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왕자님 (58/65)

# 왕자님

“올린 왕자님! 왕자님 어디 계세요!”

정환이 인상을 팍 쓰며 한 손을 올려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올린이 엽총으로 그림자의 손을 터뜨리는 광경이 마왕으로부터 공주를 구출해 내는 왕자 같았다며 또 다른 창피한 별명을 붙인 것은 당연스럽게도 이 구역의 미치광이, 장남이었다.

네 형제 중에 정아는 가장 요란스럽게 치댄다. 정환도 거의 매일같이 별채를 들락거리며 혼자 있을 틈이 없도록 굴어서 귀찮을 때가 있지만, 조용한 그와 달리 정아는 말도 많고 목소리도 큰 데다 말하는 내용도 사람의 부아를 들끓게 하는 데가 있어서 올린은 더 성가셔하곤 했다.

그러나 어쩐지 오늘은 저 목소리가 반갑다. 왠지 잔뜩 긴장해 있던 올린은, 이제껏 한 번도 소리 내어 대답해 준 적 없는 남사스러운 호칭에 얼른 대답하며 그 자리를 벗어나려다, 아랫도리 벗은 것을 깨닫고 서랍을 열었다. 그 안에는 비단 비슷한 것으로 만든 것은 하나도 들어 있지 않다. 면으로 만든 시원한 파자마 바지를 꿰어 입고 쏜살같이 미닫이문 밖으로 달려 나가는 모습을, 정규와 정환은 반쯤은 얼빠진 채 바라보았다.

이런 식으로 자신들을 마주한 상황이 퍽 곤란했구나 이해한 정규와 달리 정환은 장남의 부름에 저렇게 반가이 달려 나간 것에 대해 또 어리석은 질투를 시작한 모양이었다. 정규는 정환의 어깨를 툭툭 쳐 주다 장난스레 자지를 건드리려는 듯이 장난쳤지만 굳은 얼굴의 정환은 형의 손을 탁 털어 내고 바닥을 노려보며, 벗어 던졌던 바지를 주워 들었다.

삐걱거리는 목제 계단을 서둘러 내려가는 동안, 올린은 구멍 난 손으로 난간을 단단히 붙잡았다. 네 형제가 모두 잘 알고 정환이 면목 없어하는 점인데, 올린은 걸을 때도 뛸 때도 다리를 저는 법은 없었으나 계단을 내려갈 때만은 예전에 창상을 입었던 왼발에 통증을 느끼곤 했다. 물론 급할 때에야 쪼개지는 듯한 통증도 무시하며 잘만 달리지만, 그래도 이렇게 난간을 잡고 내려가면 지끈거리는 느낌이 훨씬 덜하다.

“왔어요.”

도망치듯 방을 벗어날 때와 달리, 한층 정돈된 태도로 올린은 정아를 반겼다. 정아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뒤에 조그만 카트가 세워져 있는 것으로 보아 본채에서 오는 길이 아니라 외출했다가 주차장에서 바로 별채로 들어오는 길인 것 같았다. 고용인을 불러 끌게 하지 않은 것은 올린이 고용인을 달고 오는 것을 싫어해서다.

“들어가도 돼?”

“왕자님이라고 안 부른다고 약속하면요.”

“아, 그건 좀 곤란한데. 그럼 일단 여기서 말할게,”

“……들어오세요.”

이 더운 날 땀 흘리는 사람 신도 못 벗게 하는 것은 올린의 성격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 그는 원하는 약속을 받아 내지 못하고서도 정아를 들였다. 정아는 높은 마루로 올라서기 전에 먼저 수레에 얹혀 있던 큼지막한 상자를 조심조심 들어 마루 위로 올렸다. 올린은 상자에 대해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주방으로 앞서 걸어갔다. 맨발이 마루에 닿는 찰박찰박하는 소리를 따라 걸어간 정아는 올린이 냉장고에서 꺼내어 따라 준 보리차를 한 번에 비우고는 늘 그렇듯이 제 용건을 먼저 말하려다 올린에게 지적받았다.

“저게 뭐냐면,”

“형, 또 피나는데요.”

“아. 어디.”

“여기요… 바지가 찢어졌어요. 벗어 봐요.”

올린은 정아의 옆에 쪼그리고 앉아, 무릎 아래쪽의 천이 찢긴 사이로 피가 배어 나오는 것을 확인하며 지시했다.

“벗으라고?”

정아는 능글거렸지만, 올린은 넘어가 주지 않는다.

“네. 전번처럼 찢겼으면 꿰매야 하니까요… 아니 위에는 왜 벗어요.”

“더워서 그래. 좀 벗고 있자.”

정아가 낡은 셔츠와 면바지를 훌훌 벗고 트렁크만 입은 몸이 되는 동안, 올린은 그가 그러든 말든 내버려 두고 복도 끝 장식장 쪽으로 향했다. 예전에 이곳에는 남근 모양의 물건이 소재와 크기와 모양별로 줄지어 서 있었다. 액받이 시절 올린은 이 장식장 앞에 서서, 이 많은 딜도 중에 무엇을 도련님께 가져가야 늘 헐어 있는 아래가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혼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었다.

반년 전 처음 이 별채를 자신의 것으로 선물 받고 이사 들어오던 날 그 딜도들은 사라졌다. 흉물들이 아직도 늠름히 서 있는 것을 보고 올린이 입을 꾹 다문 채 다 때려 부쉈기 때문이다. 형형한 눈빛으로 쾅쾅 발소리를 내며 걸어와 왜 내가 들어오기 전에 미리 치워 두지 않았느냐고 나지막이 묻는 음성에, 들어오라는 허락을 받지 못해 현관에 서 있던 네 명의 남자들은

“아니 우리 사이에 섹스를 안 할 것도 아니고, 넌 원래 좀 아프게 하고 그런 걸 좋아하니까 앞으로도 계속 쓸 줄 알았지, 그게 꼭 액받이만 쓰는 물건도 아니야 올린아 그리고 그거 되게 비싼 것도 있다? 혹시 다 깼니?”

“미안하다. 내가 미리 치웠어야 했어.”

“애기야 거기 바닥에 조심해 유리로 만든 거 깨진 것 같은데.”

“…낑.”

하고 거의 동시에 대답했었다. 격노한 올린이 제 팔뚝만 한 딜도를 정아를 향해 던지고, 약삭빠른 정아가 놀라지도 않고 홱 피하는 바람에 그 딜도가 목제 현관문에 깨진 자국을 낸 것은 아직도 고쳐지지 않고 있다. 올린이 아무것도 건드리지 말고 그냥 두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제 이 장식장에는 올린의 책들, 정아가 사다 나른 기이하고 신기한 장식품들, 정규가 사 준 마카롱이나 초콜릿이 들어 있던 예쁜 틴케이스 따위가 모여 있다. 그리고 가장 아래 칸에는 정비가 넣어 둔 구급함도 있다. 올린이 자잘한 상처를 입고도 고용인을 부르는 법 없이 그냥 지내는 것을 보고 딱히 여긴 탓이다.

주방으로 돌아가니 정아는 맨몸인 채 냉장고를 뒤적여서 찌그러진 빙수 상자를 꺼내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살그머니 상자를 열어 보는 동안 냉장고 문을 닫지도 않는 흐트러진 생활 태도에 대해, 올린은 이제 잔소리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가 정아에게 바라는 것은 딱 하나,

“제발 다치지 좀 마세요.”

“그게 맘대로 잘 안 돼. 근데 왕자님 이거 내가 먹어도 됩니까?”

아니 딱 두 개다.

“왕자님이라고 부르지 좀 말고요.”

“나는 너보다 왕자님 같은 사람을 본 적이 없어. 너는 생긴 것도 디즈니 왕자님 같아. 이거 맛있네.”

“나라 이름이 무슨 뒤지니예요. 입만 열면 하여튼."

“어, 그게, 디즈니가 나라는 아닌데, 여튼 설명하기 어렵고 내가 내일 디즈니 영화 보여 줄게. 데이트하자.”

“싫어요.”

벗은 정아의 몸은, 올린이 볼 때마다 한숨을 쉴 정도로 엉망이다. 생각해 보면 올린은 오랜 기간 수없이 정아와 몸을 섞으면서 한 번도 이 몸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상처투성이인 몸인데, 이 끔찍한 흔적들을 발견하지 못한 것은 이상한 일이다. 정아는 제 몸의 상태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으므로 굳이 옷을 벗지 않거나 조명을 어둡게 하여 몸을 가린 적도 없었다. 올린이 정아의 흉터를 알지 못한 이유는 하나다. 올린은 예전에, 정아를 사람으로 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니 흉터가 있는지를 눈여겨보았을 리 없다.

다른 세 남자가 액받이를 물건으로 생각한 것과 달리, 정아는 올린을 비롯한 모든 액받이가 물건 아닌 사람임을 알고 있었다. 성인이 되어 처음 자신의 액받이를 선물 받기 전부터, 팔 다리 머리 달린 데다 아파도 하고 울기도 하는 것이 어째서 그들을 사용하는 남자 어른들과 달리 사람이 아니라고들 하는지 늘 이상하게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것이 사람을 사람 아닌 것처럼 폄하하여 속 편히 이용하고자 하는 지배계급의 못된 수작이라는 것을 홀로 깨달았다.

그렇게 인식하면서도 액받이를 쓰는 데 거리낌이 없었던 까닭은, 액받이든 액받이 아닌 사람이든 정아에게는 똑같이 무가치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남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고통을 감각하지 못하는 두 가지의, 일종의 장애와도 같은 특징을 타고난 정아에게는 자신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대신 느끼게 할 만한 대상이 필요했다. 마음대로 해도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아무런 지장이 없는 액받이가 그에게는 참으로 편리한 실험체였다.

사용자가 액받이를 사람으로, 액받이가 사용자를 물건으로 바라보았다는 것은 우스운 역설이다. 그러나 적어도 올린과 정아의 관계는 그러했다. 올린이 네 남자 중 유독 정아를 사람으로 보고 있지 않았던 것은 경멸적인 의미가 아니다. 정아의 무감함은 그 자체로 비인간적인 특성이고 올린은 그 점에 민감했을 뿐이다. 화가 나거나 음심이 일거나 짜증이 솟아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 아닌, 그저 관찰하기 위해 고문하는 정아는 왠지 사람이 아닌 다른, 더 깜깜하고 딱딱한 존재 같았다. 그러나 그때의 올린도 틀렸다. 이 사람을 똑바로 바라보지도, 살아온 역사를 가여워하지도 못한 과거의 자신을, 지금 올린은 부끄러워한다.

정아의 다리는 트렁크에서 카트를 꺼내다가 긁힌 모양이다. 봉합이 필요한 정도는 아니었다. 올린은 피를 닦고 소독한 후 정아의 입에 소염제를 털어 넣었다. 정아는 순순히 올린의 간호를 받으면서 생글생글 웃었다. 맨날 다쳤으면 좋겠네, 하는, 올린의 표현에 따르면 천인공노할 소리를 지껄이면서였다. 그렇지만 그게 천인공노할 말은 절대 아니라고 정아는 생각한다. 자신이 다치는 것을 하늘이 정말로 노여워했더라면, 자신은 그토록 오래도록 자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초등학교 때 못을 팔로 짚어 파상풍으로 죽다 살아났다. 반년 후에는 조금 다쳤나 싶어 피에 젖은 신발을 벗었는데 발가락이 부러져 있기도 했다. 그런 식의 일은 참 잦기도 했다. 신체에 가해지는 위협 신호 체계가 마비되어 있으니 그는 커다란 충격 없는 모든 종류의 통증을 인지하지 못하여 생명이 위태로운 적이 많았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아 등에 입은 화상을 인지하지 못하여 살이 썩는 바람에 한동안 병원에 입원한 후로는, 정아는 일생의 목표를 다른 이들처럼 감각하게 되는 것으로 잡았었다. 더 강력한 통증을 일으키는 약을 개발하고 싶어 제약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그즈음,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매일같이 자해를 시작한 것도 그즈음의 일이었다.

어린 시절 스스로 낸 창상이 빈틈없이 빼곡한 허벅지와, 알지 못하는 새 다쳤지만 치료 시기를 놓쳐 큰 흉터로 남은 등 쪽의 상처들과, 그림자에게 당한 칼자국이 마구잡이의 흠으로 남은 상체를 바라보며 올린은 지금 위층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두 남자를 생각했다. 그들을 안아 줄 수 있다면, 사람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알지 못해 외로이 살아온 이 사람을 안아 주지 못할 리 없다. 올린은 보살펴야 할 이 있는 왕자처럼 어진 마음으로, 정아가 자신보다 더 고된 삶을 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관통되었던 흉터가 남은 손에서 빙수 스푼을 빼앗아 내렸다. 정아는 일생에 단 한 번, 그 흉터가 생길 때 통증을 느껴 기뻤다고 고백한 바 있다. 아파서 기뻤다니, 그 말을 듣고 올린은 눈가가 뜨거웠었다.

손이 잡힌 정아는 온순하게 일어섰다. 쉴 새 없이 떠들어 대던 입이 조용한 것은 어쩌면 올린의 마음을 알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소란스럽게 굴면 가차 없이 내쫓으리라 생각했던 올린의 속마음이 무색하게도, 정아는 삐걱거리는 계단을 올라 미닫이문을 열고 두 동생이 기다리는 침실에 들어설 때까지도 아무 말이 없었다. 대신 그는 올린을 가만히 안아 이불 위에 살며시 눕히고, 오랜 기다림에 방심했던 동생들이 항의할 새도 없이 파자마 바지를 벗겼다. 그의 왕자님은 눈을 감은 채 다리를 벌리고, 이미 젖은 지 오래인 구멍을 벌려 미끄러져 들어오는 그를 반겼다.

이미 달아오른 몸임을 알고 있었다. 올린은 의외로 생활 패턴이 일정하고 그것을 지키는 데 깐깐한 구석이 있다. 점심나절이 훌쩍 지난 이 시간까지 파자마 바지를 입은 건, 벗고 있다가 급히 꿰입었다는 뜻이었다. 계단을 내려오는 올린을 보는 순간 정아는 발기했다. 옷차림이 아니라 얼굴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로도 이미 동생 중 하나와 한 판 뜨고 있었던 걸 알았다. 그러니 아래가 젖었는지 어떤지 굳이 확인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정아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게도, 올린은 넣자마자 느끼는 듯이,

“흐응!”

하고 허리를 휘고 고개를 젖히며 정아의 팔을 더듬더듬 붙잡았다. 정아는 힘껏 허리를 뒤로 물렸다가 묵직하게 내리꽂으며,

“응!”

하고 벅찬 숨을 뱉는 올린의 얼굴을 향해 개구지게 웃었다. 올린이 나간 후로 벽에 기대앉아 핸드폰을 만지던 정규가 얼른 무릎걸음으로 다가왔다. 올린의 흐린 눈을 향해,

“올린아, 형, 입에 넣을 건데, 혹시 싫으면 알려 줘.”

하고 말하며 올린의 목과 어깨 부분에 베개를 받친다. 올린은 고개를 젓지도, 말을 하지도 못했지만, 눈을 깜빡거려 싫지 않다고 표현했다. 그 모습을 보며, 정규는 올린의 머리를 무릎 사이에 둔 채 수그러들었던 제 자지를 훑었다. 좆은 다시 단단하고 커다란 모습으로 섰다.

한껏 젖혀진 기다란 목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너무 무방비했다. 자지의 침입을 다소곳이 기다리는 울대를 어루만지던 정규가 올린의 머리를 좀 더 젖혀 입술에다 요도구를 누르다시피 문질렀다. 벌어진 입 안으로 귀두가 들어서고, 입천장과 혀를 짓누르듯 벌리며 자지의 길고 매끈한 몸이 따랐다. 이윽고 그 끝이 목구멍에 닿았을 때 잠시 멈췄던 정규는, 올린이

“컥, 커흑,”

소리를 하도록 가볍게 허릿짓을 하다가, 더 좁고 깊은 데를 취하려는 드센 몸짓으로 짓처넣었다. 식도가 찢길 듯이 아프게 벌어지는 충격에 순간 올린의 귓가에는 이명과도 같은 삐- 소리가 울렸다. 아래와 위로 질퍽거리는 자지의 드나듦이 이명과 함께 몸을 점령하는 것 같아서 올린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손을 바르작거렸다.

반바지를 도로 꿰입은 채 창가에 섰던 정환은, 아차 하는 사이에 장남이 아래를, 어어 하는 사이에 삼남이 위를 차지해 버린 제 연인이 몸부림치는 것을 지켜보았다. 보기에는 가엾지만, 사실 저, 기침하는 강아지처럼 팔딱거리며 괴로워하는 듯한 몸짓이 고통이 아니라 성감의 발로인 것을, 정환은 잘 안다. 여름이라 살이 내려 마른 다리에 아직 바지가 걸쳐지고 티셔츠는 반만 끌어올려져 곱게 돋은 젖꼭지 하나를 드러낸 채, 올린은 정환이 잘 아는 가련한 표정으로 신음하고 있었다.

쑤걱쑤걱 쑤셔 대는 장남의 움직임에 절로 엉덩방아를 찧어 대는 야한 허리, 가느다란 목이 찢길 듯 불룩이도록 자지를 삼키고도 기쁜 듯이 활짝 벌어진 붉은 입술. 정환은 예전과는 다른 기분에 사로잡혀 그 애틋하도록 어여쁜 모습을 노려보았다. 올린이 자신만 미워하여 일부러 따돌리는 것 같았다. 아닌 걸 알면서도 자기 말고 형들은 죄다 맨날천날 올린하고 씹질을 해 왔을 것 같은 소외감에 사로잡혔다. 자신은 아무리 오래 속죄해도 결코 올린에게 안길 수 없을 것 같다. 초조하고 좀스러운 심정이 된 정환은 단단히 삐친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같이, 해, 정환아.”

정규가 헐떡이면서도 권했다. 정아도 같았다.

“이리 와, 같이 넣자. 올린이도 좋아하는 거 알잖아.”

같이 넣는 걸 좋아하긴 개뿔, 올린이는 예전에 자지 두 개를 같이 받고 나면 입구도 찢기고 밑도 빠지는 것 같고 허리뼈가 어긋나는 것 같아 몹시 괴롭다고 고백한 적이 있었다. 정환이 어떤 기분이냐고 집요하게 물어 간신히 대답한 것이었지만, 정환은 진짜 끝내준다는 대답을 할 줄 알았던 올린이 불평하는 것에 기분이 상해서 매질했었다.

감사할 줄도 모르는 년, 아프긴 뭐가 아파, 자주 안 하니 밑이 빠지는 것 같지, 자주 하면 하나도 안 아플 거라고 호통을 치면서 딜도 두 개를 쑤셔 넣고 팼었다. 다리를 벌리지도 못하게 무릎 꿇린 다음, 나란히 놓인 엄지발가락을 케이블 타이로 서로 묶어 둔 채 딜도 두 개를 욱여넣고 발뒤꿈치로 단단히 눌러 밀려 나오지 않게 하라고 명령했다. 발바닥과 엉덩이와 허리께까지 채찍질 당하며 우는 애한테

“기, 기분 좋아요, 흐엉, 흐흑.”

하는 울음 섞인 거짓말을 듣고서야 풀어 줬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올린이 쟤 구멍이 며칠 사이에 왜 저렇게 헐거워졌지? 뭐 이상한 거 넣은 사람?”

하고 정규가 묻는데도 시치미를 딱 떼고 앉아서는, 낡고 헌 구멍을 쫀득거리게 한다는 산초 가루를 안에 펴 발린 채 벌서며 속이 맵고 얼얼해 배배 꼬는 것을 모르는 체했었다. 장액이 주르르 흘러 안에 든 산초 가루가 같이 흘러나오면, 정규는 고용인을 시켜 더 많은 양을 안에 펴 바르고 엉덩이를 조물거리도록 해 구멍을 단련시키곤 했다. 정환은 올린이 그 매운 벌을 받는 이유가 다 자신임을 알면서도,

“어? 너 또 질질 흘리지? 산초 더 바르라고 해야겠다.”

하며 놀려 댔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올린이 자신을 용서해 줄 이유가 없다. 정환은 제 잘못을 몇 가지나 돌이켜 보다가 그만두고, 한데 엉긴 세 사람 곁을 지나쳐 방을 나섰다. 형들한테도 열 받는 데다 예전의 자신은 죽여 버리고 싶고 올린은 영영 자신을 사랑해 주지 않을 것 같은 좌절감에 계단을 쾅쾅 울리며 내려갔다. 그러다 정아의

“정, 환아, 으윽, 상자 좀, 갖고 올라와!”

하고 틈틈이 신음을 섞어 시켜 먹는 소리에 뒤늦게 발견한 상자를 걷어차려 발을 들었다가,

“안에 든 거 어항이야, 깨지면, 올린이 싫어할걸!”

하는 소리에 들었던 발을 도로 내렸다.

정아는 집중하지 않고 정환에게 말을 건 죄로, 올린에게 옆구리를 얻어맞았다. 고개를 젖히고 정규의 자지를 받느라 컥컥 소리를 내면서도 매몰차게 옆구리를 찰싹, 때린 올린의 재촉에 정아는 다시 아랫도리를 움직이며,

“그래 봤자 하나도 안 아프지롱.”

하다가 한 대 더 맞았다. 예전엔 삽입하면서 네가 너무 조여서 도련님 좆이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면은 도련님 자지 아프시면 아니 되오니 차라리 자기 구멍을 찢어 주십사 빌던 녀석인데, 이제는 옆구리에 빨간 손자국이 남을 정도로 때릴 줄도 알고 진짜 너무 귀여워졌다고 생각하면서였다.

통증은 몰라도 쾌감은 안다. 그는 오랜만에 들어선 올린의 촉촉한 몸을 마음껏 즐겼다. 오물거리며 자지의 머리로부터 뿌리까지를 꽉꽉 조이는 내벽의 움직임은 예전과 다름이 없다. 목구멍이 조여져 숨이 막힐 때 더욱 기운차게 조이는 항문은, 앞뒤로 허리를 움직여 쑤걱쑤걱 긁어 줄 때보다, 좌우로 와르르르 흔들어 줄 때 더욱 크게 벌름거리고 더 많은 장액을 쏟는다. 올린은 좁은 속을 억지로 넓히려는 듯 옆으로 움직이는 자지의 공격에, 조금 전에 정아를 때렸던 손으로 정아의 팔을 더듬어 잡았다. 얻어맞고도 아픈 걸 모르는 바보 같은 몸이니 상처를 입히고 싶지는 않다. 손톱으로 긁을까 봐 조심스레 닿았던 손이 스르르 미끄러지는 걸, 정아가 그 위로 손을 덮어 쥐었다.

정규의 자지가 목구멍을 뚫고 폐까지 이를 것 같은 기분이었다. 조금의 틈도 없이 식도를 완전히 막은 자지가 깊고 자잘한 움직임을 하는 동안, 올린은 정규가 자신의 목 위로 울룩불룩 솟는 자지의 모양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것을 알았다. 그는 예전에 교육받았던 대로 손을 더듬더듬 올려, 제 목을 스스로 조이고 안에 든 자지에 조금 더 자극적인 압박을 해 주려고 했다. 그렇게 하면 자신은 몹시 아프지만, 목 안의 습하고 부드러운 살로 둘러싸인 자지는 고통 없는 희열을 만끽하게 될 것이다.

“아, 아니야, 올린, 그런 거, 하지 마.”

그러나 정규는 자학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기쁘게 해 주려는 올린을 만류했다. 그리고 들었던 그 손을 가만히 내려 티셔츠 위로 도드라진 젖꼭지를 만지게 했다. 올린은 유두에 닿는 저 자신의 손에도 소스라치듯 퍼덕이며 우는소리를 했다. 젖꼭지를 만지는 올린의 손을 덮은 정규의 손이 조물조물 젖꼭지의 모양을 다듬어 주듯 잡아당기고 어루만져 세웠다. 예나 지금이나 젖이 예민한 올린이 허리를 벌벌벌 떨며 무릎을 세우다 못해, 발을 번쩍 들었다. 정아의 허릿짓이 거세었으므로 그 허리에 감지 못한 다리가 애처롭게 허공에서 마구 흔들렸다.

“아, 존나 예뻐.”

올린의 목을 한 손으로 받친 정규가 엄지손가락으로 쇄골 가까이로부터 목줄기를 지나 턱까지를 쓸었다. 그 움직임에 이어 정규의 사정하지 않은 자지가 목구멍에서 빠져나가는 느낌이 생생했다. 느리게 미끄러지는 그 감각이 소름 돋아 잠시 쿨럭이던 올린은

“자, 잠깐만요.”

하고 갈라진 목소리로 정아의 어깨를 잡았다. 허공으로 쳐들렸던 다리로도 정아의 상체를 붙든다. 신나게 박던 정아가 몸짓을 방해받고도 별 언짢음 없는 얼굴로 올린을 쳐다봤다.

“무, 물 좀.”

정규가 웃는 동안 정아가 선선히 물러났다. 마찬가지로 사정하지 않은 정아의 자지는 아직도 거대한 부피감으로 덜렁거렸다. 아래층으로 가려던 정아를 만류한 올린은 턱짓으로 한쪽 구석에 놓였던 자리끼를 가리켰다. 보통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을 개고 자리끼를 치우는데, 오늘은 새벽부터 정환이 쳐들어오는 바람에 미처 치우지 못한 작은 주전자와 조그만 물잔이 소중했다.

아주 작은 잔이기는 했으나, 올린은 거푸 두 번이나 잔을 비우고는 입가를 닦았다. 그 잠깐을 참지 못한 정아가 올린의 다리 하나를 들어 제 어깨에 걸치려 들자, 올린이 고개를 젓는다.

“아, 아니, 이번엔 정규 형 꺼 넣어요.”

“뭐어어? 나 아직 못 쌌는데.”

“알아요. 근데 오랜만이니까 조금만, 나중에 정환이도 넣게 해 줘야 하고, 쟤 밖에서 우는 것 같은데….”

“울긴 누가아, 맥주 마시겠지. 너 후달려서 그러지? 그러니까 에어콘을 좀 켜, 아니면 밥이라도 우리랑 같이 먹든가. 여기서 혼자 그게 뭐야 무슨 귀양 온 사람처럼, 어제도 고용인이 그러더라 너 때마다 식사 갖다줘도 죄다 남기고 밥에다 물 말아서 김이랑 먹더라고.”

정아는 시키는 대로 정규에게 올린의 아래를 내주면서도 입을 쉬지 않았다. 본래도 말이 적은 편은 아니었지만 이렇게까지 수다스럽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좀 심하다. 올린은 제발 그만 떠들라는 뜻으로 손을 내저었다. 천연덕스럽게도 정아는 그 손을 잡아 쪽, 하고 뽀뽀하더니 모로 누운 올린의 얼굴을 마주 보고 누웠다. 올린의 뒤에는 정규가 이미 딱 붙어 있었다.

정규는 올린의 어깨에 턱을 얹은 채, 잔뜩 등을 옹송그렸다. 볼기 사이에 비벼지는, 색은 취향보다 조금 옅으나 핏줄의 모양이 예쁘고 길죽한 자지를 느끼며, 올린이 손 하나를 뒤로 돌려 제 볼기를 잡아 벌려 주었다. 그것을 신호로 정규가 천천히 분홍색의 골짜기에 파고든다. 그러는 동안 정아는 올린으로부터,

“한마디만 더 하면, 흐으, 정환이랑 자리 바꾸라고 할 거예요.”

하는 소리를 듣고 입을 다물었다. 들려오는 소리로 짐작건대 막내는 지금 현관을 마주 보는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다. 울고 있든 웃고 있든 정아가 알 바는 아니었지만 확실한 건 그 녀석과 자리를 바꾸고 싶지는 않다는 거다.

“으윽….”

잠시 비었던 아래에 드는 새 자지를 반기느라 올린이 허리를 휘고 항문을 바짝 뒤로 쳐든 것과,

“큭, 오, 올린아.”

정규가 흐느낀 것은 거의 동시의 일이었다. 여태 목구멍에 자지를 들이밀면서도 얌전한 척하던 정규의 손이 슬금슬금 뻗어와 올린의 골반께를 부여잡고 조금 더 깊이 박아 넣었다. 몸이 기억하던 것과 눈으로 보는 것은 다르다. 모양과 크기와 강직도가 같은, 아니 조금쯤 더 커진 것도 같은 자지가 한 번에 깊은 속까지 드는 것을 반기며 구멍이 벌렁거렸다. 정규가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좀 더 밀어 올릴 때 올린은 더운물에 들어가는 것과도 같은 나른함으로 신음했는데, 그것은 정규의 자지가 기분 좋은 곳을 쑤셔 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내내 마주 보고 있던 정아의 자지가 올린의 자지에 닿는 순간 느껴진 온기 때문이었다.

동생의 좆에 부드러운 안을 빼앗겼지만 이건 또 이것대로 좋았다. 그는 한쪽 팔을 뻗어, 뒤로 기울이듯 정규를 향해 상체를 젖혔던 올린의 머리를 당겨 안았다. 별난 네 남자를 다뤄야 하다 보니 싸우는 남자들을 혼내고 떠들면 쫓아낸다고 경고하는 사람이 되어 있기는 하나, 올린은 천성이 순하다. 그는 뻗대는 법 없이 정아가 이끄는 대로 고개를 숙였다.

올린의 정수리가 정아의 상처 많은 가슴에 기댔다. 둘은 서로의 귀두로부터 좆 뿌리까지가 완전히 밀착되어 철벅거리는 소리를 내며 비벼지는 두 자지를 내려다보았다. 정아는 한 손은 올린의 상체를 안고 다른 한 손에 두 자지를 모아 쥐고 있었는데, 올린이 자지를 쥔 손을 끌어당겨 거기다가 침을 뱉자 손가락을 꿈질거렸다.

입 안에서 침을 모아 끈적하게 늘어지도록 뱉는 올린의 얼굴은 별 표정이 없었다. 그러나 정아가 보기에는 그 덤덤한 입술 사이에서 제 손바닥으로 침이 떨어지는 장면이 너무 야했다. 손가락 사이로 스며드는 맑은 액체는 그 자체가 최음 성분이 있는지 화끈거리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아무렇지도 않게 침을 뱉은 올린이 젖은 입술을 한 채,

“하, 조금, 더, 꽉….”

하며 정아의 젖은 손을 다시 두 자지 위로 덮어 눌렀다. 아주 크지는 않되 단단한 손이, 그 손 가운데 박힌 아일렛의 찬 감촉과 함께 두 자지를 함께 압박하여 비빈다. 기대하지 못했던 거센 압박감에 순간 터져 나오던 신음을 참는 정아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마에 핏줄이 솟을 정도로 애를 쓰며 참는 얼굴을, 문득 신경 써 주듯 바라본 올린이 웃음을 터뜨렸다. 정규의 자지를 물었던 항문이 배로 웃는 올린의 몸의 울림을 고스란히 안을 쑤시던 자지에 전했다.

“큭.”

항문에 물린 자지의 주인이 신음하며 느리던 허릿짓을 빨리했다. 손을 뻗어 앞으로 기울여진 올린의 납작한 배를 쓸고 골반을 잡았다. 찹쌀떡처럼 쫄깃쫄깃한 엉덩이에 제 굵은 자지가 박혔다 빠져나올 때, 안의 분홍색 살이 조금 딸려 나왔다가 다시 밀려 들어가는 절경을 감상하는 것은 같은 자리에 누웠어도 정아는 누리지 못하는 호사였다. 정규은 그 모습을 보면서 숨을 헐떡이면서도 올린의 상태를 살피느라 아주 얕게만 넣고 빼다가, 조금씩 용기를 내어 속도를 붙이기 시작했다. 정아의 이마에 이마를 맞붙여 누른 채 두 자지를 한데 모아 비비던 올린이, 억눌린 목소리를 했다.

“정규 형, 세게, 깊이!”

속삭임이었지만 강한 어조였다. 그 소리를 들은 정규가 마침내 감질나던 추삽질을 그만두고 하고 싶은 대로 굴기 시작했다. 정아와 얼굴과 자지를 함께 마주 대고 있던 올린의 몸이 정규의 팔에 살짝 들렸다가, 콱! 하고 내리꽂혔다.

“헉!”

순간 숨을 토한 올린이 이를 악물고 다음의 공격을 기다렸다. 올린은 키가 작지도 않고 이제 더 이상 무게가 썩 가볍지도 않은데, 이 남자들은 어디서 이런 괴력이 나서 올린을 종이 인형처럼 들어 올렸다가,

“헉!”

다시 치내릴 수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둘 다 모로 누운 자세니 올린을 움직이는 것보다 제 허릿짓을 하는 게 편할 텐데도 올린을 들었나 놨다 하는 것은 어쩐지 뒤늦게 나타나 먼저 구멍을 차지했던 형에 대한 항의 같기도 했다. 올린의 자지를 놓친 정아는 그걸 눈치채고 웃었지만, 올린은 아래가 벌어지는 아픈 느낌과, 함부로 휘둘리는 아뜩한 기분에 정신이 팔려 알지 못했다.

거세게 몇 번이나 내리꽂혀 아래가 벌어질 대로 벌어진 올린은 속살에까지 정규의 음모가 같이 들어와 안을 긁고 나가는 것 같은 환각을 느꼈다. 따갑고 아프고 찢어질까 봐 조금은 무서운 그 기분이 싫지 않았다. 그토록 오래 그리워하던 쾌감이 바로 코앞에 있었으므로 올린은 마주 본 사람의 목을 꼭 껴안은 채 눈을 감았다. 정규의 격렬한 봉사의 결과로 흐르는, 올린의

“응! 하응! 흐으, 앙!”

하는 숨을 토하는 듯한 격한 신음을 즐기는 것은 정아의 차지였다. 그는 제 귀에 비음 섞인 신음을 들려주는 올린의 자지가 제 자지를 탁탁 치듯이 때리는 것을 느끼며 올린보다 먼저 사정하고 말았다. 정아는 어쩐지 올린의 눈치를 보며,

“손으로, 계속해?”

했지만 올린은 아무것도 모른 채 고개만 끄덕였다. 자신의 정액에 젖은 올린의 좆을 움켜쥔 손이 조심스럽고도 빠른 왕복 운동을 시작하자, 올린은 앞과 뒤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즐거움에 술 취한 사람처럼 정신없는 눈으로 정아를 향해,

“형, 젖도, 깨물어, 힉! 줘….”

하고 요구했다. 정아는 얼른 머리를 숙여 올린의 납작한 가슴에 입을 맞추고, 예전보다 어쩐지 작아진 것 같은 분홍색 돌기를 부드럽게 빨아 주다가, 올린에게 머리채를 잡혀

“빨지 말고, 깨물어, 아프게….”

하는 명령을 내리는 몽롱한 눈을 마주 보고 나서야 이를 세웠다. 연하고 동그랗고 보드라운 돌기가 잇새에서 뭉근하게 으깨지는 가녀린 느낌이 좋았다. 멈추지 않았다. 아픈 것에서 쾌감을 찾는 데 익숙한 올린이

“흐으, 으응, 아으…읏.”

하고 바르작거리는 중에, 정규가 올린의 엉덩이 사이를 다시 한번 콱, 파고들자 올린도 사정하기 시작했다. 핏, 핏, 몇 번에 걸쳐 허연 액체를 쏟아 내는 자지가 손안에서 꿈틀대는 귀여운 느낌에 정아는 한눈을 찡그린 채 웃으며 손아귀의 힘을 풀어 주고 무심코 고개를 돌리다가, 세 남자가 얽힌 광경을 바라보는 조그맣고 뚱뚱하고 노란 것과 눈이 마주쳐서 순간 굳었다. 고양이는 화가 난 것처럼 사나운 얼굴이다.

“앩! 마옳-.”

혜향이가 정아에게 뭔가 말했다. 정아는 어쩐지 외국어에 귀가 뚫리듯 고양이의 말이 들려, 이 쬐끄만 녀석이 자신에게 올린의 젖을 깨문 것에 대해 꾸중하고 있음을 알아 버렸다. 정규라면 다정스러운 말투로 그것은 너의 오해이며 올린이 젖을 깨물어 달라 했노라 해명했겠지만, 정아는 그저 픽 웃으며

“왜, 약 올라? 너도 물고 싶냐?”

하고 아직도 사정의 쾌감에 몸부림치는 올린의 다른 쪽 젖꼭지마저 콱, 깨물어 보이는 것이다. 올린이,

“하앙!”

하고 참지 못한 신음과 함께 온몸을 펄떡 튕기자, 고양이는 이제 귀를 뒤로 젖힌 채 하악거리더니 달려들기 일보 직전으로 꼬리를 마구 흔들어 댔다. 뒤늦게 고양이의 존재를 눈치챈 정규가

“뭐야, 혜향이가 왜,”

하는 것과 동시에 아래층에서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정비의 목소리가 울렸다.

“올린아, 혜향이가- 어, 너 이 새끼 왜 울어, 설마 올린이한테 몹쓸 짓 했냐!”

지팡이를 짚은 채 마루 위로 올라서서는 가여운 막내의 멱살을 잡아 일으키는 쿠당탕 소리가 요란하다. 아 씨이발, 존나 아니라고, 진짜 왜들 다 나만 갖고 그래, 성대 수술을 했더라면 이렇게 말했을 정환은 저보다 덩치 큰 형에게 끌려 올라오느라 계단과 벽에 번갈아 부딪치는 탁 쿵 소리만 낼 뿐 당연히도 말이 없었다.

드르륵 탁, 미닫이문이 열렸다. 휑하니 빈방에 볼 것이라곤 한 벽을 모조리 차지하는 커다란 창밖에서 손짓하는 초록뿐이다.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 아래 엉망으로 흐트러진 이부자리는 겨우 한 사람이 누울 정도로 좁은데, 그 위에 뒤엉킨 사람은 셋이다. 정비는 잡을 데가 마땅치 않아 뒷덜미를 잡고 끌고 왔던 막냇동생을 팽개치려다, 순간 당혹하여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섰다.

파김치가 되어 쓰러진 올린의 젖꼭지는 몹시 심하게 깨물려 피가 흐른다. 눈가는 발갛게 달아오르고 뺨에는 눈물 자국이 번들거린다. 이제 막 오르가슴에 올라 초점 없는 눈으로 파특파특 떠는 몸은 허리가 뒤로 젖혀지고 발가락이 곱아들었다. 벌린 다리 사이의 구멍은 붉게 달아올라 빠끔히 벌어진 채 허연 정액을 잘금 잘금 흘린다. 아랫배에도, 올린의 어여쁘고 가련한 자지에도 정액이 흠뻑 뿌려졌다. 정비가 늘 안쓰럽게 생각하는 구멍 난 손이 허공을 쥐어 잡으려는 듯이 휘둘러지다가 힘없이 떨어졌다. 제 팔을 세워 받친 채 모로 누워, 정비를 향해 등을 보이고 올린을 바라보던 정아가 그 손을 가만히 잡아 아일렛을 빼서 던지고 제 자지를 쓱쓱 문댔다.

그 꼴을 본 정비의 당혹이 분노로 바뀌었다.

“둘 다 떨어져.”

낮은 목소리를 내는 정비의 발치에 혜향이가 다가와 울었다. 등줄기의 털이 잔뜩 서서 무언가 엄청난 것에 대해 이르는 듯하는데도 고양이를 안아 줄 생각을 못 하는 눈에는 불꽃 같은 게 튀었다. 그가 지금 당장 형제들을 드잡이하지 않는 까닭은 딱 하나, 자신도 저들과 다름없는 짓을 한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자격에 대한 고뇌가 있지 않았다면 당장 뛰어들었을 것이다.

진지한 정비의 목소리를 들으며 정규가 큭,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자신도 정환이가 올린을 강간하는 줄 알았다. 정비도 이게 합의에 따른 행위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는 모양인 걸 보면, 자신들 형제간의 신뢰에는 좀 문제가 있긴 있는 것 같다. 쾌감 속에서 헤매던 올린은 다시 개싸움 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아,

“아으, 아니, 아냐.”

하며 제대로 발음이 되지 않는 입을 열었다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정비를 올려다보았다. 가엾고 미안해 죽을 것 같은 얼굴을 한 차남의 등을 정아가 툭, 치며

“올린이, 먼저,”

하고 나른한 설명을 하다 말고 올린의 손으로 제 자지를 훑는 데 열중한다. 정비는 정규의 얼굴을 쳐다보고, 정규가 피식 웃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여 주자, 쌕쌕 뜨거운 숨을 내쉬는 올린을 내려다보았다. 조금 전 격한 오르가슴에 올랐다가 내린 얼굴은 풀어지고 넋이 나가 무방비하다. 저절로 흘러내린 눈물로 젖은 뺨이 웃느라고 봉긋하게 솟아오른 건 조금 지나서의 일이었다. 올린은 배 속 끝까지 꿈틀거리는 듯한 쾌감이 조금 가라앉자,

“형도 해.”

하고 정비도 초대했고, 그 말을 듣던 정환이가 뒤에서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형에게 순순히 끌려 올라왔을 때와 같이 기가 잔뜩 죽은 얼굴에는 서러움이 가득하다. 올린이 간신히 떴던 눈을 다시 감고 허탈한 듯 어이없는 듯 웃으며 두 손을 뻗었다.

“정환이도, 이리 와, 어서.”

형들이 몸을 일으켜 길을 내어 주었으므로, 정환은 꼴사납게 울면서도 무릎으로 기어 올 수 있었다. 올린도 지끈거리는 아래를 참으며 상체를 일으켜 커다란 몸을 안고, 어린애 어르듯 둥개둥개 해 주면서,

“너 말 못 하니까 자꾸 울어서 안 되겠다, 개강이고 뭐고 성대 재건술 예약부터 하자.”

하고는, 그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자

“뚝 그쳐야 섹스도 하지. 나랑 섹스 안 할 거야?”

하며 손가락을 뻗어 정환의 얌전한 자지를 툭, 건드렸다. 몇 번이나 섰다 누웠다 섰다 눕기를 반복하던 자지는, 이번에야말로 자신의 기대가 헛되지 않음을 알았는지, 이전에 발기하던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빠른 속도로 벌떡 일어섰다. 올린은 어쩔 수 없네, 하는 얼굴로 몸을 일으켜 정환의 다리 사이에 고개를 묻고, 그 자지를 입에 물었다.

정환의 자지를 빨 때 뒤를 쑤시던 건 정비의 것이 아니라 정아의 것이었다. 올린은 눈을 감고 있었으나 그렇게 무턱대고 들이대는 것은 정아임을 훤히 알았다. 앞뒤로 콱콱 박던 자지가 안에서 경망스럽게 돌리고 흔드는 잔재주를 부리는 느낌은 정말 좋았지만, 뭐랄까, 내 자지 맛을 보여 주마, 하는 결연함이 엿보여 별로 멋지진 않았다. 그는 정아의 아름다운 얼굴이 함부로 구겨졌을 장면을 상상하지 않으려 애쓰며 한 손을 뻗었다. 손안에 제대로 쥘 수도 없을 만큼 거대한 자지가 잡혀 왔다. 끌어당기며 눈을 뜨고 슬쩍 곁눈으로 바라본 정비의 얼굴은 늘 그렇듯 귀 끝의 색만 빨개지지 않았다면 흥분한 기색도 잘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올린이 자지를 물고 손으로 넘어뜨리는 바람에 뒤로 쓰러져 바닥에 뒤통수를 박았던 정환은 황송한 애무에 헐떡이고 있었다. 올린이 싫어하는 기색이라 바로 앉지 못하면서도, 엉거주춤하게 상체를 들고 자신의 자지를 빠는 올린을 내려다보느라 복근 운동하는 듯이 애매한 자세다. 딱딱한 복근이 울끈 불끈 움직이고, 성기로부터 복근 방향을 향해 뻗어 오른 핏줄이 더 굵고 푸르게 섰다.

올린은 탁탁한 살냄새를 기뻐하며 눈동자만 치켜들어 정환의 잘생긴 몸을 훑었다. 견고하고 늘씬한 근육으로 이루어진 토르소 위에 달아오른 얼굴, 짙은 눈썹과 곧은 콧잔등이 한꺼번에 일그러졌다가 다시 열리고, 다시 일그러지는 것을 보며 올린은 좆 빠는 재미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처음으로 느꼈다. 예전에는 감히 사용자의 얼굴을 바라볼 생각도 못 한 채 성심을 다해 빠는 것에만 집중하느라 반응을 살피지 못했다. 그런데 이렇게 쾌감을 감당하지 못하여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지배감과 비슷한 감정이 든다. 그가 혀를 내어 요도구를 폭폭 쑤실 때, 정환이 감히 올린의 머리를 밀어내지는 못한 채 단단한 복근을 펄떡이고 엉덩이를 움찔움찔 들썩이는 모습을 보느라 제 손으로 잡아 끌어당긴 정비의 자지를 잠시 방치했다.

원래 그는 정비의 자지를 제 젖꼭지에 문지를 생각이었다. 뜨겁고 뭉툭하고 딱딱한 것으로 젖꼭지를 비비고, 유두를 요도구에 맞추어 대고 싶었다. 그러나 잠시 주춤한 사이 정비는 스스로 무릎걸음을 해 올린의 가까이에 몸을 붙였다. 옆구리를 쿡쿡 찌르듯 문지르던 자지는, 올린이 팔꿈치를 땅에 대고 자세를 낮추자 슬금슬금 겨드랑이로 기어들었다. 올린은 예전에 정비가 자신을 가여워하여, 항문에 삽입하는 대신 허벅지 사이나 겨드랑이에 자지를 문질렀던 것을 기억해 냈다.

항문에 심한 매질을 당해서 볼기의 갈라진 부분으로부터 회음에 이르기까지가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피맺힌 멍으로 물들어 있을 때나, 작은 돌기가 빼곡히 박히거나 나사처럼 휘감는 날카로운 형태의 요철이 몹시 아픈 딜도로 오랫동안 괴롭힘당해 아래가 헐고 짓물렀을 때 정비는 가만히 볼기 사이를 벌려 보고 한숨을 쉰 다음 장내 삽입을 면해 줬었다. 물론 그런 꼴이 되도록 사용된 후에는 어떤 움직임도 고통이었으나 닿기만 해도 아픈 치부가 아니라 다른 부위를 써 주는 것이 올린에게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는지 정비는 꿈에도 모를 것이다.

물론, 허벅지나 가슴이나 겨드랑이를 문지르는 것도 괴로울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 피어오르는 쾌감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간지러움과도 닮은 참기 어려운 그 감각에 허리를 비틀다가 정비를 바라보면, 그도 안에 삽입한 것만큼이나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올린은 그때 고맙고도 다행스러웠던 그 얼굴을 다시 보고 싶어, 정비의 커다란 자지를 제 팔과 몸통 사이에 끼워 주었다. 그 바람에 정비의 허벅지가 올린의 배 아래로 들어왔다. 올린은 아예 그 단단한 다리에 상체를 걸치고 빨래처럼 찰푸닥 늘어져 버렸다.

정규는 올린의 발바닥에 좆을 비비기 전에, 커다란 엑스자 상처를 한참이나 핥아 주었다. 올린은 손가락만큼이나 발가락도 참 곧고 예쁜 편이긴 하나, 액받이 시절에는 발가락을 애무당한 적은 거의 없었다. 때문에 정규의 혀가 둘째 발가락과 셋째 발가락 사이에 새 길을 낼 듯이 쑤시자, 올린은 저도 모르게

“응앗, 으응!”

하고 무릎을 쭉 펴며 뻗대었다. 정아는 자신이 후비는 항문이, 정비는 자신이 비비는 겨드랑이가, 정환은 자신이 찌르는 목구멍이 기분 좋아 그런 줄 알고 각자 더운 숨을 뱉었다.

“하지 마?”

정규가 물었다. 올린은 다급하게 정환의 자지를 뱉고,

“계속, 해!”

했다. 정규가 넷째 발가락을 쪽쪽 빨기 시작함과 동시에 누웠던 정환이 주섬주섬 몸을 일으키고 제 좆을 빠느라 붉게 달아오른 입술을 손가락으로 닦았다. 키스하려 했지만 올린이 상체를 제대로 들어 주지 않자, 정환은 몸을 낮추어 엎드리고 그 입술에 제 입술을 마주 댔다. 올린은 네 명의 남자들에게 휘둘리느라 어느 한쪽에 집중하는 것이 어려워 입을 벌리고만 있었는데, 정환은 그런 것을 아랑곳 않고 열심히 입천장과 혓바닥과 뺨 안쪽의, 마치 항문 안과도 닮은 미끄럽고 보드라운 곳을 애무했다. 올린과 재회하고 그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이 키스였다.

정아는 이번에도 항문 안에 사정하지 못하고 비켜야 했다. 그러나 그는 올린의 다정한 손에 더듬더듬 잡힌 제 좆이, 올린의 젖과 배꼽을 쿡쿡 찌르는 것도 즐거워했다. 정비가 대신 항문에 침입하려고 다리 사이에 자리 잡았다. 구멍에 양손 엄지를 쑤셔 넣고 복숭아를 쪼개듯 볼기를 벌리는 손길에 벌써 긴장한 올린이 정환의 몸에 매달렸다. 정환은 올린이 자신의 귀를 깨문 채 힘겨운 삽입을 참는 것을 기꺼워했다. 골반뼈가 우드득 벌어지는 것 같은 충격과 함께 정비의 몸을 받아 낸 올린이 정환의 귀를 잘근잘근 깨물며,

“너, 말할 수 있게 되면 또 욕할 거야?”

하고 물었다. 정환이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러자 올린은,

“…해, 정환아, 욕을 해 줘야 내가 좋아….”

하며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들어 혼란에 빠진 정환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정환은 그 눈을 마주 보며 한참이나 망설였다. 하지만 올린의 웃음은 시험하거나 놀려 대기 위함이 아닌 것 같았다. 그는 한순간 얼굴에서 망설임과 수줍음과 혼란을 지운 후에, 소리 내지 못하는 입술을 열어

‘이 씨발년아.’

하고 중얼거렸다. 눈빛은 마치 사랑합니다, 하고 고백하듯 정중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 떨리는 입술의 움직임에서 한껏 못된 환청을 들은 올린은, 한순간에 밀어닥치는 흥분감을 못 견디고 눈꺼풀을 꾸욱 내리감으며 크흑, 하는 소리와 함께 사정했다. 그리고 사정하는 내내 정환의 목덜미와 어깨와 등을 할퀴어 상처를 내며 결심했다. 정환이 이 자식을 반드시, 다시 말하게 해 주리라고.

건장한 남자 넷을 번갈아 가며 상대하는 시간은 험난했다. 그러나 올린은 기운이 다해 혓바닥을 빼고 헐떡이면서도 이제 그만하라던가 더는 못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했다 해도 그것은 거짓말이었을 것이다. 그는 나중에는 기운이 다해 손끝 하나 까딱하지 못한 채 박고 털고 비비고 쑤시는 남자들의 움직임에 따라 억, 헉, 공기 새는 소리만 내며 종이 인형처럼 팔랑거렸다. 그렇게 다뤄지면서도 털끝만큼도 멈추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러기엔 이 자발적인 고달픔을 통해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반복하여 누릴 기쁨이 너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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