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화 (13/20)

INFORMATION

도 서 명. 나의 사랑하는 폭군 3권

11. 누군가의 형, 누군가의 연인

단테가 즉위한 지 벌써 여러 달이 지났다. 그간 해가 한 번 바뀌었고, 덩달아 계절도 바뀌어가고 있었다. 단테는 스물셋에서 스물네 살이 되었다.

황제의 일은 의외로 단테에게 잘 맞았다. 단테는 황좌에 앉음으로써 돕고 싶은 이를 맘껏 도울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그는 국고를 정비하고, 필요 없는 예산 낭비를 줄이고, 빈민 구제에 힘썼다. 영토 확장 같은, 역사에 길이 남을 공적은 세우지 못했다. 실은 세울 생각도 없었다. 강력하지는 않지만 온화하게, 그는 제가 원하는 나라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바라는 것을 이룰 수 있는 권력도 있다. 저를 믿고 따르는 수많은 백성들도 있다. 어릴 적 생이별했던 친모와도 다시 만났다. 오랫동안 그를 괴롭히던 시린 슬픔들은 완벽히 자취를 감추었다. 이제는 행복할 일만 남아 있었다. 순탄하게 닦인 넓은 길을, 부지런히 걷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자꾸만 발걸음이 멈췄다. 버려야 했던 과거가, 단테의 발목을 잡아매었다. 서늘한 손가락이 발목을 움켜쥐었다. 똬리를 튼 뱀처럼 단테를 놓아주지 않는 것은, 그의 형, 루시엘이었다.

단테가 마지막으로 루시엘을 마주했을 때, 루시엘은 겁에 질려 있었다. 짐승이나 할 법한 목줄을 차고서, 전신을 뻣뻣이 굳히고 있었다. 갈 곳을 잃은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는 단테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이상했다. 이런 건 루시엘이 아니었다. 그는 언제나 필요 이상으로 당당하고 거만했다. 폐제가 되어 병사들에게 끌려갈 때도, 바락바락 제 할 말을 쏟아내던 그였다.

대체 무슨 일을 겪으면, 한 인간이 저리도 달라질 수 있단 말인가. 순흔으로 얼룩진 목덜미를 생각하면 답은 금방 나왔다.

단테는 눈치는 조금 없었으나 바보는 아니었다. 성 경험이 없다고는 하나 그는 일단은 성인이었다. 키스 마크와 키스 마크가 아닌 것 정도는 구별하고도 남을 나이였다.

목에 남겨진 울혈을 인지하자, 그 전의 루시엘의 행동 또한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집무실에서 땀을 흘리며 앓는 신음을 토하던 루시엘. 당시 단테는 형이 정말 아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알았다. 그건 아팠던 게 아니라…

‘안 돼. 여기까지만 생각해. 더 이상 파고들려고 하지 마.’

단테는 의도적으로 생각을 멈추었다. 생각하는 것 자체가 루시엘에 대한 모욕 같았다.

단테는 루시엘을 잊으려고 했다. 그는 아버지를 독살한 패륜아였고, 한심하고 무능한 폭군이었다. 루시엘이 지하실에서 무슨 일을 당하든, 그것은 본인의 업보였다. 단테가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허나 루시엘은 계속해서 단테의 머릿속을 방문했다. 어릴 적, 단테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던 루시엘. 제가 세 살 더 많다고, 형답게 행동하려고 노력하던 어린 루시엘…. 부스러진 먼 옛날의 추억들이, 먼지처럼 망막 위로 내려앉았다.

눈 속이 아릿했다. 눈가가 금세 볼그족족하게 물들었다. 심장을 모조리 헐어버릴 것 같은 슬픔이, 단테의 여린 마음을 연신 후려쳤다.

그날 밤, 단테는 드물게 꿈을 꾸었다. 루시엘이 나오는 꿈이었다.

루시엘은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마치 아이처럼 어깨를 들썩이며, 고인 눈물을 닦을 생각도 못 하고 흐느끼고 있었다.

가깝지도, 그렇다고 멀지도 않은 거리였다. 손을 뻗으면 심장 근처를 더듬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깨진 유리 조각처럼 재잘대는 심장을, 가만가만 다독여주고 싶었다.

단테의 손이 꿈의 파편을 더듬듯, 루시엘에게로 다가갔다. 힘없이 쌕쌕거리는 흉부에 손이 닿기 직전, 그는 황급히 손을 거두었다.

단테는 지그시 루시엘을 내려다보았다. 어둑한 꿈속에서도 그의 낯은 싱그럽게 빛났다. 잔뜩 씹히고 깨물린 목덜미가 눈부셨다.

단지 목뿐이 아니었다. 가는 손목과 발목, 곧고 마른 등과 허벅지 안쪽, 얇은 속살마다 울혈이 새겨져 있었다. 이와 입술로 수십 번 짓눌려 생긴 피멍이었다.

정사의 여흔들이 포개진 나신은, 물감이 여러 겹 덧칠된 유화마냥 아름다웠다. 시선을 사로잡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시선을 어디에다 둘지 모르게 만드는 몸이었다.

하지만 단테는 루시엘의 몸을 보며 욕정을 품지는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욕정을 느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단테는 그의 몸에 새겨진 자국들을, 순흔이 아니라 상흔으로 인식했다. 성교의 흔적이 아닌, 순수한 폭력의 결과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렇게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때, 루시엘이 고개를 들었다. 석류알 같은 눈동자가 단테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책망과 증오, 절망과 서러움이 질게 들러붙은 홍채. 그 물기 어린 눈매가 예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단테는 눈을 떴다. 감기에 걸리지도 않았는데 이마가 지끈거렸다. 그는 비척이며 욕실로 가 목욕을 했다. 추운 새벽의 따스한 목욕은, 정신을 이완시켜주는 효과가 있었다.

그는 가운을 입고, 물에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대강 털었다. 수증기로 흐릿해진 거울 속, 물먹은 회색 머리칼의 사내가 뿌옇게 비쳤다. 붉게 빛나는 눈동자가, 꿈에서 봤던 형의 핏빛 눈과 겹쳐 보였다. 둘 다 슬픈 눈을 하고 있었다.

단테는 저와 형이 많은 부분에서 다름을, 그러나 비슷한 면 역시 존재함을 인지했다. 이러니저러니 하도 그들은 가족이었다. 같은 아버지의 피가 섞인 이상, 단테는 결코 형을 내버려 둘 수 없었다.

한 편으로 단테는, 이 모든 게 자신의 착각에 불과하기를 바랐다.

사실 그 잇자국은 섹스 중에 생긴 게 아니라, 늑대 수인인 카인이 이갈이를 하면서 루시엘의 목을 물어뜯은 것이라던가. 루시엘이 차고 있던 목줄 역시, 카인이 수인 기준에서 예쁜 악세사리를 골라 선물한 것이라던가. 여행을 갈 때 굳이 루시엘을 동반한 이유는, 주인의 애정과 돌봄이 필요한 반려동물이라서…. 카인이 들었다면 정색을 했을 가설이었다.

혼자서 끙끙 머리를 싸매봤자 달라지는 건 없었다. 루시엘이 지금 어떤 상황에 봉착했는지, 직접 확인해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단테는 황제였고, 황실의 모든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가지고 있었다. 그 열쇠는 황권의 상징 같은 것이었다.

단테는 서랍 깊은 곳에서 열쇠를 꺼냈다. 문을 열면 과연 무슨 광경이 펼쳐져 있을까. 단테의 빈약한 상상력으로는, 족쇄에 매여 우는 루시엘 정도밖에 떠올릴 수 없었다.

그럼 그는 울먹이는 형을 토닥이고,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줄 것이다. 형이 겪었던 일들을 찬찬히 들어본 후, 사태가 심각하다면 형을 밖으로 빼낼 것이다.

물론 대놓고 형을 감금에서 해방시킬 수는 없었다. 그것은 저를 황제로 추대한 이들을 배신하는 행위였다. 여러모로 물의를 빚을 게 뻔했다. 하지만 적어도, 남몰래 탈출을 도울 수는 있을 테였다.

단테는 난간을 꼭 붙잡고, 조심스레 지하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은 무척이나 가팔랐다. 신체 능력이 인간보다 원활한 카인은 상관없겠지만, 보통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계단을 디뎌야 했다. 까닥 잘못했다가는 아래로 굴러떨어질지도 몰랐다.

느린 속도로 부단히 한 시간쯤 걸었을까. 마침내 계단의 끝이 보였다. 견고한 철문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단테는 은회색으로 반짝이는 열쇠를 꺼내 들었다. 열쇠를 문구멍에 찔러넣고 힘을 주어 돌렸다. 달칵. 열쇠 면과 바닥 핀이 맞물리며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땀이 축축이 배어난 손바닥으로 문고리를 잡아 쥐었다. 문고리를 잡아 돌리며 느리게 문을 밀었다. 쇠문은 육중했고, 문을 여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힘이 소모되었다. 루시엘이었다면 열쇠가 있어도 힘에 부쳐 나가지 못했을 것 같았다.

단테는 문을 아주 살짝만 열고서, 문과 문틀 사이의 공간에 눈을 가져다 대었다.

‘아…?’

이마에 맺힌 땀이 관자놀이를 따라 흘렀다. 그의 눈빛이 진자처럼 흔들렸다. 받아들이고 싶지도, 쉽게 받아들일 수도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더운 살내음과 비릿한 정액 냄새가, 방 안을 안개처럼 떠돌았다. 곳곳에 체액들이 눌어붙어 있는 방바닥과, 한가운데 놓인 큼지막한 침대. 이불은 돌돌 말려진 채 침대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구겨진 시트 위로 투명한 얼룩이 번져나갔다. 그리고 또, 침대 위에는…

단테는 눈을 감았다. 거꾸로 숫자를 세고서 다시 눈을 떴다. 제가 본 게 망막에 맺힌 환상이기를, 눈꺼풀을 닫았다가 열면 굴러떨어질 이슬 같은 것이기를 바랐다. 그러나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침대 위, 그의 형과, 형의 호위 기사였던 이가 몸을 겹치고 있었다. 침대 헤드를 구명줄마냥 부여잡은 가냘픈 몸뚱이 위로, 탄탄한 육체가 포개어졌다.

단테는 형의 옆얼굴을 볼 수 있었고, 그의 오른뺨이 눈물로 젖어가는 것 역시 볼 수 있었다. 반대편의 왼뺨도 울음으로 발갛게 물들어있을 터였다.

카인이 루시엘의 둔부를 양손으로 잡아 벌렸다. 넓게 열린 곳에 더욱 깊이 좆을 찔러넣었다. 살기둥이 푹 들어갔다. 한껏 벌어진 구멍을 엄지 배로 간질이자, 루시엘이 컥컥대며 헛기침을 토해냈다. 마른 아랫배가 성기의 윤곽대로 불룩 튀어나왔다.

헤드를 잡고 있는 손이 미끄러졌다. 시트 위로 팔이 툭 떨어짐과 동시에, 상반신이 와르르 무너졌다. 루시엘은 시트에 이마를 비볐다. 엎드려서 엉덩이만 높이 쳐든 자세로, 사내의 욕망을 고스란히 받아내었다. 그는 시트를 사리물고 신음을 참았다.

그러니 저것이 섹스일 리 없다고, 단테는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섹스는 사랑하는 두 연인이 몸을 섞는 행위다. 서로를 상냥하게 애무하고 배려하며, 부드럽게 허리를 쳐올리는 것이다.

단테의 기준에서, 눈앞의 성교는 단순한 폭력이었다. 몸 밖에 키스 마크라는 이름의 붉은 멍을 남기고, 칼이 아닌 성기로 몸 안을 사납게 난도질한다. 이게 폭력이 아니고 무어란 말인가. 지금 당장 이 행위를 멈추게 해야 했다. 일대일로는 카인을 이길 수 없었지만, 황명을 들먹인다면 어떻게든 될 거였다.

단테가 방 안으로 막 발을 내딛는 순간, 루시엘이 물고 있던 천을 놓쳤다. 입 안을 맴돌던 신음이 타액과 함께 밖으로 줄줄 흘렀다. 단테가 예상했던 고통스러운 신음은 아니었다. 통증과는 거리가 먼 간드러지는 교성이었다.

“아, 하읏, 으응…! 그, 그만해… 나, 나 또 가버렷… 흣, 흐에… 방금 전에 갔는데에… 또 가앗… 하응!”

쾌감으로 범벅이 된 신음을 듣는 순간, 애써 덮어썼던 편견의 베일이 일순간에 벗겨졌다. 그러자 그간 보지 못했던, 아니, 보았어도 의도적으로 회피했던 요소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랫배에 닿을 정도로 발기한 루시엘의 성기나. 둥그렇고 빳빳이 세워진 발등 같은 것들.

“그렇지만 좋아하잖아요. 계속 가는 거.”

“그, 그래도… 너무 힘, 들엇… 아앗, 흑, 너무 많이… 가버려서… 흐익-!”

루시엘이 울고 있는 이유는 과도하게 느껴서였다. 찡그려진 눈가는 아픔이 아닌 쾌감 때문이었다. 한때 제가 기르던 늑대에게, 개처럼 엎드린 자세로 범해지면서, 루시엘은 명백히 흥분하고 있었다.

흉기에 가까운 크기의 성기가 전립선을 도려내듯 찌를 때마다, 그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서 후들거렸다. 주름이 쫀득하게 살기둥을 빨아들였고, 구불구불한 내벽이 진득하게 귀두에 붙었다가 느리게 떼어졌다. 애액이 찰박이며 사방으로 튀었다. 몸의 반응만 고려한다면, 강간보다는 화간에 가까울 성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이런 걸로 느낄 수 있지? 어째서 저렇게 녹아내릴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만져주지도 않은 좆을 꺼떡이면서….

“말도 안 돼, 거짓말….”

지나치게 당황한 탓일까. 생각으로만 해야 했을 말이 입 밖으로 나와 버렸다.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카인이 듣지 못할 만큼은 아니었다.

사랑스러움을 가득 담아 루시엘을 응시하던 눈초리가, 삽시간에 매섭게 가라앉았다. 제 욕망을 그대로 드러난 금빛 눈동자가, 사념을 차곡차곡 쌓아둔 핏빛 눈동자를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단테는 문틈으로 발을 내민 그 상태로 굳어버렸다. 깨질 대로 깨진 표정에 다시금 균열이 갔다. 루시엘이 단테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는 게, 유일한 안도가 되어 주었다.

카인은 루시엘의 등 위로 상체를 숙였다. 추삽질을 이어가며, 발갛게 물든 귀에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루시엘, 보세요.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왔어요.”

“…뭐, 라고…?”

턱이 붙잡혔다. 강제로 돌려진 고개가 단테를 향했다. 두 개의 붉은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열락으로 흐릿했던 루시엘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부릅떠지는 것을, 단테는 어쩔 도리 없이 지켜보았다.

“단, 테….”

시선이 전율했다.

“보지 마, 보지 말라고…!”

루시엘은 필사적으로 몸을 비틀었다. 카인에게서 벗어나, 저편에 있는 이불을 끌어 나신을 가리려고 했다.

카인이 루시엘을 잡아 눌렀다. 파득거리는 그를 끌어당기듯 안아 들어, 제 무릎 위로 올려놓았다. 단테에게 보여주려는 듯, 몸이 정면을 향했다. 가는 발목을 잡아 양옆으로 크게 벌렸다. 감추고 싶었던 치부가, 타인의 눈앞에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성기가 뽑혀 나간 구멍에서 희멀건 물방울이 방울져 떨어졌다. 사정의 여운으로 점막이 안타깝게 움찔거릴 때마다, 정액 덩어리가 빠끔거리는 애널 사이로 떠밀려 나왔다. 속살을 내보이는 너절한 구멍과, 틈새로 흐르는 하얀 액체. 그 어지러운 색의 대비에서, 단테는 도무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보면 죽일, 죽여 버릴 거야… 빨리 나가, 어서…!”

살벌한 문장이었지만, 훌쩍이며 말한 탓에 협박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나가는 것은 쉬웠다. 두세 발짝만 뒤로 물러난 후, 조용히 방문을 닫으면 끝이었다.

그 간단한 일을 해내는 게, 왜 이리도 어렵게 느껴지는 걸까. 단테는 그 이유를 가족애에서 찾았다. 형제의 고통을 미처 외면할 수 없어서, 계속 같은 곳에 발을 붙이고 서 있는 것이라고.

카인은 루시엘의 턱을 잡고, 고개를 돌려 입을 포개었다. 평균보다 약간 서늘한 카인의 입술과, 연신 더운 숨을 토해내는 루시엘의 입술. 온기가 한쪽으로 흘러갔다. 맞닿은 자리가 곧 비슷한 체온을 띠었다.

물렁한 혀끝으로 입술을 할짝거리다가 입술 사이의 좁은 틈새를 파고들었다. 사탕을 핥듯 송곳니를 더듬고 입천장을 간질였다. 단단한 치아가 여린 살덩이를 으스러뜨리지 않으리란 신뢰는, 얼마나 알량하고도 우스운 것인지.

그러나 카인은 루시엘을 믿었다. 지금의 그는 절대 카인의 혀를 깨물 수 없었다. 수치심으로 얼굴을 붉히면서도, 입을 열어 타액과 숨결을 받아 마실 수밖에 없었다. 학습된 무기력이란 그런 것이었으니까.

각도를 바꾸어 다시금 혀를 밀어 넣을 때마다, 떨어지고 다시 맞물리는 입술에서 물소리가 났다. 질척한 물소리가 달아오른 입안을 울렸다.

카인은 루시엘의 무릎 뒤를 양팔로 잡고는, 몸을 위로 들어 올렸다. 선액으로 번들거리는 성기의 끄트머리가, 정액을 둔하게 게워내는 입구를 꾹 눌렀다. 그래, 입구. 단테는 제 형의 뒷구멍을 ‘입구’라고 인식했다.

그곳은 무언가를 집어삼키기 위해 존재했다. 도톰하게 부푼 애널이 뻐끔거리며 귀두에 달라붙었다. 혼란에 빠진 단테를 종용하는 듯, 카인은 부러 평소보다 느리게 성기를 밀어 넣었다.

“시, 싫어! 흐윽! 읍!”

루시엘이 비명을 지르며 다리를 버둥거렸다. 고함과 함께 띄엄띄엄 열 오른 숨을 뱉어내었다. 그는 접합부를 가리려고 했지만, 손이 파르르 떨려 잘 되지 않았다.

‘…저렇게 큰 게… 들어가는 건가….’

좆이 깊이, 더 깊이 박혔다. 구멍이 오물거리며 익숙하게 살기둥을 받아 물었다. 쿵, 쿵, 제 자신의 심장 박동이 비정상적일 만큼 크게 들렸다. 흐늘흐늘 녹아버린 심장이, 고막에 눌어붙어 뛰는 것 같았다.

성기가 절반보다 조금 더 들어갔을까, 카인은 루시엘의 골반을 세게 잡고서, 내리누르듯 힘을 주었다. 남은 부분이 뿌리까지 한 번에 밀어 넣어졌다. 물기가 밴 살과 살이 부딪히며 야릇한 물소리를 만들어내었다.

루시엘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고개를 뒤로 젖혔다. 아랫배가 뜨겁게 작열했다. 높은 탑 꼭대기에서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들판으로, 육체와 영혼이 함께 추락하는 기분이었다.

“흐, 읏, 아아… 하윽!”

눈앞이 일순 까맣게 명멸했다. 단숨에 꿰뚫린 감각을 전신으로 느끼며, 루시엘은 이복동생이 보는 앞에서 파정했다. 그는 끝까지 삽입된 것만으로 절정을 맞았다.

힘이 들어가 바들바들 떨리는 복부 위로, 백탁액이 흩뿌려졌다. 하도 많이 사정한 탓에, 물에 가까운 멀건 우윳빛을 띠고 있었다. 흐릿해진 눈동자에 초점이라고는 없었다. 정신을 거의 놓아버린 것 같았다.

“일어나요. 루시엘.”

혼절하기 직전의 루시엘을 체벌하듯, 카인의 손바닥이 그의 아랫배를 꽉 눌렀다. 그 반동으로 성기를 물고 있던 구멍이 더욱 꽉 조여들었다. 문 쪽에 서 있는 단테마저 알아차릴 만큼, 분명한 변화였다.

카인의 손끝이 배에서 가슴으로 올라갔다. 선홍빛으로 달아오른 돌기를 지분거리다가 세게 꼬집었다.

아악! 루시엘은 소스라치는 신음을 토해내었다. 흥분을 녹녹히 머금은 낯은 발그스레한 빛을 띠고 있었다. 방금 파정한 성기가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그는 가슴을 만져지는 걸로도 느끼고 있었다.

단테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버려진 폐건물처럼, 두 눈 사이에 실금이 그어졌다.

그는 차라리 구토를 하고 싶었다. 어지러운 감정도 부글거리는 열기도 남김없이 토해버린다면, 울렁이는 마음을 조금이나마 잠재울 수 있을 것 같았다. 허나 구역질은 나오지 않았다. 그가 눈앞의 장면들을, 역겹다고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매끄러운 육체가 조명을 받아 새하얗게 반짝였다. 접합부에서 찰박이는 물소리가 들렸다. 깊게 꿰뚫릴 때마다, 퉁퉁 부은 구멍에서 정액과 장액이 섞여 흘러내렸다. 그 허여멀건 체액은, 루시엘의 둔부는 물론이고 카인의 음모까지도 적시고 있었다.

루시엘은 보지 말라는 말을 호흡처럼 뱉어냈다. 팔꿈치로 제 눈을 덮으며 흐느껴 울었다. 그 눈물을 이루는 것은 고통이 아니었다. 쾌감과 수치심이 물방울의 형태로 농축되어, 뺨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어쩌면 사실 보여지는 걸 즐기고 있나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단테는 고개를 뒤흔들었다. 불필요한 상념을 간신히 떨쳐내었다. 그는 엉킨 머릿속을 가다듬고서, 사뭇 단호하게 말했다.

“당장 멈춰라. 싫어하는 이를 강제로 취하다니, 네가 그러고도 제국의 기사더냐! 네놈은 황실의 기사 부단장이다. 단원들에게 모범을 보이지는 못할망정…”

“싫어한다, 라.”

카인의 눈매가 설핏 가늘어졌다. 그는 루시엘의 팔을 잡아 치웠다. 힘겹게 감싸고 있던 얼굴이 똑똑히 드러났다. 꺾인 꽃처럼 떨궈진 고개를 들어 올려, 정면을 보게 만들었다.

“폐하는 이 얼굴이 정녕 싫어하는 이의 것으로 보입니까?”

카인이 스산하게 물었다.

쾌락으로 젖어든 긴 눈매와, 열락으로 일그러진 눈썹. 가늘게 뜨인 눈꺼풀 아래로, 붉은 눈동자가 파헤쳐진 과실처럼 일렁였다. 제대로 갈무리하지 못한 혀끝이 쾌감에 저려 경련하고 있었다.

“제 눈에는 좋아 죽으려는 걸로 보입니다만.”

그가 시망스럽게 덧붙였다.

“그, 그건… 어쩔 수 없는 몸의 반응이지 않은가.”

“정 그렇다면 루시엘에게 직접 물어보도록 하죠. 강간인지, 화간인지.”

파르스름한 숨결이 루시엘의 귓바퀴를 스쳤다. 루시엘이 목을 긁는 쇳소리를 내었다.

“이런 건 싫어요? 말해보세요, 루시엘.”

카인이 바짝 하체를 붙였다. 퍽, 하는 소리가 더운 공기를 흔들었다. 루시엘은 가느다란 교성을 내질렀다. 마른 가슴팍이 경련하듯 튀었다. 두 손으로 볼기를 들어 올렸다가 아래로 내리칠 때마다, 그리하여 성기가 결장 부근을 도려내듯 들쑤실 때마다, 내동댕이쳐진 발끝이 둥글게 말렸다.

“시, 싫…”

젖은 입술을 달싹이며, 그가 말했다. 물기가 눅진히 밴 음성으로.

“싫, 지 않아… 조, 좋아… 흐, 으응, 흡… 안쪽, 쿡쿡 찔러져서… 기분 좋아… 흐엣, 하앙! 악!”

아마 이 말은, 온전한 진실은 아닐 것이었다. 쾌락으로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아무 말이나 중얼거린 게 확실했다. 폐허처럼 허물어진 눈동자가 그 증거였다. 그의 시선 끝에 이미 단테는 없었다.

말문이 막혔다. 반박할 수가 없었다. 본인들이 화간이라고 주장하는 일에, 단테가 함부로 끼어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상대는 카인이다. 단테를 황좌에 올리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자다. 카인이 루시엘을 소유하게 된 것도, 그 공을 인정받아서가 아니었던가. 실제 관계가 어쨌든, 겉으로 보았을 때 카인은 황제의 충신이었다. 충신에게 내린 상을 도로 뺏는다니, 이치에 맞지 않았다.

“형의 안부가 궁금해서 오신 것 같은데, 루시엘은 잘 지내고 있습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카인의 어조는 평이했다. 대수롭지 않은 일을 말하는 듯 무던한 말투였다.

단테는 두 사람의 모습을 망연히 응시했다. 즉위한 지 처음으로 느끼는 무력감이, 그의 마음을 옭아매었다. 작금의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애당초 이 방 자체가 그가 있을 만한 공간이 아니었다.

단테는 몸을 돌렸다. 도망치듯 방 밖으로 뛰쳐나갔다. 더 오래 이곳에 머물렀다가는, 그 역시 비정상의 범주에 속하게 될 것 같았다. 루시엘의 달뜬 신음이 그림자처럼 등 뒤에 달라붙었다. 떼어내고 싶어도 쉽게 떨어지지 않을, 악몽이자 아름다운 환상이었다.

어떻게 처소로 돌아왔는지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 단테는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찬물로 샤워를 했다. 홧홧한 머리를 식히고서, 냉정하게 상황을 되돌아보려고 했다.

루시엘은 성적으로 괴롭힘당하고 있다. 그건 확실했다. 그리고 단테는 루시엘의 유일한 혈육으로서, 형을 구할 의무가 있었다. 황제로서 직접 이 일에 관여할 수는 없겠지만, 조력자를 보내어 몰래 폐제를 빼내는 건 가능했다.

단테는 곧 그럴싸한 계획을 떠올렸다. 루시엘을 돌볼 시종을 보내는 것이었다.

카인이 루시엘을 돌본다고는 하지만, 그는 황실의 기사 부단장이다. 일정상 늘 루시엘 옆에 있을 수는 없다. 루시엘의 편의를 위해서라도 시종은 꼭 필요한 존재였다. 명분은 충분했다. 남은 일은 시종을 고르고, 시종에게 황제의 비밀 칙서를 전달하는 것뿐이었다.

‘시종은… 전에 형의 전속 시종이었던 베넬이 좋겠다.’

단테는 즉시 책상 앞에 앉았다. 깃털 펜과 종이를 꺼내 들고서, 깔끔한 필체로 지령을 적어 내렸다.

자신의 모든 행동은 형제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단테는 생각했다. 정욕을 근간으로 둔 같잖은 질투심 따위가 아니었고, 아니어야만 했다.

그 증거로 보라, 꿈에 나신의 루시엘이 나왔을 때, 자신은 그에게 손 하나도 까닥하지 않았다. 외려 형을 걱정하고, 형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지하실을 찾았다. 자신이 진정 형에게 욕구를 품었다면, 꿈속의 루시엘에게 입부터 맞추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자 마음이 평온해졌다. 단테는 시종을 부르는 줄을 당겼다. 씰링으로 봉한 봉투를 건네며, 베넬에게 이걸 전해 달라 명령했다.

시종은 두 손으로 공손히 봉투를 받아들었다. 그 안에는 황제의 밀서가 담겨 있었다. 평범한 시종인 척 카인을 속이고, 루시엘을 구출하라는 내용이었다.

‘내가 미쳤지.’

나는 애꿎은 벽에다가 쾅쾅 머리를 박았다. 이번만은 연기가 아니고 실제였다. 물론 이마에 피가 나는 연출이 필요하기는 한데, 가짜 피는 흑마법으로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다. 굳이 직접 머리를 찧어댈 필요는 없었다.

카인이 있었다면 곧장 나를 말렸겠지만, 카인은 방금 전 황제의 부름을 받고 나갔다. 나는 네다섯 번 정도 더 벽을 들이박은 후, 씨근거리며 침대에 드러누웠다.

‘내가 어쩌자고 단테에게 그런 꼴을 보여줬을까.’

섹스 중 단테가 난입하는 것도 계획의 일부긴 했지만, 단테 앞에서 이렇게까지 잘 느끼고 싶진 않았다. 이번 일은 카인 잘못이 크다. 전생의 기억도 없으면서, 왜 이렇게 섹스를 잘하는 거야? 물론 그게 싫다는 건 아니다. 섹스를 잘하는 건 당연히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단테가 너무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내 착한 동생은 순박한 게 매력인데, 이러다가 새로운 무언가에 눈 뜨게 되면 어떻게 하냔 말이다.

피가 섞인 가족은 아니었어도, 나는 단테를 온전한 가족애의 의미로 아끼고 있었다. 동생을 그릇된 길로 이끌 수야 없었다. 비록 나는 근본부터 글러 먹었지만, 동생은 온실 속 백합처럼 순수하게 자라줬으면 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지켜보는 사람이 있어서 더 흥분한 것 같기도 하다. 이런 형이라서 미안할 따름이다.

흑마법을 써서 기억이라도 지워줘야 하나? 좋아. 그게 낫겠다. 지울 수 있다면 말이다.

흑마법으로 모든 기억을 삭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을 이루는 뿌리가 송두리째 흔들릴 만큼 묵직한 기억은, 아무리 뛰어난 흑마법사라도 제거하지 못한다. 이 기억이 단테한테 그 정도까지는 아니기를 바란다.

내가 곰곰이 자기반성을 하고 있던 와중, 천장의 조명이 규칙적으로 깜빡였다. 내가 마법으로 만들어낸 출입자 탐지기였다. 카인이 문 앞에 다가오면 세 번 점멸하게 설정해 놓았다.

나는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내 피가 옅게 묻어있는 벽으로 가서, 다시 열심히 머리를 박았다.

“루시엘, 이게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카인의 안색이 파리하게 질렸다. 잠시 실랑이가 이어졌고, 나는 곧 카인에게 제압당했다. 카인은 서랍 맨 밑 칸의 약을 꺼내 내 이마에 발라주었다. 여기까지는 예상했던 전개.

카인은 머뭇거리다가 초상화 한 장을 내 손에 쥐여 주었다. 빨간 머리와 주근깨를 가진, 장난기 어린 미소의 청년이 거기에 있었다. 이것도 계획했던 그대로의 전개. 일이 술술 잘 풀려가고 있었다.

“황제가 시종을 들이라고 하기에 단칼에 거절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시종이 필요할 것 같아요. 내가 없을 때에 루시엘이 자해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카인의 목소리가 얕게 떨렸다. 황제 앞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던 그는, 내 작은 타박상 하나에 쉽게 무너졌다. 나는 신벌에서 카인을 구하기 위해, 또다시 카인의 마음을 아프게 해버렸다. 미안해, 라는 말은 입속으로만 중얼거릴 수 있었다.

“예전에 내 전속 시종이었던 베넬이네. 베넬이라면 뭐, 믿을 수 있지. 괜찮은 녀석이야.”

나는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했다.

기실 베넬은 상당한 이상 성욕자였다. 카인이 수인이라는 게 밝혀지기 전, 황제와 늑대가 붙어먹는다는 헛소문을 퍼뜨린 것도 그였고… 신이 꿈의 형태로 윤간당하는 계시를 내렸을 때, 꿈속에서 가장 열심히 날 범한 것도 그였다.

베넬의 음담패설을 참지 못한 카인이, 베넬의 어깨를 물어뜯은 적도 있다. 그 기억은 흑마법으로 깨끗하게 치워버렸다. 지우는 데 다소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말이다.

“루시엘이 그렇게 말한다면… 좋아요. 시종을 들이기로 해요.”

카인이 찬찬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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