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화 (1/5)

[BL]노예 부자(父子)

0.

“네가 현성이구나.”

남자는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하지만 나는 이상한 기운에 압도되어 그의 손을 선뜻 맞잡을 수 없었다. 남자의 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나치게 좋은 편이었다. 이런 미남이 연예인이 아니라는 게 놀라울 정도로 잘생겼고 체격 또한 훌륭했다. 싱긋 웃는 얼굴은 누구라도 홀릴 만큼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왠지 웃고 있는데도 알 수 없는 위압감이 느껴졌다.

“현성아, 진우 팔 떨어지겠다.”

아빠는 나와 남자 사이에 침묵이 흐르자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고 농담처럼 말을 꺼냈다. 남자 또한 내가 자신의 악수에 응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분위기를 망치기 싫었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손을 들어 남자의 악수를 받아 주었다. 그런데 그의 손은 지나치게 차가웠다. 내 손까지 얼어붙을 듯한 냉기에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려 하자, 그가 내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전혀 악력이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왠지 모르게 뿌리칠 수가 없었다.

뱀 한 마리가 남자의 손을 타고 내 쪽으로 건너와 손과 팔목을 칭칭 감고 있는 것처럼 오른팔 전체에서 알 수 없는 옥죄임이 느껴졌다. 남자는 가볍게 내 손을 잡은 채로 몇 번 팔을 흔들더니 예상외로 금방 내 손을 놓아주었다. 실제로는 겨우 몇 초간이었지만 나에게는 매우 길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남자는 여전히 사람 좋은 척 미소 짓고 있었다.

“현성이는 아빠 닮아서 그런가. 진짜 잘생겼네.”

남자는 아빠와 나를 번갈아 보고서 그렇게 말했다. 잘생겼다는 말을 자주 듣는 편은 아니었다. 선이 부드러운 아빠를 똑같이 닮아서 오히려 예쁘장하다는 말을 콤플렉스가 될 정도로 많이 들어 왔다. 진짜 잘생긴 건 바로 이 남자였다. 남자의 나이는 겨우 20대 중반으로 보였다. 많이 쳐줘야 20대 후반 정도.

이렇게 어린 남자가 아빠의 애인이라니. 믿기 힘들었다. 물론 우리 아빠도 나이에 비해 매우 젊어 보이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나이 차가 열두 살은 넘게 날 법한 남자를 애인이랍시고 데려온 아빠의 머릿속이 매우 궁금해졌다. 그리고 저 뱀 같은 남자의 머릿속 또한.

“그렇지? 우리 현성이가 날 닮아서 좀 잘생겼어.”

“그렇네.”

꺼림칙한 기분이 드는 나와는 달리 아빠는 그저 신이 나 있었다. 나는 여전히 이 젊고 잘생긴 남자가 대체 왜 우리 아빠와 연애를 하는지 알 수가 없어 의문스러웠다.

사실 가족인 내가 봐도 아빠는 장점이라곤 없는 남자였다. 성격도 착해 빠져서 친구들에게 사기당하고 맨날 뭘 뺏기고만 살아왔다. 그렇다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조부모님이 물려주신 이 집 하나밖에 가진 게 없었다. 그나마 꼽아 보자면 실제 나이가 믿기지 않는 동안 얼굴과 퍽 곱상하게 생겼다는 정도. 하지만 저 남자에 비하면 장점으로 내세울 만한 외모도 아니었다. 그런데 대체 왜?

오늘은 아빠가 오랫동안 기다려 온 날이었다. 아빠는 내가 지원했던 대학교에 합격한 날 기다렸다는 듯 자신에게 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제 성인이니 그 정도는 내가 감당할 수 있으리라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동안 아빠의 행동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나 몰래 누군가와 연애를 하고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처음에 아빠에게 애인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여태까지 나에게만 집중되던 아빠의 관심이 남에게 분산되는 게 싫었고 연애하는 아빠의 모습을 상상하니 왠지 기분이 거북했다. 하지만 내가 여덟 살 무렵 세상을 떠난 엄마의 빈자리까지 혼자서 채우며 나를 돌보느라 다른 데 눈 돌릴 겨를도 없었던 아빠가 이제 겨우 자기 행복을 찾아 나서겠다는데 내가 말릴 수는 없었다. 나는 아빠가 서운해할까 봐 그냥 축하한다고 하고 말았다.

그런데 심지어 그 상대가 남자라는 사실을 뒤늦게 밝혔을 땐 동성애자이면서 엄마를 속이고 결혼하고 나까지 낳은 거란 생각에 배신감이 들었다. 그런 아빠를 사랑한 엄마가 불쌍했고,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나도 불쌍했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수록 화가 났다. 아빠는 그런 나를 이해시키려고 노력했다. 아빠는 듣고 싶지 않다는 나에게 제발 얘기 좀 들어 달라고 애원했다. 눈물까지 보이는 아빠 때문에 나는 어쩔 수 없이 화를 누그러트리고 아빠와 대화를 나눴다.

아빠는 지금 애인을 만나기 전까지는 자신이 양성애자인지 몰랐지만 그를 만나고 나서야 자신의 성 지향성을 깨달았다고 했다. 자기도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하긴. 평생 자기를 이성애자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갑자기 남자가 좋아지니 고민이 될 수밖에. 혼자 마음고생을 많이 했는지 내 앞에서 아이처럼 소릴 내어 우는 아빠를 보니 화가 조금씩 누그러들었다.

아빠는 나에게 자신을 비밀을 밝히고 난 뒤 아주 자연스럽게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잔뜩 늘어놓았다. 남의 연애사란 좀처럼 재미있기 쉽지 않은데 하물며 내 가족의 연애사는 어떻겠는가. 전혀 궁금하지도 않고 거북한 느낌만 들었다. 하지만 아빠는 지치지도 않고 계속해서 그의 이야기를 했고, 급기야 내게 소개해 주고 싶다는 말까지 꺼냈다. 그 또한 나에게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다고 말을 전했다고 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둘이 좋아서 하는 연애에 내가 인정을 해 주는 게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그러나 난 아빠에게 좀 무른 편이었다. 혼자서 고생하며 날 길러 왔고, 나이에 맞지 않게 천진한 성격인지라 늘 마음이 쓰였다. 아빠의 얘기를 들어 보니 아빠한테 지극정성으로 다정하게 대해 주는 좋은 남자인 것 같기도 했고, 몇 날 며칠을 날 쫓아다니며 한 번만 만나 달라고 아빠가 눈물까지 흘리며 매달린 덕분에 나는 결국 그 남자를 집으로 데려와도 좋다고 허락해 주었다. 아빠는 내가 대학에 합격했을 때처럼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러나 막상 남자를 보니 괜히 집으로 데려오라고 한 것 같았다. 아빠와 비슷한 또래도 아니고 앞날이 창창한 젊은 남자가 우리 아빠와 순수한 마음으로 사귄다는 걸 믿기 힘들었다.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밖에는 생각되질 않았다. 이래저래 부족함 많은 아빠였지만 그래도 내 하나뿐인 가족이었다. 우리 아빠가 이상한 놈에게 애인이랍시고 휘둘리는 건 참을 수 없었다.

“……우리 아빠가 왜 좋아요?”

나도 모르게 날 선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남자가 못 미더웠다. 아빠가 여태까지 당한 사기만 해도 몇 번인데? 이 남자도 뭔가를 원하니까 접근한 게 아닐까. 그래서 나도 모르게 불길한 기분이 들었던 걸지도 모른다.

남자는 내 말을 듣고 하하, 소리를 내어 웃었고 아빠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마치 부모님께 결혼 허락을 받으러 온 연인 같아 보였다. 그는 그런 아빠를 제 품 안으로 끌어안았다. 체구가 작은 아빠는 남자에게 안정적으로 안겨 들었다. 아빠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디 보자. 부끄러울 때 얼굴이 빨개지는 것도 좋고.”

남자는 아빠의 목덜미에 코를 묻고 숨을 들이켰다.

“살냄새도 향기롭고.”

“간지러워, 하지 마…….”

아빠는 전혀 싫지 않은 얼굴로 남자를 밀어냈다. 그에 남자는 더욱 강한 손길로 아빠의 허리를 제 팔로 조였다.

“딱 내 품에 맞는 사이즈라서 좋고.”

남자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사실 그냥 다 좋은데.”

나는 표정 관리가 잘 되지 않았다. 과거로 돌아가서 남자를 데리고 와도 좋다고 말한 나 자신의 입을 한 대 때리고 싶어졌다. 우리 아빠가 연애하는 모습은 생각보다 훨씬 보기 힘들었다. 게다가 부끄럽지도 않은지 낯간지러운 말을 잘도 해 대는 남자 때문에 더욱 후회됐다. 난 그저 아빠가 이상한 놈에게 잘못 엮인 건 아닌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인데.

그래도 섬찟했던 첫인상에 비해 남자는 꽤 서글서글한 성격이었다. 아빠에게도 잘해 주는 것처럼 보였고, 충분히 애정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냥 이렇게 보기에는 사이좋은 닭살 커플이었다. 그러나 벌써 의심의 끈을 놓으면 안 된다. 이런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남자를 다 판단할 순 없었다. 나는 계속해서 남자를 예의 주시 했다.

“현성아, 많이 먹어.”

남자는 집 방문 선물이랍시고 이것저것 잔뜩 사 들고 들어왔다. 기분이 조금 이상했던 건 우리 집에 처음 와 본다는 사람치고 남자의 행동이 매우 자연스러워 보인다는 점 때문이었다. 익숙한 듯 서랍을 열어 와인 오프너를 찾아내 코르크 마개를 제거했고, 자신이 사 온 스테이크를 구워 접시에 내오는 과정 자체도 매우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남자에게 우리 집에 와 본 거 아니냐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갑자기 분위기가 싸늘해질까 봐 그냥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남자는 다정하게 나를 챙겨 주었지만 나는 부담스러워서 체할 것 같았다.

“처음엔 진우가 아르바이트생인 줄 알았는데, 맨날 갈 때마다 커피랑 빵을 공짜로 주는 거야.”

한우에 와인까지 곁들이자 아빠가 신이 났는지 두 사람이 만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안 궁금하고 안 물어봤지만, 아빠의 기분이 매우 좋아 보여 괜히 그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아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래서 몇 번은 그냥 받아먹다가 궁금해서, ‘이러다가 사장님한테 혼나면 어떡해요?’ 하니까 진우가 ‘제가 사장이라 괜찮아요.’ 이러는 거 있지?”

어려 보이는데 벌써 카페 사장이라니. 아빠가 자주 가는 카페인지라 나도 잘 알고 있는 곳이었다. 3층짜리라 규모도 크고 취급하는 메뉴도 많았다. 갈 때마다 늘 테이블이 꽉 차 있어 사장이 돈깨나 만지겠다 생각했었는데, 이 사람이었구나. 아마 자수성가한 게 아니라 부모한테 물려받은 뭔가가 있었겠지. 갑자기 남자가 더 마음에 안 들어지기 시작했다.

“그 뒤로는 안심하고 주는 대로 받아먹었지.”

아빠는 바보처럼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단순하긴. 난 여전히 남자가 의심스러웠다. 카페 사장이라니. 돈도 많은 사람이……. 그나마 한 가지 다행인 부분은 아빠에게 접근한 게 돈 때문은 아닌 듯하다는 거였다. 그럼 대체 뭐 때문에? 나이 차이가 최소 열두 살은 날 텐데. 진짜 우리 아빠를 사랑이라도 하는 건가.

나는 아직 어리긴 하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을 믿지 않았다. 아빠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라긴 했지만, 그래서 그런가. 되레 가족 이외의 타인을 순수하게 사랑한다는 감정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핏줄이 이어지지 않은 생판 남을 어떻게 믿는가? 그 사랑이 영원할 거라고 어떻게 장담하지. 갑자기 뒤통수를 맞거나 이별을 당하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식사하는 내내 남자는 아빠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아빠를 사랑스러워하는 눈길로 바라보았다. 아빠가 애처럼 음식을 입가에 묻히고 먹어도 예쁘다는 듯 제 손으로 그것을 일일이 닦아 주고, 고기도 직접 잘라서 앞 접시에 놓아 주었다. 아빠는 손이 없는 사람처럼 얻어먹기만 했다.

두 사람은 내 눈앞에서 로맨스 영화를 찍고 있는데, 나만 혼자 스릴러 영화였다. 계속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남자의 행동 하나하나를 눈여겨보았다. 식사를 마칠 즈음엔 긴장이 조금 풀려 쌓여 왔던 피로감이 한꺼번에 나를 덮쳤다. 졸음도 함께 쏟아지는 바람에 눈을 느리게 감았다 뜨는 나를 보고서 아빠가 말했다.

“현성아, 졸리면 일찍 올라가서 자.”

“……그래도 돼?”

아빠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 먼저 일어날게.”

나는 내가 먹었던 접시를 들고 일어나 싱크대에 넣었다. 내 방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가기 전, 예의상 남자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남자는 아까 전처럼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손을 흔들었다.

“잘 자고, 내일 아침에 보자.”

자고 가겠다는 건가. 내일 아침에도 봐야 한다니.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는 어색하게 “네.” 하고 대꾸를 하고 계단을 올라갔다. 뒤에서 내 얘기를 하는지 아니면 무슨 재밌는 얘기를 하는지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둘이 닭살 돋게 떠들어 대는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이어폰을 낀 채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어중간한 새벽에 눈을 떴다. 갈증 때문에 목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저녁을 조금 짜게 먹었나. 나는 물을 마시러 어둠을 헤치며 내려갔다. 아니, 계단을 내려가려던 차였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려와 중간에 멈춰 섰다.

“응, 으읏, 하윽, 그, 그만. 흐윽……!”

“다리에 힘 똑바로 주고 서.”

“흑, 흐읏, 히, 힘이 아, 안 들어가. 읏, 하으응……!”

아직 잠이 덜 깬 상태인지라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는 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두 사람이 주방에서 섹스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솔직히 둘 다 남자고 성인이니 그냥 플라토닉한 사랑을 할 거라곤 생각 안 했다. 다만 동성 간의 섹스를 상상하기도 싫고, 우리 아빠의 성생활을 알고 싶지도 않으니 그냥 머릿속에서 치워 버렸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생생하게 섹스 장면을 목격하게 될 줄이야.

그냥 뒤돌아서 다시 내 방으로 돌아가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두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마비라도 된 듯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나는 그대로 못 박힌 것처럼 서서 두 사람의 행위를 지켜봤다.

아빠는 주방의 조리대 위에 상체를 엎드린 채 서 있었고 남자가 그 뒤에 겹쳐 서 있었다. 아빠의 얇은 두 다리는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힘이 빠지는지 자꾸 주저앉으려고 하는 아빠를 남자가 신경질적으로 일으켜 세웠다. 그런데 아빠의 팔에 이상한 게 둘러져 있었다. 등 뒤로 양팔이 겹쳐진 채 무언가에 묶여 있었다. 멀리서 봐서 정확히 뭔진 모르겠지만 달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잠금 쇠를 보니 벨트인 것 같았다.

남자는 벨트를 손으로 잡아 아빠가 자세를 고치게 했다. 그러고는 있는 힘껏 구멍에 성기를 박아 넣었다. 멀어서 실루엣만 겨우 보였지만, 엄청나게 큰 성기였다. 저런 게 엉덩이에 다 들어가는 게 신기했다. 그리고 저걸 넣고도 쾌감을 느끼는 아빠가 대단했다. 아빠의 입은 닫힐 틈이 없었다. 계속해서 음란한 신음이 쏟아져 나왔다. 듣는 내가 다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하응, 읏, 으흑, 조, 좋아, 응, 읏, 흐읏……!”

“너만 좋으면 끝이야? 구멍 더 조여. 1주일 만에 박아 주는 건데 왜 이렇게 헐렁해. 어?”

남자는 아빠의 머리채를 움켜잡고 흔들었다. 꽤나 아파 보였지만 아빠는 아프다는 내색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쾌락에 미쳐선 신음만 흘려 댔다. 입가에서 주룩 침이 흘러나왔다. 남자는 아빠의 머리를 탁, 놔 버리고는 자신의 손가락을 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아악! 으으윽……!”

남자가 머리카락을 갑자기 놓는 바람에 아빠는 조리대에 이마를 쾅, 박았다. 거기다가 안 그래도 성기를 물고 있느라 한계까지 늘어나 있는 구멍에 막무가내로 침입한 손가락 때문에 아빠는 괴로운 듯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며 조리대 위에 이마를 비볐다. 아파하는 아빠에 반해 남자는 인제야 만족한 듯 웃으며 말했다.

“이러니까 겨우 조이네.”

“아흑, 윽, 찌, 찢어져. 아파, 아파아……!”

“찢어지면 네 아들 구멍 쓰지 뭐.”

갑자기 내 얘기가 나오니 깜짝 놀랐다. 그리고 기분이 매우 불쾌했다. 남자가 나와 섹스하고 싶어 한다는 느낌은 받지 않았다. 그저 자기들 섹스에서 흥분을 고조하기 위한 장치로 나를 거론한 것 같았다. 그래도 기분이 좆같은 건 변함없지만.

“안 돼, 안 돼애! 현성이 건 안 돼, 자지 넣지 마. 안 돼! 내 거야, 내 거야……!”

더 기분이 나쁜 건 우리 아빠가 그에게 뭐라고 하지 않은 것이었다. 섹스 도중이긴 했지만, 아들 얘기는 하지 말라고 한마디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아빠는 꼭 남자가 나를 따먹겠다는 것보다 자신에게 넣어 주지 않는 게 더 절망적인 일인 것처럼 굴었다. 남자가 나를 언급한 것보다 아빠의 태도가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자지가 왜 네 거야.”

남자는 아빠를 비웃으며 말했다. 아빠는 당장 남자를 누군가에게 빼앗긴 것처럼 애절하게 매달렸다.

“안 돼애! 그러지 마. 내가 잘 조일게. 노력할게, 응? 나한테만 넣어 줘어…….”

아빠는 울먹이면서 애원했다. 남자의 입꼬리가 씩 올라가는 게 보였다. 두 사람의 대화는 실로 충격적이었다. 아직 섹스를 야한 영상으로밖에 접해 보지 않아서 이게 정상적인 섹스인지 판단이 제대로 서지 않았다. 개인적인 소감을 말하자면…… 역겨웠다. 사람 같지 않고 그냥 섹스에 미친 짐승 같았다.

저런 게 섹스라면 평생 하고 싶지 않았다. 아까 먹은 고기가 다 올라올 것 같았다.

남자는 자신에게 매달리는 아빠가 마음에 들었는지 본격적으로 허리 짓을 시작했다. 아빠의 교성이 온 집 안을 울렸다.

“앗, 흐응, 윽, 흐잇, 조, 좋아, 거, 거기, 더, 더 찔러 줘, 하읏, 응, 흐앙……!”

남자는 아빠의 팔에 묶인 벨트를 풀어 준 다음 몸을 뒤집게 했다. 아빠의 전신을 완전히 조리대에 올려놓고는 정자세로 다시 삽입했다. 아빠는 동아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목덜미를 양팔로 열렬히 감싸 안았다. 아빠는 극한의 쾌감을 느끼는지 위로 뻗어 있는 다리가 경련을 일으키듯 바들바들 떨리고 발가락이 곱아들었다가 펴지기를 반복했다.

“안에다가 쌀 테니까 한 방울도 흘리지 마. 알겠어?”

“하읏, 응, 읏, 아, 안 흘릴게. 잔뜩 싸, 싸 줘. 흐읏, 윽, 하응……!”

남자는 사정감이 다가왔는지 스퍼트를 더욱 올려 박아 댔다. 아빠의 엉덩이 살과 남자의 하복부가 부딪쳐 강렬한 마찰음을 냈다.

“아아 앗, 나, 싸, 쌀 것, 같아……! 아읏, 흣, 하으으으윽!”

아빠가 먼저 자지러지는 신음을 뱉어 내며 절정에 다다랐고 직후에 남자도 잘게 몸을 떨더니 아빠의 안에 사정했다. 아빠는 남자가 말한 것처럼 자신의 아래에 힘을 줘 정액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했다.

마침내 남자가 자신의 성기를 빼내었다. 그리고 휴지로 가볍게 문질러 닦았다. 아빠는 여전히 다리를 M 자로 벌린 채로 조리대 위에 요리되길 기다리는 음식 재료처럼 누워 있었다.

남자는 아빠의 머리채를 잡고 밑으로 끌어당겼다. 아빠는 우당탕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저렇게 아빠를 막 다루다니. 너무 폭력적이었다. 제법 되는 높이인지라 부딪힌 등허리가 아픈 모양인지 아빠가 인상을 찡그리며 우는소리를 냈다.

“아, 아파아……!”

“엎드려서 엉덩이 위로 쳐들어. 정액 안 흘러내리게.”

남자는 아빠의 안에 싸 놓은 정액이 바깥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에 집착하고 있었다. 아빠가 남자의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태도에도 순응하고 있는 것이 이해가 안 갔다. 두 사람은 그냥 평범한 연인 사이가 아닌 걸까.

아빠는 남자의 말을 듣고 꾸물꾸물 몸을 움직여 엎드린 다음 엉덩이를 높게 치켜들었다. 자세를 유지하기에 힘이 드는지 엉덩이가 바르르 떨리는 것이 보였다.

남자는 그런 아빠를 내버려 두고 갑자기 냉장고를 뒤지기 시작했다. 남자는 야채 칸에서 무언가를 꺼내 아빠에게 다가갔다. 대충 형태를 봤을 땐 당근인 듯싶었다. 남자는 그것을 가차 없이 엉덩이 사이에 가져다 댔다. 차가워서 그런지 아빠의 어깨가 바짝 움츠러들었다.

“하으읏……!”

남자의 성기보다는 작은 사이즈였지만 갑자기 차가운 것이 들어가니 놀란 모양이었다. 남자는 힘주어 당근을 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아빠는 괴로운 듯 바닥을 손톱으로 긁었다. 아빠의 구멍 깊숙한 곳까지 파고든 당근은 어느새 모습을 완전히 감추었다. 남자의 성기 크기만큼 벌어져 있던 구멍도 어느새 꽉 다물려 있었다.

남자는 잘 버텼다는 듯, 흐뭇해하는 미소를 지으며 아빠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주었다. 아빠는 힘에 겨워하면서도 남자에게 칭찬받자 주인에게 간식을 받은 강아지처럼 기쁘게 웃었다. 남자는 다정한 목소리로 아빠의 귓가에 속삭였다.

“내일 아침은 카레가 좋겠어.”

뜬금없이 웬 카레? 남자는 그렇게 말하곤 갑자기 내가 있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설마 나를 발견하겠나 싶었는데, 놀랍게도 그는 어정쩡하게 계단 한중간에 서 있는 내 쪽을 정확히 쳐다봤다. 주방 쪽은 가로등 불과 달빛으로 인해 밝은 편이었으나 계단 쪽에는 조명이 하나도 없어 내가 보이지 않을 텐데. 우연히 그냥 이쪽을 본 거였길 바랐다.

하지만 남자는 진짜로 나를 보고 있기라도 한 듯 가만히 멈춰서 내 쪽을 바라봤다. 심장이 터질 듯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나는 최대한 소리 없이 다시 계단을 올라가 내 방으로 들어왔다.

문을 걸어 잠그고 이불 속으로 숨어들었다. 좀처럼 심장이 진정되지 않았다. 그 와중에 아래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잠옷 바지를 슬쩍 들어 보니 드로어즈 밑으로 성기의 윤곽이 뚜렷하게 드러나 있었다. 두 사람의 관계를 보고 발기한 것이다.

나도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나는 평소에도 그런 가학적인 섹스 영상은 본 적도 없고 오히려 싫어하는 편이였다. 그런데 우리 아빠가 심하게 다뤄지는 모습을 보고 이렇게 된 것을 보면 나는 아빠에게 흥분하는 쓰레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빠에게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빳빳하게 일어선 성기에 손을 가져다 대고 말았다. 나 자신이 통제 불능의 짐승이 된 것 같았다. 얼마나 흥분해 있었는지 몇 번 문지르지도 않았는데 금세 사정을 했다.

“하아, 하아…….”

손에 묻은 정액을 물끄러미 보다가 나 자신에게 너무 소름이 끼쳤다. 휴지로 손바닥을 빡빡 문질러 닦았다. 방 안에 비릿한 정액 냄새가 가득 찼다.

최악이었다.

*

*

밤새 잠을 설쳤다. 몇 번이나 잠에서 깨어 몸을 뒤척였다. 내가 어떤 상황이든, 해는 어김없이 밝았고 아빠가 밥을 먹으라며 내 방문을 두드렸다.

“현성아! 밥 먹어. 얘가 왜 갑자기 문을 잠갔지?”

아빠는 문을 열고 들어오려다가 내가 잠가 둬서 문고리만 헛돌렸다. 나는 일어나서 문을 열어 주었다.

어젯밤 일 때문에 나는 심란해서 죽겠는데, 아빠는 혈색이 더 좋아졌다. 싱긋 웃는 얼굴이 더없이 행복해 보였다.

“왜 문 잠가, 아빠 서운하게?”

아빠는 내가 평소에 문을 잠근 적이 없어 의아해하는 듯했다.

“……그냥.”

“왜, 밤에 자위했어?”

아빠는 다 안다는 듯한 표정으로 얄궂게 웃으며 물어 왔다. 아빠는 민망한 주제로도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는 게 친한 부자 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거 묻지 마.”

나는 도저히 아빠의 얼굴을 보고 대화할 자신이 없어 시선을 피하며 화장실로 갔다. 아빠는 내 뒤를 졸졸 따라오며 급기야 화장실에 들어와선 내 허리를 잡고 뒤에서 나를 끌어안았다.

등 뒤로 아빠가 바짝 붙는 게 느껴졌다. 알 수 없는 짜릿한 느낌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나는 아빠의 손을 거둬 내며 화난 척 목소리를 높였다.

“아, 하지 마.”

“너 진우 때문에 그래? 어제 분위기 좋았잖아.”

“…….”

“아빠가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야……. 너도 좋아해 줬으면 좋겠어.”

내가 자길 쳐다보지도 않고 계속 앞만 보고 있으니 화가 난 줄 안 모양이었다. 물론 화가 나긴 했으나 아빠한테 난 건 아니었다. 아빠를 보고 흥분한 나 자신한테 화가 났고, 그 진우라는 남자가 싫었을 뿐이었다. 아빠에게 상처를 주고 싶진 않았다. 아빤 급기야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후우…….”

나는 뒤돌아서 아빠를 끌어안았다. 아빠는 나보다 키가 작아서 한 품에 들어왔다. 그 남자는 이렇게 마르고 약한 아빠를 마치 장난감처럼 다뤘다. 어젯밤 일을 생각하면 좋아하려 해도 좋아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빠가 진심으로 좋아한다고 하니 차마 단호하게 싫다고 말하기가 힘들었다.

그래. 남자가 아빠를 속인 것도 아니고, 아빠도 받아 줄 수 있으니 같이 그런 행위를 한 거겠지. 아빠도 싫었으면 거절을 했을 것이다. 나는 남자의 존재를 인정해 주기 위해서 최대한 합리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했다. 여전히 남자가 싫긴 했지만, 적어도 괜찮은 척 연기는 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알았어. 노력해 볼게.”

아빠는 그제야 안심했는지 내 가슴팍에 얼굴을 푹 묻었다.

“고마워……. 진짜 고마워.”

아빠의 정수리에서 나와 같은 샴푸 냄새가 풍겼다. 같은 걸 쓰는데도 왠지 향기가 다르게 느껴졌다. 나는 아빠의 어깨를 바짝 끌어안으며 그 향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때, 열린 화장실 문 사이로 남자가 빼꼼히 고개를 들이밀었다.

“아침부터 사이가 좋네. 나도 껴도 돼?”

남자는 기분 나쁘게 한쪽 입꼬리만 비틀어 웃고 있었다. 농담인 줄은 알았지만 우리 둘 사이에 마음대로 껴들려고 한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 급격하게 기분이 나빠졌다. 나는 아빠를 내 품에서 떼어 내며 말했다.

“……씻고 나갈게. 가 있어.”

아빠는 고개를 슬쩍 끄덕이고는 뒤돌았다. 남자가 눈물로 얼룩진 아빠의 얼굴을 보고는 손을 들었다. 나는 잠시 남자가 아빠를 때리려고 한다고 오해했지만, 남자는 부드러운 손길로 눈물을 닦아 주었다.

“왜 울었어.”

“그냥…….”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하아……. 밥상에서 또 남자를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정성스레 샤워를 하고 나서 1층으로 내려갔다.

바람대로, 두 사람의 식사는 이미 거의 다 끝나 있었다. 아빠는 계단을 내려오는 날 보고 볼멘 목소리로 말했다.

“왜 이렇게 늦게 내려와. 우리 벌써 밥 다 먹었잖아아.”

“……샤워했어.”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대꾸하며 내가 평소에 앉는 자리에 앉았다. 남자는 내 대각선에 앉아 있었다. 여유롭게 의자 등받이에 팔을 걸치고는 나를 관찰하듯 쳐다봤다. 입가에 걸린 미소도 짜증 났다. 마치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그럼 뭐 어쩔 건데. 내가 위층에서 자는 거 뻔히 알면서 섹스를 하다 걸린 건 자기들인데. 조심했었어야지. 나는 짜증이 나서 남자를 노려보았다.

아빠는 밥을 새로 퍼서 내 앞에 주었다. 오늘 아침은 카레였다. 어젯밤에 남자가 카레 어쩌고 하더니. 남자가 바라는 대로 해 준 모양이었다. 이것 또한 기분이 나빴다. 난 카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밥을 먹어야 하니까 대충 숟가락으로 카레를 뜨는데, 잘게 썰어진 당근이 눈에 띄었다. 원래 카레에 당근이 들어간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오늘따라 기분이 이상하지?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문득 어제 남자가 아빠의 안으로 당근을 밀어 넣던 모습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건 아니겠지.

나는 입으로 카레를 넣으려다 말고 고개를 번쩍 들어 남자와 아빠를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두 사람은 내가 카레를 먹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남자는 계속 뭔갈 안다는 듯한 표정이었고, 아빠는 평소처럼 밥을 먹는 나를 흐뭇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아…….”

어떻게 할지 잠시 고민했다. 여기서 극렬한 거부 반응을 보였다간 내가 어제 그 장면을 봤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게 다 헛된 망상일지도 모르고. 설마…… 미친 변태들도 아니고, 나한테 그 짓을 했던 당근을 먹이려고 할까.

나는 조심스럽게 수저를 들고 입에 넣었다. 그냥 일반적인 카레 맛이었으나, 그것과는 상관없이 속에서부터 거부 반응이 일어났다.

“우으욱……!”

나는 입을 틀어막고 싱크대로 뛰어갔다. 먹었던 카레를 도로 뱉어 내었다. 어느새 위액도 올라왔는지 입에서 신맛이 났다. 아빠는 뛰어와 내 등을 두드려 주었다. 그리고 걱정스러워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속이 안 좋아? 죽 끓여 줄까?”

“아니, 됐어. 몸이 좀…… 안 좋은가 봐. 아침은 거를래.”

“그래, 그럼…… 죽 끓여 둘 테니까 배고프면 먹어.”

아빠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는 내 이마를 손으로 쓸어 주었다. 나는 입가를 손등으로 닦으며 뒤돌아섰다. 남자가 여전히 뱀 같은 웃음을 흘리며 나를 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뛰듯이 계단을 올라갔다. 얼른 남자가 사라졌으면. 될 수 있으면 나와 다신 만날 일 없도록 아빠와 헤어지길 바랐다.

나는 새벽 내내 뒤척이느라 부족했던 잠을 보충하려 오후가 다 되도록 잠을 잤다. 눈을 뜨니 2시 정도였다. 극심한 배고픔에 잠을 더는 자지 못할 정도였다. 주린 배를 부여잡고 1층으로 내려가니 아무도 없었다. 가스레인지 위에 커다란 냄비가 하나 있었다. 뚜껑을 열어 보니 죽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이렇게 많이 할 필요는 없는데. 애초에 진짜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니었다.

죽을 한 그릇 떠서 혼자 식탁에 앉아 먹었다. 아빠와 남자는 어디 갔을까. 딱히 아빠 방에서 소리도 안 나는 거 보니 어딜 나간 모양이었다. 둘이 진짜 연인들처럼 데이트라도 하고 있는가 보지. 기분이 언짢았다. 섹스할 때 아빠를 그렇게 홀대해 놓고 평소라고 잘해 줄까. 내 앞에서 보여 주는 모습은 다 위장일 게 분명했다.

“하아…….”

마음이 복잡해서 그런지 식욕도 별로 없었다. 죽을 반도 못 먹었다. 남은 죽을 버리려고 음식물 쓰레기통의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는 아까 먹다 남긴 카레와 대단한 존재감을 뽐내는 당근이 하나 통째로 들어가 있었다.

하아…… 다행이었다. 내가 과한 상상을 한 것이었다. 두 사람은 변태 같은 섹스를 했지만 적어도, 나를 거기에 끌어들일 생각은 안 하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

나는 이제부터 그냥 두 사람 사이에 간섭하지 않기로 했다. 그 남자가 마음에 안 들긴 했으나 아빠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하니 헤어지라고 하기도 좀 그렇고…… 내가 뭐라 한다고 해서 아빠가 내 말을 들어 먹을 것 같지도 않았다. 이미 그 남자에게 단단히 홀려 있는 듯했다. 바라는 게 있다면 그냥…… 너무 깊게 빠지진 않았으면 싶은데. 이미 틀린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차라리 신경 쓰지 않는 게 나한테 이로울 것 같았다. 두 사람은 내 정신 건강에 너무 해로웠다.

내가 저지하지 않으니 남자는 자기 집처럼 우리 집을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출퇴근을 아예 우리 집에서 했다. 멀쩡한 자기 집 놔두고 남의 집에서 뭐 하는 건가 싶었지만 아빠가 너무 행복해 보여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늦게 왔네? 친구랑 놀다 와?”

남자의 얼굴을 보기 싫어서 일부러 학교 도서관 열람실에서 시험공부를 하다 밤늦게 돌아왔는데도 나를 기다린 건지 우연인지,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남자와 마주쳤다. 남자는 나를 위아래로 느릿하게 쳐다보며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었다.

“……곧 시험이라서요.”

내가 왜 남자에게 늦은 것에 대한 변명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남자가 이상한 상상한 나래를 펼치는 게 더 싫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바른대로 말을 했다.

“그래. 피곤할 텐데 얼른 올라가서 쉬어.”

“……네.”

부모도 아니면서 챙기는 척은.

짜증이 났지만, 겉으론 내색하지 않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2층은 내 방과 창고뿐이라 두 사람이 위로 올라오는 일이 없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1층에 주방이 있어서 물을 마시거나 뭘 먹으려고 주방으로 내려갈 때마다 남자를 마주치니 불편했다.

최근 들어 날씨가 매우 따듯해져서 속옷 하나만 입고 돌아다닐 때도 많은데 그러다가 남자와 마주치면 내 몸을 은근히 훑어보곤 했다. 그럴 때면 기분이 미친 듯이 나빴다. 내 몸을 품평하는 듯한 시선이 싫었고, 우리 아빠를 두고 나한테 한눈파는 것 같아서 싫었다. 게이들은 문란하다던데, 설마 나를 어떻게 해 볼 생각을 하는 건 아닌지 걱정됐다.

아빠는 내가 이런 불편함을 겪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저 들떠 있었다. 신혼집 꾸미듯이 새로운 가구나 가전들을 사고 남자와 함께 장을 봐 왔다.

곧 요리가 끝난다고 기다리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식탁에 앉아 있었다. 아빠의 얼굴에선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그렇게 좋을까. 하긴. 오래돼서 기억이 조금 흐려지긴 했지만 엄마와 둘이 마주 보고 있을 때도 아빠는 저렇게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10여 년 만의 연애니까 얼마나 더 떨리고 설렐지는 예상이 가긴 한다. 그래도 이왕 만날 거면 좀 더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이러고 있으니까 우리 꼭 부부 같다. 그렇지?”

아빠는 주방에서 남자와 나란히 서서 요리하면서 말했다. 그냥 혼자 하는 게 더 효율적일 것 같은데 굳이 같이 서서 하는 이유는 뭘까.

“그러네, 자기야.”

남자는 아빠의 장단에 맞춰 낯간지러운 호칭으로 아빠를 불렀다.

……지랄 났네.

아빠의 양 볼이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러자 남자는 귀엽다면서 볼에 살짝 입을 맞췄다. 아빠의 부끄러워하는 모습은 매우 귀엽긴 했으나 남자 때문에 기분이 언짢았다. 입맛이 확 떨어졌다.

“현성아, 맛이 어때?”

깨작깨작 먹는 시늉만 하는데 아빠가 물어 왔다. 나는 괜히 내 기분이 별로인 걸 아빠한테 화풀이를 했다.

“……맛없어.”

아빠는 당황하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밝았던 얼굴에 금세 먹구름이 꼈다.

“그, 그래? 내가 뭐 실수했나 보다. 어떡하지…….”

아빠는 자기가 요리를 만들다가 레시피를 잘못 본 것 같다고 자책했다. 나 먹이려고 열심히 요리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니 또 아빠한테 미안해져서 바로 태세를 전환해 숟가락 가득 음식을 펐다.

“아니다. 먹을수록 맛있어지네. 괜찮아.”

“그래? 다행이다…….”

아빠는 내가 맛있다고 하니 그제야 안심한 듯 다시 미소를 지었다. 남자는 내가 하는 짓을 보곤 소리 없이 웃었다. 내 생각을 다 읽고 있는 것처럼 구는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두 사람이 요리했으니까 내가 설거지할게.”

밥이 코로 넘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먹어서 맛도 기억나지 않았지만 일단 예의상 설거지는 내가 해야 할 것 같았다. 아빠는 수고하라며 내 등을 두드리고 방으로 들어갔고, 남자는 남아서 식탁에 있는 그릇들을 정리해 내가 서 있는 싱크대로 가져왔다.

“잠시만.”

남자는 그렇게 속삭이더니 내 쪽으로 몸을 굽혀 싱크대 안에 한 무더기의 그릇을 내려놓았다. 남자의 머리통이 내 눈앞에 확 다가왔다가 물러났다. 남자에게선 은은한 향수 냄새가 났다. 난 아직 향수 브랜드도 잘 모르고, 무슨 향이 있는지도 몰라서 정확히 뭔진 모르겠지만 남자의 겉모습과는 퍽 잘 어울리는 묵직한 향이었다. 왠지 모르게 심장이 조금씩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남자는 그릇을 내려놓고도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싱크대 옆에 기대어 서선 내가 설거지하는 것을 지켜봤다. 내 옆얼굴을 빤히 보는 게 느껴졌다. 처음엔 그냥 무시하려고 했으나 점점 더 신경이 쓰였다. 나는 결국 설거지를 하다 말고 고무장갑을 벗어 던지며 남자 쪽으로 몸을 홱, 틀었다.

“저한테 뭐 할 말 있으세요?”

남자는 싱긋 웃었다. 내가 씩씩대며 저를 노려봐도 여전히 웃고 있었다. 남자는 한참 나를 내려다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현성이는 왜 나를 싫어해?”

내가 남자를 싫어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아빠와 섹스를 할 때 아빠를 대하는 태도 때문이었다. 그걸 보고 나니 평상시에 다정하게 대해 주는 모습을 봐도 가식처럼 느껴지고 뭔가 꿍꿍이속이 있어 아빠에게 접근했다는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걸 대놓고 말할 순 없었다.

“……아빠가 갑자기 애인이랍시고 남자를 데려왔는데, 그럼 좋아할까요?”

“그것 때문이 아니잖아.”

“그럼 제가 왜…….”

“그날 밤에, 봤잖아.”

“……!”

남자는 그날 나를 본 게 맞았다. 나는 놀란 얼굴을 숨기지 못했다. 아닌 척 연기를 해야 했는데……. 남자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입을 열었다.

“날 괴물처럼 보지 않아도 돼. 난 그저 너희 아빠가 원하는 대로 해 준 것뿐이야.”

아빠가 원했다고? 아빠가 그런 변태 같은 취향이 있을 리가 없었다.

“……거짓말.”

“진짜야. 넌 잘 모르겠지만, 너희 아빤 거칠게 다뤄지는 걸 좋아해. 뺨을 맞거나, 목 졸려지는…… 여태까지 본인 취향을 모르고 살아온 게 신기하더라.”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었다. 이 남자가 사실을 날조하고 있었다. 아빠가 원래부터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다. 아빠는 멀쩡한 사람이었는데 이 남자가 아빠에게 이상한 짓을 한 게 분명했다. 순진하고 착한 우리 아빠를 대체 어떻게 길들여서 그 지경으로 만든 건지가 궁금했다.

내가 부정하든 말든 남자는 신경조차 쓰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또 네가 뭘 모르는지 알아? 너희 아빤 쾌락에 약해.”

“…….”

“좀만 쑤셔 줘도 금방 흥분해서 질질 싼단 말이지.”

“…….”

“살은 또 어찌나 약한지. 조금만 손을 대도 금방 빨갛게 달아올라.”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날 봤던 장면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재생됐다. 처음 들어 본 아빠의 높은 신음, 그리고 어슴푸레한 달빛 속에서 힘없이 흔들리던 나신.

남자는 한동안 말없이 가만히 있었다. 진짜일까. 아빠는…….

“근데 현성이 네가…… 네가 화가 난 게 정말 나 때문이야?”

남자는 내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나도 저절로 시선이 그쪽으로 내려갔다. 얇은 트레이닝 바지에 성기가 일어난 윤곽이 훤히 보였다. 나는 너무 놀랐기도 하고, 수치스럽기도 했다. 단지 그날의 아빠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흥분하고 있었다. 나는 이 남자가 등장하고 나서부터 이상하게 변해 가고 있었다.

“……다신 우리 집에 들락거리지 말아요. 아빠 애인이랍시고 나한테 주제넘게 굴지 말란 말이에요. 경고했어요.”

나는 단순하게 이 남자만 없어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 생각했다. 내 나름대로 단호하게 말했지만, 남자가 제대로 알아먹었을지는 의문이었다. 남자는 여전히 여유로운 태도를 유지한 채로 그저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남자를 마지막으로 한 번 쏘아보고 등을 돌려 도망치듯 내 방으로 올라갔다.

문을 걸어 잠그고 문에 기대어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계속 부정하고 있었지만, 남자가 싫었던 진짜 이유는, 아빠를 빼앗겼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아빠가 10년 동안 아무랑도 사귀지 못한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나였다.

연인 사이까지 발전한 적은 없지만, 아빠에게 몇 번 데이트 상대가 있긴 했다. 하지만 나는 아빠가 상대에게 깊은 감정을 느낄 때쯤 항상 훼방을 놓곤 했다. 아프다는 핑계로 상대를 만나러 간 아빠를 불러내고, 보고 싶다고 칭얼대곤 했다. 꽤 자주 그런 일이 생기자 아빠는 결국 누군가를 만나는 것 자체를 포기하게 됐다.

난 그게 그냥…… 부모의 애정을 독차지하고 싶어 하는 자식의 평범한 행동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남자의 등장으로써 더는 나 자신을 속일 수가 없게 됐다. 나는 아빠에게 가족 이상의 감정을 가졌고, 아빠에게 욕정을 느끼고 있었다.

* * *

내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남자는 그날 이후로 진짜 우리 집에 발길을 뚝 끊었다. 내 말이 먹혔다는 사실이 매우 의외였다. 그러나 왠지 꿍꿍이속이 있을 것 같단 의심이 들었다.

거기다 우리 집에만 오지 않는 줄 알았던 남자가 아빠와의 관계 자체도 끊어 버린 모양이었다. 갑자기 의문의 이별을 당한 아빠는 그 충격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다. 슬퍼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프긴 했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이쯤에서 남자를 끊어 내는 게 아빠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나는 남자가 사라지자 빠르게 평온함을 되찾았다. 아빠에게 이상한 감정을 느꼈던 게 없던 일처럼 느껴졌다. 그래, 갑자기 눈앞에서 충격적인 걸 보게 돼서 잠시 착각했던 게 분명하다. 최근에 시험공부를 하느라 스트레스로 제정신이 아니어서 더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반면에 아빠는 엄청나게 상심해서 하루가 다르게 말라 가는 게 눈에 보였다. 생기도 사라졌고 어두운 기운이 아빠를 감싸고 있었다. 나는 침대에서 나오지를 못하는 아빠에게 직접 밥을 가져다줘야만 했다.

“밥 먹어.”

“……생각 없어.”

“……굶어 죽으려고 그래? 빨리 먹어.”

나는 아빠의 손에 숟가락을 억지로 들려 주었다.

“속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해. 안 들어가.”

나야말로 속이 답답했다. 대체 그 새끼가 아빠를 어떻게 구슬렸길래 이렇게 깊이 빠져서 벗어나질 못하는 걸까. 아빠는 밥을 먹이려는 나와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진우 보고 싶어…….”

나는 아빠를 품에 안고 다독여 줬다. 애처럼 구는 게 짜증 나면서도 애처로운 마음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남자가 없었던 시절처럼 아빠가 나에게 의존하는 게 기분 좋았다. 나는 어쩌면, 이번 일을 계기로 아빠와 좀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그건 나 혼자만의 상상인 것 같았다. 아빠는 시간이 흘러도 남자를 잊지 못하고 오히려 더 그리워했다. 실제로 한밤중에 물을 마시러 내려왔다가 아빠 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을 들었다. 나는 그것을 모르는 척해야 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홀린 듯 아빠의 방으로 다가갔다.

방문이 살짝 열려 있어 들여다보니, 아빠는 혼자 자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반적인 남자들처럼 성기를 만지는 게 아니었다. 성기 모양과 비슷한 물건이 아빠의 엉덩이 사이를 들락거리고 있었다. 다소 충격적이었다. 아빠는 그 남자가 아니면 안 되는 몸이 돼 버린 걸까.

“진우야, 진우야……! 하윽, 읏, 흐응!”

아빠는 애달프게 그 남자의 이름을 부르며 제 손을 움직였다. 남자를 갈구하는 아빠가 애처로우면서도, 어쩐지 계속 보고 있으니 아래가 달아올랐다. 나도 모르게 속옷 속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나는 아빠가 자위하는 소리를 들으며 내 것을 만졌다. 미친 행동인 걸 알지만 그만둘 수가 없었다.

소리가 새어 나갈까 봐 티셔츠를 입에 물고 이를 앙다물었다. 아빠의 울음기 섞인 신음을 듣고 있자니 참을 수 없는 흥분이 느껴졌다. 나는 결국 아빠가 절정에 다다르는 것과 동시에 함께 사정하고 말았다.

아빠는 피곤했는지 곧장 잠이 든 것 같았다. 나는 조용히 들어가 아빠의 몸에 이불을 덮어 주고 불을 끄고서 나왔다.

남자만 없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 믿었는데. 여전히 우리는 엉망이었다.

아빠는 계속해서 식음을 전폐했다. 나아질 기미가 안 보였다. 나는 한 번도 연애해 본 적이 없어서 실연의 아픔이 얼마나 큰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안 그래도 마른 몸인데 더 말라서 뼈밖에 안 보이는 아빠를 도저히 두고 볼 수가 없어 나는 남자를 찾아가기로 했다. 남자의 얼굴을 다신 보고 싶지 않았는데……. 하지만 사람이 다 죽어 가는데 그냥 앉아서 지켜볼 순 없었다. 게다가 지난밤의 일로 남자가 없다고 해도 우리 사이가 보통의 부자 사이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자가 있더라도 거기에 휘둘리지만 않으면 될 것 같았다.

남자의 카페로 찾아가 무작정 카운터로 향했다. 아르바이트생에게 그의 번호를 알려 달라고 하려 했는데, 나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가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다. 조금 당황한 나와는 달리 그는 카운터 바에 양팔을 얹으며 여유 만만한 미소로 나를 반겼다.

“현성이 안녕.”

“…….”

“뭐 마시러 왔어?”

“……나랑 얘기 좀 해요.”

바로 용건을 꺼냈다. 남자는 내가 그 말을 할 줄 알았는지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다.

“잠시만 빈 테이블에 앉아서 기다려 줄래?”

나는 고개를 슬쩍 끄덕이고는 테이블들이 놓인 쪽으로 걸어갔다. 최대한 구석진 자리에 앉아 남자가 오기를 기다렸다. 남자는 잠시 후에 앞치마를 벗은 상태로 내 앞으로 와 테이블에 커피 두 잔을 내려놓았다. 하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였고, 하나는 보기만 해도 달아 보이는 음료였다.

“뭐 좋아할지 몰라서.”

남자는 자연스럽게 내 맞은편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사실 아메리카노는 써서 먹지 못하지만, 어린애 취급을 받을까 봐 아메리카노를 내 앞으로 가져왔다.

“음료나 먹으러 온 거 아니에요. 그쪽한테 할 말 있어서 온 거예요.”

“그래? 말해 봐.”

남자는 편하게 의자에 몸을 기대며 내 말을 기다렸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단도직입적으로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우리 아빠랑 무슨 일 있어요?”

“잠시 시간 좀 가지자고 했어.”

“왜요?”

“연인 사이의 일인데, 네게 말할 의무는 없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남자가 아빠를 떠난 것은 순전히 나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닌 척하는 게 열이 받았다. 그리고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빠를 사랑한 게 아니었나? 내가 집에 오지 말라고 으름장을 놨기로서니, 그길로 곧장 아빠와 이별을 하다니.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남자의 머릿속을 뜯어보고 싶었다. 지금으로선 그냥 우리 부자를 괴롭히는 걸 즐기는 거로밖엔 안 보였다.

아빠와 관계를 하는 것을 봤을 때 보통 사람은 아닌 줄 진작 알긴 알았다. 하지만 일부러 우리 부자를 괴롭히려고 이 모든 상황을 만들어 낼 정도로 사이코인 줄은 몰랐는데.

“우리 아빠 괴롭히지 말아요.”

나를 괴롭히는 건 상관없었다. 하지만 정신력이 약한 우리 아빠를 흔드는 건 참기 힘들었다. 남자는 내 날 선 목소리에 흥미롭다는 듯 한쪽 눈썹을 찡긋 들어 올리며 웃었다.

“착한 아들이네.”

남자의 가벼운 태도만 봐도 알 것 같았다, 우리 아빠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빠가 불쌍했다. 아빠 앞에서는 세상 다정한 척했겠지. 아빤 이 남자가 이런 양아치 새낀지도 모르고…….

“우리 착한 아들은, 아빠를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어?”

“……뭐라고요?”

남자는 씩 웃었다. 나한테 뭘 바라는 게 있는 건가. 나는 그냥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내가 뭘 할 수 있다고.

“돈은 없어요.”

남자는 어이없다는 듯 픽 웃었다.

“돈은 형도 많아. 그럼 다른 건…… 할 수 있어?”

남자는 나를 위아래로 훑으며 은근하게 물었다. 온몸에 뱀이 기어 다니는 느낌이 들어 소름이 끼쳤다. 뭘 원하는지 알 것 같았다. 속에서 욕이 치밀었다.

“이 변태 새끼.”

남자는 조금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입가에는 여전히 웃음기가 남아 있었다. 나는 카페 안의 사람들이 다 쳐다볼 만큼 큰 소리로 남자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집에서 내 몸 쳐다볼 때 알았지, 이 사이코 변태 새끼가! 다신 우리 아빠한테 접근하지 마.”

나는 내 가방을 집어 들고 카페를 빠져나왔다. 시름시름 앓고 있는 아빠가 걱정되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빠도 이 남자가 나에게 뭘 요구했는지 알게 되면 정이 뚝 떨어질 게 분명했다. 애초에 이런 사이코와 대화다운 대화를 기대하고 온 나 자신이 멍청하게 느껴졌다. 여길 오질 말았어야 했는데.

아빠는 어떡해서든 내가 정상으로 되돌려 놓을 것이다. 그래, 원래도 그 남자 없이 둘이서 잘만 지냈는걸.

이 남잔 그저 잠시 지나가는 태풍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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