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경매 (28/65)

# 경매

어쩐지 낯익은 시선을 느낀 것 같아 뒤돌아보았지만,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흐느적거리는 몸을 저지했다. 그는 선선히 고개를 돌리고 남자들이 이끄는 대로 걸었다. 경매일이다.

밀어 넣어진 방은 원형에 가까웠다. 넓지 않은 방 안에는 이전의 상품들이 남기고 간 냄새가 떠돌았다. 정액 냄새, 땀 냄새, 피 냄새보다 진한 건 두려움의 냄새였다. 방 밖에 앉아 거울로 위장된 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는 자들은 결코 알지 못할 냄새를 맡으며, 마지막 상품은 자신에게도 두려움의 냄새가 나고 있을지 궁금해했다.

바닥은 높고 천장이 낮은 밀폐된 공간이었다. 마지막 상품과 그를 선보이기 위해 함께 들어온 진행 요원의 모습이 방을 두른 거울에 여러 개로 비쳤다. 복도에서 들려오던 작은 소음들은 문이 닫힘과 동시에 사라졌다. 고요한 공간에 남겨지자 귀 안에 삐--- 하는, 기계음과도 닮은 높은 소리가 울었다.

문득 어지러워졌다. 벽을 대신한 거울에 양손을 짚어서 쓰러지는 것을 면했다. 그리고서야 알게 된 것은, 바닥이 천천히 회전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거울에 손을 짚은 채 멈춰 있으려면 다리를 게걸음 하듯 움직여야 했다. 올린은 거울 속에 비친 징그러운 제 얼굴을 들여다볼 뿐, 거울 너머에 있는 것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방 바깥에 앉아 올린을 올려다보고 있는 바이어는 올린의 매끈하게 다듬어진 모습을 유심히 관찰할 수 있었다.

벗겨지기 위해 입혀진 옷은 연미복이었다. 날씬하고 긴 다리에 입혀진 바지 안에 속옷은 볼기의 모양새를 강조하는 작스트랩이다. 그 위의 꼭 맞는 셔츠, 보타이, 재킷까지 갖춰 입은 차림은 완벽한 만큼 우스꽝스러웠다. 헤어 제품을 발라 옆으로 넘긴 머리칼 아래 얼굴은 귀한 댁 자제처럼 잘생겼지만, 이것이 오늘 팔릴 상품임을 아는 눈에는 달리 보일 수밖에 없었다. 원숭이나 개 따위의 짐승이 인간의 옷을 입고 인간 흉내를 내는 것처럼 기특하기는 했다.

거울 속의 얼굴은 잘 다듬어졌다. 이마의 상처조차 감쪽같이 감추어져 볼 만은 했다. 그러나 올린에게는 눈구멍이 빈 잿더미로 보였다. 공포를 억누른 눈은 텅 비었다. 그 눈을 통해 빨려들어 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 바이어가 자신의 앞에 놓인 기계에 숫자를 입력했다. 빠른 최초 입찰이었다.

시커먼 거울 밖에는 상품을 관찰할 수 있는 좁고 어두운 방들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바이어들이 누구도 마주치지 않고 옥션에 참가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경매장이다. 갑판의 헬리콥터 주기장에 내려 각자의 방에 들어서는 동안 다른 사람을 마주치지 않도록 모든 동선이 치밀하게 계획되어 있었다. 어두운 익명성 속에 안전하게 숨은 자들이 밝은 빛 아래 온전히 노출된 자를 감상하는 편리한 구조다.

어두운 방에서 올려다보이는 창 안쪽으로는 감상의 대상이 된 자가 남자의 지시에 따라 재킷과 구두를 벗었다. 벨트는 남자가 풀어 주었다. 스르륵, 떨어진 바지 아래 늘씬한 허벅지가 드러났다. 검정색 양말은 종아리에 조여진 가터벨트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 위의 다리를 채찍이 훑고 엉덩이를 반쯤 덮은 셔츠를 걷어 올렸다. 흰색 작스트랩 밑에 흰 볼기가 무방비했다.

채찍이 빨간 자국이 남도록 짝, 후려쳤다. 아, 하면서 고개를 젖혔다. 성감을 자극받는 순간과 닮은 몸짓이었다. 간이의자에 거꾸로 앉혀 놓자 알아서 의자에 아래를 문대느라 허리를 움직였다. 셔츠 위의 젖꼭지를 만지는 손가락이 바빴다. 그 손가락이 달린 손등의 구멍은 차가운 금속으로 싸이고 붉은 리본이 관통된 채 일체의 움직임이 없었으되 그 자체로 뻥 뚫려 음란했다.

자위하는 올린을 뒤로 한 채, 남자는 가지고 온 철제 케이스를 열어 반거울 창들을 향해 보이며 방 안을 한 바퀴 걸었다. 안에 든 것은 거울에 흡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딜도였다. 겉은 실리콘이지만 안은 모양에 따라 경도를 강화하기 위해 티타늄 등의 재질로 만들어졌다는 설명이 바이어들의 이어폰을 통해 전해졌다.

여러 개의 딜도가 벽을 두른 거울에 흡착되었다. 굵은 것과 긴 것, 입구가 둥근 것과 몸통에 가시가 돋은 것, 여러 번 휜 것과 나사 모양으로 꼬인 것들이 바이어들의 눈앞에 흡착되는 동안 올린은 제 손으로 셔츠를 벗고 작스트랩을 끌어 내렸다. 흰 천 밖으로 퉁겨 나온 좆의 모양이 유독스럽게 곧고 아름다워 서로의 소리를 들을 수 없도록 격리된 채 감상하던 바이어들이 일제히 비슷한 소리로 감탄했다.

손의 리본을 제하면, 남은 것은 이제 종아리의 가터벨트에 연결된 까만 양말뿐이다. 나체나 다름없는 몸이 진행 요원의 크롭에 맞아 가며 자세를 바로 하고, 열한 개의 흡착 딜도들을 쓰다듬으며 거울 앞을 걸었다. 은근한 손길이 멎자 이어폰을 통해 방송이 나왔다.

가장 먼저 몇 번을 삽입할까요. 번호를 눌러 주세요. 열 명이 채 되지 않는 바이어들이 투표한 결과가 지체 없이 진행 요원에게 전해졌다. 올린은 끄트머리에 공처럼 보이는 돌기가 붙은 딜도를 향해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돌기 위의 가시가 험상스러운 놈이었다. 그가 그 앞에 서자 바닥의 회전이 서서히 멈췄다.

무릎이 꿇렸다. 딜도를 핥는 혀가 발갰다. 스스로 발정하여 핥는 동안에도 자신의 젖꼭지를 잡아 뜯었다. 아래가 질척하게 젖었다. 진행요원이 지시하자 일어섰다. 너무 흥분하여 비틀거리다 거울에 머리를 꿍, 부딪혔다. 빈 눈이 멋쩍은 듯 백치처럼 웃었다. 이마를 문지르며 뒤로 돌았다.

딜도가 조금 높이 붙어 있었다. 까치발을 한 채 뒤로 걸어, 둥근 끝을 엉덩이 사이에 문질렀다. 가시처럼 보이던 것은 다행히 실리콘이었지만, 그래도 하나하나의 길이가 꽤 길어 아픈 삽입이었다. 공처럼 보이는 걸 넣은 다음에도 한 뼘이나 남아 있었다. 요분질을 한참 해야 했다.

젖은 항문이 벌어졌다. 험상맞은 것을 맞이하느라 아픈 구멍을 돕느라, 리본 묶인 손이 볼기를 좌우로 벌렸다. 잰걸음을 치듯 종종거리며 조금씩 조금씩 몸을 뒤로 눌렀다. 벌어진 구멍을 정면으로 보던 바이어가 기계에 입찰액을 입력했다. 옆의 모습과 정면의 모습을 보던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올린은 항문 안에 가장 굵은 부분이 무사히 안착하자,

“아흐….”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뺨에 붙은 마이크를 통해 그 소리는 생생하게 바이어들의 방으로 방송되었다. 긴 몸체를 다 담은 후에는, 앞으로 몸을 뺐다가 뒤로 퉁, 몸을 물렸다. 동그란 두 볼기짝이 거울에 짓눌렸다가 다시 떨어지고, 다시 짓눌렸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했다. 그 몸짓에 맞추어 방송에서는, 억눌린 교성이 울렸다. 요란스럽지 않되 피학을 감사히 여기는 것 같이 조심스러운 소리였다. 소리는 점점 빨라졌다. 몸짓과 비슷한 속도였다. 시각적으로만 즐거움을 주는 물건이 아니었다. 음심을 돋우는 데에는 교성조차 금욕적으로 들릴 만큼 단정한 음성이 한 몫했다.

쇼와 같은 상품 소개를 감상하며 입찰하는 바이어들은 어둠 속에 숨어 있었다. 유심히 상품 가치를 따져 보며 번호를 입력하기도 하고, 곁에 선 수행원과 무언가 상의하기도 하는 남자들은 어두운 정장 차림이기도, 새하얀 디시다샤 차림이기도, 머리에 터번을 두르기도 했다. 그리고 어떤 이는 보풀 일어난 면바지에 낡은 셔츠 차림이었다.

그는 발정 난 올린이 흘리는 단 숨을 들으며, 낯선 남자들 앞에서 제 몸값을 올리기 위해 애쓰는 꼴을 노려보고 있었다. 약 기운에 취한 것은 분명하나 그렇다고 해도 상스러운 움직임이었다. 더 깊은 데에 딜도를 닿게 하려고 엉덩이를 마구 흔들고, 무릎을 굽혔다가 펴고, 까치발을 더 높게 드는 움직임 하나하나를 관찰하는 그는 오늘은 웃지 않았다.

“현재 보시는 상품의 신체적 특이사항으로는 양손의 피어싱 외에, 항문으로부터 사타구니를 덮는 문신이 있습니다. 문신을 보시겠습니다.”

올린은 딜도에서 떨어뜨려졌다. 항문의 속살이 아쉬운 듯 딸려 나왔다가 구멍 속으로 사라졌다. 조금 전엔 두 발을 까치발 든 채 후배위로 삽입하듯 엉덩이를 뒤로 물렸다면, 이번에 요구되는 자세는 한 발로 몸을 지탱한 채 무용수의 움직임처럼 다른 다리를 위로 드는 자세였다. 기울어지는 상체를 진행자가 한 팔로 안았다.

올린은 진행자의 품에 폭 안겨 얼굴을 묻은 채 방금 딜도를 물었던 뻐끔대는 항문과 사타구니의 자두꽃을 보이기 위해 한 다리를 높이 들었다. 바닥이 천천히 회전하여 물건의 모습을 보이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어려운 자세를 한 올린의 다리는 바들바들 떨면서도 그대로 머물렀다.

두 번째 딜도를 향해 다가갈 때 올린은 다리에 힘이 풀려 비틀거렸다. 크게 휘어 삽입하기 무척 힘들어 보이는 딜도가 여기 없는, 사랑하는 사람의 자지라도 되는 양 성심을 다해 빨았다. 그러는 동안 다리를 벌린 채 쭈그리고 앉은 사타구니에서는 장액이 늘어지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진행자가 접은 벨트로 다리 사이를 올려 치자,

“아!”

하고 지르는 신음은 쾌감에 젖어 달콤했다. 그는 마치 아래를 더 얻어맞고 싶은 듯 진행자가 선 쪽을 돌아보다가, 꼴사납게 앞으로 몸이 기울었다. 거울에 젖을 문지른 채 그는 원하던 대로 아래를 더 얻어맞았다. 젖은 항문이 붉게 벌렁거리며 매를 반겼다. 무미건조하고 빠른 말투의 상품 설명이 여러 개국 어로 방송되었다.

“해당 물건은 대한민국 최고 기업 S가에서 약 1년간 사용되었으며, 그전에는 대여 업체 소속으로 다년간 서비스 기술을 갈고닦은 바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용모가 단정하고 삽입구에 물이 많은 것이 큰 장점이며, 특이사항으로는 고통에 대한 역치가 상당히 높은 점이 있습니다.”

여러 대의 매질에 달아오른 항문을 두 번째 딜도를 향해 벌리는 올린의 얼굴은 기대에 찬 것처럼 보였다. 굵기는 평범하나 길이가 몹시 길어, 올린은 넣다가 잠시 숨을 몰아쉬고 다시 엉덩이를 뒤로 빼다가 허리를 돌려 적합한 각도를 찾느라 애를 썼다.

“삽입 가능 직경과 깊이, 음경의 굵기와 길이, 요도구의 확장 범위, 유륜의 직경과 발기 시 유두의 크기는 현재 보고 계시는 화면에 구체적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다만 이 수치는 환경, 물건의 상태, 성적 흥분 정도에 따라 다소의 오차가 있다는 점을 감안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두 번째 딜도에 끈적한 장액을 남기고 올린은 다시 다른 딜도를 향해 기었다. 사정 없는 오르가슴을 여러 번 느낀 탓에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렸다. 그는 네발로 기다가 문득 멈추고 몸을 부르르 떨다가 채찍에 하얀 궁둥이를 몇 번 후려 맞았다. 그 매가 기쁜 듯 바짝 치켜올린 엉덩이가 음란스러웠다. 유연하게 내리뻗은 등허리는 고양이 같다. 매 맞는 내내 상체는 아래로 하체는 점점 위로 향했다. 텅 빈 눈이 아픔을 느낄 때마다 느리게 깜빡였다.

그에 대한 입찰은 생각보다 치열했다. 열한 명의 고객 중 열 명이 접전을 펼쳤다. 물건을 낙찰받은 이는 전문 바이어를 통하지 않고 직접 온 러시아의 사업가였다. 총기와 마약을 다루는 사업가는 이전에도, 그 이전 경매에서도 가장 비싼 물건을 차지했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한 번 산 것을 되팔지도 않으면서 매번 새것을 구매하는 것을 보면 그는 좋은 물건을 수집하는 수집벽이 있거나, 비싸게 산 물건을 쉽게 폐기해 버리는 낭비벽이 있는 것 같았다. 어느 쪽이더라도 업체에서 관여할 일은 아니다.

마지막 상품에 대해 단 한 번도 입찰하지 않은 유일한 고객은 조금 독특한 경로로 경매에 참여하게 된 사람이었다. 정해진 고객만 초청하는 선상 경매의 초청 리스트에 뒤늦게나마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이전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유명한 마약 제조업자였기 때문이었다. 이정, 이라고만 알려졌던 마약 제조업자가 얼굴을 드러내면서 부탁한 것을 거절할 만한 업체는 없었다. 그와의 친분은 어둠의 세계에서 강력한 무기를 손에 넣는 것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이정은 한가로이 경매장을 떠나 복도를 걸으면서도 얼굴을 가리지 않았다. 어차피 이 배에 있는 것들은 전부 폭사할 예정이니 거리낄 게 없었다. 그는 오랜 사업 파트너인 러시아 마약상을 만나기 위해 헬기장으로 갈 생각이었다. 거기서 올린을 인도받으면, 그의 친구들이 이 거대한 배를 침몰시킬 것이다.

늘 웃던 그는 오늘은 웃지 않는다. 세상만사 모든 일이 별일 아니라 웃음거리였던 그에게도 이것은 별일이었다. 품질도 좋지 않은, 남이 만든 약에 취해 음란한 쇼를 펼치는 올린을 보는 게 마음 아파서 도무지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남의 손에 저렇게 망가질 줄 알았으면 차라리 자신이 만든 약에 절여서 철저히 망쳐 둘걸 그랬다. 하려다 그만두었던 각색의 학대를 떠올리며 그는 입맛을 다셨다.

이토록 애달픈 마음이라니, 나는 정말 저것을 사랑하나 봐, 비뚤어진 곳에서 다시금 자신의 사랑을 확인한 그가 갑판에 오를 때, 바닷바람에 낡은 셔츠 자락이 마구 휘날렸다. 비린 공기를 들이마시며 올린이 운반되어 올 곳을 향하는 이정의 본명은 이정아, 올린의 첫째 도련님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