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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짓말쟁이 (42/65)

# 거짓말쟁이

혼미 속에서는 추위 말고 다른 것들을 느꼈다. 어둠 속을 오래 달리는 차의 진동도 통증이었고 혼란한 빛의 산란도 올린에게는 통증이었다. 들쳐 메지면서 느꼈던 둔통이나 심장이 멎는 것 같은 뻣뻣한 충격 같은 것도 괴로웠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몸을 덮어 감싸는 다른 사람의 뜨거운 체온으로 달래어졌다. 의식 없는 올린은 얼음장 같은 제 사타구니를 덥히기 위해 두 다리 사이에 끼워진 단단한 허벅지를 제 마른 허벅지로 꽉 조이며 매달렸다. 얼어서 오그라든 자지는 아무런 성감 없이 더운 남자의 몸에 비벼졌다.

물이 찰박거리는 듯한 소리에 소스라쳐 깨어났다. 그러나 자신이 있는 곳은 얼음물 안이 아니었다. 이곳은 낯선 욕실이었다. 조악한 색상의 타일이 붙은 좁은 욕조에 담긴 더운물 속으로 부드럽게 놓인 참이었다. 다친 발에는 종아리까지 두껍게 수건이 말려 젖지 않도록 욕조 밖으로 내밀어져 있었다. 제 손을 잡고 더러운 머리카락에 더운물을 끼얹는 것은 낯익은 얼굴이었다.

“정신이 들어?”

정규는 물었다. 올린은 잠시 그 무시무시한 얼굴을 올려다보다가 어설피 웃었다. 눈 밑이 시커멓도록 상한 얼굴 위에는 아직도 악착이 묻어 있었다.

“네. 형.”

정규가 자신을 진정으로 가치 있게 여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올린은 생각했다. 정규는, 그동안 올린이 네 도령의 액받이로 살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형제들의 관계에서, 어딘지 항상 얇은 선 밖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마지막 순간에 던졌던 사랑한다는 말이 정규에게 먹혀들었던 것은 그에게 있어 올린의 마음이 의미 있었다기보다는, 다른 형제들에 자신이 우선할 수 있는 것에서 티끌만 한 기쁨을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올린은 믿었다.

어찌 되었든 그는 지금 정규를 사랑해야 했다. 작정한다면 당장 몸을 덥혀 주는 이 목욕물에라도 머리를 눌러 자신의 숨을 앗을 수 있는 두려운 사람 앞에서 웃을 수 있던 동력은 생에 대한 절박함이었다. 그는 정규가 진흙이 엉겨 붙은 머리카락을 씻어 주려고 샴푸를 찾으려 고개를 돌린 순간에도, 솟아오른 눈물을 담은 눈으로 주위를 재빨리 둘러보았다. 저항할 수 있는 방도를 찾는 태도가 자연스러웠다. 이전의 올린이라면 두려워 덜덜 떨었을지언정 무기를 찾아 두리번거릴 생각은 하지 못했을 터였다. 결국 아무것도 찾지 못했지만, 예전의 올린과 지금의 올린은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조심스러운 손으로 머리를 감겨 주면서, 정규는 이곳이 다급하여 들어올 수밖에 없었던 무인텔이며, 곧 조금 더 묵을 만한 곳으로 옮길 예정임을 알려 주었다. 올린의 시신을 처리하기로 했던 업체가 저수지 바닥에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면 주변부터 수색할 터니 너무 가까운 곳에 있을 수도 없었다. 그 말에 올린의 감은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정규는 그 눈물이 공포에서 비롯했다고 생각하여 이제는 괜찮다고, 자신이 잘못 생각했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거라고 말해 주었다. 그러나 사실 그 눈물은 제 시체를 처리할 업체마저 준비해 둘 정도로 용의주도하게 자신을 죽일 생각이었던 정규에게 다시 한번 상처 입어 흐른 고통의 눈물이었다.

정규는 참 다정히도 자신을 돌봐 주었었다. 그게 귀엽게 여기는 장난감을 대하는 마음인 것을 몰랐던 것도 아닌데 자꾸만 마음이 시렸다. 목욕을 시키고 가운을 입히고 머리를 말려 주고, 바닥에 무릎 꿇은 채 침대에 앉은 올린의 발을 돌보아 주고, 초콜릿 따위를 입에 넣어 준 다음 이불 속에 눕혀 주는 내내 올린은 언제쯤 정규가 제게 자지를 박아 넣을까 하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살린 이유가 독차지하여 가지고 놀기 위함이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이상하고도 불안했다. 그는 자신을 마주 보고 누운 정규의 얼굴을 조심스레 살피고, 가만히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제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팔다리로 웅크린 채 정규의 사타구니에 코를 묻자, 커다란 것이 튕기듯 일어서 올린의 뺨을 때렸다.

커다란 것을 물 수 있을 만큼 입을 벌리자, 찢겼다가 어설프게 붙었던 입술 한쪽이 도로 뜯겨 피가 흘렀다. 올린은 손등으로 제 피를 훔치며 탁탁하고도 청결한 살냄새 풍기는 자지를 뜨거운 입에 담았다. 두터운 귀두가 입천장을 긁자,

“흐으….”

하고 올린과 정규가 동시에 신음했다. 올린은 자지가 입을 빠듯하게 채우며 점점 깊이 들어오는 감각에 충만한 안도를 느꼈다. 입술에 정규의 음모가 닿았다. 숱이 적지 않고 갈빛을 띠는 음모에 콧잔등이 짜부러지도록 얼굴을 비비며, 잠시 목 깊은 데서 꿈틀대는 굵은 흉기를 느꼈다. 구역질하지 않고 구음하는 것은, 이제는 익숙했다. 목젖을 스치는 기다란 감각에 눈물은 고였으나 자지에 압박을 줄 만한 구역은 오르지 않았다.

정규는 올린의 성심을 다한 연기에 반쯤은 진심이 묻어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믿기로 했다. 아니겠지만, 아니더라도, 이편이 편했다. 비록 그가 정규 자신을 두려워하고 있긴 하되, 몸으로 나누는 사랑만이라도 진실로 갈구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올린은 크고 딱딱한 자지가 제 목구멍 속 깊은 곳에 쳐들어가도록 스스로 움직이며, 마치 쾌락을 느끼는 것처럼 허리를 움찔거리고 곧은 자지가 꺼떡거리도록 빨딱 세웠다. 그럴 때 동그란 볼기 사이를 더듬어 보면 구멍은 바라는 게 있는 듯이 촉촉이 젖어 오물댔다.

“형, 엉덩이, 때려 줘요,”

올린은 정규가 자신을 때리는 것을 즐기는 것을 알아 그런 소리도 했다. 맞는 건 무서웠지만 매를 두려워한 나머지 사용자에게 재미를 주지 못하고 얼음물에 처박힐 게 훨씬 더 무서웠다. 정규는 처음엔 물건 아닌 사람인 올린에게 손을 대도 될까 하고 망설였지만, 생각해 보면 성감을 돋우기 위한 스팽킹은 자신이 인간 대 인간으로 교감했던 다른 애인들과도 흔히 즐기던 일이었다. 게다가 올린 본인이 바라는 것처럼 보였으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올린은 집요할 정도로 자지에 집착했다. 체력이 따라 주지 못해 오래 하지 못해도 자주 달라붙었다. 매 맞아 벌건 엉덩이 사이로 남자를 문 채 흔들리고 흔들다가 어느 순간 기절하듯 잠들기도 했다. 평범하게 잠자다 아래가 버거운 감각에 깨어나, 발기한 자지가 제 안에 들어와 있는 걸 발견할 땐 반가워하는 것 같았다. 끈덕지게 속을 짓이기는 아픔 속에 올린은 정규가 자신을 사용하고 있음에 안심했고, 정규는 자신과 사랑을 나누는 것을 올린이 기뻐하는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들은 서로의 몸을 탐하고 나면 긴 잠을 잤다. 둘 다 몹시 피로했지만 올린이 더 길게 깊게 잤다.

눈을 뜨면 침대가 바뀌어 있었다. 그들은 심상 계열사가 아닌 호텔을 골라 짧은 투숙 후 이동하는 방식으로 보름의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정규는 말이 나지 않을 만한 의사를 데려와 올린의 발을 봉합했다. 올린은 제 발바닥의 깊은 데부터 거죽까지를 차근차근히 꿰매는 젊은 의사를 내려다보며 저 사람도 집에 액받이를 두고 있을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때때로 정규는 올린을 홀로 남겨 둔 채 외출했다. 올린에게는 정규가 사다 준 바지도 셔츠도 있었다. 그렇지만 혼자 남겨진 호텔방을 떠나려고 문고리를 잡다 말고 그는 늘 주저앉았다. 아직 발이 낫지 않아 제대로 걸을 수 없어서, 옷은 있지만 신발은 없어서, 어디로든 가려면 돈이 필요한데 가진 게 없어서, 나는 못 가, 나는 아무 데도 갈 수 없어, 하고 합리화하는 마음 깊은 곳에 대체 무엇이 들었는지 올린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어느 날 정규는 말소된 기록을 살리느니 타인의 이름을 빌리는 게 낫다며 낯선 이름의 여권을 가지고 왔다. 올린은 저택에서 매일 찍혔던 제 사진이 증명사진으로 바뀌어 여권에 붙은 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슬픔과 고통을 필사적으로 숨긴 무표정한 얼굴을 바라보며 정규는,

“너답게, 잘 나왔어.”

하고 칭찬하며 이제 피딱지가 떨어진 올린의 입술에 입 맞췄다. 아무렇지도 않게 엉덩이 사이의 봉긋한 구멍을 더듬었다. 올린은 눈을 감지도 않고 그 키스에 응하며 선선하고도 느릿하게 다리를 벌렸다.

그다음 날에는 몇 장의 외국 사진을 보여 주었다. 정규가 손가락으로 휙휙 넘기는 사진들은 먼 나라 어느 도시들의 풍경이라고 했다.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같은 도시인지도 모르는 채 멍하니 바라보는 올린에게,

“어디가 제일 마음에 들어?”

하고 집요하게 물었다. 반드시 대답을 듣고 말겠다는 표정에 올린은 바닷가에 누런 개가 선글라스를 쓰고 앉아 있는 사진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정규는 그 자리에서 항공권을 예매했다. 나흘 후면 떠날 수 있다고 말하면서였다. 가서 살자, 둘이서, 정규의 말에 심장이 요동쳤다.

그는 사람답게 살도록 해 주마고 말했다. 원한다면 학교에 다니게 해 줄 수도 있고, 공부가 싫다면 매일 놀게 해 줄 수도 있고, 일하고 싶다면 가게를 사 주겠다고도 했다. 그리고 매일같이 섹스하자고 했다. 넌 아프게 맞아야 젖잖아, 그렇게 좋아하니 형이 매일 때려 줄게, 하고 몸과 마음을 구분해 내지 못한 오해를 말하며 올린의 젖꼭지를 꼬집어 뜯으면, 올린은 무서운 마음을 참고 꿋꿋이 웃었다. 보여 주는 영상들은 비현실적이었다. 나무 모양이 이상하고 도로의 색깔이 다른 곳에서 몸에 상처 없이 건강한 사람들이 걷고 뛰며 아이스크림을 핥고 햇볕을 쬐고 있었다.

그러나 올린은 그런 것들을 보고 정규의 이야기를 들을 때, 자신의 가슴이 뛰는 것이 기대가 아니라 불안과 공포에 기인한 것임을 알았다. 불안은 미지의 것을 대할 때 누구든지 갖게 되는 감정이지만 올린의 경우에는 그 감정의 결이 달랐다.

정규는 지금 비록 올린을 극진히 다루고 있지만 자신을 죽이려던 남자다. 올린은 자신의 사람다움이 오로지 정규의 자비 혹은 동정 혹은 다른 어떤 것에 달려있음이 불안했다. 그가 올린에 대한 판정과 처분을 달리하는 순간, 다시 또 다른 나락이다. 아무리 정규가 피가 나고 살이 찢기도록 때리지는 않겠다고, 묶어 매달아 며칠 밤낮을 지새우게 하지 않겠다고, 쇠약해지도록 오래오래 굶기거나 어둡고 좁은 곳에 가두어 두지 않겠다고 해도 그건 믿을 수 없는 맹세였다.

정규가 제 몸을 재미없게 느끼고 형제들에게서 훔쳐 온 것이 의미 없음을 알아채는 그날, 자신은 다시 얼음물에 들어가게 될지도 몰랐다. 만일 끝내 목숨을 건지고 안락한 생활마저 하게 된다 하여도 다르지 않다. 제 발로 서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의 마음에만 기대어 새로운 삶을 찾는 것이 정말 사람다운 일이라고 할 수 있을지, 그는 확신할 수 없었다. 남의 발 위에 선 채 왈츠를 추는 것은 어린애가 해야만 귀여운 일이다.

정규는 말했다.

“내가 지켜 줄게.”

그러면 올린은 대답하는 대신, 정규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그의 뺨을 쓰다듬었다. 하지만 가슴 깊은 곳에 떠오르는,

‘도련님 자신으로부터도 절 지켜 주실 수 있습니까, 제가 절 스스로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실 수는 없습니까.’

하는 질문은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묻는 순간 모든 것이 끝일 것만 같았다. 정규가 받아 준 더운물에 몸을 담근 채 그가 했던 다정한 말들을 돌이키면, 가끔 눈물이 흐르기도 했다. 그 눈물에는 여러 가지 기분이 함께 섞여 맵고 짜고 쓴 맛이었다. 하지만 올린은 오로지 혼자 골똘히 탐구한 결과로 저가 아는 모든 것을 깨쳤을 뿐 자신의 감정에 하나하나 이름을 붙일 수 있을 정도로 배움 깊은 사람은 아니었다.

올린의 목욕이 길어질 때면 정규가 욕실 문을 톡톡, 두드리고 들어오기도 한다. 그러면 올린은 허둥대다 욕조 속으로 미끄러지는 일도 있었는데, 정규는 그런 올린을 건져 내면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아래 풀렸지? 형이랑 잘까?”

하는 소리와 함께 빙긋이 웃으며 아래로 손을 넣었다. 그런데 오늘은 올린이 천 갈래로 갈라져 해파리처럼 흔들리는 마음으로 정규를 맞이한 탓에 그 장난스러운 유혹에 바로 응대하지 못했다. 그의 얼굴이 닮은 구석이라고는 없는, 어리석고 못된 동생과 겹쳐 보이자 두고 온 나머지 두 도령도 덩달아 떠오르는 건 순식간이었다. 애석한 일이라고 올린은 생각했다. 넷 모두 그를 학대하였으나 정작 그가 함께 달아나게 된 사람은 자신을 죽이려 했던 사람이다. 죄질을 따지자면 이 사람이 가장 나쁘지 않을까, 하고 올린은 어느새 저 자신을 판관의 입장에 두고 냉담한 마음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올린은, 죽음의 순간이 아니라면, 표정을 꾸미는 데 익숙하였다. 냉담함을 무심으로 가장한 올린의 마음은 읽히지 못했다기보다 무시되었다. 정규는 배우다. 남의 연기를 구분하지 못할 리 없었다. 그렇지만 아는 체했을 때 자신이 마땅히 취해야 할 행동과, 모르는 체했을 때 스스로 누릴 수 있는 것을 비교해 볼 때, 정규로선 아둔함을 연기하는 편이 나았다. 그는 평소와 다른 얼굴을 한 올린의 눈썹 뼈에 입을 맞추어 주며, 섬세한 눈썹의 오라기 하나하나에 맺힌 물을 빨아 삼킬 듯이 곰살궂게 굴었다. 골반을 타고 내려간 손이 치골을 마사지하듯이 문지르며 손등뼈로 불알을 밀듯이 쓸었다. 비로소 한 박자 늦게 벌려 주는 다리 사이가 생각만큼 달아오르지 않았음에 의아해하다가,

“때려 줘?”

하고 물었다. 협박이 아니라 유혹하는 듯한 그 목소리에 올린은 고개를 잔뜩 숙이며 제 턱을 쇄골에 묻을 것처럼 웅크린 채 고개를 저으려 했다. 그러나 확인하듯이,

“싫어?”

하는 목소리에는 그만 도로 겁을 먹어,

“네, 형, 때려 주세요….”

하고 영락없이 수줍어하는 듯한 목소리를 내고 말았다.

정규가 호텔 현관의 옷장에서 코트 브러시를 들고 오는 동안, 올린은 욕조 밖에 서서 물기와 눈물을 닦고 그를 기다렸다. 그러나 정규는 주춤거리며 서 있는 올린을 향해,

“누가 물을 닦아도 좋다고 했어. 다시 욕조에 들어갔다가 나와.”

하고 명령하여 다시 몸을 적시도록 했다. 흠뻑 젖은 채의 올린은 정규가 자세를 잡아 준 대로, 욕조 밖에 선 채 욕조 안쪽의 벽에 손바닥을 대고 엉덩이를 내밀었다. 다른 지시가 없었으므로 다리는 예전에 저택에서 체벌을 받을 때의 기본자세로 무릎을 붙이고 곧게 폈다. 고개는 들어 정면의 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정규는 올린의 척추골에 입을 맞춰 주며,

“아니야, 올린아, 다리를 벌려야지….”

하고 웃음 섞인 불만을 표현하고 올린의 허벅지 안쪽을 손으로 잡아 부드럽게 당겼다. 헐떡이며 따르자, 정규는 그 옆에 선 채 손을 올린의 앞으로 하여 자지와 불알을 애무했다. 올린이 끙끙거리는 소리를 내며 집요한 손으로부터 제 예민한 데를 구제하려는 듯 엉덩이를 뒤로 쑤욱 내밀었다. 그러면서도, 정규가 들고 온 단단한 브러시가 무서운 나머지,

“혀엉, 손으로, 손이 좋아….”

하며 두 발을 번갈아 디디는 모습은 무언가를 졸라 대는 어린애같이 보였다.

“손으로? 내 손이 좋아?”

“응, 네, 형 손, 좋아….”

정규는 패들로 쓰기 딱 좋은 브러시를 내려놓고,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맞고 싶어서 얼결에 한 말이었지만 정규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제 손을 용서할 수 있을 것처럼 느꼈다. 손가락이 길고 곧은 손은 거친 데도 없이 곱기만 했다. 그러나 이 손은 저수지에서 올린의 목을 잡아 얼음물로 짓쳐 눌렀던 그 손이기도 했다.

손등에 푸른 핏줄이 비치고 움직일 때마다 섬세하게 뼈가 도드라지는 손이, 젖은 볼기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찰싹, 살갗에만 미치지는 않는 묵직한 매를 때렸다. 올린은 고개를 뒤로 바짝 젖히며 목 안으로 신음했다.

“응!”

마구간에서의 일이, 그리고 저수지에서의 일이 벌써 삼 주 전이다. 정환에 의해 엉덩이에 맺혔던 동그란 멍은 이제 거의 사라졌지만, 정규와의 정사에서 맞지 않는 법이 없었기 때문에 볼기에는 파르스름한 멍이 군데군데 물들어 있었다. 올린은 정규가 마음먹고 매질할 때 자신의 엉덩이를 얼마나 아프게 찢을 수도 있는지 잘 알았다. 그는 같은 도구로도 몇 배나 괴롭게 매질하는 방법들을 알았다. 패들을 세워서 때려 배 속 깊은 데까지 멍드는 감각을 선사하거나, 케인으로 내리칠 때 본인이 내킨다면 한 치도 벗어남 없이 같은 곳만 타격하는 잔인한 손기술마저 부릴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올린의 쾌감을 생각하며 때리는 매질은 볼기를 붉게 달굴 뿐 상처를 내지도, 지나친 고통을 주지도 않는다.

“흐으!”

정규의 다른 손은 이미 발딱 선 올린의 자지 끝, 귀두를 문지르고 있었다. 힘껏 쥐는 대신 도톰하게 불거진 데만 가볍게 잡고 문지르는 손길은 무심한 것도 같았지만, 문질러지는 사람은 도저히 무심할 수 없을 만큼 저릿저릿한 감각을 일으켰다. 둥글고 매끈하게 도드라진 부분 바로 아래를 손가락 여러 개로 꼬옥 누르듯 조이다가 힘을 주며 위로 쓸면, 그 예민한 부분이 자극되어 올린은 감은 눈꺼풀을 파르르 떨며 엉덩이를 느리게 흔들었다. 그렇게 앞이 붙잡힌 채 엉덩이를 맞을 때마다, 항문 안쪽 깊숙한 곳까지 잘게 이르는 쾌감은 부정할 수 없었다. 올린은 이 짓이, 아무리 소중한 것처럼 대하여져도 한없이 낮기만 한 자신의 위치를 마음에 새겨 넣는 것 같았다. 그러나 발갛게 달아오른 엉덩이에 매가 떨어질 때마다 구멍이 발씬거리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으응!”

정규는 별다른 소리를 내지도 않고 말도 없었다. 예전 같으면 곧은 자세를 유지하도록 하는데 무척이나 집착하며, 조금이라도 엉덩이를 뒤틀거나 등허리가 둥글게 굽으면 엄하게 야단쳤을 거다. 꾸지람할 때의 정규의 목소리는 여유로운 한편 잔혹하기 이를 데 없어서 그가 내뱉는 조롱조의 말들을 듣는 것만으로도 올린은 바짝 기합이 든 채 벌벌 떨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따가운 매질과 속을 간지럽히는 성감에 올린이 볼기를 조금씩 샐룩거려도 혀를 똑똑, 차서 경고할 뿐이다. 그 정도의 지적에도 얼른 자세를 다잡는, 꾀 없고 꽉 막힌 올린의 성정에는 그 이상의 것이 애초에 필요하지도 않았을 텐데 왜 그리 심하게 혼을 내고 기를 죽였는지 모를 일이었다.

새침하게 보일 정도로 똥그랗게 올라붙은 엉덩이가 발갛게 달아서는, 매를 맞을 때마다 움찔움찔 두 볼기 사이의 골을 오므리며 아파한다. 정규는 그 야한 꼴을 보면서도 거친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맞는 이의 아래가 단 것을 보는 때리는 이도 뜨거운 음심을 품었건만 그것을 들키지 않으려 애쓰는 것은, 정규의 마음속에는 둘의 권력관계가 이미 이전과 같지 않기 때문이었다. 액받이에게야 흥분을 보이는 것 따위 신경조차 쓰지 않았었다. 그러나 틀림없이 사람인 상대의 앞에서, 엄히 때리는 역할을 맡은 자신의 흥분이 들통나는 것은, 어쩐지 분위기를 깨뜨리는 일처럼 느껴졌다.

핏줄 돋은 팔뚝이 자지를 놓아주고 불알을 부러 거칠게 흔들었다. 다섯 개의 손가락이 동그랗고 민감한 것을 가지고 노는 모양이 손안에 든 호두알을 서로 비비는 것처럼 조심성이 없었다. 손끝에 말랑한 구체가 함부로 눌리고 서로 비벼지며 올린은 무릎을 굽혔다가 펴고 벽을 짚은 손을 주먹 쥐었다가 다시 펴며 몹시 아픈 것을 참는 사람처럼 끙끙거렸다. 그 꼴에서 성감을 읽은 정규의 손이, 그 애달픈 기분을 고조시키려 찰싹, 찰싹, 찰싹, 찰싹, 여러 대를 이어 때렸다. 볼기 사이의 벌어진 골을 겨냥하여 치니 당연히 안의 구멍과, 구멍 안에 이어진 자지가 들어갈 길이 함께 진동했다. 앞으로 뒤로 느껴지는 음란한 공격에 올린은,

“으으… 흐으, 윽….”

하고 울먹이다가 참지 못하고 손을 내려 제 불알을 쥔 정규의 손 위로 자신의 두 손을 덮었다. 어정뜨게 허리를 펴고 정규를 마주 향하여, 민감한 곳에 대한 험한 손질을 멈춰 달라는 듯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얼굴에 두 눈은 질끈 감긴 채였다. 그러나 놓아줄 리가 없었다. 정규는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나는 올린의 말랑한 볼기를 다른 손으로 턱, 쥐어 뒷걸음질을 막고, 앞을 잡은 손에 조금 더 힘을 주어 손안에 불알과 함께 회음에 매달린 피어싱의 끄트머리까지 쥐어 당겼다. 당연히 올린은 그 손에 이끌려 정규의 품으로 안겨 들 수밖에 없었다.

“아흐, 형, 아파요, 아파….”

“그만해?”

물으면서도 볼기를 쥔 손이 미끄러져 젖은 구멍에 손가락이 들었다. 기다란 중지가 안을 휘적대자 이제 올린은 어쩔 줄 모르고 바로 선 채 제 이마를 정규의 어깨에 기대 왔다. 그는 그만해 달라는 말을 하고 싶어 입을 열었다가, 바로 옆에 욕조 물이 가득한 것을 보았다. 그만하라는 순간 저기에 거꾸로 처넣어져 익사할 것 같아서 차마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는 또 거짓말했다. 거짓말은 한 번 하면 그것을 감추기 위해 계속 다른 거짓말을 하게 된다는 게 사실이었다. 예전에 올린은 저택에 들어간 첫날, 살이 다 찢기도록 모진 매질을 당하면서 거짓을 말해도 진실을 말해도 매는 맞게 될 거라는 말을 들었었다. 그 이후로 어차피 맞을 것, 참말을 하며 살자고 생각하며 지내 왔는데 그동안 하지 못했던 거짓말을 정규 앞에서 다 쏟아 내는 것 같았다.

“아니요, 그만하지 마….”

정규는 정사 중에 올린이 해 대는 때려 달라는, 좋다는, 넣어 달라는, 그만두지 말라는, 괜찮다는, 기쁘다는 거짓말들을 하나도 눈치채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원치 않는 성교를 강제받는 상황에 처한 적도 없고, 마음은 싫어하는데 몸은 기쁘게 반응하는 괴로운 역설을 겪어 보지도 못한 사람이니 몸의 반응이 곧 마음의 소리라고 여기는 것일까, 하고 올린은 제 어설픈 거짓말에 속은 것처럼 자신을 속이는 정규의 거짓을 믿었다.

정규는 듣기 좋은 말을 해 준 입술을 빨아 주려고,

“고개 들어 올린아.”

하고 명령했다. 한 손은 올린의 구멍을, 다른 손은 올린의 자지를 제멋대로 가지고 노느라 턱을 쥐고 들어 올릴 손은 없었다. 정규는 몇 개의 호텔을 전전하며 예전과 다른 방식으로 올린을 탐하는 동안,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손이 하나나 두 개쯤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자지가 몇 개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하나는 빨리고 하나는 넣고 다른 하나는 비비면 좋겠다는 생각은 그게 올린을 더 기쁘게 해 줄지도 모른다는, 그래서 어쩌면 살기 위해 자신을 사랑하는 척 꾸미는 게 아니라 언젠가는 자신을 정말로 사랑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망상에서 비롯한 상상이었다.

올린은 저절로 벌어진 입에 포개어진 정규의 입술을 느끼며, 단전까지 근질근질한 감각과 함께 제 구멍에서 왈칵 쏟아지는 장액을 느꼈다. 정규의 손가락이 막는 입구의 가장자리로 몇 방울이 뛰쳐 나올 정도로 격렬한 배출이었지만 거의 동시에 느껴진 사정감만은 꾹 참았다. 오래 밴 습관은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다. 정규가 딱히 빨리 싸라고 재촉하는 법도 없으니 더욱 그랬다.

“아, 올린아, 존나 예뻐.”

정규의 눈이 흐렸다. 올린은 정규가 출연했던 영화나 시리즈물들을 호텔 방에 홀로 남아 있는 동안 여러 개나 보았었다. 공포물도 있었다. 정규가 죽은 채 걸어 다니던 영상에서 보았던 흰자와 검은자의 경계가 흐릿한 그 눈이 지금 이 눈과 닮았다. 올린은 정규가 눈을 감아 주길 바라며 그 눈꺼풀에 입술을 댔다. 정규는 원하던 대로 해 주다가, 다시 예의 그 탁한 눈을 하고 올린을 껴안듯 들어 올렸다. 흐린 눈을 하고 바라본 올린의 얼굴은 형들이나 동생이 아니라, 반쪽짜리인 자신을 정말 사랑해 주는 것처럼 보였다.

쾅, 욕실 벽에 등을 부딪쳤다. 과히 아프지는 않았지만 입술 사이로 헉, 하는 숨이 샜다. 아무리 마른 편이라고는 하나 예전처럼 심한 저체중도 아닌 데다 키도 큰 자신의 무게를, 정규는 아무렇지도 않게 감당했다. 올린의 손이 저절로 위로 뻗어졌다. 타월 선반이 손에 잡혔다. 그것에 매달리듯 손을 걸자 정규가

“기특해라, 형 생각해 주는 거야?”

하면서 웃었다. 때마침 선반에서 접힌 타월이 떨어져 정규의 머리를 때리고 바닥을 굴렀다. 올린이 대답하지 않고 단단히 손에 힘을 주고, 정규의 허리에 다리마저 야무지게 걸자 정규는 웃으며 타월 선반을 잡아 흔들리지 않도록 지탱하는 건 괜찮지만, 너무 체중을 실어 매달리지는 말라고 주의시켰다.

“어렸을 적에 이 자세로 하다가 선반이 무너진 적이 있거든. 형한테 매달리는 게 안전할 거야.”

그 말에 올린은 선반을 쥐었던 손을 놓고, 슬그머니 정규의 목을 안았다. 등이 벽에 기대어진 상태이기는 하지만 정규는 온전히 올린을 안아 든 채로도 아주 힘든 기색은 아니었다. 크게 벌어진 항문에 거대하게 발기한 것의 둥글고 딱딱한 머리가 닿았다. 정규가 허리를 뒤로 물렸다가 한 번에 힘껏 쳐올리는 순간,

“혀엉!”

하며 기겁하고 정규의 목을 끌어안는 올린의 목소리가 욕실을 울렸다. 정규는 그 끝이 갈라져 색스러움이란 없는 목소리에조차 더욱 크게 발기하며 따뜻한 몸 안을 탐험하기 시작했다. 매 맞은 엉덩이에 음모가 무성한 자지가 세차게 들락거릴 때마다, 올린은 정규의 몸에 또 다른 매를 맞았다. 하지만 아픔보다 훨씬 거대한 환희가 있었다. 그 속에 빠져들어 가면서도 올린은 저가 느끼는 것을 정규도 느끼고 있는 것일까, 제 목숨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그의 희락을 염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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