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캠프 (22/65)

# 캠프

캠프, 라고만 불리는 행사는 일 년에 오직 한 번, 여름에 딱 이 주간 진행되는 행사다. 예뻐하는 액받이들의 예의범절을 다시 가다듬어 더 오래 사용하고자 하는 주인들은 이 캠프에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열의를 갖고 등록한다. 이 주간 주인의 곁을 떠나 지내며 혹독한 단체 생활을 겪고 나면, 액받이들은 주인에게 더욱 감사하며 복종심을 갖게 된다는 게 캠프의 캐치프레이즈다. 요컨대 복종 강화 훈련소라고도 할 수 있겠다.

올린을 캠프에 보내자고 의견을 낸 둘째 도령에게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정환이 인상을 쓰긴 했으나 믿을 만한 업체임을 확인하고는 별말 없었다. 한번 도망한 전적이 있는 액받이니 그만큼 엄히 다루어야 하는데, 올린의 하는 짓이 예뻐 네 도령 모두 무르기 그지없긴 하다. 며칠이나마 엄격한 곳에 보내어 태도를 다잡는 것은 액받이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터고, 결국은 집안에도 좋을 터였다.

두 주간의 캠프를 위한 입소식은 각 계 후계자들과 자수성가한 젊은이들이 모이는 친목 도모 자리이기도 했다. 그러나 돈이 있다고 해서 모든 이가 등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번 해의 캠프는 운영상의 문제로 입소할 수 있는 액받이의 수를 서른 명으로 제한했다. 물론 올린 또한 자신의 이름이 아닌, 둘째 도련님의 성함으로 등록되었다. 그는 캠프 내내 이름이 아니라 등록 번호인 12번으로 불리게 될 예정이었다.

캠프의 장소는 강원도의 고지대 어딘가였다. 목장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곳은 보드라운 잔디가 깔린 운동장 주위로 몇 개의 단층 건물이 늘어서 있다. 밤에는 별이 쏟아지고 낮에는 잔디 너머로 첩첩이 산의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지만, 프로그램은 가혹하기 그지없을 터였다. 이전에 참가한 적 있든 그렇지 않든 액받이들은 두려움에 떨며 제 주인 뒤를 따라다녔다. 주인들의 활기찬 모습과는 사뭇 다른 얼굴들이었다.

대체로 젊은 남성들인 주인들은 가벼운 컨퍼런스나 스포츠 사교 모임에라도 참여하는 듯 여유로웠다. 비즈니스 캐주얼 차림을 한 채 준비된 다과를 즐기거나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들과 담소를 나눈다. 데리고 온 물건을 서로에게 보이고 자랑하거나, 캠프 수료 후에 일정 기간 서로 교환하여 사용할 것을 약속하고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

올린은 음료를 마시는 둘째 도련님의 뒤에 얌전히 손을 모은 채 서 있었다. 곧 도련님이 자신을 이곳에 혼자 두고 가 버린다는 생각을 하니 배가 아프도록 불안했지만 도련님께서,

“겁먹지 마. 제대로 된 액받이가 되려면 겪어야 할 일이야.”

하고 격려해 주신 것을 생각하며 의연해지려 애썼다. 캠프에서 심신을 단련한 후에는 액받이로서의 효용이 더 좋아진다. 따지고 보면 캠프 등록이란 더 오래 액받이를 사용하기 위한 투자인 셈이므로, 올린으로선 데리고 와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해야 했다.

도련님은 쉬지 않고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정중하고도 친절한 태도를 보였다. 청하는 악수에 힘찬 손길로 응하고, 액받이를 쓰다듬어 보아도 되겠느냐고 예의 바르게 묻는 사람에게는 너그러운 태도로 승낙했다.

정환이 입혀 준 면바지 차림으로 온 올린은 아무렇지도 않게 남의 손에 뺨이 어루만져지고, 입이 벌려졌다. 옷 위로 볼기를 쓸고 두 쪽 볼기 사이의 골을 손가락으로 훑는 남자도 있었다. 모두 도련님께 양해를 구한 다음에 뻗어진 손길이었으므로 얌전히 순종했다. 긴장한 기색을 알아챈 도련님이 입을 벌리게 하고 손에 든 잔의 액체를 흘려 넣어 주셨다. 달콤한 술이었다.

술 한 모금을 삼킨 다음 맞이한 남자는 셔츠 위로 도드라진 젖꼭지를 잡아당겨 보기도 했다. 그는 도련님을 향해,

“순하고 건강하고, 아름답네요. 역시 심성가의 액받이답습니다. 부럽습니다.”

하고 칭찬하며 올린의 젖꼭지에서 아쉬운 손길을 거뒀다. 고개 숙인 올린의 항문에서 장액이 주르르 흘렀다. 도련님도 그 남자의 곁에 선 액받이의 머리를 손끝으로 쓰다듬으며,

“귀여운 녀석이군요.”

하고 칭찬했다. 그러나 남자가 은밀한 미소로 교환을 제의하자,

“아직 길이 덜 들어 버릇이 없습니다.”

하고 올린을 깎아내리며 딱 잘랐다. 올린은 낯선 남자의 손에 떨어지지 않게 되었음을 안도하는 동시에, 자신의 어떤 면이 도련님 보시기에 버릇이 없는 것일까 하고 조금 풀이 죽기도 했다.

이윽고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다. 도련님은 뺨을 톡톡 두드려 주고는 액받이들을 인계받으러 온 조교들의 손에 올린을 넘겨주었다. 다른 액받이들과 함께 조교들의 손에 이끌려가던 그는, 도련님이 다른 남자들과 함께 계단식 관중석 자리에 앉는 모습을 곁눈질했다. 올린이 설 자리는 푸른 잔디 위에 나란히 그려진 숫자 위였다. 12, 라는 숫자 위에 서서 조교들이 시키는 대로 두 손을 차려 자세로 늘어뜨리고 고개를 조금 들었다.

명령이 떨어지자, 액받이들이 일제히 탈의하기 시작했다. 올린처럼 평범한 옷을 입은 액받이도 있었고, 자루 같은 형태의 옷만을 입고 있었던 액받이도 있었고, 제복처럼 보이는 옷을 입은 액받이도 있었지만 발가벗기자 모두가 비슷해 보였다.

체형은 조금씩 달랐으나 대개 액받이의 삶이 그러하듯 식사가 제한되고 신체 단련이 일상화되어 있어 보기에 좋은 몸들이었다. 얼굴 또한 당연히도 다들 아름다웠다. 올린은 자신이 이 많은 액받이들 사이에서 도련님 눈에 부족해 보일까 봐 조금 초조했다.

그들은 액받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7개의 기본 강령을 함께 왰다. 왠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중얼거리던 올린은 액받이 중 하나가 목소리가 작다는 이유로 지적받는 것을 보고 꽉 막힌 것 같은 목을 틔우려 애썼다.

다음에는 조교의 구령에 맞춰 24개의 자세를 동시에 취했다. 외설스러운 자세가 나올 때마다 관중석에 앉은 주인들이 작게 술렁였다. 어느 호들갑스러운 주인은 액받이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씹순아, 더 벌릴 줄 알잖아!”

하는 바람에 좌중을 웃겼다. 올린은 항문을 주인들을 향해 쳐드는 수치스러운 자세를 취하며, 지금 자신의 도련님도 웃고 계실까 생각하다가 온몸을 벌겋게 물들여 버렸다.

마지막으로 24번, 꼿꼿하게 서서 다리를 벌리고 양팔을 머리 뒤에 올린 자세를 취한 상태에서 행사는 끝났다. 주인들은 저마다 자신의 액받이들에게 다가와 몇 마디 격려의 말을 남기거나 움직이지 못하는 몸을 가볍게 희롱하여 마음을 위로했다.

그러는 동안 액받이들은 부동자세를 유지하면서 다짐의 말을 하거나, 혹은 이 주간이나 못 볼 사랑하는 주인의 얼굴을 열렬한 눈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주인과 입을 맞추는 액받이도 있었지만, 훌쩍거리며 울다가 뺨을 얻어맞고 몹시 꾸중을 듣는 액받이도 없지 않았다.

올린은 도련님이 다가오시기를 기다리면서 어수선한 시간을 견뎠다. 다른 이들에 가로막혀 조금 늦게 다가온 도련님은,

“못 버티겠으면 조교에게 중도 퇴소를 요청한다고 말하면 돼. 바로 데리러 올 테니.”

하고 다정한 소리를 했다. 올린은 예상치 못한 따뜻한 말에 다문 입속으로 재채기 같은 울음을 터뜨리면서도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도련님, 끝까지 잘하겠습니다.”

“그래. 착하다.”

장난스럽게 말한 도련님은 단정한 눈썹을 한 손가락으로 덧그렸다.

“잘하고 오면, 더 귀여워해 주마.”

올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하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어쩐 일인지 소리가 목에서 막혀 터져 나오지를 않았다.

입소 행사가 마무리되고, 주인들이 하나둘씩 각자의 차에 올라 사라졌다. 어둠이 내려앉고 행사장의 캐노피가 철거되도록 액받이들은 그대로의 자세를 유지한 채 대기해야 했다. 조교들은 서른 명이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선 주위를 순찰하듯 돌다가, 자세를 흐트러트리거나 표정이 구겨지는 액받이를 끌어내어 본보기로 매질하기 시작했다.

올린은 자신의 바로 옆에 섰던 11번이 끌려 나갈 때 덩달아 옆구리를 후려 맞고서도 자세를 유지했다. 첫날 본보기 매질은 혹독할 게 분명했다. 오늘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매 맞을 일을 만들지 않아야 했다.

팔이 아파 등을 비틀었다는 죄목으로, 11번은 모두의 앞으로 끌어내어졌다. 모두가 취한 것과 같은 자세를 취하게 하고, 조교가 다리 안쪽을 채찍으로 툭툭 쳐서 무릎을 바깥으로 구부리게 했다. 가랑이를 한껏 벌린 채 무릎을 굽힌 자세의 11번은 여러 갈래의 채찍으로 아래에서 위로 후려치는 매를 맞았다. 불알과 회음과 항문을 한 대 맞을 때마다,

“하낫, 단정한 자세를 유지하겠습니다,”

“둘, 단정한 자세를 유지하겠습니다,”

하고 지시받은 대로 외치는 목소리에 금방 흐느낌이 섞여 들었다. 아래를 때리고 앞으로 치솟아 아랫배를 할퀴는 채찍 끝 때문에, 엉덩이로부터 사타구니를 지나 자지와 배꼽 아래까지가 새빨갛게 된 11번은 서른 대를 맞고서야 제자리로 돌아가도록 허락받았다. 어기적거리며 돌아온 11번이 훌쩍이며 24번 자세를 다짐하듯 단단히 취하고, 시선 또한 멀리 두는 모습을 올린은 겁에 질린 채 훔쳐보았다.

그러나 두 번째로 걸린 26번은 달랐다. 눈이 커다랗고 새까매서 가만있어도 우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 타고난 듯 몸의 선이 가는 데다 그의 주인이 몹시 굶기는지 유독 갈비뼈가 도드라졌다. 그는 장시간 같은 자세를 취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비틀거렸다가 11번과 같은 방식으로 끌려 나갔다. 그러나 그는 11번과는 달리 최초의 매질부터,

“하나, 단정, 한….”

하고 지시받은 다짐을 외치다 말고 울음을 터뜨려 버렸다. 올린도 같이 울어 버리고 싶은 심정으로 어린 소년 같은 인상의 26번이 눈물을 짜는 것을 바라보았다. 조교가 웁니까, 26번, 벌써 웁니까, 하고 다그치자 필사적으로 입을 다물었지만 앙다문 입술 사이로도 크흐으, 크흐으 하는 울음이 샜다. 조교가 그에게 물었다.

“26번. 숫자 제대로 못 셉니까.”

그는 울면서 죄송하다고 외쳤다. 그러나 조교는,

“숫자 세지 않고 두 배로 맞습니다.”

하고 선고했다. 울음소리가 일순 커졌으나 그는 간신히 알겠습니다, 조교님, 하고 답해 냈다.

그러나 26번은 정말로 통증에 약했다. 그는 열 대도 채 맞지 못하고 자세를 흐트러뜨리고, 벌겋게 달은 사타구니를 움켜쥔 채 제 자리에 꿇어앉았다. 조교들이 일으키자 벌벌 떨고 고개를 젓고, 제자리에서 뜀을 뛰다시피 하며 쩔쩔맸다. 올린은 채찍질의 고통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꼴사납다고 할 그 모습에 눈물을 뚝뚝 흘렸다. 바로 다음 순간 자신도 그런 모습이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26번은 결국 철봉에 팔다리가 묶인 채 매를 맞게 되었다. 철봉은 액받이들이 향해 선 곳의 반대쪽에 있었으므로, 올린을 비롯한 나머지들은 26번이 어떤 자세로 묶여 맞는지 볼 수 없었다. 그는 제대로 숫자를 세지 못한 데다 자세까지 유지하지 못한 죄로, 최초에 맞아야 했던 매의 세 배인 아흔 대를 맞았다.

아흔 번의 채찍 소리가 집요하게 이어지는 동안 억누르지 못한 비명과 터져 나오는 애원을 들으며 자세를 유지하는 것은 무척 괴로운 일이었다. 마흔 대가 넘어가자 아악, 아악, 하고 지르는 비명 사이에 대표님, 살려 주세요, 대표님, 하고 주인을 찾는 소리를 섞이는 것이 괴로운 것은 액받이들뿐이었다. 매를 치던 조교는 잠시 채찍을 멈추고,

“26번, 대표님께서 이 난리 부리는 것 보시면 뭐라고 할 것 같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리고 다시 이어진 채찍질에는, 목놓아 우는 울음소리는 이어질지언정 대표님을 찾는 애원은 섞이지 않았다. 그의 다리 사이가 피투성이가 되었을 것을 상상하자 자신의 아래가 찢긴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올린은 자신의 곁을 지나는 조교가 덜덜 떠는 자신의 허벅지를 유심히 보고 지나치는 것을 느꼈다. 이러한 떨림조차 자세를 유지하지 못한 것이라고 몰아세우면 꼼짝없이 매를 맞게 될 것이다. 떨지 않으려고 했지만, 경련은 의지로 잠재울 수 없었다. 온몸에 힘을 준 채 허공을 바라보는 동안 다행스럽게도 조교는 그대로 지나갔다.

목장처럼 보이는 캠프의 넓은 잔디밭 곁에는 동물의 축사와 흡사한 형태로 지어진 임시 건물이 있었다. 바닥에 거칠게 콘크리트가 발린 건물의 구조는 단순했다. 가운데 긴 복도를 두고 양옆으로는 금속 펜스로 구획이 나누어진 공간이 이어져 있다. 하나의 칸은 사람 하나가 다리를 웅크리고 누울 수 있을 만큼의 넓이였는데, 그곳이 액받이들의 잠자리였다.

액받이들은 축사에 들어가기 전에 번호순으로 줄을 서서, 두 모금씩의 물을 급여 받았다. 주인이 보내 준 약을 배급받는 액받이도, 아무것도 받지 않는 액받이도 있었는데 올린은 알약 여러 개를 받았다. 두 모금의 물로 한 웅큼의 알약을 삼키느라 목이 아팠다.

딱 한 모금만 물을 더 마실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동안 번호가 불렸다. 단단히 긴장한 채 그쪽을 향했는데, 그저 엉덩이와 양 손등에 맞아야 할 주사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올린은 혹여라도 허락되지 않은 앓는 소리를 하게 될까 봐 이를 악문 채로 손을 내밀어, 아무렇게나 찔린 주삿바늘에 손등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서야 축사에 들여보내졌다.

번호순으로 배정된 펜스 안에서 기다리자 조교들이 얇은 모포 여러 장을 가지고 들어왔다. 한 사람당 한 장씩의 모포를 나누어 준 조교들이 자리에 누우라고 지시했다. 올린은 모포를 덮는 대신, 거칠고 찬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엎드리듯 웅크렸다. 축사 지붕에는 군데군데 유리창이 나 있어 한여름의 별들이 반짝였다.

딱딱하고 추운 잠자리였다. 여름인데도 그랬다. 올린은 땀이 식는 동안 오한이 들어 벌벌 떨면서도, 별이 아름답고 모기가 없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축사에 저마다 몸을 누인 액받이들은 곧 잠에 빠져들었다. 이미 자정이 지난 시간이었다. 그리고 내일은 이른 새벽부터 훈련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눈을 잠깐 감았다가 뜬 것 같은데 아침이었다. 올린의 잠자리가 축사의 정 가운데쯤 위치했기 때문에, 그는 거센 수압의 물줄기로 얻어맞기 전에 이미 잠에서 깨어나 있었다. 축사의 입구 쪽에서 잤던 입소자들에 비해 운이 좋은 편이었다.

조교들은 소방호스처럼 굵은 호스로 물을 뿌려 대며 입소자들을 깨웠다. 입소자들이 흡사 바닥에 눌어붙은 오물이라도 되는 양 떼어 내는 무자비한 물줄기에, 곤한 잠에 빠져 있던 입소자들이 마구 밀려나고 나동그라지며 깨어났다.

올린은 물소리와 비명 소리를 듣고 몸을 일으키던 순간 물을 맞았다. 물은 그저 액체일지라도 고압으로 뿜어내어지면 돌덩이같은 위력을 가지므로, 그는 한 번 뒤로 자빠졌다가 네 발로 바짝 기어 엎드렸다. 물줄기는 올린의 등허리가 뭉근하게 아프도록 세차게 후려 때리다가 다음 입소자에게로 넘어갔다.

목이 긴 장화를 신은 발들이 절벅거리며 축사 안을 돌아다녔다.

“기상!”

“바로 서!”

“24번 자세!”

하는 고함이 메아리처럼 실내를 울렸다. 올린은 어제 입소식 마지막에 취하고 몇 시간을 유지했던 바로 그 자세를 다시 취한 채 앞을 바라보았다. 건너편 칸막이 안의 입소자와 눈이 마주쳤다. 어쩐지 민망하여 시선을 피했다.

조교들은 손잡이가 길고 끝이 네모난 청소 솔을 들고 빠른 걸음으로 축사 안을 돌다가, 아직도 제대로 자세를 잡지 못한 입소자의 몸이 더러운 것이라도 되는 양 솔로 박박 문질렀다. 뻣뻣한 플라스틱 모에 마구 긁힌 살갗이 벗겨져 피가 나는 채로 자세를 취한 입소자들 중 하나는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올린은 눈알을 굴려 울음을 터뜨린 입소자가 청소 솔의 손잡이 끝으로 배꼽 근처를 여러 번 찔려 마침내 쓰러지고 마는 것을 지켜보았다. 바닥에 엎드린 입소자의 등을, 청소 솔을 든 조교 여럿이 마구잡이로 문질렀다. 올린이 선 곳에서는 그의 등이 어떤 꼴로 망가져 가는지는 보이지 않았으나, 사람의 살을 싹싹 긁는 소리로도 몹시 아플 것은 알 수 있었다. 긴장하여 숨을 헐떡이는 올린의 몸에서도 물이 뚝뚝 흘렀다.

젖은 채로 아침의 체조를 했다. 체조는 다섯 개의 동작을 반복하는 방식이었는데, 조교들이 축사 양쪽 문가에 선 채 먼저 시범을 보였다. 바로 섰다가, 쪼그려 앉아 바닥을 짚고, 다리를 쭉 펴 엎드려 뻗친 자세를 취한 후에, 도로 다리를 당겨 쪼그려 앉는다. 마지막으로 다시 바로 선 자세로 돌아오면 숨돌릴 틈 없이 바로 같은 동작의 반복이었다.

화송에서도 매일 했던 운동이었으므로, 올린은 이 체조가 얼마나 사람의 진을 빼는지 잘 알았다. 그래서 쪼그려 뻗치기 100회 실시합니다, 라는 구령이 떨어지기 전에 가만히 목울대를 울리며 숨을 가다듬었다. 하나, 둘, 셋, 하나! 하나, 둘, 셋, 두울! 이어지는 박자보다 앞서거나 뒤떨어지면 혼이 날 터이므로 귀를 열었다. 손의 구멍이 짓눌리는 바람에 몇 번이나 비틀거렸다. 다섯 번이 지나기 전에 벌써 생각나는 건 중도 퇴소를 언급했던 도련님의 목소리였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 때까지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동안, 조교의 청소 솔 끝으로 몸이 찔리지 않은 입소자는 몇 되지 않았다. 대개는 너무 느리거나 자세가 정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기다란 막대 끝에 배나 가슴이 찔려 커흑 어윽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가, 똑바로 못하느냐는 호통에 다시 일어나 계속했다. 올린은 숨찬 와중에도 조교들의 눈을 피하고 악착스럽게 자세를 바로 하여 트집잡히지 않고 아침 체조를 마칠 수 있었다.

바로 서서 숨을 헐떡이는 올린을 조교 하나가 눈여겨보고 지나갔다. 희고 단단한 피부, 엷은 빛이되 꽤 크게 발달한 유두, 휜 데 없이 곧고 매끈한 자지와 그 아래의 늘씬한 다리를 훑은 눈이 다시 올라와 구멍 난 손등 위를 향했다.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게 신기할 정도로 잔혹한 구멍이 뚫린 손에 달린 열 손가락이 그 몸만큼이나 희고 곧았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른 올린은 그 눈빛을 알아채지 못한 채 다음의 명령을 따랐다. 일제히 열린 칸막이의 문 앞으로 나아가 모두가 같은 13번 자세를 취했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허벅지에 손을 둔, 젖꼭지를 학대하기 가장 편리한 자세였다.

아직 젖꼭지를 뚫린 적은 없던 올린은 조교들이 굵은 옷핀이 달린 명찰을 허공에 들고 용도를 설명하자 바짝 긴장했다. 아직 숨을 고르지 못한 어깨를 들썩이며, 무서운 것을 곁눈질하다 다시 앞을 바로 보았다. 올린의 번호는 12번, 번호순이라면 그는 열두 번째로 유두가 뚫릴 터였다. 입구 쪽에 앉은 인원부터 시작한다면 그보다 일찍 차례가 올 것 같았다.

조교가 1번 입소자의 젖꼭지를 떼어 낼 듯 잡아당겨 주무르는 모습은 올린이 앉은 곳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명찰의 옷핀이 머리를 꾸욱꾸욱 눌러 돌리며 젖꼭지를 관통할 때 내는,

“크으, 흐으윽, 아으….”

하는 비통한 신음은 한참 떨어진 올린의 칸막이까지도 또렷하게 들렸다.

*

둘째 도령은 캠프로부터 도착한 보고서를 유심히 살폈다. 모든 주인에게 날마다 전송되는 보고서에는 스무 장의 사진과 한 장의 일정표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천천히 살피고는 가장 마지막 장의 익일 요청 사항에 체크했다.

가장 먼저, 식사의 종류와 양이다. 둘째 도령은 금식, 극소식으로부터 극과식까지로 이루어져 있는 항목 중 소식에 표시하고, 메뉴에 대한 세 가지 선택지 중 별다른 고민 없이 첫 번째를 클릭했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모두 대단한 혐식이었고 첫 번째만 정상 식사였다.

그는 올린의 귀여운 배에 오물에 가까운 더러운 것이나, 눈 뜨고 보기조차 징그러운 것들을 처넣는 취미는 없었다. 어떤 액받이들은 혐식을 극과식하도록 강요받는 것에 비해 올린은 정상식을 소식하게 될 것이다. 그는 저택에서 그러했듯이 하루 두 끼, 양질의 식사를 제공받는 운 좋은 액받이였다.

두 번째는, 훈련 매뉴얼이었다. 다른 항목은 대강 넘긴 그는 확장 훈련 항목에 시간을 투자했다. 강도와 난이도를 1부터 10의 숫자 중 최고점인 10으로 클릭하고, 삽입체의 한계 직경을 잠시 고민하다가 원하는 숫자를 입력했다. 핸드폰 화면을 뒤에서 함께 보고 있던 목소리가 말했다.

“이거 깊이 아니고 지름인 거 같은데.”

둘째 도령은 돌아보지도 않은 채 형의 목소리에 대답했다.

“알아요, 지름. 이 정돈 됐으면 해서.”

“그게 무슨… 애를 죽이려고.”

“다들 전문가들인데 죽는다는 소린 왜 해, 안 죽여요.”

“5센티면 쓸만하게 길들지 않겠어?”

“5센티…? 하,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둘째의 짜증에 첫째가 혀를 찼다. 그가 빼앗으려는 핸드폰을 가볍게 들어 피하며 둘째 도령이 말했다.

“형님. 내가 사용할 때마다 찢어 놓으면 좋겠소?”

“올린 정도면 유연한 편이지 않아? 네 좆이 말좆인 걸 이딴 식으로 나오면 곤란하지.”

“요전에는 한 시간을 풀어 줬어요, 그래 놓고 들어가는 데 또 삼십 분. 나도 좀 맘 놓고 써 봅시다.”

“헐렁거리면 어떡해. 계속 벌어져 있으면 안 예뻐. 애가 조신하게 몸 간수하게끔 도와주진 못할망정.”

“확장 훈련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벌려 놓는 거 아니에요, 형님.”

“아 됐고, 줄여 이기적인 새끼야.”

“싫습니다.”

“줄이자.”

“안 된다니까.”

첫째 도령은 꼴통 동생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러더니,

“약 줄게.”

했다.

“보통 이완제랑 달리, 겉만 완전히 이완하고 안은 경련하게 해. 다른 이완제는 몸을 둔하게 만들지만 이건 오히려 예민도도 올라가고. 매번 직장 내벽에 주사해야 해서 맞는 놈이 좀 무서워하긴 하겠지만, 사용감은 최상이야.”

“형이 만든 거요?”

“재작년 상품, 그것보다 나은 건 아직 시장에 없어.”

“근데 왜 여태 안 줬는데.”

“…너 고생하는 거 보려고…가 아니라.”

“뭐요.”

“맞는 놈이 좀 고생하거든. 주사 한 번 놓으면 서너 번은 박아 줘야 발정이 좀 가라앉을 거야. 아마 사정도, 자력으로 참지는 못할 테고.”

둘째는 오히려 그 부작용이 몹시 마음에 들었다. 더 박고 싶은 걸 참느라 고생이었는데, 하룻밤에 서너 번이나 쓸 수 있다니.

“그러니까 확장 한계 지름은 좀 줄이자, 응?”

둘째 도령은 사업가답게 관심 없는 척 다음 장으로 넘어가려 했다. 입력한 숫자는 그대로 둔 채였다. 그들은 핸드폰을 뺏으려, 뺏기지 않으려 툭탁거렸다. 둘 다 나이는 먹을 대로 먹은 삼십 대 아저씨들, 사업체를 운영하는 점잖은 비즈니스맨이지만 싸울 땐 어릴 적 습관이 나왔다. 연년생인데다 어렸을 적부터 동생이 형보다 덩치가 컸으므로 그들은 주먹다짐은 잘 하지 않았다. 주로 꼬집고 깨물고 머리를 잡아 뜯으며 다퉜었다.

“약 무제한 공급이요.”

형님의 머리채를 잡은 둘째가 말했다.

“삼 개월은. 그 후엔 돈 받을 거야.”

동생의 멱살을 잡은 첫째가 약은 소리를 했다. 올린에게 다행스럽게도, 입력되었던 숫자는 줄었다. 그것도 보통 이상의 크기였으나 일단 둘은 쿨거래를 축하하는 악수를 나눴다. 싸우느라 서로 쥐어뜯어 머리는 헝클어지고 옷깃의 단추가 터진 채였다.

“다음 항목은 뭐지?”

프린세스 메이커 하는 기분으로 첫째가 물었다. 둘째가 말없이 복장 항목임을 보여 주었다. 낮의 훈련을 받는 동안에는 일괄적으로 나체이나, 잠자리의 복장은 선택할 수 있었다. 완전한 나체부터 티셔츠와 반바지의 평범한 차림까지 단계별로 다르게 입힌 샘플 사진을 훑었다. 첫째 도령이,

“브래지어랑 레이스 팬티도 있네, 진짜 귀엽겠다 그거 입히자. 사이즈 제일 작은 거로. 색깔은 하얀색뿐이야?”

하는 소리에

“거기 고도 높아요, 자는 데도 콘크리트 바닥이던데. 아무리 여름이라도 애 배앓이해.”

하며 둘째 도령은 평범한 복장을 갖춰 입히는 항목에 체크했다. 첫째 도령은 입맛을 다실 뿐, 별말 하지 않았다. 2주 후에 데리고 와서 마음껏 입혀 보면 될 일이다.

“올린은? 사진 줘 봐.”

두 형제는 핸드폰의 작은 화면을 다정스레 머리를 맞대고 보는 대신, 사진 파일을 메일로 주고받았다. 첫째 도령은 어쩐지 들뜬 기색으로 첫 번째 파일을 열었다. 땀투성이가 되어 푸른 잔디 위를 달리는 올린의 얼굴은 울거나 맞은 기색도 없이 너무 청순하기만 했다. 겁먹고 벌벌 떠는 꼴을 기대했던 첫째가 실망의 기색이 완연하여 쳇, 하고 혀를 차자 그가 원하는 사진이 어떤 것인 줄 뻔히 아는 둘째가 한숨을 섞어,

“우는 거 네 번째부터 나와요. 젖꼭지에 명찰 다는 게 무서웠나 봐. 잔디에서 다른 애들이랑 같이 기마 자세로 기합받는 것도 있어요. 그게 진짜 귀여운데 땀 뻘뻘 흘리고… 여깄네.”

하고 알려 주었다. 사진을 들여다보는 첫째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어리고 두 눈은 깜빡임조차 없었다.

*

모두가 열을 맞춰 잔디 운동장을 도는 동안, 조교가 번호를 호명하면 해당 입소자가 열에서 벗어난다. 동그란 구멍이 뚫린 일자 형틀에 엎드려 다리를 벌리고 항문과 엉덩이를 드러내면, 쩌억쩌억 소리가 울리도록 거센 매가 열 번 떨어졌다. 곤장 같은 매를 맞고 나면 다시 운동장을 뛰는 무리로 돌아갈 수 있지만, 아프다고 절룩이거나 엉덩이를 과하게 만지거나 우는소리를 하면 도로 끌어내어졌다.

올린의 차례였다. 형틀의 구멍에 자지와 불알을 맞춰 끼우느라 잠시 무릎을 댄 채 형틀을 짚은 손을, 매를 든 조교가 쿡 찔렀다.

“이거 좀 봐.”

올린에게 말한 것은 아니었다. 올린은 조교들이 자신의 손을 구경하는 동안 숨을 죽였다. 한가운데 구멍이 뚫린 채로도 멀쩡히 움직이는 손이라니, 그들은 신기해하면서도 그 효율에 감탄했다.

“여기를 꿰어 매달면 체중을 견딜지 모르겠네.”

“로프 하나로 체중을 지탱할 만큼 구멍이 견고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상박 구속에는 편리할 것 같은데.”

“12번, 젓가락질할 수 있습니까?”

올린은 자신에게 떨어진 질문에 놀란 것을 감추고,

“예, 할 수 있습니다. 조교님.”

하고 답했다. 섬세한 놀림은 어려우나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 말을 들은 조교들은 신기해하며 올린을 형틀에서 내려 바닥을 손으로 짚고 엎드려 뻗치게 했다. 체중 대부분을 손바닥에 싣고 버티는 것은 온몸이 벌벌 떨리게 어려운 일이었다.

고꾸라지지 않고 견디기는 하나, 손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니 몸의 다른 부분의 근육이 바짝 섰다. 당연히 매를 맞아야 할 볼기에도 꽉 힘이 들어갔다. 그대로 매질하려던 조교들은 몇 번을 다그쳐도 엉덩이에 힘을 빼지 못하는 올린을 도로 형틀에 올렸다.

자지와 불알이 뚫린 구멍에 쏙 들어가 허전하고 불안하게 달랑거렸다. 매를 기다리며 올린은 반 불구의 손으로 형틀 끝을 다잡았다. 움직일 때마다 둔통이 있더라도 손가락을 쓸 수 있어 다행이었다.

올린에게 손의 구멍은 도주의 결과를 상기시켰다. 다시는 그런 죄를 짓지 말라는 도련님들의 경고와도 같았다. 그러나 그런 것을 모르는 조교들의 눈에, 구멍은 아주 정성스럽게 뚫고 섬세하게 관리하여 완성한 효율적인 신체 개조의 결과인 모양이었다.

매가 높이 들렸다. 구멍이 송송 뚫린 패들은 동그랗게 솟은 엉덩이가 한순간 납작하게 짜부라지도록 세게 때리고 떨어져 나갔다. 올린은 형틀을 다리 사이에 두고 활짝 벌린 허벅지를 오므리지 않으려 애를 쓰며, 엉치뼈와 항문과 볼깃살을 한 번에 격한 고통 속에 빠뜨린 매질을 버텼다.

열 번의 매질이 끝나고 다시 운동장을 뛰는 무리로 돌아가는 걸음이 괴로웠다. 그러나 고통을 속으로 삭이지 못한 다른 입소자들이 더 큰 괴로움을 당하는 것을 보았으므로, 올린은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려 애썼다. 숨이 차도록 뛰고, 엉덩이에 매를 맞는 것은 다음 있을 확장 훈련에 대한 준비 과정일 뿐이었다. 구멍 주위를 착실히 달구어 놓아야 열리기도 잘 열리는 것이다.

서른 명의 입소자들은 다시 축사로 돌아가기 전에 운동장 끝의 창고로 이끌려갔다. 그곳에는 학교에서 학생용으로 쓰는 것과 비슷한 좁은 책상들이 수십 개나 보관되어 있었는데, 그들은 각각 그 책상을 하나씩 들고 운반하도록 지시받았다.

잔디가 상할 수도 있으므로 바닥에 끌지 말라는 안내에 책상을 높이 든 입소자들은 개미처럼 묵묵하게 열을 지어 이동했다. 축사로 돌아가는 엉덩이는 사타구니까지 이어지는 맷자국으로 하나같이 벌겠다.

축사의 칸막이는 그들의 잠자리였다. 아침에 있었던 물청소의 흔적은 거의 말라 가고 있었다. 그들은 각자에게 주어진 칸막이의 입구에 바싹 붙여 책상을 두고, 책상 앞에 부동자세로 선 채 다음의 훈련이 시작될 때까지 대기하라고 명령받았다. 조교들의 점심시간이었다. 입소자들만 남았다. 잠시의 시간이 지나자, 열중쉬어 자세로 선 입소자들 사이에 자그맣게 속삭이는 소리가 오고 갔다.

올린과 서너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 마주 보고 선 입소자는 19번 명찰을 가슴에 달고 있었다. 올린은 멍한 눈으로 그 명찰이 꿰어진 왼쪽 젖꼭지를 쳐다보았다. 판판한 가슴 위의 돌기는 붉게 부풀어 몹시 아파 보였다. 아마 12번 명찰이 달린 자신의 유두도 같은 처지일 터였다. 뚫릴 때 가만있지 못하고 몸부림쳐서 몇 번이나 다시 찔렸었다. 매 맞은 엉덩이가 너무 화끈거려 잠시 잊었던 무서운 아픔이 되살아났다.

“너, 괜찮아?”

19번이 속삭였다. 올린은 그가 말을 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 눈알을 굴려 주위를 확인했다. 축사 안에는 같은 자세로 대기하는 서른 명의 입소자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다른 입소자들도 알아듣지 못할 말들로 서로 속닥거리고 있었다. 올린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19번은 자세를 유지한 채로 싱긋이 웃었다. 올린은 그 웃음에 당황하여 시선을 떨궜다. 그의 성기 위로부터 배꼽을 지나 명치에 이르기까지는 보기에도 끔찍한 커다란 상처가 있었다. 첫날에도 눈에 띄었던 상처는, 날카로운 것으로 깊이 그어 벌어진 살을 얼기설기 꿰매 둔 것 같은 모습이다.

“아, 이거? 잘 보면 상처 아니야, 문신이야.”

올린은 자신의 사타구니에 넓게 그려진 꽃나무 가지를 떠올렸다. 도련님들의 소유라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 가문의 상징을 새겨 주신 거라고 들었다. 19번이 속한 집안의 상징이 대관절 무엇이길래 저런 문신일까, 보기만 해도 아파 보인다고 생각하며 올린은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19번이 속삭였다.

“예전에 큰 잘못을 저질렀을 때, 또 같은 짓을 하면 이대로 배를 가르시겠다고 새겨 놓으셨어.”

올린의 낯이 창백해졌다. 19번은 그러나 태연하게 미소 지었다. 올린과 키도 체형도 얼굴의 인상도 비슷한 19번은, 미소할 때만은 입술이 시원하게 벌어졌다. 잘 웃지도 않거니와 웃을 때조차 머뭇거리는 올린과는 그 점 하나가 몹시 달랐다.

“다신 안 그러면 되니까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19번은 근심하는 낯이 된 올린을 오히려 위로했다. 올린은 어떻게 대답하는 게 좋을지 몰라 침묵했다. 이렇게 소곤대다 걸리면 받을 벌이 갑자기 더 무서워지기도 했다. 배가 갈리진 않겠지만, 무척 모진 벌을 받게 될 것 같았다.

“난 그런 것보다 여기서 열두 밤이나 더 자야 할 게 걱정이거든… 딱 보니 알겠어, 넌 여기가 처음이지?”

19번은 그러나 무료한 모양이었다. 그는 주위를 경계하며 고개만 끄덕이는 올린을 향해,

“그렇게 보여. 처음부터 잔뜩 기운을 빼는 게.”

하고는 천진하게도 뻐기듯 웃었다. 2주간 진행되는 훈련은 시간이 갈수록 어려워지니 처음부터 힘 빼지 말라는 조언도 함께였다. 올린은 이것보다 더 어려운 훈련이란 대체 무엇일지, 정신이 아뜩해졌다. 이제 둘째 날 오전의 일과가 끝났을 뿐인데 벌써 도련님들의 품이 그리웠다.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봐, 난 이번이 여섯 번째거든.”

그 말을 듣고 올린이 입을 벌리려던 찰나, 축사의 입구로부터 쩌렁쩌렁한 호령이 들려왔다.

“19번, 앞으로!”

철없이 웃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올린도 함께 창백해져서, 허리에 힘을 주고 몸을 빳빳이 세웠다. 19번은 입을 딱 다물고 한 걸음 앞으로 나와 섰다. 시선이 올린을 향하지 않고 먼 곳을 바라보고 있어, 꼭 명령에 자동으로 반응하는 기계 같았다. 조교가 뚜벅뚜벅 다가오는 짧지 않은 시간이 영원처럼 길게 늘어졌다.

19번의 앞에 선 조교는 손에 든 태블릿으로 그에게 줄 수 있는 처벌의 한계를 확인했다. 올린의 도련님들이 구체적인 내용을 기재했듯이 19번의 주인이 정한 한도도 있었다. 조교는 거기서 얼굴에 대한 채찍질이 허용됨을 확인하고, 칸막이와 칸막이 사이에 매달린 매질의 도구 중 승마용 크롭을 골라 들었다.

“대기 시간이 잡담 시간입니까.”

조교의 말에 올린도 같이 떨었다. 19번이 혼자 떠들어 대긴 했으나, 이야기의 상대는 올린이었다. 심지어 올린은 그가 묻는 말에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여 대답까지 해 주었었다.

“혼자 떠들었습니까.”

같이 혀를 놀리던 물건이 몇 번이냐는 물음이었다. 열중쉬어 자세의 올린이 긴장하여 입만 달싹이는 사이, 19번이 재빨리 대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조교가 피식 웃고 올린을 힐끔 바라보았다. 올린의 섬세한 울대가 크게 움직이고, 무언가 말할 듯 벌어졌다. 그러나 조교는 올린으로부터 고개를 돌려 더 이상의 덧붙이는 말을 차단했다.

19번이 명령대로 혀를 길게 뺐다. 채찍을 휘두르는 데는 상당한 경지에 이른 조교는, 정확히 혓바닥을 겨냥해 채찍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크롭의 끄트머리에 달린 납작한 가죽이 19번의 입술과 혀를 상처입히는 동안, 19번은 눈을 질끈 감은 채로 한 번도 혀를 집어넣지 않고 매를 맞았다.

살이 여린 부위가 쉽게 찢겨 자잘한 핏방울이 사방으로 튀었다. 매를 맞는 것은 19번인데 울기는 올린이 울었다. 그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입술을 꾹 문 채로, 줄줄 흘러 턱에 맺힌 눈물을 그대로 뚝뚝 흘리며 피 튀기는 체벌의 장면을 끝까지 바라보았다.

19번은 서른 대의 매를 맞고 나서, 입안을 가득 채울 정도로 부어올라 잘 움직여지지 않는 혓바닥으로 감사를 표했다. 잘못 맞은 콧잔등이 부풀고 쌍코피가 줄줄 흐르는 얼굴은 아픔은 알되 서러움은 모르는 듯했다. 그는 누굴 원망하지도 않고 제 처지를 괴로워도 않고 순수히 아픔만을 견디는 표정이었다. 올린이 몇 번이나 눈을 감았다가 뜨며 눈물을 걷어 내는 동안 돌아선 조교가 축사 안의 모두에게 외쳤다. 그 바람에 올린은 19번에게 괜찮으냐는 눈빛 한 번 보내지 못했다.

“책상 위에 올라가 엉덩이 듭니다, 실시.”

올린은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아까 스스로 운반해 온 좁은 학생용 책상을 향해 돌아섰다. 책상에 올라가 무릎을 꿇고 엉덩이는 조교들이 지나다니는 복도 쪽을 향해 쳐든 자세를 취했다.

“고개 숙여서 양손으로 책상다리 잡습니다.”

복도를 분주히 오가는 조교의 수가 많아졌다. 열 명 남짓한 조교들은 모두 정장으로 환의한 상태였다. 그들은 자세가 어설픈 입소자들을 라텍스 장갑 낀 손으로 만져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교정했다. 올린 또한 허리가 내리눌리고, 양손이 책상다리의 좀 더 아래쪽을 잡도록 교정되었다.

머리가 아래로 향하므로, 조금만 앞으로 몸을 더 기울이면 책상과 함께 바닥으로 넘어질 것 같은 자세였다. 엉덩이 쪽에서 누군가가 세차게 몸을 민다고 해도, 넘어지지 않기 위해선 자세를 그대로 유지하는 수밖에 없이 아슬아슬한 무게 중심이 공포를 주었다.

진동과 회전 기능이 있는 바이브레이터가, 쳐들린 엉덩이들에 박혔다. 바이브레이터마다 끝의 고리에 번호표가 달려 있었는데, 그들은 삽입 전 입소자에게 자신의 번호를 복창하게 하고, 삽입 후에는 매직으로 양쪽 볼기에 숫자를 썼다.

올린의 항문에도 바이브레이터가 박혔다. 왼 궁둥이에는 입소번호인 12번이, 오른 궁둥이에는 최고 직경이 휘갈겨졌다. 숫자를 쓴 조교는 매직의 뒤쪽으로 이미 작은 바이브레이터가 박힌 항문을 한 번 휘적거려 훈련의 추이가 어떨지 가늠해 보더니 조금 넓게 시작하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하고 매직을 바이브레이터 옆에 함께 쑤셔 넣어 두었다.

삽입 후 바로 스위치를 켜 주며, 조교들은 복압을 사용하여 속으로 잘 흡입하라고 당부했다. 제대로 흡입하지 못하여 떨어뜨리면 벌이 기다리고 있을 게 뻔했다. 모든 입소자의 항문에 가장 작은 바이브레이터가 들어가자 이것이 시작이었다.

올린은 축사 안을 울리는 나지막한 기계음들과, 그에 따르는 억눌린 신음을 들었다. 아픔조차 느껴지지 않을 만큼 익숙한 진동 속에 그는 조금 전까지 얼굴에 채찍을 맞은 19번을 걱정했다. 매 맞은 얼굴을 아래로 향했으니 작열감은 더해졌을 터였다. 자신과 대화를 시도하다가 남들보다 큰 고통을 떠안게 된 같은 처지의 물건에 대한 부채감이 올린의 가슴에 돌처럼 얹혔다.

그러나 그것도 제정신일 때의 일일 뿐이었다. 장시간 구멍을 자극받으며 같은 자세로 버티는 동안 올린은 가책이나 죄책감, 혹은 다른 이를 걱정하는 마음 따위는 잃어버리고 말았다. 아래에서 밀려 오르는 애타는 간지러움과 그 뒤로 이어지는 뜨거운 통증에 그 자신도 치밀어오르는 신음을 짓누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조교들은 부지런했다. 복도를 걸어 다니며 엉덩이의 떨림을 감시하고, 바이브레이터가 삐져나오려고 하는 구멍을 찾아냈다. 창자의 깊은 곳을 무겁게 쥐어 패는 듯한 몸짓으로 재삽입해 주기 전에는 여러 갈래의 채찍으로 모질게 후려 때리며 복압을 사용하라고 훈계했다.

올린의 아래는 아까 운동장에서 엉덩이를 맞을 때부터 솟아난 장액으로 미끄러웠다. 매직이 주르르 밀려나 바닥에 굴렀다. 당연히 채찍질을 여러 차례 당할 수밖에 없었다. 항문 입구와 바이브레이터를 함께 때리는 채찍질로 인해 직장과 대장의 내벽까지 매 맞는 충격이 울렸다. 아래로 향해 피가 몰린 얼굴로부터 눈물이 흘러 바닥에 뚝뚝 고였다.

시간이 흐르자 바이브레이터는 직경이 조금 더 큰 것들로 바뀌었다. 그리고 어떤 입소자들의 경우에는 주인들이 정한 훈련 매뉴얼에 따라 한계 직경에 다다르면 더는 교체되지 않았다. 그들은 이제 배를 울리는 바이브레이터에 익숙해지고 괄약근을 이완하여 속을 넓히는 연습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올린을 비롯한 대부분의 입소자는 처지가 달랐다. 더욱 크게 확장되길 원했던 주인들의 지시대로, 그들의 엉덩이에는 조금 더 큰 것들이 박혔다가 빠지고 다시 더 큰 것들이 박혀 들었다. 거의 모든 입소자가 주인이 원한 크기의 바이브레이터를 받아들였을 때쯤, 조교들은 자세 변경을 명령했다. 호통 같은 구령에 깜짝 놀란 입소자들이 혹은 울고 혹은 신음하며 허둥지둥 상체를 일으켰다.

액받이들은 좁은 책상 위에 항문과 회음이 문질러지도록 사타구니를 활짝 벌려 앉았다. 가로로 놓인 책상의 양옆으로 다리를 늘어뜨리도록 조교들이 자세를 교정했다. 책상의 높이는 성인 남성의 허리보다 조금 더 높았으므로 그들의 발끝은 바닥에 닿지 못하고 허공에 대롱거렸다. 당연하게도, 체중만큼의 중력이 삽입된 흉물에 가해졌다.

더욱 깊이 들어앉은 바이브레이터의 움직임에 올린은 덜덜덜 떨면서 책상 바닥을 손으로 짚었다가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죄, 죄송합니다, 사죄하는 말을 흘려들으며 조교들은 바이브레이터에 꿰어 허벅지로 책상 모서리를 잡고 버티다시피 하는 올린의 몸을 살폈다. 12번의 주인이 주문한 크기는 가장 큰 축에 속했다. 좀 더 모질게 다그쳐야만 삼켜질 것 같았다.

“12번, 두 손 허리 뒤에.”

올린은 네, 알겠습니다 하고 속삭이며 지시를 따랐다. 조교의 장갑 낀 손이 올린의 어깨를 내리누르는 것만으로도 올린은 목 안으로 크윽, 하고 신음을 삼켰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은 조교는 구두 신은 한쪽 발을 올려, 한껏 벌어진 허벅지가 골반과 맞닿은 경계를 체중을 실어 밟아 눌렀다. 책상과 맞닿아 있던 항문 입구의 바이브레이터가 그 끄트머리까지 안으로 짓눌려 들어가며, 회음부가 완전히 책상에 문질러졌다. 올린은 눈을 질끈 감으며 밭은 숨을 몰아쉬었다.

바이브레이터의 진동이 머리끝까지 전해질 지경으로 고통받는 올린의 아래 들어 있는 것은 다른 대부분의 입소자보다 훨씬 큰 것이었다. 어떻게든 정신을 다잡으려 애쓰는 올린에게 조교 하나가 더 다가섰다. 아직 왼쪽 허벅지가 밟힌 상태의 올린의 다른 쪽 허벅지를, 또 다른 구두가 체중을 실어 눌렀다. 올린은 발기한 젖과 자지, 양쪽 볼깃살이 위아래로 푸들푸들 떨리도록 세차게 경련했다.

조교들은 하나, 둘, 셋, 하고 수를 세었다가 동시에 양쪽 허벅지를 다시 한번 힘껏 짓밟았다. 골반이 벌어지다 못해 거꾸로 각도를 틀며 으깨지는 듯한 고통 속에 안에 어설피 들어 움직이던 바이브레이터가 깊숙이 안착하는 버거운 감각이 치솟았다. 그것을 느끼는지도 인지하지 못한 채 격렬히 휘둘려 버린 12번 입소자, 올린은

“크으으윽-.”

하고 배 속 깊은 곳에서 오르는 신음을 토하며 눈을 까뒤집었다. 조교가 기절하지 못하도록, 작은 전기 충격기를 올린의 옆구리에 대고 스위치를 눌렀다. 발작하듯 떠느라 혀를 깨물며 정신이 돌아온 몸에 엄한 경고가 떨어졌다.

“훈련 중에는 정신 똑바로 차립니다.”

“쉽게 기절하는 태도는 게으름으로 간주합니다.”

“12번, 두 손 다시 등 뒤에 모아 잡습니다.”

올린은 잠에 취한 아이처럼 고개를 가누지 못하는 채로도 명령을 따랐다. 뱃가죽 위로 솟은 원기둥 모양의 바이브레이터는 계속 진동하고 있었다. 속이 뜨겁고 무겁고 아팠다. 둘째 도련님의 자지를 받을 때보다도 버거웠다.

다른 입소자들이 명령에 따라 책상에서 스스로 내려오는 동안, 올린을 비롯한 몇몇 입소자들은 조교의 손에 들려 책상 아래로 내려와 무릎 꿇렸다. 주인들의 요청으로 인해, 다리 사이에 유독 큰 물건이 삽입된 입소자들이었다.

모든 입소자에게 검정색 고무 재질로 만든 벨트가 주어졌다. 폭이 좁지 않은 벨트를 스스로 허리에 채우고, 가장 타이트하게 조였다.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조여진 벨트에 연결된 또 다른 고무벨트는 가랑이 사이를 갈라 고정하도록 지시 내려졌다. 역시 체형에 상관없이 가장 타이트하게 죄라는 명령에 입소자들은 침묵한 채 찰칵찰칵 소리를 내면서 복종했다.

항문에 삽입된 것이 저절로 밀려 나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고무벨트였지만, 착용하면서 자지와 불알이 찌그러지는 고통도 상당했다. 올린은 벨트의 가장 안쪽 구멍에 뾰족한 고리를 밀어 넣으면서 숨을 참았다. 아프긴 해도 이것이 없으면 배 속의 바이브레이터는 조금의 움직임에도 바로 밀려 나올 것이다.

벨트에 손가락을 걸어 단단히 당겨 보며 착용 상태를 검사한 조교들은, 축사 가운데의 복도에 입소자들을 일렬로 앉혔다. 다리를 활짝 벌린 채 쪼그리고 앉은 입소자들의 간격을 조정했다. 그리고는 상체를 숙여 앞사람의 벨트 허리춤에 달린 작은 고리를 입에 물도록 했다. 두 손은 자신의 허벅지를 안았다.

올린의 앞에는 11번이, 뒤에는 13번이 앉았다. 올린의 입은 11번의 허리 벨트를 물고, 올린의 벨트는 13번에게 물렸다. 13번이 올린의 벨트를 입에 문 채 상체를 조금 들면, 올린의 엉덩이가 엉거주춤하게 따라서 들렸다. 그러면 조교의 채찍이 13번의 머리통과 올린의 등허리를 함께 마구 후려갈겼다. 올린은 아픔도 아픔이지만, 해괴한 꼬락서니로 첩첩이 쌓여 있는 처지가 무섭고 끔찍해서 울기 시작했다.

서른 명이 동시에 오리걸음을 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걸음으로, 구령에 맞춰 오른발을 앞으로 해야 했는데 당연히 앞뒤의 입소자들에게 끼거나 밀려 쓰러지는 경우가 속출했다. 앞사람의 벨트에서 입을 뗀 입소자들에 대한 채찍질이 마구잡이로 떨어졌다. 올린은 11번에게 가해지는 채찍질에 덩달아 머리통과 목덜미를 얻어맞고 입에 문 것을 놓쳤다가 얼른 다시 물었다. 물고도 흐느꼈다. 집으로 돌아가면 도련님들 마음에 쏙 들게 진짜 잘해서 이런 데 올 일 만들지 말아야지, 폭력에 굴복한 머리는 이미 마음속 깊이 새겨져 있던 복종을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뭘 잘못해서 온 게 아니었는데도 그랬다.

서른 명이 동시에 움직이는 게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 조교들은, 여섯 명씩 입소자들을 나누었다. 그 정도 인원이라면 큰 어려움 없이 발을 맞춰 움직일 수 있었다. 하나의 조에 조교 두 명이 따라 붙어 채찍질을 하며 걷기 시작했다. 첫 번째 조가 축사 밖으로 나가기를 기다린 두 번째의 조도, 어기적거리는 오리걸음을 구령에 맞추어 걷기 시작했다.

올린은 12번이었으므로 여섯 명 중 가장 뒤에서 걸었다. 벨트를 물고 당기는 사람이 없으니 다른 입소자들보다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했는지, 조교 하나가 올린의 뒤에 붙어 걸으며 두 걸음에 한 번꼴로 채찍질했다. 여러 차례 매를 맞은 그는 운동장을 반 바퀴도 돌지 못하고 힘이 빠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리고 그 죄로 모든 입소자가 오리걸음을 마치고 축사로 돌아가 쉬는 동안에도, 홀로 운동장을 돌아야 했다.

뒤뚱거릴 때마다 다리 사이의 것이 요동하여 내장을 뒤집어 놓았다. 조교 하나는 그에게 주어진 벌이 끝날 때까지 운동장 한쪽의 간이의자에 앉아서, 채찍을 까딱대며 하품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밤이 아주 늦은 시간이었다. 올린은 걷다가 넘어지고, 넘어졌다가도 다시 걸었다. 별이 쏟아지는데도 올려다볼 수 없었다.

*

일주일이 지난날에 신체 측정이 있었다. 올린은 체중과 허리둘레가 지나치게 줄어든 다른 세 명의 입소자들과 함께 오후의 훈련을 면제받았다. 비록 나란히 무릎을 꿇고 앉아 벽을 보는 부동자세로 있어야 했지만, 찌는 듯한 축사도 아니고 에어컨이 틀어져 있는 사무실에서 대기하는 것은 꿀과 같이 달콤했다.

벽에는 그들을 데리고 온 조교가 붙여 준, 네 개의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각자의 앞에 붙여진 손톱만 한 스티커에서 눈을 떼지 말라는 지시였다. 두 손은 주먹 쥔 채 허벅지 위에 놓았다. 조교들의 이동에 방해되지 않도록 네 명을 다닥다닥 붙여 놓다 보니 곁에 앉은 입소자의 숨소리마저 생생히 느껴졌다.

조교들은 사무실을 오갈 때마다 네 명의 입소자들이 부동자세를 잘 유지하고 있는지 한 번씩 쳐다보았다. 가끔 자세가 틀렸다며 서류철 따위로 순서대로 머리통을 후려치는 일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는 사무실 집기를 대하듯 무시했다. 덕분에 올린은 검은 점을 시작으로 도련님 얼굴을 마음껏 그려 볼 수 있었다.

속을 알 수 없는 첫째 도련님, 다정한 둘째 도련님, 어쩐지 얄미운 셋째 도련님과, 어린애 같은 정환의 얼굴은 선명하게 벽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잘하고 돌아가면 어느 정도 응석을 부려도 이해해 주실 것을 알았지만, 어쩐지 그날은 너무나 멀어 다가오지 않을 것처럼 느껴졌다.

저녁 식사 시간에는 잠시 식당에 보내졌다가, 다시 사무실로 호출되었다. 원래 대기하던 자리에 박스 접힌 것이 깔려 있었다. 딱딱한 바닥에 앉는 것보다 한층 더 편안하게 저녁의 시간을 꿇어앉아 보내다가, 저녁에 다시 체중을 쟀다.

“반나절을 쉬었는데 왜 이 모양입니까.”

조교 중 하나가 올린을 야단쳤다. 다른 세 명의 입소자들이 축사에 돌려보내진 다음 올린만 남아 몹시 혼이 나는 중이었다. 올린은 뒤로 모아 잡은 손을 움찔거리면서 떨어지는 꾸중을 새겨들었다.

“쉬었는데도 체중이 빠진 건 정신 상태가 좋지 않아섭니다. 12번은 정신 단련이 필요합니다. 울면 체중이 더 줍니다. 따라서 울지 않습니다. 알겠습니까?”

하고 으름장을 놓았다. 업무를 마감하려던 조교들이 이쪽을 향해 의자들을 돌리며 느긋하게들 웃었다. 귀한 댁에서 맡긴 물건들이라 지나친 짓은 할 수 없지만, 입소자 중 눈에 띄는 애를 데려다 희롱할 구실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올린은 바퀴 달린 사무용 의자 위에 다리가 벌려진 채 결박되었다. 항문과 자지가 잘 보이도록 드러난 자세였다. 휴식을 취해 장밋빛으로 혈색이 돌아온 얼굴이 겁을 먹고 두리번거리는 동안 의자가 뒤에서 밀려 조교 중 한 명에게 굴러갔다. 그는 탐스럽게 부푼 올린의 아래를 보며,

“찢긴 것도 꼭 보지같이 세로로 찢겼네.”

하고 입맛을 다셨다. 귀한 몸이라 마음껏 놀릴 수 없음을 한탄하며 라텍스 장갑 낀 손으로 세 가지 색깔의 매직을 아래에 꽂자, 올린이 흐으흐,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다른 조교들이 처음부터 세 개나 꽂는 게 어딨느냐고 항의했지만,

“들어갈 자리 많-아.”

하며 올린이 앉은 의자를 뒤로 드르륵- 소리가 나도록 굴렸다. 다음의 조교는 책상 위의 펜을 고르며,

“이거 뭐야, 내일 새벽 구보 추첨?”

하는 소릴 했다. 그는 펜 대신 삼십 센티 자를 깊숙이 넣어 주고는 겁먹은 올린의 명찰을 살짝 잡아당겨 젖꼭지가 늘어나는 모습을 보더니,

“햐, 있는 놈들은 이런 거 먹고 사는구만.”

하며 괜히 올린의 아래에 꽂힌 삼십 센티 자를 한 번 퉁겼다. 속에 든 부분이 진동하는 아픔에 올린의 눈에서 주르르 눈물이 흐르자,

“누가 울래. 엉? 12번. 누가 울어도 된댔어.”

하고 누군가 혼을 냈다. 어느새 조교의 말투가 변해 있어 올린은 무슨 심한 짓을 당할지 몰라 덜덜 떨었다. 겨우 눈물이 멎자 바로 다음번 조교에게 인계되었다. 울음을 참느라 항문이 조였다 풀리는 모습을 서로에게 보이기 위해, 조교들은 의자를 뱅글뱅글 돌려가며 감탄하고 킬킬거렸다.

여럿의 손을 타며 아래에 차곡차곡 펜과 사무집기가 꽂혔다. 딱풀도, 사무용 커터도, 뚜껑 열린 만년필도 괜찮았으나 종이 여러 장을 돌돌 말아 넣을 땐 종이 끝에 살이 베여 몸부림쳤다. 아래가 빡빡하게 벌어져 더는 들어갈 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이 요도에 억지로 펜을 밀어 넣었고, 그다음 순번의 조교가 내일 아침 구보 담당으로 낙점되었다. 어떻게든 펜을 욱여넣으려던 그는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에라이!”

하면서 수십 개의 문구류가 박힌 구멍을 퍽 때렸다. 올린이 아악, 하는 소리를 지르고 조교들은 웃었다.

그들은 올린을 풀어 주지 않고 사무실 한가운데 그대로 내버려 둔 채 남은 업무를 마무리했다. 조교 중 하나가 두유를 한 팩 주었으므로, 올린은 묶인 손을 꼼지락거리며 움직여 감사히 받았다. 너무 달고 맛있어서 빨대가 바닥을 긁는 호로록 소리가 날 때까지 빨고 있으려니,

“배가 고프긴 했나 봐. 저러고서도 먹을 건 받아먹네.”

하고 멸시인지 동정인지 모를 말을 누군가 중얼거렸다.

마침내 바퀴 의자에서 풀려 난 올린은, 아래의 사무용품을 원래 주인들에게 돌려주고 난 뒤에야 축사로 돌려보내질 수 있었다. 조교들은 사무용품을 돌려받으면서도 젖어서 지저분해졌다고 불평했다. 자리마다 티슈가 있었음에도 올린더러 빨게 하거나 올린의 머리카락에 문질러 닦았다. 그런 짓을 당하는 동안에도 울지 않도록 받은 지시가 있어 올린은 울지 않으려 애썼다. 조교 중 하나가,

“12번. 웃어.”

하고 지시했으므로 올린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잘 웃을 줄 아는 게 미덕입니다. 알았습니까?”

하는 질문에, 눈물이 주르르 흐르는 얼굴로 억지웃음을 지으며

“네, 조교님, 알겠습니다.”

하고 대답하는 올린을 조교가 가만히 바라보았다. 올린은 눈물을 그칠 때까지 그와 눈을 마주치고 있어야 했다. 조교와 눈을 마주친 채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는 가여울 정도로 떨었다.

축사에 돌아온 올린은 각자의 칸막이 안에 선 채 부동자세로 취침 명령을 기다리는 다른 입소자들과 똑같이, 얼른 자신의 칸막이에 들어가서 열중쉬어 자세를 취했다. 건너편의 19번이, 어쩐지 모든 걸 다 아는 눈으로 괜찮으냐고 물었다. 고개를 끄덕였다가는 눈물이 다시 흐를 것 같아서 먼 데만 쳐다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축사 천장에 대롱거리던 알전구가 소등되었다. 아무런 생각조차 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던 지난 일주일 동안은 눈 한 번 깜빡하면 바로 아침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시원한 데서 있었던 덕인지, 잠드는 데도 오래 걸렸다. 뒤척이지도 못하고 숨만 몰아쉬다 겨우 잠든 올린의 꿈에 네 분 도련님이 다 같이 나왔다. 밤새도록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조교들이 물줄기를 쏟아부었다. 이제는 익숙해진 입소자들이 최대한 덜 아프게 등으로 물줄기를 맞으며 잠에서 깨었다. 그러나 올린은 세찬 물을 맞고서도 일어나지 못했다. 조교들은 동그랗게 웅크린 옆구리에 시퍼렇게 멍이 오르도록 물을 쏜 다음에야 흠뻑 젖은 12번 입소자의 팔을 잡아 일으켰다. 그는 헛소리하며 눈을 뜨지 못했다. 위험할 정도의 고열이었다.

액받이는 격리 조치 되었다. 주인에게 연락이 취해졌다. 이곳은 고속도로를 타더라도 서울에서 세 시간은 걸리는 산속 깊은 곳이다. 그런데 연락을 취한 지 두 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캠프에 들어선 것은 평범한 국산 브랜드의 SUV였다.

운전자는 소년처럼 보이는, 훤칠한 청년이었다. 물 빠진 청바지에 무늬 없는 티셔츠만 입어도 모델처럼 멋있었다. 그는 캠프 입구의 주차장에 과격하고도 화려하게 차를 대고 개 한 마리와 함께 차에서 내렸다. 품종 좋은 개가 캠프의 푸른 잔디 위를 자유로이 뛰는 것을, 철봉에 매달린 채 훈련받던 알몸의 남자들이 바라보았다.

그는 12번이 격리된 진료실에 안내되어서는, 흰 티셔츠에 흰 반바지 차림으로 모로 누운 올린의 몸을 모포로 돌돌 말아 안았다. 뜨거운 이마가 남자의 가슴팍에 비벼졌다. 올린의 정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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