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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탄생(1) (2/6)

2. 탄생(1)

최무정은 무식하고, 짐승 같았다. 건율의 의견은 필요 없다는 듯 막무가내였다. 건율은 기절했다가 눈을 뜨기를 반복했고, 그럴 때마다 최무정은 땀에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흥분한 뺨을 내보였다. 그러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햇빛이 쏟아지듯 활짝 휘어 웃으며 입을 맞추었다. 연인을 대하는 태도와 다를 것이 없었다.

건율은 이 고통이, 이 순간이 끝나기만을 빌었다. 그러나 최무정은 시간을 들여 오래토록 행위를 반복했고, 아랫배가 볼록하게 부풀 때까지 자신의 것을 쏟아부었다. 그가 그만두었을 때는, 좆을 뽑아내기도 전에 풀어진 구멍 사이로 희멀건 정액이 질질 흐르고도 남을 때였다.

최무정은 더 하고 싶다는 듯 발기한 성기를 건율의 허벅지에 문지르고, 지쳐 기절한 건율의 뺨에 입을 맞추며 제 살덩어리를 흔들었다. 그러곤 새하얗게 질린 건율의 입술에 장난스레 귀두를 문지르고 웃다가, 입 안으로 좆을 밀어 넣었다. 안타깝게도 건율은 목구멍까지 좆을 처넣어도 일어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최무정은 상심해서는, 건율의 입술과 입천장, 곳곳에 제 선단을 비벼 대며 쾌락을 즐겼다. 쿠퍼액과 정액으로 지저분해진 건율의 얼굴은 삼 일 밤낮으로 싸질러 대도 흥분될 만큼 음탕했다.

오른쪽 볼이 둥글게 솟을 때면 최무정은 주변을 살피다 손에 닿는 아무 필름 카메라를 끌어와 그 얼굴을 찍어 보기도 했다. 커다란 사탕을 문 듯한 건율은 얼굴 이곳저곳에 생크림을 묻힌 아이 같았다.

그걸 보다가 입 안에 한 바탕 싸지른 최무정은 또다시 핏줄이 불거진 살 기둥을 건율의 안에 집어넣었다. 이번에는 건율의 허리를 잡아 뒤집어, 개가 성교하듯 등에 달라붙어서는 아래를 거칠게 흔들어 박았다. 푹푹 찔러 댈 때마다 건율의 안에서 정액이 왈칵 쏟아져 아래로 흘렀다. 살점 하나 없는 젖을 짜내듯 쥐고 매만지다가 안쪽으로 쏙 함몰된 유두를 살살 문지르기도 했다.

건율의 몸은 천천히 최무정의 성기에 맞춰지듯 기둥을 알맞게 조여 왔고, 무의식중에 아래에 힘을 주었다 풀며 음탕한 짓을 해 댔다. 최무정은 그게 괘씸해서 묶인 팔뚝을 풀고, 양 손목을 잡아 제게로 힘껏 당겼다. 작은 말 위에 올라타 그를 조련하듯, 커다란 손이 흰 피부에 벌건 자국을 남겼다.

그러다 건율이 깨어났다. 아마 해가 떴을 때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시간을 알 수 없는 어둡고 붉은 방에서 움찔거리며 눈을 떴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처박아 오는 성기에 헉,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아래를 힘껏 조이며 공포에 젖은 발간 얼굴에 최무정이 짐승처럼 목을 긁는 소리를 냈다. 목줄을 당기듯 건율의 두 팔을 뒤로 잡아끌었다. 제 씨를 잔뜩 품은 아랫배에 흥분하면서. 온통 점막이 짓눌리도록 박히기만 한 주제에 쿠퍼액을 흘려 대는 건율의 뒷목을 잘근잘근 씹어 댔다.

최무정은 하얀 건율의 몸과 거뭇한 제 피부색이 차이가 커서, 더 야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새파랗게 질린 채로 그만, 하고 외치는 건율이나 그의 팔목을 놓고 머리채를 잡아 박는 자신이나 모두 꿈처럼 환상적이었다.

그래, 이것이 최무정이 꿈꿔 온 것이었다. 먹지 못해 가늘어진 허리를 내려다보면서, 그 와중에 동그랗게 올라간 둔부 사이로 성기를 마구 쑤셔 박는 것이.

겁에 질려 바들바들 떨기만 하는 마른 몸은 탐스러웠다. 조그마한 머리부터 가느다란 뼈대, 그 위를 덮는 하얗고 매끄러운 살결과 저로 인해 음탕하게 젖은 음부.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과일처럼 과즙이 흘러 둘의 살갗이 비벼질 때마다 끈적이는 소리가 났다. 또다시 최무정이 절정에 이르러 푸욱, 하고 깊은 내벽까지 짓이겼다. 건율은 끅끅대며 울다가 다시금 실신했다.

최무정은 좆을 한 번 빼, 벌건 속살에 잔뜩 담긴 제 정액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작은 구멍이 제 것을 삼키느라 노곤하게 풀어진 것도, 몸 안에 모두 품지 못해 뱉어 내는 하얀 정액도, 움찔거리는 음부의 모양 하나하나, 주름 하나하나가 사랑스러웠다.

최무정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듯 자연스레 건율의 뒷구멍에 성기를 깊게 꽂아 넣고, 그를 안아 들었다. 덕분에 바닥에 정액과 쿠퍼액이 뚝뚝 흘러 흔적을 남겼다. 최무정은 귀두부터 뿌리까지 감싸 오는 육질에 한숨을 내쉬며 침실로 걸음을 옮겼다.

그는 아직도 모두 해소하지 못했다.

* * *

정신을 차렸을 때는 침대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목이 따끔따끔 저려 오는 찰나, 입가에 차갑고 단단한 것이 닿았다. 그리고 부드럽게 목구멍 안쪽으로 물이 흘러들어 왔다.

물이 입 안에 가득 차기 전에 컵은 기울기를 멈추었다.

눈두덩이가 홧홧하게 쓰라렸다. 건율은 눈을 몇 번 감았다 떴다. 그러자 누군가 턱을 뒤로 젖히고, 눈동자를 열어 안약을 넣어 주었다. 조금 나아진 듯했다.

“……무…울.”

힘겹게 내뱉자 또 차가운 것이 입가에 닿는다. 하얀 컵이다. 컵 너머의 인물은 흐릿하게 지워져 보이질 않았다. 건율은 물을 꼴딱꼴딱 모두 비우고 나서야 한숨을 푹 쉬었다.

팔 하나 꼼짝할 힘이 없다. 처음 보는 침대, 이불.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허리에 조금도 힘이 들어가지 않아 포기했다. 건율은 멍하니 눈을 깜빡이다가 코앞까지 훅 다가온 얼굴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선배, 눈곱.”

차가운 손수건이 얼굴 이곳저곳을 깨끗하게 닦고, 마지막으로 눈 주변을 살살 문질러 주었다. 건율은 눈도 입도 앙다문 채로 수발을 받다가 의문을 띄웠다.

최무정, 침대, 물, 수건…….

뒤죽박죽 얽혀 버린 기억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떤 것이 먼저이고, 후자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이고, 고통스러웠던 기억만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눈앞의 최무정은 또 평소와 다름없는 녀석이다. 그는 ‘잠시만요.’ 하더니 부엌 쪽에서 그릇이 부딪치고 수저가 놓이는 소리가 났다.

건율은 조심히 몸을 움직여 보았다. 허리를 들자마자 은밀한 부위가 찢어질 듯이 아려 왔다. 놀라 몸이 굳었다. 건율은 헛기침을 뱉으려다 굵고 긴 바늘이 목구멍을 관통한 듯한 통증이 일어 마른 입술을 축였다.

고소한 냄새가 문 틈새로 파고든다. 평화롭고 고요한 아침. 건율의 뒤로 푸른빛이 섞인 햇살이 느긋하게 들어섰다. 고개를 숙이자 볼품없이 마른 손목이 붉었다. 고작 셔츠의 소매로 얼마나 세게 묶었는지, 그 흔적이 선명했다.

다정한 최무정, 저를 연인이라 부르던 최무정, 그리고 저를 짓누르고 범하던 최무정.

무정하다. 이름 그대로, 그는 무정했다. 건율이 그간 최무정과 지낸 시간이 멍청하게 느껴질 만큼 서늘하고 차갑다. 그러나 곧 터질 폭탄처럼 불똥이 이리저리 튀어 건율의 심장을 거칠게 할퀴었다.

“선배, 속은 괜찮아요? 죽 드실 수 있겠어요?”

최무정은 쟁반 하나를 가지고 왔다. 건율이 좋아하는 소고기 죽과 오징어 젓갈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선배 힘드시니까, 제가 도와드릴게요.”

건율은 눈동자만 돌려 최무정을 쳐다보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리고 그가 입에 대어 주는 대로 죽을 먹었다. 먹는 내내 자꾸만 무언가 울컥하고 치밀었으나 참았다. 어쩌면 그건 전날의 여파일지도 모른다.

최무정을 거절해 봤자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나, 그랬을 때 그의 반응이 두려운 것이 그러했다. 이곳은 최무정의 영역이었고, 건율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 만큼 지친 상태였다.

오늘이 공강인 것이 다행이기도 했고, 연습과 공부 시간을 빼앗긴 것이 화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건율은 참기로 했다. 아니, 그래야 했다.

“호……. 뜨거워요. 이제 막 만든 거라서.”

소고기와 야채, 그리고 탱글탱글한 새우가 들어간 소고기 죽은 비린 맛 하나 없이 깔끔하고 고소했다. 입을 벌려 조심히 받아먹던 건율은 순간, 검은 비닐 봉투가 떠올랐다.

“우, 흐으, 컥!”

헛기침도 제대로 나오질 않아 목을 부여잡자, 최무정이 급히 입가에 휴지를 대 주었다. 건율이 죽을 뱉자 고스란히 받아 낸다.

지금처럼 반투명한 흰 통에, 굵직한 소고기가 들어간 죽이었다. 냄새가 몹시 비슷했다. 왜 그땐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후각이 예민한 편임에도, 같은 사람의 음식이라는 걸 왜 몰랐을까. 사실 냄새만으로 그것을 알아채는 사람이 있겠냐마는, 건율은 자책했다.

그때 알아차릴걸. 아니, 최무정이 그런 녀석인 걸 알면서도 마음에 들이지 말걸. 말도 하지 말고, 눈도 마주치지 말 것을 그랬다고 생각했다.

“급하게 드셨어요? 아니면 아직 안 식어서 그런가.”

혼자 중얼거리던 최무정은 죽을 떠 한 입 먹어 보더니 고개를 기울였다.

“고양이 혀예요? …아, 귀여워.”

건율은 그냥 눈을 내리깔고 입술을 훑었다. 잔뜩 말라 거친 입술이 혀에 긁혀 따끔거렸다. 무의식중에 물어뜯었는지, 상처가 쓸렸다.

“거기 빨면 안 돼요. 약 발라 놨어요.”

최무정은 그릇을 내려놓고 성큼 다가와 건율의 아랫입술을 툭툭 두드렸다. 그러더니 ‘아’ 하고 짧은 신음을 흘렸다. 그러곤 침대 옆 서랍을 뒤적이더니 약을 꺼내 다시 얇게 발라 주었다.

“다 먹고 다시 바를 거예요.”

건율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최무정은 약을 내려놓더니 다시 손을 가까이 했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으나 그는 개의치 않고 건율의 입술 안쪽으로 엄지를 단번에 밀어 넣었다.

“…응…!”

커다란 손가락이 건율의 혀를 힘 있게 짓눌렀다. 건율이 놀라 고개를 뒤로 젖혔지만 그럴수록 입은 더 크게 열리기만 했다.

“으응……?”

건율은 삐걱이는 팔로 최무정의 팔뚝을 붙잡았다. 두 손으로 잡아도 잡히지 않는 두꺼운 팔뚝은 쇠몽둥이처럼 굵고 단단했다.

“고양이 혀치고는 말랑하네요.”

엄지에 힘이 풀어지더니 건율의 혀를 느긋하게 쓸어내리고, 아래를 긁어 올렸다. 건율은 상체를 구석으로 밀어내며 피하려 굴었고, 최무정은 멈추지 않았다. 단단한 손가락이 자꾸만 이상하게 움직였다.

건율은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그러자 최무정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바짝 긴장돼 있던 분위기가 느슨하게 풀렸다. 그러나 건율은 여전히 어깨를 안쪽으로 말고 최무정의 눈치를 살폈다.

“뭐, 왜 이렇게 긴장해요? 제가 설마 또 할까 봐?”

건율은 시선을 내리깐 채로 고개를 저었다.

“애인인 사람을 누가 그렇게 다뤄요. …섹파도 아니고. 응?”

“……왜….”

“네?”

“왜, 내가…….”

네 애인이야?

질문은 그대로 삼켜졌다. 건율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최무정은 더 묻지 않고 부엌에 다녀왔다. 작은 그릇에 죽을 옮겨 담고, 넓게 펼쳐 호호 식히는 모습이 꽤 정성이다.

건율은 간헐적으로 경련하는 팔뚝에 힘을 주었다. 아래쪽은 아예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아팠으나, 어깨를 펴고 손끝을 꼼지락거리니 상체는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었다. 그래서 건율은 손을 내밀어 쟁반을 쥐었다.

그러자 무심한 눈동자가 건율에게로 꽂혔다.

“왜요?”

“내, 내가 먹을게.”

“아픈데,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 없어요. 나 꼭 선배한테 이렇게 해 드리고 싶었거든요.”

쟁반을 쥔 손가락 하나하나를 최무정이 떼어 냈다. 그럴 때마다 이정우의 손가락이 으스러지던 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건율은 식은땀을 흘리며 쟁반을 끝까지 쥐고 있다가, 결국 놓쳤다.

최무정의 손은 제 것보다 훨씬 크다. 건율의 손가락은 이정우의 것보다 가늘었고, 마디마디가 굵은 것을 빼고는 금세 부서질 만큼 창백했다. 마음만 먹으면 최무정은 건율의 손가락, 아니 손목까지도 부러트릴 수 있었다.

건율은 조용히 손을 이불 아래로 넣어 맞잡았다. 눈에 보일 만큼 손가락의 떨림이 멈추질 않았다. 부끄럽기도 했다.

“자. 아, 하세요.”

최무정은 식은 죽을 숟가락으로 싹싹 긁어 건율의 입 안에 밀어 넣었다. 조금 흐른 것은 제 약지로 훑었다. 움찔거리자 최무정은 새초롬하게 웃었다.

“저도 한 입.”

최무정은 약지에 묻은 죽을 훑고는 또다시 죽을 떠 건율의 입가에 대었다. 미적지근하게 식은 죽에서는 고소한 참깨 향과 소고기, 새우 향이 어우러졌으나 건율의 입맛을 돌게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죽을 식히고 먹이고, 건율의 식은땀을 닦아 주었다.

* * *

짙은 안개 속에서 보이지 않는 괴물과 싸우는 꿈을 꿨다. 건율의 꿈은 늘 그랬듯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형태들이 튀어나오곤 했다. 어둑한 길을 뛰고, 또 뛰었다. 거리가 좁혀 오는 줄도 모르고 뛰다가, 넘어져서는 한숨을 쉬었다. 괴물의 소리가 들리지 않아 안심할 때쯤 잡혔다. 건율은 창백한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아.”

침실은 암막 커튼으로 가려져 있어 어느 정도의 시간도 가늠하기 어려웠다. 건율은 심호흡을 내뱉으며 눈을 꾹 감았다 떴다. 죽을 먹은 뒤 바로 잠에 들었었다. 그때도 시간을 알 수 없었으니 지금도 감이 오질 않는다. 건율은 텅 빈 침실을 둘러보다가 두 팔로 침대 머리를 붙잡았다.

“아, 흐……윽!”

몸을 일으키려던 건율은 예상 외로 더 큰 충격에 놀라 주저앉았다. 이동은커녕 자세를 고쳐 앉은 듯 아주 작은 움직임에 한숨이 나왔다.

악몽의 기억이 강렬했는지, 잠에서 막 깬 뒤임에도 정신이 맑고 또렷했다. 건율은 끙끙거리며 조금씩 움직여 침대 끄트머리까지 몸을 옮기는 데에 성공했다. 아래가 어찌나 아픈지 무릎까지 힘이 전혀 들어가질 않았다.

내려갈 수 있을까. 다리를 천천히 움직여 바깥쪽으로 돌렸으나 발끝이 조금 닿을 뿐이다. 꽤 높은 침대였다.

“흡, 으, 으…… 흑…!”

바닥에 발이 닿자마자, 찌르르한 통증이 타고 올라왔다. 허리 부근에 날카로운 침이 촘촘히 박힌 듯 골머리까지 울렸다. 건율은 입술을 엉망으로 씹어 대며 소리를 참았다. 그러나 걸음을 옮기기도 전에 그대로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눈물이 핑 돌았다. 이대로 걷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바보 같은 생각도 들었다. 너무 아프고, 왜 자신이 아파야 하는지 화나고, 아프게 한 사람이 제게 왜 이러는지 억울하고 서러웠다.

그 상태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건율은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눈물을 꾹꾹 눌러 닦았다. 최무정이 무섭다. 골목길의 남자도, 스토커도 무섭다. 그러나 가장 무서운 건 그 셋이 동일 인물임을 알았음에도 동일 인물이라 인식하지 못하는 자신이었다.

누군가 일부러 찢어 놓은 퍼즐을 억지로 꿰맞춘 것 같았다. 이게 꿈이었으면 싶고, 모두 거짓말이라고 말해 줬으면 싶었다.

그때, 문밖에서 철컥이는 소리가 들렸다. 건율은 화들짝 놀라 주변을 살피다가, 더듬더듬 바닥을 짚으며 주변을 살폈다. 옷장과 욕실. 숨을 곳은 두 곳이나 있는데 움직일 수가 없다. 건율은 끅, 하고 숨을 들이켜며 몸을 다시 일으켰다가, 접은 다리 한쪽이 휙 움직여 침대 아래 길게 내려온 천을 걷어 냈다.

건율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아래로 기어들어 갔다. 그냥, 그냥 최무정을 보고 싶지 않았다. 지금 당장만….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줬으면 해서 그랬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건율의 예상대로 침실 문이 열렸다. 그것도 툭, 하는 소리와 함께였다. 그러니까, 잠긴 문을 안쪽에서 연 것과 같은 소리였다.

“선배, 나 피곤…….”

밖에서 안으로 들어온 최무정이 뚜득, 하고 뼈 소리를 내었다. 건율은 침을 꿀꺽 삼키고 주먹을 쥐었다. 손끝이 긴장으로 뻣뻣하게 저려 왔다.

“아프면서, 왜 자꾸 귀엽게 구는 거야.”

그러나 화난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게 더 의아했다. 웃음기 담긴 목소리에 건율은 몸을 잔뜩 웅크렸다. 침대 아래는 꽤 넓었고, 최무정의 얼굴을 보는 것보다 좋았다. 바닥에 먼지 한 톨 없어 깨끗했지만 더러워도 상관없었다.

“제가 인내심은 좋은데, 이런 애교는 못 참아요.”

덜컹, 커다란 굉음과 함께 두툼한 손이 하얗고 말랑한 발을 붙잡았다. 놀라 버둥거렸다가, 머리를 박고 찌릿한 고통에 눈물이 또 핑 돌았다. 건율은 이를 악물고 바닥에 찰싹 붙었다. 어두컴컴하던 시야가 밝아지고, 다시 몸이 긴장으로 조여 대기 시작했다. 꼭 공기와 빛이 온몸을 꽉 쥐고 놓아주지 않는 것 같았다.

“흐, 으윽, 흐…….”

심장이 마구 뛰어 댔다. 고개를 돌리자 최무정이 한 팔로 침대를 들어 올리고, 또 다른 손으로 건율의 발목을 내려놓으며 빙글 웃었다. 큼지막한 손바닥이 볼록하고 통통한 둔부를 살살 쓰다듬었다.

“일부러 이래요? 귀엽게 보이려고?”

“시, 싫어…….”

“아니, 하…. 존나 귀엽게 발 빼고 숨으면 어떡해.”

고개를 푹 숙이자 부드러운 잠옷 안쪽으로 손이 덥석 들어왔다. 그러곤 둥근 엉덩이를 한 손에 가득 쥐고 거칠게 주물럭거렸다.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기이하게 감미로웠다.

“내가 선배를 모를 거 같아요?”

“나, 나…… 무, 무정아, 나… 고, 공부… 해야 돼, 집에, 가야… 돼.”

건율이 말하는 사이 손을 빼낸 무정이 턱을 괴고 이야기를 들었다. 입가를 문지르는 중지가 느긋했다. 그러나 건율의 ‘집’이란 단어가 나오자마자 미간을 사납게 찌푸려졌다.

“아, 아윽!”

불시에 머리채가 잡혀 뒤로 꺾였다. 두피가 욱신거리고 억지로 꺾인 턱과 상체가 뻐근하게 아려 왔다. 조금 전부터 조여 오던 심장이 쿵쿵, 미친 듯이 날뛰었다. 숨을 쉬는 것이 괴로웠다.

“내가, 선배를, 모를 거 같냐구요.”

“흐, 끅! 지, 집에… 보내, 으, 흐으……. 아!”

사지가 바들바들 떨렸다. 건율은 숨을 꾹 참고는 너덜거리는 아랫입술을 물어뜯었다. 울거나 화내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충분히 수치스러웠다.

“있잖아요, 제가 집에 안 보내 준다고 한 적 있어요?”

“으, 흐으……. 아, 파…!”

“보내 줄 거예요. 선배가 지금 아프니까 돌봐 주는 거고……. 제가 선배를 이렇게나 사랑하는데, 설마 나쁜 짓이라도 할까요.”

건율의 눈동자에서, 천천히 아래로 떨어진 시선은 손가락을 향하고 있었다. 건율은 고개를 뒤로 젖힌 채로 컥컥대다가 아슬아슬하게 버티던 팔에 결국 힘을 빼고 말았다. 동시에 최무정이 손을 놓았고, 바닥에 이마가 부딪치기 직전 그가 아래로 손을 대주었다.

“오늘은 힘드니까 푹 쉬세요, 네? 선배가 아프니까 속상해서 그래. 지금 공부한다고 머리에 들어올 것 같아요? 안 그래도 집중 잘 못 하면서……. 아니면, 그 몸으로 연주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다 선배를 위한 거니까 말 좀 들어요.”

최무정은 건율을 한 팔로 번쩍 안아 들고는 다시 침대에 내려놓았다. 천천히 내려놓았는데도 묵직한 소리에 흠칫 어깨를 떨자, 최무정은 사랑스럽다는 듯 눈을 휘어 웃었다. 그가 왜 웃는지 건율은 이해할 수 없었다.

“자, 다시 누워요. 오늘 공강이잖아. 내일은 반주법 하나고……. 내일도 아프면 제가 출석 처리 도와드릴 테니까 걱정하지 말구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건율의 몸은 유리병처럼 부드럽게 침대 위에 놓였다. 최무정은 조금 전 머리채를 잡았던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치 다정한 목소리와 손짓으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선배, 나 믿죠? 내가 선배 힘들게 할 사람 아닌 거 알죠? 선배 속만 썩어요. 너무 예민해요, 지금. 그니까 맘 가라앉히고……. 나 믿어요. 내가 선배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거.”

가슴 위에 이불이 덮인다. 건율은 텅 빈 눈으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최무정은 건율이 잠들 때까지 계속해서 속삭였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반복하는 목소리에 정신이 몽롱하게 흐트러졌다.

* * *

대학에 들어와 결석한 것은 처음이었다. 최무정은 출석 처리가 됐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사람도 몇 없는 과에서 혼자 다니는 저를 모르는 교수는 거의 없었다.

건율은 반주법 강의를 결석한 날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최무정은 예상외로 막지 않았다. 아직 몸이 좋지 않았음에도, 해가 지고 나서야 꺼낸 말에 그는 순순히 응했다. 그게 더 불안하긴 했으나 건율은 우선 그 집에서 빠져나온 것이 안심이 되었다.

그는 늘 그랬듯 건율의 집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언제 만들었는지 모를 도시락과 여러 약을 주었는데 하나하나 사용하는 부위가 달랐다. 특히 뒤가 찢어질 때 쓰는 약이라는 것은 쳐다도 보기 싫었다.

건율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그대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건율은 바로 감기는 눈꺼풀을 꾸역꾸역 들고, 억지로 핸드폰을 켜 알람을 맞췄다. 바로 내일이 시험이니까, 몸이 좋지 않은 것도 상황이 좋지 않은 것도 중요치 않았다.

다음 날, 건율은 아픈 몸을 이끌고 학교로 갔다. 도서관에서 억지로 책을 들여다보고, 강의를 들으러 강의실로 향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최무정이 있을 거란 생각에 속이 거북하게 울렁거렸다.

그리고 강의실에 들어섰을 때, 최무정은 한결같이 건율이 자주 앉는 곳에 앉아 있었다. 건율은 망설이다 끝자리에 앉았다. 그냥 피한 건데, 도망친 것 같았다. 당당하게 앉던 곳에 앉고 싶은데 몸이 따라 주질 않았다.

그게 많이 서러워서 건율은 남모르게 눈가를 글썽이다가 눈썹에 힘을 줬다. 다행히 눈물은 그새 말랐고, 교수가 들어왔다. 시험 기간에도 어김없이 강의는 시작되었고, 건율은 강의에 집중하지 못한 채로 교수의 말을 줄줄 받아 적었다.

[왜 울어?]

그러는 도중 온 문자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최무정이라는 걸 알고 있는데, 그가 자신이 맞다고 했는데,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들어 최무정 쪽을 쳐다보았지만, 그는 강의에 집중하고 있었다.

건율은 벌벌 떨리는 손으로 문자에 답장을 보냈다. 처음이었다.

너랑 같이 있는 게 싫어.

그리고 최무정을 힐끔거렸다. 그가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보내는 걸 직접 보고 싶었다. 그러나 때 마침이라고 해야 할까, 교수가 강의를 끝냈다. 그는 시험 잘 보라는 말과 함께 자리를 떴다.

저도 모르게 긴장했는지 교수가 문밖으로 나섬과 동시에 어지럼증이 일었다. 눈앞이 흐릿해졌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손끝이 저리고 누군가 뇌를 쥐어짜는 것만 같았다.

[사복관 3층 화장실로 와]

[울지 말고]

몸이 터질 것만 같았다. 끝나지 않는 악몽 같았다. 악몽임을 깨달아도 스스로 제어할 수 없어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꿈이었다.

건율은 심하게 몸을 떨며 짐을 챙겼다. 가쁜 호흡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강의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가슴이 위아래로 커다랗게 뛰어 댔다. 저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지고, 호흡이 가파른 언덕을 오르듯 했다. 주변 학생들이 힐끔거렸지만, 누구도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사복관까지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건율은 우선 강의실 앞 화장실에 가자마자, 칸 안으로 들어가 문을 틀어 잠갔다. 그러자 또 네모난 틀이 저를 조여 오는 듯해서, 얼마 있지 못하고 나와야 했다. 건율은 찬물로 세수하고, 꺽꺽이며 숨을 힘겹게 뱉었다.

그때, 누군가 들어왔다. 건율은 창백한 안색으로 애써 입술을 안쪽으로 말아 물었다. 어깨가 눈에 띄게 경련하고 코끝으로 숨을 바쁘게 뱉는 게 눈에 훤했으나 숨기고 싶었다.

그러나 철컥이는 소리에 저도 모르게 고개가 돌아갔다. 동시에, 커다란 손이 목을 움켜쥐었다. 벽으로 내쳐지는 것은 한순간이었고, 커다란 숨이 입술 틈새로 들어오는 것은 길었다. 익숙한 손가락이었다. 목을 아프게 움켜쥔 손바닥은 부드럽고, 그 끝은 단단하고 거칠었다. 손가락에 힘이 조금씩 풀릴 때마다 목구멍으로 숨이 깊게 들어오고, 빨아들여졌다.

“흐, 흐으, 흡, 헉! 허억, 헉……. 허어, 헉…….”

입술이 떨어졌다가, 다시 맞부딪쳤다. 이가 부딪칠 만큼 거세게 입을 맞춘 남자가 또다시 숨을 불어넣었다. 건율은 손에 쥔 핸드폰을 떨어트렸다.

천천히 숨이 가라앉는다. 두꺼운 혀가 제 혀를 감싸고 빠는 본능적인 행동에 두통이 잦아들었다. 남자는 두어 번을 더 건율에게 숨 쉬는 법을 알려 주듯 천천히 입술을 떼어 냈다가, 숨을 쉬게 하고 다시 입을 맞췄다. 목덜미 부근을 쓸어내리던 손이 살짝 올라와 머리채를 잡았다. 고개를 더욱 젖히게 하고서 위에서 혀를 박아 넣듯이 내부를 훑었다.

상의 안쪽으로 거친 손바닥이 들어와 살결을 쓸어내렸다. 상의가 위로 젖혀질 만큼 손을 깊게 넣어 분주히 조그마한 유실을 쥐었다. 가슴께를 더듬으며 젖꼭지와 살집을 쥐어 비털던 손이 집요하게 움직였다.

톡 튀어나온 유두를 꾹 짓누르고, 두 손가락으로 짓이기듯 누르다 한쪽으로 비틀었다. 그리고 곧, 남자의 손과 입이 떨어져 나갔다. 몽롱했던 초점이 바로 잡혔다. 건율은 무너지듯 앉아 숨을 헐떡였다. 손등으로 입가를 쓸자 목을 조이던 손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요?”

“…….”

건율은 번들거리는 입술을 벌린 채로, 최무정을 쳐다보았다. 아직 제정신이 아닌 듯한 모습에 최무정이 부드럽게 웃으며 건율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뺨에도 입을 맞췄다.

누군가 화장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지만, 건율은 그것을 듣지 못한 채 최무정에게서 눈을 떼어 내지 못했다. 심장박동이 평소처럼 가라앉고, 헐떡이던 숨도 다시금 돌아왔다.

“이렇게 아프면 저한테 와요. 제가 금방 도와주잖아요, 그죠?”

“……최무정?”

“선배를 위해서 하는 말이니까 꼭, 들어 줘요. 전 선배가 급하면 어디서든 도와드릴 수 있어요.”

문득 상담실에서 두 사람을 앞에 두고 입을 맞춘 것이 떠올랐다. 건율을 확 달아오르는 수치심에 뺨이 파랗게 물들었다. 그때는 급해서, 너무 무서워서 잊고 있었던 일이었다.

“시, 싫어.”

“사람들 앞에선 싫어요?”

건율은 눈동자를 데굴 굴리다가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싫은지 정확히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그러자 최무정이 뺨에 입을 맞췄다. 쪽, 하고 떨어져 나가는 소리가 적나라했다. 그는 잠시 손목의 시계를 힐끔거리더니 몸을 일으켰다.

“알겠어요. 없는 곳에서만.”

* * *

최무정의 부축을 받아 화장실을 나오자마자, 학생들이 들어섰다. 누군가는 최무정을 알고 있는 듯 뭐 했냐, 하고 물었고 최무정은 건율이 속이 좋지 않아 토악질을 하는 걸 도왔다고 했다.

건율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람들 사이를 빠르게 지나갔다. 최무정은 따라오지 않았다. 그는 ‘이따 연습실에서 봬요.’라고 말하며 손을 흔들었다. 고개를 돌리자 최무정은 이미 동기와 대화 중이었다.

차분히 가라앉은 채로 건물 밖으로 나왔다. 태양이 뜨겁게 눈가에 내리꽂혔다. 건율은 핸드폰을 꺼냈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액정이 길게 깨져 있었다. 필름이길 바라며 자세히 보았으나 액정이 맞았다. 조만간 필름만 바꾸러 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건율은 날짜를 보고 메모장을 켰다. 평소에는 늘 머릿속에 있어 따로 정리하지 않던 일들을 적어 내려갔다.

오늘 해야 할 공부, 연습, 내일 레슨, 오늘 시험 시간.

건율은 시험 시간이 늦게 잡혀 있어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공부를 더 할 수 있어서는 아니었다. 캠퍼스를 가로질러 사회복지학과 건물로 향하는 걸음이 느렸다. 아직 다리가 욱신거렸다. 건물로 들어서자, 어김없이 서늘한 기운이 풍겼다. 사복관은 여름이든 겨울이든 건물의 공기가 찼다. 1층은 컴컴했고, 2층부터 있는 강의실 복도에만 불이 환하게 들어오는 곳이었다.

건율이 3층에 도착했다.

[도착했어?]

대답하지 않았다. 건율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조금 전 자신을 도와준 최무정이 떠올라서 그 감정을 정돈하기가 어려웠다. 무슨 기분인지 알 수 없었다. 왜 자신이 순순히 왔는지, 왜 이곳으로 그가 불렀는지 아무것도 짐작 가지 않았다. 어쩌면 최무정이 건네는 그 다정함에 무력하게 휩쓸리는 것일지도 몰랐다.

3층은 온 복도가 컴컴했다. 사물함이 있는 커다란 로비를 제외하면 강의실도 죄다 불이 꺼져 있었다.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두 번째 칸]

칸?

건율은 화장실 앞에 우뚝 멈춰 섰다. 문자를 보자마자 시리도록 찬 강가에 발을 담근 것처럼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한참을 머뭇거렸다. 스스로에게 뭔가 이상하지 않냐고 물어봤는데, 건율도 모르겠어서 대답하기 힘들었다.

아무 생각도 없이 서 있는 시간이 5분은 지났을까. 건율은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방금 막 청소한 듯, 화장실 안쪽에서는 락스 냄새와 라벤더 향수 냄새가 났다.

새까만 안쪽으로 새하얀 소변기 몇 대가 보였다. 건율이 한 번 더, 걸음을 뒤로 물렀다.

“……아.”

어두운 안쪽이 저를 잡아먹을 듯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건율은 두 번 더 뒷걸음질을 치다가, 몸을 휙 돌렸다. 동시에 아래층 계단에 불이 켜지는 게 보였다. 건율은 곧장 반대 방향으로 뛰었다. 제가 왔던 로비 쪽으로, 있는 힘껏 내달렸다.

공부를 해야 했다. 그래야 장학금을 받고, 그래야 피아노를 계속 칠 수 있었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었다. 며칠이나 연습도 공부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어제 하루, 결석까지 하지 않았던가. 교수님께 가 봐야 했다. 그간 한 번도 장학금을 놓치지 않고 다녔으니까, 어쩌면 지각으로라도 바꿔 주실지 모른다. 아니, 그러지 않으셔도 말이라도 한 번 꺼내 봐야 했다.

복도를 달리다 몸이 휘청, 흔들리며 발목이 꺾였다. 넘어질 뻔했으나 벽을 붙잡고 중심을 잡았다. 건율은 숨을 고르며 후들거리는 무릎에 힘을 주었다.

나 왜 이렇게 병신 같지. 이럴 때가 아닌데,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아파서도 안 되는데. 근데 방금은 왜 그랬지? 왜 이곳으로 온 거지. 미친 새끼, 병신 새끼.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는데.

건율은 절뚝이면서 자학했다. 그래야 마음이라도 편했다. 부모님의 짐을 덜어 드리지는 못할망정 이러고 있으니까, 이러고 있는 자신을 때려 줄 사람도 없으니까 자학이라도 해야 편했다.

나보다 더 힘든 애들도 있는데 내가 뭐라고, 대학도 다니고 있으면서 왜 또 정신을 못 차리고…….

“선배! 한참 찾았잖아요.”

어둑한 비구름이 벌어지듯이 맑은 목소리가 건율의 생각을 찢고 들어섰다. 손목을 붙든 손이 크고 단단했다. 족쇄같이 저를 묶어 둔 손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건율이 젖은 눈으로 손을 내려다보았다. 무섭다. 너무 무서운데, 숨이 막힐 만큼 두려운데, 떨쳐 낼 수도 없었다. 건율은 숨을 꼴딱꼴딱 삼켰다.

“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팔 하나가 더 붙들렸다. 건율은 휘청이며 끌어당겨졌다. 힘이 쭉 빠졌다. 걱정하는 목소리에 무겁게 가라앉았던 생각들이 부스러기가 되어 바닥에 후드득 떨어졌다. 뺨 위로 생각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들이 비가 되어 흘렀다.

비가 뺨에 닿기도 전에 바닥으로 떨어져 동그란 자국을 남겼다. 두세 방울이 대여섯 방울이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울지 말라고 했는데 왜 울어요. 나 마음 약한 거 몰라요?”

아담과 하와는 자신을 만든 신이 두렵지는 않았을까. 저들보다 몇 배는 커다란, 거대한 신이 자신들을 죽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갖지는 않았을까.

최무정이 미소를 띤 얼굴로 건율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그는 잠시 한숨을 쉬더니, 미안한 듯 눈썹을 늘어트리고 머뭇거렸다.

“왜 나 나쁜 사람 만들어요. 싫으면 싫다고 말하지.”

아담과 하와는 어쩌면, 건율처럼 저들에게 숨을 불어넣어 준 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건 아닐까. 그저 흙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던 자신에게 다가온 온기를 놓칠 수 없었던 걸지도 모른다.

이상하고, 바보 같았다. 저를 두렵게 한 것이 최무정인데, 사과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온기를 품은 목소리에 끌어 안겨지는 듯했다. 쿵쿵 뛰던 가슴이 가라앉았다.

건율은 고개를 젓고, 잡히지 않은 손으로 눈물을 꾹꾹 눌러 닦았다. 그럼에도 눈물은 저항 없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아니에요?”

“뭐가…….”

“싫은 거 아니에요?”

주춤거리며 올려다보자 최무정이 고개를 기울였다. 평소 조금 감겨 있던 눈꺼풀이 들려 동그란 동공이 훤히 드러났다. 깔끔하게 정돈된 머리카락이 이마를 살짝 드러내고 있어, 미동 없는 눈썹이 보였다.

그래서 건율은 더 무서웠다.

“너, 너?”

“네? 아뇨. 여기 오는 거 말하는 건데.”

무슨 질문인지 몰라 뱉은 말에, 스스로도 아차 싶었다. 말끔했던 미간에 주름이 졌다. 최무정의 눈동자가 저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제가 싫어요?”

“아니, 그, 아니야.”

말 하나 잘못하면, 그대로 저를 죽일 것만 같았다. 건율은 심장 부근을 주먹으로 두어 대 치면서 시선을 돌렸다. 가슴 중앙이 지끈거리고, 긴 복도가 저를 짓눌러 오는 듯한 답답함에 토악질이 올라올 듯했다.

“나 좋아하잖아요. 그러니까 사귀는 거 아니에요?”

아무도 없는 길에서 최무정을 만나면 그렇게나 든든했었다. 지금도 그랬다. 제게 공포를 심어 주는 게 최무정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가 반갑게 느껴졌다. 저를 지켜 줄 것 같았다.

“……맞아.”

하지만 최무정이 이상하고, 저 또한 이상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최무정에게서 도망쳐야 한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연습실 가실래요? 저희 내일 모레 시험 봐야 하니까.”

“응.”

“자, 그만 울고 가요.”

건율은 최무정이 내민 손을 천천히 붙잡았다. 기다란 복도의 창에 바람이 세차게 불어와 기이한 비명 소리를 냈다. 이곳에 온 이유도 모르는데, 건율은 마냥 최무정의 손을 잡고 그 뒤를 따랐다.

“아, 과제 발표도 내일이네. 오늘 저희 집 가서 주무시고 가실래요?”

“……어.”

“할 게 많네요.”

바람은 가을에 저며 들어, 차고 날카로웠다. 익숙했을 바람이 낯설다. 건율은 최무정의 걸음에 맞추며 단단한 복도 바닥이, 네모난 창과 그를 감싸는 창틀이 다른 세상의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제가 사라져도 이상할 게 없을지도 모른다. 제게 선택권이 있는 것처럼, 최무정을 받아들여도 실상 달라질 것 없는 것처럼.

* * *

“잠, 깐……!”

무정은 연습실에 들어서자마자 건율을 흰 벽에 밀어붙였다. 건율이 아파 칭얼거리기도 전에 입술이 맞닿았다. 건율이 주먹으로 어깨를 세게, 아주 세게 몇 번을 내리쳤다. 최무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발버둥치는 제 연인의 입술을 삼키고 혀를 밀어 넣었다. 민감한 입천장을 혀끝으로 비벼 대면서 허리를 억세게 끌어안자, 가는 허리가 경련하는 게 느껴졌다.

“으, 흐으……으!”

연습실 구석, CCTV를 보며 안절부절못하던 건율은 결국 눈을 질끈 감으며 발을 힘차게 짓밟았다.

“아! 아야, 선배!”

“여, 여기 CCTV 있, 거든? 하지 마.”

“떡만 안 치면 되지, 뭔 상관이에요.”

“내일이 시험이야, 놔.”

“선배 성적 좋으면서……. 그렇게까지 안 해도 과탑 먹을 걸요.”

꾹꾹 밀어내는 손이 조금도 위협적이지 않다. 최무정은 끈질기게 달라붙어 건율의 귓바퀴를 야금야금 깨물었다. 하얗고 말랑말랑한 건율의 귀가 최무정의 눈에는 꽤 신기했다. 뼈가 얇아서 그런지, 귀도 부드럽고 연했다. 세게 짓이기면 그대로 뜯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야, 나 공부 못 해…. 으, 그만 좀…….”

“알아요, 선배 멍청한 건.”

“흐으, 으……. 흐아…….”

더운 숨이 귀 안쪽을 간지럽힐 때마다 소름이 돋는지, 건율이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곤 저보다 한참 작은 손으로 묵직한 최무정의 팔뚝을 붙잡고 끙끙 앓는 소리를 내었다. 더불어 그의 시선이 CCTV 쪽을 향하고 있음을 최무정은 모르지 않았다.

애초에 빌릴 때부터 모두 확인하고 CCTV 내용을 삭제하기로 했지만, 건율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건율이 집중할 수 있도록 주변을 제거하는 것보다, 건율 스스로가 주변을 잊고 제게 온전히 안기기를 바랐다.

그때, 끙끙대며 버티던 건율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끌어안은 허리에서 힘이 빠짐과 동시에, 건율이 털썩 앉아 버렸다.

“이런.”

“진짜…….”

쪼그려 앉은 건율이 얼굴을 빨갛게 붉힌 채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최무정은 마주 앉아 주었다. 건율이 무릎에 손을 올린 채로 고개를 들었다. 저를 바라보는 눈이 두려움에 흔들리고 있었다.

“이런 거 밖에서, 안 하면 안 돼?”

“왜요. 다른 사람들은 다 하는데.”

“그으…건, 다른 사람들이고, 난 싫어.”

“왜 싫어요? 제가 부끄러워요?”

“그런 문제가 아니야.”

어제도 종일 빨아 댄 탓인지 건율의 입술도 벌겋게 부어선 꽤나 음란해 보였다. 뼈대도 얇고 마르면서, 나름 키도 크고 어깨도 적당해 사람이 비루해 보이지 않았다.

최무정은 천천히 건율을 위아래로 훑었다. 셔츠를 넉넉하게 입는 편이라,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 안쪽 쇄골이 훤히 보였다. 뻘건 울혈이 다닥다닥 달려 있다는 건 알고 있을까.

최무정은 턱을 괴고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그럼 무슨 문젠데요?”

“이런 건 원래 밖에서 하는 거 아니야.”

“여기 밖 아닌데.”

“그런 뜻 아닌 거 알잖아…….”

뺨에 홍조가 올라온 연인은 사랑스러운 얼굴로 눈을 돌렸다. 최무정은 건율이 제 사랑보다 덜, 아주 많이 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용서해 주기로 했다. 본래 더 좋아하는 사람이 질 수밖에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알았어요. 그럼 집에 가서 해요.”

“또…… 너네 집에 가?”

“오늘 같이 자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아니면, 우리 집이 싫어요?”

건율은 손가락으로 무릎을 두드리며 안절부절 못하는 티를 냈다. 최무정은 인내심 있게 기다려주었다. 그가 얼마나 자제하고 인내하는지, 그 노력을 알면 서건율은 분명 깜짝 놀랄 것이다.

“싫어. 너네 집 기분 나빠.”

“이사 갈래요? 선배가 골라요.”

“……넌.”

자연스런 물음에 건율이 경악한 듯 입술을 벌렸다가, 겨우 말을 뱉었다. 그나마도 한 음절로 끝났다. 최무정은 저절로 웃음이 나오려는 걸 꾹 참았다. 아주 작은 표현에도 이렇게 질색팔색하며 놀라면 어떡하지. 아직 해 주고 싶은 게 많은데.

“연습이나 하, 해.”

급히 일어난 건율이 삑사리를 냈다가, 고쳐 말했다. 그는 후다닥 건너편 피아노로 가 자리를 잡았다. 그랜드피아노 너머로 작은 머리가 불쑥 나와 있었다. 불그스름한 얼굴은 누가 보아도 사랑에 빠진 그것이라고, 최무정은 생각했다.

둘은 세 시간 가량의 연습을 끝냈다. 건율은 호흡이 너무 잘 맞는다는 게 수상하다는 듯 최무정을 힐끔거렸지만, 최무정은 시선을 피했다. 과거 그가 연주했던 이 곡을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그는 아마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손가락의 움직임과 작은 호흡 하나하나, 모두 기억할 수 있을 만큼 듣고 또 들었다. 한 번도 연주해 본 적 없는 곡을 그에 맞춰 연주할 수 있던 이유였다.

늦은 밤, 최무정의 차에 오른 건율은 제집으로 가고 싶다고 소심하게 중얼거렸다. 최무정의 귀에는 단 한 글자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피아노의 선율처럼 건율의 목소리가 고막에 하나하나 새겨질 뿐이었다.

당장 처음 만났던 당시의 건율의 목소리의 음율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몰라도, 어떤 표정으로 어떤 행동을 했는지는 알고 있다. 최무정은 운전대를 잡아 돌리며 쫑알거리는 건율의 말에 네네, 하고 답했다.

며칠 전 이 집에 왔던 건율은 사진 방을 꽤나 마음에 들어 했다. 새색시처럼 부끄러움을 타던 애인은 첫날 밤, 꽤나 유혹적으로 다가왔고 제가 준비한 깜짝 선물에 눈물까지 흘려 가며 좋아해 주었다. 최무정은 그 모습에 그간 제가 견뎌 온 시간들이 너무나 아쉬워졌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다가갔을 것을, 하고.

“꼭 들어가야 돼?”

“밖에서 하고 싶어요?”

“……그게! 무슨…!”

“아깐 밖은 싫다면서.”

시도 때도 없이 건율을 엎어 놓고 박고 싶은 걸 얼마나 참았을까! 최무정은 건율이 너무 좋았다. 좋아한다거나, 사랑한다거나 하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감정이었다. 그를 너무나 사랑하고 아끼는 이유로 몸 상태를 봐 가면서 천천히 하고 있을 정도였다.

건율의 숨이 묻은 한곳 한곳, 그의 손이 닿은 모든 것들과 사람들. 그곳에 최무정의 손도 닿았다. 몇 년이고 서건율은 최무정의 시선 안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최무정은 서건율을 따라오기 위해 어릴 때부터 맞지도 않던 피아노 학원에 다녔다.

조금이라도 다가갔다가 놀랄까 봐, 한 발자국 떨어져서 그가 눈치채지 못하게 노력했다. 모두 배려고, 그를 위한 최무정의 마음이었다.

“근데 나 진짜,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무정아.”

“들어가서 얘기해요.”

“어제도 그랬잖아.”

“어제?”

건율이 또 입을 열려는 때에 문을 열어젖혔다. 최무정은 알고 있다. 어차피 저건 애인의 투정일 뿐이라는 것을. 하기 싫다는 거겠지. 사랑하는 사람 둘이서 몸을 맞대고 섞는 짓을, 싫다고 감히 제게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건율도 한 번 밀어 넣고 나면 좋아서 조여 댔으니까, 최무정은 걱정하지 않았다. 그도 저도 서로를 사랑하는데 무슨 이유가 더 필요하겠는가.

하지만 최무정은 모르는 것이 많았다. 그는 자신이 무식하다는 걸 모르지만, 그는 무식한 남자였다. 모든 기억이 일렬로 이어지지 않고 있음에도 최무정은 자신이 믿는 것만 보았다. 들리지 않는 것은 그대로 두었고 들리는 것만을 제 것으로 삼았다. 편향된 기억과 메모리가 그를 무식하게 만들었다.

무식한 남자는 제 애인을 곧장 침실로 끌고 갔다. 애인이 버둥거리며 앓는 소리를 냈지만, 그게 들릴 리가 없다. 겨우 신발만 벗은 서건율은 준비된 먹이처럼 발갛게 익어 있었다. 사랑스러운 연인이 더 무어라 저를 유혹하기 전에, 최무정은 먼저 움직이기로 했다.

손목의 볼록한 뼈가 만져진다. 복숭아뼈라는 명칭답게, 건율의 것은 둥글고 적당히 단단했다. 발목은 한 손에 쥐고도 남을 만큼 얇았다. 최무정은 건율의 마른 팔뚝을 쥐어 침대에 짓눌렀다. 미간을 찌푸리며 앙큼하게도 반항하는 애인의 입술을 한 번에 삼켜 버리자, 얼마 가지 않아 손목에서 힘이 빠졌다.

그에 신이 나 최무정은 건율의 혀를 감아 힘차게 빨았다. 목구멍까지 혀를 밀어 넣고 손을 바쁘게 움직였다. 건율이 정신없이 제게 홀려 있는 사이, 상의 단추를 풀어 젖히고, 가는 팔을 쓸어내렸다. 갈비뼈부터 빗장뼈까지, 꾹꾹 손에 힘을 줘 진득하게 훑어 내리자 연인이 꿈틀거렸다.

“선배…….”

“하아, 흐!”

최무정은 키스에 서투른 건율이 귀엽다고 생각했다. 저 또한 그 외에는 경험이 없지만, 키스할 때 코로 숨을 쉬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건율을 처음 본 날부터 지금까지, 최무정은 매일같이 그를 상상하며 자위했다. 어떻게 그를 삼킬지, 조금만 힘을 주면 짓뭉개질 듯한 연약한 그의 음부에 좆을 어떻게 찔러 넣을지.

건율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입을 떼어 주는 순간에만 벌겋게 물들어서는 숨을 삼켰다. 그리고 또 제게 숨을 빼앗기며 끄응, 하고 앓는 소리를 뱉었다. 최무정은 그럴 때마다 전율에 휩싸였다.

강한 자극을 받은 것도 아닌데, 곧바로 쌀 것처럼 아래가 크게 부풀어 올랐다. 그는 성급하게 손을 놀려 버클을 내리고, 잔뜩 솟아 속옷이 차마 담지 못한 성기를 빼냈다. 벌써 축축하게 젖어 쿠퍼액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하아, 하, 처, 천천히……. 좀, 제발……. 내일, 내일 시험이니까…….”

“알아요, 그래서 어제도……. 흣, 아, 선배, 나 나올 것 같은, 데.”

핏줄이 잔뜩 불거져 울퉁불퉁한 살기둥이 금방이라도 사정할 듯 잔뜩 부풀어 있었다. 아래에 깔린 건율이 심호흡을 하다 그걸 발견하곤 화들짝 놀랐다. 그러곤 손등으로 제 입가를 가리며 경악한 눈동자로 내려다보았다.

“그, 그거 왜, 벌써…….”

“선배 볼 때마다 맨날, 으……. 하아, 하…….”

오늘도 시험이 끝나고, 문자를 받은 건율은 상당히 위축되어 있었다. 바보같이 귀여운 내 연인. 최무정은 그를 몸으로 위로해 주고 싶었다. 번들거리는 건율의 아랫입술을 혀로 핥으며 눈을 맞추자 건율이 질린 눈동자로 시선을 피했다.

“나, 선배 보기만 해도 서요. 몰랐어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내가 그래서 어제……. 화장실로 부른 거예요. 강의 도중에 선배 생각하다가 섰거든.”

최무정은 장난스레 웃으며 건율의 두 손목을 한 손으로 잡아 내렸다. 허벅지 사이로 당기자 발갛게 물들었던 건율의 뺨이 희게 질렸다. 최무정은 그를 무시하고 하얗고 긴 손가락으로 성기를 붙잡게 하니 진짜, 당장이라도 쏟아 낼 것 같아서 숨이 턱 막혔다.

민감한 귀두에 닿은 손가락이 적당히 굵고 단단해 억지로 문지를 때마다 눈앞이 하얗게 점멸했다. 최무정은 건율의 손 위에 제 손을 겹치고, 위아래로 흔들어 댔다. 핏줄이 맥동하는 기둥을 두 손으로도 다 잡지 못한 건율이 눈을 꼭, 감았다.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손바닥, 그리고 오랜 시간 피아노를 연주하며 단단해진 그 끝. 모든 것이 자극적이었다. 손바닥은 건율의 내부처럼 부드럽게 성기를 감싸 오고 뼈마디 하나하나에 허리께가 자꾸만 움직였다. 최무정은 저도 모르게 허리를 흔들며 건율의 손으로 자위를 하다, 결국 건율의 손바닥에 사정했다. 울컥 대며 희멀건 정액이 진하게 쏟아지자 건율의 손가락이 움찔거렸다.

맑고 여린 살갗 위에 더럽게 쏟아지는 체액을 보며 최무정은 다시 발기했다. 아니, 애초에 건율과 있을 적에는 가라앉지를 않았다. 제 액체로 더럽혀지는 피부나 손목을 비틀며 도망가려는 것까지 모든 것이 그에겐 자극으로 다가왔다. 간질거리는 낯선 행복이 심장 부근을 차지했다.

최무정은 열기를 띤 눈으로 무어라 말을 이어 가는 건율을 올려다보았다.

“그니까, 이런 것 좀……. 싫다니, 너 내 말 듣고 있어?”

“선배……. 나 죽을 거 같아요.”

“…왜, 왜?”

“나 오늘은 넣으면 안 돼요? 응?”

어제도 허벅지로 참았다. 삽입을 참는 대신 억지로 펠라도 시켰다. 자는 동안 펠라를 한 건 비밀로 하고, 꼭 받아 보고 싶다고 말해서 받아 냈다.

그래서 최무정은 무식했다. 서건율은 그걸 모르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제게 선택권이 없음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도 건율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최무정은 그에게 부탁하듯 말했지만.

“어제처럼 좆도 빨아 주고, 넣게도 해 줘요. 네? 아까 연습실에서도 참았잖아요. 차에서도 참게 했잖아요.”

“그건, 참…아야지. 네가…….”

“전 하고 싶었는데, 내가 선배 위해서 참은 건데? 또 저만 나쁜 사람이죠.”

최무정은 한숨을 푹 쉬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여전히 정액을 처리하지 못해 찝찝한 표정의 건율에게로 다가갔다. 그를 일으켜 앉히고, 잔뜩 핏줄이 불거진 성기를 뺨에 비볐다. 그러자 건율이 표정을 잔뜩 구겼다.

“빨아 주세요.”

“방, 금 내 손으로 했는데…….”

“그거랑 달라요. 그냥, 잡고 빨아 주세요.”

울듯이 일그러진 얼굴에 점점 더 흥분이 격양되었다. 이럴 때면 엎어 놓고 풀지도 않은 구멍에 미친 듯이 박고 싶어졌다. 그러나 최무정은 스스로 절제했다. 그는 자신이 참을 성 있고 배려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불쾌함이 역력하게 드러나는 얼굴로, 건율은 최무정의 좆 뿌리를 두 손으로 감쌌다. 짐승의 것처럼 두껍고 핏줄이 징그럽게 튀어나온 물건은 잔뜩 젖어 있었다. 두근두근 핏줄이 고동치며 매끄러운 손바닥에 흥분해 쿠퍼액이 손가락 위로 흘러내렸다.

“네, 그렇게 잡고 빨아요.”

건율이 한 번도 포르노를 본 적이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제대로 된 TV나 컴퓨터도 없는 데다가, 핸드폰도 늘 중고로 장만하곤 했고, 요금 탓인지 전화와 문자 외에는 쓰는 걸 본 적이 없었으니까. 막 성에 눈을 뜰 나이에는 이미 건율의 옆에 형이 있었다.

그래서 건율은 어떻게 빨아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듯, 한참 입맛을 다시다가 혀를 내밀었다. 그게 꼭 커다란 사탕을 어떻게 빨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 같아서 당장이라도 찔러 넣고 싶은 심정을 참아야 했다. 말랑한 살덩어리가 귀두를 입에 물었다. 타액과 쿠퍼액이 얽혀 젖은 소리가 났다. 건율은 선단을 천천히 훑으며 시선을 위로 올렸다.

“이…어케?”

“네, 그렇…게.”

귀두만 겨우 물고서 쪽쪽 소리를 내는 걸 탓하기엔, 건율이 백지장같이 순진한 얼굴로 열심이었다. 손바닥에 묻은 정액을 떼어 내지도 못하고 최무정의 것을 쥔 채로 열심히 귀두와 그 주변을 빨았다. 최무정은 한숨을 쉬며 결국 건율의 뒷머리를 잡고 천천히 깊게 밀어 넣었다. 처음엔 가만히 입을 벌리던 건율은 어느 순간부터 몸을 뒤로 물리고자 했다. 그러나 그걸 봐줄 최무정이 아니었다.

단단한 귀두로 목젖까지 건드리며 느리고 강하게 처박아 대자, 삽시간에 건율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었다. 건율의 뺨에 눈물이 뚝뚝 떨어질 때마다 최무정은 마구 뛰어 대는 심장 소리에 귀가 얼얼했다.

쿵, 쿵, 쿵. 꼭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 이 소리를 건율도 들을 수 있을까. 들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아예 귀가 멀어서 제 심장소리만 들을 수 있게 되어도 좋을 것 같다. 최무정은 건율의 목덜미를 쓸어내리며 움직임을 멈췄다.

엄지로 말랑한 귓가를 문지르자 건율이 간지럽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성기를 입 안 가득 담고서, 눈동자를 찌푸리며 싫다고 칭얼거렸다. 최무정은 말랑한 귓바퀴를 주물럭거리다 안쪽을 검지로 툭 건드렸다. 최무정의 눈동자가 시뻘겋게 물들었다.

그는 여기에 사정하면, 건율의 귀가 망가지진 않을까 하며 고민했다. 아예 들리지 않게 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별 이상 없을까. 싼 채로 며칠을 방치해야 할까.

“우으, 흐……응!”

잠시 정신 팔린 사이 건율이 고개를 뒤로 젖히려 했다. 최무정은 곧바로 건율의 목덜미를 받치고 그에게 죽을 먹였던 것처럼 성기를 부드럽게 밀어 먹여 주었다. 아까보다 조금 더 깊게 들어가 건율의 눈동자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조금만, 조금만요.”

“흐으, 흐, 우으…….”

끔찍이도 괴로워하는 건율의 머리채를 붙잡고, 최무정은 몇 번을 더 허릿짓을 했다. 매끈하고 질척한 입 안쪽은 무척 부드럽고 따뜻했다. 건율의 속마음처럼, 포근하게 감싸 주었다. 최무정은 제 허벅지를 붙잡고 떨기 시작한 건율을 내려다보았다.

술에 취한 듯 눈앞이 몽롱하게 흐트러졌다. 진작 이럴걸, 진작…….

“우으, 읍, 흑!”

형을 좋아할 때도 그냥, 내 마음대로 할걸. 건율 형도 날 좋아하는데.

“컥, 커헉, 큭, 으우!”

그래도 이렇게라도 이어졌으니까 우리는 운명이지.

“그죠, 선배?”

“흐, 우으, ……흑, 끄윽…….”

내려다보니 어느새 건율의 입가에서 정액이 질질 흘러내리고 있었다. 턱을 세게 붙잡은 채로 욱여넣었는지, 건율의 양 볼이 새빨갰다. 최무정은 눈을 두어 번 깜빡이다가 재빨리 무릎을 굽혀 앉았다.

“…괜찮아요?”

“커헉, 헉, 우윽……. 흑, 흐윽, 흑…….”

“너무 부었다. 어쩌지.”

급히 성기를 빼내려다 정액이 튀어 얼굴이 엉망이 됐다. 최무정은 급한 대로 제 티셔츠로 건율의 뺨을 몇 번을 닦아 주었다. 그래도 정액이 제대로 닦이지 않았다. 건율은 눈과 입술이 시뻘게진 채로 뺨에 묻은 희멀건 액체를 닦아 내고 있었다. 최무정은 걱정하던 것도 잊고 멍하니 건율의 얼굴을 내려다보다가 입술을 양옆으로 찢으며 웃었다.

“선배 되게 잘 어울린다.”

“켁, 큽……. 뭐, 뭐?”

“내 정액이랑 잘 어울린다고요.”

흘러내린 앞머리를 뒤로 넘겨 주자, 동그랗고 예쁜 이마가 드러났다. 그때 형이 선배를 갖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형이 없어서 다행이다.

“그게 무슨 소리- 아!”

“저 넣을래요.”

“푸, 풀고….”

아직도 캑캑대며 괴로워하는 건율을 그대로 뒤집어 엎어 놓자, 나비가 핀에 꽂혀 날개를 버둥거리듯 건율이 몸부림을 쳤다. 견갑골이 고스란히 튀어나와 버둥거리는 꼴이 훤히 보였다. 최무정은 곧바로 동그란 둔부를 잡아 벌렸다. 어제 밤 손가락으로 풀어 주었던 구멍이 훤히 보였다. 연한 색의 구멍은 그렇게 쑤셔 줬는데도 다시 예쁘게 오므리고 있었다. 풀어 주기에는 당장이 너무 급한데, 첫날처럼 아래가 찢어지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꼭…… 넣어야 돼?”

“싫어요? ……싫어?”

“아, 아파서…… 싫은데…….”

근데 이 중요한 찰나에, 건율이 분위기를 깼다. 달아올랐던 방 안의 공기가 삽시간에 서늘해졌다. 최무정은 건율을 내려다보며 말없이 그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10초, 20초. 그리고 30초가 흘렀다. 째깍이던 시계 초침이 30번 울렸을 때 결국 건율이 입을 열었다.

“안 아프게…… 해.”

그제야 최무정은 활짝 웃었다. 어차피 그도 하고 싶었으면서, 부끄러워서 말 못하는 걸 다 안다. 최무정은 광대를 발갛게 물들이고 답했다.

“네.”

최무정은 잔뜩 흥에 겨운 눈으로 침대 옆 탁자에서 젤을 꺼내 들었다. 바른 부위가 홧홧해진다는 젤이니, 오늘은 건율도 즐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건율의 배 아래로 베개를 집어넣어 다리를 벌리자, 희멀건 마네킹처럼 보였다. 최무정은 훤히 드러난 음문 위로 젤을 잔뜩 뿌리고 다리를 모으며 움찔거리는 건율을 빤히 쳐다보았다.

“가만히 있어야 안 아프게 하죠.”

“차가, 워서 그래…….”

“참아요.”

자꾸만 좁히려 하는 말랑한 허벅지를 억세게 잡아 벌렸다. 그러자 건율은 귀엽게 고개를 돌려 이불에 코를 처박았다. 귀까지 새빨개진 것이 보이자 웃음이 났다.

최무정은 상체를 숙여 건율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마른 뼈대 위에 여린 살결이 보드라웠다. 힘 있게 빨아들이자 건율이 움찔거리며 최무정의 정수리를 꾸욱, 눌렀다.

“왜요.”

“가, 간지러워.”

“그냥?”

“……몰, 흐, 몰라.”

목덜미가 발갛게 달아오른 것이 보이는데,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하는 연인이 사랑스럽다. 최무정은 건율의 커다란 티셔츠를 단번에 벗기고, 두 손으로 갈비뼈 하나하나를 매만지듯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꼭 건반과도 같았다. 건드릴 때마다 간드러지는 신음소리를 흘리며 나신이 고스란히 드러난 마른 몸의 굴곡이 그랬다. 최무정은 느긋하게 건율을 쓸어내리다가, 문득 고개를 돌린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작은 머리를 한 손에 움켜쥐고, 헤집듯이 매만지며 고개를 제게 바로 돌렸다. 빨갛게 물든 눈가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

“하, 하지 마.”

최무정은 저를 밀어내는 손가락에 입을 맞추고, 건반을 두드리던 그 끝을 빨아올렸다. 천천히 손등에서 손목, 부드럽게 팔꿈치로 이어진 선을 따라 혀를 굴리자 건율이 바들바들 떨었다.

할 수만 있다면 이 팔을, 이 손가락을 온통 부러트려 아무것도 못하게 만들고 싶다. 건율이 매일 같이 울고만 있어도 부러져 감각이 사라진 손가락을 물고 빨고 싶었다.

이토록 원했던 상대가 있었던가. 아니, 살면서 최무정이 제 눈에 담았던 사람이 있었던가. 허나 그것이 중요할까. 지금 제 아래서, 거미줄에 걸린 나비처럼 버둥대는 건율을 손에 넣었다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닌가.

“흐, 아으, 기, 기분…… 이상, 해….”

최무정은 벌어진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고 이곳저곳에 새빨간 울혈을 남겼다. 벌써 살짝 흐릿해진 이전의 흔적을 물어뜯듯이 빨아들이고, 이로 짓씹어대자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아래로 내려 축축하게 젖은 좁은 입구를 열어젖혔다. 검지를 단번에 뿌리까지 밀어 넣자, 아래가 경련하며 건율의 허리가 바짝 긴장하는 것이 느껴졌다.

최무정은 건율의 심장 부근에 귀를 대고, 추삽질을 하듯 손가락을 굽혀 안쪽을 거칠게 긁어 내렸다.

“아, 아으, 응, 아!”

확실히 이전보다 음탕하게 반응하는 것이, 건율은 이쪽에 소질이 있는 것 같았다. 제가 아니었더라도 이런 반응을 보였을까. 최유헌, 그놈이나 다른 새끼라던가.

“아윽, 아! 아, 아프, 흐윽!”

건율이 허리를 펄떡이며 새된 비명을 질렀다. 최무정은 저도 모르게 손가락 두 개를 더 쑤셔 박았음을 알고 조금 미안해 졌다.

“미안해요. 선배가 너무 야하게 굴어서, 화가 나서…….”

“무, 슨… 말, 하으, 흑! 아, 아!”

최무정은 이왕 쑤셔 넣은 김에 세 손가락을 깊게 밀어 넣었다가, 빼내기를 반복했다. 조금 전 잔뜩 적시게 한 젤 뿐만 아니라, 안쪽에서도 건율의 애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찔꺽, 찔꺽.

음탕한 소리가 적나라하게 방안을 채웠다. 최무정은 내벽을 꾹꾹 짓누르며 안쪽을 확장시키고, 잘게 경련하는 허벅지를 더욱 넓게 벌려 손을 재빠르게 움직였다.

“흐아, 아! 응, 앗, 아!”

초점을 잃은 눈동자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최무정은 건율의 동그랗고 통통한 엉덩이를 주물럭거리며 그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제게로 당겼다. 동시에 손가락을 퍽, 소리 나도록 억세게 쑤셔 박으니 건율의 성기가 바짝 솟아서 쿠퍼액을 질질 흘려댔다.

“응, 흐으, 아!”

도망가려는 듯 몸을 뒤로 물리려는 행동은 자극밖에 되지 않았다. 허리를 흔들며 물러날 때마다, 최무정은 건율의 허리를 잡아당겨 안쪽을 힘껏 쳐올렸다.

구멍이 어느 정도 풀려 가자 그는 손가락을 한 번에 뽑아냈다. 건율이 입술을 짓누르며 참다 흘리는 신음소리에 사정할 것만 같았다. 당장 쑤셔 박고 싶었지만, 최무정은 다정한 연인이므로 참아야 했다. 그는 벌겋게 부풀어 오른 좆을 애써 무시해야 했다.

“처, 천천…. 흐, 아…!”

붉은 점막이 딸려 올라왔다가 다시 오므라드는 것이 보였다. 최무정은 팔을 뻗는 건율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젤의 입구를 좁은 음문에 푹, 강하게 쑤셔 넣었다. 건율의 눈꺼풀이 크게 열리더니, 입술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뭐, 뭐…. 뭐야……. 흐, 하으, 싫, 읏……. 차, 가워…… 아…….”

젤을 온통 쥐어 짜 안으로 밀어 넣자 건율이 몸을 배배 꼬며 앓기 시작했다. 젤의 성분으로 인해 안쪽이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는지 차갑다고 난리였다.

“배, 흐윽, 배 아파, 차, 가워……. 흐, 싫, 으읏…….”

“그만 좀 칭얼대요, 선배.”

“끅! 흐으…….”

동그란 엉덩이를 아프지 않게 내리치자 허벅지가 파르르 떨리고, 구멍이 움찔거렸다. 길쭉한 발가락이 안쪽으로 움츠러들었다가 기지개를 켜듯 쭉 피는 걸 보는 재미도 있었다. 최무정은 젤이 울컥대며 구멍 밖으로 흐르고 나서야 멈췄다.

“기분, 기분 나빠.”

“안 아프게 해 달라면서.”

“흐으…….”

잠자리에서의 서건율은 평소보다 칭얼거림이 많았다. 최대한 감정을 억제하려 구는 모습을 보다 이런 모습을 보니 또 새롭다. 최무정은 이제 손가락 세 개를 한 번에 욱여넣어 쿨쩍쿨쩍, 하고 젤이 왈칵 대며 흐르도록 거칠게 안쪽을 긁어 댔다.

“으, 흐으, 너, 너 손가락……. 두, 꺼워.”

“좆보단 작잖아요.”

“뭐, 뭐? 조… 조……옺?”

“할 거 다 해 놓고 순진하게 굴기는.”

최무정은 혀를 차며 내벽을 사정없이 문질러 안쪽을 넓혀 갔다. 가득 찬 젤 탓에 그곳은 스스로 젖은 양 찔꺽이며 음탕한 소리를 냈다. 최무정은 좁은 곳을 파헤쳐 넓게 확장시키듯 몇 번이고 추삽질을 해 대다가 건율의 성기도 함께 잡고 흔들었다. 그러자 엎어져 있던 건율이 몇 번 저항하다가, 침대 위로 정액을 뱉기도 했다.

그리고 넉넉하다 생각됐을 즈음엔, 볼록 튀어나온 부위를 몇 번이나 찔려 동공이 풀린 건율이 보였다. 아래에서는 젤인지 액인지, 음부물이 질질 흘렀고 성기는 억지로 발기돼 바들바들 경련하고 있었다. 건율은 눈물에 침에, 엉망으로 울고 있었다.

최무정은 기가 찼다.

“뭐 했다고 벌써 지쳐요?”

“…….”

“참고 쑤셔 줬더니 자기 혼자 질질 싸 대고, 진짜.”

훌쩍이는 걸 무시하고 면박을 주자, 더 서럽게 끅끅거렸다. 최무정은 쑤시는 동안 아무런 자극 없이 사정한 제 불쌍한 좆을 잡아 구멍에 귀두를 맞댔다. 그러자 연한 색 음문이 움찔거렸다. 끈적한 젤 덕분인지 그곳이 뻐끔거릴 때마다 성기를 잡아 빨아들일 듯이 달라붙어 왔다.

“으, 흐으……끅.”

킁, 하고 눈물 콧물을 참아 내려는 게 조금 기특했다. 최무정은 늘어진 건율의 허리를 들어 세게 붙잡았다. 발갛게 물든 구멍에 천천히 좆을 맞춰 밀어 넣자, 확실히 첫날과는 다르게 음부가 성기를 수월하게 머금었다.

“왜 울어요.”

“싫, 싫어서, 앗, ……흐, 앗!”

“질질 싸면서 뭐가 싫어.”

유독 통통한 둔부를 힘껏 내리치며 좆을 단번에 찔러 박자, 힘없이 늘어졌던 몸에 다시 생기가 돌았다. 손가락이 아닌 묵직한 성기가 내벽을 빠듯하게 들어오자 정숙하게 꼭 닫혀 있었던 내벽이 수축하며 요동하기 시작했다.

“너, 응! 아, 너무……. 흑, 나, 빠……. 흐, 앗, 앗! 으읏, 응!”

민감한 내벽이 성기를 꽉 물고 조여 대자 숨을 몰아쉬는 최무정의 시야도 흐려져 갔다. 저를 원하는 듯 빨아들이는 연한 살점이 터질 만큼, 최무정은 엉망으로 구멍을 쑤셔 박았다. 축축하게 속살을 거칠게 긁어 올리며 아랫배가 울리도록 거세게 위에서 아래로 찧어 댔다.

“흐, 흐으, 아! 아윽, 응, 아! 빠, 빨, 흐윽! 빨라, 흐윽, 앗!”

땀에 젖은 살갗이 부딪쳐 철썩이는 소리가 커다랗게 울렸다. 최무정은 가는 허리를 붙잡고 뿌리 끝까지 꿰뚫었다. 건율의 아랫배가 터질 듯이 부풀었다가, 줄어들기를 반복했다.

최무정은 아예 그의 등 뒤에 달라붙어 짐승의 교미처럼 기둥에 핏줄을 세우고 강하게 박았다. 특히, 건율의 민감한 부위를 힘 있게 긁어 올리며 막다른 곳까지 귀두가 닿도록 움직였다. 그럴 때마다 건율은 아래로 물을 질질 흘리면서, 성기를 바짝 세우고 시트를 쥐어뜯었다.

“아으, 흑, 흐으, 아! 응, 아, 아! 히윽, 끅, 아! 무, 무정, 흐으, 아아……. 흑!”

몸 안에 들어갈 수나 있을까 싶었던 커다란 기둥이 음부를 꿰뚫을 때마다, 건율은 있는 힘껏 도망치려 발버둥을 쳤다. 하나 그것을 그대로 둘 최무정이 아니었다. 최무정은 건율의 머리채를 쥐어 목이 꺾이도록 당겼다.

최무정은 강하게 수축하는 내벽에 입꼬리를 올리곤, 혀를 내밀어 마른 입술을 축였다. 이성을 잃은 듯 흐릿해진 동공이 허공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전신에 힘을 줘 숨을 쉴 새도 없이 건율을 몰아치듯 박아 댔다.

쾌감을 끌어낼 때마다 건율이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이, 제 것으로 인해 흥분하는 것이 미친 듯이 좋았다. 최무정은 그의 등에 달라붙어 마른 몸을 끌어안고 허릿짓만 거칠게 해 댔다. 성기를 강하게 뽑아내고, 오물거리며 빨아들이는 음부를 범했다.

“흐으, 흑, 무저, 아아, 흐윽! 아! 아으, 흑! 아! 그, 그만, 앗, 아, 아!”

“선배……. 선배.”

건율을 안고 있을 때면 취한 것처럼, 혹은 마약을 한 것처럼 제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흐느끼다가 정신없이 신음을 뱉는 서건율이 아프다고 소리 지를 때까지 세게 끌어안고, 엉엉 우는 얼굴을 뒤에서 부드럽게 닦아 주었다.

신음을 참느라 짓씹어 댄 건율의 입술은 엉망으로 찢어져 있었고, 눈가와 양 뺨은 누군가에게 맞은 것처럼 벌겋게 부었다. 그걸 보아도 화가 나거나,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저 그에게서 이런 감정을 꺼낸 것이 자신이라는 게, 미친 듯이 좋았다.

충족감이 안쪽부터 빠듯하게 차고 올라왔다. 아랫배가 욱신거리며 쾌락으로 숨을 쉴 수도 없었다. 최무정의 애인 또한 마찬가지였다. 사랑하고, 저를 사랑하는 사람도 밭은 숨은 내뱉으며 울기 바빴다. 내지르는 신음을 고막에 각인되도록 선명하게 듣고, 또 새겼다. 부드러운 둔부를 거칠고 짙은 손으로 움켜쥐고, 박을 때마다 쿠퍼액과 음부물이 울컥 대며 시트를 적셨다.

최무정은 막다른 곳까지 귀두를 박아 넣고 고양감에 바들거리는 몸을 뒤집었다. 새된 신음이 내질러지고 동시에 그 안에 사정하자 목을 뒤로 꺾은 건율도 함께 희멀건 정액을 흘렸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최무정은 눈앞의 건율을 탐하기에 바빴다. 도망치는 몸을 붙잡아 얼굴을 맞댄 채로 또다시 내벽을 짓이겼다. 흐물거리는 속살이 단단한 좆에 긴장하며 달라붙었다. 최무정은 정통으로 후려치듯 박으며 건율을 무자비하게 흔들 어댔다.

건율은 그런 최무정을 올려다보며 울기만 했다. 제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쾌락을 느낄 때마다, 자신이 혐오스럽기까지 했다. 내벽을 가득 채운 정액과 젤이 한데 뭉쳐 끈적하게 흘러내렸다. 엉덩이 골까지 주룩, 흘러 시트를 적실 때마다 울고 싶었다.

정면으로 최무정을 보는 것은 괴로웠다. 이 행위가 죽도록 싫은데, 최무정을 보면 마음이 무너졌다. 싫다고 그를 밀어낼 수가 없었다. 그가 들락거릴 때마다 퍼런 핏줄이 불거진 좆이 훤히 보였고, 그게 제 몸에 들어왔다는 사실이 두려워 자꾸만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몸 안의 수분을 온통 토해 내는 것만 같았다. 아래는 홧홧하게 달아올라 간지러워 참을 수 없었고, 그 기분이 싫음에도 튀어나온 혈관이 안쪽을 긁을 때마다 아랫배가 욱신거렸다. 결국, 건율은 팔다리로 최무정을 꽉 끌어안고 받아들여야 했다.

건율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시간이었고, 최무정에게는 천국과도 같았다.

* * *

연주는 나쁘지 않게 끝났다. 교수는 건율에게 ‘네가 웬일로 팀을 짜서 하니?’ 하고 물었다. 건율은 그냥 입꼬리만 살짝 올리고 말았다.

아는 곡이니만큼 실수 없이 끝내기는 했지만, 온몸이 두들겨 맞은 듯 아파 집중하지 못했다. 교수 또한 눈치챘을 것이 뻔했다. 이번 학기에 장학금을 못 받을 수 있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연주 도중에는 순간 울컥하기도 했다. 손가락은 기억하는 대로 움직였으나 머리는 작동하질 못했다.

내가 왜 이러고 있을까, 뭐 하고 있는 걸까.

피아노 건너편, 자꾸만 눈을 맞춰 오는 최무정 때문에 손가락이 벌벌 떨리기도 했다. 잔잔한 해변 같았던 최무정은 해일처럼 거대하고, 토네이도처럼 거칠었다.

“무슨 생각 해요?”

“어, ……배고파서.”

“먹고 싶은 거 생각하던 중이었어요?”

“으응.”

최무정이 어깨를 끌어안았다. 건율은 밀어내지 않고 핸드폰을 내려다보았다.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최무정이 엘리베이터 쪽으로 이끌었다.

“다음 시험까지 시간 좀 있는데, 어디 가실 거예요?”

“도서관 가려고.”

“음……. 그럼 저 잠깐 친구들 보고 와도 될까요?”

“응.”

고개를 바로 끄덕였는데, 최무정이 섭섭한 표정을 했다. 때마침 엘리베이터가 왔고, 둘은 텅 빈 안쪽으로 들어섰다.

“선배는 나 없어도 괜찮아요?”

“……뭐, 잠깐이잖아.”

“난 그 잠깐도 선배 보고 싶은데.”

그래서일까. 한시도 제게서 떨어지지 않는 건. 건율은 어설프게 웃으며 최무정의 품에서 벗어났다.

“너도 친구들이랑 놀고 해야지.”

“너무하네, 진짜.”

없는 말은 못하는 편이라, 건율은 최무정의 눈치를 살짝 보았다. 다행히 크게 화난 것 같지는 않았다. 곧이어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최무정은 입술을 삐쭉거렸다.

“이따 봐요, 그럼.”

“어.”

“아쉬운 척이라도 해 주면 안 돼요?”

“……으응.”

눈을 빙글 돌리다가 어색하게 웃자, 최무정이 포기했다는 듯 됐어요, 하고 반대편 방향으로 걸어 나갔다. 그제야 건율은 한숨을 깊게 내뱉었다. 내내 긴장하던 어깨가 욱신거렸다.

건율은 건물을 나와 벤치에 앉아 마른세수를 했다. 콱 막혔던 속도, 울컥거리던 감정도 모두 쓸려 나간 듯이 시원했다. 가만히 앉아 있으니 선선한 바람이 불어 머리카락이 뺨을 간질였다.

“아…….”

머리 자를 때가 됐구나. 앞머리 몇 가닥이 눈썹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건율은 손끝으로 앞머리를 적당히 정리하며 캠퍼스를 멍하니 둘러보았다. 싱그러운 초록빛 잔디 위를 거니는 학생들이 짐을 한가득 들고 있었다. 시험 기간이라 그런 모양이다.

그들은 전공 서적을 들고 툴툴거리다가, 크게 웃기도 했다. 흡연 구역에서는 학생들이 담배를 피우며 삼삼오오 모여 떠들어 댔다. 찌푸려진 얼굴을 보아하니 공부를 하느라 밤을 새운 듯했다.

평범한 대학생들이다. 학자금 대출을 받거나, 부모님께서 등록금을 보태 준 이들. 전자도 후자도 건율에게는 모두 부러운 대상이었다. 저는 대출은 고사하고 전액 장학금을 받지 못하면 그대로 휴학해야 했으니까. 아니, 어쩌면 퇴학을 결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돌아갈 거라는 보장이 없었으니까.

24년간, 건율은 단 한 번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본 적은 없었다. 제가 더 잘하고, 더 잘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힘든 만큼, 더 나은 길이 있을 거라 믿었다. 언젠가는 인정받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생길 거라고. 그래서 저에게도 행복이 찾아올 거라고…….

근데 어째서, 지금 같이 중요한 시기에 최무정을 만났을까. 일순간 틀어지면 온몸이 망가지도록, 그것도 악의적으로 손을 부러트리는 남자를 어쩌다 옆에 두게 되었을까.

나쁜 아이는 아니었다. 친절하고, 다정하며 세심한 남자였다. 그러나 지금 저에게 관대할 뿐,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일이다. 게다가 원치 않는 성관계를 이어 가야 한다는 게 가장 싫었다. 시험 전 날엔 삽입은 하지 않겠다 해 놓고, 어제도 그렇게.

띠리링, 띠리링.

그때, 건조한 기본 벨 소리가 울렸다. 건율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모르는 번호다. 피싱? 아니면…… 역시, 최무정의 취미 생활일까. 이번에도 변조했을까, 아니면 본인의 목소리일까. 아니, 애초에 다 밝힌 마당에 문자며 전화며, 왜 하는지 도통 이해가 가질 않았다. 저를 괴롭히는 게 재미있나? 제가 두려워하는 걸 보는 게 즐거울까?

건율은 무미건조한 얼굴로 전화를 받았다. 입은 꾹 다물린 채였다.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을 생각이었으니까.

“여보세-.”

- 서건율! 잘 지냈냐?

그 순간, 태양을 가리던 두꺼운 구름이 젖혀지기 시작했다. 뇌리에 꽂히는 뜨거운 햇볕이 선연하게 느껴졌다. 건율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누, 구…….”

- 뭐야, 너 나 까먹었어? 이야, 너무한데?

쿵, 쿵, 쿵.

5년 만에 듣는 목소리였다. 건율은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가, 겨우 말을 뱉었다.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다.

“내가 널 왜 까먹어. …기억하지, 유헌아.”

- 그치? 나 서운할 뻔했다? 우리 귀여운 건율이가 날 잊을 리가 없는데 말야.

“너무 오랜만에 연락한 거 아니야? 번호도 바꾸고. 너무한 건 너야.”

- 그건……. 그으으건! 내가 잘못했다! 미안. 진짜 어쩔 수 없었어.

최무정 때문에 잊고 있었다. 연락이 없던 5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그리워했는데 최무정이 나타나면서 근 한 달간 그에 대한 생각을 하질 못했다. 건율은 콩닥콩닥 뛰는 심장 부근을 주먹으로 꾹꾹 누르며 저도 모르게 활짝 웃었다. 누가 보더라도 사랑에 빠진 얼굴로, 건너편의 목소리를 들었다.

- 내가 가서 얘기해 줄게. 너 오늘 시간 돼?

“어, 어? 오늘? 너 한국 왔어?”

- 국제 전화라고 안 떴잖아. 정신없는 거 보니까……. 아, 시험 기간이구나?

“응. 나 이번 주 내내 시험이야.”

- 그럼 다음 주에 볼까?

건율은 빠르게 머리를 돌렸다. 내일 있는 과목……. 괜찮을 것 같다. 평소에 충분히 공부해 둔 과목이었고, 창작곡 시험이니까 자신 있었다. 고칠 것은 더 없었고, 연주도 눈감고 할 만큼 질리도록 했으니까, 괜찮을 것이다.

장장 5년이다. 캐나다로 유학을 간 그가 연락이 끊긴 시간이. 그리고 그를 그리워하며 밤을 지낸 시간이.

그러나 건율은 준비가 되어 있어도 1분 1초도 버리지 않고 연습에 매진했다는 걸 잊고 있었다. 연습은 아무리 해도 부족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었다. 시험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어 그를 만나러 가는 것이 아니라는 걸, 건율은 인지하지 못했다.

“아니, 내일 시험 교양이야. 오늘 보자.”

- 고딩 때랑 똑같다, 서건율? 공부 존나 안 하는 거.

“나 과탑이거든?”

- 실기로 겨우 합격하더니, 그걸로 과탑한 거 아니고?

“아니야. 아무튼 몇 시에 볼까?”

- 음……. 7시 괜찮아? 내가 네 자취방 근처로 갈게. 술 마시자.

“나 자취하는 건 또 어떻게 알았어?”

- 다 아는 방법이 있지. 암튼 이따가 전화할 테니까, 근처 술집으로 나올 준비나 해.

“알겠어.”

전화가 끊기자마자, 건율을 곧바로 저장했다.

최유헌. 건율이 고등학생 때부터 쭉 짝사랑했던 친구였다. 

* * *  

최무정은 시험 시간 15분 전에 돌아왔다. 건율은 복도 의자에 앉아 노트를 뒤적이다가 최무정을 보고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딱 맞춰 왔네.”

“네. ……근데 선배 왜 이렇게 기분이 좋아요?”

그 말에 뜨끔했다. 건율에 어설프게 웃으며 뺨을 긁었다.

“공부가 잘돼서, 기분이 좋네.”

“전 시험은 꼭 망친 거 같은 얼굴이더니…….”

“아…. 음, 속상하긴 했어. 아파서 집중을 못 해서.”

“저 때문에요?”

옆자리에 앉은 최무정이 빤히 내려다보았다. 아무런 감정도 읽을 수 없는 표정에 건율은 무어라 대답해야 할까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안 한다고 했으면서, 했잖아.”

“선배가 하래서 한 건데.”

“……여튼 아팠어.”

“또 나만 나쁜 사람 만들지. 선배 그 습관 고쳐요. 선배도 좋다고 해서 한 건데…. 그렇게 말하면 제가 나쁜 사람 같잖아요.”

건율의 표정이 굳자, 최무정이 한숨을 푹 쉬며 제 노트를 꺼내 들었다. 최무정의 말이 맞았다. 그는 물어보았고, 건율은 허락했다. 약속을 어긴 건 두 사람 모두에게 책임이 있었다. 건율은 마른 아랫입술을 혀로 축였다가, 최무정의 팔을 붙잡았다.

“미안. 네 탓은 아니야.”

“됐어요.”

“내, 내가 컨디션 신경 쓰고 했어야 했는데 탓해서 미안해.”

“…….”

다시 제게로 돌아온 시선이 조금 누그러져 있었다. 건율은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다신 안 그럴게.”

“진짜죠.”

“응. 네 탓 안 할게. 미안.”

“……알겠어요. 난 그냥 속상해서 그런 거예요. 화난 거 아니고, 선배가 자꾸 그러니까 내가 너무 미안해서…. 근데 또 선배가 자꾸 이러면, 다른 사람이랑도 못 어울릴 거 생각하니까 마음이 아파서 그랬어요. 선배 생각해서 하는 말인 거, 알죠?”

“으응.”

“이해했으면 됐어요. 아, 강의실 열렸네. 들어가요, 선배.”

잠시나마 돌덩이같이 얹혔던 죄책감이 사라졌다. 건율은 미약하게 남아 있는 미안한 마음으로, 최무정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토닥였다. 유헌의 연락 덕분인지, 최무정을 대하는 것도 조금 편해진 것 같다. 그리고 최무정도 무작정 저에게 무어라 하는 게 아니라, 제 생각을 해서 해 주는 말이니 들어 두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건율은 이 시험 뒤에 하나 더 있는 교양 시험을 끝내고 나면 곧장 자취방으로 향할 계획이다. 예쁜 옷은 없지만, 최대한 깨끗하고 깔끔한 옷을 고르고 피곤에 찌든 티가 나지 않도록 말끔히 씻고 나갈 생각이었다.

5년 만에 보는 유헌은 얼마나 더 근사할까. 이제는 마음을 놔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유헌은 제게 조금도 관심 없다는 걸 알면서도 건율은 그런 생각을 했다.

필기시험은 평소에 줄줄 외워 둬서 그런지 빠르게 적고 나올 수 있었다. 건율은 강의실을 나서다 저와 비슷하게 일어난 최무정을 보며 타이밍도 참 너무하다는 생각을 했다.

최무정이 그렇게나 싫은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 혼자 착각하고 있는 것이나 이전의 사고를 생각하면 거리를 두는 것이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이미 그러기엔 멀리 왔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건율은 시험이 끝나면 천천히 멀어질 생각이었다.

“시험 잘 보셨어요?”

“응. 이제 다음 거 준비하게.”

“한 시간쯤 남았는데 여기서 하실 거예요?”

복도 로비에 놓인 테이블은 넓어서, 많은 학생들이 시험 사이사이에 낀 시간을 때우는 곳이기도 했다. 최무정은 다른 곳으로 가고 싶은 눈치였다.

“응. 한 시간이면 금방 가니까.”

“……그래요.”

어째 친구들을 보고 온 뒤부터 최무정은 묘하게 까칠했다. 건율은 그의 눈치를 보면서도, 노트를 펼쳐 공부에 집중했다. 질리도록 외운 부분은 지나가고, 중요한 곳을 몇 번 체크 한 뒤 내일 있을 창작곡 악보도 몇 번 훑어보았다.

“그거 내일 시험 아니에요?”

“어? 응. 좀 봐 두려고.”

“……그래요? 제가 오늘 괴롭힐까 봐 그런 건 아니고?”

그 말에 악보를 넘기던 손이 잠깐 멈췄다. 건율은 악보를 엄지와 검지로 짓이기다가, 고개를 들었다.

“나 오늘 약속 있어서.”

“무슨 약속.”

다시금 차가워진 목소리에도 건율은 꿋꿋하게 답했다.

“친구. 그래서 많이 준비 못 할 거 같아서, 지금 보는 거야.”

“이거 실기잖아요. 연습 안 해요?”

“괜찮아.”

최무정의 말에 괜히 걱정이 치고 올라왔다. 연습하고 갈까? 그럼 시간이 애매한데, 씻고 준비해야 하는데. 머릿속에 잠시 복잡해졌다. 하지만 금세 떨쳐 냈다. 건율은 다른 건 몰라도 실기만큼은 자신 있었다. 무엇보다 최무정 없이 보는 시험은 더욱더.

“난 오늘 집 가서 같이 연습하려고 했는데.”

“나, 그…… 주인아주머니도 뵈어야 하고, 자취방도 들르려고.”

“하……. 선배, 그냥 집 나오면 안 돼요? 어차피 제집에 방도 남고, 넓은데, 들어와요.”

목소리가 상당히 가라앉아 있었다. 건율은 그것도 모른 채 웃으며 답했다.

“아냐, 괜찮아. 이제 공부하자.”

“…….”

건율의 머릿속에는 오직 최유헌, 그 한 사람만이 차지하고 있었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들어오지 못했다. 그래서 최무정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어떤 목소리로 저를 대했는지 조금도 눈치챌 수 없었다.

빠득, 묘한 소리가 들렸으나 건율은 그마저도 무시하고 악보를 넘기며 하나하나 체크 하기 바빴다.

“근데 선배…… 어떤 친구예요?”

시험을 모두 끝내고, 건물을 나오는 도중이었다. 건율은 최유헌에게 온 메시지를 확인하며 답했다.

“고등학교 친구.”

“친구 있어요?”

“응.”

비꼬는 듯한 말투에도 그리 화나지 않았다. 제가 보아도 저는 친구 하나 없을 사람이었다. 최유헌은 그런 저에게 먼저 다가와 주고, 쏘아붙여도 함께 있어 주었다.

그를 생각하니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예전과 같은 감정인지는 저도 알 수 없었다. 이전의 설렘에 의한 기대, 하나뿐인 친구가 한국에 오자마자 연락해 주었다는 것의 기쁨 따위가 섞여 있다는 건 알았다.

“저도 가면 안 돼요?”

“…응?”

그때, 퉁명스러운 최무정의 말에 건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도 모르게 표정이 굳었는지 최무정이 걸음을 멈추곤 못마땅한 얼굴을 했다.

“친구한테 애인 소개시켜 주는 거, 안 돼요?”

“어……. 그, 친구랑 너무 오랜만에 보는 거라서…….”

“나 없이 할 얘기 있어요? 내가 들으면 안 되는?”

톡톡 쏘아붙이는 말에 방금 전까지의 들뜬 마음은 가라앉고, 긴장감이 감돌았다. 건율은 어깨를 굳힌 채로 최무정을 올려다보았다.

지금 가야 하는데, 얘기할 시간이 없는데…….

“이리 와 봐요.”

그사이 건율이 망설이는 걸 눈치챈 최무정이 손목을 잡아당겼다. 건율은 안절부절못하며 학교 정문과 최무정을 번갈아 보았다.

“무, 무정아. 나 지금 가야….”

“오라고요.”

차갑게 굳은 목소리에 입이 꾹 다물렸다. 건율은 시간과 장소를 적어 보내 준 메시지를 보다가 창을 껐다. 5년 동안 기다려 왔고, 또 3년 동안 짝사랑했던 사람과의 약속이었음에도.

최무정은 그대로 아무 말 없이 건율을 억지로 끌어당겼다. 조금 전 나온 건물로 들어가서, 강의실이 없어 학생들이 거의 쓰지 않는 1층 화장실로 들어섰다. 아니나 다를까 서늘한 냄새와 먼지가 살짝 쌓인 세면대가 보였다.

최무정은 조명도 켜지 않고 들어가, 문을 잠갔다. 그리고 시커먼 얼굴로 건율을 첫 번째 칸에 밀어 넣었다.

“선배.”

“……어, 어.”

“고등학교 친구라고 했죠.”

“으응.”

그는 말없이 건율을 내려다보았다. 변기 뚜껑 위에 앉은 건율은 핸드폰을 쥔 채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러자 최무정이 건율의 손에서 핸드폰을 빼앗아 들었다.

“아!”

비밀번호가 걸려 있음에도 최무정은 아무렇지 않게 풀고, 핸드폰을 뒤졌다. 걸리는 건 아무것도 없음에도 건율은 두려움에 심장이 쪼그라드는 듯했다.

머리가 멍했다. 생각해 보면 포핸드 연주는 망쳤고, 내일 있는 시험도 오늘 연습하지 못한다. 성적이 어떻게 나올지 한 치 앞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장학금을 못 받으면 그만둬야 하는데, 그 생각보다 더 최유헌이 보고 싶었고, 그것보다 더 최무정이 무서웠다.

“아……. 씨발.”

그때, 최무정이 욕을 지껄이며 핸드폰을 바닥에 내리꽂았다. 그리고 발로 몇 번이고 밟았다. 우지끈, 액정이 깨지는 소리가 적나라했다.

그런 그가 꼭 저승사자 같다고 건율은 생각했다. 미동 없는 얼굴은 아무런 표정을 짓고 있지 않음에도 두려웠다. 이대로 그의 굵은 팔에 휘감겨 죽을지도 몰랐다.

건율은 최무정을 만난 이후로 자신이 바보가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죽어라 공부하고,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던 제 시절이 사라진 것 같다고. 이러다가 그간의 노력이 모두 무너지는 건 아닐까 싶었다.

“딴생각, 하지 말고.”

“……어, 으응.”

“지금 딴생각 하고 있잖아요.”

“미안.”

침을 꿀꺽 삼켰다. 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최무정은 그대로 손을 뻗어 건율의 목덜미를 쥐었다. 살포시 손을 얹었는데도 숨을 쉴 수 없었다. 고개를 들자 그가 눈을 휘어 웃고 있었다.

“나 지금 존나 꼴리는데, 한 번만 하고 가요.”

“지, 금?”

“안 돼요?”

“……나, 약속….”

“몇 신데.”

“7시….”

일곱 시까지 2시간은 넘게 남아 있었다. 건율은 곧이곧대로 불어 놓고는 후회했다.

“시간 많은데?”

“아, 어…. 준비…해야 하잖아.”

“뭐 얼마나 예쁘게 하고 갈라고.”

낮게 침전된 목소리에 딸꾹질이 났다. 건율은 딸꾹질에 놀라 제 입을 가렸다가, 시선을 내렸다.

“오랜, 만에 보니까…. 끅! 그냥, 그냥….”

“친구, 남자 맞죠.”

“으응.”

침묵이 가라앉았다. 최무정은 말없이 건율의 목덜미를 쓸어내리다가, 그대로 뺨을 쥐었다. 아직 젖살이 살짝 남아 있는 볼은 말랑말랑했다. 무표정할 때는 그리 서늘하고, 무심해 보이던 사람이 벌벌 떨며 딸꾹질을 참고 있었다. 정복감과 동시에 짜증이 치솟았다.

최무정은 건율의 뺨을 툭툭, 검지로 건드렸다.

“나랑 어제 그렇게 해 놓고, 남자 꼬시러 가는 거예요?”

“어, 어? 끅,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근데 친구 만나는데 뭘 그렇게 꾸미고 가…. 애인 두고.”

“미, 미안해. 끅! 난, 난 그냥….”

순식간이었다. 최무정이 갑작스럽게 건율을 뒤집었다. 머리채가 잡히고, 고개가 뒤로 꺾였다. 건율은 급하게 물통을 쥐고 놀라 숨을 헐떡였다. 놀라서인지 딸꾹질이 멈췄다. 목젖 아래로 숨이 막힌 듯 어지러웠다.

“나 지금 풀어 줄 맘 없거든요.”

“무, 무정아. 미안해. 나, 나 진짜 그런 거 아니야.”

“화나서 그런 거 아닌데…. 선배는 왜 맨날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까?”

헐렁한 바지를 아래로 끌어 내리자 곧장 희멀건 두 살덩이가 보였다. 최무정은 좁은 칸이 퍽 불편해, 건율을 더욱 안쪽으로 밀어붙였다. 건율은 말없이 밀려나면서 자연스레 다리가 양옆으로 벌렸다. 허리가 잔뜩 휘어 바들바들 경련하는 것이 눈에도 훤히 보였다.

최무정은 말없이 건율의 아래에 침을 뱉고, 대충 손가락 두 개를 욱여넣어 두어 번 추삽질을 했다.

“윽, 흐으…. 읏, 윽….”

눈물 나게 아팠다. 그간 최무정이 저에게 얼마나 잘해 주려고 노력했는지 알 수 있었다. 오랜 시간을 들여 아래를 풀고, 저를 느끼게 해 준 것은 그의 배려였다. 그랬던 최무정을 화나게 한 건 건율, 자신이었다.

“아, 으윽……. 흑, 아, 파…!”

“조용히 해요. 여기 사람이 안 온다고 해도 소리 나면 또 모르니까.”

“으윽, 끄, 흐으…….”

아랫입술을 질끈 물어도 소리는 자꾸만 새어 나갔다. 두툼한 귀두가 들어설 때마다 속이 턱턱 막혔다. 눈물이 핑 돌아서, 건율은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고개를 푹 숙였다.

“씨발…. 힘 좀 빼요.”

커다란 손이 작은 둔부를 세게 내리쳤다. 짝! 하는 소리와 동시에 건율이 저도 모르게 더 힘을 주자, 최무정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래서 곧장 힘을 빼고자 노력했다. 심호흡을 하고, 눈을 감았다. 그래도 긴장으로 굳은 몸은 어쩔 수 없었는지 최무정은 그대로 성기를 깊게 밀어 넣기 시작했다.

“아, 하으, 흑! 아…!”

“아파요? 나한테 이렇게 굴고, 울어요?”

“끅, 흐으……. 미, 미안, 윽, 흐윽, 끅….”

최무정의 것은 보통의 것보다 한참 크고 길어서, 아랫배가 가득 찼음에도 계속해서 밀고 들어왔다. 건율은 헉, 하고 숨을 들이켜며 어떻게든 아래에 힘을 빼 성기를 받아들이고자 노력했다. 힘을 줄수록 최무정도 저도 아프다는 건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존나, 뻑뻑하네. 씨발.”

그렇게 천천히 넣던 최무정이 한계에 달했는지, 결국 건율의 둔부를 양옆으로 벌려 억세게 밀어 넣었다. 퍽, 하고 치닫는 소리에 눈앞이 순간 하얗게 점멸했다. 건율은 꺽꺽거리며 손끝으로 벽을 긁었다. 아랫입술은 하도 짓이겨 이미 핏방울이 맺혔다.

“아, 으윽, 흡…. 흣, 응, 윽…….”

자연스레 눈물이 터졌다. 서러움이나 슬픔 때문이 아니라, 아파서 나는 눈물이었다. 너무 아파서 줄줄 흘렀다. 그리고 건율은 이 상황을 제가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이런 곳에서, 처참하게도 더럽고 추한 곳에서…. 반강압적으로 그의 성기를 받아들이는 것은 자신이 자초한 것이라고. 최무정은 그간 제게 다정했고, 잘해 주려고 노력했는데 제가 너무 그의 생각을 하질 못했다.

“아, 아윽, 흑, 악! 흣, 으읏…!”

“소리 조심하라고, 말했…잖아요.”

잔뜩 힘을 준 듯한 목소리에 건율은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끝까지 치달은 성기가 뒤로 빠졌다가, 다시 한번 억세게 치고 올라왔다. 눈앞에 스파크가 터졌다. 건율은 고개를 숙이고 벌벌 떨다가, 제가 발기한 것을 보고 말았다.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오직 삽입만으로 발기해 쿠퍼액을 뚝뚝 떨어트리고 있었다.

“윽, 으윽, 윽!”

“이런 상황에서 질질 싸요? …이런 몸이니까 오늘도 하나 꼬시러 갈 생각이었겠지. 그렇네, 그러네요. 제가 좀 질렸어요? 아니, 선배 사실은 제가 처음 아니죠? 이런 몸으로 어떻게 아무도 안 만났을 수가 있어요?”

조곤조곤 제 귓가에 뱉어지는 말 하나하나가 심장을 쿡쿡 찔러 왔다. 건율은 대답도 못 하고 고개만 마구 저었다. 최무정이 허리짓을 할 때마다 벽에 머리를 부딪쳐, 아픈데도 불구하고 반항하지 않았다. 묵직한 성기가 아래를 가득 채워 와 내벽을 긁어 대도, 어느 한 곳만 집중적으로 찔러 올려도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버텼다.

“난 사실 누가 와도 상관없거든요. 선배가 이 짓 하는 사람이라고 소문나도 좋고, 우리 둘 다 미친놈이라고 소문나도 좋고.”

“으, 흐윽, 흑, 윽, 흡……!”

“근데 선배가 너무 음란하니까, 씨발, 남자가 더 꼬일까 봐, 내가 좀 걱정이 되는 건 있어요.”

하도 밀려나 차가운 벽에 뺨이 닿았다. 건율은 제 허리를 위로 들어 올려 순전히 제 성욕을 채우려는 움직임에도 쾌감을 느꼈다. 그가 박을 때마다, 찢어진 부위가 아릿하고 쓰라리면서도 아랫배에 쿵쿵 울려 대는 쾌감에 어쩔 줄 몰랐다.

최무정은 자꾸만 앞으로 밀려나는 건율의 머리채를 잡아 제 쪽으로 당겼다. 귓가에 나지막하게 울리는 목소리는 여전히 차갑고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난 벌주려고 하는 건데, 선배는 좋아서 질질 싸 대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응?”

“흐, 윽, 아니, 읏, 으윽! 윽, 흑, 읏!”

귀두가 안쪽을 긁어 대자 내벽이 경련하며 성기를 강하게 조였다. 안쪽에서 자연스레 미끄러운 액이 흘러내리며 성기를 부드럽게 감쌌다. 끈적해진 속살이 좆에 달라붙어 찔꺽이는 소리가 났다. 최무정은 서늘하게 웃으며 건율의 허리를 잡아당겨 그를 일으켜 세우곤, 볼록 튀어나온 아랫배를 꾹, 짓눌렀다.

“허, 허으, 흑! 아, 아프, 흣, 으윽!”

“안에 할게요.”

울긋불긋 튀어나온 핏줄이 음부에 마찰할 때마다 고통과 쾌락이 동시에 일었다. 최무정의 것은 내벽으로도 느껴질 만큼 핏줄이 강하게 솟아 있었다. 그는 건율을 뒤에서 끌어안으며 아랫배에 얹은 손에 힘을 주었다. 동시에 억세게 성기를 강하게 짓쳐 올렸다. 마른 몸이 바들바들 떨려 왔다. 최무정은 그 안에 정액을 모두 쏟아 낼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건율은 얼굴이 눈물로 얼룩진 채, 손으로 제 입을 여태 막고 있었다.

“후…….”

최무정의 씨를 모두 받아 내자마자, 그가 두 팔에 힘을 풀었다. 동시에 건율이 아래로 쓰러졌다. 변기 뚜껑 위로 몸이 추잡스레 엎어졌다. 아래만 드러내 놓고, 정액을 뒤로 싸지르는 꼴이 퍽 보기 좋았다. 최무정은 휴지로 제 것을 닦고, 지퍼만 올리는 것으로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잘 썼어요. 오늘 친구랑, 잘. 노세요.”

그대로 밖으로 나가는 발소리가 몹시 차가웠다.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나가는 소리에 비참함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마치 제가 더럽다는 듯, 그저 변기를 이용한 것처럼 가 버리는 최무정이 너무나 야속해 눈물이 울컥 새어 나왔다.

“…흐, 윽…….”

손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찢어진 아래는 너무나 아팠고, 건율의 성기는 아직 배출하지 못해 꼿꼿하게 서 있었다. 건율은 몸을 일으키다 바닥에 넘어졌다. 최무정이 문을 잠그고 가질 않아 누군가 올 수도 있는 걸 알면서도, 움직일 수 없었다.

간신히 몸을 추스르고 나왔을 때는, 예상외로 최무정이 서 있었다. 그는 엄연히 금연 건물에서 담배를 연달아 피우고 있었다. 그의 발치에 꽁초 세 개가 뒹굴고 있었다.

“나왔어요?”

“…어, 응.”

“많이 아팠죠? 미안해요. 제가 순간 화가 너무 나서.”

건율이 나오자마자 담배를 짓밟아 끈 최무정은 한숨을 쉬며 건율을 끌어안았다. 그에게서 독한 담배 냄새와 시원한 향수 냄새가 이질적으로 섞여 있었다. 그건 건율에게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저도 모르게 긴장이 됐다. 건율은 최무정을 꾹 밀어냈다. 조금 전에 그렇게, 무섭게 다그치고 다정하게 구는 무정이 무섭다. 어떤 게 최무정의 진짜 모습일까.

그는 진심으로 후회하듯 한숨을 쉬며 건율을 내려다보았다. 그러곤 저를 밀어내는 팔을 다시 잡아, 억지로 제 품으로 당겼다.

“윽……!”

최무정은 막무가내로 건율을 꽉 끌어안았다. 사색이 된 건율이 답답한 듯 인상을 찌푸렸지만 놓지 않았다. 소름이 끼쳤다.

“선배가 나 말고, 딴 남자 만난다는데……. 화가 어떻게 안 나겠어요.”

“미안해. 내가 네 생각을 좀 더 했어야 했는데.”

“선배는 너무 예뻐서 걱정된단 말이에요.”

“……너 말고 아무도 그렇게 안 봐. 나 그냥, 그냥 생겼는데.”

품에서 놓아준 최무정이 건율의 어깨를 쥐고 그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건율은 진심이었다. 최무정은 멀리서도 보일 만큼 빛나고, 모두가 좋아하며 돈도, 능력도 있는 멋진 사람이었으나 자신은 가진 것도 없고, 외모도 보잘것없었다.

“내 눈에만 예쁜 거면 좋겠어요, 그냥.”

“응?”

“난 선배 다 망가져도 예쁠 거 같아서요.”

건율은 어설프게 웃었다. 그리고 시간을 확인했다. 6시. 곧장 출발해야 할 듯싶었다. 몸이라도 씻을 시간이 있을까.

“나 가 볼게……. 늦을 거 같아.”

“어디서 보는데요?”

“우리 집 근처.”

“그럼 아직 시간 있는데?”

“어……. 씻어야지. 그, 아래…….”

더듬더듬 뱉은 말에 최무정의 눈썹이 쓱 올라갔다. 안에 싸질렀으니 찝찝한 모양인지 건율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뭐 어때요. 바로 가요.”

“그래도…….”

“내가 그랬죠. 남자한테 예쁜 모습 보여 주려고 하지 말라고.”

건율은 마른 입술을 축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다리가 후들거렸다.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로 민망한 부위가 따끔거렸다. 살짝 움직일 때마다 둔부 사이가 쓸리며 아릿하게 아파 왔다.

“이대로 가요. 난 선배가 내 거 품고 다녔으면 좋겠어요.”

시선을 내리깔자 최무정이 턱을 잡아 들어 올렸다. 캄캄한 1층 로비엔 아직도 사람이 없었다.

“마음만 같아선 선배, 내 좆에 꽂고 다니고 싶어요. 많이 참는 거예요.”

“그, 그건…… 좀.”

“마음이 그렇다고요. 여튼 집 근처에 데려다드릴게요.”

“어? 아냐, 괜찮아.”

“거절하지 마세요. 애인이 아파서 못 걷는데, 놓고 가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조금 전과 180도 다른 최무정의 태도는 이상하기도 하고, 익숙하기도 했다. 건율은 점차 그의 변화가 놀랍게 느껴지지 않았다.

“……응, 그럼 부탁할게.”

* * *

건물 앞에 서 있자, 최무정의 차가 부드럽게 정문에 섰다. 건율은 절뚝이며 조수석에 올라탔다. 허리를 숙이자 더 욱신거렸다. 저도 모르게 표정을 구기자 그가 힐끔거렸다.

“아픈데, 친구 만날 수 있겠어요?”

“으응. 5년 만에 보는 거고……. 멀리서 오니까.”

“그래요? 많이 친했던 친군가 보네.”

“응.”

몸의 피로 탓인지 졸음이 몰려왔다. 건율은 창밖을 보면서 작게 하품을 했다. 눈가에 맺힌 눈물을 꾹꾹 눌러 닦고, 창가에 비친 제 얼굴을 보았다. 크게 고생한 사람처럼 해쓱해진 뺨이나 다크서클이 내려온 눈, 칙칙해진 피부를 보니 절로 위축이 되었다.

이런 모습으로 최유헌을 만나고 싶지 않은데, 시간이 부족했다. 바로 출발했다면 급히 씻을 시간이라도 있었을 텐데, 최무정은 집과 반대 방향으로 틀더니 ‘드라이브’를 잠깐 하자고 했다. 그렇게 집 근처에 도착했을 땐 딱 6시 50분이었다.

자꾸 아래에서 정액이 새어 나와 찝찝했다. 최무정이 보란 듯이 뱉은 ‘잘 썼어요’라는 말처럼, 제 몸이 그저 성욕 배출구가 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최무정은 저를 그렇게 대하지 않았다. 잠시 화가 났을 뿐, 제게 사과하고 안아 주었다. 착한 사람이었다. 화만 내지 않으면, 제가 화를 내게 하지 않으면…… 되었다.

“나 갈게.”

“네. 재밌게 노시고……. 혹시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요.”

“응. 조심히 들어가.”

건율이 최무정을 대하는 태도는 초반과 상당히 바뀌었다. 그러나 그걸 눈치챈 것은 아무도 없었다. 건율은 최무정의 앞에만 서면 위축되어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었고, 최무정은 당연한 것이라 받아들였다. 자신을 사랑하니까, 까칠하게 굴었던 초반의 모습은 사라지는 게 맞다고.

건율은 최유헌이 보낸 주소를 검색해 술집을 찾아갔다. 늘 비싼 것만 고집하던 녀석이 의외로 허름한 술집을 고른 듯했다. 걸을 때마다 아래가 쓰라리고 불쾌했으나 건율은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며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일행 있으세요?”

“아, 네.”

“넵.”

입구에서 직원이 인사를 건네는 데에도 식은땀이 흘렀다. 건율은 주변을 살피다 구석 자리에 앉은 최유헌을 발견했다. 5년이란 시간이 지났음에도 심장이 쿵쿵 뛰었다. 그래서 알아보았다. 건율은 마음이 가는 대로 발을 뗐다.

“서건율!”

때마침 건율을 알아본 최유헌이 손을 흔들며 반겼다. 건율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 동그란 눈이 예쁘게 접혀 반달모양이 되었다.

“유헌아.”

“야, 이게 얼마 만이냐.”

반대편 자리에 앉자마자, 최유헌이 번쩍 일어나 건율을 확 끌어안았다. 그는 고등학생 때처럼, 건율을 몹시 귀여워하며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렸다.

“넌 시간이 지나도 얼굴이 왜 똑같냐?”

“그래?”

“어. 나는 좀 삭지 않았어? 옛날 사진 보면 깜짝 놀란다니까.”

확실히 최유헌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덩치도 훨씬 커져 있었고, 머리도 연한 브라운으로 염색해 화려한 이목구비가 더 눈에 띄었다. 높은 콧대나 살짝 올라간 눈매는 여전했다. 조금 성숙해진 느낌도 들었지만.

“뭐 먹을래? 일단 오뎅탕 시켜 놨거든?”

“나…… 다 좋아.”

“이 형님이 쏘는 거니까 편하게 시켜.”

건율의 집안 사정을 알고 있는 만큼, 최유헌은 늘 저를 섬세하게 대했다. 건율은 작게 웃으며 답했다.

“귀환 기념?”

“어. 맞다, 너 콘치즈 좋아하지? 콘치즈도 시키고, 음……. 고기는? 뭐 먹고 싶어?”

최유헌이 의자를 끌고 다가와 메뉴판을 들이밀었다. 가까워진 거리에 저도 모르게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5년이면 사라질 감정이기도 한데, 아직 남아 있는 걸까. 아니면 과거의 기억 때문에, 몸이 반응하는 걸까.

“야, 뭐 먹고 싶냐니까?”

“어? 어어. 이, 이거.”

건율이 아무거나 쿡, 찔렀다. 최유헌은 ‘닭똥집?’ 하고 묻더니 곧장 주문을 했다. 사실 배를 채울 수 있다면 감지덕지인 건율로서는, 가리는 음식이 없었다. 그리 좋아하지 않는 건 있어도 먹지 않는 건 없었다.

“근데 웬일로 이런 데를 왔어?”

“아니, 뭐. 거기 음식 느끼해 가지고…. 존나 시원하고 얼큰한 게 끌리더라고.”

“아하…….”

“학교생활은 어때, 재밌냐?”

물음과 동시에 최무정이 떠올랐다. 건율은 애써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나 장학금 계속 타야 하는 거 알잖아. 재미를 느낄 때가 있겠어?”

“거, 참…. 내가 합격 기념으로 한 학기 내준다니까.”

“됐어. 음대 비싸다.”

“깐깐한 놈.”

최유헌은 곧이어 소주와 맥주도 주문했다. 와인이나 양주만 먹을 것 같은 녀석이, 익숙하게 맥주잔에 소맥을 말았다. 조금 신기해서 빤히 쳐다보고 있으니 최유헌이 웃음을 터트렸다.

“뭐야, 너 술 안 마셔 본 거 아니지?”

“뭐, 아니야. 마셔 봤어.”

“다 보이네요. 해 봐야 엠티나 환영회 때 몇 잔 기울이고 말았겠지.”

말 그대로다. 건율은 그런 자리에 가서 교수가 따라 주는 것 외에는 한 잔도 마시지 않았었다. 한두 살 차이로 선배랍시고 강요하는 것들은 무시했더니, 욕은 바가지로 먹었다. 음악계는 좁다느니, 이런 식으로 뻣뻣하게 굴면 안 된다느니.

이런저런 얘기를 한 선배들은 지금 음악계에 발을 빼고 살고 있었다. 좁은 곳이니만큼 인맥이 중요하긴 하지만, 실력이 있으면 그만이다. 거부하지 못할 만큼, 제 실력을 키우면 된다고 건율은 생각했었다.

“자, 형님이 탄 소맥 마셔 봐라.”

“형님은 무슨….”

대체 어디서 소맥을 말았는지, 확실히 목 넘김이 부드러웠다. 적당히 씁쓸하고, 시원하니 속이 뻥 뚫렸다. 이어 콘치즈와 닭똥집도 함께 나왔다. 건율은 두어 잔으로 취기가 올라 실실 웃으며 턱을 괴었다. 아래가 불편하고, 찝찝한 건 잊은 지 오래였다.

“그래서 왜 연락 안 했어?”

“아! 내가 그거 얘기하려고 했지.”

“웅.”

끄덕이며 콘치즈를 수저로 떠먹었다. 달달하고 짭쪼롬한 게 너무 맛있었다. 이게 얼마나 먹고 싶었는지 설명하려면 한 달은 걸렸다. 건율은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헤헤, 웃으며 최유헌에게 시선을 돌렸다.

“뭔데, 뭔데.”

“아니, 나 유학 가서 지내다가 스토커 붙었거든?”

“어?”

“미친놈인지, 년인지 계속 연락 와서 번호를 엄청 바꿨어. 핸드폰도 바꾸고 하니까 너한테 연락을 못 했다고, 내가.”

“……진짜? 힘들었겠네에…….”

건율은 저도 스토커가 있었고, 지금 그 스토커와 사귀고 있는 중이라는 건 말하지 않기로 했다. 말하면 혼날 것 같았다. 그래서 잔을 기울이다가 텅 빈 잔을 보고는 입술을 삐죽거렸다.

“나 또 타 줘.”

“너 괜찮아?”

“응. 두 잔 더 마셔도 돼.”

사실 주량은 잘 몰랐지만, 그냥 그렇게 말했다. 건율은 취기 오른 얼굴로 끄덕이며 최유헌의 이야기를 들었다.

“진짜 무섭더라. 내가 조사도 해 보고, 사람도 알아보고 했는데 안 잡혔어.”

“징짜…?”

“어. 신고라도 하고 싶은데 외국이다 보니까, 신고했다간 총 맞을 거 같더라. 경호원도 데리고 다녔는데 찝찝해서.”

“잘해써….”

최유헌이 술잔을 들어서, 건율도 들어 잔을 부딪쳤다. 쨍- 하고 째지는 소리가 났다. 건율은 술을 꿀꺽꿀꺽 마시며 빙글빙글 돌아가는 시야가 재밌어서 실실 웃었다.

“너 너무 마신 거 아니야? 이거 완전 술찌네.”

“술찌이?”

“술찐따라고.”

“찐따… 마찌….”

닭똥집도 포크로 꾹 눌러 먹자 고소하고 아작아작 씹히는 맛이 입 안에 감돌았다. 건율은 마른 입술을 축였다.

“근데 너 시험 기간이라서 피곤한 거야? 얼굴이 말이 아닌데.”

“우웅, 그것도 있구……. 애인이, 괴롭혀써….”

입술을 삐죽이며 답하자 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애인이란 말에 꽤 놀란 듯싶었다. 그리고 곧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상한 사람 만나는 거 아니지.”

“으으응. 아닌데에……. 아! 좀, 웅…. 이상해.”

최무정이 착하긴 해도 이상한 건 맞다. 세상엔 여러 사람이 있으니까, 착하고 이상한 것도 가능하다. 건율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내가 좋아, 걔가 좋아?”

“뭐야아……. 당연히 유헌이지이…….”

건율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발그레한 뺨, 잔뜩 휘어진 눈매가 최유헌을 향했다. 혀가 얼얼하도록 단 미소였다. 최유헌이 침을 꿀꺽 삼켰다. 바로 그때, 반대편 테이블에서 와장창, 소주병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 건율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휙 들었다.

“손님! 괜찮으세요?”

“막내야, 빗자루 가져와!”

술집이 한순간 고요해졌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다시금 시끌시끌해졌다. 건율은 고개를 들고 건너편 남자의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왜 그래?”

“아는 머리통…….”

“아는 사람이야?”

동그란 머리와 핏줄이 선 목, 양옆으로 크게 벌어진 어깨선이 단단하고 거친 굴곡으로 이뤄져 있었다. 까만 티를 입은 남자는 선 채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학교? 후배?”

“어어…….”

자신 없이 흐려지는 대답에 최유헌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뒷사람을 살폈다. 건율은 누구지, 하며 눈을 몇 번 끔뻑였다.

“어? 무정아?”

그러나 그의 존재를 알아챈 것은 최유헌이 더 빨랐다. 최유헌은 바로 몸을 일으키더니 남자의 어깨를 툭, 쳤다. 고개를 돌린 남자는 과연, 최무정이 맞았다. 건율은 멍하니 최무정의 손에 들린 소주 주둥이를 쳐다보았다. 무시무시한 장면이었다.

근데…… 뭐지, 왜 무정이가 여기에 있지? 여기는 우리 집 근처인데……. 근데 유헌이도 무정일 알아? 왜 알지? 유헌이 우리 학교…. 아, 아닌데. 유헌이 유학 갔는데…….

“어, 형.”

최무정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박살 난 소주 주둥이도 내려놓았다. 최유헌이 그를 부르고, 답하기까지 단 3초도 걸리지 않았음에도 건율은 수만 가지 생각에 사로잡혔다. 시간이 몹시 느리게 가는 것 같다고, 어쩌면 세상이 느려진 걸지도 모른다고 건율은 생각했다.

“뭐야, 너 왜 여기 있냐? 새끼, 존나 많이 컸네?”

“형은…… 한국 왔으면 말 좀 하지. 왜 말을 안 했어.”

“그게 사연이 좀 있다. 너 이리 와. 같이 먹자.”

형? 진짜 형? 가짜 형?

최유헌, 최무정. 성은 같다. 하지만 둘이 너무 안 닮았다. 건율은 반쯤 감긴 눈으로 둘을 수상하게 살폈다. 양 볼이 발그스름하니 누가 봐도 우스웠지만,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 무정아. 너 건율이 기억하냐?”

“……당연하지.”

건율은 한 손엔 소주잔을 쥐고, 반대편엔 젓가락을 들고 멀대같이 큰 두 사내를 쳐다보았다. 이게 무슨 경우인가. 도저히 감이 안 잡혔다. 무정이가 날 기억하냐고? 당연한 거 아니야? 학교 선배인데 왜 까먹지?

“선배, 많이 취하셨네요.”

“어, 어……. 너, 집… 안 갔어?”

“네. 저도 술 한잔하고 싶어서 그냥 근처 들렀는데. 여기 오신 줄은 몰랐네.”

이번엔 최유헌의 눈이 동그래졌다. 최무정은 제 형의 옆자리가 아니라, 건율의 옆자리에 앉았다. 소파 쪽 자리인 탓에 최무정의 허벅지가 닿았다. 건율은 깜짝 놀랐다가, 잔에 가득 찬 소주를 손등에 흘리고 말았다.

“아, 안 돼….”

아마 평소였다면 그런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건율은 취해 있었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상황에 현실감을 잃은 채였다. 건율은 진분홍색의 혀를 내밀어 제 손등을 핥았다. 손목으로 흐르는 소주를 쪽, 빨아들이고 훑는데 확, 하고 두 손이 튀어나왔다.

“응?”

단단하지만 마른 손목에 두 손이 겹쳤다. 건율은 그걸 보다가 손의 주인들, 최씨 형제들을 번갈아 보았다.

“야, 야. 너 내가 술 더 사 줄게. 빨지 마.”

“선배, 손 줘 봐요.”

“왜?”

“빨지 말라면 빨지 마, 인마.”

“일단 줘요.”

가까이에 있던 최무정이 최유헌의 손을 밀어내고 잡아챘다. 소주잔은 뺏어서 테이블에 두고, 물티슈로 건율의 손을 벅벅 닦아 주었다. 건율은 최무정이 화난 거 같아서 슬쩍 눈치를 봤다.

최유헌은 둘의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곤, 젓가락으로 테이블을 툭툭, 내리쳤다. 최무정이 물티슈로 문지르던 건율의 손을 놓았다.

“야, 너네 뭐, 그…… 왜 선배야?”

어떻게 아는 사이냐고 물으려니, 알던 사이긴 하고. 알던 사이라지만 저리 친한 걸 보니 이상하기도 했다. 최유헌이 둘을 번갈아 살피자, 건율이 고개를 기울였다.

“무정이 내 학교 후밴데.”

“어? 최무정이가?”

“으응. 우리 과 후배.”

“……최무정 너, 미쳤구나.”

건율도 묻고 싶었다. 왜 선배냐고 묻지? 아니, 기억하냐고 물은 것? 사실 뭘 물어야 할지 몰랐다. 그냥 어지러웠다. 셋 사이에서 둘만 어리둥절하고 하나는 뻔뻔한 얼굴로 술을 들이켰다. 아까 뺏은 건율의 잔이었다.

“내가 피아노 한다고 했잖아.”

“그렇게 처맞아 놓고 기어코 했어?”

“어.”

“으으응? 잠깐만, 무정이 피아노 친다고 맞았어?”

“별거 아니에요, 선배. 물이나 드세요. 선배 때문에 제 손에서 술 냄새 나잖아요.”

“아, 미안….”

건율은 얌전히 물을 마셨다. 뭔가 어긋난 듯한 만남에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뭐가 궁금한지 스스로도 알 수 없어서 그냥 마셨다. 그때, 두꺼운 손이 허벅지 위로 올라왔다.

“웁!”

놀라 뱉으려던 물을 건율이 급하게 삼켰다. 건율은 눈을 수차례 깜빡이며 입술을 닦고, 닦아 주려는 최무정을 슬쩍 피했다. 그랬더니 최무정은 또 기분이 상한 모양이다. 미간 사이가 더 깊게 파였다.

“야야, 천천히 마셔.”

“응…….”

건율은 젓가락으로 콘을 치즈에 동그랗게 말아 집어먹었다. 한 알 한 알 먹고 있으니 최 씨 형제가 그걸 빤히 쳐다봤다. 건율은 민망함에 젓가락을 내리고 말았다.

“건율아, 그니까 얘가 네 과 후배…라는 거지?”

“으응.”

“인연 신기하네. 근데 넌 얘 기억했냐?”

때마침 건율이 궁금해하던 질문이 나왔다. 건율은 고개를 저었다.

“뭘 기억해?”

“넌, ……그럴 줄 알았다. 내가.”

그때, 허벅지에 있던 손이 천천히 안쪽으로 들어왔다. 건율은 화들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가, 바싹 긴장해서는 침을 삼켰다.

“왜?”

“어? 어, 아니. 그냥.”

“뭐……. 씁. 암튼 둘이 잘 지낸다니까 괜히 반갑네.”

손은 이내 뒤로 뻗어져 건율의 바지 틈새로 들어왔다. 건율은 살짝 울 듯한 얼굴로 애써 최유헌에게 물었다.

“내가 뭘 기억해야 돼?”

“아니, 꼭 하라는 건 아니고. 우리 고딩 때, 쟤랑 몇 번 봤잖아.”

골 사이로 들어온 손가락이 조금 전 행위로 인해 부드러워진 구멍을 건드렸다. 건율은 테이블 양옆으로 칸막이가 쳐져 있는 걸 확인하면서, 더듬더듬 대답했다.

“그, 랬어?”

“어. 네가 쟤 아이스크림도 사 주고……. 뭐, 기억 못 할 만하다. 쟤 어릴 때랑 지금이랑 딴판이라.”

최유헌에게 동생이 있었던가? 건율은 그를 좋아해 놓고 기억하지 못한 제가 좀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최무정의 씨물로 축축해진 속옷이 찝찝해졌다. 최무정은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편하게 앉아서, 건율의 구멍을 쑤셨다.

그걸 최유헌에게 들킬까 봐 무서웠다. 건율은 저도 모르게 아래를 수축하며 내벽을 긁는 손가락을 조였다.

“그래……?”

“그래서 뭐, 방금 소개해 주려고 했는데 나보다 더 친해 보이니까 섭섭하다?”

“하, 하하……. 흐, 아냐. 너랑 더 친하게 놀았잖아.”

순간 손가락이 하나 더 들어와 악의적으로 안쪽을 짓이기며 확, 긁었다. 건율은 눈앞에서 팡 튀어 오르는 하얀 빛에 잠깐 얼빠진 표정을 했다.

“야, 너 많이 취했냐? 술 진짜 개약하네?”

“아……. 어, 아닌데? 나 술 빨리 돌긴 하는, 데…. 막, 맛 가는? 거는 오래 걸리는데…….”

“맛 간 거 같은데, 너.”

“아냐아…….”

찔꺽이는 소리라도 날까 봐 건율은 온몸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부풀기 시작한 아래 때문에 난감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슬슬 술이 깼다. 얼굴이 더 빨갛게 달아오르는 사이, 최유헌은 혼자 제 잔에 술을 따라 마셨다.

“후……. 야, 내가 한국 오자마자 너부터 보러 달려왔는데. 취하면 어떡해. 조절 좀 하지.”

“아니,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냐. 딱 봐도 꼴았는데.”

좀 섭섭해 보였다. 최무정이 나타나서, 대화를 못 한 느낌이었다. 건율은 최무정을 힐끔거리며 그만해 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그러자 최무정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동시에 반쯤 들어가 있던 손가락이 쑥 빠져나갔다. 최무정은 건율의 둔부 사이, 골에 질퍽한 액체를 문질러 닦았다. 건율의 표정이 더 울상이 되었다.

“형, 선배 속 안 좋은 거 같은데 잠깐 화장실 좀 데리고 다녀올게.”

“어? 율아, 많이 안 좋냐?”

“어어…. 으응.”

토할 것 같지는 않은데, 최무정의 눈빛이 ‘그렇다’라고 강요하는 듯했다. 건율은 고개를 짧게 두어 번 끄덕이며 최무정에게 질질 끌렸다. 그나저나 간만의 애칭에 기분이 좋아졌다. 술이 깨고 나니 최무정이 왜 여기에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스토커 새끼.

“갔다 와, 갔다 와. 너 이렇게 약한 거 알면 내가 술 먹자고도 안 했는데.”

“아냐, 괜-.”

“형, 편의점에서 숙취 해소제 같은 거라도 사 와 줄 수 있어?”

여기서 편의점까지는 좀 걸렸다. 빌라가 밀접해 있는 곳임에도, 동네 슈퍼들이 자리를 잡고 텃세를 부르는 탓에 편의점들이 자리를 잡질 못한 탓이었다.

“어, 갔다 올게.”

“응.”

그대로 최유헌은 가게 밖으로 나가고, 건율은 최무정에게 가게 뒤쪽으로 질질 끌려갔다. 살짝 부푼 아래는 다행히 긴 셔츠가 가려 주었다.

건율은 억지로 구역질이라도 해야 하나 싶어 화장실 쪽을 시무룩하게 쳐다보는데, 최무정은 화장실이 아닌 뒷문으로 걸어 나갔다. 어떻게 여기에 뒷문이 있는지 알았을까. 그것도 의문이고 왜 여기로 끌고 왔나, 하는 것도 의문이었다.

건율은 아무말도 못 하고 질질 끌려가다가 뒷골목에서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최무정을 올려다보았다.

“무, 정아? 어디 가?”

그 말을 뱉음과 동시에 세상이 빙글 돌았다. 건율은 벽에 상체를 부딪치며 짧게 악 소리를 냈다. 그러자 최무정이 뒤에서 건율의 입을 틀어막고는, 바지를 벗겼다. 놀라 발버둥 쳤으나 당연하게도 소용은 없었다.

최무정은 그대로 끝까지 성기를 박아 넣었다.

“우, 우으, 흐으으……!”

단번에 깊은 곳까지 찌르고 오는 통에, 온몸이 찌르르 울렸다. 건율은 고개를 뒤로 꺾으며 손톱을 세워 벽을 긁었다. 숨이 턱 막혔다.

“하, 씨발……!”

최무정은 그간 보이지 않았던, 격정적인 목소리로 거세게 박아 올렸다. 아랫배가 찌르르 울리도록 강하게 밀어 넣는 통에 눈앞이 흐리멍덩하게 흐트러졌다. 건율은 끅끅대며 허리를 숙인 채로 벌벌 떨었다. 그가 치고 들어올 때마다 허벅지에 힘이 풀려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럴 때마다 최무정은 건율의 허리를 단단히 붙잡고 거세게 좆을 뽑아냈다가 박기를 반복했다.

“우으, 흡, 우윽, 응!”

입이 틀어막힌 탓에 신음 소리가 미묘하게 새어 나갔다. 건율은 벽에 뺨을 대고 코로 숨을 쉬기 바빴다. 술집에 오기 전, 비참하게 다뤄졌던 것보다 더 격렬한 움직임에 온몸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벽에 머리를 찧고, 뺨이 긁혔다. 손바닥에도 생채기가 났으나 최무정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밀어붙였다.

내벽을 짓이기듯 세게 찧어 올리고, 다시 귀두만 걸쳐질 만큼 모두 뽑아냈다가 안쪽 살을 모조리 뭉개듯이 파고들었다. 발갛게 부어오른 구멍에서 정액이 울컥대며 흘러나와도 그는 여전히 단단하게 솟은 성기로 건율을 몰아붙였다.

“우으으…. 흐윽, 응, 웁, 윽, 으윽!”

거칠게 밀어붙이는데도 불구하고 건율은 찌르르 울리는 아랫배의 감각에 눈앞이 흐려졌다. 저절로 힘이 들어가 좆의 핏줄이 선연하게 느껴질 만큼 조여 댔다.

“씨발, 진짜… 이런 몸으로, 아무나, 꼬시고 다니니까, 내가, 걱정이 안 되겠어?”

“웁, 흐읍, 흑, 끅…!”

“존나 박아 대도 좋다고 싸지르는데, 응?”

건율은 할딱이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자 입을 막고 있던 커다란 손이 안으로 들어와 속살을 마구 휘젓기 시작했다. 꼭 위아래로 범해지는 듯했다. 침이 질질 흐르고, 뒤로도 애액으로 젖어 거칠게 박아도 찔꺽이며 음탕한 소리를 내었다.

질퍽한 아래가 간지러웠다. 더, 조금 더 해 줬으면 하는 마음에 건율은 저도 모르게 허리를 뒤로 밀며 앓는 소리를 내었다.

“아직도 못 잊었어요?”

“흐윽, 응, 웁, 흐아, 무슨, 후으……!”

“선배가, 이렇게 걸레같이 군다는 거 형이 알면 뭐라고 생각할까요?”

모욕적인 말에도 건율은 눈물만 뚝뚝 흘리며 쾌락에 젖어 들었다. 최무정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인식되지도 않았다. 다리가 벌벌 떨렸다. 입천장을 간질이며 발간 혀를 뽑을 듯이 휘어잡는 손가락이 거칠고 단단했다.

최무정은 성기를 모조리 빼냈다. 아직 솟은 성기가 구멍을 툭, 치며 둔부 위에 얹혔다. 묵직하고 축축한 성기가 살갗에 비벼졌다. 건율은 더, 더, 하고 중얼거렸다. 제대로 된 발음이 아니었음에도 최무정은 알아듣고는 웃음을 흘렸다.

“선배, 이쪽으로 타고난 거 알아요? 뒤 좀 쑤셨다고 이렇게 금방 미치진 않는데.”

“흐으으…. 으응, 아, 으…. 무, 정아아…….”

“미치겠네.”

손가락이 빠져나가자마자 건율이 울먹이며 조르자 최무정이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는 거의 벽에 붙어 쓰러지는 건율을 다시 들어 올려 몸을 뒤집고는, 그대로 깊게 삽입했다. 정면으로 삽입을 당하자 성기가 휘어져 내벽 앞쪽이 지긋하게 눌렸다. 눈앞에 스파크가 몇 번 튀었다. 건율은 고개를 뒤로 젖히며 숨을 몰아쉬었다.

최무정은 건율의 다리 한쪽을 제 팔에 걸치고는 선 채로 거칠게 움직였다. 귀두부터 뿌리까지 달라붙은 내벽이 움찔거리며 애액을 토해 냈다.

“읏, 흐응, 아, 아, 앗, 아…!”

“선배, 제발…….”

“나, 나, 갈 것 같, 흐윽, 읏, 아….”

최대한 소리를 죽이려 아랫입술을 몇 번이나 짓이겼다. 건율은 최무정의 목에 팔을 두르고 그를 꽉 끌어안았다. 아이처럼 매달려 오는 것에 최무정은 결국 참지 못하고 안쪽 깊은 곳에 제 씨물을 싸질렀다. 왈칵 쏟아지는 미적지근한 정액에 몸이 충족감으로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흐으….”

건율의 것도 정액을 뚝뚝 떨구며 수그러들었다. 최무정은 엉망이 되어 온몸이 빨개진 건율을 훑어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런 꼴을 형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저희 집으로 가요.”

“하아, 하…. 무, 정아….”

“왜요?”

“유, 헌이는……?”

“…….”

한참 정적이 감돌았다. 최무정은 성기를 뽑아내고, 깨끗하게 아래를 정돈했다. 성기를 닦은 티슈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건율은 바지만 벗겨진 채로 주저앉아서는 눈을 반쯤 뜨고 침을 삼켰다.

최무정은 건율의 뒤를 닦아 주지 않은 채로 속옷과 바지를 입혀 주었다. 그가 제 정액을 품고 있는 것이 좋았다. 그것도 다른 사람 앞에서라면.

“선배가 아파서, 집에 보냈다고 할게요.”

“그, 래도오….”

“나 더 화나는 거 보고 싶어서 그래요?”

건율이 코를 훌쩍였다. 비틀거리며 최무정의 팔에 매달린 건율이 고개를 저었다. 술이 완전히 깬 건율은 최무정에게 묻고 싶은 것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조금 전, 폭탄과도 같던 최유헌의 이야기가 머리를 맴돌았다.

아직은 쾌락에 젖은 몸이 여운에 감돌았으나, 집에 갈 때쯤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오래전에 만나 놓고, 왜 저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지. 기억한다고, 그렇게 말했으면서 왜 모른 척했는지.

그리고…… 피아노를 시작한 계기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공금.갠소.본문수정有.AngKemTo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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