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 낙차 (2/11)

2. 낙차

무슨 유명한 외국 시가 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뭐, 슬퍼하거나 그러지 말랬나. 그리고 즐거운 날은 꼭 온다며, 참고 견디라며 정신 나간 해맑음을 권유하는 시였다. 주형은 그걸 학창 시절에 보고는 눈을 끔뻑이다가 그냥 확 덮어버렸던 기억이 있다.

그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밖에 없었다. 주형은 맨날 삶에게 사기를 당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문학 공부를 하며 감성을 되찾고 공감 능력을 키우기에는 그의 삶이 너무도 척박했다. 씨앗 하나 뿌리기 어려운 곳에서 괴롭게 씨앗을 쥐고 있을 필요는 없었으니, 어쩌면 그가 시를 덜 읽은 건 옳은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따라 그 시가 주형의 머릿속을 더욱 흩뜨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 하루에만 채용 취소를 다섯 번이나 당해서 그런가. 참고로 면접은 일곱 번 봤다. 한 번은 이미 자리가 차서 안 되고, 한 번은 추후 연락을 준다고 했고, 다섯 번은 내일부터 나오면 된다고 해 놓고서는 문자로 ‘급한 사정이 생겨 채용하지 못할 것 같다’는 말을 전했다.

아무래도 삶이 날 속이나 보다. 슬퍼하지 않을 수가 없지만, 슬퍼할 겨를도 없이 또 마지막 면접을 봐야 했으므로 어쩔 수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주형은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 거라는 시구는 기억하지 못해서 망정이지, 그걸 기억했다면 공분에 차 그 시인을 씹어댈 게 뻔했다.

“면접 보러 오셨어요?”

“네.”

“네, 잠시만요. 사장님!”

마지막이다. 주형은 휴대폰을 열어 보았다. 오후 8시 53분. 매우 지치고 낡은 몸뚱이를 얼른 버스에 싣고 싶었다. 낡아 터진 제 엔진이 꺼지기 전에 말이다.

사장이 왔다.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사람이었는데, 인자한 인상이라 안심이 되었다. 제발 이번에는 채용 취소가 되지 않고 무사히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언뜻 둘러본 결과 카페도 규모가 커 절대 망할 일이 없어 보인다.

사실 원래라면 공사판이나 인력 시장에 가서 벌었을 테지만, 목포에서 했던 일이 너무 고되었던 탓인지 재연의 자지를 빨았던 탓인지 어젯밤부터 몸에 힘이 없었다. 계속 어깨가 아프고 팔뚝이 욱신거리는 게 근육이 놀라기라도 한 것일 테다. 그래서 당분간은 좀 쉬운 일을 해 보기로 했다.

주형은 두툼한 제 어깨 아래로 찢어지고 있을 근육을 바라보며 몰래 한숨을 쉬었다.

“민주형 씨. 으음…….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네요?”

“네.”

웬만한 일은 거의 다 해봤다. 이제는 마약 중개만 하면 밑바닥 인생 완성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러면 카페 음료는 이것저것 다 만들 줄 알겠네. 그런데 우리 메뉴 중에 조금 특이한 게 하나 있거든. 그런 거는 따로 외워야 하는데, 시간 많이 안 걸리겠어요?”

“괜찮습니다. 어떤 메뉴인가요?”

“그냥 일반 메뉴에다가 뭐 좀 더 넣고, 갈면 끝이에요. 생각해 보니 별로 어렵지는 않겠네. 다른 카페는 어디 있었어요?”

“아, 저는…….”

줄줄 말해 주었다. 그러자 무슨 바리스타 해도 되겠다며 사장이 너스레를 떨었다. 주형은 안심하며 하하, 하고 웃었다.

“생긴 것도 잘생겼으니 인기 진짜 많겠어. 혹시 다른 일하는 건 있어요?”

“당장은 없습니다.”

고개를 저었다. 조금 불안해서 사장의 눈치를 보자 다행히도 그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여기가 많이 바빠서 그런데, 내가 급하게 불러내도 나올 수 있어요? 점심시간만 되면 저기, 앞에 보이죠? 저기 건물에서 사람들이 막 오거든. 아침마다 회의도 엄청 많이 하고.”

“아, 그렇군요.”

손가락으로 건너편의 건물을 가리켰다. 번화가라 그런지 휘황한 건물이 즐비해 있었다. 저 중 단 한 칸만 제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조차 들지 않게 화려했다. 통유리창으로 된 깔끔한 신식 건축물은 어두컴컴한 밤에도 존재감이 엄청났다.

“그런 거라면 괜찮습니다. 영업시간 안에만 부르시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래요? 혹시 집은 어디에요?”

“여기서 조금 멉니다. 40분 정도 걸립니다.”

“뭐, 여기가 상업 지구다 보니 어쩔 수 없지. 알겠어요. 그래, 내일부터 나와요.”

이번에도 이 말이다. 이상하게도 설렘과 불안함이 교차했다. 허리를 연신 숙여가며 사장에게 감사 인사를 청하자 그는 기분이 좋은 듯 허허실실 웃었다. 그 또한 최저 임금보다 고작 구백 원 더 많은 돈을 주고 유능한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했다는 데에 대한 만족감이 대단한 모양이다.

“나도 고마워요. 학생들은 금세 그만둬서 뽑으면서도 불안했거든.”

“그럴 수 있죠.”

무난하게 대답한 뒤에는 예쁘게 웃어 보였다. 눈꼬리까지 휘어 부드럽고 온화하게 웃어 보이자 사장도, 곁에 있던 다른 직원도 눈빛을 교환했다. 이렇게 된 이상 사고만 안 치면 강제로 나가게 될 일은 없을 거 같다. 주형은 나쁘지 않은 시작인 것 같다고 생각하며 바깥으로 나왔다.

면접에 합격했고 근무 일자도 받아 냈으니 이제는 그날까지 버티기만 하면 된다. 이제 안 나와도 된다며 말하는 사장들을 떠올리니 또 짜증이 확 치솟았다. 주형은 끙, 하고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퀴퀴한 도시의 냄새와 미묘한 물비린내가 몸을 착 감쌌다. 불쾌 지수가 유난히 높은 오늘은 겨울이라는 계절에 맞지 않게 습했다. 입고 나온 낡은 후드티와 하나뿐인 패딩이 몸짓에 따라 달랑거렸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완전히 바깥으로 나오니 습한 바람과 동시에 이상하게 불안감이 엄습했다.

무언가 익숙한 낯이 보인다. 옷차림도, 모습도, 그리고 분위기도 닮았다. 매우 불량해 보이는 남자들이다. 지하 주차장에서 담배를 피우다 올라온 건지 건들거리는 몸에서는 냄새가 확 끼쳐왔다.

주형은 속이 울렁거리는 걸 느꼈다. 오심이 확 올라온 나머지 눈가가 찌릿했다. 방금 느낀 불쾌감은 절대로 우연이 아니었다.

그들이 주형의 어깨를 툭 밀치며 나오려고 하기도 잠시, 그냥 발걸음을 굳히고 건물의 처마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 찾는 척을 하며 건물 구석을 두리번거렸다. 남자들은 다행히도 주형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딱 한 사람, 주형의 머리채를 잡았던 그놈이 주형을 한 번 흘겼다. 주형은 잊기 어려운 외모였던 탓이다.

가만히 화장실을 찾은 채 안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주형은 한 층을 절반 이상 사용하는 카페에서 고성이 오가는 것을 들었다.

‘젠장.’

또 망했군. 5분만 더 지나면 아마 그 유순하기 짝이 없는 사장이 일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말을 하겠지. 주형은 건물 처마로 다시 나와 씨발, 하며 욕을 읊조렸다. 구린내 나는 화장실에 딱 1분만 있었는데도 제 온몸이 더러워진 느낌이 든다. 아니, 원래 더러웠나. 그게 맞겠지. 시궁창 인생을 살아서 그런가, 제게도 냄새가 나는 거 같다.

초췌한 얼굴로 바깥에 나오기가 무섭게 문자가 울린다.

-사정이 생겨서 채용을 못 할 것 같네요. 미안합니다.

5분이 뭔가. 1분도 안 걸리는데. 인류애가 너무 넘쳐서 5분이나 기대했나 보다. 이딴 식으로 기대하는 버릇은 좀 고쳐야 되는데.

주형은 휴대폰을 집어 던지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유리창 너머로 카페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조마조마한 얼굴로 휴대폰을 쥐고 있던 사장과 눈이 마주쳤다. 흠칫 놀라 사장은 황급히 안으로 들어간다. 미안한 마음인지 두려운 마음인지 알 수 없는 얼굴에서, 주형은 쓸쓸함을 느꼈다.

“씹새끼.”

딱 봐도 놈이었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얼렁뚱땅 지랄맞은 재벌 남자 주인공과 다른 거라고는, 놈이 손을 쓴다는 것과 성골인 재벌 3세가 아니라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 발랄한 막장 로맨틱 코미디와 다른 점은, 제가 눈물을 닦고 일어선 뒤 앞으로 나아갈 줄 아는 귀여운 여자 주인공도 아니라는 점이다.

독기 어린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씨팔 새끼, 가만 안 둬. 윤재연 그 새끼는 자신에 대한 옛정 따위는 없다고 했으니, 주형 또한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응수하기로 했다.

주형은 할 수 있는 게 없는 걸 앎에도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돛대 상태인 담뱃갑을 열어 거칠게 입에 지르물었다.

***

오전 9시. 주형은 아침잠을 깨우고 서울 한복판까지 나왔다. 자그마치 한 시간 반이 걸렸지만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재연을 만나서 무슨 말이라도 전해야 했기 때문에.

서랍을 뒤지고 또 뒤져 찾아낸 명함 속 주소로 찾아갔더니 매우 커다란 건물이 보였다. 건물의 방 하나의 값어치만큼을 빌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이상해졌다. 돈도 아주 많을 텐데 그 정도면 그냥 좀 봐주면 안 되나, 하는 괘씸한 생각과 겨우 저 방 하나만큼도 감당하지 못하는 몸뚱이라는 자괴감이 들어서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재연은 자리에 있었다. 이름을 말하니 데스크에 있는 직원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곱게 차려입은 그 사람은 무던하게 이야기하고는 주형을 위로 올려보내 주었다. 어제 입은 후드 티셔츠를 그대로 입고 나온 주형과 달리 직원이 입은 정장은 참 잘 어울리고 예뻤다.

여기서 일을 할 수 있었다면 이런 증오심 따위는 가지지 않았을까. 주형은 오늘따라 괜히 더욱 울적한 생각이 들어 괜히 볼을 한 번 때렸다. 짝! 끝도 모르고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속 주형의 뺨이 시뻘게졌다.

이윽고 중압감이 느껴지는 문 앞에 섰다. 비서로 보이는 사람이 들어가시면 됩니다, 하고 이야기를 하자마자 주형은 당당하게 문고리를 당겼다. 실은 전혀 당당하지 않았으나 괜히 겁이 나 행동한 것이었다. 가진 건 하나도 없지만 발발 짖고 보는 소형견처럼.

“이사님. 안녕하십니까.”

예의를 중시한다는 그의 취향에 따라 들어가자마자 고개를 푹 숙였다. 저 멀리서 안경을 쓰고 서류를 보고 있던 재연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오늘도 보드랍고 유려한 선으로 이루어진 이목구비는 부티가 가득 흘렀다.

“이게 누구실까.”

재연은 영화에 나오는 삼류 악당처럼 익살스럽고 악하게 말했다. 주형은 그런 그의 눈을 슬쩍 피하며 뚜벅뚜벅 안으로 들어갔다. 발에 러그가 밟히자마자 우뚝 멈추어 서서는 경계하듯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왠지 신발을 신고 올라가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와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싶기도 했기 때문에.

“차였는데 얼굴 보니까 부끄럽네요.”

그의 말투는 여전했다. 건들거리지만 미묘하게 끝이 낮아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다정하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목소리 말이다.

“……죄송합니다.”

“형이 알고 있으니까 다행이에요.”

“…….”

“일단 앉아요.”

턱짓으로 재연이 지시했다. 주형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님을 위한 소파에 아무 데나 앉았다. 그러고 있으니 재연이 가볍게 혀를 찼다.

“……왜요?”

“소파에 앉으라고는 안 했는데.”

“그럼 어디에…….”

“바닥에 무릎 꿇어요.”

머리를 탁 얻어맞는 기분이 들었다. 정말 쪼잔하게 복수하는 놈의 행태가 짜증이 나서 그냥 한 대 후려치고 싶었다. 아무리 잘생겼어도 마음에 안 들면 그만이라더니, 정말 그 꼴이다. 주형은 아랫입술을 꽉 짓씹었다.

“…….”

“우리나라는 원래 좌식 문화잖아요.”

미친놈. 주형은 노골적으로 짜증스러운 얼굴을 했다. 내숭과 능글맞음으로 가득한 저 얼굴이 못내 보기 싫었다. 주형은 저런 놈에게 이야기를 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는 게 후회되었다.

“바닥에 앉겠습니다.”

그래도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일이 안 구해지니까. 게다가 재연이 거느리는 놈들이 아르바이트 처에 난입해 염병을 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그에게 부탁해야 했다. 아무리 싫어도 그에게 목숨줄이 있었으니.

“그렇게 앉으니까 예뻐요.”

꼭 새색시 같아요. 재연이 자못 만족한 듯 엷게 웃었다. 고결하고 말간 낯이 즐거움으로 물들었다.

‘저놈의 애인 타령은 무덤까지 가겠군.’

입 찢어버리고 싶다.

“윤 이사님.”

“응.”

“돈은 제대로 갚는다고 했는데, 왜 방해하십니까?”

“무슨 방해 말이에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재연이었다. 주형은 뻔뻔한 얼굴이 못내 밉상이었다.

“어젯밤에 이사님 부하가 제가 아르바이트 면접 보고 나온 곳으로 들어가는 걸 봤습니다. 그리고 바로 잘렸고요. 이외에도 아르바이트 면접 합격 소식을 듣자마자 잘린 곳이 세 곳은 돼요. 상식적으로 이렇게 갑자기 악재가 몰려오는 건 이상하기도 하고, 이사님 부하가 나오자마자 이러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주형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그와 얼굴을 마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일이 잘못될 듯한 예감이 들었다.

“내가 지금 형이랑 붙어먹고 싶어서 형의 취업길을 방해했다, 이건가요?”

“네.”

“소설가 해도 되겠다. 창의력 대장이네요, 형.”

재연이 쿡쿡 웃었다. 그러기도 아주 잠시, 몇 초 만에 웃음이 싹 끊겼다.

“그래서?”

“……네?”

너무 뻔뻔한 물음에 주형의 말문이 막혔다.

“그래서, 어떻게 하라고. 내가 만약에 그랬다면 어떻게 할 거냐는 거죠.”

“…….”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지 않아요? 내 마음인데.”

인정하기는 싫지만 맞는 말이었다. 주형은 그냥 재연을 때리고 싶었다. 악독하기 짝이 없는 저 장난꾸러기 얼굴을 보면 누구라도 주먹이 먼저 부르르 떨릴 게 틀림없다.

“형은 나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등신이잖아요. 돈도 없고, 가진 건 몸밖에 없고.”

“…….”

“겨우 아르바이트 하나 못 구해서 나한테 지랄하러 온 거예요?”

재연이 배시시 웃으면서 비수를 처박았다.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내뱉는 욕설이 이상할 정도로 어울리지 않았다. 주형은 예전의 그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모습에 탄식조차 하지 못했다.

“하긴, 나는 형을 좋아하니까.”

재연은 그냥 웃으며 중얼거렸다. 분명 옛정 따위는 없다고 했음에도 그의 얼굴에는 말갛고 뽀얀 감정이 서려 있었다. 그런 표정 따위는 읽어내지 못한 주형은 ‘좋아한다니, 무슨 개소리지’ 하고 생각하기 바빴다.

“그렇게 절박하면 내 마음을 돌리려고 노력해 봐요. 나는 남이 울면서 비는 것도 좋아하거든. 형 얼굴로 그러면 가산점도 있을 것 같아요.”

주형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공포나 두려움이 아니라 말 그대로 넌더리가 난 것이다. 재연의 성격이 매우 비정상적이고, 그는 아주 부도덕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울면서 비는 걸 좋아한다고 하니 이제는 그를 어떻게 할 방법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무얼 해도 그에게는 유효하지 않은 공격일 테니까. 그냥 재연이 제게 얼른 질리게 할 수밖에.

“애인…. 하겠습니다.”

“…….”

그래서 미치도록 하기 싫은 걸 최후의 보루로 말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아주 미적지근했다. 재연은 주형의 결의와는 다르게 가볍게 미동 하나 없이 눈을 딱 한 번 깜박이며 넌지시 말했다.

“형.”

“네.”

“애인은 안 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줏대가 없네. 재연이 씨익 웃으면서 그리 덧붙였다.

주형이 눈을 확 부라렸다. 계속 이어지는 비아냥에 짜증이 난 나머지 턱을 조금 치켜들고 말았다. 반항기가 가득 어린 몸짓이었다.

재연이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났다. 다리를 꼰 채로 저를 내려다보고 있던 그가 순식간에 다가왔다. 이내 구두 굽으로 주형의 어깨를 확 차 버렸다.

“윽!”

고꾸라져 뒤로 넘어간 주형이 신음을 냈다. 하마터면 머리를 찧을 뻔했다. 안 그래도 아직 멍이 덜 빠진 것 같았는데. 주형은 숨을 씨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재연이 그의 배를 발로 밟고 그 위에 깔고 앉은 탓에 도리가 없었다.

“씹, 무겁, 이사님!”

키도 190cm는 되어 보이는데 그런 놈이 깔고 앉으니 괴로웠다. 주형은 으윽, 하고 기다란 신음을 내며 애썼다.

가볍게 깔고 앉은 것이라 진짜로 무게가 실리지 않았는데도 재연은 그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짜릿했다. 좆이 곧 서서 끄떡댈 것만 같았다. 재연은 정말로 그를 놓아주기 싫었다. 구질구질한 연애-연애인지는 의문이지만-따위는 절대로 취향이 아니었으나 이번만은 달랐다.

재연은 반짝반짝한 얼굴로 주형을 불렀다. 그러고는 그의 어깨를 콱 쥐었다. 거센 손길이 뼈를 억눌렀다.

“야.”

“이, 이거 내려와서 말해요!”

“내가 왜 너 같은 걸레를 애인으로 둬야 해?”

숨이 턱 막혔다. 정말로 정신 나간 놈에게 물린 것 같아서 등골이 오싹했다. 징그럽다고 해야 하나. 저 얼굴로 징그럽다는 감상을 일으키기도 어려울 텐데. 주형은 여전히 그를 턱 밑에서 바라보며 움찔거렸다. 그러자 재연이 목소리를 깔고 주형의 뺨에 손을 가까이했다. 슬슬 감기는 손가락이 뱀 같았다.

“씨발, 응? 그래서 처음에 기회 줬잖아요.”

“…….”

“옛정 같은 건 없다고 했잖아. 뭘 믿고 왔어? 왜, 그전에는 없던 보지라도 생겼어? 박아 달라고? 전이랑 다르게 내가 형 같은 거한테 끌려야 할 이유가 뭔데?”

재연은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다. 그가 한 말이 별로 진심이 아니라는 게 느껴져서 울컥하기도 했고, 직업을 못 얻도록 훼방을 놓으니 이렇게나 쉽게 들어오는 게 허탈하게 느껴져서였다. 텅 빈 공동 같은 눈동자가 매섭게 주형을 쫓았다.

“씨발, 나라고 애인하고 싶은 줄 알아?”

징그러운 새끼. 주형이 진심으로 화를 내며 눈동자를 불태웠다. 그러자 재연의 몸이 움찔댔다. 잔뜩 화가 난 상태라 그런지 미동이 전해지진 않았으나 재연은 분명히 동요하고 있었다.

“그러면 왜 왔어요. 화대 받으려고?”

“그래, 미친 새끼야. 내가 너랑 안 사귀어 줘서 네가 지랄하니까 화대라도 챙기려고 그런다, 왜? 좆같은 새끼야. 내려와! 처음부터 좋게 좋게 했으면 이런 말도 안 했을 텐데, 씨발, 넌 말하는 법 좀 배워야겠다.”

주형이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려 했다. 그러나 근육과 힘으로 뭉쳐 있는 몸은 주형의 뼈를 더욱 짓누를 뿐이었다.

“……바지 벗어요.”

“뭐?”

“형 강간할 거니까.”

주형은 화가 난 나머지 이를 꽉 악물었다. 저번의 그 행위를 반복한다고 하니 화가 치밀었다. 이내 뒤는 생각하지 못하고 재연의 낯을 주먹으로 치며 넘어뜨렸다.

그 행위에 화가 난 재연이 얻어맞은 부위를 작게 쓰다듬더니 고개를 다시 들었다. 이윽고 발을 들어 다시 한 번 주형을 걷어찼다. 그러고는 주형의 얼굴을 때렸다. 짝! 날카로운 소리가 주형의 얼굴을 엄습했다. 약간 그을려 있는 얼굴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때리자 끝에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서너 번 후려갈긴 뒤에는 재연이 자리에서 후련한 듯 일어났다.

“미안해요. 형이 너무 미운 소리를 해서.”

“…….”

“알잖아요, 나 그때 걔인 거. 형 아직도 좋아해요. 근데 형이 나보고 징그럽다고 하니까 화가 나서요.”

주형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렇게 넋을 놓고 있으니, 재연은 아무렇지 않은 듯 새침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고는 아랫입술을 깨문다. 정말로 후회하는 듯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한순간에 뒤집히는 태도가 공포로 다가왔다. 곱상하게 마디가 져 있는 손가락이 아주 세게 저를 후려친 것이 바로 몇 초 전의 일이다.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주형이 숨을 들이켰다.

이제는 그게 연기인지 진짜인지도 알 수 없었다. 주형은 아프다 못해 감각이 사라진 듯한 뺨을 어루만졌다. 한 번 어루만지자 홧홧하게 달아올라 도저히 더는 만질 수 없었다.

그리고 힘이 다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주춤주춤 일어난 그의 목소리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너, 나한테 왜 그랬냐?”

“…….”

“그냥 이렇게 처음부터 존나 팼으면 됐잖아. 아니, 네가 아니더라도 그냥 네 부하 시켜서…… 그냥, 뭐 하나 부러뜨려 놓고 그러면 됐는데 왜 나보고 창놈 짓을 시켜?”

도무지 이해가 안 됐다. 기선제압으로 강간을 하는 놈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옛날에 만났던 형이 이렇게 만신창이가 된 걸 보면 그냥 꼴도 보기 싫지 않나? 힘도 장난 아니게 센 것 같고, 뼈 정도는 금세 부러뜨릴 수 있을 정도의 악력 같은데 도대체 왜 이렇게 수고스러운 실랑이를 하느냐는 거다.

“왜겠어요?”

재연은 뭐라도 알아 달라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자 어릴 때의 그 도련님이 생각났다. 그 얼굴이 왜 이런 순간에 떠오르는 건지.

아니, 얻어맞고 어리둥절한 건 저인데 도대체 왜 그쪽이 그렇게 상처를 받은 얼굴인 건가. 주형은 기가 찼다. 그래서 허, 하고 늘어지게 한숨을 쉬었다. 이내 표독스럽게 눈꼬리를 부라렸다.

“욕구 불만?”

“형은 상상력이 부족하네요.”

“…….”

정말 기대는 기대에 그쳤다. 옷을 멀끔하게 입고 있는 미인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괜히 제 모습이 더욱 초라해졌다. 주형은 저도 모르게 얼굴이 다는 것을 느끼며 눈을 슬쩍 피했다. 이제는 그의 비아냥이 와닿지도 않았다. 비참함이 온몸을 덮었다.

“영화 같은 것도 보고 그래요, 나랑.”

재연은 하얗고 기다란 손가락으로 주형의 후드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이내 ‘만세 해요’ 하고 다정하고 단단한 눈길로 말하며 그를 길들였다. 집요한 시선으로 바라보자 주형이 이 씨, 하며 결국 팔을 들어 올려 주었다. 이상하게 그가 조금만 눈을 부드럽게 뜨면 거역할 수가 없다. 그렇게 사나운 성미도 잠자고 만다. 눈에 약을 탔나, 왜 이래.

주형은 자존심이 와르르 무너지는 감각을 경험하면서도 그가 몸을 짓누르고 있는 통에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힘이 여간 센 게 아니니 함부로 반항할 자신이 들지 않았다. 어느새 어깨를 거세게 붙잡고 있는 재연의 손길이 매서웠다.

“영화 같은 거 볼 시간 없……. 윽!”

“나랑 보면 되지.”

반항기 어린 눈동자를 곱게 만들지 못하고 씩씩거리고 있으니, 재연이 금세 하의를 벗겨 버렸다. 씨발, 야. 주형은 말을 고르지 못하고 반사적으로 화를 냈다. 주름이나 생채기 하나 없는 손가락이 속옷까지 건드렸다. 반대로 주형의 얼굴은 터질 듯이 시뻘게지고 있었다.

“같, 같은 남자끼리, 씹, 더럽게 무슨 좆을, 치우라고!”

주형이 맹렬히 저항했다. 안 돼. 젠장, 절대로 안 되는데. 안 된다고. 제발. 그러나 그의 절박한 마음과는 다르게 재연의 손아귀 힘 때문에 속옷이 슬슬 내려갔다.

주형은 진정하지 못하고 야, 하고 울먹거리며 저항했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는 다르게 성기가 천천히 드러났다. 접합부에 있어야 할 털은 없이 불그스름하게 달아올라 있는 살갗이 보이고, 주형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자 절대로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이 들려왔다. 그것도, 죽여버리고 싶을 만큼 달콤한 웃음기를 품고.

“형, 백자지야?”

말갛게 드러난 좆을 보자 절로 미소가 생겼다. 주형의 좆에는 털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좆기둥은 엷은 분홍색과 갈색이 오묘하게 섞여 있는 색이었는데, 깨끗하게 털이 밀려 있는 기둥을 보자 귀엽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남의 아랫도리 사정이야 털이 있든 말든 상관이 없었는데 주형을 보니 취향이 확립되었다.

이렇게 된 자지가 귀엽구나. 남의 성기를 입에 물어 볼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털도 없이 사랑스럽게 생겼으면 쪽쪽 빠는 것도 문제는 아니겠다 싶었다. 재연은 웃음을 멈추지 못하고 배시시 계속 웃었다. 아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처럼 즐거워 보였다.

“씨발, 놔. 놔! 이, 거…… 만지지 말라고!”

주형이 다리를 버둥거렸다.

그런 바르작거림 따위는 금세 무시한 재연이 흥분에 차 중얼거렸다. 아, 존나 골 때리게, 씨발. 처음으로 본 주형의 몸이 상상보다 훨씬 좋아서 문제였다. 이렇게까지 그의 몸을 바라보고 탐하는 게 좋을 줄은 몰라서 당혹감이 밀려오기까지 했다. 뇌가 펌프질을 하는 건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털은 누구나 있으니 주형에게도 있을 거고, 그라면 뭐든 좋다는 생각을 했는데 음모 없이 드러난 살덩이를 보자 아래가 뻐근했다. 온몸의 신경이 모두 주형을 향해 있었다.

재연이 터져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고-주형이 정말로 울 것처럼 쪽팔려했기 때문이다- 좆을 탁탁 흔들어 주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 거라고 예상은 했으나 이렇게 갑작스러울 줄은 몰랐다. 게다가 수음이라니. 하더라도 펠라를 또 시키는 걸로 그칠 줄 알았는데.

주형은 숨을 헐떡거렸다. 얼른 떼어내고 싶어서 발꿈치를 떼고 뒷걸음질을 치려 했으나 밀려오는 쾌락 때문에 어깨를 무너뜨릴 뿐이었다. 오랜만이라 쉽게 흥분하고 말았다.

“흐, 하지, 하지……, 하으, 윽.”

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하고자 했지만 점점 끊길 뿐 말을 잇기 어려웠다. 주인 눈치는 보지 않고, 자지는 만져 주는 손길이 좋다는 듯 계속 질척거리는 선액을 찔끔찔끔 내보내고 있었다. 끈적하게 달라붙어 오는 액이 재연의 손가락 마디를 채웠다. 덕분에 만져 주기가 더욱 좋아서, 재연은 빠르게 흔들어 주었다. 처음에는 조금 묵직하기만 했던 것이 이제는 무게감을 띠고 꼿꼿하게 서 있었다.

아무리 싫다고, 뭐라고 해도 좋긴 하다는 거겠지. 재연은 그런 그의 성기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 시선이 느껴졌는지 주형이 다리를 버둥거리며 또 화를 냈다. 재연이 알겠다고 말하며 대충 미안하다고 하고는, 아주 큰 결심을 했다는 듯이 시선을 살짝 치워 주었다.

아쉽기는 하지만 주형을 벗길 일은 아주 많았다. 그러나 이렇게 깜찍한 걸 그냥 두기만 해도 되나 싶었다. 사진이라도 찍어 놓을까. 너무 서러워서 형이 울면 어쩌지. 정말 좋을 것 같은데. 슬쩍 손가락을 움직여 음낭을 만지고, 조금 더 욕심을 내어 통통한 회음에 손가락을 댔다. 콕콕 누르자 살점이 봉긋하게 튀어나온 것이 느껴졌다. 주형의 숨결도 거칠어진 것이 귀로 다가왔다.

후장 구멍을 이렇게 탐스러운 살갗으로 가리고 있었다니. 얼른 넣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재연은 순간적으로 즐거워진 나머지 주형의 좆을 꽉 움켜쥐었다. 두툼하게 서 있던 성기가 손아귀에 압박되었다. 성감을 고스란히 느낀 주형이 으윽, 하고 이를 악물며 거친 신음을 냈다. 짐승처럼 깊고 어두운 음성이었다.

“생긴 거랑 다르게 신음은 안 귀엽네요, 형.”

털 없어서 목소리도 귀여울 줄 알았는데, 예상과는 달랐다. 재연은 주형이 제 예상을 빗나갈 때마다 신이 나서 심장이 두근거렸다. 모르던 것을 알게 되는 짜릿함이 아주 컸다. 아랫도리가 묵직했다. 얼른 주형의 구멍에 제 것을 집어넣고 점막을 문지르고 싶었다. 아주 깊은 곳에 있는 것까지 모두 다 망가뜨리고 싶었다.

“으윽, 으……, 학. 씨, 씨흡, 새, 끼.”

미친 새끼. 주형은 힘을 잃지도 않고 계속 욕지거리를 입에 담았다.

“이걸 반전 매력이라고 하나?”

재연은 얄밉게 계속 지껄였다. 그러면서도 손을 놓지 않았다. 자지의 뿌리부터 은근한 손길로 스윽 훑더니 귀두를 꽉 누르고 압박했다. 이내 잠시 좆을 툭 내려 둔 뒤에는 주형의 손목을 휘어잡았다. 재연의 것에 비해 그다지 굵지 않은 팔을 붙잡힌 채 주형은 소파에 내동댕이쳐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무리 체급차가 나도 이 정도로 힘이 센 놈은 처음이라 주형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나 맨날 형 강간하는 상상했어요.”

어릴 때부터 쭉. 재연이 진득하게 중얼거렸다. 언제 처음으로 손장난을 시작했는지 상상이 안 갈 정도로 꽤 된 짓이었다.

“윽!”

“그래서 그런지, 지금 너무 좋아요.”

좀 살살 만지라고 하기도 전, 철컥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금세 재연이 제 좆을 꺼냈다. 그 크기를 다시 한 번 본 주형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도대체 뭘 처먹고 뭘 하고 다녔길래 자지가 저렇게 큰 건지 모르겠다. 게다가 왜 발기한 건지 알 수도 없었다. 제 몸을 봤다고 발기한 건가. 설마.

“나 섰어요, 형…….”

“…….”

“나 남자랑은 형이 처음이에요.”

재연은 답지 않게 애교가 담긴 목소리로 주형의 위에 올라탔다. 그의 눈에는 이미 생기가 없었다. 꿈에서만 그리던 그의 알몸을 가지고 놀 수 있다 생각하니 미칠 것 같았다. 이내 노골적으로 유혹하듯 주형의 배에 대고 자지를 설설 문질렀다. 까슬한 감각과 동시에 주형의 등줄기에 짜릿한 감각이 내달렸다. 알 수 없는 감각이라 그는 몸을 움찔거리며 경계하기만 했다.

주형이 아무런 말도 안 하고 있으니 재연이 제 것과 주형의 성기를 동시에 쥐었다. 맞닿고 나니 그의 흉물이 얼마나 큰지 더욱 실감이 됐다. 주형은 설마 삽입까지 해야 하나 싶어서 두려워졌다. 아니, 그러면……. 어디에, 아니, 어디에 뭘 넣지? 시발, 이 새끼 때문에, 진짜. 주형은 어안이 벙벙한 듯 두려워했다.

“형 구멍 작죠?”

……미친. 진짜 넣나 보다. 주형은 이번만큼은 정말 자신이 없었다. 물론 처음 볼 때도 황당했지만 진짜로 넣겠다고 덤비는 놈을 보니 정신이 아득했다.

애초에…… 그, 그걸, 왜 내가 박혀야 하지? 주형은 어안이 벙벙했다.

“왜 말을 안 해요.”

“씨발, 잠, 시만.”

“응?”

“내가…… 박힙니까?”

머릿속에서 종이 댕댕 울렸다. 그럴 리가 없는데, 아닌데. 주형은 생각도 못 했던 일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걸 자각하곤, 속이 울렁거리는 걸 느꼈다. 필요 이상으로 긴장이 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 두껍고 긴 걸 넣으면 구멍이 찢어질 게 분명했다. 몸이 흠칫 떨렸다.

“응.”

“왜!”

“내가 박고 싶으니까?”

당연한 말이었다. 재연은 주형의 구멍이 짓무를 정도로 처박고 싶었다. 쑤시다가 안 되면 문질러도 보고, 찢어진 것 같다며 엉엉 우는 주형을 보고 싶기도 했다. 순수하게 욕정하고 있는 그를 본 주형이 시뻘게진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거의 난동에 가까운 행위였다.

“미친, 싫, 싫어. 그냥, 아니, 씨발, 싫습니다.”

횡설수설 욕했다. 그러고 있으니 재연이 배시시 웃었다.

“형 구멍 잘 늘리면 잘 들어갈 거예요.”

“닥쳐, 구멍 아무리 커도 네 거만 하면 절대 안 들어가! 미친 새끼.”

당혹을 넘어 주형의 얼굴은 이제 창백함으로 물들었다. 귀두가 끄떡거리며 작게 액을 품고 있는 모습을 보니 겁이 났다. 거기다가 이렇게 힘이 센 놈이 뒤로 넣는다니. 주형은 그냥 울고 싶었다. 말도 안 됐다.

뒤로는 처음인데. 주형이 입술을 아름거리며 두려움에 빠졌다. 넣고 흔들기만 해 봤지 박히는 건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요?”

“당연한 거 아닙니까!”

“그렇구나.”

부드럽게 웃고 있어도 그의 말에는 거짓이 없는 듯 보였다. 어떤 구멍이든 저 자지를 그냥 쑥쑥 받아낼 수 있지는 않을 거다. 주형은 긴장한 채 누구라도 그냥 들어왔으면 했다. 섹스 중에 들어올 만한 미친 부하는 없겠지만, 사람 하나 살리는 셈 치고 제발 누구라도 들어와서 이 흐름을 방해했으면 좋겠다.

“짠.”

어린아이처럼 천진한 손길로 재연이 품에서 무언가를 쏙 꺼냈다. 그러나 그 물건은 절대로 유아가 쓸 만한 게 아니었다.

“…….”

“나도 나름 매너가 있거든요.”

매력적이죠? 재연이 엷게 웃었다. 그러면서 분홍색 포장지를 뜯어 콘돔을 씌웠다. 돌돌 말려 있는 것을 능숙하게 풀고 콘돔을 확 늘린 뒤에는 들어갈 거 같지도 않던 자지에 씌웠다. 정말 기술이 좋긴 좋구나. 저렇게까지 늘어나고. 미친. 주형은 너무 아득한 나머지 그런 이상한 생각까지 했다. 차라리 콘돔이 찢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사님, 아무리 그래도 삽, 입은 좀……, 윽!”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건 아니라고 밀어내려던 순간이었다. 재연이 귀두를 엄지와 검지로 스르르 문질렀다. 주형은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부드러운 감각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응?”

재연이 살덩이를 꽉 쥔 채 주물렀다. 그러고는 다른 손으로 음낭을 지분거리더니, 손가락을 쭉 미끄러뜨려 회음부를 건드렸다. 말캉하고 도톰하게 튀어나와 있는 살이 탐스러워 보였는지 그는 장난스럽게 계속 만지작거렸다.

“복숭아 같다.”

“흐으, 간, 지러. 만지, 지……! 그, 런 데는 만지면, 만, 더, 럽……. 흐응!”

만지지 말라고 하려던 순간 재연이 구멍 사이를 확 벌렸다. 차가운 바람이 몸에 확 끼쳤다. 어떤 배려도 없이 손가락을 푹 처넣자 건조하고 따가운 이물감이 느껴졌다. 주형의 구멍이 옴쭉 줄어들며 잔뜩 주름졌다. 무단으로 침입한 손길을 극도로 거부하는 모양새였다.

“윽! 으읍, 씹, 손…… 빼!”

“너무 뻑뻑하네.”

재연이 혀를 찼다. 어쩔 수 없다는 듯 어떠한 배려도 없이 구멍에서 손을 쑥 빼냈다. 여린 살갗이 사정없이 뒤집히며 아픔을 또 만들어 냈다. 주형은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화끈한 느낌에 눈을 짓눌러 감고 말았다. 그 와중에 성기는 발기한 채 끄떡거리고 있어 도리 없이 괴로워졌다. 정액이 나올 것만 같은 순간에 갑자기 멈추니 그럴 만도 했다.

재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제 옷차림을 갈무리하지도 않은 채 책상으로 걸어갔다. 이내 젤을 꺼내왔다. 도대체 사무실에 저딴 게 왜 있나 싶어 허망한 얼굴로 바라보기도 잠시, 재연이 젤을 우악스럽게 짰다. 꽉 짜자 통에서 김이 새는 소리가 들리며 젤을 우르르 쏟아 냈다.

“흐, 읏.”

“차가워요?”

주형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질끈 감았다. 너무 차가워서 감각이 이상했다.

“곧 따뜻해질 거예요.”

그리 말하며 통을 아무렇게나 내다 버렸다. 소파가 젖어 들어가는 것도 모르고 재연은 주형의 구멍에만 집중했다. 얼른 자지를 쑤셔 박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나, 그는 구멍을 찢어발기고 싶지는 않았다. 저렇게 우는 소리를 하니 구멍을 넓혀 줄 필요성도 느껴졌다.

재연은 주형을 정말로 좋아했으니까. 주형이 구멍을 쑤셨을 때 어떤 얼굴을 하는지 궁금한 마음이 커서, 천천히 해 보기로 했다. 어차피 구멍이 헐 정도로 그를 범하는 건 어차피 앞으로도 많이 할 수 있으니까.

젤이 있으니 손가락 하나는 수월하게 들어갔다. 몇 초만 찌걱거리더니 재연은 성급하게 두 개째를 처넣었다. 콱 쑤셔 넣으니 살갗이 오밀조밀 달라붙으며 구멍 안을 유영했다. 깊숙이 찌르며 내벽을 문지르자 주형의 자지가 끄떡거렸다. 늘어진 신음을 내며 허리 짓을 하는 모습이 언뜻 보였다. 둔부를 소파에 비비적거리는 모습이 매우 음란했다.

“아, 씨발…….”

“흐으, 아…… 빼, 이상, 아으.”

“창놈 새끼가 따로 없네요.”

몸부림치면서도 구멍을 꽉 조이는 모습에 재연이 감탄했다. 진하게 젖어 들고 있는 구멍이 말캉해지는 감각을 실시간으로 느끼자 미칠 것 같았다. 손가락만으로도 쌀 것 같은데 자지를 직접 넣고 흔들면 해가 질 때까지도 붙어먹고 싶을 게 분명했다. 이런 욕구가 치미는 게 오랜만이라 너무 흥분됐다.

자꾸만 바르작거리는 그의 몸이 자못 야했으나, 가만히 있었으면 했다. 재연은 그의 위에 반쯤 올라타 한쪽 다리로 주형의 허벅지를 꽉 짓눌렀다. 무게가 그대로 전해져오는 감각에 주형이 아악, 하고 소리를 높였다.

“내려, 와, 흐윽, 응…… 이, 새끼, 아!”

아으으, 하고 주형의 신음이 매우 길어졌다. 몸을 바르르 떨며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방금 찔렀던 부분을 쿡쿡 쑤시니 다시 한 번 경련하듯 안이 반겼다. 여기구나. 어지간히도 깊이 있어 손가락으로는 조금 모자랐다. 집요하게 거기만 진동을 주자 주형이 허리를 떨어댔다. 자지러질 듯 그가 불안정한 얼굴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검은색 머리카락이 소파에 부딪히자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이제 보니 주형은 이 소파와도 잘 어울렸다. 가죽 소파 색깔보다 훨씬 진한 검은 머리칼과 아주 조금 그을린 피부, 그리고 그의 피부 중 가장 연약한 비부. 모든 게 재연에게는 자극이었다. 그를 처음 본 순간부터 느낀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재연은 이제 참기 어려웠다. 손가락 두 개를 더 넣었다. 하도 거칠게 휘젓는 통에 구멍도 너덜너덜해진 느낌이 들었다. 주형은 어느새 울고 있었다.

“우으, 으…… 히으, 윽.”

발음이 풀렸다. 늘어진 입술이 짜증과 불만을 드러냈다. 너무 거센 흥분이 적응되지 않아 힘겨웠다. 오랜만의 쾌락에 일순 사고회로가 멈춘 주형은 무심코 성기에 손을 대고 탁탁 흔들었다. 뱃가죽을 벌벌 떨던 주형의 자지 끝에서 좆물이 줄줄 흘렀다. 몇 줄기고 토해내는 모습을 보자 만족스러웠다. 정액을 일부러 뱃가죽에 묻히듯 흩뜨리자 주형이 이를 악물었다.

“아……. 쌌어요?”

“흐, 아니, 아닙니다.”

“조금 만지다가 간 거야?”

주형은 너무 당황스러워서 제 아랫도리를 바라봤다. 손바닥을 흥건하게 적시고 있는 액이 보였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자위를 했다니. 게다가 엉덩이를 쓰면서. 충격적이라 말도 잘 안 나왔다.

“형 뒷구멍 써 본 적 없죠?”

사실이었다. 그러나 대답할 수 없어서 그냥 입을 꾹 다물었다.

“얼굴 보니 처음이네.”

재연은 하, 하고 코웃음을 쳤다. 그렇지만 비웃음이 아니라 만족이 현현히 드러나는 얼굴이었다. 처음이라니. 너무 좋아서 기절할 듯했다. 주형의 처음을 가져갈 줄이야. 아쉽게도 성생활까지는 알아내지 못했는데 그의 몸으로 직접 답을 들으니 매우 기뻤다.

“처음인데도, 씨발, 좋아서 뒤 쓰다가 쌌어?”

울컥하는 감정과 동시에 심장이 쿵쾅거렸다. 질척거리는 소리와 동시에 적나라한 말이 주형을 괴롭혔다. 하나하나 살갗을 파내듯 잔인하고 음란한 말씨가 귀에 파고들었다. 이상하게 온몸이 오싹했다. 분명 뜨겁게 타고 있는데.

“그냥 영락없는 걸레 새끼 몸인데, 바깥에는 어떻게 잘 걸어 다닐까. 발기한 거 감추느라 존나 애먹을 거 같은데.”

다리를 분질러 버리면 이렇게 야한 모습도 아무도 못 보려나. 재연은 폭력적인 상상을 하며 주형의 구멍을 더욱 거칠게 쑤셨다. 손목을 빙그르르 돌리자 그가 거칠게 허리를 떨며 그만하라고 소리를 높였다. 그 목소리를 들은 재연이 손을 처박은 채로 다정하게 물었다.

“형, 울어요?”

줄곧 이런 상상을 했다. 주형이 제 아래서 울면서 매달리는 상상을. 그래서인지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재연은 주형을 망가뜨리고 싶어졌다.

“안 우는, 윽. 씨히, 발…… 이, 거 빼.”

“내 자지 먹으려면 풀어야죠.”

“그냥 안 먹, 어. 안 먹을 겁니다, 이사님.”

주형이 팔을 들어 재연의 팔을 꽉 쥐었다. 어떻게든 빼내려 애썼으나 이미 성감대를 충분히 파악한 재연이 놓아줄 리는 만무했다. 오히려 손목을 휙 돌려 아까는 찌르지 않았던 부분을 꿰찔렀다.

그러자 또 새로운 감각에 당황한 주형이 눌리지 않고 있는 무릎을 들었다. 헉, 하고 막힌 소리를 음란하게 내는 순간이었다. 또 주형의 성기 끝에서 물이 흘렀다. 이쯤 되면 주형은 매우 억울해졌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잘 느끼던 몸도 아니었고, 헤픈 자지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벌써 몇 분째다. 주형은 눈물을 한줄기 흘리며 흐느꼈다. 그러자 재연이 손을 확 빼냈다. 네 손가락 모두 착실히 젖어 있었다.

“처음인데 네 개까지 먹네요.”

“씨……!”

“손목까지 넣어 볼 걸 그랬어요.”

재연이 하는 말을 듣자 안색이 또 새하얘졌다. 그러자 재연이 무심코 중얼거렸다. 남에게 들리지 않도록 작은 목소리로.

“형이 이렇게 걸레인 줄 알았으면 진작 따먹었어야 했는데.”

주형은 뭐라 말을 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버둥거렸다. 마지막 힘을 다해 재연을 퍽 차버렸다. 그리고 자리를 뜨려 했다. 제발 도망치고 싶었다. 쿵쾅거리는 심장을 주체할 수 없어 주춤거리고 있자 재연이 그의 허리춤을 잡고 제 몸에 앉게 했다. 저도 모르게 쑥 다리를 벌리고 그의 허벅지에 앉았다. 주형은 아까 한 발길질이 하나도 소용없는 행동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가, 갑자기 무슨…….”

“형이 자꾸 우니까 달래 주려고 하는 거예요.”

얼굴을 마주 보고 있자 그의 선명한 이목구비가 보였다. 주형이 잘 자리 잡도록 허리를 잡고 잘 끌어오더니, 저번에 펠라를 시키기 전 지었던 얼굴을 해 보였다. 그러니까, 매우 음흉하지만 조곤조곤해 보이는 낯 말이다. 주형이 어깨를 움츠리며 경계했다.

“…….”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와 가슴과 배를 맞대고 있어야 할 것만 같아서.

“형이 너무 삐지면 돈도 안 갚을 테니까.”

가증스럽게 한숨을 내쉰 뒤에는 다시 손가락을 움직여 주형의 구멍 사이를 찾았다. 둔부를 두 손으로 잡아 벌린 뒤에는 야살스러운 손짓으로 구멍을 대충 훑었다. 축축하게 젖다 못해 젤이 질질 흐르는 음란한 구멍이었다. 점막이 젤과 함께 섞여 만지기 좋도록 통통해졌다. 재연은 척 봐도 크게 부풀어 있는 음낭을 부러 건드리며 후장을 들쑤셨다.

회음부에 문지르며 좆을 처박고 싶었지만 주형이 힘들어하니 매우 다정하게 해 주기로 했다. 게다가 원래 몸정이 맘정으로 간다고 하지 않나. 얼굴을 맞대고 처박으면 그도 사랑에 쉽게 빠질 거다.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사랑을 느껴 본 재연은 정말 큰 결심을 했다고 생각했는지, 매우 뿌듯해했다.

“돈은 돈이고 이건, 이, 흐으, 이게 무슨……. 아!”

주형의 몸이 훌렁 들렸다. 이런 건 처음이었다. 가볍지도 않은 몸을 이렇게 쉽게 들고, 게다가, 저걸, 저걸 뒷구멍에……. 주형이 휘둥그레 눈을 뜨며 몸을 움찔거렸다. 이건 뭔가 아니었다. 무서웠다. 불편함이 느껴졌다. 구멍에 닿는 감각이 두려울 정도로 현현했다.

재연의 자지가 구멍에 뻣뻣하게 닿았다. 딱딱한 선단이 느껴져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주형은 무심코 놀라 힘을 주었다. 그러자 재연이 흥분 어린 긴장감으로 찬 미소를 지었다.

“왜 넣으려고 할 때 조여요, 넣고 조여야지.”

처음이라는 말은 허풍이 아니었나 보다. 재연이라고 해서 삽입을 해 본 것은 아니지만, 이론은 알고 있었다. 넣기 전에 조이면 넣을 수 없고, 그렇게 지레 겁을 먹어 구멍을 닫는 건 별로 순조로운 섹스 흐름이 아니라는 것을. 그렇게 교과서는 완벽하게 독파한 재연이 주형의 마음은 모르고 다정하게 속살거렸다.

“아, 니야. 씨발, 이거 안 들어, 갑니다.”

주형은 지겹도록 시위를 했다. 주형의 앞에서라면 모든 게 아름다워 보였던 재연에게는 통할 리 만무한 말이었다.

“그럴 리가요, 잘 들어가요. 예쁘게.”

직접 얼굴을 박고 본 건 아니지만 손가락으로 쑤실 때 느꼈다. 오돌토돌한 점막과 주름이 규칙적으로 느껴졌다. 깊이 쑥 처넣으니 물컹하지만 뜨거운 살갗이 있었다. 엄지로 바깥의 음낭을 건드리며 손목을 굽혀 안쪽을 자극할 때는 주형이 자지러질 듯 꿈틀거렸다. 그런 구멍이 완벽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넣어 본 적도 없으면서 지, 랄하지 마, 마십시오. 지, 지금, 찢, 어질 거 같습니다.”

“꿈에서 넣어 봤어요.”

잘 먹던데. 재연이 허벅지에 힘을 주고 주형의 엉덩이를 꽉 움켜쥐었다. 새빨간 손자국이 남도록 통통한 살점을 쥐자 어여쁘게 마디가 진 손가락 사이로 살갗이 푹 튀어나왔다. 주형은 그 짐승 같은 손길에 이기지 못해 엉덩이를 뒤로 빼며 허리를 휘었다. 고개를 젓는 그에게는 위기 의식과 흥분이 혼재했다.

이내 둔부를 탐욕 어린 손길로 쭉 잡아 벌리는 감각과 동시에 안이 쿡 뚫렸다. 아주 작고 요염하게 늘어져 있던 구멍이 자지 모양대로 커졌다.

주형의 입술이 무력하게 벙긋거렸다. 제대로 된 음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벌벌 떨고 있었다. 몸이 여전히 살짝 떠 있는 걸 봐서는 다 들어온 것도 아니라니. 주형은 필사적으로 허벅지에 힘을 주고 버텼다. 너무 아프고 쓰라렸다. 구멍이 찢어진 건 아닌가 걱정이 됐다. 미칠 듯 당기는 아랫배와 이상한 이물감이 그를 덮쳤다.

“아, 아으…… 으응.”

“씨발, 존나 조여…….”

끊어지겠는데. 재연이 그리 말하며 주형의 엉덩이를 꽉 눌렀다. 잘못된 짓 따위는 절대로 하지 않을 듯 고결한 손길이 주형의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아윽!”

아팠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극 때문인지 좆이 멎지 않았다. 무섭고 두려워서 심장이 쿵쾅거렸다. 주형은 찢어질 듯 벌어지는 구멍에 신음했다. 울음이 천천히 새어 나왔다.

“힘 빼요. 잘릴 거 같으니까.”

“존, 나 큰데…… 힘, 뺀다고 되는, 윽, 아!”

“돼.”

반이나 들어갔는데. 재연이 주형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그러고는 진득하게 피부를 핥아 올렸다. 귀엽게 서 있는 솜털을 혀의 돌기로 느끼자 기분이 좋아졌다. 별것 아닌 살갗에 불과할 텐데 살덩이를 처박고 주형을 안고 있으니 기분이 달랐다.

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흥분이 밀려왔다. 손으로 장난을 할 때와는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조이는 구멍이 움칠거리는 게 온몸으로 느껴진다. 딱딱하고 두껍게 발기한 자지를 틈 하나 없이 야금야금 먹고 있는 후장이 숨을 가쁘게 했다.

재연은 목에서, 머리에서 심장이 뛰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혼미했다. 이렇게 좋은데 아직 조금 더 남았다니. 목젖을 꿈틀거리자 하반신에 힘이 더욱 들어갔다. 핏대를 세우고 검붉은 기둥을 천천히 더욱 밀어 넣자 주형이 몸을 파드득 떨었다. 아주 조금 들어갔는데도 그는 예민했다.

이런 거구나. 이래서 섹스를 하는 거구나. 남들은 쉬이 건드릴 수 없는 점막을 맞붙이고, 비비고, 짐승 같은 밑바닥을 보여주고, 얼마나 좋아하는지 코를 맞대고 바라보려고 하는 거구나. AV 영상을 보아도, 영화를 보아도 그들이 무슨 생각으로 섹스를 즐기는지 알 수 없었는데 이제 깨달았다. 이런 감정을 느낄 수만 있다면 주형과 하루 종일 하고 싶었다.

재연은 자못 상냥하게 주형을 꽉 껴안았다. 뼈가 부서지도록 제 품에 안기게 했다. 주형은 덕분에 고개를 푹 숙인 채 몸을 웅크려야 했다. 그럼에도 재연은 놓아주지 않고 계속 살을 붙이고 있길 원했다.

커다란 손으로 통통한 살을 쥔 채로 앞뒤로 움직였다. 작게 들썩거리며 허리를 들자 주형의 구멍이 자지를 받아먹는 게 다리 사이로 은밀히 보였다. 바짝 서 있는 좆과 음낭 너머로 사이에 쿡 박혀 있는 커다란 물건이 제 것이라 생각하니 흥분이 됐다. 내벽을 되는대로 긁어 대고 짓뭉갰더니 주형의 신음이 뚝뚝 끊겼다. 미숙한 바이올린처럼 음계를 달리하는 신음에 재연이 흥분했다.

철썩거리는 선정적인 소리를 내며 자지가 안을 파고들었다. 주형의 골반을 부러뜨릴 기세로 잡은 채 앉히자 그가 힘없이 주저앉으며 아, 하고 힘을 풀었다. 축 뒤로 늘어진 몸뚱이 때문에 그의 젖가슴이 보였다. 밋밋해서 별로 꼴리지도 않는 게 이치일 텐데 왜 이렇게 귀여운지 모르겠다.

재연은 그 젖꼭지를 물었다. 입을 크게 벌려서 담은 뒤에는 아기처럼 그의 젖을 쪽쪽 빨아댔다. 진득하게 혀를 내밀어 뱀처럼 몸을 휘어 감은 뒤에는 다시 한 번 쫀득한 안을 탐했다. 찌걱거리는 난잡한 소리를 내며 그와 붙어먹는 게 좋아 미칠 성싶었다.

“흐응, 아, 그, 만. 그…… 으윽, 아!”

좆대가리는 만족도 모르고 계속 서서 안을 탐하고 있었다. 얕게 경련하는 속이 어찌나 깜찍한지 재연은 한 번으로 끝내기 싫었다. 주형은 새빨간 자국이 남는 것조차 모르고 그에게 휘둘려야 했다. 커튼처럼 나부끼는 몸과 머리칼이 재연의 몸 위에서 흐느적거렸다. 이제는 제 성질머리대로 욕도 못 하고 얕게 신음만 흘렸다.

“이거, 풀이 죽었네요?”

“흐, 흡…… 아, 아으.”

“지도 자지라고 잘 섰네.”

귀여워라. 재연은 주형의 것을 잡아챘다. 이내 거칠게 탁탁 흔들었다. 진득하게 손바닥에 액이 잔뜩 묻어나올 정도로. 주형은 안 그래도 난잡하게 속을 쑤시는 성기 때문에 힘겨웠는데, 앞까지 정복당하니 어떠한 도리도 없었는지 가슴을 마구 흔들어 댔다. 힘들었다. 마지막 발악을 하듯 으으, 하고 소리를 내자 재연이 고개를 푹 숙이고 그의 가슴을 콱 깨물었다. 연붉은 입술이 떨어지며 선연한 자국이 남았다.

재연은 허리를 움직여 자지를 쭉 빼냈다. 검붉은 혈관이 선명하게 비치는 자지가 액을 질질 흘리며 드러냈다. 안을 하도 휘저었더니 젤과 액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는 자지를 쭉 빼낸 뒤에는 아니나 다를까 주형의 속을 험하게 쳐올렸다.

“아, 파. 아프……! 흑, 씨, 발놈…….”

그렇게 가장 고통스럽고 흥분되는 절정을 맞이하는 순간, 주형의 좆 끝에서 말간 액체가 튀어나왔다. 사방으로 줄줄 퍼지며 흐르는 정액이 그의 배를 적셨다. 이렇게 강압적인 관계에서도 오르가슴을 느꼈다는 게 자못 분해서, 주형은 억울한 나머지 또 울음을 삼켰다. 정액이 줄줄 흐르고 그제야 죽은 성기가 아래로 축 처졌다.

“개새, 끼. 흐윽, 으……!”

“아…….”

가느다랗게 눈을 뜬 재연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꿈을 꾸듯 몽롱한 얼굴과 동시에 재연이 주형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속궁합이 쫀득하다 못해 짜릿한 게 몇 번이고 잡아먹고 싶었다. 그가 돈을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빌렸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

씨발. 재연은 감탄하다 그만 욕을 읊조렸다. 우아하고 예쁜 입술로 그리 상스럽게 말한 뒤에는 씩 웃었다.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는 주형의 얼굴 곳곳을 핥아 주었다. 짜지만 달콤하게 느껴지는 눈물이 맛있어서, 아이스크림을 먹듯 정성스럽게 혀를 내밀었다.

한편 주형은 어안이 벙벙했다. 뇌가 어지러웠다. 돈을 빌린 놈과 진짜로 떡을 칠 줄도 몰랐고, 설마 사정을 할 줄도 몰랐고, 정신을 차려 보니 그가 정말 아기를 바라보듯 정이 가득한 눈길로 보고 있을 줄도 몰랐다. 주형은 믿기지 않아서 숨만 내쉬고 있었다.

재연은 자지를 빼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콘돔을 씌웠다.

“온몸의 수분 다 뺄 작정이야? 미친 새끼야. 차라리 죽여.”

“내가 형을 왜 죽여요.”

서느런 목소리가 위압감을 주었다. 주형은 저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분명 덩치가 훨씬 큰 놈들에게도 눈을 부라리다가 몇 대를 얻어맞았는데 재연의 앞에서는 그런 게 잘 안 됐다. 어린 놈인 데다가 그냥 곱상하게 생긴 것뿐인데. 꼴에 예전에 봤다고 정이 든 건가.

“…….”

“형 따먹어야 되는데.”

재연은 그리 말하며 주형의 뺨을 어루만졌다. 하지만 언제 돌변해 뺨을 때릴 것처럼 냉정한 손길이었다. 재연의 목소리는 정말 다정했으나 이유 없이 그런 감상을 일으키고는 했다. 무언가 뒤에 더 있을 것만 같다고 해야 하나. 그늘이 엄청날 듯해 본능적으로 꺼려졌다.

재연이 주형의 몸을 잠시 떼어놓았다. 이내 정액과 액으로 잔뜩 젖어 있는 바지를 보고는 버려야겠다며 싱긋 웃었다. 그가 들고 있는 바지의 허리 부분에 명품 브랜드의 태그가 붙어 있는 것을 본 주형은 할 말을 잃었다.

징그러운 새끼. 주형은 치를 떨었다. 그렇지만 정작 반항할 수는 없어서 더욱 화가 났다.

2억은 그토록 무서운 돈이었다.

***

재연은 다행히도 두 번만 더 하고 놓아주었다. 저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섹스는 험했다. 하지만 한 번이 매우 길어서 지옥인 건 매한가지다. 주형은 소파에 앉은 채 어깨를 늘어뜨렸다.

“형은……. 체력이 안 좋네요.”

“아, 네.”

대답할 기운도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놈이 미친 괴물이 아닌가 싶지만, 반박하면 다시 시작될까 겁이 나서 그냥 입을 다물었다.

“삼계탕 보내 둘게요. 다 먹어요.”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 좁고 퀴퀴한 방에서 삼계탕이라니, 돼지 목에 진주란 말이 딱 어울리는 광경이다. 치우기도 귀찮고 먹기도 힘든 뼈다귀를 생각하니 스트레스가 밀려왔다.

“꼭 다 먹어요.”

“…….”

“음식 남기면 천벌 받는다는데.”

천벌은 이미 떨어진 거 같은데. 윤재연이라는 놈 자체가 제겐 벌이다. 주형은 도대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나, 하고 속으로 한탄했다. 어릴 때 뭘 잘못했길래 이러는 걸까.

“죄송한데 형이란 말은 안 하시면 안 됩니까?”

“왜요?”

재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곱상한 도련님 같은 얼굴에서 빛이 났다.

“채무자와 채권자 관계지 않습니까. 형 소리 들을 사이는 아닌 거 같습니다. 예전에야 동네 이웃이지 지금은…….”

그에게 미운 정이라도 들까 걱정이 되었다. 애초에 재연에게 형 소리를 거의 15년 만에 들으니 기분도 요상했다. 그냥 돈을 안 갚으면 때리러 오고, 돈을 갚으면 가만히 있는 그런 사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형 입장에서는 나랑 친해지면 좋잖아요?”

“……왜죠?”

“형을 도울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잖아요.”

실로 도울 생각이 있었다. 화대라고 하면 몹시 껄끄러우니 애인을 위한 봉사 정도로 칭하기로 했다.

“저는 그냥 빚을 낸 거고, 남은 이자와 원금을 갚는 채무자일 뿐입니다.”

“응. 근데 2억 남았잖아.”

“…….”

아니, 2억 319만 원이다. 319만 원은 반올림으로 빼 준 거로군. 주형은 이제는 막막하지도 않았다. 그냥 죽을 때 되면 알아서 돼 있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자 재연이 상냥한 목소리로 비수를 꽂았다.

“형이 좆 빠지게 일해도 절대 다 못 갚아요. 형은 능력이 없잖아요?”

“하지만 지금 저희는 채권자와 채무자 아닙니까?”

짜증이 확 밀려왔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대화 중간중간에는 알 수 없는 무시가 있었다. 왠지 재연은 저를 좋아하지 않는 듯했다. 뭔가 앙심이라도 있는 것처럼 대화 사이에 은근한 짜증이 서려 있다. 물론 칼날 같은 분노가 아니라, 어린아이의 앙탈 같았다. 그래서 더욱 짜증이 났다.

“난 형을 좋아하는데 그런 단어로 내 감정을 무시할 생각이에요?”

“씨발, 갑자기 나타나서 왜 지랄이냐고! 보통 좋아하는 사람한테 이러냐? 미친 새끼야.”

주형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 빽 질렀다. 눈을 부릅뜨자 어지간히 무서운 낯이 되었다. 웬만한 사람들은 기겁할 만큼 사나운 눈꼬리가 삐죽 튀어나왔다. 입술을 짓씹고 있자 깡패 같은 분위기가 나왔다. 옷만 바꾸어 입었다면 분명 주형이 깡패였을 거고, 재연은 그저 선량하고 부지런한 중산층처럼 보였을 거다.

“보통인지 아닌지는 상관없고, 내가 좋아하면 된 거잖아요. 형을.”

재연은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다. 제가 좋아하면 모든 게 다 해결이라 여겼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 얼굴과 몸매, 부를 보고 저를 좋아했으니까. 민주형도 지금은 조금 틱틱거리고 있지만 고양이가 새침하듯 그 또한 금세 넘어올 거다. 제 성격이 조금 특이하기는 해도 매우 매력적이라 여기고 있으니 사랑을 입에 처넣어 주면 주형도 좋아할 게 틀림없다고, 그는 그리 생각했다.

“형도 나를 좋아하게 될 거예요.”

재연은 주형이 저를 싫어할 자격조차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자신을 버려 놓고, 다시 주워서 어떻게 해주지는 못할망정 왜 감히 거부한다는 말인가. 그는 주형을 놓친다는 생각을 절대로 하지 못했다.

“…….”

“형이 믿을 구석은 나밖에 없으니까.”

가관이군. 주형은 이제 더 지치지도 않았다. 옷을 느릿느릿하게 입으며 그는 눈을 나른하게 끔뻑였다.

“그리고 연하 남자 친구 만나려면 조금 피곤한 것도 있어야 해요.”

그게 연애의 맛이니까. 재연은 하나도 연애 같지 않은 분위기를 조성해 놓고서는 뻔뻔하게 그리 말했다. 미친 새끼, 갑자기 노력을 해 보라며 다 벗기고는 구멍부터 쑤신 주제에 말이 많구만. 주형은 매우 억울했다. 마치 제가 재연을 꾸역꾸역 붙잡고 있는 것 같아서.

“연락 잘 받아요. 내가 의부증이 조금 심해서.”

“…….”

“안 받고 누구랑 있으면 그놈 사지를 절단내 버릴 거니까 꼭 연락받아요.”

그냥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봤다면 ‘정말 유치한 놈이군’ 하고 말았겠지만 재연이 직접 눈앞에서 속삭이는 말이라 그렇지 않았다. 유치한 집착과 오기처럼 보였으나 놈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듯했다. 딱히 실감이 나진 않았으나 매우 의심이 됐다.

그냥, 놈은 그런 놈 같았다. 오랜만에 본 그는 그런 인상을 주었다. 얄밉고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충동이 일었고, 동시에 절대 그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생겼고 완벽하지만 속이 짓물러 있었다. 마트에서 잘못 산 고급 과일 같달까. 비유가 영 싸구려였지만 아무튼 그랬다.

“형이 이때까지 다른 사람 만났다든가, 돈을 잘 안 갚았다든가 그런 건 봐줄 수 있어요. 형은 좀 모자라니까. 그렇지만 앞으로는 안 돼요. 내가 형을 이렇게 받아 들여주고 있는데, 형도 어느 정도는 성의를 보이는 게 맞는 거니까.”

주형은 멍하니 그 말을 들었다. 말 하나하나 모두 저를 까 내리고 있었다. 머리가 텅 비는 듯한 기분이 이어지기도 잠시.

“이건 차비.”

재연이 지갑에서 수표 한 장을 꺼냈다. 금일십만원정. 보통 지폐와는 다른 감각이 손가락에 서렸다. 어쩔 줄 모르고 가만히 있으니 재연은 그냥 손가락만 움직여 바닥으로 펄럭이게 했다. 굳이 손에 쥐여 주지 않았다.

“아, 청소는 할 필요 없어요.”

형한테는 그런 거 안 시킬게요. 재연이 방긋 웃으며 손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방금 전까지 구멍을 쑤시던 손가락이 멀끔해져 있는 모습을 보자 제 모습이 한순간 비참하게 느껴졌다. 주형은 욱하는 마음을 억누르며 그가 나가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얼굴을 푹 찌그러뜨렸다. 알게 모르게 그에게 길들여져 버렸다. 주형은 눈을 질끈 감고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골이 울렸다.

***

시계는 잘도 도네- 돌아가네. 주형이 밋밋하게 중얼거렸다. 원래 ‘시계’ 자리에 ‘미싱’이 들어가야 하는 게 맞지만, 주형의 입에는 그게 더 잘 붙어서 그렇게 불렸다. 제법 낡은 노래를 입에 담으니 스스로도 낡았다고 생각하는 건지 그의 몸이 덜렁덜렁 힘없이 흔들렸다.

오늘따라 좀 힘들었다. 어제 재연과 거칠게 섹스를 하고 나오는 것도 모자라 나오는 길에 무언가를 들었기 때문이다.

너덜너덜해진 몸을 어영부영 이끌고 오늘도 저무는 주형의 뒤로 박 실장이 따라붙었다. 무슨 용건인가 싶어 가만히 있으니 박 실장이 어깨를 탁탁 두드렸다.

‘야, 민주형이. 잘해라이?’

‘아, 예.’

힘이 없어 대충 답했다. 심드렁한 눈치를 금세 알았는지 박 실장이 입술을 삐죽거렸다. 입을 열 때마다 비린 담배 냄새가 가득했다.

이 건물에서 천국 캐피탈이 사무실을 빼더라도 담배 냄새는 영원히 안 질 것 같을 정도로, 이 건물은 담뱃재와 담배 냄새로 찌들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올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니 내가 왜 이렇게 말하는지 하나도 모르는 눈친데.’

‘그냥 잘 갚으라고 하시는 거 아닙니까?’

‘그게 아이고, 인마. 참, 나. 그건 당연한 기지!’

무어라 대답하면 좋을지 몰라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박 실장이 쯧, 하고 혀를 차며 말했다. 이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더니 불량한 목소리로 답해 주었다.

‘니 빚 말이다……. 사실, 천국 캐피탈 끼 아이야.’

‘예? 채권자가 법인이 아닙니까?’

주형이 고개를 기울였다. 조금 일그러진 미간이 의아함을 드러냈다. 그러자 박 실장은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는 주형을 보곤 아휴, 하며 주먹을 쾅쾅 쳤다. 과장된 몸짓이 오늘따라 굉장히 보기 싫었다.

‘천국 캐피탈이 아니라 이사님, 아니, 우리 도련님 존함으로 되어 있다, 이 말이라고. 이 똘빡아.’

‘…….’

‘그니까 직접 수금도 하려고 니 붙잡고 그러시는 거 아니냐? 그러니까 잘하라, 이 말이지. 회사 채권이면 내도 그냥 니 팼을 텐데 이사님이 채권을 갖고 계시니까 우리도 손을 못 들었던 기라.’

생각해 보면 재연을 제외하고는 그에게 손찌검을 한 놈이…… 딱 하나였다. 그의 것을 강제로 빨고 나서도 딱히 해코지를 당한 적은 없었다. 매일같이 찾아와 집이라도 두들길 줄 알았건만.

흠, 그랬던 건가. 주형은 새로운 사실임에도 김이 빠지는 듯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게 주형의 속마음이었기 때문이다. 채권자가 법인이든 개인이든 결국 죽도록 갚아야 한다는 건 다르지 않다. 게다가 개인이 재연이라면 차라리 천국 캐피탈이 채권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런 놈한테 실실 기면서 돈을 한두 푼 깎아낼 바에야.

‘그 와중에 돈도 안 내고 그러니까 우리는 속이 을매나 타겠어? 으이? 도련님이 니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니는 돈도 잘 안 갚고 지랄, 지랄을 하니까 속이 쌔까맣게 탄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안 밀릴게요.’

‘그래, 그래. 니는 참 착실해, 보면. 아무튼 그런 거니까 잘해라. 이사님이 얼마나 너그럽고 대단하신 분인데? 저래 어리신데 강직하고, 게다가 꽃미남이시잖아! 어?’

박 실장은 특유의 사투리 억양을 더해 ‘꽃’ 부분을 길게 늘여 말했다. 그의 썩은 감자 같은 얼굴 앞에서 손목만 까딱까딱 움직여 ‘얼굴이 반반하다’는 걸 표현하고 있었다. 주형 또한 모르는 말이 아닌지라 그냥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

‘도련님이 얼마나 사랑이 넘치시는 분인 줄 아나? 사랑이다, 사랑. 니 대하시는 거 보면 눈에서 막 꿀이 떨어진다!’

‘알겠습니다. 노력해 보겠습니다.’

너그럽고 대단하고 강직한진 모르겠다. 그냥 좆같은 새끼 아닌가. 아무리 젊고 어리고 예쁘면 뭐 하나, 그냥 대부업을 메인으로 여러 회사에 진출하고 있는 그룹의 회장 아들이자 이사이자 깡패인데. 말이 도련님이지 그냥 깡패 새끼란 말이다.

뭐, 돈 많으니까 된 건가. 게다가 키도 크고 잘생겼고 좆도 크니 결혼은 하겠군. 깡패니까 노는 것도 잘 놀 거고, 인생 정말 재미있어서 기절하시겠구만. 뒈졌으면……까지는 아니고, 그냥 내 인생에서 사라지면 좋겠다.

주형은 쓴 물이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듯한 감각에 탄식을 흘렸다. 그의 흥분한 얼굴과 속살거리는 목소리를 떠올리자 등줄기를 타고 오싹함이 내달렸다. 한 번 더 보면 진짜 잠도 못 잘 것 같다. 여러 의미로.

그렇게 떨떠름함을 지하철 속 사람들에게 겨우 숨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전 놈들이 다녀간 흔적 때문에 집을 치우느라 고생했던 걸 떠올리자 한숨이 다시 나왔다.

‘한숨 쉬지 마라, 땅 꺼진다.’

옛말을 떠올리자 푸스스 웃음이 났다. 그런 걸로 땅이 꺼졌다면 이미 세상은 제 한숨으로 인해 모든 곳에 구멍이 생겼을 거라고, 운석 구덩이처럼 팼을 거라고 속으로 농담을 따먹었다. 그만큼 주형은 중학생 이후로 한숨을 쉬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숨을 내쉰다는 뜻이 아니라, 하지 않아본 적이 없다는 뜻이다.

“졸려.”

이것도 육체적 노동이랍시고 마구 졸리다. 주형은 손과 발만 씻은 채로 꾸물꾸물 침대 위에 누웠다. 옷도 갈아입지 않고 발을 바닥에 둔 채 눕자 기분이 영 깨끗하진 않았다. 그러나 밀려오는 잠이 더욱 강해서, 주형은 그냥 잠을 청했다.

그렇게 두어 시간이 지났을까. 주형이 깬 것은 벨소리 때문이었다. 대타를 요청하는 적이 많기에 항상 벨소리를 틀어 두고 새벽에도 쏜살같이 나가는 게 버릇이 되어 그런지, 그는 금세 일어날 수 있었다. 벌떡 일어나서는 풀린 눈을 한 채 휴대폰으로 손을 뻗었다.

“여보세요.”

억눌린 발음을 내뱉었다. 깊이 잠긴 목소리와 함께 주형의 속눈썹이 아래로 쑥 처졌다. 아름답게 늘어진 검푸른 빛깔이 밤하늘과 섞여 예뻤다.

-형, 잤어요?

“……이사님?”

욕을 할 뻔했다. 시계를 바라보니 오후 10시였다.

-자고 일어난 목소리도 너무 듣기 좋네요.

“무슨 일 있으십니까?”

방금 깨서 그런지 아직 정신이 잘 차려지지 않았다. 재연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매우 감미로웠기 때문이다. 상대가 상대인 만큼 그냥 정신을 차릴 법도 한데 그런 건 없었다. 이상했다.

-일은 아니고, 그냥 잘 들어갔나 궁금해서요.

“아…….”

-일어나요.

“네.”

보통 애인이 자고 있으면 좀 더 자라고, 편히 자라고 하지 않던가. 주형은 연애다운 연애는 잘 모르지만 어디서 주워들은 드라마나 소설 속 이야기로 ‘보통 애인’, ‘달콤한 연애’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재연이 하는 행동은 정말 하나같이 다 망한 연애의 전형 같았다. 미친 새끼.

-모레 영화 볼까요?

“영화 말입니까?”

갑자기 전화를 걸어서는 영화 타령을 하는데 짜증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혹스러웠다.

-네. <자몽 색깔 바람>, 이거 봐요.

“그게 무슨 영화인지 모릅니다.”

-장르는 로맨스, 드라마. 연령가는 19세 이상 이용 가능. 배급사는…….

“무슨 내용인지 여쭤본 겁니다.”

-아, 그래요? 말을 하지.

무슨 영화인지 물으면 보통 내용부터 말하지 않나? 사실 로맨스, 드라마 장르라는 것부터 이미 정이 뚝 떨어지는 나머지 듣기 싫기는 했다.

-갑자기 연인과 헤어진 주연. 그렇게 동창회에 나가자 옛 첫사랑이었던 영주를 만난다. 영주는 옆자리가 비었다는 말을 하고, 주연은 마침 헤어진 연인을 잊으려 노력하고 있다. 서로와 눈이 마주치자 그 시절로 돌아간 듯 둘은 자몽 색깔 바람을 일으키는데…….

재연과는 하나도 안 어울리는 로맨스 영화였다. 미친놈. 그냥 서로 죽이고 패는 거나 보지, 왜 이런 걸 본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그냥 익숙한 피비린내를 맡으면서 낄낄 처웃기나 했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저 예쁜 얼굴에 다시 환상을 가지게 될 것 같았다.

“보고 싶으십니까?”

-네. 그리고 원래 연인끼리는 영화관 데이트를 한다고 하길래.

“그렇습니까. 그런데, 그냥 섹스만 하고 싶으시면 저랑 그렇게만 하셔도 됩니다.”

주형은 재연이 하는 말을 은근히 무시하며 슬쩍 넘겼다. 그리고 대안을 제시했다. 그와 정서적으로 공감할 만한 일이 생긴다고 해서 좋을 건 하나도 없다. 막말로 재연과 정말 사랑을 하게 되더라도 그건 그것대로 이상한 일이다. 그런 기형적인 관계는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형이 영화 보고 싶다고 했잖아요.

“제가 언제 그런 말을…….”

-상상력이 부족한 티를 냈잖아요. 그거, 나랑 영화 보고 싶다는 뜻 맞죠?

“…….”

이제는 이 개수작이 우습지도 어이없지도 않다. 주형은 그냥 멍했다. 방금 자다 깨서 그런 건지 그냥 꿈 같기도 했다. 그렇게 멍하니 숨을 죽이고 있자 서늘한 목소리가 들렸다.

-맞잖아요, 형.

엷게 웃는 소리와 동시에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주형은 이런 재연의 태도가 아주 딱 질색이었다. 본인이 섹스를 하고 싶어서 범하고 있으면서도 졸라서 할 수 없이 박아 준다는 듯 웃는 것도 그렇고, 자신이 영화를 보여주려고 하는 거면서 영화를 보자고 하지 않았냐고 말을 꾸역꾸역 고치려는 것도 그렇고 말이다. 아집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범상하지 않은 상황 조작 능력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주형은 이런 재연이 참 힘들었다. 어렵다든가 무섭다든가 그런 건 아니었다. 그냥 좀 못마땅했다. 받아들이기 어렵기도 했고, 도대체 이 미친놈은 왜 나한테 이러나 싶기도 했다.

“네. 제가 보러 가자고 했습니다. 은유적으로.”

-으응, 그렇죠. 형은 정말 내숭을 잘 떨어요.

휴. 재연이 가증스럽게 한숨을 내쉬었다.

“…….”

별로 만난 적도 없는데 주형은 그가 뺨을 감싸고 어깨를 살랑거리고 있을 것이 눈에 보였다. 그 다부진 체격으로 예쁜 척을 하고 있으리라 상상하니 토가 나올 듯했다. 예쁜 남자야 싫은 건 아니지만 재연은 싫었다. 그런 폭력적인 놈을 좋아할 수 있을 리가.

예전에는 괜찮았는데.

-그럼 모레 오후 6시에 봐요. 저녁은 같이 먹고, 그 영화 보기로.

“알겠습니다.”

조금이라도 미루고 싶었으나 지금은 마땅한 핑곗거리가 없었다. 일이라도 있으면 말을 했을 텐데. 주형은 얼른 일을 잡아서 그와의 만남을 합법적으로 줄이고 싶었다. 물론 재연이 온갖 지랄을 떨며 일을 다 없애면 그건 그때 또 괴로운 일이겠지만, 아무튼 지금은 그게 최선일 듯했다.

-형 볼 생각하니까 잠이 안 올 거 같아요.

“주무셔야죠.”

-폰으로 섹스라도 하면 좋겠는데.

“전 비대면 섹스는 안 합니다.”

-아쉽네요. 그럼 자장가 불러주면 안 돼요?

이런 식으로 어리광을 부리기도 하는 건가. 주형은 의아했다. 왜 이렇게 진짜 연애처럼 구는지 알 수 없었다.

“……그건, 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재연을 상대로 ‘잘 자라, 우리 아가’ 이런 노랫말은 너무 안 어울렸다. 돈을 주면 하기야 하겠지만 딱 질색이었다. 사람이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하면 금세 죽는다.

-그럼…….

“네.”

-자위하는 거 영상 보내 주면 안 돼요? 자장가로 좋을 거 같아요.

성인용 자장가인가. 하지만 굳이 따지면 음란물일 텐데 그런 걸 보고 자겠다는 건가. 잠이 오긴 하나? 주형은 눈을 끔뻑였다.

“…….”

그리고 고민하고 있자 깨달았다. 딱히…… 권유는 아니라는 걸. 잠이 깸과 동시에 매우 피곤해졌다. 이상했다.

-아, 저번에 보낸 딜도 잘 찾았죠?

재연이 싱글거리며 물었다. 주형은 예, 하고 한숨을 담아 대답했다. 재연이 며칠 전에 택배로 보내 주었던 것이다. 너무 좆같아서 버리려고 했는데 왠지 위이잉- 하면서 딜도가 집까지 쫓아올 것만 같아 버리지 못했다. 마치 저주 인형처럼 말이다.

주형이 치욕스러운 나머지 이를 까득 갈자 건너편에서 웃음을 터뜨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썸을 타는 두 사람 사이에서 매우 즐거운 대화를 할 때 흘리는 웃음소리 같았다. 그리고 주형에게는 매우 잔혹한 장난 같았다. 재연의 순애보는 그토록 유해했다.

**@*

“……합니다.”

-응, 형. 기다리고 있어요.

한숨이 푹푹 나왔다. 딜도와 러브젤을 가져다 놓고 벽에 휴대폰을 기댔다. 다리를 쭉 뻗고 앉자 휴대폰 구석으로 제 모습이 비쳤다.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옷을 한 겹, 두 겹 벗었다. 외면하려고 했지만 자꾸만 휴대폰 쪽으로 시선이 가 스스로가 미워졌다. 재연은 휴대폰을 손에 쥔 채 영상을 보고 있는 듯 약간 아래를 향해 속눈썹을 내리깔고 있었다.

자리에 앉으려던 순간 주형이 멈칫했다. 이내 좆이 보이지 않도록 자리에서 일어선 채 고개를 아주 약간 숙였다. 눈과 턱, 그리고 코끝만 빼꼼 나타났다.

-이러면 곤란한데.

“……예?”

-형이 너무 귀여워서 지금 당장 집에 찾아가고 싶잖아요.

말도 안 되는 말을 이렇게 끊임없이 할 수 있다니. 주형은 이젠 멍해졌다. 그의 앞에서는 모든 분노가 하찮아지는 것 같아 힘이 빠졌다.

“아…… 예. 근데, 진짜 혼자 계신 거 맞습니까?”

-네.

“알겠…… 습니다.”

영 못 미더웠으나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러자 재연이 아주 친절하게도 휴대폰을 360도 돌려 주변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텅 빈 사무실이 드러났다. 뒤로는 검은색 블라인드가 쳐져 있다. 엊그제 섹스를 했던 소파도 보인다. 그 기억을 되살리자 그만 괴로워져서 주형은 그냥 입을 꽉 다물었다.

-형은 나를 정말 좋아하나 봐요.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이사님.”

예전에는 좀 더 귀여운 맛이 있었던 거 같은데, 지금은 여우 새끼 한 마리를 데려다 놓은 거 같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사람이나 홀리고 간을 쏙 빼먹는 그런 존재. 예전과 달리 수줍음도 없고, 오히려 의뭉스러운 점만 늘었다. 그땐 지켜 주고 싶게 생겼었는데. 주형은 아무리 생각해도 재연이 정말 제가 알던 그 재연이 맞나 싶었다.

-날 너그러운 사람으로 보고 있다는 거 아니에요. 이런 예쁜 걸 누군가와 함께 공유할 정도로.

“…….”

말이 안 나왔다. 백일몽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재연은 그 급이 남달랐다.

주형은 재연이 워낙 미친 사람이니 이런 것들도 큰 화면으로 비추어 놓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며 저를 능욕할 거라 예상했다. 그런데 정말로 아무도 없으니 안심이 되면서도 기분이 야릇했다. 그를 위해서 진짜 자위를 해야 한다니. 차라리 완전히 창놈처럼 구른다면 아무런 생각도 안 들 텐데. 그렇게 된다면 재연에게 더욱 대들며 돈도 더 뜯어낼 수도 있을지도 모르는데.

‘이게 뭐냐.’

신종 괴롭힘인가. 채권 추심 하나에 이렇게 애쓰는 게 유행인가. 주형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그냥 대충 대답했다.

“예, 뭐.”

얼버무린 뒤에는 자리에 털썩 앉았다. 무릎을 들고 허벅지를 가슴 가까이 당겨오자 자지가 훤히 드러났다. 분명 평소라면 그냥 축 늘어져 있을 텐데 재연이 보고 있는 것 때문인지 살짝 힘있게 서 있었다.

-형, 왜 아무것도 안 하고 통화만 했는데 그렇게 됐어요? 좆.

“이사님도 남자시면 아실 텐데요.”

주형은 제대로 대답하지 않고 그냥 넘겼다. 제 입으로 말하면 부끄러울 게 뻔했다.

-무슨 자극을 줬는데 그렇게 된 거예요?

“그냥 평소랑 달라서 그렇습니다.”

-그러고 있으니까 형 걸레 같아요.

보지는 없죠? 재연이 활짝 웃으며 물었다.

“……무슨 말을 그렇게…….”

주형은 울컥한 나머지 아랫입술을 반항적으로 짓씹었다. 씨팔놈이, 진짜. 왜 이렇게 된 걸까. 예전의 그 왕자님 같던 놈은 그냥 죽어 버린 건가.

-평소랑 다른 거면…… 통화? 형은 어디 보이면서 하는 게 좋은가 봐요. 나중에는 부하들 불러서 우리 씹질하는 거 보여줄까?

재연이 상스러운 말을 거듭했다. 주형은 숨을 들이켜며 그 목소리를 잠자코 들었다.

왜, 형 구멍에서 내 정액이 나오면 내 부하들도 좆을 벌떡 세워서 형을 강간하려고 하지 않겠어요? 그러면 나는 그걸 지켜보고 형은 구멍을 열면서 내 자지나 빨면 좋겠어요. 형이 꾸물거리면서 울고 개처럼 짖는 게 보고 싶어요. 하지만 나랑 할 때만 싸야 해요. 다른 새끼랑 붙어먹으면서 싸면 기분이 너무 좆같을 것 같아. 형 구멍에 도구 넣어 놓고 하루 종일 방치해 두면 두 개도 받을 수 있을 거 같은데 그건 어떻게 생각해요? 형은 약은 싫죠? 생각보다 까다로운 거 같던데……, 같은 말들.

느른하게 늘어진 목소리와 깨끗하고 고결한 피부가 휴대폰으로 전해졌다. 말을 많이 했음에도 경박하다든가 그런 감각은 없었다. 그저 귀족이 영지 법안 개정에 대해 논하며 가엾고 불쌍한 천민들을 위해 어떤 것을 하사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게 주형을 미치게 했다. 모든 면에서.

-형 구멍이 내 자지 먹는 거 보여주고 싶지 않아요? 야금야금, 너무 귀엽게 잘 먹던데.

주형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치욕과 알 수 없는 흥분으로 몸이 달았다.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왠지 울 것처럼 주형이 움찔댔다. 자지 또한 발기한 채 끄덕이고 있었다. 재연은 그 모습이 귀엽고 또 마음에 드는지 짓궂은 언사를 그만두었다.

-알겠어요. 우리 사이에 다른 사람이 끼면 싫다는 거죠?

누가 보면 연인 사이인 둘을 누가 방해해서 하는 말인 줄 알 정도로 재연의 목소리가 사근사근했다. 그래서 더욱 부끄러웠다.

“……예.”

억지로 대답했다. 주형은 다리를 벌린 채 그런 말이나 듣는 게 매우 어색했다. 항상 거친 말만을 귀에 담아 왔던 사람으로써 저런 다정한 껍데기는 몹시 멀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재연이 다정하다 느꼈다. 왜일까. 둘만의 섹스로 남겨 두자고 해서? 정말 우습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상 보통의 채무자와 채권자 관계로는 절대로 남겨질 수 없겠지.

이러다 나락으로 같이 갈 사이가 될지도 모른다. 왠지 그런 나쁜 예감이 들었다.

주형은 얼른 신경을 돌리기로 했다. 좆에 손을 대고 얼른 빼내려고 했다. 딜도는 웬만하면 쓰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손을 내밀고 좆 아래로 손을 넣던 순간이었다.

-으응, 그게 아니죠.

아기를 어르고 달래듯 재연이 입을 다문 채 목소리를 늘였다.

“……그럼요?”

제법 험악한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재연은 저번과는 달리 그냥 엷게 웃었다.

-손으로 만지게 할 거면 내가 뭐 하러 형이랑 영상 통화를 해요. 좆같게.

재연 입장에서 폰으로 섹스를 하는 건 매우 아쉬운 일이었다. 주형을 눈앞에서 범해도 모자란데 영상으로만 보다니. 일이 많아서 하는 수 없이 찾아가는 것을 미루고 있는 건데 주형이 그렇게 아쉽고 소극적으로 행동한다면 매우 화가 날 것이다.

“…….”

-구멍만 써서 싸 봐요.

“그런 걸 할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어린 동생을 달래듯 주형이 한숨 섞어 말했다. 뒤만 쑤셔서 사정을 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저번에는 그랬던 거 같기도 한데, 아무튼 그건 불가능하다. 주형은 그리 못 박기로 했다.

-형은 타고났으니까 할 수 있어요. 내가 지시하는 대로만 하면.

“……통제하는 걸 좋아하시는지는 몰랐네요.”

주형이 삐뚜름하게 말했다. 비아냥에 가까운 목소리와 함께 주형의 입꼬리가 일그러졌다.

-형한테만 그래요.

“…….”

-형 우는 얼굴 귀엽거든요.

재연이 벙글거리며 그리 말했다. 자그마하게 벌어진 입술 사이로 그가 얕게 웃음을 내뱉었다. 이내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했다.

-딜도 들고, 젤 묻혀요.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 점액이 줄줄 흐르다 못해 손가락을 일부 적실 정도로. 아주 오랜만에 쓰는 거라서인지 손으로 잡는 것도 어색했다. 작게 진동음이 울리고 흘깃 휴대폰 화면을 보니 재연이 곱상한 눈빛으로 말했다.

-넣어요.

차가운 젤이 회음 가까이 닿았다. 주형은 허벅지 안쪽을 살포시 떨며 몸에 힘을 풀려 애썼다. 조금 늘어진 근육이 자르르 떨리고, 구멍이 딜도를 조금씩 삼켰다. 놀란 건지 흥분한 건지 속살이 자그마하게 경련했다. 부담스럽지 않은 진동을 흘리는 도구가 주형의 살갗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전희도 하지 않은 데다가 자위를 보이고 있다는 데에 대한 긴장감 때문인지 구멍은 쉬이 열리지 않았다. 꾹꾹 밀어 넣어 보려고 했으나 손길은 몹시 소심했다. 겁이 나서였다. 이런 걸로 직접 수시는 건 처음이라 무서움이 생겼다. 주형은 아랫입술을 터뜨릴 듯 꽉 깨물며 아래를 계속 바라봤다. 그냥 좆이나 만지고 얼른 싸고 싶었다. 불쾌한 이물감과 차가움이 몸을 꿰뚫었다. 중심부로 퍼지는 찌릿찌릿한 감각이 이상했다.

그냥 빼고 전화를 끊어 버릴까 내적으로 치열하게 갈등하던 순간이었다.

-더.

“후…….”

주형은 숨을 푹 들이마셨다. 신음처럼 깊은 숨소리가 휴대폰 너머로 자그마하게 들렸다. 그가 애쓰고 있다는 걸 앎에도 재연은 음, 하고 나른히 한숨을 쉬었다. 이내 뻔뻔하게 입술을 쭉 야하게 벌려 하품을 했다. 어여쁘게 늘어진 눈꼬리가 유혹적으로 더욱 처졌다. 가느다랗게 잠긴 눈동자는 지루함을 품고 있었다.

-이상하다, 왜 이렇게 안 들어갈까. 저번에는 잘 들어갔는데.

“흐으…… 후.”

-구멍이 너무 작아서 그런 건가.

저번에는 저것보다는 잘 벌어졌다. 쩌억, 하는 음란한 소리까지 났었는데. 젤을 아주 많이 써서 그런 걸까. 재연은 허리를 살짝 움찔대며 구멍을 여닫고는 했던 주형을 상상했다. 일자로 쭉 떨어지는 골반과 성기를 잇고 있는 살덩이를 상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면서도 딜도는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제 좆은 잘 씹어 먹던 주형이 좋아 미칠 성싶었다.

-형은 내 손가락이 더 좋나 봐요.

“조, 금만 더……. 기다, 려 주시죠.”

-음, 뭐.

재연은 주형이 딜도로 구멍을 넓히는 걸 볼 수 있다면 그 정도는 기다릴 수 있었다. 인내심이 매우 부족하긴 하지만 지금 당장 주형의 집으로는 갈 수 없는 실정이었으니까. 음란하게 늘어진 구멍 사이로 좆물이 줄줄 흐르면 더욱 좋겠으나 그건 며칠 뒤로 미뤄야겠다. 이렇게 한 번 길들여 놓으면 주형에게 미리 풀어 놓으라고 명령할 수도 있으니까.

어쩌면 많이 늘려 놓아서 정말 손목까지 구멍에 처넣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현실감 없는 생각도 하게 됐다. 주먹을 구멍에 처박힌 주형이 울면서 둔부를 움찔거리고, 구멍을 감싸고 있는 통통하고 끈덕진 살갗이 벌름대는 게 보고 싶었다. 하지만 영 좁으니 그건 어렵겠지.

‘미리 풀라고는 하지 말까.’

손가락으로 애무해 주는 걸 꽤 좋아했던 거 같다. 허리를 자르르 흔들어 대는 게 꼭 아양을 부리는 것 같아서 너무 야하고 귀여웠지. 여섯 살이나 형인데다 제법 남성적인 상인데도 그렇게 구는 게 자못 마음에 들었다. 이것저것 다 종합해 보아도 주형은 참 따먹고 싶은 남자였다. 상스럽게든, 부드럽게든, 어떻게든 주형을 제 품에 안기게 하고 싶었다. 재연은 주형을 정말로 아꼈기 때문이다.

그때 주형이 저를 구해주었던 것처럼 저 또한 주형을 아끼고 좋아해 주고 싶었다. 저만의 방법으로. 남들이 흔히 하는 방법은 사랑이라기에는 너무 독창성이 없는 것이라 생각해서, 재연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주형을 한없이 아껴 주고픈 욕망이 있었다.

-형.

“……네.”

끙끙대던 주형이 눈만 들어 재연을 바라봤다. 반항기 어린 눈동자를 흰자위가 감싸고 있었다. 잠을 못 잔 건지 충혈이 되어 있다.

-딜도 바닥에 세워 놓고, 앉아요. 그 위에.

“그러고 허리 흔들라고?”

-네.

“…….”

이거 완전 걸레 새끼 취급이군. 주형은 얼굴을 팍 구겼다. 불쾌했다. 이러고 있으니 자괴감이 밀려오며 재연의 옛 모습이 생각난다.

‘형아는 얼굴도 잘생겼으니 나랑 평생 살아야 해.’

진짜 귀여웠는데, 씨발. 꼬마가 옷깃을 죽죽 잡아당기면서 형아, 하고 울상을 짓는 게 그렇게 귀여운 건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지금은 꼬맹이 모델을 봐도 ‘예쁘게 생겼군’이 다일 거다. 그만큼 재연은 정말 대단한 미모의 소유자였다.

주형은 미간을 아예 쪼개버릴 기세로 또 찌푸렸다. 그렇게 키도 작던 놈이 왜 이렇게 큰 건지. 뭘 먹고 지낸 걸까. 아무튼 그때의 기억 때문인가 주형은 그를 밀어낼 수가 없었다. 물론 그가 대표 아들이니 거역하는 건 선택지에 없다는 걸 알지만, 그걸 배제하더라도 차갑게 안 된다고 거절하기가 불가능했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서러웠다. 원래 어릴 적을 추억하면 감상적으로 된다고 하는데 딱 그 꼴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주형은 이내 재연이 그 표정을 보고 있다는 걸 알고서는 아차, 한 듯 갑작스럽게 미간을 폈다. 놀란 고양이가 경계하는 듯한 모습이라 재연은 그냥 봐주기로 했다. 저렇게 귀여운 얼굴을 보았으니까.

주형이 딜도를 바닥에 세웠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무릎을 꿇고 앉은 채 아래를 바라보았다. 슬금슬금 주저앉자 아까와는 또 다른 감각이 일었다. 손으로 했을 때는 조금 부드러웠던 거 같은데 바닥에 두니 거리를 알 수 없어 아까보다 훨씬 더 많이 들어왔다.

“으, 흐윽.”

몇 센티미터나 들어온 거지. 아랫배가 묵직했다. 주형의 숨결이 한층 더 거칠어졌다. 숨을 고르면서 바라본 아랫도리 사정은 말할 수 없이 쪽팔렸다. 뒤를 뚫리면서 발기를 한 모습을 들키니 그냥 숨고 싶었다.

주형은 다리를 엉거주춤하게 벌린 채 손바닥으로 바닥을 짚고 작게 들썩거렸다. 추걱, 추걱 질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젤이 금세 흡수된 건지 조금 건조한 감각과 동시에 구멍이 헤집어졌다. 쓰라린 느낌도 들어 주형은 흐응, 하고 기다랗게 아픈 소리를 냈다. 힘겹게 아랫입술을 깨물자 입구가 옴쭉 줄어들면서 짙고 자잘한 주름을 만들어냈다. 플라스틱을 힘있게 무는 구멍이 벌름거렸다.

-허리 흔들고 있어.

작게 벨트를 푸는 소리가 났다. 가볍게 금속과 가죽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저 너머에서도 아주 작게 질척이는 소리가 들린다. 재연도 자위를 하고 있는 거겠지. 주형은 아까보다 훨씬 대담하게 엉덩이를 내밀고 몸을 조금 주저앉혔다. 푹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처박자 주형의 좆이 바짝 끄덕거렸다.

“하윽, 아! 아으.”

-씨발, 천박하게…….

재연은 탄식하면서도 화면 너머로 웃고 있었다. 매우 즐거워 보였다.

그 얼굴을 본 주형은 얼른 이 행위를 끝낼 수 있을 듯해 기뻐졌다. 그리고 허리를 야무지게 흔들었다. 딜도를 구멍에 처박은 채 앞뒤로 작게 움직이자 속살이 꿀렁거리며 플라스틱을 받아들였다. 미끈하게 빠져나오는 딱딱한 딜도가 자못 아쉽기도 했다.

-하아, 내 위에서도……, 그렇게 허리 흔들 수 있어요? 읏.

푹 들어가는 소리와 동시에 주형의 자지가 터질 것처럼 껄떡거렸다. 왜인지 피가 잔뜩 몰려 부푸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알 수 없는 열감 탓에 고개를 푹 숙였다. 거친 머리카락이 발작을 일으키듯 나풀거렸다. 아랫입술을 움찔대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자 오히려 행동이 더욱 대담해졌다. 이상하게도 포기하는 듯 주형의 몸이 힘없이 흔들렸다. 분명 근육이 탄탄해서 무너질 일 없이 보이는 몸인데도.

발 앞부분만 바닥에 대고 허리를 잘게 흔들었다. 찔걱, 찔걱 연신 음란한 소리가 났다. 주형은 터질 듯 조이는 허벅지를 참아내며 노란 장판 위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구멍 사이로 드나드는 기둥을 야살스럽게 꾸물거리며 먹는 모습이 영상 너머로 비스듬히 보였다. 하지만 주형이 팔을 뒤로 하느라 자꾸만 무릎이 모이는 탓에 그 광경이 약간 가렸다.

미칠 것 같았다. 그와 섹스를 할 때는 가지지 못했던 자괴감이 뒤늦게 밀려왔다. 이런 골방에 틀어박혀 햇빛은 보지 못하고 허리나 홀로 흔들어 대고 있는 게. 영상 속 재연의 얼굴을 보면 분명 ‘이런 미친놈도 있는데 내가 뭐 어때서’란 생각이 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건 없고 그냥 부끄럽기만 했다.

정말로 그만두고 싶었다. 눈물이 괜히 났다. 서럽다. 시발, 임금 체불 때문에 빚을 늦게 갚은 거 가지고 이러고 있어야 된다니. 코끝이 아주 따가워졌다. 주형은 이를 꽉 악물었다. 자존심도 자존심이지만 자꾸만 어릴 적의 제 모습이 생각이 나서 정말 곤란했다. 누구나 추억팔이를 하면 마음이 괜히 불편해진다는데, 왜 저는 하필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된 걸까.

너머에서 상스러운 소리가 들리기도 잠시 재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열이 잔뜩 올라 있는 음성이었다.

-형, 다리 벌려요.

얼마나 달아 있었느냐면, 목소리를 듣기만 해도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얼추 상상이 갈 정도였다. 주형은 흠칫 놀라 침을 꿀꺽 삼켰다. 목울대가 작게 진동했다. 천천히 고개를 들며 무릎을 바닥에 댔다. 매우 가쁜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자각하고 나니 몸이 마비된 듯 굳어온다. 아래부터 찌릿찌릿하게 올라오는 쾌감이 이상했다. 허벅지는 젤 때문에 이미 흥건하다시피 했다. 이렇게 많이 젖어 있었다니.

“하아……, 흐.”

구멍에서 받아내지 못하고 줄줄 흘렀나 보다. 점액이 반짝거렸다. 주형은 무릎을 차츰차츰 벌렸다. 우물쭈물 망설이는 듯 소심한 행동이었다. 딜도를 이제는 빼고 그냥 손으로 만지고 싶었다. 주형은 심장이 터질 것 같아졌다. 좆 끝이 아릿하게 아팠다. 저도 모르게 일그러진 얼굴을 참지 못하고 으윽, 하며 고개를 푹 수그렸다.

뒤만 써서 사정을 하는 것 따위 할 수 있을 리 없다. 저 새끼가 아무리 그래도, 설사 그런 일이 있더라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라고. 남자 좆 먹는 게 취미도 아닌데 구멍에 대고 넣는다고 다 쌀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이다. 급기야 서러워진 주형이 기다랗게 울음을 흘리며 어깨를 움찔거렸다. 하지만 이미 환락의 가운데에 서 있는 재연이 너그러이 달래 줄 리는 만무했다.

-앙탈 부리지 말고 곱게 벌려요, 씨발. 찾아가서 직접 쑤셔 줄까? 내 손이 더 좋아요?

“흐, 아윽, 씹…….”

수치스러웠다. 너무 수치스러워서 몸이 안으로 절로 말렸다. 어깨를 둥그렇게 하자 좆이 움찔댔다. 주형은 알 수 없는 곳에서 흥분하고 있었다.

-내 자지 세워 놓은 건 책임져야죠, 응?

그래야 좋은 형이지. 재연은 마법을 거는 것처럼 몽롱한 목소리로 그리 말했다. 속살거리는 목소리가 심장을 뭉근하게 건드렸다.

거의 뭉개진 목소리를 내면서도 주형은 치기 어린 눈빛을 띠고 있었다. 턱은 아래로 내린 채 흰자위를 드러내고 화면을 바라보았다. 어릴 적 보았던 재연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우아하고 어여쁜 놈이 자지를 들고 흔드는 게 보였다. 팽팽하게 핏줄까지 드러난 걸 보니 작게 토악질이 밀려왔다. 우으, 하고 막힌 숨을 내뱉었다. 이내 훌쩍거리고 말았다.

“히흐, 발……. 그, 만.”

-……뭐?

작게 울음이 맺힌 목소리를 듣자 무시할 수 없었다. 재연은 주형을 놀릴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그가 무슨 말을 할지 매우 기대가 되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찌릿거리는 게 마냥 편하지는 않았다.

“소, 손, 만지게…….”

-더 크게 말해. 형.

“손으로 만질, 수 있게…… 해, 달라고.”

-흐응…….

눈꼬리가 늘어졌다. 느른한 태도와 동시에 재연은 손장난을 멈추었다. 제 것도 팽팽히 서 있는데 주형을 능욕하느라 참고 있었다.

-부탁하는 사람의 태도가 왜 이럴까.

재연은 분명 그냥 넘어가 주려고 했다. 오늘도 사실 폰으로 야한 모습만 보려고 했다. 주형의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울면서 침과 콧물, 눈물을 다 질질 흘리고 있는 걸 보니 어쩔 수 없었다. 귀두 끝으로 맺힌 좆물과 엉덩이에서 흐르는 걸 보고서 참을 수 있는 사내는 없을 거다.

어릴 적 그렇게 좋아하던 남자가 이렇게 된 모습이라니. 게다가 그리도 믿음직하고 멋진 덩치를 가졌으나 어릴 때 상처를 주었던 놈을 이렇게 망가뜨리고 있다니. 재연은 그 사실을 자각하자마자 기뻤다.

-게걸스럽게 구멍 오물거리면서 그만해 달라고 하면, 누가 믿어요.

그리고 주형을 엉망진창으로 겁탈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오늘 저녁에 국회의원과의 술 약속을 잡아 놓은 김 상무를 찾아내 목 졸라 죽여 버리고 싶었다. 그 시발 새끼 때문에 주형을 따먹지 못하게 됐으니까. 아주 서럽게 질질 짜는 모습은 정말 볼만했다. 어릴 때 구해주던 주형의 모습과 반대라서, 더욱. 이제는 그런 주형을 제가 구해주고 있다. 재연은 오싹하게 내달리는 쾌감에 어쩔 줄 몰라 했다. 낯설고 즐거운 고동이 재연의 몸에 가득 번졌다.

한편 주형은 입을 차마 다물지 못했다. 마음대로 싸지 못해 괴로운 나머지 울 줄이야. 최근에 불쾌한 일이 많기는 했지만 잘 울지 않던 주형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울음을 겨우 그치며 뭉뚝한 목소리를 냈다.

“흐윽, 흑……, 손, 으로, 갈 수 있게 해…… 주십, 시오.”

고개를 푹 숙인 채 말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최대한 예의를 차렸다. 이게 최선이었다. 사실 그냥 자지에 손을 대고 싶었지만 2억을 빌린 주형으로서는 재연의 말에 복종해야 한다는 암묵적 압박이 있었다. 말만 험하게 할 뿐 결국은 재연에게 고분고분해질 것을 스스로 강요하고 있었던 것이다.

-얼굴 좀 보여 봐요.

“…….”

주형은 흐응, 하고 콧물을 한 번 삼켰다. 짜고 불편한 맛이 목구멍을 넘어갔다. 이내 축축히 젖은 얼굴을 내보였다. 새빨갛게 달아 있는 얼굴이 아주 색스러웠다.

재연은 주형을 지켜만 보던 것을 다시 한 번 후회했다. 그가 가장 힘들 때 그의 인생에 끼어들어 그를 잡아먹을 궁리를 했는데, 그냥 처음부터 벗겨서 따먹었어야 했다. 그를 볼 때면 항상 드는 후회였다. 이렇게 남들보다 후한 관심을 주고 아껴 주었다면 그가 더욱 순종적이었을 텐데. 재연은 저도 모르게 좆에 손을 댔다. 이내 스윽, 슥, 자지를 흔들었다. 야살스럽게 음낭이 의자 가죽에 부딪히고, 적나라한 소리가 났다.

-하아.

존나 질질 짜네, 씨발. 재연은 입꼬리를 씩 올리며 그리 중얼거렸다. 그러면서도 끄덕거리는 좆을 자각하지 못한 채 계속 압박했다. 적잖이 흥분한 듯 광기와 집착으로 얼룩진 고운 얼굴이 즐거움을 띠고 있었다. 주형은 그 얼굴을 멍하니 보며 배를 떨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재연은 사정을 했다.

-이제 해요, 형도.

새하얗고 끈적한 액체가 손가락 사이사이를 채우고 있었다. 이렇게 많이 싼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 정도로 주형은 꼴렸다. 어릴 때부터 이상형으로 꼽았던 제 영웅답다. 물론 지금은 몰락해버린 좆병신이 됐지만, 그런 모습도 사랑할 수 있다. 주형은 어쨌거나 제 것이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제 전용으로 만들고, 첫사랑을 이루고 말 거다. 재연은 주형을 정말 좋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형이 손을 가져다 댔다. 부끄러운 건지 몸을 둥글게 만 채로 슥슥 자위를 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허리를 아주 얕게 흔들어 대자 방 안에 또 거친 소음이 들렸다. 액체가 점막에 달라붙었다가 떨어지고, 쫀득한 구멍은 주인의 마음도 모르고 여닫으며 진짜 좆이라도 받아들이는 듯 흥분을 일으켰다.

주형은 하아, 하고 늘어진 신음을 내며 입술을 동그랗게 말았다. 조용히 눈을 감은 뒤에는 허리를 자르르 떨었다. 이윽고 약간 누런 빛의 정액이 질질 흘렀다. 주형은 숨을 거칠게 내쉬며 딜도를 빼냈다. 그러나 모든 게 끝났음에도 성기는 끈적한 액을 몇 줄기 더 게워냈다. 한참 참은 탓이었다. 주형은 아랫배가 푹 꺼지는 느낌 때문에 속이 울렁거렸는지, 얕게 헛구역질을 했다.

“윽…….”

딜도가 징그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젠 싫어졌다. 주형은 저 멀리로 내팽개치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화면 너머의 재연은 바지의 벨트를 아직 갈무리하지 않은 채 만족스러운 눈길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음흉하게 웃었다.

-덕분에 잘 자겠어요.

“…….”

-잘 자요, 형.

볼 것은 다 봤으니 이만 꺼지라는 목소리였다. 아까 욕지거리를 읊으며 상스럽게 종용하던 그 목소리와는 달랐다. 미묘하게 가라앉아 다시 현실로 돌아온 듯한 음성. 또한 이렇게 만신창이가 되어 있는 저를 굉장히 천대하듯 고결한 낯. 주형은 뚝, 하고 미련 없이 끊기는 화면을 바라보며 이를 꽉 악물었다. 이내 소리 없이 절규했다.

머리가 어떻게 된 것 같다고 생각하며, 그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이내 눈가를 비비며 서럽게 훌쩍거렸다. 커다란 덩치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강하게 능욕당한 뒤 홀로 남겨지자 미칠 듯 짜증이 났다. 그러면서도 구멍은 만족하지 못한 듯 미묘하게 움찔거렸다.

마치 그가 말한 모레를 기다리듯이.

***

고생을 하다 자서인지 주형의 얼굴이 한껏 부었다.

“탱탱볼로 만들 수도 있겠네.”

어이가 없어서 홀로 우스갯소리를 했다. 주형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갑자기 은행 어플에서 알림이 왔다.

며칠 전 하루 인형탈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 돈이 들어왔나 보다. 주형은 별 기대도 없이 십만 원 내외가 찍혀있을 것을 예상했다. 그러나 어플에 들어온 금액과 이름을 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이게 뭐야.”

낙원은행 20XX-XX-XX 오후 1:25

형┃입금 10,000,000원

무서워졌다. 무슨 오류가 난 건 아닌가 싶었다. 이만큼의 돈을 받을 일은 절대로 없기에 주형은 의심부터 했다. 그러자 또 입금이 됐다.

낙원은행 20XX-XX-XX 오후 1:26

나랑┃입금 10,000,000원

낙원은행 20XX-XX-XX 오후 1:28

데이트해요┃입금 10,000,000원

이젠 예상이 갔다. 주형은 이성을 잃고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형?

“씨발, 지금 뭐 하는 짓입니까! 돈지랄하지 마세요!”

갑자기 삼천만 원이 빚에 추가된 건 아닐까 싶어 두려워졌다. 제발 지금 당장 가지고 가라고 해야겠다.

-으응, 봤어요? 생각해 보니 어제 화대를 안 줘서 지금 보냈어요.

“…….”

-요즘 20대들은 이렇게 입금자명을 다르게 해서 고백한다고 들었거든요.

태평한 목소리가 짜증을 돋우었다. 게다가 요즘 20대들은 저런 식으로 얄궂게 이야기를 하나. 돈이 아깝지도 않나. 1원이라도 아껴야 하거늘.

“그럼 그냥 화, 화대라고 보내면 되지 왜……!”

화대라는 말을 하려니 부끄러워졌다. 주형은 어제 질질 짜던 제 모습을 떠올렸다. 하아, 하고 한숨이 밀려왔다. 이 무슨 촌극인지.

-화대라고 보내면 형이 전화를 안 해 줄 테니까.

“…….”

-나만 매달리면 억울한데.

재연은 아쉬울 게 없는 걸 알 텐데도 왜 이렇게 구는 걸까. 주형은 누가 봐도 갑의 위치인 재연이 이렇게나 제게 공을 들이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2억이 큰돈이긴 하지만…….

“보내 주신 건 감사하지만 이딴 돈 안 받습니다. 3천만 원 나중에 갚으라고 하실 거 아닙니까? 수틀리면.”

-형이 내 속 썩이면 그럴 거예요. 다른 놈을 좋아한다든가, 다른 놈이랑 눈이 마주친다든가.

“하아, 제발 좀……. 그냥 좋게 좋게 합시다. 입금은 천국 캐피탈 쪽으로 하면 됩니까?”

입금처가 있어 다행이었다. 주형은 그냥 빨리 전화를 끊고 싶었다. 말을 해도 해도 제자리걸음을 하는 듯해 바보가 된 기분이다.

-그냥 형이 다른 놈을 안 만나면 되는 건데, 왜 그래요?

“누구를 만나고 자시고 이런 조건이 있는 돈은 안 받습니다. 당연한 거라고요.”

연인 사이에도 돈을 주고받는 건 위험한데 하물며 대부업체 이사에게 돈을 받다니. 그 짓을 하기는 했으나 이 금액은 너무 컸다. 백만 원 정도였으면 슬쩍 받았겠지만, 3천만 원은 무리다.

-그럼 조건 없이 줄게요.

“대부업체 찌라시 광고 같은 소리하네, 씨발. 들고 가라고.”

조건 없음, 법정 최저 이자, 미성년자 가능, 업소 여성 무조건 가능, 휴대폰 요금 급하게 납부할 때……. 이런 유해하고 간악한 광고문구가 생각난다. 주형에게 있어 재연은 그냥 악마 새끼였기 때문이다.

-대부업체 맞으니까.

재연이 하하, 하고 웃었다. 그는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듯했다.

“……하아.”

막막했다. 주형은 재연을 어떻게 다루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그냥 고분고분 넘어가 주어야 하나. 하지만 그러면 그걸 빌미로 이것저것 모든 걸 다 해 보려고 할 듯했다. 더욱 징그럽게 굴지도 모르지. 그리 생각하면 그냥 지금처럼 행동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형, 내일 시간 돼요?

“예, 뭐.”

누구 덕분에 시간이 텅텅 비었다. 당장 뭘 사 먹을 돈은 있지만 여유는 없어서 점점 초조해졌다.

-그러면 나랑 내일 데이트해요.

“섹스하잔 말씀이십니까?”

-왜 이렇게 밝혀요, 형.

남사스러워라. 재연은 짐짓 어여쁘게 말했다. 그러고는 즐거운 듯 웃었다. 이런 가련한 척을 하는 그를 볼 때면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주형은 어버버, 말을 더듬었다.

“뭘……. 어차피 할 거면 그냥 편하게 말하자는 겁니다.”

-응, 맞아요. 영화 보고, 밥 먹고, 형은 내 자지 먹으면 되겠다.

재연이 까르르 웃었다. 엄청 재미있어하는 목소리라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헛웃음에 가깝게 입술에서 피식하는 웃음이 샜다. 채권자가 이런 놈이라는 것도 우습고 섹스하기 전 단계가 데이트 같다는 것도 웃겼다.

그리고 그가 예전에는 ‘형이랑 결혼 할래’라고 말했던 꼬마라는 것도.

“그럼 일정은 정해서 문자 주십시오. 그럼 이제 끊겠습니다.”

-벌써요?

“다 된 거 아닙니까?”

-음……. 형, 인기 없죠?

“없는데 상관없습니다.”

예전에는 인기가 있었지만 요즘은 나이도 있고 얼굴도 좀 퀭해서 그런지 인기가 없다. 물론 돈도 없으니 당연하지만. 주형은 덤덤하게 말했다.

-인기 없는 티 나요.

“……그래서 어쩌라는 말씀이십니까?”

어린놈의 새끼가……. 주형은 조금 짜증이 났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천진한 목소리를 내는 재연을 알게 되자 기분이 이상했다. 다른 놈들한테는 절대 이러지 않을 거니까. 아니, 그냥 예전 모습을 알아서 그런 걸까. 사람은 겨우 그런 작은 추억에도 휘둘리고는 하니 그럴 수도 있다.

-경쟁자가 없어서 좋다는 거죠.

“아, 예…….”

떨떠름한 목소리를 냈다. 재연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 가볍게 말했다.

-삼계탕 보냈으니까 꼭 먹어요.

“알겠습니다.”

-응, 사진도 꼭 보내 주고.

“사진요?”

주형은 눈을 조금 크게 떴다. 촘촘하게 들어서 있는 속눈썹이 예쁘게 들렸다.

-네.

“……사진은 왜 보냅니까?”

전화를 끊고 싶은데 재연이 자꾸만 궁금증을 만들어 낸다. 이 미친 새끼. 주형은 그에게 어울려주고 있는 자신이 야속했다. 오늘부터 로또라도 사서 일확천금을 노릴까 싶었다. 그러면 빚도 갚고, 윤재연도 떼어낼 수 있을 거니까.

-형이 안 먹을 수도 있으니까. 내가 의부증이 있다고 했잖아요.

“아…… 알겠습니다.”

거, 참 대단한 질병이로구만. 애초에 내가 저놈 남편도 아닌데 왜 의부증이라고 하는 걸까. 주형이 묵묵히 대답했다.

-혹시 모르니 형 얼굴은 다 나와야 해요.

재연은 주형의 사진을 많이 가지고 있지 않았다. 부하를 수배해 얼마를 들여서든 다 가지고 오라고 했는데도, 애초에 주형이 찍힌 사진이 세상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 나머지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재연은 주형의 새로운 사진이 필요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끊을게요. 내일 봐요.

“네, 이사님.”

전화가 뚝 끊겼다. 무심한 주형은 재연이 이사님이란 말을 듣고 얼굴을 미묘하게 찌푸렸다는 것을 죽을 때까지 모를 것이다. 재연은 주형의 생각보다 매우 감성적이었고, 다정했고, 사랑이 넘치는 남자였다.

……그렇기에 혼자 사는 주형에게 삼계탕 대(大) 자를 보낸 것이기도 했다. 주형은 어지간히도 큰 닭이 새하얗게 삶아져서 용기에 들어가 있는 모습을 보고는 하하, 하고 웃었다.

“미친…….”

이걸 어떻게 다 먹으라는 거야. 주형은 막막했다. 소분해서 먹으려고 해도 반찬 통도 마땅하지 않아 골칫덩이였다.

펠라를 하며 찢어졌던 입가와 폰으로 섹스를 하며 울었던 통에 부었던 눈도 이제는 좀 멀쩡해졌는지, 덜 불편했다. 다만 이제는 입안이 문제일 듯했다. 주형은 요령 없이 뜨거운 닭 다리를 잡고 후, 후 불어 열심히 먹었다. 틈틈이 죽도 함께 떠먹자 입천장이 데어 아팠으나 괜찮았다.

다리 두 개와 닭가슴살을 조금 떼어먹으니 금세 배가 불러왔다. 주형은 반쯤 비어 있는 일회용 용기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아주 어색하게 무표정을 한 채 셀카를 찍었다. 메시지로 사진만 하나 보내자 몇 분 지나지 않아 재연에게서는 웃는 얼굴의 이모티콘이 하나 왔다. 그렇게 햇살처럼 웃는 이모티콘이 음흉하게 보이기도 처음이었다. 딱 재연의 얼굴 같아서 기분이 요상했다.

남은 죽을 조금 떠먹는 주형에게는 피곤함과 이상한 감정이 얽혀 있었다. 내일의 재연은 또 어떤 미친 소리를 할지 생각하자 막막했다.

그래도 마냥 괴롭지는 않다고 생각이 들었다. 거친 섹스야 그런 놈들의 전유물이었고, 저 또한 ‘그런 놈’ 중 하나니까.

아무튼, 주형은 제가 바라는 것보다 재연을 싫어하지 못했다. 오히려 눈길이 가곤 했다. 주형을 무섭게 얽매는 건 돈이 아니라 옛정이었다.

***

재연은 아이보리색 무스탕을 입었다가 벗었다. 자유분방한 분위기이면서도 다정한 느낌이 그에게서 풍겼다. 하지만 썩 내키지 않는 듯 또 옷장을 뒤적거렸고, 코트에 손을 댔다. 귀공자처럼 고아한 낯이 돋보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얼굴을 찌푸리고 다시 벗었다. 그 뒤에는 코트 뒤에 있던 검은색 가죽 재킷을 집었다.

“음…….”

옷이 없네. 재연이 새침한 소녀처럼 중얼거렸다. 그는 벌써 한 시간째 옷장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이때까지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좆같이 입고 나가도 누구나 박수를 쳐 주었고, 실로 거지 같은 옷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단정하고 부티 나는 옷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 옷장 속에서는 무얼 꺼내든 성공이었다.

그랬는데.

“그, 도련님.”

“응?”

“1시간 남았습니다.”

“아……, 알겠어요.”

약속 시간 1시간 전, 30분 전에 말을 해 달라고 했던 부탁을 오 주임이 알려 주었다. 박 실장이 데리고 온 놈인 듯한데 직접 저를 대면하는 건 처음이라 잔뜩 굳어 있었다.

‘형도 저렇게 굳어 있으면 얼마나 귀여울까.’

긴장해서는 땀을 뻘뻘 흘리고, 손바닥을 허벅지에 살살 문지르고, 갑자기 부르면 흠칫 놀라 어깨를 떨다가, 혼자 풀어 보라고 하면 눈을 끔뻑이다가 헛기침을 하고……, 좆질을 하겠다고 천박한 언사를 할 때는 놀라다 못해 딸꾹질까지 하면 정말 귀여울 텐데. 재연은 그런 주형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절대로 그러지 않겠지. 형은 겨우 그 정도로 놀랄 남자가 아니다. 재연은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얼굴을 물들였다. 사실 재연은 그에게 거는 기대가 컸기에 훨씬 더 사납게 구는 것도 있었다. 이 정도로는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만큼 강인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분명 그를 한껏 혼내 주고 미워하고 원망하려고 빌미를 잡아 만나게 된 건데, 막상 얼굴을 보니 그때 생각이 나서 그냥 좋아하게만 됐다. 얼마나 사랑스럽냐면, 꿈에서 그가 토끼 귀를 하고 아주 야한 속옷을 입은 채 구멍을 스스로 벌리고 있는 걸 봤을 정도였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나니 좆물이 사타구니를 잔뜩 적시고 있었다. 발기는 덤이었고.

그러니까, 주형은 재연을 10대 시절로 돌아가게 할 정도로 엄청난 존재였던 것이다. 재연은 주형을 또 생각하니 벌써 자지가 끄덕거릴 듯해 그냥 싱긋 웃고 말았다.

“오 주임.”

“예, 예! 도련님.”

“첫사랑이 뭐라고 생각해요?”

“예? 어, 으음…… 자, 잠시 생각 좀 해 보겠습니다.”

생각 없이 대답을 하면 이사님에게 뺨을 얻어맞을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것을 박 실장에게 들었다. 오 주임은 한껏 긴장했다.

“그래요.”

그리고 어린양처럼 털을 세운 오 주임을 바라보며, 재연은 얼른 주형을 벗겨 놓고 엉덩이를 때리고 싶었다. 통통한 엉덩이를 불그스름하게 물들인 뒤 과일처럼 쪽 빨아먹으면 분명 주형이 좋아하겠지. 말은 그렇게 해도 저를 싫어할 리가 없다. 그때의 그 형인 것을.

재연은 다시 한번 옷을 골랐다. 이번에는 꽤 마음에 드는 조합이었는지 그가 옷장을 제대로 닫았다. 하지만 색상이 남았다. 검은색인지, 아이보리색인지. 주형은 무슨 색을 좋아할까.

“오 주임?”

“아, 예! 도련님. 새, 생각하고 있습니다.”

“으응, 그래요. 근데…… 이 둘 중 뭐가 나을까요.”

재연에게서는 오늘따라 아주 부드러운 분위기가 풍겼다. 주형을 만나기로 한 날인 만큼 그의 분위기가 풀리는 것도 당연하기는 했다. 평소라면 웃고 있어도 미묘하게 서느런 분위기가 그를 둘러싸고 있어 말을 붙이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말이다.

“아, 검은색과 아이보리색 말씀이십니까?”

“응.”

옷걸이를 걸어 두고, 비교하라는 듯 비켜 주자 오 주임이 조심스럽게 손을 모아 말했다.

“음, 검은색은 굉장히 차갑고……. 이지적이면서도 도도한 느낌이 납니다. 아이보리색은 굉장히 젊지만 어리고 귀여운 느낌이 나고요. 개, 개인적으로…… 이, 이사님은 굉장히 부드러운 이목구비를 가지고 계시니 아이보리색이…….”

“음.”

그가 그 소리를 내고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뚜벅뚜벅 걸어가 무스탕을 몇 번 어루만졌다. 이내 아주 조용히 되물었다.

“이걸 입으면 토끼 같은 연하 남자 친구로 보일까요?”

“토끼……요?”

오 주임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 키가 190cm에 가까운 사내가 떡 벌어진 어깨로 저를 내려다보며 토끼란 말을 하고 있다니. 그렇게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어이없어하고 있자 재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내 싸늘해졌다.

“알겠어요.”

그런 거구나. 재연이 중얼거렸다.

“아, 그게, 이, 이사님!”

뭔가 잘못됐다. 오 주임이 헐레벌떡 말을 취소하려고 했다. 하지만 재연은 이미 기분이 매우 상한 상태였다.

“나가 봐요.”

“이사님, 제 말씀은…….”

“나가라고 할 때 걸어서 나가.”

재연은 눈을 힘주어 뜬 채 위협했다. 서늘하기 짝이 없는 흰자위에 자그마한 혈관이 꿈틀거렸다. 짜증이 어지간히 난 듯 그의 턱에는 딱딱한 뼈가 드러났다.

“…….”

오 주임은 큰일 났다고 생각하며, 그가 일단 가만히 서 있을 때 얼른 꺼져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윽고 금세 사라졌다.

재연은 약속을 나가기 전까지 기분이 매우 더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주형에게 있어 토끼 같은 남자 친구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를 누구보다도 잔인하게 등쳐 먹고 저만 아는 존재로 세뇌할 심산이었다. 그 과정에서 무슨 수를 써도 상관이 없었다. 약을 쓰든, 손을 쓰든.

그런데 가장 쉬울 거라 생각했던 ‘토끼’에서 막히다니. 씨발. 재연은 주형과 관련되기만 하면 이렇게 불쑥 화가 나고 답답했다. 그는 그답지 않게 토라진 채, 한참 얼굴을 찌푸리고 침대 머리맡에 옆으로 기대고 있었다.

***

옷을 대충 껴입고 나왔다. 어차피 오늘 중으로 그가 벗길 테니 재연에게 거슬리지 않도록 옷은 되도록 적게 입었다. 티셔츠, 후드티, 그리고 패딩. 이렇게 끝이다. 벗기는 중에 조금이라도 더 시간 끌려고 이렇게 입은 거냐고, 그사이에 도망이라도 칠 거였냐고 따질지도 모르니 말이다. 재연은 상상을 초월하는 트집쟁이였으니.

‘어휴, 미친놈.’

소름이 돋는다. 추워서인지 진짜 무서워서인진 모르겠지만. 주형은 겨드랑이 밑으로 손을 넣은 채 몸을 웅크렸다. 하도 낡은 옷이라 보온 기능이 떨어져서, 오늘처럼 칼바람이 부는 날에는 부적합했다. 물론 이걸 내년 3월까지 입어야 하겠지만.

영화관의 사람들은 대부분 다 멀쩡한 옷을 입고 있다. 하지만 저는 꿰맨 자국도 있고, 헤진 자국도 있는 옷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인 걸까. 이 공간이 매우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왠지 여기에 있으면 안 될 것만 같은 기분.

18세기인가, 마르크스인가 막걸리인가 하는 양반이 살던 시대에는 길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의 행색만 보아도 계층이 보였다고 한다. 노동자와 귀족, 이렇게 말이다. 지금이야 그런 게 별로 없다고 하지만……. 글쎄, 주형이 있는 최하위, 그러니까 밑바닥 거지새끼와 평범한 사람들은 눈에 훤히 보였다. 주형은 빚을 갚아야 했으므로 더욱 악착같이 모았기에 옷을 살 여유 따위는 없었으니 더 티가 났고.

주형은 아주 예전에 사회 선생이 들려주었던 그 이야기를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그건 체념에 가까운 웃음이었다. 그래도 영화관 안은 따뜻해서 좋았다. 팝콘이 먹고 싶었다. 먹자고 하면 너무 거지새끼 같다고 하려나. 먹고 싶은데, 재연이 먼저 먹자고 하면 좋겠다.

그는 그렇게 망상이나 하며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피곤했다. 잠이 잘 오지 않아 뒤척거렸더니 잠이 모자랐다. 예전에는 졸 틈도 없이 일을 했는데, 틈이 생기다니. 많이 배가 불렀구만, 민주형. 그는 큼, 하고 헛기침을 했다. 그 순간이었다.

“형.”

“……응?”

얼빠진 소리를 내며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주형이 앉아 있는 벤치 뒤 기둥에서 재연이 나타났다. 누가 봐도 귀여운 척을 떨기 위해 일부러 웃고 있었다. 하지만 미칠 정도로 잘 어울렸다. 그게 짜증이 났다.

작게 휜 눈꼬리며, 부드럽게 올라간 입꼬리며……, 저게 천사야, 인간이야. 염병. 짜증 나네. 악마 새끼에게서 천사의 얼굴을 보다니. 신도 어지간히 잔인하다. 분명 신 본인이 보면서 만드는 게 아니라 ‘돌려 돌려 돌림판’으로 마구 만드는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으면 저렇게 예쁜 얼굴을 줬을 리가…….

“많이 기다렸어요?”

“아닙니다.”

재연의 얼굴을 보자 이상하게 안심이 됐다. 이렇게 이질적인 공간에서 누군가 함께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때문인가. 뭐, 대부분 다 누군가와 함께 어울리고 있었으니……. 아무리 쓰레기 같은 조폭 새끼라도 함께 있다는 게 다행일 수도 있지. 주형은 속으로 좀스럽게 생각했다.

“다행이에요. 참, 팝콘 먹어야지.”

“……생각보다 취향이 어리시네요.”

“그래요?”

조금 굳어 있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주형은 왜 저래, 하고 생각하며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뭐, 도련님이시니까…… 안 드실 줄 알았는데.”

아무리 그래도 높으신 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니 그런 얄궂은 음식은 싫어할 줄 알았다.

“형 같은 사람들은 뭘 먹는지 궁금해서요.”

“저 같은 사람들이 뭡니까?”

“음, 평범한 사람들?”

“이사님이 잘 몰라서 그러시는 거 같은데 저는 평범한 사람이 아닙니다.”

주형은 저도 모르게 피식 또 웃었다. 한참 어린아이에게 세상 물정을 알려 주는 썩은 어른의 얼굴이었다. 찌들고 지쳐 있는 낯. 그저 순진한 꼬마를 우습게 여기며 인생에서 몇 느껴보지 못한 우월감을 아주 잠시 느끼고 있는 듯한 표정이다.

“하긴, 형이 특별하기는 하죠. 이렇게 가만히 있기만 한데도 내 마음을 훔쳤으니까.”

성스러울 정도로 기다랗고 어여쁜 손가락이 스스로의 가슴을 짚었다. 그런 재연은 수줍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주형은 그 모습이 기가 차서 저도 모르게 질색했다. 기다란 속눈썹이 가련하고 어여쁜 자태를 드러냈다. 그가 ‘씨발’ 하고 욕하며 남을 패는 걸 상상하기만 해도 매우 잘못된 일을 하고 있다는 감상을 줄 정도로. 그 정도로 재연은 미인인데다 단정한 낯이라 조금 부담스러울 때가 있었다.

“하, 그게 아니라……. 나처럼 가난하고 더럽게 사는 새낀 잘 없다는 말입니다.”

“음, 더럽기는 하죠. 가난하기도 하고.”

“……예.”

주형은 재연의 이런 점이 싫으면서도 좋았다. 숨기지 않는 것. 왜인지 그만은 제게 거짓을 고하지 않을 듯해서. 물론 거짓을 말한들 그가 절대적으로 우위에 있으니 무어라 반문할 수도 없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흙 속의 진주’라고 하잖아요?”

“…….”

“나한테 형은 진주인데.”

줄곧 찾아왔던 진주였다. 재연은 그 진주가 깨지지 않을 정도로 꽉 쥐고 있고 싶었다. 마침내 깨져 버린다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다시 붙여 제가 품을 것이다. 재연은 주형을 매우 사랑했고, 또한 애착을 느꼈다. 그러니 지금도 이렇게 주형을 바라보며 대화하고 있지 않나.

아주 달곰하고, 다정하고, 누가 생각해도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재연은 주형과 함께 진창에서 뒹굴고 싶었다. 그를 망가뜨려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범한 뒤 제가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반병신을 만들고 싶었다.

그가 제게 한 것처럼.

“꼭 따서 가지고 싶은 거.”

“보석 하나 가지고는 욕심이 해결될 거 같지는 않습니다.”

사람의 탐욕은 끝이 없다. 다이아몬드, 에메랄드, 루비, 사파이어……. 무지개색으로도 모자라다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재연도 그럴 거다.

왜냐하면 그가 저를 보고 있는 눈빛은 그랬으니까. 보석을 바라보고 탐내는 자의 눈길.

“왜 안 되겠어요. 그게 결혼반지라면 보석 하나라도 평생을 살아갈 수 있을 텐데.”

“……오늘따라 참, 감성적이십니다?”

재연은 주형을 물끄러미 보았다. 비아냥거리는 데에 대한 응답 같기도 했고, 그저 바라보는 것 같기도 했다. 이윽고 왜인지 오늘도 심통이 나 있는 주형에게, 재연이 성큼성큼 다가와 귀에 속살거렸다. 무어라 밀어내지도 못할 만큼 찰나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오늘은 후배위로 해야겠어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후배위를 한 적이 없다. 주형의 구멍이 제 자지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볼 필요가 있었다. 사진을 찍어 두는 것도 좋겠다. 게다가 가장 깊숙이 삽입된다고 들었다. 생각만 해도 등줄기가 찌릿찌릿했다. 재연은 주형의 등에 제 가슴을 가까이 맞대고 그의 살냄새를 맡고 싶어졌다. 재연은 벌써부터 주형의 속살을 갉아 먹을 생각에 매우 짜릿해지는지, 머릿속에 도파민이 퐁퐁 솟아나는 걸 느꼈다.

“미친, 이, 이런 데서 무슨……!”

“싫어요?”

“상스럽게, 씨!”

주형이 재연의 팔을 확 쳐냈다. 씩씩거리는 모습이 마치 화가 난 호랑이 같았다. 험하지만 여전히 잘생기고 굵직한 이목구비를 보자 매우 꼴렸다. 재연은 엷게 웃으며 말했다.

“상스러운 건 형이죠. 이런 말로 얼굴이나 붉히고.”

“……이, 새끼가!”

“그래도 애새끼 같고 귀여워요.”

그렇게 말하고는 주형의 손을 꽉 틀어잡았다. 굳은살이 군데군데 밴 손가락이 숨 쉴 틈도 없이 세게 잡자 주형이 당황했다. 공사장 인부의 손을 이기는 놈은 흔치 않아서. 어차피 권력상으로도 그가 우위니 아까처럼 쳐내진 못할 거라 생각하니 그나마 마음이 안정됐다.

그렇지만 저렇게 새파랗게 어린 새끼한테 지기는 싫었다. 물론 여태까지 전부 다 졌지만, 그래도. 더 이상 추하고 우스운 몰골 따위는 보이고 싶지 않았다.

***

영화는 지루했다. 희한하게 자리에 아무도 없어서 ‘진짜 어지간히 인기가 없나 보다’ 했는데, 진짜였다. 주형은 하품이 찍찍 나오는 걸 참지 못했다. 결국 크게 한 번 하아암, 입을 벌렸다. 소리 없이 닫는 순간 곁을 바라보니 재연과 눈이 마주쳤다.

흠칫 놀라 다시 정면을 바라보니 어디선가 손이 다가왔다. 그리고 제 뺨을 콱 쥐고 돌렸다. 부드러운 손가락이리라 상상했는데 아주 거칠었고, 주형은 입술을 삐죽 내민 채 멍하니 고개를 돌리게 됐다. 재연과 눈이 다시 마주쳤다.

“야, 아니, 뭐……. 뭐, 하시는 겁니까?”

아무리 그래도 상대가 상대다 보니 말을 고쳤다. 그러자 재연이 간드러지게 웃으며 입술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닿았다. 주형은 멍한 나머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입술이 닿았고, 말캉한 혀가 들어오고, 뜨겁게 휘저었다. 별 감각 없이 미적지근하게 녹아 있던 타액이 함께 섞였다. 재연의 혀는 불그스름한 만큼 뜨거웠다. 아주 달아 있었고, 무얼 먹고 자랐는지 매우 달콤했다.

주형은 어깨를 움찔 떨었다. 주형의 튼실한 어깨가 패딩 아래로 움찔 떨렸다. 혀뿌리를 사르르 녹이며 흔들어 대는 통에 흥분이 일었다. 겨우 키스로 부들부들거리는 꼴이라니. 고등학생 애새끼도 아니고. 주형은 손가락 끝을 말았다가, 쭉 폈다. 긴장이 좀체 떨어지지 않아 괴로웠다.

왜 이러지. 왜 이럴까. 이러면 안 되는데. 왜 이런 놈이랑 키스를 하고 있지. 이런 사이에도, 키스를 하나? 아닌데. 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키스 따위를 하면 사귀는 사이라고 해도 누구나 납득할 것 같단 말이다. 주형의 머릿속이 어지럽게 흐트러졌다.

주형은 숨을 가쁘게 내쉬며 학, 하고 작게 신음을 냈다. 그러자 재연은 입꼬리를 방긋 당겨 올리면서 주형의 뺨을 더욱 세게 그러쥐었다. 뼈를 일그러뜨리기라도 할 셈인지, 볼살을 한껏 느끼고 싶은 건지 모를 손길이었다.

추웁, 춥 하며 적나라한 소리가 났다. 이래도 되나 싶었으나 관 안에는 다행히 아무도 없다. 도중에 누가 들어오지도 않았으니까. 주형은 키스 한 번만 해 주고 대충 떼어내자고 생각했다. 한 번 가지고는 무슨 관계가 되는 게 아니다. 그는 재연과 단어 하나로 표현할 수 있는 관계가 되는 게 무서웠다.

그 순간이었다. 재연의 손이 주형의 후드티 아래를 더듬었다. 살갗일 거라 생각했는데 웬 티셔츠가 잡혀서 조금 실망한 건지 그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괜히 난폭하게 혀를 비집어 넣었다.

감당하기 어렵게 얼굴을 들이밀면서 속을 희롱하자 주형의 숨결이 거칠어졌다. 티셔츠 위로 젖꼭지를 꼬집자 아랫배가 경련하는 게 느껴졌다. 못내 귀여워서 확 깨물어주고 싶었다. 재연은 입술을 뗐다. 쪽, 하는 소리와 함께 진득한 타액이 서로의 입술에 섞여 말라붙었다.

“하, 아……. 이사, 님. 여기선 이러면 안 됩니, 윽. 야!”

“형, 큰 소리 내면 안 돼요.”

사람들이 보면 어떡해요. 재연은 내숭을 부리며 속살거렸다. 그러고는 아예 주형의 티셔츠를 찢을 기세로 확 들어 올렸다. 그 뒤에는 주형의 젖을 만지작거렸다. 분명 다부진 근육인데도 젖꼭지가 분홍색이라 너무 귀여웠다.

하나하나 다 씹어 먹고 싶게 생긴 제 형을 어떡하면 좋을까. 뒈질 때까지 따먹고 싶었다. 재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아 흥분되지 않으면 어쩌지 하고 걱정했는데, 그런 건 전혀 없다. 영사기에서 나오는 빛 덕분에 오히려 색달랐다.

“씹, 이사님이 그렇게 만지시니까……! 하, 윽.”

꼬집으며 빙글빙글 돌렸다. 부드러우면서도 탄탄한 감촉의 근육을, 음미하듯 설설 굴렸다. 손가락 끝으로 톡 튕기자 주형의 허리도 작게 튀었다. 으읏, 하며 야한 소리를 내는 게 너무 사랑스러웠다. 재연은 주형을 달콤하게 빨아먹을 요량으로, 그의 벌어진 입술 사이로 손가락을 처넣었다.

거칠게 잇새를 벌리자 읍, 하고 반항하는 소리가 났다. 우악스럽게 혓바닥을 꽉 누르고 목젖을 건드릴 기세로 기다란 손가락을 꾹꾹 쑤셨다. 미끈한 점액과 돌기가 느껴지자 입속에 자지를 넣고 싶었다. 재연은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어서 고민스럽고 힘든 듯 끙, 하고 앓았다.

“히, 히으, 바알……! 그흐, 만.”

몸부림치다 자리에서 서서히 일어났다. 그러고는 남들이 앉아 있는 건 아닌가 눈동자를 굴렸다. 그 순간 재연의 손가락이 안을 더욱 꿰찔렀다. 한눈을 팔지 말라는 뜻 같았다. 혀를 바닥으로 가라앉혀 녹이려는 기세로, 손가락을 뜨겁게 문질렀다.

“조금만 더.”

“흐으, 흡…….”

저 멀리 영사기에서 빛이 넘친다. 주형의 얼굴을 딱 좋게 비추고, 그의 눈동자가 짜증스럽게 일그러졌다가 또 울상이 되고는 했다. 재연은 그렇게 미묘하게 변하는 그의 얼굴을 볼 때면 ‘그가 제 앞에 살아 있다’는 점에 심히 만족해 흥분했다.

침으로 범벅이 된 손가락을 빼낸 뒤에는 바지 안으로 손을 넣었다. 벨트를 대충 풀고 드로어즈도 내리지 않은 채 엉덩이를 쿡 쑤시니 그가 화들짝 놀랐다. 하악, 하며 허리를 튕기는 게 자못 음란했다. 첫 경험이 너무 황홀해서 그새를 못 참고 다른 새끼와 떡이라도 친 건 아닌가 싶었는데, 다행히도 구멍은 굳게 잘 닫혀 있었다. 주름도 예쁘게 꽉 잡혀 있어 오밀조밀한 맛이 있었다.

재연은 주형이 생각보다 제 말을 잘 듣는 듯해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 창부처럼 허리를 흔들어도 되는 건 제 앞에서만이다. 다른 새끼와 놀음이 나면 주형을 아예 거세해 버리고, 발목도 부러뜨린 뒤, 제집에 가두어 둘 것이다. 제 믿음을 두 번이나 저버린 주형에게는 그 정도 형벌이 적당하다고, 재연은 그리 여겼다. 그는 더 이상 부릴 여유가 없는 상태였다.

한편 주형은 갑자기 영화관에서 섹스를 하려고 하는 재연이 매우 못마땅했다. 아무리 그래도 공개된 장소에서 섹스라니. 그래서 엉덩이를 움찔거리며 한껏 저항했다. 그의 어깨를 잡고 콱 밀어내도 그는 버티며 형, 하고 귀여운 목소리로 역겹게 부를 뿐이었다.

“이사님. 여, 기는 안 됩……니다. 사람, 흐응, 으!”

“손가락 받아먹으면서 안 된다고 하면 누가 믿어요, 형.”

엉거주춤 일어난 그가 엉덩이를 뒤로 쭉 뺐다. 그러자 재연이 으응, 하고 아이를 어르는 어른처럼 주형의 볼기를 꽉 쥐었다. 터뜨릴 듯 손자국이 남을 정도로 세게 쥔 다음에는 다시 배를 앞으로 내밀게 했다. 그러자 반쯤 골반에 걸쳐져 있는 드로어즈가 아래로 조금 내려가며 발기하기 직전인 자지가 보였다. 숨이 막히는 건지 굽은 채로 걸려 있다. 재연은 옷을 멀끔히 입은 채로 주형의 자지를 손으로 친히 꺼내 주었다.

“사람들이, 오면……, 신, 고……!”

“형은 남들한테 보이는 거 좋아하잖아요. 응?”

“아, 닙니, 읏! 윽, 거, 기 그만!”

손가락이 갑자기 안을 푹 뚫었다. 식은땀이 났다. 주형은 헉, 하고 숨을 내쉬었다. 너무 큰 소리를 냈나 싶어 주형이 입을 틀어막으며 주변을 바라봤다. 그러자 재연의 손가락이 잔인하게 하나 더 들어왔다. 심기가 뒤틀린 건지 손짓도 아까보다 훨씬 험했다.

“씨히, 팔, 흑, 흐으, 아……!”

너무 아팠다. 욕지거리를 안 하려고 애썼는데 그게 잊힐 정도로. 주형은 으윽, 하고 타들어 갈 듯 구멍을 헤집는 손가락을 느꼈다. 그런 와중에도 아래로 피가 잔뜩 몰렸고, 머리는 머리대로 아파 왔다. 어질어질한 쾌락과 고통 속에서 영화는 멀쩡하게 나오고 있었다. 주형은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도 안 됐다.

그 순간 약지가 회음을 사르르 건드리며 그의 구멍 근처를 훑었다. 말캉하지만 조금 늘어져 있는 살덩이를 작게 쑤시자 주형이 흠칫 떨었다. 아프다며 벌벌 떠는 모습이 재연의 눈에 비쳤다. 원망이 잔뜩 어려 있어도 재연은 그저 웃고 있었다. 그러나 순진한 웃음이 아니라 매우 영악한 몹쓸 놈의 미소였다.

“저번에도 통화할 때 자지 잘 세웠잖아. 형은 남들이 보이는 데에서 아슬아슬하게 하는 걸 좋아하는 거죠?”

재연은 정말 그리 생각했다. 통화를 하며 남들에게 보일 거란 생각을 하면서 자지를 그렇게나 꼿꼿이 세우다니. 어여쁘게 일자로 쭉 뻗은 좆 모양을 봐서는 정말로 흥분한 게 틀림없다고, 그러니 주형의 성 취향을 맞추어 주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재연은 영화관을 통째로 빌린 뒤 주형에게 말하지 않았다.

언제 누가 들어와서 ‘뭐야?’ 하고 말할 그 순간이 올까 두려워하는 주형이 무슨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서. 너무 흥분해서 구멍을 여닫다 못해 울지도 모르고, 좆물을 너무 흘려서 시트를 줄줄 적실지도 모른다. 아이처럼 울면서 잘못했다고, 그만하자고 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르지. 재연은 주형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매우 기대했다.

게다가 그도 좋아하지 않는가. 재연은 주형의 구멍이 움찔대는 걸 느끼며 진지하게 오해하고 있었다. 순진하지만 유해한 사랑이었다.

“아직 영화 한 시간 남았어요. 한 시간 동안 좆질하면 돼. 안 들키고.”

재연은 주형과 한 시간 넘게 단둘이 붙어 있던 적이 거의 없다. 어릴 때도 주형은 은근히 매몰차서 오래 있지 않았던 터라 이 시간이 정말 꿈만 같았다. 재연은 주형이 어디 가서 이렇게 예쁜 모습을 남에게도 보일까 걱정이 됐다.

그런 생각을 시작하자 혹시 주형에게 숨겨 놓은 애인이 있다든가 그런 버러지 같은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실은 저를 좋아하는데도 괜히 또 튕기고 있는 건 아닌지, 아니면 정말로 저를 이용하려고 지랄하고 있는 건 아닌지 별별 걱정이 다 들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애인이 있으면 그 애인 앞에 가서 주형을 강간하며 헤어지게 하면 되고, 좋아하고 있는데 속이는 거라면 속일 생각도 없이 성토하게 몰아붙이면 되고, 이용하려고 한다면 기꺼이 이용당해준 다음 그를 잡아먹으면 됐다.

정말로 완벽한 계획이었다. 어차피 주형은 조금 모자라니 저 대가리가 굴러가는 모습 또한 제 손바닥 위일 거다. 주형은 그렇게 약간 모자라다는 점에서 정말 사랑스럽고 완벽한 형이었다. 이 무식하게 예쁜 근육이 움찔대는 것 또한 그런 매력의 일부였다.

재연은 주형의 가슴을 꽉 움켜쥐었다. 그러자 전례 없이 강한 힘에 놀란 주형이 낑낑거렸다. 덩치 큰 개새끼가 주인에게 반항도 못 하고 우는 모습 같아서 안쓰럽고 귀여웠다. 그리고 엉덩이 볼기 사이로 좆을 비볐다.

“씨…… 흑, 으읏!”

오싹한 감각에 주형이 벌벌 떨며 욕지거리를 읊었다. 재연은 이미 충분히 발기해 있어 곧은 모양을 유지하고 있는 성기를 구멍 가까이 가져다 댔다. 숨을 푹 내쉬며 주형의 구멍을 벌렸다. 즈윽, 하는 적나라한 소리와 동시에 비부가 서서히 벌어졌다. 어두워서 보이는 거라고는, 스크린에 물든 주형의 살갗뿐이었으나 감각만은 선명했다. 터질 듯 아랫도리가 조여 온다.

“쉿, 누가 오면 어떡해요.”

그러면서 허리를 천천히 움직이자 굵직한 기둥이 주형의 안을 천천히 범했다. 젤이 없어 그런지 조금만 움직여도 화끈거리는 감각이 컸다. 며칠 전에 했을 때와는 다르게 건조하게 작열하는 감각이 재연에게도 전해졌다. 그러나 움찔거리며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주형에 반해 재연은 이마저도 좋은 듯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욕심껏 구멍을 더욱 벌렸다. 촘촘한 주름이 팽팽하게 펴지며 성기를 씹어댔다.

재연은 영화가 끝날 즈음 주형의 것 안에 성기를 쑤셔 넣은 채로 사실을 이야기해 줄 셈이었다. 실은 주형이 제 말을 믿는다는 것만으로도 조금 서운했다.

“너, 이런 짓 하고도……. 안, 들킬 거 같, 윽!”

“왜 내가 들키겠어요.”

저번에도 말하지 않았나. 누구와 주형의 모습을 공유할 정도로 너그럽고 어여쁘기만 하지는 않다고. 그런 말을 했는데도 또 까먹고 이렇게 오해를 하고 속는 게 약간 못마땅했다. 재연은 주형에게 투정을 부리고 어리광을 피우며 그에게 또 얄궂은 말을 속삭였다. 아주 질 나쁜 농담을 하는 게 섹스를 할 때 흥분을 일으킨다고 들어서 많이 공부했던 덕분이었다.

“여기서 걸레처럼 벗고 있는 건 형밖에 없는데.”

주형은 순간적으로 콜록거렸다. 이내 절망한 듯 허망한 얼굴로 재연을 바라봤다. 그 얼굴을 보니 등줄기를 타고 아주 커다란 감각이 밀려왔다. 찌릿찌릿 온몸을 전율시키는 것이 내달렸다. 쾌감이다. 주형을 무너뜨리고, 짓밟고, 그리고 그렇게 쓰레기가 된 그를 오롯하게 제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데에 대한 쾌감. 재연은 계속 말했다.

“난 옷도 제대로 입고 있고, 응? 근데, 형은 반쯤 벗고 구멍에서 물을 줄줄 흘리잖아요. 자지도, 벌떡 세우고. 씨발.”

재연은 구멍을 찢어발길 심산인지, 물기가 거의 없다시피 한 안을 연신 헤집었다. 스윽, 쩍, 하는 소리가 나면 어김없이 주형의 배는 터질 듯이 당겨왔다. 내장이 이대로 밀려나서 그만 망가질 것만 같았다. 재연이 한마디, 한마디를 할 때마다 허리를 크게 움직이며 흉물을 처넣은 탓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좆을 잘라 먹기라도 할 건지, 주형이 안쪽 허벅지를 벌벌 떨며 재연의 자지를 아랫입으로 물었다.

“흐으, 읏……. 너, 진짜……. 가, 만 안……!”

신경질적으로 팔을 뒤로 휘젓자 재연이 허, 하고 코웃음을 쳤다. 이윽고 힘 빼요, 하고 속삭이듯 말하며 엉덩이를 후려쳤다. 짝! 매섭고 따가운 소리였다. 주형은 놀라 신음하며 자세를 무너뜨렸다. 재연이 골반을 강하게 틀어잡고 있는 통에 마음대로 자세도 바꿀 수 없어 괴로웠다. 얼얼한 살갗을 느끼자 우으, 하는 울적한 신음이 났다.

동시에 잔뜩 조이고 있어 움직일 수도 없게 하던 구멍이 다시 열렸다. 재연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이번에는 안에 쿡 처박은 채 가만히 있었다. 커다란 좆이 손가락으로는 닿을 리가 만무한 곳까지 자극적으로 찌르고 있어 숨이 가빠졌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고 박히고만 있어 안달이 났다. 여유가 생겼음에도 주형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다리를 달싹이며 꾸물거렸다.

“형이, 며칠 전에 꿈에 나왔는데.”

재연은 그렇게 귀엽게 몸을 바르작거리고 있는 주형의 등줄기를 작게 쓰다듬었다. 쏙 들어간 등뼈와 그 사이에 자리 잡은 근육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주형에게 제 꿈 이야기를 해주기로 했다. 기분이 좋아서. 그의 이기적인 사랑 고백은 주형의 속을 치받으면서도 계속되었다. 천천히 다시 허리를 움직이자 주형의 날개뼈가 험상궂게 꿈틀댔다.

주형은 사리 분별이 잘되지 않았다. 모든 것이 그를 예민하게 했다. 사정도 못 한 채로 이상한 고통과 쾌감만 이어지고 있고, 누가 볼까 겁이 났고, 재연은 왜 저렇게 쓰레기 같은 말만 하는지……, 왜 이렇게 된 건지. 몸이 달라붙으며 뜨거운 감정을 일으켰다. 심장이 목젖까지 올라와 쿵쿵거리는 것 같았다. 정신이 어지러웠다.

씨발. 최악이다. 주형은 문득 제가 모르는 재연의 과거가 궁금해졌다.

“형이 나를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지금, 처럼.”

꿈속의 주형은 지금보다 다정했다. 누그러진 듯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아침에 잘 일어났냐며 예의 그 멋진 웃음을 보여주었다. 재연은 그 모습이 너무 황홀해서 꿈속에서 주형을 또 안았다. 그 기억을 떠올리자 아래가 찌르르 울렸다. 쫀득하게 맞붙어 있는 속살과 자지 사이의 틈을 뚫고 좆이 또 움직였다. 거칠게 움직이자 야릇한 소리가 영화의 소리를 덮칠 정도로 크게 났다.

“너 같은 거, 씨, 절대 안 좋아, 아니, 씨발, 제일 싫……. 윽, 으응……. 읏!”

정말 싫다. 이렇게 강압적이기만 하고, 제 마음대로 저를 휘두르고, 범하고, 좆이나 쑤시면서 나쁜 말이나 하고, 전과는 변한 재연의 모습이. 그가 아무리 완벽한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이런 모습에 푹 빠지긴 어려웠다. 주형은 재연의 의뭉스러운 모습 모든 게 거슬렸다.

“구멍이랑 자지는 나 좋다는데.”

주형의 것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힘을 받은 채 팽팽히 서 있는 혈관을 비롯해 뿌리를 만지작거렸다. 아쉬울 정도로 느릿한 손길로 쓸어내리자 요도에 액이 맺혔다. 나중에는 핀을 준비해서 얼마나 버티는지 봐야겠다. 재연은 주형의 남자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그가 얼마나 참을 수 있는지, 그가 어떤 얼굴을 하며 애쓰는지 볼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중 능욕을 하는 것은 덤이었고.

“구멍도, 형 가슴도.”

쫀득하지만 건조하게 움찔대는 속살이 느껴진다. 재연은 더욱 깊은 곳을 사납게 탐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그리고 가슴을 말할 때는 주형의 살 기둥을 놓아주고 젖꼭지를 손가락으로 톡 튕겼다.

가벼운 손짓이었으나 아래로 피가 몰려 죽을 맛인 주형에게는 절대로 귀여운 스킨십이 아니었다. 재연은 그의 가슴을 커다란 손바닥에 담았다. 그리고 꽉 짓누르며 속살거렸다.

“하긴, 형 좆이랑 구멍은 형 거 아니죠?”

손가락 사이로 커다란 가슴살이 삐죽 튀어나왔다. 근육 덕분인지 그는 가슴도 제법 봉긋했다. 얼마나 음란한지, 가슴을 모아서 그사이에 자지를 비비고 싶었다. 넥타이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 재연은 나중에 호텔을 가면 꼭 해 보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주형이 순순히 누워줄지는 의문이지만.

‘은근히 고집이 무식하게 세단 말이야.’

이렇게 힘든데도 계속 버티고. 재연은 으음, 하고 작게 앓으며 주형의 좆을 바라봤다. 울먹거리면서도, 씩씩거리면서도, 욕하면서도 정액을 내보내지는 않는 게 참 볼만했다. 자존심만 세서는. 좆병신이면서. 어차피 제가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할 거면서.

“흐, 읏……, 하, 그, 그만.”

“안 그러면, 어떻게 이렇게 사리 분별도 못 하고 질질 싸겠어.”

재연이 피식 웃으면서 주형의 자지를 엄지로 눌렀다. 이윽고 귀두 끝을 거칠게 문질러 주었다. 아주 나쁘고 짓궂게 말하면서도 재연은 그가 너무 좋은 듯했다. 그리고 목에 맺힌 땀과 눈가를 감싸는 눈물을 핥아 마셔 주었다. 사슴처럼 목을 길게 뻗어 우아하게 혀를 내밀고 그를 조금씩 녹여 먹었다. 이내 뺨과 입술에 쪽쪽 입을 맞추었다. 정성스럽고 부드러운 입맞춤이었다. 손짓을 제외한 모든 것이 순조롭고 다정다감했다.

“이제 싸요. 내가 봉사해 줄게.”

“놔. 내, 가 직접…….”

“남의 손에 가는 게 더 기분이 좋아요.”

재연이 그리 말하면서 무어라 더 반문할 힘도 없이 손을 휘둘렀다. 그럼에도 주형이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씨팔, 하고 짜증을 내며 팔꿈치를 휘둘렀다. 재연의 갈비뼈 가까이 톡톡 닿는 귀여운 앙탈이 재연을 흥분시켰다.

재연은 주형의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동시에 퍽, 하고 좆질을 하는 소리가 가릴 정도로 세게 때린 뒤에는 두어 번 더 후렸다. 찰싹거리는 소리가 나다 못해 이제는 뭉친 근육 때문에 둔탁한 소리가 야살스럽게 울렸다.

짐승이 교미하듯 열렬하게 몸을 비비며 들이미는 탓에 주형의 자세가 조금씩 무너졌다. 재연은 그의 엉덩이 사이로 좆을 처박았다. 음낭이 찰싹거리며 부딪히는 통에 앞도, 뒤도 모두 고통스러웠다. 회음 가까이 끈적하게 붙어오는 음낭은 액으로 번들거려서 더욱 이상한 기분을 주었다. 주형이 흐윽, 하며 신음하자 재연이 좆을 주물러주며 말했다.

“형은 엉덩이가 예뻐요, 알아요?”

“흐으, 아……. 히, 으.”

주형의 목소리가 풀어졌다. 혀를 내민 채 개처럼 헉헉거리자 날개뼈가 거칠게 움찔거렸다.

“구멍이 너무 꽉 조이니까 내가 꼭 형 아다 따먹는 거 같아요.”

분명 조금 벌어질 법도 한데 그런 건 전혀 없었다. 이제는 힘을 조금 풀고 부드럽게 좆을 녹이는 구멍이 못내 마음에 들었으나 섭섭하기도 했다. 재연은 주형이 어떤 사람들과 섹스를 했는지 궁금했다. 아마 많겠지. 화가 났다. 화가 나고 질투가 나서 애가 탔다. 곁에서 절대로 놓치지 않고 싶었다. 재연이 주형을 세게 껴안았다.

“형은…… 내 자지만, 먹어야 돼요.”

꼭. 재연이 그리 속닥거렸다. 소꿉친구끼리 귀여운 밀담을 하듯 그의 속눈썹이 가련하게 살랑댔다.

하지만 아랫도리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난폭하고 우악스러웠다. 어느새 영화 소리는 연상이 되지 않을 정도로 상스러운 잡음이 주형의 구멍에서 비롯되고 있었다. 바깥이라 콘돔도 사용하지 못한 나머지 새하얀 정액이 구멍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질질 흐르는 정액을 보자 마치 제가 주형을 임신시킨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주형과 저의 아이. 분명 정말로 예쁠 텐데. 주형의 눈매를 닮아 귀엽고, 코는 저를 닮았을 거고, 입술은 주형처럼 봉긋한 입술 산을 가지고 있으면……. 너무 사랑스럽겠지. 재연은 허리를 크게 움직였다.

“하, 악! 아, 파……!”

아프다고. 주형이 소리를 쳤다. 이제 다른 사람이 있든지, 말든지는 상관이 없었다. 그런 부차적인 생각을 할 정도로 주형은 여유롭지 않았다.

“꼭, 나랑만 해야 해. 다른 새끼 좆 받으면 형 몸에 보지 만들어서 거기 내 걸로 만들 거니까.”

뒷구멍이 닳아서 더러워졌다면 앞구멍을 만들 요량이었다. 재연은 바깥에서 몸을 붙이고 음란하게 붙어먹는 게 너무 좋은지 평소보다 훨씬 거칠게 말했다. 행동 또한 그랬다. 내장을 파열시킬 것만 같은 허리 짓이 자꾸만 이어져서, 주형은 위장이 밀려나는 감각을 느껴야 했다. 명치를 콱 뚫고 피부가 터져 나올 듯해 겁도 났다.

재연은 주형의 처진 허리를 손으로 들어주지 않고 기둥을 들이밀어 강제로 들게 했다. 배꼽이 늘어졌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가 했다. 폭력적이고 맹목적인 만큼 쾌락과 고통을 오가는 이 순간이 주형의 머리를 어지럽혔다. 고통스럽지만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흥분 때문에 머리가 핑핑 돌았다.

눈앞에 별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듯한 감상을 주었다. 주형은 영사기를 바라보며 하아, 하, 하며 늘어진 신음을 냈다. 눈물이 계속 흘러서 눈두덩이가 팅팅 부어 귀엽게 봉긋해져 있었다. 재연이 보았다면 아기 같다며 쪽쪽 빨아먹었을 모습. 실처럼 얕게 늘어져 있던 쌍꺼풀 또한 형체를 거의 잃었다. 주형의 몸처럼. 주형의 몸은 재연의 몸과 이어지다 못해 이제는 하나가 된 것처럼 자지를 받아먹고 있었다.

“씨, 히…… 말, 예쁘게…… 아!”

“알았어요.”

주형이 벌벌 떨고 있는 걸 발견했다. 당연히 겁을 먹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힘에 부쳤다. 영화관 의자 앞에서 상체를 납작하게 수그린 채 엉덩이를 들고 있으니 버거웠다. 게다가 재연 또한 덩치가 매우 큰 편이었으니 잔뜩 붙어 있는 터라 주형의 몸도 자꾸만 의자의 플라스틱 부분에 닿았다. 아프고 힘든 일이었다.

“방금은 내가 너무 심했던 거 같아요.”

재연의 목소리가 조금 누그러졌다. 한숨을 내쉰 뒤에는 상체를 숙이고 의자를 껴안고 있는 주형의 몸을 뒤에서 품었다.

“내가 형을 너무 아껴서 그랬나 봐요.”

꾸물거리는 좆이 안을 파고들었다. 작게 치덕대는 소리가 끈적하게 몸을 휘어 감았다. 주형은 자그마한 오싹함에 흐으, 하고 늘어진 한숨을 내뱉었다. 영락없이 지친 모습이었다. 공사판에서 시멘트를 몇 번 날라도 이렇게까지 지친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역시 재연은 무슨 괴물이라도 되는 게 틀림없다. 남의 정기를 막 빨아먹으면서 사는 괴물 말이다. 물론 이 순간에도 좆을 세우고 허리를 잘게 흔드는 걸 보면 또 다른 의미로 괴물 같았지만. 주형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내 천천히 팔을 뒤로 뻗어 재연의 손이 있는 곳을 손가락으로 더듬거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주 뜨겁게 달아 있는 손가락이 맞붙었다.

재연은 작게 젖은 머리카락이 가리고 있는 시야로 주형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주형의 냄새가 가득 배어 있는 후드티를 훌러덩 위로 올려놓았더니 그가 본의 아니게 만들어 놓은 근육이 불끈거리는 게 보였다. 얼마나 야한지, 여자들이 왜 남자들의 근육에 그토록 환장을 하는지 이해가 됐다.

‘그냥 씨발, 너무 야하잖아.’

일반인이 이렇게 야하면 문제 되는 거 아닌가. 재연은 어리광을 피우듯 주형의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그와 맞닿고 있는 손도 너무 좋고 처박고 있는 구멍도 아늑해서 감각이 희미해졌다.

이렇게 주형과 상스럽게 섹스를 하는 걸 매일 꿈꿔왔던 그로서는 황홀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더럽게 그를 괴롭히는 꿈을 몇 번이나 꾸었다. 제 손에 의해 짓이겨지는 주형을 보기 위해 제 아버지에게서 버텼다. 재연은 하아, 하며 주형의 날개뼈를 콰득 깨물었다.

“윽! 씨, 흐으……. 깨, 깨물지, 윽!”

살갗이 달콤했다. 이런 건 그냥 환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주형을 상대로 하면 달랐다. 재연은 주형을 첫사랑으로 삼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런 사람과 첫사랑을 이루다니. 재연은 주형과 달리 아주 감동한 얼굴로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뒷덜미에 닿는 시선이 따가울 정도로 쏟아지며, 구석구석 그를 핥고 범하고 있다. 주형도 모르는 사이에.

“형, 삼계탕은?”

스크린을 등지고 있는 주형을 고쳐 안았다. 주형이 처음으로 먼저 내밀어 준 손을 터뜨릴 듯 잡고서, 재연은 가슴이 부푸는 걸 느꼈다. 왜 미디어에서 사랑을 그렇게 미친 듯이 포장하는지 이제 알았다. 정말로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하면 이런 거구나. 재연은 주형을 평생 데리고 살며 괴롭히고 귀여워할 것을 생각하니 또 그만 좆이 서고 말았다.

반면 주형은 쉬지도 않고 안아 달라고 보채듯 허리를 튕겨 대는 재연을 받아 내느라 말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찔걱거리는 소리와 영화 주인공들의 대사가 섞이자 순식간에 세상에 둘도 없는 음란물이 펼쳐졌다.

영사기가 잔뜩 뿜어내는 하얀 빛이 주형의 몸을 감쌌다. 새하얀 빛이 몸에 깃들자 가장자리가 새하얗게 물들었다. 재연은 그런 주형을 바라보며 천사 같다고 생각했다. 수호천사 같은 거 말이다. 그만큼 재연에게는 이 모든 게 순애보 같았다. 너무 기대가 되어서 심장이 살갗을 뚫고 나올 듯싶었다.

“다, 못먹, 었…… 학, 하으.”

“……다 못 먹었어요?”

재연의 몸짓이 일순 멈추었다. 퓨즈가 끊기듯 정적이 감돌고, 영화에서는 두 주인공이 티격태격거리고 있었다. 혹시 죽은 건가 싶어 뒤를 바라보자 재연의 눈이 놀라울 정도로 가라앉아 있었다. 말간 얼굴에 콕콕 박혀 있는 눈동자는 서느런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이내 가련하게 아래를 향하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형.”

“아니, 덜…… 먹었습니다. 엄청 노력, 했는데……. 윽!”

“속상해요.”

퍽! 주형의 안이 크게 이지러졌다. 이때까지는 그냥 설렁설렁 흔들고만 있었다는 걸 증명하듯 재연의 허리가 강하게 주형을 치댔다. 한껏 벌어진 구멍 가까이 재연이 손가락을 비집었다. 동그랗게 주름이 져 있는 입구를 비비적거리는 손길이 자못 선정적이었다. 주형은 찢어질 것 같다고 소리를 치지도 못하고 뻐끔거렸다. 좆물이 줄줄 흐르다 못해 이제는 성기가 축 처져 있었다.

“속상하다고.”

이 새끼가 왜 이럴까. 주형의 머릿속에는 그 생각뿐이었다. 아직도 주인공들이 싸우는 걸 봐서 영화가 끝나기까지는 꽤 남은 것 같은데. 씨팔. 주형은 어지러웠다. 몸이 휘청거리자 재연의 강직한 팔뚝이 주형을 확 붙잡았다. 이제는 쓰러지지도 못하게 그의 몸을 전부 껴안고 있었다.

무엇 하나 제 의지대로 움직이는 게 없어 서러웠다. 주형은 으윽, 하고 억눌린 울음을 터뜨렸다. 작게 경련하는 둔부가 서러운 모양새로 보조개를 만들고 있었다. 온몸에 힘이 안 들어가지만 본능적으로 긴장한 몸뚱이가 긴장한 채 주름과 굴곡을 만들어 냈다.

“난 형 배가 존나 불렀으면 좋겠는데, 씨발.”

근육이 있다고는 하나 기본적으로 마른 편이라 뱃가죽에 손을 대면 자지가 튀어나온 게 느껴졌다. 재연은 그런 게 제법 불쾌하고 슬펐다. 주형이 적당히 건방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처럼. 그가 반말을 해 주면 이상하게 짜증과 기쁨이 동시에 밀려왔다.

“앞에 봐요.”

“흐응, 으.”

재연이 성기를 배려 없이 확 빼낸 뒤 주형에게 앞을 보게 했다. 주형의 망가진 얼굴을 보자 그제야 좀 진정이 됐다. 그리고 제 자지와 주형의 것을 함께 손에 쥐어 흔들었다. 안을 가득 채울 심산으로 쌀 생각이었지만 주형의 눈이 퉁퉁 부어 있고, 침과 콧물, 눈물을 질질 흘리는 걸 보자 마음이 약해졌다. 역시 재연은 자신이 조금 서툴고 너그럽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괜찮아요.”

형이라면 다 괜찮았다. 재연은 주형이 정말 미웠지만 그마저도 이제는 사라진 감정이고, 지금은 사랑만 남았다. 재연은 주형을 좋아했다. 엉망이 된 주형을 봐도 자지가 껄떡거리지 않는가. 이것만으로도 사랑은 증명된 셈이었다.

“뭐, 가…… 읍.”

영문을 알 수 없는 주형은 숨을 가쁘게 골랐다. 야외에서 이렇게 섹스를 한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짓인지도 잊은 듯 눈이 풀려 있었다. 이윽고 재연이 입을 맞추어 오고, 주형은 눈을 감아버렸다.

이내 재연의 혀를 받아 내다가 쓰러져 버렸다. 제법 듬직한 근육에 비해 가련한 모양새로 스르르 늘어지고, 재연은 그런 그를 달래듯 좆을 한 번 빨아 준 뒤 차로 옮겨 주었다. 좆도 예쁘고 곧게 생긴 게 역시 제 형답다고 느꼈다.

***

선정적으로 늘어진 눈꼬리가 어울리지 않는 말을 하면서 제 엉덩이를 마구 때린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것을 보고는 체리 같다며 쪽쪽 빨아대고, 상스럽게 욕을 사용하며 벌리라 종용한다. 매우 강압적인 행위에 정이 떨어질 법도 했으나 얼굴을 보면 감정이 달라졌다. 목소리의 주인공인 재연은 사랑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다. 탐스럽고 붉은 입술이 주는 입맞춤은 무서울 정도로 달곰하다.

‘형, 좋아해요.’

그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주형은 잠에서 깼다. 드라마에 나와서 어색하게 고백을 읊조리는 남자 주인공 같은 목소리였음에도 악몽이었다. 그는 허억, 하고 숨을 가쁘게 골랐다. 정신을 차려 보니 허리는 부러질 것처럼 아프고 등에는 근육통이 가득하다. 허벅지는 그나마 근육이 많아서 덜 지친 건지 조금 찌뿌듯하고 말았다.

“하……, 씹.”

개새끼. 주형은 욕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미간을 확 일그러뜨리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제 손에 감기는 호텔 이불이 매우 낯설었다. 살면서 거의 만져 본 적 없는 물건이었다. 특유의 날카로운 인상 때문에 호텔에서는 일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손님으로 온 적은 당연히 거의 없다.

주변을 바라보니 제집을 서너 개 정도 붙여 놓은 듯한 공간이 보인다. 단칸방 네 개 정도의 넓이였다. 이런 탁 트인 공간에 있으면 집에 있어도 괴롭지 않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주형은 이곳에 데리고 온 게 누구일지 금세 짐작이 가는 듯, 장소 탐색은 그냥 그만두었다. 그리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씨, 하고 거칠게 짜증을 냈다.

그러기도 잠시 멀리서 슬리퍼 소리가 들렸다. 느른하게 늘어진 걸 보니 누구인지 당연히 알 수 있었다.

“형, 일어났어요?”

“……아.”

깊이 잠긴 목소리가 주형에게서 나왔다. 그는 작게 헛기침을 몇 번 한 뒤 고개를 멋쩍게 숙였다.

“이사님,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많이 서운하기는 했지만.”

“……앞으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요즘 잠을 잘 못 잤더니 피곤이 온몸에 절어있었다. 차라리 막일을 하러 다닐 때는 근심은 없었는데 몸이 편해지니 근심과 걱정이 한 번에 밀려와서 괴로웠다. 얼른 일을 구해야겠지. 주형이 어두운 얼굴로 있자 재연이 미지근한 물이 담긴 유리잔을 내밀었다.

“마셔요.”

깊이 잠긴 목소리도 정말 섹시하고 마음에 들어 아쉬웠지만, 기껏 들고 온 물이니 주기로 했다.

“아……, 감사합니다.”

주형이 머뭇거리다가 물을 받았다. 자다 깨서 그런지 고분고분했다. 그러면서도 그가 이 안에 무슨 짓을 해 놓지는 않았나 의심이 되어 눈을 몇 번 끔뻑이다가, 그냥 냅다 마셔버렸다. 그래, 잘못되어 봤자 그냥 죽기보다 더하겠나.

물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다 마신 뒤에는 두 손으로 공손하게 잔을 전했다. 어차피 재연과는 예전의 그 사이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러니 깔끔한 비즈니스 상대로 생각하는 게 옳았다. 나이 차이가 여섯 살이나 나더라도, 이 바닥에서 그런 건 상관없었다.

“재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방값 말씀해 주시면 천국 캐피탈 쪽으로 입금하겠습니다. 아, 그 3천만 원도 같이 보낼까요.”

“형.”

“예?”

“왜 돈을 돌려주겠다고 하는 거예요?”

재연은 마음이 상한 듯 보였다. 굳은 얼굴이 그를 증명했다. 그가 저를 받아들이고 오롯하게 제 것이 되려면 재산권부터 쥐어야 하는데, 그게 잘되지 않으니 불편한 모양이었다.

“……원래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돈은 받는 게 아닙니다. 제 정당한 노동의 대가가 아니지 않습니까?”

정당하지 않은 돈을 무서워하는 버릇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제 아버지가 노름으로 탕진한 돈이 매우 많았기 때문이다. 현재 가진 빚도 주형이 낸 것이 아니라 집안이 가진 빚이었다. 그래서 주형은 임금을 제외한 돈은 모두 경계했다.

“내가 형이랑 섹스를 하고 주는 돈인데, 왜 안 돼요?”

“화대 같은 건 받기 싫습니다. 그 정도는 이해해 주시죠, 이사님. 저도 자존심이라는 게 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그에게 돈을 받으며 빌빌거리는 형이 되기는 싫었다. 이상하게도 그랬다. 그냥 천국 캐피탈 이사 윤재연으로 생각하겠다고 해 놓고, 왜 이러는지. 주형은 내심 재연이 신경이 쓰였다.

“그럼 내가 형한테 애정 공세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왜 저 같은 거한테 애정 공세를 합니까? 이사님 같은 분이.”

왕자님 같은 놈이 거지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부터 이상했다. 동화 <왕자와 거지>도 이런 내용은 아니었을 텐데.

“내가 형이 마음에 들어서요. 안 돼요?”

“하…… 진짜.”

말이 안 통하네. 주형은 피곤한 듯 이마를 짚었다. 재연과 대화하면 꼭 이런 식이었다. 일방적이고, 어린아이 같고, 철이 없고, 말도 안 통한다. 그 와중에 주장하는 바는 명확하다. 저 올곧은 사슴 눈동자를 보면 미치도록 마음이 약해졌다.

‘저 새끼 부모도 아니고, 내가.’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는 말이, 하필 이 상황에 떠오르다니.

“형은 그냥 조용히 내가 주는 거나 잘 받아요. 그게 제일 잘 어울리니까. 그리고 내 앞에서 건방도 떨고 지랄도 해요. 어차피 그런 거 받아 줄 사람은 나밖에 없잖아요. 그러니까 뭘 하든 나랑 해요, 다.”

재연이 주형의 어깨를 꽉 잡았다. 그렇게 억누르자 주형이 팔을 탁 쳐냈다.

“지금 지랄하는 건 누가 봐도 이사님입니다. 도대체 나랑 뭘 하고 싶은 겁니까? 이사님은.”

“뭐든 다 하고 싶다고 했잖아요, 형.”

“무슨 관계가 되고 싶은 거냐고요! 왜 이럽니까, 나한테? 좆같고 짜증납니다.”

하나도 와닿지 않았다니. 형은 정말로 모른다니. 심지어 화까지 내고 있다.

재연은 매우 속상해졌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속이 마구 끓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예전에는 저를 버리고 떠났으면서 지금도 또다시 떠나려고 한다. 게다가 며칠 전에는 삼계탕도 덜 먹고, 돈도 안 받아 주고. 그러면서 구멍은 잘 열고. 헷갈리게 왜 이러는지. 그리고 걱정하듯 다정한 눈길을 보이는 건 왜인지. 재연은 주형이 정말 미워졌다. 주형의 앞에 서기만 하면 한없이 어려지는 그가 얼굴을 찌푸렸다.

“모르겠어요? 내가 형이랑 뭐 하고 싶은지?”

“압니다. 근데, 보통 사람한테도 3천 쥐여 주면서 사귀자고 하면 미친놈인 줄 압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지만 진짜로 누굴 꼬실 생각이라면 공부 좀 하시라고요.”

주형은 그리 말하며 이불을 확 헤쳤다. 다행히도 알몸은 아니었다. 이윽고 가지런히 걸려 있는 제 옷을 꾸역꾸역 입었다.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들이라 안심했다. 주형은 적잖이 울적해져 있는 재연을 무시한 채로 그냥 나가버렸다.

쾅! 호텔 문이 묵직하게 닫혔다.

‘시발, 이랬다가 저랬다가……. 사람을 뭘로 보는 거야.’

처음에는 애인, 두 번째는 남창, 세 번째는 돈 받아먹는 무능력한 놈이라니. 주형은 자존심이 자못 상했다. 돈을 대뜸 주는 그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자꾸만 그 얼굴이 신경이 쓰여서 어려웠다. 그래서 몇 걸음이나 씩씩거리며 걷더니, 우뚝 멈추어 섰다.

도대체 왜 이런 생각까지 해야 하냐고. 저 새끼를 상대로. 주형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재연의 반응에 짜증을 냈다.

그가 이상하게 귀여워 보였기 때문이다. 모든 걸 완벽하게 해낼 듯하면서 연애질은 또 그렇지 못한 그가, 새삼스럽게 유난히 눈에 밟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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