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혜향이
정비는 제 입안을 알싸하게 달구는 생강이 매운 건지, 아니면 올린이 말하는 내용이 매운 건지 구분하지 못한 채로 길지 않은 이야기를 들었다. 올린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 정비에게 먹이를 준 건 아마도 말대답하지 말라는 뜻인 것 같았다. 올린이 생각하는 사람으로서의 삶은 정비가 생각한 것과 많이 달랐다. 그가 옳다고, 정비는 속으로만 인정했다. 관계도 생물과 닮아, 환경이 크게 바뀌지 않는 한 항상성이 있어서 그들은 이전의 건강하지 않은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 매 순간 노력해야 할 것이다. 올린은 이대로라면 형을 도련님이라고 부르게 되는 순간이 다시 올 것 같다며 웃었지만, 그 말은 사실 형이 날 액받이 취급하는 날이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 같았다. 그 우려는 올린의 것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올린이 생각하는 것만큼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비록 올린은 그 폐공장과 함께 폭사한 것으로 처리되어 가족들이 그를 뒤쫓는 일은 없겠지만, 그렇더라도 헛된 시간을 너무 오래 보낸 올린이 홀로 살기에 위험한 것들이 많았다.
올린은 진실로 저택에서의 모든 것과 인연을 끊기를 바랐다. 그는 정비가 대안으로 제시한, 홀로 살되 정비가 아주 조금씩만 관여하는 삶조차 거절했다. 가볍게 사양하는 말투와 달리 그 눈에는 불신과도 다르고 공포와도 다른 어떤 것이 들었다. 주체성에 대한 의지는 정비의 눈에는 투지나 자신감 정도로 읽혔지만, 그것으로도 뜻을 전함에 부족함이 없었다.
어떤 방식으로 살든, 그 삶이 이전보다 못하게 되더라도 그것은 자신의 선택이니 그냥 내버려 둬 달라는 말에는 생강을 삼키던 목구멍이 콱 막히는 것 같아서 정비도 올린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외의 모든 말에 대해서는 비루하나마 반박해 볼 수 있었지만 그 문장 하나만은 입 댈 구석 없이 완벽했다. 정비는 올린이 하는 말들이 얼마나 수없이 속으로 연습한 결과일지를 생각했다. 지금 여기에 앉아 있는 정비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말조차 꺼내지 못했을 말들은 고마운 동시에 야속했다.
정비가 묵묵히 생강만 씹고 있자, 올린은 마지막으로 큰 숨을 쉬더니 돈을 요구했다. 875만 원이었다. 그의 계산을 듣고서야 정비는 예전에 올린이 4개월간 저택 밖을 떠돌다 돌아왔을 때 시골의 식당에서 일했으며, 그곳에서 숙식을 제공받는 대신 최저임금에 한참 못 미치는 급여를 받았음을 알게 되었다.
돈으로 그가 겪어 온 시간을 보상받을 수는 없겠지만, 만일 액받이로서의 일을 노동 가치로 환산한다면 시골 식당의 일꾼보다 몇십 배나 높은 급여를 받아도 부족할 터다. 그가 물건처럼 매매될 당시의 금액을 생각한다면 그보다도 수십 배는 더 큰 금액을 부를 수도 있다. 그러나 올린은 순진하게도 식당에서 받았던 월급의 절반을 액받이로서 지내는 한 달의 대가로 산정하여 제가 받을 돈을 계산했다. 변명하듯이 덧붙이는 설명에 따르면, 저택에서는 식당에서만큼 쓸모있는 노동을 하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정비는 그럼 이 애기 과자값 같은 돈은 급여가 아니라 위자료의 개념인 걸까, 하고 허탈한 중에도 생각했다.
“스물다섯 달로 계산했어요. …제주도에 있던 기간은 포함하고, 밀성에서 지낸 시간은 제외했습니다.”
정비는 돈을 요구할 수 있을 정도로 올린이 발전했음에 대해 감탄해야 하는지, 아니면 요구한 그 돈의 액수가 비현실적으로 적은 것을 착잡해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눈으로 올린을 바라보았다. 마지막 남은 생강을 싹싹 긁어 볼이 메도록 넣고 씹어 삼킨 정비는 올린이 스윽 밀어 준 보리차로 입안에 남은 매운 기운을 넘겼다. 이딴 걸 항문에 꽂고 매질까지 했다니, 내가 무슨 짓을 한 거람, 하는 생각과 함께, 이 녀석 진심이구나, 싶은 생각이 머릿속을 휘몰아쳤다.
정비는 올린이 떠나기를 원치 않았다. 요구하는 액수를 들으니 물정 모르는 애를 내보내는 것이 무책임한 짓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지만 지금 올린이 하는 말에는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말싸움해서 올린을 이길 수 있을 만큼 정비에게 당당한 구석이 없었거니와, 그러느라 올린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만일 언쟁하여 이기더라도 그건 이미 진 싸움일 터였다. 정비는 남은 보리차를 홀짝이며 어떻게 해야 올린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건 마치 미쳐서 손에 날붙이를 들었던 올린의 손에서 그것을 빼내야 했던, 폭음 가득한 배 위에서의 과제와도 흡사했다.
“…그 정도는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작아졌으나 여전히 당당한 목소리 끝에는 걱정이 묻어 있었다. 올린은 아마도 정비가, 제게 줘야 할 돈의 액수를 고민하고 있다고 오해한 것 같았다.
주지 않겠다고 하면 못 떠날까, 떠나지 못하도록 물리적으로 구속해 두는 것은 어떨까, 그전에 바깥세상이 무섭다고 겁을 주는 것도 방법이다. 처음 떠오른 방법들이 몽땅 힘의 행사라는 것을 깨달은 정비는 스스로 어처구니가 없어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눈앞에 앉은 올린의 갈색 눈은 불안 속에서도 명료하게 빛나고 있었다. 사실 정비는, 올린이 수중에 아무것도 없는 채로도 나갈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 자리가 자신의 허락을 구하기 위하거나 아니면 나가서 살길을 모색하기 위해 돈을 받아 내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모든 것을 말끔하게 끝내기 위해 스스로 마련한 자리라는 것도 알았다. 이러한 세속적인 셈이야 명석한 올린은 금방 깨칠 것이다. 결국엔 잘 살아 낼 것이다. 자신들이 뒤쫓아가 사는 것을 방해하지만 않는다면.
정비는 감정에 호소하는 방법을 생각했다. 자신의 다리가 회복이 글렀음을 떠올리고 다리가 나을 때까지만이라도 곁에 있어 달라고 부탁할까, 하다가 그는 남은 보리차를 마셨다. 올린은 멍청이가 아니다. 코웃음도 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취할 수 있는 전략은 무엇일까. 정비는 얼마 전에 올린과 나눴던 농담을 떠올리며, 가능하다면 임신이라도 시켜서 주저앉히고 싶다는 또다른 폭력적인 상상에 돌입했다. 역시 새로운 힘의 행사다. 평생 그렇게 살아온 머리는 강제적인 방법 외에 다른 것은 떠올릴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온전히 강한 사람인 올린을 사랑하고 그를 학대해 온 자신이 용서받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을 아는 정비로서는, 이 사람을 붙잡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약간의 비겁함을 감수할 작정이었다.
정비는 올린에게,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하고 한 마디를 남긴 후, 조용히 차를 몰고 집을 떠났다. 수행원 둘에게는 올린을 잘 지켜보라고 당부한 후였다. 올린은 오랫동안 기다리다가 먼저 잠이 들었었는데, 잠에서 깨어나 보니 정비가 난감한 얼굴을 꾸민 채 올린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올린. 올린.”
눈을 비비며 정비를 올려다본 올린은 그가 땅콩 따위를 한 줌 쥐어서 건네는 줄 알았다. 손길에 너무 조심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놈, 어미한테 버림받은 것 같은데. 누가 돌봐 주지 않으면 곧 죽을 것 같아.”
거짓말이었다. 늦게까지 열려 있던 장터를 찾아 오만 원 주고 사 온, 눈도 못 뜬 고양이 새끼였다. 임신이 안 된다면 입양이다. 다만 잠시라도 주저앉히려는 계략을 올린이 눈치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정비는 올린이 다람쥐든 개든 저택의 정원을 방문하는 참새떼든 동물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것을 알았다. 올린은 정비의 커다란 손이 아무렇게나 쥐고 내민 어린것을 저도 모르게 받아 안으며 당혹한 눈을 했다.
날이 밝자 그는 생전 말 거는 법이 없던 수행원 둘에게,
“좀 부탁할게요.”
하고 고양이 새끼를 건넸다. 수행원 둘 중 하나는 사실 고양이를 무척 사랑하는 애묘인으로 비루먹은 고양이를 돌봐 소생시킨 경험도 여러 차례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 이전에 이정비를 상사로 모시는 직장인이었다. 그들은 올린의 뒤에 그늘을 드리우고 선 정비를 바라보며 솥뚜껑만 한 손안에서 보기에도 불안해 보이도록 새끼 고양이를 뒤채다가,
“어익후!”
하고 올린의 무릎에다가 도로 떨어뜨렸다. 얼른 받아 안은 올린이 울상을 했다. 그리고 그날부터 고양이 엄마가 되었다.
정비는 올린이 필요하다는 고양이 물품은 꼬박꼬박 사 오면서도, 고양이를 맡길 데를 찾아봐 달라는 요구는 그러마고 대답만 하고 실행하지 않았다. 곧 죽을 것 같은 애를 담요로 둘둘 말아 물주머니와 함께 껴안고 자다가, 때맞춰 일어나 분유를 먹이는 건 오로지 올린의 몫이었다. 떠난다는 결연한 계획은 미뤄졌으나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올린보다 정비가 더 잘 알았다.
올린은 정비와 섹스하다가도,
“형, 잠시만요. 알람.”
하고 정비를 밀어냈다. 아직 토정하지 못한 거대한 자지를 덜렁거리며 정비는 올린이 시키는 대로 주사기에 고양이 분유를 넣고, 쥐새끼같이 보이는 작은 동물에게 올린이 밥을 먹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댓 방울쯤 삼키면 식사 끝이지만, 그걸 먹이느라 올린이 얼마나 애를 쓰는지 몰랐다. 열중하여 아랫입술을 쑥 내민 채,
“오올치, 애기야, 아유 그래쪄요?”
하고 속닥거리는 올린의 목소리에도 쌀 것 같아 자신에게 등을 돌린 올린의 엉덩잇골에 자지를 문지르다가 몇 번이나,
“형, 제 몸이 흔들리면 혜향이가 우유를 흘려서요. 잠깐 저쪽으로 가 계실래요.”
하는 정중한 요청과 함께 꺼져 버리라는 눈빛을 받았다. 그래도 정비는 물러나지 않았다. 고양이로 붙들어 놓는 것이 동족방뇨의 해결임을 알아서, 겨우 얻은 짧은 유예 기간 동안 머무르고픈 마음이 싹트게 하려고 그는 무던히 애를 썼다. 그러나 올린을 기쁘게 하는 일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그가 까다로워서가 아니라, 평생 품어 왔던 욕심이 이미 다 성취되었기 때문이었다. 올린은 평생 강간 없는 밤과 매질 없는 낮을 꿈꿔 왔다. 그 외에 올린이 바라는 것은 정비를 떠나 오롯이 서는 것뿐인 것 같았다.
정비는 제게 바라는 것 없는 올린에게,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쾌락을 선사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잠자리의 쾌락에 대해서는 네 형제 중에 정규가 가장 능숙했다. 애석하게도 자유롭게 연애를 하지도, 많은 사람들과 성관계를 나눠 본 적도 없는 정비에게는 버겁도록 큰 자지라는 실점 요소가 하나 더 있었다. 그가 올린에게 줄 수 있는 쾌락은 능숙이 아니라 다정에서 비롯되는 것뿐이었다.
고양이가 따뜻한 물주머니를 베고 잠이 드는 것을 확인한 올린은, 기다려 준 정비에게 보상이라도 해 주듯 고개를 돌려 기다리던 입에 입을 맞춰 주었다. 정비는 그 달래는 듯한 키스를 받으면서도 이건 아닌데, 아까 엉덩잇골에 문지른 것도 아니었는데, 하고 입이 마르는 듯한 초조함을 느꼈다.
올린은 정비의 입술을 문 채 천천히 누웠다. 정비는 올린의 다리 사이에 무릎 꿇은 채 벌어진 구멍에 몸을 맞춰 댔다. 삽입할 듯이 살짝 문지르자, 올린은 침대에 등을 댄 채 두 손을 위로 뻗어 베갯잇을 쥐며 곧 치받칠 힘든 호흡을 대비했다. 정비가 그 손 중 하나를 잡아 손 가운데 난 구멍에 입을 맞추고,
“아일렛 빼도 돼?”
하고 물었다. 올린은 눈을 한 번 느리게 감았다가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몸의 일부가 되어 절대 사라지지 않을 구멍 안쪽은 아직도 발갰다. 새끼손가락 하나라면 빠듯이 들어갈 수도 있을 만큼 확장된 구멍 안은 지금도 지끈거릴 때가 있었다. 오른손은 중지가 잘 움직이지 않았지만, 왼손은 괜찮다. 입술로 구멍 근처를 지분거리던 정비가 뜨거운 혀를 내어 구멍의 가장자리를 찌르듯 핥았을 때, 왼손 다섯 손가락이 한순간 쫙 펴졌다가 다시 오그라들었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정비는 아래의 교합을 더욱 단단히 했다. 올린이 흑, 하고 숨이 몰아쳐진 소리를 했지만, 고통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자지가 들어올 때 맞추어 혓바닥이 구멍 안을 진득하게 채우며 들어왔다. 미끈거리고 뜨겁기만 한 혀는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연체동물 같았다. 허리를 쳐올릴 때 맞추어 구멍을 채웠던 혀는, 자지가 빠져나갈 때 함께 빠져나가며 구멍의 단면에 화하고 시린 기운을 남겼다. 다음의 삽입을 기다리게 하는 느낌이었다. 올린은 간지러움과는 다른 그 기분을 들이마시며 자지와 혀를 함께 받아들였다.
손바닥의 구멍은 그 자체로 성감대가 된 것처럼 예민했다. 달아오른 손바닥의 감각이 민감하게 치솟아 제 손에 본래 새겨져 있던 손금의 모양새 하나하나의 끝까지 옅은 간지러움이 내달렸다. 올린은 팔 끝까지 저릿하도록 정비의 혀를 견디면서도 손을 빼낼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단전에 힘이 들어가게 하는 그 느낌은 조금 무섭지만 싫지 않았다. 계속해 주었으면 했다.
정비는 축축하게 젖은 구멍에 혀를 끼워 뱅글뱅글 돌리는 듯한 장난을 치다 빼더니, 이제 막 딱딱한 치골에 제 골반이 닿도록 밀착된 아랫도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느릿하게 들어갔고 올린도 괴롭지 않은 것 같으니 조금쯤 빠르게 움직여도 될 터였다.
한 번, 두 번, 허릿짓을 빨리하다 점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거세고 빠른 허릿짓으로 이어 가는 움직임에 보조를 맞추듯이 정비의 상체가 점점 들렸다. 아주 조금만, 올린이 즐거운 놀라움을 느끼게 할 만큼만 빠르게 하려고 했는데 조급한 마음은 몸조차 그렇게 만들었다. 올린을 즐겁게 해 주려던 본래의 목적과 달리 저 자신도 쾌감에 젖어 정신없던 와중에 정비는 눈을 뜨고,
“응, 앗, 앗, 학,”
하고 흔들리는 올린을 내려다보았다. 비록 제가 몸짓을 늦출 수 없이 흥분한 와중이긴 했으나 제 아래에 깔려 상체가 고정되지 못해 마구잡이로 흔들리는 꼴을 보자 마음이 좋지 않았다. 올린은 평소에 아래로 정비를 더 잘 받아들이기 위해, 두 손을 머리 위로 뻗어 침대 헤드를 쥔 채 버티곤 했으나 오늘은 손이 빨리는 바람에 그럴 기운이 남지 않았다. 허리와 목이 부러질 듯 흔들리는 것을 바라보던 정비가 손을 뻗었다.
커다란 한 손이 올린의 어깻죽지 아래에 들어왔다. 눈을 꼭 감은 채 엄청난 흔들림과 함께 쏟아지는 쾌감을 받아 내던 올린이 실눈을 뜨고 의아한 기색을 했다.
“안아 주고, 싶어서….”
말끝에 묻은 수줍음을 눈치채고 올린이 웃었다. 마구 흔들리는 모습이 안쓰럽다는 뜻이었지만, 올린에게는 안기고 싶다는 말처럼 들렸다. 정비의 다리 위에 앉혀지자 삽입이 깊어졌지만, 그래도 올린은 제가 해석한 그 기꺼운 바람을 들어주고 싶었다. 올린의 손이 정비의 등을 스치고 내려가, 엇박으로 움직이는 허리께를 쓸었다. 이윽고 불규칙적이고 세찬 몸짓으로 뜨거운 구멍 속에 짓쳐 들던 좆이 멈추고, 정비의 다문 입에선 참기 힘들었던 신음이 쏟아졌다.
버거운 것을 온몸으로 받아 내느라 입술을 깨문 채로도 정비의 몸을 껴안은 손은, 결국 너무 느끼는 지점을 자극받을 때는 손톱을 세웠다. 잡히지 않는 것을 잡고 어딘지 도망가려는 것 같은, 그렇지만 사실은 도망가기는커녕 머무르고 싶어 하는 그 손끝의 손톱은 저택에서와 달리 스스로 깎았기 때문에 마무리가 거칠었다. 붉은 선이 마구 남은 등인 채 마른 몸을 꽉 껴안은 정비는, 한 손을 내려 올린의 자지를 더듬었다. 정비의 손이 올린의 귀두에 닿고 몇 번 쓸었을 뿐인데 올린은,
“응읏, 크흑….”
하고 사정해 버렸다. 그가 사정하는 동안 등을 받쳐 준 채 안쪽 봉긋한 데를 짓누르듯 찔러 오르가슴의 시간을 연장해 준 정비는, 올린이 두 손으로 제 등을 마구 긁고 두 발로는 시트 바닥을 밀어내듯이 버둥거리며 한동안 움찔거리는 것을 기다려 준 후에도 교접을 물리지 않은 채 옆으로 누웠다. 사정하며 함께 벌렁거리는 올린의 항문이 자지를 마구 짓씹어 놓았지만, 그 강렬한 쾌감에도 굴하지 않았다. 더, 더 하고 싶었다.
모로 누운 정비의 품 안에 안긴 올린은 사지를 웅크려 둥글게 몸을 만 채였다. 날씬한 팔다리를 웅크린 것까지를 한꺼번에 안았다. 긴 뼈에 날씬한 근육이 달라붙은 정강이를 누르듯 잡은 채 올린의 항문에 든 자지를 움직이지도 않고 기다려 주던 정비는 한참 후에야 올린의 귓가에다가,
“살살, 다시 움직여 볼게….”
하고 어쩐지 달래는 것 같은 목소리를 냈다. 올린은 싫다는 건지 좋다는 건지 알 수 없는 애매한 신음으로 화답했는데, 비록 이 마른 몸이 지친 것은 같으나 오르가슴의 물결은 반복할수록 높아진다는 것을 깨달은 정비로서는 포기할 수가 없었다.
올린은 두 무릎이 제 턱에 닿도록 잔뜩 웅크린 자세에서, 정비에게 정강이를 잡히고 정비의 뜨거운 가슴에 등을 기댄 채 결코 살살이 아닌 재삽입을 받아들였다. 온몸을 안아 마치 장난감처럼 힘을 들이지 않고 다루는 사람의 자지가 꺼떡이면서도 일단은 조금 물러났으나, 다음 순간 접합부에서 바람 새는 소리가 날 정도로 거세게 밀고 들어왔다. 그 소리에 질겁을 한 올린이,
“흐아아, 으흑!”
하며 앞으로 달아날 듯 몸을 기울였으나 정비의 팔이 놔주지 않았다. 오히려 자세를 그대로 한 채 몇 번이나 쳐올리는 바람에 그 빡, 빡, 하는 소리가 몇 번이나 더 울리고 말았다. 그 소리를 창피하게 여긴 올린이 드물게 울먹이면서, 하지 말라는 것과도 닮은 소리를 냈지만 괜찮다고 달래 주자 곧 잠잠해졌다. 올린은 제 정강이를 감싼 정비의 손 위에 제 손을 겹친 채, 온몸이 통째로 흔들리느라 마구 휘둘리는 감각에 제 몸을 맡겼다. 그 지탱할 데 없는 감각, 온전히 자신의 몸을 꿰뚫는 사람의 자비 외에는 기댈 데 없는 기분은 예전에 물건으로서 소용될 때 늘 느꼈던 기분과 무척 흡사했다.
그러나 끝이 없는 추락 끝에 기다리는 것이 제 몸을 산산조각 낼 충돌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처럼, 올린은 그 정처 없는 무력을 즐겼다. 어쩌면 그 순간 정비의 손이 한 대쯤 엉덩이를 후려쳐 주었으면 기쁨에 자지러졌을지도 모를 정도로 올린은 무언가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자신의 손으로 끊을 수 있는 구속, 제가 그만두겠다고 선언하는 순간 그치는 고통은 올린에게도 쾌락일 것 같았다. 그런 식으로 성애를 배운 것은 슬프고 가여운 일이었으나 즐거움을 위해 통증을 갈구하는 취향 자체는 불쌍할 일도 아주 드문 일도 아닐 테다.
그러나 정비의 격렬한 봉사 끝에
“형, 나, 아, 으.”
하고 벅찬 소리를 내뱉던 올린은, 앞뒤로 움직이던 자지가 쩌억쩍쩍 소리가 나도록 좌우로 마구 흔들리다가, 다시 한 바퀴 돌고 깊숙한 데 안착이라도 하듯 콱! 박힐 때에는,
“아흑! 하, 혀, 혀엉….”
하고 어딘지 숨까지 딱 멈추며 고난을 견디는 것 같은 소리를 냈다. 그러다 정강이를 감싸던 정비의 손이 떨어져 나가고 올린의 양볼기와 허벅지 사이를 터뜨릴 듯이 쥔 채로, 퍽, 퍽, 퍽퍽, 퍽, 하고 몹시 화난 사람이 패들로 매질하듯이 거친 추삽을 할 때는,
“악, 악! 형! 나! 주, 죽! 어.”
하고 벗어나고 싶어 하는 듯이 움직이면서도, 또 한 편 뒤쪽으로 손을 돌려 그 몸을 꽉 붙잡아 제게 더 가까이 붙이며,
“으헝, 아아앙, 흐흑…하앙!”
하고 평소와는 전혀 다른 교성을 질러 내는 것이었다. 정비의 자지와 올린의 자지에서 동시에 정액이 뿜어 나올 때, 올린의 구멍에서 또한 묽은 장액이 쏟아졌다. 시트가 축축하게 젖어 들어가는 동안 올린은 눈을 뜨지도 못한 채 시트와 정비의 몸에 제 경련하는 몸을 마구 비벼 댔다. 강렬한 충격을 받아 온몸의 근육이 굳은 사람처럼 펄떡펄떡 튀는 몸을 무리하지 않게 버텨 주며 정비는 올린의 얼굴을 확인하려 했다. 처음 애인과 섹스한 어린 남자애처럼, 올린이 정말로 즐거웠는지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눈썹 사이에 길게 주름이 지도록 잔뜩 일그러뜨린 이마 아래 감긴 눈꺼풀이 불룩거렸다. 눈을 뜨게 해서 동공의 상태를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짧은 듯 단정한 코끝은 한참 울고 난 아이처럼 빨갛게 달았다. 그 아래 크지도 않은 입술이 커다랗게 벌어지고 그 안의 혀마저 파르르 떨었다. 눈물과 침이 주르르 흐르는 살 없는 턱을 정비는 닦아 주지 않았다. 대신 불편한 자세로 박히느라 허리가 뒤틀리고 사지가 움츠러든 몸을 가만히 안아 주었다. 몸을 씻기고 깨끗하게 시트를 교환한 침대에 눕힐 때까지 올린은 쾌감의 여운으로 멍한 얼굴이었으나 그래도 정비는 불안해했다. 이런 것으로는 잡을 수 없을 게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