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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나러 가는 길 (52/65)

# 만나러 가는 길

정아는 정환과의 통화를 마치며 설레는 마음을 억누르지 못했다. 정환은 자신이 헛것을 보았다고 믿는 듯했으나 정아의 생각은 달랐다. 즐거웠던 술래잡기를 끝내려 돌아온 서울에서 다시 올린을 만나게 된다니 유쾌하기 그지없었다. 짐도 없이 가뿐한 차림으로 택시를 잡아타자 기사는,

“아이고 손님, 안 추우십니까.”

하고 물었다. 정아는

“방금 더운 나라에서 돌아왔거든요.”

하고 코트 없이 셔츠 바람인 차림새를 설명했다. 그런 것치곤 메는 가방 하나 없는 게 보통의 승객은 아니었으나, 정아는 이제 택시 기사가 자신을 눈여겨보든 말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으므로 그저 행선지를 이를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올린의 행적을 보고받은 건 한 달여 전이었다. 용케도 남의 이름을 얻어서는 운전면허에, 검정고시에, 수능 시험까지 도장 깨듯 하나하나 치르는 행적이 재미있었는데, 정환의 학교에 지원했다는 말은 몇 번이나 진위를 확인해 볼 정도로 놀라웠다. 본인도 쫓기는 처지라 솜씨 좋은 업체에 의뢰만 해 두었을 뿐, 2년 내내 실물을 본 적이 없으니 더 그랬다.

2년 전 폐공장이 폭발한 그날, 정환은 얼이 빠져서 돌아왔었다. 정아는 올린과 도피하려다 거하게 차인 정규보다는, 이제 재활 치료를 시작한 정비가 시간이 지나도 올린을 찾지 않는 것을 더욱 수상쩍게 여겼다. 정비가 주말마다 사라지는 것을 뒤쫓던 업체에서는 올린이 제주도 어느 외딴 시골에서 사지 멀쩡히 살아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보고했으나 그때 이미 정아는 본격적으로 그림자와의 숨바꼭질을 시작한 터였다.

정아는 호기심으로 만들어진 사람이다. 메일로만 대화를 나누던 그림자는 올린 이후에 처음으로 정아의 호기심을 자극한 사람이었다. 올린을 데리고 노는 것도 즐거웠으나 그림자와의 놀이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림자가 정아를 납치하려는 네 번째인가 다섯 번째의 시도를 했을 때, 정아는 제 목숨을 위협하는 추격으로부터 달아나던 중에 올린이 정비의 품을 떠났다는 보고를 전해 받았다. 삶의 기술이라곤 방중술밖에 모를 애가 한반도를 종단하여 북쪽 어느 동네에 자리를 잡았다는 이야기는 무척이나 흥미로웠으나, 그는 그토록 귀여워하는 올린을 보러 갈 수 없었다. 영리한 스토커가 자신을 뒤쫓는데 올린을 만나러 갔다가는 술래잡기가 더욱 불리하게 돌아갈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집안의 힘을 빌린다면 그림자를 따돌리는 일이 퍽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영리하고 집요하다고는 하나 그림자는 그저 미친 개인일 뿐, 약간의 공권력만 동원하더라도 정아는 안전해져서 올린을 만나러 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림자와의 술래잡기가 너무나 즐거운 나머지 형제들이 아무리 혀를 차도 위험한 놀이를 그칠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고 올린에게 관심을 거둔 것도 아니었다. 서울에서 숨을 곳이 없자 상해로, 선전으로, 마카오로 메뚜기처럼 뜀을 뛰며 아슬아슬하게 지내면서도, 올린에게 붙여 둔 탐정을 통해 올린의 근황을 보고받는 것을 게을리하지도 않았다.

하필 사람 없는 산중으로 숨은 탓에, 정아는 올린의 사진조차 자주 얻지 못했다. 한 주에 한 번꼴로 읍내에 나와 심부름을 하거나 자질구레한 생활용품을 사들이는 사진이야 전송받을 수 있었지만, 딱 그 정도였다. 그는 가끔 그림자의 추격을 따돌리고 낯선 호텔 방에 앉아 핸드폰을 들여다볼 때면 올린이 같이 사는 늙은 남자와 성교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늙은 남자는 시골에서 작은 사업을 하며 수렵 철에는 멧돼지 따위를 쫓기도 하는 사람이었는데, 올린은 산중 외딴집에서 그 남자와 단둘이 살았다.

강단 있으나 선이 가는 올린이, 험상스러운 수컷의 냄새를 풍기는 늙은 남자에게 뒤가 뚫리는 상상은 정아에게 설명할 수 없이 강렬한 흥분감을 선사했다. 불특정한 여럿의 시야에 물건으로 놓인 채 약에 취해 있던 모습은 불쾌하기 이를 데 없었으나, 올린도 좋아하는 것으로 보이는 늙은 남자와의 성교에 대한 상상은 그를 쾌락으로 이끌었다. 그는 그림자에게 자신이 결국 잡혀 살해당하는 순간을 상상할 때보다, 올린이 그가 사랑하는 남자에게 학대받는 순간을 상상하며 더 많이 수음했다.

정아가 상상한, 올린이 늙은 남자의 못 박인 손에 쥐어 잡혀 내동댕이쳐지는 장면 속에서, 그 애는 섧게 울고 있었다. 그는 저택에서 쓰던 날렵한 도구들과 전혀 다른, 다듬어지지 않은 몽둥이나 부지깽이 따위로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때까지 매질을 당한다. 처음에는 식탁 모서리나 의자 등받이 같은 곳을 그 구멍 나고 가련한 손으로 붙잡은 채 떨어지는 매를 견디지만, 맞은 데의 살이 딱딱해지도록 짙은 멍이 겹쳐지고 결국 피가 흐르기 시작할 때 올린은 맨발인 채 눈 덮인 땅을 기어 달아난다.

무정한 손에 붙들리기 전에, 고라니나 멧돼지 따위를 잡기 위해 놓은 덫에 발목이 물리는 경우도 있었다. 올린이라면 잔혹한 이빨을 드러낸 덫에 발목이 반쯤 잘리는 순간, 고통을 못 이겨 기절할지언정 깨어나면 덫을 벌려 보기 위해 애쓸 것이다. 꽁꽁 얼어 빨개진 손으로 무지막지한 덫을 벌려 보려고 노력하는 올린의 얼굴에는 삶에 대한 애끓는 집착과 처한 상황에 대한 공포가 함께 떠오를 것이다. 오래도록 노심초사한 끝에 뼈가 드러나도록 삭은 발목인 채 쓰러지는 올린은 자신이 버렸던 네 명의 도련님들을 생각한다.

또 다른 상상 속에서, 올린은 엽총의 총구를 항문으로 물고 있었다. 예전에 자신이 강제했던 것처럼 가장 수치스럽고 가장 아픈 자세로 바짝 엎드려, 아주 조금이라도 잘못 움직이면 안에 든 총알이 제 몸을 꿰뚫을 것 같은 공포 속에서 올린은 장액을 질질 흘린다. 다리 사이로 흐르는 장액을 총구로 한 번 훑어, 원래 있어야 할 구멍 속으로 도로 쑤셔 넣은 늙은 남자는 얼음처럼 굳은 올린의 항문에서 총구를 거둬 주고 자지를 넣어 주기 전에 그 젖은 입구를 매질한다. 철썩, 처얼썩, 커다란 손바닥에 맞은 입구가 빨갛게 될 때까지도 올린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꼼짝을 하지 않는다. 죽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늙은 남자와 담배를 나눠 피우며 웃는 사진을 보면서는, 올린이 남자의 자지를 빨아 주는 상상을 했다. 발가락 끝만 바닥에 댄 위태로운 자세로 쪼그리고 앉은 올린은, 장액을 왈칵왈칵 흘리고 허리를 배배 꼬면서,

“도련님,”

아니지,

“아저씨, 빨게 해 주세요.”

하고 애원한다. 남자는 올린에게,

“구멍 서른 대 맞는 동안 싸지 않고 버티면 빨게 해 주지.”

하고는, 쪼그리고 앉은 다리 사이를 손바닥으로 힘껏 올려친다.

“아흑, 아응, 흐윽,”

한 대 맞을 때마다 머리까지 솟구치는 흥분감에 올린은 무릎을 들썩이고 구멍을 벌렁거리다가, 스무 대를 넘길 즈음에

“못 참겠어요, 도련,”

이 아니라,

“못 참겠어요, 아저씨!”

하고 울음을 터뜨린다. 하얗고 곧은 좆에서 새는 것은 쿠퍼액일 테고, 바닥에 뚜욱 뚝 흐르는 것은 남자를 받고 싶어 안달 난 구멍이 내보낸 장액일 터다. 늙은 남자는 그 모습을 어여삐 여겨 자지를 목구멍에 물려 줄 것이다. 올린은 드디어 맞이한 반가운 자지를 그 좁고 뜨거운 목구멍 깊숙이 삼킨 채, 숨이 막히는 괴로움과 자지를 문 만족감으로 바닥을 박박 긁을 것이다. 쪼그리고 앉을 힘조차 사라져 털썩, 무릎을 꿇느라 섬세한 뼈가 도드라졌던 무릎뼈에는 언제나 피멍투성일 것이다.

정아는 자신이 올린이 사랑해 마지않는 아저씨가 되어, 그의 넘쳐흐르는 사랑과 존경을 받으면서 그를 학대하는 상상을 기꺼워했다. 꿈인 듯 현실인 듯 이어지는 상상 속에서 정아는 예전에 올린이 매 맞은 얼굴로도,

“도련님!”

하고 반가운 얼굴로 저를 반겼던 것을 기억했다. 자신을 비롯하여 도련님이라고 불리는 네 명의 주인들은 올린을 만나기만 하면 괴롭게 범하고 벌을 주고 매를 치기 일쑤였는데, 왜 그렇게 기뻐하며 따르는지 의아했었다. 과거 정아는, 올린이 수십 번의 구타 끝의 단 한 번의 쓰다듬에도 만족할 만큼 몹시도 외로웠다고 생각했다. 올린을 상대로 한 그의 잔혹한 실험 중에는, 주어지는 손톱만큼의 호의에도 배불러 할 만큼 더욱 깊이 그를 고립시키는 과정도 포함되었었다.

그러나 그때 자신의 가설이 틀렸다고, 이제 와서 정아는 생각한다. 본래부터 외로움을 비롯한 어떠한 인간적인 감정에 대해서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오로지 재미를 위해 스스로 혼자가 되어 놀이 상대로부터 뒤쫓기는 와중에 어렴풋이 짐작할 수는 있었다.

결핍이 오래고 깊다 해서, 모두가 작은 호의에 그토록 감사해 하는 것은 아니다. 오래 굶은 사람이 한 조각의 빵을 기뻐할 수 있으나 만족할 수는 없듯이, 그때 올린도 도령들이 베풀어 주는 턱없이 부족한 애정에 만족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 빵 한 조각만도 못한 사랑에도 제 안에 든 것을 몽땅 꺼내어 돌려줄 수 있는, 올린은 마음이 꽉 찬 사람이었다. 그 애를 괴롭히는 못된 상상은 지금도 정아의 머리를 뜨겁게 달구지만, 이제 자신은 새로운 놀이 상대를 찾았으니 그 충만한 애는 저가 그토록 원하던 대로, 사람답게 살게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스스로에게조차 낯선 생각 속에, 정아는 낯선 도시 낯선 호텔 방을 정액의 냄새로 가득 채우곤 했다.

한 번은 올린이 늙은 남자에게 매를 맞아 팔이 부러진 채 홀짝홀짝 울어 가며 쌀을 씻는 궁상맞은 상상을 하며 신나게 사정한 후에, 눈을 떴더니 방 안에 그림자가 서 있었던 적도 있었다. 그게 사신이든 살인마든 지금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반가운 나머지, 정아는

“오늘, 나, 여기서 죽이려고?”

하고 물었었다. 그림자는 예의 그 정아의 말투를 꼭 같이 흉내 낸 듯한 목소리로,

“아니야, 내가 몇 번이나 말했잖아, 난 널 죽이려는 게 아니라 너랑 한 몸이 되고 싶다고.”

하더니 잠시간의 침묵 후에,

“올린이 누구야?”

하고 물었었다. 정아는 입가에 남은 옅은 미소를 흐트러뜨리지 않으려 했으나 그림자는 정아와 몹시 닮아서 그런 표정마저 읽어 내는 것 같았다. 그날 그림자가 드물게도 조용히 물러간 후, 정아는 올린에게 붙였던 모든 미행을 중단했다. 자신이 올린의 행적을 알면, 그림자도 알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자신은 애초에 사는 것과 죽는 것에 대해 커다란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올린은 참 이해할 수 없게도 무진 애를 쓰면서 살고자 하는 사람이다. 생에 대한 가치가 자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높은 애를, 자신과 더불어 죽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올린의 소식을 스스로 끊은 정아에게, 정환의 제보는 반갑기 그지없었다. 막냇동생은 자신이 잘못 본 것으로 여기는 것 같았지만 정아는 굳이 정환의 오해를 바로잡지 않았다. 그림자는 지금 정아가 말레이시아에 있다고 여기고 있을 터였다. 아직 그림자가 서울에 들어오지 않았을 때 올린을 잠시나마 만나고 싶었다. 어차피 자신의 죽음으로 끝이 정해져 있는 이 놀이가 끝나기 전에 올린 그 애를 한 번 다시 볼 수 있다면, 딱히 더한 불행을 선물하지 않더라도 즐거울 것 같았다.

그 애의 행적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미행을 붙일 필요도 없었다. 그는 원하는 정보를 쉽게 알아봐 주는 업체에 오늘 수의대 면접 인원 중 장현수라는 사람이 있는지 재확인한 후, 그 애가 끊어 둔 왕복 버스표의 시간마저 확인했다. 산골 동네로 들어가기 위한 교통편이 대단히 제한적이었으므로 굳이 업체를 통할 필요도 없었으나, 그림자와 자신의 술래잡기의 템포가 점점 빨라지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었으므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고속도로의 다른 차들을 제치고 달리는 택시 안에서, 정아는 단 한 장 보관해 둔 올린의 사진을 열어 보았다. 이전에 받았던 여러 장의 사진은 그림자로부터 그 애를 지키려고 지웠으나 이 사진만큼은 도저히 지울 수가 없었다.

올린은 철물점에서 뭔가를 잔뜩 산 봉투를 든 채 이쪽을 향해 활짝 웃으며 걸어오고 있다. 뒤집어썼던 후드가 바람에 날려 벗겨지는 순간이지만, 올린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알아챘어도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그 얼굴에는 상처 하나 없고 볼에는 살이 올라 활짝 피었다. 비록 정아는 올린이 울부짖는 상상을 즐기긴 하였으나, 이 사진 하나로부터도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올린은 자신들의 품을 떠난 후 누구로부터도 학대받지 않았다. 정아가 스스로를 대입하여 상상하는 아저씨는 상상과는 전혀 다른 인물일 것이다. 그토록 바라던, 살 만한 삶을 사는 올린의 모습은, 굳이 그림자와의 일이 아니더라도 그대로 두고 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찬란하도록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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