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미나리에
정아가 나간 날 저녁, 정규는 정환보다 이른 귀가를 하기 위해 대단히 서둘렀다. 정아가 있다면 정환의 몹쓸 짓을 말릴 수 있겠지만, 정규가 정환의 도가 지나친 학대로부터 올린을 구하는 방법이라고는 그를 데리고 자리를 피하는 것뿐이었다.
올린은 늘 있는 그 자리에 단정히 앉아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일어나, 가자, 하고 명령하자 올린은 얼른 지시를 따르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손목을 잡아끌고 주차장과 연결된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이미 현관에서는 정환이 들어오고 있었다. 부랴부랴 안전벨트를 매 주고 데리고 나오면서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어 피식피식 웃음이 샜다.
“오늘 정환 도련님이 저녁에 보쟸어.”
올린이 몹시 두려워하며 말했다.
“알아. 오늘 형도 없으니까 너 오늘 정환이한테 걸리면 죽는 날이야.”
“그런데 내 자리에 없으면 더 화낼 텐데.”
“도로 들어갈래?”
올린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덜덜 떠는 손으로 안전젤트를 부여잡았다.
정환과 마주하여 싸울 수도 있다. 그러나 올린으로부터 광기를 빨아들인 듯 미친 짓을 일삼는 정환의 심기를 건드려 괴롭히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올린을 내버려 둘 수도 없었다. 나중에야 어찌 되든 정비 형이 퇴원했을 때 올린이 멀쩡하지 않더라도, 지금처럼 그 비슷한 상태로는 보였으면 했다. 정규는 옆에 앉은 올린을 곁눈질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것도 불쌍했다. 맞아야 정신 차린답시고 매질을 당하느라 이것도 고생이 말이 아니다.
굶기지 않기로 정아 형과 약속했으므로, 드라이브 스루로 버거와 프라이류를 잔뜩 사 올린의 품에 안겨 주었다. 빨대 꽂힌 네 개의 음료수 중 밀크셰이크를 딱 골라 호로록 빠는 걸 보니 흡족했다. 통제욕 오지는 큰형이 보면 고베규를 기를 때 어떤 음식을 먹이는지 아느냐고 먼저 묻겠지만 올린은 잡아먹을 소는 아니지 않은가.
포장을 벗겨 주어야 할 것 같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바스락거리면서 벗긴 버거를 깨물 때 올린의 눈은 경계하듯 정규를 향했지만 뺏지 않을 것을 아는 모양이었다. 불과 몇 주 전, 걸신들린 것처럼 마구잡이로 삼키던 것과 다르게 제 몫으로 주어진 음식을 야물딱지게 씹는 모습은 단정하고 얌전했다.
잘 먹은 올린이 긴장이 풀려 잠든 사이에 정규의 차가 멈춘 곳은 어두운 실외 주차장이었다. 넓은 대지에 콘서트홀과 박물관 건물이 모인 가운데 광장을 장식한 조명 장식을 보여 주고 싶었다. 이미 한밤처럼 어두운 주차장까지, 콘서트홀에서 들려오는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희미했다. 올린이 앉은 자리가 따뜻한 것을 확인한 정규는 제 코트를 벗어 올린에게 덮고 선루프를 열었다. 찬 공기가 쾌적하게 내려앉고, 음악 소리는 조금 더 선명해졌다.
처한 상황을 떠올리면 지나칠 정도로 평화로워 보이는 얼굴이었다. 눈꺼풀조차 경련하지 않고 고른 숨을 내며 잠든 모습은 오랜만이었다. 정규는 자신도 알 수 없는 충동으로, 엷은 미색으로 빛나는 이마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입술 끝에 닿은 살은 보드랍지만 차가웠다. 순간 가까워졌던 머리카락의 향기가 다시 멀어졌다.
계속 깨어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 조심스러운 애정 표현에 잠을 깬 것일까, 알 수 없게도 올린은 눈을 뜨지 않았다. 다만 버르장머리 없는 손이 조심스럽게 제 볼을 가리킬 뿐이었다. 이마에 뽀뽀했으니 이제 볼에도 해 주세요, 요구하는 듯한 손짓에 정규는 웃지도 않고 시키는 대로 했다. 흰 뺨에 입술이 닿는 느낌보다 지금 액받이로 쓰던 물건이 지시하는 대로 하고 있다는 기분이 더욱 간지러웠다.
올린의 손가락은 반대쪽 뺨으로 향했다. 손가락이 가볍게 스치고 지난 자리를 유심히 보던 정규는 그 손이 시키는 곳에다가 입을 맞췄다. 이번에는 감긴 눈꺼풀 위다. 시키는 대로 했다. 다음에는 콧잔등이었다. 촉, 소리를 내며 뽀뽀하며, 혹여 자신의 헐떡이는 숨소리가 방해될까 숨마저 참았다. 그 많던 애인들에게도 하지 않던 조심이었다.
마침내 눈을 떴다. 물기어린 축축한 동자였다. 반짝거리는 눈에 시선이 붙잡힌 채, 마지막 지시를 살폈다. 이마와 뺨과 눈과 코에 입 맞추라고 지시했던 손가락이 이번에는 제 아랫입술을 꾹 누르고 떨어져 나갔다. 정규는 그 별것 없는 손짓에 홀려서 한동안 바라만 보았지만 올린의 눈은 제 명령을 따를 것임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은 채 당당하고 담담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정규가 고개를 숙여 올린의 입술에 키스하며, 그가 앉은 조수석 쪽으로 상체를 완전히 겹치고 한쪽 다리마저 넘겼다. 정규가 올린의 바지 지퍼를 내리고 허리를 끌어내릴 때, 올린은 얌전히 있지 않았다. 제 팔꿈치로 의자를 짚은 채 허리를 들어 제 옷을 벗기는 손짓에 협조했다. 그 몸짓에도 웃기만 했던 정규는 올린이 손을 뻗어 제 앞섶의 단추를 푸르고 지퍼를 내릴 때에는 경악하여 눈을 크게 떴다. 그 표정이 재미있다는 듯이 쿡쿡 웃는 올린의 요사스러움이 어떤 이름을 달고 있든 상관없었다. 미쳤어도 괜찮다. 올린은 올린이었다.
“넣어 줘?”
헐떡이며 묻자 올린은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저었다.
“왜, 형 자지 좋아하잖아.”
별 든 듯한 눈을 한순간이라도 보지 못하는 게 아쉬워서 정규는 그 턱을 살며시 잡아 자신을 보도록 돌렸다. 시선을 피하려는 듯 슬며시 도로 눈을 돌리는 데 애가 달아서,
“아니야?”
하고 저도 모르게 등신 같은 소리를 해 놓고 정규는 혀를 깨물 뻔했다. 애인들한테도 이렇게 목맨 적이 없었는데 곧 죽을 걸 상대로 무슨 짓이람. 창피해서 물러나기 직전에 올린이 말해 주겠다는 태도로 조그맣게 입을 벌렸다. 저도 모르게 귀를 바짝 갖다 대자, 귓구멍에 숨결과 함께 말을 불어넣는다. 정규는 그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기가 찬 듯 웃었다.
“핥아 주면 넣게 해 줄게.”
완전히 뒤로 넘어간 조수석이지만, 그대로 앉힌 채 아래를 핥기엔 공간이 여의치 않았다. 정규가 잠시 자세를 생각하는 사이에 올린이 먼저 움직였다. 상체를 거의 뒷좌석 쪽으로 넘기다시피 하며 고개를 젖힌 올린은 스스로 접은 양 무릎을 제가 쥐고
“아.”
하고 잔뜩 기대하는 듯한 숨으로 다리를 확 벌렸다. 한쪽 발목에 아직 옷이 걸린 채로도 부끄럼 없이 벌린 다리 사이에 좆은 벌써부터 앞서가서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고 있었다. 이런 것이 어떻게, 정아 형의 엄격한 훈육을 견디는지 모르겠다고, 정규는 숨차게 생각했다. 이전의 올린에게 복종은 그 자체로 삶의 의미였다면, 지금의 올린에게 정아에 대한 복종은 목숨을 연장하기 위한 절실함인 것을 그는 몰랐다.
“얜 왜 울어, 벌써.”
정규가 묻자 올린은,
“형이 너무, 기다리게 해서….”
하고 한 마디도 지지 않으며 눈부신 사람처럼 눈을 찡그렸다. 그 대답을 할 때 양말 아래로 발가락이 배배 꼬이는 것을 발견한 정규가 양말을 벗겨 발가락 사이에 손가락을 넣으려고 했지만, 올린이 왜 빨리 핥아 주지 않느냐는 듯이 개구리처럼 벌린 아래를 뻐끔거렸기 때문에 차마 그럴 시간이 없었다. 채찍으로 후려 맞는 듯한 재촉에 고개를 숙인 정규는 방금 잔뜩 먹였는데도 부풀어 오를 기미가 없는 뱃가죽을 한 번 싸악, 핥고, 운다고 놀림당한 자지를 싹, 싹, 두 번 핥아 준 다음에 동그란 불알을 콧잔등으로 밀어 올리며 목표했던 지점에다 키스했다.
“아아!”
고대하던 입술을 맞이한 구멍은 키스에 젬병인 어린 소년처럼 도리어 입을 꽉 다물었다가, 차근차근히 달래는 절차를 모두 만끽하고 나서야 조금씩 힘을 풀었다. 자잘한 주름을 죄다 펴서 보드랍게 늘어뜨릴 것처럼 잔키스를 하던 정규는 뾰족하게 세운 혀로 그 주름 한가운데, 아직 벌어지지 않았으나 가장 취약한 그곳을 맛보듯 찔렀다. 세 번 찌르자 겨우, 아주 조금 들어갈 수 있었던 혀끝을 조이는 쫀득쫀득한 압박감에 한숨을 내쉰 정규의 콧김이 올린의 아래를 간지럽혔다. 그 간지러움조차 애타는 희락으로 받아들여 바르르 떠는 몸을 제 손으로 더욱 꽉 눌러 고정했다.
입술을 벌려 괄약근 근처를 입술 안의 점막으로 물듯이 훑었다. 나온 곳 없이 폭 팬 데를 물려고 하니 당연히 점막은 주름 위로 몇 번이고 미끄러졌다. 그러나 그 끈질긴 구애에 굴복한 것은 가운데 옴폭한 구멍이었다. 쑤셔야만 열리던 그것이 미끌거리도록 적셔진 것은 침이 아니라 장액 때문이었다.
이제 혀는 좀 더 자유로워졌다. 이번에는 뾰족하게 끝을 세우지 않고 넓게 날름대며 끈덕지고 괴로운 간지럼을 입혔다. 키스할 때라면 입천장을 심술궂도록 집요하게 훑어 내는 것과 같이, 안으로 깊이 들어온 것은 같은 곳을 아치형으로 몇 번이고 문질렀다.
섹스할 때 자극을 원하는 곳은 항상 그곳보다 깊은 곳이었다. 봉긋하게 부풀어 늘상 쑤셔지기를 기다리는 곳도 훨씬 안쪽이었다. 자지에 비하면 훨씬 얕은 곳을 자극하고 있는데도 이토록 헐떡이게 하는 것은 본래 봉사하도록 되어 있는 곳을 봉사받아야 할 사람의 혀로 핥아지는 그 정복감이나 혹은 사랑받고 있는 듯한 고양감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다. 그러한 감정을 초월하는 순수한 육체적 쾌락을 갈환하느라 올린은 집요한 조련에 고개를 마구 저으며 짐승같이 끓는 소리를 목 안으로부터 내어 놓았다.
“그읅…. 으흐….”
거의 동시에, 정규도 같은 소리로 신음했다. 자지가 너무 빳빳하게 서서 아플 지경이지만 참아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놈이 핥아 줘야만 넣게 해 준다고 했었다. 주도권은 올린에게 있었다. 어린 맹수가 흡족하여 목 안으로 가릉거릴 때까지 핥고 마침내
“넣어 줘!”
하는 애원 같은 명령이 터지기 전에는 절대로 넣을 수 없는 것이었다.
벌린 다리를 잡은 손에 힘을 주어 사타구니가 앞으로 내밀어지도록 더 바짝 벌린 것은 분명 이제 좆을 받을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넣어 달라는, 명령과도 같은 조름에, 예전이라면 올린의 애가 달아 더 미치도록 뜸을 들였을 정규는 이제 조금 다른 기분으로 초점 흐린 눈을 들었다. 순간 느리게 보이는 아랫도리 벗은 몸, 뜨거운 실내의 공기에 선루프로부터 들어와 섞이는 신선하고 찬 공기, 청결하고 달큰한 미친 것의 살냄새 같은 것이 비현실적인 상상으로 그를 이끌었다.
만일 올린이 액받이가 아니라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들이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났다면 애인이 될 수 있었을까. 올린은 이토록 예쁘고 발칙하게 굴 때의 눈은 자신의 심금과 자지를 울리니 아마도 자신은 올린을 좋아했을 것이다. 올린은 끈덕지게 구애했을 자신을 받아 주었을까. 받아 주었다면, 충분할 만큼 사랑해 주었을까.
그는 애인들을 괴롭힌 적이 없었다. 이 사람 저 사람 큰 가림 없이 만나고 다니다 여럿을 동시에 사랑하여 애인을 울리는 경우는 있어도 특별히 못되게 굴지는 않았다. 싸우느라 한 대 맞고 나서도 먼저 꽃다발을 들고 찾아가는 편이었으며, 사랑한다 결혼하자 맘에도 없는 달콤한 말도 술술 잘만 해 왔다.
울리고 괴롭히는 대신 그렇게 해 주었더라면 올린이 얼마나 예쁘게 웃어 줬을까. 미쳐서 쓸모없는 몸으로 전락할 일도, 새로운 물건이 들어오기까지 임시로 쓰이는 가구 취급을 받는 일도 없었을 거다. 소용없는 후회와 순간의 감상에 젖어 그는 올린의 따뜻하고 보드라운 몸으로 파고들면서,
“앗! 아흐-.”
하고 마치 몹시 아픈 듯이 한 눈을 찡그리는 올린을 향해 공연한 소리를 했다.
“올린아, 형이라고 또 불러 봐.”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돌아보는 대신 지금 일순이라도 애인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아가, 형이라고 해 보라니까.”
한 번 더 재촉하니 올린은 아래를 꽉 채운 자지를 느끼느라 젖혔던 고개를 들었다. 거대하게 발기한 자지를 받는 데 익숙한 구멍에서 뭔가를 게걸스럽게 먹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이제 곧 어딘가로 가 버릴 것처럼 색색대는 얼굴이 시키는 대로 할 듯 말 듯 입술을 벌렸다가, 공연히 웃었다.
흐흐, 흐- 목 안으로 가랑가랑하게 웃는 소리가 청량했다. 소년 같기도 한 그 소리에 반해서 정규는 허릿짓을 계속하면서도 상체를 숙였다. 입술에 입 맞추러 가는 길에 발딱 일어선 젖꼭지에 들렀다. 혀를 내어 핥으니 허리가 바짝 튀었다. 빨갛게 질리도록 묶여 지내던 날도 있었는데 고작 한번 핥은 것에 반응해 주는 게 고마웠다.
다른 쪽 젖꼭지도 할짝거려 발기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고, 이제는 쇄골이었다. 갈비뼈는 도드라지면 불쌍해 뵈고 보기 좋지 않은데 똑같은 뼈인 쇄골은 왜 이렇게 예쁜지 모를 일이다. 깊이 파이고 단단하게 서서, 물을 붓는다면 조그맣고 깊은 웅덩이를 만들 것 같은 어깨뼈를 자근자근 이로 긁어 가며 입술은 여행했다. 핥고 빨기에 평범한 곳이 없었다. 목을 지나 턱 아래를 스치고 입술에 도달했을 때 고집쟁이는 사실 고집 같은 거 없는 애처럼 입을 벌리고 혀를 맞이해 주었다. 발간 안쪽의 촉촉한 느낌은 아래의 촉촉함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세포 하나하나의 감각이 돋아올라 몹시 예민한 몸은 혓바닥에 작게 솟은 도돌도돌한 느낌마저 반갑게 맞이했다. 혀와 혀가 그 넓은 면을 마주 대고 서로 쓸고 비빌 때의 느낌은 야하다기보다는 애틋했다.
올린의 혓바닥은 달았다. 설탕도 아니고 초콜릿 따위나 과일 따위도 아니었다. 무슨, 어떤, 몸에 좋은 인공 감미료의 맛이 이와 비슷하긴 했었다. 뒤끝 없이 달기만 한 맛. 올린은 자신의 혀에서 어떤 맛을 느끼고 있을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물으면 또, 대답 안 해 주거나 아니면 또, 대답을 위해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달 것 같았다. 그런 짓을 하는 올린은 예쁘고 좋다. 사랑스럽다. 그러나 이 애가 그렇게 할 때마다 왜 과거에는 이렇게 하지 못했지 하고 오르는 후회는 쓰기만 하다. 굳이 상기하고 싶지 않다.
올린은 그런 기분을 다 안다는 듯이, 혀를 실컷 맛본 후에는 조심스럽게 입을 떼고 가만있었다. 아직 입 밖으로 쏙 내민 혓바닥이 붉게 번질거렸다. 정규는 부드럽게 허릿짓을 하며 그 뾰족한 선단을 핥았다. 따뜻한 몸 깊은 데 있는 올린이 좋아하는 부분을, 자지 머리로 핥는 것처럼 점잖게 문질렀다. 허구헌날 모질고 아프게 박히는 게 일인 몸은 상냥한 어루만짐에 떠는 숨을 내놓았다. 매끈한 팔이 정규를 향해 뻗어 왔다. 그 팔에 기꺼이 안겨 주며, 정규도 웃었다.
일방적이지 않은 섹스를 할 때, 올린은 참으로 다정한 연인이었다. 그는 정규의 허릿짓에 함께 부드럽게 응하고, 제 가슴에 정규에 대한 사랑스러운 기분이 차오르면 가만히 입술을 벌려 정규의 팔을, 가슴을, 목을, 뺨을 빨아 주었다. 때때로 참기 어려운 순간이 오면 정규를 밀어내는 대신 그의 뺨을 순한 손짓으로 쓸었다. 그럴 때의 눈동자는 고요한데도, 정규는 그 갈색 눈 한 가운데 불타오르는 빛을 들여다보는 기분을 느꼈다. 그의 말이 소리 있는 언어가 아니라 다른 형태로 몸에 배어 드는 것 같다.
눈으로 글을 쓰는 것도 같고 혹은 몸짓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도 같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알아채기도 힘든 그의 표현 방식에 매혹된다. 지금, 저기 멀리서 들려오는 음악에 귀를 기울이는 심정으로 숨을 죽였다. 올린의 울대를 입에 머금듯 가만히 키스한 채, 제 입술 사이에 놓인 그 단단하고 조그만 것이 어떤 형태로 울렁거리는지를 느꼈다. 머리카락 사이로 올린의 손가락이 들어왔다. 그 손이 힘을 주어 자신의 머리채를 쥐고 뒤로 젖혀 주었으면, 그리고 입술을 뜯듯이 키스해 주었으면 하고 바랐지만 올린은 그저 어린 동물 쓰다듬듯 애무할 뿐이었다. 아쉬움과 감미로움 사이에서 정규의 흐느끼는 것 같은 숨이 올린의 목을 간지럽혔다.
올린이 사정한 것은 정규가 삼켰다. 정규는 올린의 배에 뿌연 욕정을 쏟아 냈다. 올린의 다리 사이와 배와 자지를 물티슈로 닦아 주고, 찬찬히 옷을 입혔다. 그리고 함께 광장을 걸었다. 정규의 코트를 뒤집어쓴 몸은 추운 듯이 떨면서도 수천수만 개의 전구 장식을 황홀해했다. 기뻐하는 모습은 귀여운 동시에 가여웠다. 그들은 사람 없는 광장을 둘이 차지한 채 두 번 키스하고, 콘서트홀에서 인파가 쏟아져 나올 때 즈음에는 뜨거운 커피를 테이크아웃 해서 차로 돌아왔다.
하루 종일 응접실에서 굳은 자세로 앉아 있는 게 전부였는데, 오랜만의 외출에 지친 모양이었다. 올린은 커피를 홀짝거리다가 꾸벅꾸벅 졸았다. 정규는 올린을 따뜻하게 해 주고, 머리를 살살 만져 주고, 어떻게든 편한 자세로 잘 수 있도록 애썼지만 올린은 자꾸만 몸을 뒤척였다. 밤마다 좁은 수납장에 갇혀 지내는 게 그새 익숙해져서, 기다란 팔다리가 구겨지도록 잔뜩 웅크린 후에야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에 빠져들었다.
차는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벌써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다. 정환은 자고 있을 것이다. 데려가 씻기고 재우고, 내일 낮이 되면 정환과 올린을 대하는 방법에 대해서 진지한 이야기를 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순전히 정규 혼자만의 바람이었다. 정아도, 정비도, 정규도 기억하면서 오로지 자신에 대한 것만 잊어버린 올린 때문에 미친 증세가 심해진 정환은 아직 잠들지 않았다. 이를 갈며 올린을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