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6/20)

4. 푸른 장미

푸르스름한 새벽이었지만 암시장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그들 중 맨얼굴을 드러낸 이는 아무도 없었다. 떳떳하지 못한 자들이 불법적인 물건을 사려고 모이는 곳이다. 당당하게 낯짝을 내놓고 다닐 수야 없었다.

카인은 클로크에 달린 후드를 푹 눌러쓴 채, 사람들 사이로 스며들었다. 파리한 빛으로 얼룩진 인파를 헤쳐 나아가며, 그가 원하는 것을 찾아 헤맸다.

인어고기, 요정의 미라, 유니콘의 뿔. 저주 인형과 죽음을 불러오는 반지. 별의별 기괴한 상품들이 통로 양쪽에 늘어져 있었지만, 카인이 바라는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카인은 흑마법사가 만들어낸 물건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건, 사기꾼이 엉성하게 따라 만든 모조품밖에 없었다. 뭣도 모르는 이들은 그 가짜배기에 속아, 덥석덥석 계산을 하기 일쑤였다.

‘진짜 흑마법사는 없는 건가? 암시장에도 보이질 않다니. 하긴, 흑마법 취급을 보면 알 만하지.’

흑마법은 신의 반대편에 선 학문이다. 아니, 학문이라고 칭할 가치도 없는 죄악이다. 흑마법사는 멋대로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고, 기억을 조작하고, 환각과 환청으로 사람을 홀린다. 진실을 감추는 것은 그들의 특기였다.

가장 문제시되는 것은 타인의 생각을 읽는 행위다. 고귀하신 신마저도, 제 피조물의 속마음을 온전히 들여다보지는 못한다. 신도 하지 못하는 일에 감히 손을 댄다니. 신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짓이었다.

이런 여러 이유로, 흑마법은 사회에서 철저하게 배척되었다. 흑마법사라는 게 밝혀지면 최소 교수형에 최대 화형이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정체가 들키면 결코 사형을 피할 수 없었다.

흑마법사에게 죽음 외의 형벌이 내려진 적이 딱 한 번 있기는 했다.

백 년 전 즈음, 이성을 잃은 흑마법사가 신전에서 난동을 부린 적이 있었다. 그는 신상에 돌을 던지면서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빌어먹을 신 때문에, 나의 클로에가 죽었다고. 연인을 앗아간 신을 증오한다고.

그는 곧 신관들에 의해 제압당했다. 그의 죄질은 무거웠다. 흑마법을 익혔을뿐더러, 신전에 무단으로 침입하기까지 했다. 저자는 화형에 처해야 마땅하다고, 모두가 생각하고 있을 그때,

웬일인지 신이 직접 계시를 내렸다. 계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흑마법사를 신전 기둥에 묶어놓고, 새하얀 생명의 액으로 그의 영혼을 정화시켜라.’

그래서 신관들은 충실하게 신의 명령을 이행하려 했다더라, 가 고서에 기록된 전부였다. ‘새하얀 생명의 액’이 뭔지 호기심이 일었지만, 책에 그 이상의 정보는 나와 있지 않았다.

카인은 그 책을 역사 깊은 고서점에서 찾았다. 그는 흑마법에 관한 자료들을 닥치는 대로 수집하고 있었다.

황실 도서관은 물론이고, 고서점, 책 수집가의 서재, 금서를 보관해놓는 창고까지. 참고할 만한 문헌이 있는 곳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든 발을 디뎠다. 수감된 흑마법사를 찾아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가 흑마법을 조사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흑마법의 힘을 빌린다면, 루시엘과의 관계를 진전시킬 수 있으리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흑마법의 기초는 남을 속이는 데에 있다. 최면술도 흑마법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다. 최면술이라면 이 답 없는 문제를 일시적으로나마 해소해 줄지도 모른다. 물론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카인의 숨통은 트일 것이다.

카인은 진짜 흑마법사가 만든 물건을 구분하는 법을 배웠고, 흑마법사가 종종 암시장에 나타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암시장이 열리는 시간과 장소는 날마다 달라졌다. 암시장의 정보는 암호의 형태로 은밀히 전해졌기에, 암호를 모르면 정보를 얻어도 소용이 없었다.

카인은 하루를 꼬박 새워 암호 해독에 성공했다. 8월의 첫 번째 금요일, 새벽 5시, 이라스 산 중턱에 설치된 포탈 안. 운이 좋다면 그곳에서, 흑마법사와 거래를 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럴 터였는데….

‘완전 허탕이군.’

가판대를 모조리 둘러보았건만, 그럴듯한 상품은 보이지 않았다. 카인은 쯧 혀를 찼다. 그는 출구 쪽으로 몸을 돌렸다. 막 발걸음을 떼려고 하는 찰나,

“어이, 형씨.”

누군가가 카인의 옷자락을 세게 잡아당겼다.

“형씨가 찾고 있는 물건, 내가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검은 로브로 머리칼을 가리고, 흰 가면으로 얼굴을 완전히 숨긴 남자. 음성 변조 마법이라도 쓴 걸까. 남자의 목에서는 긁는 듯한 기묘한 소리가 났다.

카인은 눈가를 옅게 찡그리고서 그를 아래위로 훑었다. 그의 키는 평균과 엇비슷했으나, 카인에 비해서는 한참 작았다. 펑퍼짐한 로브를 입고 있는데도 몸선이 얇다는 게 티가 났다.

독한 향수를 뿌린 건지, 아니면 향수가 채워진 욕탕에 들어갔다가 나오기라도 한 건지, 그에게는 기이한 향기가 물씬 풍겼다. 향수 냄새에 묻혀, 원래의 체향을 맡기 힘든 수준이었다.

얼굴도 모른다. 머리색도 모른다. 심지어는 살내음도 감춰져 있다. 카인이 상대방에 대해 알아낼 수 있는 정보는 극히 적은데, 그 상대는 카인이 무엇을 찾는지 알고 있다고 한다. 정보의 불균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카인은 부러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내가 뭘 원하는지, 네놈이 어떻게 알지?”

“어려운 일도 아니지. 난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으니까. 최면술에 관심이 있는 거잖아. 맞지?”

허리에 양손을 짚고서, 남자가 의기양양하게 답했다. 그가 팔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손목과 발목의 장신구들이 요란하게 짤랑거렸다.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네놈은 ‘진짜’ 흑마법사가 맞나 보군.”

“그렇다니까? 어디 보자. 아마 그쪽이 찾는 물건이…”

남자는 로브 안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그는 주머니 안에서, 실이 달린 녹슨 동전을 꺼내 들었다. 동전 앞면에는 신의 옆모습 대신, 활을 든 녹색의 악마가 그려져 있었다.

“짜잔! 레라지에의 펜듈럼이야. 다른 이름으로는 ‘최면 추’라고도 불려. 이편이 훨씬 더 직관적이지? 어떻게 쓰는지는 뭐, 딱 보면 알 거고.”

“혹시 모르니 설명해봐라.”

“간단해. 상대의 눈앞에서 추를 흔들면 최면에 빠지고, 손가락을 튕겨서 딱 소리를 내면 최면이 해제돼. 최면이 풀린다고 해서, 최면에 걸렸던 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떠올릴 수 있는 건 아니야. 만약 기억나게 만들고 싶다면 펜듈럼 자체를 파괴하면 돼.”

남자는 손안에서 동전을 굴리면서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최면 추도 한계라는 게 있어. 명령에 대한 거부감이 너무 심하면, 최면에 걸렸어도 지시대로 움직이지 않기도 해.”

“실제로 그런 경우가 있었나?”

“물론이지. 이 펜듈럼은 거의 이백 년 전에 제작된 물건인데, 이걸 만든 흑마법사는, 제일 먼저 제 연인에게 최면을 걸었대. 부디 나를 사랑하지 말라고 명령했다고 하더라고.”

“애인한테 그런 지시를 내렸다고? 대체 왜?”

“아,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건 이유가 아니야. 그다음 연인의 반응이지. 안타깝게도 최면은 통하지 않았대. 몇 번이고 다시 시도해보아도, 연인은 여전히 흑마법사를 사랑했다는 거야.”

카인은 묵묵히 흑마법사의 얘기를 곱씹었다. 곧이곧대로 믿기에는 수상쩍은 구석이 너무 많았다.

왜 그는 연인의 사랑을 거부했을까. 최면까지 걸어가며,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바꾸려고 한 이유는 과연 뭘까. 혼자 고민해봤자 답은 나오지 않았다. 후드 아래로 얼핏 드러난 입술이 일그러졌다가, 느리게 열렸다.

“…일단 알겠다. 그래서 이 펜듈럼은 얼마지?”

남자가 손가락 일곱 개를 쫙 폈다.

“금화 칠십 개?”

“아니. 일곱 개만 줘.”

카인은 품에서 금화 한 자루를 꺼내었다. 일곱 개를 따로 세어 주는 대신, 자루를 통째로 남자에게 건넸다. 묵직한 것이 대충 봐도 금화 백 개쯤은 들어있는 것 같았다.

“이걸 다 주는 거야?”

“입막음 비용이다. 받은 값을 하도록.”

“좋아. 그럼 거래 성립이네.”

남자는 펜듈럼을 카인의 손바닥 위로 툭 올려놓았다. 오래된 동전에서는 비릿한 쇠 냄새가 났다.

“루시엘.”

“응?”

소파에 드러누워 연애소설을 탐독하던 황제가, 카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야? 눈빛으로 물으며, 부드럽게 눈꼬리를 접어 웃었다.

“여기, 이것 좀 봐주세요.”

부식된 동전이 햇빛을 받아, 반짝, 무디게 빛났다. 붉은 눈동자가 동전을 따라 좌우로 흔들렸다. 추가 공중에다 완만한 곡선을 그려냈다.

추가 한 번, 두 번, 세 번… 동일한 움직임을 반복할 때마다, 이지적인 눈동자가 빠르게 허물어졌다. 동전이 끝과 끝점을 열 번 정도 이동했을 때, 루시엘의 눈에는 초점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루시엘, 제 말 들려요?”

“으…응….”

그가 느리게 말을 어물거렸다. 평소의 조금 빠르다 싶은 말투하고는 완전히 달랐다. 최면이 성공했다는 증거였다.

카인은 곧바로 루시엘에게 첫 번째 명령을 내렸다. 뭘 몰랐던 새끼 늑대 시절부터, 그는 루시엘이 제게 ‘이 행위’를 해주기를 바랐다. 달고 영롱하고 몽글몽글한 것. 상상만으로도 마음을 간질거리게 만드는 것.

“저에게 입 맞춰 주세요.”

카인이 그에게 처음으로 요구한 것은, 부드러운 입맞춤이었다. 숨이 막힐 만큼 질척한 키스도, 전신의 신경을 곤두세우는 격렬한 섹스도 아니었다. 단지, 입술과 입술이 짧게 맞닿았다가 떨어지는 것을 원했다. 편안한 사랑을 하는 오래된 연인처럼, 그저 그렇게.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그는 루시엘을 찬찬히 길들이고 싶었다. 깃털 같은 애무로 온몸을 녹녹하게 만든 후, 여유를 가지고 그와 몸을 접하고 싶었다.

카인은 여전히 다정한 섹스를 선호했다. 비록 그 과정에서 최면이라는 강압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말았지만, 그래도 결과만은 보드랍기를 바랐다.

그러나 루시엘은 움직이지 않았다. 무릎을 얌전하게 모은 채로 소파에 앉아, 어렴풋이 카인을 응시하고만 있었다. 그는 아예 카인의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행동했다.

카인은 흑마법사가 했던 말을 상기했다. 거부감이 너무 심하면, 최면에 걸렸어도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고 했었지. 이성애자인 루시엘은 고작 이 정도도 큰 부담으로 느끼는 걸까. 혀와 혀가 섞이는 키스도 아니고, 가벼운 입맞춤만을 명령했을 뿐인데.

그때, 어떤 추측 하나가 카인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루시엘은 ‘연인다운’ 행위에서 무엇보다 큰 거부감을 느끼는 게 아닐까. 그를 애인이 아니라 차라리 노예 취급한다면. 상냥한 전희 따위는 집어치우고, 무조건 좆부터 핥아보라고 시킨다면. 오히려 그런 건 따르지 않을까.

최악의 가설이었으나 검증해 볼 가치는 있었다. 그는 서늘하게 굳은 음성으로, 두 번째 명령을 읊조렸다.

“입맞춤이 싫으면, 그 입술로 내 좆이나 빨아보든지.”

황제에게 내리기에는 너무도 모욕적인 지시였다. 허나 루시엘은 그 명령에 반응했다. 생기 없는 인형처럼 멍하게 앉아있던 그가, 천천히 몸을 움직인 것이었다. 그는 소파에서 내려와 카인의 바로 앞에 무릎을 꿇었다.

“시키는 대로… 할게.”

느릿하게 입술을 달싹이며, 루시엘은 카인의 바지 앞섬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바지 버클을 풀고 드로즈를 잡아 내렸다. 아직은 발기하지 않은 성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루시엘은 손을 둥글게 모으고 살기둥을 위아래로 쓸어내렸다. 손바닥 아래에서 성기가 빠듯하게 부풀어 올랐다. 그는 붉은 입술을 벌려 조심스레 좆을 머금었다. 고개를 깊이 숙여, 성기를 목구멍 안쪽으로 집어넣으려고 했다.

아직 채 절반도 삼키지 못했는데, 두께가 굵은 탓에 입술 양 끝이 아렸다. 혈관이 불거진 두터운 기둥이, 입천장과 혓바닥에 비벼졌다. 단단한 귀두가 목젖을 쿡쿡 찔렀다.

숨이 콱 틀어 막히는 감각에, 그의 눈시울이 벌써부터 발갛게 젖어갔다. 호흡이 딸려 머리가 몽롱했다.

목구멍을 열어 살기둥을 더 깊숙이 삼키려고 했지만, 경험이 부족한 탓에 쉽지 않았다. 입 안이 같은 사내의 것으로 꽉 들어차는 감각은, 루시엘에게 생리적인 구토감마저 불러일으켰다.

“우욱, 커흑-”

루시엘은 컥컥거리며 머금고 있던 성기를 뱉어내었다. 목이 욱신욱신 쑤셨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제 목울대를 매만졌다. 선액이 진득하게 묻은 입술을 뻐끔거리며, 참았던 숨을 들이쉬었다. 반쯤 벌어진 입술 사이로 말간 침 한줄기가 흘러내렸다. 타액이 턱 끝에 방울져 맺혔다.

“모, 못해. 나 못하겠어, 카인….”

루시엘이 어깨를 움츠리며 흐느꼈다. 그는 눈동자를 설핏 위로 굴려 카인의 눈치를 살폈다.

본래의 카인이라면, 겁에 질린 그의 눈망울을 안쓰럽게 여겼을 터였다. 또 마음이 약해져서, 미안해요, 싫다면 하지 않아도 돼요, 제가 괜한 걸 시켰나 봐요… 따위의 말을 속삭였을지도 몰랐다. 유하고 다정한 것은 카인의 본질이었으므로.

그러나 오랜 시간 지속해서 충격적인 사건을 겪는다면, 인간의 본바탕은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었다. 다름 아닌 카인이 그 산증인이었다.

“아니요. 해야죠. 루시엘.”

카인은 루시엘을 달래지도, 눈물을 닦아주지도 않았다. 그는 도리어 루시엘의 뒤통수를 강하게 틀어잡았다.

“입맞춤도 똑바로 못하는 주제에, 좆 빠는 거라도 잘해야 하지 않겠어요?”

뜨거운 살기둥이 입가에 문질러졌다. 루시엘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맨정신이었다면 절대로 빨지 않았을 그것을, 끝에서부터 살며시 머금었다.

그 순간, 카인이 루시엘의 뒷머리를 세게 내리눌렀다. 성기가 순식간에 안쪽으로 치고 들어왔다. 뭉툭한 선단이 목구멍으로 밀려 들어왔다. 목젖이 짓눌렸고 식도가 억지로 열렸다.

우욱, 아, 그읍, 윽-! 루시엘은 신음조차 되지 못한 으스러진 소리를 토해내었다. 안간힘을 다해 카인을 밀어내며 몸을 버둥거렸다.

카인은 손의 힘을 풀지 않았다. 그는 괴로워하는 제 주군을 날카로이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동자에 열띤 이채가 서렸다. 그가 온전히, 가학의 기쁨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으윽, 으, 흡-”

목구멍을 치고 올라오던 성기가, 끝내 뿌리까지 들어왔다. 음모에 콧날이 비벼졌다. 한계까지 열린 입술 틈새로, 삼키지 못한 침이 줄줄 흘렀다. 턱 끝에 맺힌 타액이 목줄기를 타고 떨어졌다. 선액과 섞인 말간 침에서는 신맛이 났다.

검붉은 살기둥은 뜨거웠다. 입천장과 목구멍이 열상을 입을 것만 같았다. 목도 혓바닥도 머릿속도, 모든 곳이 더웠다. 제멋대로 질척였다.

카인은 마치 추삽질을 하는 것처럼 거칠게 허리를 쳐올렸다. 가득 찬 입술 틈새로 윽윽거리는 신음이 새어 나왔다. 둘 곳 잃은 팔이 허공을 휘젓다가, 결국에는 카인의 허벅지를 부여잡았다.

눈물로 얼룩진 눈시울과 붉게 물든 뺨. 루시엘의 얼굴은 흥분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반응 없이 밋밋한 앞섬을 보면, 그가 느끼는 게 쾌감이 아닌 고통임을 알 수 있었다.

카인은 루시엘의 중심부로 발을 가져다 대었다. 구둣발로 천 아래 물건을 지그시 누르자, 루시엘이 파드득 몸을 떨었다. 매끄럽게 닦인 구두코가 샅을 툭툭 건드렸다. 어쩔 수 없는 외부의 자극에, 성기가 조금씩 딱딱해지기 시작했다.

하, 카인이 실소를 터뜨렸다. 저 황제라는 작자를 봐라. 호위 기사 앞에서 무릎을 꿇고서, 머리가 잡혀 흔들리고 있다. 발로 사타구니를 가볍게 눌러주면, 또 몸은 반응해서 뻣뻣이 좆을 세운다.

어떤 상황에서든 앞만 만져주면 좋다 이건가. 참 민감하고 솔직한 몸뚱이였다. 아직 앞으로 더 느낀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었다.

목구멍 안쪽을 찔러대던 선단에서 뜨거운 정액이 터져 나왔다. 루시엘의 목울대가 크게 울렁이며 정액을 받아 마셨다. 원해서 마시는 것은 아니었다. 마시지 않으면 호흡을 할 수가 없었다.

반은 간신히 삼켰고, 남은 절반은 도로 뱉어내었다. 식도를 뭉근하게 문지르며 밑으로 흘러내리는 정액과, 턱을 타고 바닥으로 후드득 떨어지는 채 삼키지 못한 정액.

“하흐, 읍, 하아….”

루시엘은 눈을 반쯤 내리감고서 참았던 숨을 들이쉬었다. 온갖 종류의 체액으로 얼룩진 울긋불긋한 얼굴이 음란했다. 카인은 손을 내밀어, 입가에 엉겨 붙은 백탁액을 닦아 주었다.

“맛있게도 먹네. 뽀뽀는 싫어하면서 상스럽게.”

“으응…”

루시엘이 카인의 손에 제 볼을 비벼대었다. 뜨끈뜨끈한 뺨이 서늘한 손바닥에 맞닿았다. 교태로운 몸짓이었지만, 루시엘은 스스로가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도 잘 인지하지 못했다.

“그럼 이제, 자위해 볼래요? 옷 다 벗고서 침대 위로 올라가세요.”

카인이 여상스럽게 말했다. 루시엘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셔츠 단추부터 풀었다. 벨트를 바닥에 내려놓고, 바지와 드로즈까지 차례차례 벗었다. 그는 침대에 앉아 편하게 다리를 벌렸다. 카인은 그의 희디흰 나신을 샅샅이 훑었다.

루시엘은 제 성기를 양손으로 잡아 쥐었다. 평소 자위하는 것처럼, 손가락을 모아 원통 모양을 만들고는, 기둥을 감싸 흔들었다. 성기가 손안에서 빠르게 부풀어 올랐다.

평범한 자위였다. 그 무미건조함이 카인을 거슬리게 만들었다. 뒤를 찔러주면 앙앙거리는 교성을 질러대면서, 자위를 할 때는 그저 제 샅만을 쥐고 흔든다니.

“아니요. 루시엘. 자위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잖아요.”

카인은 루시엘의 손목을 잡아 아래로 끌어내렸다. 가는 손끝이 회음부를 스치더니 꽉 닫힌 구멍에 와닿았다. 이쪽을 만지셔야죠, 폐하. 중저음의 듣기 좋은 음성이 귓가를 간지럽혔다.

카인이 루시엘의 귓바퀴를 너울거리는 불처럼 핥았다. 붉은 살덩이가 귀 바깥쪽을 지분거렸다. 귀가 약한지, 루시엘이 숨을 몰아쉬며 어깨를 옹송그렸다.

왜 앞을 놔두고 뒤를 써서 자위를 해야 하는 건지, 루시엘은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카인의 말이라면 따르는 게 맞았다. 왜냐하면 카인은, 나의… 나의 뭐지?

정신이 몽롱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다만 산화된 동전의 이미지만이 머릿속을 부유했다. 좌우로 흔들리는 낡은 동전, 동전이….

“응… 카인 말이 맞아. 자위는 여기, 이쪽 구멍으로 해야 해.”

루시엘이 굼뜨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는 오므라진 구멍 안으로 조심스레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메마른 손가락이 천천히, 빽빽한 내벽을 열어젖혔다. 분홍색 감도는 구멍 사이로, 검지가 서서히 밀려 들어왔다.

오밀조밀 다물려 있던 주름이 조금씩 펴졌다. 말캉한 내벽이 손가락을 휘감았다. 그 생경한 감각에, 루시엘은 저도 모르게 눈가를 일그러뜨렸다. ‘자위’를 하는데도 이상하게 발기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기껏 세워놓았던 성기가 축 수그러들었다.

카인의 시선이 루시엘의 허벅지 사이에 고정되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스멀스멀 수치심이 올라왔다. 그냥 평범하게 ‘자위’를 하고 있을 뿐인데, 왜 이렇게 얼굴이 화끈거리는 거지? 그는 몰려오는 부끄러움을 애써 떨쳐내었다.

“다 넣었어요? 그럼 하나 더.”

“아읏, 이거, 느낌 이상해… 윽….”

루시엘은 오므라들려는 다리를 다시금 넓게 벌렸다. 검지가 들어간 좁은 공간에, 이번에는 중지까지 삽입했다. 카인이 요구하는 대로, 손가락을 얕게 빼었다가 깊게 밀어 넣으며 추삽질을 했다. 손끝으로 내벽을 가볍게 긁기도, 손가락 사이를 벌리며 구멍을 비틀어 열기도 했다.

손끝이 유난히 도톰하게 솟아올라 있는 내벽의 어느 부분을 스치자. 그의 입에서 ‘악’과 ‘앗’ 사이의 신음이 새어 나왔다. 풀 죽어있던 아랫도리에 피가 몰리기 시작했다.

“잘했어요.”

카인이 루시엘의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루시엘이 늑대일 때의 카인에게 했던 것처럼. 그의 머리칼을 살살 흐트러뜨렸다.

머리를 쓰다듬는 행위는 윗사람의 전유물이다. 지위가 높고 나이가 많은 자가, 제 아랫것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행동이다.

하지만 지금, 머리를 만지는 이는 카인이었고, 만져지는 이는 루시엘이었다. 빼도 박도 못할 관계의 전복이었다.

“이제 그 부위를 집중적으로 만지작거리면 돼요.”

루시엘은 손끝에 힘을 주어 전립선을 짓이겼다. 허억, 순간적으로 발끝이 곱아들었다. 시야가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손에 힘이 자꾸만 풀리려고 했다. 그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으로 힘겹게 안쪽을 들쑤셨다. 카인이 만지라고 말한 부분을 집요하게 꾹꾹 눌렀다. 성기가 서서히 심지를 갖고 곧게 섰다.

“흐윽, 아, 좋아아… 좋은데에, 이걸로는, 흐읏, 부족, 해서…”

반쯤 발기한 샅이 욱신거렸다. 아직 뒤만 만지는 걸로는 절정에 다다를 수 없었다. 뒤보다는 앞쪽을 더 만지고 싶었다. 대부분의 사내들이 그렇듯이, 성기를 움켜쥐고 제 욕망을 좇아 문지르고 싶었다.

루시엘은 오른손으로는 여전히 구멍을 지분거리고, 왼손으로는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는 제 성기를 매만졌다. 막 감싸 쥐려는 순간, 손등에 따끔한 통증이 느껴졌다.

“왜 자꾸 틀린 방법으로 자위를 하려고 하지? 제가 분명 뒤만 쓰라고 얘기했을 텐데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섬찟했다. 루시엘은 공포감으로 몸을 굳혔다. 카인이 저런 어조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나? 이토록 냉혈하고 날카롭게?

“미, 미안, 미안해. 내가 잘 몰라서 그랬어. 이렇게 뒤 만지는 건, 처음이라서….”

루시엘이 허둥거리며 사과를 건넸다. 그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문장 끝이 물기로 자욱하게 젖어 들었다.

“아, 맞다. 처음이었지…. 가르칠 게 많네.”

카인이 혼잣말처럼 고요하게 중얼거렸다. 그는 가방에서 구슬 모양의 성기구를 꺼내, 침대 한가운데에 내려놓았다. 성인들을 위한 잡화점에서 구매한 애널 비즈였다.

“손가락만으로 하기 어려우면 도구를 쓰는 것도 괜찮아요. 손가락 말고 이걸로 해보세요.”

기구는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었다. 루시엘은 떨리는 손으로 비즈를 집어 들었다. 둥글둥글한 구슬들 열댓 개가 줄에 꿰어져 있었다. 뒤로 갈수록 구슬의 크기가 점점 커졌다.

루시엘은 눈을 질끈 감고서, 구슬을 하나씩 하나씩 안쪽으로 집어넣었다. 애널이 벌름거리며 제일 작은 구슬부터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차갑고 딱딱한 무기질이 여린 점막을 문질러댔다. 분명 차가운 것을 삼키고 있는데, 왜 닿은 부위가 화끈거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으윽, 아흐, 읏, 카인, 이렇게… 하면 돼?”

“네. 잘하고 있어요. 예뻐요. 루시엘.”

예쁘다. 정말 예뻐. 얌전하게 명령을 따르는 황제는,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사랑스러웠다. ‘명령을 따르는 황제’라니. 이 얼마나 비상식적인 문장인가.

둥글고 매끄러운 금속이 내벽을 빠듯하게 벌렸다. 구슬이 안쪽에서 굴러가면서 전립선을 도려내듯 자극했다. 아직 작은 구슬을 네 개밖에 삽입하지 않았는데도 벌써 버거웠다. 하복부로 퍼져나가는 불쾌한 열감을 겨우 무시하고서, 루시엘은 다섯 개째의 구슬을 꾸역꾸역 욱여넣었다.

“으응, 아흑, 읏, 배가… 아아!”

고개가 맥없이 아래로 툭 떨궈졌다. 쾌락으로 흐무러진 눈동자를 내리깔아 접합부를 살폈다. 많이 넣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열 개 남짓한 비즈가 밖으로 비죽 튀어나와 있었다. 동물의 꼬리 같았다.

“아, 안 돼, 더 이상은 못 해… 배가 꽉, 차서…”

루시엘이 배를 부여잡고 흐느꼈다. 그가 허리를 들썩일 때마다, 시트 위로 구슬들이 데구루루 굴렀다.

“또, 또 못한다고 앙탈만 부리지.”

카인이 루시엘의 둔부를 잡아 쥐었다. 땀으로 젖어 든 매끄러운 살갗을 어루만지며, 남은 손을 구슬에 가져다 대었다. 빠끔거리는 뒷구멍을 엄지로 주욱 벌리고서 남은 구슬들을 밀어 넣었다.

쯔꺽, 쯔꺽, 구슬이 질척질척한 소리를 내며 안쪽으로 기어들어 갔다. 자그마한 구멍이 어떻게든 구슬을 삼키려고 늘어나는 게 외설적이었다.

“흐윽, 흑, 으아, 앗…!”

루시엘이 다리를 버둥거렸다. 발끝으로 시트를 꾹꾹 밀어냈다. 연신 몸을 바르작거리는 통에 기구를 삽입하기가 어려웠다.

“움직이지 마요.”

카인이 나직하게 명령했다. 루시엘이 즉각 움직임을 멈추었다. 스스로 양 발목을 잡아 다리를 고정시키고는, 고분고분하게 카인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구슬이 내벽을 파고들 때마다, 이미 삽입된 구슬들이 서로 부딪치며 점막을 문질렀다. 허리가 본능적으로 위로 뜨려고 했지만, 루시엘은 힘겹게 몸을 고정했다. 카인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움직이지 말라고 했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버텨야 하는 것이다.

배 안쪽이 깊숙하게 채워지는 감각이 괴로웠다. 괴로움만 있냐고 하면, 그건 아니었다. 압박감은 쾌감을 낳고, 쾌감은 머리를 어지럽게 울린다. 멍한 머리는 고통마저 쾌락으로 해석해버린다. 악순환인지 선순환인지 모를 것의 반복이었다.

“세 개 남았어요.”

“하으, 읍, 으응, 윽! 히익!”

구슬이 전립선을 으깨듯 비벼댈 때마다, 벌어진 구멍에서 애액이 울컥울컥 쏟아졌다. 단지 아랫입뿐 아니라 윗입에서도 말간 체액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의 입에서 미처 삼키지 못한 타액이 흘러, 희게 젖혀진 목덜미를 따라 흘렀다.

“이게 마지막. 힘내요. 루시엘.”

“으아, 아, 하으응-!”

그는 갈라지는 비명을 토해내며 눈을 부릅떴다. 가장 큰 사이즈의 구슬이 애널 안으로 굴러 들어갔다. 길었던 구슬은 전부 안으로 들어가고, 고리 모양의 손잡이 부분만이 살짝 빠져나와 있었다. 발갛게 부은 도톰한 구멍이 움찔움찔 경련했다.

“다… 다 들어갔다, 드디어…”

루시엘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이라고 하기에는 숨소리가 다소 가빴지만 말이다.

“다 넣었으니까, 이제 됐… 하읏-!”

루시엘은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카인이 애널 비즈의 손잡이에 손가락을 걸고는,

“뽑을게요.”

그대로 잡아당겼기 때문이었다.

안쪽이 조붓이 구슬들을 조여 왔다. 애널이 벌어지면서 간신히 구슬 하나를 뱉어내었다. 숨 돌릴 여유도 주지 않고, 카인이 구슬을 이어 빼냈다.

점액으로 흠뻑 젖은 구슬이 한 개 더, 퐁, 밖으로 빠져나왔다. 선홍색 점막이 매달리듯 구멍에 달라붙어서 일순간 바깥으로 노출되었다.

갸름한 몸이 파드득 경련했으나 그뿐, 루시엘은 도망치듯 허리를 뒤로 빼지도, 벌어진 무릎을 붙이지도 않았다. 움직이지 말라는 카인의 지시 때문이었다.

“아흐, 으윽, 아, 안 돼, 뽑지 마아…”

루시엘이 쉰 목소리로 울먹였다.

“뽑기 싫어요? 배 안에 구슬이 들어있는 게 좋은 건가?”

“아, 아니, 그건 아닌데에… 커흑, 윽!”

카인이 루시엘의 아랫배를 가볍게 압박했다. 얄팍한 살갗 아래로, 둥근 구슬들이 요동치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배꼽 아래를 꾹꾹 누르자 구슬들이 움직이며 내벽을 자극했다. 그중 어떤 것들은 전립선을 강하게 짓뭉개고는 했다.

루시엘은 날카로운 호흡을 되삼켰다. 구멍이 반사적으로 꾸욱 조여들었다. 바깥으로 삐져나온 구슬들이 좌우로 흔들거렸다. 동물의 꼬리 같은 모양새였다.

“흐윽, 아, 하지 마, 빼… 빼내 줘….”

“주군께서 원하시는 대로.”

짓궂게 주군이라는 호칭을 꼬박꼬박 사용하며, 카인은 손잡이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구슬들이 주르륵, 내벽을 긁으며 단숨에 뽑혀 나왔다. 루시엘은 마음대로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침을 질질 흘리며 절정을 맞았다. 연분홍색 귀두 끝에서 짙은 백탁액이 뿜어져 나왔다.

느슨하게 벌어진 두 다리를 닫을 생각도 못 하고서, 루시엘은 사정의 여운으로 파르르 허벅지를 떨었다. 마름모꼴로 벌어진 다리 사이, 비죽하게 열린 애널이 속살을 보여주며 답삭답삭 경련하고 있었다. 녹진하게 풀린 안쪽은 금방이라도 삽입이 가능할 성싶었다.

“이리 와요, 루시엘. 내 위에 앉아서 직접 넣어보세요.”

루시엘은 무릎걸음으로 카인에게 다가갔다. 두 손으로 카인의 어깨를 짚어 균형을 잡았다. 뜨겁고 두터운 물건이 구멍 가장자리를 쿡쿡 건드렸다.

남은 것은 허리를 아래로 내리는 일뿐이다. 그렇게만 한다면, 성기가 곧장 안으로 푹 꽂힐 것이다. 손가락이나 구슬과는 비교할 수 없는 사이즈의 이물질이, 안을 진창으로 헤집어 놓을 터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문제 될 것은 하나도 없었다. 카인은 자신의 기사였고, 주군이 기사의 명을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카인의 앞에서 기꺼이 다리를 벌려야 한다. 손가락을 모아 밑을 들쑤셔야 하며, 카인이 원한다면 몸까지도 얼마든지 내줘야 한다.

왜냐하면… 카인은 자신의 기사고… 황제가 기사의 성욕을 처리해주는 것은 당연, 한 일이고… 그리고 저기, 망막 어딘가에 새겨진 동전의 형상이, 활을 든 녹색 옷의 악마가, 눈앞에서 깜빡, 깜빡거리고….

“아, 아아….”

무릎에 힘이 빠졌다. 등줄기가 위에서 아래로 떨렸다. 뒷구멍의 엷은 살갗이 눅진하게 벌어지면서 귀두 끄트머리를 받아들였다. 안쪽으로 서서히 진입하는 살덩이의 감촉에, 루시엘의 눈망울이 도연히 글썽거렸다.

이대로 카인의 허벅지 위로 주저앉는다면, 성기가 그대로 푹 박힌다. 뿌리 끝까지 집어삼키게 된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뺨에 홍조가 돌았다.

루시엘이 천천히 허리를 내렸다. 구멍이 야금야금 살기둥을 집어삼켰다. 사내의 물건을 받아들이는 것은 이번이 분명 처음인데도, 이상하게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내벽이 벌어지고, 장기가 짓눌리는 일에 익숙해졌을 리 만무한데. 맥박치는 성기가 속살을 가르고 들어오는 이 감각이, 낯익으면 안 될 텐데….

“하읍, 흐, 흐윽…”

루시엘은 입술을 아프게 지르물었다. 카인의 물건은 버거우리만치 컸다. 자칫하다가는 뱃가죽을 뚫고 튀어나오는 게 아닐까 같은, 기괴한 상상마저 들었다.

마침내 둔부와 허벅지가 맞붙었다. 루시엘은 가쁘게 헐떡이며 카인의 어깨를 꽉 움켜쥐었다. 이제 겨우 삽입을 마무리했을 뿐인데, 섹스가 다 끝난 것 같은 탈력감이 느껴졌다. 이마와 목덜미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루시엘은 카인의 위에 올라탄 채로, 한참 동안 색색거리며 숨을 골랐다.

“허리를 움직이셔야죠.”

카인의 재촉에, 루시엘이 마지못해 허리를 들썩였다. 조심스럽게 엉덩이를 들었다가 다시 내렸다. 굼뜨고 서툰 움직임이었다. 기승위는 처음이라는 티가 역력했다. 그 서투름이, 외려 카인을 안심시켰다.

손바닥에 땀이 축축이 배어났다. 카인의 어깨를 붙들고 있던 손이 몇 번씩이나 미끄러지려고 했다. 상체가 순간 크게 휘청거렸다. 루시엘은 균형을 잃고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다.

“하으윽-!”

성기가 안쪽 깊은 곳을 단번에 치받았다. 불거진 혈관이 내벽의 어느 부위를 긁고 지나가자, 타들어 갈 것 같은 열락이 하복부에 단단히 뭉쳤다. 꺼덕거리며 고개를 든 성기에서, 진득한 백탁액이 흩뿌려졌다. 정액은 배와 허벅지에 대각선으로 튀었다.

“흐읏, 아, 기분, 좋아아… 흐응! 읏!”

그 강렬한 쾌감을 다시금 느끼고 싶었다. 루시엘은 허벅지에 힘을 주어 허리를 들어 올렸다가, 체중을 실어 아래로 내리기를 반복했다.

성기가 안쪽 깊은 곳을 도려내듯 문질렀다. 그 감각이 미치도록 기분 좋았다. 마음 한구석을 잠식하고 있던 꺼림칙한 기분은, 쾌락에 밀려 사라진 지 오래였다. 엉덩이와 허벅지가 부딪히며 끈덕진 마찰음을 만들어내었다. 새하얬던 둔부가 이제는 희미한 붉은색을 띠었다.

허나 빈약한 체력 탓에, 슬슬 한계가 찾아왔다. 허리의 움직임이 차차 더디어졌다. 루시엘은 카인의 어깨에 가만히 이마를 기대었다. 맥없이 뻐끔거리는 입술에서 애달픈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발기한 성기에서 말간 쿠퍼액이 뚝뚝 흘러, 루시엘의 배를 적셨다.

카인은 예고도 없이 루시엘을 밀어 뒤로 눕혔다. 그의 다리를 접어 올려, 무릎을 가슴께에 붙였다. 훤히 드러난 치부에 제 좆을 밀어 넣었다.

“잠깐만, 이건 너무, 자극이 강… 하으응-!”

성기가 단박에 안쪽을 꿰뚫었다. 카인은 루시엘의 골반을 꽉 틀어잡고서 허리를 밀어붙였다. 민감한 점막을 꾹꾹 짓이길 때마다, 아래에 깔린 여린 몸이 퍼뜩 경련했다.

스스로 허리를 흔들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쾌감이었다. 훨씬 더 거칠었고, 깊이까지 파고들었으며, 언제 어떤 식으로 쾌락이 터질지 예상할 수 없었다.

“아응, 으흣, 카인, 아! 흐윽! 좋아, 너무 좋아서… 흐아, 아아!”

루시엘이 양팔로 카인의 목을 끌어안았다. 악착같이 저에게 매달리는 그 가는 팔이, 교살장의 밧줄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세게 조른 것도 아닌데 숨이 막혔다.

기사는 황제를, 황제의 눈을 바라본다. 홍옥 빛으로 선연하게 반짝이는 홍채를. 호흡하듯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동공을.

그 눈동자에 진심 어린 감정은 담겨있지 않다. 황제는 다만, 최면으로 흐리멍덩해진 눈을 껌뻑거리며, 호위 기사의 지시만을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을 뿐이다.

숨이 막히는 것은 필시 그 이유 때문이리라. 카인이 품고 있는 이는 제 주군이 아니다. 다만 주군의 ‘껍데기’에 불과하다. 실제 루시엘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말과 행동을, 최면에 걸린 ‘껍데기’는 고민도 없이 해낸다.

최면 자체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안다. 마법 같은 시간이 끝나고 나면, 주군은 또 정사의 기억을 잊을 것이라는 사실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상관없다. 정말로 상관없어.’

고작 최면으로 만족할 거면, 애초에 시작도 하지 않았다. 루시엘에게 최면을 거는 것은, 절대로 그의 최종 목표가 아니다. 그저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과정이다.

‘머리의 기억은 없어도, 몸의 기억은 남을 테지.’

그러니까, ‘그날’이 다가오기 전까지는, 최면에 걸린 루시엘을 안는 것으로 만족하자.

카인은 스스로를 달래듯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조금씩,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루시엘은 앓는 소리를 내며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그는 소파에 길게 누워 있었고, 가슴팍에는 읽다 만 소설이 놓여있었다.

책을 읽다가 잠이라도 들었나 보다. 루시엘은 입가에 남은 졸인 침 자국을 닦았다. 허리가 쿡쿡 쑤셨지만 딱히 신경 쓰지는 않았다. 불편한 자세로 자서 허리가 아픈 것 같았다.

루시엘은 책을 휘리릭 넘겨 어디까지 읽었는지 찾았다. 책 속에 넣어두었던 책갈피를 꽂아, 읽은 부분을 표시했다. 장미로 만든 압화 책갈피였다.

카인은 소파 끝에 앉아 루시엘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그의 손에 들린 독특한 파란색의 압화가, 어쩐지 익숙하게 느껴졌다.

“루시엘, 그 꽃…”

“아, 너도 이거 기억하는구나! 그게 벌써 일 년 전인가? 하트르만 공작가에 초대받았을 때의 일이었지, 아마?”

솔직히 공작가의 이름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카인이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 당시, 루시엘이 어떤 기행을 벌였는지 정도였다.

일 년 전 여름, 카인은 자신이 수인이라는 것을 철저하게 숨기고 있었다. 그는 꼬리를 살랑살랑 저으며 루시엘의 뒤를 따라다녔고, 그가 주는 살코기며 육포 따위를 기쁘게 받아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트르만 공작가에서 루시엘과 단테를 초청했다. 하르트만 공작은 화원을 가꾸는 게 취미였는데, 이번에 실력 있는 정원사를 새로 고용해서 기분이 좋았던 모양이었다.

사실 공작이 초대하고 싶었던 건, 황제인 루시엘이 아니라 황제의 이복동생인 단테였다. 답 없는 인성으로 악명 높은 루시엘과는 다르게, 단테는 사람이 순박하고 욕심 없기로 유명했다. 게다가 그는 식물에 조예가 깊었다. 단테라면 정원을 보고, 분명 도움이 될 만한 감상평을 내려줄 터였다.

그렇지만 황제한테도 보여주지 않은 화원을, 동생한테만 냉큼 공개한다는 것은 상당히 불경한 행위였다. 공작은 어쩔 수 없이 루시엘과 단테에게 모두 초대장을 보냈다. 단테가 식물에게 좋다는 영양제를 들고 온 것에 비해, 루시엘은 조그마한 새끼 늑대를 품에 안고 왔다.

남의 화원에 초대받았는데 애완동물을 데려오다니. 공작은 속으로 경악했다. 그는 말썽꾸러기 늑대가 꽃밭을 파헤칠까 봐 노심초사했다. 다행스럽게도 늑대는 루시엘보다 얌전했고, 공작이 걱정하던 사고는 벌어지지 않았다.

정원을 다 둘러본 후, 루시엘의 감상은 이랬다. 저걸 감상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기는 했다.

“저 파란 장미 나무, 나 줘.”

“장미꽃을 하나 꺾어달라는 말씀이시죠?”

“장난해? 꽃 한 송이를 누구 코에 붙여. 나무를 통째로 달라고. 내 화원에다가 옮겨 심어야겠다.”

공작도, 공작부인도, 단테의 얼굴도 희게 질리는데, 카인만 눈치 없이 나비를 쫓으며 놀고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폐하. 나무를 드릴 수는 없습니다. 푸른색 장미는 원체 귀한지라….”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냐? 귀한 것이라면 황제에게 가져다 바치는 게 도리일 텐데?”

루시엘이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공작은 손사래를 치며 황급히 변명했다.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폐하! 푸른 장미는 본디 야생에서만 자라는 것들이라, 사람의 손으로 키우는 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우연히 제 정원의 습도와 토양이 장미를 가꾸는 데 적합했을 뿐입니다.”

“그 말뜻은, 황실 정원에 옮겨 심으면 장미가 죽기라도 한다는 건가?”

“네, 네. 그렇습니다. 분명 보름을 채우지 못하고 시들어버릴 겁니다.”

공작의 얼굴에는 묘한 안도감이 서려 있었다. 이 정도 설명이라면, 망나니 황제도 납득하겠지? 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망나니에게는 상식이 통하지 않기 마련이다.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거지? 시들든 말든 상관없다. 내일 당장 심부름꾼을 보내서, 저 나무를 받아 가도록 하지. 아니, 내일도 너무 늦어. 오늘이 좋겠군. 한시를 다투는 일이니까.”

그 뒤로 벌어진 일들은 뻔했다. 황제는 장미를 뿌리째로 뽑아 제 정원에 옮겨 심었고, 정원사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꽃은 결국 열흘 만에 완전히 죽었다.

아, 굳이 따져보자면 반전이라고 할 만한 게 하나 있기는 하다. 몇 달 후 마물학자가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는데, 푸른 장미 나무가 실은 마물의 일종이라는 거였다. 은은한 독성을 내뿜어, 주변의 생물체를 천천히 병들게 하는 해로운 마물.

결과만 놓고 본다면, 황제가 하르트만 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한 것이다. 물론 공작은 딱히 고마움을 느끼지는 않았다. 황제가 알고 한 행동도 아니고, 그냥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은 격 아닌가.

카인은 장미의 정체 따위를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의 뇌리에서 가장 선명히 남아 있는 것은, 말라비틀어져 가는 장미를 보며 루시엘이 툭, 내던진 말이었다.

언제나처럼 새끼 늑대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쓰다듬으며, 루시엘은 분명 이렇게 읊조렸다.

“나는 후회하지 않아.”

후회하지 않는다니, 무엇을?

“손에 넣으면 어찌 되었든 간에 나의 꽃이야. 공작가의 정원에서 장미가 얼마나 아름답게 피든 간에, 그것은 나와는 관련 없는 일이야.”

“…….”

“허나 내 화원에 있다면, 그것은 비록 죽어갈지라도 나의 장미다. 맞지 않는 환경에서 앙상하게 시들어도, 내가 보는 앞에서 시들었으니 된 거야. 장미가 완전히 죽기 전에, 꽃을 말려 드라이플라워를 만들어도 좋겠지. 향기도 생기도 없는 꽃이어도 좋아. 내 거니까. 내가 소유한 나만의 것이니까.”

그 당시에는 루시엘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훌쩍 자라버린 지금은 알 것 같다.

눈부시게 핀 남의 꽃보다는, 시든 나의 꽃이 낫다. 나 없이 행복한 당신보다는, 내 곁에서 불행한 당신이 더 의미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향기와 생기를 모조리 잃어도 좋다. 어떤 형태로든, 당신을 내게 속박할 수만 있다면….

카인은 일렁이는 시선으로 루시엘을 바라보았다. 언젠가 내가 꺾고야 말, 나의 푸른 장미.

‘…나는 후회하지 않아.’

아무래도 몸 상태가 이상했다. 심각한 병에 걸린 것은 아니었으나, 이럴 바에는 차라리 병으로 끙끙 앓는 게 훨씬 나을 성싶었다.

단순히 질병이 원인이라면 의원에게 치료를 받으면 된다. 황실 내에는 실력 있는 치료사들이 다수 포진해있었으니까.

그러나 지금 루시엘을 괴롭히는 것은 평범한 질환이 아니었다. 그 누구한테도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증상들이, 그를 희롱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카인에게도 말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아침이 되면, 늘 부서질 것 같은 통증이 루시엘의 전신을 휘감았다. 단단한 무언가에 부딪히기라도 한 건지, 허벅지와 둔부가 쓰라렸고 허리가 저릿했다. 단지 그뿐이라면 주저 없이 의원을 불렀을 거였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구멍이 얼얼했다. 둔부 사이에 있는 그곳. 차마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거기. 단순히 아린 감각을 넘어서, 구멍 가장자리와 안쪽이 기묘하게 화끈거렸다. 이물질을 오래 품기라도 한 듯 벌름거리며 허공을 조였다.

통증이라기에는 너무 달고, 쾌락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뭔가 꺼림칙한 감각. 그 감각이 불꽃처럼 아랫배를 간지럽혔다.

어떻게 해야 이 열기를 해소할 수 있을까. 루시엘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구멍을 만지면 된다.

아무거나 넣어달라고 보채는 이 작은 구멍, 뻐끔대며 장액을 울컥 토해내는 그곳에 손가락을 삽입하면 해결될 문제다. 손끝으로 애달프게 안쪽을 문지르면, 조금의 쾌감이라도 주울 수 있을 터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뒤로 자위를 한다니…. 내가 그런 짓을 할 리 없잖아.’

루시엘은 아래로 향하려는 손을 겨우 위로 끌어올렸다. 게다가 자신의 옆에는 카인이 잠들어 있었다. 호위 기사와 한 침대를 쓰면서, 꼴사납게 뒷구멍을 매만진다니.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차라리 앞을 만진다면 모를까.

루시엘은 두 손을 꼬옥 맞잡고서 이를 악물었다. 아래를 지분거리고 싶었지만, 드높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또 언제는 새벽에 벼락처럼 잠이 깰 때도 있었다. 허리의 통증은 이제 놀랍지도 않았다.

바지 밑단이 축축하게 젖어드는 감각에, 루시엘은 급하게 바지를 내렸다. 드로즈 안이 말간 액으로 젖어가고 있었다. 장액이 뒷구멍에서 주르륵 흘러나왔다. 생식기도 아닌 부위가 젖어드는 이유가 뭔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루시엘은 대충 바지를 올려 입고서 욕실로 향했다. 그는 욕실 문을 제대로 닫는 것도 잊고서, 무작정 하의부터 벗었다.

‘진정하자. 당황하면 될 일도 안 돼. 먼저 몸 상태를 살피는 게 급선무야.’

루시엘은 욕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벽에 등을 기대고, 다리를 양옆으로 벌려 둔부를 더듬었다.이건 그저 상황을 파악하려고 하는 행위다. 절대로 성적인 요소는 들어있지 않다. 스스로를 세뇌하듯, 비슷한 문장을 계속해서 되뇌었다.

방금 전까지 뭔가를 물고 있기라도 했는지, 구멍이 살짝 벌어져 있었다. 물론 기분 탓일 테다. 누가 감히 황제의, …그런 곳에다가 이물을 삽입하겠는가.

루시엘은 조심스레 애널 가장자리를 덧그렸다. 분홍색 주름이 애액으로 질척거렸다. 손끝으로 깔짝거리듯 구멍을 매만지기만 했는데, 아래쪽으로 열감이 확 몰렸다. 그는 화들짝 놀라 손을 떼어 내었다. 묽은 액이 검지 배에 묻어 번들거렸다.

그 순간, 어떠한 충동이 연기처럼 폐부를 훅 채웠다. 좀 더 안쪽을, 더 깊은 속살을 만지고 싶었다. 루시엘은 홀린 듯이 검지 하나를 밀어 넣었다. 습기 찬 속살이 일순 수축하며 손가락을 끊어먹을 것처럼 조였다.

그는 익숙하게 전립선을 찾아내어 문질렀다. 이런 행위를 어째서, 능숙하게 해낼 수 있는 건지는 본인도 알지 못했다.

“하윽, 응, 으응-!”

도톰하게 부푼 부위를 집요하게 누르자, 교성에 가까운 신음이 퍼뜩 튀어나왔다. 입을 틀어막을 정신도 없었다. 머릿속에서 붉고 푸른 폭죽이 터지면서 시야가 검게 점멸했다. 복부에 짙은 정액이 튀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명확했다. 뒤만 만지는 걸로 가버렸다. 황제인 자신이, 노련한 남창이라도 된다는 듯.

루시엘은 팔꿈치로 눈가를 가리고서 헐떡였다. 탈력감으로 흉곽이 크게 들썩거렸다. 몸은 만족했으나 기분은 최악이었다.

그 외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이상 반응들이 있었다. 그리고 오늘의 몸 상태는 특히 더 끔찍했다. 전신이 뻐근한 건 기본이었고, 배 안쪽이 징징 울리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럴 리가 없겠지만 안에 뭔가 삽입된 기분이 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배보다 조금 아래쪽이 욱신거렸다. 결코 입구의 용도로 쓰인 적 없는 곳을, 뭉툭한 무언가가 벌려놓고 있었다. 성기를 본떠 만든 기구가 진동하며, 내벽을 질척하게 파헤치는 것 같았다.

침실에서 집무실까지의 거리가 이토록 멀었나. 루시엘은 자주 비틀거렸고, 종종 발을 헛딛었고, 끝내는 카인의 부축을 받아 힘겹게 발을 떼었다. 발그스름한 뺨과 초점을 잃고 흔들리는 동공. 순전히 몸이 아프다고 치부하기에는, 풍기는 분위기가 비정상적일 만큼 야릇했다.

최면이 걸린 상태의 루시엘은 몰랐지만, 사실 그의 안에는 소형 딜도가 삽입되어 있었다. 카인은 그에게 모조 성기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게 만드는 최면을 걸어놓았다. 루시엘에게 남아 있는 것은 안쪽이 희롱당하는 감각뿐, 원인은 찾아낼 수 없었다.

루시엘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집무실로 들어갔다. 그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고, 그로 인해 딜도가 더욱 안쪽까지 들어왔다. 내벽이 반사적으로 수축하며 이물질을 꽉 조였다.

“하읏…!”

비음 섞인 신음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물기를 머금은 목소리 끝이 날카롭게 경련했다. 그는 급하게 제 입을 틀어막았다. 책상으로 하반신이 가려져 있어서 망정이지, 자칫 불룩해진 앞섬을 들킬 뻔했다.

“루시엘, 괜찮아요?”

카인이 걱정스레 물었다. 루시엘은 가까스로 자세를 바르게 고쳤다. 응, 괜찮아, 라고 답하며 억지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일하려니까 힘들어서 그래. 어디 보자. 내가 읽고 서명해야 할 서류가…”

그의 시선이 수북이 쌓인 종이 뭉치에 닿았다. 그는 만년필을 쥐고 서류에 쓱쓱 서명했다. 수려한 필기체가 자꾸만 흐트러졌다. 제 이름을 적는 간단한 일도 쉽지 않았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종이 위로 투두둑 떨어졌다.

그때였다. 똑똑. 단테가 집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폐하, 계십니까? 급하게 상의드릴 안건이 있습니다.”

“흐읏, 그, 그래… 들어, 와라….”

급한 일이라는데 쫓아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루시엘은 마지못해 단테를 들였다.

단테는 북방의 지도를 펼쳐놓고 무어라 설명을 시작했다. 대충 북부 야만족들의 정세가 심상치 않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의 말투는 진중했으나, 루시엘은 그의 말에 전혀 집중할 수 없었다.

성기구가 탐색이라도 하듯 점막을 훑었다. 밝혀내고 싶은 게 있다는 듯이, 소리 없이 회전하며 내벽을 건드렸다. 벌어진 구멍이 잘게 떨렸다.

입술을 떼었다가는 꼴사나운 교성이 터져 나올 것 같아서, 루시엘은 필사적으로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잇새로 새어 나오는 신음은 막을 수 없었다.

“으응, 아…”

“폐하, 무슨 일이십니까? 설마 어디 아프신 건…”

“괜찮으니까 신경 끄… 히익!”

전립선이 정통으로 짓눌렸다. 내벽을 자비 없이 후벼 파는 것에, 눈앞이 희게 질렸다. 그는 허물어지듯 책상에 이마를 박았다. 책상 위로 엎어진 채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흐익, 아, 싫어, 왜, 왜 이러는 거, 아응! 흐응, 읏!”

딜도가 불규칙적으로 안쪽을 훅 치고 들어왔다. 선단부가 민감한 속살을 긁어내렸고, 뒷구멍에서 흐른 애액이 바지에 둥근 얼룩을 만들었다. 입가에서 끝맺지 못한 말들이 뭉개져 신음으로 쏟아졌다. 손으로 입을 막아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형님! 정신 차리세요, 형님!”

폐하 대신 형님이라는 호칭을 쓰는 걸로 보아, 단테는 무척이나 놀란 것 같았다.

아, 어서 몸을 일으켜야 하는데. 그냥 잠시 현기증이 일었을 뿐이라고, 괜스레 걱정하는 척하지 말라고 툭 쏘아붙여야 하는데…

상반신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허리가 반쯤 들렸다가 다시 꼬꾸라졌다. 루시엘은 책상에 이마를 붙이고는 바르작거렸다. 맥없이 열린 입술에서 신 타액이 줄줄 흘렀다.

단테가 루시엘의 어깨를 잡아 올려, 그의 표정을 확인하려는 찰나.

“나가십시오.”

카인이 단테의 손을 쳐내었다.

“뭐? 하지만 형님이…”

“폐하께서 당신의 도움을 원하실 것 같습니까?”

“그, 그건 그렇지만…”

“폐하는 제가 돕겠습니다. 긴말하지 않겠습니다. 나가주십시오.”

단테는 쭈뼛거리다가 마지못해 방 밖을 나섰다.

카인은 문고리를 단단히 걸어 잠그고는, 여전히 책상에 엎어져 있는 루시엘에게로 다가갔다. 그의 고개를 들어 올려 얼굴을 살폈다.

투명한 눈물이 촘촘하게 맺힌 눈꼬리, 주황색으로 곱게 물들어 녹아내리는 두 볼, 칠칠하지 못하게 벌어진 붉은 입술 따위를, 타인에게 보여줄 수는 없었다.

“루시엘, 무슨 일이에요?”

카인은 허리를 숙여 루시엘과 눈높이를 맞췄다. 루시엘은 상의를 끌어 내려 제 중심부를 가렸다. 그는 고개만 절레절레 저을 뿐, 솔직하게 털어놓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카인은 블레이저 안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펜듈럼을 꺼냈다. 펜듈럼을 모빌인 양 나긋하게 흔들면서, 저보다 나이 어린 이를 달래는 듯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무슨 일인지, 숨김없이 말해주세요.”

“카인… 나아, 배가 이상해…. 안에 뭔가가 든 것처럼, 자꾸 쿡쿡하고…”

루시엘이 제 아랫배를 문지르며 울먹거렸다. 그가 입술을 뻐끔거릴 때마다 달큰한 숨결이 느껴졌다. 타액으로 음외하게 빛나는 그 입술을, 지금 당장이라도 집어삼키고 싶었다.

“그랬구나. 큰일이네. 옷 벗고, 책상 위에 올라가서 다리 벌려볼래요?”

상냥한 어투였으나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상냥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욕망으로 번들거리는 시선이 루시엘에게 붙박였다. 어두운 눈동자에 드리운 그림자의 일렁임을, 루시엘은 멍하게 바라보았다.

“응, 카인이 원한다면… 그럴게.”

그의 입술이 서서히 달싹였다.

루시엘은 책상 위로 엉덩이를 붙였다. 원래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다리를 벌리고는 했는데, 지금은 부끄럼도 없이 허벅지 사이를 활짝 열었다. 루시엘이 점점 더 이 행위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쿠퍼액으로 질척하게 젖은 성기와, 통통하게 부푼 회음부. 한껏 입을 벌려 딜도를 물고 있는 작은 구멍까지 전부 드러났다.

“안쪽 만져봐요.”

“응….”

루시엘은 움찔거리는 애널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손가락을 고작 한 마디 집어넣자마자, 손톱 끝에 딱딱한 무엇인가가 걸렸다.

“어, 어라…?”

루시엘이 타오르듯 붉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는 경악으로 떨리는 손을 간신히 움직여, 박혀있던 딜도를 뽑아내었다.

“이, 이게 뭐야…”

어지간히 놀랐는지 루시엘이 히끅거리며 딸꾹질을 했다. 왜 이런 게 제 안에 들어있던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거, 루시엘이 직접 넣은 거예요.”

“내가… 이런 걸 넣었다고?”

루시엘은 혼란스러워 보였다. 여태 최면이 걸려 있는 상태여서 그런지, 원래 루시엘보다 반응이 유했다. ‘진짜’ 루시엘이었다면 이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했을 거다. 황제를 깎아내리려는 음모라며 언성을 높였으리라.

“믿을 수 없어. 내가 어째서…”

“그렇지만 사실인걸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이 딜도는 카인의 요구에 따라, 루시엘이 제 손으로 직접 삽입한 것이었다.

“다시 해보면 기억이 날지도 모르죠. 지금 여기서, 다시 넣어보세요.”

“알았…어….”

루시엘은 점액으로 끈적끈적해진 딜도를 다리 사이에 가져다 대었다. 성기를 흉내 내어 만든 귀두부가 옴죽거리는 애널에 닿았다.

그는 심호흡을 한 후, 체온으로 미지근해진 무기물을 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 조금 전까지 모조 성기를 물고 있었던 구멍이다. 장난감은 어렵지 않게 들어갔다.

“그리고 이제 기구를 빼냈다가 다시 넣으면서, 네, 맞아요. 오늘 아침에 했던 것처럼 그렇게. 잘하고 있어요.”

“흐아, 아, 아흑, 흡!”

“기분 좋은 부분 찾아냈어요?”

“으응. 여기 안쪽, 빙글빙글 문지르면, 기분이 좋아아….”

루시엘이 취한 사람처럼 헤실거렸다. 그는 술이 아니라 최면과 쾌락에 취해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술보다 훨 배 더 강력하게 이성을 갉아먹었다.

루시엘은 딜도의 끝부분을 꽉 움켜잡고서 부러 전립선만 문질렀다. 새빨간 입술 새로 흐느끼는 듯한 신음이 흘렀다.

“흐아, 아, 아앙, 흑, 아, 아아…!”

그는 딜도를 앞뒤로 얕게 움직이다가, 힘을 주어 깊게 밀어 넣었다. 끝까지 안쪽을 뚫었다가 반쯤 잡아 빼었다. 선홍색 점막이 매끈한 기둥에 달라붙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발갛게 물든 가슴이 색색거리며 가쁘게 들썩였다.

카인은 그 가슴 위로 손을 뻗었다. 손에 닿은 살갗 아래로 선명한 심장 박동이 느껴졌다. 살아있다는 표상. 눈앞의 주군이 허상이 아니라는 증거. 심장을 토닥이듯이, 왼쪽 가슴을 찬찬히 다독여보았다. 루시엘이 흠칫 몸을 떨었다.

색이 옅은 작은 유두를 손바닥으로 살살 둥글리자, 루시엘이 아흑, 응, 하는 탄성을 내뱉었다. 절정의 예감에 안쪽이 오므라들며 딜도를 세게 조였다. 곧 완만한 절정이 찾아왔다. 요도구에서 백탁액이 주르륵 흘렀다.

“기분 좋았어요?”

카인의 물음에, 루시엘은 좌우로 고개를 흔들어대었다.

“아니… 별로였어.”

그 ‘별로’인 딜도로 사정까지 한 주제에, 눈썹을 밑으로 축 내리고서 싫다고 말한다. 카인이 설핏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다음 이어진 루시엘의 말은, 카인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이런 장난감은 싫어. 카인, 카인께 좋아. 그러니까, 가짜 말고 진짜를 줘…. 응?”

루시엘이 카인의 옷소매를 부여잡고 칭얼거렸다.

“루시엘, 당신이라는 사람은 정말….”

카인이 말끝을 흐렸다. 무슨 할 말이 더 있는 것처럼 입술을 뻐끔거리다가, 그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세상에는 말이 필요 없는 순간들이 있다. 굳이 언어로 표현하지 않아도 이미 온전하기 때문이다.

카인은 루시엘의 어깨를 잡아 책상 위로 눌렀다. 등이 서늘한 상판과 꾸욱 맞붙었다. 책상 한가운데에 차곡차곡 쌓여 있던 문서들이 전부 쓸려나갔다. 희고 검은 종이가 팔랑거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리가 한껏 벌어졌다. 곧 뜨겁고 묵직한 살덩이가 속살을 가르고 들어왔다. 뱀처럼 긴 살기둥이 구멍을 짓치며 끝도 없이 밀려왔다. 꺾어진 팔이 책상을 득득 긁었다. 평소 습관처럼 침대 시트를 잡아 쥐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손끝에 닿는 것은 차갑고 단단한 목판뿐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길고 긴 삽입이 드디어 막을 내렸다. 허벅지와 둔부가 긴밀하게 밀착되었다. 팽팽히 벌어진 아래쪽이 힘겹게 성기를 머금었다.

허나 전부 삽입했다 하여 그것으로 성교가 끝날 리는 없었다. 오히려 진짜 시작은 여기부터라고 봐야 맞았다. 비록 루시엘은 벌써 기력이 다해 허덕거리고 있었지만 말이다.

“카인, 나 너무 힘든데, 흐읏, 좀 쉬었다가, 아흐으…”

“벌써 힘들어하면 어떻게 해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아, 안 돼, 움직이면, 하응! 읏!”

힘이 풀리려는 다리를 잡아 왼쪽 어깨에 올렸다. 깊고 빠르게 허리를 쳐올리자, 루시엘의 몸이 앞뒤로 흔들리며 책상도 같이 삐걱거렸다.

반나절 내내 성기구를 품고 있었기 때문일까. 루시엘의 안은 뜨거웠고 딱 알맞게 성기를 조였다. 뭉툭한 귀두로 배꼽 아래를 쑤석거릴 때마다, 어깨에 올려진 다리가 파르르 경련했다.

나랏일을 처리해야 할 집무실에서, 황제는 제 기사에게 범해지고 있었다. 개처럼 혀를 빼물고, 남창처럼 다리를 벌리고서. 책상다리가 요란하게 바닥을 할퀴었다. 정액과 애액이 책상 상판에 고여 흘렀다.

그러나 루시엘은, 현재의 상황에서 어떠한 문제점도 느끼지 못했다. 기사가 주군과 관계를 맺는 게 뭐가 문제인가? 집무실이든 회의실이든, 행여 야외든. 기사가 원한다면 몸을 내줘야 옳았다.

“아아, 하읏, 움직이지 마, 흐읍, 빨라, 읏, 빠르다니, 까…!”

각도를 바꾸어 한결 깊게 삽입하자, 루시엘이 고개를 젖히며 자지러졌다. 들썩이는 상체를 가슴으로 짓뭉개고는 열 오른 뺨에 입을 맞추었다. 볼에서 턱을, 턱에서 목줄기를 간질이며 아래로 내려갔다.

가느다란 목에 고개를 묻고서 숨을 들이켰다. 달달한 체향이 코끝에 달라붙었다. 점막과 비강을 꽉 채우고는 뇌까지 흐무러지게 만들었다.

산양의 젖으로 목욕을 하고 값비싼 향유를 뿌리면 이런 살내음이 나려나. 그 달고 싱그러운 향을, 카인은 마음껏 흡입했다.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 온몸의 피가 부글부글 끓었다.

“좋아요, 루시엘?”

“흐윽, 아! 카인, 좋아, 좋아해… 하으, 응! 으읏!”

카인과 하는 섹스가 좋다는 얘기겠지만, 언뜻 들으면 그냥 카인이 좋다는 얘기로도 들렸다.

그 순간 카인의 시야에 들어온 루시엘은, 제국의 황제가 아니었다. 특유의 거만함은 온데간데없었다. 쾌감에 굴복한 연약한 낯빛만이 남아 있었다. 그 표정은 손에 쥐면 얄팍한 유리처럼 깨져버릴 것 같았으나, 동시에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카인은 루시엘의 붉은 입술을 응시했다. 언어가 되지 못한 소리들이, 얽히고설킨 흐느낌이… 마치 사랑한다는 고백처럼 들렸다.

그러나 카인은 알고 있다. 그것은 자신의 착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루시엘은 절대로, 카인을 성애적인 의미로 사랑하지 않음을. 그동안의 경험으로 질릴 만큼 잘 알고 있었다.

카인은 달싹이는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제가 세상 무엇보다 사랑하는 이의, 그러나 절대 자신을 사랑해주지는 않을 이의 입술을 거칠게 물고 빨았다. 말캉한 혀를 탐하며 강한 추삽질을 이어갔다.

“흣! 아, 아앙! 나, 나 가앗… 하응!”

루시엘은 곧 절정을 맞았다. 그 순간 꿈틀거리며 조여 오는 내벽에, 카인 또한 그의 안쪽에 정액을 쏟아내었다.

한 번 사정했다고 하여 이 행위가 끝날 리는 없었다. 카인은 집무실 구석진 곳에 놓인 소파를 흘끗 쳐다보았다. 딱딱한 책상보다는 푹신한 소파가 확실히 더 편할 것 같았다.

그는 삽입한 상태에서 두 손으로 루시엘의 엉덩이를 받치고는 가뿐히 걸음을 떼었다. 허우적거리던 양팔이 곧 카인의 어깨에 얌전히 감겼다.

카인은 어렵지 않게 루시엘을 안아 들고서 소파로 걸어갔다.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 반동으로 성기가 안쪽까지 턱턱 치받혔다. 정액이 구멍 틈새로 새어 나와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카, 카인… 나 떨어져. 떨어질 것 같아…!”

늑대 수인은 인간보다 몇 배는 더 근력이 강하다. 고로 카인이 루시엘을 떨어트릴 리는 없었다. 그러나 쾌감이 이성을 녹여버린 탓인지, 루시엘은 합리적인 사고를 하지 못했다.

그는 필사적으로 카인을 붙잡았다. 팔로는 어깨를 꽉 끌어안고, 다리로는 카인의 허리를 촘촘히 감쌌다.

그게 마냥 기뻤다. 루시엘이 자신에게 매달린다는 게. 자신과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다는 게. 살과 살이 이처럼 빈틈없이 밀착되고, 두 개의 심장이 서로 가깝게 붙어 공명할 수 있다는 것이… 기쁘기 그지없었다.

카인은 소파에 루시엘을 내려놓는 대신, 그를 안아 든 상태에서 허리를 쳐올렸다. 카인의 몸통에 감겨 있는 다리가 흠칫 튀었다.

오랜 삽입으로 눅진하게 풀린 안쪽으로, 단단한 좆이 깊이 파고들었다. 바닥을 딛지 못하고 허공에 뜬 발이 달랑거렸다. 희게 질린 발끝이 안으로 곱아들었다.

“아앙! 아, 흐읏, 윽…. 이거 무서워, 무섭단 말야….”

“걱정 말아요. 루시엘. 루시엘이 생각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그치마안… 흐으, 이러다가 떨어지면…”

무게 때문에 성기가 더욱 깊이까지 삽입되었다. 오싹거리는 쾌감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와 뇌리를 휘저어 놓았다.

달뜬 신음을 토해내려는 입술을, 카인이 다시금 제 입으로 막았다. 집무실은 침실과 다르게 방음 마법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타인에게 주군의 신음을 들려줄 수는 없었다. 신음은 밖으로 튀어 나가는 대신, 진득한 타액과 섞여 녹아버렸다.

신음은 막을 수 있었지만 다른 소리는 막지 못했다. 가쁜 호흡이나, 결합부에서 울리는 질꺽이는 물소리, 살과 살이 황홀히 겹치며 나는 소음들. 다행히도 그 소리들은 신음에 비해서는 아주 작아서, 복도까지 새어 나올 일은 없을 터였다.

자꾸만 팔다리에 힘이 풀렸다. 열락에 잠긴 몸뚱이가 흐물흐물 흘러내리려고 했다. 루시엘은 미끄러지려는 다리를 다시 감았다. 사지에 힘을 주어, 안간힘을 다해 카인을 끌어안았다. 두 사람의 몸이 빈틈없이 맞물렸다.

“나, 나 놓지 마, 카인.”

루시엘이 다급하게 숨을 들이켰다.

“절대로 나 놓으면 안 돼. 계속 이렇게, 흐으, 꼭 잡고 있어야 해. 네가 없으면 난, 나는… 떨어져 버려. 바닥으로 추락할 거야.”

루시엘은 카인의 귓가에 입술을 바짝 붙이고서 빠르게 속삭였다. 집무실 바닥에 떨어져서 다치지 않게, 자신의 몸을 잘 받치고 있으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카인은, 그의 부탁을 다른 식으로 해석하고 싶었다.

“절대로 놓지 않을게요. 루시엘.”

그는 아래를 받쳐 든 손에 힘을 주었다.

“어떤 일이 생기든 간에, 제가 당신을 놓아주는 일은 없을 거예요.”

당연하게도 나는 최면에 걸리지 않았다. 내가 만든 펜듈럼에 내가 당하면 꼴이 이상하잖아?

망각 포션 때도 그랬듯이, 흑마법사가 만든 포션이나 환각 용품은 흑마법사 본인에겐 통하지 않는다. 물론 남이 만든 최면 추를 사용하면, 나 역시 최면에 걸릴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런 건 재미없지. 최면이 해제되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도 못 하잖아. 나는 카인과의 소중한 추억들을 온전히 간직하고 싶단 말이다. 머릿속 창고에 차근차근 저장해놓을 거라고.

그리고 만약 진짜 최면에 걸렸다가, 카인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솔직히 말해보세요’ 같은 명령을 내리면 어떻게 해? 그럼 정말로 모든 게 망해버리는데.

난 내가 사실 카인을 좋아한다는 걸 털어놓아 버릴 거고, 그럼 우리는 쌍방 사랑이 되는 거고… 그럼 또다시 신벌이 내려지게 될 테다. 나는 꼼짝없이 카인의 열세 번째 장례식을 치러야 한다.

스물은 죽기에 너무 어리다. 스물하나도, 스물둘도 어려. 네가 죽지 않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제발 이번 생에서는, 주어진 삶을 온전히 누렸으면 좋겠다.

그제는 네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 거냐고. 무엇을? 하고 물었더니 그 푸른 장미요, 라는 짧은 답이 돌아왔다.

일 년 전 내가 했던 말을 아직껏 간직하고 있었구나. 기뻤다. 너보고 들으라고 한 말이었는데, 네가 그 얘기를 기억해줘서.

나는 이렇게 답했다.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어. 나는 여전히 그렇게 생각해. 아름답게 피어도 내 손안에서 피고, 저물어도 내 손안에서 저물어야 한다고 말야. 좋아한다는 건 그런 거잖아. 망가지더라도 내 곁에서, 나로 인해 망가져야 하는 거잖아.

너는 비뚜름하게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저도 루시엘과 같은 생각이에요, 라고 대답하며 잔잔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너를 바라본다. 망가져 가는 너를. 정상적인 사랑을 할 수 없을 만큼 뒤틀려가는 너를. 사랑스러움을 가득 담아 응시한다.

있지, 카인. 그거 알아? 너의 푸른 장미가 나이듯, 내 푸른 장미는 너야. 나 역시 너를 망가뜨리고 있어. 너를 살리기 위해, 너와 함께 살기 위해, 너의 순수함과 상냥함을 훼손하고 있어.

그러나 너는 영원히 알지 못하겠지. 우리가 서로의 구원자이자 파괴자라는 건, 무덤까지 갖고 가야 할 비밀이니까.

나는 잘 자라던 푸른 장미를 뽑아서 내 화단에 심었다. 그 파리한 독성은 시시각각 내 숨통을 조이리라. 내 몸을 파헤치고, 자기 멋대로 조립하고, 끝내는 나를 왕좌에서 끌어내리리라.

사랑하는 네가 주는 독이다. 기꺼이 받아 마시리.

-2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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