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재
정아가 올린을 좀 더 잘 알아 보겠다며 시답잖은 문답을 종용한 적이 있었다. 그때 올린은 사계절 중에서 어느 계절이 제일 좋아, 하는 물음에는 별로 고민도 않고
“봄 가을이 살기엔 좋죠….”
하고 심드렁한 대답을 했었다. 어쩐지 김샌 표정의 정아가, 그럼 더위와 추위 중에 어느 것이 더 싫으냐고 물었더니,
“둘 다요….”
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극한의 추위와 극한의 더위는 어딘지 통하는 데가 있다. 올린은 한겨울 얼음물에 담가진 적도 있고 한여름 땡볕에 오래도록 서 있는 벌을 받은 적도 있었다. 그 와중에 피부가 타면 보기 싫다고 우비를 씌웠던 게 정환이었던가, 정규였던가, 어쩌면 정비인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죽을 것 같은 추위와 죽을 것 같은 더위를 둘 다 겪어 본 입장에서는, 둘 중 어느 쪽이 더 견디기 힘들고 다른 쪽이 더 쉬운지 우열을 가릴 수가 없다.
그러니 올린에게 이 정도의 더위는 불편하긴 해도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예전처럼 자지에 아픈 매듭을 지은 위에 거추장스러운 비단옷을 입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시원한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있을 수 있으니 옅은 바람 드는 거실에 앉아 얼음을 오독오독 씹어 먹고 있으면 극락이 따로 없다. 별채를 찾아오는 형제들이야 에어컨에 익숙하니 땀을 뻘뻘 흘리며 괴로워하지마는 그건 올린의 알 바가 아니었다. 더운 게 싫으면 쿨한 고양이 혜향이처럼 본채에 처박혀 있으면 될 일이지 아득바득 더운 데까지 원정을 와서는 덥네 찌네 우리 예쁜 올린이 얼굴이 더위 타느라 비쩍 말랐네 따위의 성가신 잔소리를 할 일이 아니다.
그러니 올린은 성대를 다쳐 말 따위는 한마디도 못 하는 정환이가 가만히 와서 곁에 앉아 있는 것이 나았다. 물론 정환은 정규처럼 진기한 간식을 갖다 바치는 것도 아니고 정아처럼 살갑게 구는 것도 아니고 정비처럼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그것은 네 형제 중 누군가가 올린을 괴롭히면 쏠 용도의, 별채의 벽장에 보관할 수 있는 공기총도 포함이었다- 준비해 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별채에 찾아오는 정성이 갸륵한 데다 결정적으로 말이 없으니 참, 좋았다. 올린이,
“정환아.”
하고 부르면 멀찍이 떨어져 있다가도 고개를 이쪽으로 향하고,
“맥주 좀.”
하면 벌떡 일어나 맥주에 얼음 잔에 간소한 안주까지 준비해 오니 편리하기도 했다. 시원한 맥주를 꿀꺽꿀꺽 들이켜고 하아, 하고 한숨을 쉰 올린이,
“정환아,”
하면 다시 고개를 이쪽으로 향한 다음,
“…빨아 줘.”
하면 그 커다란 덩치에 장식처럼 붙은, 도무지 어떻게 대학에 붙었을지 모를 예쁘기만 한 머리를 다리 사이로 들이미는 모습도 기분 좋았다.
올린은 빨아 달라고 말하는 동시에 입었던 반바지를 꾸물꾸물 벗어 던졌다. 구겨진 맥주 캔을 아무렇게나 집어 던진 위에 반바지가 툭 떨어진 것을, 좌식 테이블 건너편에 앉아 있던 정환이 테이블 가를 돌아 네발로 기어 오며 집어 곱게 갰다. 그동안 올린은 기대어 앉았던 커다란 쿠션의 숨죽은 부분을 다시 둥글게 모아 꽉 끌어안고, 티셔츠 아래로 아무것도 입지 않은 하반신을 부끄러움 없이 활짝 벌렸다.
반쯤 엎드려 누운 채 벌어진 긴 다리는 하얗고 늘씬하다. 예전에는 멍 안 든 곳을 찾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멍든 구석 하나 없다. 동그란 엉덩이는 쥐면 탄탄하고 말랑하겠지만 정환은 감히 손대지 못한다. 올린이 허락한 적 없기 때문이다. 그는 손끝에 느껴질 그 사랑스러운 감각을 상상하며, 올린의 다리 사이에 무릎 꿇기 전에 두 팔을 뒤로 모아 맞잡았다. 혀를 내어 핥기 전에 그는 저도 모르게, 달큰한 땀 냄새와 섞인 비누 향기를 들이마시느라 올린의 볼기 사이에 코를 묻었다. 그리고 맥주에 시원하게 식은 혀를 내밀어 발갛고 봉긋하게 솟은 그 구멍을 핥기 시작했다.
그는 올린이 돌아온 바로 그날 밤, 메시지로 구구절절한 사과문 겸 반성문을 보낸 바 있었는데, 올린은 답신으로
‘시끄럽고, 지금 와.’
하고 정환을 불러서는, 5분 후 별채의 현관에 숨을 헐떡이며 나타난 정환을 마루 위에서 바라보며,
“내 자지 빨아. 천 번 사정하고 나면 용서해 줄게.”
하고 들였었다.
그러니 정규가 생각한 것과 달리 정환은 형제 중 가장 먼저 올린의 별채에 발을 들인 남자다. 게다가 정환의 핸드폰에는 오로지 용서받을 그날만을 고대하여 기록하는 다이어리가 있는데, 그 기록에 따르면 이제 정환은 팔백 번 하고도 아흔두 번만 올린에게 봉사하면 용서받을 수 있게 된다.
정규는 까맣게 모를 일이지만, 정규가 망고 빙수를 사러 갈 때만 해도 팔백아흔두 번 남았었다. 그리고 그가 빙수를 들고 돌아오는 사이에 팔백아흔한 번으로 남은 횟수가 줄었다. 올린은 온갖 예민한 신경이 바짝 솟은 데를 정성을 다해 애무하는 정환의 머리카락을 쥔 채,
“아, 흐….”
하고 그 입에 추삽하듯 허리를 흔들며 사정했다. 새긴 지 몇 년이나 지났는데도 아직 선명한 자두꽃이, 그 사정감에 발끈거리는 허벅지 안쪽 근육을 따라 흔들리는 모습을 보며 정환은 예전부터 좋아했던 올린의 정액을 삼키고, 입가에 허연 액체가 묻은 얼굴로 슬며시 웃었다.
“웃기는….”
올린은 예전에 정환이 자신에게 자주 그랬던 것처럼, 정환의 입가에 묻은 것을 손가락으로 훑어 정환의 머리카락에 닦았다. 그건 본래 수치를 주기 위한 행동이었으나 정환은 이런 식으로 사소한 보복을 당할 때마다 어쩐지 기뻐하는 기색이다. 올린은 바로 어제 그랬던 것처럼, 배싯배싯 속없이 웃는 얼굴을 한 번 후려쳐 줄까 하다가 말았다. 정환은 올린에게 맞는 것 또한 너무 좋아했다. 그러니까 뭐랄까, 한 번 매질을 당할 때마다 과거 자신의 죄가 조금씩 덜어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올린은 혼자서 마냥 행복한, 멍청한 개 같은 정환을 내버려 두고 두 번째의 맥주 캔을 가지러 비틀비틀 걸어갔었다. 정규의 생각과 달리 담벼락을 마주하고 있는 주방도 쾌적하고 기분 좋은 공간이다. 주방 뒤쪽의 좁은 바깥은 참새들이 자주 놀러 오는 곳이기 때문이다.
‘더워서 그런가, 참새도 없네.’
올린은 거실에 있던 정환이 느린 몸짓으로 걸어 욕실로 향하는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었다. 정환은 아마 손과 얼굴을 씻으러 갔을 것이다. 어쩌면 머리를 감고 나올지도 모른다. 맥주는 차갑고 매미 울음은 귀가 따가울 지경이다. 여름을 덮는 저 소리는 구애의 노래라던데, 사랑의 음율치고는 너무 처절하고 볼륨도 지나치다.
어쩌면 연인에게 몹쓸 짓을 저지르고선 용서를 구하려 울부짖는, 정환이 같은 새끼도 저 매미 중에 한 놈쯤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고 올린은 생각한다. 정환의 목소리가 어땠더라, 못된 욕설을 해 댔던 것 치고는 참 듣기 좋던 그 목소리로 미안하다고 해 준다면 천 번 중에 백 번은 한 번에 감해 줄 수도 있을 것도 같다. 욕할 때마저 우는 것 같던, 지배하던 순간조차 도리어 가엾던 그 목소리로
“올린아,”
부르는 것을 듣지 못하게 된 건 참 아쉬운 노릇이라는 생각에 이르러서는 가라앉았던 흥분이 다시 도지고 말았다.
올린은 욕실에 있을 정환을 부르지 않고 냉장고 앞의 찬 바닥에 주저앉았다. 정성껏 빨리긴 했으나 사정할 때까지 아무것도 들이지 못한 항문이 아직 뜨거웠다. 올린은 맥주가 들었던 입안에 제 중지와 약지를 넣고 한 번 빤 다음에, 다리 사이를 타고 흐르도록 장액이 흘러넘치는 항문에 밀어 넣었다. 벌어진 구멍 사이로 매끄럽게 들어선 손가락의 차가운 감각과 아직도 열감이 생생한 속살에서 느껴지는 느낌이 서로 너무 달랐다. 올린은 어느 것이 손가락에서 느껴지는 것이고 어느 것이 장내에서 느껴지는 것인지도 구분하지 못한 채 바쁘게 움직여 안을 쑤셨다. 더 깊은 곳, 더 가득히 채워지길 바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까진 손가락이 제대로 닿지도 못하는 데다 닿는다 해도 압박감이 덜해 한참 부족할 것 같았다.
“으, 정환아….”
욕실에 있을 정환을 불러 그 밉지만 쓸모있는 몸을 좀 활용해 보려고 목소리를 내었는데, 어느새 찬물을 뒤집어쓰고 걸어 나온 정환의 눈에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올린의 얼굴이 조금 다른 의미로 보였다. 그는 젖은 머리카락을 털던 타월을 툭, 떨어뜨렸다.
“더, 해줘….”
냉장고에 기댄 등이 주르르 미끄러져 어느새 바닥에 반쯤 드러누운 올린이 다리를 활짝 벌렸다. 열 오른 눈이 정환의 벗은 상체를 훑을 때, 아래처럼 봉긋하게 부푼 입술은 살짝 벌어져 안에 반들거리는 혓바닥이 드러났다. 얇은 반바지 아래 자지가 부풀어 있었다. 조금 전까지 오로지 입만 써서 봉사할 때도 이렇게 섰던 것을, 욕실에서 찬물을 뒤집어쓰고 간신히 잠재워 나왔는데 소용없었다. 올린은 너무 예뻤다.
홀린 듯이 다리 사이로 기어들었다가 정규에게 뒷목이 잡혀 끌려나온 정환은, 올린을 대할 때와는 딴판인 사나운 눈초리로 형을 올려다보았다. 그 입술이 번들거리는 건 올린의 다리 사이에서 흘러나온 꿀 같은 것에 젖은 탓일 테다. 정규는 그 눈을 보고, 뒤로 고개를 젖혔던 올린이, 넘치는 열락을 견디지 못해 인상을 잔뜩 쓴 채 허벅지를 발발 떠는 것을 보면서도 지금 이 광경의 진의를 믿지 못했다. 물론 정규 자신도 무척 큰 잘못을 저지르긴 했으나 정환의 무지막지한 폭력에서 매번 올린을 구출했던 것은 자신이다. 그러한 자신조차 올린과 사랑을 나누기는커녕 손 한번 제대로 못 잡는데, 잔인한 짓을 일삼던 정환이 올린의 다리 사이에 혓바닥을 들이밀 수 있는 허락을 받았을 리 없다. 이건 강간이다.
“이 새끼가 아직도…!”
정환은 정규의 주먹에 한 대 얻어맞고서는, 으르렁거리는 동물 같은 눈을 했다. 뻑 소리가 나도록 맞아 돌아갔던 얼굴이 돌아오더니, 정규에게 바짝 다가들며 열린 미닫이문 사이의 나무 기둥에 등이 닿도록 밀어붙였다. 정규는 정환을, 정환은 정규를 뻔뻔하기 그지없다 생각하며 노려보았다. 샤워를 마치고 제대로 물기를 닦기도 전에 새 땀을 흘린 번들거리는 몸과, 보송보송한 셔츠를 입었으나 그 아래 더운 심장이 뛰는 몸이 맞닿았다.
올린은 서두르지도 않고 몸을 일으켰다. 그가 큼지막한 볼에 물을 받기 시작하는 것을 보지 못한 것은 두 수컷이 서로에게만 너무 집중한 탓이다. 원래 짐승의 수컷들이란 그런 법이다. 지금은 장 포수의 동료에게 맡긴 사냥개들은 서로 사이가 좋은 편이었지만, 가끔 콧잔등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우는 일이 있었다. 흥분한 상태에서 우열을 가려야 하거나 무언가 좋은 것을 독점하고 싶은 순간에 개들은 서로를 물어뜯는다. 그러면 장 포수는 이시끼들, 이시끼들, 하면서 고리 모양으로 목줄을 걸어 뜯어놓기도 하고 금속성의 물건을 부딪쳐 주의를 분산시키기도 하고, 뒷다리를 직접 잡아 끌어 떼어 놓기도 했다. 그러나 그중 제일 효과가 좋은 것은,
촤아악-
호스 따위로 물을 뿌리는 것이었다.
서로를 잡아먹을 듯하던 두 남자는 물을 뒤집어쓴 채 돌아보았다. 쌀을 씻는 데 쓰는 커다란 볼에다 물을 받아 뿌린 올린은 어쩐지 피곤하다는 얼굴로 눈을 문지르고, 손에 든 볼을 두 남자의 발치에 던졌다. 퉁, 하는 소리와 동시에 올린은 명령했다.
“그만해.”
머쓱해진 남자들이 어정쩡하게 선 채 낯선 올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고운 이마 아래 눈썹이 살짝 일그러진 것은 한 번도 보지 못한 올린의 역정이었다. 삽시간에 그의 눈치를 보는 신세가 된 두 남자는, 서로 멱살과 머리채를 잡았던 손을 어색하게 놓고 떨어졌다. 그러는 동안 올린은 겨우 고간을 가리던 티셔츠를 아무렇게나 끌어올려 제 얼굴에 튄 물방울을 쓱 닦았는데, 그 바람에 아직도 반쯤 발기한 채의 자지가 드러나는 것을 두 남자가 함께 바라보았다. 이제는 제모도 할 필요 없는 몸, 어린애 머리카락같이 가늘고 색 엷은 체모 아래 자지는 더욱 곧고 하얘 보였다. 그 밑의, 다리 사이에 흐르는 장액은 색 없이 맑고 묽었지만 어쩐지 달아 보였고. 올린이 옷자락을 내려놓자 천 아래로 그 광경은 스르르 사라졌다. 싱크대에 기대선 채 잠시 눈을 꾹 감았다가 뜨며 건조한 목소리를 하는 역정난 얼굴로, 남자들의 얼빠진 시선이 옮아 갔다.
“형은 갑자기 와서 왜 지랄이에요.”
갑자기라니, 토요일은 원래 정규와 올린이 함께 간식 먹는 날이다. 정규는 억울하여 퍼뜩 눈빛을 달리했다가, 올린의 푸르도록 선명한 눈과 마주치자 얼른 시선을 내렸다.
“정환이 너는 형한테 왜 달려들어. 짐승이야?”
정환도 억울했다. 그러나 그는 아랫입술이 쑥 튀어나와서도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눈은 바닥을 향했다가, 눈치 보듯이 한 번 올린의 얼굴을 훑었다가,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는 개싸움 싫어, 내 앞에선 싸우지 마.”
“…….”
“알아들었어?”
“응.”
정규는 소리 내 답하고, 정환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작게 한숨을 쉰 올린이 휘청거리는 듯한 걸음으로 주방을 떠나며,
“바닥 청소하고 셋이 하자… 빨리 와, 나 급하니까….”
하고 말하는 소리는 마치 졸린 애가 말하는 것처럼 까무룩했다. 정규와 정환은 바로 이 순간이 그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돌아온 올린과의 첫 섹스의 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조금 전까지 서로를 물어 죽일 듯 바라보던 두 남자가 키친타월을 뜯어 바닥을 청소하는 손길이 재빨랐다. 그들은 바닥의 물기를 닦고 뒤집어진 빙수 상자를 허겁지겁 바로 들어 일단 냉장고에 쑤셔 넣느라 이마를 부딪쳐도 서로에게 으르렁대지 않았다. 올린이 급하댔다. 와, 씨발 지금, 싸울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