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대리석 촛대 (17/65)

# 대리석 촛대

“처벌하고, 재교육하지.”

장남이 최종 결정을 내렸다. 형제들은 말이 없었다. 결정 전의 언쟁은 할 수 있어도, 이미 내린 결정에 반발할 수는 없다. 게다가 마지막 올린이 내놓은 자기 변론은 너무나 완벽하여 반박의 여지가 없었다.

올린에게는 다행인 일인 동시에 무서운 일이었다. 폐기를 면한 대신, 중죄를 저지른 벌이 선고된 셈이었기 때문이다.

“벌 받을 준비 됐어, 올린?”

다정스러운 물음에 올린은 목 안으로 사그러지는 목소리로도,

“네, 도련님.”

또렷이 대답했다.

나른한 명령이 떨어지자, 남성 고용인 여섯이 땀을 뻘뻘 흘리며 거대한 대리석 촛대 하나를 운반해 왔다. 높이가 1미터를 좀 넘어 보이고 둘레는 올린이 껴안으면 꼭 한 아름 정도가 되어 보이는 그것은, 얼핏 촛대라기보다는 상판이 좁은 테이블같이도 보였다.

몸체의 기둥을 이루는 대리석 조각은 뱀 여러 마리가 마구잡이로 얽혀 있어 화사한 색상임에도 위압감이 있었다. 꼭대기는 넓은 코브라 대가리가 펼쳐져 판판했다. 흔한 테이블과 다른 점이라면, 그 단단한 상판에 한 뼘 반이 넘는 길이의 꼬챙이가 두 개 고정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꼬챙이의 위는 뾰족하고 아래는 조금 더 굵다. 한 쌍의 초를 꽂아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용도다. 연회 따위가 밤새 이어질 때, 이 촛대 위에는 커다랗고 호사스러운 초가 두 개 꽂혀 새벽까지 눈물을 흘리곤 했다. 그러나 오늘은 본래 이 물건이 설계된 목적보다 훨씬 잔혹한 용도로 쓰일 예정이다.

뒤이어서 고용인이 들여온 것은 전동 드릴이었다. 올린은 첫째 도령이 오른손의 흉터에 관해 물었던 것을 상기했다. 그 대화는 이곳에서 벌어진 게 아니었다. 시골 식당 주차장에서 있었던 대화가 아득히 멀게 느껴졌다.

도령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올린의 왼손이 들어 올려졌다. 올린은 드릴의 나선형 비트가 구멍 낼 곳을 가늠하듯 손등에 닿는 감각에 목울대를 울렁거리면서도 얌전했다. 타정총으로 못이 박혔을 때는 보기가 참혹해서 그렇지, 죽을 만큼 아프지는 않았다. 그러나 살을 나선형으로 휘감으며 뚫는 전동 드릴은 고통의 정도가 다를 터였다.

그러나 한 번 살에 구멍이 뚫리는 것으로 죄를 면할 수 있다면 그것은 횡재에 가까울 정도로 싼 죗값이었다. 올린은 어쩌면 자신이 손을 영영 못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각오한다고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손을 뚫기 전에, 첫째 도령이 막냇동생을 불렀다.

“정환아.”

“네.”

막내 도령은 손이 틀어 잡힌 채로도 담담한, 발칙하기 그지없는 액받이를 노려보면서 대답했다.

“올린이 얼마나 밖에 있었을까?”

정환은 잠시 생각했다. 사라진 것이 12월 14일, 다시 돌아온 오늘은 4월 21일이다.

“…넉 달이요.”

“며칠.”

“일백스물… 여덟, 아니 아홉 날….”

“그럼 일백스물아홉 시간 동안 반성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면 되겠다. 그렇지?”

정환이 시선을 떨궜다. 씨근거리고 있었다.

“…그럼 죽어요.”

“네가 지켜봐 주면 되잖아. 죽지 않게.”

정환이 고개를 들어 큰형을 노려보았다.

“그럼 물이라도 먹이게,”

“벌이야. 훈련 아니라.”

“형, 잘못한 건 접니다.”

“알아. 네가 잘못한 거. 그래서 넌 이미 벌 받았잖아, 넉 달 동안 저거 없이 사는 벌.”

올린은 잠자코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 너무 단 얘기에 머리끝까지 소름이 돋았다.

“이제 올린도 벌 받아야지. 안 그러니, 올린아?”

올린은 침착하게 말했다.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기쁨인지 두려움인지도 모르면서였다.

“네, 도련님. 감사합니다.”

허공에 들어 올려졌던 왼손이 바닥에 내리눌렸다. 고용인의 발이 바닥에 고정하듯 손가락 끝을 밟았다. 다른 고용인은 올린의 뒤에 서서 양손으로 머리를 잡아 곧 뚫릴 왼손을 보도록 했다. 손등을 찌르는 비트가 움직이지 않을 때도 살을 뚫을 것처럼 날카로웠다.

첫째 도령이 눈짓으로 명령하기까지의 짧은 시간을, 올린은 전속력으로 달린 사람처럼 헐떡여 가며 배겨 냈다. 위잉 그르릉, 기계가 돌기 시작했다. 값비싼 대리석을 깨뜨리기 전에 전동 드릴은 바로 어제까지 양파를 까고 설거지를 하고 잡풀을 뽑고 개를 쓰다듬던 유능하고 다정한 손을 구멍 냈다.

올린은 고개를 반대로 돌리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한 채 살과 근육과 뼈가 찢기고 잘리고 부러지는 고통을 고스란히 당했다. 눈물은 흐르지도 않고 큼지막한 방울로 떨어졌다. 드릴은 짧은 가해를 멈췄지마는 당연히, 처벌은 끝난 게 아니었다. 129시간의 시작일 뿐이다.

고용인의 구두에 피가 튀어 있었다. 구두의 주인은 아직 생생히 살아 눈물과 피를 흩뿌리는 몸의 주인과는 별개로, 홀로 죽음을 맞이한 듯이 시퍼렇게 변한 손을 바닥으로부터 떨어뜨렸다. 뚫린 손바닥과 깨진 대리석 사이의 피가 점성을 띠고 늘어지는 것 같았다.

극심한 통증이 왼팔 전체를 마비시키고 목으로 올라와 뒷머리를 엄습했다.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현기증이 도져서, 올린은 상체를 천천히 굽혀 오른팔로 바닥을 짚었다. 콧물과 침이 피처럼 길게 늘어졌다. 어흐으윽, 무거운 외침과도 같이 뒤늦은 울음이 흘렀다. 피 흐르는 왼손은 고용인의 손에 높이 들려 잡힌 채였다.

“허리 세우고 바로 앉아.”

명령이 떨어졌다. 그러나 올린은 따르지 못했다. 힘을 주지 못하고 바닥만 긁는 오른팔을, 누군가의 손이 다정히 잡아끌었다. 막내 도련님일까 하고 올려다보았는데, 셋째 도련님이었다.

그는 대리석 촛대 가까이 이끌어졌다. 거대한 만큼 아름답고 섬세한 이 물건이 잔혹한 형틀로 활용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발한 잔악이었다.

“스스로 넣을 수 있지?”

셋째 도련님이 속삭였다. 방금 다친 왼손을 쇠꼬챙이 위에 맞추어 대주면서였다. 피가 팔을 타고 흘렀다. 올린은 그 뾰족한 끝에 왼손 구멍이 닿는 것조차 무서워서 숨넘어가는 컥 컥 소리를 내며 울었다.

“착한 아이잖아.”

차, 착한, 착한 아이. 도망갔다가 제 발로 기어 온 액받이에게 붙일 만한 말이 아니다. 올린은 그 말 속에 떠난 것에 대한 꾸중과 돌아온 마음에 대한 시험이 함께 들었음을 알아챘다. 배우지 못했어도 영리한 머리는 깊이 숨긴 함의를 절로 읽어 냈다.

도움을 찾는 듯한 눈은 새빨갰다. 극한의 고통을 참느라 참던 숨이 압력이 되어 안구와 이마의 약한 핏줄을 터뜨려서 못난 몰골이었다. 그는 둘러선 남자들, 판관이자 시험자이자 형리이자 구원자인 제 주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더듬듯 바라보았다.

네 명의 도련님이 그 꼴을 직시했다. 각자의 표정은 달랐으나 누구도 도와줄 생각은 없었다. 그들은 그저 관찰하고 있었다. 올린은 다시 여기로 받아들여지고자 함을 스스로 증명해 내야 했다. 그러기 위해,

“아으, 흐으헉.”

꼬챙이의 끄트머리에 왼손의 구멍을 가져다 댔다. 잔혹한 상처가 출혈하여 팔과 꼬챙이를 적셨다. 한없이 무겁게 느껴지는 왼손을 스스로 들어 올리는 것조차 힘겨웠지만, 올린은 끄트머리에 벌벌 떠는 손을 겨우겨우 댈 수 있었다.

용기를 내지 못해 그 상태로 멈춘 채, 올린은 처벌이 영원처럼 길고 길 것을 생각했다. 이 촛대에 손이 꿰인 채 129시간을 방치되는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쏟아져서 앞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그렇지만, 하고 올린은 도련님들께는 반만 고백했던 회귀의 이유를 다시 한번 떠올렸다. 도련님들이 올린을 기다렸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올린은 온순하기는 했으나 그렇게까지 선량하지는 않았다. 도련님들이 그립지 않았다면, 절대로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고통을 감내하고도 곁에 있고 싶을 만큼, 그는 그들이 사랑스러웠다. 기이한 것이 사람의 감정이었다. 고통은 진실로 버텨 낼 가치가 있었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발가벗은 온몸에 진땀이 흘렀다. 머리끝에서부터 발가락까지, 한 군데도 마른 데가 없이 축축이 젖었다. 오른손을 들어 왼손의 손목을 잡았다가,

“크, 으흑.”

손목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 같아서 놓았다가, 다시,

“하, 아, 아으.”

손목과 손바닥의 경계를 꽉 쥐었다. 그리고 왼손에 난 구멍에 쇠꼬챙이의 끄트머리를 맞춰 힘껏 내리눌렀다.

네 도련님의 시선 끝에, 독하고 모질기 그지없는 액받이가 자신의 손을 꿰어 냈다. 그는 숨을 헐떡이고 침을 흘리면서 손의 구멍에 꼬챙이를 끼우고는, 그렇게 애쓴 보람도 없이 다시 빼내려는 듯이 순간 몸을 떨었다. 재빨리 다가온 셋째 도령이 얼른 붙잡아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왼손이 촛대의 바닥에 닿으려면 한참이나 더 아래로 움직여야 했다. 꼬챙이는 위보다 아래가 더 굵고, 뚫린 구멍의 크기는 전동 드릴 끝에 붙은 가느다란 비트의 지름과 같을 뿐이다. 손을 아래로 내릴수록 상처는 벌어지고 살은 더 찢길 수밖에 없었다. 그것만은 스스로 하지 못할 올린을 위해, 셋째 도령이 두 손으로 올린의 왼손을 잡고 천천히 내리기 시작했다.

“끄…흐…으흐, 크윽….”

악문 잇새로 침이 튀었다. 고통과 두려움 속에, 멀리 앉은 채 자신의 고통을 주시하는 막내 도령의 눈길이 느껴졌다. 그 열띤 관심에서 느껴지는 기묘한 안락감이 고통보다 크게 느껴진 것은 한순간일 뿐이었다. 젓가락과 비슷한 굵기의 위쪽으로부터 새끼손가락 정도로 굵어지는 아래쪽으로 손이 내려갈수록 근육이 찢기고 뼈가 벌어지는 통증이 마음을 지배했다.

하지만 정신을 잃지는 않았다. 손이 내려가는 동안 자신의 손과 시선의 높이를 맞추듯 천천히 낮아진 몸이, 마침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서서 덜덜 떨었다. 쇠꼬챙이에 핏자국을 남기며 왼손은 촛대 상판에 닿았다. 셋째 도령은 그제야 올린의 손을 놓아주었다.

벗은 허벅지 위로 찔끔거리며 소변 줄기가 흘렀다. 반강제로 열리다 만 요문을 통해 샌 오줌은 끈질기게 몇 방울씩만 떨어지다, 종래에는 성기를 덮은 체모를 적시고 가느다란 끝에 방울로 맺혔다. 오줌 웅덩이에 담긴 두 무릎에서 지린내가 피어올랐다. 셋째 도령의 바지에도 지린 액체가 몇 방울 튀었다. 그러나 그는 손톱만큼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고용인들이 패드 따위를 들고 와 바닥의 액체 위를 덮었다. 노랗게 변한 패드를 봉투에 담고 남은 것을 훔쳐 내는 손은 기민하고 가만했다. 사람들이 바쁜 동안에도 셋째 도령은 올린의 뒷목을 세게 잡아 주무르며 반쯤 날아간 정신을 조금이나마 잡아 놓으려 애썼다. 정작 오줌을 지린 몸은 수치도 모른 채로 눈물과 콧물과 침을 함께 흘리고 있었다.

첫째 도령에게 이토록 극심한 고통을 느끼는 모습은 환상과도 같았다. 그는 평생 알지 못했고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느껴 보지 못할 고통이라는 감각이 대체 자신에게 허락된 다른 감각 중에 어떤 것과 닮았을까 상상해 보았다. 온 얼굴을 적시며 울고 아래로는 오줌마저 지리는 몸을 조금이라도 더 잘 관찰하기 위해 크게 뜨인 눈에는 보통 사람과는 다른 기운이 번질거렸다. 그는 달아나려는 기색 없이, 저에게 주어진 고통을 겸허히 감내하는 몸을 상대로 발정했다. 더없이 크게 부푼 성기를 당장 처넣지 못해 아쉬운 나머지 입안이 바짝 말랐다.

둘째 도령은 무감한 눈을 하고 있었다. 원칙대로라면 저것에 대해 저토록 잔혹한 처벌을 하고 재활용할 것이 아니라, 곱게 처분해야 할 것이다. 그는 넉 달이라는 긴 시간 동안 저택 밖을 떠돌고도 다시 돌아와 액받이의 자리로 도로 올려진 물건의 전례를 아는 바가 없었다. 비록 제 발로 돌아왔고, 처벌받는 태도 또한 범절에 어긋남이 없지만, 그는 저것의 효용이 유효한가에 대한 회의를 감추지 못했다. 그럼에도 벌벌 떠는 마른 몸을 상대로 음험한 욕망이 치솟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문득 고개를 든 셋째 도령과 막내 도령의 눈이 마주쳤다. 다가오려다 멈춰 선 것 같은 자세로 이쪽을 바라보는 막내 도령은 몹시 화가 난 사람처럼 보였다. 셋째 도령이 동생을 안심시키려는 듯 올린의 목덜미를 주무르던 손을 들며 빙긋이 웃어 보였다. 그 손에서 놓여난 올린은 테이블처럼 편평한 촛대 상판에 얼굴을 비벼 댔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읊조리며 우느라 벌어진 입안의 혀가 예전보다 더 붉어 보였다.

다들 알았다. 아직 오른손이 남았다.

첫째 도령이 의자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그는 오른손의 붉은 못 자국을 매만지며,

“한 번 뚫린 구멍은 스스로 벌릴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했다. 손의 상처를 성기처럼 취급하는 말이었다. 이미 아물어 흉이 된 것이 열릴 리가 없건만, 도련님의 목소리는 당연한 것을 요구하는 것 같았다. 촛대에 엎드러진 채 이마를 비비며 흐느끼던 놈은 그 말을 용케도 알아들은 모양으로, 느리게 고개를 저으며 우는소리를 했다.

“응, 뭐라고? 올린.”

첫째 도령이 정말로 알아듣지 못한 듯이 물었다. 올린은 자세를 바로 하지도 못한 채 치통 앓는 자처럼 뭉개진 발음으로 말했다.

“모, 모, 모애여….”

“왜 못 해. 이게 이렇게 날카로운데.”

그는 올린의 왼손이 꿰어 있는 꼬챙이와 똑같은, 바로 옆의 꼬챙이 끝을 문질러 보았다. 끝이 뾰족하게 서긴 했으나 살을 뚫을 만큼은 아니었다. 첫째 도령은 자신의 엄지손가락을 그 첨단에 꾹 눌렀다 뗐다. 둔탁하게 눌린 자그만 자국이 빨갛게 생겼다. 당연히 피 한 방울 비치지 않았다.

“너 여기 있고 싶어서 왔잖아.”

“네…에, 여기에… 여기에….”

“그럼 그런 소망을 증명해 보여야지. 네 몸에 난 구멍을 다 열어서.”

냉담한 말에 흐윽, 흑, 새로운 울음이 터진 몸이 술 취한 듯 비틀댔다. 조금씩 고개를 들었다. 얼굴은 온갖 체액에 젖어 있었다. 몇 달 동안 평안한 생활을 한 덕에 보얗던 눈 밑에는 고통을 당하는 짧은 시간 동안 푸를 정도로 검은 그늘이 돌아와 있었다. 조그만 코에서 흐른 콧물이 입으로 흘러드는 것도 모르는 낯이 첫째 도련님의 온화한 눈을 올려다보았다. 도련님은 진심이셨다.

올린은 벌벌 떠는 다리에 힘을 주어 일어섰다.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일어선 다음에도 자세는 엉거주춤했다. 왼손이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오른손을 높이 들었다가, 쇠꼬챙이를 향해 내리 꽂아보려 했다. 그러나 손바닥에 발그스름한 점이 생기는 것 이상의 힘이 들어가지는 못했다. 이런 방식의 자해를 한 번에 하는 것은 보통의 마음가짐으로는 불가능하다. 올린의 마음에 든 것이 보통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는 해도, 이것만은 어려웠다.

차마 명령을 수행하지 못한 채, 올린은 끄흐흑 하고 속 깊은 데서 치받치는 울음을 토했다. 다시 손을 높이 들어 한 번에 내리치려다, 도저히 하지 못해 차가운 꼬챙이를 움켜잡았다. 그러한 움직임에도 왼손이 당겨져 온몸이 벌벌 떨었다. 오른손을 꽉 그러쥔 채 떨던 올린은 문득 고개를 들었다. 벌겋게 실핏줄 터진 눈이 막내 도령을 향하고 있었다. 침을 튀기며 애원했다.

“도련님, 저 좀, 도와 주, 세요….”

막내 도령은 굳은 얼굴이었다. 올린은 그 뒤에 감춰진 자비를 갈구했다. 자신의 손을 잡아 꼬챙이에 내리눌러 살을 뚫고 꿰어 줄 외부의 완력이 절실했다. 폭력을 행함으로써 저를 구제할 사람, 자신의 폐기를 처음부터 반대했고 그토록 오랜 시간을 기다려 주었던 정환은 그러나 움직이지 않았다.

“저, 모, 못해, 제, 제발 도, 와주으, 흐흑….”

빌다가 울었다. 벌 받지 못하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래서야 돌아온 결심이 무소용이다. 그는 이미 고정되어 버린 왼손을 내려다보았다. 손이 세 개라면, 다른 손이 하나만 더 있으면 오른손을 잡아 내리누를 수도 있었을 텐데.

“어흐흑….”

막내 도령의 화가 난 것 같은 눈 아래로 관자놀이가 꿈틀댔다. 그가 꾹 쥔 주먹을 하고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 올린의 성한 손이 커다랗고 단단한 손에 잡혔다. 한발 빨리 움직인 둘째 도령이었다. 올린이 흐느끼던 하얀 얼굴을 그에게로 향했다.

그는 고용인에게 손을 내밀었다. 드릴이 그 손에 들었다. 떠는 가여운 손을 잡아 촛대의 상판에 내리누르고 본래 있던 흉터를 과녁 삼아 뚫기 직전에,

“이 악물어.”

하고 명령했다. 으그으윽, 잇새로 샌 비통한 울음은 웨엥 하는 소리와 함께 잘 연출된 공연 같았다. 코브라 머리가 조금 쪼개진 금 안쪽으로 짙은 피가 스며들었다. 멈췄던 코피가 다시 흘렀다.

남은 한 꼬챙이에 손을 대고 내리눌러, 왼손과 똑같이 가장 아래까지 손이 내려가도록 꿰어 주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그때만큼은 올린도 다시 소리를 질렀다. 크흑, 아아, 카아아악- 비명의 끝에 올린은 감사를 표하려 했다. 그러나 충격적인 통증에 몸부림치느라 그 말은 제대로 마무리 지어지지 못했다.

둘째 도령은 올린의 몸에서 완전히 손을 떼기 전에 위로하듯 머리통에 입술을 눌러 주었다. 액받이의 땀에 젖은 머리카락에서는 달큼한 향기가 솟았다. 올린은 그 입술에서 떨어지기 싫다는 듯, 가누기 어려운 고개를 한참이나 비비적거렸다. 입술이 물러날 때까지 울음은 멈추지 않았다.

여러 마리 뱀이 얽힌 거대한 대리석 촛대 위에, 테이블처럼 판판하고 넓은 상판. 그 위의 쇠꼬챙이 두 개는 원래 기다란 초를 고정하기 위한 용도다. 그곳에 두 손이 꿰인 액받이는 똑바로 서지도, 그렇다고 주저앉지도 못한 채 발발 떨고 있었다. 양손의 상처에서 퍼진 고통은 팔 전체를 마비시키고 가슴까지 물들였다. 어흑, 어흑, 어흑, 토하듯 우는 소리가 여기 꿰인 게 명문가의 액받이인지 길 안 든 짐승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는 동안 몇 가지의 주사약이 엉덩이와 양쪽 손등에 놓였다. 처참한 모습에 비하면 출혈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129시간의 처벌 중에 그가 탈수하여 쓰러진다면, 그것은 피를 흘린 탓이 아니라 눈물을 쏟은 탓일 것이다. 아픔에 시달리며 우느라 정신을 놓았던 올린의 통곡과 같은 울음이 잦아드는 데는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느리게 흐느끼다가 잘 뜨이지 않는 눈을 뜨니 방 안에 남은 것은 자신과 막내 도련님, 둘 뿐이었다. 상판에는 초침 소리가 선명한 작은 시계가 놓였다. 멍한 채로도 벌이 시작된 시간을 기억하려 했다. 129시간은 닷새가 넘는 오랜 시간이라는 것은, 배움 짧은 올린도 계산할 줄 알았다.

손이 고정된 높이가 애매한 탓에 올린은 바로 설 수 없었다. 서게 되면 허리가 조금 굽어지고, 그렇게 되면 상체가 앞으로 기울어 손바닥에 힘이 들어간다. 근육과 힘줄이 움직이는 것은 힘을 빼고 견디는 것과는 또 다른 아픔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므로 선 자세는 그것만으로도 고통이었다.

그렇다면 무릎을 꿇은 자세도 가능했다. 무릎으로 서면, 촛대의 상판에 한쪽 뺨을 기댈 수 있었다. 장시간 그렇게 있기에는 바닥이 딱딱하여 무릎이 짓무르는 느낌이 들었으나 상처의 아픔은 가장 덜한 자세였다. 올린은 일어선 채 버티다, 무릎을 꿇었다가, 그것마저도 힘이 들면 발바닥을 땅에 댄 채 쪼그리고 앉아 시간을 보냈다. 뚫린 곳의 아픔은 차츰 둔탁해져 갔지만, 시간의 흐름은 한없이 더뎠다.

처벌이 시작된 밤이 지나고 아침이 왔을 때도 막내 도련님은 그 자리에 있었다.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한 상태에서도 잠깐 졸았던 올린은, 맑은 눈으로 그 자리에 그대로 앉은 막내 도련님을 보고 안도했다. 이곳에 혼자 버려져 있는 순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서러운 고독이 밀어닥쳤다. 비록 한 마디 말조차 걸어 주지 않고 통증을 덜어 줄 어떤 노력도 하지 않지만 누군가가 함께 있어 주는 건 그 자체로 감사한 위안이었다.

고통이 잠시 멀어지는 순간도 있던 어느 한낮엔 의자에 앉아 팔걸이에 팔을 걸치고 관자놀이를 괴고 있는 막내 도련님을 바라보기도 했다. 예전만큼 미끈하지는 않아도 여전히 잘생겼다. 살이 빠져 날카로워진 턱선은 만져 보고 싶은 기분마저 일게 했다.

그가 초췌해진 원인이 바로 자신의 소실이라고 생각하면, 그 여윈 턱선이 한결 더 사랑스러웠다. 잔인한 고통조차 기꺼웠다. 그러나 가끔 치밀어오르는 고통에 온몸의 근육을 뒤틀며 발작하느라 꿰인 손바닥의 상처를 스스로 찢을 때면, 지금의 자신이 얼마나 추하고 흉할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럴 때 올린이 입안으로 웅얼거리던 말이

“도련님, 가지 마세요….”

였는지 아니면

“도련님, 보지 마세요….”

였는지는 불명확했지만 어쨌든 도련님은 가지 않고 곁에 머문 채, 올린의 고통을 보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것은 올린뿐만이 아니었다. 도련님도 함께 자지도 먹지도 않는, 지루하고 괴로운 시간이 이어졌다.

그동안 나머지 도련님들이 들어왔다가 다시 나갔다. 첫째 도련님은 올린의 엉덩이와 손등에 주삿바늘을 찌르러 하루에도 몇 번씩을 들락거렸다. 그는 주사를 놓기 전에,

“따, 끔~.”

하고 아플 것을 미리 알렸다. 손의 통증과 비교하면 통증이라도 할 수 없을, 소위 그 ‘따끔’ 도 때로는 견디기 힘들었다. 대개 올린은 주사를 놓는 도련님의 손을 피하지 않았으나, 한 번은 그 소름 돋도록 자상한 사전 경고를 받는 순간 주사약의 정체에 대해 상상해 버렸다. 불안을 견디지 못하고 움칠 피하려는 몸짓을 읽은 첫째 도련님의 눈에 광기와 흡사한 이채가 돌았다.

“왜 그래? 무서워? 이게 무슨 약일지 불안해? 널 죽일까 봐, 두려워, 올린아?”

숨찬 듯 이어 묻는 목소리는 미친 사람 같았다. 위협하려는 의도가 아님에도 위협적이었다. 사실 항생제인 그 주사에 대해 올린이 두려워하는 것이 가만두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즐거워서, 첫째 도령은 몇 번이고 비슷한 물음을 물었다. 이 꼴을 해서도 죽임을 당할까 봐 경계하는 게 아주 귀여웠다.

친절한 간호사처럼 굴던 그의 기척이 달라진 것은 올린뿐 아니라 막내 도령도 예민하게 눈치챘다. 올린을 향한 의자에 앉았던 몸을 일으킨 동생이 차마 입은 열었으나 아무 말도 못 하는 사이에, 첫째 도련님의 손가락은 올린의 마른 항문을 더듬었다. 오랫동안 아무것도 삽입된 적 없어 굳게 다문 아래는 은근한 손길이 닿아도 젖지 않았다.

“큰형. 형님.”

만류하는 목소리였다. 올린의 지친 귀에는 그 소리도 제대로 닿지 않는다. 그는 그저 곧 자신의 아래에 침입할 마른 손가락을 느낄 뿐이었다. 여위어 힘없는 허벅지가 느리게 떨었다. 마른 목 안에서 두려움을 참느라 바람 새는 소리와 닮은 신음이 샜다.

“왜, 막둥아.”

죽은 것처럼 보이던 벌 받는 몸에, 아픔을 두려워할 줄 아는 마음이 남은 것을 확인한 첫째 도령은 천연덕스럽게 웃었다. 그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여워할 줄 아는 막냇동생이 귀여워서 나온 웃음이기도 했다.

“형님, 지금은 안 돼, 걔 못 버텨요.”

장남은 열 살이 훌쩍 넘게 나이 차가 나는 막둥이가, 평소에는 자신에게 형님이라고 부르지도 않으며 이렇게 고분고분한 존댓말을 쓰지도 않음을 상기했다. 그는 안경 너머 색소 엷은 눈으로 어린 동생을 넘겨다보았다. 정말로 의아하다는 표정이었다.

“언제부터 사정 봐주며 썼다고 그래, 정환아.”

그러면서 그는 올린의 허리를 쥐었다. 꿰인 채 어설피나마 아물어 가던 손은 미세한 흔들림에도 다시 찢겼다. 올린은 엉거주춤한 자세인 채 뒤로 당겨졌다. 울음이 멈췄던 입술이 비죽였다. 엉덩이가 뒤로 쑥 빠졌다.

“이것 봐, 오래 안 써서 주름 꼭 물린 거. 우리 올린이한테 이런 모습도 있었구나.”

그는 중지로 입구를 두들겨 쑤욱 삽입했다가 다시 꺼내어 문지르며 놀랍다는 듯 감탄했다. 넉 달간 잘 먹어 살 올랐다가, 며칠의 고초에 도로 마른 엉덩이는 아주 오랜만에 느껴지는 자극을 아파하는 것 같았다. 문지르고 쑤시는 몇 번의 손짓에도 뻐끔거리지 않는 구멍은 예전보다 쫀쫀해 보였지만 건조했다.

“빡빡한데. 올린아, 힘, 풀어 볼래?”

올린은 항문보다 손에 더 신경이 가 있었으므로 당연히 힘을 풀지 못했다. 힘을 푼다는 감각조차 잊은 것 같았다. 자전거 타는 일처럼 한 번 깨치면 저절로 되는 게 아니었다. 다시 새것의 몸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러나 첫째 도령은 더 노력하지 않았다. 올린의 허리를 쥔 단단한 손은 마치 그의 복종심을 시험하는 것 같았다. 뒤로 더 당길수록 꿰인 손의 상처가 벌어졌다. 멈췄던 피가 다시 새 나오기 시작할 때까지 뒤로 당긴 그가 부드럽게 골반을 움직였다. 아직 다물린 항문에, 오랜만의 자지가 몇 번이나 문질러지고 나서야 억지로 비집고 들어왔다. 단단한 끝을 들이민 다음에는 거침없었다.

퍽, 하고 밀어붙여졌다. 꿰인 채 촛대의 상판을 짚은 손이 조금 밀렸다. 아무리 팔을 움직이려 하지 않아도 강한 힘으로 몰아 대는 데에야,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흐읍, “

비명 같은 신음과 함께 소금기 버석하도록 마른 얼굴에 다시 눈물이 터졌다. 다음에는 확, 당겨졌다. 손은 이번에는 반대 방향으로 당겨졌다. 꼬챙이를 꽉 물었던 손등의 구멍이 크게 벌어졌다.

“아악!”

하고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올린은 고개를 젖히고 마른 입술을 활짝 벌렸다. 여태 우뚝 선 채 바라만 보던 막내 도령이 짧은 거리를 뛰다시피 다가왔다. 귀에다 헐떡이는 숨을 쏟던 첫째 도령이 그 꼴을 보고 청량한 소리로 웃었다.

막내 도령은 꿰인 올린의 손을 꾸욱 눌러 주었다. 꼬챙이를 손가락 사이에 끼운 채였다. 내리 눌리는 순간 닥쳐온 충격적인 통증에 올린의 몸이 한 번 펄쩍 뛰듯 경련했다. 그러나 그렇게 눌린 덕에, 뒤로부터 거세게 밀어 부쳐지는 추삽질에도 손은 더 밀리거나 당겨지지 않았다. 꼬챙이에 꿴 구멍이 더 벌어지지도 않았다. 한결 나았다.

막내 도령의 손에 양손이 눌려 잡힌 채, 올린은 첫째 도령의 자지를 받았다. 그는 찢기고 갈리느라 자지러지는 경련을 귀여워하며 벌 받는 몸을 마구 흔들어 댔다. 손의 아픔과 별개로, 짓뭉개지는 구멍에서는 간지러움과 흡사한 즐거움이 느껴졌다. 더 받고 싶어서 엉덩이를 흔들게 하는 기쁨이 분명 희미하게라도 있었다.

올린은 잃었던 기억 속에 어째서 이 기쁨은 없었는지를 의아해했다. 과거를 잊고 사는 매 순간, 과거에 대해 돌이켜보려 시도할 때에 자신이 더듬었던 감정은 아프고 괴로운 것들뿐이었다. 두려움이 가장 컸고 고통이 다음이었다. 그렇게 많은 자지를 바로 이 구멍으로 받고, 그토록 강렬한 희락을 수백, 수천 번 겪어 왔는데 기억 속에 쾌감이 없었던 것이 신기했다.

올린은 지금 다시 기억이 사라진다면 자신에게 남을 것을 생각했다. 어쩌면 구멍 없던 곳에 새로운 구멍이 생기던 격통보다, 남자의 살덩이를 원래 뚫린 곳으로 흡입하는 이 즐거움이 더욱 크게 남을 것 같았다. 오랫동안 가려워했던 곳이 날카로운 손톱으로 긁히는 것 같은 이 시원한 희열이 비록 통증을 동반할지라도, 이것은 분명 쾌감이었다.

목마른 몸에서 쥐어짜진 눈물을 뚝뚝 흘렸다. 상처 입은 손을 덮은 커다란 손등 위에 뜨거운 눈물이 떨어졌다. 손의 주인은 올린을 걱정하고 있었다. 얼굴을 보지 않아도 알았다. 눈물의 원인을 고통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사실, 올린이 우는 까닭은 오랫동안 채워지지 않은 음란함의 충족이었는데도. 이것은 죄송한 동시에 통쾌하고, 또 한편 황송한 일이었다.

덜 습하고 덜 쫀득거리는 내벽에서 물러나간 자지는 올린의 등줄기를 겨냥하여 사정했다. 척추의 여윈 골을 따라 흐른 정액이 엉덩이 사이로 흘러 바닥으로 떨어졌다. 미적지근한 온도였다. 첫째 도련님이 나가자 막내 도련님은 눌러 주던 손을 떼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원래 앉아 있던 의자로 돌아갔다. 그가 부동의 눈으로 올린을 바라보고 있는 긴 시간 동안 등줄기의 체액이 천천히 굳어서 피부에 들러붙었다.

둘째 도련님이 들어오는 뒤에는 쟁반을 든 고용인이 따랐다. 그는 올린을 향해 눈길을 주기 전에, 막내 도련님 앞에 서서는 고용인이 들고 들어온 물을 마시도록 종용했다. 막내 도령은 처음 몇 번은 거절하다가, 세 번째 혹은 네 번째에 이르러서는 어떤 말로 설득되어 투명한 잔을 절반 정도 비웠다.

오랜 시간 목마름에 고통받는 눈에, 남은 물이 그대로 다시 쟁반에 담겨 방 밖으로 날라지는 것을 보는 것은 또 다른 고문이었다. 올린은 투명한 잔에 담긴 맑은 액체를 탐내며 저도 모르게 건조한 입술을 벌리고 마른 혀로 윗니를 공연히 쓸어 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갈증을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럴 때면 올린은 눈을 감고 남은 액체가 자신의 목구멍으로 쏟아 들어오는 상상에 빠져들었다. 말라붙어 소리도 나오지 않은 목은 찢어지는 뜨거움 속에서도 작게 꿀렁였다. 고통보다 서러움보다도 점점 커지는 것은 조갈이었다.

그러나 둘째 도령은 올린에게는 단 한 방울의 물이나마 권하지 않았다. 그는 막냇동생에게 수분을 섭취토록 하려는 목적을 달성하고 나면, 찌꺼기처럼 꿰인 메마른 몸에 다가와 찢긴 입술과 핏기 어린 눈알을 살폈다. 귓속을 채우는 이명 속에 둘째 도령이 하는 말은 모래알처럼 부서져 나갔다. 양손이 관통된 채 사막을 헤매는 자에게는, 물 한 방울 주지 않는 사람의 말 같은 것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사막을 헤매는, 올린에게서 분리된 자아는 현실의 올린보다는 조금 영리했다. 눈물이 아까워 울지도 않는 그는 둘째 도련님이 하는 가치 없는 말을 귀에 담았다가 머리로, 마음으로 옮기느라 소모될 미미한 수분조차 쓰지 않고 조심조심 모아만 두었다.

그는 어쩌면 격려의 말을 하고 있을지도, 위로의 말을 건네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찬 액체가 가득 찬 잔을 가지고 들어와 반이나 남은 채 그대로 내보낸 사람은 정말 미웠다. 올린은 처벌이 진행되는 동안 그를 상대로 가장 큰 서러움을 품었다. 매질 같은 삽입 섹스로 손을 찢어 놓는 사람보다 물을 보여 주기만 한 사람이 악랄했다.

셋째 도령은 여러 번 들락거렸다. 그가 들어왔을 때, 처벌받는 액받이는 때로 제정신으로 고통받고 있기도 했고 어느 때에는 인사불성이 되어 있기도 했다. 그는 천지사방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워하는 몸을 감상하는 것도 즐겼으나 더욱 좋아하는 것은 제정신인 올린과 쓸모없는 문답을 나누는 일이었다.

그는 올린이 고통받는 것을 가까이서 보기 위해 의자를 끌어와서는, 주사의 효능으로 붓지 않아 섬세한 모양 그대로 죽은 듯한 손등을 살그머니 어루만졌다. 궁금한 것도 많은 모양이었는데, 질문을 할 때면 귀와 입술의 기능을 착각하는 사람처럼 반드시 올린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까이 대고 숨결로 간지럽혔다.

“큰 도련님이랑 기차역까지 같이 갔어?”

“기차에서 내린 곳이 밀성역이었던 거야?”

“거기서 서빙도 하고 그랬어?”

“그럼 뭐 했니?”

“모르던 남자랑 연애도 했니?”

“아니면 여자?”

“아무랑도 안 잤단 말이야?”

“이상하네, 액받이가 섹스 없이 살 수 있다고…?”

“아니면, 그 개야? 너 진돗개 잘 다룬다면서. 개랑 잤어?”

“그 개, 보고 싶지? 도련님이 데리고 와 줄까?”

하고 질문을 퍼붓기도 했다. 올린은 잡종 진도를 데려다가 자신과 강제로 흘레붙일 것이 무서웠다. 착한 개가 몹쓸 짓 당할 게 두려워 필사적으로 아니라고 대답했는데도 믿어 주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올린이,

“그런 짓, 하지 않았습, 니다.”

하며 끈덕지게 고개를 저으면, 고통 속의 액받이를 괴롭히려 짐짓 엉뚱한 질문들을 던졌던 그는 만족하여 체모에 덮인 채 가랑이 사이에서 덜렁이는 자지를 가만한 손길로 어루만져 주기도 했다.

“그 개랑 하지 않았다면, 앞으로 해 볼 기회를 줄 수도 있어.”

“네게는 제법 실한 자지가 달려 있으니, 수캐의 역을 허락할지도 모를 일이지.”

“하지만 그러기에 네 구멍은 너무 야하고… 뭐라도 박아 주지 않으면 아쉬울 몸이잖아.”

“너, 암캐처럼 짖어 볼래? 어서.”

“아니야, 그게 무슨 암캐야- 다시 해 봐. 교미 중의 암캐처럼, 야하게 짖어 봐.”

“개들이 교미할 때 수캐의 자지에는 가시 같은 게 튀어나오는 거 알고 있어?”

“수캐가 여기에다 자지를 박으면, 억지로 떼어 놓을 수가 없다는 뜻이야.”

“벗어날 수 있는 것은 딱 하나, 네가 수캐를 만족시키면 돼. 사정하고 나면 빠지거든.”

“내 손가락이 수캐의 자지라고 생각하며 조여 보겠니?”

견딜 수 없을 지경으로 몰아세우는 문장들 속에서 올린은 일견 아무렇지 않아 보이던 셋째 도령조차 자신에게 화가 나 있었음을 확인했다. 폭력적인 상상을 부추기는 언어에 끌려다니다가도, 그 분노의 원인을 더듬어 볼 수 있는 순간의 여유가 생기면 올린은 흐느끼던 울음을 추스르기도 했다.

그러나 역시 막내 도련님과 넓은 공간에 둘만 남는 때가 가장 많았다. 격렬한 갈증에 시달리던 어느 시간에, 올린은 손의 통증조차 잊을 정도로 격렬한 목마름에 마른 입술을 달싹였다. 도련, 님. 도, 련님. 입가에서만 울린 작은 속삭임에 민감하게 반응한 도련님이 일어나 다가왔다.

올린이 청했다. 목이, 마릅니다, 부디, 도련님. 물을 바란 게 아니었다. 물을 마셨다가는 처벌을 제대로 받지 않은 셈이 될 터였다. 그걸 아는 도련님은 잠자코 바지의 앞섶을 열어 발기하지 않아도 커다랗고 두툼한 자지를 올린의 입에 물려 주었다.

뜨끈하고 지린 소변이 목구멍으로 흘러 들어갈 때, 올린은 타는 목마름으로 마지막 한 방울이라도 더 마시고자 자지 끝을 죽죽 빨았다. 막내 도련님이 낮에 반 잔의 물이나마 마시지 않았더라면, 올린의 목구멍엔 훨씬 뜨겁고 따갑기만 한 것이 지나갔을 것이다.

도련님이 몸을 물렸다. 올린의 혓바닥이 따라갔다. 그러나 더는 없었다. 올린은 이제는 잘 보이지도 않는 눈을 들어,

“고맙슴….”

하고 중얼거렸다. 막내 도련님은 별다른 말 없이 올린의 턱을 한 번 쓰다듬고 자신의 오줌을 마신 입에 입술을 맞춰 준 다음 원래 앉았던 곳으로 돌아갈 뿐이었다.

마지막 날 129대의 매질은 등에 내려졌다. 채찍은 고용인이 들었다. 반 가사 상태의 정신을 일깨우기 위해 첫째 도령이 주사를 놓았다. 흐억, 하고 벅찬 숨에 감겼던 눈이 뜨였다. 멍하고 흐린 채 두리번댔다. 네 명의 도련님은 처음, 처벌과 폐기의 기로에서 올린의 두 손을 뚫는 결정을 내렸을 때와 같은 모습으로 각자의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바로 서.”

강제로 정신이 붙잡아 매어진 액받이에게 명령이 떨어졌다.

“일백스물아홉 대, 맞으면서 네가 앞으로 어떤 태도로 지내야 할지를 생각해.”

올린이 다 꺼진 목소리로 예 알겠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저택에 돌아온 닷새 전보다 확연히 마른 등은 떨지도 않았다. 꿇어앉았던 몸을 일으키려다 두어 번 미끄러졌다. 꿰인 손 사이의 찬 대리석에 이마를 문지르는 채로 매질은 시작되었다. 막내 도령이 소파 등받이에 팔을 괴고, 발가벗은 채 매를 맞는 깡마른 몸을 뜨겁게 지켜봐 주었다.

매는 빠르고 지독했다. 공기를 찢듯이 가른 채찍이 뼈 돋은 어깻죽지를 때리고 젖꼭지까지 감싸며 할퀴고 떨어지는 동안 올린은 터무니없이 느려진 머리로 어떻게든 생각해 보려고 했다. 어떠한, 태도로, 지내야, 할지… 매질은 무자비하도록 빠르게 이어졌다. 고용인은 지시가 있기 전까지 팔을 멈추지 않았다.

“아, 우, 아, 학, 도련, 히익, 니임….”

고작 스무 대 남짓이 끝났을 뿐인데 등가죽이 뜯겨 나간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정말은 무엇인지, 여기가 어디고 왜 매를 맞고 있는지 분간을 못 할 정도로 격렬한 아픔 속에서 어느 분일지 모를 도련님을 찾았다. 그래 봤자 그 목소리는 형편없이 갈라져서 크게 나오지도 못했다. 바싹 마른 입술이 찢겨 피가 흘렀다.

“왜.”

대답해 준 사람은 둘째 도련님이었다. 갈증을 잊으려 애쓰며 버티던 눈앞에 물잔을 찰랑거리던 미운 목소리다. 올린은 고개를 문지르듯 좌우로 저었다. 좀 더 가까이에서 보고 있던 셋째 도령이 울퉁불퉁하게 부어오른 채찍 자국을 살펴보며 보드라운 털에 덮인 따끈한 자지를 살며시 쥐고 위아래로 쓸어 주었다. 여윈 몸이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 같았다. 자지도 그랬다.

올린은 잠시 흐느끼다가 고개를 젓고,

“…부르고, 흐윽, 싶었어요, 죄송해요….”

하고 꺼칠한 목소리로 대답을 내놓았다. 네 명의 도련님은 각각의 시선을 먼 데로 거두었다.

다시 매질이 시작되었다. 몇 번이고 비슷한 곳을 얻어맞는 동안 힘 빠진 몸은 조금씩 아래로 늘어졌다. 그 바람에 덩달아 길게 늘어진 손의 상처에서 다시 흐르기 시작한 피가 팔꿈치 아래로 똑똑 떨어졌다.

주저앉은 등에 빨간 자국이 차곡차곡 쌓였다. 둘째 도령은 매를 맞으며 으레 내놓는 반성과 사죄와는 전혀 다른 말에, 화가 난 것 같은 기색으로 관자놀이를 짚었다. 셋째 도령은 지나치게 솔직한 고백을 비웃는 듯한 미소를 띤 채로도 가끔 여윈 몸이 고통을 못 이겨 튀어 오르면 딱딱하게 굳은 입매를 손가락으로 가리듯 쓸었다.

몸부림치는 올린의 손을, 막내 도령이 붙잡아 더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진땀 나는 처벌의 마지막을 첫째 도령이 앉은 채 그저 바라보았다. 깜빡이지도 않는 눈은 뱀처럼 무감했으나 안에 든 것은 차가운 불꽃이었다. 세차게 불어도 꺼지지 않는 생명력을 사랑스러워하는 미친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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