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5/20)

3. 어떤 성장통

그해 7월, 카인의 몸에 이상이 생겼다. 무릎이 자주 욱신거렸고 평소보다 서너 배 남짓 식욕이 좋아졌다.

먹는 양이 늘어난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무릎의 통증은 상당히 심각했다. 제대로 달리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이런 몸 상태가 지속된다면, 호위 기사로서의 책무를 다할 수 없었다.

혼자서 끙끙 앓던 카인은, 고민 끝에 아이작을 찾아갔다. 입이 가벼운 게 흠이기는 했지만, 아이작만큼 실력 있는 의사도 없었다.

카인은 제 증상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식욕이 많아진 건 둘째치고, 무엇보다 다리가 아파서 걱정이라고. 이러다가 루시엘을 지키지 못할까 봐 두렵다고.

아이작은 카인의 얘기를 듣는 내내 히죽거리다가, 그가 말을 끝내자마자 배를 잡고 낄낄거렸다.

“걱정할 거 하나도 없어. 그냥 발정기 전조 증상이야. 수인들 사이에서 컸으면 금방 알았을 건데, 인간 손에서 키워져서 몰랐구나? 아, 오랜만에 웃겼다.”

“발정기…?”

생소한 단어였다. 카인은 ‘발정기’라는 단어를 입안에서 혀끝으로 굴려보았다. 익숙해지기 힘든 어감이었다.

“너… 너 반응이 왜 그래? 설마 발정기가 뭔지도 몰라?”

아이작의 웃음이 뚝 끊겼다. 답지 않게 말까지 저는 걸로 보아, 상당히 놀란 것 같았다.

“네. 모릅니다.”

“세상에나. 폐하는 이런 것도 안 가르쳐주고 대체 뭘 한 거야? 기본적인 성교육은 시켜야 할 거 아니냐고.”

아이작은 투덜거리면서도 충실하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수행했다. 그는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던 펜과 종이를 집어 들었다. 정성껏 생식기관을 끼적이며, 필요 이상으로 자세히 발정기에 대해 설명했다.

대략 두 시간 만에, 카인은 발정기에 관한 기본적 지식은 물론이고, 생물학적 원리까지 모조리 습득하게 되었다.

“요약하자면, 첫 발정기는 수인들에게 매우 중요해. 처음 발정기를 겪은 수인은 덩치가 훌쩍 커지거든. 발정기는 보통 마음에 드는 짝과 함께 보내. 짝이 없으면 발정기 억제제를 복용해서 시기를 늦출 수도 있고.”

아이작은 책상 서랍을 열었다. 어지럽게 흩어진 약통들을 뒤적대던 그는, 곧 원했던 물건을 찾아내었다. 호박색 반투명한 유리병 안, 담황색 액체가 목 부분까지 가득 채워져 있었다.

“자, 억제제. 발정기가 시작되려고 할 때 바로 복용하면 돼.”

“감사합니다.”

카인은 약병을 받아들고 꾸벅 고개를 숙였다. 덤덤한 낯과는 다르게, 그의 속은 여러 생각들로 혼란스러웠다.

‘왜 루시엘은 수인의 발정기에 관해서는 말해주지 않은 거지? 내가 뭔지도 모른 채 발정기를 맞아서, 루시엘을 덮쳐버리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내가 늑대였던 시절부터 책을 읽어주고, 인간의 모습이 된 후에는 검술 교사와 예절 교사를 붙여줬으면서. 어째서 발정기는 언급조차 없었던 걸까.’

실은 고민할 필요도 없는 문제였다. 답은 명확했다. 다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루시엘은 카인을 어른으로 여기지 않는다. 키만 크고 나이만 먹었을 뿐, 루시엘의 관점에서 카인은 영원한 아이다. 자그맣게 몸을 웅크리고서 코를 훌쩍이던 새끼 늑대다.

장성한 자식도 부모 앞에는 그저 어린애인 것처럼, 루시엘 앞에서의 카인 역시 그럴 테였다. 루시엘이 보는 카인은 여전히 어리므로, 발정기를 겪기에는 아직 미성숙한 것이다.

카인은 약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는 서둘러 황제의 침소로 향했다. 그의 눈앞에다 보란 듯이 약병을 들이대며 말할 것이다. 보라고. 내가 벌써 발정기를 경험할 나이가 되었다고.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마냥 어리지만은 않다고.

덜컥. 그는 침실의 문을 세게 열어젖혔다.

“카인, 어디 갔다 온 거야? 기다렸잖아.”

루시엘이 입술을 비죽거렸다. 그는 녹다 만 사탕처럼 소파에 눌어붙어 있었다. 딱히 옷처럼 보이지도 않는 얇은 천 하나만을 걸친 채였다.

루시엘은 유난히 더위에 약했다. 업무를 볼 때면 체면상 어쩔 수 없이 옷을 껴입어야 했지만, 카인과 단둘이 있을 때면 가운 하나만 대강 두르고는 했다. 황제랑 호위 기사 사이인데 뭐 어때, 라는 태도였다.

“죄송합니다. 약 받아오느라 조금 늦었어요.”

“무슨 약? 너 어디 아파?”

카인은 대답 대신, 루시엘의 바로 앞에 약병을 가져다 대었다. 베이지색 라벨 위, 만년필로 휘갈겨진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발정기… 억제제?”

“네. 발정기가 올 경우 복용하는 수인용 약이에요. 아이작이 처방해줬어요.”

루시엘은 억제제를 응시했다가, 고개를 들어 카인을 쳐다보았다. 눈동자가 도르르 굴러가더니 다시금 약병에 닿았다. 억제제, 그리고 카인. 다시 억제제, 그리고 다시 카인. 둘 사이를 바쁘게 오가던 시선이 결국에는 카인에게로 고정되었다.

“잃어버리면 큰일 나는 거네. 잘 간직하고 있어야겠다. 어디에다가 보관할 건데?”

“음….”

카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언제 발정기가 찾아올지 모르니. 항상 곁에 지니고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잠깐만 기다려봐.”

루시엘이 가까스로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는 비척거리며 옷장을 열었다. 반쯤 벗겨진 가운 자락이 바닥에 질질 끌렸지만, 루시엘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한참 동안 넓은 옷장을 뒤적거리던 그가, 마침내 작은 가방을 꺼내 들었다. 허리에다 매는 형식의 질 좋은 가죽 가방이었다.

“이건 어때? 사이즈도 적당하고, 들고 다니기에도 편해 보이는데.”

고민하고 말 것도 없었다. 루시엘이 그를 생각하면서 해준 제안이었다. 무조건 받아들여야 했다.

“고마워요. 루시엘. 잘 쓸게요.”

카인은 약병을 곧장 가방 안에 집어넣었다.

루시엘은 옷장을 닫고 다시 소파로 다가갔다. 그는 카인을 소파 끄트머리에 앉게 한 후, 카인의 허벅지를 베고 누웠다. 부드러운 은발이 카인의 허벅지 위로 흐트러졌다.

카인은 소파 옆 협탁에 놓인 과일 그릇으로 손을 뻗었다. 찬물로 씻은 딸기를 집어, 루시엘에게로 들이밀었다.

루시엘은 얌전히 과일을 받아먹으며, 제 기사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날카로운 눈매와 날렵한 턱선, 굳게 다물린 얇은 입술. 가끔은 선득하게까지 느껴지는 금빛 눈동자. 어린 늑대 취급을 하기에는, 그는 이미 너무 많이 커버렸다.

그 당연한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듯, 루시엘이 아, 하고 멍한 탄식을 토해냈다.

“어렸을 때 너 진짜 귀여웠다? 쪼그만 게 제 주인은 알아보는지 내 뒤만 졸졸 따라다니는데, 그게 어찌나 깜찍하던지.”

루시엘이 아련하게 중얼거렸다. 그의 눈은 카인에게 붙박여 있었지만, 카인을 보고 있지는 않았다. 루시엘은 스무 살의 카인에게서, 툭하면 낑낑거렸던 아기 늑대의 흔적을 찾고 있었다.

카인은 루시엘의 거의 모든 면을 사랑했지만, 그 시선만큼은 좋아할 수 없었다. 그만 과거에서 벗어나, 현재의 자신을 올바르게 봐줬으면 하는데… 루시엘은 아직도 혼자 과거를 살고 있었다.

“그런데 네가 벌써 발정기를 맞을 나이가 되다니. 하아, 감회가 새롭다. 자식 장가보내는 부모의 마음이 이런 건가.”

부모와 자식. 루시엘은 그만큼 신기하다는 뜻으로 쓴 표현이겠지만, 카인의 입장에서는 최악의 비유였다. 또다. 인간 기준으로는 고작 여섯 살 밖에 차이 나지 않으면서, 또 자신을 어린애 취급한다.

카인은 제 허벅지에 손톱을 박아 넣었다. 허벅지를 터뜨릴 것처럼 움켜쥔 손이 파르르 떨렸다.

그는 축 내려가려는 입술 끝을 겨우 끌어올렸다. 애써 무감한 표정을 지으며, 제 주군의 입에 반듯하게 잘린 복숭아를 넣어주었다.

“아, 이 복숭아 진짜 맛있다. 너도 먹어 봐.”

루시엘은 복숭아를 한 입 베어 물더니, 남은 복숭아 조각으로 카인의 입가를 쿡쿡 찔렀다. 카인은 먹다 만 복숭아를 얌전히 받아 물었다. 물컹한 과육이 잘게 씹혔다. 카인은 일부러 느릿하게 입술을 오물거렸다. 오래오래 되새기고픈 단맛이었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날들의 반복이었다. 카인은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루시엘과 다른 침실을 쓰고 싶어 했으나, 루시엘이 허락해주지 않았다. 어차피 약 먹으면 바로 해결될 일인데, 뭐가 문제냐는 것이었다.

기사는 주군의 명령을 거부하지 못했다. 그들은 여전히 한 침대에서 잠을 청했고, 잠결에 서로를 부둥켜안았으며, 팔과 다리가 얽힌 채로 눈을 떴다.

루시엘의 느긋함이 옮은 탓일까. 카인은 저도 모르게 긴장을 늦추었다.

‘루시엘 말이 옳아. 제때 억제제만 복용하면 되는 일인걸. 그리고 억제제는 가방 안에 잘 보관하고 있으니까… 별일 없을 거야.’

그러나 불의의 사고는, 가장 해이해졌을 때 터지기 마련이다.

아침이었다. 살포시 감긴 눈꺼풀 위로 따사로운 빛이 어른거렸다. 언제나처럼, 카인이 루시엘보다 먼저 눈을 떴다. 느슨한 여름 햇살이 커튼에 걸려 흩날렸다. 카인은 침대 밖으로 발을 내디디려다가,

“……!”

심장을 묵직하게 짓누르는 통증에, 그대로 바닥으로 꼬꾸라졌다.

‘뭐, 뭐야, 이건….’

난생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깊은 물 속에 잠겨있는 듯한 감각만이 선연했다. 심장이 너무 세게 뛰어서,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더웠다. 뜨거웠다. 전신의 열기란 열기가 모두 중심부로 몰리는 듯했다.

아, 그러니까 이것은 분명…

어렴풋한 시야 구석에 가죽 가방이 들어왔다. 억제제가 들어있는 바로 그 가방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었다. 카인은 낚아채듯 가방을 잡았다. 떨리는 손으로 애써 입구를 열었다.

“…어째서…?”

가방은 텅 비어 있었다.

몸속에서 시작된 불길이 살갗마저 태우는 것 같았다. 카인은 심장 부근을 움켜잡고 한참을 바르작거렸다. 손톱으로 바닥을 긁으며 허덕거렸다. 둥글고 가지런한 손톱이 점점 길어지더니, 끝내 날 선 늑대의 것으로 변했다. 흉터를 닮은 발톱 자국이 바닥에 선명히 남았다.

이제는 한계였다. 인간의 몸을 유지할 수도, 인간다운 이성을 계속 간직할 수도 없었다. 그저 폭발할 것 같은 욕구만이 머릿속을 채워나갔다.

침대에서 단내가 났다. 얼마 전 맡았던 복숭아 냄새와는 전혀 달랐다. 과일 향과는 거리가 먼, 인간의 은은한 살내음. 육식동물이어서 그런 걸까. 카인에게는 이쪽의 향기가 훨씬 더 취향이었다.

카인은 무언가에 이끌리듯 본능적으로 침대 위로 올라갔다. 명화 속 천사 같은 얼굴을 가진 청년이, 세상모르고 쌔근쌔근 잠들어 있었다.

그를 사냥하고 싶었다.

어깨를 물어 제압하고, 억지로 다리를 벌리게 하고, 드러난 구멍에 무작정 제 욕망을 밀어붙이고 싶었다. 발그레한 볼을, 도톰한 입술을, 흠 없이 매끈한 목덜미를 질척하게 핥아 내리기를 원했다. 늑대로서의 본성이, 눈앞의 반려자에게 씨를 뿌리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카인은 본성을 따르기로 했다.

거대한 불덩이가 온몸을 짓누르는 감각에, 루시엘은 퍼뜩 눈을 떴다. 보름달을 닮은 한 쌍의 눈동자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늑대의 앞발이 루시엘의 어깨를 세게 내리눌렀다. 온몸으로 황제를 덮쳤다. 늑대의 체온은 평소보다 훨씬 뜨거웠다. 남아 있던 잠기운을 완전히 걷어갈 만큼.

“카인…?”

그 순간 루시엘을 사로잡은 것은, 공포감이었다. 기실 카인이 제 위에 올라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어릴 적 카인은 루시엘의 무릎에서 꾸벅꾸벅 졸거나, 심지어는 그의 배 위에 발라당 누워 함께 낮잠을 즐기고는 했다.

비록 덩치가 커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카인은 카인이었다. 카인은 자신의 호위 기사였고, 유일한 친구이었으며, 피보다 진한 인연으로 맺어진 가족이었다. 카인이 자신을 해칠 리가 없었다. 불안해할 이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카인, 무거워. 장난치지 말고 어서 내려와.”

루시엘은 이유 모를 두려움을 애써 내려놓았다. 의연하게 말하며 카인을 밀어내었다. 허나 카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늑대가 입아귀를 크게 열었다. 인간의 것보다 훨씬 길고 두툼한 혀가, 포식하듯 루시엘의 옷 위를 핥아대었다. 투명한 타액이 얄브스름한 잠옷을 축축이 적셨다. 살결에 착 달라붙은 흰 천 아래로, 뾰족이 선 유두가 뚜렷하게 비쳤다.

…잡아먹힌다. 카인은 날 잡아먹으려고 하는 거야.

카인이 처음으로 사냥감을 물어왔던 날을 기억한다. 뭉그러진 붉은 살코기를 툭, 하고 주인 앞에 내려놓으며, 늑대는 이빨을 드러내고 그르렁거렸다.

피와 살점이 덕지덕지 묻어나던 그 예리한 치아는, 단순히 음식물을 씹기 위해 존재하는 인간의 이는 다르다. 피식자를 물어뜯고, 더 나아가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흉기다.

그리고 지금, 카인은 그 이빨을 루시엘에게 들이대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싫어! 하지 마!”

루시엘은 버둥거리며 카인을 밀어내었다. 다리로 세게 카인을 걷어차려고 했지만, 발목이 먼저 잡혔다. 카인이 루시엘의 바짓가랑이를 잡아 물었다. 이를 세워 하반신의 천을 찢어 내렸다.

첨예한 이빨이 살갗을 약하게 스쳤다. 의복만 신경 써 찢어낸 덕에 통증은 없었다. 주군을 대한다기에는 무례하고, 먹잇감을 대한다기에는 섬세한 움직임이었다.

카인이 문자 그대로 루시엘을 잡아먹길 원했다면, 옷을 벗기는 대신 먼저 숨통부터 끊어놓았을 터였다. 그제야 루시엘은, 카인이 그를 ‘성적인 의미로’ 잡아먹으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 하지만 왜… 설마 발정기 때문에?”

두개골까지 소름이 돋았다. 루시엘은 열기로 흐려진 카인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샛노란 홍채의 불규칙한 결에는, 사고를 잃은 욕구만이 가득 고여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전에도 이와 비슷한 눈빛을 마주한 적 있었던 것 같다. 감히 황제를 겁간하려 들던 기사 단장, 에반이, 꼭 저런 시선으로 루시엘을 응시하고는 했다.

“카인, 정신 차려. 나야, 루시엘. 대체 나를 누구랑 착각하고 있는 거야?”

카인이 루시엘을 성적인 대상으로 볼 리 없다. 그런고로 지금 이 현상은 전부 발정기의 농간이다. 발정기 때문에 이성을 저버린 카인이, 제 앞에 있는 게 주군인지도 모르고 무작정 좆을 처박으려 하는 거다. 루시엘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 생각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만약 카인에게 인간의 언어를 할 정신이 남아 있었다면, 그는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착각하고 있는 건 바로 당신이라고.

루시엘, 나는 아무것도 착각하지 않았어요. 지금 내가 짓누르고 있는 상대가, 다름 아닌 주군임을 똑똑히 알고 있어요. 알면서도 당신을 안고 싶은 거예요.

내 옆에 있는 게 당신이 아니었다면, 나는 어떻게든 발정기의 성욕을 견뎌내었을 거예요. 그렇지만 루시엘이라서, 하필이면 지금 이때, 루시엘이 내 곁에 있어 버려서….

그의 살내음이, 겁에 질린 표정이, 필사적으로 버둥거리는 가녀린 육체가, 카인의 뇌리를 어지럽게 휘젓는다. 어서 너의 반려를 범하라고, 누구의 것인지 모를 음성이 머릿속을 맴돈다. 안을 파헤쳐. 약점을 잡아내. 민감한 부위를 헤집어….

꺼덕거리는 성기가 오므라진 구멍을 쿡쿡 찔렀다. 창에 관통당하기 직전의 병사처럼, 루시엘이 흠칫 몸을 옹송그렸다. 공포, 배신감, 수치심, 어두운 감정들이 해쓱하게 어린 낯을 바라보며, 카인은 단숨에 허리를 쳐올렸다.

짐승의 좆이 꽉 닫혀있는 애널을 열어젖혔다. 늑대의 성기에는 단단한 뼈가 있었기에, 인간의 것보다 훨씬 수월하게 구멍을 벌릴 수 있었다.

“아, 아악! 아파아… 싫어, 찌, 찢어져, 아읏, 아아…!”

풀어준 적 없는 생살을, 성기가 억지로 비집고 들어갔다. 루시엘은 새파랗게 질린 입술을 달싹거리며,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그의 전신이 덜덜 경련했다.

카인은 퍼드덕대는 사냥감을 내리눌렀다. 루시엘을 달래려는 듯 혀로 볼을 핥아주었다. 눈물로 얼룩진 뺨에서는 짠맛이 났다.

“아흑, 윽, 괴, 괴로워… 너무, 너무 아파… 흐윽, 윽…”

루시엘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는 통증으로 헐떡거리며 아프다는 말만을 반복했다. 제대로 풀어주지도 않고, 좁은 구멍에 이물질을 욱여넣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카인에게 사람의 손이 있었다면, 그 손으로 루시엘을 애무했을 텐데. 아파서 울지 않도록,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손가락으로 안쪽을 길들였을 텐데.

하지만 지금 카인은 늑대였다. 발정기의 열락은, 그가 쉬이 사람으로 돌아오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늑대의 앞발로는 루시엘을 매만질 수 없었다. 날카로운 발톱을 감당하기에는, 인간의 피부는 지나치게 여렸다.

“아으, 아, 아악!”

어디를 찔러도 루시엘은 괴로워하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맨정신으로 삽입당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첫 경험 때 그는 에반이 준 미약을 먹은 상태였고. 두 번째 경험 때는 촉수의 점액으로 몸이 민감해져 있었다.

그렇다면 어떤 의미에서는, 이번이 루시엘의 진짜 첫 경험이라고 봐도 될 터였다. 그는 제 처음을 짐승에게, 변변찮은 애무도 받지 못하고 빼앗겼다.

그때였다. 루시엘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의 얼굴에 순간 당혹감이 서렸다.

“뭐, 뭐야, 이건….”

장내가 빠르게 젖어 들고 있었다. 루시엘의 안에서 배어 나온 애액은 아니었다. 안쪽을 들쑤시는 늑대의 좆에서, 투명한 체액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정액보다 훨씬 더 양이 많았다.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가, 윤활제 역할을 하며 내벽을 적시고 있었다.

개과 동물은 사정을 총 세 번 한다. 첫 번째 사정은 교미 초반부에 일어나며, 정액이 아닌 쿠퍼액이 분비된다. 쿠퍼액으로 덧칠된 안쪽은, 딱딱한 성기를 더 수월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하읏, 아, 아앗, 응!”

고통뿐이었던 신음에 관능적인 색이 더해졌다. 물기 어린 목소리 끝이 둥글게 휘어졌다. 신음 소리는 높고 얇았다. 제가 낸 신음에 놀라, 루시엘이 손바닥으로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으, 으응, 읍…”

손이 입술을 막은 탓에, 루시엘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끙끙대는 소리만이 미약하게 새어 나왔다. 카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신음 따위, 굳이 참지 않아도 될 텐데. 저로 인해 하염없이 느끼는 주군을, 눈과 귀로 충분히 보고 듣고 싶은데….

입을 틀어막은 손을 당장 치워내고 싶었지만, 지금의 카인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이 커다란 앞발로는 손을 떼어 내기는커녕, 할퀴어 상처만 입힐 테였다.

카인은 한층 더 거칠게 추삽질을 했다. 가장 잘 느끼는 부분을 귀두 끝으로 슬슬 긁어내리자, 손이 움찔거리며 밑으로 미끄러지려고 했다.

루시엘은 간신히 제 입을 붙잡았다. 양손으로 가려진 하관. 수치와 쾌감이 뒤섞인 눈동자만이 가까스로 보였다. 긴 눈꼬리에서는 연신 새로운 눈물이 맺혔다가 굴러떨어지기를 반복했다.

그 얼굴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경악으로 흔들리는 눈동자가, 수치심으로 벌겋게 물든 눈시울이, 손바닥에 가려져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가늘게 떨리고 있을 입술이. 미치도록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주군의 눈물을 아름답다고 여기다니. 필사적으로 신음을 참는 그 표정이 좋다니. 이건 이상했다. 정상과는 거리가 먼 생각이었다. 허나 카인은 제 생각이 비뚤어졌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으으, 응, 아으…”

안쪽이 깊숙하게 관통될 때마다, 통증과는 확연히 다른 감각이 루시엘의 몸을 침범했다. 쾌감은 아랫배에서부터 흘러나와 머리끝과 발끝을 적셨다. 고개가 저절로 뒤로 젖혀졌고, 발가락이 곱아들었다가 쭈욱 펴지기를 반복했다.

카인은 혓바닥으로 루시엘의 손등을 핥았다.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의 오목한 공간을 살살 핥다가, 그 사이로 긴 혀를 미끄러뜨렸다.

달뜬 숨을 흘리는 입술이 손 틈새로 얼핏 모습을 드러내었다. 카인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다물린 입술에 제 혀를 붙이며, 한 번 크게 허리를 밀어붙였다. 힘을 잃은 손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하아, 아, 아앗! 흐앙, 힉! 아, 아니야… 이런 소리 내기, 싫어엇… 응, 흡, 하으앗, 아응…!”

그토록 듣고 싶었던 신음이 마구잡이로 튀어 올랐다. 한 번 열린 입술은 쉽게 다물려지지 않았다. 부끄러운 교성을 그만둘 수 없었다. 말캉한 내벽이 삽입된 이물질을 꾹꾹 조였다. 마치 짐승의 좆을 조르는 것처럼.

카인도 루시엘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카인은 폭발할 것 같은 열기를 루시엘의 안에 양껏 분출해내었고, 루시엘은 반쯤 정신을 놓고서 흐느꼈다. 손댄 적도 없는 성기가 어느새 발기해있었다. 그래도 잘 느껴주고 있구나. 그 사실이 못내 기뻤다.

성기가 눅진하게 젖어든 안쪽을 휘저었다. 한계까지 늘어난 접합부에서 질척이는 물소리가 들렸다.

물소리, 살과 살이 둔탁하게 부딪히는 소리, 바스락거리는 침대 시트, 공기 중으로 퍼지는 열띤 신음. 그 모든 소리들은 결코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을 터였다. 황제의 침소에는 방음 마법이 걸려 있었으니까.

루시엘이 아무리 크게 신음해도, 복도에 있는 시종들은 그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 이것은 오로지 카인만이 들을 수 있는, 카인을 위한 소리였다. 비약인 줄 알면서도, 카인은 그런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나의 루시엘. 내 거. 나만을 위한 것.’

이성은 휘발되고 본성만 남았다. 늑대는 본능대로 추삽질을 이어 나갔다. 인간다운 기교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본능을 채우기 위해, 투박하게 허리를 움직일 뿐이었다. 그런 몸짓에도, 루시엘은 몇 번이나 오르가슴을 맞았다.

카인은 흐물흐물 풀린 루시엘의 얼굴을 보는 게 좋았고, 그가 자신 때문에 저런 표정을 짓는다는 것도 기뻤다. 미약이 없어도 이렇게까지 느낄 수 있다니. 자신과 루시엘은, 속궁합이 무척 잘 맞는 게 확실했다.

‘사랑해요. 루시엘. 정말 많이, 사랑하고 있어요.’

인간이었다면 입을 열어 사랑을 고백했으리라. 하지만 늑대의 성대로는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는 게 고작이었다.

카인은 루시엘의 목줄기에 코를 가져다 대었다. 인간보다 훨씬 더 뛰어난 늑대의 후각으로, 제 주군의 체향을 마음껏 들이켰다. 예민한 비강 점막에 달큰한 살내음이 들러붙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향기가 달콤하게 뇌를 갉아먹고 있었다. 미약 섞인 향수를 맡는다면 이런 기분이 들까. 아니, 아니다. 그 어떤 향수도 이보다 더 자신을 자극하지는 못할 터였다.

그를 유린하고 싶다. 정복하고 싶어. 그에게 자신의 페로몬을 묻히고 싶다. 발정기 늑대 특유의 짙은 페로몬으로, 주군의 폐부를 휘저어놓기를 원한다. 루시엘의 몸 어디든 간에, 제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으면 좋겠다.

카인은 루시엘의 쇄골을 핥다가, 이를 세워 어깨를 약하게 깨물었다. 사람의 모습이었다면 키스 마크를 수십 개도 더 남겼겠지만, 늑대인 지금은 고작 잇자국만 새길 수 있었다. 다음에 또 기회가 생긴다면, 사람의 형상을 하고서 다시금 그를 안고 싶었다.

카인은 제 품 안에 갇힌 루시엘을 내려다보았다. 기분 탓인지, 루시엘의 몸집이 점점 작아지는 것 같기도 했다.

카인은 멍한 머리를 굴려 곧 답을 찾아내었다. 루시엘이 줄어들고 있는 게 아니라, 카인이 자라고 있는 거였다. 늑대 수인은 첫 번째 발정기를 겪으며 몸이 훌쩍 자란다. 보통 늑대만 했던 크기가 최대 2미터까지 성장할 수도 있다.

커지는 것은 단지 몸집만이 아니었다. 몸이 자람에 따라 성기도 커지고 있었다. 원래도 받아들이기 버거운 크기였는데, 거기에서 조금 더 길고 두꺼워지고 있었다. 제멋대로 부푼 성기가 좁은 결장 입구를 쿡쿡 건드렸다.

“자, 잠깐, 이상해, 거기…!”

카인은 몸부림치는 루시엘을 온몸으로 찍어 눌렀다. 퍽, 둔부와 허벅지가 빈틈없이 맞닿았다. 열리면 안 될 곳이 삽시간에 확, 열렸다.

부드럽게 질퍽이는 살의 안쪽, 좁게 다물려 있어야 할 곳으로, 단단한 귀두가 파고들었다. 여리고 민감한 속살을 도려내듯이 열어젖혔다.

인간의 것보다 훨씬 더 딱딱한, 뼈를 가진 짐승의 좆이, 비좁은 공간을 억지로 벌려놓았다. 내벽이 녹을 것처럼 뜨거웠다. 루시엘은 믿을 수 없다는 듯 힘겹게 숨을 들이마셨다.

“아, 안 돼, 아앗, 움직이지 마아, 더 이상, 안 들어가앗… 힉, 하으응…!”

그동안 아무도 닿지 못했던 부위다. 그렇기에 이토록 빽빽하고 열기 힘든 것일 터다. 에반이 강제로 밀어 넣었던 와인병도, 괴물의 기다란 촉수도 결장까지는 침입하지 못했다.

그 누구도 건드린 적 없던 공간이, 바로 지금, 카인에 의해서 파헤쳐지고 있었다. 왠지 모를 만족감이 카인의 가슴을 꽉 채웠다.

“흐익, 아, 너무 깊…! 으응! 윽!”

루시엘은 거의 비명을 질렀다. 도리질 치며 흐느꼈다. 다리를 들어 카인을 걷어찼지만, 돌덩이 같은 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성기는 속살을 짓치며 느리게 안으로 진입했다. 끝내는 가장 안쪽까지 처박혔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각에, 루시엘은 눈을 뒤집어 까며 절정을 맞았다. 이번에 흘러나온 것은 정액이 아니었다. 선단 끝에서 말간 조수가 뿜어져 나왔다. 허벅지와 하복부를 가로질러 가슴까지 튀었다.

뱃속에 들어찬 이물감에 가까스로 적응해가려던 찰나, 이번에는 성기가 느릿하게 빠져나왔다. 숨을 돌리기도 전에, 다시금 한 번에 안까지 짓치고 올라왔다. 좆 모양으로 길이 난 내벽을 따라, 퍽, 퍽 소리를 내며 출납을 반복했다. 성기가 결장 입구에 걸릴 때마다 쯔꺽, 하는 기괴한 소리가 났다.

“커흑, 컥, 아악…!”

침을 되삼키다 사레라도 들렸는지, 루시엘이 컥컥대며 마른기침을 했다. 그는 개처럼 혀를 내밀고 헉헉거렸다.

더웠다. 뜨거워서 미칠 것 같았다. 카인과 살이 맞닿은 자리가 화끈거렸다. 카인의 체온은 뜨거웠다. 그 체온이 루시엘의 머릿속까지도 흐늘흐늘 녹이고 있었다.

“이러다가 부서져, 부서져 버린단 말이야…!”

루시엘은 눈을 질끈 감고 도리질 쳤다. 부서진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산산조각 깨져버린다. 촉수한테 박히면서 앞을 세웠을 때에는, 점액 때문이라고 변명이라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약도 먹지 않았는데 느끼고 있는 것이다. 저도 모르게 아랫배를 조이며, 결장을 턱턱 치받는 좆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아, 싫다. 이런 건 싫어. 나는 황제인데. 이렇게 아래에 짓눌려있을 사람이 아닌데.

호위 기사에게 겁탈당하는 주군. 반려동물에게 수간당하는 주인. 어느 쪽도 말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흥분해 정액을 질질 흘리기까지 쾌감을 한다니. 제 자신을 도무지 용서할 수 없었다. 스스로가 역겨웠다. 구역감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그만, 그만해…. 느끼기 싫, 아흐, 읏! 느끼기 싫엇, 윽, 아냐, 이런 건 내가 아니… 하응, 히익-!”

흉포한 짐승의 성기가 결장과 전립선을 짓눌렀다. 복부가 성기의 움직임에 맞춰 볼록 튀어나왔다가 다시 판판하게 가라앉았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그냥 잡아먹히는 게 낫겠다. 칼날처럼 잘 벼려진 이빨로 단번에 숨통을 꿰뚫린다면, 이런 잔인한 쾌락 따위 느끼지 않았을 텐데.

아침부터 시작된 정사는 정오가 넘은 후에도 이어졌다. 정사라는 점잖은 단어보다는, 교미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몰랐다. 어느덧 회의 시간이 되었지만, 신하들은 굳이 황제를 찾지 않았다.

임금이 회의에 안 왔다 하면 찾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루시엘은 달랐다. 그가 회의에 늦는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술과 노름에 취해, 아예 회의에 빠진 적도 잦았다.

어차피 그는 회의에서 딱히 하는 일도 없었다. 턱을 괴고 지루하게 왕좌에 앉아있을 뿐, 제대로 된 의견을 낸 적이 없었다. 심지어는 대놓고 하품을 하거나, 옆에 서 있는 호위 기사와 잡담을 나누기도 했다. 뜬금없이 신하들에게 짜증을 내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폐하께서 안 오시는데, 불러야 하나?”

"내버려 둬. 무능의 극치를 달리는 폭군이다. 회의에 안 오는 게 더 도움이 될걸?"

만약 루시엘이 조금만 더 정상적인 황제였다면, 신하들은 루시엘을 부르러 침소 문을 두드렸으리라. 그래도 루시엘이 나오지 않는다면, 황제의 신변에 문제가 생겼다고 판단하여, 강제로 문을 열었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껏 루시엘이 저지른 일들은 정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신하들은 루시엘의 안위를 확인하려 들지 않았다. 어련히 알아서 잘 뒹굴거리고 있겠지, 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황제가 없는 국가 회의가 원활하게 진행되는 동안, 루시엘은 쾌감에 지쳐 허덕이고 있었다.

“아으, 우윽, 아, 아앙! 하윽! 살려, 살려 줘어… 미칠 것 같, 아, 히극….”

쾌락이 몸을 덮친다. 분쇄한다. 그를 그답게 만드는 모든 요소들을 부순다. 타인을 내려다보는 게 익숙한 황제도, 콧대 높고 오만한 폭군도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내의 욕망을 받아내기 위한 몸뚱이만이 이곳에 존재한다. 허리 짓에 따라, 맥없이 위아래로 흔들리는 꼴이라니.

‘남창 같아, 이런 건….’

그때였다. 찌르는 듯한 통증이 하복부를 강타했다. 아랫구멍이 더욱 빠듯하게 벌어졌다. 주먹을 좁은 안쪽에다가 꾸역꾸역 밀어 넣는다면, 이런 느낌이 들 것 같았다.

딱딱하게 부풀어 오른 귀두가 안쪽을 쿵쿵 두드렸다. 발정기 늑대의 페로몬이 한층 더 짙어졌다. 전신을 으깰 것처럼 쏟아져 내렸다. 개과 동물이 제 짝을 임신시키기 위해 하는 행위, 노팅이었다.

정액을 아무리 퍼부어 보았자, 남자인 루시엘은 아기를 밸 수 없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카인은 루시엘의 안에다가 평소의 몇 배나 되는 정액을 토해내었다.

“흐익, 아, 아아…!”

이삼십 분에 달하는 긴 노팅을 당하며, 루시엘은 몇 번일지 모를 절정을 맞았다. 마지막으로 희멀건 정액을 질질 내뱉으며, 루시엘은 그대로 까무러쳤다.

노팅이 끝났다. 발정기의 열기가 빠르게 사그라졌다. 뾰족하던 발톱이 다시 가지런해졌고, 빽빽이 돋아나 있던 털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인간이 되자마자 카인이 한 일은, 두 팔을 벌려 루시엘을 꼭 끌어안는 것이었다. 그는 노팅이 다 끝난 후에도 성기를 빼내지 않았다. 제 품 안에 루시엘을 가두고서, 아랫배를 부드럽게 다독였다. 그의 안은 포근했고, 삽입된 좆과 정액으로 부풀어 있었다.

머리의 열기가 가시자, 조금씩 이성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자신이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는 자명했다. 기사도를 어기고, 섬겨야 할 주군을 겁간했다. 짐승의 몸으로 이 나라의 황제를 범했다. 발정기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얘기는, 전혀 변명이 되지 못한다. 즉결처분을 받아 사형에 처해져도 할 말이 없었다.

물론 루시엘은 카인을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폭군이었지만 카인한테만은 너그러웠으니까. 하지만 사형까지는 아니어도, 무거운 형벌을 받게 될 것은 확실했다.

그렇지만 후회는 없었다. 무섭지도, 떨리지도 않았다. 도리어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과 루시엘은 이렇게 될 운명이었던 거다. 정해진 순리대로 일이 풀려나가는 것뿐이다… 흥분의 잔여로 빠르게 뛰는 심장과는 다르게, 머릿속은 기묘하리만치 차분했다.

이제 루시엘은 그를 더 이상 아이로 보지 못 하리라. 그 전의 섹스와는 다르게, 이번의 일을 잊지도 않으리라.

망각 포션을 복용하지도 않았고, 잠에 빠진 상태도 아니었다. 루시엘은 오늘 벌어진 일을 생생하게 기억할 것이었다. 카인에게 품어지며, 자신이 얼마나 느꼈는지. 어떤 식으로 신음했는지.

그래. 이걸로 되었다.

형벌이 두렵지는 않았다. 어떤 처벌이 내려지든, 달게 받아들일 자신이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이를 품은 대가다. 순순히 죗값을 치르는 게 맞았다.

‘그리고 내가 지은 죄의 무게만큼, 더 성실히, 최선을 다해 루시엘을 지키겠어. 그것이 나의 사죄다.’

카인은 기절한 루시엘을 안아 욕실로 데려갔다. 그를 깨끗이 씻기고, 잇자국 위로 연고도 발라주었다. 그는 침대에 루시엘을 눕히고서, 머리맡에 앉아 루시엘이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뭐든 좋으니, 황제가 빨리 형벌을 내려주기를 바랐다.

루시엘은 저녁쯤에야 스르르 눈을 떴다. 그가 정신을 차린 것을 확인하자마자, 카인은 그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넸다. 죄송하다고. 어떤 벌이든지 담담히 받아들이겠다고.

루시엘은 한참 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감옥과 유배 중에서 고민 중인 걸까? 어떤 고문을 해야 가장 괴로울지 재보는 중이려나?

기사는 차분히 바닥에 무릎을 꿇고, 주군의 명령을 기다렸다. 여러 많은 일이 있었지만 카인은 아직까지는 나름 선한 인간이었고, 죗값을 치르는 건 당연하다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루시엘이 천천히 혀를 움직였다. 하도 교성을 내지른 탓인지 목소리가 낮게 쉬어 있었다.

“용서할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문장을 툭, 내뱉으며, 루시엘이 카인의 어깨를 토닥였다.

“예? 방금 뭐라고…”

“용서해준다고. 다른 사람이었다면 당장 황성에서 내쫓았겠지만… 너니까 괜찮아. 너는 나한테 가족 같은 존재잖아. 그러니까 이 정도는 그냥 넘어갈 수 있어.”

“하, 하지만… 저는 주군을 범했습니다. 그런데 왜…”

“아, 나는 네가 날 범했다고는 생각 안 해. 네가 나한테 욕망을 품은 것도 아니잖아? 발정기를 맞은 네 곁에, 우연히 내가 있었던 거지. 불의의 사고야. 너도, 나도, 그저 운이 나빴을 뿐이야. 굳이 따지자면 내 잘못이 크지. 너는 나랑 떨어져 있으려고 했는데, 내가 같이 자자고 계속 우겼잖아.”

카인은 이번 일을 ‘운명’이라고 여기는데, 루시엘은 ‘불의의 사고’라고 말한다. 카인이 제게 성욕을 가질 리가 없다고, 모든 것은 발정기의 농간이라고만 생각한다.

이런 관용은 필요 없었다. 이럴 바에는 미움받는 게 훨씬 나았다. 가족이 되기보다 차라리 적이 되고 싶었다.

“화내지 않는 겁니까? 이대로 저를 용서하신다고요? 루시엘이 저 때문에 얼마나 고통스러워했는데…!”

“아, 그거라면 걱정해주지 않아도 돼. 그 당시 충격을 너무 크게 받아서 그런지, 기억이 드문드문 끊겼더라고. 네가 내 옷 찢어먹은 거랑, 혀로 내 볼 핥은 것밖에 기억 안 나. 사실 네가 삽입을 했는지 안 했는지도 생각 안 나. 물론 안 했겠지만.”

“…….”

아, 이번에도 그는 대부분의 것을 잊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그쪽이 뒤로 얼마나 잘 느꼈는지 설명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루시엘이 별생각 없이 뱉어내는 말 한마디, 한 마디가 칼날보다 매섭게 심장을 후벼 팠다. 카인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어졌지만, 루시엘은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이건 발정기라는 생리 현상 탓이지, 네가 나쁜 마음을 먹고 일을 친 건 아니잖아. 카인, 네가 얼마나 착한 아이인데. 그리고 너는 부단장이랑 촉수에게서 날 구해줬잖아. 황제를 두 번이나 구했으니, 충분히 용서받을 자격이 있어.”

착한 아이. 사실 카인은 마냥 선하지도, 어리지도 않는데, 루시엘의 앞에서 그는 여전히 ‘착한 아이’였다.

‘착한 아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행동을 한다면, 그럼 루시엘도 생각을 바꾸게 될까?

“언제까지 무릎 꿇고 있을 거야?”

루시엘의 물음에, 카인은 퍼뜩 고개를 들었다. 루시엘이 침대 빈자리를 손바닥으로 툭툭 쳤다. 제 옆에 누우라는 뜻이었다. 이제 발정기도 다 지나갔으니, 별일은 없을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그 험한 꼴을 당하고도, 루시엘의 얼굴에는 경계심 한 점 없었다.

카인은 얌전히 그의 옆에 누웠다. 주군이 편하게 쉴 수 있도록, 그에게 제 한쪽 팔을 내주었다.

루시엘은 카인의 왼팔을 베고서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카인은 고개를 돌려 루시엘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온갖 생각들이 마음을 착잡하게 만들었다.

‘가족’이라는 허울 좋은 표현은 이제 질렸다. 너를 믿는다니, 너니까 괜찮다느니 같은 얘기들도 더는 듣고 싶지 않다. 모든 걸 용서하겠다는 그 자애로운 시선도, 지금은 딱 질색이다.

한때는, 루시엘을 바라보기만 해도 기뻤다. 그의 곁에 머무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카인은 이제 루시엘의 웃는 낯보다는, 우는 얼굴이 더 보고 싶었다. 너는 내 가족이 아니라고, 너를 선하다 믿었던 건 인생 최대의 실수였다고… 흐느끼는 황제의 모습을, 두 눈에 똑똑히 담고 싶었다.

한여름, 고된 성장통을 겪으며 카인은 자랐고, 그 안의 ‘착한 아이’는 결국 완전히 죽어버렸다.

와.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나는 참담한 감정을 능숙하게 숨긴 채로, 카인의 손에 들린 약병을 쳐다보았다. 아이작이 건네준 발정기 억제제였다.

이건 아이작이 나빴다. 어떻게 카인에게 발정기 억제제를 줄 수 있지? 촉진제를 줘도 모자랄 판에?

나는 의도적으로 카인에게 발정기에 대한 지식을 가르치지 않았다. 카인이 혹여 다른 곳에서 발정기가 뭔지 찾아낼까 봐, 알게 모르게 그의 주변을 통제하기까지 했다. 카인이 다른 수인을 못 만나게 한달지, 도서관에 있는 발정기 관련 문헌들을 전부 치운달지 등등.

카인은 발정기가 뭔지 몰라야 했다. 아무런 대비도 없이 발정기를 맞고서, 이성을 잃고 나를 강간해야 했다.

그런데 아이작이 카인한테 억제제를 줘버렸다. 게다가 발정기에 관해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주었다.

물론 아이작이 잘못한 건 하나도 없다. 그는 의원으로서의 책무를 성실히 수행했을 뿐이다. 그 때문에 내 계획이 조금 틀어지기는 했지만, 아이작을 탓할 수는 없었다. 나는 아이작을 갈구고 싶은 욕구를 꾹꾹 눌러 참았다.

“잃어버리면 큰일 나는 거네. 잘 간직하고 있어야겠다. 어디에다가 보관할 건데?”

이 말은 곧, 제발 잃어버려라. 어디다 보관할지 말해줘라. 그럼 내가 알아서 잘 훔쳐 가겠다- 라는 뜻이다. 카인은 대답을 못 하고 어물거렸다. 보관할 곳을 생각해두지 않은 모양이었다.

“잠깐만 기다려봐.”

나는 옷장에서 작은 가방을 꺼내 들었다. 화려한 장식이 많은 걸 빼면, 딱히 특이한 구석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건 일반인들의 관점이고, 실력 있는 마법사들은 이 가방 안쪽을 보자마자 눈을 크게 뜰 거다. 가방 속에는 소형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기능은 텔레포트. 가방 안에 넣은 물건을,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장소로 이동시키는 마법이었다.

“이건 어때? 사이즈도 적당하고, 들고 다니기에도 편해 보이는데.”

“고마워요. 루시엘. 잘 쓸게요.”

나는 카인에게 이동 마법이 설치된 가방을 선물했고, 카인은 기뻐하며 가방을 받아들였다. 그는 가방에다 흔쾌히 약병을 집어넣었다.

좋아. 작전은 완벽하다. 카인이 발정기를 겪는 바로 그때에 맞춰서, 마법진을 발동시키는 일만 남았다. 약병은 호수 아래에 처박아 놓든지 해야겠다.

발정기 억제제라니. 카인에게 그런 극악무도한 약을 먹일 수는 없었다. 발정기를 왜 참냐고. 내가 있는데. 나한테 쏟아내란 말이야.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곧 찾아올 발정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발정기의 섹스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카인은 거칠게 나를 찍어 눌렀고, 제대로 풀어주지도 않고 성기를 삽입했다. 이성이랄 게 없는 짐승처럼, 오롯이 제 욕구를 풀기 위해 허리를 밀어붙였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고통에 겨워 몸부림쳤겠지만, 나에게 있어 통증은 환희에 불과했다.

비강에 달라붙는 짐승의 페로몬과, 배 안에서 끝도 없이 부풀어 오르는 물건. 나를 짓누르는 카인의 열기와 무게. 선연한 욕망으로 번뜩이는 금안. 내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고 사랑스러운 것들.

아침 일찍부터 해가 쨍쨍한 오후까지, 나는 늑대 상태의 카인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이성을 되찾자마자, 카인은 죗값을 치를 다짐부터 했다. 진심을 담아 사죄하고, 주어지는 벌을 기꺼이 견뎌내는 것. 옳은 일이기는 했으나, 지금 카인에게는 불필요한 자세였다.

있잖아. 카인, 너는 선한 인간이 되면 안 돼. 똑바른 사상을 가져서도, 올바른 사랑을 해서도 안 돼. 자칫하다가는 네가 죽어. 지난 열두 번의 생처럼 허무하게 죽어버려. 그럼 나는 널 지키지 못했다는 죄악감에 몸부림치며, 외로이 다음 환생을 기다려야 하겠지.

순애는 죄다. 연애는 사치다. 너는 내게 다정해서는 안 된다. 네가 합당한 처벌을 받길 원한다면, 그럼으로써 선한 마음을 지키려고 한다면… 나는 너를 벌하지 않겠다. 기어이, 너를 용서하고야 말겠다.

“용서할게.”

나는 함부로 용서를 입에 담았다. 거짓 미소를 입가에 띠고서, 부드러운 어조로 속살거렸다.

“너니까 괜찮아. 너는 나한테 가족 같은 존재잖아.”

“네가 나한테 욕망을 품은 것도 아니잖아?”

“불의의 사고야. 너도, 나도, 그저 운이 나빴을 뿐이야.”

“카인, 네가 얼마나 착한 아이인데.”

나의 용서가 너에게 기쁨이 되지 못하리라는 걸 안다. 내가 널 위한답시고 한 모든 말들이, 도리어 네게 고통을 주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허나 그 모든 괴로움을 양분 삼아, 너는 자라날 것이다. 무럭무럭 자라서, 비정상적인 사랑밖에 하지 못하는 어른이 될 것이다.

그러니, 조금만 더 이 아픔을 견뎌주기를. 성장통을 무사히 이겨내고 나면, 너는 한 걸음 더 죽음과 멀어질 테니까.

나는 침대 빈자리를 두드렸다. 내 옆에 누우라고, 해맑은 어조로 말했다.

설정상의 ‘루시엘’은 네 마음을 모른다. 네가 자신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무슨 욕망을 품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발정기의 너에게 험하게 범해졌으면서도, 경각심도 없이 너와 한 침대를 쓰고 싶어 한다.

너는 입술을 지르물었다. 주군의 명을 따라, 천천히 바닥에서 일어나 침대로 올라갔다. 나는 너의 팔을 베고서 편히 드러누웠다. 눈을 감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나는 우리를, 그리고 우리의 전생을 회상했다. 끝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조금씩 달랐지만, 전생의 결말은 늘 똑같았다.

너는 죽는다. 내가 아무리 너를 구하려고 발버둥을 쳐봐도, 사람을 살리는 데 필요한 학문을 전부 섭렵해도, 카인은 끝내 죽음을 맞이한다.

너는,

병들고 창에 찔리고 마물의 독에 당하고 맹수에게 물리고 완연히 숨통이 끊길 때까지 함부로 베이고, 그렇게 계속해서, 신이 내린 저주로 인해,

살해당하고살해당하고살해당하고살해당하고살해당하고살해당하고살해당하고살해당하고살해당하고살해당하고살해당하고

또 살해당한다.

이른 나이에 너의 장례식을 치른 게 벌써 열두 번이다. 그중 세 번은 시체도 채 수습하지 못했다. 텅 빈 관을 묘지에 묻으며, 내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었던가. 열세 번째 장례식은 이제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언제 잠이 들었던 걸까. 눈을 떴을 때는 아직 새벽이었다. 나는 내 옆에서 곤히 잠들어있는 너를 바라보았다.

눈꺼풀을 내리깐 모습은 죽은 이와 구분할 수 없으나, 색색거리는 숨소리와 규칙적으로 들썩거리는 흉곽은 네가 살아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나는 손을 뻗어 너의 볼을 어루만졌다. 예상했던 대로 온기가 느껴졌다.

그 온기를 지키고 싶었다.

어떤 수를 써서든 지켜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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