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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안락 (5/11)

5. 안락

대망의 퇴원 날이다. 깁스를 푼 건 어제였고, 별로 다치지도 않은 것 같은 다리를 의사와 간호사 및 물리치료사가 아주 유심히 들여다본 뒤에야 주형은 붕대를 감을 수 있었다. 솔직히 아프지도 않고 부은 것도 거의 없는데 그렇게 부담스럽게 구는 걸 보니 돈이란 무서운 것이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됐다. 아마 보통 환자가 아니라 VIP 병실을 이용하는 환자, 게다가 그 병실을 구입한 게 윤재연이라 그런 거겠지.

‘호사는 좋았는데, 마음은 영 찝찝하네.’

이걸 어떻게 갚으면 좋은가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재연이 발목을 건드리지만 않았다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거란 생각에, 또 짜증이 났다. 그냥 아무런 일도 없었으면 이렇게 또 병원비에 대해 고민하지 않아도 될 텐데! 그 미친놈 때문에.

주형은 오늘부로 퇴원을 해도 된다는 간호사의 말을 전해 들은 뒤, 미리 싸 두었던 간소한 짐을 들었다. 가방도 제대로 들고 오지 못해 재연이 가져다주었던 선물의 종이백을 바리바리 들어야 했다. 그중에는 쪽팔리게도 곰인형 따위도 있었다. 눈이 동그랗고, 갈색 털이 돋보이는 푹신푹신한 인형이었다. 완전히 애물단지라 생각하면서도 버리고 가면 큰일이 날 듯해 –왠지 저주 인형이 될 것만 같았다- 그렇게 들쳐 매고 돌쇠처럼 힘차게 병실을 나설 때였다.

“저희랑 같이 가셔야겠습니다.”

이 말을 끝으로 주형은 주형만큼 덩치가 큰 사내 여럿에게 둘러싸여 차에 태워졌다. 당신들은 또 누구냐며, 윤재연이 보낸 거냐며 마구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으나 놀랍게도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 병원의 그 누구도 말이다. 미리 다 교섭이 된 것처럼.

그리고 그렇게 귀한 짐짝처럼 옮겨진 뒤에는 어느 아파트에 당도했다. 이미 저항을 포기한 주형을 넓은 방에 넣어 놓은 사내들은 문까지 꼭꼭 잠근 뒤 떠나갔다. 주형은 손도 발도 자유롭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는 이 현실을 받아들이며 하하, 하고 헛웃음을 지었다.

“이 개새끼……. 조폭 아니랄까 봐.”

방에는 도어록과 자물쇠가 있어 비밀번호를 모르면 나갈 수 없었다. 고작 집 안에 있는 문 하나에 이따위 보안 시설을 걸어 놓다니, 윤재연 놈의 짓이 틀림없었다. 혹시나 싶어 제 생년월일, 생일을 모두 넣어 보았지만 안 됐다. 재연의 생년월일은 아는 게 연도밖에 없어서 포기했다.

“이런 데에는 또 치밀하단 말이야.”

좋아하는 사람의 생년월일을 비밀번호로 정하는 게 무조건적인 룰 아니었냐고. 주형은 에이씨, 하며 도어록을 팍 내렸다. 그리고 주저앉았다.

제 딴에는 또 엄청난 대접을 했다며 속으로 부끄러워하고 쑥스러움을 탈 게 눈에 선했다. 주형은 재연을 생각하자 머리가 아픈 것을 느꼈다. 재연은 언제 올까. 이 미친 새끼는 설마 이렇게 해 두고 일주일도 넘게 안 오는 건 아니겠지. 그렇지는 않을 거다. 평소에도 좋다면서 발광하는 놈인데, 이렇게 보기 좋게 혼자 있으면 당연히 금세 오겠지.

눕고 싶었다. 침대가 있었으나 그건 제자리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차가운 바닥에 엉덩이를 몇 번 뒤척이다 자기 좋은 자세를 잡았다. 잘 때까지도 속으로 좀스럽게 욕을 중얼거린 그는 그렇게 재연을 저주하며 잠에 들었다. 푹신한 패딩이 큰 도움을 주었다.

주형이 일어난 건 약 2시간 뒤였다. 그것도, 재연이 무릎을 꿇고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순간에.

“……으으.”

“형.”

“으, 악! 미친, 뭐야!”

재연은 뚫어져라 주형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왔어요. 추운데 왜 여기서 자요?”

바닥이 더 좋아요? 재연은 어떤 악의도 없이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주형은 가난한 데다 노란 장판 위에서 차갑게 많이 잤을 테니 바닥이 더 편할 거란 생각을 했다. 물론 매트리스와 제 품의 맛을 보고 나면 달라질 거라고 희망을 가졌지만.

“아닙니다, 그냥…… 잠에 들었습니다.”

주형은 허겁지겁 일어나며 옷을 여몄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 아닐까 싶어 마구 옷을 더듬거렸으나 아무런 일도 없었다.

“안 벗겼어요.”

재연도 어느덧 주형의 생각 패턴을 읽게 됐다. 방금 일어난 주형이라면 분명 제가 무슨 짓이라도 하지 않았을까 걱정할 게 틀림없다. 그런 오해를 받는 건 서운하지만 그가 놀라서 으악, 하고 울부짖는 게 자못 귀여웠다.

“하아, 씨발……. 후, 언, 언제 오셨습니까.”

“방금요. 10분쯤 전?”

“아, 그렇습니까……. 아아.”

정신이 없어 앓는 소리를 냈다. 한숨을 푹 내쉬면서 머리를 헝클고, 다시 정리했다. 정신이 없어 눈을 가물가물하게 뜨다 말고 또 고개를 저었다.

“잠이 잘 안 깨요?”

“……아닙니다.”

눈꺼풀이 무거웠으나 그냥 억지로 일어났다.

“참, 형.”

“예, 이사님.”

“나와 볼래요?”

주형은 반문 없이 재연을 따랐다. 잘 때만 해도 제가 들고 왔던 재연의 선물은 없었는데, 아마 재연이 다시 챙겨서 온 건지 방바닥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곰인형은 침대 가장자리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 눈이 너무 새까맣고 맑은 나머지, 마주치자 기분이 영 이상해서 그냥 휙 피하고 재연을 따라 잽싸게 바깥으로 나갔다.

“……이게 뭡니까?”

바깥으로 나가자 순간적으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주형은 뺨이 홧홧해지는 것을 느꼈다.

“속옷이에요.”

재연은 쭈그려 앉으며 바닥에 늘어져 있는 천 조각을 유려한 손길로 톡톡 짚었다.

“저도 압니다. 이걸 어디다가 쓰냐는 말씀입니다.”

“형은 가슴이 좀 크니까 입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예?”

미친 소리 하지 말라는 투로 대꾸했다. 주형은 관자놀이 가까이 손가락을 빙빙 돌리고 싶었다. 그게 아니면 재연의 저 자연스러운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재연이 보여준 것은 여성 속옷이었다. 브래지어와 팬티. 그것도 여러 세트였다. 도대체 뭘 가릴 의도가 있기는 한 건지 거의 다 끈이었다. 갖가지 야한 속옷을 보자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색깔 별로 사 온 건지 웬만한 색은 다 있었다. 빨간색, 하얀색, 검은색, 민트색, 하늘색……. 대놓고 남을 유혹하기 위해 입는 속옷임에 틀림없었다.

“이걸…… 입으라고요?”

“응.”

뭐, 입으라고? 저 미친 또라이 변태가……. 얼굴이 하나도 안 빨개진 걸 보니 가관이었다. 새파랗게 어린 것이 벌써부터 이렇게 쓰레기 같은 취향만 배워서 어떡하면 좋은가. 겨우 스물한 살짜리가 이렇게 아는 게 많으니 당혹스러웠다. 나중에는 정말 희한한 플레이라도 하는 거 아닌가 싶다.

주형은 몹시 싫다는 표정을 지어 재연의 부탁을 거절했다. 보기만 해도 짜증이 나서 뒷걸음질까지 쳤다. 그럼에도 재연은 졸졸 따라와 주형의 손목을 꽉 쥐었다.

“이렇게 가슴이 예쁜데, 브래지어도 하면 좋잖아요.”

그러고는 주형과 마주 본 뒤 맨투맨 티셔츠를 확 올려버렸다. 그러고는 얇은 검은색 티셔츠 위로 그의 가슴을 꽉 움켜쥐었다. 근육이 발달한 덕분에 가만히 있어도 튀어나와 보였다. 보온을 위해 받쳐 입은 검은색 티셔츠가 아주 얇아서 다행이었다. 재연은 잘 보이는 젖꼭지까지 남김없이 주무르며 희롱했다.

“시발, 남자한테 브라를 왜……! 윽!”

“가슴이 별로 발달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잘 느끼니까 어쩔 수 없어요.”

주형은 이상할 정도로 감도가 좋았다. 만질 때의 감각도 좋았고, 주형이 느낄 때 내는 목소리도 야했다. 분명 억눌린 신음이라 불편할 법한데도 재연은 그게 그냥 마음에 들었다. 뙤약볕에서 일을 한 적이 많아 군데군데 얼룩진 것처럼 타 있는 피부도 사랑스러웠다.

“난 가슴, 없다고! 씨발!”

이것도 가슴이랍시고 붙어 있는 살덩어리와 근육을 보고 잘 느낀다니, 뭐니 하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이렇게 통통한데?”

“밋밋하거든!”

거의 다 근육이라서 평면에 가까웠다. 여성의 가슴과는 다르게 부드럽지도 않고 약간 딱딱했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브래지어를 할 정도는 아니었다. 주형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재연이 흐음,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윽고 재연은 부러 고개를 살포시 내려 주형의 가슴 사이에 귀를 댔다. 마치 태동을 들으려는 아빠처럼 말이다.

“빨면 젖도 나와요?”

재연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사실 가슴이 그렇게 젖이 나올 것처럼 크지는 않았지만, 근육 덕분에 튼실한 데다 젖꼭지가 분홍색이라 너무 놀리고 싶었다. 게다가 만질 때의 감각도 좋았다. 사랑스러운 만큼.

“미친, 나올 리가 있겠습니까? 떼십시오. 저, 전 저런 거 안 입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었다. 주형은 재연의 어깨를 확 밀어냈다. 그러자 재연의 몸이 놀라울 정도로 가벼이 떨어졌다.

“입혀 줄게요.”

“싫다고, 씨발……!”

재연이 주형을 껴안고 그의 입을 맞추었다. 입술을 빨아들이며 얼굴을 연신 들이밀자 주형이 몸을 주춤, 주춤 무너뜨렸다. 이윽고 벽에 부딪힌 채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들었다. 숨을 내쉬자 재연의 고운 피부에 야한 숨이 닿았다. 주형은 재연의 어깨를 붙잡은 채 꾸물꾸물 밀어냈다. 그래도 자꾸 혀가 파고들며 음란한 소리를 내는 통에 힘이 자꾸만 풀렸다. 늘어지는 팔을 겨우 뻗어도 재연과의 거리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가까워질 뿐이었다.

입술을 떼자 타액이 주르륵 늘어졌다. 재연은 그렇게 엉망이 된 주형의 통통한 입술을 혀로 한 번 할짝거렸다. 입가의 반짝이는 것들까지 모두 갈무리한 뒤에는 다정하고 부드러운 눈길을 한 채 속살거렸다.

“예쁠 거예요.”

짐짓 상냥했으나 가시와 집착이 가득한 명령이었다. 거절할 수 없는 말에 주형은 부풀어 있는 입술을 짓씹었다.

***

주형이 쭈뼛쭈뼛 몸을 움츠렸다. 생전 입어 본 적은 고사하고 만진 적도 없어서 힘들었다. 변태 새끼. 주형은 꾸역꾸역 입으면서도 계속 욕을 읊조렸다. 팬티 안에 자지를 수납할 방법을 찾지 못해 한숨을 지을 때는 진심으로 자괴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였다.

‘솔직히 이걸 보고도 꼴릴 리가.’

이렇게 듬직한 체격에 예쁜 구석 하나 없는 딱딱한 이목구비를 지닌 남자가 하얀 레이스 속옷을 입고 있다고 해서 설 리는 만무했다. 게다가 가슴이 풍만하게 채워지지도 않고 브래지어가 훤히 남아서 젖꼭지가 다 보였기에 별로 꼴리는 광경도 아니었다.

그냥 저놈도 날 놀리는 데에 재미가 들려서 들고 온 거겠지. 그래야만 했다. 주형은 그가 얼른 좆을 죽이고 더럽다고 욕을 하길 바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싶어서. 물론 그가 진심으로 경멸하면 그건 그것대로 매우 기분이 나쁘겠지만, 그래도 그가 너무 좋아서 마수를 뻗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주형은 거울 앞에 섰다. 가슴이 큰 사람이 입었다면 정말 젖꼭지 하나만 가리는 꼴이겠다 싶어 괜히 민망해졌다. 주형은 엉덩이 사이를 파고드는 얇은 천을 느끼며 끄응, 하고 한숨을 쉬었다.

잘은 몰라도 여성 속옷이 다 이렇게 생기진 않았을 텐데. 어깨를 감싸는 끈에 달려 있는 레이스가 자못 거슬렸다. 베이비돌 블라우스처럼 나시 부분에 풍성한 프릴이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아주 화려하진 않았으나 주형의 넓은 어깨를 감싸 주어 깜찍함을 돋보이게 했는데, 그에게 있어 이 부분이 제일 쪽팔렸다.

무슨 유치원생도 아니고! 저 새끼는 무슨 이런 쓰레기 같은 디자인을 골라 온 건지. 주형은 이 짓이 끝나면 한 번 짜증을 내야겠다고 다짐했다. 틱틱거리긴 해도 이렇게 말하면 들어주는 놈이니까.

그는 일부러 어깨와 가슴을 딱 폈다. 그러고는 괜히 근엄한 얼굴로 진지하게 바깥으로 나갔다. 탁, 열고 탁탁 나가니 재연은 뻔뻔하게도 들어갈 때와 달라진 게 없었다. 달라진 거라면 고개를 조금 돌렸다는 것뿐일까. 시발, 난 이런 거 입혀 놓고 지는 저렇게 백조처럼 계시겠다? 개 같은 놈!

“……다 입었습니다.”

“음…….”

주형이 불만을 억누르지 못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재연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잘 정돈된 베스트와 와이셔츠가 돋보였다. 손목을 잠깐 만지작거리더니 단숨에 시계를 풀고 소파 구석으로 던져 버렸다. 탁, 하는 소리와 동시에 재연이 발돋움했다. 그가 다가왔다. 재연과 제 모습이 너무 달라서 그런지 주형은 얼굴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이렇게 처지 차이가 드러날 때면 늘 수치심이 밀려왔다.

오늘은 우중충한 날이라 해도 하늘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잿빛으로 물들어 있는 검은색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재연은 거실 창가로 다가가 유려한 손길로 커튼을 쳤다.

“저, 이사님.”

보일러도 잘 돌아가는 데다 쪽팔려서 몸은 후끈하게 달아 있었다. 주형은 억눌린 좆이 혹시나 발정이라도 할까 걱정스러운 마음이 잔뜩이었다. 그러나 재연은 무엇 하나 급하지 않다는 듯 저렇게 커튼이나 치고 있으니 짜증이 날 수밖에.

“응?”

“뭐 하시는 겁니까? 기껏 갈아입고 나왔는데.”

주형에게는 정말로 매우 엄청난 결심이었다. 씨발, 아니, 사귀는 사이에서도 이런 거 안 해준다고. 어떤 남자 친구-절대 제가 재연의 남자 친구라고 자부하는 건 아니다-가 여자 속옷 입어 주는데. 주형은 울분이 치밀었다.

“아…….”

느른한 대답이 울렸다. 재연은 요염하게 살짝 엷은 호선을 그리고 있는 입술을 여전히 벌린 채 뚜벅뚜벅 걸어왔다. 차가운 대리석 바닥 위를 걷는 발이 매우 느긋했다.

“혹시 남이 볼까 봐요.”

재연은 정말로 걱정이 컸다. 누가 보고 발정이라도 할까 봐, 혹시 반찬거리로 삼는 무뢰배 같은 짓을 할까 봐. 주형은 오롯하게 제 것이어야만 했다. 만약 마법을 쓸 수 있다면 세상 사람들이 모두 주형을 잊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직 제 뇌에만 살아남아서 가만히 제게 빌고, 관심을 갈구했으면 했다.

“자지를 이렇게 세우고, 속옷을 입고 있으면 누구라도 형 따먹고 싶을 거예요.”

“……씨, 이건, 그냥 눌려서 그런……!”

생각해 보니 이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헐벗고 누군가의 시선을 받고 있는 데다가, 그 시선이 아주 야릇하기 짝이 없고, 그 시선의 주인은 매우 음험한 놈이다. 게다가 이렇게 좆이 눌려 있으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주형은 뺨을 붉히며 어물쩍거렸다.

“난 형이 강간당하는 게 싫어서 말해 준 건데…… 알았어요.”

재연이 주형에게 잔뜩 달라붙었다. 뱀이 교미하듯 배를 거의 맞대고 허리를 살살 흔들자 주형의 자지가 허벅지에 비벼졌다. 재연은 손을 들어 놀리듯 장난스럽게 브래지어의 끈을 쭉 잡아당겼다. 그리고 톡 놓자 살갗이 아주 얕게 떨렸다.

분위기 때문인지 주형은 그걸 단순한 떨림과 아픔으로 느끼지 못했다. 어느덧 주형의 허벅지 사이를 파고드는 재연의 다리가 느껴졌다. 성기. 주형은 그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흉물을 바지 위로 인식했다. 별로 해 준 것도 없는데 부피가 잔뜩 닿았다.

“신축성이 없어서 걱정했는데, 이게 더 잘 어울리네요.”

살이 브래지어의 봉긋한 부분 가장자리 틈으로 살짝 튀어나와 있어서 더욱 귀여웠다. 재연은 그런 주형의 가슴을 천천히 주물렀다. 이윽고 살짝 눈을 내려 주형과 눈을 마주쳤다. 선명하게 닿는 검은색이 오싹할 정도로 짙고 예뻤다.

재연은 뚫어져라 그를 바라보며 감미롭게 물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물음이 아니라 일종의 강요 같았다.

“형, 내가 미워요?”

“…….”

“내가, 미워요?”

마법의 주문을 외는 사람처럼 조곤조곤하고 느긋한 목소리였다. 무언가 강한 바람이 있어 누구라도 홀릴 듯 깊은 음성이 주형을 감쌌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밉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선뜻 답이 나오지 않았다. 오늘 곰인형을 버리지 않고 온 것만 해도, 그를 미워한다고는 못 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

“나는 형이 미웠어요.”

“……뭐라고요?”

주형에게는 매우 충격적인 말이었다. 이렇게 좋아 죽는 티를 내면서 밉다고? 그는 과거형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만큼 어안이 벙벙했다. 저도 모르게 미간을 사납게 구겼다. 순간적으로 재연을 밀어낼 뻔했다.

“지금은 아니에요.”

그러기가 무섭게 재연이 금세 대답했다. 뺨을 불그스름하게 붉힌 재연은 사랑이란 말이 아까울 정도로 미쳐 있는 감정을 품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지금은…… 형이 좋아요.”

주형의 가슴이 괜히 움찔거렸다. 살갗 아래 심장이 꿈틀대는 게 오늘따라 잘 느껴졌다. 주형은 이 모든 감각이 낯설었다. 이런 건 처음이었고, 예상할 여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재연과 대화를 할 때면 언제나 이랬다. 이상하게 찌릿찌릿한 손끝이 오늘따라 자극적이었다.

“형도 내가 좋죠?”

“잘 모르겠……다니까요. 자세히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확답을 내리기 어려웠다. 주형은 스스로도 제 감정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싫지 않은 것 같다. 적어도 이젠 그 정도는 확신할 수 있었다. 사랑……은, 아직 모르겠고.

‘근데 이 정도면 사랑 아닌가?’

인정할 순 없지만 키스도, 섹스도 다 해 주고, 이딴 부탁마저도 다 들어주는데…… 사랑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 헌신과 복종도 사랑이라면 사랑이 아닌가. 만약 윤재연 저 새끼가 속삭이는 모든 미친 소리와 광기 어린 행각도 사랑이라면 이것도 사랑이 될 수 있는 거 아닌가?

주형은 왜인지 당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저와는 완전히 반대로 아주 귀하게 자란 재연에게 봉사하고 있다고 인정하니 이유 모를 우월감도 들었다.

이렇게 잘생긴 놈이, 나를. 나만 떠받들어 준다. 그의 따스함은 오롯하게 내게 쏟아지며, 말하기 어려울 만큼 은밀한 행위도 내게만 한다. 추잡스럽고 음란하며, 음침한 짓들도, 쓸데없이 낭만적인 행각도…….

“그렇구나.”

“…….”

그러나 재연의 뜨겁게 달아 있는 눈동자를 보니 너무 급하게 생각했다는 자각이 밀려와서, 주형은 괜히 숨을 골랐다.

“그럼 이제부터 생각해 보면 되겠어요.”

재연이 화려하게 웃었다. 입꼬리를 한껏 끌어올려 미소를 짓자 애굣살이 보기 좋게 올라왔다. 통통하게 오른 광대와 행복한 듯 유려하게 휜 눈꼬리가 아름다웠다. 이국적인 하얀색 피부와 잘 어울리는 미소는 모든 악을 정화시킬 듯 부드러웠다. 주형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숨을 씨근덕댔다.

“……알겠습니다.”

주형의 말이 제법 긍정적이었다. 재연은 그 말에 흡족해하며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유리병 안에 엷은 분홍색 액체가 있었다. 병을 한 번에 연 뒤에는 단숨에 입에 머금었다. 그리고 촉촉하게 젖어 있는 입술을 주형에게 들이밀었다.

입술을 확 벌리며 주형에게 액체를 넘겼다. 고개를 푹 수그린 채 몰아붙이자, 주형이 고개를 거의 젖힌 채 혀를 받아냈다. 그리고 달콤한 맛이 가득한 야릇한 액체가 주형의 혀 위에 고였다. 당혹감을 이기지 못하고 으응, 하고 신음을 내가 재연이 혀를 쿡쿡 찔러 댔다. 얼른 마시라는 듯이 혀뿌리를 요사스럽게 핥아대고 있었다.

재연의 손버릇은 여전히 나빠서, 재연은 주형의 허리에 제 팔을 감은 채 앞섶을 주무르고 있었다. 좆을 한 손에 쥐고 작게 주물러 주자 주형의 목울대가 성난 모양새를 했다. 꿀떡거리며 액체가 넘어가는 소리를 듣자 재연의 가슴이 쿵쿵 뛰었다.

사랑의 묘약이 주형의 식도를 넘어가면, 그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해서. 어떤 꿈과 바람, 혹은 상상보다 훨씬 황홀하고 음란할 게 틀림없었다. 재연은 주형이 입을 떼지 못하도록 더욱 몰아붙였다. 자지를 만져 주던 손을 떼고 그의 뺨에 손을 뗐다. 함부로 뒤로 빠져나갈 수 없게 벽에 그를 가두자 정복감이 잔뜩 밀려왔다.

“하, 아…… 학. 그마, 읏.”

“으응.”

재연이 고개를 저었다. 그는 입을 열기 싫을 땐 저런 소리만 내고 고개를 작게 젓기만 했다. 그가 안 된다고 말하는 특유의 방법이었다.

혀를 쭉 내밀어 주형의 도톰한 혀를 휘어잡았다. 말캉하고 뜨거운 것이 닿고 안을 휘젓자 도리 없이 숨이 가빠졌다. 주형은 재연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헐떡거렸다. 무너지듯 등부터 꼬리뼈까지 벽에 닿았다. 작게 굽은 무릎이 난감함을 드러냈다.

겨우 입술이 떨어졌다. 힘이 계속 빠지고 있었다. 하지만 알 수 없이 몸이 달아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여기가 너무 더워서 그런가. 헐떡거리고 있으니 재연이 그런 주형의 몸을 꼭 껴안았다. 냄새를 느끼듯 주형의 가슴 사이로 얼굴을 묻은 뒤에는, 그가 입고 있는 속옷 위로 혀를 내밀었다. 쪽 빨아들이자 밋밋한 천과 동시에 재연이 바랐던 살덩이가 이에 물렸다. 주형은 흣, 하고 긴장했다. 딱히 안감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런지 까슬까슬한 감각이 이상하게 흥분이 됐다.

“형, 다리.”

주형이 말을 제대로 듣기도 전 재연이 아래로 손을 내렸다. 그리고 둔부 사이로 손가락을 천천히 넣었다. 가슴에 집중하고 있어 제대로 짚지 못하고 있었으나, 재연이 찌르는 부위는 하나같이 꼭 예민한 부위였다. 음낭이라든가, 회음부 같은 부위 말이다. 말캉하게 통통히 부어 있는 회음이 천 너머 손가락에 닿았다. 천이 젖어 있어서 그런지 마치 빨아들이듯 끈적하게 느껴졌다.

재연은 씩 웃으며 그런 주형의 가슴을 할짝거렸다. 천 위로만 희롱하는 것은 너무 아쉬워서, 다소 성급한 손길로 속옷을 잡았다. 그러자 지익, 하는 소리와 동시에 주형이 흠칫 놀랐다.

“이, 사님. 지금 무슨…….”

“옷이 가려서요.”

“미친, 이게 무, 으응!”

이렇게 쪽팔리는 옷을 입혀 놓고 정작 손으로 휘어잡아 찢으려고 하다니. 주형은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저항하고 있기도 잠시, 제 구멍을 기어코 비집고 들어오는 손가락을 느꼈다. 엉덩이를 감싸고 있는 천 부분이 거의 줄처럼 되어 있어 구멍을 찾기는 쉬웠다. 주형이 종아리를 발발 떨며 신음하자 재연의 마른 손가락이 더욱 파고들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브래지어의 끈 부분과 가슴을 가리는 천의 접합부가 작게 찢어진 것을 발견했다. 그러자 가슴을 감싸고 있던 것이 헐렁해졌고, 재연이 파고들어 물 틈이 생겼다. 이마를 꾹꾹 밀어내기까지 했는데도 손아귀 힘이 너무 세서 다 뜯겼나 보다.

“마음에 들었어요?”

“아…….”

“내가 비슷한, 디자인으로 다 사 올게요.”

나중에. 재연이 그리 속삭이며 주형의 젖꼭지를 물었다. 작게 드러난 주형의 젖이 브래지어를 밀어내듯 통통하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런 중에 재연의 손가락이 아래를 들쑤시는 탓에 주형은 아래를 꼭 찢어 놓는 듯한 아픔을 느꼈고, 이내 으윽, 하고 신음하고 말았다.

“아, 픕니다. 이사님, 이사님…….”

“……아파요?”

“흐으, 응.”

고개를 끄덕였다. 몸이 간질간질했다. 주형은 점점 뜨겁게 달아오르며 가장자리가 부예지는 감각에 어쩔 줄 몰랐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갑자기 일어난 건지 알 수 없었다. 작게 희미해졌다가 정확해지는 시야 너머로 재연의 흥분한 얼굴이 보인다. 아래를 바라보니 재연의 앞섶도 크게 부풀어 있었다. 저 큰 흉물을 바지 안에 수납하고 있는 게 용할 정도였다.

‘엄청 커.’

저게 안에 들어오면……. 주형은 이상하게 몸이 저릿저릿한 것을 느꼈다. 오금, 허벅지 뒤쪽, 엉덩이, 등줄기. 차례로 당기는 느낌과 동시에 가슴이 덜컹거렸다. 주형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억누르며 씨근거렸다. 그러고 있자 손가락이 쑥 빠져나갔다. 잠시 자리를 비운 재연은 러브젤을 한 손에 들고 오고 있었다.

“형, 콘돔 좀 씌워 줄래요?”

아직 시작한 것도 없는데 적잖이 흥분한 게 보였다. 발갛게 달아오른 뺨과 희미한 동공이 드러났다. 주형은 무심코 겁을 먹고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이렇게 고분고분한 성격이 아니었는데, 하고 후회하면서도 그는 말없이 콘돔을 받았다.

천천히 벨트를 풀었다. 가죽과 금속이 작게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얇은 속옷이 겨우 억누르고 있는 자지가 보였다. 주형은 콘돔 봉지를 뜯고 나서도 긴가민가했다. 저 크기에 이게 정말 들어가긴 하는지. 오히려 자지가 좀 억눌리는 건 아닌지. 그렇게 생각하며 발발 떨리는 손을 억지로 진정시키며 자지를 손에 쥐었다. 손가락을 살짝 대고 돌돌 말려 있던 것을 풀었다. 당연하지만 콘돔은 깔끔하게 잘 씌워졌다.

“그, 이사님…….”

“응, 왜 그래요?”

주형은 남은 쓰레기를 바닥에 아무렇게나 버리며 어깨를 꿈틀거렸다. 갑자기 산통을 깨고 피임 기구를 착용해서 그런가 정신이 몽롱했다. 난데없이 타액으로 젖어 있는 가슴과, 야한 천에 반쯤 억눌려 있는 제 자지를 자각하니 기분이 야릇했다. 주형은 재연이 러브젤을 손가락에 넉넉하게 짜는 것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은, 왜 콘돔 씁니까? 항상 안 하셨지 않습니까.”

재연이 대답하지 않고 주형의 다리 사이로 손을 푹 집어넣었다. 젤이 치덕거리는 소리와 동시에 주형이 윽, 하고 허리를 튕겼다. 사정없이 쑤시기 바쁜 손가락을 느끼면서도 주형은 엉덩이에 힘을 주었다. 근육이 꿈틀거렸다. 그는 재연의 어깨를 꽉 붙잡고 가느다란 숨을 내쉬었다. 입술이 다물리지 않았다.

평소와 달랐다. 분명 평소라면 재연이 대답도 않고 좆을 넣을 생각이나 하고 있다는 것에 짜증이 났을 텐데, 아니었다. 그런 대답 따위는 없어도 되니 무언가 해소되기를 바랐다. 주형은 엉덩이 사이를 집착 어린 손길로 헤집어 주는 손가락을 느끼듯 허리를 작게 살랑거렸다. 음란하고 놀라운 움직임이었다.

재연은 그 움직임을 자각하고는 주형을 쾅 밀었다. 어깨와 날개뼈가 벽에 닿으며 묵직한 아픔이 밀려왔다. 주형은 왜 그러냐는 듯이 눈꼬리를 늘인 채 재연을 바라봤다. 역시, 예전보다 훨씬 유순하고 귀여운 눈길이었다.

“걸레처럼 왜 그래요, 오늘.”

“흐, 으응……. 제, 가 한 거 아, 아닙니다.”

주형은 눈가를 새빨갛게 한 채 고개를 저었다. 딸기처럼 먹음직스럽게 익어 있으니 능욕할 맛이 났다. 재연이 가만히 바라보며 스멀스멀 미소를 지었다. 물감이 물에 퍼지듯 은은하고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약을 쓴 보람이 있네.’

이런 눈도 보고. 재연은 만족스러운 듯 그런 주형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키스했다. 단순히 혀를 받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 것이나, 지금의 둘에게는 흥분을 일으켰다. 허벅지를 들이밀어 허리를 슥슥 흔들자 주형의 자지가 레이스에 쓸렸다. 입술 사이로 흐르는 타액을 받아내지 못하고, 주형은 오늘따라 유난히 적극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혀를 쭉 내밀어 재연의 혀 깊은 곳을 꾹 눌렀다.

처음과는 다르게 조심스럽게, 정말로 사랑에 빠진 것처럼, 둘만의 세상에만 남겨진 것처럼 입술을 뗐다. 눈을 마주친 뒤에는 재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

“형이 내 좆물을 받다가 임신할 수도 있잖아요.”

“…….”

“나는 우리 사이에 우리 둘만 있었으면 좋겠어요.”

재연이 주형의 귀에 대고 농염하게 속삭였다. 녹일 듯 뜨거운 혀가 욕망 어린 감정을 주입했다.

주형은 그 말을 이해하기는 한 건지 멍한 눈길로 고개를 푹 숙였다. 주형은 약에 취해 이상한 감상을 느끼고 있었다. 평소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생각을 했다. 손가락이 너무 약하다든가, 이상하게 아쉽다든가, 그런 생각.

그 순간이었다. 주형의 안을 헤집고 있던 손가락이 늘었다.

“아, 아윽!”

“형 구멍이 내 손가락을 쪽쪽 빠는 거 같아요.”

주형이 창부처럼 자지와 손가락을 잘 먹는 건 예삿일이 아니었지만, 오늘따라 성감이 강했다. 재연은 손가락을 처박고 있으니 얼른 좆을 넣고 싶었다. 주형이 울 때까지 범하고 싶었다. 흐물흐물한 구멍이 제 자지를 조이지도 못하고, 정액을 주는 대로 뱉어낼 때의 주형이 어떤 얼굴을 하는지 궁금했다.

“형 윗입도 이렇게 잘 빨면, 좋을 텐데.”

사실 주형이 빨아 준다면 무엇인들 좋겠지만 객관적으로 생각했을 때 다른 놈이 그따위로 빨았다면 그냥 걷어찼을 것 같다. 나름대로 입술로 쪽쪽 물려고 했던 건 기억이 나지만 별로 잘하진 못했다. 그러나 주형이 했으니 너무 음란하고 만족스러웠다. 재연은 주형이 한다면 무엇이든 괜찮았다.

“맨날 약 먹으면 좋겠다.”

비타민처럼. 재연이 그렇게 말하며 질펀한 안을 손가락으로 찔렀다. 손가락을 모은 채 갈고리처럼 휘자 주형이 쓰러질 듯 숨을 헐떡거리며 엉덩이를 벽에 문질렀다. 이윽고 내내 발기해 있던 자지에서 정액을 뿜어냈다. 위로 향하고 있던 것이라 주형의 배뿐만 아니라 재연의 옷에도 묻었다. 질질 늘어지는 정액이 귀여웠다.

“학, 하으…… 흣.”

“형, 이대로면 손목까지 들어갈 거 같아요.”

주먹을 구멍에 처박고, 어떤 식으로 구멍이 받아들이고 있는지 보고 싶었다. 재연은 생각만 해도 아래가 저린 듯 입꼬리를 작게 올렸다. 찌릿한 성감과 동시에 미칠 듯 끓는 욕망이 그를 잠식하고 있었다.

“아, 안 됩니다. 안 들어가요.”

“그럼?”

재연이 고개를 얕게 갸웃거렸다. 주형은 그런 그의 당당한 얼굴을 보며 어깨를 움츠리고 말았다.

“이 후장에 뭘 더 넣으면 좋을까요?”

“…….”

어지러워서 그런지 말을 계속 아름거리기만 했다. 주형은 몇 초나 머뭇거리다가 결국 말했다.

“조, 좆…… 밖에 없지 않습니까.”

“맞아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무서울 만큼 고요한 분위기에 주형이 저도 모르게 움찔거린 순간이었다. 재연의 손가락이 주형의 뒷구멍을 푹 쑤셨다. 잠깐 넣고만 있다가 갑자기 또 강한 움직임을 보이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근데 씨발, 이렇게 발정 나 있으니까 내가 안심이 될까요, 안 될까요.”

재연은 찢어진 브래지어를 억지로 여며서 가슴을 조금이라도 더 가리려는 요량으로 팔을 꿈틀거리고 있는 주형을 보고 또 발기한 모양이었다. 꽤 넓은 어깨가 그런 하찮은 이유로 달싹거리는 게 아주 꼴렸다. 한시도 가만히 두고 싶지 않았다. 평소와는 다르게 조금 소심하게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는 것도 깜찍했다.

“흐으, 아!”

“좆질할 새끼를 내가 하나 더 구해 와야 하나? 아니면, 내가 뱀이라도 돼야 해?”

뱀은 성기가 두 개라고 했다. 영화를 보면 동물 특성을 일부 가진 사람-수인-도 나오던데, 가끔은 그런 게 되고 싶기도 했다. 그러면 주형이 이렇게 약 좀 먹었다고 발정할 때도 불안하진 않을 텐데. 누구에게나 이렇게 세우고 앙앙거리면서 울까 걱정이 됐다. 자지 두 개를 한 번에 처넣으면 그도 이제 만족하고 아무도 탐하지 않을지도 모르지.

“이, 사님…… 이, 흣……! 손, 그만……!”

“묶어서 여기 가둬 놓고 씹질만 하게 해야 하는데, 형 같은 사람들은.”

이렇게 발정이 나서 입술을 벌리고 신음하는 주형을 보면 결국 그런 결론에 당도하고 말았다. 묶어 놓고, 다리를 활짝 벌리게 해 놓은 다음, 하루종일 떡을 치게 하다가, 밥도 뒷구멍으로 먹게 하는 거다. 그러다가 흘리면 엉덩이가 새빨개질 때까지 후려치고, 그다음에는 윗입에 자지를 먹이기를 반복해야 한다.

재연은 머리가 핑핑 돌도록 드는 험악한 생각에 주형의 엉덩이를 다시 한 번 후려쳤다. 짝! 주형은 그와 동시에 하으으, 하고 기다란 신음을 냈다.

“흐, 흐아…… 으응.”

“때리는 게 좋아요? 좆질보다?”

왜 손가락으로 쑤셔주는 것보다 싸는 게 빠를까. 재연이 새하얀 얼굴에 홍조를 띤 채로 말했다. 호수 속 잔잔한 그림자처럼 가라앉아 있던 얼굴이 빛을 발하는 건 주형과 섹스를 할 때밖에 없었다. 게다가 오늘은 미약까지 나누어 마셨으니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고.

“아닙, 니다. 그런, 거.”

“뒤돌아서 엉덩이 내밀어요.”

주형은 이제 삽입을 하려는 건가 싶어 그냥 순순히 뒤를 돌았다. 아래가 이상했다. 무슨 짓을 해도 계속 자지가 터질 것처럼 아프기만 하고, 어디에 비비고 싶었다. 아마 삽입을 하고 나면 나아지겠거니 싶어 내심 기대하던 순간이었다.

재연의 손아귀가 주형의 허벅지를 꽉 쥐었다. 회음 가까이를 손으로 잡아 쫙 벌리자 처져 있는 주형의 음낭이 허벅지 사이로 드러났다. 재연은 어떤 경고도 없이 그 허벅지 사이로 자지를 쑥 넣었다. 거친 행각에 주형의 허벅지 안쪽이 강하게 쓸리고, 그는 음낭과 자지가 부딪히는 감각에 흠칫 놀랐다.

“흐, 흐으!”

“허리 들어요.”

그러고도 모자라 주형의 팬티를 살포시 내리고 구멍 사이에 손가락을 헤집어 넣었다. 들이받듯 손가락을 위로 올려 빙그르르 돌리자 주형이 허리를 쭉 빼며 요염하게 엉덩이를 내밀었다. 속옷만 아니었다면 이딴 전희 따위는 없이 그냥 처박았을 텐데.

“왜…… 이, 렇게, 으, 으응!”

“아직 속옷 벗기기 싫어서요.”

어떻게 입힌 건데 놓칠 수 없었다. 재연은 좀 더 즐기고 싶었다. 그래서 주형의 엉덩이를 잔뜩 벌린 채 삽입하지 않고 사이를 비비기만 한 것이다. 그러나 젤로 어정쩡하게 젖어 있기만 한 맨살에 살 기둥이 닿아서인지 주형은 따끔한 감각을 느꼈다.

“하으, 아…….”

하지만 괴롭지는 않았다. 오히려 은근히 닿는 자지가 좋았다. 주형은 엉덩이를 살짝 내밀었다가 거두었다가 하며, 스스로 움직이고는 했다. 그래서 재연의 자지가 안을 파고들 때면 주형의 음낭이 철썩거리며 살포시 닿았다. 커다랗고 두꺼운 기둥이 사이를 쑤셔 줄 때면 쾌감이 잔뜩 밀려왔다. 머리가 빙글빙글 어지러워도 그것만은 선명했다. 벽을 보고 하는 섹스도 마냥 강간 같지 않고 좋았다. 재연은 그런 주형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얼굴을 묻었다. 우월한 콧날을 비비자 간지러운 감각이 가득했다.

“형, 형…….”

재연이 늘어진 목소리를 내며 주형의 뒤에서 허리를 흔들었다. 그의 통통한 엉덩이에 음부와 배를 계속 문지르자 눈이 절로 감길 정도로 좋았다. 하아, 하고 열이 어린 신음을 흘렸다. 턱을 들고 그를 음미하듯 즐겼다.

“아, 아으…… 아, 갈 것 같…… 하아.”

탁탁 소리가 연이어지고, 주형은 얼마 지나지 않아 벽을 향해 정액을 싸질렀다. 평소와 달리 부끄러움은 없는지 나오는 대로 줄줄 흘리고 있었다. 하얀 탁액을 몇 줄기고 내뱉는 자지는 끄덕거리며 발기한 상황을 유지하고 있었다. 재연 또한 마찬가지로 얼마 가지 않아 토정했다. 콘돔 안에 정액이 잔뜩 고였다. 작게 늘어진 콘돔을 가벼운 손길로 쭉 빼낸 뒤에는 아무렇게나 묶어 바닥에 버렸다.

“역시 좆같은 콘돔 같은 건 하는 게 아니었는데.

재연이 아쉬운 듯 중얼거렸다. 정액을 그대로 싸질렀다면 콘돔 안에 고이지 않고 주형의 엉덩이와 허벅지 뒤에 묻힐 수 있었는데. 재연은 주형의 몸에 제 정액을 묻히는 것을 몹시 좋아했으므로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쯧, 하고 혀까지 차고 있으니 주형이 재연을 슬쩍 불렀다.

“이, 사님.”

“응?”

주형의 간곡한 부름에 재연이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그린 듯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중세 시대 귀족의 여유로운 티 타임이나, 초상화와 잘 어울릴 듯한 모습. 주형은 그런 인상을 받으며 침을 꿀꺽 삼켰다.

“이제, 그냥…… 넣, 으시면 안 됩니까.”

“…….”

“안이, 이상합니다……. 뱃속이, 메스껍습니다.”

울렁거렸다. 어떤 짓을 해도 해소되지 않는 성감이 주형을 미치게 했다. 좆은 가라앉지도 않는다. 정말 하루 내내 섹스를 해야 될지도 모른다는 비현실적인 생각이 스치자 무서워졌다. 주형은 가슴이 터질 듯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눈꼬리를 축 늘어뜨린 그는 소심한 사람처럼 보였다.

“안 돼요.”

“섹스 좋아하지 않으십니까, 왜 안 된다고 하시는 겁니까……!”

눈을 휘둥그레 뜬 주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평소보다 훨씬 나약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재연은 그가 눈을 부라리고 있는 것도 좋았지만, 이렇게 연약하게 우물거리는 것도 좋았다. 그래서 작게 골려 주기로 했다.

“형.”

주형의 귓가로 고개를 돌렸다. 자지는 구멍 입구에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위치해 있었다.

“박히고 싶으면 똑같이 따라 해 봐요.”

“에……?”

주형의 귀에 무어라 속삭였다. 속닥속닥 비밀 기지의 위치를 공유하는 소꿉친구처럼 말하기가 무섭게 주형이 재연을 확 밀쳤다. 이윽고 으으, 하고 신음하며 울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약 때문인지 감정 변화가 심했다. 게다가 안 그래도 뱃속이 간지럽고 무얼 해도 성감이 충족이 되지 않아 미치겠는데 저런 소리를 하니 힘들었다.

“못 하겠어요? 그러면 어쩔 수 없고.”

재연은 주형의 자지를 꽉 쥐었다. 넣어 주지 않고 수음만 해 주겠다는 뜻이었다. 치욕감이 밀려왔다. 뒤로 느껴지는 굵직한 기둥 또한 발정하고 있는데 왜 이런 일을 시키는 건지 이해가 안 됐다. 그냥 평소처럼 처넣으면 될 건데. 그러면서도 거부하지 못한 주형은 기어들어 갈 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바, 박아 주십시오.”

“음…….”

뻣뻣한 목석처럼 우뚝 선 채로 주형이 말했다. 하지만 구멍은 준비가 되긴 한 건지 그는 엉덩이를 내밀고 있지도, 다리 한쪽을 들고 있지도 않았다. 자못 불만족스러웠던 재연이 성큼성큼 다가가 주형의 엉덩이를 꽉 잡았다. 그러고는 껴안듯 가슴을 붙였다.

“그게 아니잖아요.”

“……으으.”

“다시.”

엉덩이를 세게 후려치자 주형이 힉, 하며 신음했다. 짝! 하는 소리와 동시에 그의 엉덩이 근육이 작게 경련했다. 부들부들 떨고 있는 허벅지 사이로 주형의 자지가 끄덕거렸다. 입은 아무런 말도 없는데 그의 좆이 대신 대답하고 있었다.

‘왜 이런 것까지 해야 하는 거야.’

주형이 얼굴을 시뻘겋게 붉힌 채 눈을 피했다. 고개를 비스듬히 돌린 채로 입술을 우물거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혼란스러웠다. 저런 말까지 해야 한다는 게 비참하면서도 자못 기대가 됐다. 재연이 어떤 걸 보여줄지. 생각해 보니 예전에 했던 섹스도 싫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어떨지.

얼른 난잡하게 재연이 제 구멍을 쑤셔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굵직한 자지로 제 안을 흔들다가, 안에다 싸지른 뒤 자못 미안하다는 얼굴로 키스를 하면 기분이 좋지 않을까. 억눌리는 이 옷을 풀어 주고 좆으로 기분을 좋게 해 주는 재연을 상상하니 가슴이 요동쳤다. 주형의 머릿속은 살색과 음란한 행위로 가득했다. 이미 약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달싹이는 입술은 쉬이 열리지 못했다. 재연은 그 연붉고 통통한 살갗이 좋아 마냥 바라보았다. 뭐라도 말을 하지는 않을까 싶어 빤히 바라봤다. 주형은 몇 초나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좆은 혼자서 꾸물거리는 꼴이라 오래 가진 못할 듯 보였다.

“응?”

할 말 없어요? 재연이 무슨 말이라도 해 보라는 듯이 주형을 긁었다. 주형의 엉덩이를 노골적으로 지분거리는 손길에 힘이 점점 들어갔다. 주형은 아픈 감각이 아니라 이상하게 몸에 뭉치는 듯한 느낌에 눈썹을 파르르 떨었다. 이윽고 재연의 손길을 팍 밀어냈다. 탁, 하고 그의 손길이 매몰차게 떨어져 나갔다.

재연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시선이 주형의 목으로 넘어갔다. 그렇게 목덜미를 거세게 휘어잡으려 했던 순간이었다.

주형이 뒤를 돌았다. 그리고 등을 돌린 채로 이마를 벽에 댔다. 톡, 자그마하게 닿는 소리와 동시에 주형이 엉덩이를 쭉 내밀었다. 그 느긋한 움직임이 주형의 등뼈에서 엉덩이로 이어졌다. 아슬아슬하게 골반에 걸쳐져 있는 팬티 위로 작게 엉덩이 골이 눈에 띄었다.

그 광경을 직접 본 재연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 순간 주형이 고개를 푹 숙였다. 머리카락이 벽에 쓸려서 작은 소음을 만들어냈다.

“자, 지…… 박아, 주십시오.”

어쨌든 주형은 섹스를 하고 싶은 상태였다. 그게 진심은 아니고 약 때문이라는 걸 본인도 무의식적으로 알고는 있었지만, 방법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몸이 화끈화끈하고, 구멍이 간지럽고, 이상하게 손이 자꾸만 그쪽으로 향하려고 했다. 자지는 몇 번을 싸도 만족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

주형이 팬티에 손가락을 비집어 넣어 천천히 내렸다. 하얀색 레이스는 본래 자수의 형태가 망가질 정도로 늘어나 있었다. 튼실한 허벅지를 팬티가 가리고 있었다. 잔뜩 조이는 속옷으로 인해서 옴짝달싹할 수 없는 모습은 음란했다. 주형은 구멍이 잘 보이도록 최대한 허리를 쭉 뺐다.

주형의 목소리는 얕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는 내내 앞만 보고 있다가, 울먹거리고 있는 눈동자를 일렁이며 뒤를 교묘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재연이 고개를 움직여 주형과 눈을 억지로 마주친 덕분에 둘의 눈길이 서로에게 닿았다.

“주인……님.”

그 목소리가 울리자마자 재연은 이성을 가져다 버렸다. 그리고 바로 주형에게 앞을 보게 했다. 당황한 주형에게 뽀뽀를 퍼부어준 뒤에는 젖어 있는 손가락으로 팬티를 한 손에 쥐었다. 잔뜩 성이 나 있는 손등이 꿀렁거리며 욕심을 냈다. 이윽고 부욱, 하는 소리와 동시에 주형이 입고 있는 팬티를 찢어버렸다. 반쯤 너덜너덜해진 옷가지 덕분에 다리를 더욱 벌릴 수 있었다.

재연은 볼기를 양손으로 쥐고 사이를 억지로 벌렸다. 통통하게 달아 있는 구멍에 귀두를 맞추고 아무런 예고도 없이 푹 처넣었다. 몸을 약간 숙여 처박은 뒤에는 주형의 허벅지에 손을 대고 그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아, 윽!”

“잡아요.”

주형이 놀란 나머지 등을 쿵 부딪혔다. 겁을 먹은 주형이 힘을 주어서 어정쩡하게 공중에 떠 있었는데, 재연은 그런 주형을 달래듯 자지를 안에 대고 비볐다. 안에 젤이 잔뜩 자리 잡고 있어 추걱추걱 음란한 소리가 울렸다. 발정이 나서 성감을 크게 느낀 주형이 길게 신음하며 몸을 축 늘어뜨렸다. 그리고 재연을 꼭 껴안았다.

“……옳지.”

꼭 안긴 덕분에 주형을 안기 쉬워졌다. 허벅지 아래로 손을 더욱 파고들어 팔에 힘을 주고 천천히 들어올렸다. 주형을 벽에 기대게 한 채 몸을 받쳤다. 든 채로 박고 있자 황홀한 감상이 들었다. 재연은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했다. 주형이 안달이 나서 자지를 박아 달라고 하다니.

“너무, 세, 셉니다. 조, 흐으…… 금, 만.”

“근데 구멍은, 좋아하는 거 같은데.”

성기를 받아들이는 구멍이 꾸물거렸다. 얕게 경련하다 못해 입구가 벌름거리고 있었다. 물을 갈망하며 꿀렁거리는 목울대 같았다. 자지를 맛있게 먹고 있는 게 느껴졌다. 재연은 하아, 하고 숨을 내쉬었다. 완전히 벌린 채 구멍을 드러내고 있는 주형의 아랫도리가 보였다. 눈을 조금 내리기만 해도 보이는 선정적인 광경이 자못 만족감을 주었다.

“아, 니야. 아니……, 흐, 흐으!”

“반말을, 하면 안 되죠.”

주인님한테. 재연은 그렇게 말하며 자지를 푹 쳐올렸다. 구멍을 찢듯 거세게 몰아붙이자 주형이 바둥거렸다. 주형과 눈이 마주친 재연은 그가 울며 얼굴을 새빨갛게 하고 있는 모습에 그만 사정을 했다. 구멍 입구를 가득 틈없이 채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액이 찔끔찔끔 흐르고 있었다.

“흐, 앙! 으, 이, 사님!”

갑자기 이상한 목소리가 나왔다. 주형은 벽에 머리를 콩 찧으며 어깨를 바짝 세웠다. 제 몸이 제 것이 아닌 듯한 감상이 들었다. 무언가 잘못됐다. 주형은 눈동자를 뒤흔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머리칼이 야살스럽게 흔들려도 재연은 그를 벽에 박제할 기세로 밀어붙였다.

“왜요……, 형.”

“이상, 합니다. 이사님……, 이, 읏!”

말을 다 듣기도 전 재연이 좆으로 후장을 치댔다. 아래를 쑤시다 못해 아프도록 붓게 하는 감각에 주형이 턱을 천장으로 들었다. 그는 자지를 느끼며 머릿속을 비우고 있었다. 재연은 주형의 허벅지를 욕심껏 움켜쥔 채였다.

“형, 왜 내 좆물을 이렇게, 마구 흘려요.”

열심히 했는데 아래를 바라보니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꼴이었다. 약을 먹였더니 온몸이 성감대라도 된 건지 주형은 제 물은 받지 못하고, 본인 물만 줄줄 흘리며 다리를 벌리고 있었다. 그러나 엉덩이를 벽에 문지르며 제 몸 위에서 꾸물거리는 주형이 자못 사랑스러웠다. 흉물이 구멍을 망가뜨리고 있는 중에도 주형은 조금씩 탁액을 흘리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주형은 타고난 게 분명했다.

“씨발, 기껏 잘 담아 줬으면…… 잘, 먹어야지. 응?”

담아 준 보람도 없게 구멍에서 흘리는 꼴이었다. 재연은 구멍에 살덩이를 집어넣은 채, 구멍 사이로 질질 새는 정액을 바라봤다. 칠칠치 못한 모습도 꼴렸지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재연은 그 구멍이 제 정액에 가득했으면 했다. 조금만 비집어 넣어도 샐 정도로. 그게 감당이 안 돼서 매일 속옷을 착용해야 하고, 주형이 울상이 된 채 아무데도 못 나가겠다고 하면 좋겠다고 했다.

“나, 도 잘…… 안, 흐으, 으. 히으…….”

주형은 정신이 없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신 또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혀가 풀렸다.

“말도 제대로 못 하네. 그렇게 좋아요?”

“아니야. 아니……으, 니다. 학, 하……!”

“그렇게 말하니까 내 자지 입에 넣고 있는 거 같아요, 형.”

주형의 목소리가 억눌렸다. 딱히 목구멍을 막고 있는 것도 없는데 너무 지쳐서 그런지 단어 하나하나에 숨결이 깃들어 있었다. 야했다. 재연은 주형이 잠들기 전 그렇게 제 귓가에 속삭여주면 좋겠다고 바랐다. 그러면 생각이라는 게 생긴 그 순간부터 있던 악몽과 불면에서 벗어날 수 있을 텐데.

“자지 하나 더 구해 올까?”

“흐, 흡.”

재연이 짓궂은 말을 속삭였다. 아까까지만 해도 단둘만의 관계로 남고 싶다고 했다는 걸 기억하지도 못하고, 주형은 겁을 집어먹었다. 그는 스물이 훨씬 넘는 남자가 아니라 본능에만 충실한 아이가 된 것처럼 굴었다. 감정 표현도 들쑥날쑥했다.

“싫……습니다. 이사님, 두 개는…… 안, 됩니다. 안, 안 됩니다.”

“형 여기에 보지 달고, 앞이랑 뒤로 쑤실까요? 그러면, 씨발, 좆물도 잘 담을 텐데.”

통이 두 개라서. 재연은 그리 말하며 주형의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정액을 잔뜩 받아 임신이라도 되면 어쩌냐고 우는 주형이 보고 싶었다. 재연은 강한 모습도 좋았지만 이렇게 제정신이 아닌 주형도 좋았다. 제가 유일한 구원을 할 수 있는 권력자로 만들어 주기 때문이었다.

주형은 흐으, 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약 때문에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평소에는 쉬이 하지 못할 말도 약을 먹은 둘에게는 쉬웠다. 아래가 질척거리며 주형의 속을 탐하고 있었다.

“싫습니다……. 이, 사님.”

“그럼?”

“자, 지 잘 받고…… 좆물 담을 테니까, 이, 사님이랑만, 하게 해 주십시오.”

아무리 생각해도 세 명은 아니었다. 보지도 미친 일이고, 이렇게 당하면서 펠라까지 해야 한다니. 주형은 재연이 절대로 할 리가 없는 짓이라는 판단도 하지 못하고 울며 매달렸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그는 떼를 쓰는 아이 같았다. 눈물과 콧물로 범벅된 뺨이 통통 부어올랐다.

“…….”

재연은 멍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상상이 충족되다 못해 흘러넘쳐서 짜릿함에 빠진 소년의 얼굴이었다.

“지금 무슨 말 하는지 알아요?”

기묘한 웃음을 띤 채 되물었다. 주형은 고개를 비스듬히 숙였다. 그런 소심한 모습을 볼 수 있음에 감사했다. 재연은 하나하나 다 씹어 먹고 싶어졌다. 주형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논문을 쓰라고 해도 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뒷구멍을 대라고 하면 욕부터 할 것 같은 제 형이 저런 말을 하다니. 꿈에서도 보지 못한 광경이었다. 재연은 주형이 먹는 모든 것에 미약과 마약을 넣어 놓을까 하는 흉한 생각을 가졌다. 그러면 섹스를 조르다 못해 보채며 앙앙 울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잔뜩 망가진 주형을 보며 구세주인 듯 그를 사로잡으면 주형은 정말로 아무데도 가지 못할 거다. 음습한 것들도, 밝은 것들도 주형에게 모두 쏟아부으며 사랑에 빠질 수 있다.

“그건, 저도…….”

잘 모른다는 말을 하기 전 재연이 주형의 허벅지를 억눌렀다. 근육과 살이 손가락 사이로 굴곡지게 튀어나올 정도로 세게 쥐자 그가 읏, 하고 신음을 흘렸다.

“이, 이사님이랑만, 하고 싶습니, 다. 흐, 흐윽.”

“그러니까, 왜 내가 형한테만 박아 줘야 해요? 내가 형 전용 딜도도 아닌데.”

재연은 무언가 바라는 게 있었다. 주형이 저만 필요하다고 말하기를 기다렸다.

“왜, 내 자지가 맛있어요?”

그러나 이때까지 잘 기다려 왔는데도 불구하고 오늘은 잘 되지 않았다. 자꾸만 주형을 괴롭히고 싶었다. 주형이 수치심으로 얼굴을 붉히고, 매달리고,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재연은 약에 취하면 취할수록 본능적으로 행동했다.

“그래서 씨발, 지금 이렇게 창부 새끼처럼 구멍을 오물거리고…… 둘이서만 떡 치자고 하는 건가? 둘이서만 해야 내 좆 혼자서 독점할 수 있으니까?”

“아니, 야. 아닙니다……! 그런 게, 으읏.”

주형이 엉덩이에 힘을 주었다. 구멍 입구가 비스듬하게 닫히며 재연의 것을 물었다. 아기가 입술로 음식을 씹듯 주형의 아랫입이 움찔거렸다. 꼼지락거리는 걸 온몸으로 느낀 재연이 씩 비릿하게 웃었다.

“하하. 형, 좆 터지겠어요.”

너무 조여서. 재연은 중얼거리며 너덜너덜해진 속옷을 입에 물었다. 그리고 입술로 가슴을 비비적거리며 엷게 웃었다.

“그렇게 안 봤는데 형, 엄청 변태네요.”

“으응. 으, 흐으응.”

주형이 앓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애교가 담긴 비음과 주형의 구멍이 벌름거리는 게 느껴졌다. 커다란 몸뚱이가 제 품 안에서 바르작거리는 걸 보고도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다. 재연은 흉물을 잠깐 빼냈다. 그리고 틈도 주지 않고 다시 육벽을 짓이기며 처넣었다. 즈윽, 하고 기다란 정액이 질질 늘어지며 사타구니를 적셨다.

“그래요. 꼭 나랑만 해.”

“하윽, 힉!”

눈을 휘둥그레 뜬 주형이 재연을 와락 껴안았다. 뱃가죽이 터질 듯 쿵쿵 두드려대는 성기를 받아들이면서도 팔에 힘을 잔뜩 주고 있었다. 정말로 몸이 고장 날 것만 같았다. 온몸이 부은 듯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고, 기묘하게 붕붕 뜨는 몸이 이상했다. 주형은 눈가를 새빨갛게 물들인 채 히끅, 딸꾹질을 했다.

“나랑만 하고, 아무한테도 형 알몸 보여주면 안 돼요. 누구랑 눈도 마주치지 말고.”

재연은 간혹 주형이 일을 나가는 것도 못마땅했다. 자신은 그렇게 노력해야 볼 수 있는 주형의 모습인데, 다른 사람들은 그냥 스치듯 보니까. 심지어 살펴 주지도 않는다. 만약 그 시간에 주형이 제 앞에 나타난다면 이렇게 구석구석 다 예뻐해 주고, 씻겨 주고, 만져 줄 수도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주형은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것만 같았다. 섭섭했다.

“그 대신 우리는 죽을 때까지 단둘이서만 씹질해야 돼요.”

재연이 주형을 그리워한 시간 두 배 이상으로 붙어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 공허함과 서운함을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재연은 주형이 망가질 때까지 함께 있고 싶었다. 그가 주형에게 가진 감정은 그렇게 묵직한 광기로 차 있었다.

“흐, 흡. 그, 렇게까지, 흡, 으응!”

‘죽을 때까지’라는 말에 주형이 놀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허황된 말이었다. 주형은 정신이 없는 중에도 이것저것 따지려 들고 있었다. 재연이 그렇게도 마음에 들어하는 주형의 모습이었다. 그는 썩은 진창에서 살면서 눈동자만은 반짝거리고 있었다. 꼭 깨부수고 싶게, 유리구슬처럼 생겼다.

“왜, 나랑만 하는 섹스가 좋다며.”

“으, 으응……. 흐, 하으. 학, 아…….”

힘이 빠진 주형이 슬쩍 다리를 내리려 한쪽 허벅지를 꿈틀거렸다. 잔뜩 지쳐서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키스를 한 것도 아닌데 얼굴이 녹을 듯 무거웠다. 주형은 별 대가 없이 기댈 수 있는 벽에 머리를 기대고 스트레칭을 하듯 허리와 등을 바르작거렸다. 고개를 얕게 숙인 채로 더없이 지친 모습으로 처연하게 말했다. 널따란 어깨와는 어울리지 않게 물을 먹은 눈동자가 일렁였다. 금세 흰자위가 줄어들고 검은색 눈동자가 흔들렸다.

“몸이…….”

그리 중얼거린 주형은 그대로 축 늘어졌다. 안기며 버티느라 물고 있던 재연의 어깨에 불그스름한 자국이 남았다. 잇새로 숨이 자그마하게 흐르고, 작은 잇자국이 어깨에 남았다. 의식이 없어진 듯 무거운 느낌에, 재연은 그대로 그를 안아 침대에 눕혔다.

“……이런.”

옷이 다 망가졌네. 재연이 그리 중얼거렸다. 약 때문에 주형이 쉽게 지쳐서 떨어진 듯했다. 역시 약은 가끔 써야겠다. 두 번밖에 못 싼 것 같은데 주형이 쓰러져 버리니 당황스러웠다.

재연은 좆을 넣은 채 곰곰이 생각을 하고 있다가, 일단 정리를 하기 위해 주형의 몸을 적시고 있는 정액을 혀로 하나하나 다 빨아먹었다. 마지막으로는 자지와 음낭을 쪽 빨아들여 그가 조금 흘린 액까지 갈무리해 주었다. 다른 이의 타액으로 얼룩져 있는 주형의 몸을 확인한 뒤에는, 주형의 가슴을 사이에 두고 천천히 자리를 잡았다.

“후…….”

재연이 주형의 얼굴에 대고 자지를 내밀었다. 그리고 검붉은 혈관이 선명하게 비치는 흉물을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제가 무얼 좋아하는지 다 알고 있으니 손가락으로 좆을 짓누르고, 여린 귀두 살을 자극해 주었다. 그리고 주형의 잠든 얼굴을 반찬거리 삼아서 천천히 자지를 문질렀다. 스윽, 슥. 느릿느릿하게 소리를 내던 것은 그가 숨을 가쁘게 쉬며 흰자위를 드러낼수록 커졌다.

“씹, 하아…… 하.”

주형의 얼굴을 제 색깔로 물들이고 싶었다. 정액이 눈가를 적시고, 속눈썹 사이사이를 가득 채워서 말이다. 그가 기다란 속눈썹을 한 번 팔랑일 때마다 얕게 늘어지는 정액을 보고 싶었다. 그게 아무리 음침한 욕망이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주형은 잠들어 있었으니까.

“씨발, 민주형. 주형 형, 민주형…….”

재연은 입술을 터뜨릴 기세로 짓누른 채 주형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허리를 작게 흔들며 고개를 치들었다. 눈을 감아도 주형의 얼굴이 보였다. 눈두덩이 움찔거리며 주형을 상상해냈다. 머릿속의 주형은 잠든 주형보다 흥분한 상태였다. 새빨간 얼굴로 울며 잘못했다고 하는 그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거세게 성기를 비볐다. 조금씩 나오는 액과 손이 부딪히자 탁, 탁 소음이 일었다.

자그마하게 허벅지를 움직이며 좆을 흔들었다. 손으로 만지며 골반도 흔들었더니 음낭이 함께 자지와 부딪혔다. 성감이 잔뜩 밀려 올라왔다. 평소라면 별로 재미도 없었을 짓이지만 주형의 얼굴과 약 덕분에 딱히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재연은 주형이 아, 하며 동그랗게 입술을 벌리고 눈을 가늘게 뜨며 다리를 벌리는 광경을 상상했다. 어서 박아 달라는 듯이 손짓하고, 망가뜨려도 지워지지 않는 반짝임을 품은 그를 생각했다. 물론 이미 몇 번이나 보았던 광경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싫지 않았다. 더럽다든가, 상스럽다든가…… 그런 말은 어울리지 않았다.

“읏.”

주형은 사랑스러웠기 때문이다. 재연은 그리 생각하며 정액을 잔뜩 내보냈다. 허리를 바르르 떨며 정액을 모두 싸지른 뒤에는 그제야 눈을 천천히 떴다. 자지를 손에서 내려놓고, 끈적거리는 감각을 무시한 채 고개를 내려다보았다.

주형의 얼굴은 하얀 정액으로 뒤덮여 있었다. 거미줄을 친 것처럼 가느다란 실과 굵직한 액이 엉켜 있었다. 재연은 그렇게 망가진 주형이 자못 사랑스러워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입을 맞추었다.

함께 만신창이가 된 채 섹스를 하는 건 황홀했다.

***

일어나 보니 얼굴이 건조했다. 원래 피부에서 광이 나진 않았으나 오늘은 불편했다. 주형은 끙, 하고 자리를 두리번거리자 곁에 재연이 누워 있는 것이 보였다. 잠자고 있을 때는 천사 같은 그의 얼굴을 바라보자 이상한 감상이 들었다.

‘얼굴이랑 인성은 반비례인가.’

나름대로 그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모습을 보면 또 모든 게 지워지고 만다. 주형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하품이 늘어지게 났다. 두통 때문에 시야가 조각나듯 일렁였다. 주형은 한숨을 푹 내쉬며 팔꿈치를 베개에 댄 채 몸을 일으켰다. 꾸역꾸역 일어나 보니 제 몸에는 가운이 둘려 있었다. 뭔가 불편한 듯해 몸을 꾸물거리고 있자 제 몸을 감싸고 있는 또 다른 속옷이 보였다.

“이, 씨발……!”

주형은 자그마한 목소리로 씩씩거렸다. 짜증으로 가득한 눈길을 곁으로 돌리자 재연이 으응, 하며 잠꼬대를 하는 게 느껴졌다. 그는 주형이 있는 쪽으로 꼬물거리며 조금씩 더 다가오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주형은 거의 떨어지기 직전까지 가장자리로 몰려 있었고, 재연의 자리는 아주 넉넉했다. 어린아이와 함께 자도 이 정도로 우스운 광경은 만들어지지 않을 텐데.

‘개새끼, 이런 걸 입혀?’

게다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입으로 무언가를 먹였다. 아주 달콤한 액체였는데, 그 뒤로 희한하게 기억이 거의 없다. 주형은 몸을 웅크린 채 턱에 손가락을 대고 고민했다.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그러자 난감한 광경이 펼쳐졌다. 재연이 상스러운 말을 하는 순간이 펼쳐졌음은 물론이고 제가 재연에게 주인님이라고 말하며 울먹거렸던 것도 떠올랐다. 그 외에도 많은 게 떠올랐으나 주형은 현실을 외면하듯 이마를 팍 때리고 말았다.

“이게 진짜…….”

먹였던 게 그런 약인 건가. 주형은 생전 처음 겪어 보는 열감을 다시 떠올리며 으으, 하고 소름 끼쳐 했다. 파렴치한 새끼. 그가 재연을 말로 찔러 죽일 기세로 속으로 욕하고 있을 때였다.

“으음……, 형.”

“…….”

이사님이라고 불러 주기도 싫었다. 대답도 안 하고 싶다. 주형은 그냥 못 들은 척 멍하니 허공을 바라봤다. 잠에서 덜 깬 척을 하면 그도 도리가 없겠거니 싶어서.

“형, 왜 대답이 없어요……. 형.”

“아……, 예.”

저렇게 애절하게 부를 이유가 뭔가 싶어, 굳건한 결심은 1초 만에 깨졌다. 주형은 곁을 돌아보며 재연이 부스럭거리는 광경을 눈에 담았다. 재연은 잠에서 덜 깬 얼굴로 마른세수를 하고 있었다. 뽀얀 뺨이 작게 달싹거렸다. 거의 감겨 있던 눈이 뜨이고, 주형은 잠자는 숲속의 왕자 같은 그를 맞이했다.

“잘 잤어요?”

“……아뇨.”

“그래요? 하다가 기절해서 잘 자는 줄 알았는데.”

재연이 갸웃거렸다. 그러고 있자 주형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고 재연을 노려봤다.

“치워, 개새끼야.”

“…….”

주형의 얼굴이 차가워졌다. 화가 난 듯 그가 흰자위를 드러내며 성을 냈다.

“씨발, 누가 약 먹고 섹스한 다음에 푹 잡니까? 지금 몸도 이리저리 쑤시고…… 지랄 난 거 어떻게 하실 겁니까?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선이라는 게 있지!”

“화났어요?”

“그래, 화났다. 개새끼야. 어떻게 약을 먹이고 섹스를 하냐? 애새끼가……, 씨, 그딴 건 섹파라도 구해서 하든가. 약은 범죄라고!”

주형은 목소리를 높였다. 평소에는 틱틱거리긴 해도 화를 내지는 않던 그였는데, 갑자기 핏줄을 세우고 화를 내니 긴장감이 일었다. 재연은 그를 어떻게 달래면 좋을지 빠르게 궁리했다. 그러면서도 엷게 웃으며 주형의 팔목을 그러쥐었다.

“내가 섹스 파트너를 어떻게 만들어요. 나는 형 애인인데.”

“누가 애인이랑 발정제 먹고 섹스를 해? 동의도 구한 적 없는 걸 막 먹이면 그게 강간이지, 사랑의 섹스냐?”

주형은 재연의 손을 매몰차게 뿌리쳤다. 이번에는 쉽게 화가 풀릴 것 같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이 새끼, 발목도 부숴 놨었지. 갑자기 짜증이 또 났다. 인상을 확 구기자 재연이 처연한 얼굴로 재차 매달렸다. 주형과 같은 가운이 벌어져서 피부가 식고 있는데도 그는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형은 언제나 날 거부하잖아요.”

서운한 점도 있었다.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안 되는 건 처음이라 남 탓이 앞섰다. 재연은 풀이 죽은 모습으로 동그랗고 예쁜 입술을 오물거렸다.

“…….”

“형만 거부하지 않았으면 나도 강간하지 않았을 거예요.”

재연의 눈동자는 아기 사슴처럼 반짝거렸다. 둥근 눈매와 사근사근한 목소리가 주는 인상은 여전히 다정하고 사랑스러웠다.

“허, 씨발……. 그래서, 잘했다?”

주형은 움찔거리면서도 속으로 이런 거에 약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괜히 세게 말했다.

“……잘한 건 아니지만, 형이 너무 나한테 매몰차게 군 것도 있다고 생각해요.”

재연은 조금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마음이 너무 급했다. 주형에게 약을 먹여서 좋아한다는 말을 들어내 봤자 좋을 것은 달리 없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흥분한 그의 모습을 보자 도리가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라면 그냥 뺨을 후려치고 말았겠지만 주형이 저렇게 화를 내자 마음이 흔들렸다.

그가 이러다가 진짜로 사라지거나 죽어버리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재연은 주형과 관련된 일만 있으면 생각을 하는 게 서툴렀다. 쉽게 비약하고, 좌절하고, 또 원망하고 만다.

“지금 네가 말하면서도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재연아.”

기가 찼다. 주형은 더 화를 낼 힘도 없었다. 배도 고프고 몸도 지쳤다. 주형은 허, 하고 코웃음을 쳤다. 어린 도련님을 달래는 양아치 같은 모습이었다.

“형이 조금만 나한테 더 다정했어도, 마음 표현도 잘 해줬어도 내가 그런 생각까지는 안 했을 거예요……. 난 형이 정말로 좋단 말이에요.”

“…….”

주형의 눈동자가 차가워졌다. 재연은 순간적으로 위기감을 느꼈다. 그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불안함으로 가득한 눈이 주형을 애처롭게 바라봤다.

“됐습니다. 그만 이야기하죠.”

“…….”

“기대한 내가 병신이지.”

말이 안 통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이야기를 해 보려고 했던 스스로가 바보 같았다. 재연은 무슨 말을 해도 분위기를 금세 바꾸어 버리고, 그냥 제멋대로 하고 만다. 포기하는 게 맞다. 주형은 심통이 잔뜩 난 상태였다. 말이 안 통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이렇게까지 되니 답답했다.

그렇게 허탈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자 재연이 주형의 팔목을 슬쩍 붙잡았다.

“형, 미안해요. 가지 마요.”

“…….”

“그게, 형이 좋아한다고 말하는 게 듣고 싶어서 그랬어요.”

약에 취하면 해 줄 것 같아서. 재연이 꾸물꾸물 덧붙였다. 그는 드물게 말을 더듬고 있었다. 잡스러운 말은 잘 하지 않는데 꾸역꾸역 말하는 데에서 평소와 다른 게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진심으로 미안한 듯 아주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코를 작게 훌쩍였다. 그 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자 재연의 눈가가 새빨개져 있었다.

“이사님.”

“……아.”

주형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놀란 나머지 자리에 다시 앉고 재연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미안해요, 형. 보기 싫을 텐데.”

재연의 목소리가 일그러졌다. 몇 번 눈을 깜박이자 그대로 물방울이 고였다. 기다란 속눈썹이 물먹은 눈동자를 감쌌다.

재연이 울기 시작했다. 주형은 그 모습에 당황한 나머지 어어,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멍한 눈동자가 몇 번이나 끔뻑거렸다.

“아니…… 그, 왜 울고…….”

“그냥…….”

너무 속상해서요. 재연은 그리 덧붙였다. 그러고는 제 눈두덩에 손을 가져갔다. 손바닥으로 눈을 덮어 속눈썹과 눈을 꾹 누른 다음 눈물을 닦았다. 반짝거리는 눈물이 그의 손바닥에 달라붙고, 주형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잔뜩 주눅든 채로 물먹은 입술을 오물거리는 그를 보자 단번에 마음이 헛헛해졌다.

“……항상 치사하게…….”

주형이 그리 중얼거리며 재연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댄 뒤 제 손으로 재연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얼굴이 본래 빛나던 것만큼만 빛날 때까지 어색한 손길로 갈무리를 해 주자 그제야 그의 얼굴이 덜 처연해졌다. 주형은 입을 다문 채 한숨을 푹 삼켰다.

얼굴로 공격하는 것도 그렇고, 좀 난감하다 싶으면 우는 것도 그렇고…… 재연은 이렇게 꼭 시의적절하게 운다. 곤란했다. 우는 걸 보이면 마음이 약해지는 건 사람이라면 무릇 당연한 일인데 말이다. 무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재연의 눈물은 위력이 강력했다. 주형은 이렇게 또 지고 마는 제 모습을 한탄할 겨를도 없이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약을 쓰면 안 되는 거지 않습니까……, 하아.”

“잘못했어요.”

재연의 입에서 기어코 사과가 나왔다. 그는 혼이 나고 있는 아이처럼 어깨도 움츠리고 있었다. 이불 때문에 잘 보이진 않았지만 두 손도 꼭 모으고 있는 듯했다.

“…….”

“앞으로는…… 형한테, 허락받고 쓸 테니까 사과받아 줘요.”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안 쓰겠다는 게 아니라 허락받고 쓰겠다는 말이 참 윤재연다웠다. 주형은 앞머리를 거칠게 쓸어넘기며 눈을 살포시 감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일단 넘어가죠.”

눈을 다시 뜨자 재연이 멍한 얼굴로 주형을 바라봤다. 어린 왕자처럼 눈동자가 아주 선명하고 예뻤다. 이윽고 온몸을 던져 주형을 꼭 껴안았다. 덩치가 엇비슷하지만 주형보다 큰 그가 주형을 덮쳤다.

주형은 윽, 하는 소리를 내며 반쯤 자빠졌다. 재연은 그 사이를 파고들며 형, 하고 애교 어린 목소리를 냈다. 좋아서 미칠 것 같다는 음성이었다. 가슴 사이를 비비적거리자 가운이 벌어지며 주형이 잘 동안 재연이 입혀 놓은 민트색 속옷이 드러났다.

“으, 덥습니다. 저리 좀…….”

사실 덥지는 않았다. 다만 재연이 자꾸 얼굴을 비비며 애교를 부리는 게 부담스러웠다. 일어나자마자 이러고 있으니 얼굴이 달아올랐다.

“고마워요.”

“됐고, 일단 좀 떨어지십시오.”

얼굴이 붉어졌다. 주형은 큼, 하고 헛기침을 하며 괜히 외면했다.

“으응.”

주형이 조심스럽게 어깨를 잡고 밀어냈다. 제자리로 돌아가도록 하자 재연이 배시시 웃으며 제 머리를 베개에 다시 묻었다. 가물가물한 눈을 보자 그는 다시 편안하게 잠이 들려는 것 같았다.

“내가 형을 너무 사랑하는 거 알죠?”

“…….”

주형은 쉬이 대답할 수 없었다. 다시 누운 채 햇살을 받고 우아하게 웃고 있는 재연을 눈에 담았다. 그는 흐트러진 가운을 정리하지 않고 새하얀 이불과 뒤섞인 채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웃느라 자애롭게 반쯤 감겨 있는 눈동자와 그를 감싸고 있는 속눈썹이 미묘하게 젖어 있다. 주형은 그런 그가 내미는 손길이 은근하게 제 손등과 팔뚝을 쓰다듬고 있다는 걸 자각하며 겨우 입을 열었다.

“압니다.”

묵직한 목소리로 그리 말하고는, 우물쭈물 눈동자를 굴렸다.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서 방황하고 있었다. 주형은 무언가 떠오른 듯 재연의 손길을 조심스럽게 떼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씻고 오겠습니다.”

“응. 다녀와요, 형.”

재연이 입꼬리를 올려 예쁘게 웃었다. 구김살 따위 하나도 없이 어여쁜 모습이 봄날, 혹은 햇살 같았다. 주형은 그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후다닥 가운을 여미고 떠났다.

그 듬직한 뒷모습을 바라보던 재연은 그가 방을 나갈 때까지 시선을 떼지 못하다가, 그가 문까지 굳게 닫고 나서야 다시 자세를 고쳤다. 그리고 그새 차갑게 식은 눈길로 전자시계에 눈을 주었다. 그가 사라지자마자 재연의 눈빛에는 냉기가 서렸다.

아무렇지 않게 숨을 내쉬는 그는 안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눈가를 작게 물들이고 있는 눈물을 거친 손으로 닦았다. 섬세함 따위는 하나도 없는 손길이 재연의 눈가를 스치자 주형을 위한 눈물이 사라졌다. 재연은 가만히 있다가, 주형이 잠들었던 자리에 있는 이불을 끌고 와 코를 묻었다.

‘형 냄새.’

좋았다. 포근하고 따스했다. 미미하게 남은 온기마저도 가지고 싶었다. 재연은 역시 주형이 좋았다. 그를 방금처럼 거짓 울음으로 속여서라도, 제 곁에 둘 만하다고 여겼다. 그는 맹목적인 눈길을 한 채 이불을 껴안았다.

***

주형과 재연은 식사를 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부잣집에 들어온 만큼, 주형은 원래보다 풍족하고 편안한 식사……가 될 줄 알았는데.

“……원래 이 자리에 앉으십니까?”

주형은 자리에 앉아 제 허벅지와 제 곁을 한 번씩 쳐다봤다. 명백히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다.

“아뇨? 이 집에 온 뒤로 여기서 먹는 건 처음인 거 같아요.”

재연은 주형과 지내기 위해 이 집으로 옮겼다. 원래 신혼집은 또 따로 마련해야 기분이 난다고 하지 않나. 그래서 재연은 그와 이렇게 나란히 앉아 식사를 하는 게 꿈만 같았다.

“그렇……습니까. 근데 왜 여기 앉으시죠?”

이렇게 틱틱거리는 주형의 모습도 예상 그대로라 기뻤다.

“여기 앉으면 안 돼요?”

누가 자리를 넘보고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안 된다고 눈치를 주는지 몰랐다. 재연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로 제 옆에 앉아있는 주형을 그윽한 눈으로 바라봤다.

“솔직히 바로 옆에 앉으시면 부담스럽습니다. 그, 밥 먹을 때는 좀 그냥 먹으면 안 됩니까?”

“밥 먹을 때는 밥만 먹을 거예요. 왜요, 식탁 위에서 섹스하는 게 로망이에요?”

식탁에서 식사 외에 다른 걸 할까 겁을 내고 있는 듯한 모습이라 의아했다. 재연은 말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주형의 속을 박박 긁어 댔다.

“씹, 그게 아니라……! 아니, 굳이 저 많은 자리 두고 여기 오셔야 합니까? 그냥 마주 보고 앉으면 제일 편하지 않습니까!”

“마주 보고 앉으면 먹여 주기 어렵잖아요.”

“혼자 먹을 수 있습니다. 왜요, 이젠 손목도 부러뜨리실 겁니까?”

주형은 헛웃음을 픽 흘리며 시비를 걸었다. 눈을 크게 뜨자 동네 양아치가 애먼 고등학생에게 시비를 거는 모습 같았다. 현실은 완전히 반대였지만. 평소 날카롭게 생긴 눈꼬리가 더욱 험한 곡선을 그렸다. 남성미 있는 굵은 눈썹이 꿈틀거리며 짜증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럴까요?”

그러나 그런 모습에 질 재연이 아니었다.

“이사님이랑은 장난도 못 치겠습니다, 으으.”

주형은 고개를 돌린 채 상스럽게 욕지거리를 읊었다. 이젠 지쳐서 무어라 반문도 안 됐다. 여기서 자리를 옮기면 재연이 그땐 정말 짜증이 나서 손목을 살살 만지러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는 그냥 숟가락을 들었다.

“하하.”

포기하고 그냥 식사를 시작하는 모습에 재연이 기쁘게 웃었다. 아무리 그래도 역시 저를 싫어하는 건 아니구나 싶어 기뻐졌다. 재연은 맑게 웃으며 주형의 등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딱딱한 근육으로 이루어진 몸은 티셔츠 위로도 탐스러웠다.

“형, 꼭 다 먹어야 해요.”

“……설마 이걸 다요?”

장어구이, 삼계탕, 갈비찜에 밑반찬도 5가지나 됐다. 콩나물국에다 흑미밥도 고봉밥으로 담겨 있었다. 주형은 아무리 생각해도 네댓 명 이상을 위한 상차림 같은 모습에 당황하고 말았다.

“응. 형 먹이려고 여사님께 이것저것 부탁했어요.”

“노력은 하겠지만…… 솔직히 너무 많습니다.”

“아니에요. 형은 할 수 있어요.”

대책 없이 괜찮다고 하는 모습이 주형의 심기를 건드렸다. 하지만 재연의 눈은 정말로 낙관 그 자체라 반문하기도 어려웠다. 주형은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슬쩍 물었다.

“설마 다 못 먹었다고 무슨…… 뭐, 하시는 건 아니죠?”

“예를 들면?”

“뭐…… 속, 속옷을 또 입어야 한다든가, 아니면…… 이번에는 이상한 옷을 입어야 한다든가.”

주형이 불안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상한 옷?”

“예. 음, 알몸에 앞치마만 걸치는 그런 거 말입니다.”

“그런 페티쉬 있어요?”

재연의 눈동자가 별로 만든 모래처럼 반짝거렸다. 알알이 차 있는 홍채가 별처럼 빛나는 모습이 남에게는 황홀함으로 다가오겠지만, 주형에게는 그냥 공포였다. ‘그런 게 취향이라면 모두 맞춰 주겠다’고 하는 눈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말이 아니고요!”

미친 거 아니냐, 진짜로. 정말로 좋아서 저런 말을 했겠냐고. 이렇게 오해하는 게 워낙 흔한 일이다 보니 오죽하면 주형은 이제 제 얼굴이 의심됐다. 설마 좋아 죽겠다는 얼굴로 저런 말을 했나, 싶어서.

“좋아하면 내가 해 줄게요.”

“됐습니다…….”

알몸에 앞치마만 입은 남자의 좆에 박히는 것도 나름대로 힘든 일이었다. 비주얼로 봤을 때 영 이상했다. 흉물이라 할 만큼 커다란 자지를 가진 남성이 그리 예쁜 옷을 입고 살랑거리다니……. 으으. 하지만 얼굴만 보면 또 잘 어울릴 것 같단…… 아니, 이따위 생각을 할 때가 아니지. 이런 진수성찬을 앞에 두고. 최후의 만찬일지도 모르는 걸 그냥 둘 순 없다.

아주 잠시 상상한 주형은 넌더리를 냈다. 썩은 눈길로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콩나물국을 우걱우걱 떠먹었다. 그러고는 생각보다 훨씬 맛있는 모습에 눈동자를 빛내며 ‘일단 열심히 먹어 보겠다’고 선언했다.

“난 형을 위해서라면 뭐든 다 할 수 있어요.”

재연이 천천히 은색 숟가락을 들었다. 주형과 같은 디자인의 것이었다. 그는 눈치채지 못 했겠지만 재연은 주형과 커플로 된 소품을 아주 많이 준비해 두었다. 그렇게 비장한 말을 가붓이 말하자, 장어구이로 손을 내밀고 있던 주형이 조소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 죽이실 수 있습니까?”

절 위해서. 주형의 입꼬리가 한쪽만 올라가 있었다. 이내 장어를 한입에 쏙 넣고는 천천히 씹었다. 그러고 있으니 재연이 미동 하나 없이 말했다.

“응.”

“…….”

“죽일 수 있어요.”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재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왜냐하면 이미 주형을 위해서 사람을 하나 때려죽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일인 것도 모자라 별로 대수로운 게 아닌지라 재연의 눈에는 진중함 따위는 없었다. 그저 주형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하기만 했다. 그 호기심은 의미심장함을 남겨서, 주형은 가만히 장어를 씹고 있다가 눈을 끔뻑였다. 분명 가시 같은 것도 없는데 장어가 목에 탁 걸린 것만 같다.

“그렇습니까.”

세기의 사랑이네요. 주형은 아무렇지 않은 듯 그냥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고 있자 재연이 무어라 반문하지 않고 히히, 하고 웃었다. 대답에 반해 그의 반응은 너무 가벼웠다.

그게 미묘한 간극을 만들어냈다. 역시 윤재연은 정상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 게 주형에게 불안을 주지는 않았다.

“아…… 참.”

주형이 무언가 뒤늦게 떠오른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고는 숟가락을 내려두고 입 안에 있는 음식을 꼭꼭 씹어 삼켰다. 물까지 마셔 입을 정리하고 재연을 바라보자 재연은 그새 무슨 생각을 했는지 뺨을 불그스름하게 하고 있었다.

“……얼굴이 왜 그러십니까? 감기?”

“형이 나한테 키스해 줄 거 같아서 설렜어요.”

“밥 먹다가 누가 혀를 들이밉니까? 식탁에서 그러는 거 아닙니다.”

으, 하고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주형은 나이를 한참 먹은 아저씨처럼 엄격하게 굴었다. 그러고 있자 재연이 음, 하고 새침하게 입술을 어루만졌다. 누가 봐도 키스해 달라고 대놓고 꼬시는 모습이었으나…….

“그래요?”

“예. 아무튼, 제가 오늘이나 내일 중으로 외출을 한 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주형이 그런 수작에 넘어갈 리는 만무했다. 그에겐 차라리 엉덩이를 까라고 협박하는 쪽이 훨씬 편했다. 그게 주형의 방식이었다.

“외출?”

재연의 눈을 살짝 바라봤다. 예상과 다르게 날카롭거나 서늘한 느낌은 없었다. 나간다고 하면 눈을 부라릴 줄 알았는데. 조금은 안심이 됐다.

“예.”

“어디로요?”

“……아는 사람이 일하는 사무실에 가기로 했습니다.”

형이라고 말하기 꺼려졌다. 주형은 그리 전하며 갈비찜이 담긴 그릇을 손으로 가지고 왔다. 아주 오랜만에 먹는 음식이라 조금 들떴는지 호기롭게 두어 조각을 앞접시에 옮겨 담았다.

“알았어요. 언제 나갈 거예요?”

재연은 마치 이미 알고 있던 사람처럼 그냥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내일 오전에 잠시 다녀오려고 합니다.”

생각보다 순탄해서 속으로 쾌재를 부른 그는 순순히 대답해 주었다. 제 형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오전 안에는 볼일을 끝낼 수 있겠지. 재연의 눈에 거슬릴 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다.

“오후에는?”

“약속은 없습니다.”

“그럼 집에 있을 거예요?”

재연은 꼬치꼬치 캐물었다. 마치 형사가 범인의 알리바이를 추적할 때처럼 꼼꼼했다. 그건 그의 집착을 드러내는 행동이기도 했다. 무겁지만 가볍지도 않은 얼굴로 그리 묻는 재연의 얼굴은 제법 진지했다. 주형이 어디로 도망이라도 갈까 내심 걱정이 되었다.

“아, 잠깐 원래 집에 들를 겁니다. 늦으면 저녁때 오겠네요.”

주형이 이제야 생각이 나 덧붙이니 재연이 얼굴을 구겼다.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거긴 왜요?”

“들고 올 게 있습니다.”

옷가지 몇 개와 가족사진을 들고 와야 했다. 아무리 엿 같아도 의지를 할 만한 물건 하나쯤은 있어야 했다.

“가지 마요.”

“왜 안 됩니까?”

“안 갔으면 좋겠어요, 형이.”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여느 커플과는 다르게 둘은 덩치가 큰 데다 목소리도 낮은 편이라 표정이 조금만 굳어도 분위기가 어두워지고는 했다. 칙칙하고 끈적한 진창의 연애였다.

“아니, 거기 가면 죽습니까? 그런 것도 아닌데 왜…….”

“거긴 여기서 멀잖아요.”

“그럼, 아는 사람 사무실은 어디인지 알고 허락하십니까?”

삐뚜름하게 고개를 기울인 채 말을 전했다. 재연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이윽고 주형에게 투정을 부렸다.

“그냥 그 좆같은 집에 형이 다시 가는 게 싫어요.”

주형의 냄새 빼고는 좋은 점이 하나도 없는 집이었다. 건물도 낡았고, 반지하라 볕도 잘 들지 않고, 곰팡이를 비롯한 물비린내가 자욱하다. 날씨가 조금이라도 좋지 않으면 모든 타격을 받는 곳. 마치 세상의 모든 어둠을 응축한 듯한 공간이었다. 두 사람 이상이 허락되지 않는 고독한 방이 혐오스러웠다.

재연은 그렇게 강제로 사람을 고립시키고 황폐하게 만드는 공간이 몹시 싫었다. 그는 혼자라는 말조차 싫어했기 때문이다. 주형을 다치게 한 뒤 바로 빼 온 것도 그 이유였다. 주형을 곁에 두고 싶기도 했고, 주형이 그런 곳에 있는 것도 싫었다.

무엇보다도 왠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그가 그렇게 나갔다가 마음이 바뀔까 봐. 그렇게 주형이 이 집보다 좋은 곳을 발견해서 그대로 떠나면? 그렇게 둘 수는 없었다.

“거기서 사는 것도 아니고 물건을 몇 개 가지고 오는 겁니다. 허락해 주시죠.”

“허락 안 하면요?”

너그럽게 행동하기 싫었다. 주형이 제집을 잠시 나가 그런 곳으로 향한다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다. 그동안 저는 주형을 또 기다려야 할 테고, 또 그에게 사람을 붙여 신경을 써야 할 테고……. 사무실에 갈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집으로 다시 돌아가 무언가를 가지고 온다는 생각을 한 것만으로도 재연은 괜히 불안해졌다.

그때처럼 떠날까 두렵기도 했고, 그런 곳으로 주형이 간다는 것도 싫었고, 주형이 제 예상 밖의 행동을 한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재연은 분리불안이 있는 강아지처럼 주형을 따랐다.

“…….”

재연의 속마음 따위는 알 길 없는 주형이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리고 대답했다.

“그럼 그냥 갈 겁니다.”

재연과 눈이 마주쳤다. 재연은 자신이 없어 보이는 눈을 하고 있었다. 아주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라 주형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푹 찌그러뜨렸다.

“다시 온다는데 왜 그렇게 슬퍼하십니까?”

주형은 그가 가진 몸뚱이만큼이나 굳건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고 있자 재연이 앙탈을 부리듯 별안간 안겨 왔다.

“온다고 했잖아요. 사진이랑 옷 몇 개 들고 오면 그게 다입니다.”

주형의 턱 아래로 얼굴을 묻고는 애교를 피우는 강아지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는 갑작스럽게 드는 불안 때문에 힘겨웠다. 숨을 푹 들이마시자 주형이 품고 있는 특유의 땀 냄새가 났다. 피부 냄새. 살 냄새……. 이런 것들이 하나로 섞여 안심을 주었다.

“……그냥 형이 내 예상 밖의 어딘가로 가는 게 싫어요.”

“…….”

주형은 재연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리고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평소보다 낮고 부드러운 음성이었다.

“그거 문제 있는 겁니다, 이사님.”

알 수 없이 걱정이 들었다. 이렇게 맹목적으로 저만 바라보는 놈을 대하는 건 어려웠다. 주형은 무언가 금이 가 있는 듯 보이는 재연이 신경 쓰였다.

“알아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쯤이야 알고 있다. 조금만 둘러보아도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스스로를 부정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다. 불안하다가도 주형의 품을 조금만 맛보고, 그의 냄새를 코에 담으면 이렇게 금세 나아지니까. 치료제가 영원한데 병 따위야 문제는 아니었다.

“…….”

“근데 이렇게 된 건 다 형 탓이에요.”

재연이 고개를 들고 뾰로통한 얼굴로 말했다. 장난기가 어려 있는 목소리가 분위기를 누그러뜨렸다. 그러자 주형은 갑자기 제 탓을 하는 재연의 모습에 허, 하고 코웃음을 쳤다.

“제가 뭘 했다고.”

“정말 기억 안 나요?”

재연은 악의 하나 없이 무언가를 갈구하는 눈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말하는 게 없어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이때까지 이사님이 하자는 거 다 하지 않았습니까? 생각해 보면 안 한 게 없는데요.”

그럼에도 확실한 건 저 눈길이 평소와 같지는 않다는 거다. 남의 눈을 이렇게 세세하게 분석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방금은 육감이 빠르게 일했다. 주형은 담담한 말투를 하면서도 재연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혹시 시간을 거스르고, 지금은 재개발에 들어간 빌라에서 맞고 자랐을 때, 제가 무언가를 저지른 건 아닌가 싶어서. 그야 그런 파렴치한 핏줄이니 제 아버지처럼 어릴 때 재연에게 상처라도 준 게 아니었을까, 하는 기이한 자책감이었다. 재연이 이렇게까지 매달리는 데에는 그냥 사랑이 아니라 일련의 복수도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함, 아니, 두려움이 들었다.

“설마 알몸에 그…… 앞치마, 그거 안 해 줘서 이러십니까?”

“나 그렇게 안 쪼잔해요.”

그런데 해 줄 거예요? 재연이 슬쩍 물었다. 정말 해 준다면 아주 예쁜 앞치마를 구해 올 예정이었다.

“쪼잔하진 않은데 변태시지 않습니까.”

주형은 대화 사이에 이상하게 끼어있는 권유를 통째로 무시했다. 그리고 콧방귀까지 뀌었다. 첫 만남 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대화 양상이었다.

“형한테만 자지 세우면 됐죠.”

재연은 아주 여러 가지를 사랑의 증표로 여겼는데, 그 중 하나가 발기였다. 주형의 얼굴만 봐도 아침에 발기를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뒤로는 ‘정말로 나는 형을 많이 사랑하고 있구나’라고 깨달았더랬다. 주형이 들으면 ‘완전히 또라이 새끼’라며, 주형이 시뻘건 얼굴로 벌벌 떨며 짜증을 낼 부분이었다.

“하……. 아무튼, 가도 됩니까?”

밥상머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왜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주형은 그나마 우선인 것을 먼저 들이밀었다. 그리고 주형은 말도 안 되는 조건을 건네어 받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고개를 끄덕였다. 방 안에 감금을 할 거라고 간접적으로 협박을 하는 재연의 성질머리 때문이었다.

개 같은 새끼! 귀여운 거라고는 하나도 없는 놈. 이젠 볼살도 없고 야하게 생기기만 해서 깜찍하지도 않고……. 게다가 변태도 저런 상 변태가 다 있나. 주형은 재연이 눈앞에서 사라지기만 하면 그의 욕을 마구 해댔다.

그러면서도 정말로 창문을 깨고 탈출할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저 구시렁거릴 뿐이었다. 그리고 예전 생각을 했다.

재연과 무얼 했는지, 어떤 대화를 했는지, 그의 얼굴은 어떠했는지, 어떤 옷을 입고 나타났는지, 지금과는 무엇이 달랐는지…… 같은, 섬세하고 유치한 것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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