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오타 (44/65)

# 오타

정아는 정환과 올린의 사이에서 벌어진 일도 정규가 올린을 데리고 철없는 짓을 벌인 것도 뒤늦게 알았다. 그러나 그 모든 사건의 추이가 짜릿하도록 마음에 들었다. 먼 데서 살 올린이 어떤 식으로 제 삶을 꾸려 가는지를 관찰하는 것도, 정규가 형제들로부터 빼돌린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라고 그는 생각했다. 쭈뼛대다 비로소 사람답게 사는 법을 알게 되었을 때 도로 데리고 와 원래의 자리에 앉히면, 올린이 그 예쁜 얼굴로 얼마나 많이 울지를 상상해 보기도 했다. 자유의 시간 동안 만들어질 수영복 자국이 다 지워지도록 오랜 시간을 어둠 속에 가두어 놓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 그는 발기했었다.

캠프 이후 도난되었던 것을 되찾아 온 후 올린의 모습은 정아의 마음을 울리는 데가 있었다. 폐기하기엔 아깝도록 희귀한 놈이었다. 대개의 생물이 살고자 하지만, 그것은 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을 때의 이야기다. 짐승도 생존이 힘든 상황에서는 후손을 학살하거나 자살을 꾀하기도 한다. 정아는 올린처럼 살 만하지도 않은 삶에 대해 집요한 집착을 보이는 산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여러 번 죽을 뻔했으니 그 집착은 관성이라는 이름을 붙여 부를 수도 없었다. 미쳤어도 치아코로서, 입안에 음식을 욱여넣는 것조차 생에 대한 갈구였다. 그 꼴이 되어서도 빈속을 채워 힘을 얻고자 하는 의지는 대체 어디에서 비롯하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어떤 종류든 어떠한 방식이든 다 괜찮았다. 그가 바라는 것은 올린이 자신이 설계할 수 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고통을 받는 것이었다. 매를 치고 가두어 두고 강간하는 것은 지루했다. 현금화할 수 있는 값비싼 보석을 몸에 달아 준 것도, 동생들의 충돌을 예견하고도 셋만 함께 둔 것도, 자신이 계획하지 못하는 새로운 일이 벌어지기를 기대해서였다. 홀로 달아나 거짓의 자유를 누려도 좋았다. 동생 중 하나를 유혹하여 달아나는 것도 좋았다. 지속적이고 보이지 않는 개입으로, 결국에는 불행을 향해 가도록 조종해 주면 될 일이었다.

정아의 망가진 마음속에도 스스로 사랑이라고 정의하는 감정은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건강한 마음이 추구하는 사랑과도, 흔히 병든 마음들이 원하는 사랑과도 달랐다. 상대를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나 상대의 마음을 사는 것도 아니며, 언제든 만질 수 있도록 곁에 두고 소유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의 사랑은 오직 올린이 색다른 고통을 겪고, 그럼에도 지금처럼 살아남길 바란다. 그 모습을 관찰할 자신을 즐겁게 해 주기를 원한다. 휘지도 꺾이지도 않는 의지를 갖춘 것이 언제쯤 죽음을 원하게 될지 궁금해하며 제 호기심이 채워질 순간을 기다린다. 그러나 올린이 그렇게 되는 순간 자신의 사랑은 절로 거둬질 것이었다. 다른 이들과 똑같이, 정아도 사랑을 잃고 싶지는 않았다. 과히 어렵지 않은 일임에도 극단적인 짓을 하지 않은 것은 올린의 발버둥을 연장하기 위함이었다.

정아는 공항에서 정규가 올린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눈을 빛냈다. 순진한 이복형제를 동정하는 마음보다 올린의 돌발 행동을 사랑스러워하는 마음이 더 컸다. 그가 어디까지 달아나서 어떤 새로운 삶을 꾸려 낼까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분 단위로 올린의 이동 경로를 알려 달라 일렀는데, 바로 몇 분 뒤 이어진 보고 내용은 그를 김새게 했다. 어머니가 올린을 직접 죽이려 하실 줄은 몰랐다. 정환의 부상은 모친에게는 대단히 화가 나는 일인 모양이었다.

‘정환아. 어머니가 올린이를 데리고 가신 것 같아.’

그는 동생에게 메시지를 보낸 후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둘 다 저택에 있었으나 각자의 방에서 시간을 보내던 참이었다. 동생의 방문을 두드리고, 문가에 선 채 핸드폰을 흔들어 보였다. 이미 메시지를 본 듯, 정환은 목을 가리는 두꺼운 니트의 목 부분을 더 끌어올려 입을 가린 채로 장남을 흘끗 바라보더니 눈앞에 있는 형에게 핸드폰으로 답신했다.

‘어쩌라고’

그 못돼 처먹은 얼굴에 붙은 심술은 당연히 형을 향한 것이 아니었으며, 올린에 대한 분노로 인한 것도 아니었다. 정아는 귀여워하는 동생이, 올린으로부터 용서받지 못할까 봐 두려운 나머지 도리어 노여워하는 척하는 중임을 알았다.

보통의 연인이라면 지긋지긋해할 그 회피하고 방어하는 성향을 과거 올린은 용서하고 품어 줬었다. 장미 정원에서의 일을 모르는 사람 눈에도 그것은 빤했다. 정아는 이번에도 올린이 정환에게 아량을 베풀 것인지, 아니면 어리석은 막냇동생이 조금이나마 성장하여 예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인지,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니게 될 것인지 궁금해하면서 말했다.

“걔, 그냥 두면 고문당하고 죽을걸.”

정환은 입을 다물고 잠시 먼 데를 보는 척이었다. 정아는 동생의 마음속에 초조함과 두려움이 뒤끓도록 내버려 둔 채 잠시 올린의 처분을 고민했다.

양친은 액받이 따위의 사소한 일에 자주 관여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러나 고작 물건 하나가 아들을 상하게 했으니 이번은 다른 모양이었다. 횡액을 몰고 온 놈이니 물로 죽일 것이고, 아마도 어머니라면 그중 제일 오래 걸리는 죽음을 선택할 것이다.

지금은 겨울이니 야외의 물에 담가 두는 것은 너무 간소하고 짧은 고통만을 준다. 저체온증이나 익사로의 사망은 너무 자비로운 방법이었다. 정아는 추위를 느낄 뿐 죽음을 선사하지는 않을 정도의 온도를 유지하며, 가슴까지 잠기는 물 안에 사람을 묶어 세우고 한 달이 넘도록 방치하는 업체를 알고 있었다. 최소한의 영양 공급을 병행하는 지루하고 긴 고문 끝에 피부가 썩어 사망토록 하는 일도 있고 원하는 것을 얻어 낸 다음 풀어 주는 일도 있지만, 그런 식의 손 많이 가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는 정아가 알기엔 딱 한 곳뿐이다. 어머니도 아마 그곳에 올린을 맡길 것이다.

그는 업체의 사무실로 연락하여 태연스럽게도, 어머니 대신 연락한 장남의 행세를 하며 올린의 이송상태를 확인했다. 정아도 이전에 업체와 거래한 일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공항에서 서울의 사무실을 통하지 않고 바로 고문 장소로 옮겨진 올린은 곧 이어질 고문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하루를 구타당한 후 그를 위해 준비된 더러운 수조에 들어갈 참이었다. 정아는 다시 한번 정환의 얼굴을 보고, 그가 아무 말이 없음을 재미있어했다. 어머니는 바로 며칠 전 의식을 찾았으나 사람 구실을 하게 될지 모를 차남의 재활을 위해 온종일 병원에 붙어 있을 테니 당분간 하찮은 것의 폐기가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할 만큼 한가하지는 않을 거다.

흠씬 쥐어 패거나 수조의 물에 처넣는 대신 한북동 저택으로 배달해 달라고 한 마디만 말한다면 바로 그렇게 되었을 텐데, 정아는 문득 이쪽을 바라본 정환의 퀭한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동생을 향해 빙긋이 웃었다. 며칠 고생시키고 놀라게 하여 데리고 오는 것은 정환과 올린의 관계에도 신선한 전환점이 될 터다. 게다가 이미 너덜너덜해졌을 애를 더 밀어붙이고 싶은 충동은 좆이 설 정도로 감미로운 즐거움을 준다. 아무 말 없는 동생을 마주 보던 정아는

“그럼 내가 좋을 대로 한다?”

하고는 정환의 방문을 닫으며 돌아섰다. 아무리 구멍 동서 간의 형제라고는 하지만 고뇌에 찬 막냇동생 앞에서 발기한 자지를 보이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그는 업체에 전화하여 예정대로의 진행을 부탁한 후 제 방으로 돌아갔다. 그의 지시에 올린에게 헬멧이 씌워질 것을 알았다. 예전에 이 업체를 사용했을 때 서비스 대상 하나가 수조에 들어가기도 전에 매질 때문에 죽어 버린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비슷한 일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이제 그 업체는 사람의 몸을 구타하기 전에 안정제 성분을 주사하고, 뇌진탕을 방지하기 위해 헬멧을 씌운다.

방으로 돌아가자 침대에는 올린이 입던 파자마며 속옷 따위가 널려 있었다. 조금 전까지도 만지작거리며 가지고 놀던 것들이다. 침대 가에 앉아 그중 자주 입혔던 푸른 니트를 껴안고, 이제는 희미해진 향기를 맡았다. 지금쯤 올린이 손이 뒤로 묶인 채 그 폐공장의 지하실로 들어섰을 것이다. 이제쯤 그 조그맣고 동그란 머리에 무지막지한 오토바이 헬멧이 씌워졌을 것이다. 정규가 골라 입혀 줬을 옷 아래에 마르고 납작한 가슴이 헐떡이느라 오르내릴 것이다. 그 가슴을 군홧발로 차여 바닥에 넘어지는 순간,

‘커헉,’

하고 신음하는 소리는 제대로 새 나오지도 않을 것이다. 올린은 헬멧 안에서 더욱 크게 울리는 제 헐떡이는 숨소리를 들으며 어쩌면 울고 어쩌면 울음을 참을 수도 있다. 정아는 그 애가 울음을 참느라 턱을 올록볼록하게 만들고 커다란 눈으로 어딘가를 노려보는 것 같은 시선을 할 때의 얼굴이 정말 좋았다. 발그스름하게 상기되는 그 낯 하나만을 바라고 올린을 혼내던 날도 있었다. 헬멧 덕에 뺨을 맞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하얀 얼굴은 붉게 달아오를 것이다.

배를 걷어차이고 멱살이 잡혀 시멘트 벽에 던져지고, 각목 따위의 무지막지한 것으로 어깨나 등을 얻어맞다가 올린은 달아나고자 시도할지도 모른다. 손이 묶인 것이 어설프게 몸을 일으키는 동안 재미있는 구경이라도 하는 듯 지켜보던 남자들을 피해, 갈 곳 없는 것도 모르고 거친 바닥을 더듬거리며 몇 걸음쯤 달릴 수도 있었다. 굽은 허리를 펴지도 못한 채 달아나던 팔이나 뒷덜미가 잡히거나, 아니면 다리가 걸려 넘어져서 붙잡히면 매질은 더욱 거세어질 것이다. 올린은 오래 굶는 삶을 살아온 탓에 비위가 약하고 속이 연했다. 조금만 무서운 일을 겪어도 쉽게 토하던 그 애가, 마구잡이의 린치에도 토하지 않을 리가 없다.

지금쯤 올린은 저항을 포기하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을지도 몰랐다. 천성이 유순하고 겁 많은 녀석이니 다그치는 소리에도 벌벌 떨며 다음의 매질을 기다리는 중일 것만 같았다. 그 애는 차마 소리 내어 말하지 못할, 아파요, 괴롭습니다, 잘못했어요, 때리지, 말아 주세요, 하는 말들을 속으로만 되뇌며 마른 몸을 들썩거릴 것이다.

정아는 현실과 조금은 다르되 많은 것이 같은 그의 상상 속에서 올린이 우는 목소리를 환청처럼 들었다. 니트를 껴안고 뒹굴며 사랑하는 사람이 지금 겪고 있을 두렵고 아픈 처지에 대한 상상으로 수음하기 시작했던 그는 정아 형, 정아 형, 제발- 살려 줘요, 살려 주세요, 하고 실제의 올린은 결코 울부짖을 리 없는 소리를 그리던 중에 길게 파정했다. 보드라운 캐시미어의 감촉에 느린 한숨을 쉬다 눈을 떴을 때, 그의 한쪽 눈에서는 맑은 눈물이 한 방울 굴렀다.

낯선 소리가 문 쪽에서 들렸다. 고개를 들고 싶지 않을 정도로 나른했으므로 그는 눈만 돌렸다. 막냇동생이 어느새 들어와 남의 자위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바로 몇 분 전과 달리 파랗게 질린 얼굴에 헛웃음이 터졌다. 저럴 것을, 바보같이 허세였다.

정환은 핸드폰에 급히 글을 쓰며 걸어와 꼴사나운 모습으로 쓰러진 형에게 내밀었다. 오타투성이의 문장을 읽은 그는 게으르게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내가 전화하는 것보다 그냥 네가 직접 가서 데리고 온다면 더 극적이지 않겠어? 너 걔랑 풀어야 할 것도 있잖아, 올린이가 너 보면,”

그러나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환은 다시 문장을 써서 내밀었다. 형의 멱살마저 잡을 기세였다.

‘빨리애죽긱너제’

정환의 눈에는 눈물마저 고여 있었다. 핸드폰을 내민 손이 바들바들 떨었다. 솔직하지 못한 동생이 정말 사랑스러워서, 더욱이 부탁을 들어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는 정환이 말하는 대로 업체에 전화하여 올린에 대한 폭력을 멈추는 간단한 방법을 택하는 대신, 올린이 지금쯤 온몸이 흐물흐물해지도록 얻어맞고 있을 폐공장의 위치를 동생에게 알려 주었다. 둘이 상봉하는 순간의 감동적인 순간을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지만, 눈치 없이 따라 나서서 분위기를 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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