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 완성 (9/11)

9. 완성

차에서 섹스를 한 지 벌써 사흘 정도가 지났다. 다녀오면 커플링부터 맞추자고 방방 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차분해서 놀랐다. 물론 숨이 막히기 직전까지 몰려오는 집착은 여전했고, 가끔 나오는 그의 미친 발언도 변함없었다. 때로는 산뜻한 얼굴로 잔인한 말을 해서 당혹스럽기도 했다. 그것까지 받아들이기로 내심 결정했기에 싫지는 않았다.

‘이럴 수가 있나.’

하지만 원래부터 사람이 죽는 것 따위는 상관없는 삶이었다. 그게 제 주변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생존과 호흡이 목적이었던 삶에서, 사회적인 시선 같은 건 별로 무거운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형은 재연이 무슨 일을 하든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놈과 엮이기 전에도 저는 시궁창에서 살던 놈이었기 때문이다.

어느덧 주형의 마음은 많이 움직여서, 그는 과거에 재연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궁금증을 가졌다. 그래서 기억 상실증에 걸린 환자가 자신의 흔적을 찾아가듯 노력해 보기로 했다. 나름대로 뜨거운 말을 주고받았으니 제 몫도 해내고 싶었다. 재연만 너무 좋아서 동동거리는 이 상황을 넘기고 싶기도 했고 말이다.

보고 있자면 자신이 불안해질 정도로 그는 분리불안에 떠는 듯 보였다. 그걸 지적하면 괜찮다고, 하나도 괜찮지 않은 말을 했다.

그렇게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던 차에, 재연이 저녁을 먹고 나서 문득 또 말했다.

“형만 보면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요.”

“……왜입니까? 저번에도 그러시더니.”

“아아.”

기억이 안 나겠구나. 재연은 이제는 실망스럽지도 않은 듯 당연하게 말했다.

“형이 나한테 아이스크림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거든요. 그때.”

어릴 때를 말하나 보다. 주형이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면서도 대화에 집중했다.

“제가 말입니까?”

“응.”

“…….”

“그게 우리 마지막 대화였나, 그랬을 거예요.”

주형은 아이스크림을 사 주겠다고, 수요일 9시에 미끄럼틀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한 다음 사라졌다. 그 이후 머리가 굵어지고 나서 뒷조사를 했으나 주형의 일가가 야반도주를 했다는 것 외에는 달리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사건이 있던 직후에는 독방에 감금되어 있어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그로부터 혼자서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된 건 고등학생 때였다. 이미 10년이 넘게 지난 일인데다가 그 빌라는 재개발에 착수해 이제는 살던 사람들도 추적할 수 없게 돼 버렸다. 불법적인 경로를 통해 추적해 보았는데 죽은 사람도 있을 정도였으니 사실상 알아낼 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재연은 ‘그 버러지 같은 시아버지 새끼가 또 일을 저질렀나 보군’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주형에게 물어보려고 해도 그는 아이스크림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니, 그냥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거 같다는 말밖에는 하지 못하겠지.

“마지막?”

“응. 그런데, 기억 안 나죠?”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그 정도는 예상했어요.”

별로 거리낄 것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고 있으니 재연이 천천히 관자놀이를 비롯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젖은 머리카락이 사락, 사락 움직였다.

“그래도 이 머리통 안에는 나밖에 없을 테니까 괜찮아요.”

“……다른 것도 많은데요.”

저 안 멍청합니다. 주형이 눈을 가늘게 뜬 채 입술을 삐죽거렸다.

“섹스하고 싶은 사람으로는 나밖에 없잖아요.”

“그건…….”

“아니에요?”

정말로 상처를 받은 듯 재연이 휘둥그레 눈을 떴다. 이상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재연이 심각하게 중얼거리고 있으니 주형이 뺨을 붉히며 턱을 괴었다. 커다란 손이 입술과 한쪽 볼을 모두 감쌌다.

“아니, 뭐, 맞습니다. 맞는데…… 멍청하지는 않다고요.”

“그럼요.”

재연이 싱그러운 얼굴로 웃더니, 갑자기 시름이 가득한 한숨을 내쉬었다. 주형은 이런 재연의 사소한 변화에 신경을 썼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심장이 덜컹거렸다.

“형이 너무 똑똑해서 걱정이에요.”

“그건 또 무슨…….”

이건 또 이것대로 기분이 이상했다. 아니, 저건 그냥 환심 사기용 거짓말 아닌가……? 너무 티가 났다.

“나 속이고 도망갈까 봐.”

속이는 것 정도야 애교로 봐줄 수 있다. 단 한 번 정도는. 하지만 두 번, 세 번이 늘어나면 그건 버릇이 될 테니 화를 낼 겸 십자인대를 끊어 놓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도 모자라 도망을 생각하면 발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 누가 세상이 무너진다는데 무력하게 하늘만 쳐다보고 있을 건가?

“아니, 저 안 그럽니다. 제가 무슨…… 사기꾼도 아니고.”

속인다는 말에 주형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럴 수 없었다. 지욱이 그냥 멀리 가자고 권했을 때도 펄펄 뛸 정도였는데, 재연의 앞에서 거짓으로라도 그럴 수 있을 리가.

“맞아요. 그런 사람이랑은 다르죠.”

주형은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순박했다. 면전에서는 무어라 말을 하지 못하고 진후가 지나치고 나서야 욕을 중얼거린 것만 해도. 그 본인은 제가 아주 썩은 어른이라고 생각하고, 더러운 진창의 인간이라 여기지만 그는 먼지가 조금 묻어 있는 번듯한 어른일 뿐이었다. 그래서 재연의 먹잇감이 되기에는 딱 좋았다.

“형은 건실하고 멋진 사람이니까.”

재연의 눈에 주형은 좀 모자라도 너무 사랑스럽고, 나름대로 아등바등 노력하는 게 좋은 사람이었다. 외모도 취향에 부합했으며 어쩌다 보니 속궁합까지 대단히 잘 맞아 놓아주기 싫었다. 주변 사람들을 모두 잃는다고 해도 주형만 남아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행복할 듯싶었다. 그걸 핑계로 ‘형도 아무랑도 만나지 말라’고 하면 그는 처음에는 미쳤냐고 하다가 천천히 만남을 줄여 갈 테니까.

“그리고 사실 이제는 형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만족할 수 있는 어른이 됐어요.”

사실 거짓말이었다. 주형이 저런 말을 해 줘서 어느 정도 마음이 놓였을 뿐이지, 전까지는 너무 싫었다. 주형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없었다.

“잘 컸죠?”

“……네.”

주형은 그냥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끄덕거렸다.

“잘…… 크셨네요. 엄청, 잘생기고 예쁘게.”

고개를 바깥으로 완전히 돌렸다. 그래서 재연에게는 뺨과 귀 정도만 보였다. 너무 쑥스러웠다. 머뭇거리는 시간이 줄어들긴 했지만 아무튼 부끄러워서 얼굴을 보고는 저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얼굴이 괜히 달아오르는 느낌에 주형이 코와 뺨을 손등으로 비볐다. 아이 씨, 하며 투박하게 짜증도 냈다.

“술 마신 것도 아닌데 왜 이래.”

구시렁거리고 있으니 재연의 향기가 다가왔다.

“역시 나는 형이 옛날 일까지 모두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재연이 주형의 허리를 옆에서 꼭 껴안았다. 포근하게 안겨 오는, 미묘하게 조금 더 큰 덩치가 느껴졌다. 주형은 그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아주 소심하게 고개를 들어 곁을 돌아보았다. 재연은 깊은 잠에 빠진 듯 완전히 심취한 얼굴로 주형의 팔뚝에 코를 묻고 숨을 들이쉬고 있었다.

“추억이니까, 그럴 수 있죠.”

“맞아요.”

정답이라는 듯이 배시시 작게 숨소리가 흘렀다. 주형은 이상하게 튀어나올 것 같은 심장을 겨우 억눌렀다. 뱃가죽이 이상했다. 숙맥처럼 그냥 가만히 있으니 재연이 고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형이 정말로 아무 데도 못 갈 텐데.”

“…….”

자신을 버리고 가 버렸다는 걸 자각한 순간 주형은 온몸에 죄책감을 길들일 것이다. 어깨가 너무 무거워서 어떻게 할 줄 모를 게 분명했다. 설사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미안함이 뒤늦게 들어서, 아마 가끔 관계에 위기가 오더라도 미안함 때문에 떠나지 못하겠지. 그렇게 천천히 묶이기를 자처하면 아주 좋았다. 재연은 얼른 주형이 자신을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형에게 강요하는 건 아니에요. 기억이 안 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음……, 예. 노력해 보겠습니다.”

강요가 아니라고 말했지만 재연의 목소리는 진지하고 부드러웠다. 그렇기에 주형은 기억을 해 보려고 열심히 노력하기로 결심했다. 재연의 계략이 또 통했다. 순박하고 순진한 주형을 상대로 한 주입과 세뇌는 끊임없이 계속될 예정이었다. 수렁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응. 나도 많이 도울게요.”

“알겠습니다.”

마음이 무거웠다. 주형은 예전에 살던 동네라도 가 볼까, 싶었다. 그렇게 주형이 또 모르는 사이에 재연이 파 둔 나락으로 빠질 동안, 주형이 잠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줄 게 있었다.

“형, 어디 가요?”

“아, 잠시.”

솔직히 궁금하기도 했지만 어차피 집안이니 적당히 가만히 있기로 했다. 재연의 얼굴은 금세 조금 어두워졌다. 몇 초도 떨어져 있고 싶지 않아서 큰일이었다. 물론 그냥 방에 들어가서 뭘 조금 하고 말겠지만, 그 과정도 같이 있고 싶은 게 그의 마음이었다.

‘신혼 때는 다 이런가?’

다들 이렇게 고생을 많이 하다니. 그래도 참고 서로를 이해하는 게 사랑이라고 배웠다. 재연은 자리에 앉아 참고 기다렸다. 그러고 있으니 선물처럼 주형이 나타났다. 손에는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형, 그게 뭐예요?”

“연고입니다. 흉터에 바르는.”

“흉터?”

재연은 그 말을 듣자마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형, 어디 다쳤어요?”

“우왁!”

주형의 티셔츠를 훌렁 들추어 배를 까 보고, 팔도 요리조리 살펴보고, 조몰락거리며 그의 몸을 탐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새로이 보이는 흉터는 없었다.

“흉터라도 생겼어요? 어디?”

그러고 있자 주형이 한숨을 내쉬며 재연의 손을 턱 잡고 말했다.

“아니,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요. 이사님 팔 말입니다.”

티셔츠가 구질구질하게 늘어나 있었다. 힘 하나는 세서, 진짜. 주형은 쓰게 웃었다.

“……내 팔?”

“예.”

상상도 못 한 건지 재연이 멍한 얼굴로 눈을 끔뻑였다. 그러고는 여전히 주형이 혹시 아픈 곳이라도 있나, 흉이 진 곳이라도 있나 싶어서 걱정하는 눈치를 하고 있었다. 재연은 주형의 몸을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흉터가 하나라도 더 생기는 걸 원치 않았다. 섹스 중에 생긴 상처도 며칠 뒤 사라진다는 점과 성애의 흔적이라는 점에서 좋아했을 뿐.

“이사님 팔이나 등 이런 쪽에 흉터가 있지 않습니까? 연고를 바르면 좀 나아진다고 들어서요.”

“아……, 하하.”

재연이 그제야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가붓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곱게 단장된 머리카락이 보기 좋게 흐트러졌다.

“괜찮아요.”

“하루에 한두 번만 바르면 됩니다.”

“형을 사랑해서 생긴 영광의 상처인데, 지우긴 아깝잖아요. 그리고 이런 건 수술로도 지울 수 있어요.”

별로면 문신을 해도 되고. 재연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러고 있자 주형이 미간을 푹 찌그러뜨렸다.

“날 사랑해서 생긴 게 아니라 이사님 아버지께서 학대한 흔적 아닙니까?”

“하지만 그 학대를 사랑의 시련이라고 할 수도 있잖아요.”

구렁이가 담 넘어가듯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하지만 우직한 얼굴을 하고 있는 주형이 그런 말장난에 대충 넘어가 줄 리는 만무했다.

“학대 따위 없어도 사랑의 시련은 세상에 널렸습니다.”

“…….”

“그런 걸 뭐 하러 남겨 놔요?”

속상했다. 주형은 미간을 좁힌 채 불만스럽게 말했다. 그러고는 재연의 손바닥과 팔을 바라봤다.

“……피부도 하얗고 예쁜데.”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사실 듣지 않기를 원한 말이었는데, 재연의 귀에는 공교롭게도 들어가 버렸다. 그래서 재연은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너무 신나고 즐거웠다. 심장이 콩콩 뛰고, 발가락도 괜히 꼼지락거리고, 눈도 잘게 깜빡이게 됐다.

“형이 발라 줄 거예요? 연고.”

“뭐…… 그렇게, 하죠. 제가 사 온 거니까.”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재연의 덩치를 봐서는 누구에게 수발을 받을 만큼 연약해 보이지 않았는데, 은근히 저런 챙김을 좋아하는 게 의외였다.

“사 왔어요?”

“예.”

“……카드 문자는 온 게 없는데.”

재연은 딱 봐도 부티가 나는 카드를 한 장 주었다. 검은색으로 된 신용 카드인 듯했다. YOON JAE YEON. 이 글자가 연한 금색 양각으로 드러나 있는 카드는 아주 얇았으나 매우 무겁게 느껴져서, 주형은 괜히 현관에 항상 두고 다녔다.

“제 돈으로 샀습니다.”

“왜 그랬어요.”

“그냥요.”

처방전 없이도 살 수 있는 약이라 아주 비싸지는 않았다. 물론 약국과 친하지 않은 주형은 대충 오천 원이면 살 줄 알았던 연고가 만 원이 넘어가서 조금 당황했지만, 재연의 비위를 맞추며 다닌 카페에서 받은 월급이 넉넉히 남아 있어서 상관없었다.

“부부 별산제로 하려고요? 섭섭해요.”

“부부……는, 무슨. 그냥 제 자존심 때문에 제 돈 쓰는 겁니다. 그리고 저도 돈 법니다.”

평생 쓰지 않고 모아도 재연이 데려와 준 이 집을 사기에는 부족한 월급이지만, 그래도 번다는 데에 의미가 있었다. 그에게 모든 걸 맡기는 순간 기생충이 될 것만 같아서 무서웠다.

“그렇지만 그건 그냥 용돈벌이잖아요.”

“그 용돈으로 이사님 뭐 사 드리고, 저 쓰는 건데 뭐가 이상합니까.”

“그냥…….”

재연이 우물거렸다. 그러고는 시무룩한 눈치로 바람을 말했다.

“형이 나밖에 몰랐으면 좋겠는데.”

자신이 스스로 뭘 할 생각은 없이 제게 손을 벌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캥거루처럼 배에 넣어서 꼭 안고 다니고 싶을 지경이다.

재연은 얼른 선아를 처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저한테 이사님 빼고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이제는 믿던 놈들에게도 발등을 찍혔다. 그래서인지 앞으로는 사람을 더욱 못 믿게 될 것 같았다. 평소에는 그래도 잘 대해 주고, 원만한 관계를 계속 유지하면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건 어려울 듯했다. 사람을 만나기 버거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윤재연, 이놈은 그런 것도 아니지 않나. 기본적으로 스펙이 우월하니 사람을 만나는 것쯤 문제는 없을 테다. 몇 년이나 짝사랑을 했다는 게 사실이라면 쉽게 버려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세상에 사람은 많잖아.’

저런 얼굴에 재력을 가진 놈이 인기가 없을 리가 없다. 주형은 갑자기 위기감이 들었다. 이렇게 시커멓고 덩치만 큰데…… 얼마나 갈까 싶었다.

“반대로…… 이, 이사님이야말로.”

“응?”

“이사님이야말로, 주변에 사람 많으실 거 같은데.”

큰 자산을 운용하는 회사 회장의 아들인데다가 이렇게나 미인이라면 그 누구라도 가만히 두지 못할 거다. 생각해 보면 윤재연과 제 관계에서는 제가 좀 더 불안해하는 게 맞지 않나 싶었다. 저쪽은 너무 완벽하고 빛나는데, 이렇게 진창에서 구르던 새카만 놈이 뭐라고. 옛날에 만났다는 것 빼고는 아무런 장점이 없다.

그래, 뭐…… 이런 기울어진 관계에서는 한쪽이 체념할 필요도 있는 거지. 주형은 그냥 기준을 낮추기로 했다. 많은 걸 바라면 그만큼 괴로워질 거다. 아직 사랑의 한가운데에 서지 않아서인지 마음을 먹는 건 쉬웠다. 주형은 씁쓸한 얼굴을 쉬이 숨기지 못하며 말했다.

“뭐, 저는…… 이사님이 저 등쳐 먹지만 않으시면 됩니다. 바람을 피운다든가, 벼룩의 간을 빼먹는 짓을 한다든가.”

“바람?”

주형이 예시를 몇 개 말했더니 그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떻게 그런…… 상스러운 말을 할 수 있어요.”

재연이 진심으로 매우 당혹스럽고 놀랐다는 듯 숨을 얕게 뱉었다. 그러면서도 아주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주형을 바라봤다. 세상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 같았다.

‘아니, 섹스할 때는 자지, 자지 거리면서…….’

이상한 데에서 여린 반응을 보인다. 그런데 이제 생각해 보니 저거, 내숭 아닌가? 주형은 그제야 제대로 된 눈치가 생겼다. 그래서 그의 페이스에 말려들지 않고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냥 예시가 그렇다는 겁니다.”

“우리 둘의 관계니까 아이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끼어들면 안 돼요.”

재연은 주형의 두 손을 꼭 잡았다. 주형 또한 못지않게 큰 손인데 엇비슷하게 크고 미려한 손이 폭 감싸졌다.

“애 못 낳습니다, 어차피.”

“아무튼요. 형이 내 좆 뒤로 받다가 정말 생길 수도 있잖아요.”

“……그게 말이 되냐?”

너무 정직한 얼굴로 말해서 홀릴 뻔했다. 천지가 개벽해서 혹시나 재연의 아버지가 사업을 망치더라도 윤재연, 저놈은 사이비 하나 창단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말솜씨에 얼굴, 기본 재력이면 교주는 껌이겠다 싶다.

“안 돼요?”

“됐다, 씹.”

과학자들이 와서 펄펄 날뛸 소리를 저렇게 평온하게 하다니. 어안이 벙벙해서 이젠 그냥 픽 웃고 말았다.

“형네 부모님은 돌아가셨죠?”

“어머니는 모르고, 아버지는 치여 죽었습니다.”

언제 죽었는지도 이제는 가물가물했다. 민창협. 주형은 이때까지 제게 가장 많은 학대를 가한 사람이 제 부친이라는 것에 새삼스럽게 놀랐다.

“나도 부모님이 없어요. 그러니 우리 둘만 잘 지내면 돼요.”

“…….”

그런 말을 저렇게 산뜻하게 하니 섬찟했다. 하지만 당장 내려다보기만 해도 있는 흉터를 생각하면 그의 반응은 정상적이었다.

“알겠습니다. 아무튼, 연고…… 바르죠.”

“응. 만약 바를 거면 등이나 배에 있는 곳도 발라 줘요.”

“알겠습니다.”

연고의 포장 박스를 열고 있던 주형은 이윽고 이어지는 말에 손을 잠시 멈추었다.

“선아 씨는 조만간 정리할게요.”

“……아.”

맞다. 주형은 선아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그 예쁜 사람. 별로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는데. 이렇게 그냥 정리한다고 해도 되나? 아무리 그래도 높은 분의 따님인 것 같아서 그런지 조금 걱정이 됐다.

“그렇게 막 정리해도 됩니까?”

“네.”

재연이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잃는 만큼 그 이상을 쥐여 주면 그쪽도 별말 못 하거든요.”

“아아.”

역시 그렇게 차갑고 타산적인 관계인 건가. 주형은 이럴 때마다 재연이 낯설게 느껴졌다. 카 시트는 그냥 버리는 놈이 선아를 이야기할 때는 저런 얼굴을 하다니.

“그리고 선아 씨는 어차피 애인이 있어요.”

“예?!”

윤재연과 그렇게 등장해서 없을 줄 알았는데. 주형은 생각도 못 했는지 놀란 티를 숨기지 않았다.

“애인……이랄 건 아니지만, 아무튼.”

항상 데리고 다니는 보좌관과 사석에서 자주 만남을 가지는 걸 봤다. 사람을 붙여 협박할 거리를 찾았지만, 그 보좌관과 연인처럼 여기저기 놀러 다니는 것 빼고는 흠잡을 곳이 없어 애석했다. 재연은 제 앞에서는 잘 웃으면서도 뒤로는 억압된 삶을 사는 선아가 남의 일 같지 않았기에, 그냥 지분을 몇 주고 관계를 깔끔하게 청산할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형은 이제 아무도 질투하지 않아도 돼요.”

“질투는 무슨, 지랄……!”

주형이 마구 구시렁거렸다. 질투는 무슨 질투입니까? 질투는 이사님이 전문인데 왜 저한테 그러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임선아 씨가 곁에 계신다니까 놀란 거고, 그분이 어떤 분인가 싶어서 신경이 쓰였던 것밖에는 없는데요. 주형은 쉬지도 않고 계속 짜증을 냈다. 쑥스러움이 너무 앞섰다. 그러고 있으니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주고 있던 재연이 흐뭇한 얼굴을 했다.

“하하.”

저렇게 맑게 웃는 재연을 보니 얄미웠다. 정말로 기뻐 보여서 더욱. 볼 한쪽이라도 꼬집으며 뭐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주형은 끄응, 하고 숨을 겨우 삼키며 고개를 돌렸다. 저 한마디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얼굴이 시뻘게져서 펄펄 뛰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요, 질투는 내 전문이에요.”

“알겠습니다.”

“내 주변에는 아무도 없으니까 질투 안 해도…… 아.”

재연이 정말로 뒤늦게 생각이 난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전이었다면 귀엽다고 생각했겠지만 저 얼굴이 얼마나 작위적인지 알고 있기에, 주형은 오히려 불안감이 들었다.

“예?”

“내가 쓰는 이불이나 그런 걸 신경 쓰는 건 아니죠?”

“그런 걸 왜 신경 씁니까? 그냥 쓰는 건데! 과대망상 좀 하지 마세요!”

버럭 화를 내도 재연은 까르르 웃기만 했다. 그러고는 제법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뺨에는 홍조가 발그레 떠 있어 괴리가 되었다. 덩치는 산만 해서 이런 소녀 같은 모습으로 내숭을 부릴 때마다 아주 버겁고, 또……, 귀여웠다.

“나는 형이 쓰는 베개나 이불, 휴대폰한테도 질투 나는데.”

“진짜 문제 있습니다, 이사님.”

“으응.”

재연이 말꼬리를 늘이며 주형을 꼭 껴안았다. 그리고 어깨에 얼굴을 비비며 기분이 좋다는 듯 작게 숨소리를 냈다. 고양이가 고롱고롱, 늘어진 모습 같았다. 그래서인지 이 낯간지러운 짓을 밀어낼 수 없었다.

그렇게 엉겨 붙어 냄새를 서로에게 묻히고 있기도 잠시, 재연이 그제야 생각이 났다는 듯 말했다.

“형, 약 발라 줄래요?”

“알겠습니다.”

주형은 엷게 웃으며 곁에 두었던 연고를 가지고 왔다. 그리고 투박하다 못해 굳은살이 조금 배어 있기도 한 손가락으로 연고를 발라 주었다. 팔과 배, 등…… 조금 큰 흉터가 있는 곳이면 다 발라 주었다. 배를 문질러주고 있자 재연이 일부러 희롱을 해대서 힘들었다.

“형, 나 설 것 같은데.”

“뭘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앉히시죠.”

일부러 모른 척을 했다. 주형은 열심히 발라 주고 있던 손길도 뚝 멈추고 그냥 대충 문지른 뒤 옷 소매로 피부를 폭 덮었다. 그렇게 억지로 마무리하고 연고를 수납하러 자리에서 일어나도 재연은 졸졸 따라오기 바빴다.

“한 번만, 응?”

“며칠 전에 다 빼서 이젠 나올 것도 없으니까 그만하시죠. 진짜 힘듭니다.”

주형이 그르렁거렸다. 진심으로 짜증이 팍 일었다. 좁은 차에서 이리저리 부딪히면서 했더니 몸도 뻐근한데 또 하자고? 게다가 그 뒤로도 섹스를 안 한 것도 아니고 오늘 아침에도 해 놓고 저러니 황당했다.

“으응……. 아쉽다.”

하지만 예상외로 재연은 금세 물러났다. 주형의 말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게 그다웠다.

“나는 형이 물 없이 싸는 것도 너무 좋았는데.”

하지만 사족을 못 쓸 뿐, 입은 쓸 줄 알았다.

“씨발, 그건 너만 그렇고!”

“생각해 보면 형처럼 야하면 물 안 싸도 괜찮지 않아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자존심과 직결된 문제였다. 주형은 이때까지 정액이 나오는 형태로 사정을 한다는 행위 자체에 별생각이 없었는데, 드라이 오르가슴이며 분수며 모두 겪어 보니 그런 게 아니었다. 미친, 존나 쪽팔렸다. 주형은 절대로, 절대로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알았어요.”

고개를 끄덕인 뒤 재연은 흉터가 얼른 없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그래야 주형이 제 피부를 좋아해 줄 것 같다고, 설렌다고 거리낌 없이 예쁜 말을 해 주었다.

“지금도 싫어하는 건 아닙니다. 없어지면 더 예쁘겠다는 거지.”

“그러면 안 사라졌으면 좋겠다.”

“……왜입니까?”

굳이 사 왔더니 저런 얄미운 말을 하네, 저게. 주형은 딱밤을 하나 탁 때려 주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흉터가 계속 있으면 형이 날 만져 주고, 약도 발라 줄 거잖아요.”

“…….”

“형이 나한테 계속 관심 줬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손길이 조금 거칠지만 나름대로 애쓰는 저 표정이 너무 좋았다. 얼굴만 봐도 설 것 같고, 뇌가 어지러워지고, 뭔가 기분이 고양돼서 참을 수 없었다. 재연은 달콤한 목소리로 그리 말을 전했다.

그러고 있으니 다행스럽게도 주형 또한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 강직한 얼굴에 홍조가 깃드는 순간이 자못 짜릿해, 이 연애를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항상 형을 만졌는데, 생각해 보니 반대도 좋은 거 같아요.”

“노력해 보겠습니다.”

주형이 고개를 수줍게 끄덕였다. 재연은 그런 주형을 내려다보며 싱긋 웃었다.

‘뭐, 정 안 되면 자해를 하면 되니까.’

몸에 근육이 많아서 베이는 것보다는 찔리는 게 좀 덜 아플 거다. 조금 찔리는 것쯤이야 주형을 위해서는 괜찮았다. 자해가 아닌 척 다쳐서 온다면 주형이 울고불고 난리를 피우며 걱정할 게 뻔해서, 들키지 않는 선에서 자작극이라도 해 볼까 싶었다.

***

주형은 출근을 한다는 핑계로 출근 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나갔다. 재연 또한 오늘은 할 일이 있다고 해서 그냥 그의 거짓말을 눈감아 주었다.

재연은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선아와 만났다. 대단한 일을 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제 아버지를 경질하는 일에 대한 논의와 관계를 정리할 때가 왔다는 사실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안녕하세요, 재연 씨.”

“안녕하십니까.”

“재연 씨가 저한테 연락한 거 처음인 거 아세요?”

선아가 재연의 손짓에 따라 소파에 앉으며 엷게 웃었다. 어느덧 계절이 차가워져서 그녀는 털이 복슬복슬한 옷을 입고 있었다.

재연은 선아의 말을 듣고 있다가, 고매한 손짓으로 차를 한 모금 들이켠 뒤 말했다.

“……관계는 이만 오늘로 정리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에?”

“당초에 약속했던 것보다 지분을 좀 더 드리겠습니다. 선아 씨가 집안에서 독립할 수 있도록 제 사비를 들여서 지분을 양도할 테니 이쯤에서 적당히 마무리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어요. 풀어서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선아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러나 이해가 어려운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솔직히 재연과의 장기간 관계 유지는 어려울 것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갑자기 이야기하는 게 충격적인 일은 아니었으나, 이렇게까지 급작스러울 줄은 몰랐다.

“아시다시피 선아 씨는 독립을 위해 저를 잡으셨고, 저는 아버지를 경질하기 위해 천주일보 쪽을 택했던 겁니다.”

천주일보의 회장이 선아의 할아버지였다. 그리고 선아는 제법 예쁨을 받는 손녀였고, 현재 여기저기 일을 하러 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기업가나 투자자로서의 인정은 없는 상황이었기에 선아는 애가 탔고, 동시에 정략결혼을 시키기 위해 어른들이 움직이고 있어 선아의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을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렇죠.”

“그런데 당초와는 다르게 아버지가 좀 더 빨리 사라지셔야 할 것 같아서 일을 빠르게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곧 있을 주주 총회에서 일보 쪽 사람들을 설득해 찬성하도록 만들어 주시면 됩니다.”

“잠시만요, 무슨 안을 내실 건가요?”

“회장님을 일선에서 밀어내고 저를 대표로 올리는 안입니다.”

“…….”

“천국은 조폭 이미지가 아직도 지워지지 않았어요. 그건 아버지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대표로 올라가면 그런 흔적은 싹 지우고 새로 시작할 생각입니다.”

재연은 제 아버지를 끌어내리고 싶었다. 그래야 주형에게 떳떳하게 결혼을 이야기할 수 있을 듯했다. 제 아버지에게 통보하면 아마 남자가 남자를 어떻게 사랑하냐며, 미친놈처럼 광분할 테니 그냥 처리하는 게 맞았다. 그리고 어차피 그 좆같은 기업 문화를 보면 기분이 나빠졌으니 타파하고 싶기도 했다. 그걸 위해서라면 제 아버지는 필연적으로 사라져야 할 악이었다.

“그런 게 잘 지워질까요?”

“왜 안 되겠어요, 대기업 중 몇이나 이미 그런 전철을 밟았는데.”

재연이 아는 기업 총수들만 해도 전에는 더러운 손을 쓰던 사람들이었다. 묻지 못할 것은 없었다. 일반 대중에게 좋은 인식만 심어 준다면 탈피를 꿈꿀 수 있었다. 쉬운 일이 아님은 알지만 반대로 내부에서만 도는 정보라면 크게 위험하지는 않아 보였다. 사회 공헌을 열심히 실천하면 대중은 쉽게 잊고 만다. 어차피 조폭 기업의 대표라는 오명을 안고 갈 의지도 없었고, 그런 손으로 주형과 함께 살 생각도 없었으니 잘된 일이었다.

‘겸사겸사 아버지도 죽이면 좋고.’

제 아버지의 첩에게 약물을 주고 지속적으로 차에 타라고 했다. 때를 보아 타라고 했으니 아마 늦어도 오늘이나 내일 중으로는 일이 일어날 테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고, 첩이니 상속권 박탈도 되지 않을 것이다.

제 아버지의 성격상 분명 유언장에는 그 여자의 이름이 올라가 있지 않을 거고, 혼인 신고도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니까. 나중에 몇 푼을 챙겨주면 말끔하게 해결될 가능성이 높았다. 어차피 사랑으로 이루어진 관계가 아니니 그런 것쯤이야.

“천주일보 사람들의 대부분은 현재 윤 회장님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돈독한 사이는 아니겠지만 굳이 끊어낼 만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에요. 저 같은 사람이 유의미한 설득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재연 씨의 말씀은 감사하지만 제가 가능한 부분을 말씀해 주셔야 할 것 같아요.”

보수적인 업계에서 여성의 대우란 우스울 게 뻔했다. 아무리 손녀라고 해도 그 할아버지가 기업가로서는 인정하지 않는 여성이 제대로 된 뒷배 없이 제대로 들쑤시고 다니는 게 제대로 통할 리는 만무하다. 선아는 그렇게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며 조심스럽게 거절했다. 하지만 마음이 좋진 않았다.

“……방송과 엔터 사업에 관심이 있지 않습니까?”

“…….”

“신문이 진출하기에 좋은 미디어 사업에 관심이 있잖아요, 임선아 씨.”

재연은 뒷조사를 여럿 진행했다. 선아는 그런 것도 그냥 쉽게 넘겼는지 별말을 않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선아가 여러 가지에 뜻이 있다는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마침 IP 사업에 나도 관심이 있으니 그쪽에 투자하겠습니다. 세탁에 딱 좋은 업종이기도 하고, 나도 내 애인이 좋은 방송 매체를 보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으니까.”

주형은 영화와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즐거움의 맛을 알려주고 싶었다. 주형과 영화를 볼 때 아주 즐거웠으니까. 물론 섹스 덕분인지, 영화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다 알고…… 계셨네요.”

“선아 씨가 내 애인이 누구인지 아는 거랑 비슷한 맥락이죠.”

“저는 사람을 붙인 적은 없어요, 이사님.”

선아는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농담을 하며 눈을 내리깔았다. 그가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저런.”

재연이 푸스스 웃었다.

“미디어 쪽 사람들을 모두 모으면 유의미한 표를 만들 수 있어요. 최근에 회장님이 일에서 거의 물러나 계시니, 이사님 쪽에서도 젊은 사람들 위주로 설득을 진행하시면 아마…… 뒤집을 수 있을 겁니다.”

미디어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선아와 비슷한 사람들이었다. 젊고 유능한 사람들. 그리고 생각이 유연했으니 모험을 하자고 이야기하기도 편했다. 게다가 재연이 투자를 약속한다면 나름대로 안정적인 자금도 흐를 테니 아주 불리한 이야기도 아니었다.

“약속은 꼭 지키셔야 해요. 저도 노력할 테니까요.”

어차피 이대로는 결혼하고 싶던 사람과 결혼하지 못한다. 뭐라도 해야 했다. 선아는 도움을 받을 곳이 없던 차에 재연이 손을 내밀어주는 게 반갑게 느껴졌다. 이게 독배가 되더라도 유의미한 걸음이 될 것은 분명했다.

“그럼요.”

누구 애인이 약속을 좋아해서. 재연은 엷은 웃음을 띤 채로 말했다.

“이제부터 우리는 비즈니스로만 아는 사이인 겁니다.”

“네.”

선아는 오히려 그것을 바랐다는 듯 개운한 얼굴을 했다. 왠지 떳떳해진 기분이 들었다. 사실 재연을 곁에 둔 채 보좌관에게 눈길을 보내는 것 자체가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계약서는 박 보좌관을 통해 보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가방을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대로 인사를 마친 뒤 나가려던 차에, 선아가 문고리에 손을 대기 전 뒤를 돌아보면서 말을 꺼냈다.

“……이사님.”

“네.”

“사랑의 힘은 대단한 것 같아요.”

재연은 그 말을 듣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하고 경쾌하게 웃는 그는 만족스러워 보였다. 손등으로 입가를 가리고는 수줍게 웃어 보였다. 천진한 소년 같은 낯이 눈에 띄었다. 선아는 이게 그의 진짜 얼굴이겠거니 싶어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렇지 않냐며 작은 목소리로 함께 웃었다.

“그렇죠.”

재연이 수긍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문고리를 먼저 당겨 친히 문을 열어 주었다.

“센스가 꽤 있으시네요.”

그렇게 둘은 깔끔하게 끝을 맺었다.

홀로 남겨진 재연은 손을 들어 손가락을 하나, 하나 접었다. 당초 방해물은 다섯 개였다.

주형의 채권을 가지고 있던 놈들, 서진후, 민지욱, 아버지, 임선아. 이제는 두 개만 남았다. 민지욱은 곧 처리하러 갈 것이고, 아버지는 별일이 없다면 그대로 해방이다. 그를 위한 독방을 만들어 두었으니 거기에 있으라고 하면 될 일이었다. 그러다가 천천히 깔끔하게 죽어 주면 만사형통이다.

물론 잘못되면 반대로 제게 칼뿐만 아니라 총구까지 겨눌 사람이었으니 목숨을 건 연애사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빨 빠진 호랑이가 칼로 일어나 칼을 들지 못하는 이 상황에서 제대로 힘을 쓸 리는 만무했으니, 지욱만 제대로 정리하면 끝이다.

어차피 곧 해가 바뀌는 만큼 천국 캐피탈에서도 무언가 변화를 주고 싶을 거다. 그런 가운데 제 아버지를 희생양으로 삼는 건 상당히 자극적이고 좋은 변화였다. 기업 이미지를 완전히 바꿀 수 있으니까.

액체를 잘 닦아낼 수 있는 기능성 의류를 입고, 가죽 장갑이 아니라 니트릴 장갑을 준비했다. 그리고 부하들에게 시켜 비닐을 잘 깔아 두었냐고 내부 전화를 통해 물었다. 별일은 없단다. 그렇게 장갑을 끼는 중 문득 손가락이 영 허전하다는 걸 느꼈다. 이 일이 끝나면 약지에 예쁘고 단정한 반지를 족쇄 삼아 구입할 것을 다짐했다.

그리고 재연은 늘 그랬던 것처럼 인두겁을 쓰고 짐승의 행위를 하러 나갔다.

***

주형의 발이 자박자박 움직였다. 재연에게는 일을 하러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바깥으로 나와 예전에 살던 동네를 찾았다. 이제는 찾아가는 방법도 잊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착각이었는지, 버스도 몇 번을 타면 되는지 다 알 수 있었다. 포털 사이트에서 길을 검색하지 않고 알던 버스를 타고, 알던 곳에 내려, 굳이 아는 길을 고집해 걸었다. 그러니 중학생 때만 해도 자주 오갔던 길이 보였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네.”

그때는 가난의 냄새가 조금 나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그런 게 전혀 없었다. 물론 재연의 옛집이 있었던 곳이니 아주 심한 달동네는 아니었겠지. 그보다는 주형이 최근까지 살았던 원래 집이 더욱 더러웠다.

그렇게 뚜벅뚜벅 걸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제는 어린이 보호 구역이라는 어엿한 표지판도 보인다. 붉은색으로 된 아스팔트가 있고, 예쁘게 잘 정돈된 도로 바닥에는 어린이와 어른이 손을 잡고 있는 그림이 보였다. 30. 아이를 위해 존중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하얀색 숫자였다.

굉장히 늙은 사람 같게도 주형은 ‘나 때는 이런 거 전혀 없었는데’ 하고 속으로 생각하며 계속 발을 움직였다. 겨울인데도 오늘은 날이 좋아 그런지 차가운 바람은 불지 않았다.

버스에서 오는 길 내내 재연의 생각을 했다. 놈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뜨문뜨문 기억나는 건 몇 개 없다. 아이스크림과 관련해서 뭔가 있는 건 확실한데 말이다. 아아. 주형은 늘어진 한숨을 내쉬며 버릇처럼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담배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고 있으니 저 멀리서 아이의 손을 잡고 정답게 걸어오는 어느 어른이 보였다. 보호자인 모양이다.

“아이, 씨.”

저런 사랑스러운 광경을 봤는데 담배를 계속 찾기는 좀 그랬다. 주형은 쯧, 하고 혀를 차며 지퍼를 끝까지 올린 채 그냥 주머니에서 손을 뺐다. 그 뒤 털레털레 어딘가로 향했다. 옛날과는 다르게 도로까지 새로 아예 정비한 데다가 건물도 없어진 게 많아 길을 알 수 없었다.

길을 잃었군. 주형은 익숙한 동네의 이방인이 되었다. 그렇게 두리번거리자 어느 놀이터가 보였다.

‘요즘 놀이터는 저렇게 생겼나 보네.’

예전에는 무슨 녹슨 철 몇 개 가져다 두고 놀이터라고 했던 것 같은데. 페인트도 다 벗겨져서는, 한참 만지다 보면 쇠 냄새가 손에 아주 배서 비릿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저렇게 예쁘게 마감된 철봉과 놀이기구라면 그런 피 냄새 같은 비린내도 나지 않을 듯했다.

주형은 홀린 사람처럼 그곳으로 향했다. 어울리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들어가지 못할 곳은 아니지 않나? 그는 다 큰 어른이 되어서야 제대로 된 놀이 문화를 바라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큰 덩치로 놀이터에 있는 기구를 만지작거리기는 좀 쪽팔려서, 그냥 벤치에 앉았다. 어릴 때 종종 생각했던 ‘저 아저씨는 뭐 하는 사람일까’라는 문장의 ‘저 아저씨’처럼.

그렇게 멍하니 있으니 아이스크림이 당겼다. 흠, 뭐. 별로 춥지도 않으니까. 주형은 지갑에 있는 구깃구깃한 지폐를 보았다. 신권도 아니고 손때가 잔뜩 묻어 누렇고 검은 때가 타 있었다. 구권이라 그런지 돈 냄새도 아주 강했다. 편의점으로 가 그 돈을 내밀고 콘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이건 옛날이랑 맛이 같네.”

이 동네도, 저번에 사 먹었던 과자도, 재연이 졸라 샀던 바 아이스크림도 다 변해 있었는데, 이 콘 아이스크림은 똑같은 맛이 났다. 그저 제 손이 좀 커져서 이 아이스크림이 아주 낯설겠거니 싶었다.

아이스크림을 빨았다. 어릴 때는 이 아이스크림이 너무 먹고 싶었다. 콘 아이스크림에는 초콜릿도 땅콩도 있는 데다가,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아주 달았다. 이제 생각해 보면 어린 주제에 알 건 다 알았던 게 아닌가 싶다. 우유가 가득 들어가 있어서 바닐라 향도 진하고 훨씬 달콤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거지.

한 번, 두 번 베어 먹고, 콘 아이스크림의 과자 부분을 먹었다. 어릴 땐 이게 진짜 비쌌는데, 지금은 외출하고 나와서 대충 먹을 수 있구나.

‘그러고 보니 이거 먹으려고 돈도 모았지.’

주형은 그렇게 끔뻑이며 어릴 때를 생각했다. 윤재연 그놈과 있었을 때는 이 아이스크림을 먹었던가. 콘 아이스크림……. 돈을 모았던 것 같은데. 꽤 모으지 않았었나? 저번에도 떠오른 거지만, 분명 두 개 정도는 사 먹을 수 있는 돈을 모은 적이 있지 않았나? 결국 못 먹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 돈은 어디에 갔지? 아니, 애초에 윤재연이랑 아이스크림을 어릴 때 사 먹었나?

“아이스크림…… 사 먹었던 적 있는 것 같은데.”

안 그러면 그 놈이 자꾸 아이스크림 타령을 할 리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마지막 대화가 아이스크림이라고 했으니까. 아,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우리 집이 야반도주를 한 게 아닐까? 그거겠군. 뭐야, 생각보다 엄청난 일은 아니구만.

김이 샜다. 하지만 해결된 느낌이 들지 않았다. 물음표가 자꾸만 떠올랐다. 가슴에 응어리가 진 게 무언가 진득하게 달라붙어 있는 것 같다. 멍한 얼굴로 다 먹어 치운 뒤 주형은 쓰레기통을 찾았다. 그중에도 주형은 재연의 생각만 했다.

주변을 돌아보자 은색 미끄럼틀이 보인다. 바닥은 모래가 아니라 폭신폭신한 재질로 되어 있었다. 홀린 듯 다가가 미끄럼틀을 봤다. 여전히 아이들은 이런 곳에다 낙서를 하는지 많은 게 있었다.

유나야낼 아짐9시 에 만나자

“귀엽다.”

물끄러미 낙서를 찾아가 보니 미끄럼틀에 얼굴을 들이밀고 서성거리는 이상한 아저씨의 꼴이 됐다. 큼, 하고 헛기침을 했다. 그 순간 무언가가 떠올랐다.

‘9시?’

9시……. 미끄럼틀. 주형은 정말 한순간 뇌에 팍 튀어 오르는 재연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수요일…… 알았어! 밖에서 먹어도 돼?’

‘밖에서?’

‘응. 꿈에서는 밖에서 먹었어. 놀이터에서 먹었는데, 미끄럼틀 밑에서 숨어서 먹었어.’

주형의 눈이 커졌다. 미끄럼틀 밑에서……. 아이스크림. 주형은 턱을 어루만지다가 숨을 급하게 들이켰다. 한 번 기억이 나니 봇물 터지듯 생각이 마구 밀려왔다. 무서울 만큼 선명한 기억이 빛바랜 형태로 머리에 남아 있었다.

그건 가장자리가 닳은 필름 같은 기억이었다. 하지만 중간은 진한 색을 띠고 있어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추억.

‘아냐! 형, 형이 사 줄게.’

‘웅……? 형아가?’

‘어. 형도 돈 있어. 근데, 오늘은 안 돼.’

‘그럼 언제? 나중이라고 하면 안 된다?’

그리고 나중이라는 말에 잔뜩 속은 아이의 얼굴을 했던 그 뾰로통한 재연을 생각했다. 순간적으로 치미는 미안함에 주형은 그만 자리에 주저앉았다.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무릎을 땅에 대고 멍한 얼굴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약속…….”

관자놀이를 짚은 주형이 씨발, 하고 중얼거리며 성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휴대폰을 들어 재연에게 전화를 했다. 평소보다 조금 길게 연결음이 들렸다. 1분 남짓이 지났을까, 이윽고 기다리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윤재연.”

-……아, 형.

“시간 됩니까?”

호기롭게 반말로 시작해 놓고 막상 목소리를 들으니 어색했다. 심장이 자꾸 고동을 울려서 힘들었다.

-그럼요.

전화 너머로 웬 큰 소리가 났다. 알루미늄 방망이가 바닥을 기는 소리 같았다.

“나랑……, 데이트하죠. 할 말이 있습니다.”

주형의 얼굴은 자못 진지했다. 하지만 불그스름했다. 그러나 그 감정이 재연에게 전해지지 않은 건지 그는 금세 승낙을 내리지 않았다. 의외였다.

-아……, 음.

“왜 그러십니까?”

-오늘은 나한테서 안 좋은 냄새가 날 것 같거든요.

“…….”

등줄기를 타고 알 수 없는 긴장감이 깃들었다. 무슨 냄새라고 한 적도 없는데 다 알 수 있었다. 마침 재연의 주변에서는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누군가가 고함을 지르는 음성이 들렸는데, 이상하게도 화를 내는 게 아니라 처절하게 울부짖는 듯한 뉘앙스였다.

“괜찮습니다.”

그래서 주형은 그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듯 말했다. 그런 건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다.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야 흔하다. 게다가 재연이라면 더욱 익숙할 테고.

“그것보단 지금 내가 이사님한테 해야 할 말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요? 알겠어요.

재연이 바닥을 내려다보며 엷게 웃었다. 바닥에는 유혈이 몇 방울 떨어져 있었다. 누군가의 코피였다. 그 피를 밟지 않기 위해 옆으로 발을 옮기자 또각, 하고 맑은 소리가 울렸다. 눈을 흘기며 입술에 검지를 대자 쥐 죽은 듯 주변이 조용해졌다.

-어디서 데이트하고 싶어요? 일 마무리하면 바로 갈게요.

“섹스할 수 있는 곳이요.”

-…….

전화를 받고 있던 재연의 속눈썹이 천천히 들려 올라갔다. 느긋한 얼굴로 놀란 그는 처음으로 당황하고 말았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치미는 흥분과 기쁨에 씩 웃었다. 볼우물이 쏙 들어갔다. 젖살이 모두 빠진 뒤에는 조금만 웃어도 야하고 귀여운 보조개가 나타나곤 했다.

“야외 말고, 떡칠 수 있는 곳.”

-할 말이 몸의 대화였어요?

“말로도 하고 몸으로도 할 겁니다.”

-쑥스러운데.

그렇게 말을 해도 재연은 이미 들떠 있었다. 그를 어떤 얼굴로 보면 좋을지, 일을 마무리하고 나서 무슨 옷을 입고 무슨 향수를 뿌려 주형을 유혹하면 좋을지 고민됐다. 피 냄새와 역겨운 시체 냄새가 배지 않도록 해야겠다. 아, 어쩌면 준비하는 중 두근거리다 못해 잠시 쓰러져서 외출 준비 시간을 10분이나 더 늘려야 할지도 모른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내숭 부리지 말고 어디서 떡칠 건지 말해.”

주형은 마음이 급했다. 재연이 그렇게나 쓸쓸한 얼굴로 중얼거리며 알길 바란다던 그 과거를 떠올렸는데 신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재연의 반응이 궁금했다.

-호텔에서 봐요. 지금이……, 음, 네 시구나. 여섯 시까지 갈 테니 보내준 주소로 가 있어요.

“예.”

얼른 전하고, 재연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그는 아마 기뻐하겠지. 주형은 누군가에게 이렇게 의지하는 게 처음이라 낯설면서도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누군가를 믿는다는 게 이런 거였을까. 이렇게 관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모든 패를 보여주고 신용을 사는 놈은 처음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속이 훤히 보였으면 좋겠다고, 주형은 생각했다. 차라리 재연처럼 과격한 만남이더라도 지독한 순애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는 삶이 좋지 않나 싶기도 했다.

-먼저 씻지는 말고요.

“……음흉하게 들립니다.”

-하하.

또렷하고 밝은 웃음이었다. 말갛고 예쁜 얼굴에 보기 좋게 생긴 눈가의 주름이 떠올랐다. 뽀송뽀송한 낯이 머릿속을 유영했다. 주형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굳어 있었다. 따라 웃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로 긴장이 됐다.

-형이 먼저 전화해 주니까 좋네요.

“아……”

-사랑해요.

쪽, 하는 귀여운 소리와 함께 재연의 전화가 먼저 끊겼다. 주형과는 다른 성격인데다가 어려서 할 수 있는 대담한 애정 행각이었다.

주형은 처음 겪어 보는 일에 무심코 으으, 하고 이상한 소리를 냈다. 물론 이 짓이 모두 다 인복이 없는 제게는 과분한 일이라는 걸 알지만 당장 떠오른 게 있는 이상 맡길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저놈이 지금은 최선이니까.’

이제는 그 사랑이 싫지도 않다. 주형은 친히 덫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심지어 기껍고 두근거리는 얼굴로 말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아무것도 모를 주형에게 있어 그건 명백한 행복이나 다름없었다.

주형은 일부러 호텔에 빠르게 가고 싶어서, 성급한 걸음으로 버스 정류장을 찾았다. 적당히 차가운 날씨가 봄처럼 느껴졌다. 이제는 마지막으로 남은 윤재연을 정말로 마음속에 온전하게 품은 모양새였다.

***

6시까지 호텔로 향했다. 호텔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 들어가서 예전에 먹기로 했던 아이스크림도 두 개 샀다. 윤재연의 이름을 말했더니 직원이 눈에 띄게 성실해진 모습으로 안내를 해 주었다. 심지어 엘리베이터까지 안내해 주겠다며, 혹 짐은 없냐고 벨보이를 부르기까지 하기에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저 혼자 가도 됩니다. 짐은 딱히 없어요.”

“알겠습니다. 호출하고 싶으실 때는 룸에 있는 전화를 통해 말씀을 주시면 됩니다. 혹 번호를 누르기 번거로우실 때는 버튼이 있으니 그걸 이용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이런 대우를 남에게 받는 건 처음이라 떨떠름했다. 주형은 재연이 없는 호텔 방으로 들어오고 나서야 그들의 성실함이 왜 그렇게 두드러졌는지 깨달았다.

“……이런 방이라니.”

놀랐다. 저번에 재연이 데려다주었던 호텔도 적잖이 컸지만, 그때는 경황이 없어 제대로 둘러보지 못했다. 이번에는 홀로 두리번거릴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주형은 슬리퍼로 꾸물꾸물 갈아 신고 안을 구경했다.

원룸을 서너 개는 합쳐 둔 듯한 크기였다. 그럴듯한 부엌에 거실, 게다가 침실까지 모두 잘 나누어져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깔끔한 호텔의 이불을 만지작거리다 말고, 주형은 혹시 제게 냄새가 나는 건 아닌가 싶었다.

‘씻어야겠군.’

괜히 옷에 코를 박고 킁킁거렸다. 딱히 악취까지 나진 않았지만 오는 길에 땀이 조금 났으니까. 주형은 이 공간에서 가장 이질적인, 낡은 패딩을 옷걸이에 걸어 벗었다. 나무 옷걸이의 갈고리 부분이 반짝거렸다. 이 룸에 있는 모든 게 고급스럽고 우아했다. 이유 없이 주눅이 들어서, 그는 후다닥 벗고 씻어버렸다.

“후…….”

숨을 푹 내쉬며 익숙하지 않은 가운을 걸쳤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꽁꽁 싸매고 나왔더니 허리가 유난히 두드러지게 쏙 들어갔다.

“나왔어요?”

“아…… 이사님.”

머리에 수건을 얹고 있다가 황급히 내렸다. 젖은 머리칼이 반짝거렸다. 주형은 따듯한 물로 적셨던 몸을 얕게 달구고 있었다. 그의 몸에서는 온기가 가득했다. 덩달아 불그스름하게 물들어 있는 뺨이 재연의 눈에 가득 들어왔다.

“좋은 냄새.”

재연은 방금 온 건지 옷을 모두 갖추어 입고 있었다. 아직 코트도 벗지 않고 목도리만 푼 채 주형에게 다가와 그를 꼭 껴안았다. 수건처럼 부드러운 재질의 도톰한 가운이 재연의 코에 닿았다. 포근하고 사랑스러운 향이 났다.

“방금 오셨습니까?”

“응. 근데…… 저기 있는 봉지는 뭐예요?”

보니까 아이스크림 같던데. 재연이 의아하게 물었다. 거실 쪽을 가리키는 손을 따라 시선을 옮겼더니 정말 널브러져 있는 검은색 봉지가 보였다.

“아, 씨……. 까먹었네.”

주형은 구경을 하느라 아이스크림을 냉장고에 보관하지도 못했다는 걸 깨닫고는 아, 하고 신음했다.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었어요?”

“……아, 그게.”

“음?”

재연은 주형을 어떻게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다. 그가 이렇게 먹음직스러운 얼굴로 향을 풍기며 다가오면 도리가 없었다. 그가 가운을 입고 쇄골을 드러낸 것만 해도 욕정을 일으키기에는 충분했다. 그래서 그가 머뭇거리는 이 시간이 조금 야속했다.

코트를 슬슬 벗어 조금 조급한 손길로 걸고 온 뒤에는 봉지를 들고 왔다. 봉지에는 어느새 흐물흐물해진 콘 아이스크림이 보였다. 조금만 만져도 물기가 묻어 나오고, 물컹하게 녹아 있을 아이스크림이 떠올랐다.

“기억……이, 났습니다.”

“…….”

재연은 굳이 무엇이냐고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이스크림 두 개를 잡아 꺼내고 있던 그의 손길이 멈추었다.

“그래서…….”

“…….”

“그래서, 너무 늦었는데…… 사서, 왔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로 풀면 좋을지 몰라서 그냥 무작정 말했다. 주형은 제 말주변이 없다는 사실에 애석해했다. 그러기도 잠시 재연과 눈이 마주쳤다. 재연의 얼굴은 아주 맹목적인 짐승처럼 보였다.

“근데 다 녹았, 윽!”

그 순간 재연이 손을 뻗어 주형을 침대에 확 눕혀 버렸다. 거친 행위였다.

“하아, 형.”

눈을 휘둥그레 뜨고 가만히 보고 있었다. 재연의 얼굴이 한순간에 변했다. 게슴츠레 풀린 눈동자가 일렁이며 주형의 몸을 천천히 훑고 있었다. 미리 씻은 건가. 아마 본인이 좋으려고 씻은 거겠지만 이 순간만큼은 저를 위해 씻은 것만 같았다. 달콤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러게요……. 다 녹았어요, 아이스크림이.”

제가 항상 쓰는 바디 워시와 다른 향기가 나서 이색적이었다. 주형의 몸을 유려한 손길로 설설 더듬었다. 꽤 많이 먹였다고 생각했는데도 원래 근육이 많아서 그런지 살집이 별로 만져지지 않았다. 재연은 이러나저러나 주형이 참 예쁘고 좋았다.

“끈적하게 녹아서 빨아 먹어야 될 거 같아요, 그렇죠?”

“흐응, 으…… 그, 그렇, 하아.”

금세 재연이 주형의 앞섶을 만졌다. 주형은 방금 씻고 온 데다 이상하게 달아 있는 제 몸에 비해 너무도 차갑고 딱딱하게 느껴지는 손길에 발정하고 말았다. 무심코 늘어진 신음을 내서 부끄러워질 참이었는데, 재연은 그런 것 따위는 상관도 없다는 듯이 그냥 다정하게 말했다.

“엎드려 봐요.”

“…….”

주형은 아주 잠시 머뭇거리다가 몸을 뒤집었다. 그리고 엎드린 채 무릎을 침대에 대고, 엉덩이를 내밀었다. 가운을 워낙 세게 여민 탓에 몸 선이 유려하게 모두 드러났다. 재연이 그런 그의 가운을 잡아 뜯듯 벗겼다. 거센 손길 때문에 금세 엉망이 되어 그의 앞섶이 모두 드러났다. 사이에 숨겨져 있던 것이 무색하게 좆은 이미 바짝 긴장해 있었다.

“아, 초콜릿도 있네.”

아이스크림의 포장지를 보자 더욱 기대가 됐다. 초콜릿과 바닐라가 섞여 있다니. 재연은 애욕으로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아이스크림을 확 잡아 뜯었다. 회사에서 손잡이랍시고 만들어 준 튀어나온 부분을 잡으니 그 사이로 이미 녹아버린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주르륵 쏟아졌다. 작게 덩어리가 진 부분을 비롯해 끈적하고 연한 색의 크림이 주형의 엉덩이를 푹 적셨다.

“히으, 으, 차가……!”

“형이 까먹어서, 다 녹아 버렸잖아요.”

원망 어린 목소리였다. 주형은 뒤를 보려고 하다가도, 금세 사이를 간드러지게 핥는 혀 때문에 쉬이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러자 재연의 혀에 아주 달콤한 향기가 깃들었다. 주형의 피부에서 나는 냄새와 아이스크림이 섞여 미칠 듯 먹음직스러운 향기가 났다. 마약 같았다. 코로 흡입하고 있으니 취할 듯싶었다.

“10년 넘게 기다렸더니…… 하아, 씨발, 너무 늦어서 울 뻔했어요.”

주형과 함께하는 순간을 너무도 간절히 바랐던 탓인가 이 맛이 약물처럼 느껴졌다. 점점 몸이 달아오르는 게, 어쩌면 주형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요망한 짓을 해 놓았을지도 모른다는 허황된 생각까지 들었다. 그가 미약을 탔어도, 마약을 탔어도, 청산가리 따위를 탔어도 상관없었다. 재연은 이 황홀경을 오롯하게 욕정했다.

“흐응, 아, 이, 이상, 흐으……!”

“이렇게 늦었는데 설마 아이스크림, 윗입으로 먹여 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죠?”

한편 주형은 제 하반신을 가득 적신 아이스크림 때문에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재연과 한 섹스가 언제는 편한 적 있었나 싶지만, 계속 어깨에서 흘러내리며 이리저리 피부를 쓸고 가는 가운과 허벅다리를 가득 적시기 시작한 아이스크림 때문에 기분이 야릇했다. 게다가 엄지와 중지로 자지를 감싸고 귀두와 끝부분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는 탓에 흥분이 자꾸만 일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더니 피도 이상하게 흘러서 미칠 것 같았다.

“아, 씨발……. 존나 움찔거려.”

아랫입으로 먹으니까 달아요? 재연이 그리 말하며 주형의 앞섶을 만지작거렸다. 혀가 움직이며 숨결이 사타구니와 음부를 드나드는 탓에 소름이 돋도록 진한 성감이 일었다. 주형은 베개를 껴안은 채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늘어진 신음과 동시에 그가 허리를 꾸물거렸다.

“맛있어요, 형?”

“하, 하응…… 으응, 모르, 흣!”

뒷구멍으로 받고 있으니 맛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재연의 혀가 살랑거리며 도톰한 살을 짓누르는 게 싫지 않아서, 그는 계속 엉덩이를 움찔대기 바빴다. 콕콕 찌르는 감각이 한 번 반복될 때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왠지 무언가 나올 것처럼 자꾸 배가 당겼다. 찌릿찌릿했다.

“나는 너무 맛있어요, 형.”

주형은 힘을 주었다가 풀 때마다 끈적거리며 다물렸다가 열리는 구멍을 느꼈다. 아이스크림이 녹아서 그런 듯했다. 그렇게 저도 모르게 구멍을 벌름거렸더니 재연이 커다란 손으로 주형의 엉덩이를 때렸다. 시뻘겋게 달아오르도록 세게 후리자 주형이 히끅, 하고 딸꾹질을 하며 베갯잇에 얼굴을 묻었다. 너무 놀라 말도 잘 안 나왔다. 따끔한 게 벌을 받는 느낌이었다. 하지 말라며 고개도 젓지 못했다.

“흐, 흐으.”

“하아, 혀, 잘리겠어요.”

순간적으로 숨이 막힐 뻔했다. 재연은 눈을 가늘게 뜬 채 그의 구멍 사이로 얼굴을 묻고 숨을 내쉬었다. 가쁘게 내쉬자 솜털이 바짝 서는 게 느껴졌다.

“왜……, 혀 넣고, 평생 살고 싶어?”

작게 돋은 닭살을 미려한 손길로 어루만졌다. 가까이 있으니 이런 섬세한 속사정도 다 보여서 좋았다. 이런 거에 반응하고, 흥분하고, 당황하고 마는 주형이 자못 사랑스러웠다.

“씨발, 로터라도 항상 넣고 다닐래요? 혀랑 비슷한 걸로 형 안 뒤집어 줄까?”

“흐, 아니, 그, 그냥 숨, 쉬고 있었, 습니다. 그러지, 흐으……!”

필사적으로 참았다. 구멍을 빨아주는 건 너무 오랜만인 일이기도 하고, 솔직히 생각도 못 했던 일이라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그가 혀를 요사스럽게 놀리는 통에 그 광경이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부드럽지만 거칠게 제멋대로 하는 그의 성애가 마냥 싫지 않아 곤란했다. 주형은 천천히 망가지는 사람처럼 몸을 벌벌 떨며 몸에 힘을 주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뒤를 조금 빨렸다는 것만으로 사정을 할지도 몰라서. 그건 정말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숨만 쉬었는데 이렇게 되는 게 사람이에요?”

어이가 없어서 허, 하고 헛웃음을 흘렸다. 코로 나오는 표독스러운 숨이 구멍 사이를 후볐다. 뒤를 좀 핥아 주고, 아이스크림으로 장난을 쳐 주었더니 좆을 이렇게 세우는 게 재미있었다. 그렇지만 귀엽기도 했다. 아마 아무런 반응 없이 욕만 했으면 강간을 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기분이 아주 별로였을 테니까. 재연은 혀를 길게 내밀어 주형의 구멍에 다시 길게 혀를 처넣었다. 초콜릿 냄새가 가득했다.

“그건 짐승이거나 걸레지……, 어딜, 씨발.”

거짓말을 해. 재연이 주형의 구멍에서 혀를 빼고 다시 엉덩이를 때렸다. 너무 흥분해서 분간이 안 됐다. 달콤하게 코를 찌르는 초콜릿과 바닐라 향기가 가득했다. 혼미할 정도였다. 주형이 이렇게 야한 모습으로 엉덩이를 내밀고 후들후들 떠는 걸 보니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만큼 망가뜨리고 싶었다.

“걸, 레는, 씨, 학, 흐…….”

주형은 그가 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느끼면서도, 아랫배를 뭉근하게 하는 감각을 놓지 못했다. 묵직한 감각이 무섭도록 지독했다.

“아이스크림, 아직 더 남았어요.”

남은 아이스크림을 가득 부어버렸다. 모두 녹아서 그런지 밑에 고여 있던 초콜릿과 아이스크림 액체가 모두 쏟아졌다. 그런 뒤에는 게걸스럽게 움찔거리는 구멍에 손가락 두 개를 한 번에 처넣었다. 찌걱거리는 소리와 동시에 주형이 허리를 팍 튕겼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음란한 요부 같았다. 보기만 해도 쌀 것처럼.

“윽! 아, 아파!”

“으응, 괜찮아질 거예요.”

재연이 그를 달래며 손가락을 더욱 세게 넣었다. 바로 아까 손톱을 정리했으니 찌르지 않는 한 다칠 일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나 말캉하고 쫀득한 살이 찢어질 리는 없었다. 재연은 유려한 손가락을 험하게 놀리며 주형을 괴롭혔다. 그러기도 잠시, 몇 초 동안 넣은 채 가만히 있었다. 그를 놀리기 위해서 한 일이었다.

“흐…… 하아.”

폭풍처럼 휘몰아치던 흥분이 가시고 이물감이 남았다. 주형은 숨을 내쉬면서도 구멍을 벌름거렸다. 버릇처럼 몸에 밴 일이었다. 애초에 지친 탓에 몸을 쉬이 가누기가 어려웠다. 그러고 있으니 재연이 나지막이 말했다.

“힘들어요?”

다시 해 줄까? 재연은 내심 그 말을 바라는 듯 짐짓 다정하게 유도했다. 그러고 있으니 거친 호흡을 잇고 있던 주형이 잇새로 겨우 목소리를 냈다. 구멍을 꽉 조이며 앞으로 조금 기어가더니 야하게 허리를 휜 자세로 몸을 조금 들었다. 재연은 그렇게 알 수 없이 적극적으로 구는 주형을 멍하니 바라봤다.

“……이사님.”

“응?”

“잠, 시만 빼 주십시오. 할 게 있습니다.”

조금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주 중대한 결심을 했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침과 끈적함으로 남아 있는 구멍이 허전하게 느껴져서, 주형은 스스로가 낯설었다. 이렇게까지 변태일 줄은 몰랐다. 이런 섹스에 눈을 뜨고, 성욕에 취하고, 욕정으로 젖은 좆과 구멍을 어떻게 할 줄 모르면 내일이 두려워질지도 모른다. 내일은 좀 더 강하고 무서운 짓을 하자고 즐거운 기색으로 속살거리는 재연에게 잡아 먹힐 것만 같아서.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주형은 재연에게 홀린 것처럼 그냥 시도했다.

“알았어요.”

주형의 구멍에서 손가락이 빠져나갔다. 주형은 심호흡을 하다가, 남은 아이스크림 하나를 곁으로 들고 왔다. 그 뒤 재연을 눕힌 뒤 그를 등진 채 배 위에 앉았다. 셔츠가 작게 구겨짐과 동시에 주형의 투박한 손길이 벨트를 풀었다. 무슨 배짱인지 그는 망설임 없이 속옷까지 벗겨 버렸다. 턱 튀어나오는 좆이 꼿꼿하게 서 있었다. 이런 흉물을 잘도 수납하고 있었던 건가, 싶어 새삼스럽게 겁이 났다.

하지만 주형은 재연에게 무언가 선물을 해 주고 싶었다. 기다렸다는 놈이 좋아할 만한 것을 말이다. 그래서 아이스크림을 들고 자지에 확 뿌려 버렸다. 읏, 하고 작게 울리는 고상한 신음과 동시에 주형은 입술로 자지를 물었다. 몸을 푹 수그린 채 좆을 잡고 음낭을 만지작거리자 뒤에서 깊은 음성이 들렸다.

“형……, 한다는 게, 이거였어요?”

“우으…… 응.”

좆을 문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며 아주 얕게 뒤를 돌아보니 재연의 뺨이 보였다. 아주 흐릿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얼굴이 상상돼서, 그냥 홱 다시 앞을 바라보고 말았다. 생각만 해도 아래가 뻐근해졌다. 이런 건 너무 변태 같다. 무심코 다리를 오므리니 발기한 성기가 느껴졌다. 아마 재연에게도 모두 보이겠지.

‘쪽팔려.’

그래서 그냥 고개를 푹 숙이고 얼른 혀를 내밀었다. 아이스크림은 아주 달콤했다. 크게 차갑지도 않았지만 뜨거운 자지와 함께 물었더니 녹을 것처럼 달콤하고 황홀한 맛이 났다. 바닐라가 가득 젖은 탓에, 왠지 정액처럼 보이기도 했다. 정액보다는 묽어 구분이 되니 오히려 더 야하게 느껴졌다. 음식으로 장난을 치면 벌을 받는다지만 이렇게 음란한 모습의 기둥을 보고 있으니 참기 어려웠다.

주형은 재연이 이상하게 사랑스럽게 느껴져서, 그냥 정신을 놓고 봉사해 주었다. 날, 기다렸다니. 그 누구도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데, 넌 나를 기다렸다고. 바라봐 준다고. 이해해 주고, 자리를 만들어 주고, 있을 곳을 준다고. 알 수 없이 만족감이 가득 차올랐다.

“우웅, 우, 흐읍.”

쪽쪽 빨아들였다. 하지만 금세 윗부분에 있던 아이스크림이 다 동이 나서, 주형은 고개를 돌려 옆면을 핥아먹었다. 딱딱하고 커다란 살 기둥은 혈관이 드러날 정도로 흥분해 있었다. 고개를 더욱 수그리자 절로 허리가 들렸다. 뒤에서 가만히 주형이 다리를 상스럽게 벌리고 움찔거리는 걸 보고 있던 그가 사이로 손을 푹 처넣었다.

“하윽!”

“으응, 더……. 깊이, 물어.”

모자랐다. 아무리 탐해도, 무얼 쥐어도, 어떻게 희롱해도 모자랐다. 그는 성감을 꾹 눌러 참았다. 주형의 입안이 축축하고 음습해서 기분이 좋았으나 벌써 싸지르기 싫었다. 주형이 울면서 먹던 것을 게우고 싶어할 때까지 괴롭히고 싶었다. 그의 입안에 넣고 있는 게 좋았다. 사정을 하면 꼭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듯 눈을 부라리는 주형을 생각하면 언제나 아쉬웠다.

“흐, 아…… 아으, 웁.”

그가 자꾸 종용하기에 입술을 벌려 다시 물었더니 아이가 맛있는 것을 잔뜩 먹을 때 내는 귀여운 소리가 났다. 하압 하는 소리. 재연은 그런 주형의 뒷구멍을 빤히 바라봤다. 자꾸 움찔거려서 무시할 수가 없었다. 씹질을 좀 자주 해서 그런지 구멍이 풀려 있는 듯 보였다. 통통한 엉덩이를 지분거리자 사랑스러운 감각이 손에 가득했다. 주형은 커다란 손이 제 피부에 욕망을 덕지덕지 묻히는 것을 가만히 받아들였다.

“더 먹어요, 형. 엄청, 맛있어.”

달아요. 재연이 그리 속살거리며 주형의 구멍에 다시 혀를 집어넣었다. 그러고도 괴롭히는 게 모자라서 혀를 넣은 채로 손가락을 비집어 넣었다. 구멍 안을 처박고 있던 제 손가락을 살살 빨며 고개를 돌렸더니 주형의 몸에 전기가 통한 듯 찌릿찌릿 흔들렸다.

“형도 이렇게 먹고, 싶을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해 줄 걸 그랬어요.”

구멍에 입술을 가까이 댄 채 사이로 말을 했더니 이상야릇한 감각이 감돌았다. 자르르 올라오는 소름이 온몸에 번졌다. 짜릿함인 듯했다. 주형은 저 말을 하면서도 계속 혀를 잔뜩 넓혀 안을 헤집는 재연 때문에 절로 입을 벌렸다. 동요하다 못해 살 기둥을 가득 물었더니 달콤한 향기와 정액의 비린 맛이 한데 섞였다.

“앙, 아읍, 읏!”

너무 강한 자극이 이어졌다. 몸이 무너질 것만 같은데 재연의 굳건한 손이 붙잡고 있어 마음대로 할 수도 없었다. 주형은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하며 좆을 핥았다. 힘들어서 드러난 흰자위가 위태로운 물방울을 품고 있었다.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커다란 성기를 문 채 숨을 내쉬기가 무섭게, 성격이 급한 재연이 허리를 또 튕겼다. 목구멍을 억지로 열어 처박았다.

“형……, 하아, 형.”

손가락으로 안을 헤집었다. 그러고는 정신을 차리기 어렵게 난잡한 손길을 움직여 주형의 좆을 콱 쥐었더니, 일순 그의 자지가 꾸물거리며 액을 잔뜩 뱉어냈다. 진하게 하얀색을 띠고 있는 액이 재연의 하얀색 셔츠를 적셨다. 끈적하게 서서히 스며들기 시작하고, 그의 자지가 시작되는 뿌리 가까이 흘러 닿았다.

“나는, 못 쌌는데.”

꾸역꾸역 참고 있어서 아랫배가 꽤 당겼다. 하지만 참을 만했다. 재연은 주형의 입안을 설설 긁었다. 그가 위로 올라타고 있어 묵직할 법한데도 근육을 꿈틀거리며 허리를 빙글빙글 얕게 돌렸다. 그러자 주형의 도톰한 혀가 느껴졌다. 뭉뚝한 혀에 돋은 돌기를 야살스럽게 문질렀다.

“아이스크림 말고 내 정액은, 싫어요?”

“흐, 그게, 그게 아니, 흐웁!”

“잘 먹어야죠.”

가슴 키우려면. 재연이 주형의 귀두를 문질렀다. 천천히 엄지와 검지로 살살 건드렸더니 주형의 자지가 또 벌써 딱딱해졌다. 이렇게 욕정도 많고 발정도 잘하니, 매일매일이 발정기를 맞은 짐승 같았다. 재연 또한 주형을 보기만 해도 이런저런 야한 짓을 하고 싶었는데 그가 이렇게 잘 따라주니 더없이 기뻤다.

“하아……, 흣.”

“큽, 커흑.”

둔탁하게 입천장을 때리는 소리와 동시에 좆에서 물줄기가 잔뜩 나왔다. 핏, 핏 계속해서 굵직하게 입천장을 때렸다. 귀두와 좆을 거칠게 문질러댄 탓에 목구멍과 입안이 모두 너덜너덜했는데, 틈도 없이 잔뜩 싸 버리니 주형이 곤란한 듯 숨을 헐떡거렸다. 그리고 그제야 힘을 조금 잃은 틈을 타 주형이 고개를 들고 곁으로 쓰러졌다. 다행히 재연이 손장난을 하고 있지 않아 풀려날 수 있었다.

“흐, 흐으…….”

주형이 입을 벌린 채 늘어졌다. 그의 혀 위에는 정액이 잔뜩 고여 있었다. 게슴츠레 뜬 눈두덩이 도톰하게 드러났다. 주형은 잔뜩 지친 눈치로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입을 다물면 정액이 가득 느껴져서 왠지 닫기 싫었다. 지치다 못해 넋이 나간 얼굴로 개구호흡을 하니 재연이 성큼 다가와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탁액이 잔뜩 있는 혀를 감쌌다. 채도가 미묘하게 다른 혀가 서로 섞이고, 재연과 주형은 정액을 천천히 삼켰다. 이상한 맛이 가득해서 비위가 상할 법도 했지만 몸이 달아 있어 그런 건 잘 느껴지지도 않았다. 주형은 엉망이 된 얼굴로 재연을 먼저 밀어냈다. 누워 있던 몸을 편히 누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형, 왜 씻었어요.”

“땀이 났길래 씻는 게 맞을 거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랑 씻으면 되는데.”

“……그건, 좀.”

주형은 그리 말하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아직 제대로 된 삽입은 하지도 않았는데 구멍이 끈적거렸다. 아마 아이스크림 때문일 거다. 그는 이상하게 느껴지는 몸을 움직여 재연을 눕히고, 그의 위에 천천히 올라탔다. 어중간하게 벗겨진 그의 몸이 두드러졌다. 엉덩이를 살포시 내밀고 배를 꾹 눌러 재연을 반쯤 제압했다.

“형이 해 주게요?”

그가 셔츠 위로 손가락을 움직여 바르작거리는 게 좋았다. 재연은 몸을 편하게 눕히면서도 주형의 허벅지 바깥쪽을 쓰다듬었다.

“이거…… 좋아, 하시는 거 같아서요.”

“좋아하죠.”

주형이 이렇게까지 해 주는 게 감동적이었다. 그가 모든 걸 떠올리면 죄악감에 차서 뭐라도 해 줄 거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대단한 선물을 주려고 하다니. 제 몸을 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재연은 제 좆을 구멍 가까이 가져다 대고 있는 주형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렇게 야한 몸인데도 은근히 손버릇이 어색해서 때로 방황하는 얼굴을 할 때면 더없이 흥분이 됐다.

“난 사실 박는 게 취향인데 형한테라면 박혀 줄 수도 있을 거 같아요.”

“…….”

“그렇다고 해서 박혀 준다는 건 아니고.”

그리 중얼거리며 재연이 다리를 벌렸다. 무릎을 세워 허리를 움직이기 좋도록 자리를 잡자 주형이 허벅지를 발발 떨었다.

허리를 바르작거렸더니 주형의 구멍으로 귀두가 쑥 들어갔다. 아무리 귀두가 말랑하다고 해도 그 정도 굵기라면 예외였다. 주형은 평소에는 절대로 보여주지 않는 아찔한 얼굴을 보였다. 당황한 나머지 유약해진 얼굴.

“하으…… 잠, 잠시, 만.”

“형이 먼저 올라왔는데.”

재연은 조금 억울했다. 이렇게 자극적인 자세로 다리를 먼저 벌리고 만진 게 누구인데 잠시만 가만히 있으라니, 잔인했다. 평소에 얼마나 저를 좋아하는지 알면서 저러는 건 놀리는 거나 다름없었다. 후우, 하고 깊이 한숨을 내쉬며 눈을 지그시 눌러 감았다. 좆이 꽉 억눌렸다. 구멍도 작은 주제에 위에 올라타서 어떻게 해 보겠다는 꼴이 너무 귀여웠다.

“나 자지 터질 거 같아요……, 형.”

“참, 아 보십시오. 조, 조루도 아니고. 흐, 흐응…… 읏.”

힘을 겨우 풀며 조금씩 주저앉으려던 찰나에 재연이 허리를 푹 튕겼다. 이런, 배려라고는 하나도 없는 새끼! 주형은 원망 어린 눈길을 지우지 못하며 몸을 흔들었다. 턱이 천장으로 향했다. 날카롭고 고매한 선이 드러났다. 어느새 팔을 아주 조금 가리고 있을 뿐인 가운이 작게 나부끼고, 쇄골이 선명하게 도드라졌다.

“하윽!”

“미운 말 자꾸 할 거예요?”

“씹, 윤, 윤재, 연, 가만히, 흐으, 가만히……! 아!”

재연이 허리를 자꾸만 움직였다. 그의 좆을 엉덩이로 문 채 상체를 꼿꼿이 세우고 있으니 너무 깊이 들어와서 무서웠다. 혹시나 싶어 배를 바라봤더니 그림자가 져 있었다. 명백히 자지의 모양이었다. 주형은 히끅, 하고 또 딸꾹질을 하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한두 번 본 것도 아닌데 볼 때마다 낯설고 부끄러웠다. 잇새로 타액과 함께 흐르는 신음이 손에 막혔다.

“형이, 자꾸 자극을 했잖아요, 응? 열심히 참고 있는데, 조루라니……, 너무 서러워서 울지도 몰라요, 내가.”

“흑, 응…… 흐읏!”

“나 울면, 형이 책임져 줘요?”

아무리 그래도 조루라니, 주형이 이때까지 한 말 중 가장 당황스러웠다. 무슨 일만 있으면 핏, 핏 싸대는 제 형이 그런 말을 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재연은 그렇게 얄미운 말을 하면서도 꿀이 떨어질 듯 달콤한 시선으로 주형을 바라봤다.

그는 제 배에 올리고 있던 손도 놓고 이제는 팔을 늘어뜨린 채 허리를 휘고 엉덩이를 잘게 흔들고 있었다. 추걱, 추걱 좆을 아래로 받아먹으면서도 탄탄한 몸이 마음에 들었다. 무슨 짓을 해도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아서.

“형, 더…… 넣어야죠.”

“윽! 너무, 깊, 흐, 흐으…… 흐.”

“더 넣어야 잘 느끼고, 잘 쌀 거 아니야.”

주형의 몸이 벌벌 떨렸다. 몸을 살짝 일으켜 주형의 허벅지를 꽉 잡은 채 허리를 튕겼더니 아주 깊이 쓸려 들어갔다. 재연도 거의 처음 맛보는 듯한 위치에 황홀경을 느꼈다. 이렇게나 깊이 처박고 있으니 그의 몸을 정말로 모두 다 가진 듯 기뻤다. 뱃가죽에 생긴 그림자를 보자 참을 수 없이 성욕이 차올랐다.

“하아, 형…… 이리 와요.”

좆을 빼고 오라는 건지 그냥 몸을 당기라는 건지 알 수 없어서 주형은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러니 재연이 몸을 일으켜 주형을 꽉 껴안았다. 주형은 갑작스러운 이끌림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재연의 어깨에 얼굴을 푹 묻자 그 특유의 좋은 냄새가 가득 풍겨왔다.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눈이 슬슬 풀렸다.

재연이 주형의 고개를 들게 했다. 입술이 가득 닿도록 고개를 비스듬히 돌려, 주형의 입술을 베어 물었다. 살짝 말라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아주 말캉한 연붉은 것이 입술 사이에 닿았다.

“형.”

이마를 맞대고 배시시 웃었다. 속눈썹을 가득 적시고 있는 눈물은 한 번 깜빡일 때면 다시 흘렀다. 재연은 주형을 이토록 가까이서 보는 데에 동해 울고 있었다. 언제부터 울고 있었는지 잘 몰랐다. 그 모습을 본 주형은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며 재연의 목에 팔을 감싸 안았다.

“울지 마십시오, 이사님.”

“나……, 이름.”

재연이 어리광을 부렸다. 해 달라며 주형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애교를 피우자 주형이 눈을 끔뻑였다. 이런 모습도 싫지 않았다. 사랑스럽다. 재연의 우는 얼굴이 눈에 아른거려서, 주형은 재차 고쳐 안아 주면서 속삭였다.

“……재연아.”

주형은 뜨문뜨문 말을 이었다. 눈물로 말라붙어 있는 입술을 뗄 때마다 촉, 하는 가벼운 소리가 났다. 재연은 그 소리를 들으며 주형의 몸에 잔뜩 기댔다. 녹을 것처럼 표정이 편안해졌다.

“울지 마.”

“네……, 형.”

말을 고분고분하게 들었다. 재연은 이 순간을 기다렸다. 주형이 정말로 마음을 열고 제게 이름을 다시 불러 줄 때. 그러면서도 사랑한다는 티를 내 줄 때. 언제는 이름도 안 되고, 만지는 것도 안 된다고 하더니 이제는 이렇게 착하게 앉아 안겨 있지 않나. 재연은 가슴이 터질 것처럼 부풀었다. 그러고 있으니 주형의 목소리가 또 조곤조곤하게 들렸다. 섹스를 하면서 울어서 그런지 깊이 가라앉아 있었다.

“너, 절, 대로 마음대로…… 어디, 가면 안 돼.”

주형은 눈에 힘을 푼 채 지친 입술을 겨우 움직였다. 이유 없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목젖에 울음과 흥분이 어려 있었다. 이렇게 애쓰고 있는데, 이토록 저를 오롯하게 봐주는 놈은 처음인데 그가 무작정 떠나 버리면 아주 괴로울 것 같았다. 슬픔을 떠나 그땐 정말 고통을 느낄 듯했다. 주형은 더 이상 누구에게 배신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 염원을 담아 울먹거리며 말했더니 재연이 듣고 싶은 말을 해 주었다.

“으응, 당연하죠.”

재연이 눈을 억지로 마주치며 물었다.

“형…… 나밖에 없죠?”

나지막한 목소리였다.

“형도 나밖에 없는 거 맞죠?”

거듭해서 묻고 집착했다. 그러면서 주형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허벅지를 꽉 짓눌렀다. 아플 정도로 느끼는 부분을 자지로 후리자 주형이 몸을 떨어댔다. 좆물이 줄줄 흐르며 서로의 옷과 배를 적셨다. 톡 튀어나온 그림자를 보니 정말로 기대가 됐다.

“대답을 왜 안 해.”

“흐아!”

크게 몸을 들썩거렸더니 주형의 몸이 나부꼈다. 가슴을 쭉 내밀고 턱을 천장으로 들자 꼿꼿한 좆이 드러났다. 두툼한 근육이 움찔대며 야릇한 선을 드러냈다.

“흐으, 으응. 응…… 윤, 재연. 너밖에, 없, 흐으, 학.”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깊이 들어올 줄은 몰랐다. 숨이 탁 막혀서 목구멍까지 잠식된 기분이 들었다. 익사할 때와는 달랐다. 아주 무겁고 끈적한 모래와 석유에 잠겨 영원히 잠들 것만 같았다. 주형은 잠시도 쉬지 못하고 흉물을 받아내는 구멍을 움찔거렸다. 아랫입도, 윗입도 모두 재연을 따르고 있었다.

“응, 이래야지…….”

반응을 보이니 재연이 씨익 웃었다. 그가 낮에 죽인 사람의 피를 닮은 입술이 반짝거렸다. 주형과 이렇게 격정적으로 교감하는 순간만을 기다려왔다.

“이래야 내 형이죠.”

제가 기대한 대로 주형은 역시 사랑스럽지 않은 구석이 없었다. 조금만 밀어붙이면 이렇게 톡톡 답을 내어주는 것도 그렇고, 전기가 통한 사람처럼 바들바들 떠는 것만 봐도 따먹고 싶게 꼴렸다. 재연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이제 우리 둘이 죽을 때까지 함께예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쉰 재연이 말했다. 안광이 반짝거렸다. 주형은 그 기세에 눌리고 말았다. 그래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형, 사랑해요.”

그런 중에도 구멍을 조이는 주형을 보니 정말 못 말린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의 몸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좆이 터질 것처럼 당겼다. 말캉하고 쫀쫀한 육벽을 헤집었더니 가느다란 신음이 흘렀다.

“흐으, 으…… 응!”

온몸을 가득 채우는 것들이 자꾸만 더해졌다. 아무리 더해도 모자란 것처럼 느껴져서 욕심을 내다가 결국 망가진 소년의 말로처럼, 주형은 제법 처연하게 울먹거렸다. 그의 탄탄한 몸이 무너지는 건 몇 초 만이었다.

그가 히으으, 하고 귀여운 음을 내며 새빨간 얼굴을 갈무리하지도 못하고 또 침을 뚝, 뚝 흘렸다. 지친 개처럼 울고 혀를 내밀고 있으니 재연이 사랑스럽다는 듯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뜨겁고 정염 어린 시선이 모두 느껴져서, 주형은 호흡도 쉽게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를 바라봤다. 재연의 눈에는 현현한 집착이 어려 있었다. 흠칫 놀라서인지 그 시선이 야해서인지 주형의 자지가 잠깐 끄덕거렸다.

“형이 사라지면 자살할 거예요…….”

재연이 그리 말하며 주형의 안을 헤집었다. 주형은 그의 과격한 애정 표현에 순간적으로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안심했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가 다시 부유하는 느낌. 이상했다. 정말 무서운 안도감이었다. 손가락을 세우고 재연을 붙잡았다. 자그마한 손톱자국이 그의 뽀얀 피부에 남았다. 그런 깜찍하고 둔탁한 감각도 재연에게는 자극이었다.

기뻤다. 얼마나 기쁜지, 이대로 꿈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죽을 때까지. 죽을 때까지 주형이 형은 내 거다. 재연은 이제 영원히 주형의 곁에 남는 게 저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로 흥분했다. 너무도 황홀했다. 머리가 아팠다.

“형은 아무 데도 못 가요, 이제. 나만 형 곁에 있을 수 있는, 거예요.”

주형은 이상하게 안심했다. 아무 데도 못 간다면, 재연도 아마 아무 데도 가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러면…… 그 새끼들과는 다르게, 무언가 잘못될 일도 없지 않나. 주형은 심장이 쿵 내려앉는 듯한 안도감에 기다란 숨을 내쉬었다. 신음처럼 음란하게 들려서, 재연은 더욱 흥분해 주형을 안았다. 철퍽거리는 거친 소리와 동시에 주형의 안이 뚫렸다.

“다른 사람들이랑은 다르게, 난 형을 사람대접해 주잖아. 응? 이만한 애인 봤어요?”

정말 귀엽게도 주형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저었다. 제대로 알아듣기는 한 건지 걸레짝이 된 얼굴로 말이다. 눈물이 뚜욱, 뚝 흐르는 게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재연은 이렇게 좋은 제 형을 가지기 위해서라면 당연히 이런 짓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살인이라든가, 그런, 조금 버거운 일들이라도 무조건 해내야 주형을 가질 수 있다고.

별로 힘들지 않았다. 주형을 위해서라면 어떤 짓도 할 수 있었다. 악을 증오하다가 스스로가 악이 되는 일이 있더라도, 주형을 효과적으로 가두기 위해서는 나락을 만들어야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단둘이서 행복할 수 있다면 무엇인들 문제가 될 건 없다고 여겼다.

재연은 팔뚝의 근육이 꿈틀거리도록 주형의 골반과 엉덩이를 휘어잡았다. 계속해서 허리를 움직이라는 듯 손으로 명령했다. 그러고 있자 재연을 받아들이고, 이제는 사랑하게 된 주형 또한 그 손길을 거부하지 않고 하반신을 흔들어 댔다.

“하아, 학, 윽……!”

질척이는 기둥이 정액 범벅으로 된 구멍 안을 헤집었다. 푹, 끝까지 처박혔다. 주형은 붓도록 건드려진 전립선에 또 딱딱한 것이 닿는 느낌에 다시 한 번 사정을 했다. 쏘아 올리듯 제대로 발기해 있는 좆 끝에서 정액이 팍 튀어나왔다.

“공사장 새끼들, 민지욱, 민창협, 서진후, 다 형 등쳐 먹기만 했는데……, 하아, 나는 형한테, 씨발, 좆도 주고 돈도 주잖아. 좋은 건 다 주잖아요.”

주형을 등쳐 먹은 인간은 적지 않았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한두 번 당할 일을, 주형은 단기간에 두어 번 이상 당했다. 인복 따위는 전부 가져다 버린 인생이었다.

그래서인가, 재연은 제가 온 게 마치 신의 부름 같다고 느꼈다. 아주 사이비 같고 우스운 생각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형을 구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어’라는 이상한 자신감이 더해져서, 재연은 주형이 아니면 안 되게 되었다. 사랑만큼 커다란 자의식이 주형을 나락에 가두고 있었다.

“내 말이 맞아요, 그렇죠?”

“그, 흐으, 그래, 맞아…….”

재연은 끊임없이 주형에게 강제성 없는 복종을 강요했다. 속살거리는 저 목소리는 갈대처럼 다정다감했고, 이때까지 거친 맛만 보고 살았던 주형을 꼬시기에는 충분했다. 처음에는 이상하다고 거부했으나 받아들일 수 없는 사건을 몇 번이나 겪은 뒤 황폐해진 주형의 마음을 돌려놓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주형은 이제는 별로 복종이라든가, 빚이라든가 그런 소상한 사정도 기억이 나지 않는 듯했다.

어쩌면 잊고 싶을지도 몰랐다. 그냥 그에게 안겨서 이렇게 있는 게 행복했다. 즐거웠고, 좀 짐승 같기는 해도 적당히 좋았다. 몸이 망가질 것 같은 섹스는 현실을 잊게 해 줬다. 윤재연이 속살거리는 말 또한 달콤한 독배였다. 독배라는 것도 몰랐다. 주형은 짓이겨진 뇌를 복구하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도 좋았다. 재연의 손을 잡고 미래를 걸어가는 것 또한.

“형은 진짜로…… 너무 예뻐요.”

주형에게서 좋은 대답을 들어낸 재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꽉 껴안았다. 재연은 이렇게 흥분할 때면 주형의 몸을 짓이길 듯이 껴안았다. 힘을 써서 갈비뼈를 억누르고, 어깨를 억압하면서, 약간의 불편함이 느껴질 때까지 안았다. 그러면서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음흉한 말을 하고는 했다.

“내가 가진 것 중에 제일 예뻐요.”

천사 같은 얼굴을 지닌 그는 주형의 몸을 얕게 들어 올리는 동시에 허리를 움직였다. 음낭이 주형의 구멍 입구를 찰싹 때릴 정도로 세게 치받았더니 주형의 입술에서 금세 험악한 말이 나왔다.

“씹, 하으, 앙! 아윽……!”

주형은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울 때면 순간적으로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얼굴이 시뻘게져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럼에도 보이는 건 민망한 광경뿐이었다. 재연의 품에 안겨서 있는 물, 없는 물을 모두 내보낸 게 보였다. 눈을 둘 곳이 없었다.

‘이러니 조루 소리에 웃지…….’

아이, 씨. 주형이 괜히 입을 꾹 다물었다. 이상한 데에서 성이 난 주형의 머리카락이 아래로 축 늘어지는 때, 재연의 손길이 그를 덮쳤다.

“형, 쌀 거예요.”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재연이 주형을 콱 밀쳐 눕혔다. 순식간에 등을 침대에 기댄 주형이 바르작거렸다. 하지만 발목을 거칠게 붙잡고, 허벅지 안쪽을 꽉 밀어붙이며 좆을 처넣자 움직일 수도 없이 안이 헤집어졌다. 주형은 연신 우는 소리를 내며 그의 흉물을 받아냈다.

“잠, 시만, 윤재연, 이거 너무 깊, 하윽!”

갑작스럽게 자세가 바뀐 것도 모자라 그가 미친 것처럼 치받는 통에 안이 잔뜩 부었다. 안 그래도 부어서 새빨개진 살갗이 그의 자지 움직임에 따라 경련하며 바깥으로 나올 듯 움직였다. 재연은 그럼에도 뱉어내지 않고 제 성기를 꽉 물고 있는 주형을 놓아주지 않았다. 질척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구멍에서 계속 났다. 정액받이라도 된 것처럼 안에 품고 있는 액이 너무 많아 자꾸 밀려 나왔다. 구멍이 꿀렁거리며 덩어리째로 정액을 뱉어 냈다.

재연이 매우 거칠게 행동해서 허리가 자꾸만 굽었다. 그 탓인지 안에 있는 자지가 더욱 선명하게 느껴져서 더욱 웅크렸다. 몸을 반쯤 안으로 만 채 자지를 받아들이고 있으니 평소와는 찌르는 부위가 달랐다. 이상했다. 주형은 흐윽, 하고 울음을 품은 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좆이 정말 내장을 쿡쿡 찌르면서 터뜨릴 것 같았다. 이러다가 배가 터지면 어쩌지. 주형이 어린아이 같은 상상을 하며 몸을 톡 튕겼다.

“히으, 힉, 흐……으으.”

단말마 같은 신음이 흐르고, 배를 야하게 내민 주형의 좆 끝에서 탁액이 흘렀다. 온몸의 모든 물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급하게 피곤해지는 감각이 돌아서, 주형은 몸을 휘청거렸다.

한편 재연은 사정이 조금 달랐다. 그는 지칠 줄을 몰랐다. 사정감이 끝까지 몰려왔음에도 보내주기 싫어서, 재연은 저보다 먼저 사정을 하고 만 주형을 신경 쓰지도 않고 허리를 놀렸다. 하반신의 근육이 꿈틀거렸다. 아름답게 굴곡이 들어간 엉덩이에 보조개 같은 것이 맺혔다. 재연은 완전히 심취한 얼굴로 주형의 몸을 탐하며 안을 쑤셨다.

“아……”

재연이 게슴츠레 눈을 뜨다가 미간을 푹 좁혔다. 그리고 배를 바르르 작게 떨더니 주형의 안에 정액을 가득 내보냈다. 분명 안겨 있는 데다가 틈 없이 자지를 먹고 있는데도 그 틈새로 정액이 줄줄 흘렀다. 사타구니를 적시는 서로의 액이 섞였다.

입을 뗀 다음 주형과 이마를 맞붙였다. 서로의 코를 비비며 눈을 감았다. 급한 움직임에도 둘의 시간은 느릿느릿하게 흘렀다. 1분, 1초가 소중했다. 이렇게 타액을 교환하며 들러붙고 있는 순간이 귀중했다. 재연은 새카만 눈동자를 빛내며 주형을 잡아먹을 듯이 바라봤다. 주형은 무기력한 상태라 입을 벙긋거릴 수도 없었다.

“형.”

“…….”

“형, 왜 대답을 안 해요.”

작게 입술을 베어 물면서 끈덕지게 늘어졌다. 재연은 계속 이마를 맞댄 채로 움직임을 더했다. 뱀이 달라붙듯이 살갗 하나하나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게 없었다. 몸을 옥죄는 마수였다.

“좋아해요.”

재연은 귀를 기울여야 들릴 것만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침실에는 단둘밖에 없었으나 혹여나 식물에게라도 들릴까 수줍게 말하고 있었다. 감정으로 가득히 차 있는 음성이었다. 내내 차분할 듯 보이는 얼굴에는 어울리지 않는 흥분이 여전히 감돌고 있었다.

“형은 나랑 운명인가 봐요.”

재연은 약에 취한 사람처럼 불안정하지만 현현한 눈동자를 빛냈다. 주형의 팔뚝에 감기는 손가락이 천천히 힘을 주었다. 일어나 보라는 듯 다정한 선에 어울리지 않는 핏줄이 두드러졌다. 주형의 눈은 서서히 감기고 있었다. 너무 지쳐서 그런지 휘청거렸다. 이윽고 완전히 까무룩 잠겼다.

“흐으…….”

“내가 병신이었을 때 형이 나를 구해주고, 이제는 형이 병신일 때 내가 형을 구해 주잖아요.”

우리는 진짜로 운명인 것 같아요. 재연이 그렇게 속살거리며 잠든 주형의 귀에 사랑의 시를 읊었다. 집착으로 얼룩진 손가락이 주형의 뼈마디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희롱했다. 잠결에 들썩거리는 몸이 야해서, 재연은 그를 가만히 두지 않고 구멍을 몇 번이나 더 범했다. 흐물거리는 몸뚱이가 음란하게 구멍을 여닫는 게 참을 수 없이 애욕을 일으켰다.

재연은 천천히 허리를 움직였다. 주형의 몸에 힘이 들어가 있지 않아 조금만 치덕거려도 구멍이 쑥 뚫렸다. 하반신을 조금만 움직여도 크게 요동치는 주형의 몸을 가만히 바라보자 재미있었다.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데에 심취한 아이처럼, 재연이 눈도 깜박이지 않고 주형을 범했다.

허리를 크게 흔들다 못해 주형이 유난히 좋아하는 부분을 누르고 꾸역꾸역 처넣었다. 그러고는 접합부의 음모가 가득 닿아 주형의 회음부를 아프게 할 정도로 긁어 댔다. 주형의 회음이 시뻘겋게 달았다. 주형의 음낭을 부러 손에 꽉 쥐고 그대로 조몰락거리자 주형이 흐으, 하며 얕게 뒤척거렸다. 하지만 재연이 그를 붙잡고 있어 큰 움직임은 보이지 못했다. 그러나 좆이 끄덕거리는 걸 보아 아주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형, 무슨 꿈 꿔요?”

“…….”

“나랑 씹질하는 것보다 더 달콤한, 꿈이에요?”

퍽, 퍽, 재연이 안을 재차 들쑤셨다. 살갗을 짓이기는 성기는 힘을 잃지도 않고 꼿꼿한 모양새를 유지했다. 자면서도 성감이 고조되는지 주형의 얼굴은 열병을 앓는 사람처럼 붉어져 있었다. 갈무리하지 못한 잇새로 야한 침이 질질 흘렀다. 재연은 그렇게 칠칠치 못한 주형의 모습마저도 사랑스러웠다.

알몸이 된 채 뻗어서는, 잠이 든 상태로 당하고 있는 주형을 보자 짜릿함이 밀려 왔다. 깨어 있는 주형도 좋았지만 자고 있는 주형과 섹스를 하는 것도 좋았다. 무기력하게 늘어진 몸이 이따금씩 흥분을 드러내서 끙끙거릴 때면 미치도록 머리가 울렸다. 재연은 허리를 천천히 뒤로 뺐다. 엉덩이 위로 생긴 보조개가 일순 짙어졌다. 이윽고 푹, 하는 질척한 소리와 동시에 주형의 구멍에 굵직한 자지 대가리가 처박혔다.

“흐, 으응.”

“하아, 형이 꿈에서도 나한테 따먹히고 있으면 좋겠어요…….”

현실에서도 꿈에서도 만났으면 했다. 주형이 어디를 가도 제가 있어서,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재연은 꿈에서도 주형을 보고 싶었다. 만약 그가 죽는다면 시체를 끌어안고 자고 싶었다. 재연은 가쁘게 숨을 몰아 내쉬며 후장 구멍을 후벼 댔다. 주름이 쫘악 벌어지며 쫀득하게 재연의 귀두부터 받아들였다. 그러다가 접합부 가까이 매달린 음낭이 엉덩이를 거세게 치면, 주형의 구멍은 못내 아쉽다는 듯 벌름거렸다. 자고 있는데도 걸레 같은 주인을 닮아 구멍은 욕정하고 있었다.

“후으, 하아, 형.”

“아……, 아으.”

주형의 입꼬리가 꿈틀거렸다. 하지만 잠에서 깨어나지는 못하는지 그저 눈두덩을 움찔대기만 했다. 재연은 그런 그에게 자지를 삽입한 채 몸을 앞으로 푹 숙였다. 그러고 있으니 쯔윽, 하고 음란한 소리가 나며 좆이 반쯤 빠져나왔다. 그가 깨어 있었다면 이마저도 아쉬워서 하지 못했겠지만, 그가 잠들어 있으니 마음 놓고 자지를 넣었다가 뺄 수 있었다. 재연은 주형의 눈두덩에 입을 쪽, 맞추어 주었다. 그러니 두려운 듯 힘을 품고 있던 살갗이 진정을 되찾았다.

재연은 점점 더 험악하게 허리를 놀렸다. 주형과 배를 맞대고 그의 몸을 억누른 채 거칠게 하반신을 털었다. 무릎을 바닥에 대고, 다리를 벌리고 있는 주형의 사이를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귀두만 살포시 구멍이 빨 수 있도록 뺀 다음 아주 거세게 처넣으니 주형의 뱃가죽이 연신 들렸다가, 내려갔다가 했다.

재연도 배를 맞대고 있어 그게 얼추 느껴져서 좋았다. 미쳐 있는 사람처럼 하아, 하고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이윽고 주형의 안쪽이 강하게 경련하며 찌르르 떨릴 때, 재연은 함께 몸을 부르르 떨었다.

눈이 가늘게 감기며 주형의 가슴 위로 입술이 닿았다. 쪼옥, 빨아들이며 재연은 주형의 안에다 정액을 왈칵 싸질렀다. 좁은 내벽을 툭, 툭 건드렸다. 힘 좋게 몇 번이고 흘려 대자 안이 아주 질척하게 젖었다. 안 그래도 음탕한 뒷구멍이 가득 차 있으니 미칠 것 같았다. 미끌거렸다.

주형은 좆을 빼내고 제 성기에 묻어 있는 정액을 손바닥에 가득 묻혔다. 그리고 그렇게 더럽혀진 손으로 주형의 입술에 키스했다. 느슨하게 열려 있는 입술을 파고들어 정액을 먹였다. 비로소 하나가 된 듯 광기 어린 황홀함이 밀려 왔다. 환락 같았다. 중독될 것 같았다. 재연은 재차 아랫도리가 무섭게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형.”

그렇게 주형의 이름을 중얼거리다가, 재연은 구멍에 좆을 넣은 채로 까무룩 잠에 들었다. 무엇 하나 정돈되지 않은 엉망진창인 침대에서 둘은 몸을 얽은 채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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