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안녕 (49/65)

# 안녕

정비는 고양이가 그렇게 빨리 크는지 몰랐다. 고작 몇 주 만에 고양이다운 모습을 갖춘 고양이는 이제 분유도 우유도 필요 없이 젖은 사료만으로도 거뜬해졌다. 고양이는 자꾸만 몸을 타고 올랐지만 올린은 어린것이 살 만해졌다 싶은 이후로는 한 번도 안아 주지 않았다. 책 읽는 올린의 무릎에 고양이가 타고 올라오면, 햇볕 따사로운 곳의 방석 위에다 살그머니 옮겨 놓고 아예 자리를 옮겨 버렸다.

정비는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맨발의 올린이 마당 구석에 선 수행원 중 하나에게 이제는 건강해져 특별한 돌봄이 필요 없을 고양이를 안겨 주는 모습을 창문으로 내려다보았다. 마당 가장자리에 심긴 조그만 자두나무에서 흰 꽃잎이 흩날려 올린의 머리카락에 몇 조각 내려앉아 있었다. 꽃은 거의 지고 푸릇한 이파리가 돋은 나무는 그늘이 없는 데 자리한 덕인지 더 건강해 보였다.

그는 올린이 눈이 부신 듯 얼굴을 찡그리며 돌아서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걸음을 지켜보았다. 보폭이 이전보다 커지고, 걸음걸음에 힘이 들어가긴 했으나 오래도록 교육받은 걸음걸이는 여전했다. 발 딛는 데를 주의 깊게 고민하는 듯한 느릿함과 발아래 깔린 것이 흙이 아니라 꽃송이라도 되는 듯이 살그머니 걷는 발끝. 그 걸음으로부터 시선을 떼며, 정비는 올린이 싸 놓은 조그만 가방을 열어 보았다.

올린은 정비에게 돈 받을 생각을 포기한 모양이었지만, 그가 용돈 삼아 거실의 장식장에 올려 둔 현금은 동전까지 알뜰하게 싹싹 모아 챙겼다. 마음대로 쓰라고 했으니 훔친 것도 아니었다. 한동안 몸을 장식했던 보석을 담아 놓은 상자도 함께였다. 역시 이것도 올린의 소유가 맞다. 그것 외에는 간소한 옷가지와 속옷, 양말뿐이다. 갈 데를 정해 둔 것 같지도 않은데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채로 나가려고 하다니, 정비는 올린이 어떤 사람인지 알면서도 치솟는 불안감을 내리누를 수 없었다. 더불어 괘씸하게도, 무력하다 깎아내려서 곁에 두고 싶은 욕심도 버릴 수 없었다. 활활 타오르는 기분은 난생처음의 것이었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행동하려 노력한다 해도 핏속에 흐르는 집착과 광기는 결정적인 순간에 용암처럼 느리게 흘러 모든 것을 태운다.

정비가 준비해 준 아침을 먹고 나서, 올린은 테이블을 사이에 둔 채 정비에게 오늘 떠나겠다고 말했다. 담담한 그 눈에는 정비가 자신을 붙잡지 못할 거라는 확신과 앞으로의 생활에 대한 희망이 가득 찼을 뿐, 두고 떠날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었다. 택시가 삼십 분 안에 도착할 거라는 말에 정비는 잠시 숨을 멈췄다가,

“…혜향이는?”

하고 고양이에 대해 물었다. 털 색을 따서 지은 새끼 고양이의 이름이었다. 올린은 이제 괜찮을 거라고 대답했다. 정비는 네가 가면 쓰레기봉투에 담아 내놓을 거야, 하고 공갈의 협박이라도 하고 싶은 것을 참으며 올린을 올려다보았다. 그런 말을 하면 올린은 고양이를 데리고 갈 것이다. 목적 달성도 못 한 채 미움만 사는 것은 싫었다. 그렇다고 미움을 사지 않으려고 그저 보내는 것은 바보짓이다. 정비는 이미, 자신이 우선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올린의 회복보다는 자신의 평안이었다.

올린은 정비에게 다가와

“그동안 고마웠어요.”

하며 그를 한 번 가볍게 안아 주려고 했다. 정비는 그때 참았어야 했다. 올린을 존중한다고 스스로 되뇌었던 순간들이 거짓이 아니라면, 그때 그는 원하지도 않는 입술에 제 입술을 가져 대지 말았어야 했다. 깜짝 놀라는 듯 몸을 물리려다 달래듯 머리를 감싸 주고, 등을 도닥인 다음 떨어져 나가려는 사람을 도로 끌어당겨서도 안 됐다.

“형?”

소름 돋는 감각에 정비를 밀어내고 그 눈에 든 것을 확인하려는 갈색 눈을 외면하고,

“못 가.”

하는, 농담인 듯 진심인 소리를 했어도 안 됐다. 올린이 웃음으로 얼버무리려는 듯한 소리를 내며 밀어내고, 정비는 가까이 다가가 다시 잡는 실랑이 끝에 올린이 현관을 향해 잰걸음을 옮길 때 쫓아가서 어깨를 잡아 돌려서도 안 됐다.

“놓아주세요.”

올린이 명령했다. 걸친 옷은 후드 티에 얇은 점퍼, 사다 주는 온갖 화사한 것들을 물리치고 제 맘에 들도록 주워 입은 결과로 지금 올린의 모습은 평범하기 그지없다. 수수한 옷 아래로 반듯이 펴진 어깨가 당당하고 곧은 목 위의 얼굴에는 위엄이 흘렀다. 그는 마치 갓 취임하여 미숙하나 오랫동안 제왕 교육을 받아 온, 젊은 왕 같았다.

그러나 정비는 그 왕에 대해 반란을 꾀하는 악한 무리의 심정이 되어 오히려 다른 손으로 반대쪽 어깨를 잡았다. 다시 한번, 놓으라고 올린이 말하는 것과 정비가 온 힘을 다해 그를 벽으로 밀어붙인 것은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 집은 정비가 지은 게 아니다. 전 주인은 집을 잘 관리했지만, 벽에 때때로 옛날식으로 못을 쳐 달력 따위를 걸어 두곤 했었다. 올린이 부딪친 벽에 녹슨 못이 하나 튀어나와 있었던 것은 정비도 올린도 몰랐다. 천만다행인 것은 그 못이 올린의 척추나 머리가 아니라 날개뼈에 박혀 든 것이었다.

“크흑!”

부딪치는 순간의 깨지는 듯한 숨을 참으며 신음한 것을, 정비는 무시했다. 그는 일순간 팔에 퍼뜩 힘을 잃고 무력화된 올린의 상태를 반기며 흘러내리는 듯한 그를 품에 안았다. 날개뼈에서 번진 피는 안에 받쳐 입은 티셔츠를 순식간에 적셨지만, 웃옷 밖까지 배어 나오지는 않았다.

성한 팔을 들어 휘두르려다 그대로 잡혔다. 팔뚝을 빼려 굽히자 오히려 둘의 거리가 성큼 가까워졌다. 올린은 가까이 선 정비의 눈을 바라보며 무언가 말하려다가, 그 눈이 어딘가 다름을 깨닫고 말았다.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주춤한 사이에 멱살이 잡혔다. 올린도 장신이며 튼튼한 편이었으나 정비에 비할 바가 되지 못했다. 그는 아직 다리가 성치 않은 사람이지만 광인에게서 느껴지는 막무가내의 괴력이 있었다. 다친 올린을 제압하는 것은 우습도록 쉬웠다.

저항하다 넘어지는 쿠당탕, 하는 소리에 마당에 대기하던 수행원 둘이 달려왔지만, 상황을 파악한 후에는 등을 보이고 돌아 나갔다. 올린은 계단참을 붙잡고,

“정신, 차려, 형!”

하고 울부짖다 마구잡이로 끌려 올라갔다.

멱살과 머리채가 그러잡힌 채 침대에 던져졌지만, 바로 벌떡 일어났다. 제 몸 위를 덮쳐 오는 몸을 역으로 덮쳐 누르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올린은 정비의 손에 두 손목이 눌려 깔린 채로도 발을 놀려 정비의 아랫배를 힘껏 걷어찼다. 잠시 손에 힘이 풀린 틈을 타 상체를 일으켰지만, 빠져나갈 수 없었다. 그는 어딘지 돌아 버린 것 같은 정비의 뺨을, 바로 옆에 놓였던 나무 브러시를 들어 내리쳤다. 정비의 고개가 돌아갔다가 천천히 돌아왔다.

정비의 눈썹뼈가 찢겨 피가 흘렀다. 올린은 눈물은 흘리고 있었으나 울지도 않은 채 한 번 더 때렸다. 이번에는 고개가 돌아가지도 않았다. 광대 언저리가 피멍이 들 것처럼 부풀었으나 끄떡없었다. 올린은 한 번 더 때리려고 브러시를 쳐들었다가,

“그래, 이거야. 네가 너한테 한 짓, 다 돌려주고 가야지.”

하는 미친 사람 같은 소리를 듣고는 손을 내렸다. 이를 악문 올린의 뺨에 눈물이 흘렀다.

무지막지한 무릎에 허벅지 안쪽이 눌려 제압된 채 두 손이 한데 모였다. 정비는 벨트를 풀어 올린의 손목을 침대 헤드에 고정하는 내내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무표정한 얼굴 아래 손은 날래고 철저했다. 벨트를 조여 저항을 그친 손을 완전히 무력화하면서도 눈을 마주 보아 주지 않았다. 올린의 바지를 벗기고 속옷을 벗기는 동안에도 그랬다. 올린은 그때만큼은 악을 썼다. 발버둥치고 소리 지르다가, 입을 막아오는 정비의 손날을 깨물어 피를 냈다. 그리고 오랜만에 그 손에 뺨을 맞았다.

“크흑!”

“네 잘못이야. 네가 떠난다는 소리만 하지 않았으면 난 끝까지, 널, 존중-.”

상체를 밀어붙여 접힌 한쪽 다리를 누르고, 팔을 뻗어 다른 쪽 발목을 쥐어 당겼다. 결사로 저항하는 몸을 다루기 힘들다는 핑계로 무릎 하나를 감아 침대 헤드에 묶은 것은 올린의 속옷이었다. 두 팔과 한 다리가 묶인 채 엉덩이가 들린 올린은 북받쳐 오르는 울음을 터뜨렸다. 석 달이나 자신을 인간 대접해 주고 어떤 의사든 존중하던 정비였다. 이런 식으로,

“아아악!”

아래가 찢기는 투두둑, 하는 소리가 들리도록 삽입하는 사람은 제주도에서의 정비도 아니며 한북동 저택에서의 정비도 아니었다. 올린에게도 정비 자신에게도 낯선 이 남자는 올린의 찢긴 아래에 추삽하면서도 입술을 꾹 다문 채였다. 그 눈은 한 번도 올린을 바라보지 않았다. 올린을 바라보고는 있되 초점이 흐렸다.

“형, 헉, 억, 이러, 지….”

올린은 사지 중 유일하게 묶이지 않은 왼다리를 펴서 정비의 상체를 밀어내려고 했다. 꼴사납게 뒤집힌 채로도 저항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밀어낼수록 구속은 강해졌다. 술을 마신 것도, 약을 한 것도 아닌데 차갑게 닫힌 눈이 너무 무서운 데다,

“크읏, 아아, 흐아악!”

이전의 정비라면 결코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깊고 세찬 삽입에 안쪽이 온통 엉망으로 헤집어져 망가지는 것 같은 감각에 올린은 내장 깊은 데서 복받쳐오는 울음을 울었다. 그는 자신을 사람으로 대해 주겠다던 정비의 말이 진심이었음을 지금도 믿고 있었다. 그러니 더더욱이 대체, 왜, 이런 짓을 저지르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별을 피하기 위한 나름의 꾀가 다하고 더 이상 연인을 붙잡을 방법도 자격도 없음을 알아 버렸을 때 모든 것을 포기하듯 최악의 길로 향하는 것도 인간이었다. 올린은 대개의 사람들이, 아무리 서로를 사랑하더라도, 끝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렇다 해도 그가 정비를 이해하기를 포기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서럽지도 않고 원망스럽지도 않았다. 올린은 날개뼈가 으스러지고 아래가 찢긴 게 아파서 흐느껴 울었다. 정비는 우는 사람의 달아오른 안에 정액을 내뿜고는, 자신이 망가뜨린 몸을 감싸 안았다. 정비가 올린보다 먼저부터 울고 있었다. 존중 운운의 헛소리를 하기도 전에, 저지른 짓 다 돌려주고 가라는 미친 말을 하기도 전에, 녹슨 못에 올린이 찔릴 줄도 모르고 벽에 밀어붙이던 순간부터 사실 그는 내내 울고 있었다. 두 남자가 각자의 괴로움 속에서 우느라 침묵하는 사이에 저 멀리 마당 끝의 대문 밖에서 올린이 부른 택시가 빵, 하고 경적을 울렸다. 수행원 중 하나가 무슨 일인지 알아보러 갔을 것이다. 정비는 울면서도 아무 말이 없었다. 올린은 잠시 이 미운 사람을 도련님, 이라고 부를까 하고 고민하다가 그러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어도 용서할 수는 있었다. 그리고 용서는 평생토록 올린의 것이었다.

“…형.”

잠깐 사이에 형편없이 쉬어 버린 목소리로 부르자, 정비는 우는 채 올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올린은 아직 두 손과 한 발이 한데 모여 묶인 채였다. 보기에도 아픈 꼴로 올린은 말했다.

“나 아파.”

엉덩이 사이의 빨갛게 달아오른 구멍에서 허연 정액이 피와 섞여 흘렀다. 정액이 묽지 않고 탁해 피와 온전히 섞이지 않았다. 정비는 잠시 아랫입술을 짓깨문 채 망설이는 것 같았다.

“…풀어 주세요.”

“너 가 버릴 거잖아.”

올린은 그 즉답에 누군가를 떠올렸다. 어린애같이 대꾸하는 말투가 닮았다.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형제는 형제였다. 그러나 할 말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맞아요. 전 오늘이 아니라도 결국 떠날 거예요. 형, 그런데요,”

올린은 잠시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쉬려고 했다. 얻어맞고 강간당한 몸이 그 숨을 견디지 못하고 쿨럭, 하고 기침을 토했다.

“지금 저 풀어 주면 형 용서할 수 있어요.”

“……”

“형이 제게 했던 것과, 지금 하는 이 모든 행동 모두, 용서할 수 있어요.”

*

쑥대머리에 얼굴 한쪽이 벌겋게 물든 올린이 마당을 뛰듯이 걸었다. 성한 어깨에 작은 가방을 메고서였다. 수행원 둘이 멀찍이서 바라보는 동안, 뒤늦게 지팡이도 없이 절뚝이며 뛰어나온 정비가 올린의 손조차 붙잡지 못한 채 그 곁을 걸었다. 다른 박자로 다리를 저는 두 사람이 엉망인 모습으로 함께 걷는 내내 올린은 앞을 보고, 정비는 올린을 보았다. 올린은 대문 앞에서 오래도록 기다리던 택시에 오르기 전에 정비에게 포옹 한 번 허락하지 않았다. 정비는 창백하고도 정 없는 얼굴로 뒷좌석에 앉은 올린을 향해, 꼴사납도록 애원했다.

살 곳을 마련해 주겠다고도 했다. 새로운 신분을 만들어 주겠다고도 했다. 그걸 원하지 않는다면 조금이나마 편하게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돈을 주겠다고도 하고, 그게 싫으면 공항까지 데려다줄 수 있게만 해 달라고도 빌었다. 팔백만 원, 그건 받아 가야지, 그거 네 돈이잖아, 올린아, 나중에는 두서없이 울부짖었다. 그러는 동안 올린은 달래는 듯한 표정을 했을 뿐, 그 어떤 제안에도 그러마고 고개를 끄덕여 주지 않았다.

택시가 출발하려 하자, 올린은 잊은 게 있다고 했다. 바퀴가 구르다 만 택시를 향해 몇 걸음을 절룩이며 뛰어오는 정비는 맨발이었다. 올린은 웃옷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핸드폰을 꺼내느라 정비의 맨발을 보지 못했다. 보았더라도 선택은 같았을 터니 큰 의미는 없는 일이다.

“이거.”

올린이 내민 핸드폰을 보고, 정비가 떨리는 숨을 들이쉬었다.

“아까, 식당에서 드리려고 했었는데요.”

정비는 손을 늘어뜨린 채 그것을 바라볼 뿐이었다. 올린이 창문 너머 정비의 팔을 잡아, 그 손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그 손에 핸드폰을 쥐여 주었다. 정비는 그러는 동안 올린의 얼굴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는 새로운 세상을 찾아 떠나는 사람답게 여전히 설레는 얼굴이었다. 그 얼굴에는 비록 눈물 자국과 손자국이 아직 남아 있었으나, 조금 전 있었던 끔찍한 일도 그의 희망을 흐리지 못한 듯 그저 맑았다. 그는 진심을 말해 주고 웃으며 떠났다.

정비는 올린이 마지막으로 한 말을 곱씹다가, 택시가 사라지고 한참이 지나서야 벌건 눈을 하고 돌아섰다. 어느새 다가온 수행원 중 하나가,

“따라갈까요?”

하고 물었지만 답하지 않았다. 올린은 자신이 미쳐 쫓아가 방해만 하지 않으면 잘 살 터였다. 그를 걱정한답시고 보호하려 드는 것도 어쩌면 모욕일 수 있었다. 게다가 올린이 마지막으로 한 말은 정비에게 구원인 동시에 구속이었다. 올린은 정비가 올린으로부터 가장 절실히 얻기를 바랐던 단 한 가지를 잘 알고 그것을 볼모 삼아 정비의 추적을 차단했다. 정비는 다시금 올린이 얼마나 강인하며 명석한 사람인지를 곱씹었다. 자신은 결코 올린의 곁에 설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노력했다고 생각했지만 그 노력조차 사실은 거짓임을 마지막 순간에 스스로 증명한 셈이었다.

올린이 핸드폰을 쥔 정비의 손을 창문 밖으로 고이 내보내어 주며 한 마지막 말은 한마디였다. 그 말을 할 때 올린의 눈에는 그 말 외에 다른 뜻은 하나도 든 것이 없었다. 그러나 듣는 이는 알았다.

“이제 용서해 드릴게요.”

그것은, 더 이상 자신을 잡는다면 영원토록 용서받지 못할 거라는, 엄중한 경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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