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민지욱은 주형과 닮은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얼굴도, 몸도, 성격도. 다 달랐다. 치기 어린 눈동자라도 닮았나 싶었는데 그런 것도 아니었으며 그냥 흐리멍덩한 생선 눈깔 같았다. 그도 아니라면 양산형으로 못생겼다고 해야 할까. 재연은 그런 인상을 가졌다.
지욱을 묶어 두고, 그 앞에 나란히 앉았다. 다리를 조신하게 모으고 한 손으로는 알루미늄 파이프를 들었다. 쇠 파이프는 너무 둔탁한 소리가 나서 아주 잘못된 짓을 하고 있는 게 느껴졌던 반면, 알루미늄은 금세 찌그러지거나 가벼운 소리를 내기 때문에 별로 죄악감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연은 그런 사사로운 감정을 별로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기분이 한창 안 좋을 때였다. 이미 지욱의 십자인대를 부러뜨릴 심산으로 힘을 조절하지 않고 다리에 손을 댔다. 그러니 지욱은 미칠 듯 타오르는 감각을 느끼면서도 정신을 놓지 않았다. 어디까지 버티는지 보고 싶어서, 가만히 있으니 주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자마자 파이프를 툭 놓았더니 깔끔하고 무서운 소리가 났다. 재연은 주형이 들었을까 조금 염려했지만, 딱히 그럴 건 없는 듯했다. 주형은 섹스를 하자고 했다. 그게 너무 좋아서 실실 웃음이 났다. 아래도 흥분한 게 느껴졌다.
“사랑해요.”
재연이 사랑에 빠진 소년의 얼굴을 한 채 부드럽게 웃었다. 주형에게서 들려오는 모든 목소리가 좋았다. 그를 위해서라면 역시 이런 짓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니트릴 장갑에 피가 조금 묻더라도, 구두에 더러운 오물이 닿더라도. 재연은 전화를 끊고 주형의 형인 지욱을 바라봤다.
밧줄과 테이프, 2중으로 묶어 놓자 꽤 볼만한 광경이 펼쳐졌다. 재연은 몸을 늘어뜨린 채 헉헉거리고 있는 지욱을 바라봤다. 차가운 눈동자가 아래를 향했다.
“기밀이라고, 했잖아요. 그냥…… 이, 이사님이랑, 나만 알자고. 근데 왜 갑자기 와서 이럽니까?”
재연이 손을 옆으로 뻗었다. 지욱은 혹여나 그가 또다시 파이프를 휘두를까 겁이 났는지 말을 하지도 못하고 흠칫 떨었다. 다만 손을 뻗은 건 담배에 불을 붙이기 위함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칙 하는 소리와 동시에 그의 담배 끝에 불이 붙었다. 얕게 타오르는 소리가 공허한 자리에 울렸다.
“걔 빚으로…… 내, 동생 빚으로 되어 있잖아요. 주형, 윽!”
자리에서 일어나 지욱의 배를 걷어찼다. 와장창! 격한 소리와 동시에 그가 뒤로 넘어갔다. 그러나 몸이 묶여 있어 어떤 방어도 할 수 없었다.
먼지가 부옇게 일어났다. 하필 장소를 골라도 먼지가 많은 곳이라 검은색 구두에 먼지가 확 끼쳤다. 재연의 기분이 확 나빠졌다. 그렇게 그가 바닥에 뒹굴도록 방관하고 있자, 안 그래도 몸에 멍이 잔뜩 들어 있어 괴로워하던 지욱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괴로운 신음이 거칠게 울렸다.
“주형 형한테 사과할 거 없어요?”
“아까부터 그러시는데 정말, 전 사과할 만한 건 딱히 없습니다! 저는 주형이를 구하, 구하려고 돈을 빌린 거라고요. 저희 집안이 다 망했는데, 저까지 명의가 잘못되면 아무것도 못 하지 않습니까!”
“…….”
“주형이가 그나마 물정을 좀 알고, 그러니까 걔 명의를 쓴 겁니다. 걔가 차라리 그게 낫다고요. 덩, 덩치도 있어서 놈들도 어떻게 못 할 거 아닙니까?!”
그래서, 자신보다는 주형이 명의를 희생하는 게 나아 보여서 그의 명의로 사업을 하고 돈을 빌렸다는 건가. 재연은 기가 찼다.
“아아, 덩치.”
그런 중에도 재연은 주형의 몸을 생각하며 엷게 웃었다. 여러모로 지욱은 웃음을 많이 주는 인물이었다.
“그, 렇죠. 이, 이사님도 아시다시피 주형이 몸이……!”
“맛있더라고요.”
“예……?”
무슨 대답을 해도 이상해질 것 같았다. 지욱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어떻게 할 줄 몰랐다. 뭐, 이런 건 닮았네. 주형이었어도 이렇게 눈을 끔뻑이며 당황했을 테니까. 그래서 재연은 그냥 지욱을 죽이지 않고 조금만 더 손을 본 뒤 보내줄까 싶었다.
하지만 무덤을 판 건 지욱이었다.
“아무튼, 주형이도 동의했을 겁니다! 분명, 형이 했다고 해도 용서할 놈이라고요. 주형이는, 그럴 수 있어요. 걔, 걔는 워낙 착하니까……!”
재연은 주형의 어릴 때를 안다. 지욱은 타겟이 되지 않았다. 주형만 오롯하게 학대를 당했다. 그런 놈이 이제는 커서 이런 꼴이라니. 우습고 기분이 좆같았다. 주형의 탓을 하다니. 책임은 없다는 듯이 저렇게 뻔뻔하게. 재연의 목울대가 꿈틀거렸다.
“진짜 좆같아서 못 듣겠네.”
재연은 발을 움직여 힘을 실어 그의 목을 콱 짓눌렀다.
“아악!”
주형의 순박한 얼굴이 생각나서 기분이 확 나빠졌다. 뒤에서 가만히 있기만 했던 방관자가 하는 말이 ‘걔는 착하니까’라니. 이렇게까지 죽여도 될 만한 이유를 스스로 나불댈 줄은 몰랐다. 재연은 발을 움직여 그의 발을 밟아버렸다. 그리고 파이프로 그의 배를 콱 찍어눌렀다. 그러자 컥, 하는 소리와 동시에 몸이 벌벌 떨렸다.
흠칫 놀라 피로 물든 입술을 벌려, 지욱은 울부짖으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주형이, 주, 주형이 못 믿으십니까! 차라리 걔한테 가서 이런……!”
“뭐?”
재연이 눈을 부릅떴다. 살다 살다 추심을 안 해 본 건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새끼는 처음이라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재연은 저벅저벅 부하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놀라 잔뜩 굳은 부하의 셔츠 안에 있는 칼을 꺼내 왔다. 스윽, 하고 선득한 소리를 냈다. 아마 관리를 잘해 둔 건지 녹슨 부분도 없다.
“이건 사 줄 테니 나한테 넘겨.”
“아, 안 사 주셔도, 됩니다.”
부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재연은 대답하지 않고 지욱에게 재차 다가갔다. 또각, 또각 연신 급한 소리가 났다. 그는 진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주형과 섹스를 할 때와는 다른 감각으로 그의 심장이 덜컹거리고 있었다.
그럴 사이 지욱은 지렁이처럼 바닥을 기고 있었다. 재연은 그런 지욱의 위에 올라탔다. 딱딱한 구두 굽으로 그의 등을 콱 짓밟자 지욱이 크윽, 하고 울음소리를 냈다. 재연은 눈을 부릅뜨고 칼을 바닥으로 콱 꽂았다. 지욱의 팔 바로 옆을 스친 칼날이 서느렇게 반짝거렸다.
“할 말이 그것뿐입니까?”
“나보다는 주형이가, 훨씬 낫…… 아악!”
지욱의 팔뚝에 칼이 꽂혔다. 일부러 고통을 많이 느끼라는 심산으로 느긋하게 빼내자 지욱이 온몸을 꿈틀거렸다. 미친 사람처럼 경기를 일으키는 모습을 본 재연이 킥킥 웃었다.
“형은, 이것보다 더 아팠어요.”
알아? 재연이 주형을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다. 내내 방관했던 지욱을 생각하니 머리가 터질 듯 화가 났다. 주형을 두고 배신만 하지 않았더라도, 성인이 되고 나서 뛰쳐 나가서는 좆같은 사업자 행세를 하지만 않았어도 이렇게까지 고문을 하진 않았을 텐데.
“대답.”
재연은 칼을 쑥 빼내서 지욱의 약지에 칼날을 가져다 댔다. 지욱은 무서워진 나머지 눈물과 콧물을 질질 흘렸다. 이미 축축하게 젖은 그의 아랫도리에서 역한 냄새가 났다.
“이사님이, 빌리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도, 도와준다고 하면서!”
재연은 씨발, 하고 거칠게 화를 내며 힘을 주어 살갗을 뚫었다. 약지의 뼈를 뚫고 잔인하게 피가 질질 터져 나왔다. 동시에 손가락을 조각조각 늘어뜨린 지욱은 두려운 나머지 그대로 기절했다.
그 목소리를 끝으로 알 수 없는 괴음이 그 공간을 채웠다. 재연은 잴 것도 없이 곁에 뒹굴고 있던 파이프를 재차 잡고 휘둘러 그의 얼굴을 내리쳤기 때문이다. 일그러진 머리를 몇 번이나 더 밟자 피가 구두에 묻어나왔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벗겨진 피부와 시뻘겋게 물든 피가 비닐 위로 줄줄 흘렀다.
“……내가 빌리라고 한 건 맞지만.”
주형이 형을 화나게 한 건 내가 아니잖아요. 재연이 그리 중얼거리며 쓰레기 같은 시체를 구두 앞코로 툭툭 건드렸다. 아마 숨이 끊어진 것 같았다. 이내 담배를 쪽 빨아들였다가 후, 하고 숨을 내보냈다. 뿌연 연기가 시체를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다시 보니 화가 났다. 재연은 담배를 끊어 버릴 기세로 세게 악물고 재차 칼을 휘둘렀다. 정상적인 생각 따위는 할 수 없는 듯 재연이 광기 어린 살인을 행했다. 화가 났다.
이때까지 맞고 살아온 주형에게 그런 책임까지 떠넘기다니. 일말의 양심조차 없는 건가. 그는 주형에게 감정 이입을 하고 있었다. 주형이 그렇게 맞고 살아왔는데도 자신은 이렇게 희희낙락 사업을 하겠다고 하고, 빚조차 갚지 않고 다녔다니. 재연은 이때까지 민지욱이 납부한 이자가 한 푼도 되지 않는다는 데에 분노했다.
아비라는 놈이 가장 원흉이긴 하지만 이미 뒈져 버렸으니 어쩔 수 없었다. 살아 있었다면 똑같은 방식으로 좀 더 고통스럽게 살해했을 거다. 재연은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씨발, 어딜, 책임을 전가해.“
재연은 단어를 하나하나 말할 때마다 칼을 휘둘렀다. 그러자 뱃가죽에서 피가 팍 터져 나왔다. 그런 광경을 만든 장본인임에도 재연은 무서움 따위 없어 보였다. 놀랍게도 이 공간에서 가장 이질적인 사람이었다.
“빌린 새끼가 갚아야지, 돈은.“
쑥 깊은 곳까지 칼을 집어넣어 비틀어 손을 빼내자 우르르, 내장이 튀어나왔다. 누가 보아도 소름이 끼칠 만큼 잔인한 방식의 살인이었다. 부하 중 몇몇은 역한 광경에 결국 도망을 치고 말았다. 재연은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후두둑 떨어진 핏물을 확 걷어찼다. 이제 지욱의 몸은 고깃덩어리, 혹은 핏덩어리에 가까웠다.
“아, 씨발…….“
쓸 곳도 없는 새끼. 무언가 떠오른 듯 재연은 미간을 더욱 찌그러뜨렸다. 이윽고 제가 함부로 난도질해서 모두 다 튀어나온 내장을 밟으며 시체에서 멀어졌다. 꾸직, 하고 섬뜩한 소리가 났다. 재연은 그런 처참한 광경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저거, 팔 곳 없나?“
턱 짓을 하며 담배 연기를 뱉어 냈다. 부하는 흠칫 떨며 말했다. 아마 장기를 어디 넘길 곳이 없냐는 말인 듯했다. 부하는 위축된 목소리로 말했다. 끔찍한 피 냄새가 사방에 진동했다.
“아마…… 시체 훼손이 심해서……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래?“
재연은 가만히 제 등 뒤의 핏덩어리를 바라봤다.
“쟤 아직 안 죽었는데.“
시체라니, 섭하네. 재연이 입꼬리를 들어 올린 채 말했다. 방금 범죄를 저지르고 난 사람치고는 너무도 말끔한 얼굴이었다. 그는 평소처럼 가붓하고 아름다운 낯으로 미소 짓고 있었다.
여전히 지욱의 몸이 아주 얕게 꾸물거리는 걸 보아 살아 있는 것 같았다. 그러자 부하가 고개를 푹 숙이며 사과했다.
“죄, 죄송합니다…….”
“그래.”
장기매매 말고 인신매매 처는 없냐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자꾸 보다 보니 그냥 짜증이 났다. 그는 슬슬 버러지가 몰릴 듯해 기분이 더욱 나빠졌는지 그냥 턱짓으로 얼른 비닐에 싸서 버리라고 명령했다. 상처를 손봐서 살아날 수 있는 단계였다면 상처를 치료해 준 다음 다시 상처를 잡아 째 난도질을 하려고 했으나, 생각해 보니 그건 영 번거로운 일이라 포기했다.
진한 담배 연기와 피 냄새가 우중충한 하늘 아래 밴 것 같았다. 주형과 데이트를 할 예정인데 그럴 수는 없었다. 재연은 여섯 시까지 맞추어 갈 수 있도록 그렇게 노력했었다. 물론 조금 늦어서 예상치 못하게 아이스크림이 다 녹아버리긴 했지만 말이다.
재연은 그랬던 어제를 회상하며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떴다.
지욱에게 돈을 빌려준 건 사실 고의였다. 놈이 주형의 명의로 사업을 하고 있었고, 그 사업에 망조가 깃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은 놈이 이리저리 사채를 알아보고 있을 때 손을 내밀었더니 금세 덥석 물었다.
그 뒤는 쉬웠다. 조금만 부추겼더니 금세 계획에 응해 주었다. 주형의 사정도 알고 있다며 넌지시 말하니 신나서 떠들어대고는, 결국 한두 푼씩 빌려 갔다. 중간중간에 사업을 할 땐 돈과 위험 감수도 필요하다는 감언이설을 해 주었더니 아주 신이 나 빌려 갔지. 주형의 이름으로 말이다. 그러더니, 마지막에는 1억을 빌렸다. 그게 지욱의 장례식 비용이나 다름없었다. 장례식 전 마지막 호사라고 해야 할까.
사실 재연은 당연히 회수하지 못할 금액임은 알고 있었다. 그따위로 사업을 하는 놈에게 돈을 빌려주고 기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웠으니까. 그러나 주형을 위해서라면 아무렴 괜찮았다. 지욱을 제거하기 위한 빌미로 주형을 이용한 게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아무렴 잘 해결되었으니 상관없었다. 그 대가로 주형은 자유로워졌고, 자신은 주형을 얻었다.
꽤 완벽한 나락이었다고, 재연이 주형의 몸을 껴안은 채 생각했다. 보드라운 살냄새를 가득 맡아 보는 그는 그런 악행 따위는 모르는 듯 순진한 낯을 하고 있었다. 늘 그랬듯 주형과 함께라면 모든 게 순조로웠다.
재연은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며 주형의 등에 얼굴을 묻었다. 꼬물거리며 그의 살냄새를 들이켰다. 작게 움직였더니 여전히 구멍 안에 들어가 있는 좆이 질척거리는 소리를 냈다. 미안스럽게도 주형을 씻겨 주지는 못했다. 이제는 슬슬 일어날까 싶었지만 주형과 더욱 붙어 있고 싶어서, 이렇게 내내 넣고 있는 게 좋아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형이 놀라면 좋겠다.’
그렇게 질색하는 얼굴이 어찌나 귀여운지. 재연은 그 얼굴을 기대하며 일부러 더욱 치댔다. 깨우지는 않고 얕게 허리를 흔들었더니 주형에게서 흐응, 하는 사랑스러운 신음이 흘렀다. 그렇게 파렴치한 짓을 반복하고 있을 때였다. 작게 진동이 울렸다.
날카로운 눈길로 곁을 돌아보니 무시할 수 없는 번호가 찍혀 있었다. 재연은 한순간 화가 났다. 매우. 이렇게 달콤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방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니. 그는 쯧, 하고 혀를 차며 천천히 허리를 뺐다. 마지막으로 구멍을 맛보듯 느긋하게 빼자 쑥 자지가 딸려 나오며 정액을 줄줄 뱉어냈다. 원래 안에 고여 있던 액인 모양이다.
‘……잘 담고 있었네.’
이렇게 오래 넣고 있었으니 정말 착상이라도 되었겠는걸. 야한 생각을 하니 금세 또 기분이 풀렸다. 재연은 가운을 여미고 베란다로 나갔다. 그래도 아쉬운 건 당연했다. 정말로 좆집 같아서 꽤 기분 좋았는데 말이다.
담뱃갑과 라이터를 한 손에 들고, 베란다에 있는 의자에 앉아 전화를 받았다. 꽤 늦은 수신이었지만 상대에게서는 질책 따윈 없었다.
“여보세요.”
-예, 이사님. 이른 아침 죄송합니다. 긴급한 소식이 있어 전화 드렸습니다.
“괜찮아요. 무슨 일인가요?”
담배를 입에 물었다. 송곳니로 얕게 담배를 물고 지포 라이터를 열어 불을 능숙하게 붙였다. 어깨와 귀 사이에 휴대폰을 끼우고 눈을 내리깔자 그에게서는 알 수 없이 처연한 분위기가 풍겼다. 말간 낯이 파노라마처럼 천천히 변했다.
-회장님께서…… 쓰러지셨습니다.
재연은 오늘의 일기 예보를 들은 사람처럼 여상하게 담배를 쪽 빨아들였다. 그리고 볼우물이 쏙 들어가도록 담배를 즐겁게 빤 뒤에는 푸, 내뱉었다. 이윽고 딱 한 마디를 했다. 다리를 바꾸어 꼬고 꼿꼿하게 허리를 세우자 마치 호수 위 백조 같았다.
“저런.”
놀랍지 않았다. 이미 예정된 수순이었다. 고혈압과 고지혈증이 있는 양반에게 혈압 상승을 유도하는 약을 먹였으니 당연히 쓰러질 거다. 아마 그 여자가 잘 해냈나 보다. 역시 돈만 보고 만난 사이는 다르다니까. 형이랑 나처럼 사랑을 해야지. 뻔뻔하게 속으로 읊조린 재연은 상대방에게 말했다.
“곧 가겠습니다. 오늘 중으로 병원에 방문하죠.”
-알겠습니다. 연락처와 주소는 문자로 전송해 두겠습니다.
“그래요.”
-네, 이만 들어가 보십시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재연이 전화를 뚝 끊었다. 그리고 후련한 손길로 휴대폰을 테이블에 탁 내려두었다. 차가운 유리창과 액정이 부딪혀서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재연은 그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이른 새벽을 감싸고 있는 먹구름을 바라봤다.
오늘은 날씨가 딱히 좋지는 않나 보다. 누구 하나가 죽어도 별로 이상하지 않을 듯했다. 재연은 그런 날씨라고 하면 또 납득이 간다고 생각하면서, 그 허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뿌연 먼지가 가득하다. 여러 명도를 가진 회색이 아래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광경은 참으로 무미건조했다. 재연은 그보다도 더욱 메마른 얼굴로 더운 숨을 뱉었다.
그렇게 담배의 맛이 다 떨어질 때까지 빨고 있자,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베란다의 문을 제대로 닫지 않았더니 추웠나 보다. 재연은 이런, 하고 중얼거리며 얼른 담뱃재를 털어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형.”
“……아아.”
잠긴 목소리를 겨우 냈다. 목이 쉰 건 아니지만 껄끄러운 게 역시 무리를 해서 그런 게 틀림없었다.
“지금 몇 시입니까?”
“일곱 시. 더 자요.”
“그래야겠습니다…….”
힘없이 대답하며 다시 제대로 누워 자려고 했다. 그런 순간 재연이 폭 안겨왔다. 이불을 제대로 헤치지도 않고 몸이 앞서서 무작정 들이대고 있었다. 이불 위를 묵직하게 짓누른 몸이 주형에게 달라붙었다.
“형, 추워요.”
“문이나 닫고 춥다고 하든지.”
훤히 열린 베란다 문에서 차가운 바람이 솔솔 들어오고 있었다. 선선하고 시원해서 좋았지만 계속 열어두면 정말로 추워질 것 같았다.
“앗.”
재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얼른 문을 닫고 왔다. 그리고 아직도 추운 것 같다며 별로 춥지도 않은데 내숭을 부렸다. 어여쁜 얼굴로 품에 파고드니 주형도 싫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예, 하고 무뚝뚝하게 말하며 재연의 머리를 살포시 감싸 주었다. 이번에는 이불도 덮었다.
“이러고 있으니까 부부 같다, 그렇죠?”
“참, 나. 조그만 게 무슨 부부 타령입니까.”
주형은 이상하게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서 말했다. 그의 눈에는 여전히 조그맣고 우스운 꼬맹이였는데 어느새 이렇게 커다랗게 다가와 저를 잡아먹는다는 생각을 하기 어려웠다. 비몽사몽한 가운데에서도 반짝거리는 얼굴을 본 주형이 입술을 삐죽거렸다.
몸이 화했다. 욱신거리는 몸뚱이를 겨우 다시 눕히자 재연이 팔꿈치를 침대 바닥에 대고 옆으로 누웠다. 저보다 위에서 다정하게 내려다보이는 시선에서는 꿀이 떨어질 듯 달콤했다. 뭐, 이렇게…… 되는 거라면, 부부라는 이야기도 썩 나쁘지는 않지. 부부.
‘보통 부부가 이러니까.’
젊은 부부라면 이렇게 달콤한 밀월을 맞이하고 살갗을 비비면서 웃고 신음하는 게 어울렸다. 부엌에서도 즐거운 말소리가 끊이지 않는다든가, 그런 것.
생각해 보면 재연과 함께했던 나날이었다. 주형은 새삼스럽게 자각하자 또 얼굴이 뜨거워졌다.
“아직도 내가 작아요? 더 커져야 해요?”
“예.”
“얼마나요? 뭐가 작아요? 키? 자지? 가슴?”
재연이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꼬치꼬치 캐물으며 저를 심문하는 듯한 자세에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아, 그, 그게 아니라.”
“그럼?”
“장, 장난입니다. 뭘…… 그렇게, 진지하게.”
재연은 이상한 데에서 아주 민감했다. 주형은 그런 재연의 감수성을 따라갈 수가 없어서 지금처럼 어버버, 우물거리곤 했다.
“형이랑 결혼하고 싶어서 하루에 네 끼 먹으면서 매일 영양제도 먹고, 운동도 하고 우유도 마셨단 말이에요.”
다행히도 잘 커서 주사는 맞지 않았다. 애초에 유전자를 준 부모가 키가 컸으니 당연한 일이라고, 의사들은 입을 모아 키가 당장 작다고 호소하는 재연에게 말했다.
“지독한 놈.”
주형의 눈이 가늘게 변했다. 괜히 기분이 나쁜 것처럼 가자미눈을 하고 있지만 재연은 이제 알았다. 처음에는 정말로 싫어하는 건가 싶어 아주 기분이 나빴는데 그냥 그의 앙탈에 가까운 표현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안심하고 주형을 안을 수 있었다.
“……가상하네.”
주형이 손을 천천히 들어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 부스스하지만 그럼에도 잘 어울리는 까만 머리칼이 손바닥에 닿았다. 예나 지금이나 기분 좋은 감촉이 가득하다. 그렇게 있으니 재연이 주형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사심이 잔뜩 묻어 나오는 머리통이 그의 가슴을 간질였다.
“나는 형이랑 이러기를 몇 년이나 기다렸어요.”
이제는 이게 농담이 아니라는 걸 안다. 그래서 비웃지 않고 가만히 들었다.
“그래서 형이 나랑 있다는 게 꿈만 같아요…….”
“…….”
“어떡하면 좋을지 모르겠네.”
재연은 정말 제게만 들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모든 적이 사라지고 완벽함과 주형만 남은 제 세계가 황홀해서 몽롱했다.
“이사님처럼 뻔뻔한 새끼는 태어나서 처음 봅니다.”
분위기를 확 깨는 말이었지만 정말 어쩔 수 없었다. 주형은 껌딱지처럼 달라붙어 있는 재연의 몸을 느끼며 그의 가슴과 어깨를 꾹꾹 밀어냈다.
“응?”
“좆 세워 놓고 모른다고, 내숭 피우고 있는 겁니까? 어떡하고 싶은지 너무 티 납니다.”
“그래요?”
“웃어?”
그러니 재연이 더욱 벙글거리며 웃었다. 뭐 그런 걸로 그렇게 성을 내냐는 듯 생글생글 미소 짓고 있었다. 주형은 절대로 그냥 넘길 수 없었다. 그래서 그를 밀어내고 꾸역꾸역 일어서서 팔짱을 꼈다. 그런 와중에 허리가 삐걱거리는 것 같아서 아주 괴로웠다. 자존심을 위해 아무렇지 않은 척 삐뚜름하게 재연을 내려다보자 그의 다리 사이로 기둥이 보였다. 가운이 얇은 탓인지 굴곡이 선명했다.
“저 좋다면서요.”
“응.”
“근데 이렇게 만들어 놓습니까? 시발, 무슨 입으로 부항 뜨는 거도 아니고!”
윤재연과 하는 섹스도 이제는 제법 적응이 됐다. 어젯밤처럼 짐승 같은 짓을 해도 별로 놀랍지 않다. 안에 피가 난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아래가 욱신거리긴 하지만 아주 싫진 않다. 그러고는 유혹인지 증명인지 모를 행동을 하며 뒷덜미를 보여주고, 팔을 보여주었다.
‘위험한데.’
이 모습 좀 보라며 가슴도 슬쩍 까 본다. 역시 주형은 제 몸이 얼마나 음란한지, 제가 주형을 가지고 어떤 짓을 하고 싶은지 모르는 게 틀림없었다.
재연의 아랫도리가 꿈틀거렸다. 울긋불긋 예쁘게 꽃봉오리가 날아다니는 것만 같았다. 살짝 까무잡잡한 피부에 있는 불그스름한 자국이 이렇게 어여쁠 줄은 몰랐다. 주형은 입으로 부항을 뜬다느니 그런 우스운 표현을 썼지만 재연은 자신이 주형의 몸을 이렇게 꾸며 준 게 마음에 들었다.
“부항이라니, 사랑의 증거예요.”
고상한 말씨로 주형을 달랬다.
“저도 이사님이 싫지는 않습니다.”
주형은 큼, 하고 헛기침을 하며 딴청을 피웠다. 이런 말을 하려니 기분이 좀 쑥스러웠다. 사실 좋아하는데, 꽤 많이 좋아하는데…… 좋아한다고 말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근데 그 지랄맞은 섹스 버릇은 좀…… 고치, 읏.”
“하으, 형…….”
“으, 간지, 러워.”
일어서 있는 주형에게 몸을 비스듬히 기대고 그의 몸을 또 애무했다. 딱히 아침부터 몸을 혹사 시킬 생각은 없었으나 주형이 너무 좋아서 가만히 있기 어려웠다. 이렇게라도 하면 삽입은 안 해도 자위 정도는 할 테니 괜찮겠지.
“나 형이 너무 좋아요.”
재연이 부드럽게 입술을 모으며 젖을 빨았다. 쪼옥, 하는 늘어진 소리와 동시에 타액이 묻어나왔다. 보드랍고 통통한 입술이 그의 딱딱한 젖꼭지를 물고서는 이로 얕게 잡아당겼다. 잘근잘근 아프지 않게 씹은 뒤에는 입을 잔뜩 벌려 가슴을 물었다. 말캉하지만 안에 든 멍울이 느껴져서 기분이 좋았다.
“심장이 차에 치인 거 같아요…….”
정말로 몇 시간도, 몇 분도 쉬지 못하고 계속 사랑을 읊어댔다. 그놈의 사랑의 시는 계속해서 나오나 보다. 그래도 마음이 솜사탕처럼 부풀어 오르는 게 참 좋았다. 주형은 어느새 입술을 떼고 제 가슴에 턱을 댄 채 애교스럽게 저를 올려다보고 있는 재연을 내려다보았다.
“형은요?”
“…….”
얼굴이 빨개졌다. 주형은 왠지 이러고 있으니 윤 이사가 아니라 그 시절의 재연과 함께하고 있는 듯해서 기분이 알쏭달쏭했다. 감정을 쉽게 숨기지 못하고 낯을 가리더니, 주형이 투박하게 말했다.
“말했잖아……, 못 들었냐?”
“으응. 한 번만 더요.”
“좋, 좋아한다고 했잖아.”
항상 그랬지만 오늘은 유난히 어리광이 많은 것 같았다. 이것도 해 달라, 저것도 해 달라…… 일어나자마자 무슨 수모인가. 주형은 마음을 표현하는 게 너무 어려웠다. 적당히 그냥 알고 있으니 안 해도 된다고 해 주면 안 되나 싶었다.
하지만 주형도 이미 알고 있다시피 재연은 절대로 그런 게 불가능했다. 사랑한다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 주어도 더 질러 달라고, 더 해 달라고 징징거릴 애새끼였다.
“형.”
그럼에도 문제인 건 사랑스럽다는 것이지.
“왜.”
“애교 한 번만 부려주면 안 돼요?”
주형이 재연의 이마에 냅다 딱밤을 놓았다. 딱! 아주 경쾌하고 맑은 소리였다.
“앗.”
재연은 정말로 아픈지 눈을 꼭 감았다. 솔직히 남에게 이런 짓을 당한 건 처음이지만 괜히 기분이 좋았다. 살살 어루만져 보니 이마가 조금 뜨거웠다. 형은 힘도 세구나. 섹스할 때만 약하고, 평소에는 세고…… 이렇게 멋지니까 반하지 않을 수가 없지. 재연이 빙긋 웃었다.
“징, 징그럽게! 다 큰 새끼가…… 애, 교는 무슨!”
“안 돼요?”
“…….”
주형이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제 허리를 꼭 껴안고 배에 볼을 비비고 있는 재연의 얼굴에 손을 댔다. 자다 깨서 그런지 어리광이 아주 심했다.
고민하던 그는 이윽고 순순히 끌려오던 재연의 코끝에 입을 쪽 맞추어 주었다. 그러고는 뺨에, 마지막으로는 입술에 부드럽게 맞추었다. 얼굴로 하는 애교는 전혀 자신이 없었다.
“……됐습니까?”
“애교예요?”
“그런데요.”
재연은 음, 하고 입술을 어루만지다가 눈을 내리깔았다. 이윽고 눈을 뻔뻔하게 끔뻑이며 싱긋 웃었다. 주형의 얼굴은 불안으로 물들었다. 왜냐하면 아랫도리가 바짝 서 있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 아침부터 무슨…….”
누워 있을 때만 해도 그냥 ‘저 새끼는 원래 크니까 그렇겠지’, ‘절대 발기한 거 아닐 거야’ 이렇게 희망적으로 생각했는데, 꼿꼿이 선 걸 보니 이젠 부정할 수도 없었다. 애초에 저 뽀뽀가 뭐라고 저렇게 또 흥분하는지.
‘그래도…… 내가 꽤 좋나 보네.’
흥밋거리 하나 없는 얼굴로 고결하게 세상을 내려다보기만 할 것 같더니……. 주형은 꽤 사랑받고 있는 듯해서 약간 기뻐졌다. 이상하게 감정이 오락가락했다.
“이걸 잠재우려면 방법이 하나 있어요.”
“뭔데.”
“모닝 섹스를 하거나, 넣고 자는 거예요.”
정말로 좋은 답이지 않냐는 얼굴이었다. 반짝반짝한 눈동자를 보니 기가 찼다. 과학 영재가 대답을 말하는 것처럼 검지를 척 들고 말하는 게 아주 얄미웠다.
“미친 새끼!”
주형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짜증을 늘어놓았다. 온몸을 붉힌 사람이 하니 딱히 설득력은 없어 보였지만 말이다.
“넣고 잔다니, 그게, 그게 사람이 할 짓입니까?”
음, 저 반응을 보니 자는 동안 했던 건 절대로 말하면 안 되겠다. 부부 사이에 비밀이 있으면 안 된다지만 이건 적당히 가려야겠다. 재연이 주형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결심했다.
“왜 또 그렇게 노려보고 그래요. 서운하게.”
재연은 즐거운 듯 배시시 웃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주형의 얼굴이 새빨개진 채 저를 노려보는 게 자못 마음에 들었다. 진심 어린 분노가 느껴지면서도, 그를 이렇게 능욕할 때면 재미를 느꼈다. 어차피 제가 한 건 농담이었으니까.
‘말을 좆같이 한 게 누군데…….’
주형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고 있자 재연이 예쁘게 웃으며 주형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그런데 나는 형이 그런 얼굴로 날 보는 것도 좋아요.”
경멸하는 시선도, 부끄러워하는 뺨도, 어색함을 이기지 못하는 입술도 참 좋았다. 그가 이룬 모든 것을 이제는 사랑할 수 있었다. 자격을 얻었다. 처음에는 주형이 질책했지만, 이제는 이해해 준다. 그와의 사랑은 그에게 인정받았다.
“형이 가진 모든 걸 사랑해요.”
재연이 주형에게 안겨 왔다. 이윽고 뺨을 비비적거렸다. 솔직히 노곤하고 힘든 아침이었지만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그래서 주형은 재연을 함께 안아 주며 씩 웃었다.
“그래, 나도.”
나도 사랑해. 이번에도 결국 제일 미친놈만 남았다. 주형은, 저는 역시 인복이 딱히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재연에게 먼저 입을 맞추어 주었다. 그럼에도 인복 따위 더 없어도 된다고 여겼다.
재연이 만들었던 불길하고 아늑한 온실에 드디어 포근함이 스며들었다. 두 사람은 비로소 안온함에 눈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