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물
저녁 목욕이 끝난 후 올린은 예물을 하사받았다. 안내된 옷방에는 수십 개의 크고 작은 비단 꾸러미가 쌓여 있었다. 그는 예물을 풀어 보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도 모른 채, 이것들만 모두 확인하면 곧 잠자리에 들 수 있다는 생각에 은밀히 기뻐했다. 상처 입은 몸인 채 종일 교육을 받는 것은 몹시 지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회장님께서 직접 오셔서 액받이에게 덕담을 해 주시고 전하는 게 관례였으나 고용인이 대신 회장님의 서신을 읽었다. 네 분 도련님께 정성을 다해 순종하고, 주어지는 고통을 겸허히 인내하며, 사랑받을 수 있도록 늘 부단히 노력하라는 내용의 서신이었다. 올린은 마치 회장님이 여기 계신 듯 절을 올려 화답했다.
예물 상자가 차례로 날라져 왔다. 무릎 꿇은 올린의 곁에 두 명의 고용인이 붙어 포장을 열고 시착해 볼 수 있도록 시중들었다. 올린은 비단 매듭을 몇 번 끄른 것으로 지쳐 버렸다. 예물을 눈으로만 보고 덮으려 하자 하나하나 상자에서 꺼내어 유심히 살피는 게 주시는 분에 대한 예의라고 했다. 군데군데 밴드가 붙고 손바닥으로부터 손등까지 퉁퉁 부어오른 손으로는 물건을 집어 드는 것조차 고역이었지만 올린은 온순하게 지시를 따랐다.
자지와 젖꼭지에 쓰는 앞구멍 마개 세트는 여덟 벌이었다. 침은 순금으로 만들어지고 머리 부분의 장식은 지금 이미 착용하고 있는 다이아몬드를 비롯하여 진주, 옥, 그리고 각양각색의 보석들이다. 어떤 것은 침이 조금 굵고 어떤 것은 얇았다. 침 위에 덧씌워 좀 더 요도구를 빡빡하게 채울 수 있도록 빨대 모양의 황금 액세서리도 세트에 함께 들어 있었다.
올린은 붉은 젖꼭지 마개 두 개를 들어 옷 입은 가슴 위에 대고 고용인이 들이댄 작은 경첩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았다. 그렇게 해 보라는 재촉에 못 이겨 했을 뿐인데 무척 잘 어울린다는 칭찬을 들었다. 거울에 비친 갈색 눈이 주춤주춤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잘 웃는 것도 액받이에게 요구되는 덕목 중 하나였다.
항문 마개 세트는 다섯 벌이었다. 한 세트에 같은 소재로 만든 딜도가 다섯 개씩 들었으니 모두 스물다섯 개의 딜도를 받은 셈이었다. 모양과 크기가 저마다 달랐으며, 양각으로 장식된 무늬도 같은 것이 없었다.
어떤 것은 마개 입구에 손잡이 용도의 작은 고리가 달려 있기도 했다. 올린은 그 고리에 손가락을 집어넣은 채 두 손으로 들어 보이라고 지시받았다. 딜도를 든 사진이 찍히기 전에 고용인이 엄한 목소리로,
“감사하는 마음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고 지적했으므로 얼른 배운 대로 얌전한 미소를 지었다. 고용인은 그 미소가 사라지기 전에 얼른 사진을 찍고 올린의 손에서 딜도를 받아 들었다.
소재가 모두 값진 것들이었으나 크기보다 무게가 너무 무거워 담고 있을 자신이 없었다. 올린이 특별히 큰 것을 건네받고 근심하는 얼굴로 무게를 가늠했다. 이런 것을 아래에 넣고 생활한다면 심한 탈장 끝에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고용인이 안심하라는 듯 알려 주었다.
“그것은 벌을 받으실 때가 아니면 넣으실 일도 많지 않을 겁니다.”
다시 말하면, 체벌 용도로 쓰이게 될 물건이라는 뜻이다. 올린은 그것을 원래 자리에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부디 넣을 일이 없길 바라면서였다.
각양각색의 비단 옷과, 옷에 어울리는 비단 끈 세트는 셀 수 없이 많았다. 가죽 채찍은 모양별로 하나씩, 올린에게 가장 어울릴 만한 색으로 고른 듯 흔한 검정색이 아니라 우아한 갈색이었다. 채찍과 동일한 색으로 맞춘 전신 하네스도 있었다. 가죽이 유려하게 다듬어져 착용하더라도 많이 아플 것 같지는 않은 모양새에 올린은 조금 안심했다.
매화나무, 등나무, 대나무로 만든 회초리 묶음, 크고 작은 집게들, 어디에 사용하는지조차 알아보기 어렵지만 하나같이 보석으로 꾸며진 크고 작은 도구들을 모두 열어 보고 용도와 명칭을 들었다.
때로 도련님들이 고용인의 손을 빌리지 않고 액받이로 하여금 직접 도구를 가지고 오라 이르시기도 한다. 그럴 때 재빨리 명령을 따를 수 있도록, 그것들이 진열되듯 정리된 위치도 함께 확인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목재와 가죽재로 만든 예물들에 기름을 먹이고 마른 수건으로 고운 윤이 나도록 문질러 손질하는 일은 올린의 몫이라는 설명과 함께 그 일을 하는 방법도 가르침 받았다.
마침내 모든 절차가 끝나고 침실로 안내되었을 때 올린은 울고 있었다. 예물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나오지 않던 눈물이, 회장님께 보내는 감사 편지라는 명목으로 항문을 탁본 뜨일 때부터는 쉴 새 없이 흘렀다. 늘 그렇듯 이유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눈물이었다. 올린은 이렇게 값진 것을 잔뜩 받아 놓고 울어 버린 자신이 배은망덕하다고 생각했다. 매를 맞지도 혼이 나지도 않았건만 대체 왜 눈물이 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고용인들은 올린의 엉덩이를 하늘로 쳐들게 하기 전에 삽입되어 있던 딜도를 꺼내 주었다. 항문에 물을 분사해 적셔서 그 위에 한지를 댄 후, 먹주머니로 부드럽게 누르듯 문질러 모양을 본떴다. 이유 없이 울어 대는 바람에 항문이 쉴 새 없이 움찔댔다.
주름이 뭉그러진 여러 개의 실패작 끝에 나온 선명한 탁본을, 우는 액받이의 손에 펼쳐 들게 하고 사진 찍었다. 올린은 시키는 대로 웃어 보려고 무진 애를 썼다. 울면서 웃는 이상한 얼굴이 가장 좋은 사진으로 낙점되어 회장님께 올려지게 되었다. 탁본의 결과물도 비단 족자에 잘 표구되어 전달될 것이다.
탁본한 한지 위에 눈물 몇 방울이 떨어진 건 아무도 나무라지 않았지만, 우는 채로 잠자리에 드는 게 허락되지도 않았다. 올린은 눈물이 그칠 때까지 준비된 잠자리 옆 앉아 명상하라 지시받았다. 눈물이 멈추고 얼굴 가득한 운 자국이 사라질 때까지, 두 시간 동안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 꿇어앉아 있었다. 고용인이 명상을 도왔다. 자세가 흐트러지면 그것을 지적하고, 호흡이 가빠지면 숨을 들이쉴 때와 내쉴 때를 알려주었다.
올린의 숨이 평안해지고서야 고용인은 더운 물수건으로 다시 한번 얼굴을 닦아 주었다. 속옷의 매무새를 재점검한 뒤에 잠자리에 드는 것을 허락했다. 딱딱하지만 깨끗한 이부자리에 누운 올린은 자세를 교정하기 위한 손발의 결박이 바닥에 박힌 고리들에 팽팽히 연결되는 것도 알아채지 못하고 기절하듯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