 두 개가 내벽을 가르고 들어섰다. 두 손가락을 살짝 구부리고 속살을 천천히 휘젓자, 이미 젖어 든 아래가 찔꺽거렸다.

최무정은 둥글게 튀어나온 전립선을 꾹꾹 누르며 고개를 기울였다. 가는 팔로 버티며 엎드린 엉덩이가 파르르 음란하게 경련했다. 건율은 스스로 모르고 있지만, 그는 섹스를 할 때면 무의식중에 허리를 흔들곤 했다. 그러니 다른 놈에게 따먹힐까 걱정하는 건 당연한 것이 아닌가.

“흐아, 아, 으, 으응, 읏……!”

지금만 해도 손가락으론 부족하다는 듯 음부가 벌름거리며 더욱 안쪽으로 빨아들이고 있었다. 매끄러운 내벽이 움칠거리며 손가락을 집어삼켰다.

“흐아, 아, 으응……!”

“보통은, 이렇게 때린다고 질질 싸진 않을걸요.”

“흣, 으, 아, 아으……. 흑!”

얼마 쑤시지 않은 손가락을 빼내자, 투명한 애액이 딸려 나왔다. 최무정은 두 손가락을 붙였다 벌렸다 하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어쩌면 로션이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다. 제 좆집인 양 박아 주길 애원하는 구멍에게 전희는 사치였다.

곧장 묵직한 성기를 꺼내 엉덩이골 위에 올려놓자, 건율이 헛숨을 삼키며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쓰러질 것처럼 팔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선배 어쩌면…… 피아노보다 섹스가 더 잘 맞을지도 모르겠는데.”

“너, 너……. 너 때문, 흑, 이야.”

“뭐가요.”

예고도 없이 깊은 곳까지 좆을 내리찍었다. 구불구불한 육벽이 놀라 요동치며 성기를 터트릴 듯이 쥐어짜기 시작했다. 최무정은 한숨을 깊게 내뱉으며 제 입술을 훑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두툼한 성기를 집어삼키는 작은 엉덩이가 대견했다. 입구가 한계까지 벌어져 뿌리를 강하게 수축하는 감각은 머리가 찌릿찌릿할 정도로 자극적이었다. 최무정은 온몸에 힘을 실어 성기를 거칠게 뽑았다가 다시 한번 무자비하게 내벽을 긁어 올렸다.

“흐으으! 흣, 응, 아!”

“봐요, 지금도…… 아프게 하는 게 좋잖아.”

“끅, 흐으, 아니, 야아, 아니야…….”

건율의 팔다리에 힘이 빠지자, 최무정이 바로 눈치를 채고 그의 허리를 받쳐 안아 올렸다. 각도가 상이하게 달라지자 안쪽이 성기를 더욱 빠듯하게 조여 댔다. 다리를 벌리게 해 더욱 깊게 쑤셔 박자, 건율이 새어 나오는 신음을 참지 못하고 교성을 내질렀다가, 놀라 제 입을 막았다.

“왜, 막아요?”

“바, 방음이…… 흑, 안 된다고 했, 잖, 아으, 흣!”

“아아…….”

그런 주제에 조그마한 엉덩이는 욕심껏 성기를 전부 품고 살갗에 비벼 대고 있었다. 최무정은 입을 막은 작은 손을 떼어 내고, 대신 제 손가락을 입 안에 쑤셔 넣었다. 검지와 중지만으로도 입 안이 가득 차 버거운지 침이 흘러내렸다.

“우으응, 흣, 우, 흐윽, 응!”

“나랑 떡 치는 게 그렇게 부끄러워요?”

“흐으으! 으, 읏, 흑, 으응!”

억울했다. 무척이나 억울했다. 최무정과의 사이를 부끄러워 할 리가 없었다. 다만, 피해가 갈까 봐 그런 것인데 그가 그리 말하니 서러웠다. 하지만 입을 틀어막는 손가락과 옴짝달싹도 못 하도록 음문을 세차게 드나드는 기둥에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축축한 애액이 왈칵 흘러내리며 핏줄이 불거진 성기를 잔뜩 적셔, 그의 것이 거칠게 드나드는 데에도 막힘이 없었다. 최무정은 뒤에서 건율의 몸을 세워 안은 채로 자신의 것을 깊게 밀어 넣고, 다시 빼내기를 반복했다. 불룩하니 튀어나온 전립선만을 강하게 짓이기듯 눌러 오는 감각에 머리가 자꾸만 하얗게 물들었다.

“우으, 응, 으읏, 흐으……. 으, 으응… 흐우…….”

굵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린 침이 턱까지 떨어졌다. 한참을 움직이던 최무정은 다시금 건율의 몸을 바닥에 눕히고, 가는 골반을 붙잡고 다시 한번 거칠게 밀어 넣었다. 엉망으로 젖어 말캉한 속살이 최무정의 것에 의해 찌그러지고, 비틀어졌다.

“흐으, 흑, 아, 흣, 주, 죽을 거, 같, 으……!”

자세를 바꾸며 입에서 손가락이 떨어지자 건율이 헐떡이며 베개를 붙잡았다. 최무정이 뒤에서 덮쳐 오니 건율의 몸은 넓게 벌어진 다리 외에는 보이지 않을 지경으로 짓눌렸다. 최무정은 정통으로 찍어 올리며 살갗이 거칠게 부딪치는 소리를 냈다. 무자비하게 안쪽을 왕복하다, 귀두만 걸치도록 모조리 뽑아낸 다음 막다른 곳까지 욱여넣었다.

“흐아, 아, 아……!”

무아지경으로 박아 대는 통에 건율은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머리가 멍하고 시야는 눈물로 흐릿해져 보이는 것이 없었다. 최무정의 것이 육벽을 이리저리 휘젓고 세차게 긁어내리며 여린 살점이 터지도록 움직였다.

추삽질의 깊이가 너무나 폭이 커서, 음문이 몹시 쓰라렸다. 

“선배, 나 좋아해요?”

“흐, 끅, 아, 으으, 흣, 조, 좋아아……. 흐으윽!”

“정말로?”

좆을 꽂아 넣은 채로 최무정이 잘근잘근 물어 왔다. 위에서 흔들어 대던 남자의 땀방울이 등에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건율은 작은 틈도 남겨 두지 않고 아래를 가득 채워 오는 물건에 허벅지를 경련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응, 으응, 흐, 응……. 저, 정, 마알, 흐, 흐윽…….”

“그럼 나 사랑해요?”

속삭이는 목소리가 무척이나 집요했다. 건율은 제 몸을 위아래로 흔드는 통에 아래가 완전히 망가지는 것 같아 두 팔로 제 배를 끌어안고 헐떡였다. 제 몸이 확장돼 남자의 것으로 모양이 잡히는 듯했다. 처음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이렇게까지 이상해진 것은 분명 최무정 때문인데…….

“사랑하냐니까요, 응?”

재차 물어 오는 목소리에 건율은 마구 짓씹던 입술을 놓아주며 고개를 뒤로 돌렸다. 반쯤 감긴 눈꺼풀 탓에 꽤 음탕한 낯짝이었다.

“너, 너어… 흑, 너, 는?”

“응?”

“아으, 흑, 너는, 흐아, 흐으……! 넌, 나아, 조, 좋아해?”

전립선을 지그시 눌러 오는 감각에 눈앞이 하얗게 점멸하기를 몇 번, 건율은 오싹오싹 달아오른 제 몸을 늘어트리며 다시 한번 물었다.

“무정이……는, 나, 사랑해?”

계속 묻고 싶기도, 피하고 싶기도 했던 말이었다. 건율은 미칠 정도로 선명한 그의 기둥과 핏줄, 두툼한 귀두와 입구에 닿아 오는 음모를 느끼며 가쁜 숨을 내뱉었다.

“당연한 걸 왜 물어요.”

“흐, 아, 하지, 하지만……. 윽!”

반박하려는 찰나 최무정이 다시금 움직여 거침없이 쫀득한 구멍을 헤집어 댔다. 배 속이 더부룩할 만큼 내벽을 가득 채우고, 녹아내릴 듯한 뜨거운 속살을 엉망으로 짓이겼다.

“너, 너는……. 흑, 그냥, 흑……. 필요했던, 거잖아.”

무의식을 돌아다니던 생각을 입 밖에 내뱉자 설움이 몰려왔다.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이불자락을 쥐자, 최무정이 상체를 세우며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성기를 뭉근하게 바깥으로 빼냈다. 그에 건율이 놀라 팔을 뒤로 뻗었다.

“미, 미안. 미안해, 내, 내가… 흑, 가지, 가지 마. 무정아, 미안, 해.”

“……뭐가 필요해서 내가 선배랑 이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 아니야. 내가…. 내가 바, 바보 같았어. 미안해.”

“말해 봐요.”

양팔이 뒤로 꺾인 채 잡혔다. 건율은 얼굴을 마주 보고 싶어서 어떻게든 몸부림을 치다가, 오물거리는 음부에 커다랗게 달아오른 귀두가 다시금 닿아오는 걸 느끼고 흠칫거렸다.

“……아, 안 혼낼 거야?”

“네. 말해 봐요.”

왜 갑자기 입 밖으로 튀어나왔을까. 제 말에 무정이 화가 나 떠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건율은 눈물로 범벅된 시야로 바닥을 노려보았다. 바보 같은, 멍청한, 병신.

“……내가 아, 아니어도… 그냥, 흑, 네가 좋아할, 사람이 필요했던…… 거 아니, 야?”

말을 뱉자마자 침묵이 감돌았다. 건율은 미친 듯이 후회했다. 하지만 이것이 진실일 것이다. 최무정에게는 사랑할 누군가가 필요했고, 때마침 그게 저였을 뿐이었다. 저처럼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을 사랑할 리가 없지 않은가.

생각을 거듭할수록 너무, 너무 서러워서 눈물이 바닥으로 줄줄 흘러내렸다. 눈을 감지 않아도 알아서 고여 떨어졌다.

그래도 말하지 말걸, 말하지 말걸. 그냥…… 서러워도 참을걸.

그때, 몸이 앞으로 휙 뒤집혔다. 최무정이 어깨를 잡아 돌린 것이다. 큼지막한 손이 눈두덩이를 꾹꾹 눌러 닦았다. 그래도 또 그렁그렁해지자, 최무정이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서일 리가 없잖아요.”

“…….”

설움에 가득 찬 얼굴이 꼭 삐진 고양이처럼 샐쭉해 졌다. 최무정은 자꾸만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 주며 미간을 찌푸렸다.

“선배라서 좋은 건데.”

“……거짓말.”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했어요?”

당연하지 않은가. 입술이 불퉁하게 튀어나왔다. 건율은 어쩐지 부끄러워서 시선을 피했다.

“아니에요. 나도 선배밖에 없어요.”

“……진짜?”

“응. 그게 아니면 내가, 중학생 때부터 따라다녔게요?”

어?

중학생?

눈을 동그랗게 뜨자 최무정이 다시 제 좆을 잡고 구멍에 쑤셔 넣고 있었다. 방금 것은 금시초문이라 건율이 팔을 쭉 뻗자, 그는 그 팔목을 붙잡고 한 번에 끝까지 처박았다.

“흐아, 아! 자, 잠……. 힉, 아, 아파……아…!”

“그때 처음, 보기만 한 게 아니라……. 흐, 그때부터 지금까지 선배만 본 건데.”

“히으, 끅, 읏, 아, 아으!”

“사람 마음을 그렇게 오해하고 있었어요?”

잠시 멈춘 바람에 안달이 나 있던 몸이 성기를 한 번에 씹어 삼키며 쾌감을 끌어 올렸다. 허리와 고개가 함께 뒤로 휘었다. 최무정은 위에서 건율을 짓누르며 두 팔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두 하반신이 억세게 부딪칠 때마다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아, 아으, 아, 흑, 흐으, 아……!”

“왜 혼자 착각하고 지랄이에요.”

“흣, 으응, 읏, 아, 아으, 흑, 읏…….”

“선배, 오늘 자기 싫죠?”

최무정은 붕대에 쌓인 손을 놓아주고,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리고 강하게 아래로 당기며 허리를 치켜올렸다. 살갗이 서로 부딪쳐 거칠고 음탕한 소리가 났다. 아래로는 이제 로션인지 애액인지 모를 것들이 서로 얽혀 이불을 더럽혔고, 건율은 갑작스레 박혀 지나친 쾌감에 투명한 액체를 뚝뚝 떨어트렸다.

“난 선배 몸 생각해서, 매번 많이 참고 있거든.”

“흐, 흐윽, 응, 아으, 앗, 아!”

“아……. 내일, 옆집에서 뭐라 하겠네. …아니면 소리 듣고 선배 따먹으러 오는 거 아니에요?”

정신을 놓고 신음을 내지르던 건율이 그 말에 정신을 차렸다. 급히 잡히지 않은 손으로 입을 막으려다, 붕대가 감긴 것을 보고 팔뚝을 아프게 물었다.

“흐으, 으, 우으으…….”

“아파?”

“으우, 흑, 흐으…!”

그걸 말이라고 해? 그 말을 당장 뱉을 수 없는 게 서럽다. 건율은 한계까지 치달은 쾌감에 몸부림치며 끅끅, 하고 울었다. 좋은데, 좋은 것이 너무 괴로워 정신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후으……. 선배.”

“으, 흐으, 응, 읏, 으!”

“걱정하지 마요. 선배가 죽어도 놓을 생각 없으니까.”

“흐으으……!”

건율은 최무정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넋이 나간 눈동자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파르르 몸이 떨리더니, 정액을 싸지 않은 채로 절정에 이르렀다. 내벽이 엉망으로 경련하며 정액을 달라는 듯 좆을 쥐어짜자, 최무정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 만져 줘야 싸는데, 안 만져 주니까 싸지도 않고 가는 거예요?”

“흐으, 으, 아……. 무, 무정아아…….”

깊은 곳이 들끓는 듯한 감각이 일었다. 최무정은 빨간 점막이 성기를 쫀득하게 조여 오는 것에 한숨을 내쉬며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아직 덜덜 떨며 가고 있던 건율이 그에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숨을 멈췄다.

전류가 튀는 듯한 찌릿한 감각에 죽을 것만 같았다.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비이상적인 쾌감이었다.

건율은 드라이로 절정 하는 도중에도 착실히 제 주인의 좆을 오물오물 씹어 대며 본능적으로 허리를 흔들었다. 조르는 듯한 엉덩이를 붙잡은 최무정 또한 이젠 한계인지,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깊게 내뱉었다.

“하아, 선배……. 건율아, 서건율.”

“흐으, 흑, 아, 아응, 아, 아! 앙, 아!”

참지 못한 교성이 튀어나와 머리를 어지럽혔다. 곧, 거대한 몸이 건율을 와락 끌어안고 사정하기 시작했다. 뭉근한 정액이 울컥 대며 속살을 가득 채웠다. 안쪽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듯한 양에 건율의 몸이 요란하게 경련했다.

“흐, 흐으, 흑, 아, 아……. 흐으…….”

배 안을 채우던 정액이 그치자, 그제야 탁, 하고 온몸에 힘이 풀렸다. 여유 없이 몰아붙여진 바람에 눈이 반쯤 감겨 껌뻑거렸다. 감당할 수 있는 쾌락이 아니었다. 정신이 점차 멀어져 갔다. 이마에 따뜻한 감촉이 와닿았다.

“걱정하지 말고 자요, 선배.”

최무정은 옆집이 어제 이사 갔다는 건 말하지 않기로 했다. 내일 아침, 시뻘게진 얼굴로 부랴부랴 도망가는 서건율이 보고 싶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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