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리스트
다시 배우 일을 시작한 건 올린의 끈질긴 종용으로 이뤄진 일이다. 그는 백수로 사는 건 어떠한 속죄도 되지 않는다며, 그런 허튼 생각으로 놀고먹는 건 용납하지 못하겠다고 몇 해를 겁박했다. 배우기 시작한 올린은 노동이 사람을 완성한다는 나름의 철학을 갖게 되었으므로,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면 뭐가 되었든 일은 해야 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대본이 들어왔어도, 올린이 당장 전화해서 하겠다고 대답하라고 말하지 않았더라면 정규는 차라리 완성되지 못한 반인의 삶을 택했을 거다.
그러니 작품이 지나치게 흥한 건 성가신 일이었다. 긴 공백 기간에는 올린과 거리를 걸어도 말 걸어 오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얼굴을 알아보더라도 흘끔거릴 뿐, 이렇다 싶은 신작 없는 배우에게 다가와서 팬이에요, 사진 찍어 주세요, 저 이정규 씨 작품 보려고 넷폴랙스 가입했어요, 하는 시답잖은 소리를 할 만큼 비위 좋은 사람은 드물었다. 그러나 다 호시절의 일이다. 정규는 종종 다니던 산책로에서 네 번째로 팬이라는 사람에게 붙들려 어색한 미소를 보이며, 서너 걸음 떨어진 데서 싫은 기색도 없이 네 번째의 연초를 꺼내 무는 올린을 슬쩍 돌아보았다.
올린은 이쪽을 바라보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인 양 먼 데를 바라보며 담뱃불을 붙이는 게 올린 방식의 배려인 것을 알았다. 그는 얼굴이 알려진 사람이 자기 좋다는 사람들에게 몰인정하게 구는 건 할 짓 아니라고 몇 번이나 잔소리를 한 적이 있었다. 정규는 제 성질껏 지금은 조금 어렵습니다, 정중한 거절을 하는 대신 올린의 눈치를 보느라 처음 보는 사람과 사진을 찍고 악수를 하고 사인을 했다.
바위산을 두른 완만하고도 긴 산책로는 올린이 좋아하는 데이트 코스다. 올린은, 정아의 요란스러운 데이트 신청에는 눈살을 찌푸리고 바쁜 정비는 일하도록 내버려 두고 아직도 어린애 같은 정환이에게는 운전기사 노릇을 시킬 뿐 산책길에 데리고 나서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그러나 정규와는 말없이 긴 시간을 걷다, 문득 멈춰 서서 담배를 나눠 피우다, 다시 걷는 식의 데이트를 종종 즐기곤 했다.
정규는 가끔 올린과 긴 산책을 즐기는 이 시간이 자신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 여겨 왔는데, 이 한적한 곳을 걷는 한 시간 동안 네 번이나 멈춰 세워졌으니 이제는 그런 호사도 끝이다. 오랫동안 복용해 왔던 정신과 약을 줄이느라, 최근에 여러모로 혼란을 겪고 있는 올린에게만큼이나 정규에게도 이 한산하고도 고요한 산책은 고마운 평화를 선물해 주었건만.
정규는 사람들을 보낸 후, 가만히 올린의 곁에 가 섰다. 먼 데를 보던 올린이 흘끗, 정규를 바라보더니 씩 웃었다.
“미안.”
정규가 가을 코트의 깃을 올리며 먼저 말하자, 올린이 고개를 저었다. 올린은 정규의 뒤통수 너머를, 정규는 올린의 뒤통수 너머를 살폈다. 산책로 옆의 도로를 지나는 차도 없고 걷는 사람도 없다. 확인한 정규가 키스할 듯이 가까이 다가오자, 올린이 고개를 물리더니 가만히 속삭였다.
“형, 그 사제복 구할 수 있어? 나 형 말고, 바오로 신부님이랑 자고 싶은데.”
*
오랜만에 찍은 시리즈물은 여섯 개의 에피소드만 공개되었다. 시즌 내내 정규는 바오로 신부로 불리며 사제복을 입고 등장하는데, 올린은 정규 몰래 신작을 감상하며 몇 번이나 성스럽지 못한 생각에 빠져들었었다. 그는 비록 종교는 없으나 종교인의 삶에 대해서는 동경하는 바가 있다. 사랑하는 연인이, 비록 그 속내는 종교인과 판이하나, 엄숙하고 금욕적인 종교인의 외양을 하고 활약하는 장면이 꼴리지 않을 리가 없었다.
정규는 바오로 신부님이랑 자고 싶다는 올린의 소원을 듣자 놀란 듯 입을 꾹 다물더니, 이내 비실비실 새는 웃음을 갈무리하려 애썼다. 산책로의 지름길로 빠져 주차장에 세워 둔 차에 올라, 바위산 어귀에 있는 고급 호텔을 향해 운전할 때도 별말이 없었다.
올린은 그 좋아하는 기색 역력한 얼굴이 조금도 달아오르지 않은 것을 보며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든 모양이었다. 운전하던 정규의 코트 깃을 열어젖히고 바지춤을 덥석 쥐어 온다. 허벅지 위로 늘어진 것이 평소보다 얼마나 두둑하게 부풀었는지를 확인하듯 만지는 손길에 정규는 놀라지도 않았다. 올린이 자주 이런 짓을 하기 때문이다.
“형 섰는데?”
“네가 그런 말 하는데 형이 안 서고 배겨.”
“그런데 얼굴 왜 안 빨갛고 멀쩡해요.”
“자제하는 중이야. 호텔 체크인할 때 콧김 뿜는 꼴 보이고 싶지 않아서.”
“체크인 내가 할 테니까 나 떨궈 주고 형은 빨리 회사 들어가서 의상 가져와. 십자가도.”
“너 혼자 호텔에? 내가 미쳤냐.”
“왜, 나 다 컸어요. 체크인할 줄 알아.”
“…어휴, 말이나 못 하면.”
“발레 맡기고 체크인해서 나 올려 보내고 차 다시 찾는 거 못해도 삼십 분이야, 그 시간에 차라리,”
“…어? 그 시간에, 뭐. 그 시간에 뭐. 뭐 할 건데.”
“고해해야지. 바오로 신부님께. 그럼 신부님께서 벌주시고 죄 사해 주실 거잖습니까.”
“…어? …벌? …오늘은 그래도 돼?”
“이제 빨개졌네. 다행이다. 하자고 해도 이젠 흥분도 안 하는 줄.”
놀리는 소리를 할 때도 담담한 어조의 올린은, 정규가 전방 주시의 룰을 어기고 자신을 돌아보자 살짝 쥔 주먹으로 관자놀이께를 퍽, 때려 앞을 돌아보도록 만들었다. 정비 이상으로 꽉 막힌 원칙주의자 올린을 모실 때는 노란 불에 액셀을 밟아도 혼나고, 차선 변경을 너무 자주 해도 혼난다. 정규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피식 웃더니, 호텔 입구에 올린을 떨구고 끼이익 소리가 나도록 급하게 차를 돌려 사라졌다.
올린은 네 형제와 자주 호텔에 드나드는 편이다. 잠깐 머물 때도 자연스레 스위트를 택하는 형제들의 취향은 자연스럽게 올린에게도 스며, 그는 서울 시내가 멀리까지 내다보이는 높은 층의 방을 빌렸다. 그는 정규에게 호실 번호를 메신저로 남겨 둔 후, 거실에 코트와 함께 구두를 아무렇게나 벗어 두고 맨발로 걸어 욕실에 들어갔다.
여기서 정규의 회사까지는 못해도 왕복 한 시간은 걸릴 테고, 의상을 찾고 어쩌고 하다 보면 삼십 분은 족히 지연될 거다. 여유롭게 목욕하며 아래를 씻고, 아직도 시간이 많다고 생각하며 가운을 걸친 채 나와 보니 거실에는 이미 사제복을 완벽히 갖춰 입은 정규가 엄숙한 얼굴을 꾸민 채 서 있었다. 올린은 바로 시계를 확인하고, 아직 사십 분도 채 지나지 않음에 한 번 놀라고 잠겼던 호텔 방에 들어와 있음에 두 번 놀랐다.
“놀래라, 형 또 속도위반, 아니 방에는 어떻게 들어왔어?”
“형제님께서 프런트에 키 맡겨 두셨지 않습니까.”
“그랬지. 그래도 나한테 전화해서 확인하고 내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 호텔 못 쓰겠네.”
“흠. 형제님. 그건 나중에 논하셔도.”
정규는 주먹 쥔 손을 입가에 대고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까다로운 불만이 올랐던 올린의 얼굴에도 슬그머니 미소가 올랐다가, 이내 사라졌다. 그는 정규가 엄한 목소리로,
“오늘은 고해하실 것이 있으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하고 말할 때 이미 죄인이 되어 가운 앞에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푹 수그렸다. 정규는 벌써 눈물마저 글썽거리는 올린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연기는 자신이 할 것이 아니라 이놈이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돌아오고 나서 반년 후에야 다시 섹스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다시 반년이 흐르도록 다른 형제들은 몰라도 자신은 올린의 엉덩이 한 번 때린 적 없었다. 워낙 오랫동안 학대를 당해 온 몸이니 유희 삼아 하는 가벼운 매질조차 그에게는 상처가 되리라고 생각한 탓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올린이 먼저, 형, 나 뺨 한 대만 때려 줘, 하는 말에 흥분하여 손자국이 남도록 찰싹 때린 후, 올린이 몹시 아파하는 표정으로 자지러지기에
“올린아, 형이 미안해, 괜찮아? 아팠어?”
하고 허둥지둥 손자국 남은 뺨에 입을 맞추자, 올린은 김 팍 샌 표정이 되어서는 화가 난 듯한 목소리로 알려 줬었다.
“형. 내가 진짜 아프면요.”
“응.”
“정아 형이나, 정비 형이나, 정환이랑 하다가 내가 진짜 아프면 하는 말 있는데.”
“응.”
“그 말 하기 전에는 내가 많이 아파하는 것처럼 보여도 멈추지 않아 줬으면 하는데. 그럴 수 있어요?”
“응?”
“내가 울어도, 빌어도, 그치지 않고 괴롭혀 줄 수 있느냐고.”
그 대화 이후, 정규는 올린이 세이프워드를 외치기 전까지는 아무리 무섭고 아프고 괴로워하는 듯한 기색을 해도 믿지 않기로 했다. 올린은 자신과 연인의 쾌락을 위해서는 상당 수준의 거짓을 보일 수 있을 만큼 훌륭한 연기자였고, 피학과 가학을 동시에 즐거이 여길 수 있을 만큼 능란한 사랑꾼이기도 했다. 그러한 것은 정규도 올린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신부님 말씀이 맞습니다. 오늘은, 신부님.”
올린은 벌써 눈물로 젖은 가여운 얼굴을 살그머니 들었다.
“감히 신부님께 음란한 욕망을 품은 제 죄를 벌해 주세요.”
정규는 웃음을 숨긴 채 발칙한 소리를 해 대는 연인에게 다가섰다. 정규가 밖에 기다리는 줄은 모른 채 허술히 묶고 나온 허리끈을 잡아채어 앞을 벌리고, 어깨를 덮은 가운을 홱 끌어 내렸다. 막 목욕을 끝내 따끈따끈하고 촉촉한 몸이 드러났다. 벌써 유두와 성기는 진홍색으로 부풀어 솟아 있다. 정규는 가만히 손을 내밀어 그 유두를 매만지다, 쇄골을 거쳐 목울대를 지나 턱 언저리를 한 손으로 받치며 말했다.
“얼마나 음란한지, 한번 검사부터 해 보아야겠습니다.”
올린이 가만히 입술을 벌렸다. 아까부터 정규가 키스하고자 했던 것을 기억했기 때문이었다. 정규는 다른 팔을 뻗어 올린의 날씬한 등을 잡아끌었다. 덥게 달궈진 맨몸에 자신의 맨살을 닿게 하고 싶었지만, 올린은 정규가 아니라 사제복을 입은 바오로 신부와 섹스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보들보들하고 동시에 단단한 그 맨몸에 자신의 살을 붙이지 못함을 한탄하며 오래도록 입안을 헤집듯 핥았다.
올린의 섬세한 손이 사제복 위로 정규의 엉덩이를 더듬었다. 정규는 올린이 자신의 몸을 만지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알았으므로 그의 손에 기분 좋은 감촉을 전하기 위해서 꾸준히 운동하고 있는 터였다. 사제복 아래 입은 속옷이 올린이 좋아하는 디자인인데도 지금 당장 보여 줄 수 없는 것을 아쉽게 여기며, 그는 올린의 입술에 입을 맞춘 채 가만히 그 몸을 밀어 침대가로 몰았다.
“앉아요.”
명령하자, 올린은 입안이 남의 혀로 쑤셔진 여운이 남아 멍한 눈인 채 침대에 걸터앉았다. 정규는 조금 벌어진 허벅지 사이 발딱 자기주장을 하는 성기를 한 대 때려 주려다가, 너무 이르게 지극한 자극을 주었다가는 올린이 오래 버티지 못할 것만 같아서 대신 성기를 덮은 체모를 손가락으로 한 꼬집 잡아 꾸욱 당겼다.
“아윽,”
따끔할 정도로 잡아당겼을 뿐인데 금방 울상이 되어 양팔 양다리를 웅크리려 드는 올린의 머리채를 쥐었다. 고개를 젖힌 뒤에, 가볍게 손바닥으로 따귀를 때렸다. 그토록 많은 사람의 손을 타고 그토록 심하게 맞았어도 섬세한 모양새를 잃지 않은 광대 위, 찰지도록 촉촉한 피부가 손바닥에 닿았다 떨어지는 감촉이 좋았다. 세게 때리지 않았어도 선명하게 자국이 남은 발간 색도 예뻤다.
“아,”
“그렇게 앉으면 어떻게 검사를 합니까. 형제님.”
“…죄송합니다.”
“침대에 올라가서, 엉덩이를 시트에 대고 다리를 벌려요.”
지시하며 쥐었던 머리채를 밀듯이 놓아주자, 올린은 속절없이 흔들리면서도 주춤주춤 침대 위로 올라갔다. 엉덩이 걸음을 하며 조금씩 뒤로 물러나 앉는 몸을 구경하는 동안, 선이 완벽하게 예쁜 다리의 근육이 조금씩 움직였다.
“흐으, 으윽….”
올린의 얼굴이 발갰다. 정규는 그토록 오래 심한 취급을 당해 왔음에도 여전히 부끄러워하는 몸을 귀여워하면서도, 사나운 손짓으로 한쪽 무릎을 잡아 열었다.
“다리 벌려요.”
“앗, 시, 신부님,”
“스스로 엉덩이를 벌려서 구멍을 보이세요. 어서.”
올린의 눌러 감은 눈에서 눈물이 조르르 흘렀다. 그는 판판한 가슴이 벌떡거리도록 울면서도 시키는 대로 했다. 양손의 구멍에 끼워진 아일렛은 이제 구멍을 확장하기 위한 용도는 아니다. 구멍 안쪽의 연약한 부분의 감각이 예민하기도 하고, 살이 얇아 다치기 쉽기 때문에 보호 차원에서 끼워 둔 것이다. 그럼에도 색이 어두운 금속 아일렛이 생살에 끼워져 있는 꼴은 참으로 아프게 보여, 정규는 더듬거리는 그 손가락 끝이 빠끔한 항문 주위를 잡아당겨 아주 조그맣게 입구를 여는 꼴에 잠시 집중하지 못했다.
“시, 신부님?”
“안 아픕니까.”
정규는 플레이 중임을 알면서도 잠시 다정한 마음을 실어 입구를 열어 보인 손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올린의 눈물 맺힌 눈이 정규를 잠깐 올려다보았다가, 눈을 떨구었다가,
“이상한가요? 학대당하기를 바라는 게.”
하고 중얼거렸다. 정규는 비록 그 말투만은 지금 연기하고 있는 죄인이지만, 그 말에 실린 자조적인 물음은 올린의 본심임을 깨달았다. 자신이 잠시 역할에 자신을 섞은 것처럼, 올린도 같은 방식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침대 위에 다리를 벌리고 앉은 몸 앞에, 정규가 가만히 무릎을 꿇었다. 그는 아직 속살이 드러날 정도로 벌어지지는 않은, 겨우 손가락 한 마디가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여리고 작게 열린 몸에 입을 맞추고는,
“이상하지 않습니다.”
말한 후에, 자신을 내려다보는 올린의 눈을 바로 올려다보며 다시 한번 말했다.
“욕망이 형제님을 해치지 않는다면, 그 욕망의 근원을 이해하려 지나치게 애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올린은 두 눈을 눌러 감았다. 잔뜩 고였던 눈물방울이 한 번에 굴러떨어졌다. 정규가 손을 뻗어 젖은 얼굴을 닦아 주고,
“계속할까? 올린. 세이프워드 기억해?”
하고 속삭였다. 올린이 여전히 우는 채로 미소하며 대답했다.
“응. 계속해.”
“세이프워드 뭐야.”
“도련님. 도련님, 하고 부르면 형은 그쳐 줄 거야.”
“그래. 맞아. 지금은 바오로 신부님이지만. 그렇지?”
“네, 신부님. 맞습니다.”
“…그리고 형제님의 구멍은, …흠뻑 젖었네요.”
가만한 듯 역할로 돌아가 능욕하는 말에 올린이 한숨을 내쉬고 정규의 머리를 두 손으로 살며시 잡았다.
“네, 신부님. 그렇습니다. 젖었습니다.”
“왜 이렇게 젖었지요?”
“신부님의 자지를, 먹고 싶어서요….”
“저런, 그것이야말로 속죄가 필요한 욕망이로군요.”
“네, 신부님, 그렇습니다.”
“항문을 때려 속죄하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네, 신부님, 감사합니다.”
“우선 스무 대, 숫자 세요, 숫자를 틀리거나 잊거나 자세가 흐트러지면, 처음부터 다시 때리겠습니다.”
“네, 신부님. 네에….”
“제대로 벌려요.”
올린이 볼기 쪽으로 손을 벌려 조금 더 크게 구멍이 벌어지도록 힘을 주는 동안, 정규는 올린의 옆에 걸터앉아서는 올린의 상체를 굴리듯 뒤로 넘어뜨렸다. 잠시 당황하는 동안 사제복 입은 정규의 팔이 올린의 오금을 눌렀으므로, 올린은 제 손으로 벌린 구멍을 하늘로 향한 자세를 취하게 되었다. 올린이 보는 방향에서는 검은 사제복을 입은 정규가 자신의 곁, 침대가에 걸터앉은 뒷모습만 보였지만, 정규의 눈에는 연약한 곳을 하늘을 향해 치켜든 채 발라당 뒤집힌 올린의 몸이 온전히 드러났다.
예전에는 갈비뼈가 도드라지도록 말라서 이렇게 세게 오금을 쥐면 다리가 부러질 것같이 연약하던 몸이었다. 그러나 별채의 주인이 되고서는 스스로 운동하고 형제들이 열심히 먹인 결과로 예쁜 근육이 발달한 몸은 그렇게까지 허약해 보이지는 않았다. 다친 마음의 치료는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 몸은 이제 거의 완벽에 가깝게 회복했다. 그렇다고 근육의 크기가 어느 정도 이상으로 자라지는 않는지, 만지면 제법 단단한 몸은 가만히 서 있을 때에는 도드라지는 근육 없이 가늘고 날씬하게 보일 뿐이다.
다만 이렇게 허벅지 근육이 팽팽하도록 당겨진 자세에서는 대퇴이두근의 긴 곳과 짧은 곳, 허벅지 안쪽을 섬세한 선으로 뻗게 하는 내전근과 바깥쪽을 늘씬하게 지지하는 외측광근의 모양을 손끝으로 따라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근육 위를 덮은 살갗에는 이십 대 중반의 청년치고는 체모가 없어, 만지면 보드랍고 보기에 아름다운 색이다. 정규는 하얗고 늘씬한 허벅지 아래, 동그랗게 솟은 볼기 사이의 구멍을 내리치기로 하고 올린을 발라당 뒤집은 것을 기억하면서도 한동안 그 모습을 감상하느라 손을 들어 올리지 못했다.
올린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매질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느라 벌어진 구멍의 얕았던 개폐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발견하자, 정규는 짓궂은 웃음을 웃었다. 분명히 아플 것을 알면서도 그 아픔 후에 올 삽입을 기대하여 벌렁거리는 몸이 그렇게 길드느라 보내야 했던 시간은 웃을 만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완성된 모양은 더없이 사랑스럽다.
그는 손바닥을 치켜들고, 올린의 볼기 사이를 겨냥하여 내리쳤다. 커다랗고 건조한 손이 높이 올라갔을 때, 침대에 누웠던 올린의 얼굴이 그 무서운 손을 바라보느라 벌벌 떨다가도
“하나!”
하고 때를 놓치지 않고 외쳤다. 촉촉한 아래에 맞부딪히는 손바닥은 젖은 파열음을 내며, 아픔을 곱씹을 틈을 주지 않고 일정한 속도로 내리쳐졌다.
“둘! 세엣! 넷! 다서엇! 여섯!”
올린은 움직이지 않고 매를 버티는 데는 도가 튼 사람이지만, 이렇게 항문이 하늘을 향하도록 발라당 뒤집힌 채 자세를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규의 팔이 오금을 단단히 눌러 고정해 주지 않았더라면, 엉덩이를 쳐든 채 얌전히 버티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일곱! 여덟! 아, 호옵! 열! 열하나! 열두울!”
안에서 새어 나온 장액이 정규의 손바닥에 척척하도록 묻어 나오며 철벅거렸다. 물 찬 데를 때리는 것이 불쾌하기는커녕 성감을 돋우었지만, 정규는 올린의 수치심을 자극하기 위해 짐짓 못마땅한 목소리를 꾸며,
“젖은 탓에 매를 맞고 있습니다. 형제님. 헌데 매질을 당하실수록 도리어 더욱 축축하게 젖으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요.”
하고 나지막이 꾸중했다. 올린은 매가 잠시 멎은 지금, 도리어 더욱 강렬하게 퍼져 오르는 작열감을 버티려 애쓰며 울음이 잔뜩 묻은 목소리로,
“죄송합니다. 신부님. 정말, 죄송합니다….”
하고 용서를 빌었다. 정규는 그에 대한 대답 대신, 다음의 매를 내리기 위해 손바닥을 높이 쳐들었다. 높이 든 손바닥을 바로 떨어뜨리지 않고 몇 초간 허공에 띄운 채 그대로 있었기 때문에 올린의 입에서는
“흐으, 으으윽….”
하는 울음이 새었다. 정규는 올린이 히익, 하고 흐느끼는 숨을 들이쉬는 것과 동시에 열세 대째의 매질을 후려쳤다.
“아악! 열셋! 열넷! 열다섯, 흐, 열 여서엇, 열 읽, 열 여더얼, 열아하, 흐으, 읏무울!”
마지막 매질이 끝나는 순간 올린은 마음을 놓고 볼기를 쥔 손에 힘을 빼려 했으나, 정규는
“똑바로 잡고 있어.”
하고 명령하며 두터운 손바닥에 매질을 당해 새빨갛게 달아오른 입구에 손가락을 쑤셔 넣었다. 이미 삽입을 대비하여 충분히 젖어 있는 안이었다. 그러나 정규가 한 번에 손가락 세 개를 넣은 데다가 배 속에 어느 정도의 충격을 주기 위해 다소 거세게 삽입했으므로, 올린은 그만 하늘을 향해 치솟은 엉덩이를 한 번 펄쩍 뒤채며,
“아흑! 아파, 신부님, 아픕니다.”
하고 울부짖고 말았다.
“아파? 아픈 꼴을 당할 걸 알면서도 발정했습니까?”
“네, 아윽! 죄송, 시, 신부님!”
“손 떨어졌습니다. 똑바로 잡아!”
“아흐으….”
똑바로 잡으라는 명령을 내리는 동시에 오금을 눌렀던 팔에 힘을 줬기 때문에, 올린의 두 무릎이 양쪽 귀 옆에 완전히 닿게 되었다. 정규는 하늘을 향해 치켜들린 엉덩이를 더욱 높이 들게 하려고, 자신의 접은 무릎을 올린의 엉덩이와 허리 아래 받쳤다. 매를 맞는 동안 더욱 진분홍으로 부풀어 오른 성기가 올린의 배꼽 언저리에서 마구 뒤채이며 쿠퍼액을 뱃가죽에 발랐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그 입술로 스스로의 자지를 빨 수도 있겠습니다.”
“아하윽, 흐윽, 아니, 에요.”
이미 한껏 들리고 심하게 둥글린 허리가 몹시 아팠으므로, 정규의 협박에 기가 질린 올린이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까지 몸이 말린 적은, 예전에 물건으로 취급당할 때에도 없는 것 같다. 가능할 리가 없다.
“사제를 보고 흥분하는 몸이니, 더 큰 죄악을 짓기 전에 스스로 빨아서 달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아흐, 안 돼, 아윽! 부러질 거야, 아파, 아파요….”
그런 것이 가능할 리도 없거니와, 가능하다고 해도 시킬 마음이 없는 것치곤 정규의 협박은 제법 진심인 것처럼 들렸다. 그는 불가능한 자세를 취하라 다그치면서 허리를 분질러뜨릴 것처럼 굴기 전에
올린의 어깨와 허리를 한 번 따뜻한 손바닥으로 확인하듯 쓸었다.
부러지거나 다칠 리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실히 한 후에야 접은 다리로 올린의 등허리를 툭툭 치고, 항문에 쑤셔 넣은 손가락을 거세게 들락거린다. 그런 꼴이 되어서도 발발 떨 정도로 느낄 줄 아는 올린의 항문에 제 자지를 짓쳐 넣고 싶은 욕망을 내리누르고, 딱 좋을 정도로 몰리도록 몰아 대는 눈은 올린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당장 박아 넣으면 그 만족감은 형언할 수 없을 테지만, 그는 올린이 넣어 달라고 요청하기 전에 넣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얼핏 보기에는 정규가 올린을 휘두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이 관계에서 갑은 올린이다. 올린이 바라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폭력적인 형태의 정사는 애초에 시작될 수도 없었거니와, 올린이 허락하기 전에 정규는 바라는 방식의 해소를 맛볼 수도 없다.
“제 음탕함을 스스로 달랠 생각도 없어, 매를 맞아도 구멍은 더 젖기만 해, 이제 어떻게 해야 속죄할 수 있겠습니까. 애초에 속죄할 마음이 있긴 했어요?”
“아으, 아, 신부님, 잘 모르겠,”
정규는 넣고 싶다는 간절한 욕망을 애원하는 심정으로 올린을 심문하는 척 삽입에 대한 허락을 구한다.
“이런, 이렇게 음란한! 구멍이, 과연 벌을 받는다고 정숙해질 수 있겠습니까?”
앞뒤로 쑤석거리던 손가락이 좌우로 마구 흔들려 구멍을 옆으로 벌려 놓자, 허공에 뜬 발이 달리려는 것처럼 마구 움직였다. 올린은 항문을 열기 위해 볼기를 잡아 뜯다시피 하는 손가락에 힘을 주며,
“아니요오, 아니요, 흐으, 시, 신부님, 정숙해질 수 없습니다.”
하고 우는소리를 하다가 마침내 정규가 바라던 대로,
“그러니 시, 신부님, 부디, 제 음란함을 충족할 수 있도록….”
잔뜩 기죽은 음성으로 속삭였다.
“넣어, 주세요….”
정규가 침착함을 위장하여 일어날 때, 긴 사제복의 옷자락이 펄럭였다. 올린은 자꾸만 고였다가 굴러떨어지는 눈물을 꾹꾹 눈을 감아 흘려내며, 정규가 사제복의 긴 옷자락 뒤로 손을 넣어 바지의 앞섶을 끄르고, 사제복의 옷깃을 들춘 사이로 발기한 성기를 꺼내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것이 들어올 구멍을 넓히고 있는 두 손이 발발 떠는 것은 두려움보다 기대감 때문이었다. 버겁도록 굵고 긴 것이 안을 찔러 자신을 꿰어 줄 것을 기다리는 올린의 얼굴에는 분명히 무서워하는 기색도 있긴 했다. 그러나 그것을 압도하는 감정은 초조하여 아랫배를 울릴 정도의 기대감이다.
정규는 침대 곁에 선 채, 어느새 침대 가운데 쪽으로 밀려 올라간 마른 몸을 끌어 자신의 하반신과 올린의 하반신이 맞닿도록 당겼다. 올린의 아래가 미끈거리도록 젖었듯 정규의 성기 끝에도 쿠퍼액이 번들거렸다. 양쪽이 이렇게 젖었으니 허릿짓 한 번으로 단숨에 박아 넣더라도 올린이 다치지 않을 것을 알았지만, 그렇게 모질게 굴고 싶지는 않았다. 대신 자신을 애태운 올린도 조금쯤 애타는 기분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미 허락받은 교합을 아주 조금만 늦추기로 했다.
두텁고 뜨거운 자지의 끝을 올린의 볼기가 갈라진 곳의 바로 아래에 비벼 넣었다. 허리와 볼기 사이의 예민한 살을 자극하며 조금씩 올라온 자지의 끝이 이미 활짝 열린 구멍의 입구에 닿았다. 아주 조금만 힘을 주면 귀두까지는 손쉽게 삼켜질 것 같이 젖은 입구지만, 정규가 달아오른 살을 넣어 주는 대신 열린 데를 지나쳐 회음을 툭툭 때리고 불알의 사이를 쿡쿡 찌를 때,
“시, 신부님, 흐으.”
하고 올린은 달뜬 신음을 뱉었다. 지금 당장 넣어 달라고 조르고 싶은 마음을 내리누르지 못해 낸 앓는 소리에, 정규는 입 끝만 심술궂게 끌어올려 웃으며,
“형제님, 참을성을 기르셔야겠습니다.”
하고는 좆대로 회음부에서 철썩철썩 소리가 나도록 때렸다. 살끼리의 부딪침이 과히 아플 리가 없다. 그런데도 몹시 고통스러운 듯이 동그란 뒤통수를 침대 위에 내리누르며 고개를 휘젓는 까닭은, 이미 받아들일 준비를 마쳤음에도 들어올 것이 들어오지 않아 애달픈 마음을 가눌 길이 없어서였다.
“아응, 오, 오래, 흐으, 차, 참았어요, 흐으, 시, 신부님, 이제,”
볼기를 잡았던 두 손 중 한 손이 더듬더듬 정규의 몸을 찾았다. 그 손이 정규의 손목을 잡고, 재촉하듯 제 쪽으로 잡아당기며,
“형, 혀엉, 넣어 줘요, 이제….”
할 때 정규는 오히려 그 손을 탁, 쳐내며 엄한 목소리를 했다.
“올린. 참아. 왜 이렇게 성급하게 굴어, 혼나고 싶어서 그래?”
“왜 그래애, 혀어엉, 왜 그래 혀엉, 아윽!”
서럽게 형을 부른 올린이 눈을 크게 떴다. 눈물이 차올랐다. 젖혔던 고개를 들어 올리느라, 그 눈물이 큼직한 방울로 굴러떨어지는 순간이었다.
“크흑, 으!”
빠끔히 열렸던 구멍에 정규의 성기가 한 발짝 들어섰다가 바로 물러났다.
“아학! 혀, 엉!”
그리고는 다시, 귀두까지만 넣었다가 바로 뺀다.
“으응, 드, 들어오라니까아-.”
볼기에 힘을 주어 성기를 단단히 물기도 전에, 넣었다가 도로 확 빼 버린다. 그리고는 의기양양한 얼굴이 되어 좆 끝으로 구멍 입구를 탁, 탁, 때리고는
“넣어 줘?”
묻는다. 단것의 끄트머리만 살짝 맛보다가 도로 빼앗기기를 여러 번인 올린은 숫제 힘을 빼고,
“네, 제발, 형, 응, 넣, 학!”
말하다가 다시 감질나는 침입을 받고,
“흐윽, 으응, 왜 자꾸….”
다시 그 반가운 몽둥이를 빼앗겨야 했다. 올린은 이제 이를 악물고 울기 시작했다. 우는 중간중간 눈을 들어 바라보는 시선에는 서러움과 원망이 가득한데, 그게 또 잊혔던 정규의 진정한 가학심을 일깨워서,
“으응, 하악!”
머릿 부분만 삽입했다 빼서 입구에 비비고,
“아으, 으으읏,”
삽입할 듯 톡톡 찌르다가 얌체처럼 위로 미끄러뜨리고,
“너, 넣어, 줘요….”
하며 손으로 잡아당겨 벌린 구멍의 발간 속살을 가만히 바라만 보면서 약을 올리는 것이었다.
“넣어 줘? 이렇게? 요렇게? 아니면, 이런 게 좋아?”
정규는 재미있어하며 웃었다. 그는 자신이 과거 올린을 괴롭히던 수십 가지의 방법 중에, 제 딴에는 사소한 장난을 친다고 생각하며 분한 마음으로 울게 하는 못된 습관이 있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때린 것이 아니며 묶어 둔 것도 아니니 이 정도의 장난쯤이야 용납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교합에의 욕망이 치솟아 견딜 수 없게 된 올린에게는 좀 달랐다.
그는 천하제일의 악당을 보는 심정으로 정규를 노려보느라 두 손을 볼기로부터 떨어뜨렸다. 이 인간은 예전부터 이딴 식으로 사람 약을 살살 올리곤 했다. 매질하다가도 느닷없이, 저어기 정원 끝의 나무까지 30초 안에 달려갔다가 오면 매를 덜어 주마고 하여 맨발에 상처가 나고 목에서 피 맛이 나도록 뛰게 한 다음,
“34초. 저런, 애썼지만 어쩔 수 없네.”
하는 소리를 하며 남은 매를 모조리 때리기도 했다. 오늘은 네가 이러저러한 사유로 아픈 벌을 받아야 하여 가시 돋힌 무시무시한 딜도로 아래를 헐도록 후벼 줌이 마땅하나, 도련님의 좆을 빨 때 성의를 보인다면 조금 덜 무서운 벌을 주마, 하기도 했다. 그리고는 입술이 다 찢어지도록 열심히 자지를 빨고 나서 도련님의 평가만 애타게 기다리는 올린의 얼굴을 보고도,
“성의가 느껴지지 않았어. 세게만 빨면 뭐하누, 혀를 쓰지 않는걸. 엎드려 아래 벌리거라.”
하여 일말의 희망이 거두어진 올린으로 하여금 엉엉 울도록 하기도 했다. 제일 악질적인 기억은 벌을 받느라 오래도록 굶은 올린 앞에다가 귤 한 알을 곱게 펼쳐 두고,
“내가 아래에 넣은 것이 어느 손가락인지 맞히면, 이 귤 너 주마.”
하고 약속했던 기억이었다. 올린은 오랜 허기 끝에 향기로운 과일을 얻어먹을 기대에,
“주, 중지입니다, 도련님, 가운뎃손가락입니다, 중지입니다.”
하고 아래를 후벼 파는 기다란 손가락의 정체를 맞추며 안대 아래로 눈물마저 줄줄 흘렸었다.
“그래?”
정규는 잠시 침묵하고,
“좋다. 그럼 오른손 중지일까, 왼손 중지일까.”
하고 물었다. 올린은 도무지 그것만은 알 수가 없어 한참을 망설이다가 왼손인지 오른손인지 하여튼 애써 짐작한 바를 대답했는데, 결국은 그것이 오답이 되었다.
정규는 말랑말랑한 귤의 한 조각 한 조각을 떼어 제 입에 넣으면서,
“배 많이 고프니?”
하고 물었다. 말해 뭐하랴, 아사 직전이었다. 정규는 한낱 장난이었을지 모르지만, 올린은 그 귤 한 알만 도련님께서 입에 넣어 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정규가 그것을 몽땅 먹어 버리는 내내 마른 입을 몰래 다시며 굶주림의 서러움을 감췄었다.
지금 하는 짓이 그때 하던 짓과 다르지 않다. 올린은 문득 지금도 전과 꼭 같이 사람 애를 태우고 약을 올리는 것에서 기쁨을 느끼는 이 되먹지 못한 사디스트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정규가 느끼기에는 급발진과 같은 노여움을 폭발하고 말았다. 장복한 약을 줄인 지 얼마 되지 않은 정신의학과 환자가 흔히 보이는 감정의 격렬한 오르내림이 그 폭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는 했으나, 그보다 큰 책임은 그간 정규의 행태에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올린의 우는 얼굴이 너무 귀엽다고 생각하며 정규가 한 번 다시 귀두까지만 담갔다가 도로 빼려는 순간, 구멍 난 손이 올라와 정규의 사제복을 숫제 쥐어뜯다시피 하며 을렀다.
“이 씨발… 박으라고.”
장난치느라 입가에 미소가 완연한 채 자지를 깔짝거리던 정규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는,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바닥에 쓰러져 울 듯이 배배 꼬던 깜찍한 모습이 아니라, 소처럼 순하고 개처럼 둥그런 눈으로 어울리지 않는 노여움을 채운 채 상체를 반쯤이나 일으킨 올린이 보였다. 정규가 당황한 사이 바들바들 떠는 손은 검은 사제복의 옷깃을 타고 올라가 정규의 멱살을 잡았다.
“넣으라면 재깍 넣을 것이지, 흐으, 누구 앞에서 좆, 같은 거로 사람 약을 올리고 있어.”
완력이라면 올린이 정규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일단 체격 차이가 있는 데다, 정규는 몸을 움직이는 법을 배운 사람인 데 비해 올린은 장시간 심미적인 목적으로만 근육을 단련했을 뿐 몸을 어떤 방식으로 쓰는 지는 배우지 못한 사람이다. 그런데도 올린의 손짓 한 번에 정규가 끌려가, 침대에 등을 대고 눕게 된 것은 올린의 욕설에 온몸이 굳을 정도로 놀랐기 때문이다.
올린은 욕을 잘한다. 그것도 아주 찰지고 다채롭게 하는 편이다. 그가 그토록 욕에 능숙하게 된 것은 긴 시간 징그러울 정도로 욕을 먹고 살았기 때문이다. 정환뿐 아니라, 예전에 일하던 곳에서도, 좆질 한 번에 더러운 말 두 번씩 하던 손님들은 사방에 널렸었다. 그는 년으로 끝나는 욕들과, 새끼로 끝나는 욕들, 놈과 것으로 끝나는 욕들로부터 그런 평범한 욕설과는 거리가 있는 길고도 걸쭉한 욕을 들어먹는 것에 익숙했다.
인풋이 그렇게 다채로웠으니 영민한 머리를 거친 아웃풋이 단조로울 리 없다. 비록 올린은 감히 욕은커녕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지위에 있었던 순간에는 그렇지 못했지만, 사람답게 살게 된 후에는 제법 욕설을 다양하게 써먹는 편이었다. 다만 그의 육두문자에 얻어맞는 것은 정아나 정환처럼 올린의 부아를 돋우는 사람에게로 한정되어 있었으므로, 지금처럼 못된 장난기가 치밀기 전엔 비교적 올린의 말을 잘 들어 온 정규는 정비와 더불어 올린의 욕설 청정 지대에 살아왔을 뿐이다.
그러니 한 마디 한 마디 틀림이 없고 발음마저 명확하되 온건하고 선량한 올린의 입에서 나왔음이 분명한 욕설에 정규가 몸을 굳힌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청순하기 그지없는 얼굴에서 쏟아져 나오는 폭언에 정신을 놓고 마른 팔에 끌려가 그 아래에 깔린 다음, 그만 사제복의 앞 단추가 투두둑 터지는 소리를 내며 튕겨 나가도록 옷이 벗겨지고 말았다.
“오, 올린아.”
그가 황망히 이름을 부르는 동안, 올린은 발간 눈가를 찡그리며,
“닥쳐 좀.”
하고 씹어 뱉었다. 그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바오로 사제의 허리를 두 무릎 사이에 끼고, 그 검은 사제복 사이로 불경스럽게도 발기하여 솟은 긴 자지에 제 구멍을 맞추어 대더니 입술을 깨문 채 퍽 소리가 나도록 내려앉았다.
“크흑!”
"윽!"
앓는 소리는 두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튀어나왔다. 순간 코피가 터졌으려나 싶을 정도로 다량의 피가 얼굴로 몰리는 바람에 정규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더듬었다.
“허윽, 오, 올린아….”
자지를 열망하던 구멍에 원하던 것을 채우고도, 그것이 제대로 자리 잡도록 요분질을 하느라 잠시 고개를 숙였던 올린이, 눈만 들어 올려 정규를 노려보며 일갈했다.
“바오로 신부님. 음란한 소리는 자제하시죠.”
그리고는 주먹 쥔 한 손을 정규의 가슴팍에 누르듯이 지지하고 무릎을 세워, 엉덩이를 높이 들었다가 콱, 내려앉는 순간,
“헉!”
하는 소리를 한 번 더 냈다는 죄목으로 정규의 따귀를 내리쳤다. 올린의 손은 맵다. 모두가 적어도 한 번 이상 맞아 본 네 형제가 다들 동의하는 바다. 게다가 손에는 금속의 아일렛이 아직도 단단하게 끼워져 있다. 올린에게 뺨을 맞는 것은 곧 눈알이 튀어나오도록 세찬 충격에 내던져진다는 말이기도 하고, 맞은 데에 금속에 긁힌 긴 상처가 맺힌다는 뜻이기도 하다.
“소리 내지 말라고 했어요.”
얻어맞고서야 올린의 지시를 알아들은 정규는 한 손을 더듬거려 자신의 입을 막기 전에,
“올린아,"
했다가 올린이 다시 한번 뺨을 때리기 위해 손을 치켜들자,
“조용히 할게!”
하며 손등을 덮어 제 입을 가렸다. 올린은 허둥지둥 서두르는 꼴을 보면서도, 제 아래를 흡족히 채운 자지를 느끼려 허리를 흔들 뿐이었다. 젖은 내벽에 자지가 마찰하는 서걱서걱 소리가 울리도록 깊게 들쑤시는 감각에 정규도 눈을 짓감았다가 다시 뜨길 반복했다.
자신이 느끼기 좋은 지점을 취향껏 쑤셔 대기 위해 정규의 자지가 딜도인 양 마음껏 활용하던 올린 또한 쾌감을 가누지 못하여 고개를 젖혔다. 아래에 깔린 정규의 시야에서는, 길게 뻗은 목 아래로 마른 가슴과 판판한 복근이 벌떡벌떡 튀는 모습이 선정적으로 펼쳐졌다.
올린은 점점 목표한 지점을 좀 더 정확히 자극하기 위해 상체를 뒤로 젖히다, 두 손을 뒤쪽으로 하여 정규의 허벅지를 두 손으로 짚어 체중을 지탱했다. 아랫도리는 정규의 자지를 꽉 문 채로 사방으로 뒤틀리고, 살 없이 마른 몸을 정규 앞에 내보이도록 활짝 벌어진 상체는 쾌감에 젖은 호흡을 이어가려 꿈틀거린다. 그는 악문 잇새로,
“응, 으흐.”
하다가 정규의
“괜찮아? 내가, 움직일까?”
하는 소리에는 잠시 내려 두었던 노여움이 되솟았는지 느리게 고개를 들었다. 정규는 화를 내도 아름다운 올린의 얼굴을, 허깨비에 홀린 사람처럼 넋 놓고 바라보다가,
“형이, 움직,”
하며 한 번 자지를 쳐올렸다. 그리고는 함부로 움직인 잘못에 대해 분노한 올린의 손에 목이 졸렸다.
“컥.”
“조용히 하라고 했잖아요. 형.”
“커, 흑.”
정규의 힘줄 돋은 강인한 팔이, 단단하지만 가느다란 팔을 향해 뻗어 오르다가 털썩 떨어졌다. 올린도 정규의 완력이 자신보다 센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지금 정규는 물리적 힘이 부족하여 속절없이 목이 졸리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목을 졸라 체벌하는 손에는 한 점의 망설임이 없고, 하라는 대로 따르지 않아 벌 받는 몸에는 조금의 저항도 없었다.
“그리고, 형이 뭔데 나를 혼내고 말고야. 응?”
분명 그런 종류의 역할극 중이었다. 정규는 이 변덕스럽고 제멋대로인 데다 비위를 맞추기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도록 어려운 마조히스트의 손에 숨이 제한된 채, 간신히 조금씩 들이쉴 수 있는 산소의 힘을 빌려 용서를 빌었다.
“실, 허언! 이었, 잘, 모홋! 했어,”
콱, 하고 울대가 지끈거리도록 한 번 더 조여 준 올린은 손을 풀고, 아까 저가 풀어서 침대에 던졌던 가운의 허리띠를 잡아 정규의 양 손목을 바투 묶었다. 정규는 벌건 얼굴을 하고서도,
“미, 커흑, 미안, 해.”
하고 사과를 했지만, 올린은 과거 악독한 취급을 오랫동안 당해 온 만큼 지독하게 엄격한 처벌자였다. 그는 단단히 묶여 자력으로는 빠져나갈 수 없도록 묶은 손목을 침대 헤드에 고정하고, 매듭이 확실한지 두어 번 당겨 확인한 후에,
“턱 바짝 들어.”
하고 명령했다. 그리고 긴장한 정규가 그 명령에 따르느라 고개를 쳐들자, 올린은 정규의 자지를 뱉어 낸 엉덩이를 들어 정규의 얼굴 가까이 기어 올라왔다. 길고 굵은 목의 가운데 솟은 각진 울대를 손가락 두 개로 토독토독 두드려 정규가 마른침을 삼키도록 하더니, 그 울대에 제 아랫구멍을 맞추어 대고 앉았다.
사타구니 사이에 목을 끼워 누르듯 앉은 탓에 숨이 막힌 정규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올린은 늘씬한 허벅지로 정규의 턱 아래를 압박하여 침이 흐르도록 만들지언정 호흡이 편해지도록 도와주지는 않았다. 발끝으로 체중을 분산하여 졸리는 목의 아픔을 덜어 주는 식의 자비 또한, 당연히도, 보여 주지 않았다.
젖은 항문이 각진 울대를 짓누르며 압박했다가, 리드미컬한 허리 놀림에 떨어져 나가는 순간 정규는 숨을 간신히 숨을 들이켰다. 그러나 올린은 그 입구의 예민한 부위를 울대와 마찰하여 즐거운 감각을 얻으려, 비비고 짓누르다가 한순간 밀어 올리듯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딱딱한 목울대가 올린의 촉촉한 아래에 짓눌릴 때, 좁아진 식도 사이로 혀뿌리가 눌려 정규의 벌린 입 사이로는
“크흐….”
하는 자연스러운 신음이 샜다. 올린은 흘끗 시선을 뒤로 돌려 아직 정규의 성기가 꼿꼿한 것을 확인하고는,
“바오로 신부님은 이런 것도 좋아하시네요.”
하며 다시 한번 울대를 짓누른 가랑이를 조일 뿐이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목울대에 항문을 비비며 쾌감을 찾은 다음에는, 올린은 발기한 제 자지에서 울컥울컥 새 나오는 정액을 정규의 얼굴에 사정했다. 정규는 올린의 뜨거운 정액을 뺨에 묻힌 채 이제 끝이구나, 하는 생각에 겨우 제대로 공기가 들어차기 시작한 폐를 위로하며 눈을 감았다.
그러나 끝이 아니다. 올린은 이내 몸을 일으켜 아래로 내려갔다. 정규의 허벅지를 다리 사이에 끼운 올린이 성기를 꽉 잡고 쥐어 흔드는 바람에 정규는 끙, 끙 하는 소리로 밀려오는 쾌감을 참아야 했다.
“잘 참네. 그런데 형, 지금 왜 참아?”
“흑, 흐으… 네가, 허락 안 해, 줬으니까….”
“기특해라. 기다릴 줄도 알고. … 그럼 이제, 나한테 그런 식으로 얄밉게 굴지 않을 거야?”
“…응, 으응?”
올린은 손아귀에 힘을 꽉, 주어 순간 정규가 이사이로 앓는 소리를 깨물며 눈을 질끈 감도록 몰아붙인 다음에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넣으랄 때 넣고, 박으랄 때 박고, 때리랄 때 때리고, 멈추랄 때 멈출 수 있겠느냐는 말이야.”
“하, 흑, 그럴 수 있어, 그럴게, 그럴 거야.”
올린은 시험하는 듯한 눈으로 고개조차 기울인 채 정규를 내려다보았다. 사제복의 앞섶이 풀어 헤쳐져, 깃이 빳빳한 셔츠가 드러나 있다. 배우의 아름다운 얼굴에는 한 점 연기의 흔적조차 없이 오로지 남은 것은 거역 없이 진실한 순응뿐이다. 그는 새삼 느껴지는 역전된 관계에 대한 날카로운 만족을 맛보며,
“좋아.”
하고 대형견에 대한 훈육을 마무리하는 견주의 심정이 되어 말했다.
“싸도 돼.”
허락이 떨어지고 나서야, 정규는 벌건 얼굴을 좀 더 붉게 물들이며 파정했다. 그러나 그동안에도 성기를 세게 쥔 올린의 손아귀의 힘이 덜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정액은 찔끔찔끔 방울져 떨어졌다. 그것은 쾌락보다는 고통에 가까운 사정이었다. 개운하기는커녕 아래가 뻐적지근하도록 아릿한 배설이었다.
그러나 그가 올린에게 했던 짓과 오늘 한 짓을 생각하면 그것조차 감지덕지다. 그는 갑갑한 아래의 해소도, 가물가물한 시야를 되찾으려는 노력도 그만두고 눈을 내리감으며,
“미안해, 올린아….”
하고 힘없이 읊조리는 것이었다. 올린은 그 물러 터진 얼굴을 한동안 내려다보다가, 가만히 일어나 거실로 향하는 미닫이문을 열었다. 별채의 문과 다르게 호텔의 문지방에서는 드르륵 하는 일말의 소음조차 없다. 소파까지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뒷모습이, 조금 전까지 남의 목을 무자비하게 조른 사람처럼은 보이지 않는다.
정규는 위태로워 보이도록 청순한 등줄기와 사과같이 발갛게 달아오른 엉덩이, 완벽한 모양의 긴 다리를 뿌연 눈으로 바라보며 입술을 혀로 핥았다. 저이에게 목을 졸리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지만, 말 그대로 숨이 막히도록 압제당하는 그 순간이 그토록 다디달 줄도 미처 몰랐다.
올린은 아까 벗어 던져 놓았던 코트를 뒤적여 연초를 물고 불을 붙이려다가, 문득 호텔방에서의 끽연은 불법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장초를 입술 사이에 문 채 까딱거리며 장난치는 눈은 먼 데를 보는 듯했다. 정규는 열린 커튼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늦은 오후의 햇살이 색 엷은 눈동자를 투명하도록 빛나게 만드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며, 문득 다른 사람에게 장난치듯 올린에게 장난을 쳐서는 아니 되었다는 통렬한 자책에 휩싸였다.
“…미안해.”
이번의 사과는 목 안으로 기어들었다. 그러나 그 작은 목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한 올린은, 문득 먼 데까지 달아났던 정신을 되찾고 여즉 침대 헤드에 꽁꽁 묶여 있는 정규를 바라보았다. 올린은 손을 들어 눈썹 앞머리를 엄지로 슬슬 긁었다. 정규는 알았다. 저건 올린이 당황했을 때 보이는 몸짓이다.
도로 걸어와 매듭을 풀어 주는 손짓은 가만했다. 그는 냉정을 가장한 당황한 얼굴을 하고, 저가 깔고 앉아 수차례 압박하는 바람에 생긴, 정규 목의 벌건 자국을 살필 뿐이었다. 섬세한 손끝이 울대를 스칠 때 정규가 저도 모르게,
“흐으.”
하고 숨을 들이쉬었다. 올린은 문득 상처를 어루만지던 손을 멈추고, 눈썹을 한 번 더 긁었다. 그리고는 나지막이 명령했다.
“씻고 나와요.”
*
욕실에서 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며 나왔을 때, 올린은 카펫에 네 발로 엎드려 저가 터뜨린 사제복의 단추를 찾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걸친 가운 사이로 하얀 맨몸이 보였다가 사라졌다. 정규는 욕실의 입구에 구르던 검은 단추 하나를 주워 들었다.
“…올린아, 그렇게 안 찾아도 돼.”
성대가 짓눌리는 바람에 가라앉아 쉰 것처럼 들리는 목소리가 기어 나왔다. 올린은 그 목소리에 대한 감상 없이, 선선히 몸을 일으키고 다가와서는 정규의 손에서 단추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는 단추의 동그란 모양을 살피며 중얼거릴 뿐이었다.
“이게 마지막이었어요.”
몸을 돌려 협탁에 여러 개의 단추를 모아 두는 몸짓이 가만했다. 그 외에는 별다른 말이 없었으므로 정규는 올린의 화가 아까보다는 많이 가라앉았음을 알았다. 입안으로 고마워, 들릴락 말락 하게 속삭이자 올린은 웃음기 없는 목소리로 답한다.
“고맙긴요. 구마 사제 옷을 다 찢어 놓고, 내가 베엘제불이네. 미안해요, 발작해서.”
정규의 신작에서 그는 보통 사제가 아니라 귀신 잡는 구마 사제로서, 여섯 개 에피소드 내내 베엘제불이라는 이름의 악마를 잡고자 고군분투한다. 올린이 관심 없는 척했던 것과 달리 그 모든 에피소드를 다 보았음에 분명한 그 말에 정규는 가만히 웃었다. 그리고 저 나름의 미안한 얼굴인, 새침하게 삐친 듯한 표정을 한 하얀 턱을 가만히 잡아, 자신을 마주 보도록 돌렸다.
“베엘제불이라니, 그런 끔찍한 말씀을.”
입술에 촉, 소리 나도록 입을 맞추자, 올린은 고개를 돌려 버린다. 그러나 정규는 그것이 싫어서가 아니라 부끄러워서임을 알았다. 가만히 턱을 잡은 손가락을 톡톡 치자, 올린은 맥없이 고개를 움직여 정규를 향해 시선을 올렸다.
“굳이 따지자면 내가 베엘제불이지. 난 너한테 목 졸려 죽어도 할 말이 없어.”
그 말에 올린은 벗은 상체 위, 잘생긴 목울대 위에 보라색으로 크게 남은 멍을 확인했다. 손으로 조른 것도 아니고, 목 위에 앉아 자위하듯 문지르고 사타구니로 조인 자국이다. 누가 묻는다면 어떤 경로로 이런 멍이 들었는지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둔탁하고 넓은 상처에 올린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다시 한번 미안하다는 말을 하려다 차마 그 말을 하지도 못하고 고개를 돌려,
“씻고 나올게요. 형. 나오면 형 좋을 대로 해도 돼. 정말이야. 발작 안 할 테니까.”
하고 웅얼거리며 욕실로 사라졌다. 욕실 문 앞에 툭, 가운을 떨어뜨리고 문손잡이를 돌리는 짧은 순간 완전히 드러난 섬세한 나신을 바라보던 정규는 무르기가 다 익은 홍시보다 더한 그 말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베엘제불이라니, 악마의 하수라니, 올린과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별명이다. 정규는 그가 만난 사람을 통틀어 저 사람처럼 자비롭고 인내심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자신이, 그리고 자신의 형제들이 지은 죄에도 불구하고 곁에 머물러 준 것만 해도 성자에 가까운 포용력이다. 그런데 단지 함께 있어 줄 뿐 아니라 마음을 다해 사랑해 준다니, 정규는 다정하고 사려 깊은 연인과 하는 매 순간이 황송해서 때로 아찔하기까지 했다.
그러니 가끔 올린의 마음 깊은 데 응어리졌던 상처가 예상치 못한 순간 터져서, 올린과 곁에 머무는 자신의 관계에 작은 얼룩을 남기더라도, 그것을 훔쳐 내는 것은 끝내 올린이 아니라 자신의 몫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 상처를 만든 사람은 자신이고, 곪은 상처를 견디며 오래 품어 준 사람이 올린이기에.
샤워를 시작했는지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으며 머리칼을 말리던 정규는 문득, 아직도 쓰라린 제 목 언저리를 가만히 어루만졌다. 손이 닿을 때마다 두근두근 울리도록 쓰린 아픔을 참으면서도, 정규는 악마처럼 굴었던 자신을 용서하고 곁에 머물러 주는 저 사람이 이미 사제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신에 가까이 선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