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큰 도련님 (6/65)

# 큰 도련님

안경을 쓴 온화한 인상의 남자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올린은 바닥에 바짝 무릎을 꿇고 앉아 손바닥을 맞고 있었다. 녹색의 비단 소매가 어깨까지 흘러내리도록 높이 손을 치켜든 채였다. 하얗게 드러난 매끈하고 늘씬한 팔에는 바짝 힘이 들어가 있었다.

선 채 때리던 사람은 교육 기관에서 파견 온 조교였다. 그는 문을 연 사람을 확인하고는 즉시 매질을 멈췄다.

인사하는 방법을 익히던 중이었다. 스무 번 절을 반복하고 틀린 점을 지적받은 후 매를 맞는 방식의 훈련이 두 시간째 진행되고 있었다. 손바닥이 퉁퉁 부어오르고 군데군데 찢겨 절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까 놓은 달걀처럼 매끈한 얼굴은 땀에 젖어 머리칼이 달라붙었다.

“나 신경 쓰지 말고, 하던 일 해요.”

안경테 뒤로 갈색 눈이 미안한 기색으로 가만히 웃으며 조교에게 손짓했다. 조교는 오래 거래하던 가문의 도령들이 이런 식으로 불쑥불쑥 나타나는 것에 익숙했다. 그는 그 나긋하고 조용한 목소리의 주인이 정말로 하던 것을 계속하기를 바라는 것을 알아챘다.

그는 가볍게 목례하고, 그대로 들린 채 기다리던 손을 회초리로 가볍게 들어 올려 때리기 쉬운 위치로 조정했다. 올린의 머리보다 높은 위치였다. 손을 모은 채 들고 있는 자세만으로도 벌 받는 것처럼 힘들 게 분명했다.

높이 치켜 올라갔던 회초리가 휘릭, 착 하고 바람 가르는 소리를 내며 쭉 펴진 손바닥에 연이어 떨어졌다. 섬완한 손은 애처롭게도 이미 상처투성이였건만 회초리는 가차 없었다.

착, 착, 착, 착, 착, 일정한 속도로 내리쳐진 다섯 번의 매질에 올린이 조금씩 고개를 떨궜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낯을 가리기 위해서였다. 두 손바닥 사이가 타격의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점점 벌어지자 조교가 교정했다.

“손 바로 붙이십시오. 어깨 내립니다. 고개 들고 허리 세웁니다.”

올린은 얼른 손을 모으고 자세를 바로 했다. 마른침을 삼키고 눈을 빠르게 깜빡여서 얼굴에 묻은 울음기를 떨어내려 했지만, 입술은 서럽게 실룩이고 있었다.

다음의 매는 한층 거세게 떨어졌다. 착, 착, 착, 착, 착, 이번에는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았다. 올린은 매가 떨어질 때마다 온몸의 근육에 꾸욱 힘을 주며 아픔을 참았다. 숨이 가쁘고 진땀이 주르르 흘렀다.

매가 멈췄다. 조교는 회초리를 털듯 허공에 몇 번 휘두르고는 말했다.

“손 내리십시오. 3분간 반성합니다.”

올린은 높이 들었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 심장이 손에 달린 듯 피가 쿵쿵 돌 때마다 욱신욱신 저렸다. 3분 후에는 다시 절하면서 이 손으로 바닥을 짚어야 했다. 조금이라도 덜 맞고 끝내기 위해 방금 배운 것을 열심히 머릿속으로 반복했다. 가쁜 호흡, 어지러운 머리로 가르침 받은 것을 되새기느라 그는 안경 쓴 남자가 자신에게 다가온 것도 뒤늦게야 알아챘다.

그는 조용히 올린의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허벅지 위에 놓는 것조차 아파서 허공에 엉거주춤 띄운 올린의 두 손 앞에 제 손바닥 하나를 내민다. 그것은 강아지에게 손 달라고 할 때의 몸짓과 비슷했으나, 머리를 어지럽게 만드는 아픔 속에 빠져 있던 올린은 쉽게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눈물 맺힌, 정신없는 눈으로 그것을 바라볼 뿐인 올린을 나무라는 기색 없이 그는,

“…잠시마안.”

하고 다정하게 양해를 구하며 올린의 손을 잡아 펴 보았다. 잡힌 것만으로도 날카로운 통증이 올라와서 올린은 목 안으로, 신음을 삼키며 퍼특 고개를 웅크렸다.

“크읏.”

그러면서도 악착스럽게 우는 소리를 억눌렀다. 손가락 마디와 손금이 갈래갈래 다 찢기고 손바닥 전체가 울퉁불퉁 부풀어 오를 정도로 매는 모질었다. 자세를 유지하지 못해서 두 번이나 빗맞아 생긴 손목의 상처는 길게 갈라져 피가 맺혀 있었다.

그는 그 손목의 상처를 살며시 쓸다가, 손톱을 세워 긁었다. 길쭉한 상처의 방향을 따라 긁느라 잡은 손안에서, 파특 벗어나고 싶어 하는 움직임이 느껴지려다 이내 잠잠해졌다. 힘 빠진 손목 안에 맥이 두근두근 세차게 울었다. 입보다 시끄러운 게 심장이었다.

“흐… 으으….”

“조용하다고는 들었지만, 너 소리 진짜 잘 참는구나. 많이 아플 것 같은데.”

올린은 땀에 젖은 얼굴을 들었다. 어제는 아무것도 몰라 함부로 얼굴을 문질러 닦았지만, 오늘 배운 바에 따르면 그건 잘못된 행동이었다. 피, 땀, 눈물은 닦아도 좋다는 허락을 받기 전에는 흐르도록 내버려 두는 게 액받이로서의 법도였다.

남자를 올려다보는 동안 턱에 맺힌 땀방울이 똑 떨어졌다. 고통을 참느라 희게 질린 낯으로 남자가 누군지 몰라 얼떨떨해하는 표정조차 완순하고 청아했다.

“안녕.”

갈색 눈이 부드럽게 휘며 웃었다.

“…안녕하십니까.”

올린은 조금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목 안으로 흐느낌을 억누르던 음성이 낮게 갈라졌다. 남자는 발갛게 혀가 드러났다가 사라지는 입술 쪽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들고 눈을 맞춰 왔다.

“…그 인사 말고 제대로 인사하는 거, 한 번 볼 수 있을까?”

가만히 앉아서 안녕하십니까, 하는 게 아니라 지금 배우고 있는 대로 절을 해 보라는 말이다. 올린은 조교의 허락을 구하는 듯 그가 선 쪽을 보았다. 조교가 고개를 끄덕여 재촉했다. 남자가 조금 떨어져 팔짱을 끼고 섰다.

올린은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예법대로 오른쪽 왼쪽 무릎을 순서대로 세워 일어났다. 남자는 바닥에 닿은 손에 체중이 실리는 순간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손바닥의 상처 때문에 끔찍하게 아플 것이 분명함에도 아무렇지 않은 척 꿋꿋한 표정이 일품이었다.

바른 자세로 서서 먼저 인사말을 하고, 양쪽 무릎을 일어날 때와 반대의 순서대로 꿇었다. 참으려고 그렇게 애를 쓰며 눈 안에만 담아 놓았던 눈물이, 꿇어앉는 순간 넘쳐서 바닥에 후드드득 떨어졌다. 그런 주제에 표정은 담담했다.

두 발바닥을 공손히 포개어 앉았다. 두 손을 맞잡는 각도를 신중히 하여 바닥을 짚은 후 허리를 숙여 이마를 손등 위에 댔다. 엉덩이를 들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바닥에 납작 엎드린 몸은 섬약해 보였다. 절을 받는 사람이 어떤 짓을 저질러도 고분고분 응낙하는 수밖에 없는 처지를 은유하는 것 같은 인사였다. 올린은 그대로 기다렸다. 보기보다 균형 잡기 어려운 자세였으나, 인사받는 사람이 허락하기 전에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물론 손바닥도 바닥에 눌린 채였다.

“좋아, 일어나.”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남자가 말했다. 올린은 상체를 바르게 세워 앉을 수 있었다. 덜덜덜 떠는 손이 소매 속으로 감춰졌다.

눈을 내리깔고 평가를 기다리는 모습은 기품있었다. 인사하는 동작도 단정하고 고통을 숨기는 태도도 아름다웠다. 남자는 사진 속의 모습보다 실물이 훨씬 마음에 들었다. 그가 올린을 바라보며 조교를 향해 말했다.

“잘하는데. 잠시 쉬었다 해도 될 것 같아요.”

올린은 자신의 교육을 중단시킬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지, 그제야 뒤늦게 떠올렸다.

큰 도련님이었다.

조교를 쫓아내다시피 한 첫째 도령은 등 뒤로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앉을 만한 곳을 찾으며 잠시 두리번거렸다. 올린이 오전 내내 갇혀 벌 받듯 훈련받던 곳은 훈육실이었다. 구석에 의자가 몇 개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텅 빈 데다 창문이 없고 삼면이 거울이라 발레 연습실 따위를 연상케 하는 곳이었다. 당연히 앉을 만한 데가 있을 리 없었다.

“사진보다 실물이 더 예쁘다. 피부도 깨끗하고, 눈도 순하고.”

그러나 그는 굴하지 않고, 벽에 붙어 있던 의자 중 하나를 가지고 와 올린의 앞에 앉았다. 두 손으로 묵직한 의자를 들고 소리가 나지 않도록 옮기느라 뒷걸음질치는 몸짓이 조심스럽다. 그는 너무 가깝지 않은 곳에 앉아, 무릎 꿇은 올린의 얼굴을 들여다보느라 허리를 잔뜩 숙여 웅크렸다. 바닥에 앉은 채로 올려다본, 싱긋이 웃는 얼굴은 온화하고 따사로운 얼굴을 하고 있다.

네 명의 도령들은 모두 장신의 미남들이다. 대대손손 심혈을 기울여 선별되어 온 유전자를 이어받은 사람들이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냉기가 풍기도록 차가운 표정과 말투의 둘째 도련님이나, 더없이 아름다운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잔인한 고문을 하신 셋째 도련님, 선이 굵고 위압감이 드는 모습인 데다 매질에 자비가 없으신 막내 도련님과 달리 큰 도련님은 어쩐지 몹시 다정하신 얼굴로 웃었다.

색이 흐린 머리카락 아래 멋없는 구식 안경테에 가려진 눈이 빙긋이 웃을 때, 올린은 저도 모르게 바보같이 입을 빵끗, 하며 웃는 듯한 모양으로 따라 해 보다가, 문득 그러면 안 될 것만 같아서 입술을 말아 물었다. 그 꼴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큰 도련님이 주먹 쥔 손으로 입가를 가린 채 바람 새는 소리를 내며 조금 더 웃더니,

“왜, 웃으면 혼날까 봐?”

묻다 말고

“웃는 편이 더 예쁠 거 같은데 뭐. 마음껏 웃어도 돼. …울어도 되고.”

하고는 턱을 살며시 잡아 쓸었다. 그 손의 감촉이 생각보다 부드러워서 올린은 숨을 들이켜고, 턱 아래, 목 쪽을 간질이는 손가락의 움직임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빼며 흐느끼듯 어설피 웃었다. 눈물 자국 난 얼굴이 간지럼을 타느라 무서워하면서도 웃어 버리는 모습을 관찰하던 큰 도련님이 말했다.

“너는 약 없이도 괜찮겠다.”

마음에 든다는 뜻이었다.

재벌가의 장남임에도 불구하고 큰 도련님은 기업 운영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 그것은 차남이 경영에 소질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장남의 관심 분야가 너무나 다른 데 있는 탓이 더 크다.

그는 아주 어린 시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화학과 제약 분야에 흥미를 보여 왔다. 게다가 그 집착적인 흥미에 어울릴 만큼 대단한 재능을 보였다. 그의 그 재능을 활용하고자 과거 전기 전자 계열의 사업에만 주력하던 심상이 제약 쪽으로도 사업을 발전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손에게 어떻게든 회사의 경영을 맡기고 싶어 하던 조부가 그를 위해 몇 개의 제약 회사를 사들여 지금의 심상 제약을 꾸려 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부의 기대가 무색하게도, 큰 도련님은 도무지 제약 회사를 경영하는 데에는 재미를 붙이지 못했다. 그러므로 지금 그는 경기도 어딘가의 외진 연구소에 틀어박혀 남들보다 더 넓은 방을 차지하고 앉아서는, 저 좋을 대로의 연구에나 열중하고 있다.

직함은 고작 이사다. 차남이 그룹사 전체를 통솔하며 현재는 사장님으로, 그리고 곧 회장님으로 불릴 예정인 것과는 대조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은 작고하신 조부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신 회장님도 장남이 흰 가운을 입고 금테 안경을 쓴 채 샌님처럼 플라스크를 뱅뱅 돌리고 앉아 방긋 웃는 꼴을 보며 혀를 츳츳 차곤 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 장남이 정말로 즐거이 여기는 일을 모르시던 까닭에 보였던 반응이다. 장남은 그 연구실에서 제약 회사를 통해 유통될 수 있는 약을 다루기보다, 상용될 수도 없고 상용되어서도 안 될 온갖 종류의 불법적인 약을 만지고 있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그 타고난 천재적인 재능과 흥미는 밝은 데에서 쓰이지 못하고 어두운 세계로 흘러들어 가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마약이라고 불리는 편이 좀 더 적합할 다채로운 종의 약을 제조하고 가공하고 유통하는 것까지 익명인 채 오롯이 홀로 하므로, 사실 그는 조부가 원하는 대로 유능한 경영자로 일하고 있는 셈이다.

철저한 비밀에 싸인 마약 제조자는 가끔 취미 삼아 자신이나 형제들이 액받이를 상대로 즐길 수 있는 약도 만들어 내곤 한다. 그 약들은 때로는 최음제에 가깝기도 하고 또 어떤 때에는 각성제의 기능을 갖기도 한다.

바로 이전에 폐기했던 완구의 경우, 자나 깨나 늘 잠든 것 같던 그 눈을 깨우기 위해 사용한 각성제의 효능이 과다했던 것이 도리어 그 애에게 화가 되었다. 약을 쓰고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액받이답지 못하게 된 것은 조금 당황스럽긴 했지만, 보기에 나쁘지 않았다. 재미있었다.

그렇지만 과하게 슬퍼하고 지나치게 화내고 너무나 괴로워하는 꼴은 여러모로 위험했기 때문에 결국 폐기를 결정한 것도 장남이었다. 그는 그 애를 폐기한 후 귀여운 막냇동생이 자신이 십오 년간 애지중지 몰던 차를 다 때려 부순 것을 보고 마음먹은 바가 있어, 앞으로는 액받이를 신약의 실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그만두기로 했다.

과거 사업이 소규모였을 때에는 실험체가 부족했고, 집안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소소한 실험이 그의 연구에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액받이에게 약을 쓰던 습관이 무심코 이어져 왔었다. 지금은 폐기되고 없는 완구의 팔에는 주사 자국 가실 날이 없었는데, 생각해 보면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그러니 큰 도련님은 이번의 액받이에게는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약을 놓지 않기로 했다.

“날것 그대로도 이렇게나 예쁘니, 정말 다행이야.”

악랄한 과거와 달리 온화한 눈빛을 한 천재는, 예쁘다는 말에 수줍어하는 올린을 잠자코 내려다보았다. 담담한 척 무표정을 꾸미고 있으나 흐르던 눈물이 뚝 멈춘 게 귀여웠다. 의젓하고 성숙한 자세로 고된 벌을 견디다 고작 그 정도의 칭찬에 기뻐서 울음을 그친다. 사진에서의 모습과 달리 뭐랄까, 생생하고 펄떡거렸다. 살아 있었다.

“그런데 옷은 왜 갈아입었어?”

아침에 받은 사진과 다른 옷을 입은 것을 지적하자 올린의 목덜미가 빨개졌다. 남자는 그 반응을 보고 자신이 짐작한 바와 사실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옷을 입은 채 실금한 것이다.

어제 그토록 가혹하게 매질 당할 때조차 소변을 지리지는 않았다고 들었다. 그런데 고작 몇 시간의 교육을 받았을 뿐인 오늘 아침에 실금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일이 있지는 않았을 터였다.

곤란해하고 창피해하는 얼굴이 흡족했다. 그래서 그는 오줌 쌌다는 부끄러운 고백을 기어이 말하게 하고자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꾸민 채, 색소 엷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시 한번 물었다.

“응? 사진 속의 핏빛 옷 입은 거 직접 보고 싶었는데. 왜 녹색 옷을 입고 있는 거지?”

올린은 입안의 살을 잘근잘근 씹었다. 나쁜 습관이라고 내내 혼났는데도, 다시 손가락이 꼼지락거렸다. 그렇다고 올린에게도 변명할 말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전에 있던 곳에서는 배변이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었다. 하루에 한 번, 그것도 관리자의 허락이 있을 때만 화장실에 갈 수 있었다. 참지 못하면 주어지는 벌이 아주 무서웠다. 하루 동안 화장실에 갇혀 남의 소변을 마시는 것이었다.

올린도 그런 벌을 받은 적이 있었다. 더럽고, 역겹고, 메스꺼운 동시에 매 맞는 것만큼이나 아팠다. 종일 소변을 받아 마시면서 정작 자신은 배설할 수 없도록 요도와 항문이 단단히 틀어막혀 있으니 배가 빵빵하게 부풀어 터질 것 같았다.

관리자에 따라 액받이가 울고불고 결국엔 울음을 터뜨리며 지릴 때까지 허락하지 않아 놓고선, 참을성이 없다며 벌을 주는 경우도 잦았다. 말이 금지된 곳이었으므로 제발 싸게 해 주세요, 하고 애원하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그저 허락이 떨어지는 순간을 기다리고, 기다리는 수밖에.

가장 어려운 것은 관장할 때마저 소변을 참아야 하는 것이었다. 항문으로는 끊임없이 배설하는 와중에 요의를 참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으나, 올린은 변의와 요의의 당연한 구분에 익숙해져 있었다. 따라서 오늘 아침의 길고 괴로웠던 관장에도 소변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어제 집사가 보는 앞에서 화장실을 사용한 후로 계속 참았다. 수영장에 몇 번이나 빠져 엄청난 양의 물을 먹고도 지시가 없었으므로 그대로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 관장이 끝나고 나면 혹시 소변을 눠도 좋다고 허락해 주려나, 애타게 기다렸으나 아무런 말이 없었다.

뭉근한 아픔같이 아랫배를 떠돌던 요의는 첫 번째 교육 시간이 끝나갈 무렵에 이르러 절정으로 치솟았다. 그는 내내 자세를 바르게 하지 못한다고 혼쭐이 났으나, 그것은 사실 소변을 참느라 엉덩이를 씰룩이느라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감히, 소변을 눠도 되냐는 질문을 할 수는 없었다. 안 될 말이었다. 그저 참았다. 기다렸다. 그러다가 그만, 참을 수 없는 지경에 다다랐다. 가느다란 자지 마개 사이로 소변 줄기가 새기 시작할 때의 절망감과 수치심이 다시 떠올랐다.

“너, 혹시… 옷에다 오줌이라도 싼 거야?”

첫째 도령은 짓궂은 질문을 하면서 안타까워하는 척,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그러다가 새빨갛게 달아오른 올린의 얼굴을 보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올린은 한층 더 몸 둘 바 몰라 하며 눈을 떨구었다.

이곳에서는 관장할 때 소변도 함께 배출하는 것이 당연했다. 고용인들은 이 집 방식으로 관장하느라 소독약의 따가움에 괴로워하는 올린을 보살필 줄만 알았지, 배뇨 여부를 체크하지는 않았다. 참고 있는 줄을 몰랐으니 소변을 눠도 된다는 허락의 말이 따로 없었던 것도 당연했다.

올린이 견디다 못해 소변을 지릴 때가 되어서야 그를 가르치던 조교도, 시중들던 고용인도 사정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수치심과 두려움으로 바들바들 떨면서도, 입은 옷의 앞섶이 다 젖고 바닥까지 줄줄 흐르도록 방뇨해 버리는 미인의 모습을 침묵 속에 바라보았다.

인간의 별의별 모습을 다 보아 온 그들이었다. 고작 액받이가 오줌을 지린 정도로 놀라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나락으로 떨어진 듯한 눈이, 창백하게 질린 낯이, 단정했던 허리가 서서히 굽는 자태가, 붉은 고급 비단이 짙은 갈색으로 젖어 들어가는 광경이, 무릎 아래로 노랗고 지린내가 풍기는 액체가 스며 나오는 꼬락서니가,

어찌나 기묘하게도 음란했던지!

터져 나온 울음에 헐떡거리는 올린의 숨소리만 방안을 울렸다. 그는 자신의 오줌 웅덩이 위에 앉은 채 비통한 눈물을 흘리고 있었지만, 그 모습은 더럽기보다는 더없이 외설스럽고 한없이 음탕해 보였다.

조교와 고용인들은 한동안 그 모습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뒤늦게 고용인들이 더러운 것을 치우기 위해 양동이를 가지러 떠났다. 조교는 올린과 둘이 남아서야 정신을 차리고 냉정을 되찾았다.

조교의 명령에 올린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발목 즈음에 엉겨 붙은 젖은 천 아래로 오줌 방울이 똑똑 떨어졌다. 스스로 매듭을 풀고 옷을 모두 벗도록 했다. 소용없어진 자지 마개를 빼고, 젖꼭지를 동여맨 실만 남긴 채 아래는 완전히 발가벗은 채로 바닥을 청소하게 시켰다.

고용인이 가져온 걸레로 자신의 오줌을 닦아 양동이에 주르륵, 짜는 올린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그것을 몇 번이나 반복한 후에 물걸레질했다. 바닥을 닦은 물걸레로 몸을 닦았다. 그리고 벌을 받았다. 온종일 변기에 묶여 남의 소변을 받아 마시던 것에 비하면 황송할 정도로 가벼운 벌이었다. 더 큰 벌이 기다리고 있는 게 당연했다.

올린은 각오를 다지고 대답했다. 침착하고자 노력했지만, 말은 마구 떨려 나왔다.

“…네, 도련님. …오, 줌 쌌, 습니다….”

그리고는 조금 후에,

“…잘못했습니다. 벌, 달게, 받겠습니다.”

하고 말하는 목소리는 어떤 당연한 것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의연함이 있었다.

제아무리 큰 결심으로 말했다고는 하나 기껏해야 오줌을 싼 벌을 받겠다고 한 것뿐이다. 그러나 담대하려 애쓰는 태도가 가상하여 예뻤다. 첫째 도령은 이것에게 더 큰 수치와 고난을 안겨 줄 오만 가지 방법을 떠올리면서 가볍게 미소했다. 그러나 오늘은 상냥하게 대해 주기로 마음먹고 왔었다. 조금 귀여운 목소리를 낸다고 해서 계획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첫째 도령은 꼴리는 소리를 내놓은 결연한 눈을 바라보며 뜨거운 숨을 내쉬었다. 성격 파탄인 그가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 으레 그렇듯, 자신은 죽을 때까지 결코 느껴 볼 수 없을 방식으로 고통을 선사하고 싶은 욕망이 솟았다. 괴로워서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우는 꼴을 보고 싶었다.

그런 건 그에게 있어, 뭐랄까, 비현실적이어서 더욱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이곤 했다. 그러나 아직 시간은 많았다. 처음부터 그렇게 해 버리면 앞으로의 재미가 반감될 터였다. 그래서 그는 연약해 보일 뿐 실은 강건한 뺨을 느리게 도닥이며 다정을 보여 주었다.

“하하, 이미 받았을 거 아니야, 벌.”

올린은 흐느끼듯 숨을 들이쉬었다.

“나랑은, 섹스할까?”

다정한 목소리였다. 올린이 얕은 숨을 탁, 뱉었다.

따뜻한 손에 잡아 일으켜졌다. 그는 자신의 안경을 끌어내려 바닥에 던지듯 내려놓고, 한 손으로 마른 허리를 감아 안았다. 저도 모르게 상체를 뒤틀어 도망갈 듯한 몸짓을 한 올린은

“흐음.”

하는 나무라는 듯한 숨소리와 함께 바짝 당겨졌다. 받을 벌이 남아 있는 몸이 바싹 긴장했다. 그러나 혼내는 소리와 달리 첫째 도령은 너그러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숙여 올린의 입에 입술을 댔다. 입꼬리가 위로 올라간 모양 좋은 입술이 올린의 입술 위를 가볍게 쓸었다.

간질거리는 감촉에 조금 벌어진 입술 사이로 천연덕스럽게, 혀가 밀고 들어왔다. 부드럽되 거침없는 침입이었다. 올린은 선선히 입을 벌리고 자신의 혀를 휘감는 타인의 혀를 따라 감아 보려 애썼다.

키스는 익숙지 않았다. 올린의 입에 성기가 들어찬 적은 많았으나 남의 입술에 입술이 맞춰진 때는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키스도 삽입 섹스와 다를 바 없었다. 성기가 삽입된 엉덩이를 상대의 장단에 맞춰 움직였던 것처럼 바지런하게 입술을 들썩이고 혀를 움직였다.

포개진 입술 안에서 서로를 감았던 혀가 떨어졌다. 올린은 두 마리 뱀이 마구 얽혀 교미하는 것 같았다고, 장남은 밀고 당김이 왈츠와 같았다고 키스에 대해 전혀 달리 감상했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던 둘이 다른 감상을 기반으로 상대방을 마음속에 새겼다.

첫째 도령은 달콤한 숨결을 쌕쌕거리는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침착한 척하던 앙큼스런 태도는 어디에 내던졌는지, 눈빛이 흐릿하고 입술은 봉긋하게 부풀었다. 끌어당기면 순순히 따라오다가도 짐짓 교태스럽게 달아나기도 하는 키스가 제법이었다.

올린은 이 온화한 인상의 남자가 무서워졌다. 그는 아름다운 얼굴과 다정한 말투에도 불구하고 뱀과 같이 잔혹하고 집요했다. 휘감다가 팽개치고, 혼내듯 다시 조이는 혀가 두려웠다. 키스하듯이 섹스한다면, 그렇게 하듯 자신을 다룬다면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질 거라는 본능적인 예감이 소름 끼치듯 밀려왔다.

첫째 도령은 올린의 다친 손을 가만히 잡았다. 올린은 아픔과 공포를 내색하지 않고 그가 이끄는 대로 순순히 손을 움직였다. 바지 아래 자지가 뜨겁고 딱딱하게 솟아 있었다.

손안에 쥘 수는 있을지 걱정되는 굵기의 좆이 불끈거렸다. 그것을 만진 상처 입은 손이 순진한 처녀의 손처럼 깜짝 놀랐다. 피식, 웃는 남자의 웃음에 거친 숨이 섞여 있었다. 그가 초조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되어 버려서, 좀 급한데.”

올린은 온순한 눈을 깜빡였다. 도련님께서 하고 싶으면, 하시면 된다. 마치 양해를 구하는 것 같은 말투가 낯설었다.

“손 좀 아프겠다. 참을 수 있지?”

대답을 바라지 않는 질문을 끝낸 남자가 웃었다. 숨을 헐떡이면서였다. 올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참는 것에는 도가 트였다.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올린은 거울을 향해 밀어 붙여졌다. 아무것도 없는 넓은 공간에 두 사람의 호흡이 짧게 울렸다. 벽 전체를 메운 거울 안에, 올린과 첫째 도령의 모습이 비쳤다. 올린은 온화한 얼굴이던 남자가 자신의 뼈를 바를 듯 무서운 눈으로 변한 것을 보고 답싹 겁을 먹었다.

놀란 얼굴의 올린의 허리를 껴안은 남자는, 올린의 목덜미에 코를 묻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액받이 특유의 엷은 땀 냄새가 달큼했다. 목을 깨물듯 이를 세워 위협하자 올린은 파르르 떨면서도 목을 내주었다. 물어뜯으면, 물어뜯기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남자는 거울 통해 올린과 눈을 맞추며 상처 입은 양손을 잡아 들었다. 피가 나고 퉁퉁 부은 손바닥이 거울에 짓눌리자 올린이 팔을 움칠거리며 고개를 파특 숙였다.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으면서도 잠자코 순종하는 몸을 보던 남자는, 온당치 않은 가학심이 끓어오르는 바람에 올린의 손등 위에 자신의 체중을 실어 한 번 더 거울에 단단히 눌렀다.

“흐으…읏….”

축축한 숨을 흘리는 올린의 턱을 잡아 고개를 들게 했다. 거울 속의 자신을 마주 본 올린의 허리를 잡아 뒤로 빼 엉덩이를 높이 들게 하고, 다리를 넓게 벌렸다.

발목까지 닿는 옷자락을 마구잡이로 열어젖혔다. 허리의 매듭이 단단하여 완전히 벌어지지 않았다. 옷자락을 함부로 끌어 올려 상처투성이의 하반신을 드러냈지만 매끄러운 비단이라 자꾸 흘러내렸다. 허리띠에 끼워 넣어 고정하는 손이 급했다.

어제 두들겨 맞은 엉덩이와 허벅지의 멍이 시커멨다. 몇 주는 지워지지 않을 것 같은 상처다. 첫째 도령은 엉덩이의 습포를 뜯어 보고 생각보다 심한 매질의 흔적에 이마를 찌푸렸다. 이런 엉덩이로 오전 내내 무릎 꿇고 앉아 있었을 것을 생각했다. 멍이 눌려서 그것만으로도 아팠을 것이다. 그런 식의 둔한 고통을 주는 건 영 재미없었다.

양 볼기를 쥐고 잡아당기고, 엉덩이 사이를 가르는 비단 끈을 옆으로 밀어냈다. 끈이 당겨지자 불알과 자지가 더욱 조여졌지만 올린은 잠자코 엉덩이를 들어 협조했다. 안에 든 옥 딜도를 끄집어 내어 바닥에 던졌다. 무거운 소리를 내며 바닥을 구르는 딜도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제의 학대로 부은 입구가, 조금 전까지 남근 형상의 장식품을 물고 있었으면서도, 분홍색으로 꼬옥 다물린 모양이 예뻤다. 그는 초봄의 흰 목련을 떠올렸다. 벌어졌을 때보다 다물어졌을 때 더 탐스러운 하얀 꽃송이.

그래도 피우고 싶었다. 첫째 도령은 혀를 내어 입술을 핥으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위의 입에 키스했듯이 아래에도 입을 맞췄다. 거울을 짚은 채 상체를 숙여 한껏 높이 든 엉덩이 사이에 앉은 남자의 입술이 항문에 닿았다. 다리를 단단히 벌리고 버티던 몸이 소스라쳤지만 이내 원래의 자세를 되찾았다.

입술로 빨고 혀로 핥았다. 넓게 핥고 뾰족하게 세워 구멍을 파고들듯 쿡쿡 눌렀다. 앓는 소리가 높아지면 툭, 달래듯 입 맞추며 잠시 멀어졌다가 다시 애무했다. 올린은 익숙해지지 못한 감각에 흐느끼다가, 혀가 깊이 침입하는 순간엔 도망치듯 엉덩이를 내리고 말았다.

“응읏! 아흐응….”

첫째 도령은 느긋한 몸짓으로 입술을 떼고, 잔뜩 움츠러든 올린이 스스로 자세를 바로 하기를 기다렸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서야 올린은 정신을 차리고 거울에서 떨어진 손바닥을 다시 바짝 붙였다. 거울의 차가운 감촉이 주는 위안보다 짓눌리는 아픔이 훨씬 컸다. 반쯤 주저앉은 엉덩이가 도로 치켜 올라갔다.

바닥을 향한 고개는 끝까지 들리지 않았다. 남자의 손이 머리채를 부드럽게 잡아 뒤로 단단히 당겨 거울 속을 똑바로 보도록 했다. 그리고는 멍든 엉덩이를 더 때려 벌하는 대신, 그 멍 위에 입술을 한 번 눌러 키스한 후 말했다.

“아니야, 도망치면 안 돼.”

올린이 흐느끼느라 이를 악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거울을 통해 첫째 도령의 얼굴을 바라보면서였다.

“난 그런 게 섭섭하단 말이야.”

첫째 도령은 투정을 부리는 것 같은 말투로 말하며 바지 주머니 속의 작은 병을 만지작거렸다. 안약 형태의 새로운 약은 자신이 제조한 것치고 그 반응이 마일드한 편이었다. 되도록 약 쓰지 않고 맛보려고 했지만 조금만 조미료를 치면 한층 맛있어질 몸이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사용할지, 애초에 맘먹은 대로 날것 그대로의 몸을 맛볼지 고민하고 있었다.

“으응?”

그의 부드러운 채근에 올린은 가엾게도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네, 도련님….”

하고 대답했다. 그 듣기 좋은 음성에 마음이 풀린 첫째 도령은 한 번만 더 저항하면 사용해서 편안하게 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약병을 쥔 손을 놓았다.

조금 더 키스를 해 주고는 봉긋하게 부풀어 열리려는 항문을 손가락으로 살짝 눌렀다. 눌렀을 뿐인데 손가락을 먹어 치우듯 삼켜 버리는 유연한 모습을 보고, 그는 다문 입안으로 숨을 몰아쉬었다.

바지 버클을 풀고, 자지를 꺼냈다. 크고 길고 굵었다. 내내 아래에 담고 있던 옥 딜도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커다란 자지였다. 올린은 첫째 도령과 비슷하게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거울 너머 그것을 훔쳐보았다. 잘생긴 외모나 가학적인 성품처럼 우람하고 웅대한 성기도 유전인 모양이었다.

두툼한 끝이 구멍에 문질러졌다. 자지는 단단하고 항문의 입구는 좁아 힘을 주어 문지를 때마다 퉁, 퉁, 튕겼다. 그렇게 한동안 입구를 조르듯 비비던 자지가, 마침내 억지를 써서 좁은 틈으로 머리를 밀어 넣는데 성공했다.

“하으악!”

올린이 밭은 숨을 내뱉었다. 끄트머리가 들어오기까지 조금 시간을 들여야 했지만, 일단 침입한 몽둥이는 그 매끄러운 몸으로 안을 빠듯이 벌리며 전진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미끌미끌하게 장액이 흐르고는 있으나 안은 침입자의 몸집에 비해 형편없이 좁았다. 꾸우욱, 벌리며 밀고 들어오는 몸짓은 다정하나 폭력적이었다. 올린은 뱀처럼 기다란 것이 끝도 없이 들어오는 착각을 버티며 조금 후에 이어질 왕복 운동을 준비하기 위해 양 무릎을 단단히 세웠다.

그러나 첫째 도령은 더 들어오지 않았다. 오히려 한순간 밀어 넣던 몸짓을 멈추고, 올린의 허리를 툭툭 쳤다. 이어 말하는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빠져 있었다. 어딘가 아픈 사람처럼 조금 쉰 것 같기도 했다.

“힘 좀, 빼 봐.”

올린은 바들바들 떨면서도 거울을 통해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 또한 자신처럼 숨을 몰아쉬고 있었는데, 그 입가에는 어딘지 어색하게 보이기도 하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사실 그 얼굴은 올린을 당황케 하기 위한 거짓 미소였지만, 그런 것을 알 리 없는 올린은 도련님의 자지가 항문에 물려 몹시 아픈 거라고 생각했다. 가끔 자신이 너무 겁먹거나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손님을 받아야 했을 때 손님들이 가끔 너무 조인다고 불평하긴 했었다. 그건 화송에 있던 다른 애들하고 비교할 때 제 몸이 갖는 가장 큰 단점이었다. 올린은 지나치게 꽉 조여 버리는 나쁜 버릇이 저도 모르게 또 나온 줄로만 알고 바짝 긴장했다. 굵은 것을 문 아래가 더 세게 조여드는 것 같았다.

“도련님 좆 아프잖니.”

올린의 그러한 짐작에 힘을 실어 주려는 듯이, 도련님은 태연히 거짓말을 속삭였다. 올린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자신의 몸을 통해 기쁨을 찾으셔야 할 사용자가 기분 좋기는커녕 아프시다니, 올린은 죄송하고 송구스러워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러나 첫째 도령은 희게 질린 얼굴을 눈여겨보며 조용히 즐거워했다.

아프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그는 어떤 종류의 통증도 느끼지 못한다. 불에 데도, 날카로운 데 베여도, 뼈가 부러져도 어떤 아픔도 모르도록 태어난 것은 결코 축복이 아니다. 통증 없는 삶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그를 무적으로 만들어 주지는 못했다. 도리어 그는 그 선천적인 결핍으로 인해 통증을 느낄 수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선망과 더불어, 고통을 주고 앗는 모든 수단, 특히 약에 대한 집착을 갖게 되었다.

처음 만난 액받이를 상대로, 결코 자신이 느낄 리 없는 아픔을 호소하여 그가 보이는 반응을 관찰하는 것도 그에게는 다소 유치하지만 재미있는 놀이다. 그는 이 새로 온 녀석이 잘못을 빌거나, 몸을 물리거나, 아니면 시답잖은 교태라도 부려 고통을 쾌락으로 바꾸려 노력해 주리라 생각했다. 어느 쪽이든 시시한 반응일 테지만, 마치 고통을 아는 보통 사람인 양 행세해 보는 것은 그 자체로 그에게 가벼운 만족감을 주었다.

그러한 것을 알 리 없는 올린은 아래의 힘을 빼려 부단히 애를 썼다. 도련님은 마치 올린의 긴장을 풀어 주려는 것처럼 양손으로 겨드랑이부터 허리를 부드럽게 쓸어 주고, 몸을 숙여 뒷목에 입을 맞췄다. 조그만 귓바퀴에도 입을 맞추고, 귓구멍을 간지럽히자 목 안쪽에서 으응, 하는 교성이 울렸다.

올린은 살가운 애무에 몸을 뒤틀었지만, 아래의 꽉 물린 데는 쉽게 반응하지 못했다. 그런 식의 다정한 손짓이 너무 낯설었기 때문이다. 보통 이럴 때는 잠시 빼고 날카로운 것으로 아래를 살짝 찢은 후 다시 넣으시면 된다.

애초에 구멍이 조금 빡빡하다고 하여 이렇게 머물러 있을 일도 아니다. 후벼 파 주는 자지에 대한 감사함도 모른 채 버릇없이 힘을 주고 있는 액받이의 구멍이란 한 번쯤 호되게 찢김으로 정신을 차리기도 하는 것이다.

입구를 찢고, 피와 장액을 윤활 삼아 실컷 박고 나면 액받이의 몸이야 만신창이가 되겠지만 올린에게 익숙한 것은 도리어 그런 방식이었다. 한 번 피를 보면 그 이후는 쉽다. 아무는 데 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느리게라도 이 몸은 회복한다. 사용하시는 분이 불편하시지 않도록 하는 게 우선이다.

“도, 련님, 그…그럼, 가, 가, 가위 같은 걸로….”

몹시 당황해서 배운 대로 단정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도련님이 되물었다.

“…가위? 무슨 가위?”

“아니면 칼도, 한 번만, 찢으, 신 다음에 넣으시면….”

“지금 나보고 네 구멍을 찢으라는 거야? 가위나 칼처럼 날 선 것으로?”

“죄, 죄송해요, 아니면 제, 제가 할게요… 가위만 빌리게 해 주시면, 제가….”

첫째 도령의 색 엷은 눈에 즐거운 웃음기가 올랐다. 올린은 지금, 도련님의 고통을 덜기 위해 자신의 몸을 찢어 달라고 요청하고 있었다. 뻑뻑한 구멍을 참지 말고 차라리 찢어 달라는, 더듬대고 떨면서도 담대히 요청하는 이 애의 말은 그에게 기쁨을 주었다. 그러니까, 새 액받이 놈은, 사용자의 작은 통증을 덜기 위해 제 몸의 큰 통증을 자처하는 것이다.

그는 고통을 회피하려는 게 디폴트인 보통의 생명과는 참으로 다른 반응을 보이는 이 새 액받이에 대해 즐거운 호기심을 느꼈다. 그렇다고 이것은 고통을 쾌락으로 인식하고 있지도 않다.

“내가 찢는 거 싫다고 하면?”

그가 묻자, 올린은 거울에 제 정수리를 비비며 중얼댔다.

“어, 어떡하지, 저, 흐으, 아프게, 해 주시면, ….”

올린은 이제 오늘 배운 것 따위는 집어치우고 다시 말을 더듬어 대며 울고 있었다. 수치보다는 미칠 듯한 초조함 때문이었다.

“흑, 젖꼭지, 아 아니 빨통, 잡아, 당겨 주셔도…잘 젖고….”

이전에 있던 곳에서 자주 들었던 단어를 입에 올려 보기도 했다. 도련님의 마음이 동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싫으시면, 엉덩이, 매질하셔도, 젖지만, 젖꼭지를 아프게, 해 주시면…제일…잘….”

자신은 오로지 네 분 도련님께만 봉사하도록 팔린 몸이다. 그중 한 분이 뻑뻑한 구멍에 좆이 끼어 곤란을 겪으시고, 만족하지 못한 채 이대로 나가 버리신다면 자신은 어떻게 될 것인가. 쓸모가 적고 소용되지 못하는 물건에게 남는 길은 하나뿐이다.

그러나 오늘 처음 뵌 도련님은 아무런 학대를 해 주지 않으신다. 찢지도, 때리지도 않는 주인이라니, 그 이상 잔학할 수 없었다.

올린은 애가 탄 나머지 거울을 짚었던 손을 떼고 제 옷의 앞섶을 활짝 벌렸다. 예쁘다고 늘 칭찬받던 하얀 가슴팍 가운데, 매듭실에 단단히 묶여 통통하게 선 유두에 박힌 젖꼭지 마개가 반짝였다. 그는 젖꼭지 마개가 꽂힌 채인 유두를 잡아 꼬집고 유륜 째 뜯어 낼 듯 모질게 잡아당겼다. 그러나 그런 방식의 자해로는 아래가 촉촉해지기는커녕 더욱 빠듯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는 필사적으로 빌었다.

“아프게, 아프게 하면서, 사용하시면 물 나와서, 조금 나으실 거예요….”

이것은 그가 이전에 손님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였다. 맞는 것을 결코 즐길 수 없었건만 몸만은, 어떤 이유인지 매질에 가장 반응했다. 그것도 유두에 대한 학대를 가장 반기는 몸이었다.

그것을 수치도 모르는 몸이라고, 매 맞는 걸 즐거워하는 몸이라고 경멸하는 소리를 들어 왔다. 버림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는 하나 천박하다고 여겨질 만한 제 몸의 특징을 어필이라도 하는 양 읊으며 시연하자니 부끄러움에 머릿속이 윙윙 울렸다.

“그렇구나. 아픈 짓을 당하면 물 많이 나오는구나. 알겠어. 기억해 둘게.”

“네에, 네 도련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너 이름은 뭐니? 뭐라고 불렸어?”

올린은 콧물을 들이마시며 눈을 질끈 감은 채 답했다.

“올린, 이라고 불렸어요….”

애처로운 노심을 잠자코 감상하던 첫째 도령의 손이 가슴팍으로 올라왔다. 아픔으로 인한 이완을 바라며 젖꼭지를 자해하던 손목을 잡아 내렸다. 올린은 곧 이어질 가학에 대비하며 어깨를 굳혔다.

그러나 첫째 도령은 붉게 부푼 유두를 부드럽게 어루만질 뿐이었다. 젖꼭지 마개를 뱅글뱅글 돌리는 아주 기본적인 학대도 없었다. 그저 쓰다듬는 손짓일 뿐인데도 굳었던 어깨는 조금씩 힘을 풀었다.

“올린아.”

그는 뜻 없이 이름을 불러 주며, 다른 손을 더듬어 올린의 앞섶을 쥐었다. 비단 옷자락을 헤치고 안에 든 자지를 쥐기 전에 자지 마개를 뽑아 던지고 밑동의 매듭을 당겨 풀었다. 짜르르, 피가 통하는 감각에 쪼그라들었던 자지가 부르르 떨었다.

“네, 네 도련님, 흐읏.”

그건 올린의 초라하게 구겨졌던 마음이, 도련님의 부르심 한 번에 사르르 펼쳐진 것과도 비슷한 모양이었다. 연하고 보들보들한 것이 손바닥 안에서 기지개를 켜는 것 같은 감촉이었다.

학대당할 때를 제외하고 만져진 경험이 적은 자지는, 조금 쓸어 주고 귀여워해 주자 빠듯이 고개를 들었다. 그 크기가 작지 않고 기세가 당당했다. 휜 곳 없이 곧은 좆대를 만지는 손맛이 좋았다. 그 아래, 결박을 풀어 주지 않아 탱탱하게 무르익은 불알 두 개의 탄력 있는 감촉도 마음에 들었다.

첫째 도령은 본격적으로 자지를 애무하기 전에 올린의 입에 손가락을 넣어 적셨다. 침을 뱉으라고 명령하자 조그만 입이 오물거리다 뾰족한 혀끝으로 조심스럽게 끈적한 것을 내놓았다. 손안이 뻑뻑하여 피부가 쓸릴까 봐 뱉으라고 한 침이 윤활액이 되었다. 아프지 않게 잡고 위아래로 슬슬 쓸다 속도를 조금씩 빨리했다.

잘생기고 보드랍고 따끈따끈한 자지는 고개를 끄덕끄덕, 열심히도 움직였다. 네, 그렇죠, 제가 기다린 건 바로 이겁니다, 하고 그 용두질에 찬성한다는 듯이 세차게 끄덕이는 모양에 첫째 도령은 웃음을 참았다.

올린은 꼭 제 자지의 움직임을 흉내 내듯 고개를 젖혔다 숙이기를 반복하며 쾌락을 견뎠다. 고통을 구걸했더니 돌아온 적선이 이것이었다. 자주 자극받지 않은 곳에서 오르는 열기는 긴장한 몸을 경련케 했다. 늘 남자를 받기만 하는 주제에 마치 어딘가에 삽입하는 듯 미끈거리고 조여지는 감각을 느낄 기회가 주어진 게 황홀했다.

그는 조그맣게 허릿짓을 하다가 우뚝 멈추고 차가운 거울에 기댄 이마를 비볐다. 사정하지 않았는데도 환한 색의 물감 주머니들이 머릿속에 마구잡이로 던져져 팟, 파팟, 터진 것 같았다. 환해지고, 어두워지는 와중에 보이는 색들이 생소하여 아름다웠다.

“으응… 응읏…흐.”

올린의 신경이 그쪽으로 쏠리자 구멍이 풀어졌다. 빨통도, 볼기도 매질 당하지 않았는데 장액이 배어 나오기 시작하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 자지를 끊어 먹을 듯 꽈악 붙잡던 항문의 충혈이 조금 옅어지고 조금씩 미끈대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자마자 첫째 도령은 구멍의 가장 깊은 곳으로 진입했다.

“올린아, 이제 도련님 안 아파. 올린이는 아프니?”

“아니요, 도련님, 아하아- 아아, 니요.”

푹, 푹, 찍어 누르듯 하는 몸짓은 이제 다소의 과감이 연한 살을 찢지 않을 것을 알았다. 쑤시고 돌리고, 다시 젖어 들길 기다렸다가 찍어 누르는 행위가 섬세하나 거침없었다.

발딱 일어선 올린의 좆에서도 장액과 닮은 끈적한 액체가 질질 흘렀다. 남자의 손이 사정을 방지해 주기 위해 조그만 구멍을 막은 채 부드럽게 마사지했다. 그러면서도 항문에 대한 자지의 침범은 그치지 않았다.

이제 완전히 교합한 둘의 몸은 잠시 멈추었다. 남자의 음모가 올린의 엉덩이를 헤집듯 비볐다. 잠시 숨 돌리는 시간 후에는, 드디어 시작되었다. 찌걱, 쭈압, 하고 축축한 소리가 두 사람의 귓가를 달궜다.

올린은 안쪽 도톰한 곳을 은근히 문지르며 빠져나간 자지가 다시 힘차게 항문을 뚫는 감각을 마음껏 누렸다. 버거움과 함께 뛰기 시작한 열락에 점점 벌어지는 입을 의식하지도 못했다. 동그랗게 열린 입술 사이로 아까운 침이 주르르 흘렀다.

서두르는 기색 없이 시작된 왕복 운동은 조금씩 빨라졌다. 구멍에 좆이 끼어 옴짝달싹 못 하던 일이 언제 있었는가 싶도록 부드러운 움직임이었다. 움직임이 계속될수록, 몸은 흠씬 젖었다. 한껏 벌어졌다.

굵은 것이 들락거리며 거센 쾌락을 선사했다. 그리고 그 난폭한 기쁨은 짓이겨지고 벌어지고 긁히는 시간이 계속될수록 점점 높아져서는, 마침내 발가락이 곱아들고 허리가 뒤로 한껏 젖혀질 정도로 고조된 희열로 폭발했다.

사정하지 않도록 좆구멍이 남자의 손가락으로 막힌 채, 싸지 않고도 느낄 수 있는 최대한의 오르가슴에 도달한 올린의 몸이 부들부들 떨었다. 발작하듯 뒤집히는 눈동자와 발갛게 달아오른 뺨을 거울을 통해 관찰하던 첫째 도령도, 몇 번의 세찬 허릿짓을 더 한 끝에

“크흐,읏!”

하고 낮게 신음하며 사정했다.

오로지 보는 사람들의 즐거움을 위해 잘 단련된 날씬하고 아름다운 몸 안에 정액이 쏟아졌다. 쿠르륵, 하고 용암 같은 게 쏟아져 막힌 벽을 녹이고 뚫어 버리는 환각이 올린의 배꼽 근처를 울렸다. 녹진한 장 안쪽을 채우고 꽉 물린 교합점 사이로 질금질금 샐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뜨거운 액체가 쏟아부어지는 압박에 멍 위로 습포 붙은 엉덩이가 요란스럽게도 뒤흔들렸다. 그 엉덩이 안쪽으로, 오줌 방울 털어 내듯 탈, 탈, 탈, 마지막 한 방울의 정액까지 털어 낸 남자의 자지가 들어올 때와는 달리 수월하게도 빠져나갔다.

눈을 감고 사정의 여운을 만끽하듯 크게 숨을 들이쉰 첫째 도령은, 이내 다소 식은 표정으로 눈을 떴다. 자지에 묻은 것을 닦을 데가 없어 액받이의 비단 옷자락을 들어 닦았다. 올린은 아직 침 떨어지는 혀를 길게 내민 채, 옷자락을 잡느라 스친 남자의 손에도 불쑥불쑥 몸이 튈 정도로 끈질긴 열락에 갇혀 있었다.

지퍼를 올렸다. 바닥에 내려놓았던 안경을 도로 쓰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조금 흐트러진 머리를 정돈했다. 방에 들어올 때와 다름없는 모습이 되어 바닥에 널브러진 채 눈이 풀려 경련하는 몸을 내려다보는 눈은 조금 전과는 달랐다. 호기심이나 흥미가 아주 가셨다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 필요 없이 된 것을 조금쯤 성가셔하며 내려다보는 것 같은 눈이었다.

그런 것을 모르는 올린은 전력을 다해 달렸던 사람처럼 헐떡였다. 훈육실 안의 공기는 아직도 찼다.

그는 한동안 절정의 여운에 홀로 허리를 들썩이다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바닥을 짚으며 상체를 일으켰다. 예민한 액받이의 몸은 정사의 여운이 남아 주섬주섬 옷자락을 끌어내려 벗은 아래를 가리는 동안에도 파특대며 얕게 튀었다.

거울에 이마를 대고 꿇어앉았다. 그러면서 조금 전까지 자신과 정사를 나누던 남자의 그림자를 찾으려 지친 눈을 굴렸다.

이미 훈육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올린, 저 혼자였다. 화장실을 사용한 사람이 냄새 나는 곳에 오래 머무를 일 없듯 액받이를 사용한 남자는 이미 떠났다. 서두르지도 않고 당연하게 걸어 나가는 발소리를 듣지 못한 건 잔뜩 들떠 쾌락에 잠겨 있던 올린의 잘못이었다.

삽입할 때의 다정은 참 잔인한 것이었다. 곁에 있던 온기가 그새 그리웠다. 주제넘게도 마음이 허하고 서운했다. 사람 아니라 물건이라서, 사용된 후에는 홀로 남겨지는 게 당연하건만. 올린은 엉뚱하고도 사치스러운 감정을 다스리려 눈을 꾸욱 감았다. 그리고 문이 열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들어온 사람은 조교였다.

“교육 재개합니다.”

사무적인 목소리다. 첫째 도령은 볼일을 마치고 떠나기 전, 대기하던 조교에게 액받이의 교육에 대해 지시할 여유까지 있었던 모양이었다. 올린은 자꾸만 넘실대는 서러움을 삼키면서도 어떻게든 굼뜬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애썼다.

무릎걸음으로 기듯이 걸어 조교의 앞까지 도달한 그는 벌어진 옷깃을 여미고 허리띠의 매듭을 바로 했다. 자지를 다시 동여매어 속옷의 매무새를 바로잡으려고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아 흐트러진 채로, 그는 무릎을 꿇고 정좌했다. 남자에게 안긴 직후라 색기가 짙게 남은 얼굴이 몽롱함과 두려움을 함께 담은 채 조교를 올려 보았다.

조교는 회초리와 함께 들고 온 은접시를 올린의 앞에 내려놓은 후 발로 슥 밀어 주었다. 물수건이 놓여 있었다.

“아래를 닦고, 딜도 포함하여 속옷 제대로 갖춰 입습니다. 교육 중에 정액을 흘리면 자세 불량으로 간주합니다.”

올린은 당황하여 떨리는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5분 후 신체검사와 복장 검사 있겠습니다.”

제한 시간은 5분이다. 그 안에 몸을 닦지 못하면, 배운 대로 자지를 꽁꽁 동여매지 못하면, 바닥을 구르는 옥 딜도를 찾아 항문에 쑤셔 넣지 못하면, 매서운 회초리질을 당할 것이다. 손바닥을 맞는 것은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을 만치 촘촘한 통증을 주기에 더욱 무서웠다.

올린은 반나절 만에 배운 공포로 얼른 물수건을 잡았다. 수건은 잡은 손이 놀랄 정도로 차게 식어 있었다.

무릎 꿇은 채 뒤처리하는 것이 어려웠다. 옷자락을 걷고 쪼그리고 앉았다. 마른 다리 사이로 느리게 흘러내리는 정액을 차가운 물수건으로 막다시피 얼른 눌러 닦고, 손톱을 세워 얕은 곳조차 긁어냈다. 덩어리진 채 떨어지는 것을 깨끗이 닦기에 주어진 물수건 한 장은 충분하지 않았다. 다리 사이에 끈적한 얼룩이 남았다.

무릎걸음으로 기어 옥 딜도를 찾아왔다. 다리 사이로 가져가는 손이 떨었다. 뜨거운 남자를 담았던 구멍에 얼음처럼 찬 것을 밀어 넣었다. 시린 기운이 배 속을 채웠다.

조금 전까지의 일이 꿈인 듯, 혹은 지금 꿈을 꾸는 듯 사방이 아득했다. 찢는 대신 참아 주던 표정이, 신경 쓴다는 듯 쓰다듬던 손길이, 올린아, 하고 좋아하는 사람 이름 부르듯 달게 부르던 목소리가 까마득했다.

자지를 애무당하기 위해 풀렸던 비단 끈을 제 손으로 도로 감았다. 동여매고 매듭짓는 손이 자꾸만 헛손질했다. 고용인이 할 때는 이렇지 않았는데, 무엇을 잘못했는지 자꾸만 흘러내리고 끌러졌다. 아, 아, 안타까운 당황의 탄식이 목 안에 울었다.

배운 것도 잊은 까닭은 매질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분에 넘쳤던 온기에 대한 그리움의 탓도 없지는 않았다. 애쓰다 못해 흐흑, 하고 흐느낌이 터져 나왔다. 아무 이유 없이 우는 것을 야단맞을까 봐 풀죽은 제 자지를 움켜잡은 채 어깨로 서둘러 눈물을 훔쳐 내는 꼴이 초라했다.

5분은 짧지 않은 시간이다. 그 시간 안에 단정한 몸가짐을 갖추지 못한 것은 도련님의 쾌락에만 집중해야 할 액받이가, 되먹지 못하게도 정사의 기쁨에 취해 버린 탓이었다. 쪼그려 앉은 액받이 앞에 조교의 발이 다가왔다. 올린은 제 비속함을 반성하며 무릎을 꿇었다. 흐트러진 옷매무새 사이로 드러난 하얀 몸이 벌벌 떨었다.

회초리 끝이 흐트러진 옷깃을, 묶이다 만 자지를, 아직도 쾌감의 여운에 벌떡이는 아랫배를 쿡 쿡 찌르며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뺨을 툭, 친 회초리가 턱을 들어 올렸다. 올린은 한 마디의 질타가 끝날 때마다 용서를 구하고 벌을 청하다가, 턱이 올려지며 들은 질문에는 말문이 막혀 입을 다물었다.

“지금 도대체 왜 우는 겁니까.”

대답이 궁했다. 정말이지 모를 일이었다.

손바닥을 높이 올렸다. 남자가 쑤셔 준 아래는 차가운 것을 담고도 아직 뜨거운 기억을 잃지 않았다. 공손히 포갠 발바닥으로 벌름거리는 엉덩이 사이를 눌러 막은 채 회초리를 기다리는 시간은 길고 길게 느껴졌다. 오랫동안 뜸을 들이던 첫 매가 떨어졌다. 달았던 교합 끝에 맞는 매는 이전의 것보다 조금 더 아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