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내린 이 (33/65)

# 내린 이

정규는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누워 있는 둘째 형은 얼굴도 붓지 않아 환자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가 옆에서 간간이 거는 말에 당연히도 대꾸가 없었고, 손가락 마디 하나 까딱거려 주지 않았다. 형이 깨어나 주지 않는 것은 정규를 괴롭게 한 동시에 불안하게 했다. 사랑하는 형제이기 때문에 괴롭고, 그가 기업의 수장이기 때문에 불안하다. 혼란한 마음으로 주차장에서 바로 본채로 향하지 않고 정원을 향하는 붉은 계단을 오른 것은 마음을 달래기 위해 잠시 산책을 할까 하는 변덕이었다.

계단을 지나 미로를 건너 키 큰 나무 사이로 빠져나오자 넓은 잔디 끝, 저택에서 가장 오래된 녹나무가 눈길을 끌었다. 그 아래 선 고용인들 사이로 나무에 둥글게 말려 매달린 것은 올린이다. 정규는 정환이 나름대로 광증을 치료한답시고 금요일 밤마다 미친 것을 몹시 학대하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려니 내버려 둔 것이 오늘은 마음을 어지럽혔다. 잔디를 가로질러 걸었다. 가까워질수록 올린이 당하는 고초가 선명히 보이고 들렸다. 서럽게 흐느끼는 애의 손이 아래로 늘어져 있다. 아일렛이 있어도 찢어지기 쉬운 구멍에다 밧줄을 꿰어 추를 달아 놓은 것이 눈에 들어오자, 그의 걸음이 빨라졌다.

“정환아.”

부르자, 돌아본 눈빛이 번들거렸다. 올린이 도련님들의 이름을 함부로 불러 대며 발작할 때와 닮은 눈빛이다. 정환은 올린을 때려 죽일 듯 채찍질하던 것이 별일 아니라는 양 피 묻은 채찍을 건들거리며 형에게로 다가왔다. 정규는 한숨을 쉬며 그 채찍을 빼앗듯 받아 들었다.

“오늘은 이 정도로 해, 가서 쉬고.”

“형, 저년이 자꾸, 이상한 목소리로 말을 해.”

가끔 보면 올린보다 정환이 더 미친 놈 같을 때가 있었다. 올린이 발작하는 걸 보고, 매로 고친답시고 학대할 때의 몸짓이 그랬다. 정규는 채찍이 축축하게 젖은 것을 의식했다. 정환의 땀보다 올린의 피가 더 많이 스몄을 것이다.

정규는 대답하는 대신 고개를 기울여 정환의 뒤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눈을 감은 채 느리게 흔들리는 묶인 꼴이 보기 아팠다. 정규는 저놈을 구해 오려고 둘째 형이 감수했던 것을 생각하며, 저렇게 엉망으로 매질하기는 아깝다고 여겼다. 잘 먹이고 입히고 보살펴 둘째 형이 돌아올 즈음에는 적어도 겉보기에는 멀쩡한 모습으로 쓰일 수 있도록 해 두고 싶었다.

“그래. 미쳤으니까.”

“형이 말 좀 시켜 봐.”

정환은 올린뿐 아니라 고용인들조차 겁먹게 하고 있었다. 만일 둘째 형이 영영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면, 그 자리를 물려받아야 할 사람은 결국 정환이다. 비정상적인 마음을 가진 데다 마약 제조업자로서 얼굴이 알려져 버린 큰 형이 이어받을 수도 없고, 반쪽짜리 형제, 이씨 가문의 서자인 자신이 대신할 수도 없다. 관장님이 당분간 보살피기는 하겠지만 결국 정환이 정신을 차려야 한다.

갑갑한 심정으로 다그치는 대신, 정규는 동생이 원하는 대로 올린을 향해 걸어갔다. 처참한 몰골에 한숨이 나왔다. 정환에게 보이기 위해서라도, 매를 더할 수는 없었다.

“손은 풀어 줘.”

사타구니에 여러 번 내리친 매 자국을 보며 정규가 고용인들을 향해 명령했다. 추를 내리지 않은 채로 구멍에 꿰인 매듭을 풀려 하길래,

“칼.”

하고 손을 내밀었다. 로프에 매달 땐 비상사태를 대비해서 칼이나 가위를 항상 가까운데 둔다. 고용인이 내민 톱날 칼로 추가 매달린 밧줄을 끊는 동안, 밧줄이 흔들릴 때마다 퍼렇게 부푼 손이 같이 흔들리는 게 가여웠다. 쿵, 소리를 내며 무거운 것이 잔디에 떨어지고 이내 반대쪽 손도 중력의 고문으로부터 해방되었다.

“형. 안돼.”

정환이 정규를 말렸다. 정규는 올린보다 오히려 더 미치광이처럼 보이는 정환을 향해 매는 결코 약이 아니며, 고문할수록 이 애의 광증이 짙어질 것이고, 우리의 의무는 이놈을 가지고 놀기 위해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둘째 형이 돌아오기 전까지 가능한 좋은 상태로 유지해 두는 것이라고 설득하지 않았다. 그는 대신,

“이런 걸로는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으니, 내가 데리고 들어가서 마저 혼을 낼게. 넌, 가서, 쉬어.”

하고 정환이 납득할 만한 말로 남은 결박을 마저 풀었다.

허리가 반으로 접힌 채 매달린 시간이 길었는지, 올린은 발목이 풀리고도 상체를 바로 들지 못했다. 정환은 입었던 가디건을 벗어 올린의 머리에 씌워 안정케 했다. 미친 것이 헛것을 보고 무서워할 때, 천이나 옷가지로 얼굴을 가려 주면 조금 진정되었던 것을 알았던 탓이다.

정환으로부터 올린을 빼앗아 가면서도 정규는 이것이 형제들에게 미치는 해악을 생각했다. 정환에게는 차라리 올린이 죽은 것이 나았다. 죽은 애를 그리워하고 슬퍼는 했으나, 그때 정환은 이토록 광인처럼 굴지는 않았다. 가학적인 성교를 통해 즐길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나 성기나 항문이 불구가 될 수도 있는 고문을 하면서도 그것이 약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은 집착을 벗어선 광증이다.

정환을 그대로 버려두고 잔디를 걷는 동안, 자꾸만 흘러내리던 힘없는 손이 정규의 옷깃을 부여잡았다. 은은한 조명이 밝았던 본채 현관이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더욱 환하게 밝혀지고, 고용인 여럿이 나와 섰다. 도련님이 외출했다가 돌아왔다고 해서 고용인들이 이렇게 많이 나와 반기지는 않았다. 그들은 고난을 겪은 올린을 돌보기 위해 나온 것 같았다.

고용인 둘이 깨끗한 면으로 만든 담요로 올린을 감싸며 받아 안았다. 다른 고용인이 도련님 방으로 올릴까요, 하고 나지막이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그들은 올린이 도착하기 전에 방의 상태를 다시 살피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앞서갔다. 마지막 고용인이 여태 정규가 들고 있던 채찍을 받아 들었다.

“그건 태워 버려,”

정규가 말했다. 이 집에 있는 수많은 고문 도구들 중 하나에 불과했지만, 끈적하게 피가 밴 것을 정환이 다시 쥐게 할 수는 없었다. 고용인은 꾸벅 고개를 숙이고 명령을 따르기 위해 사라졌다. 정규는 천천히 걸어 제 방에 들어가 고용인에게 피 흐르는 몸을 넘기고, 자신은 욕실로 들어갔다. 온종일 둘째 형의 곁을 지킨 데다 돌아오자마자 동생이 미친 사람처럼 구는 꼴을 목격하여 심신이 피로했다. 정작 정말 미친 것은 고용인들이 잘 돌보아 줄 터다. 우선 씻고 싶었다.

*

짧은 목욕을 마친 정규가 나왔을 때, 올린은 도련님의 침대를 차지하고 누워 있었다. 정규의 방에는 작은 욕실과 거실이 붙어 있었고, 올린을 눕힐 곳은 소파도 있고 조금 좁긴 하지만 독서용으로 쓰는 데이베드도 있다. 그런데 떡하니 자신이 누울 자리에다가 미친 것을 눕혀 놓은 게 우스워서, 그는 고용인을 흘끗 바라보았다. 고용인은 그 눈을 알아채지 못한 척 얼른 목례하고 주위를 정돈했다.

다시 미친 것을 바라보았다. 저놈은 저 지경이 되어서도 고용인들에게 인기 있는 편이다.

미치기 전에도 그랬었다. 액받이들에게 요구되는 행동 양식이 판에 박힌 듯 정형적이고, 그들에게 허용되는 말이나 행동 또한 제한적이기 때문에 고용인들이 그동안의 액받이들을 대하는 태도는 사무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올린의 경우는 어찌 된 일인지 예전의 물건들과는 다르게 대해졌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뭐랄까, 예쁨을 받는 것 같았다.

속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예리한 데가 있는 큰형은 알아챘을지도 모르겠다. 둔한 정비 형이나 정환은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정규는 올린이 고용인들로부터 유독 조심스럽게 다루어지는 것을 알았다.

액받이가 홀로 있을 때 눈물을 짜는 것은 당연한 일일진대, 이 애가 울면 고용인들이 허둥지둥 유독 자상하게 눈물을 씻어 주었다. 액받이야 하는 일이 그러하니 사슬이나 밧줄에 매달려 사흘 밤낮을 목마르게 벌 받는 일도 많았는데, 고용인들이 손수건에다가 물이나 우유 따위를 적셔 올린이 빨아 먹을 수 있도록 입가에 대 주는 것을 몇 번이나 목격했다. 좁좁 소리를 내며 빨아 먹던 올린은 아마도 그것이 도련님들의 하혜라고 생각했을 터였지만, 그들은 매달린 올린에게 물 한 방울 허용한 적 없었다.

놀라운 것은 올린에게 그러한 친절을 베푸는 고용인들이 모두 다른 사람들이었다는 것이었다.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액받이가 고용인들에게 환심을 살 만한 행동을 했을 리가 없다. 정규는 때로 멀리서 때로 가까이서 올린을 관찰하면서, 고용인들이 그를 그토록 사랑하게 된 까닭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것은 네 도령이 모두 올린을 몹시 귀여워하게 된 계기와 같았다.

올린은 언제든, 처한 상황에서 늘 온 힘을 다해 맡은 바를 다하려 애쓰고 있었다. 그에게 요구된 것을 온전히 해내려고 노력하는 모습에서는 요령이나 꾀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답답스러울 정도로 꽉 막힌 정도의 끝에서도 요구되는 모습에 부합하지 못하여 결국 벌을 받기도 했지만, 그래도 올린은 그 무분별할 지경의 철저한 성실함으로 매 순간을 살았다. 그런 물건을 여러 날 지켜보고도 마음이 향하지 않을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정규도 이것이 별나게 귀엽다고는 생각했다. 비록 제 뜻과는 달리 형제들에게 해악만 끼치는 존재로 전락하긴 했으나, 자신의 침대를 차지하고 누운 꼴이 밉지 않았다. 그는 고용인들이 닦이고 약 바르고 달래어 폭신한 데다 눕혀 놓은 몸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문득 아까 정환에게 채찍질 당한 상처를 확인하고 싶어졌다. 언뜻 보기에도 상처가 심했는데, 특히 몹시 마음에 들었던 자지가 어떻게 된 것은 아닐까 걱정이었다.

“아가.”

올린은 자신을 부르는 정규 도련님을 바라보면서도, 귓가에 속삭이는 19번의 목소리를 무시하려고 애썼다. 그것은 녹나무 아래에서 올린의 몸을 차지하고 정환을 도발했던 다디단 순간을 잊지 못해 밤바다의 파도처럼 일렁거렸다. 올린의 몸에 들어왔다가 다시 밀려나고, 다시 몸을 차지했다가 밀려 나가며 빠르게 몰아치듯 속삭이고 있었다.

‘너는 그냥 맞아 죽었어야 했으며, 가랑이가 채찍에 찢겼어야 했어.’

19번은 말했다.

‘가랑이가 찢긴 다음에는 말이지, ….’

이어지는 잔혹한 환청을 무시하려 애쓰느라 눈꺼풀을 파르르 떨며 올린은 정규를 바라보았다. 젖은 머리를 한 정규는 다정히 웃고 있었다. 19번의 요사스러운 속삭임을 헤치고 그의 다정한 목소리가 물었다.

“도련님이, 상처 좀 볼까.”

올린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봐 주었으면 했다. 보이고 아픔을 호소하고 싶었다. 들어줄 것 같았다.

조심조심 이불을 걷자, 붕대를 감는 대신 홑겹의 면포로 한 겹을 더 덮어 놓은 게 보였다. 올린은 뻔뻔하게도 일어나려는 몸짓조차 하지 않고 얌전했다. 등을 딱 붙인 채 송구스러워하는 기색도 없이 다 죽어 가는 표정을 하는 걸 보고 정규는 슬쩍 웃었다. 아프기야 하겠지만 응석이 지나친데, 그게 또 귀여웠다.

고용인들은 약을 바르기는 했어도, 상처를 싸매어 두지는 않았다. 납작한 배에 얌전히 올려진 손이 먼저 시선을 끌었다. 구멍이 길게 늘어나도록 찢긴 손은 푸르게 부풀어 있었다. 한쪽은 아무래도 뼈를 다친 듯 퉁퉁 부어 움직임이 원활하지 않았다. 올린은 도련님의 차가운 손이 손목 근처를 스치기만 해도 깜짝깜짝 놀랐다.

사타구니는 더욱 심했다. 불알과 자지의 살갗이 찢기도록 모진 매는 항문을 중심으로 더욱 많이 내리쳐져서 시커멓게 부은 피멍이 되어 있었다. 정규는 이런 멍이 빠지는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는 것을 알았다. 멍이 빠질 때는 위로부터 아래로 빠진다. 맞은 데는 한동안 보기도 끔찍할 지경으로 시커멓다가, 그 멍이 양쪽 허벅지로 내려오고 오금에 머무르고 종아리와 발목을 다 지나야 사라질 것이다.

목과 발목의 조여진 결박은 그나마 나았다. 정환이 마구잡이로 감은 게 아니라 숙련된 고용인들의 손에 의해 매달린 덕이었다. 그럼에도 올린은 목 근처에 손이 닿을 때마다 콜록콜록 기침했다. 안쪽에 상처가 생긴 것 같았다.

상처는 심했지만, 그다지 새롭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미친 것이 가엾고 마음이 아픈 것은 왜 그런지 모를 일이었다. 그는 미친 것을 위로하고도 싶고 자신이 위로받고도 싶은 기분이 되어서 그 옆에 드러누웠다. 정규의 취향대로 푹신하게 세팅된 침대가 폭 꺼지며 미친 것의 몸이 반 바퀴쯤 데굴 굴러 정규의 품으로 들어왔다. 정규는 낮게 웃으며 열 오른 머리통을 안고, 다른 손으로는 아래만큼 상하지는 않은 젖꼭지를 만졌다. 성적인 의도 없이 무심코 문질거리는 손길이었다.

금방 잠들 줄 알았던 미친 것의 몸이 점점 뜨거워졌다. 고용인이 해열제를 먹이는 것을 보았으니 이제는 시원하게 해 주는 것밖에는 달리 해 줄 것도 없다. 그는 제 어깨에 살포시 이마를 대고 눈을 감은 것에서 좀 떨어져 누우려 했으나, 뜻대로 할 수 없었다. 미친 것의 팔이, 그 손을 해 가지고도, 자신의 팔에 힘껏 감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열난다. 이불 걷어 주마.”

어린애 열날 때 그러하듯 정규는 이불을 죄 걷어 주었다. 그런데 이불 아래에 보이는 모습이 가관이었다. 그는 헛웃음을 치면서 몸을 반쯤 일으키고, 제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아가, 이게, 허, 뭐야?”

올린의 흐린 눈가가 붉었다. 얼굴 반절은 예쁜데 나머지 반절은 흉하게 퉁퉁 부은 우스운 모양인 채로, 애타는 듯 발갛게 달아 정규를 올려다본다. 들이대는 거리낌 없는 몸짓에 저도 몰래 실실대다가도 문득 기이한 생각이 들어 웃음이 멎었다. 곧 폐기해야 한다는 생각에 잠겨 있으면서도, 이놈이 이럴 때 보면 도무지 그럴 수가 없을 것 같기도 했다.

“있잖아.”

또 반말이다. 이럴 때의 올린은 눈이 바둑알처럼 총기 없이 반질거린다. 그 눈을 한 채 다리를 제대로 놀리지도 못하게 다친 몸을 꿈틀거리며 다가와 구멍이 길게 찢긴 손으로 정규의 손을 잡았다. 매 맞아 살갗이 헐고 짓무른 제 자지가 발딱거리는 걸 느껴 보라는 듯 정규의 손을 잡아 끌며 하는 소리가 가관이었다.

“내린이가, 서 버려 가지고. 이젠 어쩔 수 없네.”

내린이는 반말질을 할 때의 올린이 제 좆을 부르는 근본 없는 애칭이다. 정규로선 누가 지어 줬을지 모를 같잖은 이름을 불러 대는 걸 보면 이건, 자자는 소리였다.

정규는 시커멓게 멍이 오른 사타구니를 바라보았다. 매 자국이 길게 난 자지도 자지지만, 여러 번 같은 곳을 후려쳐지는 바람에 피부가 얇게 벗겨지고 속이 빨갛게 드러난 사타구니는 도저히 어떤 종류의 성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다쳤다. 도톰하게 부은 항문도 그랬다. 너무 부어 손톱만큼도 열릴 것 같지 않은 걸 스스로 벌리려 드는 손마저 엉망이라 보기 괴로웠다. 정규는 가여운 생각이 들기도 하고 끔찍스럽기도 해서 조금도 어떻게 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아,

“그만해.”

하면서 올린의 손목을 잡았다. 예의 그 속살거리는 목소리로 올린이 말했다.

“그치만 너무 뜨겁다고, 내린이가.”

“상처가 심하니 뜨겁지.”

“참을 수가 없다고 하는데, 내린이가.”

“너무 아프면 그럴 수 있어, 아가.”

정규가 대답하고, 고용인에게 인터폰 해 얼음을 넣은 팩을 가져오라 지시했다. 고용인이 오기 전까지 제 자지를 만지려 드는 손목을 붙들어 침대에 내리누른 채, 정규는 올린의 다리를 벌리고 아래에다가 호오 호오, 시원한 입김을 불어 주었다. 상처가 너무 뜨겁고 아파서 도저히 견딜 수 없다고 칭얼대던 올린은 얌전히 아래를 열었다.

얼음팩이 날라져 왔다. 겉이 부드러운 포로 되어 있는 찜질팩도 함께였다. 그러나 올린은 찜질팩은 거칠어 따갑다고, 얼음이 든 실리콘 팩은 딱딱하다고, 얼음을 맨살에 대면 차갑다고 팔딱팔딱 뛰었다. 정규가 가만 보자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렇게 예민한 것이 어떻게 그 매질은 견뎠나 싶었다.

뭐, 엄살이 섞이기는 했으나 정말 따갑고 아프고 차갑기는 할 것 같았다. 여러 번 맞아 생긴 찰과상 부위가 넓으니 그럴 만도 한 것으로 쳐주기로 했다. 올린은 등을 대고 누운 채 눈물을 글썽이며, 정규가 얼음을 입에 집어넣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안 해 주고 그냥 다, 먹어 버리려고?”

울먹이자, 정규가 그래 버릴까, 하더니 우물대던 얼음을 뱉어 냈다. 얼음에 오래 닿아 차갑게 식은 혀를 내어 올린의 상처를 밀듯 슬그머니 갖다 댔다. 쓸거나 문지르지도 않고 지긋이 댈 뿐이었다. 부드러운 혀의 찬 기운에 올린은 아, 하고 안심한 듯 한숨을 쉬었다.

“괜찮아?”

올린은 고개를 젖힌 채 으응… 하고 끄덕였다. 몇 번 더, 가장 뜨겁게 아플 곳을 얼음 물었던 혀로 식히자 올린은 시원한지 깜빡깜빡 졸 것 같은 눈을 했다. 됐다, 이대로 재워 버려야지, 마음먹은 정규가 슬그머니 혀를 뗐다. 나란히 누워 가슴을 토닥토닥 두드리자, 올린은

“하지만 안에가 아직 불타는 것 같아서, 정말이지 도저히 잠들 수 없어….”

하고 눈도 못 뜬 채 어딘지 연극적인 말투를 했다. 정규는 헛웃음을 웃었다. 올린은 대부분의 시간을 극도의 아둔함과 무기력 속에서 보내다, 가끔 이렇게 전혀 다른 인격이 된 것 같은 행동을 한다. 고용인들은 귀신 들렸다고 수군대지만 하는 행동을 보면 전능감을 동반한 일종의 피조종망상이다. 그러나 망상 속에서 다른 사람인 양 행동하는 이 모습도 본질적으로는 올린의 안에 들었던 것일 터, 늘 심각하고 진지하고 침착하기만 하던 애가 부리는 어리광은 새롭고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만났을 때부터 이렇게 어리광을 부렸더라면 정규는 올린을 아주 많이 귀여워해 줬을 것이다. 매를 칠 때 몹시 엄하게 굴기는 하지만, 바닥에 쓰러져 엉엉 떼를 쓰고 더 이상은 못 맞는다고, 나 죽는다고 발을 동동 굴렀더라면 회초리를 거두고 예뻐해 줬을 것이 정규의 성격이다.

“도저히 잠들 수 없어?”

정규는 쿡쿡 웃으며 올린의 아랫배를 쓸어 줬다. 안 하던 말을 하는 걸 보면 어린애가 새로운 어휘를 배워 써먹는 것을 보는 것처럼 기특하고 신기했다. 얼음이 가득 든 통에 손가락을 오래 넣었다가, 차갑게 식은 중지를 항문 입구에 갖다 댔다. 평소라면 벌름거렸을 항문은 너무 부기가 심해 꽉 닫힌 채 굳어 있을 뿐이었지만, 정규에게는 항문의 반응보다 곧 숨이 넘어갈 것처럼 구는 올린의 숨소리가 더 중했다.

“그럼 어떻게 해 줘, 응? 아가. 도련님이 어떻게 해 줄까.”

차가운 손가락 몇 개로 피아노 건반 누르듯 회음과 항문을 번갈아 가며 눌러 대면서 정규 또한 숨찬 소리를 했다. 서로의 몸이 붙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정규는 자신의 가슴 고동과 손끝에 닿는 올린의 세찬 맥박이 한 사람의 것처럼 느껴졌다. 두근두근 울리는 뜨거운 기분을 참을 수가 없는 것은 정규만이 아니었다. 올린도 비슷한 감정을 버티지 못하고 온갖 말을 지껄였다.

“손가락 넣어 줘, 깊숙한 데까지… 그담엔 휘저어 줘, 아파도 좋으니까… 그리고 나서는,”

“이렇게?”

고집스럽게 다물린 항문에 중지 한 마디 정도를 쑥, 집어넣으며 정규는 물었다. 그 차가움에 겁을 먹었으면서도 올린은 물러나지 않았다.

“아아, 응!”

“이만큼은 어때?”

이제는 손가락이 반 정도나 들어갔다. 정규는 과연 평소보다 배는 뜨겁게 느껴지는 안이 몹시 심하게 부상했음을 실감했다. 안은 늘 그렇듯이 촉촉하고 움찔거렸지만, 예전처럼 쉬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고작 손가락 하나를 반만 물었을 뿐인데 몹시 버겁다는 듯 조여 오는 감각이 새로웠다.

정규는 경험 없는 것들을 선호하지는 않았다. 사실 오히려 귀찮아하는 편이다. 그러나 마치 아무것도 물어 본 적 없다는 듯이 구는 올린의 구멍은 그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주었다. 마음껏 범하여 다물리지 않을 정도로 벌려 놓고 싶은 가학심을 내리누르며 그는 바지런히 조여드는 내벽을 물리려 크게 손가락을 돌렸다.

“아하학-!”

그것만으로도 통증이 몹시 심한지, 올린은 우는 것 같은 소리를 했다. 가엾게도 사타구니를 제대로 오므리거나 오금을 웅크리는 것조차 할 수 없이 상처 입은 몸이 로봇처럼 뻣뻣하게 움찔거렸다. 그러나 그는 아픔으로부터 달아나려고 들지는 않았다. 비쩍 마른 몸 중에 유일하게 살이 남아 보동보동한 볼기를 들이밀며, 척추에 골이 쏙 패도록 힘을 주었다. 더, 더해 줘, 무언의 언어를 알아들은 정규는 그러나 손가락을 뺐다. 올린의 머리 위에 놓인 아이스 버킷을 또 휘적거렸다.

“뭐, 뭐 해….”

버석거리는 얼음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올린이 말했다.

“차게 해서 넣어 주마.”

“자지도 식혀서 넣으려고 그래? 상관없으니까 빨리 해….”

“안이 그렇게 부었는데 자지를 어떻게 넣니, 오늘은 손가락만이다 아가.”

“하지만….”

“토 달지 말고 도련님이 하는 대로 가만있어. 자꾸 조르면 엉덩이를 때려 줄 테다.”

“…….”

“그러니 얌전히 있어, 아가.”

협박하며 다시 넣을 때는 손바닥이 불알을 감싸도록 깊숙한 삽입이었다. 차가운 손가락에 뜨거운 안쪽 살이 덤벼드는 감각이 선연했다. 생생한 그 느낌에 올린은 어찌하고 있나 넘겨다보니, 눈을 꾹 감은 채 움찔움찔 느끼고 있었다. 별다른 걸 해 주는 것도 아니라 그저 넣어서 돌리고 있을 뿐인데 기분 좋아하는 모습이 기특했다. 앗, 아흥, 콧소리를 울며 무릎을 바들바들 떠는 걸 보면 조금 더 무리를 시켜서라도 좋아하는 꼴을 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다른 손가락들로 불알을 어루만지고 회음을 쓸었다. 뜨겁게 작열하는 고통을 달래 주는 찬 손가락에 올린은 어깨를 웅크린 채 내내 끙끙댔다. 좋아하는 손길을 받기 위해 괴로움을 버티는 게 귀여워서, 정규는 몸을 들어 올린을 터뜨릴 듯 꽉 안아 버렸다.

모로 누운 올린의 뒷덜미에 자신의 턱이 닿도록 꼭 끌어안은 채, 노는 손으로는 발딱 일어선 젖꼭지를 빠르게 비볐다.

“흐응, 하아…. 응,”

예민한 부분에 대한 자극을 기다렸다는 듯이 허리가 뒤틀렸다. 억누르지 못하고 내는 소리는 어린 개가 깽깽거리는 소리와도 닮았다. 정규는 그러나 젖꼭지를 놔줄 생각이 없었다. 지난주에 정환에게 맞은 탓에 아직 상처가 남아 있긴 했지만, 비비는 대로 마구 쓰러지는 연하고도 탄력 있는 촉감이 너무 좋았다. 꾹 누르면 잔뜩 기가 죽었다가도 살살 어루만져 주면 이내 뾰족하게 선다. 손끝에서 뱅글뱅글 돌리다가 톡, 튕기면 띠용띠용 소리가 날 것처럼 거세게 튀었다.

밭은 숨을 쉬던 올린의 엉덩이가 자꾸 뒤로 밀렸다. 정규는 조르는 듯한 참을성 없는 구멍을 혼내듯이 팍, 하고 이전보다 조금 세게 올려 쳤다.

“아극!”

그것만으로도 몹시 아파하면서도 올린은 물러나지 않았다. 게다가 이전에 들은 때려 주겠다는 협박을 그새 잊었는지, 다시 토를 달기 시작한다.

“그거 말고….”

“어허, 토 달면 도련님이 어떻게 해 준다고 했어?”

방금 손가락을 밀어 친 게 아파서 그런 걸까, 정규는 문득 손을 멈췄다가 살짝 빼고는 그래도 이전에 했던 협박을 무를 수 없어 멍 없는 궁둥이 위쪽을 한 대 찰싹 때려 주었다. 응앗, 우는 소리를 들으며 아래를 보니 잘근잘근 손가락을 물던 굳은 항문은 아주 조그맣게 뻥 뚫려 있다, 슬그머니 다물렸다. 정규는 다시 얼음 더미에 제 손을 담그며 맞고도 물러나지 않는 올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때려 준다고 했지, 그런 건 기억해. 하지만 사실 올린이가 말대답하는 건, 맞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그 말을 하는 올린의 귀가 빨갰다. 올린이, 라고 삼인칭으로 자신을 지칭하는 게 광증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알면서도 무척 교태를 부리는 어린 애인의 말투처럼 느껴져 간지러웠다. 살갗이 까지도록 상처 입은 자지가 꼼질거리는 게 느껴지자 더욱 그랬다.

“니 자지로, 이 구멍, 때려 줬으면 해서 그래….”

발칙한 소리를 하는 미친 것을 보는 정규의 얼굴도 함께 벌겋게 달았다. 그는 비록 수줍음 같은 것은 느끼지 못하게 된 지 오래였으나, 제 취향에 맞도록 요염을 떠는 애인들을 상대할 땐 얼굴이 붉어지고 심장이 뛰기도 했다. 올린은 사실 참으로 정직하고 성실할 뿐 요령도 없고 재치도 없어서, 이렇듯 정규의 맘에 드는 소릴 하는 걸 들은 적이 없었다. 목석같은 것이 꾸며 대는 앙증맞은 소리에 정규의 자지가 벌떡거렸다. 상처가 너무 참혹하여 음심은커녕 그 비슷한 것도 돌지 않던 아랫도리가 순식간에 뜨거워졌다.

“아니 그래, 아가, 그렇게 맞고도 매가 부족했어?”

하는 소리는 못된 협박 같았지만 은근한 어조 덕에 희롱이 되었다. 올린이 하아, 뜨거운 숨을 뱉더니 은근슬쩍 애타는 시선으로 살금살금 뒤를 보아 가며,

“하지만 말이야, 좆방망이로는 한 대도 못 맞았는걸.”

하는 참에 정규의 좆방망이가 웅장하게도 완성됐다.

아랫도리를 휘두르면 올린이 아파서 넘어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껍질 까지고 검게 멍이 들도록 얻어터진 데다 박는 것은 사람이 할 짓이 못 됐다. 그런데도 그 경직된 항문에다가 자지를 비벼 대는 자신이 짐승 같았다. 아니, 짐승도 이렇게 부상이 심한 것에게는 아무리 짝짓기가 급해도 박을 생각 안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정작 몸을 사려야 할 것이 엉덩이를 벌리고 삼키려 달려든다. 까진 데에 정규의 음모가 문질러져서 괴로울 텐데도 아랑곳하지 않는 것은 정욕에든 아니면 그 이전의 증세 때문이든 어쨌든 미쳤기 때문일 터였다. 정규는 젖꼭지를 놀리던 손으로 미친것의 아랫배를 더듬었다. 아직도 많이 여위었으나, 먹을 것을 탐하는 나쁜 버릇에도 미점이 있는 모양인지 갈비뼈 아래 배는 보기 싫게 쑥 들어가지 않고 판판은 했다.

바둑알 같은 눈을 하고 멍하니 있다가도, 짐작할 수 없는 방아쇠가 당겨지면 올린은 도둑질을 감수하고 먹을 것을 입에 처넣는다. 응접실에 놓인 과일을 껍질째 와그작 와작 씹어 먹거나 손님용으로 준비된 간식을 들킬 것도 개의치 않고 훔쳐 먹는 것은 예삿일로, 며칠 전처럼 자르지도 않은 포기김치를 생으로 훔쳐 먹다 걸리거나 아직 요리도 하기 전인 식재료를 마구 처넣는 꼴을 볼 때면 징그러운 생각마저 들었다.

물론 그런 짓을 한 다음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토악질을 해 댄다. 올린이 먼저 토하지 않으면 정규가 강제로 토하도록 했다. 먹은 것 이상의 것을 토해 내는 것 같은 토악질 끝에 한바탕 울고 나면 다시 멍한 얼굴로 돌아온다. 하지만 시루에 물이 오래 머물지 않아도 콩에서 콩나물이 자라는 것처럼, 앙상할 지경으로 야위었던 몸에는 조금씩 살이 올랐다. 도독거리던 갈비뼈 사이사이에 살이 채워지고 쑥 들어간 눈 아래 그림자가 옅어지는 것은 반갑기마저 했다.

그러니 이 아랫배의 판판함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쑥 들어가 파였던 몸이 채워진 반듯한 기분을 느끼며 정규는 가만가만히 뱃가죽을 쓸고 내려가 배꼽 근처에 머물렀다. 손톱을 세워 얕은 배꼽을 긁다가 조금 아래로 내려가니, 흉악한 꼴로 다리 벌려진 채 얻어맞은 흉터의 볼록한 감촉이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그걸 쓰다듬자니 내린이가 제 머리도 쓰다듬어 달라는 듯이 정규의 손등을 토옥 톡 때렸다.

그러는 동안 정규는 허리를 뒤로 뺐다 한 번, 또 한 번, 올린을 향해 쳐올리듯 하며 자지 끝으로 멍든 항문의 주름에다가 노크하고 있었다. 강제로 집어넣을 생각 없이 쥐어짜듯 단단히 다물린 주름이 펴지기를 종용하는 그 몸짓에도 입구는 쉬이 열리지 않았다. 올린이 때때로 애가 달아 죽겠는 얼굴로 정규의 얼굴을 자꾸만 돌아보며 허리의 골이 쏙 패도록 엉덩이를 들어 항문을 드러냈다. 그런데도 정규는 열어 주기 전에 억지로 들어갈 생각이 없다는 듯이 자지로 그 사이를 두드리기만 했다. 몇 번이나 그 감질나는 노크를 견디던 올린이 마침내 먼저 제안했다.

“그, 그냥 손으로 벌릴까?”

정규가 아무런 대답이 없었으므로 올린은 아픈 손을 더듬거려 제 볼깃살을 쥐어 보려고 했다. 그러나 손의 부상이 사타구니나 항문보다 못하지 않아, 무언가를 움켜쥐는 게 제대로 될 리 없었다. 올린은 안타까운 기분이 되어,

“그냥 벌려서 박아 주면 안 돼?”

하고 울먹였다. 정규는 시퍼렇게 붓고 구멍이 길게 찢긴 올린의 손을 내려다보고, 말없이 제 손을 동그란 볼기에 가져다 댔다.

기분 좋게 식은 두 손이 볼기를 벌리며, 한 손 엄지가 은근히 아래로 들어왔다. 손가락이 조이스틱처럼 움직인다. 옆으로 벌리듯 잡아당겨 모로 누웠던 몸을 엎드리도록 일으켰다. 허리를 잡아 자세를 바꾸게 해 준다는 선택지도 있는데 항문이 무슨 손잡이 구멍이라도 되는 양 조종하는 손놀림이 아무렇지 않았다. 그 작은 물건 취급에도 가슴이 욱신거리도록 좋아서 올린은 아흐 아흐 앓아 댔다. 벌리는 것도 아픈 사타구니를 활짝 열었다.

“그러니까 좆으로 매 맞고 싶다는 말이잖아.”

두 손으로 체중을 지탱하지 못해 팔꿈치로 침대 바닥을 짚은 올린의 볼기 사이에 자지를 쿡쿡 찌르다가, 좆을 제 손으로 잡고 좌우로 마구 휘둘러 이미 멍이 심한 허벅지 안쪽에 탁탁탁 소리 나도록 번갈아 가며 때려 준 정규가 말했다. 안에 철심이라도 박아 넣은 듯 단단하고, 굵고, 게다가 길기까지 한 자지에 얻어맞은 허벅지가 야한 매질에 발발 떨었다.

“응, 읏, 응!”

다물어진 목 안에서 새 나온 비명이 정규를 웃게 했다.

“그럼 매 맞는 자세가 딱 나와야지, 이렇게 어설퍼서 때려 줄 기분이 들겠어, 아가?”

느긋하게 야단을 친 정규가 올린의 한 손목을 잡아 뒤로 꺾었다. 아윽, 안으로 먹는 듯한 신음을 지르며 상체가 앞으로 퍽 엎드러졌다. 다른 쪽 팔은 강제할 필요도 없었다. 미친 것이 순순히 같은 방향으로 제 팔을 꺾어 허리 뒤에 두었기 때문이다.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지만 어떻게든 제 두 팔을 서로 얽어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한 올린은, 푹신한 침대에 얼굴을 파묻은 채 엉덩이 구멍을 하늘로 쳐든 자세가 되었다. 침대 바닥이 깊이 꺼지고 부드러워 숨쉬기 힘듦을 안 정규가 그 머리채를 아프게 쥐어 고개를 옆으로 돌려 놓았다. 커흑, 헉, 아픈 소리를 내긴 했으나 올린도 그의 배려를 알았다. 겨우 콧구멍에 숨 들어오는 것에 안심하며 그는 헐떡였다.

정규는 머리채를 놓아주고 잠시 상체를 들었다. 높은 곳에서, 제 아래 엎드린 몸을 감상했다. 갈색 머리카락이 흐트러진 아래로 늘씬한 등줄기, 동그랗게 솟은 볼기 사이로 멍들어서 더욱 조신하게 다물린 구멍, 그 아래 무릎 꿇은 사타구니와 허벅지는 가여울 정도의 피멍으로 덮여 있지만 이 몸은 정규에게 더 맞기를 원한다. 그대로 넣어 줄까 싶다가도 또 그것은 아닌 기분이 되어 정규는 올린의 다리 사이로 손을 넣어 발딱 선 내린이를 끄집어냈다. 주제넘게도 크고 곧은 자지가 자연스럽게 발기하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꺾여 당겨지는 바람에 올린이 놀란 소리를 치며 허벅지를 침대 바닥에 붙일 듯 엉덩이를 낮췄다. 정규는,

“지금 자세 무너뜨리면 오늘 좆은 못 받는 줄로 알아.”

하고 협박하고 잠시 미친 것이 자세를 다잡는 시간을 기다려 주었다. 코 먹은 소리로 서럽게 울면서도 끝내 엉덩이를 치켜든 바른 자세로 돌아온다. 정규의 손이 다시 올린의 자지를 꽉 잡고, 올린의 다리 사이로 끌어당기기 전에 이번에는 조금 자비를 베풀어 제 몸을 아래로 기울였다. 올린의 자지와 자신의 자지가 입 맞추게 하고 싶어서 하는 장난질이다. 필요 이상으로 아프게 하고 싶은 게 아니었다.

멍든 사타구니 사이로 정규의 자지가 들어가고, 정규의 손에 무자비하게 꺾인 올린의 자지가 그 위로 고개 숙였다. 정규는 색과 굵기와 모양이 조금씩 다른 두 개의 자지가 그 조그만 입을 서로 비벼 대며, 잘금잘금 뱉어 내는 쿠퍼액을 서로 교환하도록 문질렀다. 정규의 입에서 헉, 억, 하는 걷잡을 수 없는 쾌락의 소리가 나오는 동안 올린은 이를 악물었다. 요도구 근처 귀두에, 정환의 채찍질로 살갗이 벗겨진 데가 문질러졌기 때문이었다.

입 대신 자지로 입맞춤을 마친 정규는 이제 올린의 애타는 구멍을 뚫어 주기로 했다. 그는 올린의 자지를 놔주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허리를 든 다음, 둥글고 흰 볼기를 크게 쓰다듬어 터뜨릴 듯 꽉 쥐어 벌렸다. 겨우 조금 빠끔히 벌어진 구멍에 퉁, 퉁, 튕기듯 자지를 마주 대 본 다음에 세 번째에는 작정하고 부딪쳐 눌렀다.

“큭! 흐으으….”

피멍 든 데가 문질러지는 작열감과, 부은 입구가 강제로 벌어지는 압박감에 크게 만족하여 올린의 목구멍에서는 참는 것도 아니고 뱉는 것도 아닌 신음이 길게 새어 나왔다. 정규는 느리게 짓누르며 침입하면서 그 신음에 귀를 기울였다. 참으려고 이를 악무느라

“크흐으, 끄으으.”

하다가 차마 끝까지 잇사이를 맞대고 있지 못해 벌어지는 입술로

“아으으으.”

앓다가 제 신음에 숨이 막혀 들이쉬는

“핫.”

하는 가녀린 소리, 그 끝에는 분명

“으응, 아흥….”

아픈 와중의 쾌락을 순조로이 찾아내는 비음이 섞여 있었다. 그 소리를 조금만 더 들려줬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해야 더 잘 들을 수 있을지 몰라 정규는 잠시 고민했다. 올린이 좋아하는 도톰한 그 부위를 찔러 줄까, 아니면 천천히 나갔다 짓찧듯 들어올까, 그것도 아니면 묵직하게 흔들어 줄까 생각하던 정규는 아까부터 울고 있는 올린의 상체 위로 몸을 숙여, 그 가느다랗고 긴 목덜미에 입을 맞추었다. 그러느라 더욱 깊이 들어간 자지는 쥐어짜는 듯한 내벽의 공격을 견디느라 환락으로 빠져들고 있다. 그러나 정규는 그것보다 이것의 비음을 더 듣고 싶어서,

“아가, 깨물어 줄까?”

하고 속삭이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그 뒷목에 이를 박아 넣었다. 성감을 자극하기 위한 몸짓치고는 과격하게 입을 벌려, 마치 사냥감의 숨통을 끊어 놓으려 일격을 가하는 맹수처럼, 콰득 소리가 나도록 물자마자 좌우로 흔드는 순간,

“하앙, 응앗, 으으응- 갸욱, 크읏, 흐으으윽-.”

하고 고대하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동시에 정규는 제 이에 물린 몸이 퍼뜩퍼뜩 튀는 것과, 그리고 자지를 문 구멍이 꽈악 꽈악 조여드는 것, 그리고 조금 전 정규의 자지와 입을 맞췄던 올린의 자지가 갑작스럽고도 긴 사정을 해 버린 것을 느끼고 말았다.

손끝에 생소한 느낌이 튀었다. 애인들의 사정은 수없이 유도했어도 액받이가 정액을 쏟는 건 처음 보았다. 그 온도와 냄새, 희열하여 떠는 근육, 쥐어짜듯 애처로이 가 버리는 소리 따위가 사람의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조금 다른 분별이 떠돌다가 사라졌다. 오래 믿어 왔던 관념이 한순간에 흔들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화를 내야 마땅한 상황인데 그러고 싶지 않아, 그는 손을 들어 묻은 정액을 핥았다. 넣기만 했을 뿐 흔들지도 않았는데 싸 버린 몸이 괘씸한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어쨌든 정규는 미친 것을 상대로 못되게 굴지는 않았다.

저 좋을 대로 마구 느낀 후에 기절하듯 잠들어 버린 몸을 그대로 두고 좁은 항문을 빠져나왔다. 더러워진 이불만 걷어 내어 침대 바깥으로 밀어내고, 상처 입은 몸을 뒤에서 안듯 팔을 넣어 목을 받쳤다. 발기한 자지가 조금 불편했지만 그럭저럭 가라앉을 것이다. 이번에는 무심하게라도 예민한 델 건드리는 실수를 하지 않으려 조심하며, 그는 가느다란 몸을 껴안았다. 안온한 숨소리가 가슴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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