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은인 (51/65)

# 은인

아무리 허가받은 포수라 하더라도 총기는 읍내 서에 맡겨 두고 사냥철에만, 그것도 그날그날 서명을 하고 받아 오는 게 원칙이다. 게다가 강원도 산골짝, 성능 좋은 쌍안경만 있으면 북녘땅도 넘겨다보이는 이곳에서야 총기 관리가 더욱 철저해야 할 터였다. 그러나 규모가 작아도 집성촌인 동네에서, 왕년에 이장직도 몇 번이나 연임했던 화려한 경력의 홀아비 장 포수는 그러한 딱딱스러운 원칙에서 예외였다. 서장은 때때로 혜안리에 들어올 일이 있으면 꼭 장 포수 집에 들러 무슨 새의 혀니 어느 짐승의 고환이니 하는, 다른 데서는 구하기도 어려운 특수 부위를 얻어 가면서,

“총알 개수 관리만 잘하래, 으응? 창고방 열쇠랑.”

하고 잔소리하는 것으로 장 포수 집의 창고 방에 장총을 주르륵 세워 두는 것을 묵인했다. 그렇다고 해서 총을 허투루 쓸 일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11월부터 2월까지의 수렵 철에 아침마다 서까지 가서 서류에 서명하고 총을 받아 오고 하는 과정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니 이런 편의를 봐주는 것은 커다란 특혜라고 할 수 있었다. 장 포수가 서장을 극진히 대접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니, 장 포수 댁에서 허드렛일하며 붙어사는 올린도 서장이 오시면 아주 깍듯이 모신다.

헌데 오늘은 마침 간밤에 잡은 멧돼지를 손질하느라 올린은 제집처럼 대문을 밀고 들어온 서장에게 물 한 잔 내지 못했다. 장 포수는 본업인 중장비 대여 사무소에서 문제가 생겼다는 김 양의 전화를 받고 아침 일찍 읍내로 나갔으니 점심은 훌쩍 넘기고 돌아올 것이다. 올린이 미안스러워하는 표정을 했지만 서장은 신경 쓰지 않았다. 이런 시골 마을에선 내 집이 네 집이고 네 집이 내 집이다. 그는 익숙하게 그릇 건조대에 뒤집힌 컵을 하나 집어 십 년은 된 정수기에서 조르륵, 찬물을 따라 마시며 식탁에 앉아서는 올린이 작업하는 것을 구경했다. 장 포수가 이십 년도 더 전에, 신혼살림 차리려고 죽을 힘 다해 모은 돈으로 지었다던 집은 이제는 많이 영락했다. 타일 없이 시멘트만 발린 바깥 주방으로 통하는 조그만 문밖, 작업대 앞에 선 채 올린은 짐승의 피마저 잘 모아 갈무리하며,

“네, 그럼요.”

하고 서글서글한 얼굴로 웃었다. 그 뺨에 붉은 액체가 튀어 있었으나 그것마저도 일부러 묻힌 듯 화사하도록 예뻤다. 그 얼굴을 보며 서장은,

“장 포수가 아들 복이 있긴 있어. 느이 아주 현수 이름에 딱이구나야.”

하고 은근한 목소리를 했다. 불법적인 신분 세탁을 온 동네방네 공유하는 것도 모자라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올리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남의 귀한 아들 이름을 받아 쓰는 것에 대한 미안함도 있어 올린은 아무 소리도 않고 조금 웃기만 할 뿐이었다.

이제 서장은 식탁에서 일어나 열린 문간에 섰다. 금속제의 작업대 위에 누운 멧돼지에서는 김이 폴폴 올랐다. 간밤에 장 포수의 코란도에 실려 오긴 했지만, 이 녀석의 숨을 끊은 것은 새벽녘까지 고통받던 놈 옆을 지키던 올린이었다. 몸이 뜨거울 때 가죽을 벗기는 게 수월하다고 배웠지만 올린은 한 번도 숨통 끊기 전에 고기 손질을 시작한 적은 없었다.

처음 사냥감을 손질하는 법을 배운 건 지난해 겨울, 장 포수 댁에 신세 지게 되고 근 일 년이나 지나서였다. 겨울철에만 수렵하니 봄 여름 가을을 지나는 동안엔 배울 기회도 없었지마는, 처음 가르쳐 주마고 말을 들었을 때조차 올린은 반가워하지는 못했다. 좀 전까지 숨 붙어 있던 것을 산산이 조각내어 먹을 수 있도록 손질하는 과정은 잔혹해 보였다. 그러나 또 배우고 나니 그런 식으로 생각할 일도 아니었다.

피를 다 받아 내고서야 내장 손질을 시작할 참이었지만 서장을 내내 기다리게 할 수는 없어서 올린은 아직 척척한 짐승의 배에 손을 집어넣어 솜씨 좋게 쓸개를 도려냈다. 남자치고 악력이 약하니 주머니칼처럼 작은 칼로 재게 손을 놀리는 식으로 손질하라 배웠다. 이런 식으로 작업하는 것이 올린에게 최선이기는 하나, 한 번 칼 댄 데에서 손을 뗄 수 없고 해체에 시간이 다소 걸린다는 단점은 있다. 올린은 어깻죽지를 크게 놀려 단단한 살을 끊듯이 썰어 내면서, 처음 제가 손질한 고기를 재 너머 혼자 사는 애기할매 댁에 드리러 갔을 때 들은 말을 떠올렸다. 예전에 어느 유명한 무당의 신딸이었다던 애기할매는 이 고기 네가 손질했느냐고 묻더니,

“참 잘 했셔. 팔자가 그렇구나야. 손에 짐승 피를 안 묻히면 네 몸에서 피를 흘려야 할 팔자라무.”

하고 아리송한 말을 해 줬었다. 평범히 지내 온 청년이라면 노망난 늙은이의 말이라 여겨 흘려들을 수도 있었겠으나 올린이야 미신에 가까운 기복 신앙으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삶을 살아온 것도 아니고, 자신에게 무언가 가르침을 주었던 어른이 여럿 있었던 것도 아니라 그 말이 마음속 깊이 흘러들어 남았다.

올린은 양동이로 들어가지 못하고 흐른 피가 작업대 아래에서 작은 내를 이루는 것을 피하며 몸을 돌렸다. 쓰기 좋게 미리 접어 둔 신문지를 꺼내 고기를 둘둘 말다가 문득 생각난 듯이 묻는 말이,

“지난번에 복분자 괜찮으셨어요?”

하는 싹싹한 소리였다. 서장은 피 흐르는 시체로부터도 식욕을 느끼는지 입맛을 쩝쩝 다시다가,

“아, 좋았다니!”

하고 눈에 띄게 반가운 낯빛이었다. 올린은 피 배어 나오지 않도록 깔끔하게 포장한 고기를 든 채 서장의 곁을 지나 주방 안쪽으로 들어오며 담담히 인심을 썼다.

“좀 남았을 거예요.”

올린이 들어오려면 잔뜩 고개를 숙여야 하는 좁은 철문이다. 서장은 몸을 돌려 길을 터 주고는, 성큼 단이 높은 주방으로 올라오자 자신보다 한참이나 키가 큰 청년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촌천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하는 큰 딸내미를 생각했다. 눈앞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몸은 호리호리하고 얼굴은 사내답다기보다는 곱상한 축에 속하지만, 장갑에 가려진 이 든든한 손으로는 개도 다루고 총도 쏘고 짐승의 고기도 바른다. 이 청년도 이렇게 작은 산골에서 홀아비 죽은 아들 노릇이나 하며 썩느니 도시에서 사는 걸 좋아할 것도 같고.

서장의 음흉한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올린은 신문지에 싼 고기를 싱크대 위에 두고, 냉장고 옆쪽의 선반 가장 아래 칸에서 한 아름이나 되는 커다란 담금주병을 끌어냈다. 병은 커다란데 안에 든 붉은 기 도는 액체는 반의반도 남지 않은 것을 살짝 흔들어 보이며,

“작은 병에 옮겨 드릴게요.”

한다. 초겨울인데도 반소매 티셔츠만 입어 드러난 마른 팔뚝에도 피가 묻었지만, 그 피는 장 포수의 몸에 묻었을 때와는 달리 조금도 험상스럽지 않았다.

남은 것을 알맞게 담을 만한 병을 찾아와 바닥에 수건을 깔고 무릎을 꿇은 올린은 장갑을 벗지 않고 담금주병을 들었다. 짐승의 피가 묻은 장갑 때문에 손이 미끄러웠지만, 그는 장갑을 벗는 대신 허벅지와 팔뚝으로 무게를 버티며 병을 기울였다. 커다란 유리병 바닥에 잠겼던 술이 허투루 튀는 법 없이 조르르, 소리를 내며 작은 병으로 옮겨 들었다. 가만히 뚜껑을 돌려 닫는 몸짓조차 듬직했다.

고기와 술을 함께 받아 든 서장은

“장 포수한테 안부 전해 주고!”

하며 들어올 때와 같이 제집처럼 대문을 열고, 큼지막한 돌을 괴어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도록 해 둔 것을 본래대로 단단히 받쳐 두고는 돌아갔다. 올린은 사흘이 멀다 하고 만나는 사람들끼리 안부를 전해 달라는 말이 귀엽게 느껴져 혼자 웃다가 죽은 멧돼지에게 돌아갔다. 거죽과 살을 분리하고 살과 뼈를 바르고 내장 중 쓸 만한 것을 떼어 쓸모에 맞게 분리해 두는 내내 장갑을 끼는 것은 칼이 손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올린은 문득 어떤 생각이 들어 장갑을 벗고 맨손인 채 아까 놓았던 칼을 들었다. 생명의 온기는 상당히 끈질겨서, 배가 갈린 지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아직도 멧돼지 배 속은 더웠다. 따뜻한 안을 헤집던 손을 들어 올리니 손은 온통 피범벅이었다. 양손 가운데 뚫린 구멍에마저 짐승의 피가 고였다. 담담한 얼굴로 제 손을 보던 올린은 멧돼지에게,

“고맙다.”

하고 소리 내어 말했다.

2년 전, 제주도에서 배를 타고 뭍으로 도망하여, 가장 먼 데 가는 버스표를 달라는 말을 다섯 번쯤 반복한 끝에 도착한 곳이 이곳이었다. 있던 곳은 자두꽃도 다 진 완연한 봄이었는데 버스에서 내릴 때마다 풍경은 겨울 속으로 되짚어가는 것 같았다. 더 이상 버스를 갈아탈 수 없을 만큼 깊은 산중에 섰을 때는 눈마저 내리던 어두운 밤이었다. 어디 터를 잡는다는 생각보다는, 멀리 더 멀리 달아나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무턱대고 산길을 걸어 오르다가 장 포수와 만났었다. 장 포수는 그날 올린이가 산짐승인 줄 알았다고 나중에야 말했었다. 그날 총알이 빗나가지 않았으면 너 죽었드랬어, 하는 말에는 올린도,

“큰일 날 뻔했네요….”

하고 대답했었다. 이제 막 제대로 살기 시작한 참에 죽어서야 안 될 일이었다.

아들도 죽고 마누라도 잃은 장 포수는 험악한 인상과는 달리 평범히 좋은 사람이었다. 그는 상처 입은 몸에다 봄옷을 걸친 채 겨울이 한창인 데로 들어와 달포를 넘게 앓던 올린을 보살펴 주더니, 진달래 철쭉이 온 산을 분홍색으로 물들일 무렵에는 우리 아들이 안 죽었으면 너랑 비슷한 나이였을 거라는 소리를 했다. 자신이 사무소로 출근하면 개장 청소하고 개들 밥 줄 사람이 없으니까 조금만 도와달라는 말에 어영부영 한 해를 보내고 나니 다시 수렵 철이었다. 올린은 논두렁 밭두렁을 헤매는 짐승을 쫓는 장 포수에게 떠밀려 면허도 없이 운전대를 잡았다. 사람 칠 일도 없고 도로를 달리는 것도 아니라 배고픈 짐승을 쫓아 언 밭을 오르내리는 코란도는 운전 교습을 받기에 아주 딱 좋은 교보재였다. 이어 읍내까지 심부름하러 다닐 일이 생기다 보니 면허가 필요했다. 죽은 지 십 년 가깝도록 아들 호적을 살려 두기 위해 한 재산 털어먹었다던 장 포수는,

“니가 현수 이름으로 면허 따면 딱이다.”

하며 신분 없는 올린에게 이십 대 초반 아들의 이름을 선물했다. 올린은 장현수의 이름으로 운전면허를 딴 날 장 포수와 소주를 마시다가 재너머 애기할매가 해 주었던 팔자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손에 짐승 피만 묻히면 된다데?”

하고 되물은 장 포수는, 죽은 고기 손질은 해도 직접 총을 쏘는 일을 기꺼워 않는 올린의 성정을 알아,

“손에 짐승 피 묻히면서 사는 방법이라.”

하고 잔을 비우더니,

“동물들 피 닦아 주는 의사가 되면 되지.”

하고 씩 웃었었다. 그리고 아들이 한국대 가는 게 꿈이었다며 온갖 책들을 실어 날랐다. 올린은 그의 장단을 맞춰 주는 심정으로 책을 열었으나 접해 보지 못했던 세상의 온갖 지식이 찍힌 책들은 활자를 인쇄한 잉크의 냄새마저 향기로울 정도로 사랑스러웠다.

현수야, 하고 그가 불러 줄 때 네 아버지, 하고 대답해 줄 수 있었더라면 좋았으련만, 올린은 그에게 아버지 소리는 차마 하지 못했다. 아저씨, 아저씨 부르는데도 꼬박꼬박 왜 현수야, 하고 아들 대하듯 답해 주던 장 포수는 새벽녘에 사냥한 멧돼지를 던져 두고 읍내에 나갈 때까지만 해도 팔팔히 살아 있었다. 멧돼지 쓸개랑 담금주를 얻어 가며 사람 좋게 웃던 서장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도로 올라와 장 포수가 미니 포크레인에 찍혔다는 사고 소식을 알렸을 때, 올린은 막 샤워를 마치고 불 넣은 안방에 앉아 머리를 탈탈 털며 그리운 건지 미운 건지 모를 사람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덜 마른 머리로 서장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그러나 장 포수는 이미 사망한 후였다.

이렇다 할 가족 없는 장례식장이었지만 손님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올린은 사흘 내내 장갑을 벗지 않은 채 손님들과 맞절하고, 상여를 진 채 오래도록 걷고, 언 흙을 한 삽 퍼서 장 포수의 관에 던져 넣고, 동네 초입에 상을 차려 곡을 하고 절을 했다. 세상살이를 배운 적 없어 천치나 매한가지라고 스스로 생각하던 올린이지만 상주 노릇을 하는 내내 사람들은 그에게 와서 많은 것을 묻고, 해답을 받아 갔다.

오래전 아들 잃은 장 포수의 사정을 다 알면서도 올린더러 너 누구냐고 묻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늦게나마 아들 찾아서 장 포수가 복이 많다는 덕담을 건네는 동네 사람들 앞에서도 울지 않다가, 집에 돌아와 뒤늦게 핸드폰을 열어 보고 나서야 올린은 와르르 눈물을 쏟았다. 장 포수가 아들이 입학하기를 바라마지 않던 한국대 수의학과의 2차 전형에 합격했다는 메시지와 더불어, 3차 전형인 면접 일자가 찍혀 있었다. 날짜는 바로 이틀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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