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 (14/20)

12. 망상벽

묶이는 것도, 목을 졸리는 것도, 호흡이 딸릴 때까지 키스를 당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상대가 카인이 아니면 싫다. 내 육체를 파헤칠 수 있는 이는 카인뿐이다. 오로지 카인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몸인 것이다.

사실 나도 우리 둘만의 신혼집에 시종을, 그것도 베넬 같은 변태를 들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베넬 외에는 딱히 선택지랄 게 없었다.

황실의 시종은 귀족의 자제나 하급 귀족이 맡으며, 누굴 섬기느냐가 시종의 권력을 결정한다. 게다가 폐제의 시종은 말이 시종이지, 주요 업무는 지하실 청소와 이불 빨래였다. 하인이나 할 법한 잡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지하실에 갇힌 폐제의 시종을 자처하겠는가. 나한테 욕망을 품은 베넬이나 하려 들겠지.

혼자 아득바득 도망치려 했던 첫 탈출과는 다르게, 두 번째 탈출에서는 시종의 힘을 빌릴 것이다. 물론 마법을 쓴다면 바로 지하실을 나갈 수 있다. 그렇지만 사람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니, 그런 건 너무 수상하잖아. 자칫하다간 내가 흑마법사라는 사실이 들켜버릴 거다.

베넬은 폐제를 어떻게 한 번 품어 볼 소망을 안고서 지하실에 발을 들였다. 그리고 벌써 일주일째, 베넬은 나와 몸을 섞기는커녕, 내 손끝 하나도 건들지 못하고 있었다.

카인이 베넬에게 엄중히 경고를 해뒀기 때문이었다. 방 이곳저곳에 영상석이 설치되어 있으니, 헛된 마음은 추호도 품지 말라고 말이다. 그런 살기를 정통으로 맞는다면, 섰던 좆도 다시 쪼그라들 것이 확실했다.

그렇다면 베넬은 일주일 동안 뭘 했느냐 하니, 그는 딱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할 일이 없었다. 폐제의 식사를 챙기는 것도, 옷을 갈아입히거나 목욕을 시키는 것도 전부 카인의 몫이었다. 베넬은 카인이 잠시 방을 비울 때만 들어와서, 얌전히 나를 감시하기만 했다.

그리고 카인은 하루의 대부분을 지하실에서 나와 함께 보냈다. 시종이 없었을 때는 적어도 업무는 부단장실에서 처리했는데, 이제는 서류를 아예 신혼 방으로 들고 와서 일하기 시작했다. 행여 시종이 무슨 사고라도 칠까 염려되는 모양이었다.

이런 이유로, 베넬이 지하실에 머무는 시간은 고작 네다섯 시간밖에 되지 않았다.

나는 한가롭게 침대 위를 뒹굴며, 방 청소를 하는 베넬을 구경했다. 그는 대걸레를 들고 천장의 먼지를 닦고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앞섬이 살짝 불룩해져 있었다.

쟤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나는 그의 머릿속을 슬그머니 들여다보았다.

베넬의 상상 속, 루시엘은 윤간당하고 있었다. 그가 하대했던 시종과 하인들에게 둘러싸여, 인정사정없이 범해지고 있었다.

우악스러운 손이 둔부를 억세게 움켜쥐었다. 살 없는 엉덩이를 잡아 벌리고서, 이미 정액 범벅이 된 애널에 또다시 성기를 찔러 넣었다. 주름이 핏기를 잃을 정도로 팽팽히 벌어지며, 겨우겨우 성기를 받아 삼켰다.

귀두 끝이 구멍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질 때까지 허리를 뒤로 뺐다가, 밑동까지 깊숙이 삽입되었다.

붉게 부어오른 구멍 근처로, 까슬까슬한 음모가 파도처럼 비벼졌다. 흐릿하게 벌어진 틈새로 정액이 흘러내렸다. 몇 명이 싸질렀는지 모를 씨물이 볼깃살과 허벅지에 치덕치덕 달라붙었다.

“우윽, 윽… 무, 례한 놈들… 감히, 감히 나에게 이런…”

루시엘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혓바닥이 붙잡혔다. 혀를 꼬집듯 잡아내려 입 밖으로 빼게 하고서, 부드러운 혓바닥에 제 좆을 문질렀다. 비릿한 쿠퍼액이 혀 위에 덧칠되었다.

요도구가 뻐끔거리더니 곧 진한 정액을 뿜어내었다. 독한 수컷 내음에 구토감이 들었다. 루시엘은 콜록거리며 뿌연 거품 같은 침을 게워내었다. 정액이 식도는 물론이고 위장까지 잠식한 것 같았다. 숨을 쉴 때마다 코끝에서 정액 비린내가 났다. 역겨웠다.

베넬은 루시엘의 골반을 세게 틀어잡고 아래로 끌어내렸다. 그와 동시에 허리를 쳐올려 깊게 박았다. 단단한 귀두가 흐무러진 내벽을 짓이겼다. 팽창할 대로 팽창한 좆이 전립선을 연신 찧어댔다.

“아, 흐윽, 앙! 하응!”

루시엘은 교성을 내지르며 자지러졌다. 잇새로 새어 나온 단 침이 입가를 흐물흐물하게 녹였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성기가 밀어 넣어졌고, 허우적거리는 양손에 뜨거운 살기둥이 쥐어졌다.

루시엘은 앞과 뒤로 박히면서, 누구의 것인지 모를 좆을 쥐고 흔들었다. 이를 세워 샅을 긁기라도 하면, 제대로 빨아보라며 체벌이 가해졌다. 루시엘의 얼굴만 한 손이 그의 엉덩이를 거칠게 후려쳤다. 새하얀 둔부 위로 시뻘건 손자국이 새겨졌다.

엉덩이를 맞았을 뿐인데, 어째서 아랫배가 저릿하게 달아오르는 걸까. 루시엘은 고개를 떨구면서 신음했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 위로, 정액이 실금하듯 튀었다. 멀그스름한 정액이 이마를 타고 흘렀다.

“꼴에 황제랍시고 그리도 떵떵거리더니. 결국에는 이 모양 이 꼴이네. 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니까?”

“네놈들… 무엄, 하다앗… 흐익! 헥!”

루시엘의 두 손목을 뒤로 틀어잡은 베넬이, 바짝 허리를 붙였다. 성기가 배꼽 바로 아래를 쑤컥거렸다. 절정으로 치솟는 쾌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낭창한 허리가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루시엘은 맨바닥에 이마를 박고서 신음했다. 발갛게 달아오른 어깻죽지가 파들파들 떨렸다. 그 모습이 꼭 살려달라고 싹싹 비는 죄인 같았다. 그 잘나신 황제께서 아랫것들에게 절을 하고 있다니. 하인들이 일제히 낄낄대며 루시엘을 비웃었다.

신발을 벗어 던진 맨발로, 루시엘의 뒤통수를 꽉 짓누르는 이도 있었다. 반짝이는 은발이 하인의 발바닥에 문질러졌다. 머리칼의 촉감은 가늘고도 부드러웠다. 별빛의 조각처럼 빛나는 그것을, 더러운 정액으로 흠뻑 적셔버리고 싶었다.

“바닥에 얼굴 처박고 있는 것도 좋긴 한데, 역시 얼굴이 보이는 게 더 꼴리네. 고개 좀 들어보세요. 폐하.”

“미친… 놈들… 우윽…”

머리채를 쥐어 잡아 고개를 들게 만들었다. 그렇게 박히고도 살벌한 눈초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좆으로 왼뺨을 세게 때려주었다. 찰싹, 찰싹 소리가 나도록 거칠게. 보드라운 볼에 쿠퍼액이 길게 묻어났다. 아픔보다는 수치심으로 달궈진 얼굴이 마음에 들었다.

하인은 그 얼굴을 반찬 삼아 자위를 시작했다. 선단부를 얼굴에 조준하고서 정액을 쏟아냈다. 그 곱고 섬세한 낯 위로, 또다시 백탁액이 흩뿌려졌다. 체액으로 절여진 머리카락이 콧등에 달라붙었다.

사내의 욕망으로 범벅이 된 얼굴이 허옇게 번들거렸다. 가쁜 숨을 내쉬는 입술에도, 정액이 흥건하게 말라붙어 있었다.

“이렇게 더러워져서 큰일이네. 이러면 키스도 못 하잖아. 입술 빨면 정액 비린내 날 것 같아.”

투덜거리는 시종을 향해, 하인이 물에 젖은 수건을 건네주었다. 무너진 상반신을 들어 올린 후, 수건으로 얼굴을 꼼꼼히 닦아주었다. 너저분한 체액을 깔끔하게 훔쳐내자, 발그레한 볼과 긴 속눈썹이 드러났다. 이런 상황에서도 참 반반한 낯짝이었다.

수건으로 귓바퀴를 가볍게 문지르자 루시엘이 흐응, 하는 달뜬 비음을 흘렸다. 여기가 약한가 봐요? 부러 나직하게 속삭이며 바람을 불어넣었다.

“아니… 아니야! 건들지 마…!”

루시엘이 수족을 퍼드덕거렸다. 그는 다리를 뻗어 제 앞의 시종을 걷어찼다. 힘이라고는 조금도 들어가지 않은 발차기였다. 육체적 고통은 거의 없었지만 기분이 언짢았다. 시종은 미간을 찌푸리며 음산하게 읊조렸다.

“발버둥 치는 걸 보면 아직 살만한가 본데, 아예 두 개씩 처박아 버릴까?”

“그거 괜찮은데?”

루시엘이 쾌락의 수조에 잠긴 뇌를 굴려, 말의 뜻을 이해하기도 전에, 누군가의 손이 애널을 건드렸다. 이미 빠듯이 성기를 물고 있는 구멍을 간질이다가, 안으로 파고들었다.

“아흑, 흣, 그, 그만… 제발 멈춰… 흐익! 아악!”

붉었던 입술에 혈색이 사라졌다. 그는 새파란 입술을 달싹이며 비명을 내질렀다. 구멍이 얼얼했다. 이게 느끼는 건지, 아니면 괴로운 건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음경과 손가락이 한데 뒷구멍을 난도질했다. 애널이 손가락을 끊어먹을 것처럼 강하게 죄어들었다. 검지와 중지가 느릿하게 빠져나가더니, 성기로 들어찬 구멍에 귀두가 문질러졌다. 루시엘이 흠칫 몸을 굳혔다.

“아, 안 돼… 이러다가 정말 찢어져, 흑, 흐으… 찢어진다고…”

루시엘이 훌쩍이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희미한 목소리로 몇 번이고 멈추라는 말을 반복했지만, 아무도 루시엘의 애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좆이 억지로 내벽을 벌려대며 길을 만들었다. 루시엘이 헉, 하고 가쁜 숨을 들이켰다. 이러다가 몸이 두 쪽으로 갈라질 것 같았다. 창백하게 젖혀진 목 너머로, 가는 비명이 흘러나왔다. 그 모든 고통에도 불구하고, 루시엘의 성기는 여전히 뻣뻣하게 서 있었다.

“흐아, 악! 아, 아파… 배가 터질, 흐읏, 것 같아서… 아앙! 흐읍!”

성기들이 멋대로 움직이며 전립선을 후벼 파듯 찔렀다. 베넬의 좆이 직장 깊은 곳을 뭉갤 때면, 다른 이의 성기가 전립선을 스쳤고, 베넬의 것이 극점을 꾹꾹 눌러댈 때면, 두 번째 성기가 결장 입구를 건드렸다.

안타깝게도 카인의 것만큼 길지는 않은 탓에, 결장을 넘어가지는 못했다. 비록 결장이 헤집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루시엘은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아니, 충분함을 넘어서 너무 과했다.

“아, 앗, 흐아아, 아… 아읏, 후응…”

루시엘은 이제 인간의 언어도 올바로 발음할 수 없었다. 그는 짐승처럼 새된 목소리로 울먹거렸다. 성기를 하도 빨아대느라 부르튼 입술에서 피가 한 줄기 흘러내렸다.

성기가 끝없이 안을 드나들었다. 두 개일 때도 있었고, 한 개일 때도 있었다. 올록볼록한 비즈를 박아 넣은 것도 있었고, 유난히 딱딱해 매섭게 내벽을 저미는 것도 있었다. 삽입은 수월하게 이루어졌다. 정액과 장액이 내벽을 녹진하게 적신 덕분이었다.

하복부에 불룩한 윤곽이 드러날 정도로 거칠게 박힐 때마다, 루시엘은 진창 같은 절정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그런 루시엘을 보며, 사내들은 그간 참아왔던 음담패설을 거침없이 쏟아 부었다.

저런 창부를 잘도 황제라도 섬겼다느니, 필시 혈관에 천한 몽마의 피가 흐를 거라느니… 제정신이 남아 있었다면 눈을 치켜뜨고 화를 냈겠지만, 루시엘에겐 음담에 반응해줄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실 끊어진 마리오네트처럼 바닥을 나뒹굴더라도, 성기를 밀어 넣으면 안쪽을 들쑤시는 쾌감에 본능적으로 허리를 흔들었다. 까뒤집힌 눈에 생기라고는 없었다. 그는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단순한 성욕 처리용 인형으로 취급당하고 있었다.

연분홍빛으로 물든 몸뚱이가 이편에서 저편으로 한 바퀴를 돌았다. 성기를 빼내고 또 다른 이의 성기를 처박을 때마다, 헤 벌어져 선홍빛 속살을 내보이는 구멍에서 정액 덩어리가 왈칵 쏟아졌다. 하도 오래 혹사당해 느슨해진 구멍은, 내용물을 머금지 못하고 고스란히 뱉어내었다.

하인들이 폐제를 윽박질렀다. 기껏 씨물을 먹여줬는데 뱉으면 어떻게 하냐며, 그의 가슴을 세게 비틀었다. 분홍색 돌기가 붉게 충혈될 때까지, 유두를 깨물고 꼬집기를 반복했다.

“잘못, 했어요… 흐엑, 힉! 안 흘릴, 테니까아… 으읏, 응!”

루시엘은 가슴을 희롱당하고 싶지 않아 최선을 다해 구멍을 조였다. 주름이 조밀하게 수축했다. 질금질금 새어 나오던 정액이 뚝 끊겼다.

공간에 존재해있던 모든 이들이 다 한 번씩 루시엘을 품었고, 차례는 다시 베넬에게로 돌아갔다. 베넬은 능숙하게 허리 짓을 했고,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절정을 맞았다. 뜨거운 정액이 내벽을 가득 채웠다.

베넬은 수그러든 제 성기를 빼내는 대신, 루시엘을 바라보며 음흉하게 쿡쿡거렸다.

“정액도 꿀꺽꿀꺽 잘도 받아 드셨으니, 이것도 분명 좋아하시겠죠?”

“무슨, 말을… 아, 아앗…?”

루시엘은 차마 말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조르륵,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드센 물줄기가 직장을 후려쳤다. 정액이라기에는 점도가 약했고 양도 많았다. 물이라고 하기에는 누런색을 띠었으며 시큼한 냄새가 났다. 그러니까, 이 액체는 분명…! 루시엘의 낯이 창백하게 질렸다.

“시, 싫어, 사람을, 변기처럼…”

암모니아 내음이 비강에 난폭하게 달라붙었다. 이미 정액으로 꽉 차 있던 내벽에, 새로운 액체가 흘러들어왔다. 판판했던 배가 온갖 체액들로 살며시 부풀어 올랐다.

“어, 어째서… 이런, 짓…”

루시엘이 멍하게 더듬거렸다. 황제였던 자신이 이제는 변기 취급을 받게 되다니. 충격으로 온몸이 파르르 경련했다. 혀를 깨물고 그냥 콱 죽어버리고 싶었으나, 입술을 다물 힘마저 남아 있지 않았다.

절망으로 해쓱해진 루시엘의 얼굴을 구경하며, 베넬은 일부러 천천히 성기를 뽑아내었다. 구멍을 막고 있던 마개가 사라지자, 흐늘흐늘하게 풀린 애널에서 정액과 소변이 한데 쏟아졌다. 그 모습이 마치, 뒤로 배뇨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 뒷구멍이 성기인 폐하께서는, 오줌도 이쪽으로 싸시는 모양이지?”

베넬이 비릿하게 웃었다.

“야, 혹시 대걸레 있냐?”

하인이 벽 한구석에 놓여 있던 대걸레를 얼른 집어 들었다. 베넬은 대걸레를 뺏듯이 잡아채었다. 둥글게 마감된 봉의 끝부분을, 오줌을 질질 흘려대는 뒷구멍에 밀어 넣었다.

가늘다고는 하나 딱딱한 봉이, 내벽 여기저기를 쿡쿡 찔러댔다. 루시엘의 허리가 움찔움찔 튀었다. 대걸레로 쑤셔지면서 좆을 세우고 혀를 할딱이는 전 황제라니. 저런 걸 황제라고 떠받들었던 지난날이 우스울 따름이었다.

방 안은 어지러웠다. 한바탕 축제가 벌어진 후의 거리 같았다. 질펀한 정액이 바닥에 작은 웅덩이를 만들었고, 희끗한 물자국이 곳곳에 산재해있었다.

베넬은 끌끌 혀를 찼다. 그는 의자 밑에 놓인 걸레를 집어 루시엘에게로 던졌다. 걸레가 허벅지 사이로 툭 떨어졌다.

“뭐해요? 어서 닦지 않고. 그쪽 때문에 더러워진 거니까 그쪽이 치우셔야죠.”

“뭐라고?”

루시엘이 눈살을 찡그렸다. 그가 이해한 게 맞다면, 베넬은 제게 걸레질을 하라 요구하고 있었다. 한때 제 전속 시종이었던 자가, 이제는 저에게 걸레를 들어라 명한다니. 울분이 올라왔다.

루시엘은 굼뜨게 상반신을 일으켰다. 바들거리는 손으로 걸레를 잡아 다시 베넬에게 내던졌다.

“싫다! 죽어도 싫어. 하인이나 할 일을 내게 시키다니. 머리라도 돌아버린 게냐?”

루시엘이 분기를 못 이겨 시근덕거렸다. 이런 상황에서도 자존심을 세우는 꼴이라니. 아무래도 좀 더 교육이 필요할 성싶었다. 베넬은 무릎을 굽혀 루시엘과 눈높이를 맞추었다. 체액으로 눅눅히 젖은 머리칼을 잡아채 아래로 당겼다.

“걸레질이 싫다면 혀로 핥아 치우시든지.”

베넬은 루시엘의 뒤통수를 꾹 내리눌렀다. 머리와 바닥이 점점 가까워졌다. 이러다가는 정말로 혀로 정액을 싹싹 핥게 되어버릴 것 같았다. 그건 싫었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속이 메스꺼웠다.

날렵한 콧대가 정액에 파묻히기 바로 직전, 베넬은 머리를 쥐고 있던 손을 떼어내었다. 그는 폐제의 눈동자를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너풀거리던 격정은 온데간데없고, 서러운 체념만이 일렁이고 있었다.

“…걸레로, 닦겠다….”

루시엘이 고개를 푹 수그리고서 어물거렸다. 베넬은 진심으로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혀로 정액을 핥는 것도 매우 볼만한 정경이었을 텐데. 두 손을 짚고, 천천히 머리를 숙여서 바닥 위 정액을 할짝거린다면. 복숭앗빛 혀로 천한 정욕의 흔적을 꼼꼼히 닦아낸다면…. 황제였던 루시엘에게 그것까지는 무리였나 보다.

평생 집안일이라고는 해본 적 없는 고운 손이, 청색 걸레를 집어 들었다. 루시엘은 조심스레 무릎을 꿇고 상체를 숙였다. 분홍빛 감도는 여린 무릎이, 딱딱한 바닥에 닿았다.

살면서 무릎을 꿇는 날이 오게 될 줄이야. 미처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것도 천것이라 무시하던 하인들이 보는 앞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걸레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울음을 참았다.

루시엘은 천천히 무릎을 앞으로 밀며, 걸레로 체액을 훔쳤다. 허리를 숙이고 엉덩이를 들어 올린 자세 때문에, 정액이 들러붙은 둔부와 빠끔히 벌어진 애널, 그 아래로 달랑거리는 연분홍색 좆까지 낱낱이 보였다.

잡아 물고 있던 것을 놓친 구멍이 안타깝다는 듯 벌렁거렸다. 소변과 백탁액이 섞인 액체가 자국을 찍으며 지리릭 흘러내렸다.

그가 걸레를 들고 기어간 자리마다 새로운 얼룩이 생겨났다. 루시엘의 안에서 흘러나온 정액이 다시금 바닥을 더럽힌 탓에, 방은 쉽게 깨끗해지지 않았다.

“청소도 제대로 못 하는 건가? 좆 빠는 것밖에 잘하는 일이 없나 보네. 한심하기는….”

베넬이 짓궂게 빈정거렸다. 그는 벽에 걸린 채찍을 꺼내 들었다. 게으른 하인을 벌주는 용도로 사용되는 채찍이었다. 치부를 고스란히 드러낸 엉덩이 위로, 채찍을 세게 내리쳤다.

하윽! 루시엘이 눈을 부릅뜨며 신음했다. 희고 얇은 살결 위로 연붉은 자국이 그어졌다가 서서히 사라졌다. 채찍이 스친 부위가 화끈거렸다. 그는 허둥거리며 왼손으로 엉덩이를 가렸다. 오른손으로만 상반신을 지탱하느라, 균형을 잃은 몸이 눈에 띄게 후들거렸다.

“농땡이 피우지 말고.”

검은 줄이 공기를 날카롭게 갈랐다. 예고도 없이 채찍이 또 둔부를 향해 떨어졌다. 루시엘은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뒤틀었다. 양손으로 허겁지겁 걸레질을 이어갔다. 겁에 질려 허둥대는 모습이 가학심을 자극했다.

베넬은 괜한 트집을 잡으며 끊임없이 루시엘을 괴롭혔다. 채찍으로 때리는 건 물론이고, 대걸레 끝으로 구멍을 쿡쿡 찔러대거나, 신발을 신은 채로 엉덩이를 꾹꾹 밟기도 했다. 붉은 실선들이 선명히 남은 볼기에, 발자국이 거무스름하게 찍혔다.

“네놈….”

참다못한 루시엘이 으득 이를 갈았다. 이마에 퍼런 핏줄이 섰다. 아직도 제 위치를 온전히 파악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뭐, 좋아요. 그렇게 황제 대접을 받고 싶다면야. 소원대로 해드리죠.”

베넬은 루시엘의 손목을 모질게 움켜쥐었다. 비틀거리는 그를 반강제로 일으켜 연행하듯 끌고 갔다.

그리고 망상의 배경이 바뀌었다. 높은 단 위에 위치한 황좌와, 그 아래에 줄지어 서 있는 신하들.

베넬은 루시엘을 황좌 위로 내동댕이쳤다. 푹신한 벨벳 시트에 엉덩이가 닿았다. 두 다리를 잡아 팔걸이 양쪽에 각각 걸쳐 놓았다. 비죽이 벌어진 구멍 틈새로 정액이 마저 흘러내렸다. 순흔과 매 자국으로 뒤덮인 육신이 힘없이 너덜거렸다.

베넬이 총리를 향해 손짓했다. 총리는 백금을 녹여 만든 상자를 들고서, 종종걸음으로 베넬에게 다가왔다. 상상 속의 베넬은 절대적인 권력자였다. 황제도 총리도 그의 명을 따랐다. 그 자신의 망상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총리는 공손히 상자를 열어, 그 안에 고이 간직된 물건을 꺼냈다.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지팡이, 왕홀이었다.

왕홀의 봉은 순금으로 되어 있었고, 맨 위에는 주먹만 한 다이아몬드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역대 황제들의 눈동자처럼 짙은 붉은빛이었다.

베넬은 총리에게서 왕홀을 넘겨받았다. 정액이 말라붙어있는 루시엘의 손에, 왕홀을 꼭 쥐여주었다. 루시엘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초리로 베넬을 올려다보았다.

“이걸, 왜…?”

그가 거칠게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얇고 가느스름한 눈꺼풀 아래, 눈물을 머금은 눈동자가 일렁였다.

“황제 대접을 받고 싶다면서요? 황좌에 앉혀드리고 왕홀까지 쥐여드렸으니, 이제 황제답게 업무를 보셔야겠죠?”

베넬이 뒷짐을 지고서 휘파람을 불었다. 그는 주근깨가 자리 잡은 콧잔등을 개구지게 찡긋거렸다.

“업무라면…”

“그야 당연히 왕홀로 뒷구멍을 쑤셔대는 거죠. 폐하께 어울리는 일이 그 외에 또 뭐가 있겠어요?”

“네, 네놈, 무엄하… 아흑!”

루시엘은 말을 잇지 못했다. 매서운 손아귀가 루시엘의 자지를 틀어쥐었다. 루시엘의 머리채를 잡아당겼을 때처럼, 무른 살덩이를 거칠게 다루었다. 연약한 부위에 정통으로 내리꽂히는 자극에, 시야가 불그죽죽하게 질렸다.

“그럼 다른 업무를 보실래요? 충성스런 신하들의 성욕을 처리해주는 것도 괜찮겠네요. 이렇게 많은 수를 한 번에 받았다가는, 아래가 너절해질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끔찍한 속 내용과는 다르게, 베넬의 어투는 발랄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폐제의 귀에 입술을 붙였다. 대단한 자비라도 베푼다는 듯이, 조곤조곤 속살거렸다.

“선택하세요. 황제 폐하. 무엇을 원하시나요?”

최선이라고는 없는 선택지였다. 고를 수 있는 것은 차악뿐이었다.

“왕홀, 로…”

루시엘이 어깨를 옹송그리며 대답했다. 귀를 쫑긋 세워야만 들을 수 있는 아주 작은 목소리였다. 베넬은 아무것도 듣지 못한 척, 부러 큰 소리로 되물었다.

“뭐라고요? 좀 더 똑똑히 말해보세요.”

베넬이 손아귀에 힘을 가했다. 잘 다듬어진 손톱으로 요도 부근을 거칠게 애무했다. 손안에서 성기가 울컥거리며 팽창했다.

“하윽! 흣! 왕홀로오… 흐엣, 뒷구멍…을, 쑤시게에, 해주세…요… 후웁, 흡…”

이 간단한 문장을 말하는 데에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단어 사이사이로 흐느끼는 신음이 튀어나왔고, 말은 자꾸 길게 늘어졌다. 루시엘은 가엾게 할딱이며 가까스로 말을 끝마쳤다.

베넬은 잘했다고 웃으며, 폐제의 뺨을 가볍게 두드려주었다. 애액으로 함빡 젖은 손끝으로 볼을 어루만지자, 발간 볼에 묻어난 체액이 별이나 눈물처럼 반짝였다.

루시엘은 엄지를 한 마디 정도 구멍에 집어넣고는, 삽입된 엄지를 옆으로 잡아당겨 구멍을 벌렸다. 정액으로 번들거리는 애널 사이로, 왕홀의 아랫부분이 느리게 파고들었다.

왕홀 기둥은 반질거리는 금으로 만들어졌으나 마냥 매끄럽지는 않았다. 지팡이 곳곳에 작은 보석들이 알알이 박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석이 주름진 내벽에 달라붙었다. 둥글게 세공된 광물이 점막을 긁으며 자극을 주었다. 울룩불룩한 돌기가 달린 딜도를 삽입 받는 것 같았다.

왕홀은 제국의 부를 상징했기에, 무척 호화로운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 형태가 자신을 이토록 몰아붙이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후응, 흣, 흐아, 앙…”

부푼 애널이 끈덕지게 기둥을 물고 빨았다. 애액이 왕홀을 따라서 아래로 질금질금 흘렀다. 푹신한 시트에 얼룩이 둥글게 남았다. 꼭 의자에다가 실례라도 한 것 같았다.

제국의 운명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나눠야 할 넓은 회의실에서, 금과 루비로 장식된 사치스러운 황좌 위에서, 루시엘은 다리를 넓게 벌리고 제 뒤를 쑤셔대시고 있었다. 그것도 황권을 나타내는 값진 왕홀로 말이다.

밑에서는 수십, 수백에 달하는 신하들이 그의 모습을 응망하고 있었다. 총리는 부풀어 오른 바지 앞섬을 손바닥으로 꾹꾹 눌러대었고, 혈기 넘치는 젊은 대신들은 아예 성기를 빼내어 잡고 흔들었다. 그 광경을 마주하자 짙은 수치심이 아롱졌다.

“잘하고 있어요. 무능한 폭군이라고 욕했었는데, 이제 보니 상당히 능력이 있으시네요. 성군이라 불러도 되겠어요.”

“시러어… 그런 말, 하지 마아… 흐으, 응…”

루시엘은 고개를 내저으면서도 착실하게 손을 움직였다. 손을 뒤로 뺄 때면 기둥이 빠져나가며 내벽을 진득하게 끌었다. 삽입된 상태에서 빙그르르 한 바퀴 돌리면, 박혀있던 보석도 함께 회전하며 전립선을 거칠게 긁어내렸다.

왕홀이 애액으로 번들거렸다. 구멍 가장자리와 기둥 사이로, 점액질의 실타래가 가늘게 늘어졌다.

“이거 너무, 힘들… 하응! 윽!”

손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손바닥에 땀이 배어난 탓에 왕홀이 연신 미끄러졌다. 왕홀이 극점을 쿡쿡 건드릴 때면, 손끝이 빳빳하게 굳으면서 손에 힘이 풀렸다.

몇 번의 헛손질 끝에, 루시엘은 결국 완전히 지팡이를 놓치고 말았다. 왕홀이 대리석 바닥으로 떨어지며 쨍, 하는 맑은 소리를 내었다.

베넬은 왕홀을 다시 집어 드는 대신 제 바지를 풀어 내렸다. 이미 발기한 좆을 손으로 훑어 더 키우고는, 벌름거리는 입구에 가져다 대었다.

“이런 무기물보다는 진짜 좆이 먹고 싶은 거죠?”

“아니, 아니다! 그럴 리가…!”

베넬은 루시엘의 허벅지를 붙잡았다. 성기가 몸을 가르듯이 내벽을 뚫었다. 철벅이는 물소리와 함께, 좆이 잔뜩 달아오른 점막을 헤집어댔다. 자비라고는 없는 추삽질이었다.

폐제는 신하들 앞에서 시종에게 범해졌다. 인정사정없이 박히면서 앙앙 울었다. 그는 수치심과 아찔함에 몸서리쳤다. 아직 내벽에 남아 있던 정액이, 애액과 함께 사방으로 튀었다. 앞이 아닌 뒷구멍으로 파정하는 것 같았다.

“싫어, 제발… 이런 데에서는 싫어…!”

루시엘은 허리를 뒤로 빼었다. 이렇게라도 쾌감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곧 등받이에 몸이 닿았다. 등 뒤에는 높은 의자 등받이가, 앞에는 베넬이 있었다. 도망칠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달듯이 뜨거운 좆이 내벽을 쾅쾅 짓누를 때마다 쾌감이 벼락처럼 튀었다. 목구멍 너머에서 그렁거리는 신음이 터져 나왔다.

베넬은 루시엘의 안에 정액을 잔뜩 들이부었다. 이게 몇 번째 사정인지 기억도 희미했다. 내장을 핥듯이 흘러들어오는 정액을 느끼며, 루시엘 또한 오르가슴을 맞았다. 벌겋게 출렁거리는 시선들이, 사방에서 그의 몰락을 지켜보고 있었다.

베넬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좆을 잡아 빼었다. 욕심껏 성기를 삼켰던 뒷구멍이 속살을 헤벌렸다. 퉁퉁 부은 살들 사이로 정액이 졸졸 흘러나왔다. 황좌를 타고 흘러, 보드란 융단이 깔린 바닥으로 투둑 떨어졌다.

루시엘은 팔걸이에 걸린 다리를 얌전히 오므릴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는 잘게 몸을 떨며 헛숨을 들이켰다. 완전히 기력이 다한 것 같았다.

“오늘도 훌륭하게 업무를 끝내셨네요. 친히 신하들의 눈요깃감이 되어주시다니, 역시 성군다워요.”

베넬이 장난스레 박수를 보냈다. 그의 손에는 어느새 찬란한 왕관이 들려 있었다. 새벽의 빛 같은 머리칼 위로, 섬세하게 세공된 왕관이 씌워졌다.

루시엘은 무력하게 눈을 감았다. 낙망으로 덧칠된 얼굴은 곱상하고도 순연했다. 그는 정말이지 최고의 황제였다.

“주인님, 괜찮으세요? 얼굴이 빨개요.”

“…….”

베넬의 머릿속을 너무 열심히 들여다봤기 때문일까, 내 뺨도 상상 속 루시엘의 것처럼 발그스름하게 물들었다.

베넬은 대걸레를 든 채로 내게 성큼 다가왔다. 손바닥으로 이마의 열을 재려다가, 바로 앞에서 손을 거두었다.

“맞다. 카인 님이 만지면 죽인댔지….”

그가 조그맣게 웅얼거렸다.

“뭘 쳐다봐. 빨리 꺼져.”

나는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베넬은 곱게 꺼지는 대신, 갑작스러운 물음을 던졌다.

“이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으세요?”

“…날 놀리는 거야?”

언젠가 베넬이 이 질문을 할 거라고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게 하필이면 지금일 줄은 몰랐다, 나는 굳은 표정으로 베넬을 쳐다보았다.

“전 알고 있거든요. 그쪽이 탈출할 방법.”

베넬이 능글맞게 비식거렸다. 그의 시선은 내 얼굴에 머물다가, 느긋하게 하반신으로 내려갔다. 나는 베넬의 눈동자를 따라 고개를 수그렸다.

상상을 지켜보는 내내 아래에 피가 몰리는 느낌이 든다 했더니만, 역시나 바지 앞섬이 도드라져 있었다. 날 윤간하는 시종과 하인들의 얼굴에 카인을 대입하고 봤더니,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몸이 먼저 반응해버린 것 같았다. 베넬이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지금 할 말은 아닌 것 같네요. 몸이 진정된 후에 찬찬히 얘기해보도록 해요. 오늘이 어렵다면 내일도 좋고.”

베넬은 순진무구한 낯빛으로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는 대걸레로 바닥을 쓱쓱 밀며 청소를 이어 나갔다.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면서 말이다. 대걸레를 보니까 속이 막 울렁거렸다. 이제는 맨정신으로 대걸레를 쳐다보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황급히 침대에 드러누웠다.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어써서, 꼿꼿이 발기한 앞섬과 붉게 질린 얼굴을 한 번에 가렸다.

하복부는 갑갑하고, 심장은 쟁쟁 울어대는데 카인은 보이지 않았다. 언제쯤 도착할지 알 수도 없었다. 퇴근 시간이 훌쩍 넘었는데 소식이 없는 걸 보면, 뭔가 중요한 임무라도 수행 중인 듯했다.

정신이 아득했다. 지금 당장 카인에게 안기고 싶었다. 카인의 체온이 그리워 참을 수 없었다.

나는 잠시 주저하다가 아래로 손을 뻗었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베갯잇을 이로 사리물어 소리가 새어 나오는 것을 막았다. 바지 버클을 풀고 속옷 안쪽을 더듬었다.

베넬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심조심, 부풀어 오른 성기와 그 아래 회음부를 간질였다. 카인의 실루엣을 머릿속으로 생생히 덧그리며, 굼뜨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한 겹의 이불보가 무더운 욕망을 감춰주기를 바라면서.

카인은 불안했다. 루시엘을 억지로 제 곁에 붙잡아둔 이후로, 편히 잠든 날보다 뜬눈으로 밤을 새운 날들이 더 많았다. 이 관계는 언제 허물어질지 모르는 녹슨 다리 같은 것이라서, 한 번 잘못 내디디면 곧장 나락으로 처박히게 될 터였다.

카인은 루시엘의 마음이 진작 자신을 떠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흔해빠진 호감조차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 또한 모르지 않았다. 그는 다만, 루시엘의 육신만이라도 온전히 취하기를 원했다.

생기 없는 영혼일지라도 심장만 뛴다면 족하다. 책 사이에 짓눌려 바싹 마른 압화라도, 꽃의 형태만 남아 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제 손안에 영영 둘 수만 있다면, 향기 없는 꽃이라 해도 상관없다.

문제는 마음뿐이 아닌 몸마저 망가지는 경우다. 만약 루시엘이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한다면, 그리고 하필 그때 카인이 옆에 없어, 결국 자살에 성공하게 된다면… 카인도 그 즉시 루시엘을 따라 죽음을 선택할 것이었다.

캄캄한 무덤 속으로 스스로 기어 들어가, 낙담과 비관을 관뚜껑으로 삼아, 심장이 완전히 멎는 그 순간까지 피눈물을 흘릴 터였다.

그래서 카인은 시종을 고용했다. 혹시 모를 불상사를 막기 위해, 둘만의 신혼 방에 타인을 들였다.

웃는 얼굴이 천진한, 적발의 시종 베넬. 그는 전에도 루시엘을 보필한 바 있었고, 그 까다로운 루시엘에게 괜찮은 자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믿고 맡길 이유는 충분했다.

폐제의 시중을 들기 시작한 이래로, 베넬은 자잘한 사고 하나 일으킨 적이 없었다. 그는 적당한 선을 지킬 줄 알았다. 루시엘에게 손 하나 까닥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카인과 루시엘의 관계를 함부로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카인은 이제 그만 죽음의 망령에서 벗어나도 되었다. 루시엘이 어느 날 성큼 제 곁을 떠나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 고질적인 공포를 모퉁이에 구겨 넣고서, 오랜만의 평온을 즐겨도 될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인은 여전히 불안했다. 불안감은 커지면 커졌지 결코 줄어들지는 않았다. 카인은 베넬이 미덥지 않았다. 겉으로는 생글생글 미소 짓고 있지만, 속마음에서는 음험한 악취가 풍길 것 같았다.

번번한 근거라곤 없는 한낱 망상이었다. 실제 베넬의 행동은 흠잡을 데라고는 없었다. 카인도 제 생각이 쓸데없는 공상임을 모르지 않았다. 루시엘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필히 무너뜨려야 할 초라한 망상벽이었다.

그러나 머리로 아는 것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달랐다. 카인은 베넬을 도저히 신뢰할 수 없었다.

사실 이것은 비단 베넬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베넬 말고 다른 어떤 이가 시종을 맡았어도, 카인은 그를 믿지 못했을 것이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또 의심했을 것이다. 제 단잠을 갉아먹는 망상증을 어쩔 도리 없이 내버려 두면서.

카인은 루시엘과 시간을 많이, 더 많이 보냈다. 베넬과 루시엘이 함께하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였다. 기사단의 특성상 바깥 임무는 어쩔 수 없었지만, 사무적인 업무들은 전부 지하실에서 처리했다.

루시엘을 제 무릎 위에 앉혀놓고서 서류를 작성한 적도 있었다. 허벅지를 따라 퍼지는 가냘픈 온기를 느끼며, 카인은 그때 이런 생각을 했었다.

기사단 같은 거, 당장이라도 내려놓고 싶다고.

제국의 기사라는 칭호에 따라오는 명예도, 부단장으로서 누릴 수 있는 부와 권력도, 그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루시엘과 보내는 시간만이 삶의 유일한 가치였다.

그리고 그 생각은 날이 갈수록 굳건해졌다. 겹겹이 눌어붙은 마음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심장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았다. 지금처럼 유독 바깥일로 바빴던 날에는 더 그랬다.

모든 업무를 마친 후 뻐근한 몸으로 지하 계단을 내려가며, 카인은 생각했다.

먹고살 만한 돈은 이미 충분히 모았다. 과연 사임서가 수리될지는 모르겠지만, 가능하다면 내일이라도 사임을 하고 싶다. 그리하여 나 스스로를 지하실에 영영 감금하고 싶다. 그렇다면 남은 매 순간순간을 루시엘과 함께할 수 있겠지.

제국의 미래나 세상의 격변은 내 관심 밖이다. 그것은 타인의 세계다. 나와는 전혀 관련 없는 별개의 세상이다.

진짜 내 세계에는, 황제도, 총리도, 기사나 백성들도 없다. 올 풀린 햇살이나 잘게 갈린 별빛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단 한 명의 사람이 존재할 뿐이다. 잘 울고, 쉽게 부서지려 하고, 종종 빛바랜 웃음을 짓는 사람이.

루시엘. 나의 세계는 온통 루시엘로만 이루어져 있다.

햇살처럼 섬세하게 나풀거리는 속눈썹 아래, 별빛처럼 찬란하게 일렁이는 눈동자. 나를 키운 부모, 나와 함께 공원을 뛰어다녔던 형, 내가 섬겨야 했던 나의 주군, 촛불 아래에서 사랑을 맹세한 나의 배우자. 나를 무엇보다 증오하는 나의 적이자,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나의 연인.

내가 지켜야 할 것은 제국이 아니라, 제국에게 버려진 황제였다.

아, 역시 나는, 제국의 기사 같은 건 그만두고 싶다.

계단 하나에 짧은 생각 한 구절.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덧 문 앞에 도착했다.

카인은 지하실의 문을 열었다. 베넬은 루시엘과 멀찍이 떨어져 책장을 정리하는 중이었고, 루시엘은 이불을 덮어쓰고 꾸물거리고 있었다. 영상구로 봤을 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으나, 카인은 그 광경에서 날 선 이질감을 느꼈다.

영상구를 통해서는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요소, 냄새였다. 정사 직전의 열띠고 비릿한 내음이, 침대 시트에 진득이 고여 있었다.

두꺼운 이불 너머로 새어 나오는 살내음을, 카인은 어렵지 않게 잡아낼 수 있었다. 카인이기에 맡을 수 있는 옅은 향이었다.

“카인 님이 돌아오셨으니, 저는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베넬은 가볍게 목례를 하고서 자리를 떠났다. 베넬이 나가자마자, 카인은 이불보를 잡아 젖혔다. 발갛게 달떠있는 얼굴이 드러났다.

루시엘의 눈가는 조금 젖어있었다. 아래를 배회하는 손은 애액으로 눅눅했고, 판판한 가슴팍 위로는 분홍빛 돌기가 꽃망울처럼 툭 솟아올라 있었다. 무슨 심경으로 이런 짓을 저지른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어쨌거나 자위를 했다는 건 확실해 보였다.

고작 이불 한 자락으로 달아오른 몸을 가리고서, 시종이 있는데도 아래를 매만지다니. 저러다가 들키면 어쩌려고 했을까. 머리가 어지러웠다.

“루시엘, 대체 이게 무슨…”

카인이 질문을 끝마치기도 전에, 루시엘이 그의 말허리를 덥석 잡아채었다.

“너 때문이야. 섹스할 시간인데, 네가 늦어서…”

루시엘은 몇 마디 두서없는 말들을 덧붙였다. 네가 좋아서 이러는 건 절대 아니라고, 그냥 몸이 이상해져서 그런 거라고. 묻지도 않은 변명을 주워 삼키며 분한 듯 몸을 떨었다.

카인은 루시엘의 얘기를 순순히 믿어주었다. 그런 사실 따위야 질리도록 잘 알고 있었다. 루시엘은 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단지, 개발된 몸뚱이를 만족시켜줄 상대가 필요한 것뿐이었다. 그 상대가 카인이 아닐지라도, 루시엘은 신경 쓰지 않을 게 뻔했다.

예를 들어 베넬이 루시엘을 품는다 할지라도… 루시엘은 잘만 느낄 것이다. 할딱거리며 잇새로 신음을 토해낼 테다.

어쩌면 카인에게 안길 때보다 더 흥분할지도 모르겠다. 베넬은 루시엘을 배신하지 않았으니까. 루시엘의 자유를 앗아간 자는 바로 카인이니까. 싫어하는 상대한테 범해지는 것보다는, 인간적 호감이 있는 이에게 안기는 게 훨씬 나을 테지.

“변명할 필요 없어요. 다 알고 있으니까.”

그러니, 루시엘이 원하는 것을 줄게요. 작게 귀엣말하며 속옷을 끌어 내렸다. 단단하게 발기한 성기가 퉁 튀어나왔다. 혼자 오래 헤집어대어 느슨히 풀린 구멍에, 번들거리는 귀두가 닿았다. 바들바들 떨리는 안쪽을 파고들었다.

“아, 으읏… 응…”

“약간만 힘을 빼 봐요. 긴장 풀고, 천천히… 네, 그렇게요.”

뱃가죽과 가까운 쪽을 문지르자, 외마디 신음과 함께 상반신이 허물어졌다. 부푼 흉곽이 맞닿았다. 축 늘어진 루시엘이, 양팔을 들어 간신히 카인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열기 어린 숨결이 볼 언저리를 스쳤다. 쿵, 쿵, 서로의 심장 소리가 고막을 울렸다. 왜 몸을 꽉 겹쳐도 심장은 겹쳐지지 않을까. 카인은 당연한 사실을 괜스레 고민했고, 또 안타까워했다.

사랑해요.

몇백 번, 몇천 번도 더 읊조렸던 고백을 오늘도 한다. 그 말이 루시엘의 심장을 건드리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너저분한 소음으로만 남을 것임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사랑해요, 루시엘.

그래도 그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고백을 평생 할 것이다. 사랑하기에. 닿지 않을 고백이라도 내던지지 않으면, 주먹만 했던 심장이 자꾸자꾸 부풀어 오를 것 같아서. 심장이 자란다. 횡격막을 찢고 늑골을 깨부수고 가슴 전체를 가득 채운다. 쿵, 쿵, 터질 것 같은 박동음.

세상 그 무엇보다 당신을 사랑해요. 아니, 당신 외에는 사랑할 게 없어요.

연신 도망치려고 하는 가냘픈 허리를 잡아 밑으로 끌어당겼다. 그의 몸을 침대 위로 완전히 무너뜨리고, 체중을 실어 추삽질을 했다.

허공을 유영하던 새하얀 다리가, 카인의 허리에 감겼다. 루시엘은 카인의 몸에 바짝 매달렸다. 카인이 제 세상의 전부라도 되는 양, 그를 꼭 끌어안고서 흐느끼듯 신음했다.

“카, 카인… 나, 가아… 흐, 아아… 흐윽!”

루시엘은 곧 절정을 맞았다. 오르가슴 후의 사느란 쾌감이 등줄기를 타고 미끄러졌다. 삽입했던 성기를 뽑아내자, 부은 구멍 틈으로 정액이 꿈질꿈질 새어 나왔다.

루시엘은 팔다리를 늘어뜨린 채로 느릿하게 호흡을 골랐다. 작게 뻐끔거리는 입술을 엄지배로 매만졌다. 손톱 끝에 희끄무레한 호흡이 묻어났다. 단내가 났다.

“그래서, 오늘은 왜 이렇게 늦은 거야?”

루시엘이 물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집에 늦게 들어온 배우자를 나무라는 것처럼 여겨졌다.

“몬체니 왕국과의 친선 대회가 있었어요.”

“아, 그 검술 잘하기로 유명한 애들?. 넌 몇 등 했어? 우승했으려나?”

“네.”

카인은 가벼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딱히 기쁨이라고는 묻어나지 않는 무던한 말투였다.

“좋았겠네. 너 검술 좋아하잖아.”

루시엘은 이 말만 툭 던지고 카인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는 벽을 보고 누워 눈을 꾹 감았다. 그 희고 곧은 등을, 카인은 묵묵히 응망했다.

검술을 좋아했던 게 아니에요. 당신이 선물해준 검을 손에 쥐고 휘두르는 게 좋았을 뿐이에요.

목구멍에 걸린 밀어는 끝내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잘 자요.”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밤인사를 건넸다. 적막 속에 카인의 음성만이 나직하게 울렸다. 카인은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간에 루시엘은 지금 제 곁에 있으니, 그걸로 되었다고.

그때 루시엘은, 베넬의 제안을 곱씹어보고 있었다. …이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으세요? 악마의 꼬임처럼 사특한 목소리가, 또렷하게 귓가를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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