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 고민(1-2권) (4/16)

노예를 충동구매해 버렸다 1-2

C o n t e n t

4. 고민

“아, 집이 최고야.”

난 짐을 아무렇게나 던진 다음 소파에 몸을 날리며 말했다. 사키에게 부탁해놓은 덕에 집은 깔끔하게 관리되어 있었다.

“자, 쿠도 이리 와.”

난 내 옆자리를 팡팡 두들기며 말했고, 쿠는 자신의 짐을 가만히 내려놓고 내 옆에 와서 앉았다. 내가 쿠의 허리를 꽉 끌어안자 쿠가 의아한 듯 물었다.

“안 하던 어리광을 부리시는군요.”

“싫어?”

“아닙니다.”

“쿠, 나 쿠를 좋아해.”

“…….”

잠시 대답이 없던 그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저도 좋아합니다.”

그 대답에 난 헤헤 웃고 그의 팔에 뺨을 비볐다. 이상하다.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으면서 막상 쿠가 떠난다고 생각하니까 외롭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가지 말라고 말하면, 쿠는 안 갈 거야.’

무뚝뚝해 보여도 좋은 사람이니까, 날 생각해서 가지 않겠지. 내가 떠나라고 말하지 않으면 은혜 때문이라도 떠나지 않을 거야.

하지만 그러면 안 돼.

내 이기심 때문에 쿠의 미래를 막으면 안 돼.

쿠가 느린 손짓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고 보니 집에서 혼자가 아닌 게 얼마 만이더라? 10년 만인가? 쿠가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둘이 있는 게 익숙해져서…….

난 쿠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을 즐기며 가만히 그렇게 앉아 있었다. 하지만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울려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나 쿠가 검 연습하는 거 구경해도 돼?”

“물론입니다만, 재미는 없을 겁니다.”

“그래도, 궁금한걸.”

“검을 그냥 휘두르는 것뿐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쿠는 밖으로 나갔고, 나도 그 뒤를 총총 쫓아 나갔다. 쿠가 말한 대로 그의 연습은 지루하다면 지루했다. 내려치기와 베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는 모습을 난 그냥 멍하니 바라보았다. 상의를 벗고 검을 휘두르기 때문에 그의 근육들이 움직이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나는 중간중간 내가 침을 흘리지는 않았는지 확인해봐야 했다.

흐르는 땀을 수건으로 닦으며 쿠가 물었다.

“재미없지 않으십니까?”

“으으응, 흥미 있어.”

“검을 배운 적이 있으신가요?”

“아니, 마법 배우기도 바빴는걸. 난 스승님처럼 천재가 아니니까.”

“스승님은 검술도 하셨다고 그러셨죠.”

“응. 나도 좀 배워볼까 했는데 내가 처음 검을 든 걸 보고 스승님이 바로 그만두라고 하시더라. 「네 머리로는 마법도 벅차.」라고 하시면서. 너무하지 않아?”

투덜거리자 쿠가 웃었다.

“말씀하시는 것치고는 애정이 배어 있습니다만?”

“그야…….”

난 정곡을 찔려 얼버무리며 웃었다.

“여자애인 날 후계로 삼고, 마법의장을 물려주셨으니까. 말보다는 행동이 더 중요한 법이잖아?”

“그렇죠.”

쿠가 고개를 끄덕이고 내게 손을 뻗었다가 내리며 말했다.

“전 여자 세공사는 처음 봤습니다.”

“현재 여자 마법세공사는 나뿐이야.”

“그렇습니까?”

놀랍다는 듯한 쿠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눈을 반짝거리며 물었다.

“그런데 저기 쿠, 나무도 막 베고 그럴 수 있어?”

내 질문에 쿠가 묘한 얼굴을 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난 얼른 장작을 가지고 와서 쿠에게 보여주었다.

“이렇게 굵은 것도?”

“여기에 올려놓으세요.”

울타리 위를 쿠가 가리켜서 난 조심스럽게 울타리 위에 장작을 세웠다. 쿠는 나에게 물러나라 말하고는 내가 안전한 곳까지 떨어진 것을 확인한 뒤에야 검을 휘둘렀다. 잠시 후 장작이 사선으로 잘려 떨어졌다.

“우와! 쿠, 진짜 대단하다! 뭐야? 어떻게 한 거야? 검으로?”

“보셨다시피.”

“내가 해봐도 돼?”

쿠는 그만두는 게 좋을 거라는 얼굴을 했다가 순순히 내게 검을 건네주었다. 기세 좋게 장작을 향해 검을 후려쳤지만, 장작은 그대로 배트에 맞은 공처럼 날아가고 내 손바닥만 얼얼해졌을 뿐이다.

쿠가 내 손에서 검을 받아 들며 말했다.

“정말로 엉망이십니다.”

“그야, 배워본 적 없으니까. 그나저나 어떻게 저게 잘리지? 쿠 진짜 대단하다.”

내가 거듭 감탄하자 쿠가 웃고는 말했다.

“이런 서커스 같은 게 즐거우신가요?”

“응, 신기해. 대단해. 쿠는 서커스 본 적 있어?”

“아뇨, 한 번도 없습니다.”

“그거 아쉬운걸.”

“다음에 같이 보러 가지요.”

“응, 그러자.”

서커스가 제때에 마을에 와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쿠가 검을 도로 검집에 넣고는 나에게 속삭였다.

“그럼 이제 같이 씻을까요, 주인님?”

난 쿠를 빤히 보다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으응, 앗…… 흑…… 쿠…… 아앗!”

난 쿠의 목을 양손으로 끌어안고 필사적으로 그에게 매달렸다. 쿠는 내 양다리를 들어 올려 날 욕실 벽에 밀어붙인 채로 피스톤질을 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안쪽 깊은 곳까지 마구 찌르고 들어와서 난 흐느끼며 쿠를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쿠는 내 신음 소리를 삼키듯 내게 키스하며 잠시 동작을 멈췄다가 다시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느리지만 넣을 때는 인정사정없이 들이박듯 안을 찔렀다. 정확하게 느끼는 부분을 건드리는 그 동작에 난 쿠가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몸을 부들부들 떨며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내 목소리는 전부 쿠의 혀에 먹혀 사라져버렸다. 결국 평소처럼 내가 먼저 절정에 올라 손톱을 세우며 몸을 경련시켰다. 쿠는 내 뺨을 핥으며 내 절정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경련이 멈추자 다시 올려 치기 시작했다. 내가 두 번째 절정에 오를 때 그도 함께 사정했다.

그가 날 바닥에 내려놓았다. 난 그의 정액이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리는 걸 느꼈다.

다리가 부들부들 떨려서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설 수조차 없어 자꾸 쓰러지는 나를 추스른 쿠는 벽에 손을 짚고 서게 만들었다. 그리고 내 등 뒤에 서서 내 가슴을 움켜쥐고는 내 엉덩이에 자신의 성기를 문지르며 손끝으로 유두를 괴롭혔다.

“아…… 읏…… 쿠…… 더 이상은 못 서 있겠어…….”

“조금만 더 힘내세요, 주인님.”

쿠는 내 귓바퀴를 깨물고 천천히 내 안에 성기를 밀어 넣으며 클리토리스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힉 하며 그대로 주저앉을 뻔한 나를 쿠가 붙잡아 일으켰다.

허벅지가 덜덜 떨리면서 자꾸 힘이 풀려 무릎이 꺾였다. 결국 쿠는 그대로 바닥에 앉아 자기 위에 날 앉혔다.

“이제 좀 편하신가요?”

“으응, 흑…… 읏…… 아…….”

성기가 삽입된 채 쿠의 손가락이 내 민감한 부분들을 유린했다. 난 벌벌 떨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절정에 오르는 나에게 쿠가 속삭였다.

“아직 움직이지도 않았습니다만?”

“하지만…… 쿠, 가…… 응읏! 앗앗앗!”

쿠가 대답을 다 듣기도 전에 쳐올리기 시작했다. 난 다시 신음 소리를 내며 쿠에게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쿠는 검지와 엄지로 집요하게 클리토리스를 돌리고 문지르며 귀두로 질벽의 민감한 곳들을 비벼댔다. 민감해질 대로 민감해진 유두는 이제 쿠의 손놀림이 아픈지 아니면 자극적인지도 구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난 쿠에게 맞춰 허리를 흔들며 좀 더 절정으로 날 몰아갔다. 쿠는 쉽게 내가 원하는 쾌락을 내주었다. 배 안쪽으로 뜨거운 정액이 퍼지는 느낌에 난 눈앞이 새하얗게 되는 것을 맛보며 전신을 경련시켰다. 경련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 반복됐다. 쿠는 움찔거리는 내 손을 잡아주며 내 어깨에 키스를 퍼부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주인님.”

쿠가 내 안에서 성기를 빼내자 안에서 새하얀 정액과 애액이 주르륵 흘러 바닥으로 투두둑 떨어졌다. 쿠의 가슴에 기대어 나는 한참을 쌕쌕거리며 숨을 고르다가 끙끙거리며 몸을 돌려 쿠를 마주 보았다.

“부족하십니까?”

“아니, 쿠의 얼굴을 보는 게 좋아서.”

난 헤헤 웃으며 쿠의 입술에 가벼운 버드키스를 했다. 쿠 역시 내 입술에 뺨에 이마에 눈가에 가볍게 키스해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날 일으켜 세워주었다.

“씻는 걸 도와드리겠습니다.”

“응? 혼자서도 할 수 있어.”

“그러다가 욕실에서 넘어지시면 크게 다칩니다. 게다가 빼는 건 주인님께서 직접 하신 적이 없으시잖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배우면…….”

“제가 있는데 배우실 필요가 없지요.”

그렇게 말한 쿠가 내 안팎을 전부 씻겨주었다. 난 완전히 탈진해서 욕조에 앉아 그가 씻는 것을 지켜보았다.

쿠의 다리 사이를 유심히 보았지만 아무래도 저게 내 안에 전부 들어온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았다.

‘하긴, 아기도 나오는 곳이니까.’

스스로를 납득시키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쿠가 날 일으켜 세우더니 수건을 둘러주었다. 내가 쿠에게 말했다.

“같이 자자.”

“이 상태에서 같이 자자고 하면 침대에서 두 번째를 하자는 말인가요?”

“가능해?”

깜짝 놀라 묻자 쿠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가 소리 내어 웃는 걸 보는 건 처음이었다.

멍하니 그를 보자 쿠는 웃음을 멈추고 내 이마에 키스했다.

“언제든지 가능합니다, 주인님.”

“나는…… 난 기절할 것 같은데…….”

“압니다. 그러니 착한 아이처럼 얌전히 주무십시오, 주인님.”

“그럼…… 안 하고 같이 자면 안 돼?”

그 말에 쿠가 날 가만히 바라보다가 흐린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먼저 가 계십시오. 준비를 하고 따라가겠습니다.”

준비?

난 의아했지만 고개를 끄덕이고 비틀거리며 욕실을 나왔다. 확실히 쿠에 비해서 체력이 부족했다. 운동이 필요한 것 같았다.

‘검을 가르쳐달라고 할까……? 검을 배우려면 오래 걸리겠지? 그 핑계로 쿠를 머물게 할까? 내가 월급을 주고…… 강사로 고용을 해서…… 가족들에게는 편지로 양해를 구하자고 하고.’

그런 생각을 하며 침실로 들어가 잠옷으로 갈아입은 나는 스스로가 한심해서 뺨을 한 번 꼬집었다. 쿠가 검을 가르친다면 그건 기사단에서일 것이다. 그의 재능을 나 혼자 독차지하는 건 이기적인 일이었다. 그것도 지독하게.

침대로 꾸물꾸물 들어가자 잠시 후 쿠가 침실로 들어왔다. 옷을 입는 소리가 나고 그가 침대로 들어와 날 안았다.

“고마워, 같이 자줘서.”

“아닙니다.”

“잘 자, 쿠.”

“안녕히 주무십시오.”

그리고 쿠가 이어서 “라이트 오프.” 하고 말하자 침실의 불이 탁 하고 꺼지면서 완전히 어두워졌다. 난 쿠의 품으로 더 파고들어 그의 심장 소리를 들으면서 잠들었다.

“여행용품이요?”

사키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에스카님이 가실 겁니까?”

“아니, 쿠를 자유민으로 만들어줄 거라서. 멀리 떠나려면 짐이 필요……. 사키, 그런 얼굴 하지 마.”

“지금 에스카님이 적어도 30만 페소는 투자한 노예가 자유의 몸으로 날아간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저절로 표정 관리가 안 되었습니다. 네, 계속 말씀하시죠.”

“그래서 여기서 엘란시아까지는 많이 걸리겠지?”

“엘란시아로 돌아간답니까?”

“아니, 그런 말은 못 들었지만. 아무래도 가족이 거기 있으니까.”

“그는 거기로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어? 그걸 사키가 어떻게 알아.”

“에스카님, 보통 귀족을 포로로 잡으면 잘 대접하고 포로 교환을 해서 돈을 듬뿍 타낸 다음 돌려보낸답니다.”

사키의 말에 난 멍하니 그의 얼굴을 보다가 물었다.

“그럼 쿠는?”

“포로 교환에서 누락되었다, 그런 경우도 있을 수 있겠죠.”

사키가 가볍게 손끝으로 탁자를 두들기며 미소 지었다.

“하지만 에스카님, 만약 샤샤님이 노예로 팔려 갔다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연히 찾아야지! 온 경매장을 다 돌아서, 전 재산을 쏟아부어서……라……도…….”

난 갑자기 찾아온 깨달음에 말을 멈추었다. 사키가 웃는 얼굴로 날 보며 말했다.

“에스카님. 기사가, 그것도 고명한 기사가 노예로 떨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건들이 엉켜 있을지 짐작이 가십니까? 만약 그가 엘란시아로 돌아간다면, 그건 아마 복수를 위해서가 아닐까요? 그것도 나쁘지는 않은 선택일 테지만요. 하지만 가서 죽어버리면 에스카님이 들이신 돈이 아깝군요.”

사키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마무리했다. 난 안절부절못하고 그를 보다가 물었다.

“그럼, 쿠의 가족이 쿠를 버린 거야……?”

“그런 비극적인 뉘앙스로 말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본래 출신이 좋지 않은 아들이 너무 눈에 띄면 다들 잘라내려고 달려드는 게 생리니까요. 가문의 사생아가 유명해지면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하지만, 그래도 가족이잖아. 같은 피가 흐르는 가족인데.”

“음, 아마 에스카님과 똑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거기에도 있어서, 죽이지 않고 노예로 만드는 걸로 끝낸 걸지도 모르죠. 그게 과연 죽는 것보다 나은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사키는 어디까지나 냉정했다. 내 표정을 보고 사키가 나지막하게 보충했다.

“에스카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는 중독자로 팔려 다니다가 죽었을 겁니다. 아마, 산 채로 해체되었을 수도 있죠. 약물 과다로 죽거나요. 그러니 에스카님을 만난 건 그에게 굉장한 행운입니다. 에스카님이 슬퍼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말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난 고개를 푹 숙이고 양손으로 눈가를 눌렀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나 엘란시아에서 나온 오르골을 쿠에게 선물했어.”

“저런.”

“완전 바보 같아.”

“모르셨으니까요.”

“그럼 쿠는 어떻게 하지?”

난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퍼뜩 들고 말했다.

“아를이 쿠를 기사로 삼고 싶다고 그랬었어.”

“델루치아 기사단에 말입니까? 그건 또 꽤나 파격이군요.”

그렇게 말하며 사키는 고개를 갸웃했다가 웃었다.

“델루치아 공작님도 꽤나 머리를 쓰시네요.”

사키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쿠는 거기는 가기 싫다고 그랬는데…….”

“뭐, 자유를 준 후에 결정하는 건 그의 몫이니 에스카님이 신경 쓰실 필요야 없죠. 그보다 에스카님, 제 아내가 점심때 초대하고 싶다는데 괜찮으신가요?”

“루아가? 당연히 가야지. 언제?”

“모레 점심은 어떠하신가요?”

“괜찮아.”

“그리고 주문하신 여행용품은 일단 일주일 치 준비해두겠습니다. 이 정도면 공작령까지 갈 수 있겠죠. 어차피 에스카님이 여행자금도 두둑하게 챙겨주실 테니까요.”

“고마워, 사키. 모레 1시까지 집으로 갈게.”

“루아가 기뻐할 겁니다.”

말을 타고 저택으로 돌아가는데, 산 중턱쯤에 올랐을 때 마중을 나와 있는 쿠를 발견했다.

“쿠!”

얼른 말을 멈춰 세우고 말에서 내리려 하자 그는 내가 내리는 걸 도와주었다.

“타고 가셔도 됩니다만.”

“아냐, 쿠랑 같이 걷는 게 좋아.”

난 잠시 망설다가 쿠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

“쿠, 엘란시아는 어떤 곳이야?”

“여기보다 더 따뜻합니다. 햇살도 강하고요. 다들 화려한 걸 좋아하죠.”

“쿠하힐, 저기 있지.”

엘란시아로 돌아갈 거야?

아니라면 날 떠나서 어디로 갈 거야?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쿠는 내 말을 기다리며 가만히 날 바라보고 있었다.

“음…… 헤헤, 아니 사키가 점심 식사 초대했는데 모레 같이 가자.”

“그러죠.”

고개를 끄덕이는 쿠와 잡은 손을 조심조심 깍지로 바꿔 잡았다. 쿠는 그런 나를 잠시 바라보았다가 잡은 손에 힘을 주고 내게 맞춰 느리게 걸었다.

마을 외곽에 있는 사키의 집은 마치 정원에 핀 꽃에 푹 파묻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담장에는 소박한 들장미 넝쿨이 엉겨 있었고, 대문에 걸친 둥근 아치에는 커다란 장미가 화려하게 얽혀 있었다. 그렇게 크지 않은 정원이지만 아기자기하고 꽉 차게 꽃과 나무들이 다듬어져 있었다. 정원 안으로 들어가 현관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문이 열리면서 사람이 나왔다. 작은 체구에 금발, 둥글둥글하고 꿈꾸는 듯한 푸른 눈, 루아였다. 루아는 날 보더니 어머나 하고 미소를 지었다.

“에스카님, 어서 오세요.”

“안녕, 루아. 오랜만이야. 사키는?”

“사키는 안에 있어요. 어머, 어머, 이쪽이 그 새로 구매하신 노예인가요?”

“응. 쿠하힐이라고 해.”

“사키의 말만 들었을 때는 팔도 못 쓰는 약쟁이에 반편이 같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멋진 청년이잖아요.”

노래하는 듯한 말투로 신랄한 말을 하는 점이 사키의 부인다웠다.

문을 열어주며 그녀가 안내한 집 안은 그녀의 취향에 따라 생화와 퀼팅한 천들로 사랑스럽게 꾸며져 있었다. 나에게는 절대로 없는 재주라서 난 볼 때마다 감탄하고는 했다. 소파에는 그녀가 직접 만든 아기자기한 쿠션이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에스카님, 오셨습니까.”

사키가 안에서 나오며 인사했고 난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사키, 안녕.”

“자아, 마침 딱 음식이 다 되었으니 다들 자리에 앉아주세요.”

루아가 우리를 식당으로 이끌며 말했다. 테이블 위에는 이미 그릇들이 귀엽게 세팅되어 있었고, 사키의 권유에 따라 나는 자리에 앉았다. 쿠가 내 뒤에 서려고 하자 루아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당신도 자리에 앉으세요, 음식은 많이 있답니다.”

그 말에 내가 내 옆자리를 톡톡 두들기자 쿠는 망설이다가 자리에 앉았다. 루아는 그런 쿠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마치 춤추는 것 같은 걸음으로 부엌에 들어가 차례로 음식을 내왔다. 사키도 음식 내오는 것을 도와주었다. 컨트리풍의 푸짐한,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고기 위에 뿌린 소스가 너무 맛있어서 난 접시를 핥지 않기 위해 애써야 했다.

루아는 충실한 안주인답게 모두가 배불리 먹었는지 확인하고 나서야 식사를 치우고 후식을 내왔다.

“여보, 체스나 한 판 두지 그래요?”

루아가 말해서 사키가 날 보며 물었다.

“한 판 하시겠습니까?”

“사키가 매일 이기는걸.”

내가 입술을 내밀며 말하자 루아가 다시 말했다.

“그럼 옆의 분은 어떠세요?”

“저는…….”

“에스카님과 여자끼리의 이야기를 하려고 지금 밀어내는 거니까 기꺼이 밀려주시면 돼요.”

루아의 말에 쿠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사키와 쿠가 체스를 하러 거실 난롯가로 물러나자 루아가 날 빤히 보았다.

“왜? 무슨 일이야? 사키가 괴롭혀?”

“어머, 어머, 그럴 리가요. 에스카님은 제게 할 말 없으세요?”

“아, 가져다준 산딸기잼 진짜 맛있었어.”

“그건 아까 식사하실 때 말씀하셨고요.”

그럼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싶어 조심스럽게 그녀를 보자 루아가 생글생글 웃었다.

“에스카님 옆에 있는 남자가 에스카님을 잡아먹을 듯 정신없이 바라보던걸요.”

“사키가?”

“아뇨, 반대쪽 옆이요.”

내 얼빠진 질문에도 루아는 침착하게 웃으며 말했다. 난 엇 하고 잠시 할 말을 잃었다가 당황해 물었다.

“그렇게 미워하는 것 같았어?”

“네?”

“잡아먹을 것같이 본다면서……. 역시 내가 마음에 안 드는 걸까. 빨리 자유민으로 만들어줘야겠지?”

내 말에 루아가 큰소리로 웃고 말했다.

“그게 아니라 그 남자가 에스카님을 좋아한다고요.”

난 멍청이처럼 입을 벌리고 루아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얼굴이 후끈 뜨거워졌다.

“아니, 그게, 진짜?”

“네, 눈치 못 챌 수가 없지요.”

“하, 하지만 그러니까, 쿠는, 그러니까…… 난…… 재미없는 여자고…….”

내가 한때 기사였던 쿠의 눈에 찬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난 양손을 쥐어짜듯 꼭 쥐며 말했다.

“루, 루아도 알지만 난 루아처럼 여성스럽지도 않고, 맨날 셔츠 차림이고, 스승님도 너 그렇게 하면 시집 못 간다고 매일 그러셨고……. 여, 여하튼.”

“쓸데없는 소리. 그리고 제 눈은 못 속여요. 저 노예는 분명 에스카님에게 푹 빠져 있어요. 그래서 에스카님은 어떠세요? 저 노예가 마음에 드세요?”

“쿠는…… 쿠는 소중한 사람이야.”

“거기서 시작해도 괜찮지요.”

루아는 빙그레 웃었다. 난 그녀를 보지 못하고 컵만 열심히 바라보았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나는, 난 모르겠어. 그보다 쿠가 날 좋아한다고?”

“확신하지 못하겠으면 물어보세요.”

“만약 아니면 어떡해?”

“그럼 그런가 보다 하면 되죠.”

“창피하잖아.”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건 창피한 게 아니에요, 절 보세요. 창피해하고만 있었다면 사키와 결혼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리고 그걸 무릅쓴 결과 전 지금 매우 행복하답니다.”

루아의 말에 난 할 말을 잃었다.

자작가 아가씨가 상회 남자에게 반해 몇 번이나 대시한 결과를 난 눈앞에서 보고 있었다.

덕분에 루아는 가문에서 절연당했지만 그녀는 그 정도는 각오했다며 웃었다.

“용기를…… 모아볼게.”

“네, 마침 오늘 카니발도 열리니까 돌아가는 길에 한번 둘러보고 가세요.”

“정말? 그럼 서커스도 올까?”

“아마도요?”

“와~.”

내가 기뻐하는데 루아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리고 에스카님, 하나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응, 뭔데? 뭐든지 말해봐.”

내 말에 루아가 후후 웃고는 자신의 배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확인해주실 수 있나요?”

“……!”

난 목소리도 안 나올 만큼 기뻐서 루아의 손을 꽉 잡았고 루아는 다시 웃었다.

잠시 후 우리가 거실로 나왔을 때, 남자 둘은 심각한 표정으로 체스판을 사이에 두고 열중하고 있었다. 루아가 살짝 사키의 옆으로 다가가 그의 어깨를 톡톡 두들겼고, 사키가 고개를 돌리자 웃으며 그의 귀에 손을 대고 속삭였다. 사키는 멍하니 루아를 보다가 “정말?” 하고 되물었고, 루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날 보았다.

“에스카님이 확인해주셨어요.”

사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웃으며 루아를 꽉 끌어안았다.

“맙소사, 루아. 몸은 괜찮소? 아프거나 하지는? 너무 험한 일을 하고 있는 건.”

“전 괜찮아요.”

둘이 행복 오라를 팡팡 뿜어내서 난 쿠를 일으켜 세웠다.

“점심 식사 즐거웠어. 카니발이 있다니까 이만 가볼게.”

“네, 에스카님. 다음에 또 봬요.”

사키에게 폭 안긴 루아가 손을 흔들었고, 사키는 내게 인사를 해 보이고 쿠에게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내 제안을 잊지 않길.”

쿠는 그에게 차가운 시선을 던지고 루아에게는 인사를 해 보였다. 저택을 나와 쿠의 팔짱을 끼며 물었다.

“사키의 제안이 뭐였어?”

“별것 아니었습니다.”

잠시 얼굴을 바라보자 쿠가 살짝 곤란한 듯한 표정을 했다. 나는 재빨리 주제를 돌렸다.

“오늘 마을에 카니발이 있대. 서커스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가보지 않을래?”

“네.”

마을은 카니발로 소란스러웠다. 카니발에 편승하기 위해 나온 온갖 잡상인들로 인해 혼잡했지만 서커스의 높은 천막은 쉽게 눈에 띄었다. 우리는 당장 서커스 표를 두 장 끊어서 안으로 들어갔다. 서커스는 항상 그랬듯 비슷한 레퍼토리였지만 즐거웠다.

공중그네와 광대, 애크러뱃과 단검 던지기, 외줄타기까지. 눈 깜짝할 두 시간이 지나고 난 정신없이 친 손뼉 때문에 빨개진 손바닥을 호호 불며 말했다.

“엄청 재미있었지?”

“거기에서 주인님이 가장 즐거워하시는 것 같더군요.”

“오랜만에 보니까 나도 모르게…….”

“아뇨, 그런 주인님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습니다. 눈이 너무 반짝여서 어둠 속에서도 또렷이 보일 정도였으니까요.”

“내가 아니라 서커스를 봐야지.”

내 꾸중에 쿠는 그냥 웃고 말았다. 난 길거리 상인들을 바라보다가 아차 하고 주머니에서 10페소를 꺼내어 쿠에게 건네주었다.

“주인님?”

“용돈! 카니발에 왔으면 뭔가 사 먹고 놀아야지. 어렸을 때 스승님께 용돈을 얻으려고 온갖 아양을 다 떨었던 걸 생각하면…….”

스승님은 아양과 애교를 떠는 내 모습을 히죽히죽 웃으면서 지켜보다가 주머니에서 1페소를 꺼내서 나에게 건네주곤 했다.

쿠는 괜찮다고 했지만 난 억지로 그에게 돈을 밀어붙였다. 그리고 상점들을 돌아다니는데 싸구려 액세서리를 파는 가게 상인이 우리를 붙잡았다.

“거기 연인분들 와서 보세요. 카니발이라서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어요. 이 반지는 어떠세요?”

난 연인이라는 말에 당황해서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죄송해요.”

쿠를 잡아끈 나는 곧 솜사탕을 만들어주는 곳에 눈이 팔려 그곳으로 향했다. 특별히 두 가지 색이 섞인 솜사탕을 주문하고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솜사탕을 받아 들었는데, 옆에 쿠가 없었다.

“어?”

난 당황해 솜사탕을 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쿠?”

어디로 갔지?

걸음을 옮기는데 뒤에서 누가 내 손을 탁 잡았다. 놀라 돌아보니 쿠였다.

“쿠!”

“그렇게 함부로 움직이시면 어떻게 합니까?”

“하지만 쿠가 없으니까…….”

“그럴 때는 움직이지 말고 그 자리에서 기다리십시오.”

“응…….”

어렸을 때 스승님에게 혼나던 것과 레퍼토리가 똑같다고 생각하는데, 쿠가 내 손을 당기더니 손바닥에 반지를 떨어트렸다.

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지를 내려다보았다. 유리를 불어 만든 싸구려였지만 확실히 반지꽃 모양이었다.

“반지꽃 반지네?”

“아까 있는 걸 봤습니다.”

“나 주는 거야?”

“그럼 제가 낄까요?”

“고마워, 쿠. 잘 낄게.”

내가 반지를 끼려다가 한 손의 솜사탕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고민하는데 쿠가 내 손바닥에서 반지를 집어 들며 말했다.

“제가 끼워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가 내 손을 뒤집고는 가볍게 반지를 끼워주었다. 난 손을 쭉 펴서 반지를 살펴보았다. 마음속에 뭔가가 보글보글했다.

아니, 간질간질?

뭔지는 모르겠지만 엄청 기분이 좋았다.

“고마워, 쿠!”

활짝 웃으면서 말하자 쿠는 잠시 멍하니 내 얼굴을 보았다가 미소를 지었다.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군요.”

우리는 천천히 걸어서 저택으로 돌아갔다.

도중에 산 중턱에서 노을이 지는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마을은 이미 연보라색으로 물들어 카니발 등불이 점점이 빛나고 있었고, 붉은 노을이 그 위에 덧칠되어 금색 구름과 함께 아름다운 색을 짜내고 있었다.

“예쁘다…….”

내가 한숨처럼 중얼거리자 쿠가 내 시선을 따라 마을로 시선을 옮기고는 “그렇군요.” 하고 대답했다. 시끄러운 마을과 달리 조용해서 우리 둘만 세상과 떨어져 있는 기분이었다.

‘지, 지금이 용기를 모을 때인가.’

반지를 낀 손이 금세 축축해지는 것을 느끼며 난 쿠를 바라보았다. 쿠의 푸른 눈에 노을이 비껴 꼭 보석처럼 보였다.

“저기, 쿠.”

“네.”

“있지, 그게…… 쿠는…… 혹시…….”

나, 날…… 좋아…….

“델루치아 기사단에 들어갈 마음이 있느냐고 물으시는 거라면, 없습니다.”

“어, 그래…… 그렇구나.”

그러모은 용기가 한순간에 바람 빠지듯 푸시식 하고 사라졌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괜찮아. 쿠가 어떤 선택을 해도, 난 강요하지 않으니까.”

“그게 더 괴롭지만요.”

작게 중얼거린 목소리에 쿠를 휙 돌아보았지만, 쿠는 나를 보지 않고 산 아래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서서 가만히 오른손의 반지를 바라보았다.

아까와 달리 기쁘지 않고 왠지 가슴속이 쓰려왔다.

한참을 그러고 있던 쿠가 날 돌아보며 말했다.

“돌아가죠.”

“응.”

난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서서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머리카락을 만지는 느낌에 뒤를 돌아보니 쿠가 내 머리카락을 붙잡았다가 놀라 손을 놓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응? 아냐, 뭐 묻었어?”

카니발에서 놀다가 뭔가 묻었나 싶어 머리카락을 살피는데 쿠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게 아니라.”

쿠는 내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숙였고 난 의아해져서 물었다.

“그럼 흰머리라도 있어?”

“아닙니다.”

쿠가 고개를 들고 강하게 대답해서 “어, 그래? 그럼 다행이고.” 하고 돌아서려는데 그가 말을 이었다.

“그게 아니라 만져……보고 싶었습니다.”

그 말에 난 몸을 돌리려던 걸 멈추고 쿠를 보며 웃었다.

“평소에 많이 만지잖아.”

“네, 하지만 노을에 비껴서…….”

쿠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난 피식 웃었다.

“마음껏 만져도 괜찮아.”

그 말에 쿠는 느릿하게 손을 뻗어 내 머리카락을 쥐었다. 그리고 내 머리카락 끝에 키스했다.

아주 길게, 신성한 것에 키스하듯이 입맞춤하고 조심스럽게 머리카락을 내려놓은 다음 나를 바라보았다. 난 왠지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 같아서 얼른 몸을 돌려서 걸으며 말했다.

“어, 얼른 가자. 저기, 나도 쿠의 눈이 보석 같다고 생각했어. 노을의 마력은 굉장한 것 같아.”

저절로 말이 빠르게 나왔다.

“……니다.”

“응?”

“……아무것도 아닙니다.”

쿠가 조용히 대답하고는 내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난 평소보다 더 빨리 집으로 돌아왔다.

방에서 옷을 갈아입는데 연락 구슬이 반짝거렸다.

“연결.”

“안녕, 내 아가씨.”

“아, 아를! 어쩐 일이야?”

“그냥 아무 일 없이 연락하면 안 되는 거야?”

“그런 건 아니지만. 지금 막 집에 들어와서 옷 갈아입는 참이야.”

“어디 갔다 왔어?”

“오늘 카니발이 있었거든. 쿠랑 같이 사키네 가서 점심 먹고 카니발 구경했어.”

“흐응~.”

난 으쌰 하고 조끼와 셔츠를 벗어 던지고 원피스를 입었다.

“오랜만에 서커스 보니까 재미있더라. 아, 쿠가 반지도 사줬어.”

“그 자식이 무슨 돈이 있어?”

“내가 용돈 줬거든? 그걸로 완전 예쁜 반지꽃 반지 사줬거든?”

“결국 네가 네 돈으로 산 거잖아.”

“아냐. 쿠가 사준 거야.”

원피스를 입은 다음 안에 입은 바지를 벗고 난 연락 구슬로 다가갔다.

“뭔가 고장 나거나 이상이 있는 물건은 없어? 다 괜찮아?”

“응. 그게 아니라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아를의 말에 난 자리에 앉아 구슬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야?”

“내 소중한 에스카 아가씨. 혹시 우리 집에 왔을 때 세이칼이라는 기사랑 따로 만난 적 있어?”

“세이칼? 모르겠는데? 네 기사들이랑은 따로 만난 적 없어. 일단 쿠랑 너희 기사들이랑, 음. 그랬으니까.”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하고는 되물었다.

“왜? 무슨 일인데? 그 기사가 무슨 일 했어?”

“아냐, 너랑 접촉이 없었다면 됐어.”

“알았어.”

난 자세히 캐묻지 않았고 바로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리고 잠시 아를과 이야기를 하다가 구슬을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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