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에스카는 정원에서 아장아장 걷고 있는 엘렌델을 바라보며 웃었다. 엘렌델은 샤샤의 손을 잡고 걷고 있었다.
샤샤는 엘렌델을 무척이나 귀여워해서 뭐든 그녀가 가지고 싶다고 하면, 심지어 시선만 한 번 줘도 그걸 사다 주지 않고는 배기지 못했다. 에스카가 몇 번이나 제지했지만, 따로 장난감 방을 만들어야 할 정도로 산더미 같은 물건이 쌓였다.
엘렌델의 머리카락은 쿠하힐과 똑같이 새까만 색이었다. 아를은 그런 엘렌델을 까마귀 아가씨라고 놀렸다. 정말로 자신과 쿠하힐을 반반 닮은 얼굴이라 에스카는 신기할 지경이었다.
어떻게 보면 쿠하힐이 보이는데 또 이렇게 보면 자신의 얼굴이 보였다.
“아이가 쑥쑥 크네요.”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에스카는 자리에서 일어나 깊게 인사했다.
“델루치아 공작부인.”
공작부인은 살짝 미소 지으며 에스카의 인사를 받았다. 아를이나 샤샤는 에스카가 머리를 숙이는 걸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암묵적으로 받아들였다.
공작부인은 유모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이들을 인사시켜요.”
“예, 마님.”
유모가 남자아이 둘을 내려놓자 샤샤가 허리를 펴고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팔에 엘렌델이 쏙 안겨 있었다.
“아들 쌍둥이라니, 너무 귀여워요.”
“둘이 노는 걸 보면 그 생각이 사라지실걸요.”
그렇게 말하며 공작부인은 에스카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결혼식에 손님으로 온 에스카를 보고 에스카와 대화하는 남편을 보았을 때, 공작부인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아, 이 사람이 남편이 사랑하는 여자구나.’
딱히 사랑을 원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정략결혼이니까. 아를 역시 그렇게 이야기했다. 대신 우리는 다른 우정을 쌓아나가자고, 다른 여자와는 만나지 않겠다고 그는 조용히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실제로 바람둥이였던 그의 명성은 결혼 후 완전히 사라졌다.
그가 애처가라느니 공처가라느니 하는 소문이 돌았지만 아를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그녀는 만족했다.
어차피 그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다. 에스카가 남편인 쿠하힐을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건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자신이 차지한 이 자리가, 그의 옆에 있을 수 있는 최고의 자리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 역시 아를을 사랑해서 결혼한 게 아니니까.
그녀도 꿈꾸는 10대 소녀였고 연모하는 상대도 있었다. 신분 낮은 기사와의 도망도 꿈꾸었지만 그게 현실이 되지 못할 거라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오른쪽이 케이, 왼쪽이 아룬이에요.”
공작부인의 말에 에스카는 한쪽 무릎을 꿇고 아이들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 케이, 아룬.”
케이는 놀랍도록 아를을 쏙 빼닮아 있었다. 은발에 보라색 눈동자. 그리고 아룬은 반반이었다. 갈색 머리에 보라색 눈동자. 그 눈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색이 다르기는 하지만 말이다.
케이와 아룬은 에스카에게 인사를 했다. 케이는 머뭇거리며 인사했고 아룬은 큰 소리로 인사했는데, 벌써부터 성격 차이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인사한 후 둘은 곧 어린애다운 통통한 팔다리를 놀려 씩씩하게 정원으로 걸어 들어가 샤샤의 치맛자락에 매달렸다.
“셋째는 생각이 없으신가요?”
에스카의 물음에 공작부인이 웃고는 말했다.
“있어요. 아를의 말에 의하면 앞으로 둘, 셋은 더 낳아야 한대요. 낳을 사람은 저인데 말이죠.”
남자가 자신뿐이라서 압박을 받았던 아를이니 그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에스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리고 살짝, 자신은 둘째를 낳지 못한다는 게 아쉬워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엘렌델 하나를 낳은 것도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만약에 스승님이 리저렉션 마법을 남겨두지 않았다면 그대로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쿠하힐과 엘렌델, 둘만 남겨뒀을 거라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엘렌델을 낳고 나서도 쿠하힐은 아이를 예뻐하지 않았다.
하지만 에스카를 대신해서 육아의 대부분을 그가 담당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서서히 쿠하힐은 자신의 딸과 사랑에 빠졌던 것이다.
만약 처음부터 달랑 둘만 남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쿠하힐이 엘렌델을 사랑해주었을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 지점까지 가는 데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남편분은 요즘 뭘 하고 있죠?”
공작부인의 물음에 에스카가 웃으며 대답했다.
“여전히 상단에서 일하고 있어요. 이번에는 꽤 장기 일을 맡게 돼서. 덕분에 혼자 오게 됐네요.”
“얼마 전에 유명한 산적을 처치했다고 들었어요.”
“저도 잘 모르는데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에스카는 뿌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용병의 세계야 잘 모르기 때문에 에스카로서는 「와, 쿠가 그렇게 나쁜 놈을 없앤 거야?」 정도의 감흥이었지만, 실제로 쿠하힐의 명성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었다.
상단 안에서도 신뢰를 얻어, 승진에 승진을 거듭해 꽤 높은 직급까지 올라가 있었다. 에스카는 그런 그가 다칠까 봐 불안해 자꾸 마법세공품을 만들어 건네주었다. 나중에 쿠하힐이 진지하게 “더 이상 할 곳도 없어, 에스카. 그리고 이거 너무 눈엔 띄고.” 하며 거절할 정도였다.
샤샤는 조카들에게 뭐라고 일장연설을 늘어놓더니 엘렌델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았고, 셋은 꺅꺅거리며 좋다고 돌아다녔다. 유모들이 그 옆에 바싹 붙어 아이들을 돌보았다.
샤샤가 이쪽으로 다가와 휴, 한숨을 내쉬었다.
“애들은 진짜 체력도 좋아.”
“수고했어.”
“수고하셨어요.”
“아까 아룬과 케이에게 뭐라고 한 거야?”
“엘렌델은 여자아이니까 절대로 다치게 하면 안 된다고.”
“에이, 그렇게 선 긋지 않아도 괜찮은데.”
에스카의 말에 델루치아 공작부인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처음부터 이야기해놔야 해요.”
“그나저나 사이좋네.”
샤샤가 시종에게 냉차를 주문하며 말했다. 에스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룬도 케이도 둘 다 성격이 좋으니까. 엘렌델은 좀 무모한 구석도 있어서…….”
“널 닮았구나.”
샤샤가 놀리듯이 말해서 에스카는 입을 내밀었다.
“내가 아니라 쿠를 닮은 거야.”
“대장!”
쿠하힐은 몸을 숙여 거도를 피했다.
“부르지 마, 시끄럽게.”
그의 여유 있는 말에 눈앞의 사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너 이 노오옴!”
“누가 내 욕을 하나, 귀가 가렵네.”
“지금 주변을 둘러싼 놈들이 욕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부대장의 말에 쿠하힐은 피식 웃었다.
“그런가?”
그리고 가볍게 거구의 사내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 「한 발짝 안으로」 스스럼없이 들어가는 모습에 부대장은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너무나도 쉽게 상대의 목을 꿰뚫었다. 턱을 뚫고 들어간 검이 순식간에 빠져나와 그대로 옆에 있는 적을 베어 넘긴다. 버터라도 가르는 듯한, 저항 없이 매끄러운 칼놀림이었다. 적들은 욕설을 내뱉고, 아군은 찬탄을 내뱉는다.
심장을 찌르고 걷어차서 칼을 빼고, 뒤에서 달려드는 상대의 검 끝을 한 바퀴 돌아 피해낸다. 동시에 상대의 손목을 잡아 팔꿈치를 꺾어 부수고, 등 갈비뼈 사이로 검을 넣었다가 다시 뽑는다. 마치 서로 짜고 춤이라도 추는 듯한 광경이었다.
“쿠하힐……!”
“젠장, 쿠하힐이었나!”
“항복할래? 우리 물건 안 건드린다고 하면 나도 너희들 딱히 잡을 의무도 없고.”
쿠하힐의 느긋한 말에 해적들은 서로 마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도 눈앞에서 죽었고 순식간에 전력의 반을 잃었다. 이득도 없는 싸움을 계속하기에는 딱히 의리도 없는 관계였다.
싸움의 뒷정리가 끝날 때쯤 되어서야 씻은 쿠하힐이 선실에서 나왔다.
“대장, 진짜 깔끔 떠네요.”
“피 냄새나면 내 여왕님과 공주님이 걱정하니까. 한번 배면 잘 안 없어지거든.”
그렇게 말하며 젖은 머리카락의 물기를 수건으로 문지르는 그를 보고 부대장인 아스터가 물었다.
“사모님은 그럼 집에 혼자 계신 건가요?”
“아니 지금은 친정 비슷한 곳에 가 있어.”
“친정……. 비슷한 곳이요?”
친정이면 친정이지 또 그 비슷한 곳이라는 건 뭔가?
아스터의 의문에 쿠하힐이 픽 웃었다.
“그런 게 있어.”
아스터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그런데 대장.”
“왜?”
“어떻게 하면 그 한 걸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까?”
“잘.”
“대장!”
“아니, 진짜로. 벽을 깨려면 반복하는 수밖에 없으니까. 뭐, 난 한 번 부서졌던 인간이라 이런 말하는 것도 웃기기는 하지만.”
쿠하힐은 고개를 갸웃했다가 아스터를 돌아보았다.
“일단은 죽어라 하는 수밖에 없지. 뭐. 심심하면 말해라. 상대해줄 테니까.”
“대장은 진짜 아프게만 때리잖아요.”
“그 정도 각오도 없이 상사에게 덤비면 안 되지.”
씩 웃으며 하는 말에 아스터를 입을 꾹 다물었다. 실제로 호위대장들 중에 쿠하힐처럼 상대해주고 조언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아프게 얻어맞는다고 해도 얻어 가는 것들이 많았고, 쿠하힐의 밑에 소속되고자 하는 사람들 역시 많았다.
그에게 감사하다고 인사하면 그는 항상 “감사는 내 부인에게 하도록.”이라고 답해서 그의 부인이 누군지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수군거렸지만 쿠하힐은 그에 대해 함구했다.
중간중간 항구에 들를 때에도 많은 남자들이 쉽게 창부를 찾아가는 반면, 쿠하힐은 그 일에 있어서는 완전히 담백해서 그걸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존경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그 어느 쪽에도 그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건 명확했지만 말이다.
에스카는 엘렌델을 안고 부두로 나갔다. 부두는 물건을 내리는 선원들과 상회 사람들의 목소리에 파도와 갈매기 울음소리까지 섞여 있어 소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에스카는 배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피며 쿠하힐이 내려오는지 보았다.
“이상하다, 아빠가 왜 안 내리실까?”
“이미 내려와 있으니까.”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에스카는 휙 뒤돌았다. 쿠하힐이 웃으며 거기 서 있었다.
“안녕, 에스카. 보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어.”
“나도, 자 엘렌델, 아빠야. 안녕하세요, 해봐.”
엘렌델은 커다란 금색 눈동자를 깜박이더니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쿠하힐은 가볍게 다시 웃고는 엘렌델의 뺨에 키스했다.
“안녕, 우리 아가씨? 여왕님도 잘 있으셨나요?”
쿠하힐이 에스카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
“잘 있었어.”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작성할 서류가 있어서.”
“같이 가.”
그 말에 쿠하힐은 고개를 끄덕이고 에스카의 팔에서 엘렌델을 안아 들었다. 항구 한쪽에 천막을 치고 있는 본부로 가서 쿠하힐은 자신의 패를 보이고 서류를 건네주었다.
“항상 쿠하힐 대장님의 호위대는 사망자가 적네요. 이번에는 한 명도 없군요.”
“운이 좋았지.”
쿠하힐의 말에 여직원은 싱긋 웃었다가 그의 팔에 안긴 엘렌델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검은색 고수머리에 황금색 눈동자를 가진, 통통한 뺨의 사랑스러운 아가씨에게 빠지지 않는 건 역시 불가능에 가까웠다.
엘렌델 역시 작은 손을 들어 마주 손을 흔들었고 직원은 웃으며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다 되셨어요.”
“고마워.”
“아, 쿠하힐.”
그때 부르는 소리에 쿠하힐은 멈춰 섰다. 사키는 그의 뒤에 있는 에스카에게 가볍게 인사해 보였다.
“사키, 오랜만이야.”
“네, 루아가 저녁 식사 같이 하자고 하는데 오지?”
권유가 아니라 명령에 가까웠지만 쿠하힐은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이번 체스의 승자는 내가 될 거야.”
그 말에 사키는 그저 싱긋 웃을 뿐이었다.
사키는 좀 더 넓은 곳으로 이사를 했다. 아이가 둘이 되자 작은 집으로는 부족했던 것이다.
거기에 가정부와 유모까지 고용하려니 넓은 집이 필요했고, 결국 항구 도심에 있는 커다란 저택을 구입했다.
“에스카님, 어서 오세요.”
그래도 평소처럼 루아가 호스티스가 되어 일행을 맞아주는 건 변함없었다. 루아가 그녀의 치마 뒤에 숨어 있는 남자아이를 앞으로 밀며 말했다.
“인사드려야지, 에인칼.”
“안녕하세요.”
에인칼은 꾸벅 인사를 해 보였다. 사키의 갈색 머리카락에 루아의 푸른 눈을 물려받은 에인칼은 자신의 아버지를 쏙 닮았다는 게 요즘 밝혀지는 중이었다.
“시나는?”
“자고 있어요.”
“아, 얼굴 보고 싶었는데.”
“나중에 살짝 보여드릴게요.”
루아가 웃으며 에스카에게 약속했다. 이제 한 살이 된 시나는 얌전해서 그나마 루아의 육아 스트레스를 덜어주는 효녀였다.
쿠하힐이 엘렌델을 내려놓자마자 얼른 에인칼이 그녀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내 새 장난감 보여줄게!”
“새 장난감?”
“응.”
둘이 위층으로 계단을 힘겹게 올라가는 걸 보고 루아가 유모에게 손짓했고, 유모가 얼른 두 사람의 뒤에 따라붙었다.
아이들은 유모에게 맡기고 어른들만의 편한 저녁 식사가 이어졌다. 와인도 한 바퀴 돌았고 한 상회에서 일하다 보니 주제도 겹치는 경우가 많아서 대화는 끊이지 않았다.
“난 독립도 괜찮을 것 같은데.”
사키의 말에 쿠하힐이 의아한 얼굴을 했다.
“독립?”
“그래. 넌 신용도도 있으니까, 용병단처럼 호위 전문 회사를 만든다거나.”
“싫어.”
뚝 자르는 말에 사키가 눈을 찌푸렸다.
“왜?”
“일단 대표를 하면 사무직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고, 바쁘니까 에스카랑 보낼 시간도 적어지는걸.”
그 말에 사키는 초반에만 그렇지 안정시키고 나면 벌어들이는 돈의 액수가 달라진다고 말하려다가 옆에 있는 에스카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하긴, 에스카님이 버는 돈도 어마어마하니까.’
루아 특제 컨트리풍 디저트까지 전부 먹어치우고 나서 에스카와 쿠하힐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위층으로 올라가니 엘렌델과 에인칼이 한 침대에 잠들어 있었다.
“귀여워라.”
에스카가 웃으며 딸아이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넘겼다.
쿠하힐이 그런 그녀를 제지하고 자신이 엘렌델을 안아 들었다. 이제 꽤 무거워져서 에스카가 오래 들고 있기는 힘들 것이다.
둘은 작별인사를 하고 저택을 나왔다.
여름 밤공기를 맞으며 에스카는 쿠하힐을 힐끔 쳐다보았다.
한 팔에 엘렌델을 조심스럽게 안고 있는 그는 정말로 현실성이 없었다.
“쿠.”
“응?”
“이상해.”
“내가? 뭐가?”
“아니, 그게 아니라 이 상황이. 난, 그러니까 내가 가족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
“나도 그래.”
쿠하힐이 대답하며 손을 뻗어 에스카의 손을 잡았다. 에스카가 깍지를 껴 그 손을 마주 잡았다. 둘은 말없이 사람들이 많은 거리를 지났다. 돌바닥에 울리는 말발굽 소리와 구두 굽 소리, 사람들의 말소리가 어둠 가운데 명랑하게 울려 퍼졌다.
그렇게 도시를 지나 외곽으로 나와 인적이 없는 길을 걷기 시작하며 에스카는 쿠하힐에게 바싹 붙어 그 어깨에 머리를 가볍게 기댔다.
“쿠.”
“사랑해.”
선수 치듯 쿠하힐이 먼저 말했고 에스카가 그를 올려다보고 웃었다.
“나도 사랑해.”
함께 걷는 이 길이, 아주 오래오래 지속되기를 에스카는 마음속 깊이 바랐다.
『노예를 충동구매해 버렸다』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