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스승과 제자
“좀 더 드셔야 합니다.”
의사가 진찰을 한 뒤 심각하게 말했다.
“저도 노력하고 있어요.”
“몸무게가 생각보다 더 안 늘어나고 있어요. 몸이 가벼우면 조산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지고요.”
“네.”
난 죄책감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안 들어가는 걸 어떻게 한단 말인가?
도대체가 한계까지 음식을 먹고 있는데도 몸무게가 늘지 않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의사가 날 보며 덧붙였다.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다행입니다. 솔직히 버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도 안심하면 안 됩니다. 조금이라도 배가 아프다면 말씀하세요.”
“네.”
쿠가 내 손을 힘주어 잡았고 난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의사는 약을 바꾸겠다고 말한 다음 온실을 나갔다. 내가 한숨을 푹 내쉬자 쿠가 내 어깨를 끌어안으며 이마에 키스했다.
“괜찮을 거야.”
쿠의 말에 난 눈을 감고 그의 어깨에 이마를 기댔다.
“응.”
그의 위로가 온몸에 스며드는 기분이었다.
온실 안에는 온천이 돌고 있어서 약간 더울 정도로 따뜻했다. 아를이 나를 위해서 사방에 휘장을 치고 방과 똑같이 꾸며줬기 때문에 생활에 불편함은 없었다.
그날 밤 난 한밤중에 눈을 떴다.
‘아파…….’
난 쿠의 옷자락을 쥐었다. 한 침대에서 자고 있던 쿠는 마치 파수견처럼 내 기척에 눈을 떴다.
“에스카?”
“쿠…… 나…….”
그 말까지만 듣고 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곧 불이 켜지고 의사가 들어왔다. 그때는 이미 통증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였다.
“너무 빠른데.”
“안정시킬 수는 없나?”
“노력은 해보겠지만.”
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아팠다. 출산이 아픈 거라고 듣기는 했지만 이렇게 아픈 거였나?
“아윽……! 악!”
소리를 참으려고 애써도 저절로 소리가 나왔다.
“에스카.”
쿠가 내 손을 꽉 잡았고 난 숨을 몰아쉬었다. 통증이 왔다가 다시 사라졌다. 하지만 곧 다시 비명을 지를 만큼 강한 진통이 찾아왔다.
“벌써 간격이 너무 짧아요.”
“지금 산도 열리는 거 맞죠?”
“여러분, 다들 나가주세요.”
산파들이 아를과 샤샤, 쿠를 밀어내 휘장 밖으로 내보냈다. 난 흐느끼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스승님이 너무 보고 싶었다. 옆에서 손을 잡아주면 좋겠다. 괜찮다고 말해주면 좋겠다.
“아아악!”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피가 너무 많이 나와요.”
“산모님, 힘주세요. 정신 잃으시면 안 돼요.”
산파인 듯한 여자가 내 뺨을 가볍게 두들기며 말했다.
“지금 에스카님이 노력하는 만큼 아이도 노력하고 있어요. 여기서 이렇게 힘 안 주시면, 에스카님도 아기도 둘 다 위험해요.”
난 숨을 헐떡였다. 힘을 주라고? 힘? 어떻게? 고통으로 온몸의 힘이 하나도 없었다.
“머리 보여요, 조금만 더 힘내세요.”
“소리 지르세요! 배에 힘주시고요!”
“아아아악!”
난 있는 힘껏 소리 지르며 힘을 주었다. 곧 뭔가가 쑥 나오는 느낌과 함께 온몸의 힘이 쭉 빠졌다.
“아기는 이쪽으로.”
“산모님?”
“안 돼,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요.”
시야가 점점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난 숨을 헐떡이며 손끝으로 시트를 긁었다.
“산모님, 예쁜 아가씨예요. 정신 차리세요.”
‘아가씨…… 딸이구나…….’
딸이면 이름을…….
“에스카!”
쿠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가 내 손을 잡았다.
“에스카, 에스카, 에스카. 나랑 약속했잖아.”
난 그가 잡은 손에 힘을 주려고 애썼다. 말을 꺼내야 하는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쿠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너무 피곤하고 너무 졸렸다.
‘조금만 쉬었다가…….’
그리고 난 눈을 감았다.
난 넓은 초원에서 눈을 떴다.
하늘은 이상할 만큼 선명한 파랑이었고 풀도 부드럽기가 마치 배내털 같은 에메랄드그린이었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데 불쑥 옆에서 누가 나타났다.
“깼느냐?”
“스승님!”
난 놀라서 상체를 일으켰고 스승님이 껄껄 웃으셨다. 난 와락 그의 품에 안겼다. 아, 스승님 냄새! 엄청 좋아!
“보고 싶었어요! 외로웠어요!”
“어이쿠, 다 큰 애가.”
스승님은 낄낄거리면서도 손으로 내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어주었다. 난 계속 그렇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에스카.”
“네.”
“네가 내 제자라는 게 자랑스럽다고 내가 이야기했었나?”
“모지리라고 구박하신 것만 기억나는데요.”
그 말에 스승님이 다시 웃었다. 스승님이 내 양 빰을 감싸 자신을 보게 하고 말했다.
“넌 내 자랑스러운 제자야. 그 말을 못 해준 게 마음에 걸렸어.”
“말씀은 안 하셨지만 알고 있었어요.”
“그랬니?”
스승님이 싱긋 웃었다. 스승님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날 일으켜 세웠다. 그러자 멀리 있는 호수와 거기 걸린 무지개와 너무 가까운 달과 비슷한 행성들이 눈에 들어왔다.
“여긴 어디예요?”
“에스카리엘.”
내 이름의 어원인 마법사의 천국이 스승님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 말에 난 입을 벌리고 스승님을 바라보았다.
“저 죽은 거예요?”
“글쎄, 어떤 것 같니?”
난 내 최후의 순간을 기억해내려고 애썼지만 잘 기억나지 않았다. 스승님이 다시 웃고는 휘파람을 불자 새까만 개가 풀숲에서 튀어나왔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쿠하힐이었다.
“쿠하힐!”
난 소리를 지르며 쿠하힐에게 달려갔다. 쿠하힐은 내 얼굴을 핥고는 가볍게 짖었다.
“쿠, 쿠, 쿠~.”
난 뺨을 비비며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이 이름, 또 다른 사람이 있지 않았나? 이런 이름의, 또 다른, 중요한 사람.
난 멍하니 쿠하힐을 보았다. 새까만 모피에 여전히 아름다운 푸른 눈. 약간 의기양양한 듯한 얼굴.
“왜 그러니, 에스카?”
“돌아……가야 해요.”
“그래?”
“네, 잘 모르지만. 그러니까 쿠하힐이, 아 저도 모르겠어요.”
비틀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자 스승님이 경쾌하게 다시 웃었다. 어디서 났는지 평소에 늘 들고 있던 긴 지팡이로 바닥을 가볍게 쳤다.
“안 그래도 벌써 왔다고 혼내줄 생각이었다. 돌아가렴, 내 자랑스러운 딸. 여기는 언제든 다시 올 수 있으니까.”
난 머뭇거리며 쿠하힐을 보고 스승님을 보았다.
“그러면…….”
그 말에 스승님이 킬킬 웃고는 쿠하힐을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고 말했다.
“네 시간은 여기서는 찰나란다. 기다리느라 지루하지는 않다.”
그렇게 말하고 스승님이 내 뺨을 어루만지자 뺨부터 따뜻한 기운이 퍼져 나갔다. 스승님이 우아하게 웃으며 말했다.
“리저렉션(Resurrection).”
다음 순간 빛이 뿜어져 나와 눈을 감았다. 빛과 뜨거운 바람이 온몸을 채웠고 다음 순간 난 거친 숨을 내뱉으며 눈을 떴다.
“컥, 쿨럭, 쿨럭, 하아…….”
“에스카? 에스카!”
“환자가 살아났어!”
“맙소사, 괜찮습니까? 이거 보이세요?”
내 앞에 손가락을 흔드는 의사를 보고 난 고개를 끄덕였다. 온몸의 마력 회로가 쾅쾅 뛰고 있는 게 느껴졌다. 심장 위에 있던, 해석되지 않던 회로를 중심으로 말이다.
“네, 잘 보여요.”
내 대답에 의사가 날 진찰해보고는 놀랍다는 어조로 말했다.
“모든 게 정상입니다. 하지만 아직 안정하시는 게 좋겠네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눈물범벅이 된 쿠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손을 힘주어 잡으며 속삭였다.
“약속 지켰어.”
그 말에 쿠하힐은 내 손을 자신의 이마에 대고 울기 시작했다. 난 남자가 그렇게 우는 건 처음 보았다. 쿠하힐은 흐느끼며 계속 울었다.
그걸 보며 난 다시 눈을 감았다. 모든 고비가 끝났다는 안도감을 느끼며 난 다시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