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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벌 (62/65)

# 체벌

이럴 줄 알았다. 혜향이가 없어진 거다. 불시에 사무실에 들이닥친 올린에게 고양이의 소실을 들킨 정비의 얼굴은 얼핏 보기엔 동요가 없어 보였다. 올린이 가만히 팔짱을 끼고 정비를 노려보는 동안, 정비는 하필 올린이 들어오는 타이밍에 고양이의 예상 이동 경로를 보고하던 비서를 향해

“나가 있어요.”

하고 나지막한 목소리를 했다. 그리고 비서가 나가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올린이 알아챌 수 없게 마른침을 꿀꺽 삼키는 목울대가 한 번 꿀렁거렸다.

“올린아.”

“그러니까, 닷새씩이나 집에도 안 들어오던 게 혜향이를 찾느라 그런 거였습니까.”

“그런 게,”

“닥쳐. 거짓말 더는 듣고 싶지 않아. 뭐, 일이 바빠? 회의가 있어? 평텍 캠퍼스라고? 이건 다 뭔데!”

올린은 성큼성큼 걸어 사무실 한편의 투명한 보드에 다가갔다. 정비는 올린이 주먹을 들어 보드를 한 대 쾅, 소리 나도록 치기라도 할 줄 알았으나 올린은 창백한 얼굴 그대로 보드에 적힌 것들과 붙은 것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보드에는 머그샷처럼 얼굴의 특징이 정확하게 드러난 혜향이의 사진이 붙은, 여섯 개 언어로 번역된 전단지들과 혜향이를 보았다는 목격자들의 연락처, 혜향이의 이동 경로를 자석으로 표시한 지도 따위가 어지러웠다. 정비는 그것들을 훑어보는 올린을 향해 변명이라도 해 볼 생각으로 입을 벌렸다가, 숨만 들이켜며 다시 다물었다.

“내가 그러니까, 애 입원시키지 말자고 했잖습니까. 세상에 집에서 식이 조절해 주면 되지 고양이 다이어트 전문 병원이 다 뭐야. 그거 다 돈지랄이라고! 애 스트레스 받는다고! 내가 말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말했지.”

“…회사에서 병원까지 이동 경로가, 뭐 도보? 그게 얼마나 위험, 아니 직접 데리고 가긴 한 겁니까?”

“…아니. 하지만 이동장에 넣어서, 비서 두 명이….”

“그럼, 낯선 병원에 애를 처넣으면서, 보호자가 아니라 보호자의 비서 손에 들려 보낸, 아니, 형, 그리고 비서가 그런 일 하라고 있는 사람입니까?”

“비서실에서는 내 업무뿐 아니라 생활 전반에 관한,”

“닥쳐! 시발, 닷새가 지나도록 애가 지금, 길에서,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데! 닥치라고!”

정비는 보기 드물게 흥분한 올린의 눈을 조용히 마주 보며, 올린이 잘 볼 수 있도록 입술을 살짝 벌렸다가 꾸욱 다물었다. 올린의 자신의 말에 따라 말 그대로 닥치는 정비를 향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잠시 숨을 씨근덕거리다가, 다시 보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눈동자만 돌려 상황을 파악한 올린이 다시 입을 열었을 때 그 음성에는 흥분의 기색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래서, 여기에서 동물 병원까지 가는 가장 빠른 길은,”

“심상 공원.”

“공원을 가로질러 1.5km, 하지만 중간에 천을 한 번 건넜고, 이 길을 따라, 0.8km 지점에서 달아났다는 얘기죠.”

“혜향이가 하도 말을 걸어서 잠시 무슨 말 하는지 들어 주느라 지퍼를 열어 줬다고….”

“공원 주위에는 호수, 도로 건너는 업무 단지, 그리고 여기는 식물원.”

“식물원 주위는 다 살폈지만,”

“거긴 아니에요. 지난번에 식물원 가 봤잖아, 그 근처부터 여기까지, 터줏대감 고양이들이 그렇게 많은데 그 겁쟁이가 감히 어떻게 얼쩡거렸겠어. 혜향이는 여기, 이쯤 숨어 있을 거예요. 아니, 만일 여기가 아니라면, 이 지점에. 여기에 없다면, 이미,”

올린의 확신에 찬 손가락이 지도의 한 지점, 그리고 다른 지점을 짚었다가 떨어진다. 그리고 손은 잠시 허공에 멈추었다. 바들바들 떠는 손가락을 감추려 올린은 가만히 주먹을 쥐었다. 최악의 상황에 대해서는, 미리 입 밖에 꺼내고 싶지 않았다.

“두 군데 다 찾아봤어. 쮸르 들고… 비서실 인원 전원 동원해서….”

“그렇게 우르르 갔으니 안 나왔지.”

“올린아, 같이,”

상황을 파악하는 데 채 5분도 걸리지 않은 올린이 몸을 돌릴 때, 여태 가까이 오지도 못한 채 책상가에 서 있던 정비가 지팡이를 챙겨 다가왔다. 그러나 채 두 걸음도 걷기 전에 홱 고개를 돌린 올린의 시선에 압도당해 발을 멈췄다. 올린의 번쩍번쩍 빛나는 눈가, 관자놀이가 실룩거렸다. 어금니를 꽉 깨문 올린은 간신히 참아 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형, 진짜 제발, 닥치고 여기서 기다려 줄래.”

*

두 시간이 지나지 않아 올린으로부터 사진이 도착했다. 올린의 품에 얌전히 안긴 혜향의 모습이었다. 노란 털이 꼬질꼬질해지고 겁먹은 기색이 완연한 눈이 가엾긴 했지만, 상처 없이 멀쩡한 모습이었다. 저 화상을 찾아다니느라 닷새간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은 정비가 어이가 없어 입을 딱 벌렸다. 비서실의 사람들도 같은 반응이었다. 올린은 동물 병원에 혜향이를 데리고 간다고 알렸다. 검진하고, 수액 맞힌 다음 데리고 집에 가겠다는 말 끝의 명령은 간단했지만, 정비를 긴장하게 했다.

-형은 오늘 퇴근하면 바로 별채로 와요.

그래서 정비는 닷새 만에 집에 들어가기 전에, 호텔에 들러 목욕재계했다. 바로 별채로 오라고 했으니 본채의 욕실에 들러 씻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선처를 바라며 꽃다발과 초콜릿마저 사 들고 올린의 별채에 도착해 현관에 섰다. 아직도 화가 잔뜩 났을 게 분명한 올린을 어떻게 불러야 하나 잠시 고민하며, 높은 마루 아래에 놓인 하얀 운동화를 바라보았다.

어떤 결벽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올린에게는 운동화를 신고 벗을 때마다 끈을 풀고 다시 묶는 습관이 있다. 그런데 그 손의 구멍 탓인지 매듭의 마무리가 매번 헐겁다. 정비가 올린에게, 매듭을 두 번 지으면 덜 풀린다고 몇 번이나 알려 줬었는데 올린은 그 조언을 귀담아듣지 않는 것 같았다. 형이 묶어 주는 게 좋아서 그런다며 웃던 해사한 얼굴에 더 이상의 잔소리를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풀린 끈을 신발 안으로 곱게 정리해 넣은 운동화조차 사랑스럽다. 바닥 얇은 저 운동화를 신고 혜향이를 찾으러 공원 보도블록 위를 기어 다녔을 것을 생각하면, 그러다가 여느 때처럼 매듭이 풀려 곤란해했을 것을 생각하면, 정비는 가눌 수 없을 정도로 간지러운 무언가가 가슴 근처를 기어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을 갖는 것이다.

그는 잠시 올린의 화를 풀어 줘야 하는 상황임을 잊고 멍하게 웃고 섰다가, 비척거리는 걸음으로 주방에서 거실을 향해 건너가던 올린이에게 발각됐다. 정비는 얼른 입가의 웃음을 갈무리했다. 깊이 반성하는 표정을 한다고 했는데, 그 얼굴은 표정 없는 껍질을 뒤집어쓴 것처럼 딱딱해졌다.

잠옷 차림의 올린은 힐난하는 눈으로 정비를 바라보았다. 얇은 파자마 아래의 마른 몸은 무방비한데, 그 얼굴에 떠오른 엄격함은 보통 이상의 것이다.

“차 들어온 게 10분 전인데, 설마 주차장에서 여기까지 안 뛰고 걸어온 거예요? 게다가 와서는 넋 놓고 서 있었고? 형 정말, 겁도 없네.”

정아가 자꾸만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걸 성가셔하던 올린을 위해 낡은 별채의 벽을 싹 다 뜯어 월패드를 설치했다. 건물의 뼈대 자체는 튼튼하나, 과거 쓰여 오던 용도가 용도이니만큼 구식의 세간살이가 그대로인 별채를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작업이었다. 월패드는 주차장에 들고 나는 자동차를 인식하여, 올린이 설정한 그대로

‘도라이의 / 이사장의 / 바오로신부의 / 정환이의 차량이 들어옵니다.’

하고 형제들이 언제 귀가하고 언제 나가는지를 음성을 통해 알려 준다. 그러니 정비가 주차장으로부터 여기까지 뛰었는지 걸었는지 기었는지를 잘 알 수밖에 없다. 정비는 가만히 저가 짚고 다니는 지팡이를 내려다보면서 지팡이를 짚고는 뛰어 봤자 속도가 나지 않는다고 변명할까 하다가, 안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아 그만두었다.

정비가 대답을 못 하고 선 사이에, 올린은 손에 든 잔의 핑크색 액체를 느리게 돌렸다. 로제 와인에 탄 것은 일종의 발정제다. 과거 정아가 올린에게 먹이려 가지고 왔던 것을 압수해 복도 안 찬장에 잘 보관해 두었던 게 있었다. 정아를 족쳐서 알아낸 바에 따르면, 이것은 본래 녹여서 주사하도록 만들어진 물건이지만 음료에 타 마시도록 해도 효과가 나쁘지 않다.

나른한 미소를 짓는 머리카락에 벚꽃 꽃잎이 한 장 묻어 있었다. 별채의 거실에서 미닫이문을 열어젖히면 뒤뜰 한구석에 보이는 커다란 겹벚꽃나무가 있다. 올린은 봄밤의 찬 공기가 다 들도록 문을 열어젖히고 그 벚꽃을 감상하던 중이었던 것 같았다. 봄을 좋아하는 올린은 늘 꽃 시절이 짧은 것을 한탄하곤 했으니까. 정비는 그 위에 앉은 꽃잎만큼이나 보드라울 머리카락에 시선을 빼앗겼다가, 정신을 차렸다.

“혜향이는?”

“정규 형이 보고 있어. 그 어린 게 얼마나 놀랐으면, 살이 1킬로 넘게 빠졌어. 형 덕에.”

혜향이는 어리지 않다. 제주도에서의 일이 벌써 오 년 전이니, 다섯 살 먹은 혜향이는 이제 청년 혹은 장년에 가까운 나이일 터다. 게다가 살이 1킬로 넘게 빠진 것은 경사스러운 일이다. 고양이의 만수무강에 비만이 얼마나 커다란 걸림돌인지 정비도 올린도 잘 알았다. 그러나 정비는 그 모든 정보를 갈무리하여 머리 한쪽 구석으로 치워 두고, 해야 할 말만 했다.

“미안해.”

“언제 말해 주려고 했어요 나한텐? 그렇게 오래 숨기다니 형도, 돌았던 거지.”

올린이 선 마루는 높고 정비가 선 현관은 낮아, 정비는 올린의 하얀 얼굴을 올려다보아야 했다. 느긋하게 내려다보는 올린의 얼굴에는 발그스름한 미소가 올라 있음에도 어딘지 무섭게 보이는 데가 있었다. 정비는 잠시 마른침을 삼키고, 사실대로 고해야 하나 하고 고민했다. 혜향이를 찾은 후에, 시치미를 뗄 작정이었다. 혜향이가 천재 고양이 수준으로 영리하다고는 하나 아직까지는 사람 말을 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니, 굳이 올린에게 이실직고하여 놀라게 하고 미움을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을 은폐하는 것도 거짓말인 거 알죠?”

올린은 잔을 정비에게 건네며, 눈썹 한쪽만 올리고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였다. 올린이 정의하는 거짓말은, 너무 의미론적이다. 틀린 말은 아니나, 경영자로 일하며 거짓말의 범위를 혐의로 하는 것이 습관이 된 정비 입장에서는 항변할 구석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정비는 다시 한번, 필요한 말만 했다.

“내가 잘못했어. 미안하다.”

“잘못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마셔요.”

올린은 고개를 한 번 끄덕여 정비의 손에 든 잔을 눈짓했다. 정비는 그 약이 자신을 처벌할 도구임을 알아채고, 얌전히 고개를 들어 잔을 비웠다. 목 안을 타고 흐르는 달콤한 향기는 올린의 향기와 닮았다. 빈 잔을 마룻바닥에 가만히 세우는 손을, 올린이 내려다보았다.

“꽃은 이리 주고.”

구멍 난 손을 내민다. 품에 안았던 커다란 꽃다발을 얼른 건넸다. 올린은 두 손으로 꽃다발을 만지작거리며 섬세한 손끝으로 꽃송이 하나하나를 쓰다듬었다. 그러면서 중얼거리는 목소리에는 벌써 심술이 담겼다.

“예쁘긴 한데, 내가 이젠 모가지 잘린 꽃 사 오지 말랬잖아. 불쌍하다고.”

정비는 얼른 올린이 자신의 선호에 관해 이야기해 줬던 정보들을 머릿속으로 훑었다. 때로 올린은 정아나 정규나 정환에게 말한 것을, 정비가 기억하지 못한다고 섭섭해하곤 했다. 올린은 네 형제를 비교적 공평하게 사랑해 주는 편이었고 네 형제 또한 올린을 공유하는 법에 익숙하다. 그런데도 네 명의 남자들 사이에는 경쟁심이 없지 않아서, 때로 그들은 올린에 대한 사소한 정보를 서로와 공유하느니 홀로 알고 그 정보를 통해 올린에게 예쁨받으려 비겁한 수를 쓰기도 했다.

정비는 말 안 했어, 자주 꽃을 사 나른 건 정규니까 아마 그 얘긴 모르긴 몰라도, 내가 아니라 정규에게 하지 않았겠니, 하고 말대답하지 않았다. 역시, 가만히 입을 열어 다시 한번 사과했다.

“미안해. 기억할게.”

올린은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턱짓으로 들어오라고 한 뒤, 꽃다발을 안은 채 주방으로 향했다. 정비는 구두를 벗어 가지런히 놓아 두고 혜향이가 어디 있을까 잠시 두리번거리다가 거실로 들어섰다.

아니나 다를까, 거실의 미닫이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아직 저녁 공기는 차다. 정비는 파자마 위로 훤히 드러난 올린의 목을 떠올리며 연인의 목감기를 예방하려 미닫이문을 닫으려다가, 열린 문을 통해 보이는 뒤뜰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것을 깨달았다. 올린은 문을 닫는 것을 기꺼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대신 바닥에 아무렇게나 구르는 올린의 카디건을 주워 들었다. 지금 올린이 입은 짙은 푸른색의 파자마는 정비가 사다 준 것이지만, 바닥에 구르는 엷은 핑크색의 카디건은 색 취향으로 볼 때 정아나 정규가 사 온 것일 터다.

올린은 간소한 주방에 선 채 화병에 물을 받고 있었다. 정비는 가만히 뒤로 다가가 그 희고 긴 목덜미에 입을 맞추고 카디건을 어깨에 둘러 주었다. 죄지은 게 정비 아니라 정아나 정환이었으면 허락 없이 키스한 것에 대한 응징이 따랐을 터지만, 정비는 그동안 올린에게 상당한 점수를 따 두었다. 잘못을 저질러 곧 벌을 받을 상황에서도 작은 접촉은 허가된다.

올린은 별말 없이, 묵묵한 태도로 꽃다발의 포장을 풀어 헤쳤다. 철사 따위에 모질게 묶인 꽃대를, 날 부분이 긴 주방 가위로 손질한다. 정비는 잘못을 비는 어린아이 같은 태도로 그 뒤에 매달려 재게 움직이는 손끝을 바라보았다. 꽃줄기의 가시와 날카로운 것들이 잘려 나간다.

그것을 한 번에 모으는 손가락 끝, 단정한 손톱에 봉숭아물이 아주 조금 남아 있다. 겨울이 시작될 즈음에 정규가 들여 줬다고 들었는데, 손을 다쳐 그런지 아니면 올린의 식습관 때문인지 올린의 손톱은 좀처럼 자라지 않는다. 주홍색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은 정비의 눈에 예쁘기보다 가엾게 보였다. 곧 이 사람으로부터 벌을 받을 입장인데도 그랬다.

지저분한 것을 그러모아 버릴 때, 보통 사람들은 손바닥에 그것들을 담는다. 그러나 올린의 손바닥에는 구멍이 있어, 작은 것을 모아 담는 기능은 하지 못한다. 멀쩡한 손이었다면 한 번에 끝낼 일을 여러 번 움직여 마무리 짓는 올린의 손에다 입 맞춰 주고, 그다음에는 자지를 비비고 싶은 생각에 이르렀을 때, 올린은 가볍게 날개뼈를 움직여, 가까이 붙어 열중하며 작업 과정을 지켜보다 못해 체중마저 제게 실어 오는 정비를 툭 쳐 냈다.

“아, 무거워.”

가벼운 타박에 정비가 바로 떨어진다. 사실 무거워서가 아니라, 엉덩이 근처를 묵직하게 누르는 발기한 것을 떼어 내기 위해 매몰찬 소리를 한 것을 정비는 알지 못했다. 올린은 화병에 꽂힌 화사한 꽃다발을 안은 채 뒤로 돌았다. 꽃다발을 안은 얼굴에는 가벼운 홍조마저 올라 있다. 애정을 가지고 유화로 그려 낸 듯 고운 빛을 한 연인은 꽃잎 같은 입술을 열어 명령했다.

“형, 옷 벗어요. 이제 약 기운 돌기 시작하는 거 같은데, 효과 가시기 전에 얼른 벌 받아야지.”

정비는 자신을 지나쳐, 복도 건너편의 거실로 향하는 올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하얀 맨발이 지나는 마룻바닥에는 아까 자신이 놓아두었던 빈 잔이 그대로였다. 마른침이 꿀떡 넘어갔다.

*

넥타이를 풀고, 재킷을 벗고, 셔츠를 비롯한 남은 것을 모두 벗은 정비는 올린이 바라는 대로 무릎을 연 채 꿇어앉았다. 거대한 몸에는 총상 이후 있었던 몇 차례의 수술로 인해 커다란 흉터가 여러 갈래다. 올린은 화병을 들고 와 가구가 적은 거실의 한구석에 잘 보이도록 두고, 정비에게로 걸어와 곁에 떨어진 넥타이를 주워 들었다.

“이걸로 눈을 가려 줄까, 손목을 조여 줄까.”

단정한 파자마를 입은 채 서서 깊은 고민을 하듯 중얼거리는 입술이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정비는 그 입술을 보며, 올린이 장난스럽게 말하고는 있지만 정말 화가 난 것을 알아챘다. 섣불리 답하지 못하고 침묵하는 정비를 향해 다리를 뻗은 올린이 정비의 발기한 성기를 가만히 밟았다. 정비가 파특, 고개를 숙였다. 목 안으로 다급히 숨을 삼키는 남자의 소리가 뜨거웠다.

“아니면, 여기다 묶어 줄까요?”

올린의 발조차 꽃과 같다. 발등이 높고 복숭아뼈가 도드라진 하얀 발끝에 조로록 붙은 발가락이 꼼실거릴 때마다 정비는 소리를 죽인 채 어깨를 움찔거렸다. 올린은 제 손으로는 완전히 조일 수도 없도록 거대한 성기가 무슨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양,

“뭘 잘했다고 이렇게까지 당당하게 발기하실까.”

하며 발바닥의 보드라운 앞쪽으로 탁, 탁, 탁, 소리가 나도록 가볍게 때려 성기가 거실의 마룻바닥에 세 번이나 부딪치도록 해 놓고 재밌다는 듯이 목 안으로 웃었다. 한 걸음, 정비에게 조금 더 가까이 움직여 정비의 어깨에 손을 짚어 의지한 올린이 다시 발을 들었다. 이번에는 각도를 틀어 발바닥의 옴폭한 아치와 거실 바닥 사이에 정비의 성기를 짓눌러 으깰 듯 꾸우욱, 힘을 주어 밟는다.

“크, 흑….”

핏줄이 꿈틀거릴 정도로 흥분한 성기 끝에서 묽은 쿠퍼액이 꼭 사정하는 것처럼 터져 나왔다. 그것을 보고 올린은 인상을 찌푸리면서, 제 체중을 의지한 정비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덩치 큰 개가 커다란 머리통을 비벼 대며 응석을 부리는 것처럼, 정비는 올린의 납작한 아랫배에 뺨을 문질렀다.

“형, 이래서 참을 수 있겠어?”

묻는 목소리는 여상하다. 자지를 밟고 있기는커녕 저녁으로 뭐 먹을래, 묻는 사람 같다. 그러나 그 목소리 끝에 한숨이 푹, 새어 나오는 소리가 채찍처럼 정비를 후려갈겨서 정비는 굳게 다물었던 입을 열었다.

“묶, 묶어 줘, 올린아.”

올린은 종종 정비를 벌주기 위해, 혹은 그저 재미있는 방식으로 사랑을 나누기 위해 그를 괴롭힌다. 그러나 상처가 날 만한 장난을 치는 법은 없이, 그 고문이란 고작해야 정비의 사정을 늦추거나 목을 조여 숨을 참도록 만드는 수준이다. 이번의 처벌은 아마도 오랫동안 사정을 참도록 하는 것일 터, 정비는 올린의 노여움을 덜기 위해 자신이 그의 처벌을 잘 견딜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기 위해서는 올린이 앞서 말한 대로 발기한 성기를 묶어 두는 편이 나을 것이다.

“음….”

올린이 생각하는 기색으로 손에 들었던 넥타이를 눈앞에 살랑거렸다. 동시에, 보드라운 발바닥에 힘을 싣는다. 정비는 신음을 삼키며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치켜들었는데, 반듯하게 잘생긴 얼굴에 맹수처럼 커다란 몸을 한 남자가 그런 꼴을 하는 건 올린에게 비틀린 행복을 준 모양이었다. 그는 탐욕스럽게도 이 간지러운 즐거움을 좀 더 크게 느끼고자,

“역시 안 되겠어요.”

하고 거절했다. 자지가 세게 짓눌리는 바람에 정비는 콧잔등을 일그러뜨리며 사정감을 참았다.

“자지를 묶는 건… 생각해 보니 내가 싫어. 형이 자력으로 견뎠으면 좋겠어.”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 정비는 자신의 눈가에 쪽쪽 소리가 나도록 키스하며 몸을 놓아주는 연인을 올려보았다. 올린은 아름다운 얼굴에 미소를 띤 채 정비의 눈을 넥타이로 묶어 시야를 가려 버렸다. 암흑 속에서 정비는 올린의 손에 이끌려 구석에 놓인 낮은 가구에 앉혀졌다.

사뿐히 걸어 정비의 다리 앞에 앉은 올린은 두 손으로 정비 무릎을 잡았다. 확, 한 번에 벌리는 순간에도 발기한 자지는 힘껏 고개를 들었다. 노래하듯 웃는 바람에 뿜어진 올린의 숨결이 허벅지 안쪽을 간지럽히며 올라온다. 정비는 벌을 주는 순간조차 제 성기를 입으로 애무하려는 올린의 다정함에 왈칵 마음 한구석에서 무언가가 터지는 것만 같았다. 올린이 자지 끝에 입 맞춘 다음 입을 벌릴 때, 정비는 과거 여러 차례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자신의 자지가 올린의 입술을 찢어 놓을까 봐 걱정했다. 그러나 그 뜨거운 속으로 자지가 삼켜질 때는 그런 걱정 따위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초조한 쾌감에 휘말렸다.

“으, 윽….”

젖은 소리가 울렸다. 보드라운 입안이 달라붙었다. 까실한 혀와 보드라운 볼 안쪽, 딱딱한 입천장이 무자비하게 조여들었다. 정비는 일순 허리를 숙였다가, 입에서 자지를 뱉어 낸 올린의,

“허리 세워요.”

하는 담담한 듯 엄격한 명령에 즉시 따랐다. 목 안에서, 참느라 울리는 막힌 신음이 듣기 좋았다. 올린은 과거 정비가 자신에게 명령했던 대로 자세를 지시해 볼까 고민하다가, 몇 번 자세, 하고 명령받고 그 자세를 취할 때의 비참한 기분이 떠올라 그만두었다. 대신 그는 가만가만,

“뒤통수 벽에 붙여요. 두 손은, 허벅지 위에.”

하고 말로써 연인을 다루는 흐뭇함을 맛보고는 소리 없이 웃었다. 정비의 단정한 이마에서 땀 한 방울이 솟아 흘러내리는 것을 지켜보던 그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커다랗고 참을성 없는, 안에 넣으면 꽉 차서 더없는 만족감을 주는 자지를 괴롭히기 위해서였다.

완전한 나체인 정비와 달리, 올린은 어린 소년이 입을 것 같은 파자마 차림 그대로다. 커다란 자지를 애무하느라 젖은 소리를 내며 열중한 올린의 날개뼈가, 그가 얼굴을 내렸다가 올릴 때마다 움직였다. 날개뼈에는 예전에 정비가 벽으로 밀어붙이는 바람에 못에 찔려 상처 입었던 흉이 희미하게 남았다.

올린은 제 몸에 그려진 채 지워지지 않는 가해의 흔적들을 잊은 듯이 신경 쓰지 않지만, 정비는 그런 것을 발견할 때마다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지금 정비의 눈을 가리고 올린이 파자마를 입어 그런 흉이 정비의 시선에 들지 않도록 하는 것은 그에 대한 배려와도 같았다. 올린은 잘못에 대해 화를 낼 때조차, 연인이 속상해하는 꼴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올린은 턱이 빠질 지경으로 크게 벌린 입속으로, 혀 위를 비비는 자지에서 짭짤한 쿠퍼액이 나오기 시작할 때에,

“읍, 으.”

하는 소리를 내며 더듬거리며 손을 올렸다. 그 손길은 정비의 손을 찾는 것이어서, 정비는 얼른 자신의 손을 내밀어 올린의 손을 마주 잡았다. 올린은 펠라를 할 때도, 아래로 삽입할 때도 정비의 것을 받는 것은 좀 버거워했다. 그렇다고 정비와의 섹스를 싫어하느냐면, 또 그것도 아니다. 일단 넣어서 익숙해지고 나면, 한 번 허리를 올려 칠 때마다 한 방울씩 눈물방울을 떨어뜨려 가며 느끼는 얼굴을 보면 알 수 있다.

올린은 한 손으로는 정비의 손을 꽉 잡고, 다른 손으로는 정비의 허벅지를 움켜쥔 채 목구멍을 열었다. 컥, 컥, 하고 버거워하는 소리에 정비가

“올린아, 하지 마, 안 해도,”

하고 만류하는 소리를 하다가 혼이 났다. 올린은 입에 자지가 들어 말을 할 수 없는 대신 허벅지에 박아 넣은 손톱을 더욱 깊게 누르는 방식으로 정비의 입을 다물게 했다. 그리고는 찢어지기 직전으로 열린 목구멍 속으로 정비의 자지를 삼켜 주었다. 정비는 비록 눈이 가려져 있지만, 올린이 자신의 것을 입으로 애무할 때 힘들어하느라 두 발로 바닥을 마구 밀어 대는 것을 알고 있다.

지금도 파닥거리며 버티는 기색에 정비는 올린의 뒷덜미라도 잡아 성기를 뱉어 내게 하고 싶은 것을 참았다. 자신의 마음이 불편하더라도, 올린이 하려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정비는 올린에 대한 미안한 감정과 비슷한 수준으로 밀려오는 커다란 사정감을 필사적으로 참으며, 악문 잇새로 끙끙 앓았다. 올린이 스스로 참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으니 허락받기 전에는 쌀 수 없다.

정비가 올린의 손을 꽉 쥐며 참는 동안, 올린이 목 안으로 큭큭 웃었다. 목 깊숙이까지 들어찬 자지가 올린의 웃음소리에 함께 진동했다. 올린은 자지의 뿌리 부분을 두 손으로 잡고, 조금씩 고개를 뒤로 물려 가며 식도를 채웠던 거대한 것을 빼내고서,

“형. 좋아?”

하고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정비는 올린이 목구멍이 붓도록 아픈 것을 참으며 자신에게 쾌락을 선사하는 까닭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올린은 정비로 하여금, 완성되지 못한 쾌락을 느끼게 하고 싶은 것이다. 정비는 잠시 오늘의 처벌이 얼마나 길어질지, 이 처벌의 끝에 결국 자신은 사정할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올린이 드문 잔악을 발휘하여 오늘은 끝내 사정하지 못하게 할 것인지를 생각하느라 대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올린의 손에 자지를 한 대 얻어맞고, 그 고통 속의 쾌락을 버티느라 숨을 삼키며,

“좋냐고 묻잖아요. 내가.”

하는 매몰찬 음성에 비로소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다.”

올린이 화사하도록 웃는 사이, 봄바람이 열린 창문 밖을 스쳤다. 그 바람에 한바탕 날린 벚꽃 여러 송이가 거실에도 춤추듯 날아와 올린의 뺨에도 붙고 파자마 입은 가슴에도 붙고 어깨에도 스치고 떨어졌는데, 그것은 눈이 가려진 정비가 볼 수 없었던 황홀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올린은, 제 명령에 따라 벌거벗은 커다랗고 단정한 남자의 얼굴이 달아오른 것과, 그 달아오른 단정한 콧날 위로 꽃잎 하나가 내려앉은 모습을 감상할 수 있었다. 평소에는 무표정한 연인이 흐트러진 모습도 어여쁜데, 그 위로 벚꽃이 흩날리는 모습은 눈으로 맛보는 사탕 같았다. 그는 정비의 뺨에 붙은 꽃잎 하나를 다정스레 떼어 주며 말했다.

“존나게 좋아야지 못 싸는 게 괴로울 거 아니에요, 형. 그치?”

올린의 목소리에는 잔혹함의 기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말의 내용은 무시무시하다. 정비는 올린의 생김새만큼이나 단정한 목소리에 휘둘리며, 또 성기를 얻어맞고 그 통증에도 쾌감을 느끼며 쿠퍼액을 뱉게 될까 봐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올린이 상쾌하게 목을 울리며 웃었다.

“그럼 이건 형이, 좀 빼 줄래요.”

올린은 정비의 목에 두 팔을 감고 상체를 바짝 붙였다. 벌린 채 정비의 허벅지에 올라앉은 다리는 어느새 파자마 바지를 벗었는지, 따끈하고 보드라운 맨살이었다. 정비의 넓은 가슴에 밀착한 올린의 판판한 가슴, 둘의 심장은 거의 비슷한 속도로 뛴다. 정비는 올린과 자신의 심장이 지금 둘의 성기가 마주 닿은 것처럼 서로를 문지르고 있는 듯한 환각을 느꼈다. 그건 감정의 표현이 별로 없는 정비의 코끝마저 찡해지게 만들도록 황송하고 감동적인 감각이었다.

정비의 황홀감을 모르는 올린은 거침없었다. 그는 떨리는 정비의 양손을 들어 제 양 볼기를 쥐도록 하고, 오른손을 조금 더 당겨 제 손으로 덮어 잡은 채 항문 근처를 만지도록 했다. 정비의 손끝이 멈칫, 했다.

“형 거 그냥 넣으면 아프니까, 미리 준비 좀 하고 있었거든….”

올린이 목에 매달려 정비의 귓가에 속삭인 말에 정비가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울렸다. 흐느끼는 것처럼 들리는 감격한 숨을 알아채고 올린은 촉, 하고 달래듯이 뺨에 입을 맞춰 주었다. 어질어질하도록 야한 목소리 속에, 어린아이 달래 주는 것같이 알뜰한 애정 공세를 받으며 손가락으로 더듬어 본 올린의 아래에는, 끝에 둥근 고리가 담긴 딜도가 박혀 있다. 정비의 숨소리가 조금 더 거칠어졌다.

“그런데 형, 나 이거 넣을 때 좀, 아팠어, 그러니까,”

정비의 조심스러운 손가락이 고리에 걸렸다. 올린이 걸어 주었다.

“살, 살, 아흑! 살, 살, 하라고… 크흑.”

정비는 손목에 살짝 힘을 주어 딜도를 잡아당기려다가, 몹시 아픈 듯이 자신의 목에 매달려 오는 올린의 기색을 눈치챘다. 그대로 빼면 몹시 아픈 종류, 그러니까 몸통에 요철이 심하게 돋은 것을 넣어 놓은 모양이었다. 정비는 엉덩이를 쥐었던 다른 손을 올려 올린의 허리 근처를 쓸며, 조심스러운 태도로 물었다.

“올린아 키스, 해도 돼?”

올린이 대답 대신 먼저 입을 맞춰 왔다. 요사스러운 혀가 정비의 혀를 얽다가, 혀끝을 아기가 젖 빠는 태도로 순순히 빨았다. 정비는 올린의 입술을 부드럽게 물었다가, 가장 예민한 경구개 부근을 혀로 세게 문질러 주면서, 아래에 박힌 딜도가 안에서 조금 회전하도록 살살 돌렸다.

입구에 튀어나온 부분은 고정된 채, 안에 들어찬 부분만 조심스럽게 움직이자 올린이 키스하던 목 안으로 신음했다. 그 소리는 분명히 젖어 있었으나 통증에 의한 것만은 아니었다. 가시처럼 생긴 것이든, 구슬처럼 생긴 것이든, 나사처럼 휘어 감은 모양이든, 요철이 심한 딜도는 무턱대고 힘을 써 빼내기보다 달래듯 돌려 빼는 편이 덜 아프다. 정비는 숨마저 죽이며 조심스럽게 손을 움직였다. 고통이 올린에게 오롯이 괴로운 것만은 아님을 알지만, 그래도 충분히 아팠던 연인을 더 고통받게 하고 싶지 않다.

“하, 하악! 으응, 읏.”

꽉 물듯 잡았던 속살로부터 딜도가 빠져나왔다. 올린은 목 안으로 우는 소리를 해 가며 잔뜩 느끼는 듯이 그 조그만 머리통을 정비의 머리에 마구 비볐다. 정비는 딜도를 완전히 빼기 전에 입구에 반쯤 걸쳐 두고 몇 번 쑤셔 주었다. 올린이 잘 느끼는 배꼽 안쪽의 도톰한 거기를, 딜도의 요철이 섬세히 자극하도록 긁고 눌러 비볐다. 그리고 그 감각에 올린이 몸을 굳히며 사정하는 것을 느끼고서야, 조심스러운 손으로 완전히 꺼낸 딜도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올린은 그 사정감이 가라앉기도 전에, 딜도 덕에 한껏 벌어진 구멍이 다물려 버릴까 봐 걱정하는 사람처럼 서둘러 정비의 발기한 자지 위에 주저앉았다. 이번에는 정비의 목 안에서 탄성이 터졌다.

정비는 자신보다 체구가 한참은 작은 올린에게 매달리듯 그 상체를 꽉 끌어안았다. 올린은 그의 강한 팔에 터질 듯이 안긴 채로 정비의 목 안에서 연이어 터지는 앓는 탄성에 귀 기울였다. 정비는 올린이 다칠 것을 염려해, 한 번에 이렇게 깊이 삽입하지 않는 편이다. 단숨에 주저앉는 바람에 자지의 뿌리까지 한 번에 올린의 속으로 들어가는 감각은 정비에게 익숙한 것이 아니다. 성급한 사정감을 참는 탄성과 마른침을 참는 소리는 올린의 귀에 노랫소리 같았다.

“벌써?”

격렬한 충동을 어느 정도 가라앉힌 정비를 놀리듯, 올린은 속삭였다. 그 자신도 통증을 동반한 쾌감을 참으면서였다. 정비는 그 짓궂은 말에도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만 저었다. 올린이 정비의 얼굴을 거칠게 잡아 머리를 뒤로 젖히고, 귀 아래로부터 턱 아래까지의 강인한 선을 따라 잘근잘근 씹듯이 애무했다. 간지러움과 닮았으되 그것보다는 강도가 센, 참기 어렵도록 초조한 쾌감이 뭉근하게 퍼져 나갔다. 올린은 마지막으로, 아까부터 마른침을 삼키느라 격렬히 오르내리는 목울대에 뽀뽀해 주었다. 그리고 눈을 가렸던 것을 끌어 내렸다.

“잘못했어, 안 했어?”

“크, 윽….”

“내가 묻잖아. 잘못했어, 안 했어?”

정비가 쾌감을 참는 멍한 눈을 내렸다. 자신을 들여다보는 갈색 눈은 엄격했다. 정비는 그제야 자신이 왜 벌을 받고 있는지를 상기했다. 비만 고양이가 달아난 후 자신이 닷새간이나 그의 실종을 숨겼던 사실을 기억해 냈다. 잘못, 했다. 올린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일을 쳤으면 바로 알렸어야 했다. 잘못했다.

“했,”

대답하려는 찰나, 올린이 상체를 들었다가 거세게 엉덩방아를 찧었다. 올린의 보드라운 볼기에 정비의 체모가 문질러지도록 거친 움직임이었다. 올린도 통증을 참으며 한 행동이었지만, 약에 취한 정비는 그 갑작스러운 공격에 더더욱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성기가 너무 큰 탓에 이런 식의 격렬한 삽입은 자제해 왔다. 한 번에 잡아먹히는 듯한 낯선 느낌에 아랫배가 뻐근히 당기는 것 같았다.

“크흑.”

“똑바로 말 안 해요?”

“잘못, 했어. 잘못, 잘못, 했어 올린아. 다시는,”

올린은 두 손으로 정비의 어깨를 꽉 쥔 채 허리를 좌우로 비볐다. 그 감촉조차 너무 야하고 생경해서, 정비는 그만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뒤로 젖히고 말았다. 올린은, 제 배 속을 꽉 채운 자지를 고문하느라 제 아래도 발갛게 벌어지고 찢길 듯이 버겁게 확장되면서도, 고통 참듯 쾌감을 참는 연인의 목줄기를 구경하는 즐거움에 푹 빠졌다. 단정한 입술 끝이 조금씩 휘어 올라갔다. 그는 제 몸에 가해지는 압박감을 덜며 동시에 정비에게 가해지는 압박을 더하기 위해 손을 아래로 내려, 정비의 자지 밑동을 한 손으로 꽉 잡았다.

“아윽!”

“싸고 싶어?”

“크흑, 올린아.”

“사정할 것 같아? 이렇게나 느껴서, 형 이제 어떡해?”

“큿."

올린은 정비의 목소리 끝에 물기가 어린 것을 느끼고, 고개를 돌려 시계를 확인했다. 이제 슬슬, 한계일 거다. 정아로부터 얻은 최음제를 술에 섞어 마시고도 반 시간이 넘도록 사정하지 않은 것은 초인적인 인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올린은 반쯤은 이 우직한 연인을 괴롭히는 재미에 빠져서, 그리고 나머지 반쯤은 다시는 자신에게 어떠한 사실도 숨기지 못하도록 길들이기 위해, 지금 이 견디기 어려운 성고문을 아주 조금만 연장하기로 했다.

“좋아요. 형. 그럼,”

눈언저리가 붉은 정비가, 질끈 감았던 눈을 떴다. 흐린 시선 속에 들어오는 새하얀 얼굴에 발간 입술이 생긋 웃었다.

“딱, 서른 번만 참아요. 서른 번 참으면, 거짓말한 거 용서해 줄게.”

그리고 올린은 허리를 들었다.

정비는 혼미한 의식 속에서, 올린에게 여러 번 혼나며 숫자를 셌다. 하나, 하는 동안 자지 밑둥을 움켜쥔 손에 힘을 잠깐 풀어 주었던 올린은, 자지의 끝이 올린의 속 깊은 데를 찌르도록 내려앉으며 손아귀에도 힘을 주었다. 크흑, 하는 소리는 정비의 입에서만 흘러나온 것은 아니었다. 올린은 저 자신도 느껴서 어쩔 줄을 모르면서, 정비가 숫자를 놓치거나 수의 끝에 앓는 소리를 붙이거나 세어야 할 숫자를 틀릴 때마다,

“형… 정신 안, 차려, 요?”

하고 저 자신도 느껴 가물가물한 목소리로 혼을 냈다. 사랑하는 연인의 몸에 모든 주도권을 내어 준 채, 터질 것처럼 붉게 발기한 자지를 자제시키는 것은 끔찍하게 괴로운 일이었다. 정비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속살이 자지를 머금었다가 뱉어 낼 때마다 단단한 복근을 안으로 잔뜩 조이며 신음하고 떨었다. 그저 사정감을 참는 것뿐인데, 그 뜨거운 중에도 시간이 지날수록 온몸이 으슬거렸다. 소름이 돋았다.

귓가에 울리는 엄격한 올린의 목소리가 이중 삼중으로 겹쳐 들릴 때가 되었을 때에는 올린이 스무 번 엉덩방아 찧는 노릇을 끝내고 정비의 가슴에 기대어 헐떡이며 쉬고 있을 때였다. 정비는 이제 쌀 것 같은, 싸고 싶은 감각을 내리누르느라 저도 모르게 바닥을 뒹구는 올린의 파자마 바지를 움켜쥐고 있었다. 올린의 따뜻한 몸을 잡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필시 어딘가 부러질 정도로 세게 매달리고 말 터였다.

“하아, 하아.”

정비는 올린의 더운 숨 속에, 올린 또한 사정을 참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이미 한 번 사정한 후지만, 한 손으로 안 잡힐 만큼 굵고 한 뼘을 훌쩍 넘길 만큼 긴 것을 안에 담고 스스로 움직이는 데야 다시 발기하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올린은 잠시 정비의 몸에서 흐르는 깨끗한 땀 냄새를 맡으며 코를 묻고 응석을 부리다가, 가슴팍에 입술을 그대로 묻은 채

“향기 좋다. 밖에서 씻고 온 거야?”

하고 물었다. 그 간지럽고도 보드라운 감촉을 느낀 정비는 꾹 다문 입 안으로 제 혀를 짓씹으며 견디다 못해,

“왜 그래?”

하고 재차 묻는 목소리에 그만, 사정해 버리고 말았다. 자신을 벌주기 위해 저 자신도 사정감을 참으며 애쓰는 올린에 대한 벅찬 감격과 더불어, 가슴팍에 불어지는 향기롭고 더운 숨결, 그리고 발기한 자지를 오물오물 씹는 내벽이 합세한 고문은 정비를 그렇게 무너뜨렸다. 정비는 사정하는 순간, 약 기운에 휩쓸린 채로 오래 참았던 욕망이 분출하는 해방감보다는, 참으라던 연인의 명령에 따르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에 휩싸였다.

그러나 올린은 꽉 찬 속이 벅차도록 뜨겁게 쏟아지는 감각에 움찔,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시계를 확인하고 웃었다. 그는 변덕스럽고 제멋대로의 지배자라서, 애초부터 정비가 견딜 수 없을 정도의 한계를 설정해 두고 있었다. 몰아치면 몰아칠수록 괴로워하는 모습을 즐거워했으니, 이미 혜향의 일로 인해 화가 났던 것은 가라앉은 터였다.

물론, 고양이가 정말로 잘못되었더라면 정비를 영영 용서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아무리 실수로 저지른 일이라고는 해도 해결할 때에 더불어 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올린이 연인에게 바라는 태도가 아니었다. 하지만 정비의 행동이 완전히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는 이미 풀어진 마음을 숨긴 채 정비에게서 조금 떨어져, 바닥에 드러누웠다. 정비는 다정하고 책임감이 강하고, 게다가 인내심도 훌륭한 멋진 연인이다. 게다가 지금은 자신에게 죄를 짓고 벌을 제대로 받지 못한 까닭에 기가 죽은 상태이기도 하다. 올린은 혼란 속에 감은 눈을 뜨지도 못한 채 숨을 헐떡이는 정비를 흘끗, 바라보다가 문득 자신이 연인들을 매질한 적은 없음을 깨달았다.

정비의 몸은 강인하다. 약간의 채찍질은 그를 크게 상처입히지 않을 것이다. 올린은 피학적인 성애를 견디는 법은 익히 알았으나 그 반대의 기쁨에 대해서는 이제 막 배워 가는 참이었다. 그는 단단한 복근을 벌떡이며 숨을 몰아쉬는 잘생긴 몸을 바라보고, 사정하였어도 우람한 자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쩌면 오늘 일은 자신과 정비 사이에 새로운 형태의 성애를 발견하게 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올린은 사랑하는 연인의 몸을 가죽 벨트 따위로 후려치고 기쁨을 상상해 보았다. 때리는 순간의 쾌감보다 자신으로 인해 주어지는 고통을 안간힘으로 버티는 모습을 감상할 것이 더 기대된다. 그는 설레는 마음을 싣지 않으려 노력하며, 지금 자신이 꺼내는 이야기가 어떠한 것이더라도 복종할 수밖에 없는 처지의 연인을 향해 무심을 꾸며 입을 열었다.

“형, 매 좀 맞을까요?”

정비의 헐떡임이 딱, 멎었다. 대답 못 하고 굳은 모습을 바라보는 올린의 얼굴에, 화사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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