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올린 (59/65)

# 올린

여름의 긴 해가 넘어갈 무렵, 두 번 사정한 정비는 오해가 풀리자 태도를 바꾸어 느긋이 섹스를 관전하던 고양이의 밥을 챙겨 주기 위해 벌거벗은 채 나갔다가,

“이거 뭔지 아는 사람?”

하고 현관에 놓인 상자에 대해 소리쳐 물었다. 세 번인가 사정하고 너무 덥다며 선풍기를 들고 와 그 앞에 앉아 있던 정규가

“아까 큰형이 들고 오는 것 같던데!”

하고 소리 높여 대답했다. 계단을 사이에 두고 아래층과 대화하다 보니 목소리가 컸다. 정아에게 세 번째인지 네 번째인지 다섯 번째인지 모를 삽입을 맡긴 채 흔들리던 올린이 다 죽어가는 소리로,

“아, 시끄러워….”

하고 타박했다. 오르가슴을 너무 심하게 느끼는 바람에 찾아온 두통 때문이었다. 사위는 어두워지고 있건만 올린이 눈이 부시면 머리가 더 아프다고 불평하는 바람에 그들은 어두운 방에 불도 켜지 못했다. 정규는 얼른 위아래 입술을 말아 물며 눈치를 보고, 아무 말도 안 한 척 정환이 갖다주었던 맥주를 한 모금 넘겼다. 징징 울던 정환이는 올린에게 좆이 빨린 다음, 발가스름한 항문에 자지를 넣고 열심히 흔들어 사정한 후부터는 다시 얌전하고 고분고분해졌다. 올린이 목마르다면 물을, 이거 아니라 맥주 갖다달라면 맥주를, 내 거만 가지고 오면 어떡해 바보야 형들 것도 가져와 하면 또 여러 캔을 가져오느라 계단을 여러 번 오르락내리락하면서도 불만이 없었다.

정아가 드디어 올린의 몸 안에서 사정하며 올린에게 입을 맞추다가 잠만 떨어지라고 밀려 넘어질 때, 정비가 아래층에서 상자를 들고 올라왔다. 정아는 넘어진 김에 손에 잡힌 부채를 들어 부치다 반가운 듯,

“아! 올린아 저거!”

하고 뿌듯한 목소리를 했다. 두 팔로 얼굴을 가린 올린이 다시 한번 다 죽어 가는 음성으로,

“머리 아파요, 조용히 좀 말해….”

하고 구박했으므로 정아는 한껏 목소리를 낮췄다.

“저거 반딧불이야.”

올린은 정아가 데이트하자고 요구할 때마다 거절한다. 그래도 그 고집에 떠밀리는 척 따라나선 적이 없는 건 아니다. 아쿠아리움에 데리고 가면 수달이나 펭귄이나 돌고래를 좋아할까 했는데 올린은 반투명한 해파리가 빛을 내뿜으며 느리게 유영하는 어두운 수조 앞에서 아주 오랫동안 홀린 듯 서 있었다. 정아는 그 곁에서 한 시간이 넘도록 함께 서 있어 주다,

“발광 생물이 마음에 드는구나.”

했고, 올린은 뜻을 알 수 없는 말에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었다.

반딧불이는 대표적인 육상 발광 생물이다. 원래라면 6월이면 사라지는 곤충이기도 하다. 아쿠아리움 이후 어느 지역 축제에서 반디를 지역 축제에 쓰기 위해 인공 증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던 게 지난달, 유충을 대량으로 사 온 게 2주 전이었다. 정비가 상자를 열고 안을 들여다보며 아, 하고 감탄했다. 그리고는 상자 안에 스티로폼 따위로 잘 포장되어 들었던 네모난 유리 어항을 조심조심 꺼냈다. 지쳐 떨어진 채 숨만 몰아쉬다, 간신히 고개를 돌려 그것을 바라본 올린의 눈이 커졌다.

방을 채우던 석양이 차분한 밤 그림자로 가라앉자, 낮에 내도록 시끄럽던 매미 소리도 잦아들었다. 귀뚜라미 소리와도 닮은 풀벌레 소리가 엷고도 넓게 찬 어두운 방 안에, 다섯 명의 남자가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노란 고양이도 정비의 무릎에 앉아 그들이 바라보는 광경을 함께 보고 있었다.

수십, 수백 마리의 반딧불이는 어항 안에서 해파리처럼 느리게 유영하는 것 같았다. 좁은 데서 다투지도 않는 작은 불들은 함께 모여 환한 빛이 되었다. 올린은 어항 위로 가만히 손끝을 대어 보고, 손톱 아래가 맑게 비칠 정도로 밝은 빛 무리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형광 연두에 가까운 빛을 가득 담은 얼굴에 조용하고 평화로운 미소가 피어오르는 광경을, 네 형제는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

올린은 가만히 어항 뚜껑을 열었다. 좁은 데 갇혀 있던 마음들이 다섯이 앉은 방 안으로 고요히 날아올랐다. 예전에 올린이 묶인 채 자던 침실 안을 샅샅이 밝힌 반딧불이 중 여럿은 창문을 통해 뒤뜰로 날고, 또 다른 녀석들은 열린 미닫이문을 통해 어두운 복도로 향했다.

그들은 이 별채의 어두운 복도를 구석구석 탐험하며 그 여려 보이나 강한 빛을 비출 것이다. 올린이 울며 벌을 서던 복도 끝까지 다다라 고난을 겪던 방들을 살필 것이다. 예전에는 아프고 괴로운 일들만 가득했던 집안, 이제는 사람 사는 곳답게 조금은 어지럽혀지고 평범한 물건들이 놓인 거실을 떠돌 것이다. 온 집안을 차분히 밝히고 나서, 처음 매를 맞고 반 가사 상태로 들여졌던 올린이 이제 주인이 되어, 사람을 들이고 들이지 않을 권한을 갖게 된 바로 그 현관을 비춘 다음에야 별채 밖으로 향할 것이다.

올린은 가만히 앉은 채, 창문을 나선 반딧불이들이 푸른 여름밤 속으로 날아오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가 사랑하는 네 명의 연인은 여전히 성장이 필요한 어린애이며, 올린 자신도 아직 더 자라야 할 사람이다. 게다가 지난했던 삶 속에는 아직도 풀어내야 할 것이 많이 남았다. 그는 그가 살아갈 길이, 지금 반딧불이를 바라보는 이 순간처럼 마냥 아름답고 평온하기만을 바라지는 않았다. 그것은 그 누구에게라도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올린은 어쩌면 좋지만은 않은 날이 또 찾아올 것을 알면서도 미소 지었다. 네 도련님이 사랑하는 올린은 어둔 날이 영영 오지 않기를 소원하기보다는, 캄캄한 시간에도 자신의 발이 멈추지 않기를, 더 단단한 걸음으로 주어진 길을 걸을 수 있기를 기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외전으로 이어집니다]

네 도련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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