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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질투 (11/16)

10. 질투

쿠는 괜찮다고 했지만 난 부득불 그를 바래다주겠다고 마을까지 내려왔다. 지부 앞에는 짐마차 여러 대와 많은 상회 사람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지부 앞에 서서 무언가 지시를 내리고 있던 사키가 금방 우리를 발견하고는 손을 들었다.

“에스카님, 여깁니다.”

나와 쿠하힐은 사람들을 피해 사키에게로 걸어갔다. 사키는 나에게 웃으며 인사하고 쿠를 돌아보았다.

“이번 상단의 단주는 메이 씨야.”

그 말에 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여자가 단주인 거야?”

“네, 능력 있는 사람이니 믿으셔도 됩니다. 아, 저기 오는군요.”

돌아보니 짧은 머리를 한 갈색 피부의 젊은 여자가 손에 서류를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간단한 말로 사람들에게 지시를 내리던 그녀가 날 보고는 싱긋 웃었다.

“안녕하세요, 에스카 블란테님이시죠?”

“네, 안녕하세요.”

“고명은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전 메이 아카라고 해요.”

“아카?”

아카상회 단주의 성이 「아카」 아닌가? 그럼 그 사람의 딸? 하고 놀라서 그녀를 보니 메이는 자주 듣는 말인지 웃으며 대답했다.

“아, 양딸이랍니다. 본래는 엘란시아 사람이에요.”

“그렇군요.”

“그리고 이쪽이 쿠하힐이겠군요. 여기 서류에 이름 적어요.”

쿠가 서류에 서명하자 그녀가 씩 웃으며 서류로 쿠하힐을 툭 쳤다.

“그럼 이제 내 사람이니까 말은 놓지. 저쪽으로 가서 잠깐 이야기 좀 할까? 블란테님,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아, 네. 쿠도 힘내.”

쿠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 이마에 가볍게 키스하고 그녀를 따라갔다. 난 둘이 무슨 이야기를 할지 궁금했다. 메이는 미인이고…… 엘란시아 사람이고…… 고향 이야기라도 하는 걸까?

“에스카님?”

사키가 내 이름을 불러 난 퍼뜩 정신을 차리고 그를 돌아보았다.

“응? 아니, 아무것도 아냐.”

“출발할 때까지 시간이 걸릴 테니 안에 들어가 계십시오.”

난 고개를 끄덕이고 지부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쿠와 이야기하다가 큰 소리로 웃고 있는 메이가 보였다. 그 순간 나는 메이를 한 대 때려주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에 놀랐다.

‘에스카 블란테, 지금 무슨?’

스스로 그 감정을 자각하고 나자 엄청나게 창피해졌다.

‘뭐야, 메이 씨는 쿠와 사이좋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뿐이잖아?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난 지부로 들어가지 않고 그대로 멈춰 서서 둘을 바라보았다. 메이가 뭐라고 쿠에게 말하며 그의 가슴을 쿡 찌르자 쿠는 살짝 불만스러운 얼굴을 하며 그녀에게 뭐라고 이야기했고, 메이가 다시 빠르게 답하자 그가 피식 웃었다.

‘안 돼.’

난 그대로 걸음을 돌려 상회를 벗어났다. 더 이상 둘을 보고 있으면 참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나와 달리 메이 씨가 엘란시아 사람이기 때문인지 둘은 위화감 없이 잘 어울렸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나 하는 나 자신이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가슴이 타는 듯이 괴로웠다. 이런 감정은 처음이었다. 쿠와 메이가 사이좋게 이야기하던 장면만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쿠는 멋있으니까, 메이 씨도 쿠를 좋아하게 되려나? 아냐, 아냐. 그만 생각해, 에스카.’

하지만 생각은 멋대로 치달아 난 쿠가 메이를 좋아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리고 연인은…….

난 샤샤의 뒷말을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연인은 영원하지 않아.

‘괴롭다.’

난 손톱이 팔을 파고드는 것도 느끼지 못하고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화내고 싶어. 쿠에게서 떨어져! 하고 외치고 싶어. 하지만, 하지만 그건 말도 안 되잖아? 만약 쿠가 헤어지자고 한다면, 쿠는 내 것도 아닌걸. 당연히 그가 행복하길 바라면서……. 싫어. 싫어. 절대로 싫어.’

태어나 처음 겪어보는 감정에 난 얼떨떨하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고, 스스로 이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너무 싫기도 했다.

“에스카님?”

그때 누가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불러 고개를 들었다. 장을 보고 오는 길인 듯, 물건이 가득한 장바구니를 든 루아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루아.”

“괜찮으세요? 어디 아프신가요?”

“아니, 괜찮아.”

난 애써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루아의 둥근 배를 보니 곧 웃음은 진짜가 되었다.

“배 많이 불렀네?”

“후후, 안에서 움직이고 그런답니다.”

“진짜? 굉장하다, 루아…….”

내 말을 들은 루아가 다시 웃더니 내 손을 잡고 말했다.

“저희 집에 들러서 차나 한잔하고 가세요. 얼마 전에 새로 찻잎이 들어왔거든요.”

난 사양할까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고마워.”

쿠가 없는 집에 혼자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 난 순순히 루아의 제안에 응했다. 게다가 배가 부른 그녀를 혼자 집까지 걸어가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난 그녀의 장바구니를 빼앗아 들고는 걷기 시작했다.

“어때? 여기는 익숙해졌어?”

“네, 해산물이 싱싱해서 좋아요. 못 보던 식재료들도 많고요. 그리고 겨울에도 따뜻하다고 해요.”

“정말?”

“네, 그렇게 춥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점은 마음에 들어요. 아이 낳고 나면, 겨울 추위가 걱정이기는 했거든요.”

“그랬구나.”

그런 대화를 하며 걷다 보니 곧 집에 도착했다.

건물들 사이에 끼어 있는 아담한 이층집이 그녀의 집이었다. 열쇠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난 현관문 옆의 벽돌에 새겨진 마법 회로를 한 번 체크했다. 사키가 부탁하기도 전에 내가 강제로 새긴 건데 일종의 방범용 마법이었다. 사키는 비용을 지불하겠다고 했지만 난 당연히 무시했다.

“무슨 일 있나요?”

“아니, 그냥 멀쩡한지 확인해봤어. 쌩쌩해. 앞으로 50년은 너끈할 거야.”

“그렇게 오래 이곳에 살지는 모르겠지만요.”

루아의 말에 난 웃으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곧 루아가 따뜻한 차를 내왔다. 난 그녀가 직접 짠 방석 위에 앉아 그녀가 만든 쿠션을 안고 차를 마셨다.

“그래서 왜 그러고 계셨어요?”

“어?”

“아까 길에서 말이에요. 어디 아프신 건가요? 아픈 건 숨기시면 안 돼요.”

엄격하게 루아가 말해서 난 웃었다. 사실대로 말을 하기가 민망했다.

루아가 알면 날 뭐라고 생각할까? 하지만 그녀의 눈이 대답을 기다리며 빤히 날 바라보자 솔직히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루아, 듣고 화내면 안 돼?”

“안 낼게요.”

“그…… 만약에 쿠하힐이, 다른 사람이랑 사랑을 하게 된다면…… 난 절대로 쿠하힐을 놔주기 싫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가 불행해진다고 해도……. 아, 말하고 나니까 진짜 형편없네.”

난 고개를 흔들고 이어 말했다.

“아니, 그렇게 된다면 놔줘야 하는 건 알아. 그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니까. 그런데도 정말 싫었어. 다른 여자랑 친하게 지낸다든가……. 아니, 실제로 친하게 지낸 것도 아니고 이야기 나누는 걸 본 것뿐인데. 나 좀 이상해진 것 같아.”

“에스카님.”

“응?”

“그건 당연한 거예요.”

“……정말?”

“네.”

루아가 싱글싱글 웃으며 즐거운 듯 눈을 반짝거렸다.

“그 얘기 꼭 쿠하힐에게 해주세요. 좋아할 거라고 장담할 수 있어요.”

“그건…… 좀…….”

“사실 전 조금 불안하기도 했거든요. 에스카님은 밀면 그대로 쭉 밀려나가고, 상대가 손을 놓으면 아 어쩔 수 없네 하고 손을 놓을 것 같아서요.”

“…….”

“하지만 쿠하힐에게는 그러기 싫어지신 거죠? 그가 손을 놓아도, 놓고 싶지 않으신 거죠? 그가 밀어내면 다가가고 싶으신 거잖아요?”

“응. 그런데 그거, 민폐 아닐까……?”

“아니에요.”

루아가 눈을 팍 찡그리며 말해서 난 움찔했다.

“만약에 사키가 다른 여자와 그런다면, 음, 저는 그를 가만히 두지 않을 거예요. 반대로 제가 다른 남자를 좋아하게 된다면……. 이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사키 역시 분노하고 화낼 걸 알아요. 왜냐면 그는 절 사랑하니까요. 우리는 서로를 소유하고 있답니다.”

‘소유…….’

천천히 그 말을 마음속으로 되새겨보며 난 찻물을 바라보았다. 난 쿠하힐에게 자유를 주려고 했었다. 그게 그에게 가장 필요한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이제 와서 그를 독점하거나 소유하고 싶다고 말해도 되는 걸까?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에스카님은 에스카님다운 속도로 나아가시면 돼요. 사실 그런 성격이 아니셨다면 쿠하힐과 이렇게 되지도 않으셨을걸요.”

루아의 말에 난 고개를 들고 루아를 보았다.

“그거 칭찬이야?”

“그럼요. 그 다정함과 상냥함과 약간의 둔함에 구원받은 사람이 바로 옆에 있잖아요.”

“……?”

누군데? 하고 물어보자 루아는 웃었다.

“자, 얼른 비스킷이 식기 전에 드셔보세요.”

그 말에 난 순순히 루아에게서 비스킷을 받아 들었다. 아직 따뜻한 비스킷에 버터와 마멀레이드를 발라 먹자 모든 걱정들이 날아가는 것 같았다.

배부를 정도로 티푸드와 차를 마시고 나서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설거지하는 거 도와줄게.”

“아뇨, 괜찮아요.”

“아냐, 그 배로는 싱크대에 서기도 힘들잖아.”

괜찮다는 루아를 억지로 의자에 앉히고 설거지를 끝냈다. 사키가 들어올 시간쯤 되어서야 저녁 먹고 가라는 제안을 거절하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한참을 걸어서 내 집으로 돌아왔다. 텅 빈 집은 왠지 더 쓸쓸하게 느껴져서 난 온 집 안의 불을 다 켜고 멍하니 소파에 누웠다.

‘쿠가 좋아……. 쿠와 계속 함께 있고 싶어.’

난 쿠가 왜 「영원히」라고 물어봤는지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쿠도 불안……한 걸까?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데. 으음, 혹시 이번 여행으로 메이 씨가 더 좋아졌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 쿠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는 건 생각도 못 해봤어. 왜냐면…….’

쿠의 곁에는 나밖에 없으니까.

툭 튀어나온 대답에 난 숨이 막혔다. 로맨스 소설에서나 관념적으로 알았던 「질투」라든가 「독점욕」이라든가 그런 것들이 실제로 밀어닥치자 괴로웠다.

쿠의 곁에 나밖에 없으니까, 하고 안심하고 있었던 내 알량함에도 화가 났다.

쿠에게도 선택할 권리가 있는 건데.

하지만 날 선택해주면 좋겠어.

‘안 돼, 자꾸 쓸데없는 생각만 하게 돼.’

난 자리에서 일어나 작업실로 들어갔다. 기억을 잃은 동안 작업을 전혀 하지 못해서 할 일은 잔뜩 있었다. 작업실의 불을 켜고 난 다이아몬드 주머니를 열었다.

단가도 비싸고, 작업에도 섬세함을 요하는 보석이라서 집중하기에는 이게 딱 좋았다. 처음에는 자꾸 쿠와 메이 씨 생각이 나서 몇 개인가 금이 가 못 쓰게 만들었지만, 점점 그 생각이 가라앉고 난 완전히 세공에 빠져들었다.

“……스카? 에스카.”

누가 내 어깨를 부드럽게 흔들어 난 퍼뜩 고개를 들었다. 쿠가 서 있었다.

“쿠? 언제 온 거야?!”

“방금.”

난 활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쿠를 끌어안았다. 서늘한 가을 냄새가 났다. 쿠가 날 번쩍 안아 들더니 눈을 찡그렸다.

“계속 작업실에 있었어? 화덕 불도 완전히 꺼져 있던데, 밥은 제대로 먹은 거야?”

“일에 좀 집중하느라.”

헤헤 웃으며 말하자 쿠가 날 안고 거실로 나오며 말했다.

“설마 사흘 내내 작업실에 있었다는 건 아니겠지.”

“…….”

대답하지 못하고 슬쩍 그를 바라보자 쿠가 다시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욕실로 가서 욕조에 물을 틀고 내 옷을 벗기기 시작해 당황한 나는 셔츠를 잡았다.

“내, 내가 씻을게.”

쿠가 그런 날 바라보다가 물었다.

“어디 몸이 안 좋은 곳은 없고?”

“응, 멀쩡해.”

쿠의 시선이 날 위아래로 훑더니 잠시 배에 갔다가 다시 얼굴로 올라왔다.

“진짜로 괜찮다니까.”

내가 팔을 휙휙 돌리며 말하자 쿠는 묘하게 쓴웃음을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쿠가 나가는 걸 기다려 난 얼른 옷을 벗고 욕조 안으로 들어갔다. 사흘 만에 보는 건데 안 씻은 더러운 모습으로 만나다니……. 에스카 블란테, 넌 좀 혼나야 해.

평소보다 더 열심히 씻고 나가니 맛있는 냄새가 나고 있었다. 얼른 부엌으로 들어가니 쿠가 수프를 끓이고 있었다.

“추우니까 벽난로 앞에서 머리 다 말리고 와.”

쿠의 말에 난 머뭇거리다가 그의 옆에 서서 말했다.

“여기도 화덕이 있어서 따뜻해. 갔다 온 건 어땠어? 괜찮았어?”

“응, 단거리라서 별일 없었어.”

“그렇구나. 다행이다. 그리고…….”

“음?”

쿠가 날 돌아보아 난 그의 눈을 빤히 보다가 얼른 고개를 돌리고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아니, 아무것도 아냐. 그냥 쿠가 옆에 있어서 좋다.”

차마 메이 씨랑은 어땠어? 하고 물어볼 수가 없어서 난 적당히 얼버무렸다. 쿠가 이어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다음에는 좀 더 장기적인 호위도 맡고 싶어.”

“그, 그래?”

“안 될까? 에스카 혼자 놔두는 게 불안하기는 하지만.”

“괜찮아. 나 혼자서도 잘해.”

“지금 이 상황을 보니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데.”

쿠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의 눈에는 약간 화가 들어 있어서 난 그를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앞으로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면서 일할게.”

“제발, 그렇게 해줘. 집에 들어왔는데 아무런 인기척이 없지. 작업실로 들어가니 넌…….”

쿠가 가볍게 입술을 깨물었고 난 깊게 반성하며 다시 말했다.

“이번에는 일에 좀 집중해서 그랬어. 그리고 원래도 가끔 그랬고. 하지만 쿠가 걱정하니까 앞으로는 잘할게. 응?”

쿠가 커다란 손으로 내 머리를 흐트러트리며 말했다.

“약속이야.”

“응.”

그리고 난 얼른 쿠에게서 떨어져서 소시지와 감자를 꺼내 오븐에 집어넣었다.

저녁식사를 하면서 쿠는 그 짧은 기간에 있었던 해프닝과 흥미로웠던 일에 대해 말해주었고 난 신기해하며 귀를 기울였다.

어쨌든 거의 집에 틀어박혀서 마법 연구만 하고 있었던지라 여행이라고는 공작가로 가는 게 전부였던 나는 그의 이야기들이 즐거웠다.

“그리고…….”

쿠가 말꼬리를 끌더니 날 보고는 말했다.

“내 검의 가격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지.”

“응? 감정사도 같이 있었어? 하긴 아카상회니까 상단에 대동시키고 있기는 하겠구나…….”

“내 검의 가격을 듣자마다 다들 날 대하는 게 달라지던걸. 네가 내 애인이라는 말을 듣고도 납득을 못 하는 것 같더군.”

그 말에 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그…… 나, 날 애인이라고 소개한 거야?”

그 말에 쿠하힐이 날 빤히 보더니 물었다.

“그럼 안 돼?”

난 고개를 저었다.

“아냐, 괜찮아. 아니, 그게, 괜찮은 게 아니라 좋아. 기뻐.”

내 말에 쿠가 미소 짓고 내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진 다음 가볍게 키스했다.

“나도 그래.”

쿠의 눈을 보자 난 질투 같은 게 다 쓸데없다고 느껴졌다. 이번에는 내가 그에게 키스했고, 내 혀가 그의 입술을 가볍게 핥자 쿠가 입을 열고 내 혀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곧 전세가 역전되어 그의 혀가 내 입안을 휘저었다.

곧 쿠가 날 안아 들고 그대로 침실로 향했다. 고작 사흘 만인데도 난 1년은 굶주린 기분이 되어 그의 셔츠를 벗겼다. 쿠가 웃으며 내 눈 위에 키스하고 말했다.

“무슨 일이야? 이것도 나쁘지는 않은데?”

“그럼 이대로 봉사 받으시죠? 주인님.”

내가 그를 침대에 눌러 눕히자 쿠는 순순히 누웠다. 난 그의 바지 버클을 풀고 발기한 그의 성기를 입에 물었다.

쿠가 흑 하고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나서 난 귀두를 혀로 핥으며 빨아들이다가 고개를 들어 쿠를 보았다. 쿠의 쾌락에 젖은 얼굴과 그의 신음 소리가 날 더 자극했다. 난 그의 귀두를 입술로 지그시 누르며 혀로 끝을 부드럽게 핥았다.

“흑…… 아…… 에스, 카…….”

입안에서 쓴 쿠퍼액 맛이 나서 난 고개를 들었다.

그의 성기를 가볍게 손으로 감싸고 마지막으로 귀두에 가볍게 키스해주자 그의 성기가 움찔하는 게 느껴졌다. 가볍게 웃고 위로 올라가 허리를 숙여 그의 쇄골에 키스했고 이어 그의 유두를 입에 물었다.

내 아래에서 몸을 떠는 쿠가 느껴졌다.

“주인님, 기분 좋으세요?”

내가 그의 유두를 손가락으로 누르며 말하자 쿠가 작게 신음 소리를 내고 날 바라보았다. 침대 시트를 움켜쥐고 있는 그의 손이 눈에 들어와 난 그의 성기를 손으로 움켜쥐고 그의 가슴에서 복근까지 혀로 핥아 올리며 핸드잡을 시작했다.

‘아, 옛날 생각 나네.’

쿠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는 매일 이렇게 했는데.

그 경험을 되살리며 난 빠르게 손을 위아래로 움직였고 곧 쿠가 내 손안에 사정했다. 난 그의 떨리는 아랫배에 가볍게 키스하고 고개를 들었다.

“만족하셨으면 다음 단계로 가도 될까요? 혹시 마음에 안 드시면 언제든지 제지해주세요.”

움직이면 놀이 끝이라고 못 박은 다음, 난 바지와 속옷을 벗어버리고 얼른 그의 위에 올라탔다. 스스로 넣어보는 건 처음이었지만 이미 애액이 잔뜩 흐르고 있어서 부담감은 없었다.

‘이쯤일까?’

느리게 허리를 내리자 쿠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귀두 정도만 삼켰다가 다시 허리를 들어 빼내고 다시 중간쯤까지 허리를 내렸다가 다시 올리고, 난 쿠가 날 잡아먹을 듯 노려보는 걸 보며 히죽 웃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느리게 완전히 그의 위에 앉았다.

“하아.”

나도 모르게 단 숨이 흘러나오며 난 슬슬 허리를 앞뒤로 흔들었다. 아, 응, 조금 더 안쪽…….

“읏!”

민감한 곳에 닿자 난 몸을 움츠리며 발끝을 오므렸다. 하지만 아직 아쉽다. 조금 더 자극을 주고 싶은걸. 내가 손으로 누르고 있는 쿠의 복근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쾌락과 고통, 그사이 어디쯤에 있는 표정을 짓고 있는 그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난 왠지 우월감이 들면서 우쭐해졌다. 난 그의 배에서 손을 떼고 천천히 내 양 가슴을 움켜쥐며 유두를 문질렀다.

“아, 하아…… 읏, 쿠…… 앙…….”

그러며 허리도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느리게 올라갔다가 느리게 떨어진다. 다음 순간 쿠가 내 허리를 붙잡아 아래로 누르며 허리를 쳐올리기 시작했다.

난 깜짝 놀랐지만 쿠의 것이 가장 안쪽까지 밀고 들어오자 곧 흐느끼기 시작했다.

“앗, 하읏, 쿠……!”

마치 그동안 놀린 걸 되갚아주기라도 하듯 난폭한 움직임이었다.

쓰러지려는 날 잡아 추스르며 쿠는 마지막으로 내 허리를 꽉 누른 채 자신의 허리를 띄우며 깊은 곳에 사정했다. 그리고 힘이 빠진 날 붙잡아 세우고 가슴을 만지기 시작했다. 그의 손가락이 단단해진 내 유두를 잡아 돌리고 당겼다가 가볍게 퉁겼다.

“아, 흐응, 쿠하……힐……. 읏…….”

“기분 좋으신가요, 주인님?”

쿠가 놀리듯 말하며 내 가슴을 움켜쥐었다. 내가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끄덕이자 쿠가 내 유두를 엄지손가락으로 눌렀다가 가볍게 문질렀다.

“가슴만으로도 이렇게 조이다니. 민감하신 건가요, 음란하신 건가요?”

“쿠, 흣!”

항의하려던 내 말들은 쿠가 느리게 허리를 움직이자 사라졌다. 쿠는 내 반응에 웃고는 몸을 일으켜 나와 자신의 위치를 바꾸었다.

“좋으세요? 주인님?”

쿠의 말에 난 팔을 뻗어 그의 목에 감고는 속삭였다.

“에스카라고 불러줘.”

그 말에 쿠는 멈칫했다가 내 입술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누르며 달콤하게 속삭였다.

“기분 좋아, 에스카?”

난 쿠의 손가락을 가볍게 물고 혀로 그의 손가락을 핥고는 대답했다.

“응, 좋아. 쿠의 손가락도, 몸도, 목소리도, 전부 좋아.”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쿠가 추삽질을 시작했다. 너무 기분이 좋아서, 이상해질 것 같았다.

“아, 흐…… 아응, 쿠, 이상…… 읏…….”

“쉬이, 에스카, 숨 쉬어. 괜찮아.”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자 쿠가 잠시 멈추고 내 이마에 키스하며 말했다.

난 필사적으로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혀를 움직이며 말했다.

“쿠우…… 나…… 이상해…….”

“이상하지 않아. 예뻐, 괜찮아, 에스카.”

쿠가 내 머리카락을 넘겨주며 말하고는 다시 천천히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점점 빨라지는 움직임을 따라가기 힘들다고 느끼다가 마지막 순간 난 눈앞이 새하얗게 변하는 걸 느끼면서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난 거의 하루를 꼬박 잠들었다가 깼다. 그 얘기를 듣고 난 역시 사흘간 잠을 자지 않는 건 그만두자고 다짐했다.

쿠는 장기 일을 받기 전에 단기를 몇 번 더 다니면서 일을 좀 익힐 거라고 말했고 난 고개를 끄덕였다.

쿠가 내 연인이라는 걸 다들 알고 있다고 생각하니 그나마 마음이 편했다.

그렇게 몇 번, 이삼일씩 쿠가 집을 비우자 그것에 익숙해졌다.

이제 그를 마중하러 상회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거기서 그의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기도 했는데, 쿠와 같이 일을 나가는 사람들은 거의 정해져 있어서 서너 번 만나자 서로 얼굴을 익혀 친근한 느낌이었다.

“에스카, 난 결재하고 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응.”

쿠가 가볍게 내 이마에 키스하고 상회 안으로 들어가자 동료들이 왁자하게 웃기 시작했다.

“와, 저 자식이 이렇게 구는 걸 볼 수 있다니. 에스카님, 앞으로는 자주 좀 와주세요.”

“진짜 다른 여자들에게는 눈 하나 깜박 안 한다니까요.”

그 말에 나도 웃는데 짐을 내리던 엘런이라는 동료가 피식 웃었다.

“야, 나도 저런 검 주는 애인 있으면 절대로 눈 안 돌린다.”

그 말에 메이가 웃으며 말했다.

“그야, 저런 걸 줄 만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당연하지.”

그녀의 말에 엘런이 갈색 머리카락을 헤집으며 말했다.

“그것도 그렇지만, 완전 땡잡은 거잖아요. 에스카님, 저랑은 사귀실 생각 없으세요? 저도 괜찮은 놈인데.”

“엘런, 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쿠에게 죽고 싶냐?”

옆에서 다른 사람이 그를 툭 치며 말했다. 당황해서 뭐라고 해야 할지 말을 고르는데 엘런이 이어 말했다.

“솔직히 에스카님이 그렇게 미인인 것도 아닌데, 쿠하힐 저 자식은 검술도 되고, 얼굴도 되고. 뭐가 부족해서 에스카님과 사귀겠어요? 에스카님, 혹시 쿠가 결혼하자고 하면 주의하세요. 유산 노리고 그러는…….”

그 순간 메이가 그의 멱살을 잡았다. 그러고는 낮게 으르렁거렸다.

“너 취했어? 억울한 게 있으면 쿠하힐에게 가서 풀어. 여기서 에스카님 공격하지 말고.”

그러며 엘런의 멱살을 거칠게 놔주었고 다른 사람들도 비아냥거렸다.

“맞아.”

“너 지금 순위 밀렸다고 그러는 거지?”

엘런은 날 한 번 노려보더니 바닥에 침을 뱉고는 흥 하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버렸다.

침묵이 감돌아 내가 마른 입술을 적시는데 메이가 웃으며 말했다.

“에스카님, 저 자식이 한 이야기는 신경 쓰지 마세요. 저희 상단에서 검술 실력으로 최고였는데, 쿠하힐이 들어와서 밀려났거든요. 그래서 그냥 화풀이한 겁니다.”

“맞아요, 에스카님 미인이신데.”

“맞아, 쿠하힐이 복 받은 놈이지.”

주변 사람들의 동조에 난 간신이 웃을 수 있었지만 숨이 막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때 쿠하힐이 돌아왔다.

“무슨 일 있습니까?”

난 메이가 대답하려는 걸 내가 얼른 가로막았다.

“아냐, 아무 일도 없었어.”

“……그래?”

쿠하힐이 내 얼굴을 살피더니 주변을 돌아보았고, 메이와 시선이 닿자 그녀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난 그녀가 내 편을 들어준 것에 감사하며 쿠의 팔을 당겼다.

“얼른 집으로 가자.”

쿠가 내 손을 잡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메이에게 말했다.

“그럼 단주님, 다음번에 뵙죠.”

“응. 에스카님, 안녕히 가세요.”

쿠에게 인사한 메이가 내게 정중한 인사를 해 보였고, 난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여주고는 걷기 시작했다. 잠시 걷던 쿠하힐이 날 안아 들어 난 당황했다.

“쿠?”

“말을 타지.”

“말?”

“받은 돈으로 말을 샀어.”

쿠는 상회 마당에 서 있던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검은색 말에게 다가갔다. 그대로 말 위에 날 태우고는 내 발이 등자에 잘 끼워졌나 확인한 다음 말고삐를 잡고 걷기 시작했다.

“쿠는? 같이 타자.”

“이게 더 편해. 처음에는 널 태워주고 싶었으니까.”

쿠의 말에 난 헤헤 웃고는 조심스럽게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물었다.

“저기, 쿠.”

“음?”

“엘런이란 사람이랑 친해?”

“글쎄, 건방지기는 한데 검 실력은 마구잡이로 배운 것치고는 나쁘지 않아. 하지만 제대로 된 스승이 붙어서 한번 봐주는 게 낫지 않을까.”

“풋.”

웃음이 새어 나오자 쿠가 의아한 듯 날 바라보았다.

“왜?”

“친하냐고 물어보는데 왜 검술 실력 이야기가 나오는 거야? 쿠의 사람 보는 기준을 알겠어. 그럼 난 쿠에게 형편없는 검술 실력을 가진 사람이겠네.”

“아니, 에스카는 내가 지킬 유일한 사람이지.”

간지러운 대답을 하고 쿠가 날 올려다보며 이어 물었다.

“왜? 엘런이랑 무슨 일 있었어?”

“아니, 그 사람이 2인자가 됐다고, 메이 씨가 말해서.”

“아, 그런 말까지 했어? 1위와 2위의 차이가 너무 심하다는 말도 거기에 덧붙여둬.”

쿠의 대답에 난 웃음을 터트렸다. 검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나 실력에 대해 이야기할 때의 쿠하힐은 뭐랄까, 거기에 푹 빠진 소년 같은 느낌이었다. 그게 좋아서 몇 번 일부러 그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에스카.”

“응?”

“다음에는 장기로 갔다 올 거야. 3주쯤.”

“그렇구나. 알았어.”

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쿠가 떠나 있는 것에도 익숙해졌고, 쿠가 자신의 검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는 곳에 있게 해주고 싶었다. 쿠가 행복하기를 바라니까.

‘감기 걸린 것 같다는 말은 안 하는 게 좋겠지.’

괜히 걱정하거나, 별것도 아닌 걸로 일정을 미루게 되는 건 싫었다. 집에 도착하자 쿠는 날 내려주고 마구간에 말을 넣으러 갔다.

먼저 집으로 들어가자 벽난로의 온기가 훅 하고 끼쳤다. 외출복에서 실내복으로 갈아입고 나오니 쿠하힐이 이미 들어와 앉아 있었다. 난 소파에 앉아 있는 쿠의 다리 위에 얼른 앉아서 물었다.

“쿠하힐, 저기 있지……. 나 예뻐?”

묻고도 창피해서 얼른 시선을 돌리자 쿠가 내 턱을 잡아 자신을 보게 하고는 날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낮게 속삭였다.

“에스카의 눈을 볼 때면, 가끔은 숨 쉬는 방법도 잊어버려. 네가 웃으면, 생각하는 법을 잊어버리고.”

그리고 가볍게 입맞춤을 하고 물었다.

“대답이 됐어?”

“응.”

난 쑥스러웠지만 기뻐서 그의 품으로 파고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쿠하힐이 그런 내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어내렸고 난 그의 품 안에서 곧 잠이 들었다.

이상하게 요즘 잠이 늘어나서 내가 겨울잠을 자는 동물인가 진지하게 생각해볼 정도였다.

그렇게 잠을 자니 허리가 늘 뻐근했고, 이상하게도 오히려 더 피곤한 기분이었다. 잠을 좀 줄여야지 하고 생각했지만 이놈의 잠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쿠가 쓸데없이 걱정할까 봐 난 더 활발한 척을 하곤 했다.

“에스카.”

“응?”

“이번에 다녀오면, 중요한 할 이야기가 있어.”

쿠의 말에 난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헤어지자는 이야기일까? 다른 곳에서 더 매력적이 여자를 만났어, 라거나…….

솔직히 난 루아처럼 예쁘고 사근사근하지도 않고, 메이처럼 날렵하고 카리스마 있는 타입도 아니었다.

그냥 집에 처박혀서 보석이나 들여다보고 있는…….

생각하니 입이 써서 난 애써 웃어 보였다.

“응, 기대하고 있을게.”

쿠가 그런 날 바라보다가 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요즘 너무 무리하고 있는 거 아냐? 피곤해 보여.”

“응, 납입 기한이 코앞인 물건이 있어서. 그것만 끝나면 괜찮아.”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어서 난 얼른 대답했고 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저기, 있지. 내가 쿠에게 준 검 말인데.”

“응.”

“만약에 우리 사이가 어떻게 돼도, 그 검은 내가 쿠에게 준 거야. 다른 것도, 전부. 돌려주지 않아도 괜찮아.”

애써 웃으며 말하자 쿠가 조용한 얼굴로 날 보다가 물었다.

“우리 사이가 어떻게 된다는 게 뭔데?”

“어?”

“어떻게 된다는 게 뭔데?”

“아니, 그게, 트러블이 생긴다거나…… 물론 안 일어나는 게 가장 좋은 일이야!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만약에 그게, 혹시 쿠가 그게 걱정이 된다면…….”

“걱정? 네가 검을 돌려달라고 할까 봐? 에스카 블란테, 제발…….”

쿠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푸른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내가 검 때문에 너와 헤어지지 않는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일은 결단코 없을 거라고 말해두지.”

쿠가 자리에서 일어나 난 따라 일어났다.

“아니, 저기 쿠, 그런 말이 아니었어.”

“정말? 내가 듣기로는 그렇게 들렸는데?”

그러고는 쿠가 검대를 풀어 통째로 나에게 넘기며 말했다.

“도로 가지고 가.”

“아냐, 쿠 제발. 응?”

내가 그에게 검을 도로 내밀었지만 쿠는 받지 않고 그대로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난 멍하니 그의 닫힌 문에 시선을 주었다가 스르륵 문 옆에 주저앉았다.

“읏…….”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게 아니었는데. 이게 아니라, 좀 더 잘 이야기를 했어야 했는데. 꼭 내가 쿠를 속물처럼 취급했어. 이제 쿠가 나에게 질렸대도 할 말이 없어. 그게 아니라 만약에 헤어진다고 해도, 난 쿠를 사랑한다고……. 아냐, 이것도 너무 스토커 같잖아. 쿠가 내게 빚이 있다고 생각해서 남아줄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를…….

아냐, 사실은 그렇게 해서라도 남아줬으면 좋겠어. 사실은 은근히 쿠를 떠본 거야. 쿠가 날 싫어하게 돼도, 곁에 있어줬으면 해서. 이딴 걸로라도 잡고 싶어서.

쿠가 화낼 만해.

돌로 된 바닥과 벽에서 한기가 뿜어져 나와 몸이 덜덜 떨렸지만 이것도 그냥 나에게 내리는 벌처럼 느껴졌다. 그런 상황에서도 난 잠이 왔고 어느 순간 검을 꼭 끌어안고는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는 쿠의 침대 안이었다. 아직 따끈따끈한 물주머니가 발밑에서 느껴졌다. 난 그 따스함이 좋아서 몸을 웅크렸다가 오늘이 쿠가 떠나는 날이라는 게 퍼뜩 생각이 나서 잠이 확 달아났다. 침대에서 뛰쳐나와 시계를 보니 이미 정오가 넘어 있었다. 허탈했다.

‘말도 없이 가버렸어.’

멍하니 시계를 보다가 침대로 다시 돌아가는데 협탁에 쪽지가 붙어 있었다.

―다녀올게. 검은 가지고 가.

그 쪽지에 다시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아, 뭐야, 에스카. 그만 좀 울어.”

요즘 감정 조절이 왜 이렇게 안 될까?

하지만 눈물을 참을 수가 없어서 난 엉엉 울며 침대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남은 온기와 쿠의 체취에 휩싸여 울면서 잠들었다.

저녁에 억지로 밥을 먹는데 연락 구슬이 소리를 내며 반짝였다. 아를인가 싶어 구슬을 가지고 벽난로 앞에 앉았다.

“연결.”

“……에스카?”

“쿠?”

“아, 진짜로 되네.”

“어떻게 된 거야? 어디서 난 거야?”

“상회에서 빌렸어.”

“그랬구나…….”

잠시 침묵이 둘 사이를 지나갔다. 쿠가 말했다.

“메이에게 이야기 들었어. 엘런, 아니, 그 개자식이 너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아니, 그게. 난…….”

“에스카,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내가 너와의 관계보다 이딴 검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미안…….”

“사과를 받고 싶은 게 아냐.”

“하지만…….”

“하지만?”

“쿠에게 여자도 많다고 하고…….”

“뭐?”

“메, 메이 씨도 나보다 예쁘고 매력적이고.”

“…….”

“게다가 왠지 둘이 친해 보이니까. 얘기도 나누고, 막 농담도 하는 것 같고.”

“질투하는구나.”

그렇게 말하는 쿠의 어투가 너무 밝아서 난 당황했다.

“그, 그런 거 아니고. 그냥, 싫어.”

건너편에서 쿠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반응에 난 놀라서 멍하니 구슬을 보다가 물었다.

“저기, 쿠.”

“하하, 아, 웃어서 미안.”

“화…… 안 나?”

“뭐? 왜?”

“그…… 내가 쿠의 인간관계에 대해서, 음……. 싫다고 하는데?”

“아니, 나에 대해서 에스카가 소유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기쁜데. 아, 에스카 네가 곁에 있으면 좋겠어. 그럼 네게 키스를 하고 당장 셔츠를 벗긴 다음에…….”

“쿠하힐!”

내가 소리치자 잠깐 침묵이 건너편에서 지나갔다. 그가 이어 말했다.

“사랑해, 에스카.”

“나도 사랑해, 쿠. 몸조심하고, 절대로 다치지 마? 응?”

“안 다쳐.”

쿠가 그렇게 말하고 우리는 좀 더 이야기 하다가 통신을 끊었다. 난 헤헤헤 웃고는 구슬을 꼭 쥔 채 카펫 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행복하다.’

쿠와 함께 있어서, 행복해.

난 그렇게 생각하고 카펫 위에서 고양이처럼 몸을 말고는 잠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 날부터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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